소니아 유안, 미우라 도코, 하마구치 류스케, 기리시마 레이카, 데루시아 야마모토(왼쪽부터). 사진제공 SHUTTERSTOCK.
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감독인 <해피 아워> <아사코>의 하마구치 류스케의 만남. <드라이브 마이 카>는 이 뜨거운 만남만으로도 충분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하루키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드라이브 마이 카>는 칸영화제 중반까지 최고 평점을 기록하며 강력한 수상작으로 거론되고 있다.
영화는 연극배우이자 감독인 가후쿠 유스케(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그의 전속 운전기사로 고용되는 와타리 미사키(미우라 도코)의 조용한 동행을 따라간다. 유스케는 2년 전 사랑하는 아내(기리시마 레이카)를 잃었고, 안톤 체호프의 연극 <바냐 아저씨>를 연출하기 위해 히로시마로 향하는 중이다. 3년 전 <아사코>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번에도 사랑과 이별, 소멸과 지속에 관한 섬세한 드라마를 들고 칸을 찾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을 각색하는 과정은 어땠나. 어떤 방식으로 당신만의 생생한 스토리를 만들었나.
하마구치 류스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접했던 건 2013년이었고 그땐 영화로 만들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이후 데루시아 야마모토 프로듀서가 하루키의 소설을 각색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면서 영화가 시작됐다. 소설의 여러 요소들이 마음에 와닿았고 내 작업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다. 캐릭터들의 관계라든지, 유스케와 미사키가 차 안에서 나누는 친밀한 대화라든지, 원작에 묘사된 내밀한 관계들을 영화에 잘 가져오려 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연기 연출법에 대해 들려준다면.
소니아 유안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런 식의 리딩은 이전에 해본 적이 없었다. 반복적으로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었다. 마지막엔 동선까지 확인하며 리딩을 했다. 하마구치 감독을 100% 아니 그 이상 믿고 따르려 했다. 반복적인 리딩은 대사를 잘 외우기 위함도 있지만 단순히 문장을 외우는 것 이상으로 자연스럽게 그 상황에 녹아들길 바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텍스트는 외우는 게 아니라 체화해야 한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반응할 수 있다.
기리시마 레이카 감정을 배제한 채 대본을 읽어야 했는데, 영화를 찍기 시작하면서 그런 방식의 연기를 요구한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감정을 배제하기 때문에 대화도 상황도 고요하고 간결해진다. 오랫동안 연기를 해왔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고, 아직 발견하고 배울 게 더 많다는 걸 느꼈다.
미우라 도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자연스럽게 마음을 따라가도록 한다. 또 리딩할 때 캐릭터에 맞는 목소리와 음색을 찾아가는 과정도 중요했다. 나는 배우이자 가수이기 때문에 목소리의 발견 과정이 흥미로웠다. 이런 경험은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국적 캐스팅을 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이전에 다국적 캐스팅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한국인 배우들과 대만, 필리핀 배우들의 멋진 목소리와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환상적인 캐스팅이 이루어졌다.
-영화의 중요한 주제는 소통인데, 말에 기반한 소통이 아니라 수어나 침묵 등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꼭 언어적 소통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더이상 의미를 알 수 없는 대화들이 있다. 말을 사용하지 않는 소통 방식이 흔한 건 아니지만, 침묵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침묵은 두 사람이 의사소통을 하지 않거나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선 다국적 배우들이 여러 언어로 연기를 하는데, 언어 너머에 있는 의미들이 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어떤 배우의 연기가 좋다고 말할 때 그건 그 배우의 말을 이해해서라기보다 언어 너머의 의미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로서 이번 영화에선 어떤 도전 과제들이 있었나.
데루시아 야마모토 우리는 이번에 일본을 벗어나 부산에서 촬영하려 했었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부산에서 촬영할 수가 없어 결국 영화의 배경을 히로시마로 바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장면만큼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보이길 바랐다. 비록 촬영은 한국에서 못했지만 한국인 듯 보이게 영화를 찍었다.
-이전작 <해피 아워>는 러닝타임이 5시간이 넘고, 이번 영화도 러닝타임이 3시간이나 된다.
데루시아 야마모토 3시간이 길긴 하다. 일본에서 이런 영화를 제작하는 일, 메인 스트림의 바깥에서 영화를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감독을 믿었고, 감독이 원하는 바가 영화에 모두 담기길 바랐고, 그렇게 영화가 만들어지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내 역할이다.
하마구치 류스케 나도 90분이나 120분짜리 영화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관객으로서도 그런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를 만들 땐 그런 길이의 영화를 만들기가 어렵다. 이 캐릭터는 어디서 왔고 그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뭔가. 그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그런 고민을 계속한다. 내 목표는 캐릭터들을 그들의 집으로 이끄는 것이다. 캐릭터들을 어디로 데려가야 하는지, 어디서 끝을 내야 하는지 잘 모른 채 영화를 시작하기도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것이고 그 생각을 프로듀서와 공유하며 영화를 만든다. 프로듀서에게 긴 영화를 보여줄 땐 미안하기도 하지만, 내가 확신하는 건 이 영화에는 이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3년 전 <아사코>로 칸 경쟁부문에 초청받았고, <휠 오브 포춘 앤드 판타지>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드라이브 마이 카>로 다시 칸에 왔다.
하마구치 류스케 지금껏 독립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는데, 국제영화제에서 경력이 시작되고 주목받게 되어 영광이다. 박스오피스에서 성공하거나 투자를 받는 것과 무관하게 국제영화제에서 내 영화를 소개하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엄청난 힘이 되고 격려가 된다.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게 해준 칸영화제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