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누구나 착각을 경험하게 된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로 착각하여 등을 친 경우도 있지만, 현재 애인을 옛 애인의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도 착각에 해당할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에서 남자는 애무 도중 옛날 여자의 이름을 부르고는 당황했다가는 이내 그게 뭐가 그렇게도 잘못된 일이냐고 오히려 따진다. 냉소적인 장면이지만 한편으로는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반면 독립영화에서는 ‘착각’을 아주 심각하게 다루거나 그것을 통하여 삶의 풀리지 않는 구석에 대해 발언하고자 한다. 그것은 새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하기도 하다.
독립영화관(KBS2TV 토 새벽 1시10분)에서 방영할 <링반데룽>(감독 박종용, 16mm, 컬러, 14분, 2001)에서는 안개, 폭우, 폭설, 피로 등으로 산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같은 지역을 맴돌게 된다는 뜻의 등산 조난 용어를 제목으로 삼고 있다. 밤 등산을 하던 세 친구는 서로 줄로 묶은 채 가다가 도연이 실족하는 바람에 모두가 길을 잃게 된다. 이틀 만에 텐트 속에서 깨어난 도연에게 벌어지는 일은 거의 똑같은 일이다. 칡즙을 마시게 하고, 발가락 뼈를 맞추며 무릎의 고름피를 입으로 빠는 것 등이 바로 그 똑같은 일들이다. 영화는 반복적으로, 약간씩 숏 크기와 각도를 바꾸면서 보여준다.
반면 <데자뷰>(감독 조창렬, 16mm, 컬러, 18분, 2001)는 기시증을 일컫는 제목이다. 어디선가 경험했다는 착각, 어떤 사건이 눈앞에 벌어졌는데 그 상황이 꿈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증세를 말한다. 영화에서는 같은 상황을 경험하는 한 남자의 데자뷔와 한 여자의 데자뷔가 번갈아 일어난다. 신기한 구경거리지만, 이 심각성이 유머 혹은 어떤 통찰로 낙찰되지 않는 것은 참 불편하다. 이효인/ 영화평론가·경희대 교수 yhi60@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