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불과 재>(이하 <불과 재>)는 극장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배수진을 치고 돌아왔다는 <불과 재>는 이미 전작들을 통해 검증된 오락적인 재미만큼이나 둘러싼 상황이 흥미롭다. 극장 산업의 침체와 쇠퇴 속에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입, 집약된 결과물은 (의도나 완성도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향후 산업의 향방을 가를 지렛대의 운명을 부여받았다. 이 시점에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불과 재>가 처한 상황을 마케팅에 활용하길 꺼리지 않는다. 기자시사에서 영화보다 먼저 상영된 제작진의 편지에서 감독은 자신 있게 선언한다. “AI 생성 이미지를 하나도 쓰지 않은 <불과 재>가 뉴시네마가 되어야 한다”고. <불과 재>에선 이제 ‘아바타’ 기술이 더 이상 중요치 않다. 인공 신체로 의식을 옮긴다는 핵심 설정은 어느새 소품에 가까운 장치가 됐다. <아바타: 물의 길>에서는 행성 생태계의 창조에 더 집중했고, 이번 <불과 재>에서 집중한 건 아무래도 감정의 형상화처럼 보인다. 마찬가지로 <아바타> 시리즈는 더이상 시청각 체험으로서의 혁신을 추구하지 않는다. 경이로웠던 3D영화가 더 이상 극장 산업의 유효한 모델이 될 수 없음은 다들 확인한 바다. 이 시점애서 <불과 재>가 강조하는 기술의 중심에는 이른바 ‘이모션 캡처’가 있다. 모션, 퍼포먼스, 이모션 캡처로 이어지는 발전은 얼핏 말장난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목표 지점이 분명 다르다. 모션 캡처가 동작의 재현, 퍼포먼스 캡처가 좀더 세밀한 동선의 리얼리티를 추구했다면(1편부터 일찌감치 표방했던) 이모션 캡처는 문자 그대로 감정의 기술적 묘사를 추구한다. 이를테면 영화적 장소라는 눈의 정복, 얼굴(로 형상화될 감정의 정도)의 재현을 목표로 한다고 해야 할까. 본질 (혹은 과거)로 회귀한 제임스 캐머런은 여기서 ‘진짜 혹은 새로운 시네마’의 조건을 발견한 것처럼 보인다.
인터뷰에서 <불과 재>의 배우들은 한결같이 이건 가짜가 아니고 진심을 담은 연기를 펼쳤다고 고백한다.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실체에 대해서는 좀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 <불과 재>가 말하는 ‘진짜’의 근거는 사람의 연기라는 원형과 실체가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린스크린에서 특수복을 입고 있지만 물리적 근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구태여 제작 과정까지 보여주면서 강조한다. 한때 시지각 기술의 최전선에 섰던 <아바타> 시리즈는 앞으로 나아가는 걸 멈추고 어느새 과거로 회귀하며 전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그야말로 극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언한다. 여기가 (원본 없는 이미지로서의) 생성형 AI와 대결하는 시네마의 최전선이 될 것이라고. 그토록 저항받았던 CG는 이제 당연한 것이 됐다. 필름이 가고 디지털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도 영화는 ‘찍는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시네마’의 전선을 구축했다. 이제 그 전선이 <아바타> 시리즈까지 내려왔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흥미롭다. 한때는 적이었던 존재가 이제는 최전선에서 스스로 깃발을 들고자 한다.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영화의 성패와 무관하게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실감한다. 앞으로 이미지의 위계는 어떻게 재구축될 것인가. 증오를 넘어, 서로 연결되어, 다음 세대로 나아갈 수 있을까. 고전적 회귀를 주장하는 <불과 재> 앞에서 문득 되살아나는 한 문장.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