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미형 캐릭터를 판촉의 코어로 내세우면서 전투 설계와 조작을 충실히 완성한 국산 액션 어드벤처게임 <스텔라 블레이드>(2024)는 국제적으로 호평받았다. 모바일 ‘가챠판’에서 정통의 콘솔/PC 분야 진출에 성공한 개발사 시프트업의 김형태 대표가 지난 1월9일, 청와대 경제성장전략 국민보고회에 참석해 밝힌 게임 산업의 AI 활용에 관한 제언은 국내외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중국의 막대한 개발 인력에 맞서려면 개발자 한 사람이 AI로 100명분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대륙의 인해전술에 대한 분단반도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비유로 정부 관료들에겐 퍽 인상적으로 들렸겠다. 하지만 SNS와 커뮤니티의 유저들은 묻는다. 그래서 일자리를 잃을 나머지 99명은? 아니, 수천명의 중국 개발자들도 이미 AI를 쓰고 있지
않을까? 비슷한 시기, <발더스 게이트3>(2023)로 CRPG(클래식롤플레잉게임)가 아직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장르임을 입증했던 라리안의 수장 스벤 빈케는 차기작 <디비니티>의 컨셉 아트 개발에 생성형 AI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개발 속도를 높이려면 반복 작업에 AI 활용이 불가피하며, 게임에 사용될 에셋을 제작할 때 라리안이 소유한 데이터로만 학습시키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형태 대표와 스벤 빈케의 말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결국 같은 입장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린 AI를 쓸 거예요. AI로 모든 것을 하자는 쪽, AI를 거친 그 모든 것을 거부하겠다는 쪽 모두 이 광풍을 피할 수 없다.
한국에도 서비스를 시작한 넷이즈의 무료 오픈월드 무협 RPG <연운>. 최근 안타까운 부고를 전한 ‘화운 사신’ 양소룡을 게임 속에서 만나 그에게 합마공을 배우고, 태극권을 익혀 곰을 잡아 던지고, 무엇보다 처음 경공술로 하늘을 날 때의 상쾌함이 인상적이다. 이 게임에서 특히 더 놀랐던 건, 필드의 NPC와 친분을 맺고자 대화를 하는데 그들 하나하나에 LLM(대형언어모델) 챗봇이 동작하고 있음을 알았던 때다. 일당백과 가두리양식을 논하기 전부터 이미 중국산 게임은 AI를 제대로 활용한 미래에 먼저 도달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연운>의 영문 제목은 ‘Where Winds Meet’, 게임 업계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AI 바람을 앞장서서 맞는다. 여기 휩쓸려 너도나도 다 쓰는 경공을 자신의 무공이 뛰어난 것으로 착각할까, 아니면 눈 가린 채 바람을 가르고자 검을 휘두르며 고고하게 버틸까? 한낱 인간 노동자에 불과한 유저는 고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