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레이미 감독이 돌아왔다.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평범하고 로맨틱하기도 한 제목 뒤에 엄청난 반전을 숨겨두고 있는 영화다. 스플래터 호러 영화의 전통적인 쾌감과 뒤틀린 유머를 칼날 삼아 직장 내 성차별 이슈를 공략한다. 샘 레이미 감독과 배우 레이철 맥애덤스, 딜런 오브라이언이 지난 1월26일, 개봉을 앞두고 국내 기자들과 나눈 화상 대화를 전한다.
- 샘 레이미 감독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 듯한 인상을 주는 영화다. 중요하게 생각한 연출 방향은 무엇인가.
샘 레이미 범인이 누구인지에 주목하는 ‘후던잇’(whodunnit) 서사의 걸작들처럼 관객이 대체 누구를 믿어야 할지, 또 어떤 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안전할지를 판단할 수 없게끔 혼란을 안겨주려 했다. 주인공처럼 보이는 여성 린다를 믿어야 할까? 아니면 처음에는 안타고니스트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끌리게 되고, 어쩌면 우리가 의지해야 할 유일한 안식처일지도 모르는 브래들리를 믿어야 할까? 나는 관객이 감정적으로 이입하는 대상이 계속해서 뒤바뀌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 다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기분을 선사하려 했다. 영화 내내 긴장감과 공포를 조성하는 건 내가 즐기는 작업 방식이다.
- <노트북> <어바웃 타임> 속 로맨틱한 이미지의 레이철 맥애덤스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시켰다.
샘 레이미 거장다운 면모를 지닌 배우다. 이전에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놀라운 경험을 선사했다. 대본 속 캐릭터를 완벽히 이해했고 린다의 의상과 스타일, 걸음걸이까지도 직접 만들면서 깊이감을 더해주었다. 무인도로 옮겨가기 전 극 초반의 사무실 장면에서도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는 문구 같은 걸 직접 책상 위에 적어놓고는 자신만의 연기 환경을 만들어놓더라. 그 정도로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 이번에는 배우들에게 묻겠다.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레이철 맥애덤스 린다가 겪는 변화, 그녀가 가진 복잡하고 다층적인 면모들, 그리고 영화가 전개됨에 따라 그 겹겹이 둘러싸인 내면의 층을 하나씩 벗겨내면서 숨겨진 그녀의 진면모를 드러내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나는 항상 캐릭터 속으로 파고드는 작업을 좋아한다. ‘과연 내가 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손에 닿을 듯 말 듯한 목표를 향해 나 자신을 한계치까지 몰아붙일 때 비로소 가장 흥미로운 결과물이 나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역할이 딱 내가 원한 지점에 있는 도전이라고 느꼈다. 물론 샘 레이미 감독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이후 다시 팀을 이루게 되어 정말 기뻤다. 함께 일했던 경험이 너무 좋았다.
딜런 오브라이언 브래들리는 단순히 일차원적인 악역이 아니다. 뭐랄까, 질감이 살아 있고 복잡하면서도 인간미와 유머가 섞여 있는 캐릭터라 느꼈다. 그런 인물을 즐겁게 연기할 수 있었고, 동시에 레이철 곁에서 그녀를 뒷받침하며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정말 즐거운 기회였다. 이전에는 한번도 연기해본 적 없는 캐릭터를 맡게 된 점도 좋았다.
- 린다는 감정의 양극단을 오가는,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다. 사무실과 무인도에서의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그녀의 내면을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했나.
레이철 맥애덤스 내가 린다를 사랑하는 이유는 모든 일에 온 마음을 다하기 때문이다. 긍정적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태도를 유지한다. 회사 생활도 스스로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인물이다. 사람들이 싫어해도 멀어지지 않으려 계속 시도한다. ‘할 수 있다’는 정신, 결국 모든 것은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것이 린다의 좌우명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우리에게 자문을 해준 생존 전문가이자 스턴트 배우인 카이 퍼누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생존 가능성의 80%는 정신력에 달려 있다”라는 걸 알려줬다. 마침내 그녀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고, 그 노력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멋진 경험이다. (웃음)
- 현장에서 둘 사이가 유독 돋보였던 촬영이 있었다던데, 어떤 장면이었나.
레이철 맥애덤스 거장 감독과 일하면 정말 좋은 게 무엇인지 아나? 샘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둔다는 거다. (웃음) 정말 긴 호흡의 테이크를 찍게 해줬다. 그러면서 얼마나 지루하고 길어지는지 장난스럽게 상기시켜주곤 했다.
딜런 오브라이언 맞다. 감독님이 “난 이게 정말 좋아, 미친 것 같아! 말도 안되게 길지만 너무 웃기네. 근데 영화에는 절대 못 실을 거야. 편집자가 날 죽이려 들걸?”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레이철 맥애덤스 “절대 영화엔 못 들어가”라고 하셨지만 놀랍게도 그 ‘스시 장면’은 영겁의 시간처럼 긴 장면임에도 영화에 그대로 실렸다.
딜런 오브라이언 한 단어도 안 뺀 것 같다. 심지어 우리가 애드리브로 덧붙인 것들까지 전부 살려줬다. 그 11분에 달하는 장면이 우리 둘만의 긴밀한 호흡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시였던 것 같다.
- 영화를 기대하는, 직장생활에 지쳐 있는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딜런 오브라이언 사실 배우들은 사무실 근무 경력이 없다 보니 나의 조언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만약 권위적인 상사가 있다면, 그 사람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마음의 칸막이를 치고 잠시 분리시키는 방법을 찾아보는 걸 추천한다. 그들의 폭풍 속으로 함께 끌려들어가지 않도록 말이다.
- 정말 오랜만에 감독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호러영화로 돌아왔다. 호러라는 장르가 지닌 매력은 무엇일까.
샘 레이미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두려움, 심지어 공포라는 걸 상상한 다음에 그것을 극복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극장을 나설 때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기분을 느끼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은 굉장히 짜릿한 경험이다. 어떤 면에서는 삶을 긍정하는 가치를 확인해주는 경험이기도 하다. 당신은 살아남았으니까.
- 사실 <이블 데드> 시리즈를 떠올리게 할 만한 앵글과 연출이 꽤 있다. 그런데 눈에 띄지 않게 숨겨놓은 이스터에그 같은 것이 있을까.
샘 레이미 <이블 데드> 시리즈의 브루스 캠벨은 악마와 싸우면서 끝까지 살아남는 연기로 유명했다. 이번에 깜짝출연하는데 죽은 자로 출연한다. (웃음)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무섭고 웃긴 영화다. 위대한 모험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경험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