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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game] 수라패왕고화산

누구나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고 믿는다. 문제는 어디에 쓰일 어떤 재능을 생애 주기 중 언제 찾느냐는 것이다. 사람마다 그 시기가 빠르고 늦거나 또 영영 안 올 수도 있지만, 천재적 재능은 대부분 중학생 때 정점에 도달한다. 그래서 무릇 천재란 중학생 때 세계를 제패하지 않으면 안된다. SBS 특집 2부작 다큐 <1997 세계 최강 아키라키드>는 대한민국 서울 대방동의한 전자오락실에서 세가의 대전격투게임 <버추어 파이터 3>를 통해 천재적 재능을 꽃피운 한소년과 그 전설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공유했던 동시대 한국, 일본, 대만 ‘버파’ 유저들의 이야기다. 닉네임 ‘아키라꼬마’, 신의욱은 만 15살에 일본에서 열린 세계 최초 대전격투게임 국제대회 ‘버추어 파이터 3 맥시멈 배틀’에 참가해 우승했다. 결승전에서 맞붙은 준우승자 역시 한국인 조학동이었다. 국제대회 구색을 위해 변방인 한국에서 데려온 두 사람이 본토의 유명 플레이어들을 모조리 쓰러트렸다. 심지어 처음 잡아보는 4각의 사탕 스틱(한국 오락실은 무각의 몽둥이 레버를 썼다)에 적응할 시간도 주지 않은 상태에서, 신의욱은 그 어렵다는 커맨드 ‘수라패왕고화산’을 매번 귀신같이 정확하게 집어넣었다. 넥스트 레벨, 아니, 어나더 레벨. 그러나 한국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추앙 받아야 할 천재 소년은 전설만 남기고 사라졌다. 재능의 영역 다음의 현실. 재능을 키워갈 열정을 받아줄 시장과 인프라, 그래서 세계가 존재 하느냐는 문제. 세계는 멋대로 진행되고, 중학생의 재능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간은 빠르고 소년은 늙는다.

누군가는 자각할 재능이 없는 대신 중2병으로 일생을 살아간다. 이 칼럼을 쓰는 내가 그렇다. 중학생 때 자신 안에 무엇을 담고 계속 꿈꾸려 애쓸 것인지가 이후의 인생을 정한다. 그렇다면 지금 중학생들은 대체 무엇에 빠져 있을까? 요즘 애들은 게임도 잘 안 한다는데, 그럼 대신 뭘 할까? <세이브 더 게임>과 같이 최근 1990년대 한국 게임계의 태동기를 반추하는 시도가 늘어난 것은 10대 때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을 경험한 세대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하던 경계를 경험한 이들이 현재 문화의 중심에 있다는 의미일 테다. 동네의 작은 오락실에 모여 끝없이 대전하던 소년들은 이제 모두 늙어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을 키우며 각자의 일을 한다. 이 다큐도 끝내 시청자의 눈물을 뽑는 순간이 있다. 중년이 된 아키라꼬마가 다시 스틱을 잡고, 그때와 똑같이 수라패왕고 화산을 집어넣는다. 몸이 아직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