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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제에서 영화‘제’로 - 21세기 영화제 체제의 변화와 의미

네 번째 키워드 - 상태 변이

제78회 칸영화제 프리미어 상영 직후 박수받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선댄스, 칸, 베니스, 베를린, 토론토 등 주요 국제영화제가 끝나면, ‘이전만 못하다’ , ‘예년보다 약하다’는 식의 전문가와 외신의 평가가 자주 등장했다. 최근에는 칸, 베를린, 베니스 같은 세계 3대 영화제조차 몇편의 영화로 한해의 성과를 압축하지 못하고 있으며, 선댄스영화제 역시 빅딜과 화제작이 사라지면서 2025년에는 ‘오프-이어’(off-year), 즉 ‘성과가 두드러지지 않은 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진단은 얼핏 보기에 좋은 영화들이 적게 만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영화제의 기능과 역할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좋은 영화가 줄었다’는 문제라기보다 영화제가 오랫동안 수행해온 기능, 즉 영화를 발견하고, 그 발견을 이슈와 사건으로 만든 다음, 유통을 확장하고, 담론을 조직했던 일련의 과정이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영화제가 영화의 생애주기를 주도하던 제도적 조건과 역할, 다시 말해 영화제 안에서 좋은 영화가 의미를 획득하는 경로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국제영화제가 강한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베니스(1932), 칸(1946), 베를린(1951) 같은 국제영화제는 2차 세계대전 전후에 생겨났지만, 영화제가 예술영화의 국제적 유통과 담론을 조직하는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 다시 말해 2000년대 전후의 전환기를 거치면서부터다. 이 시기 전세계 영화제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한국의 국제영화제도 대부분 이때 탄생했다. 전세계의 영화제들은 이 시기를 거치면서 더이상 단일도시의 문화 행사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국제적 네트워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영화제는 개별 이벤트가 아니라 영화가 세계를 이동하는 경로를 구성하는 ‘노드’(node)가 되었고, 이 노드들이 연결되면서 이른바 영화제 ‘서킷’(회로)을 형성하게 되었다(토마스 엘세서). 예술영화는 이 서킷 안에서 상징 자본을 획득하고 분배받으면서 영화제를 따라 이동했고, 이 과정에서 유통과 판매, 배급으로 이어지는 구조에 편입되었다.

이 시기 국제영화제의 효능감은 강력했다. 영화제는 한편으론 새로운 감독과 영화를 발견하는 장소로 기능했고(현재 칸, 베니스, 베를린의 경쟁부문에 초청되는 주요 감독들은 대부분 이 시기의 영화제 서킷을 통해 발견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발견된 영화를 국제적 담론과 시장으로 연결하는 통로의 역할을 수행했다. 영화제에서의 상영은 비평과 수상, 다른 영화제로의 초청, 세일즈와 배급으로 이어졌고, 이 모든 과정은 연쇄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기 영화제의 힘은 개별 영화의 미학적 성취를 넘어, 그 영화를 둘러싼 논의와 기대, 미래의 가능성까지 함께 생산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2000년대의 국제영화제는 단순히 ‘영화를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영화를 발생시키는 체제’로서 기능할 수 있었다.

이걸 가능하게 한 핵심 장치가 바로 프리미어 정책과 영화제 서킷이었다. 흔히 프리미어를 국제영화제의 본질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건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독점을 통한 희소성과 화제성을 창출하기 위해 제도화되어온 장치에 가깝다. ‘이 영화가 어디에서 처음 공개되었는가’에 대한 답은 영화의 작품성과 중요성을 미리 가늠하게 하는 기준이 되었고, 프리미어 작품 수와 위상은 영화제의 권위를 증명하는 척도가 되었다. 영화제 서킷은 영화제 일정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접근과 배제, 독점과 공유의 규칙이 작동하는 하나의 체계였으며, 프리미어는 그 체계를 유지하고 움직이는 핵심 규칙이었다(디나 이오르다노바, <Film Festival Yearbook 1: The Festival Circuit>). 영화는 월드프리미어를 통해 영화제 서킷에 진입하고, 인터내셔널, 대륙(아시안, 유럽 등), 국가 프리미어 같은 규칙을 통해 다른 영화제로 이동하면서 국제적인 라이프사이클을 확장했다.

이 체계가 견고해지면서 영화제는 예술영화 담론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영화제에서의 상영은 비평의 출발점이 되었고, 영화제의 프로그램은 한해의 세계 영화의 지형을 요약하는 지도가 되었다. 관객은 영화제를 통해 ‘지금 중요한 영화가 무엇인가’를 배웠고, 평론은 영화제를 매개로 동시대적 담론을 만들어냈다. 이 시기 평론의 권력은 지금보다 훨씬 막강했다. 영화제는 발견과 유통, 비평과 산업을 하나의 리듬으로 묶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2000년대를 국제영화제의 전성기로 기억한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체계는 더욱 정교해졌다. 영화제는 여전히 발견의 장소였지만, 동시에 산업과 미디어, 도시 마케팅이 결합된 복합적인 시스템으로 변화했다. 마리케 더 발크가 말한 ‘경제화’(economization)는 이 시기 영화제의 핵심적 변화를 잘 설명한다. 영화제는 여전히 상징 자본을 생산하는 장소의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그 상징 자본이 시장가치로 번역되는 비즈니스의 과정을 더 직접적이고 가시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영화제의 프로그램은 ‘모객’을 위해 점점 ‘사건’(화제성)을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영화제의 성과는 상영작의 수나 다양성보다 어떤 작품이 화제를 만들고, 한해의 대화를 주도했는지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영화제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영화제 서킷과 프리미어 원칙은 견고했지만, 새롭게 등장한 넷플릭스는 영화제의 기반이었던 극장 중심의 유통 질서를 흔들기 시작했다. 입소문과 비평적 성과, 국제적 명성과 흥행을 함께 잡으려는 영화는 반드시 영화제를 거쳐 극장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그동안의 순차적 이동 모델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칸영화제와 넷플릭스의 충돌은 이 변화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영화제의 정체성과 권위를 둘러싼 구조적 갈등임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물론 팬데믹 이전에는 이 모든 상황이 아직 체감되지 않았다.

누적된 변화는 팬데믹을 계기로 모습을 드러냈다. 극장은 멈췄고 영화제는 잠시 온라인과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전환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영화가 영화제를 통해서 먼저 관객을 만난다는 전제는 무너졌다. 팬데믹 이후 국제영화제의 기능 및 위상 약화로 인식되는 여러 현상들은 단순한 영화제의 위기라기보다, 영화제라는 체제가 변화된 환경 속에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징후라고 할 수 있는데, 최근 동시대 국제영화제가 직면하고 있는 이런 징후적 변화는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첫째, OTT로 인한 영화 생태계의 변화는 영화제의 발견 기능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특히 MUBI 같은 플랫폼의 등장은 영화제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MUBI는 스트리밍서비스를 넘어, 큐레이션과 제작, 배급, 극장 개봉을 결합한 예술영화를 위한 하이브리드 플레이어다. 최근 칸에서의 대형 신작 구매 사례가 보여주듯, MUBI는 영화제-마켓 체계의 외부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내부자가 되었다. 이제 큐레이션은 더이상 영화제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처럼 제작, 배급, 큐레이션, 상영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 전문화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상업영화뿐 아니라 예술영화의 경로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영화는 더이상 영화제를 거치지 않고도 제작과 공개가 가능해졌다. 이는 영화제의 독점적이고 신화적인 지위가 해체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영화제는 이제 ‘이 영화를 왜 선정했는가’보다 ‘어떻게 선정작의 의미를 발생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둘째, 프리미어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 OTT 상영, 지오블로킹(특정 국가 또는 지역의 사람들만 접근할 수 있게 제한하는 것), 온오프라인 동시 공개가 보편화되면서 “어디서 처음 상영되었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중요성과 의미는 이전보다 복잡해졌다. 주요 국제영화제는 프리미어 정책을 통해 영화제 상영 이전 온라인 공개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하지만 지오블로킹된 온라인 상영은 예외로 두는 경우도 있다. OTT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엄격했던 프리미어 정책은 변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프리미어는 이제 서킷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규칙에서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 가능한 전략적 도구가 되고 있다.

셋째, 한국을 제외한 많은 해외 주요 영화제들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수십년간 유지해온 조직에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특히 선댄스, 베를린, 로테르담, 로카르노, 셰필드, 핫독스 등의 영화제에서 영화 선정을 주도했던 핵심 인력들이 해고되거나 사임했다. 영화제 프로그래밍은 수백편의 출품작을 프로그래머가 보면서 스타일, 형식, 톤, 주제, 장단점, 작품성, 문화적 배경, 가치 등 다분히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영화의 상영과 탈락, 상영될 섹션을 결정하는 과정 전체를 말한다. 이 과정에서 창작자 또는 제작/배급사와의 협의가 병행되며 결정은 다시 조정된다. 이 긴 과정이 상영작과 탈락작 거의 전체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다년간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해당 영화제는 전세계 영화를 파악하는 정보를 축적하고 서로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갖게 된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의 변화된 환경은 수십년간 헌신해온 전문 인력들을 대거 탈락, 이동시키면서 신작 수급 네트워크에 균열을 냈고, 이는 영화제 서킷에 변화가 생긴 또 하나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최근 눈에 띄는 전세계 주요 영화제 프로그램의 변화 역시 이같은 영화제 전문 인력의 세대교체로 인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영화제도 다양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주요 영화제의 프리미어 정책은 영화의 이동과 확장을 막고 있고, 서킷 안에서 영화의 생애주기는 짧아지고 있다.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화제작의 수는 감소하고 있고, 영화제의 효용에 의문을 표하며 프리미어 이후 극장으로 직행하는 영화들은 늘고 있다. 좋은 영화의 감소는 영화제들의 차별성을 약화시키고 있고, 해외영화제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있다. 한편 영화제는 모객이 용이한 화제작 선정에 더 애쓰고 있고, 미지의 영화를 발견하기보다 이미 알려진 영화를 확인하는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관객들은 이제 프로그래머들의 선택에 예전만큼 관심을 갖지 않는다. 노후화된 영화제 조직은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또한 만성적인 예산 부족과 지방정부의 영향력 확대에 따라 영화제는 예산이 필요한 전문 프로그램의 기획을 망설이는 한편, 관객 확대와 지역 연계를 위한 대시민 영화 이벤트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영화제는 ‘영화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보다 ‘영화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면서, ‘영화’제에서 영화‘제’로, ‘영화를 보는 장소’에서 ‘영화 문화를 소비하고 체험하는 축제’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그럼에도 동시대 영화제의 기능과 의미는 여전히 유의미하다. 영화제는 변함없이 영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체제이며, 영화와 관객이 가장 진지하게 만나고, 함께 보는 관람 행위와 비평, 상영과 확장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유일한 공간이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영화제는 영화를 발견하고 영화를 지속시키려는 나름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약해지고 있는 영화제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영화제가 더이상 ‘영화를 처음 보여주는 장소’에 머물지 않고 영화가 상영되고 논의될 수 있는 시간을 어떻게 더 만들고 확장할 것인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프리미어와 큐레이션, 담론과 축제의 기능을 조율해 영화제 서킷이 영화의 발견과 이동, 확장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면, 지금의 변화는 위기가 아니라 전환의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북적거리는 영화제 풍경 가운데서 점점 힘을 잃어가는 영화의 모습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