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진 바대로, <사인필드>는 그 어떤 주제도 담지 않고 있는 텅 비어있는 드라마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보잘것없고 평범하기만 한 이 ‘비어있음’은 마치 속이 텅 빈 행운의 과자 안에 들어있는 경구마냥 되새김질 할 때마다 일상에 도움이 되는 작고 소중한 웃음으로 가득차있다. 무려 10년에 걸쳐 총 180개의 에피소드와 1개의 스페셜을 내보내며 시트콤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 <사인필드>는 우리 모두의 평범한 일상과 전형적인 미국식 잡담에 관한 백과사전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렌즈>가 탄생하기도 전에 그를 능가하는 큰 인기를 누렸던 <사인필드>는 스탠드업 코미디로 생계를 유지하는 제리 사인필드의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엉뚱한 뉴욕 생활을 보여주는 미국의 대표적인 시트콤이다. 제리 사인필드는 22살 때부터 뉴욕의 클럽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해온 ‘실제’ 코미디언인데, 1989년 래리 데이비스와 함께 NBC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딴 <사인필드>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선보이며 미국 드라마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된다.
눈을 씻고 봐도 도대체가 사건이라 부를 만한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이 소박한 드라마는 한 에피소드를 중국집에서 차례 기다리는 것으로 보내기도 하고, 밑도 끝도 없는 시시한 말다툼으로 10여분은 우습다는 듯이 흘려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소함과 함께 10년 동안 똑같은 표정으로 웃고 떠들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제리 사인필드와 그 친구들의 한결같음은 (믿기 힘들겠지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이다. 놀랍게도, <사인필드>는 무려 10년 동안 인간적인 관계와 주위 환경의 변화가 전혀 없이 - 바로 이 점이 직장 잡고 결혼하고 애 낳으며 성숙한 모습으로 끝난 <프렌즈>와는 달라도 한참 다른 부분이다 - 냉소적이고 실없는 뉴욕식 유머만으로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미 시즌 4가 오는 5월에 출시되는 미국에 비해서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제로에 가까운 드라마이니 일단은 DVD로 출시되는 것 자체가 반가울 뿐이다. 하지만 총 6개의 코멘터리와 2시간이 넘는 스페셜 피쳐에서 한글자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한글자막 또한 지나친 의역에 축약까지 해버렸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영어자막으로 드라마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참고로 <사인필드>의 쉽고도 생생한 뉴욕 영어는 최고의 영어 교재로도 손색없으니 영어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도 적극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