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의 꽃은 역시 아시아 영화다. 아시아 영화의 수입에 유독 박한 한국에서 부산영화제는 관객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줄 거의 유일한 장소다. 여기서 왜 ’거의’라는 단어를 굳이 붙였는가하면, 사실 국제영화제의 수가 늘어나면서 아시아 영화를 대할 기회도 조금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산만이 가진 아시아 영화 프로그래밍의 특징은?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발견과 발굴”이라고 말한다. “우리 부산영화제의 아시아 영화 프로그램이 독창적이라고 자신감을 갖고 말할 수 있는 시기가 드디어 온 것 같다. 사실 칸이나 베를린 등에서 주목받은 유명작들은 다른 영화제에서도 많이 소개하잖나. 부산은 새로운 작가의 영화를 발견하고 발굴하는데 더욱 중점을 두고 있다.”
올해 특히 주목해야할 국가는 필리핀과 대만이다. 필리핀은 지난 몇년간 브리얀테 멘도자 같은 작가들에 의해 국제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한 국가다. 올해 부산에는 익히 알려진 멘도자나 리야 마틴 보다는 “프란시스 파시온의 <삼파기타>, 아돌프 알릭스 주니어의 <트럭 밑의 삶>, 중견 감독 마크 메일리의 <이식> 등 장래 그들과 같은 급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신인들의 영화가 많다.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필리핀 영화의 부상에 여러가지 이유가 있단다. “전통이 굳건하다. 70년대말과 80년대 필리핀에는 혁신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들이 있다. 그런 선배들을 모델로 젊은 감독들이 나올 수 있었다. 국가의 정책적인 지원도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여러모로 90년대 한국영화계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야기다.
대만은 90년대 허우샤오시엔 같은 거장들을 내놓다가 어느 순간 산업 자체가 거의 몰락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나라다. 그런데 올해 부산영화제에서는 샤오야추엔의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조리의 <줌 헌팅>, 아빈 첸의 <오브아, 타이페이> 등 대만영화의 부활을 알리는 감각적인 수작들이 다수 출품됐다.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관객과의 소통을 원하는 젊은 감독들의 부상이 대만영화 부활의 열쇠”라고 설명한다. “예술영화만 만든다면 계속해서 관객으로부터 고립된다. 소통을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젊은 관객들이 좋아하는게 뭔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한다. 올해 대만영화들이 증거다. 영화가 예전보다 더 밝아졌다.”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마지막까지 공을 들인 부문은 특별전인 <쿠르드 시네마: 지배당하지 않는 정신>이다. 쿠르드족 출신 감독들의 걸작을 한자리에 모은 이 특별전은 판권 문제 등 여러가지 산적한 문제를 뚫고 겨우 성사된 행사다. 오죽하면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어려웠다. 죽는 줄 알았다”고 너스레를 떨까. 이라크의 쿠르디스탄 자치 정부는 정부 관계자와 문화계 인사로 구성된 사절단을 보낼 예정이며, 쿠르드 전통예술 공연단은 11일 오후 7시 피프빌리지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한다. 그곳에 가면 구성진 쿠르드 가락을 타며 고개를 끄덕이는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