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파기타> Sampaguita, National Flower 프란시스 판시온/ 필리핀/2010년/ 78분/ 뉴 커런츠
해질 무렵, 허름한 집 한 구석 라디오에서는 아이들이 나라의 미래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윽고 해가 완전히 떨어지면 아이들은 호롱불 하나씩 손에 들고 삼파기타 꽃밭으로 모여든다. 안개 같은 하얀 삼파기타 꽃밭의 파도 사이로 수많은 호롱불이 넘실거린다. 그렇게 아이들은 밤새 꽃을 따야만 한다. 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오프닝이 앞으로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나지막이 속삭여준다.
방치되는 필리핀 거리 아이들에 관한 다큐드라마인 <삼파기타>는 서정적인 화면으로 출발하여 냉혹한 현실의 길거리로 관객을 이끈다. 기본적으로 거리에서 삼파기타 꽃을 팔며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10명의 아이들을 핸드헬드로 따라다니는 방식을 취한 카메라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을 둘러싼 필리핀 사회의 병적 치부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빈곤의 악순환에서 사회는 눈을 돌리고, 관리 시스템의 공백 지대에 방치된 아이들은 그곳에서 스스로 생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무책임하게 신의 도움만을 바라는 어른들보다 거리의 삶을 배워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야말로 씁쓸한 한편, 관객으로 하여금 희망을 놓지 않도록 만든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 곳에서 스스로를 책임지는 아이들 간의 유대는 놀랍도록 단단하고 따뜻하기에 필리핀 사회의 무책임함에 대한 냉소는 더욱 짙어진다.
이 영리한 다큐멘터리 드라마는 거리 아이들의 모습을 따라가는 중간 중간 아이들 인터뷰와 함께 각각의 재현된 사연을 파편적으로 배치시킴으로써 호소력을 더하려 애쓴다. 아이들을 학대 하는 부모들, 밤새도록 꽃을 수확해야만 하는 농장, 매춘으로까지 내몰리는 아이들의 사연이 더해질 때마다 필리핀 사회라는 거대한 밑그림이 어디서부터 잘못 그려지고 있는지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