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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워쇼스키 형제, 제임스 카메론 모두 저패니메이션의 오타쿠(열혈 팬)들이다. <메트로폴리스>를 완성한 뒤 제임스 카메론에게 보여줬다. 그는 `지금까지 본 저패니메이션과 전혀 다르며 이게 차세대를 대표하는 방식이 될 것 같으니 힘내라'고 말했다. 이건 내가 일본에서도 언젠가는 만들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한 `풀 애니메이션'으로, 앞으로 이런 제작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60년대 <철완 아톰> 등의 텔레비전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제작비를 줄이고자 1초당 24프레임을 다 쓰지 않았다. 대신 동작이 거칠어지는 걸 가리기 위해 앵글을 바꾸거나 장면을 전환하는 등 저패니메이션 특유의 기법을 개발해왔다. <철완 아톰>부터 <하록선장> 등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수도 없이 만들어온 린타로는 이걸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이라 불렀고, 그 상대어로 작화수를 충분히 늘려 완벽한 동작을 연출하는 걸 `풀 애니메이션'이라고 불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같으면 계속해서 풀 애니메이션을 추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나 오토모 가츠히로, 오시이 마모루는 그렇지 못했다. 이번 만큼은 작화 수를 아끼지 않고 만들었다. 그 결과 총 작화수가 15만매로 저패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많다.” <메트로폴리스>는 바벨탑의 전설처럼 과학의 힘을 과신하고서 지구를 인위적으로 개조하려다가 파멸되는 미래의 묵시록이다. 음울한 이야기지만 시종 경쾌한 재즈음악을 내보내 화면과 절묘한 조화를 시도하고, 레이 찰스의 <아이 캔트 스탑 러빙 유>가 완주되는 가운데 이 거대도시가 무너져내리는 종반부는 실사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장관을 연출한다. “내가 태어난 41년은 뉴올리안즈에서 재즈가 부흥할 때다. 메트로폴리스의 이미지를 당시의 맨해튼에서 찾았고 거기에 재즈를 썼다. 레이 찰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이고 처음부터 <아이 캔트…>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무너짐, 망가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이 노래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다.” 린타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마음에 드는 건 <피노키오> 정도 뿐”이라며 “테크닉은 있지만 감동이 없다”며 디즈니에 대한 염증을 감추지 않았다. 그에게 40년 애니메이션 인생의 소회를 물었다. “먹고 산다는 생각으로 일해왔다. 그게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좀 낫다고 생각했고. 오랫동안 작가라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스타일은 일상적인 것 보다는 판타지나 에스에프처럼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선에 서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원래는 영화감독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애니메이션에서 그걸 추구하고 있으니 상관없다.” 글 임범 기자isman@hani.co.kr 사진 서경신 기자raoul@hani.co.kr

<스파이더 게임> 연쇄 납치극 겹겹의 반전 묘미

범죄스릴러 <키스 더 걸>은 제임스 패터슨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었다. 정신분석학자 겸 형사인 크로스가 특이한 강박증에 사로잡혀 미모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연쇄 납치극을 벌이는 범인과 대결하는 이야기다. 새로울 게 없어보이는 게임이었지만, 다소 맥빠지는 결말의 흠만 빼놓으면 깔끔한 성공작이었다. 패터슨의 크로스 시리즈를 또 다시 영화화한 <스파이더 게임>은 여러모로 <키스 더 걸>과 비교된다. 모건 프리먼이 심리분석에 뛰어난 크로스 역을 다시 맡았고, 전작에서 애슐리 주드를 파트너 삼아 사건을 풀어갔던 것처럼 이번에는 제시(모니카 포터)라는 여자 경호원과 짝을 이룬다. 처음부터 범인을 드러내놓고 시작함에도 긴장감이 좀체 흐트러지지 않는 건, 거미줄처럼 겹겹이 쳐진 반전의 그물망이 효과적으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인질이 또 다른 인질을 불러내고, 납치범이 또 다른 납치범에게 이용되는 발상은 신선하다. 뉴질랜드 출신의 리 타마호리 감독은 데뷔작 <전사의 후예>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머홀랜드 폴스>나 텔레비전 시리즈 <소프라노스> 등에서 안정된 연출력을 이어가고 있다. 워싱턴 경찰국 소속의 크로스 박사는 동료 여자형사를 범인에게 위장접근시키는 작전을 펼치다 그만 파트너를 잃고 만다. 이 충격으로 칩거하던 그에게 뜻밖의 전화가 날아오는데,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상원의원의 딸을 납치한 게리 손지(마이클 윈콧)가 자신과 게임을 벌이자고 호출한 것이다. 자신의 경호망이 단숨에 뚫려 허탈해하는 제시가 크로스의 새로운 짝이 돼 납치 목적조차 불분명한 사건에 빠져든다. 이성욱 기자lewook@hani.co.kr

진리는 어렵다

옛말에 ‘修身齊家 연후 治國 平天下’라고 하였으되 실은 맨 앞머리의 格物致知, 誠意正心을 빼먹는 수가 더러 있다. 독재 시절, 입신양명의 율법으로 수신제가 운운하는 실용적 처세를 최고 덕목으로 강요한 탓이겠으나 어쨌든 이 항목 중에 가장 어려운 대목이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격물치지, 네 단어다. 치국 평천하라고 해서 왼발로 프리킥 차듯이 조금만 노력하면 될 일은 물론 아니지만 격물치지, 이조차 해석이 달라서 ‘사물의 이치를 파고들어 궁극의 앎에 이른다’는 주희의 성리와 ‘마음을 어둡게 하는 물욕(격)을 물리쳐야 한다’는 왕양명의 도덕적 실천의 두 갈래로 나뉜다는데 실은 고현의 가르침을 편취하여 '혀를 놀리는 즐거움’을 주체하지 못한 천박함의 소산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격물치지’라! 아쉬운 대로 들리는 뜻 그대로 받아들이되 ‘사물의 본질에 도달하는 앎’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한때 우리는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불렀다. 그런데 과연 바보상자이기만 한 것일까. 즉물적 미디어 비평의 한계에 불과한 게 아닌가. 파시즘의 ‘3S 정책’ 역시 부족하기 이를 데 없다. 스포츠, 섹스, 스크린을 우민화 방략의 표본으로 앞세우고 그에 대한 비판적 언어를 뒤따르게 하는 것은 손쉬운 분석이지만 사물의 본질에 이르는 앎과는 거리가 멀다. 요컨대 인간의 삶이란 복잡하고 미묘한 것이어서 그것에 이르고자 하면 할수록 복잡하게 뒤엉킨 사유의 미로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호 <씨네21>에 실린 김규항씨의 ‘진리는 쉽다’는 이상의 내 생각을 되새기게 만든 바 있어, 며칠 궁금했다. 물론 김규항씨는 지식인 집단이 어떻게 견고한 지배블록을 형성하는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의 지식은 어떻게 오남용되는가를 비판하고자 했음이 틀림없으나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진리조차 알아먹기 힘들게 만드는 행태’라는 지적과 바로 이러한 지식인에게는 마오쩌둥이 1942년 연안강화 이후 시도한 하방(下放)을 되새겨야 한다고 한 점은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발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선 앞말에 대하여. 한마디로 진리란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며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물론 <조선일보>가 수구보수언론이고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은 장승업에 관한 영화이며 센강은 파리를 좌우로 가른다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사항이다. 이는 진리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이며 이에 의문이 들 경우 옆집에 가서 물어보면 된다. 그러나 인간이란 누구이며 그것도 추상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뚜렷한 시공간의 좌표 속에서 지금 당장의 현실을 살아가는 이 한반도에서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공부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모두가 ‘떨쳐 일어나면’ 풀릴 문제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사회주의권의 패망과 분열 당시 리영희 선생이 <사회평론>의 ‘공세적 인터뷰’에서 말한 ‘인간의 얼굴을 한 중국 인민’에 대한 성찰이 좋은 예가 되겠는데,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고 있는 한 인간의 내면에 더하여 수많은 갈등과 모순이 중첩된 현실을 겹쳐놓으면 진리란 ‘손바닥을 뒤집으면 손등이 보인다’는 식으로 풀리는 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왜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세계화에 반대하는가. 한 인간의 기호품 속에도 손쉬운 언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역사적 상황들이 중첩되어 있는 것이다. 가령 유시민의 <거꾸로 보는 세계사>는 이른바 시각교정용으로 더없이 좋은 책이겠으나 그것은 엘리아스와 홉스봄과 브로델이라는 문을 여는 열쇠로 요긴한 것이지 그 ‘쉬운’ 책 한권으로 역사와 인간을 ‘수난과 저항’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저자는 물론 김규항씨 역시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럴진대 진리를 쉽게 전달하는 일이란 그것을 얻는 일보다 어렵다고 하겠다. 아도르노는 “알기 쉽도록 의역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사유가 바로 진정한 철학”이라고 말한 바 있으며 이 때문에 그의 평전을 쓴 마틴 제이는 몹시 송구스러워 하였다. 손쉬운 의사전달이란 사유의 핵심적 실체를 고갈시키는 것이라고 저항했던 아도르노의 자세란 “의미는 설명할수록 무의미해진다”는 스탠리 큐브릭의 말로써 더욱 값진 경우가 된다. 그에 대응하여 ‘쉽게 쓰여진 책’이 빚을 수 있는 선의의 왜곡과 조작을 항상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또한 독자의 ‘실천’ 영역이다. 물론 김규항씨는 미로를 즐기고 궤변을 탐하는 지식인들의 행태를 비판한 것임이 틀림없지만, 그것이 어려운 책을 소화하기 힘드니까 쉬운 글 좀 써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다음 하방에 대하여. 나는 그것을 김규항식 비유라고 이해하고 싶다. <조선일보>의 궤변과는 다른 맥락에서 하방과 홍위병은 또다른 비판적 성찰을 필요로 한다. 그것을 위하여 우리는 첸카이거 감독의 청년 시절을 기록한 책을 섬세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어떤 사람이 실제로 하방을 감행한다면 그로서는 나름의 성찰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더 유익하기로는 ‘하방을 감행하는 심정으로’ 책을 읽어야 좋을 일이다. 카센터 직원이 하이데거까지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지식인들이 커먼레일 디젤 엔진의 원리를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최대공약수가 어디쯤 있을 것이다. 그 최대공약수를 위하여 카센터 직원은 운전은 하지만 자동차는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성실히 직업의 윤리를 다해야 하며 동시에 지식인들은 ‘책을 읽고 공부하라’고 사회가 허락해준 시간과 경제의 여유를 부끄러워하며 정녕 안광이 지배를 철하는 신념으로 장식용으로 사모은 서가의 책들을 밤새워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제2의 브리짓 존스

미라맥스 필름스사가 제2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라 할 만한 영국소설 <나는 그녀가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의 영화화 권리를 사들였다. <나는 그녀가…>는 영국의 칼럼니스트 겸 작가인 앨리슨 피어슨이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라프>에 연재한 주간칼럼들을 바탕으로 한 소설. 케이트 레디라는 성공한 여류 은행투자가가 일과 엄마로서의 의무 사이에서 악전고투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미라맥스는 이 작품을 <브리짓 존스의 일기> 후속타로 기획중이다. 작가 앨리슨 피어슨은 "미라맥스사가 맹렬여성 케이트 레디의 삶을 멋진 영화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마크 다아시 역의 콜린 퍼스

“선한 역은 연기하기도 보기도 지루해” 공명정대한 변호사인 것은 확실하지만 유머와 관련된 신경계에 손상이라도 입은 듯한 남자. 브리짓이 주책을 부릴 때면 황당함을 넘어서 분노에 가까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 남자. 그러고도 유사시에는 브리짓이 망친 파티 요리를 대신해 와이셔츠 소매를 걷고 오믈렛을 만들어주는 이상한 남자. “나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좋아요.” 마침내 마크 다아시가 꾹 다문 입매 사이로 빌리 조엘의 발라드 가사 같은 고백을 억지로 끄집어내듯 건넬 때, 브리짓과 여성 관객은 그만 그의 모든 ‘과오’를 용서하고 싶어진다. 루돌프 무늬 스웨터를 입는 그의 범죄적인 패션감각까지도. 전혀 매력없는 남자처럼 등장해 결국에는 관객을 사로잡는 어려운 다아시 역을, 힘도 안 들이고 연기한 콜린 퍼스(41)는 적어도 영국인들에게는 다아시 역의 배우가 아니라 미스터 다아시 자체다. 국내 케이블채널에도 방영된 바 있는 1995년 시리즈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 역이 그를 스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국 햄프셔 태생인 퍼스는 친가와 외가의 조부모 중 세명이 감리교 선교사였던 관계로 나이지리아에서 유아기를 보내고 다섯살 때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유치원 연극의 잭 프로스트 역으로 첫 무대에 선 퍼스는 대학 시절부터 연기자로서 미래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초크 팜 드라마센터에서 연기 수업을 마친 퍼스는 연극 무대에서 주목받은 뒤 영화 <어나더 컨트리>(1983), <발몽>(1989), <단짝 친구들>(1995)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했다. 최근작으로는 <잉글리시 페이션트> <셰익스피어 인 러브>와 축구광으로 열연한 <피버 피치>가 있다. <오만과 편견>은 큰 유명세를 가져다준 만큼 그의 연기 반경을 제약한 작품. 의도적으로 다아시의 이미지와 연관되는 것을 기피해왔던 그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캐스팅에 대해 “이 영화에서 다아시 캐릭터는 일종의 ‘인용구’이며 아이러니를 품고 있기에 수락했다”고 <텔레그라프>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선한 역은 연기하기도 보기도 지루하다”는 그의 신작은 나치의 변호사로 분하는 영화 <컨스피러시>와 주디 덴치, 루퍼트 에버렛, 리즈 위더스푼과 공연하는 오스카 와일드 원작의 <정직의 중요성>이다. 콜린 퍼스는 2001년 <피플>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 브리짓 존스의 일기 ▶ 마크 다아시 역의 콜린 퍼스

영화야, 걸음마를 가르쳐줄께

<쇼생크 탈출>에서 팀 로빈스가 읊조렸던 “바쁘게 살거나, 바쁘게 죽거나”라는 대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노재원(30)은 분명 ‘바쁘게 사는’ 쪽일 게다. 국내 독립영화배급소의 양대산맥인 인디스토리와 미로비전에서 여러 가지 기술적인 지원을 도맡고 있고, 올해로 다섯돌을 맞은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SICAF)에선 자신이 개발한 자막기를 틀었으며, 지난 봄부터는 디지털 편집을 가르치러 한겨레 문화센터에도 매주 출강하고 있다. 요즘은 자신의 주위를 빈틈없이 에워싼 ‘독립’이라는 단어를 실천이라도 하려는 양 자신만의 스튜디오를 출범키 위한 준비를 차근히 해나가고 있다. 이름은 ‘스튜디오 꿈틀’로 정했다. 작게 꿈지럭거리는 모양새를 이르는 말이든, 꿈을 찍어내는 팩토리의 의미든 다 맞다. ‘꿈틀’이라는 이름은 원래 경북대 재학 시절 몸담았던 영상창작집단의 것이었다. 선배들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무단으로 가져다쓰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지만, 겸손의 뜻일 게다. 지금 그들이 그의 모습을 본다면, 어느 CF의 문구처럼 ‘제대로 컸구나’라는 말을 절로 내뱉을 테니까. 그의 야무진 손끝과 매운 눈썰미는, 2학년 늑장 신입생을 받아준 영화동아리에서 여물었다. 정말 배운 건 다 써먹고 있는 셈이다. 비록 돈이 없어 필름작업은 꿈도 못 꿨지만, 카메라 만지고, 영사기 돌리고, 베터편집과 자막작업까지 모두 꿈틀에서 익힌 것들이다. 심지어 천상 조악한 필름으로만 봐야 했던 수입불가 테이프들을 구해다 복사하고 공공장소에 걸어 입장료까지 받아내던 뻔뻔한 추진력과 마케팅 실력도 그때 얻은 전리품.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든든하게 받쳐준 재산은 사람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대구의 씨네마테크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한건의 대형사고를 친다. 서울에서 본 <킹덤>이 대구까지 내려올 기미가 없자, ‘목마른 놈이 우물 파는’ 심정으로 또 한번의 불법상영을 계획한 것이다. 문화학교 서울의 필름 라이브러리에서 테이프를 복사한 뒤, 자막을 입히고, 텔레시네도 해서 영사기에 걸었다. 그 전에 대구지역 각 신문사로 전화해 광고를 부탁했고, 전단과 포스터도 넉넉히 뿌렸다. 이번엔 너무 덩치가 큰 작품을 건드렸다는 경고등은, 그러나 <킹덤>의 수입배급사인 KJ엔터테인먼트의 사장단이 들이닥치고 나서야 켜졌다. 250석이던 씨네마테크의 좌석을 꽉꽉 채운 채 첫날 두 번째 상영을 마친 뒤의 일이었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며 오히려 배급사쪽은 놀란 눈치였다. 나중에 얘기를 들은 즉슨, 이미 <킹덤>의 대구 상영이 결정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란다. 하지만 사장은 그들의 마케팅 실력을 높이 평가, 오히려 노재원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부탁했다. 하는 일이 워낙 다양하다보니 가끔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스스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다 누군가 자신의 일을 한마디로 정리해 주었는데, 그게 ‘마케팅 프로듀서’였다, 촬영과 편집의 산고 끝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하나의 작품에 말을 가르치고, 걸음마를 익히게 해 관객의 품으로 내보내는 일이라는 것, 예고편 편집부터, 스파팅을 비롯한 자막작업, 때로는 VHS복사와 영사기 돌리는 일까지 목적지를 향한 마지막 공정이 그가 서 있음을 알려주는 단어다. 얼마 전부터 일손이 생겨서 조금 편해졌다지만 독립영화인이란 늘 피곤하고 또 분주한 법이다. 전력질주 끝에 맛보는 달콤한 만나를 그도 언제쯤 받아먹게 되겠지. 이제 그의 나이 서른이다. 글 심지현/ 객원기자 simssisi@dreamx.net 사진 정진환 기자 jungjh@hani.co.kr

말을 해, 말을 하란 말야!

작업을 하다보면 신인연기자들도 만나고 후배연기자들도 만나게 된다. 아직 연기력이 본격적으로 검증된 것이 아니니까 우선 그 연기자의 이미지를 보고 느낌을 본다. 이미지와 느낌이 좋으면, 거의 확정하는 편인데 모든 캐스팅 작업이 이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이미지와 느낌이 다 맞는데 개런티가 맞지 않을 때도 있다. “당신의 이미지와 느낌이 이 배역에 맞는 것 같으니 같이 작업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캐스팅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다. “당신의 이미지와 느낌이 이 배역에 맞는 것 같은데 개런티가 안 맞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어떻게 안 될까요?” 하거나 “그렇게 개런티가 중요합니까? 그렇다면 이번 한번만 봐주실래요?”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냥 쿨하게 연기자를 만난 뒤 집에 들어가 무릎꿇고 기도나 드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이미지와 느낌, 게다가 개런티까지 맞아서 축복받은 기분으로 첫 리딩을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대사를 읽으면서 갑자기 연기를 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첫 리딩 때 열연까지 하는 연기자들도 보았다. 연기는 대사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사의 동기를 연기하는 것이다. 리딩 때나 현장에서나 나는 신인연기자들이나 후배연기자들한테 줄곧 다그치는 말이 있다. 말을 해! 말을 하란 말야! 왜 말을 안 하지? 리딩 때 낭패스러울 경우는 이렇게 알지도 못하는 감정을 미리 잡는 감정파와 그냥 책을 읽는 낭독파가 있다. 둘다 말을 안 하긴 마찬가지다. 저런 대사를 관객이 듣는다는 생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발음이나 음색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것들은 연기자들에게 부차적인지도 모른다. 우선 말은 전적으로 말같이 들려야 하는 것이다. 말을 하려면, 귀를 열어야 한다. 남의 말을 들어야 자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연기란 게 들은 만큼 주면 되는데 남의 말을 듣지 않고 혼자서 하려니까 잔뜩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는 것이다. 연기의 70%는 리액션이란 말이 있는 것도 잘 듣고 대답하라는 중요한 숨은 뜻이 있는 것이다. 대사가 말 같아지면 연기는 그때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된다. 이런 것은 비단 연기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직 대통령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대국민을 상대로 말씀이라고 하는 걸 보면 밥먹고 있다가도 당장 텔레비전 속으로 뛰어들어가 대통령의 멱살을 부여잡고 “제발 말을 해! 말을 하란 말야!”라고 다그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왜 말을 안 할까? 외국의 경우, ‘부적절한’ 예를 드는 것 같지만 빌 클린턴이 텔레비전에 나와 스피치할 때 그냥 편하게, 쿨하게 말하는 모습을 본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의 말하는 모습을 기억해보면 한결같이 잔뜩 불필요한 힘과 권위만 들어 있어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할 말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항상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본인은…” 하는데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하나도 친애하지 않는다. 국민의 말을 안 들어서일까 독재자들의 말은 하나같이 무겁고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웠다. 바라건대 다음 대통령은 말을 편하게 하는 사람이 뽑혔으면 좋겠다. 말을 말처럼 안 하고 허영심이나 권력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과 있으면 기분을 잡친다. 나 또한 말투가 워낙 느리고 느끼해서 혹시 상대가 내 말투와 어감을 듣고 권위적으로 생각할까봐 말에 힘 안 주고 가볍고 빠르게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누군가에게 어울리지 않게 왜 그렇게 촐싹거리냐는 핀잔을 받기도 한다. 사실 이게 말인데…. 김지운/ 영화감독·<조용한 가족><반칙왕>

인디비디오 상영회

독립영화단체 비디오작가연대는 9월7일 아트큐브에서 인디비디오 상영회를 갖는다. 17회를 맞는 이번 행사는 서태지의 음악을 작가의 시각을 담아 선보이는 뮤직비디오 강수헌의 , 소년의 짧은 삶의 단상을 그리고 있는 실험영화 <소년은 죽었다>, 김정석의 첫 극영화 , 자신의 채널을 찾아가는 정소희의 등을 상영한다(문의: www.indievideo.org, 02-337-2870)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이재용 - 영화감독 좋은 영화는 나를 깨어나게 한다 1995년 여름에 나는 영화 편집일로 뉴욕에 몇개월간 있었다. 어느날 한 시네마테크에서 무성영화시대의 거장 에른스트 루비치의 회고전이 있었는데, 사실 그전까진 그의 이름을 영화사 책에서나 본 듯한 기억이 있을 뿐이었다. 그중 1919년 작품 <굴 공주>(Oyster Princess)를 보았는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무성영화 코미디이고 폴라 네그리라는 여배우가 나왔으며 무척 재미있었고 기술로나 표현기법이 지금 보아도 별로 낡지 않게 매우 뛰어났다. 그 영화를 보고나서 무엇보다 ‘우리가 대한독립 만세를 부를 때 그들은 벌써 영화의 완성을 이루고 있었구나. 우리는 1927년에야 비로소 연쇄극 <의리적 구토>를 만들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영화는 한해에 꼽을 만한 수작이 한두편 나올까 말까 했고 과연 한국영화에도 르네상스가 올까 하고 나 스스로 의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출발선이 너무나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하나였고, 또 하나는 ‘한국에서는 저런 영화는 필름으로는 물론 비디오로도 못 보는 거겠지. 좋겠다…’ 하는 거였다. 영화공부는 극장에서 영화로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영화들을 시네마테크에서 필름으로 보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사실 영화사 공부를 한다 해도 영화는 보지도 못한 채 제목이나 감독이름을 외우거나 영화를 본다 해도 고작 비디오로, 그것도 네오리얼리즘영화 이전 것은 볼 기회도 거의 없이 그렇게 열악하게 공부하던 한국 상황이 서글펐다. 한국에서도 비록 비디오지만 시네마테크라는 이름을 걸고 영화를 보여주는 곳이 몇 군데 있었으나 초창기에 좀 찾아다니다가 안 가게 되었다. 화질이 만족스럽지 못했고 번역이 안 된 채 봐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봤는데도 기억이 잘 안 나는 영화를 생각해보면 한글 자막이 없었던 것이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올 여름 나는 무척 행복하게 보냈는데, 보기 드문 영화들을 서울에서 필름으로, 그것도 한글 자막을 넣어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등에서 주관하는 영화주간들이 그것인데 비디오영사로 자막을 입히는 기술이 나오면서 비로소 시네마테크운동이 본격화하지 않았나 싶게 그것은 훌륭한 방법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난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오즈 야스지로며 로베르 브레송, 알랭 레네 등등 거장이라는 그들의 영화를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기 전까지 필름으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실은 비디오로도 본 적이 없다. 에릭 로메르도 거의 마찬가지고 지난주에 한 ‘영화사강의’ 영화들도 그렇다. 한때 내 영화를 만들면서 보니까 재미로 보는 것 외에 굳이 남의 영화를 볼 필요가 있을까 생각 한 적 있었다. 왜냐면 결국은 자기 식대로 영화를 만들지 그다지 다른 영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다시 드는 생각은 좋은 영화는 나에게 영감을 주고 잠든 뇌를 한 번 흔들어 깨운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영화를 보는 것을 사람을 만나는 것에 비유하곤 하는데 영화와도 인연이 닿아야만 제대로 만날 수 있다. 시네마테크 영화주간들에서 보여주는 영화들은 어쩌면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르는 영화들이다. 그것들을 굳이 만나야 하느냐고 물으면 그건 자유지만 분명히 누군가에겐 아주 소중한 경험들이 될 것이다. 많은 것들의 가치에 의심을 품는 나로서도 당연히 옳다고 지지하는 것 중 하나가 시네마테크운동이다. 놓치지 말고 기회가 왔을 때 보길 바란다. 유운성 - 영화평론가 비디오에 만족했다면 많은 걸 놓쳤을 것 내겐 그다지 흔치 않은 영화적 경험을 맛보게 해준 영화 가운데 하나가 (얼마 전 TV에서도 방영된 바 있는) 로베르 브레송의 <당나귀 발타자르>이다. 나는 이 영화에 대한 세 가지의 관람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지난해 말 브레송 회고전을 통해 이 영화를 처음 보았고 얼마 뒤 프랑스문화원에서 다시 보았다. 그리고 위성방송을 통해 본 것이 세 번째이다. 사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았을 때도 이 영화의 비극성에 공감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경험은 과장없이 말해 가장 소름끼치는 공포영화를 보았을 때의 그것에 필적할 만한 것이었다(그런데 난 아직 공포영화 중에서는 그만한 정서를 유발시키는 예를 보지 못했다). 영화제나 회고전을 찾아다니는 건 두 가지 단순한 이유에서다. 하나는 이미 (비디오로) 본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서만 가능한 영화적 경험을 전해주리라 믿어지는 영화들을 찾아나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제나 회고전이 아니고서는 개봉관에서 거의 접할 가망성이 없는 영화들 가운데 이른바 ‘발견’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물론 기대가 충족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긴 하지만 아주 없지는 않다. 가령 포르투갈영화제에서 본 올리베이라의 <아브라함 계곡>이 전자의 기대를 만족시킨 영화였다면 같은 감독의 <불안>이라는 영화는 후자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외침과 속삭임>이나 <악의 손길>을 비디오로 보는 데에 만족했다면 난 아마 많은 것을 놓쳤을 것이다. 크리스 마르케의 <마지막 볼셰비키>나 <레벨 5>는 (개인적으로는) 예상치 못한 ‘발견’이었다. 기억에 남아 있는 몇편의 영화들이 있다. 두상 마카베예프와 파졸리니의 영화들, 혹은 존 포드의 영화들. 내가 그 영화들을 예전에 비디오로 보았을 때 놓쳤거나 알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새삼 궁금해진다(이 속보이는 말로 영화제를 기획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 기대하진 않습니다만…). ▶ 싹은 틔웠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 함께 둥지 틀까요? ▶ 영화 유학, 이제 갈 필요 없다! ▶ 3500명의 `공범`이 만든 시네필의 천국 ▶ 영화에 물주기, 숨통터주기 ▶ 영화인 4인이 말하는 시네마테크의 매력 (1) ▶ 영화인 4인이 말하는 시네마테크의 매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