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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빅 트러블

■ Story 엘리어트 아놀드(팀 앨런)는 한때 잘 나가던 신문 칼럼니스트였으나 회사에서 잘린 뒤 삼류 광고회사를 운영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인물. 그의 비루한 일상은 아들이 ‘물총 맞히기 게임’을 하러 여자친구의 집을 찾으면서 변화한다. 이 집엔 조직의 돈을 빼돌린 제니의 양아버지 아서(스탠리 투치)의 목숨을 노리는 킬러가 이미 도착해 있었던 것. 여기에 아서의 아내 안나(르네 루소), 동네 건달들과 비렁뱅이, 지역 경찰과 FBI 요원들이 차례로 휘말리며 그야말로 ‘빅 트러블’이 생긴다. ■ Review <빅 트러블>의 주인공 엘리어트는 어떻게 보더라도 마이애미를 핵폭발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만한 인물이 아니다. 상사에게 대들었다가 직장에서 쫓겨났고, 테니스 강사와 바람난 아내로부터 이혼당했으며, 파산한 뒤 아들로부터 ‘패배자’소리나 듣고 살아가는 그에게 영웅의 세계는 지극히 멀게만 보인다. 그의 탈출구는 엉뚱한 곳에서 만들어진다. 러시아로부터 밀반입된 핵폭탄을 둘러싸고 수많은 인물들이 얽히면서 그도 함께 휘말려든 것이다. 사정이야 어쨌건 그는 아들의 영웅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흠모하는 여인 안나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용감히 자신을 던진다. 자기 존재를 아들과 남들은 물론 스스로에게까지 증명해야 하는 절박한 사정에 빠진 그의 영웅담은, 그래서 보통 사람들에게도 웃음을 넘는 감정이입의 여지를 남겨준다. 그러나 <빅 트러블>은 왠지 허술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유머작가 데이브 배리의 동명 원작소설에 기반한 플롯은 꽤 잘 짜여져 있고, 데니스 파리나, 재니언 가로팔로, 제이슨 리, 오마 엡스 같은 막강 조연진이 뒤를 받쳐주는데도 영화는 샛길에서만 맴도는 느낌을 준다. 8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10여명의 캐릭터를 모두 설명하기 위해 시시콜콜한 농담을 과도하게 삽입했고, 그 바쁜 와중에도 급상승과 급강하를 반복하는 줄거리를 일일이 풀어놓으려는 무리수를 둔 탓. 때문에 정작 주인공 엘리어트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은 줄어들었고,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려면 좋은 짝을 찾아야 한다’는 영화의 주요 모티브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됐다. 물론 이 영화가 실망스럽다고 해서 배리 소넨필드라는 이름의 감독이 두명이 아닐까, 라며 IMDb를 검색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맨 인 블랙> 시리즈뿐 아니라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같은 영화도 있으니. 비행기 납치와 핵폭탄에 관한 에피소드가 들어 있는 이 영화는 미국에서 애초 지난해 가을 개봉예정이었으나 9·11 사건 때문에 올해 4월에야 개봉할 수 있었다. 문석 ssoony@hani.co.kr

영화배우 김혜수, TV 사극 <장희빈>에 발탁

탤런트 겸 영화배우 김혜수가 조선시대 요부의 상징인 ‘장희빈’역에 전격 발탁됐다. 김혜수는 조선 숙종조 붕당정치의 회오리 바람 속에서 지략과 미모로 부침의 인생을 살다간 희빈 장씨의 삶을 조명한 100부작 특별기획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역에 캐스팅됐다. 첫 방영일은 11월 6일. 윤흥식 KBS드라마 국장은 “이번 ‘장희빈’은 요부로만 그려졌던 과거 작품과 달리 장희빈이 숙종에게 인정받는 과정과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위주로 그릴 예정“이라며 “스타성과 함께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김혜수가 장희빈역에 적격”이라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KBS가 야심차게 준비해온 <장희빈>은 그동안 ‘장희빈’역을 맡을 여배우를 찾지 못해 제작에 난항을 겪어 왔다. 100부작이라는 긴 방영 시간과 연기력에 따른 부담으로 물망에 올랐던 여러 톱스타들이 꺼렸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제작진은 주인공 없이 지난 14일부터 촬영에 들어간 상태다. 게다가 문화재청이 고궁에서의 TV 야간촬영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워 제작진은 설상가상으로 촬영에까지 어려움을 겪어 왔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고궁의 TV촬영이 문화재청 훈령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은 뒤 나온 조치다. 그러나 김혜수라는 ‘대어’를 낚음으로써 드라마 제작에 활기를 띠게 됐다. 제작진은 “장기적으로 궁궐세트를 지을 계획이며, ‘응급조치’로 스튜디오 세트를 중심으로 촬영할 예정” 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혜수는 최근 흥행작 를 비롯 한국-홍콩-태국 3개국 합작영화 <쓰리>,<신라의 달밤> 등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영화에만 전념해 왔었다. 상대역인 숙종 역에는 MBC <허준>의 전광렬이 일찌감치 발탁됐으며, 인현왕후 역은 조만간 결정이 될 예정이다. 김혜수와 함께 최근 이미숙, 전도연 등 스크린 스타들이 대거 브라운관에 돌아와 안방극장에서의 연기 대결이 한층 불꽃 튈 전망이다.

[인터뷰] KBS2TV <장희빈>의 김혜수

“여배우로서 연기 인생을 걸고 한번쯤 도전하고 싶은 배역이었고, 누구보다 잘해낼 자신도 있습니다.” 오는 11월 6일 첫 방송될 KBS 2TV 100부작 특별기획드라마 <장희빈(가제)>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김혜수(32)가 22일 오후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연기에 임하는 각오와 소감을 털어놨다. ‘글래머 스타’ ‘건강 미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김혜수의 사극 출연은 아역 시절에 등장했던 86년 <사모곡> 이후 16년 만이다. 그는 최근 2년간 <신라의 달밤>, <쓰리>, 에 잇달아 출연, 영화에만 전념해 왔다. “제가 평범한 초등학생이었을 때 ‘장희빈’역을 맡은 이미숙 선배가 사약을 먹고 열연하는 장면을 TV에서 보면서 ‘내가 저 역할을 꼭 해야지’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과거에 그려졌던 ‘요부’나 ‘질투의 화신’이 아니라 삶에 대한 애착을 갖고 진보적, 의지적으로 살아가는 여인의 모습을 보여줄 계획입니다.” 오는 24일 민속촌에서 첫 촬영을 갖는 김혜수는 1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 수십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다양한 모습을 연기할 예정이다. 그는 이 작품에 회당 700만선의 역대 최고 개런티를 받고 캐스팅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흥식 KBS드라마 국장은 “김혜수씨가 100부작이라는 긴 시간 동안 드라마에 매진해야하는 만큼, 역대 최고 대우를 해줬다”고 귀띔했다. 현재까지는 SBS <별을 쏘다> 에서 회당 600여만 원을 받은 전도연의 개런티가 최고로 알려져 있다. 한편 김혜수는 11월초 촬영 예정인 영화 <바람난 가족> (제작 명필름)의 주연을 맡기로 이미 계약한 상태에서 <장희빈>에 중복 출연하기로 결정해 영화 제작사와 마찰을 빚고 있다. 이날 제작사인 명필름은 보도자료를 내고 “김혜수가 지난 9월 3일 영화 출연 계약을 체결, 개런티의 50%를 받고 촬영을 앞둔 상태에서 드라마 촬영을 병행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면서 “영화와 드라마 스케줄을 병행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영화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대해 김혜수는 “영화 대신 드라마를 선택하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꼭 해보고 싶은 배역이었다”며 “후회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밀애>의 두 배우 [2] - 이종원

이종원이 돌아왔다. 안방극장의 든든한 지주로 연기를 떠났던 적 없는 그지만, 스크린으로 돌아온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8년 만이에요. 강산에 몇번 주름 잡혔다 펴졌을 시간이죠” 신세대 남녀의 계약동거를 그린 신승수 감독의 코믹멜로 <계약커플>에 출연한 게 94년. 그는 네 번째 영화 <밀애>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장염 때문에 병원에 들렀다 오느라 예정보다 조금 늦게 스튜디오에 들어선 그는, 배우로서는 보기 드물게 명함을 내밀며 서글서글하게 인사를 건넸다. 괜찮냐는 물음에 쓱 웃더니 상관없다면서, “아이들이 먼저 걸려서 다같이 앓았는데, 이제 거의 나았다”고 말한다. 그렇지, 그는 어느새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그러니까 10대들이 의자를 넘어뜨리며 무수히도 흉내냈던 리복 광고의 청춘 스타로 떠오른 뒤로도, 참 오랜시간이 흐른것이다. 흰 남방에 찢어진 청바지 차림, 사진 촬영 때문에 드러낸 다부진 몸매는 아무래도 ‘아저씨’로 보이진 않지만. 사진 컨셉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한 이미지컷들을 꼼꼼히 살피며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는 그는, 모델 출신답게 촬영에 열심이었다. “설정 좀 그만하라”는 매니저들의 놀림에도 카메라를 쏘아보는 눈빛은 끄떡없다. 유학을 준비하다가 거리에서 우연히 모델로 발탁된 게 88년. 집안의 반대로 용돈도 못 받고, 토큰 2개 달랑 들고 충무로를 드나들던 그는, 리복을 비롯해 광고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그 직후 <열일곱살의 쿠데타> <푸른 옷소매> 등 2편의 영화도 찍었지만, 주무대는 역시 TV. <짝>의 풋풋한 비행기 승무원부터 <젊은이의 양지> <청춘의 <꼭지>의 성공을 꿈꾸는 젊은 야심가까지, 인기 드라마의 스타로 입지를 굳혀왔다.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했지만, 방송을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게 됐다.” 때로 겹치기 출연을 할 만큼 바쁜 방송 스케줄 탓도 있지만, “영화사에서 볼 땐 드라마 연기자란 인식이 강한” 때문인지 시나리오도 많이 들어오진 않았다고. 지난해에는 첩보영화를 할 뻔했는데, 계약 직전에 영화가 무산돼 본의 아니게 7개월을 놀기도 했다. 다시 <순정> 등 드라마로 돌아갔던 그는, 올 초 히말라야를 등반하면서 새삼 “영화라는 우물을 파겠다”고 마음먹었다. “산을 오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더 늦어지면 못할 것 같더라”며, 300∼400만명이 들고 흥행에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파이란>처럼 배우의 대표작이 될 만한 영화, “인정받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적어도 2년 동안은 드라마 제의가 들어와도 사양하고 영화를 하겠다고 벼만기다릴 무렵, <밀애>를 만났다. 게임처럼 시작한 불륜의 관계에 빠져드는 <밀애>의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는, “야한 것을 떠나서 어렵다”는 게 솔직한 느낌. 조용한 마을에서 병원을 하는 인규는 미흔에게 불륜의 유희를 제안하는 남자. 장난처럼 시작한 관계에서 예기치 못한 감정의 함정에 걸려드는 인규가 되기란, “이 영화를 한 것 자체가 모험”이라고 토로할 만큼 쉽지 않았다. 노출과 정사장면도 많고, 거기서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하는데, 저런 사랑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는 부담도 적지 않았다. 첫 2주 정도는 수년 만에 돌아영화현장에 적응하느라 헤맸지만, “더 찍죠”는 있어도 “그만 찍죠”는 없었다. <밀애>에 원없이 빠졌다가 나온 지금은, “불륜영화라기보다 애정영화, 흔하지 않은 사랑이야기로 봐줬으면” 하는 게 그의 소박한 바람. “카피가 격정멜로인데, 걱정멜로라고 하더라구. 걱정되는 멜로”라고 웃지만, 오렇맙스크린으로 관객과 만난다는 긴장감도 슬쩍슬쩍 스캑 그 싫지 않은 긴장을 오래 품기 위해, 그는 <나비>를 차기작으로 점찍었다. 삼청교육대를 배경으로 한 액션멜로 <나비>에서 군부의 대리인 황 대위로 악역을 연기할 그를, 당분스크린에서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실연남녀 에피소드 다룬 SM3 광고 두편

제작연도 2002년광고주 르노삼성자동차 제품명 SM3 대행사 웰콤 제작사 매스메스에이지(감독 박명천) ‘멋진 녀석이 노래도 부르네. 노래할 때 정우성의 표정 연기, 캬∼ 죽이는구먼. 어라 이번엔 고소영이 카드를 긁네. 그럼그럼, 남자만 돈 내라는 법 있나 여자도 쓸 땐 써야지.’(삼성카드 광고) ‘군더더기 없는 영상미 좋고,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란 슬로건도 기억에 잘 박히는군. 근데 가슴을 때리는 무언가가 좀 부족해. 왠지 혼자 잘난 체하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대단하긴 해. 다른 금융권 광고들이 너도나도 픽토그램을 활용해 단순미를 살리며 이 CF 흉내내기 바쁘잖아.’(굿모닝증권 광고) ‘비주얼 하나는 끝내주네. <델라구아다> 공연을 보는 것 같아. 벽 뚫고 달리고 점프하고, 붕 날고…. 정말 ‘Free to move’군. 아무렴, 괜히 칸 광고제(2002)에서 금상을 준 게 아니겠지.’(리바이스 광고) 요즘 브라운관을 누비고 있는 광고에 대해 사견을 전제로 자유롭게 내뱉은 ‘종알종알’의 일부다. 산고 끝에 탄생했을 남의 창작물을 놓고 즉각적인 인상으로 트집 잡고 감탄하는 게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겠지만 TV를 보면 입이 간지러운 나머지 버릇처럼 미주알고주알 혼잣말을 늘어놓곤 한다. 그런데 이 CF를 마주한 다음엔 잠시 말을 잃었다. 대단한 충격을 받아 어안이 벙벙해진 것은 아니다. 광고가 발산하는 느낌을 조용히 음미하고 싶었다. 마치 갑갑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로 나들이 갔을 때 심호흡을 하며 맑은 공기를 만끽하듯 말이다. 중형차 시장에 돌풍을 몰고온 SM5의 아우브랜드인 준중형차 SM3 론칭 CF가 오감을 환기하고 있다. ‘남자’편과 ‘여자’편으로 이뤄진 이 광고는 어느 남녀의 실연 그뒤 스토리를 병렬 배치해 눈길을 끈다. 배경음악은 그룹 퀸의 다. 먼저 ‘여자’편. 청명하면서도 애절한 프레디 머큐리의 힘찬 목소리를 따라 쫓아오는 남자친구를 뿌리친 채 차를 몰고가는 여자가 등장한다. 표정을 보니 몹시 골이 난 것 같다. 집에 돌아온 그는 샤워기 밑에서 몸을 적시며 분노를 떨쳐내겠다는 듯 몸부림을 친다. 이때 비오는 차 안에서 안락함과 쾌적함을 맛보며 드라이브를 즐기는 상상장면이 겹쳐진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바뀌는 차, SM3 덕분에 그의 얼굴엔 어느새 미소가 파고든다. 다음은 ‘남자’편. 여자친구와 이별한 남자는 방 안에서 창 밖을 멍하니 내다보며 아픈 가슴을 달래고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이 불편한 모양이다. 이번엔 방 안 오디오의 볼륨을 한껏 높여본다. 순간 카오디오의 소리를 최고로 올린 채 도심을 질주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바뀌는 차, SM3 때문에 그의 입가에도 마침내 편안한 웃음이 자리잡는다. 뮤직비디오 같은 감각적이고 함축적인 영상으로 실연남녀의 에피소드를 다룬 이 CF는 대구(對句)를 이루는 소재를 통해 슬로건의 키워드인 전환이란 메시지를 매끄럽게 전달하고 있다. ‘여자’편에서 샤워기의 물과 비, ‘남자’편에서 방 안의 오디오와 자동차 내의 오디오 등이 완결성을 돋우는 의도된 연결장치들이다. ‘여자’편에서 샤워기의 물방울이 눈부시게 방사되며 머리를 흔드는 여인의 몸짓과 어우러지는 대목은 촉감을 자극할 정도로 생생하다. 말없는 영상이 실연을 겪은 여자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훌륭하게 대변하고 있다. 뮤직비디오 스타일이란 게 볼 때는 멋지지만 뒷맛은 허기지기가 십상인데 시각적인 멋에만 그치지 않고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정서를 품고 있다는 점이 단연 눈에 띈다. 새롭게 시장에 나온 신차 CF답지 않게 메시지의 과욕을 세련되게 절제했다는 부분도 돋보인다. 이 광고는 특장점으로 삼을 만한 기능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질주하는 자동차의 매끈한 외양을 담는 보편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자동차의 감성적인 역할론에 주목했다. 목표소비자인 24∼34살을 대상으로 사전 리서치를 진행한 제작진은 타깃에게 자동차가 교통수단을 넘어 사색 혹은 기분전환의 공간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바뀌는 차’란 컨셉은 ‘우리 우울한데 드라이브나 갈까’ 같은 일상 언어의 광고 버전이랄 수 있다. 빗길을 달리는 차, 심금을 울리는 카오디오의 음악 등 광고 스토리에 녹아든 상황도 소비자의 공감지수를 극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남성과 여성의 후일담엔 차이가 있다는 인식을 엿보여 흥미롭다. 이 광고는 ‘여자’편을 동적으로, ‘남자’편을 정적으로 구성했다. 여자가 남자에 비해 더 매몰차게 이별하고, 화끈하게 실연을 극복한다. 하루에 2회씩 방송을 타는 1분 분량의 CF에는 금성녀와 화성남의 변별성은 더 두드러진다. 1분 길이의 광고에는 남녀의 회상신이 추가돼 있다. 남자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연인의 얼굴을 추억하는 반면, 여자는 남자에게서 받은 꽃다발을 뿌리치며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되새김질한다. 사랑이 지나가면 남자는 연인과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에 남기지만, 여자는 지긋지긋했던 순간을 떠올린다는 연애의 법칙을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 이 광고가 침묵의 여운을 남긴 것은 카타르시스의 영상이 매혹적이기도 했지만 사랑에 관한 개인적 상념을 자극했기 때문인 것도 같다.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

시지 <시경> 2002 창간호

홍일선은 80년, 전두환 신군부 정권이 폐간시키기 직전 <창작과 비평> ‘마지막호’로 나와 함께 등단한 시인이다. 신경림 전통을 잇는 새로운, 좀더 전투적인 농촌시인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강형철(시인·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은 그때 아무 생각없이 다음호로 밀렸다가 폐간의 철퇴를 고스란히 당하고 몇년이 지나서야 ‘신작 시집’ 출판물 형태로 등단했다. 단행본 혹은 ‘연간’ 무크지 형식으로 계간 역할을 대신한 ‘신작 시집’은 창비가 복간되기까지 몇 차례 더 나왔고 우수한 시인들을 많이 배출했지만 ‘신작 시집 등단’이란 말은 아무래도 어색하고, 자비 출판 오해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니 ‘시대의 부름에 응답’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홍일선과 나는 똑같이 턱걸이한, 운좋은 처지였으나 동시에, 그와 비교되는 것은 늘 ‘고초’였다. 당시 ‘민족’ 문단의 농민시 혹은 농촌 정서 선호는 정말 대단한 거라서 그는 모범적이고 교과서적인 시인이었던 반면 서울 출신에 고학력 소지자였던 나는 인간도 글도 마냥 ‘싸가지’였던 것. 그의 인품이 더없이 출중했으므로 사태는 더 심각했다. 화성 부농 출신으로 상경하여 싱싱한 우시장 내장을 가져다 음식점에 별미로 공급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그는 틈틈이 동료와 선후배 문인들에게 별미 중 별미를 술안주로, 혹은 보신용으로 베풀었고 일년에 한두번 그의 고향 들판에서 농익은 쌀막걸리(그러니까, 당시로서는 밀주)를 풀어 따스한 햇볕 바람에 취했다 깨어났다 다시 취하는 일은 곧 문단의 정례행사로 굳어졌고, 천진히 새하얗게 무르익은 그의 웃음은 한마디로 고된 가투의 시름을 말끔이 씻어주는 바 있었고, 그가 한꺼번에 전 재산을 사기당하고 급한 대로 독서실을 꾸려 입에 풀칠을 하게 된 경위는 오랫동안 문단 일반의 공분 사항이었다. 사람에 대한 실망이 워낙 컸는지 시 쓰기 활동이 매우 뜸하던 그가 좋은 벗을 만나 펴낸 이 잡지에 시단의 오랜 중추이자 글씨솜씨가 소문난 세 사람이 모두 휘호를 보탰다. 고은은 참 고운 필치로 ‘詩鏡’(시의 거울)이라 썼고 김지하는 ‘怪’의 필치로 ‘詩境’(시의 경지 혹은 경계)이라 썼고 김규동은 각고의 예술로 ‘詩耕’(시를 갈다)이라 썼다. 기로 꽉 찬 제자를 써낸 권영환은, 놀랍게도 손목 하나가 없다. 고은 대담은 문제적이고 김지하 시는 반갑고 김규동 회고는 흥미진진하다. 정현종-이성부 등 현역 최고 시인들이 신작을 보냈고 북한의 현대시들이 수록되었다. 나머지는 정말 시대의 부름에 응답한 시들. 이만한 축하를 받으며 창간된 책은 일찍이 없었다.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

O.S.T

은 흔치 않은 시대극이다. 무협역사물을 제외하면 순정영화나 코미디나 깍두기영화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영화가 당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속셈은 빤하다. 공감의 장치고 뭐고 필요없이 당대의 관객에게 직접 흥행하겠다는 것. 그런데 이 영화는 과감하게 당대를 떠난다. 이 점에서 우선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은 방준석이 맡았다. 지난번에 <후아유>의 음악을 소개하는 자리에서도 방준석은 소개되었다. 아주 잘 나가는 영화음악가 중 한 사람이다. <후아유>에서는 록밴드 출신 뮤지션답게 록적인 사운드를 살리더니 이번에는 시대극이라는 장르적 특성에 맞추어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 음악적으로 이 영화의 배경인 구한말 분위기에 접근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 이 시대 자체가 무엇이 포인트인지 갈피가 안 잡히는 시대였으니까. 이럴 때 접근법은 세 가지쯤 된다. 하나는 그 시대의 음악적 분위기를 살리는 것. 다른 하나는 시대적 배경과 별로 상관없이 인물들의 심리적 흐름에 맞추어 나가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이런 식의 ‘장르영화’에 쓰일 만한 ‘일반화된 음악’을 배경에 까는 것. 방준석은 그 여럿을 혼합하려 노력하고 있다. 일단 악기들의 사용 자체가 굉장히 폭넓다. 신시사이저, 국적을 알기 힘든 각종 타악기 등이 여러 국악기들과 어우러져 그때그때 맛을 내고 있다. 때로는 할리우드영화의 고전적 스케일이 느껴지는 ‘일반화된 장중함’을 선보일 때도 있고, 북소리, 꽹과리 소리가 어울려 신토불이의 느낌을 낼 때도 있다. O.S.T를 들여다보면 호창의 테마, 정림의 테마, Y팀 테마 등 중요 인물과 그룹에 테마를 주고 있는데, 이게 또 다른 단위가 된다. 그렇다면 음악은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축과 시대를 중심으로 한 다른 축, 그리고 일반화된 선율의 또 다른 축이 만나고 있는 것이 된다. 방준석은 다양한 악기들을 소화해내면서 그 여러 축이 만나도록 하는 힘든 작업을 그런 대로 성공시키고 있다. 영화음악감독 일이 왜 힘드냐면, 이렇게 여러 ‘음악적 자아’가 동시에 되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포인트가 좀 부족했다. 앞서 말한 ‘세개의 축’이 교차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구조’에 이르지는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왜일까. 아마도 영화 탓일 것이다. 영화가 좀 너무 순하다. 한마디로 영화에 날이 서 있지 않다. 날이 서 있지 않은 것은 포인트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YMCA 베이스볼팀’이라는 집단의 고유한 드라마와 구한말이라는 울분의 시대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 드라마의 어느 한쪽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 어쨌든 이 영화가 하나의 신호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다. 만날 ‘지금 여기’에서 지지고 볶는 일도 짜증난다. 당대를 좀 떠나라. 사실 ‘일제시대’는 장르화될 가능성이 많은 시대이다. 비밀결사가 있고 배신자가 있고 액션이 있으며 결국에는 해방의 기쁨이 있지 않은가. * 지난호에 몇 군데 틀린 대목을 많은 독자들이 지적해오셨습니다. ‘4인치’는 ‘5인치’로 바로잡습니다. 음악을 만든 스티븐 트래스크가 ‘토미 노시스’로 분장했다고 썼는데, 아니군요. 토미 노시스는 마이클 피트랍니다. 혼들 내주셔서 고마워요!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

우리 무의식의 참혹한 진경 산수화 <가문의 영광>

<가문의 영광>을 400만명이나 보았다니, 일년에 영화 두어 편 보는 사람들까지 이 영화를 보았다는 뜻이다. 정말 극장에는 40대 이상 관객도 곧잘 눈에 띄었고, 뜨악하게도 가족단위로 온 관객도 있었다. 세상에나… ‘15세 입장가’인 것도 아연할 원색적인 이 영화를 가족이 함께 보다니 나는 두번 보았다, 처음엔 웃으면서, 두 번째는 펑펑 울면서 말이다. 영화는 솔직하다. 우아한 주제를 천박한 키치로 푸는 이중의 ‘왕재수’를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부터 표현방식까지 통째로 천박하다. “그려! 우리 집안은 깡패여! 어쩔 것이여”라는 김정은의 한마디는 우리의 내면에 통렬한 카타르시스를 던진다. 그래 우리는 모두 천출이다. 그래서인지 그런 내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고, 우린 권력 앞에 비굴해지며, 사랑의 신성함 따위 그다지 믿지 않는다. 낯짝처럼 훤하게 성기를 찍으라던 ‘래리 플린트’의 말처럼, 영화는 우리의 치부에 렌즈를 들이댄다. 영화는 ‘천출 의식’과 ‘가족간의 숙명적 연대감’ 그리고 ‘자식을 통한 신분 상승 욕구’라는 우리의 어쩔 수 없는 무의식과 욕망을 노골적으로 깔아놓고, 그 위에 우리의 비겁과, 속물적 애정관을 포개 놓는다. 가족이란… 나의 가문을 먼저 까보이겠다. 한국전쟁으로 소년 가장이 된 나의 아버지는 무작정 상경하여 날품팔이를 전전하다, 60년대에 영세 소상점 경영자가 된다. 20년간 품위와는 거리가 먼 여러 장사를 통해 약간의 잉여자본을 축적하고, 운 좋게도 재테크에 성공하여, 80년대에 이르러 꿈에 그리던 중산층이 되었다. 덕분에 모두 대학교육을 받은 나의 형제들은 이런 우리 집안을 ‘6두품’이라 불렀다. 그래봤자 성골, 진골과는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이자, 2차대전 직후의 신생독립국이다. 5천년 역사의 자존심은 일제 강점기를 통해 짓밟혔으며, 전통의 권위는 한국전쟁을 통해 확인사살되었다. 전쟁 직후 원조경제를 영위하던 우리나라가 개발독재시대를 거쳐 천민자본주의적 급성장을 이루면서 이제 겨우 밥술이나 뜨게 된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근현대사가 입증하듯이 우리나라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갖춘 귀족이라 할 만한 계층이 희박하다. 좋은 집안 출신이라는 사람을 보면 나는 “너희 증조할아버지가 친일파였냐 아니면 너희 할아버지가 미군 물건 팔았냐 아니면 너희 아버지가 독재정권에 빌붙어 밀수나, 탈세나, 비리를 해먹었냐 그것도 아니면 너희 어머니가 복부인이었냐”고 묻고 싶은 욕구를 느끼곤 했다. 6두품인 내가 오버해서 박사과정쯤 오고보니, ‘진짜 명문가’도 존재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지만, 그건 가방 끈이 길지 않았던들 영영 알 길이 없었던 ‘미지의 세계’다. 나는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속엔 일종의 연대감 같은, ‘귀족이 아닌 자로서의 천출 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애비는 종이었다”는 시구 마냥 그러한 연대감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가족’이다. 집 밖에서 우연히 가족을 만나면 서글픈 법이다. 여수에서 일가를 이룬 조폭 집안의 딸, 김정은은 자신의 출신 성분을 망각하지도, 정체성을 혼동하지도 않고 자랐다. 그녀는 지역에서 세(勢)를 형성하고, 자본을 축적한 집안의 고명딸로서 피아노, 별자리 등 고급스런 취향의 교육을 남부럽지 않게 받으며, 섹스 따위는 껌딱지로 여기는 집안 남자들 틈에서 오히려 기본적인 성교육도 못 받았을 만큼 순진하고, 보수적으로 자랐다. 힘있는 집구석 티를 내지 않으려 자숙하며 자란 탓에 조금은 결벽적이고, 자폐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 그녀가 내숭이라고 내숭은 오히려 그녀의 진실이다. 그녀는 ‘성질 죽이고 사는’ 조폭의 딸이자, ‘포장도 안 뜯은’ 처녀이며,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고 ‘순박한()’ 오빠들을 사랑하는 효녀이다. 박근형과 유동근은 비정한 조폭의 모습보다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욕망의 소유자로 보여진다. 그들은 비록 험하게 살아도 딸/여동생은 공주처럼 귀하게 키워서, 이제는 어디서 괜찮은 놈을 잡아다가 으르고 뺨쳐 시집까지 보내는 끝간 데 없는 가족애를 보여준다. 그것은 물론 자식사랑인 동시에 자식을 통한 신분 상승 욕구이다. 그들 패밀리 아니더라도 우리네 부모들은 파출부를 해서라도 뼈빠지게 과외시키고, 돈이 좀 있다는 부모들은 자식을 청정()지역에 보내놓고 피 같은 달러를 부치거나, 아예 별거도 서슴지 않는다. 그도 저도 안 되면 “집안에 의사나 검·판사 하나는 있어야지” 소리를 입버릇처럼 되뇌며 딸자식을 꽃단장해 바리바리 싸 시집보냄으로써, 한 많은 천출성을 물갈이하고, ‘가문의 영광’을 보고자 한다. ‘애비는 종’이었을망정 개처럼 벌어서 정승을 사고자 하는 이 욕망은 바로 전통의 폐허 위에 40년 만에 기적으로 세운 천민자본주의의 나라, ‘급조! 대한민국’사회의 밑바닥에서 중산층까지 함께 끓어오르는 징∼한 욕망인 것이다. 맞나 맞으면 맞아야제~ 퍽! 권력이란… 앨빈 토플러의 <권력이동> 에는 권력이 ‘완력->재력->정보력’의 형태로 역사적으로 이동한다고 나온다. 그들 패밀리는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권력인 완력을 근간으로 하여 재력을 쌓았고, 이제 정보력을 획득하고자 한다. 권력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처음엔 폭력으로 상대를 위협한다. 근대를 운양호의 대포소리로 맞은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위협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불안정하고 비효율적이다. 상대가 권위를 인정하고, 지배에 동의하며, 존경하고 따라야 비로소 안정적인 권력관계가 완성된다. 제국주의라면 식민지 백성에게 힘과 돈과 지식을 보여주며, 그것이 좋은 것인 줄을 스스로 알도록 하여야 하며, 파시즘 국가라면 국민들에게 또한 그리한다. ‘개화’라고도 하고, ‘국민교육’이라고도 하는 이 과정을 통해 피지배자의 추인과, 동의와, 감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정준호는 처음에는 그들에게 얻어터지며 공포에 질렸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들을 경멸했다. 최고의 엘리트, 서울 법대를 나온 벤처사업가인 그가 맞을 때야 별수 없다지만, 아닐 때는 “그깟 깡패 나부랭이들… 검찰에 신고해서…”라고 자존심을 세웠다. 그러나 단란주점에서 그는 보았다. 예비 법조인, 사법 연수원생 명함이 개짝나는 상황에서 구세주처럼 납신 ‘법보다 가까운 주먹’의 위대함과 그 성스러움을! 그는 이제 그들을 경멸하기는커녕 경외하며, 그들을 자신의 든든한 ‘뒷배’로 여긴다. 여기에 바로 훈련/학습과정이 따라온다. “진경이는 이제 네 여자잉께~ 네가 구해야제”라는 과제를 하달받은 그는 패밀리로의 입문 과정을 성공적으로 치루어내어, 유동근에게 흡족한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이제 드디어 자신을 패밀리의 일원으로 느낀다. 그는 완전히 동화되어 결혼식장에서는 “형님”소리와 전라도 사투리와 발길질이 저절로 나온다. 놀랍지 않은가 일찍이 우리 영화 중에 권력의 노정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영화가 또 있었던가 영화 <대부>가 단순한 마피아 폭력영화가 아니라, 권력에 관한 위대한 고전일 수 있는 것은, 패밀리와는 다른 삶을 살고자 했던 마피아의 아들이, 아버지의 총격사건을 겪으면서 폭력적 권력에 대한 태도와 더불어 자신의 정체성을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문의 영광>은 비천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권력의 운영방식과 그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권력에 관한 영화’로도 읽힌다. 그래서일까 TV사극에서 중후한 왕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던, 박근형과 유동근은 그대로 왕인 것 같다. 박근형은 용맹과 무예로 개국을 이룬 이성계 같고, 유동근은 피범벅으로 수성에 성공하여 이후 문물의 시대를 연 이방원 같다. 그들은 하나의 왕국의 위대한 권력자들이다. 사랑이란… 이 영화는 로맨스를 그리고 있는 듯하지만, 오히려 주제는 ‘안티-사랑’이다. 영화가 말하는 사랑이란, 뻔한 상황에 의해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며, ‘사랑한다 말하고 나니 사랑이 생겨나는’ 지극히 수행적인 것이다. 여기엔 어떤 신비도 없다. 생판 모르는 술 취한 남녀를 한이불 속에서 재우고 나니, “겁나게 진도가 빨라 부는” 것이 사랑이요, 사랑 유무보다는 ‘떡을 치는’ 행위와 처녀성 여부가 훨씬 본질적인 화제로 다뤄진다. 김정은은 “성교횟수가 중요하지는 않다”는 ‘구성애’식 논거를 펴보지만, 영화의 주제는 그 반대이다. 영화의 서사는 김정은이 “왜 우리 가족을 멸시하느냐”고 눈물로 항변한 장면에서 그가 그녀의 진정성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처럼 기술되지만, 그들 로맨스의 전 과정은 패밀리의 엄정하고 치밀한 기획과 관리에 의한 것이다. 우리가 경멸해 마지않는 패밀리의 저속한 애정관은 엄청난 실효를 거둔다. 남자에게는 음식을, 여자에게는 강아지를 선물하면 된다는 그들의 교양은 적중하며, 남녀를 깜깜한 통(엘리베이터) 속에 뱀과 함께 집어넣으면 화학반응이 일어난다는 그들의 소박한 자연철학은 우리의 사변적 형이상학을 뛰어넘어 놀라운 수행력을 발휘한다. 그뿐인가 매부로 여기는 사람을 “우리끼리니까 편하게 놀자”며 여자 나오는 술집에 데려가 “논다”. 연적에게는 물좋은 미끼를 던지면 애욕과 질투가 발화하여 쉽게 끝장이 난다. 왜 난데없이 유동근 바람피우는 이야기가 나오느냐고 이 영화의 주제는 ‘사랑은 신비한 것도 아니며, 결혼을 하는 데는 물론, 유지하는 데 있어서도 충분조건은커녕 필요조건도 못 된다’는 것이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더니만…. 그래도 그들은 사랑한 것 아니었냐고 글쎄… 김정은은 정준호를 두어번 만나고 나니 “너 주기는 아깝게” 느껴졌고, 정준호로서도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병원에서 발급한 ‘처녀 증명서’에, 그의 어머니 말마따나 “딸은 참해 보이며” 무엇보다 패밀리의 위력에 감복한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았을까 ‘지방 호족이자, 재벌의 사위이구먼 까짓 뭐가 문제랴’ 이 영화는 가족과, 권력과, 사랑에 대한 우리의 천박한 자의식을 까발리는 동시에, 천출이 아닌 척하는 우리의 속물적 허위의식(snobbism)을 통렬히 조롱한다. 400만명이 이 영화를 보며 무엇을 느꼈을까 비천한 우리 무의식의 참혹한 진경 산수화를 400만명과 함께 보고 나니, 400만명이 모두 내 가족 같다. 귀족이 아닌 나의,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애틋한 가족 말이다. 황진미/ 영화칼럼니스트 chingmee@freechal.com

`꿈의 프로젝트` <원더풀 데이즈> 하이라이트 편집본 지상관람(3)

★ 맛보기 필름 20분, 실감나네 전시관을 돌아본 뒤 에서 상영된 2개의 편집본에서, 그 궁금증의 일부는 해소할 수 있었다. 필름 버전은 3분50초짜리로 짤막하지만, HD프로젝터로 상영된 버전은 20여분으로 지금껏 선보였던 3분, 7분 남짓한 데모들에 비해 꽤 길다. 몇개 시퀀스를 이어붙이고, 사운드 효과도 거의 없이 원일 음악감독의 음악 샘플링과 유지태, 우희진, 정준호 등이 선녹음했던 목소리 일부를 입힌 미완성본이지만, <원더풀 데이즈>의 대략적인 모양새가 어떨지를 가늠하게 한다. 이를테면 유전지역이 폭파될 때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위로 무너져 내리는 거대한 구조물의 육중함, 폐선들 사이를 잇는 공중 다리들이 겹겹이 교차하면서 원경의 깊이와 함께 황량하고 암울한 공기를 살린 배무덤 등은 미니어처 촬영으로 한층 실감나게 표현됐다. 현란한 컴퓨터그래픽으로 빚은 유기체 생명도시 에코반의 내·외부 디자인, 실사로 촬영한 영상에 디지털로 어둠과 색을 덧입힌 하늘 위를 유영하는 3D 글라이더, 역시 실사인 빗줄기를 뚫고 황량한 들판을 질주하는 3D 바이크와 거기에 탄 2D 셀 질감의 제이 등 기존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던 독특한 이미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에코반 경비대의 습격으로 난투극이 벌어지는 객도추한의 세트에서 제이를 향해 날아가는 도끼를 쫓는 카메라 앵글이나, 흡인력은 좀 부족해 보이지만 코믹스의 영향이 강한 미국이나 미소년, 미소녀 캐릭터가 주축인 일본 애니메이션과 차별화를 고민한 캐릭터디자인도 눈여겨볼 만하다. ★ 기대 반 우려 반, 네티즌은 벌써 들썩 지난 5월에 처음 마련된 이래 꾸준한 업데이트를 거쳐온 <원더풀 데이즈>의 인터넷 홈페이지(www.wonderfuldays.co.kr)에는 벌써 20여분의 편집본과 미니어처 전시관에 대한 반응이 꽤 뜨겁다. 더빙이 어색하다며, 인기 배우가 아니라도 캐릭터에 어울리는 성우를 캐스팅해 달라는 게 다수의 불만. 전체적인 영상, 인더스트리얼의 초현대적인 사운드와 타악기 등 민속음악의 개성적인 조합을 들려주는 원일의 음악에 대해서는 기대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아직 제작이 끝나지 않은 지금 판단을 내리긴 조심스럽다. 짧은 데모와 편집본에서 보여준 정도의 완성도를 장편의 러닝타임 내내 유지할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듯. 공들인 합성에도, 편집본에서도 일부 장면에는 이질적인 이미지들의 윤곽선이 도드라져 보이기도 한다.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협소한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에서는 회수하기 힘들만큼의 제작비를 투자하고 야심차게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하려는 <원더풀 데이즈>를 바라보는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올 초 <마리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수년간 시장에서 살아남은 국산 장편애니메이션은 전무하다시피했기 때문. 어떤 작품이든 하나라도 성공해서 국산 애니메이션의 활로를 터줬으면 하는 게 업계의 바람이다. 틴하우스는 이미 3년 전 대만의 CMC와 30만달러에 판권 계약을 맺었고, 현재 일본의 전자그룹 및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 프랑스, 홍콩 등지와 계약을 추진 중이라고. 막바지 합성작업 중인 <원더풀 데이즈>는 오는 12월말, 늦어도 2003년 1월 중순까지 제작을 완료할 예정이다. 정말 지난한 기다림을 거쳐온 <원더풀 데이즈>가 국내 관객에게 어떤 자태로 다가올지, 과연 ‘한국 애니메이션의 드림 프로젝트’란 희망을 이룰지는 내년 1월 말에서 4월 사이에 알 수 있을 듯하다. 글 황혜림 blauex@hani.co.kr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이 궁금하다(2)

"미니어처가 아니라 비거처" 프로도와 샘이 차츰 무게를 더해가는 모르도르의 어둠에 짓눌리고 있을 때, 그 동료들은 결국 한 장소에서 만나게 될 두 갈래 길로 흩어진다. 원정대의 일원인 왕자 보로미르는 한때 절대반지의 힘을 탐냈지만, 호빗 메리와 피핀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면서 그 죄를 씻었다. 그뒤 아라곤과 김리, 레골라스는 오크 군대에 납치당한 두 호빗의 흔적을 쫓다가 뜻밖의 인물을 만난다. 푸른빛에 둘러싸여 흰색 망토를 드러낸 간달프, 추락했던 모리아의 심연 속에서 눈덮인 산으로 솟구쳐 올라 흰색의 마법사로 다시 태어난 반지원정대의 지도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의 조언에 따라 세 전사는 호빗을 포기하고 오크 군대가 밀려오고 있는 로한 왕국으로 향한다. 제작진은 원작에 밝은 금발로 설명된 로한의 인간들을 스칸디나비아 반도 바이킹을 참조해 표현했다. 인간의 세계 중 처음으로 모르도르 군대와 대규모 접전을 벌이는 로한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 중 가장 큰 세트를 필요로 했던 장소. Weta는 “실사영화 세트보다도 더 컸기 때문에 미니어처 대신 비거처(bigtures)”라고 농담삼아 불렀던 로한의 수도 에도라스를 뉴질랜드 남섬 오지에 있는 마운틴 선데이 위에 건설했다. 5km에 달하는 도로와 다리를 새로 만들어서, 광채를 잃은 지 오래지만 아직 희망의 불씨를 품은 엔도라스를 노르웨이풍 도시로 재현한 뒤엔, 가장 오랫동안 가장 스펙터클한 전투가 벌어질 헬름 협곡으로 건너가야 했다. 헬름 협곡은 로한 백성들이 위기가 닥칠 때마다 몸을 피하는 곳이지만, 왕국 자체의 운명이 걸린 이 전투에선 전쟁 중심부의 요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잭슨은 디지털 기술로는 수천년 햇빛과 바람을 견뎌온 요새의 고풍스러운 흔적을 제대로 살려낼 수 없으리라 믿었다. 결론은 다시 실사영화 세트를 능가하는 크기의 미니어처였다. 사루만의 사주를 받은 웜통이 로한의 왕 데오든을 주무를 때는 음침한 기운에 휩싸이고, 데오든이 옛 기운을 되찾을 때는 한낮의 햇살이 비치는 듯 밝아지는 로한 왕궁. 1만의 오크와 우르크하이 군대에 맞서 반지원정대와 로한의 기사들이 어둠 속에 횃불을 치켜드는 헬름 협곡. 역시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을 적절하게 결합해 현실적인 느낌의 세트를 해결한 Weta는 매시브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무작정 진격하는 모르도르 군대를 집합시켰다. 매시브는 일종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이미 1편 서두에서 선을 보인 이 프로그램은 헬름 협곡 전투에서 좀더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각각의 군사가 주어진 상황과 지형, 다른 군사들의 행동에 따라 제각기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특징. 시각효과 감독 짐 라이길은 “병사들은 그들의 환경에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매시브가 창조한 오크와 우르크하이 군대는 제각기 야수의 본능을 따라 헬름 협곡을 물결처럼 채우지만, 승리는 간달프와 함께 로한 왕국의 깃발에 손을 들어준다. 여세를 몰아 사루만이 도사린 이센가드 오단크 탑까지 이른 원정대와 로한 군대는 이미 폐허가 된 이센가드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곳에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던 호빗 메리와 피핀이 마음 편하게, 호빗들이 항상 그렇듯, 밥을 먹고 있다. 메리와 피핀은 오크 군대로부터 탈출해 접근이 금지된 숲 판고른에 잘못 들어선다. 판고른은 태초에 목소리를 부여받았던 나무인 엔트의 일원 트리비어드가 지배하는 영역. 그 오랜 시간을 담은 듯 깊은 눈동자를 가진 트리비어드는 사우론과 사루만이 악의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젊은 엔트들과 함께 이센가드를 짓밟는다. 트리비어드는 Weta 워크숍 대표 리처드 테일러가 “지금까지 영화에서 보아왔던 어떤 캐릭터와도 다른 존재다. 그는 거대한 역사와 지식의 보고이다”라고 칭송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너무나 오래됐기 때문에 요정이나 마법사조차 그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는 트리비어드는 중간계와 더불어 늙어온 미지의 존재. ‘살아 있는 나무’에 가깝기 때문에 나뭇잎과 가지 하나하나의 움직임,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땅과 밀착됐다가 떨어지는 뿌리를 세심하게 디지털로 다듬어야 하는 난해한 과제이기도 했다. 테일러는 우선 전자장치로 움직일 수 있는 15피트 높이의 트리비어드 모형을 만들고 메리와 피핀과 함께 연기하도록 만들었다. 그 다음엔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얼굴표정을 만드는 등 트리비어드가 실물처럼 보이도록 디지털 효과를 입혀야 했다. 난쟁이 김리 역의 존 라이스 데이비스는 트리비어드의 목소리까지 연기하면서 어느 순간 자신이 내는 소리가 “마치 웨일스의 노래처럼” 들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고대 전설과 노래를 간직한 웨일스는 트리비어드가 뿌리를 내리기에 손색이 없는 대지. 웰링턴 크리켓 경기장에 모인 2만5천 관중으로부터 따온 속삭이는 소리와 결합한 웨일스의 노래는 시간 저편에서 울려오는 트리비어드의 목소리가 된 것이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