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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캐스팅 소식] 김하늘·강지환, KTX에 오르다 外

김하늘, 강지환/ 김하늘이 ‘금순이’의 귀공자 강지환과 함께 KTX에 오른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그날의 분위기>(제작 영화사아침·씨네월드, 감독 채리라)에 캐스팅된 것. 영화는 KTX 옆자리 승객으로 만난 두 사람이 부산에서 24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 김하늘과 강지환은 각각 예민한 성격의 출판 칼럼니스트 희주와 능청스러운 작업남 현보로 분해 알콩달콩 사랑싸움을 펼칠 예정이다. 김혜수, 윤진서/ 김혜수와 윤진서가 위기의 주부들이 된다. <행복한 장의사>를 연출했던 장문일 감독의 신작 <바람 피기 좋은 날>에 캐스팅된 것. 이번 작품으로 처음 호흡을 맞추게 된 두 사람은 각각 솔직하고 섹시한 주부 이슬(김혜수)과 순수하면서 당돌한 주부 작은새(윤진서)로 변신해 사랑과 바람의 경계에 선 대한민국 주부의 모습을 그려낼 예정이다. 박용우/ 여자에게 휘둘리는 노총각(<달콤, 살벌한 연인> <호로비츠를 위하여>) 박용우가 조의석 감독(<일단 뛰어>)의 두 번째 영화 <조용한 세상>에 캐스팅됐다. <조용한 세상>은 독심술을 할 줄 아는 사진작가(김상경)와 그와 함께 사는 비밀스러운 소녀 사이의 교류를 다룬 스릴러물. 박용우는 소녀연쇄실종사건을 수사하던 중 그 두 사람을 수상하게 여기며 추적하는 형사 역을 맡았다. 기존의 이미지에 걸맞게 박용우는 터프한 형사가 아니라, 코믹한 일들을 만드는 엉뚱한 형사를 연기한다고. 린제이 로한, 펠리시티 허프먼, 제인 폰다/ 린제이 로한이 다시 한번 반항적인 10대 소녀로 변신한다. 게리 마셜 감독(<귀여운 여인>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신작 <조지아 룰>에 캐스팅된 것. 영화는 딸과의 다툼에 지친 어머니가 그녀를 할머니에게 보내면서 숨겨졌던 가족의 비밀이 밝혀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극중 어머니 역에는 <위기의 주부들>의 ‘르넷’ 펠리시티 허프먼이, 할머니 역에는 제인 폰다가 낙점됐다. 새뮤얼 잭슨/ 새뮤얼 잭슨이 더그 라이먼 감독(<본 아이덴티티>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차기작인 <점퍼>에 합류했다. 스티븐 굴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점퍼>는 자신에게 텔레포트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소년(톰 스터리지)의 행적을 그린 SF스릴러. 이 소년은 어머니를 죽인 남자를 추적하는 중 미 국가안전보장국(NSA)과 또 다른 텔레포터(제이미 벨)의 관심을 끌게 된다. 새뮤얼 잭슨은 NSA요원으로 나와 텔레포터들을 쫓는다. 할리 베리, 데이비드 듀코브니, 베니치오 델 토로/ 캣 우먼, 멀더, 비리 형사가 삼각관계에 빠졌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배우 할리 베리, 데이비드 듀코브니, 베니치오 델 토로를 한데 모은 것은 <우리가 불 속에서 잃은 것들>. 남편을 잃은 여자로 등장하는 할리 베리는 곤란한 지경에 처한 남편의 친구를 자신의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이후 그는 그녀가 슬픔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버팀목이 된다. 듀코브니가 죽은 남편, 델 토로가 그의 친구로 등장하는데, 듀코브니는 회상신에서만 등장한다.

<녹차의 맛> <란포지옥> 상영차 방한한 아사노 다다노부

<녹차의 맛>과 <란포지옥>의 일본인디필름페스티벌 상영을 맞아 두 영화의 주연배우 아사노 다다노부가 7월6일 내한했다. 1990년 영화 <물장구치는 금붕어>로 데뷔해 2006년 현재까지 총 44편의 장편영화에 출연한 그는 <환상의 빛>과 <디스턴스> 등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피크닉>의 이와이 순지, <헬프리스>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등의 아오야마 신지, <꿈의 미로>와 <고조> 등의 이시이 소고, <쌍생아>와 <바이탈>의 쓰카모토 신야, <고하토>의 오시마 나기사, <바람꽃>의 소마이 신지, <밝은 미래>의 구로사와 기요시, <이치 더 킬러>의 미이케 다카시, <자토이치>와 <다케시들>의 기타노 다케시 등 거의 모든 일본의 유명 감독들과 작품을 함께한 배우다. 2003년엔 대만의 거장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카페 뤼미에르>와 타이의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의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에 출연했으며, 2005년엔 강혜정과 함께 <보이지 않는 물결>로 펜엑 감독과 재회했다. 일본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아사노 다다노부. 1999년에 6편, 2003년부터 2005년까진 매해 5편의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번 영화제 상영작 중 유독 그의 출연작만이 2편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방한 일정 2틀째인 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빡빡한 일정 탓인지 다소 피곤해 보였다. 인터뷰 도중 양말을 벗는다든지, 실내를 맨발로 돌아다니는 모습은 ‘아사노다운 인상’이었지만, 갑자기 코피가 났음에도 인터뷰를 계속한 것은 다소 새로운 모습이었다. 50분이라는 인터뷰 시간이 ‘아사노 다다노부’라는 두터운 텍스트를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지만, 그의 답변은 항상 말보다 여백이 중요했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영화 속 그의 모습처럼, 서두를 ‘글쎄요…’로 시작했던 아사노 다다노부. 하지만 그도 영화 <피크닉>의 인연으로 배우자의 연을 맺게 된 차라에 대한 질문에는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이 인터뷰는 6일의 기자회견과 7일의 인터뷰 내용으로 구성됐다. -<녹차의 맛>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상어가죽 남자와 복숭아 소녀>를 함께했던 이시이 가쓰히토 감독의 작품이라 결정했다. 이시이 감독을 무척 좋아한다. 여러 가지로 재밌고, 이상한 감독이랄까. (웃음) 각본을 읽어보니 역시나 이상하고 재미있더라. -<녹차의 맛>에는 엉뚱하고 특이한 가족이 등장한다.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이시이 감독의 작품치고는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 그의 전작들을 보라. 특별히 이상하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단지 이 사람이 이번엔 또 이렇게 엉뚱하고 재미난 걸 생각해냈구나 하는 정도? -그래도 당신의 캐릭터나 가족들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갖고 시작했을 것 같다. =가족간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간단히 이야기할 순 없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사람의 가족간에는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일상이고, 누구나 아는 얘기들이다. 하지만 <녹차의 맛>에선 이런 일상이 좀더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평범한 일들이지만 영화로 만들면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녹차의 맛>은 이시이 가쓰히토 감독과 함께한 세 번째 영화다. 이시이 감독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나. =이시이 감독은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지낸 시간을 소중히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현장은 항상 즐겁다. 그런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라면 언제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시이 감독의 작품 세계에 대한 애정은 없나. =이시이 감독의 작업 스타일은 틀에 박힌 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사나 상황들이 대본대로 진행된다기보다는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편안하고, 여유있게 하는 스타일이라 나와 맞는 것 같다. 또, 결과적으로 함께했던 작품들이 대중적이고 재밌어서 계속 하게 된다. -<상어가죽 남자와 복숭아 소녀> 때는 그림을 그려주거나 설정을 주고, 마음껏 하라고 했다고 들었다. <녹차의 맛> 때도 그랬나. =글쎄, <녹차의 맛>이 어땠었지? (웃음) <상어가죽 남자와 복숭아 소녀> 때랑 똑같이 했던 것 같다. 감독은 콘티를 보고 촬영을 했지만, 나는 안 보고 했다. 콘티는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일본인디필름페스티벌에선 <란포지옥>도 상영된다. 이 영화는 <녹차의 맛>과는 매우 다른 느낌인데. =<란포지옥>은 프로듀서가 <이치 더 킬러>와 같은 사람이다. 이전부터 잘 알고 있던 사람이라 제의를 받았을 때 하고 싶었다.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인 에도가와 란포의 삶을 네명의 감독이 연출한다고 하더라. 이전까진 없었던 컨셉 같아서 매우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안 해봤던 역이고, 관심이 갔다. -<녹차의 맛>은 <란포지옥>과 매우 다른 느낌의 영화이고, 이시이 감독의 전작인 <파티7>과 <상어가죽 남자와 복숭아 소녀>와도 다르다. 영화를 몇 가지 부류로 나누는 게 좀 어리석은 생각 같지만, 당신의 필모그래피는 센 영화와 비교적 조용하고 담담한 영화로 나뉜다는 느낌이다. =그런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웃음) -<녹차의 맛>을 연기하는 당신과 <란포지옥>을 연기하는 당신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글쎄…. 일단 역할이 다르고 상황들이 다르니까, 차이점은 있다. (웃음) 그런 역할들이 나에게 다양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연기에서는 별다른 점은 없는 것 같다. 어떤 역을 하고, 어떤 느낌의 영화를 하느냐는 연기에 차이가 없다. -시대극인 <자토이치>나 <고하토>는 또 다른 경우이다. 좀더 장르적이고, 전형적인 캐릭터다. 사무라이영화를 무척 좋아한다고도 했는데, 이런 작품들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무라이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다. 글쎄, 특별한 이유랄까. 일단 일본인이니까, 사무라이영화가 제작된다면 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일본인이라는 점 외에 사무라이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없나. =글쎄…. 일단 이야기가 알기 쉬우니까. (웃음) 그게 제일 좋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무라이영화도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이야기가 알기 쉬운 것들이다. 곤란한 상황에 빠진 사람이 있고, 누군가가 도와주는 뻔한 이야기와 해피엔딩. (웃음) 이런 걸 좋아한다. -외할아버지가 미국인이라고 알고 있다. 이런 점이 당신의 정체성에 끼치는 영향이 있나. =물론 있다. 보통 사람들은 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서 ‘아, 내가 이런 점을 닮았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나. 하지만 나는 외할아버지가 어릴 때 미국에 가버렸다. 지금까지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가끔씩 나도 모르는 모습을 발견할 때, ‘이런 점은 할아버지를 닮았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항상 ‘아메리카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면서 살았으니까. 그 존재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데뷔 시절의 인터뷰를 보면 “연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코멘트가 자주 눈에 띈다. =(웃음) 지금은 별로 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기가 싫어지지 않게 된 계기가 있을까. =그게 뭘까. 역시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게 아닐까. 일종의 성장이랄까.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느낀 적은 없나. =재능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연기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다른 방식이라면. =별로 배우를 하고 싶다는 기분이 없다는 것. (웃음) 열정적으로, 배우가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좀더 넓은 시각으로 다양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렇다고 물론 ‘배우가 너무 하고 싶어서 배우를 하는’ 태도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건 정말 훌륭한 거라고 생각한다. (웃음) 아마 아버지랑 함께 일을 해서 이런 태도를 갖게 된 건 아닐까. 하지만 배우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열심히 한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연예계쪽에 종사하시나. =매니지먼트쪽 일을 하신다. -‘배우가 너무 하고 싶어서 배우를 하는 건 아닌’(웃음) 당신의 태도가 연기와도 연관이 있을까. =물론 있지 않을까.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것들, 연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이 어떤 건지 말해줄 수 있나. =데뷔하기 전에 오디션에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우가 되고 싶다, 프로덕션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나도 17살 무렵에 그런 사람들과 함께 오디션을 봤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싫었다. 그런 사람들은 매우 재미없게 일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냥 평상시처럼 하면 안 되나? 왜 꼭 그런 열망을 가지고 무언가를 시작하면 안 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어디서에서 온지도 모르는 열망을 가지고, 욕망을 가지고 열심히 하겠다고 하는데, 그건 나에게 재미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오디션 때 그냥 일상처럼, 항상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좋다고 말했던 것 같다. 감독님들이 이런 점을 재밌어하시더라. 물론 나에게도 재미있는 부분과 재미없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런 것들을 스스로 판단한다. 무엇이 재미있는지, 무엇이 재미없는지. 이런 식의 판단이 있기 때문에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데뷔 이후 다른 아이돌 스타와는 달리 TV는 거의 하지 않고 영화, 특히 인디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연기가 하기 싫다고 느꼈던 건 20살까지다. 그 이전에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한 적이 있다. 물론 버라이어티 쇼는 하지 않았다. 처음엔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랬다기보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연예인처럼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아버지에게 상담을 하면서, ‘영화라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말이 나왔다. 더이상 텔레비전은 하지 않고, 영화를 하게 된 건 그 이후다. 연기가 싫지 않다고 느낀 것도 그 즈음이고. -20살 이전과 지금, 무엇이 가장 많이 달라진 것 같나. =일단 20살 전에는 연기가 싫다고 느꼈다는 점.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계속 하고 싶고, 재밌다고 느낀다. 여러 가지 경험도 할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의 역할들이 전반적으로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인 것 같다. 특별히 그런 캐릭터에 끌리나. =그런 영화밖에 안 온다. (웃음) -왜 그런 역만 오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 =그런 이야기밖에 안 하고 있으니까. (웃음) 그런 영화를 보고, ‘이 사람에게는 이런 걸 맡기면 잘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웃음) -최근 개봉한 <보이지 않는 물결>의 경우 말과 동작이 아닌 분위기로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본인의 연기 스타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연기 스타일이라…. 뭐랄까, 일단 과장된 건 좋아하지 않는다. 과장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도 리얼리티를 부여하고 싶어한다. 그냥 과장만 하는 것은 어떻게 표현할지를 모르겠다. 종종 듣는 말이 ‘카메라 앞에 서 있기만 해도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게 나의 캐릭터일지는 모르겠지만,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하지 않는 건 맞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캐릭터가 ‘사람이 죽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직접 말하진 않지 않나. 그런 면에서 보면 캐릭터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연기에서 배운 게 있다고 생각하나. =무척 많다. 말타는 법이나…. (웃음) 이건 아닌가? 연기에서 특별히 무언가를 배웠다기보다는 태도의 문제인 것 같다. 나는 다른 배우들과 연기를 시작하는 입구가 달랐다고 생각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정말 배우가 되고 싶어서 시작한 게 아니다. 배우로서 연기 이외의 것들도 바라보며 어느 정도의 거리두기가 가능했다. -영화 출연을 결정할 때 가장 고려하는 점은 뭔가. =각본이 재미있나 혹은 누가 감독하나. -당신에게 재미란 어떤 건가. =그건 말로 할 수 없는 거다. 느끼는 거라고 생각한다. 굳이 얘기를 하자면, 지금까지 내가 출연했던 영화들에 담긴 재미가 아닐까. 나는 항상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만 하니까. (웃음) -영화는 많이 보는 편인가. =거의 보지 않는다. 극장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 영향을 받은 배우도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리버 피닉스는 좋아한다. 또 누구더라? 잭 니콜슨도 좋아한다. -종종 조니 뎁과 비교가 되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니 뎁이라…. (웃음) 굉장한 사람이다. 물론 기쁘다. 하지만 비교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웃음) -음악 활동도 열심히 하는 걸로 알고 있다. ‘피스 필’, ‘사파리’, ‘Mach 1.67’ 등 당신이 참여하는 밴드가 여럿인데. =지금 ‘Mach 1.67’은 안 하고 있다. 그건 이시이 소고 감독과 <일렉트릭 드래곤 80000V> 때 잠시 했던 거다. 나머지 두개는 아직도 하고 있다. -음악 활동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별로 의미는 없다. (웃음) 그냥 좋으니까 하는 거다. 영화와 다르지 않다. 그림이나, 디자인, 촬영, 영화 모두 내가 좋아서 하는 것들이다. 음악은 그중 하나다. 음악은 단지 라이브로 하지 않나. 공연을 하는 걸 좋아하는데, 영화와 달리 라이브의 느낌이 좋다. -현재 다국적 프로젝트 영화 <칭기즈칸>에 출연하고 있다고 들었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보드로프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다. 칭기즈칸을 연기한다. 이번 영화를 하면서 말도 타고, 여러 가지를 배웠다. 물론 언어 때문에 힘들었지만. 수염도 못 깎고 있다. -<카페 뤼미에르>의 허우샤오시엔 감독이나 <보이지 않는 물결>의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처럼 아시아의 다른 나라 감독들이 당신을 선호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이 자식 써먹기 좋겠구나’ 하며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자유분방한 모습에서 예측하지 못한 연기가 나온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칭기즈칸> 이후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 =아오야마 신지 감독과 새 영화를 들어갈 것 같다.

비디오 저널리스트 존 알퍼트를 만나다 [2]

세계의 전쟁터를 누비고 세기의 권력가들과 인터뷰 1980년 이란인들이 이란에 대한 미국의 간섭에 반발하며 미국인들을 인질로 붙잡아두는 사건이 발생하자, 알퍼트는 곧장 이란으로 건너갔다. 다른 방송사들이 대사관에 카메라를 고정시켰던 반면, 그는 뒷골목과 시장들을 누비며 인질 사건에 대한 이란인들의 반응을 이끌어냈고, 이는 그가 찍은 영상물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또한 그는 당시 이란에 머물렀기에 구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곧바로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할 수 있었다. “뒤늦게 출발한 다른 기자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들어올 수 없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이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막을 통해 걸어가기로 했다. (웃음)” 그것만이 아니다. 1991년 걸프전쟁이 발발하자 알퍼트는 집중 폭격의 대상이었던 바그다드로 걸음을 옮겼다. “당시 사담 후세인쪽에서 서안(한?)을 보내 촬영 금지 사항들을 전달했다. ‘찍으면 안 된다’투성이였다. 나는 이것을 깨고 전쟁 중 벌어진 일들을 모두 담아왔지만, 정작 에서 이라크에서 찍은 영상물의 방영을 거부했다. 전쟁에 관해서라면 이라크 정부 못지않게 미국 정부 역시 마음에 걸리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와 결별한 알퍼트는 이후 를 통해 자신의 영상물을 선보여왔다. 이처럼 전세계의 전쟁터를 누볐던 알퍼트였기에 세기의 권력가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기회 역시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직접 인터뷰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카스트로는 멋진 사람이었다. 아주 친절했을 뿐 아니라 인터뷰에도 적극적으로 응해줬다. 그러고보니 그가 쿠바를 장악한 지도 40년이 넘었다. 한번쯤은 카스트로를 다시 인터뷰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라스트 카우보이>를 25년 동안 찍었던 것처럼 그가 변해가는 모습을 찬찬히 카메라에 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는 현재 미국에 감금돼 있는 이라크 전 대통령 사담 후세인을 만나기도 했다. 후세인에 대한 그의 평가는 냉혹했다. “후세인이 한 행동들은 비판받을 만했다. 그가 현재 갇혀 있는 것은 지금껏 그가 저지른 일 때문이다.” 이후 존 알퍼트는 미국 내의 사회문제에 대한 다양한 탐사 보도를 시도하게 된다. 그중 가장 먼저 손댄 것이 범죄자들의 삶에 대한 비디오였다. <범죄의 세계에서 보낸 1년>(1989), <교도소: 라이커스 섬의 죄수들>(1994), <라틴 킹: 거리의 범죄자 이야기>(2003) 등을 연출한 그는 “범죄자들이 왜 그렇게 자라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해 보여주려 했다. 스포츠에도 관심을 기울여온 그는 여자농구단의 얘기를 담은 <신데렐라 시즌: 레이디 볼스팀 반격하다>를 만들기도 했으며, 가장 최근작인 <바그다드 ER>(2006)을 통해서는 바그다드에 있는 미군 병원의 모습을 그려냈다. 알퍼트는 잠시도 멈춰 있지 않고 끊임없이 관심사를 넓혀왔고, 그러한 노력 때문인지 에미상부터, 컬럼비아 듀퐁 어워드, 크리스토퍼 어워드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내가 받은 상이 몇개냐고? 더이상 세지도 않는다. (웃음) 쪽에서는 좋아하더라. 자기 방송사를 통해 방영된 작품들이 상을 타면 보너스를 받는다고. 나한테 떨어지는 건 없다.” 제3회 EIDF, <파파> <라스트 카우보이> 등 4편 선보여 제3회 EBS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에 초청된 알퍼트의 작품은 모두 네편. 그중 <파파>(2001)에서 그는 자기 아버지의 모습을 담았다. “아버지는 나의 영웅이기 때문에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영화 전반부에 나오는 문구는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이 작품을 찍게 된 직접적인 동기임을 드러낸다. 거기에 그는 일종의 “직업의식”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우리 가족은 자신의 얘기를 서로에게 잘 털어놓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내 직업은 다른 사람의 입을 여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스스로에게 당당하기 위해서라도 내 가족의 얘기를 털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카우보이 베른 세이거를 25년 동안 취재해 완성한 <라스트 카우보이>(2005)는 알퍼트의 집요함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나는 사우스 다코타의 포큐파인에 사는 베른 세이거다. 여기 있는 이 남자(존 알퍼트)는 나를 찍기 위해 25년 전에 이곳에 나타났다.” 알퍼트가 세이거를 쫓게 된 데에는 카우보이에 대한 경외심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내가 어렸을 때 미국 소년들의 우상은 카우보이였다. 그러니까 베른 세이거는 사실 내 어릴 적 우상이나 다름없다! (웃음)” <라스트 카우보이>에서 알퍼트는 세이거와 친밀한 관계임을 드러내지만, 여전히 그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쓴다. 반면 코발트에 중독된 노동자들을 다룬 <하드 메탈 증후군>(1988)에서 그는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편에 서 있다. “당신들은 혹시 코발트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있나? 없다고? 우리는 이 공장의 공기 중에 법적 허용치의 30배가 넘는 코발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네편의 작품 중 가장 강렬한 것은 사회의 이면을 담았다는 점에서 <하드 메탈 증후군>의 연장선상에 있는 <의료보장제도: 돈과 생명의 거래>(1977). 미국 의료보장제도의 허점을 다룬 이 영상물에서 한 환자가 고장난 의료 기기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장면은,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자아낸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그땐 미숙했기 때문에 단순히 영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충분히 전달할 수 없었다.” 인터뷰가 끝나가려는 찰나 “왜 위험한 곳을 찾아다니느냐”는 질문에 나지막했던 알퍼트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찍은 영상물을 통해 변해가는 이들을 목격하면서 그 중요성은 점점 커져갔다.” 그가 처음부터 투철한 사회적 책임감으로 무장한 채 이슈 메이커로 앞장섰던 것은 아니다. “<파파>를 보면 ‘아버지는 멈추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구절이 나온다. 아버지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일찍 포기하는 쪽이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똑똑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아버지를 실망시키는 한편 나 자신도 실망시켰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내가 아무것도 이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고, 스스로를 강하게 담금질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이 내면화돼 지금에 이르렀다.” 자신의 일에 대한 강한 집념과 애착. 그것은 그가 44년 동안 모험을 계속할 수 있었던 힘이고,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그 모험에서 자신을 지탱해준 힘이다. 하얗게 머리가 세어가는 알퍼트가 여전히 모험을 포기하지 않으리라 믿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그가 인터뷰의 마지막에 들려줬던 따뜻하고 강한 집념과 애착의 말들 때문일 것이다. DCTV는 무엇인가 존 알퍼트는 1972년 아내 쓰노 게이코와 함께 다운타운 커뮤니티 텔레비전 센터(DCTV)를 설립했다. DCTV는 영상물 제작은 물론, 교육 활동과 비디오 장비 대여까지 겸하고 있는 비영리 지역사회 미디어센터. DCTV에서 제작한 수백편의 다큐멘터리와 보도 영상물들은 현재 미국 내 여러 방송국과 캐나다, 일본 내의 주요 네트워크를 통해 방영되고 있다. DCTV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던 알퍼트는 영상물 제작으로 인한 직접적 성과보다 교육 활동으로 인한 간접적 성과에 무게를 실었다. “DCTV는 다음 세대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DCTV에서 제공하고 있는 비디오 워크숍 등 교육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실제로 DCTV의 주활동 무대였던 차이나타운에는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지만, 우리를 통해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차근차근 자기 길을 밟아가 결국 대학 진학까지 하게 되더라. 그럴 땐 정말 뿌듯했다.” DCTV의 출발점은 중고 우편물 트럭. 알퍼트와 쓰노는 TV를 설치한 중고 트럭을 몰고 다니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트럭의 TV을 통해 길거리에서 상영되던 그의 비디오들은 조금씩 반향을 일으켰다. 현재 20여명이 함께 일하는 비교적 큰 단체로 변모한 DCTV는 다른 나라로까지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알퍼트가 러시아에 머무르는 것 역시 같은 이유 때문이다. “현재 러시아의 미디어 활동가들을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자동차를 매개체로 시작했기 때문일까. DCTV는 존 알퍼트만큼이나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다.

성적표에 짓밟힌 노총각 순정, <101번째 프러포즈> 조기 종영

월드컵·주몽에 치여 시청률 6% 평범남의 사랑 ‘폐인’들은 지지 서른여덟살 노총각 ‘달재’의 우직한 사랑을 그린 에스비에스 월화드라마 <101번째 프로포즈>(극본 윤영미, 연출 장태유)가 ‘폐인’들의 조기 종영 반대에도 불구하고 25일 15부로 막을 내렸다. 당초 계획된 16부작으로 끝맺지 못한 데다 독일월드컵 중계 때문에 지난 6월12, 13, 19일 3회분이 결방되었고 같은 시간대의 사극 <주몽>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평균 시청률까지 6%(에이지비닐슨 미디어리서치)로 한자릿수에 머물렀지만 마니아층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지난 5월29일 첫 전파를 탄 <101번째 프로포즈>는 1991년 일본 후지티브이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동명작품이 원작이다. 직장에서 쫓겨난 가장이 전업주부가 된 일상을 다뤄 화제를 모았던 <불량주부>의 장태유 피디와 <내 사랑 토람이>로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윤영미 작가가 한국식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로 바꿨다. 지난 5월에 열린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장태유 피디는 “재벌 2세도, 꽃미남도 아닌 평범한 한 남자의 진솔한 사랑이야기를 다뤄 보겠다”고 말했다. 전망 없는 노총각 달재가 사랑을 하면서 희망을 갖게 되는 과정과 그의 사랑을 받는 수정(박선영)이 신혼 여행길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픔을 치유하는 모습을 밀도있게 그렸다. 이에 시청자 게시판에는 ‘답답한 일상에 한줄기 빛이 되는 작품이다’ ‘어깨가 처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드라마다’ 등 지지하는 의견이 계속됐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정과 그의 죽은 남편을 닮은 우석(정성환)의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 계속되는 설정은 억지스러웠다. 초반에는 주인공을 둘러싼 가족, 방송국 동료들 등 주변인물들의 연결고리를 촘촘하게 이어가다가 중후반에 갈수록 주인공들의 삼각관계에만 치중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남자 춘향’ 달재의 “죽는 그 순간까지 수정씨만 사랑할게요”라는 애절한 프로포즈, “자기를 단념하라”고 말하는 수정에게 그래도 “태어나줘서 고맙다”라는 절절한 고백, 9회에서 달리는 트럭에 뛰어드는 장면 등 배우 이문식의 연기가 페이소스를 보탰다. <슬픔이여 안녕> <오! 필승 봉순영> 등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박선영도 여주인공이 마음을 여는 과정을 무리없이 소화했다. 중년 조연들의 코믹 연기도 재미를 더했다. 달재 아버지의 창만(임현식), 수정의 이모 은임(최란), 치킨집 사장 선자(김형자)의 삼각관계는 매번 웃음보를 터트리게 했다. 그래서 <101번째 프로포즈>는 시청률 성적표는 형편없지만, ‘아름다운 꼴찌‘로 기억될 것이다.

30대 기혼녀들의 쿨~한 이야기, MBC 주말극 <발칙한 여자들>

미국 인기 티브이 시리즈 〈위기의 주부들〉의 한국판이라는 소문으로 관심을 끌었던 문화방송 주말극 〈발칙한 여자들〉이 뚜껑을 열었다. 26일 문화방송경영센터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이승렬 피디는 “〈위기의 주부들〉 한국판보다는 14년 전 최수종, 최진실이 주연했던 〈질투〉의 주부판에 가깝다”고 했다. 제작진은 “한국의 가족·남녀관계의 유형을 담다보니 미국의 〈위기의 주부들〉과는 달라도 한참 달라졌다”며 “한국 가족이 부닥치는 문제를 현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캐릭터 안배에 가장 고심했다”고 했다. 〈위기의 주부들〉처럼 이 드라마도 4명의 여자들이 주인공이다. 전남편(정웅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미국에서 돌아온 미주(유호정)의 비중이 가장 크고, 유부남을 가로채 결혼해놓고 남편의 선배와도 몰래 만나는 은영(임지은), 흠잡을 데 없는 전업주부이면서 도벽에 알코올중독까지 있는 상미(사강), 작업의 달인 다림(오주은) 등이 함께 30대 기혼여성의 현실적인 문제를 대변한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30대 여자를 그린 드라마가 대세다. 유행을 넘어 관습적인 장르로 굳어가는 인상이다. 그런데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가 입양, 혼외정사, 마약중독 등 폭넓게 소재를 가져가면서 30대 여자의 현실을 신랄하게 그리는 반면 한국의 30대 여자 드라마의 소재는 불륜과 부부 갈등을 좀처럼 넘어서지 못해왔다. 〈발칙한 여자들〉도 이런 점에서 크게 자유롭지는 못하며, 주인공 여자들의 직업이 치과의사, 병원장, 전업주부, 백수라는 점에서 이들이 ‘30대 여자를 대표하는 캐릭터’인지 의문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피디는 “똑같이 가정의 소중함을 말한다고 해도 결국 연출, 화면구성에 따라 전혀 다른 드라마가 된다”며 “주부들의 이야기를 진부하지 않게 신선한 방식으로 구성했다”고 자신했다. 이 피디가 선보여왔던 감각적인 연출력과 함께 유호정, 임지은, 사강 등 연기 경력부터 변화무쌍했던 여배우들도 자산이 될 것이다. 극에서 “선배는 권태기 때 잠깐 바람피는 상대였을 뿐”이라며 돌아서는 임지은은 악역인데도 통쾌한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가정부 노릇이 천직인 양 굴면서도 사강은 굴욕적이지 않다. 〈카이스트〉 〈대망〉을 집필한 문희정 작가가 극본을 맡은 〈발칙한 여자들〉은 29일 밤 9시40분에 첫방송된다.

<올미다> 올겨울 극장서 만나요!

지루한 장맛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쨍한 햇빛이 쏟아진 22일 오후, 서울 낙산공원 근처의 주민 휴식터에 놀러나온 노인들의 한갓진 모습이 카메라에 담긴다. 영락없는 동네 할머니들의 마실 풍경이지만 그들의 대화가 예사롭지 않다. 한 할머니를 향해 호호백발의 할머니가 “나도 너만한 때가 있었는데, 어쩜 그리 탱탱하냐?”라고 ‘귀여워’하면, 칭찬받은 할머니(김영옥)는 주책없이 이까지 딱딱 부딪혀가며 자신의 ‘젊음’을 자랑한다. 그 옆의 다른 할머니(김혜옥)가 맹렬하게 질투심을 드러내면서 시비를 걸다 급기야 “내가 결혼 못했다고 지금까지 처년 줄 알아?” 소리를 꽥 지르니 앞에서 축구공 차던 꼬마들까지 벙 찐 표정으로 이들을 본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 노인들은 바로 지난해 종영한 드라마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개성 강한 자매들로 지금은 같은 제목의 영화를 찍고 있는 중이다. 지난 6월 촬영을 시작한 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청년필름·싸이더스에프엔에이치 공동제작)에는 미자와 친구들, 할머니 세자매, 부록과 우현까지 드라마의 캐릭터들이 같은 배우의 연기로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지난 6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한영숙씨를 대신해 서승현씨가 새롭게 들어왔을 뿐이다. 1년 동안 일일드라마를 찍으면서 같이 살다시피 했으니 다시 만난 영화촬영장에는 여느 촬영장에서 느끼기 힘든 여유와 살가움이 있다. 그래서인지 동네 아주머니들이 스스럼없이 배우들을 아는 척하고 같이 수다를 떨다가 종종 엑스트라로 즉석 캐스팅되기도 한다. 작가와 감독까지 드라마에서 영화로 고스란히 옮겨온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굳이 나누자면 드라마의 초기 버전과 같은 정서다. 백수나 다름없는 ‘개점휴업’ 성우이며 애인도 없는 서른두살 미자가 집과 직장에서 골고루 구박을 당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프로듀서와 이루는 사랑의 큰 줄기 사이로 세 자매의 깜찍발랄 로맨스와 미자의 삼촌 우현의 좌충우돌 은행강도 도전기가 삽입된다. 드라마에서는 없었던 인물 박 피디가 새롭게 등장해 미자의 인생을 한층 더 꼬이게 만들며 미자의 상상들이 판타지처럼 적극적으로 구현되면서 드라마와 차별되는 영화적 재미를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여느 때처럼 본인 촬영분이 없는 이날도 촬영장을 찾은 미자역의 예지원은 “의기소침한 초기 미자로 돌아가라는 게 감독님의 유일한 주문인데 친한 동료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있다 보면 저절로 목소리가 밝아져 ‘그 얼굴 미자 아니에요’라는 지적을 종종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자와 전세계 노처녀들의 아이콘이 된 브리짓 존스와의 차이점을 “미자에게는 비슷한 성격의 식구들이 있어서 그 소심함이나 엉뚱함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이야기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미자의 일터인 여의도와 서울의 오래된 동네에서 지금까지 반 이상 촬영을 마친 이 영화는 8월 초 촬영을 끝내고 올겨울 개봉할 예정이다. “드라마서 ‘영화’ 추려내기 참 까다로웠죠” <올·미·다> 김석윤 감독 드라마에 이어 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까지 연출하게 된 김석윤 감독은 1992년 한국방송 예능국에 공채 입사한 현직 피디다. 영화사가 한국방송 자회사인 KBS미디어와 계약을 맺은 탓에, 감독 개런티 대신 한국방송으로부터 피디 월급을 받고 일하는 ‘파견직’ 감독인 셈이다. 이 영화를 하기 전에 시트콤 〈멋진 친구들〉 〈달려라 울엄마〉 등을 연출한 그는 “영화와 텔레비전 매체의 기술적인 차이를 따라가는 것보다 시나리오 작업이 훨씬 힘들었다”고 말했다. “1년 동안 이어져온 드라마여서 이야기의 큰 방향만도 열 갈래가 넘는데 이 가운데 ‘영화적’인 걸 추려내는 게 가장 까다로웠고, 그 과정에서 일부 캐릭터의 비중이 줄어든 게 무척 미안하다”는 그는 “드라마의 기획의도에 맞춰 ‘주눅들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나리오의 가닥이 잡히면서 주인공 미자도 초반의 일거리 없는 백수로, 지 피디도 까칠한 초반 성격으로 되돌아갔다”고 설명했다. 텔레비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영화로 옮긴 배우들의 한결같은 토로처럼 감독인 그도 촬영 초반에는 ‘기다림의 미학’에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다스리는 데 꽤나 고생을 했다고. “처음에는 조명 맞추는 몇시간 기다리는 데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는 그는 지금도 감독 의자에 좀처럼 앉지 않는다. “드라마를 영화로 옮긴 탓에 캐릭터를 변용할 수 있는 폭이 좁은 게 아쉽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빨리 진행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하는 그는 데뷔감독답지 않게 그날그날의 촬영계획을 거의 100% 지켜나가 제작사와 스태프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제작사에서 35회차로 잡았던 촬영을 29회차로 줄인 것도 감독이다. “영화의 흥행이 잘돼도 영화보다는 방송을 더 하고 싶다”는 그는 “매체가 무엇이든 소소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고 특히 노인들의 이야기는 놓치지 않고 좀 더 공들여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괴물> 주연 제2전성기 누리는 변희봉씨

“칭찬받으면 기쁜 건 사실이지만 사실 배우들 연기야 종이 한장 차이지요. 감독이 잘 다듬은 캐릭터에 맞춰가는 거니까 좋은 연기의 가장 큰 부분은 감독 몫이에요.” 27일 〈괴물〉 개봉을 앞두고 인사동에서 만난 변희봉(64)씨는 자신의 연기에 쏟아지는 찬사를 주저없이 감독의 공으로 돌렸다. 영화에서 자식 잃은 아들 강두(송강호)를 감싸주고 손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박희봉은 1965년 라디오 성우로 데뷔한 변씨가 연기해온 인물 가운데 가장 평범하고 살갑다. “우리 자랄 때 환경이 그랬듯 곤궁한 환경에서도 식구들을 보듬는 아버지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는 꿈을 40년 만에 이룬 셈이다. 〈플란더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까지 봉준호 감독의 모든 연출작에 출연하면서 “감독이 똑같이 웃고 있어도 저게 아니라는 건지, 오케이라는 건지 한눈에 알아차릴 정도”로 익숙해졌지만 변씨는 둘의 관계를 친한 선후배나 부자지간 같은 친숙함 대신 감독과 배우 사이로 규정짓는다. “매점에서 졸고 있는 세 자식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할 때 박희봉이 눈물에 젖으면서 넋두리를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시나리오에서 그 부분이 특히 좋았는데 잘려나갔어요. 아쉬웠죠. 그런데 편집된 걸 보니 저런 게 앙상블이구나 하면서 무릎이 탁 쳐지더군요. 누가 뭐래도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지요. 연기자가 앞서 나가면서 자기 욕심을 차리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어요.” 연기인생 접을즈음 봉감독과 인연, 모든 작품 출연 눈빛만 봐도 통해 〈플란더스의 개〉 이후 여러 영화에서 비중 있는 역을 연기해오며 젊은 관객들에게도 그 이름을 각인시켰지만 봉 감독과의 인연이 없었더라면 배우 변희봉은 잊혀진 이름이 됐을지 모른다. “회사원뿐 아니라 배우들에게도 아이엠에프 타격은 큽니다. 역할이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게다가 나이든 배우들의 급료를 깎는다는 소식까지 들리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죠. 그래서 식구들에게도 양해를 구하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던 참에 봉 감독에게 전화가 왔죠.” “더 버티면 추해진다”는 몇 번의 거절 끝에 만난 봉 감독이 〈수사반장〉 등에서 그가 했던 “잡범 중의 잡범” 연기를 생생히 기억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녹았다. “배우에게 자기 알아주는 사람 만나는 것만큼 기쁜 게 또 어딨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받으니 경비원인데다 개까지 잡아먹는 인물이니 다시 안 내키데요. 딸내미들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말이지.” 감독의 지극정성 설득으로 출연은 했지만 완성된 영화를 볼 생각도 안했다. “개봉된 다음에 감독한테 같이 영화 보러 가자고 전화가 왔어요. 안 갈 수도 없고 매점에서 소주 한병 사서 그 자리에서 다 마시고는 서울극장엘 갔는데 야, 저런 게 영화구나 깜짝 놀랐지요.” 그 이후 접힐 뻔한 변씨의 연기인생은 2막을 열었고 〈선생 김봉두〉로 만난 장규성 감독의 새 영화 〈이장과 군수〉에서 백사장 역을 맡아 다음달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내가 텔레비전에서 점쟁이 역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연기 배우느라 점쟁이들도 많이 만나봤는데, 정말 인생에는 운이라는 게 있는 거 같아요. 거의 접었던 연기를 다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온 것도 운이죠. 그래서 정말 이 길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후배들에게도 말하고 싶어요.”

스크린에서 부활하는 <올드미스 다이어리> 촬영현장 [2]

“여성을 잘 모르지만 마음을 열어두고 연출한다” 김석윤 감독은 1992년에 공채 19기로 KBS 생활을 시작했다. 입사 초기에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연출자로 이름을 날렸던 그가 본격적으로 ‘극’에 맛을 들인 것은 지난 2000년 유재석, 이휘재, 남희석이 출연한 시트콤 <멋진 친구들>을 연출하면서부터다. 일종의 시트콤 연출 실험이었다고 할 만한 그 작품 이후 김석윤 감독은 <달려라 울엄마>와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거치며 한국의 대표적인 시트콤 연출자로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여전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게 좋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는 확실히, 여러모로, 버라이어티한 사람이다. -직접 감독을 맡기까지는 고민도 많았던 것으로 안다. =캐스팅이나 시나리오 부분에서 지원은 하겠노라고 했지만 감독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미 1년이나 시트콤 연출을 해서 타성에 젖은 상태여서 영화계 시각으로 완전히 새롭게 만들라고 했다. 영화는 나와 별로 상관없는 매체라는 생각도 있었고. 그런데 청년필름쪽의 지속적인 권유를 받으면서는 내 손을 통해 마무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과 영화는 상당히 다른 매체다. 직접 현장에서 느끼는 차이점은 뭔가. =조명이나 촬영 등 기술적인 부분들은 물어보고 배워가며 한다. 그러나 동시녹음 같은 부분은 큰 화면에서 어떻게 들릴지 감이 없기 때문에 영화쪽 스탭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방송이든 영화든 어차피 가장 중요한 것은 내러티브를 전개하는 일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신경써야 할 부분은 같은 편이다. 제작 과정에서는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겠고 오히려 시나리오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 스크린에 걸어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니까. -영화 현장이 방송보다 더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현장에서의 동선이 매우 큰 편이더라. =방송쪽 스탭은 PD와 눈빛만 스쳐도 알아서 일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만 영화 스탭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래서 감독이 피사체에 가장 가깝게 위치해야 가장 신속하게 현장이 돌아가는 것 같다. 게다가 내가 성격이 좀 급해서 기다리지를 못한다. 처음엔 방송과 비교해서 느릿느릿한 영화 현장 때문에 부글부글 속이 끓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점차적으로 적응이 됐다. 하지만 나는 테이크를 여러 번 가지 않는다. 연기자들도 나와의 작업에 익숙하기 대문에 첫 번째나 두 번째 테이크에서 가장 좋은 연기가 나온다. 가끔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번에 할당된 테이크는 딱 두번입니다. 상영관에서 땅을 치면서 보지 않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웃음) -TV에서 주로 활동한 배우들이다. 연기 지도를 하는 데 곤란한 부분은 없나. =보통 TV 연기자들은 바스트 연기를 한다고 한다. 나도 연기자도 그런 연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조금 거쳐야만 했다. 그래도 헷갈리는 부분이 있으면 두세 테이크를 먼저 찍어놓고 쉬는 틈에 현장 편집기사와 붙여보며 어색한 부분이 없는지 체크한다.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능한 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여지를 두고서 전체 톤에 맞아떨어지는 테이크를 고르려고 한다. -현장에서도 사석에서도 꽤나 남성적인 분인데, 그간 <달려라 울엄마>나 <올드미스…>처럼 여성의 이야기로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해왔다. =내가 여성문제에 대해 특별히 많이 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저 <멋진 친구들>을 끝내고 나서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달려라 울엄마>를 했고, 그걸 하다보니 여자들의 이야기가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드미스…>를 했다. 집안에 여자가 많아서 여성의 심리 같은 것에 흥미를 많이 느끼고 또 재미있어하는 편이다. 물론 연출하면서도 ‘이럴 때 여자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부분까지 내가 손을 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여자들에게서 듣는 건 매우 좋아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성 캐릭터들의 리액션 자체는 작가들이 써놓은 것을 그대로 따르면서 그저 나만의 ‘깔깔이’를 치는(재미있는 부분들을 만드는) 거다. 그렇게 마음을 열어두고 연출한 것이 시청자에게도 어필을 많이 한 것 같다. 또 내가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따분해하지 않고 흥미롭게 여겼던 것 역시 끝까지 시트콤을 연출하고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일일 시트콤에서는 인물과 상황이 진행에 따라 점점 변해간다. 하지만 영화는 압축된 하나의 이야기를 가져야 한다. 시트콤을 영화로 압축하는 경우 시트콤의 이미지나 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맞추어가려고 하나. =방송은 종점이라는 거 모르고 시작한다. <올드미스…> 역시 232회를 가면서 합리적이고 정확한 하나의 방향만을 따른 것은 아니다. 1개월을 하다 끝날지 3년을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6개월이 지나고부터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도 많았고, 캐릭터를 결혼시켜야 하는 시점부터는 너무 쏜살같이 달려가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논리가 정확해야 하니까 <올드미스…>의 초기 기획의도를 살리는 게 가장 아귀가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패배감에 시달리는 좌절한 백수 30대 노처녀, 결혼이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주눅 드는 노처녀인 시트콤 초기의 미자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신데렐라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로 끝내지는 말자는 생각이었다. -<올드미스…>는 여성문제에 노인 이야기가 겹쳐져 있다. 패륜 사건으로 쓸데없는 오해를 사긴 했지만, 노인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연출자는 흔치 않다. =우리 어머니가 올해 일흔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20년 전의 어머니랑 다를 바가 없다. 내가 보기에는 이제 몸매가 영 아니신데도 나름대로 셰이프를 만들어보려고 애쓰시고. (웃음) 그렇게 집안에서는 우리 어머니가 여전히 코믹하게도 보이지만, 일단 노인이라는 집단 개념에 묶이면 달라진다. 나 자신도 노인들을 무의식적으로 무시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 서늘한 기분이 든다. 사실 노인들은 자신이 노인이라는 것에 공감하지 못하지 않나. 나도 몇 십년만 있으면 노인인데 그런 상황들이 답답하다. 노인들이 배경 화면으로 전락할 존재는 아니다. 그들에게도 여전히 여성성과 남성성은 존재한다. 그래서 뭔가 사회적 경종을 울릴 수 있는 부분을 해보고 싶었다. 게다가 실재로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나올 수 있다. 우리 어머니는 귀가 안 들리는 것도 아닌데, 쇼프로그램에서 “누구누구 컴백순!”이라고 나오면 “권백순이가 누구냐?”라고 물어보시기도 한다. (좌중 폭소) 내가 흥미를 많이 느끼니까 계속 해보고 싶다. 사실 소명의식, 이런 건 얕지만. -시트콤 연출을 하기 전에는 오락 프로그램 연출을 주로 했다. =나는 원래부터 쇼프로그램 PD가 꿈이었다. (웃음) 꿈꾸던 일을 하면서 재미나게 살던 터에 시트콤이라는 장르를 만났고, 그게 또 다른 맛이 있더라. 사실 시트콤은 드라마국이 아니라 순발력이 있는 오락국 PD들에게 더 맞다. 송창의, 김병욱 PD처럼 오락 PD들이 만든 시트콤들이 성공한 전례도 있지 않나. -그럼 대학 때부터 오락 프로그램 PD가 되기로 결심을 한 건가. =전혀 아니다. 나는 도시공학과 출신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늦게 간 군대에서 MBC에서 FD를 하던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가 나더러 ‘형은 PD 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당시에는 PD가 뭔지도 몰랐지만 말을 들어보니 좋은 거 같았다. 일단은 제대하고 나서 모그룹 입사시험에 합격을 했는데 도저히 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PD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랬더니 먼저 시험을 봐야 한다더라. 입사도 꽤 힘들다고들 했고. 어쨌든 시험을 쳤는데 3차까지 아슬아슬하게 붙어서 한번에 합격을 하고 말았다. (웃음) -영화 연출을 좀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나. =할리우드 키드도 아니었던데다 영화는 잘 모른다. 방송이 아직은 더 잘 맞는 것 같다. 이를테면, 나는 제약이 많은 날 연출이 더 잘되는 편이다. 극장판 <올드미스…>를 찍으면서는 3회로 계획된 경찰서 장면 같은 경우, 낮장면을 모두 5시 안에 끝내야 했고, 10시까지는 김혜옥씨 장면을 다 끝내서 보내야 했고, 12시까지는 지현우 장면을 다 끝내서 보내야 했다. 빡빡하다. 근데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라고 하니까 오히려 촬영이 잘되더라. (웃음) 물론 전체 퀄리티는 호언장담을 할 수 없겠지만, 완성도라는 게 결국은 감독의 기준에 달린 게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더 찍어봐야 오버라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각 신의 차이점을 확실히 구분해서 골라낼 수 있는 기준이 없다. 그래서 매 촬영에서 나름대로 후회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갔다. 낙천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내 성격은 예민한 편이다. 장면이 마음에 안 들면 집에 못 간다. 그런데 <올드미스…> 찍으면서는 항상 집에 가볍게 가는 편이다. -그래도 영화가 좋은 성적을 올리게 된다면 영화를 계속하고 싶은 욕심도 생기지 않을까. =나는 소소한 일상의 극화를 좋아하지만 영화에서는 지나치게 일상적이어서는 안 되지 않나.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미니시리즈뿐만 아니라 일일 드라마도 매우 선정적인 편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아이템을 영화나 드라마로 하려면 100% 거절당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방송과 영화계가 ‘저게 과연 아이템이 될까?’라고 반문하는 부분에서 시청자는 울고 웃으며, 그걸 할 수 있는 매체는 시트콤이다. -일을 굉장히 즐기면서 하는 듯하다. =이 일을 시작한 지도 14년쯤 됐다. 그런데 후배들 말에 따르면, 내가 직업적 만족도가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일이 많아도 일 같은 생각이 안 든다. 직업 하나는 잘 골랐다. -워커홀릭 기질이 다분한데.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서 딸이 둘 있다. 전화해서 자고 있다 하면 더 일하다 가고, 안 자면 집에 가서 놀아주다가 다시 일하러 간다. 하지만 워커홀릭이라는 말을 들으면 살짝 기분이 나쁘다. 예전에 한 후배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란 책을 선물해주면서 “형, 하늘도 가끔 보고 살아요”라더라. 그래서 하늘을 봤더니 너무 날이 좋아서 크로마키(chroma-key·색채의 불현효과(不現效果)를 이용해 화면을 합성하는 텔레비전 트릭) 정말 제대로 빠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웃음) 하지만 그게 정말 워커홀릭인가? 일을 일처럼 생각 안 하기는 하지만 일 관계로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 좋아서 스트레스는 전혀 안 받는다. 그래서 나에게 워커홀릭이란 단어는 맞지 않는다.

일본 젊은 영화의 힘! [4]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메종 드 히미코> <박치기> <스윙걸즈> <린다린다린다>가 매달 한편씩 차례로 개봉했다. 그 선두는 역시 최근 일본영화에 주목하게 만드는 연원을 제공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이누도 잇신이 만든 <메종 드 히미코>였다. <조제…>에 환호했던 관객은 기다렸다는 듯이 재차 이누도 잇신의 영화를 반겼고, 그 관심의 폭은 이미 다른 영화들에도 미쳐 있었다. 네편의 영화는 적게는 2만에서 많게는 10만 사이를 오가는 관객을 모았다. 입소문은 늘어갔고, 마니아들은 더 분명하게 수면 위에서 형성됐다. 급기야 7월에 열린 일본인디필름페스티벌은 매진을 기록하며 보기 드문 성공 사례를 남기고 있다. 물론 이 성공을 뒷받침한 외부적 요인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니아들을 상대로 한 영화사의 소규모 장기 상영 전략과 일본영화 전용관 개관에 따른 여파, 일본 텔레비전 드라마의 일반화로 인해 일본 대중영화의 소재와 캐릭터와 이야기 방식에 더욱더 친숙해진 관객, 그중에서도 다운로드족의 일본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도와 그에 이어진 극장으로의 발걸음, 그리고 아사노 다다노부와 그에게서 이제 막 왕관을 이어받은 오다기리 조, 쓰마부키 사토시에 대한 소녀들의 열광이 맞물린 결과다. 하지만 간단한 질문이 남는다. 그렇다 할지라도 만약 영화 자체에 이유가 없었다면 이 호응은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때문에 어떤 호소와 호응이 작동한 것인지 영화를 빌려 말하는 과정이 생략된다면 이 외부 요인에 대한 분석은 현상에 대한 수치적 환산이거나 전략에 대한 결과론이거나 해석을 위한 치장이거나 산업적 보고서에 불과할 공산이 크다. 그러므로 다시 <메종 드 히미코> <박치기> <스윙걸즈> <린다린다린다>로 돌아가자. 올해 상반기에 개봉한 일본영화는 모두 합쳐도 이 네편의 영화와 서너편의 공포영화와 한편의 멜로드라마(<언러브드>) 정도다. 그러나 올해 일본영화에 대한 관심도를 달궈놓은 것은 함량 미달 수준으로 개봉된 서너편의 공포영화가 아니라 위에 열거한 바로 이 영화들이다. 이 작품들 사이에는 묘하게도 어떤 내용적 연쇄의 지점이 있다. 그게 주목의 연쇄 또한 만들어냈을 것이다. 궤도의 이탈, 밀려쓰는 답안지의 재미 지금 이 목록에 5월 개봉작 <언러브드>가 빠져 있는 이유가 네편의 영화를 묶는 첫 번째 고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언러브드>는 네편의 영화에 비해 결코 질적으로 떨어지는 작품이 아니다. 그보다는 다른 종류의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에 관한 영화다. 비교하자면, <언러브드>를 사랑한 관객의 이유와 <메종 드 히미코>를 사랑한 관객의 이유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건 자기를 사랑하는 그녀를 사랑할 것인가, 남을 사랑하는 그녀를 사랑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언러브드>의 여주인공 미치코와 <메종 드 히미코>의 사오리는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진 여자다. 한명은 자기애의 실현을 꿈꾸고 있고, 또 한명은 타자에 대한 박애를 꿈꾼다. 두 인물은 모두 누군가의 방문을 받지만, <언러브드>의 미치코가 가쓰노와 시모카와라는 남자의 방문을 차례로 받는 것과 <메종 드 히미코>의 사오리가 게이 아버지 히미코의 애인인 하루히코의 방문을 받는 것은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 차이란 나의 영역에서 남을 받아들일 것인지, 나의 궤도를 이탈해 누군가의 세계로 들어가 그(들)를 이해할 것인지의 차이다. <언러브드>에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여주인공 미치코가 하는 것은 자기 세계에 대한 고민이자 확립이다. 누구도 그녀의 세계를 흔들 수 없고, 끝내 그녀는 자기의 의지를 저버리지 않는다. 미치코는 나의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같은 자리에서 고민하고, 그 대답을 통해 얻은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사오리는 나의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흔적이 없다. 애욕의 흔적은 더 없다. 새로 접한 게이 노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관심이 더 있고 그걸 유지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자아의 목표치다. <언러브드>에는 정박의 고수가 있지만, <메종 드 히미코>에는 이탈의 유혹이 있다. 이탈의 스토리는 일찌감치 <조제…>에서 볼 수 있다. 유모차에 뭔가를 싣고 다닌다는(사람들은 그걸 황금일 거라고 한다) 괴이한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쓰네오가 새벽녘에 그 할머니를 우연히 만나고, 떠밀려 내려오는 유모차 안의 조제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사건은 일상의 궤도를 벗어나는 주인공의 이탈의 시작이다. 이제 이야기는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이미 정해놓은 규율을 바탕으로 한 삶 안에서 펼쳐진다. 사랑도 그 타자의 일상을 끝까지 인준함으로써만 가능하며, 그렇지 않다면 쓰네오가 그랬듯이 떠나야 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러브스토리는 그런 이유에서 안타깝긴 해도 담담할 수밖에 없는 진리다. 그 점이 바로 이 영화가 사랑에 대해, 결별에 대해 정당하게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 이유였을 것이다. <스윙걸즈>의 소녀들이라면 그 상황을 코믹하게 맞을 것이다. 낙오생 소녀들이 스윙재즈의 멋을 알아버린 건 수업을 벗어나 밴드부의 도시락을 갖다주려다 어영부영 잘못된 시골로 들어서고, 도시락은 다 상해버리고, 그걸 먹은 밴드부원들이 식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가고, 그녀들이 그 자리를 강제로 대신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린다린다린다>의 송은 부주의한 성격 탓에 그만 말을 잘못 알아듣고 밴드에 들겠다고 허락한 것이고, <박치기!>의 고우스케는 일본 여고생을 괴롭힌 적이 없지만 어쨌든 같이 휩쓸려 봉변을 당한 덕에 절실한 사랑에 빠지는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모든 이야기가 한칸씩 밀려쓰는 답안지다. 그런데 그렇게 밀려쓰다보니 그들에게는 목표가 보인다. 러브스토리이건 코미디이건, 이것이 일단의 재미를 이룬다. 마을이라는 공간, 청춘이라는 시간 그런데 이탈은 이동의 문제고, 경계를 넘어서서 진입하는 것의 문제다. 그게 어디고, 언제쯤 벌어지는지는 그 때문에 중요한 물음이 될 수밖에 없다. 네편의 영화에서 그것을 공간적으로 나누면 마을이 되고, 시간적으로 나누면 청춘이 된다. 가령 이렇게 나누면 더 명확해진다. 우리는 한편의 ‘마을영화’(<메종 드 히미코>)와 또 한편의 ‘마을·청춘영화’(<스윙걸즈>)와 두편의 ‘청춘영화’(<박치기!> <린다린다린다>)를 본 것이다. ‘마을영화’란 실은 어디에도 없는 지금 이 자리에서 만든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마을에 사는 구성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같이하는 이야기가 일본영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 것을 본다. 그것은 가족영화와는 또 다른 것이어서 항상 내부의 갈등보다는, 어찌됐든지 완성되는 화해와 합심의 드라마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런 마을에는 항상 피로 맺은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애환과 정이 넘친다. <메종 드 히미코>에서라면 그것은 게이 공동체로서 히미코의 집이다. 그곳으로 진입한 사오리는 결국 그들의 동반자가 되어 남기로 한다. 반면, 마을영화와 청춘영화의 양면을 모두 지닌 <스윙걸즈>는 마을영화가 추구하는 합심과 화해의 드라마를 청춘이라는 유한적 시간 속에서 한 목표를 향해 함께 가는 행위로 대신함으로써 충족시킨다. 만약 이 두편의 영화에 호응한 관객이라면 마을영화와 마을·청춘영화의 이 낭만적 화해 무드에 빠져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공간이 아니라 시간의 의미가 더 큰 부분을 차지할 경우에, 즉 주인공들이 온전히 청춘영화의 틀 안에 있을 경우에, 그 이탈의 시간이 잠정적이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나, 청춘이란 잠정과 유한에 대한 피할 수 없는 반영이다. 그들은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시간을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는 강요를 피할 수 없다. 마을영화에 절반을 걸치고 있는 <스윙걸즈>는 그 요구를 간단하게 저버리고 그냥 그 자리에 화합의 집단적 기념비로 남는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더 청춘영화의 범위 안에서 운위하는 <박치기!>와 <린다린다린다>는 좀 다르다. 게다가 이 두편의 영화는 정치적 함의의 개입을 허용하기까지 한다. 그들에게 유한적 시간이란 좀더 절박한 무엇이다. <박치기!>는 이미 일본 안에 들어와 있는 조선인들의 이야기고, <린다린다린다>는 일본 여고생과 한국 여고생의 교집합이다. 적어도 이 두편에는 <스윙걸즈>와 달리 소속에 대한 끊임없는 갈등(<박치기!>에서 일본인 친구가 죽자 마치 그 일원처럼 여겨지던 교우스케는 갑자기 한국인 어른에 의해 돌아가라며 내쳐진다)과, 무료한 속도를 따라 이어지는 장애 내지는 그걸 넘어서려는 시도(<린다린다린다>에서 그녀들의 침묵과 대화)가 있다. 그 때문에 <린다린다린다>와 함께 이야기될 만한 영화는 <스윙걸즈>뿐만 아니라 <박치기!>일 수도 있다. <린다린다린다>는 <박치기!>의 인물들이 나눈 약속에 대한 미래의 실현과도 같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박치기!>에서는 일본인과 조선인 학생간의 싸움 끝에 급기야 조선인 학생이 죽는다. 그런데 그와 일본인 학생 교우스케가 했던 미완의 약속을 기억하자. 그들은 언젠가는 함께 밴드를 결성해 노래 부르자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역사에 떠밀려 사멸해버린 그 약속은 40여년이 지난 뒤 <린다린다린다>에서 송과 그 친구들의 노래로 드디어 지켜진다. <박치기!>를 혹은 <린다린다린다>를 선호한 관객이라면 이 과거와 미래가 나눈 미완과 실현을 다시 상기하는 것이 충분히 흥미로울 것이다. 이탈의 유한적 시간을 만끽하기 위한 콘서트 혹은 축제 자, 다시 마을과 청춘을 합쳐서 이야기하는 게 가능하다. 이왕 밀려쓴 이 답안지의 이야기는 끝까지 밀려나가 무언가 다시 맞춰지는 기적을 이뤄야만 한다. 그럼 무엇으로 가능할 것인가. 다시 말해 네편의 영화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보기의 쾌감을 혹은 감동을 선사해준 장면들은 어디에 있었던가. 이 영화들은 모두 그 자리에 ‘축제’가 있어야 한다고 가정한다. 잘못 시작된 출발이었거나 아니거나 이제 이 축제의 자리를 빛내기 위해서 달려간다. 그게 유한적 시간 속에서, 그 너머의 영역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는 방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축제가 스포츠가 될 경우에는 실패의 확률이 높다. 그건 마음의 언어가 아니라 몸의 언어로 하는 축제이기 때문이고, 가령 <박치기>의 경우처럼 앙금을 제거하기 위한 자리라면, 그런데 쉽게 해소될 수 없는 자리라면, 몸과 몸이 부딪치면서 소통의 언어는 날아가고 몸의 본능적인 열기만 남기 때문이다. <박치기!>의 진보적인 일본 선생이 (나쁜) 전쟁은 (착한) 전쟁으로 풀어야 한다며, 조선인 고등학교와 일본인 고등학교 사이의 친선 축구 시합을 성사시키지만 결국 학생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시합은 발길질과 주먹질의 난투극으로 끝난다. 때문에 그것은 곧잘 공연으로, 특히 음악회나 연주회가 되어야만 한다. 음악이 매개가 되는 것이다. <메종 드 히미코>에서 사오리와 게이 노인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연주와 춤이 흐르는 나이트클럽에서다. <스윙걸즈>와 <린다린다린다>의 소녀들은 음악제와 학교 문화제의 무대에 오르는 순간 뜨거운 공감의 열정을 느낀다. <박치기!>의 배경인 1968년은 비유적으로 봐도 혁명적 페스티벌로 점철된 시간이었고, 교우스케가 라디오에서 <임진강>을 부르는 오디션은 그걸 듣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보이지는 않지만 뜨거운 감동의 콘서트다. 인물들은 이 축제를 완성하기 위해, 즉 잠정적으로 주어진 이탈의 유한적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 재즈를, 펑크를, 포크를 연주하고 노래한다. 그들은 그렇게 마무리하고 싶어하고, 우리도 이 순간 즐거워하거나 감동한다. 차이와 다름에 관한 일본영화식 사지선다 하지만 일본영화에 관한 이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만약 이와이 순지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 올해 개봉된 목록에 올랐다면 어땠을까.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도 음악회 장면이 있었다. 아름다운 화음의 아카펠라가 울려퍼지고 그 정도면 외양적으로는 성공이었다. 그러나 그 성공은 피아노를 잘 친다는 이유로 이지메를 당한 여학생 구노가 일부러 자신의 자리를 빼고 만든 작곡에 힘입은 화음이다. 선생도 나머지 학생들도 소품처럼 무대 한편에 서 있는 그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모른 체한다. 그건 아름다운 합창이지만, 이지메가 만들어낸 화음이다. 영화 속에는 인물들이 신봉하는 가수 릴리 슈슈의 콘서트도 있었지만, 그걸 보기 위해 기다리는 팬들의 입장은 무엇이었나. 자신이 생각하는 릴리 슈슈에 대한 의미에 반하는 남의 어떤 의견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축제는 갈등을 해소 못할 뿐 아니라, 더 드러내는 사건이다. 여기까지 미쳤기 때문일까. 이쯤에서 이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말하자면, 혹시 우리가 올해 본 네편의 마을·청춘영화들은 이탈을 기회 삼아 차이와 다름의 인준에 관해 말한, 이른바 일본영화식 ‘톨레랑스’에 관한 네 가지 쌍곡선은 아니었을까. 무작정 흥겨움으로 달려나가며 다름에 대한 인식을 제외한 의아한 화합(<스윙걸즈>), 또는 다름을 인정하되 그 안으로 들어가 일원이 되는 것의 낭만(<메종 드 히미코>), 또는 공존하지만 인정하기까지의 어려움(<박치기!>), 그러나 다시 그 다름의 공존을 인정하면서 같이하는 것의 아름다움(<린다린다린다>)에 관한 네 가지 묶음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걸 보는 우리의 제각각 선택과 호응은 아니었을까. 처음 이 봇물을 쏟아놓은 <조제…>의 러브스토리가 톨레랑스에 기반한 러브스토리였음을 기억하자. <유레루> <빅 리버> <전차남>이 온다고 한다. <유레루>와 <빅 리버>는 스타 오다기리 조의 출연작이고, <전차남>은 드라마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이 영화들이 도래하면 또 다른 일본영화의 면모가 얘기돼야 하겠지만, 그래도 마을영화와 청춘영화는 다시 찾아올 것이고, 그 영화들의 성격상 톨레랑스에 대한 담화는 그때마다 다시 이야기돼야 할지 모른다. 그때 과연 우리는 어떤 영화를 선택하여 울고 웃을 것인가. 그건 단순히 재미로 말해질 수 있을까. 다시 말하면 그건 우리의 톨레랑스에 대한 인식을 시험받는 우회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적어도 올해 우리는 그 경험을 한번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