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UPCOIN24이더리움사는곳파이코인전송대행이더리움사는곳파이코인전송대행' 검색결과

기사/뉴스(2003)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닷컴의 성공신화 [1]

당신(You)은 동영상을 자유롭게 퍼나르는 튜브(Tube)입니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www.youtube.com)가 인터넷 멀티미디어 세상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이용자가 직접 동영상을 올리고 또 자신의 공간에 마음대로 퍼갈 수 있는 유튜브는 2005년 12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전세계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일 방문자만 1천만명, 1일 페이지 뷰(Page View)가 1억회에 1일 재생 횟수는 4천만회에 육박하고 있으니, 가히 세계적인 규모로 거행되는 디지털 세대의 놀이터라고 일컬을 만하다. 도대체 유튜브는 무엇이며 누구의 손에 탄생했는가. 또한 유튜브는 자본으로 점철된 인터넷 사회을 어떻게 동영상의 자유로운 공유 공동체로 재편하고 있는가. 유튜브의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예상해본다. 판도라TV, 엠군, 다모임 등 토종 동영상 공유 사이트들이 인터넷 멀티미디어 세계의 변화에 어떤 식으로 대처하고 있는지도 알아보았다. K는 지인의 블로그에서 재미있는 동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네 남자가 록음악에 맞춰 포복절도할 춤을 추는 뮤직비디오였다. 이거 재미나는걸? K는 동영상 화면을 클릭해 유튜브(www.youtube.com)로 접속했고, 동영상의 주소를 복사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K의 블로그를 방문한 또 다른 블로거들이 같은 방식으로 비디오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라이선스 앨범 한장 나오지 않은 록밴드 ‘OK GO’는 삽시간에 국내 포털의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시카고의 4인조 록밴드 ‘OK GO’는 근사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난한 인디 밴드에 그만한 홍보비가 있을 리 만무했다. ‘OK GO’는 자신들이 직접 짠 안무를 바탕으로 원신 원컷의 초저예산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유튜브에 올렸다. 몇주 지나지 않아 뮤직비디오는 전세계 유튜브 이용자들에게 퍼져나갔고, 서울에 거주하는 K의 블로그에 뮤직비디오가 올라오기까지는 한달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국제적 유튜브 스타의 탄생이었다. 당신이 올리고 당신이 가져가라. 그건 아마도 인터넷을 창조한 이들이 꿈꾸었던 히피적 세계 공동체의 철학서에 나오는 문구였을 것이다. 거대 기업들의 전쟁터가 되어버린 작금의 인터넷 세계에서 이같은 공동체의 철학은 덧없는 장자의 꿈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유튜브에 들어서는 순간 낡은 철학서의 모토는 현실이 된다. 일반인들이 디지털카메라 등을 이용해 만들어낸 동영상 UCC(User Created Contents)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유튜브는 인터넷의 새로운 빅뱅이다. 그곳에서 모든 것은 자유다. 이용자는 10분을 넘기지 않는 한 어떤 형태의 동영상이든 업로드할 수 있고, 모든 종류의 동영상을 자신의 사이트와 블로그, 게시판 등으로 가져갈 수 있다. 2005년 12월 정식 서비스를 개시한 유튜브는 이처럼 자유로운 조작성과 접근성을 무기로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내 무시무시한 숫자의 인터넷 이용자들을 끌어들였다. 1일 방문자 1천만명. 1일 페이지 뷰(Page View) 1억회. 1일 재생 횟수 4천만회. 유튜브에는 하루 평균 6만5천편의 새로운 동영상이 끊임없이 업로드되고 있으며, 동영상 수는 미국 내에서 서비스되는 모든 동영상의 60%에 달한다. 이만하면 독점이고 과점이다. 하지만 유튜브는 무료이며, 현재까지는 특정한 대기업의 수익사업에도 연계되어 있지 않은 ‘벤처’라는 점에서 이용자들의 심리적 저항은 극도로 적다. 빌 게이츠가 가슴을 치며 두통을 호소할 일이다. 유튜브를 만든 것은 20대의 두 젊은이들이다. 페이팔(www.paypal.com)이라는 온라인 결제사이트에서 일하던 스티브 첸(27)과 채드 헐리(29)는 순전히 파티에서 찍은 홈비디오를 친구들과 공유하기 위해 유튜브를 고안해냈다.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디카로 만든 동영상을 자신의 사이트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서버를 증축해야만 하고, 메신저로 친구들에게 보내자니 용량이 지나치게 커서 곤란했던 경험들. 게다가 기껏 올려봐야 웹상의 재생용 미디어 소프트웨어는 치명적인 한계들을 잔뜩 짊어지고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CD로 구워서 직접 건네는 편을 택했을 테지만 첸과 헐리는 실리콘밸리의 게으른 천재들이었다. 둘은 2004년 11월에 세쿼이어 캐피탈이라는 IT회사로부터 350만달러를 끌어와 유튜브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동영상을 만들어 공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은 디카 등 다양한 촬영기기의 발전에 힘입어 휴화산 속 용암처럼 부글거리고 있었고, 유튜브는 그들의 욕망을 일시에 분출시켰다. 동영상과 함께 놀다 유튜브의 가장 큰 장점은 간결함이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동영상 포맷인 avi, mov, mpg로 된 파일을 모두 업로드할 수 있고, 업로드된 파일은 유튜브에서 저절로 플래시(Flash) 포맷으로 변환된다. 플래시 포맷으로 변환된 파일은 별도의 재생 프로그램 없이도 웹상에서 얼마든지 재생이 가능하다(안녕, 짜증스러운 윈도즈 미디어 플레이어! 안녕, 느려터진 퀵타임 플레이어!). 그렇게 변환되어 업로드된 동영상의 주소와 HTML은 복사해갈 수 있도록 공개되며, 키워드를 이용한 동영상 검색 또한 가능하다. 이토록 간결한 방식으로 동영상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유튜브는 영상 세대를 위한 놀이터다. 밤새도록 키워드를 넣어가며 수억편의 동영상 바다를 헤엄칠 수 있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로이가 죽어가며 절규하던 마지막 대사를 찾을 수도 있고, <로쉬포르의 숙녀들>에서 진 켈리가 우아하게 춤추는 장면을 찾을 수도 있으며, 기타노 다케시가 진행하는 몰래카메라를 보며 배꼽을 잡을 수도 있다. 물론 이 같은 동영상들은 저작권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유튜브는 다운로드가 될 수 없는 플래시의 형태로 모든 동영상을 스트리밍(Streaming) 서비스하며, 동영상의 저작권자가 영상의 삭제를 요구하면 즉시 사이트에서 내린다. 심각한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방식이 애초에 아닌 셈이다. 유튜브는 다양한 토종 UCC 공유사이트들이 버티고 있는 한국(박스 참조)에서도 지존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영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사용법이 대단히 간편한데다 전세계에서 업로드된 광대한 자료량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사이트를 극도로 기피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일본에서도 매달 200만명이 유튜브를 사용한다는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올해 초 지인의 블로그를 통해 유튜브를 알게 된 서강대 영상대학원 M씨는 “시간이 나는 대로 유튜브를 틀어놓고 산다. 모두 합하면 하루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다른 블로거(Blogger: 블로그 이용자)들과 마찬가지로 유튜브에서 가져온 뮤직비디오나 광고 영상물, 라이브 공연 실황, 외국 방송 프로그램 클립 등을 종종 블로그에 올린다. M씨가 지적하는 유튜브의 장점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방대한 자료들이다. “한국에서 빨리 접할 수 없는 최신 영상물과 음악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유튜브는 나처럼 시간이 부족해 MTV를 비롯한 케이블 방송을 볼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손쉽고 빨리 최신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는 유익한 커뮤니케이션 공간이다. 그리고 일반 매체가 정해놓은 일방적인 방송순서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선별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과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텔레비전 인터뷰라든지 외국 방송 프로그램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물론 영상의 공유를 일종의 생활로 여기는 그에게 “쉽게 블로그에도 포스팅할 수 있다”는 희열을 빼놓을 수는 없다. 실질적 수익모델 창출이 관건 유튜브에 주목하는 것은 평범한 인터넷 이용자들뿐만이 아니다. 유튜브의 등장으로 미국 TV계의 새로운 트렌드는 ‘사용자들이 직접 차기 히트쇼를 예견하도록 만들자!’가 되었다. 카툰네트워크의 심야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은 동시간 방영되는 MTV와 폭스채널의 TV쇼를 물리치고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시청률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심지어 쇼의 창조자도 이해하지 못했던 이 같은 인기는 모두 유튜브 덕이다. 유튜브에 공개된 짧은 동영상의 인기가 곧바로 TV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대중의 반응을 시험한 의 제작자 빌 로렌스는 UCC 동영상 공유사이트가 지금 미국 TV계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지 잘 알고 있다. “만약 공중파나 케이블 TV가 인터넷을 프로그램의 런칭과 테스트 장소로 끌어안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국 실패하고 뒤처지게 될 것이다.” 음반회사들이 새로 나온 뮤직비디오, 나이키가 아마추어들이 찍은 듯한 축구 스타들의 동영상을 슬그머니 유튜브에 올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유튜브 사용자들은 하루에 1억편의 동영상을 찾아보는 영상 감식가들이다. 엄청난 광고시장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튜브가 실질적인 수익모델로서의 미래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IT전문가들은 의문을 표한다. 유튜브를 갑자기 유료사이트로 전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인터넷 다운로드 사이트 냅스터(www.napster.com)는 탄생 초에 유튜브처럼 거대한 미디어 현상을 불러일으켰지만, 저작권 문제 등에 부딪혀 유료로 전환되는 순간 생명을 다했다. 물론 유튜브 역시 현재 한국의 동영상 UCC 공유사이트들이 일찌감치 시작한 방식을 따라 동영상 광고를 수익원으로 삼을 수도 있다. 문제는 유튜브처럼 자유로운 공동체의 공유정신으로 시작된 사이트의 이용자들은 동영상 광고에 대한 저항감이 크다는 사실이다. 유튜브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유튜브의 줄리 수판은 “광고주들이 유튜브로부터 어떤 가치를 창출하느냐보다 이용자들이 광고로부터 어떤 가치를 얻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제대로 해내고 싶다”고 고뇌를 토로한다. 수익모델을 창출하는 것은 유튜브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에 서두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만, 해법은 그리 녹록지가 않다. 하지만 유튜브는 이미 생존 해법을 하나씩 내놓고 있다. 지난 8월17일 유튜브는 뮤직비디오 무료(!)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사용자들은 한푼의 사용료도 지불하지 않고 막대한 양의 뮤직비디오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게 된다. 유튜브는 사용료를 받지 않는 대신 광고에서 모든 수익을 낼 계획이며, 현재 워너뮤직이나 EMI 같은 음반사들과 서비스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야심만만한 도전이다. 아이튠즈(iTunes)를 통한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애플(Apple)의 스티브 잡스는 젊은 유튜브의 도전 앞에서 늙고 영악한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닷컴의 성공신화 [2]

네트는 광대하다 물론 의문표는 남아 있다. 과연 유튜브가 제대로 된 수익모델을 창출하면서도 현재의 자유로운 영상 공동체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혹여나 거대 기업들과의 결탁으로 인해 또 다른 억만장자 장사꾼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아직 결론을 유추할 단계는 아니다. 우량아 유튜브는 이제 겨우 1살도 먹지 않은 신생아다. 그것은 젊은 이용자들이 대기업들보다 먼저 발견하고 먼저 시작한 인터넷 미디어의 혁명이다. 냅스터와 구글이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면 마이크소프트와 애플마저) 더벅머리 젊은이들이 창고에서 만들어낸 하나의 신화였듯이, 유튜브 또한 가난한 천재들의 창고에서 태어났다. 유튜브가 보여주는 세계는 할리우드와 화려한 힙합 뮤지션들의 자동차와 어설픈 홈비디오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거대 언론의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현장들이 유튜브의 튜브를 타고 전세계 이용자들의 컴퓨터로 전송된다. 은 최근 유튜브에서 찾아낸 동영상으로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보도했다. 로켓포가 건물에 작렬하고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퍼지는 영상은 레바논 현지 주민들이 직접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 화면이었다. 목숨을 건 언론인들조차 카메라를 갖고 들어가지 못하는 순간 속으로 유튜브는 들어간다. 그리고 저널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유튜브는 보통의 시민들이 모여서 미디어 신화를 창조하고 비디오 저널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마지막 장소가 인터넷이라는 사실을 오랜만에 멋지게 증명하고 있다. 네트는 광대하다. 그리고 광대한 영상의 네트를 연결하는 당신(You)들의 튜브(Tube) 역시 광대하다. 인터넷, 이제 동영상이 대세다 판도라TV, 엠군, 아우라 등 국내서 선전 중인 동영상 사이트들 최근 청와대가 국내 동영상 사이트인 판도라TV에 ‘희망채널’(www.pandora.tv/1219)을 개설했다. 대통령의 현장 발언이나 청와대 행사 등을 보여주는 이 채널의 개설은 국내 UCC(User Created Contents) 동영상 사이트의 인기와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만하다. 유튜브의 폭발적인 시장 독점에도 불구하고 한국 동영상 사이트의 선전은 이처럼 여전하다. 2004년 10월에 국내 최초로 동영상 공유 서비스를 시작한 판도라TV(www.pandora.tv)를 선두로, 현재 국내에는 엠군(www.mgoon.com), 다모임(www.damoim.net), 디오데오(www.diodeo.com), 아우라(www.aura.co.kr) 등의 사이트가 동영상 시장에서 각축을 벌이는 형국이며, 이미 몇몇 사이트는 거대 포털에 못지않은 이용자 수를 자랑하고 있다. 판도라TV의 김국현 과장은 창립 단계에서부터 동영상 UCC 사이트의 열풍을 예감했다고 말한다. “인터넷의 트렌드는 항상 변해간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도달할 단계는 당연히 멀티미디어가 아니겠는가. 전신인 ‘레떼컴’ 시절부터 이용자들의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경험상으로 파악했던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100% 된다’라는 생각이었다.” 새롭게 열린 시장에 거대 포털 사이트들이 눈독을 들이지 않을 리 없다. 가장 먼저 동영상 UCC 섹션 ‘TV팟’을 개설한 다음(Daum)에 이어, 네이버와 싸이월드 역시 UCC 콘텐츠를 확보하고 이용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 6월 다음 TV팟의 방문자 수는 모두 700만명에 달했고, 네이버의 ‘플레이’ 역시 600만명을 넘어서는 방문자 수를 기록했다. 판도라TV와 CP(Contents Provider: 콘텐츠 제공자) 관계에 있는 다음커뮤니케이션쪽은 다음 포털의 이용자들로부터 동영상에 대한 수요를 읽어내고 TV팟을 개설한 경우다. 다음쪽은 “섹션 중에 아고라나 텔레비존, 세계인 같은 게시판 위주 서비스가 있다. 그런데 동영상에 대한 이용자들의 욕구는 있는데 마땅한 툴이 없어서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고 설명한다. 유튜브도 그러하지만, 문제는 수익모델이다. 판도라TV는 일찌감치 동영상 광고, 콘텐츠 판매, 유료 서비스 등 다양한 수익모델을 확립해놓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수익률이 높은 것은 동영상 광고다. 김국현 과장에 따르면 판도라TV에 들어오는 광고 문의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수준이다. 그는 “최근 옥션에서 광고 문의를 해왔는데 제시해온 금액도 어마어마하지만 그에 따르는 트래픽도 어마어마할 것이 분명했다”고 설명한다. 벤처기업인 판도라TV의 고민 역시 바로 거기에 있다. 현재 다모임 같은 서비스는 튼튼한 자금력을 지닌 모기업을 발판으로 엄청난 트래픽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유튜브처럼 이용자의 개인블로그나 게시판으로 링크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인 판도라TV는 현재 링크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영상 광고를 무조건 늘릴 수도 없는 일이다. “현재는 징글 광고라고 해서 본 동영상이 나오기 전에 광고가 붙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건 사용자들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하다. 어떻게 하면 그런 방해없이 효과적으로 광고를 할 수 있을까. 지금 동영상 업계가 고민하는 게 바로 그거다.” 콘텐츠의 종류가 협소하다는 것도 업계의 고민 중 하나다. 인기 가수가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해외 엽기, 유머 동영상이 여전히 국내 동영상 사이트의 주요 콘텐츠다. 판도라TV쪽은 이용자들이 순수하게 직접 만들어낸 영상은 전체 콘텐츠 중 20% 정도일 것으로 가늠하고 있다. 다른 동영상 사이트들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막강한 사용자 수에 힘입은 다양한 콘텐츠를 자랑하는 유튜브와 경쟁하기에는 조금 빈곤한 편이다. 하지만 국내 사이트들은 유튜브를 비롯한 타 동영상 사이트와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러 가지 방도를 계획하고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현재 유튜브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 중”이라고 조심스럽게 밝혔고, 최근 벤처캐피털컨소시엄으로부터 60억원의 자금을 유치한 판도라TV는 네트워크를 증설하는 한편 유·무료 플랫폼만 제공하는 사용자 위주 동영상 포털을 구상 중이다.

2006 한국 호러 영화 무엇이 문제였나

올해 여름에도 9편(<어느날 갑자기-4주간의 공포> 시리즈의 에피소드들은 독립된 작품들로, 5부작 <코마>는 한 작품으로 친다면)의 한국 호러영화가 관객을 찾았다. 예년에 비해 많은 제작편수와 더불어 OCN과 SBS 등 TV 방송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2006 한국 호러영화를 진단하는 글을 영화평론가 듀나에게 부탁했다. 그는 슬래셔·좀비영화의 출연을 반가워하며서도 올해의 공포영화 중 무려 7편에서 사다코 클론이나 사다코와 가야코 하이브리드 귀신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 몇몇 영화들의 노골적인 표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의 글을 통해 올해 한국 공포영화를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올해 한국 호러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귀찮은 부분은 여전히 사다코와 가야코의 클론들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여름 시즌에 개봉되고 방영된 9편의 호러영화들(<어느날 갑자기-4주간의 공포> 시리즈의 에피소드들은 독립된 작품들로, 5부작 <코마>는 한 작품으로 친다) 중 7편이나 되는 작품들이 노골적인 사다코 클론이나 사다코와 가야코 하이브리드 귀신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특히 <아랑> <아파트> <네번째 층> <코마>는 표절혐의로 걸려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나는 진정으로 가도가와사에서 이 영화들을 고소하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도 숨이 트일 것이다. 사다코/가야코의 클론들을 언급하는 게 짜증나는 첫 번째 이유는 이런 걸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작가나 감독들도 이게 얼마나 진부한지 알고 있다. 영화를 만든 아무에게나 물어보라. 분명 상상력의 숨통을 끊어놓는 제작자들과 제작 환경 핑계를 댈 것이다. 그렇다면 제작자들은? 난 정말 모르겠다. 누군가가 여기서 분명한 책임을 밝혀주시길. 이 현상은 단순한 진부함을 떠나 집단적인 정신질환의 단계에 도달했다. 죽어라 사다코만 찍으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제작 환경 자체를 호러물 소재로 삼는다면 요새 나오는 영화들보다 더 무서울 지경이다. 사다코/가야코의 클론들에 대해 언급하는 게 짜증나는 두 번째 이유는 비평 면에서 그게 여전히 먹힌다는 데 있다. 그것도 꽤 정확하게. 영화 속에 관절염 걸린 긴 머리 여자 귀신들이 나오는 장면들을 스톱워치로 재서 그 길이만큼 감점하면 된다. 사다코/가야코 클론들은 영화의 질을 깎아먹을 뿐만 아니라 영화비평의 질도 같이 깎아먹는다. 호러 영화를 대하는 감독들의 안일한 자세 나는 구체적인 내용보다 표면적인 태도에 집착하는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경향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한명이지만, 이번 시즌 호러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만드는 사람들의 태도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들 중 몇편은 순전히 장르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무너졌다. 가장 먼저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은 <아랑>의 안상훈 감독이다. 영화가 나쁜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없다. 그게 만드는 사람 맘대로 되는 건가. 하지만 “지난해에 와서 공포영화들이 명확한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욕망, 질투, 동성애, 성장통 등의 소재들이 하나의 장르 속에서 몇년 사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반복되어왔다. 관객이 식상할 만도 해졌단 말이다”(<무비위크> 2006.3.27)라고 당당히 말해놓고 올해 나온 호러영화들 중 가장 진부한 사다코 영화를 생산한 것에 대해서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안상훈의 잘못은 두 가지다. 하나. 우선 장르에 대해 공부를 전혀 안 했다. 둘. 그러면서 장르를 얕잡아 봤다. 안상훈이 <아랑>이 독특한 시도라고 생각한 건 이 영화가 장르를 뒤집어엎는 것처럼 보이는 반전을 하나 담고 있기 때문인데, 그 반전의 성격은 개봉 이후 한국의 모든 호러영화들에 영향을 준 <장화, 홍련>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 진부함을 언급하기 위해 <마크 오브 더 뱀파이어>나 오리지널 <헌티드 힐> 같은 장르 고전들을 꺼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아이디어의 진부함이 나쁜가? 아니, 문제는 진부함을 신선함으로 착각하고 그를 보완할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호러를 위한 공포영화 이전에 사람을 먼저 담아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다른 장르영화들보다 당연히 우월하다는 오만한 착각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할까? <신데렐라>의 봉만대도 비슷하다. “난 무서움을 잘 탄다. 그 때문에 호러영화도 잘 안 본다. 하지만 그게 호러영화를 만드는 데 장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의 논리는 받아줄 만한 게 아니다. 무서움을 잘 탄다는 건 좋은 호러 예술가가 될 자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격이 먹히려면 일단 호러 장르에 친숙해야 한다. 술 한 방울 마신 경험도 없으면서 예민한 혀만 믿고 포도주 감식가가 될 수 있나? 과연 봉만대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자기 영화의 각본이 무슨 고전을 노골적으로 인용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었을까? <신데렐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없이 방황하는 영화다. 장르 내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주어진 각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만들어진 건 이야기는 믿을 수 없고 표현은 진부한 장르물이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가장 진부한 장르물을 만드는 사람들은 장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장르를 넘어서려는 사람들이다. 안상훈과 봉만대의 반대편엔 <아파트>의 안병기가 있다. 앞의 두 감독이 자기가 다루는 영역이 뭔지도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방황하는 장르 아마추어들이라면, 안병기는 한국 호러영화의 좁은 터에서 단단한 매너리즘으로 굳어진 프로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의 태도는 더 범죄에 가깝다. 그가 원작으로 삼은 강풀의 만화 <아파트>는 장점들이 분명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분명한 장점은 이 작품이 전형적인 호러물이 아니라는 데 있다. 강풀은 진부한 긴 머리 여자 유령 이야기를 당연하다는 듯 가볍게 품고 그보다 훨씬 넓은 캔버스에 다양한 장르들과 캐릭터들을 담아 입체적이고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만화는 뻔하디 뻔한 사다코 클론을 담으면서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색다른 스타일의 호러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건 드문 기회였고 그만큼이나 가치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안병기는 어떻게 했나? 원작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 아닌, 자기에게 맞는 부분만 도려내서 자기 평균에 딱 맞는 안병기 호러영화를 만들었다. 멀쩡한 원작 하나가 감독의 에고와 게으름에 희생된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다들 생각했겠지만, 도대체 <아파트>가 중간급 안병기 영화의 원작으로 낭비되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나? 슬래셔·좀비 영화, TV 시리즈의 출연은 그나마 반가운 일 올해는 고전적인 아시아 귀신영화에서 벗어난 두편의 장르영화들이 나왔다. 하나는 임대응의 80년대식 슬래셔영화 <스승의 은혜>이고 다른 하나는 <어느날 갑자기>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좀비영화 <죽음의 숲>이다. 둘 다 그렇게까지 잘 만든 영화들은 아니다. <스승의 은혜>는 지루하고 진부한 도입부와 할리우드 모 영화의 결말을 뻔뻔스럽게 차용한 반전 때문에 점수를 깎아먹었고 <죽음의 숲>은… 말을 말자. 그래도 임대응의 <스승의 은혜>에는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미덕이 있다. 한마디로 임대응은 호러영화를 만드는 자세가 됐다. 그는 호러영화라는 장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공부를 철저히 했으며, 능력도 없으면서 그를 넘어서려는 바보스러운 야심도 품지 않았다. 경험있는 호러영화팬들은 <스승의 은혜>를 보면 안심하게 된다. 이 영화는 정말로 호러팬들과 소통이 가능하다. 그들이 <페노미나>나 <오페라>와 같은 이탈리아 호러영화들의 직접적인 인용이라는 건 감점 요인이 아니다. 그런 영화들을 보고 공부했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고맙다. 게다가 학용품을 이용한 그의 살육장면은 그가 단순한 모방만 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임대응의 시도는 작고 수줍지만 알차다. 올 여름 시즌 호러영화의 가장 주목할 만한 시도는 텔레비전의 개입이다. OCN에서는 5부작 미니시리즈 <코마>를 방영했고, SBS에서는 CJ와 함께 유일한의 <어느날 갑자기> 단편들을 원작으로 삼은 두 번째 납량특집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저번과 달리 방영 이전에 극장 개봉을 추진했다. 언뜻 보기에 노골적인 납량특집극인 <어느날 갑자기> 시리즈보다는 <코마>쪽이 더 고급스럽고 예술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어느날 갑자기>가 조금 낫다. <2월29일>과 <죽음의 숲>은 민망할 정도로 못 만들었지만 <네 번째 층>과 는 사다코 클론의 습격에도 중간 또는 중간 이상의 질은 유지했다. <네번째 층>은 구닥다리 사다코 원혼 클리셰를 남발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영화이고, 는 <여고괴담>과 사다코의 그늘 밑에서도 기존 장르의 도구들을 비교적 효율적으로 활용한 영화이다. 경험없는 초보들에게 한달씩 중노동을 시켜서 반타작이나 이루어낸 것이다. 만약 그들에게 소재를 선택할 자유가 충분한 시간과 함께 주어졌다면 영화는 더 좋아졌을 것이다. 엄청난 실패였지만 <죽음의 숲>처럼 사다코에서 적극적으로 벗어나려는 시도도 하나 있었고. 나는 앞으로도 이 시리즈가 계속 유지되길 바란다. 꼭 유일한의 원작에 의지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네번째 층>은 원작과 그리 닮지도 않았으니. <코마>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극장용 장편영화와 텔레비전 미니시리즈의 장단점이 무엇인지는 알아야한다고. 한 시간 반짜리 영화를 간신히 채울 만한 소재로 5시간을 끊임없는 반복으로 채우는 건 좀 심했다. 각각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재미있는 구석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 시리즈가 5시간짜리 사다코 메들리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개성은 자유를 필요로 한다. <코마>가 과연 그런 자유를 감독들에게 주었는가? 결국은 아이디어의 문제 쫀쫀하게 들리지만 그래도 절대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주제가 있다. 왜 올해 호러영화들은 대사들이 이렇게 나쁜가? 특히 <죽음의 숲>과 <2월29일>은 총체적 재난이다. 처음엔 그럭저럭 괜찮게 시작했다가 중반 이후 허물어져버리는 <아파트>나 <네번째 층>도 만만치가 않다. 그냥 앞으로 좋은 대사, 작가들을 고용해 잘 쓰면 되는 게 아니냐고?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한국 호러영화들의 형편없는 대사들에는 좀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한국 영화계에서 호러물은 비현실의 영역이 현실세계에 침입할 수 있게 방치하는 거의 유일한 장르이다. 그리고 한국 호러영화의 나쁜 대사들은 등장인물들이 그 비현실성을 설명하려고 발버둥치는 순간에 발생한다. 특히 이들이 필수적인 정보를 나열하는 부분에서는 정말 심각해진다. 여기서부터는 ‘당신’이나 ‘그들’, ‘그’와 ‘그녀’와 같은 어색한 인칭대명사들이 날아다니고 대화는 뻣뻣한 문어체로 굳어져버린다. 바로 몇분 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던 김서형이 <네번째 층>의 후반부에서 뻣뻣한 대사들을 읊는 걸 보면 그냥 배우가 불쌍해진다. 자칭 전문가들인 의사, 과학잡지 기자, 보험회사 직원들의 대사들이 나쁜 것도 마찬가지. 한마디로 이들은 현실에서 벗어난 추상적인 정보를 다루는 방법에 서툴다. 해결책은? 늦게라도 배울 수밖에. 그것도 될 수 있는 한 빨리. 호러영화들은 앞으로 계속 만들어질 것이고 그보다 더 심한 정보 제공 수다가 필수적인 SF 장르도 언젠가는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도입될 수밖에 없을 테니. 역시 쫀쫀하게 들리지만 그래도 언급해야 하는 주제. 이 나라에서 호러영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모두 사회적 의무감에 휩싸이는 이유는 뭔가? 호러물을 만들려면 반드시 입시지옥이나 교사비리, 성형중독, 장애인 인권에 대해 한마디 해야 하는 건가? <아파트>에서 학대장면들은 가장 어색한 부분이었고 <신데렐라>에서 성형 이슈는 주제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런 이슈를 강요해야 할 이유는 도대체 뭔데? 호러영화라는 천박한 장르를 만드는 것에 대한 핑계인가? 그렇게 민망하다면 도대체 왜 처음부터 이 장르를 선택했는가? 지금까지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이 모든 건 단 하나로 귀결된다. 지금 한국땅에서 호러물을 만드는 사람들에겐 장르에 대한 애착과 지식이 처절할 정도로 부족하다. 좋은 호러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장르를 배우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그 안에서 숨쉬고 생각하라. 그 안에서 아이디어를 만들고 정 궁하면 훔쳐라. 단지 <장화, 홍련> <링> <주온>에서만 훔치지 말라는 말이다. 그 영화들이 불쌍하지도 않나? 호러 장르는 넓고 훔칠 영화들은 많다. 괜히 제작 환경을 트집 잡지도 말라. 사다코 클론들만 쓸데없이 반복해서 등장시킬 수밖에 없는 건 그를 대체하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아이디어가 처음부터 없다는 뜻 이상은 아니다. 적절한 곳에서 제대로 훔치기만 해도 이 정도로 구박당하지는 않는다. 부문별 최고와 최악상 누가누가 정말로 무서웠나 최고의 사다코 효과상: <아파트>의 귀신 침입신. 창문 밖을 지나가던 귀신이 마치 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프레임 안으로 쓱 들어온다. 거의 <벅스 버니> 만화를 연상시키는 근사한 호러 농담인데, 과연 안병기가 이게 농담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알았다면 뺐을 거다. 최고의 표절상: <스승의 은혜>의 호치키스신. 이 장면이 <오페라>의 표절인 건 <코마>가 <링>과 <검은 물 밑에서>의 표절인 것만큼 뻔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링> 아닌 다른 영화에서 훔치니까 표절이라도 신선해 보이지 않나? 최악의 표절상: <신데렐라>. ‘원작’이 된 조르주 프랑주의 <얼굴없는 눈>과 비교해보라. 딸에 대한 부모의 절절한 심정이 어떻게 이해 불가능한 감정 서커스로 바뀌었는지. 최고의 분장상: 에서 김리나의 말라붙어 터진 입술 분장. 설득력있는 동시에 배우의 미모를 증가시키기까지 한다! 최악의 분장상: <죽음의 숲>의 좀비들. 얼굴에만 흰색을 칠하면 어떻게 하나? 드러난 팔과 목에도 칠해야지! 최고의 악당상: <스승의 은혜>의 박여옥 선생. 중간에 이야기를 통째로 바꾸어버리는 억지 반전이 이야기를 망쳐놓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두 버전의 박여옥 선생이 모두 효과적인 악당들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악의 악당상: <코마>의 장서원 선생. 무례하고 불쾌하고 재수없고 무섭지도 않고 공감도 안 가며 결정적으로 너무 편하게 죽는다. 당장 내 텔레비전에서 나가! 가장 맘에 와닿는 주인공상: <네번째 층> 전반부의 민영은 최근 한국영화에 등장한 싱글맘/커리어우먼 캐릭터들 중 가장 설득력있다. 개심한 스컬리처럼 구는 후반장면들은 영 안 먹혔지만. 가장 덜떨어진 주인공상: <죽음의 숲>의 정아와 우진. 걔들은 주인공이 될 자격은커녕 영화 후반부까지 살 자격도 없다. 할리우드에서라면 둘 다 10분 만에 제이슨에게 목이 잘렸다. 올해의 예쁜 어린이상: <네번째 층>의 김유정과 <코마>의 배소연. 순전히 팬심으로 주는 상: <코마>의 <붉은 홍>. 알게 뭐람. 난 여전히 이영진의 팬이다.

눈물과 매직 아워, <마이애미 바이스>

도대체 왜 이사벨라는 섹스를 하다 말고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울음없는 눈물. 카메라는 이사벨라의 얼굴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고 우리는 그녀의 눈가에 젖은 글썽이는 눈망울을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정체불명의 중국인 쿠바 여인과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마약 밀거래상을 하고 있는 마이애미 형사 소니, 혹은 더 정확하게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공리와 점점 더 매혹적이 되어가는 콜린 파렐의 육신이 뒤엉키는 섹스를 보다 말고 문득 그 눈물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마이클 만의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이 장면과 만날 때 누구라도 어리둥절해진다. 이건 섹스를 놓고 지금 이사벨라와 소니 사이에 이미 있었던 그 어떤 사연의 비통한 선택을 다루려는 장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것이 첫 데이트이며, 그들 사이에 그 어떤 거래도 없었다. 열일곱살 때부터 마약 거래 비즈니스에 뛰어든 이사벨라에게 이게 첫 섹스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눈물은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 눈물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그것이 진짜라면 무엇이 갑자기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그 반대로 가짜라면 무엇을 속이기 위한 것일까? 그때 우리는 이사벨라의 눈물을 글썽이는 그 눈망울 클로즈업에서 소니의 리액션 숏이 없다는 것을 환기해야 한다. 그 눈물은 전적으로 그녀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그녀 자신의 무엇을 속이기 위한 것일까? 혹은 그녀는 무엇에 속은 것일까? 물론 영화에서 갑작스러운 눈물을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그냥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만 열거해도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 로메르의 <보름달이 뜨는 밤>, 차이밍량의 <애정만세>, 키에슬로프스키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홍상수의 <강원도의 힘>. 하지만 이건 마이클 만의 영화다. 남자들만의 하드보일드 혹은 할리우드 장르영화 안의 세계. <마이애미 바이스>는 잘 알려진 마이클 만의 세계를 거의 완전하게 스스로 카피하는 영화다. 남자들은 우정을 믿고 있으며, 소니와 리코는 한순간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네온사인으로 가득 찬 야경은 황홀하고, 총격전 장면들은 거의 시가전에 가깝다. 특히 액션장면들에서 디온 비브의 HD 바이퍼 카메라는 위력을 발휘한다(<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씨네21> 549호 ‘로맨스는 나의 것’ 박찬욱 인터뷰에서 소개한 그 카메라. 하지만 동일 기종인지에 대해서 나는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마이애미 바이스>에는 마이클 만의 이전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어떤 잉여가 있다. 이를테면 이사벨라의 눈물. 나는 그걸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녀 자신을 위한 이사벨라의 눈물 첫 번째 판본은 유치하지만 오직 이 장면만을 놓고 하는 설명이다. 이 눈물은 육체적인 즐거움이 주는 기쁨의 표현이다. 그래서 이사벨라는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섹스를 한 것이며, 이 만족이 그녀에게 눈물을 선사한 것이다. 이 장면은 그렇게 설명할 만한 이유가 있다. 뒤이어 이어지는 이사벨라와 소니의 샤워 룸에서 이루어지는 두 번째 섹스는 소니의 파트너인 리코(제이미 폭스)와 그의 애인이자 같은 팀 소속인 트루디와의 샤워 룸에서의 섹스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서로 알지 못하는 두 여자는 완전하게 동일한 제스처를 취한다. 그때 이 두 장면의 공통점은 서로 다른 두 섹스가 끝난 다음 만족스러운 느낌이다. 둘 다 섹스가 끝난 다음 신기하게도 일 이야기를 한다. 섹스가 끝난 다음 트루디는 리코에게 자기에게 기대어 편히 자라고 말한다. 섹스가 끝난 다음 소니는 이사벨라에게 새로운 계약 조건을 제시한다. 하나는 위로하고(트루디), 다른 하나는 새로운 계약을 받아들인다(이사벨라). (유사한) 상황의 반복은 <마이애미 바이스>의 연출 플랜 중 하나다. 유사한 상황이 자꾸만 반복되고, 그 안에 매번 다른 등장인물이 순서를 바꾸어 등장하면서 어떤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거기서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다룬다. 아니, 마이클 만의 영화에 어울리게 말한다면 어떻게 견디는지를 본다. 그때 이 눈물은 이사벨라 자신이 트루디와 같은 기쁨을 누리는 것이 과분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동일한 섹스에서 트루디는 웃지만 이사벨라는 눈물을 글썽인다. 하지만 이 눈물은 거짓이다. 혹은 아주 잠깐의 진실이다. 이사벨라는 소니가 제시하는 새로운 계약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와 흥정한다. 그녀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비즈니스 우먼.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보스이자 정부인 헤수스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 섹스를 그의 침대에서 ‘보고’한다. 첫 번째 가정에 기댄 두 번째 판본. 그런데 트루디와 이사벨라 사이의 이 이상한 텔레파시는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되풀이된다. 사실상 둘 사이는 아무 관계도 아니다. 그런데 소니와 작별하는 이사벨라와 병원에서 코마 상태에서 깨어나는 트루디 사이에서 갑자기 교차편집이 이루어진다. 한쪽은 떠나가고, 다른 한쪽은 깨어난다. 단지 이걸 이야기의 경제학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모든 문제의 해결, 하여튼 해피엔딩. 하지만 그렇게 유치하게? 이때 둘 사이의 (영화적) 텔레파시가 성립하는 것은 그녀들이 소니와 리코라는 두 남자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마이클 만의 관심은 (적어도 지난 10년 동안) 두 남자 사이의 관계였다(<히트>와 <콜래트럴>). 또는 한 남자의 내면이다(<인사이더> <알리>). 여기서 사람이 아니라 남자라고 쓴 사실이 중요하다. 마이클 만은 세상이 남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말하자면 그 점이 페미니스트들을 역겹게 만들 것이다. 혹은 마이클 만이 아무리 세련된 척해도 그만큼 그를 고색창연하게 만든다). 그런데 <마이애미 바이스>는 리코와 소니의 내면을 조금도 따라가지 않는다. 그건 <히트>나 <콜래트럴>을 생각하면 정말 이상하게 보인다. 마이클 만은 두 남자를 주인공으로 했을 때 그 주인공이 둘이라는 것에 대해 항상 한쪽이 다른 한쪽의 내면의 외재화라는 형식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기서 이 둘은 그러지 않는다. 소니와 리코는 파트너를 넘어서서 서로가 서로의 단점을 보충하면서 완벽한 하나의 짝을 이룬다. 그때 두 여자가 두 사람의 외재화라면 어떻겠는가? 이를테면 트루디가 함정에 빠진 다음에 구원받는 순간 폭탄이 터져 그녀는 중화상을 입는다. 병원에 실려간 그녀를 보면서 리코가 말한다. “정말 불공평해, 이런 허접한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하다니.” 그러자 소니가 대답한다. “하지만 그녀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걸. 나는 지금 장난하는 게 아니야. 이 일은 자기만큼 중요해.” 하지만 잠시 뒤 그 말을 소니 자신의 입으로 반복한다. 호세 예로와 마지막 대결을 향해 달려갈 때 리코는 소니에게 말한다. “이제 무대에서 내려와서 마지막 연기를 끝낼 시간이야, 준비됐어?” 그러자 소니는 대답한다. “아니,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리코에게 소니가 덧붙인다. “난 지금 장난하는 게 아니야”(그런데 이 대사는 “난 지금 연기하는 게 아니야”로 번역될 수도 있다). 소니는 소니이자 리코의 트루디이고, 트루디는 리코에게 트루디이자 소니이다. 그때 이사벨라의 알 수 없는 이 눈물은 소니에게 리코에 대한 트루디의 자리에 갈 수 없는 데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장르의 컨벤션이 흘리는 눈물. 그러므로 이 눈물은 전적으로 영화를 보는 당신을 위한 눈물이다. 혹은 마이클 만의 미장센이다. 소니-호세의 관계에 대한 이사벨라의 불안의 눈물 세 번째 판본. 그런데 이 눈물이 거짓을 알고 있는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나는 이사벨라가 아니라 눈물이 안다고 썼다. 그러니까 이사벨라는 아직 그것을 모르지만 이 눈물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하나의 메시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말하자면 이 눈물을 불안의 판본으로 읽는 것이다. 이때 내가 말하는 불안은 주어진 현실과 그것을 구성하는 상상적 통일성 사이에서 그 둘이 완전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데서 생겨나는 어떤 붕괴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다. 라캉의 유명한 명제. “불안은 기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사벨라는 지금 자기에게 다가온 이 섹스가 의미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소니는 그녀를 속여서 정보를 훔치거나 아니면 정말 그녀에게 빠진 것이다. 혹은 그 둘 다다. <마이애미 바이스>가 흥미진진해지는 것은 언더 커버로 임무를 수행하는 소니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혼란을 느낄 때(FBI 국장 후지마는 소니에게 경고한다. “위장수사를 하려면 반쯤 범죄자가 되어야 하지”) 그것이 소니가 아니라 이사벨라의 눈물로 나타날 때다. 그때부터 이야기는 완전히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한다. 소니가 이사벨라를 이용하는 것인지 사랑하는 것인지 모호해지기 시작하자 혼란에 빠져드는 것은 소니의 마이애미 수사팀이 아니라 반대로 일종의 도미노처럼 이사벨라를 시작으로 연쇄적으로 마약 조직 전체가 감정의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더 이상한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이사벨라의 눈물에 대한 대답은 소니가 아니라 호세 예로가 한다. 호세 예로? 이 거대한 마약 밀매조직의 딜러이며, 보스 헤수스의 마약을 배달하는 중간 보스가? 그 자신의 말을 빌리면 ‘미친 돼지’라는 별명을 가진 냉혹하고 잔인한 인간. 그는 트루디의 유괴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냥 폭탄으로 트랙터 전체를 날려버린다. 그런데 그는 이사벨라가 자신의 디스코 클럽에서 소니와 키스하면서 춤추는 모습을 모니터로 훔쳐보면서 이상하게도 마치 감상에 빠진 것처럼 눈물을 글썽인다. 왜 눈물을 글썽이는 것일까? 넘볼 수 없는 보스의 여자 이사벨라를 흠모해왔다면 이번이야말로 그녀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기뻐해야 할 이 순간에 왜 그는 눈가를 적시는 것일까? 더 이상한 점. 호세의 디스코에서 이런 모습을 보일 때 호세가 훔쳐볼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사벨라는 왜 보란 듯이 여기서 그런 장면을 연출하는 것일까? 이 모니터 화면에서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사실 소니이다. 혹은 이 속고 속이는 수사대와 마약 밀매조직 사이에서 소니는 그 미션을 속이는 데 성공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도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말하자면 이 언더 커버의 이야기가 하나의 무대라면 (리코의 말, “우리는 무대에서 이제 내려와야 해”) 그 무대 위에서 이야기는 상투적인 수사극 액션 장르를 진행하면서 그 이야기에 얼룩진 감정이 일으키는 연쇄 고리의 도미노가 함께 진행된다. 호세 예로는 이 화면의 녹화를 보스 헤수스에게 보여주고 전리품으로 그녀를 얻는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헤수스의 모습은 모니터 화면을 보는 그의 등 뒤에 선 카메라다. 이사벨라가 소니와 춤을 추는 모습을 보는 헤수스의 표정을 보여주는 리액션 숏은 없다. 이제 불안은 일종의 연쇄효과를 일으키면서 이야기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가기 시작한다. 균형이 무너지자 동요하기 시작하는 것은 선이 아니라 악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혼란의 절정은 마지막 총격전이다. 여기서 호세 예로는 난처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가 만일 이사벨라를 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 마지막 거래의 장소에 그녀를 데리고 나타나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호세는 이사벨라를 소니 앞에 내보이면서 그에게 자랑하고, 그에게 고통을 주고 싶어한다. 마치 이사벨라를 취한 그의 음모가 그녀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소니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할 때 호세의 ‘진짜’ 눈물이 가진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진다. 자신이 마음속으로부터 사랑하는 그녀를 소니가 빼앗아갔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사벨라가 헤수스의 정부였을 때 왜 호세는 단 한번도 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는가? 그때 나는 다시 한번 호세와 소니가 처음 만났던 장면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거래를 위해 국경지대의 도시 치우다 델 에스테에서 만나 거래를 협상한다. 거래를 진행하던 호세가 리코에게 말한다. “너만 와, 왜냐하면 저놈(소니)은 쌍통이 싫거든.” 그러자 소니가 의미심장한 대사를 한다. “원하는 게 섹스 파트너야, 사업 파트너야?” 만일 이 말의 반대가 진실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호세가 진정 원한 건 이사벨라가 아니라 소니라면, 그래서 이 이야기의 두 남자의 핵심이 소니와 리코가 아니라 소니와 호세라면 우리는 너무 위험한 가정을 하는 것일까? 그걸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호세는 거래를 하면서 내내 소니가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를테면 첫 거래가 끝난 다음 보스 헤수스에게 보고한다. “놈들이 수상해요.” 그러자 보스 헤수스가 묻는다. “뒷조사를 해보지 않았나? 특별한 게 없잖아.” 그러나 호세는 중얼거리듯 대답한다. “일을 너무 잘해요.” 이 이상한 대답. 여기서 환기하고 싶은 것은 마이클 만에게 두 남자가 등장했을 때 그 두 사람은 항상 반대편에 서서 서로에게 매혹된 두 남자였다는 사실이다. <히트>와 <콜래트럴>. 그러므로 나는 호세를 그 커다란 총으로 쏴죽이는 사람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질투에 찬) 리코인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이사벨라가 단지 이 이야기의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녀의 가족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다음 오히려 더 정체를 알 수 없는 중국인 쿠바 여자 이사벨라가 그저 우리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얼룩에 불과하다면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그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던져진 그녀 자신을 위한 불안의 징후가 아니라면 다른 무엇이겠는가? 분리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소외의 체현으로서의 눈물. 이사벨라의 눈물 같은 소니의 어두운 밤의 시간 나는 같은 이야기를 소니의 자리에 가서 반복해볼 생각이다. 앞의 이야기가 이사벨라의 판본이라면 이번에는 소니의 판본이다. 마이클 만의 <마이애미 바이스>를 하드보일드 디지털 액션영화라고 설명하는 것은 너무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마이클 만이 왜 돈 존슨이 나온 1980년대 텔레비전 시리즈 <마이애미 바이스>를 지금 다시 영화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아무 설명도 못하게 된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옛날 시리즈를 다시 볼 필요는 전혀 없다. 이를테면 영화에는 티나 터너의 노래도 나오지 않고, 얀 해머의 테마도 나오지 않으며, 필 콜린스의 음악도 들을 수 없다. 여기에는 어떤 추억도 없다. 게다가 마이애미의 멋진 풍광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건 <콜래트럴>과도 다르다. 거의 왕가위의 홍콩을 연상케 하는 <콜래트럴>의 LA 밤풍경 같은 장면은 여기서 볼 수 없다. 마이애미는 대부분 실내에서 찍혔거나 아니면 시내 외곽이거나 혹은 부둣가뿐이다. 오히려 황홀한 풍경은 쿠바의 아바나나 파라과이의 정글 혹은 비행기가 날고 있는 하늘이나 바닷가 한가운데에서 시속 150km로 달리는 쾌속정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도대체 왜 <마이애미 바이스>를 리메이크한 거야, 라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 둘 사이가 완전히 무관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마이클 만은 <마이애미 바이스>의 기본 설정을 그대로 다시 가져온다. 여전히 언더 커버에 관한 이야기이며, 소니와 리코는 한짝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마이클 만은 그 시리즈를 영화로 만들면서 미학적 재해석의 핵심을 HD 바이퍼 카메라에 기대고 있다. 그는 이 텔레비전 시리즈를 텔레비전 뉴스처럼 찍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라고 묻는다(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래서 멋진 총격전 대신 여기서 전개되는 것은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핸드헬드의 뉴스 라이브 중계에 가까운 촬영이다. 하지만 마이클 만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서 시작한다고 말하는 편이 맞다. 그는 <마이애미 바이스>를 뉴스처럼 찍은 다음 거기서 뉴스 안의 언더 커버로 매일 총격전과 임무 속에 살아가는 남자들의 세계를 다시 장르 안으로 끌어들인다. 마이클 만의 반문. 그런데 그들이 임무 속에서 어떤 감정도 갖지 않는단 말이야? 뉴스에 빠져 있는 감정의 세계. 말하자면 마이클 만은 여기서 ‘뉴스 안의 시네마’를 찾는다. 그가 여기서 하는 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하고 있는 것의 정확히 반대이다. 혹은 그것이 필름과 디지털이 오늘날 시네마에서 하고 있는 서로의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마이애미 바이스>를 <히트>로 환원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이걸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두명의 마이클 만이 있다. 그 경계는 물론 <콜래트럴>이다. 말하자면 아날로그 마이클 만과 디지털 마이클 만. 그건 단지 그 이전 영화가 필름으로 작업하고, <콜래트럴> ‘이후’ HD 카메라를 쓴다는 문제가 아니다. 이를테면 <히트>와 <마이애미 바이스>에는 거의 유사한 공간을 다룬 장면이 있다. <히트>에서 바다가 보이는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방에서 닐 맥컬리(로버트 드 니로)와 크리스(발 킬머)가 서로 대화하는 장면은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마찬가지로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방에서 소니와 리코가 그의 팀과 함께 마약중개상 니콜라스를 만나는 장면과 같은 방에 가서 찍은 것 같은 거의 동일한 방이다. 방 안에 인물들이 있고, 바깥에 바다가 보인다. 그때 전면에 보이는 전체가 유리이기 때문에 바다는 그들의 풍경이 된다. <히트>는 이 장면을 텔레포트 망원렌즈로 찍었다. 그래서 멀리 보이는 바다와 거기 소파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 거의 붙어 보인다. 그러면서 그들을 무심코 바라본다. 그때 그들은 저 바다가 밀어내는 파도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지금 막 모래사장 끝의 이 건물에 닿은 그들은 세상에서 파도처럼 그렇게 일순간의 어느 시간에 사라질 운명이다. <히트>는 어딘지 에드워드 호퍼와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이 유리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니콜라스의 방을 <마이애미 바이스>는 재빨리 HD 바이퍼 카메라로 쫓아가면서 인물을 바라보는 대신 인물 사이를 숏으로 나눈다. 이때 이 장면의 핵심은 단지 공간과 인물의 분리가 아니다. 혹은 인물과 인물 사이의 분리가 아니다. 이 장면에서 마이클 만은 바다에 관심이 없다. 이 신의 결정적인 얼룩은 팀 전체가 니콜라스에게 마약 밀거래 중간 위장 접선을 위한 소개를 협박하고 있는 동안 소니가 그냥 그 대화에 관심없다는 듯이 무심코 하늘을 볼 때의 인서트 숏이다. 이 인서트는 거의 느닷없게 보인다. 왜냐하면 그 응시는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숏은 대화에서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그때 이 인서트로 보는 하늘은 매직 아워의 시간이다. 이제 막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곧 밀려들 어둠의 순간. 이때 이 신은 저물어가는 시간의 순간을 향해 진행된다. 영화에서 한신 내에서 롱 테이크는커녕 대화를 따라 숏을 나눠가면서 시간의 흐름에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영화라는 메커니즘의 경제학에서 일종의 자살행위이다. 그런데 마이클 만은 이 순간을 보여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때 이 신에서 이 짧은 인서트, 매직 아워를 보는 소니의 응시를 놓치면 안 된다. 그런 다음 영화는 소니의 어두운 밤의 시간 안으로 들어간다. 물론 그 자신은 그의 내면에 저물어가는 어둠의 이 매직 아워를 알지 못한다. 그걸 알고 있는 것은 소니 자신이 아니라 정반대로 그걸 보여주는 무심한 하늘처럼 보인다. 마이클 만의 영화는 그 모든 운명을 알고 그것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어떤 예지(deus ex machina)로 항상 넘쳐난다. 이 짧은 인서트는 이사벨라의 눈물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혹은 눈물과 매직 아워는 그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호명이다. 누구의? 그들이 떨어진 허구로 가득 찬 속임수의 세계라는 밤의 호명. 이 호명을 거절하고 용기를 내는 것은 이사벨라다. 이사벨라가 총격전의 와중에 경찰 배지를 단 소니를 향해 사방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무시하고 걸어오면서 “당신, 누구야?”라고 반복해서 물을 때 이상하게도 거기에 시적인 울림이 있는 것은 그것이 장르의 매직을 깨트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이 긴 밤이 끝나지 않았다. 상상적 인연을 모두 끊은 영화의 엔딩 그들이 깨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오른 속임수의 무대라는 세계의 밤을 끝내는 우주의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이제 그들 각자의 연기는 모두 끝이 났고, 호세는 죽었으며, 헤수스가 그의 은거지에서 사라졌을 때,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때 소니와 이사벨라는 작별의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작별은 다시 한번 매직 아워에서 이루어진다. 다만 소니가 그때 자기도 모르게 언뜻 본 인서트와의 차이점은 이것이 이제 막 낮이 시작되려는 새벽의 매직 아워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비로소 알게 된다. 이사벨라는 말한다. “인생이 너무 짧다는 말을 했죠?” 소니는 대답한다. “행운은 우리 몫이 아니었소.” 그러니까 <마이애미 바이스>는 저녁에 시작해서 아침에 끝나는 영화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들 모두가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어둠 속의 무대. 속임수로 가득 찬 밤의 장르. 곧 뜨게 될 태양. 멀리서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 트루디가 납치되었을 때 텔레비전 일기예보에선 태풍 어네스토가 곧 마이애미를 들이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밤은 달콤했지만, 이제 그들을 기다리는 낮은 가혹할 것이다. 가면을 벗었을 때 그들은 더이상 서로 다른 가문의 싸움에 말려든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다. 그들은 밤으로부터 재빨리 퇴각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때 그들은 자신들의 상상적 인연을 모두 끊는 것이다. 하지만 장르영화에서 그 인연을 끊었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 어쩔 수 없는 추신이 따른다. 혹은 마지막 이상한 엔딩. <마이애미 바이스>를 보고 난 다음 이 영화의 마지막의 맨 마지막 엔딩 숏이 무엇이었는지를 놓고 내기를 벌이고 싶은 충동을 이기기 어렵다. 이 블록버스터는 엉뚱한 엔딩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이사벨라는 떠나간다. 그걸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 소니는 그 장소를 떠나간다. 그런 다음 그걸 바라보는 이사벨라의 빅 클로즈업이 있다. 나는 어쩌자고 소니를 떠나보내는지 어리둥절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엔딩 숏이 이사벨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영화는 갑자기 주인공을 뒤바꿔치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 숏은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병원에 들어가는 소니의 너무나도 평범한, 그게 정말 너무나도 평범해서 영화 사상 가장 시시한 엔딩 숏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평범한 소니의 뒷모습의 롱 숏이 마지막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리고 나면 영화 제목 <마이애미 바이스>가 뜨고 거의 세곡을 연달아 들려주는 기나긴 엔딩 크레딧이 기다리고 있다. 마이클 만은 이 엔딩에서 무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끝나지 않았다면 그건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장르영화에서 상상적 인연을 끊었을 때 기다리는 것은 속편의 유혹이다. 자, 여기서 두 번째 내기를 걸어도 좋다. 이 엔딩은 마이클 만이 이미 예정된 <마이애미 바이스2>에 대한 불편한 심기일지도 모른다(물론 아직 이 영화가 시리즈가 된다는 기사는 읽은 적이 없다). 어쩌면 <마이애미 바이스>는 21세기의 <리쎌 웨폰>이 될지도 모른다. 혹은 지나치게 하이테크한 <미션 임파서블>에 대항하는 라이브 액션의 시리즈를 자처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마이클 만의 <마이애미 바이스>는 이 연작에서 <미션 임파서블>에서 브라이언 드 팔마가 차지했던 그 자리를 얻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이제 더 할 어떤 일이 남았을까?

비보이의 세계

홍대 거리공연, 댄스 배틀대회, 뮤지컬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로 본 비보이의 세계 2002년 여름 대한민국 전체가 월드컵 4강 신화의 열기로 들끓고 있을 때, 독일에선 한국의 비보이(B-Boy) 열풍이 일어났다. 비보이 크루 익스프레션이 한국팀으로는 최초로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 이하 보티)에서 우승한 것. 보티(BOTY)는 스트리트 댄스 대회의 월드컵이라 불리는 세계 최대의 비보이 축제다. 4월부터 각 지역에서 예선이 진행되고 여기서 선발된 팀이 9월 독일 본선대회에 진출한다. 한국은 2001년 비주얼쇼크가 이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 뒤부터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들의 대회 영상은 이후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화제가 됐고, 영국의 UK비보이챔피언십과 미국의 프리스타일 세션 등 세계 4대 스트리트 댄스 대회에서의 한국팀의 승전보도 연이어 들려왔다. “10회가 넘는 엘보 스핀”, “신기에 가까운 관절꺾기” 등, 네티즌의 열광은 주로 시각적인 충격에서 시작됐다. 더불어 세계대회에서 휘날리던 태극기와 한국팀을 응원하던 외국인들의 함성 소리. 이 낯선 광경은 한국의 네티즌을 비보이란 이름의 새로운 신화 속으로 몰고 갔다. 비보이에 대한 호기심보다 먼저 작동한 애국심. 2002년 월드컵의 광풍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비보이 열풍도 낯설게 시작됐다.

비보이 열풍의 낯선 시작 현재 우리나라에는 비보이 크루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익스프레션, 겜블러, 고릴라크루, 드리프터즈, 리버스, 라스트포원 등 세계대회 출전과 수상으로 유명해진 크루만 꼽아도 10팀이 넘는다. 대학의 동아리는 물론 지방의 서클도 활성화되어 있으며 인터넷상의 커뮤니티에서 운영하는 스쿨도 많다. CF와 뮤직비디오에 비보이들이 모델로 등장하고, M.NET의 <브레이크>, MBC의 <오버 더 레인보우> 등 이들의 삶을 소재로 한 드라마도 제작됐다. 세계대회에서의 낭보와 갑작스런 붐. 일반 국민에게 비보이는 일종의 신기루 같았다. 지하철역 내에서 바닥을 쓸고 다니던 시끄러운 놈들이 어느새 ‘문화’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다시 한번 낯선 시작. 하지만 그들은 비보이 문화가 결코 갑작스레 나타난 유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준다. “정말 독한 애들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일까? 하나의 동작을 성공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지독하게 연습한다.” 10년 넘게 춤을 추고 있는 고릴라크루의 김우성씨는 현재 한국의 비보이들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에 대해 자신들의 연습기를 답변으로 제시한다. “예전에는 연습실이 없었다. 큰 거울이 없어서 혼자 연습할 때는 장롱을 보고 한다. 그게 조금 비치지 않나. 친구들이랑 같이 연습할 때는 지하철역에서 했다. 지금에야 이렇게 공연도 하지만, 그때는 힘들었다. 사실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있었고. 하지만 그냥 친구들과 춤출 수 있는 게 즐거웠던 것 같다.” 그는 윈드밀 동작을 성공하기 위해 1년을 연습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많은 실패로 이뤄지는 하나의 무브. 고릴라크루의 한상민씨는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 회전을 하는 나인틴이라는 기술이 있다. 3바퀴를 성공하려고 무지 노력했다. 그런데 어쩌다 무대에서 갑자기 10바퀴 이상 돌아갈 때가 있다. 우린 이걸 이른바 ‘꽂혔다’고 한다. 그렇게 실력이 조금씩 늘어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성공과 실패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 이 미지의 공간에서 한국의 비보이 문화는 태어난 셈이다.

거리 공연의 생동감을 무대 위로~ 서울의 홍익대 근처, 2005년 12월부터 한 비보이전용극장에선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란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 우연히 비보잉을 본 발레리나가 비보이와 사랑에 빠진다는 줄거리. 이 공연은 비보잉을 본격적인 무대 공연으로 옮겨왔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공연은 매우 역동적이다. 발레리나가 등장하는 부분은 한순간 휴식처럼 느껴질 정도. 무대 위와 아래를 오가며 펼쳐지던 기묘한 광경들은 어느새 음악과 함께 흥겨운 리듬을 연출해내고, 두명의 비보이가 함께 호흡을 맞추는 루틴 동작은 매우 활기찬 조화를 만들어낸다. 관객의 호응은 추임새다. 공연의 연출을 맡은 문주철 감독은 “비보이 문화에 대한 경영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문화를 좀더 대중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라고 밝혔다. <비보이를…>이 보여주는 것은 단지 비보잉뿐만이 아니다. 디제이(음악을 틀고, 스크래치를 통해 음악을 재편집하는 사람), MC(랩을 비롯 리듬에 따라 말을 하는 사람), 그래피티(벽 등에 하는 낙서) 등 힙합의 모든 요소가 총동원된다. 흔히 비보이를 위의 세 가지와 함께 힙합의 4대 요소로 꼽는데 여기서의 비보이는 좀더 넓은 의미의 스트리트 댄서를 가리킨다. 그래서 <비보이를…>에는 비보이뿐만 아니라 스탠딩 댄서도 함께 출연한다. 실제로 이 공연에 출연하고 있는 고릴라크루는 비보잉을 하는 에이블크루팀과 스탠딩 댄스를 하는 브루클린 몽키즈팀이 함께 있는 프리스타일팀이다. 이에 대해 문주철 감독은 “힙합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관객 중에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디제잉이나 비트박스를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더라. 하지만 그게 힙합 문화고 비보이 문화인 걸 어떻게 하겠냐. 단순히 비보이를 데려다가 공연을 만드는 게 아니라면 이들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춤과 음악, 비보이의 추모 방식 비보잉은 거리에서 시작된 문화다. 1970년대 뉴욕 할렘가를 중심으로 흑인과 히스패닉계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추던 춤이 비보잉의 시작이다. 음악의 간주 부분(Break)에 플로어에서 추는 춤. 말 그대로 브레이크의 B를 따서 비보잉이라고 한다. 나이키, 윈드밀 등이 여기에 속하는 동작. 거리에서 생겨났다는 의미에서 어반 스트리트 컬처(Urban Street Culture)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비보잉은 ‘홈 텔레비전 문화’에 더 가깝다. 많은 댄서들이 주로 TV를 보고 춤을 따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엠시 해머와 바비 브라운에서부터 나미와 붐붐과 서태지와 아이들까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비보잉은 TV 무대에서 노래의 간주 부분에 잠깐씩 보여지는 춤동작일 뿐이었다. 김우성씨도 “한 동작을 따기 위해 아는 형에게 자료(뮤직비디오)를 부탁해서 간신히 보며 춤을 췄다”고 회상했다. 한국에 비보이 문화가 좀더 확산될 수 있었던 건 그룹 피플크루의 등장이다. 이후에 가수로 데뷔하기도 한 이들은 그전부터 비보잉 비디오를 발매했다. 자료에 굶주렸던 비보이들은 이들의 영상을 보며 연습했고, 이후 홍익대와 이태원 등지를 중심으로 거리공연 문화가 생겨났다. 그리고 백화점 등의 행사공연. 한국에서 아직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비보잉의 공연 양식은 각종 이벤트와 행사의 축하공연이다. 8월12일 저녁, 홍익대 앞 놀이터에선 얼마 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비보이 양파의 추모공연이 열렸다. 고릴라크루, 리버스, 익스트림, T.I.P, 라스트포원, 갬블러 등 국내 유명 크루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공연을 진행한 디제이 고는 “이런 공연은 슬픈 일이기도 해서 마음이 좋지 않다. 여기 오신 분들 모두 세상을 떠난 양파에 대한 마음으로 함께 공연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도 참가했던 한상민씨는 “당연히 가야 하는 거다. 비보이들은 팀이 달라도 다 가족 같다. 거리에서 공연하며 마주치기도 하고. 예전에 우리 팀 리더였던 전나마 형도 지난해에 부산국제영화제 축하공연을 하러 가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도 우리가 함께 추모공연을 했다”며 이날 공연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이들의 추모 방식은 매우 자유로워 보였다. 함께 뜻을 맞추고, 마음껏 춤을 추는 자리. 이날 놀이터에는 본 공연이 진행되는 옆자리에 작게 원을 만들고 춤을 추는 비보이들도 보였고, 무대 뒤에서 리듬에 맞춰 혼자서 춤을 추는 비보이도 있었다. 육체가 만들어내는 공간의 역동성이 놀이터의 밤을 묘한 함성 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승패가 없는 배틀 현장 배틀의 현장. 8월20일 찾아간 홍대 근처의 클럽V에선 월간배틀이 열리고 있었다. 인터넷 모 댄스 커뮤니티에서 주최하는 댄스 배틀대회. 배틀은 말 그대로 누가 더 춤을 잘 추는지 겨루는 대회다. 댄서와 디제이, 엠시가 모두 출연하며, 심사위원이 댄서의 실력을 가늠한다. 80년대 미국에선 지역 세력간의 다툼이 배틀의 형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공격적인 무브와 상대방의 약을 올리는 래핑. 이는 집회 현장에서 경찰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세계 4대 비보이 대회도 배틀의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여기엔 비보잉 배틀뿐 아니라 팝핀 배틀, 라킹 배틀, 혹은 이들을 혼합한 프리스타일 배틀 등 다양한 형식이 있다. 이날의 종목은 팝핀과 라킹. 배틀에는 총 150여명의 댄서가 참가했고, 예선을 통과한 8명이 1대1로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클럽의 무대와 플로어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열기. 냉방기는 이미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무승부와 재심. 원래 2시부터 4시까지 예정됐던 예선은 계속 지연됐다. “무승부는 자주 있는 일이다. 사실 배틀이란 게 절대적인 실력을 가리는 게 아니다. 그날 컨디션이나 분위기에 따라 승패가 많이 좌우된다. 또 디제이가 트는 음악은 무작위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아는 음악이 나오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예선 탈락한 사람이 다음엔 우승을 할 수도 있고, 오늘 우승한 사람이 다음엔 예선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거다.” 이번 배틀을 기획한 정현섭씨는 배틀의 의미는 승패에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6시가 넘어 시작된 본선. 8명의 댄서들이 1대1로 대결을 펼쳤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먼저 시작한다. 음악과 함께 몸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무언가 “팝!”하고 터지는 느낌. 그야말로 팝핀. “리듬에 맞춰 온몸에 팝이 한번에 들어가야 해요. 몸이 팽창하는 느낌이죠.”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한 참가자는 팝핀의 느낌을 팽창이란 말로 설명했고, 정현섭씨는 이를 다시 “몸에 물방울이 떨어졌을 때, 튕겨나가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1분간 춤을 추던 댄서는 상대방에게 차례를 넘긴다. 상대방을 가리키는 손짓, 혹은 허공으로 무언가를 불어넣는 동작. 상대는 다시 허공 속에서 바통을 이어받는 동작을 취한다. 그리고 다시 팝핀. 이렇게 두번씩 춤을 추고 즉석에서 심사가 발표된다. “심사기준이요? 여러분도 이제 다 알지 않나요? 저는 그냥 여러분 곁에 서겠습니다.” 심사위원의 말처럼 이날 배틀의 결과는 관객의 함성으로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세계대회에서도 심사위원의 결정에 관객의 반대 함성이 터져나오면 재대결을 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배틀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 심사위원보다 더 정확한 관객. 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만들어낸 시끌벅적한 조화. 어떤 의미에서 배틀은 춤을 매개로 재현되는 민주주의의 이상향이 아닐까.

대한민국의 새로운 무브를 꿈꾸며 한국관광공사는 올 상반기부터 한국의 비보이 문화가 제2의 한류가 될 수 있다며 비보이를 활용한 한류 마케팅을 하고 있다. 실제로 <비보이를…>은 이미 여러 여행사의 관광 코스로 지정되어 있고, 외국인 관람객도 평균 20%를 넘는다. 이 공연의 홍보 담당자인 SJ보이즈의 곽서연 대리는 <비보이를…>의 브로드웨이 진출에 대해서도 낙관한다고 말한다. 이 공연의 성공을 계기로 국내에선 비보이를 소재로 한 다른 공연들도 기획되고 있다. 세계대회에서의 선전도 계속된다. 이미 유럽에는 한국의 비보이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생겨났고, 9월10일 한국에서 개최될 지역예선에도 10팀 정도가 참가할 예정이다. 비보이 자신들도 실질적인 생활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힘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는 비보이 동생들한데 전화해보면 다들 바쁘다. 공연하러 다니느라. 이제 생활하는 데 힘들지는 않다.” 김우성씨의 말처럼 2006년 현재, 한국의 비보이들은 이른바 꽂혔다. 수많은 실패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하나의 무브처럼.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상업화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다. 실제로 90년대 미국에선 비보이들이 CF나 뮤직비디오, 영화에 출연하면서 비보이 문화가 거의 사장되다시피 했다. 한국의 경우도 하나의 트렌드로 지나갈 우려가 있다. 단순한 한류가 아니라 비보이 문화, 힙합 문화를 즐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야 한다.” 대다수의 비보이들은 김우성씨처럼 비보이를 이용하기만 한 상품의 기획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다. 이에 국제스트리트댄스협회에서 이사를 맡고 있기도 한 문주철 감독은 “얼마 전 서울시에서 전화가 왔다. 비보이를 지원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갔더니 하는 말이 ‘뭘 도와주면 되죠?’였다. 한국에 비보이팀이 몇개나 있는지, 비보이를 배우려면 어디에 가야 하는지, 비보이가 어떻게 시작된 건지, 아무도 모른다”며 수없이 많은 과제들을 지적한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교육적인 사업이다. 우리 협회 하나만 사단법인이지, 나머진 다 사기업이다. 예술고나 대학교에 비보이학과를 개설하거나, 청소년들이 비보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 일에 어느 누구도 쉽게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행해져야 비보이 문화의 정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006년, 한국의 비보이들은 분명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하지만 이들이 그 자리에 어떻게 올라갔을까. 제2의 한류라고 포장된 신문기사와 인터넷에 펄럭이는 태극기 행렬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비보이들의 숨소리가 음소거되고, 그들의 땀방울이 제거된 낯선 열풍. 비보이들이 겁내고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태극기를 흔들며 순위에 집착하기보다는 음악에 몸을 맞추고 비보이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 이것이 한국만의 비보이 문화를 만드는 새로운 무브가 될 것이다. 보티와 한국의 비보이들 영국의 UK비보이챔피언십, 미국의 프리스타일 세션, 나라를 옮기며 개최되는 레드불BC원을 보티와 함께 세계 4대 비보이 배틀대회라고 부른다. 보티는 1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배틀. 매년 10월 하노버에서 열린다. 참가팀들은 퍼포먼스를 통해 화해나 평화, 혹은 각국의 전통문화를 표현하고 이를 통해 결선배틀과 3·4위 배틀에 진출할 팀이 가려진다. 한국은 2002년 익스프레션이 우승, 2003년 익스프레션이 준우승, 갬블러가 3위, 2004년 갬블러가 우승, 2005년 라스트포원이 우승, 갬블러가 3위 등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엘보 스핀(Elbow Spin) 2004년 UK비보이챔피언십에서 리버스크루의 피직스(김효근)가 선보여 화제가 된 동작. 헤드 스핀이 머리로 몸을 지탱한 채 회전한다면 엘보 스핀은 팔로 균형을 잡은 뒤 회전을 하는 동작이다. 피직스는 이 대회에서 16회 회전에 성공하며 팀에 우승까지 안겨줬다. 지금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엘보 스핀을 검색하면 이 대회 동영상을 볼 수 있다. 비보잉에 대한 간단한 용어 정리 우선 비보이팀은 크루(Crew)라고 한다. 고릴라크루, 리버스크루 등 팀 이름에 크루라는 단어가 포함된 경우도 있다. 비보잉의 동작은 무브, 두명 이상의 비보이가 함께하는 동작은 루틴이라고 한다. 비보잉에는 수많은 무브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나이키, 윈드밀 정도. 나이키는 한팔을 땅에 짚고 두 다리를 뻗은 모양이 나이키 로고의 모양과 비슷하다고 생긴 이름이며, 윈드밀은 등으로 몸을 지탱한 뒤 다리로 회전을 하는, 말 그대로 풍차돌리기다. 나인틴은 물구나무를 선 채로 회전을 하는 동작. 그 모습이 마치 꽃이 피고 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비보이들이 무브를 하다 갑자기 멈추는 순간이 있는데 이를 프리즈(Freeze)라고 한다. 실제로 음악과 프리즈의 순간이 절묘하게 맞았을 때, 관객의 함성이 쏟아진다. 비보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 아닌 음악과의 조화다. 팝핀과 라킹 넓은 의미에서 팝핀과 라킹을 하는 사람을 비보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들은 각각 파퍼와 라커다. 팝핑은 흔히 관절꺾기로 표현되는 동작들. 하지만 이는 사실 관절을 꺾는 게 아니다. 근육을 팽창시키는 것. 호흡을 통해 근육을 움직이기 때문에 동작을 하고 나면 매우 숨이 가뻐진다고 한다. 그래서 종종 팝핑 배틀에서 엠시들은 댄서들에게 “폐 괜찮아요?”라는 말을 남긴다. 라킹은 잠근다는 뜻의 록(Lock)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춤의 동작들도 주로 무언가를 잠그는 행위를 연상시키는 것들. 가장 대표적인 게 양팔을 빠르게 돌리는 동작이다. 또 팝퍼들은 주로 정장에 가까운 복장을 입는 데 비해 라커들은 코믹한 의상을 입는다. 큰 사과를 연상시키는 빅애플캡과 줄무늬 스타킹이 그것. 활기차고 밝은 느낌의 동작들이 주를 이룬다. 팝핀현준 “드라마는 보고 있어요? 근데 왜 시청률이 안 올라?” 일요일 저녁 댄스배틀이 열리던 클럽에 팝핀현준이 나타났다. 게스트로 공연을 하기 위한 것. 팝핀계의 스타인 그는 현재 MBC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에 출연하고 있다. 이주노가 만든 고릴라댄스팩토리의 초기 멤버이며 댄스그룹 영턱스클럽의 객원 멤버로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엔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 보여준 불춤이 화제를 모았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유연하게 미끄러지다가 절도있게 꺾이는 몸. 현재는 1집 앨범을 내기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9·11 테러는 할리우드를 어떻게 바꾸어왔나 [3]

“9·11과 함께 미국은 끝났다” 토드 보이드 교수는 9·11 사태 이후, 이 사건과 미국 대중문화를 꾸준히 연관시켜 바라봤다. 현재 남가주대학(USC)의 영화이론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며 미디어 전문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미국 대중문화와 영화, 특히 미디어와 관련된 인종 및 계급, 성 정치학 분야의 전문가이다. 독특한 스타일과 대중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진행하는 ‘힙합 문화’, ‘미국 영화의 인종, 계급, 젠더 문제’ 등의 강의는 USC 학생들 사이에서 ‘필수’ 코스로 알려져 있다. 2005년 가을 학기에는 영화를 통해서 9·11 이후의 미국을 조명하는 ‘9/11 아메리카’라는 강의를 개설했던 그에게서 2001년 9월11일 이후 5년 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문화적 변화에 관해 들어봤다. -9·11 테러 이후 5년이 흘렀다. 9·11이 미국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화는 특정 시대 사회상의 반영이다. 때에 따라 그 양상이 미묘하기도 하지만, 9·11의 경우 미묘한 구석이라곤 한 군데도 없다. 미국사회에 끼친 9·11의 영향이나 함의는 한마디로 거대하다. 그리고 명백하다. 지금 5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이 사건이 미국 사람들의 의식이나 문화에 끼친 영향들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소화해서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어느 정도 역사적 거리가 필요하지 않은가. 최근에 <플라이트 93> <월드 트레이드 센터> 등의 영화가 쏟아져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것 같다. 이제 충분히 비판적인 거리가 생겼으니 9·11이 음악, 텔레비전, 영화 등에 끼친 영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9·11이 미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 글쓰는 것, 음악을 듣는 데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의 기고문에서 9·11 이후 ‘종교의 부활’과 ‘멜로드라마적 감수성의 확대’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9·11의 직접적인 결과는 미국인들이 두려움에 빠졌다는 것이다. 신문도 읽지 않고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에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보통의 미국인들이 비행기가 빌딩을 들이받는 장면을 보고, 부시의 “우리가 그놈들을 토끼굴에서 몰아낼 거다”, “정의를 되찾을 거야” 등의 멜로드라마적인 선언을 들었을 때 겁에 질린 거다. 내 생각에 포스트 9·11 시대에 가장 악랄하고 기분 나쁜 정책은 ‘공포의 조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바로 그 시점에, ‘도덕적 정당성’이 필요한 시점에 구원책으로 등장했다. 종교가 하는 일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정부가 밀어줬고 승인했다. 종교가 포스트 9·11 시대에 미국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을 얘기하자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사례로 들 수 있다. 이 영화의 등장과 대단한 성공이 9·11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히 확신한다. 다른 분야에도 이런 사례들은 많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를 들 수 있는가. =완전히 반대 진영에서 나온 <화씨 9/11>이 쉬운 예다. 이 두 영화가 같은 해에 나왔다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여러 면에서, 두 영화는 2004년 대통령선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화씨 9/11>이 진보 성향에 호소했다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우익 진영을 대변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영화가 1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마찬가지다. 미국 대중이 이 두 영화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다. 이 두 영화가 선거 기간 중에 양대 진영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입장을 대변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문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좀더 구체적으로 할리우드는 이런 사회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할리우드도 미국사회의 한 부분이다. 할리우드가 미국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굳어지긴 했지만, 단언컨대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할리우드가 진보적 관점을 지닌 영화를 만든다면, 그건 영화가 어느 정도 팔리기 때문이다. 음반업계도 마찬가지지만 할리우드도 그간 많은 변화로 인해서 침체기를 겪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이나 대중의 관람 형태의 변화 등이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개인이 미디어를 생산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있다. 유튜브에 가면 할리우드 간부를 상대하지 않고서도 혼자서 영화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할리우드도 앞으로 어떻게 비즈니스를 할 건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요즘 애니메이션이 유난히 많다. 알다시피 아이들이 영화를 보러 가려면 부모를 동반해야 한다. 티켓을 한꺼번에 두장 이상 팔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미디어 생산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유일하게 남은 시장인 셈이다. -영화의 주제나 내용에는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 =우리는 9·11 사태를 ‘아이러니의 종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심각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이러니나 풍자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할리우드도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사실 그렇게 호들갑떨었던 것만큼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다. 본질적으로 할리우드는 이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다. 뭐든지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만든다. 요즘 <플라이트 93> <월드 트레이드 센터> 같은 영화가 나오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비판적 거리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시간도 흐르고 수용할 관객층이 생겼기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으로’ 9·11 사태를 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더이상 정부의 설명대로 사건이 일어났다고 믿지 않고 나아가 음모론을 거론하기까지 한다. 당시에야 부시 정권의 고위 관리가 공개적으로 “위기의 시대에는 입조심해”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각자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말하기를 두려워했다고 보면 된다. -<플라이트 93> <월드 트레이드 센터> 같은 영화는 봤나. =보지 않았다. 나는 9·11을 ‘기념’하고자 하는 행렬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여전히 그 사건이 두려움을 무기로 삼아 미국인들을 이용하고 조종하는 데 사용됐다는 사실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9·11은 좀더 넓은 시각에서 논의가 필요한 이슈다. 어쨌든 그 영화들은 안 봤고 볼 생각도 없다. 타워가 무너지는 순간을 이미 라이브로 수도 없이 봤는데, 내가 그 사건 자체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게 더이상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루즈 체인지> 같은 영화는 어떤가. =그 영화도 안 봤는데,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최근 들어 9·11이 정말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영화를 안 볼 거다. 나는 종종 <어 퓨 굿 맨>에 나오는 “당신이 진실을 감당할 수 있나”라는 대사를 인용하곤 하는데,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여전히 보통의 미국 사람들은 ‘미국은 결백한데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이 우리의 자유와 라이프 스타일을 싫어해서 빌딩에 비행기를 들이받았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무지하고 어리석다. -80년대 레이건 시대에는 람보가 문화적 아이콘이었다면 부시 시대 혹은 포스트 9·11 시대에도 그런 아이콘이 있을까. =<덤 앤 더머>? (웃음) 오리지널 람보는 나중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2편부터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대변인이 됐지만 1편에서는 베트남 참전용사였고 자살한 동료 친구 때문에 분노해 정부에 대항하던 인물이었다. 레이건은 배우였다. 그래서 이미지의 중요성, 영화의 파급력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영화산업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도 많다. -부시 정권의 특별한 문화 정책은 없나. =시대가 달라졌다. 레이건 때는 냉전 시대의 막바지였고, 따라서 <스타워즈>라든가 <람보>,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이 등장했다. 그리고 레이건은 배우였다. 부시도 배우지만 전문 배우는 아니다. 하지만 부시는 오늘날 미국 정치에서 중요한 건 ‘본질’이 아니라 ‘연기’라는 사실을 몸으로 대변한다. -‘연기’가 중요해진 상황과 연관시켜서 슈퍼히어로 장르가 유행하는 것도 흥미롭다. =이런 장르는 오래된 것이긴 하지만 최근 활발히 재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영웅은 실제가 아니다. 영웅은 공백을 채우기 위해 존재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실제적인, ‘리얼한’ 이 시점에 허구적인 영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도피하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껏 말했던 이슈들은 너무 무겁다. 대면하고 싶지 않은 거다. 아마도 이런 점이 슈퍼히어로 장르의 인기를 설명하는 한 요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포스트 9·11 시대의 긍정적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 사이 테크놀로지의 발전이나 세계화, 이슬람 세력의 부상 등 새로운 문제들이 많이 등장했다. 미디어의 생산과 소비의 ‘개인화’라는 문제도 흥미롭다. 또 중국의 부상이나 새로운 지역 구도의 개편,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권의 등장 등 세계 정치적 파워 구도가 변화하고 있다. 지금은 미국이 파워와 부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세상은 바뀌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미국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도 언제나 외적인 변화들은 있었지만 미국인들은 무시했다. 하지만 이제는 개인들도 그 영향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변화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20세기에 미국은 잘나갔지만, 이제 끝났다. 9·11은 미국인들이 이 새로운 시대를 리얼하게 인식하도록 화두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있다.

찾았다! 신상옥의 <열녀문>

2년 전 대만 발굴 작업부터 다음달 부산영화제에서 첫 공개 앞두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영화가 제작된 1919년부터 1969년까지 총 2097편의 영화가 발표되었고 그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영화는 646편에 지나지 않는다. 불과 30%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한국필름보관소로 출범한 한국영상자료원이 남아 있는 영화들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 1974년부터이고 보면, 이 30%의 생존율은 어떤 면에서 기적적인 수치인지 모른다. 영화 한편을 만들고 사라진 영화사가 부지기수였고, 생명력이 있는 영화사들조차도 필름 보관실을 지니지 못했던 과거를 돌이켜보면 남아 있는 한국영화의 수가 적다고 한탄하기보다는 이 정도라도 남아 있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자료원은 이 수치를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왔고 이제 그 성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일제시기 영화들이 지난 2년간 7편이 수집되었고 여기에 신상옥 감독의 <열녀문>이 더해진 것이다. 발굴-맨땅에 헤딩하기 발굴은 맨땅에 헤딩하는 작업이다. 수없는 공문과 전화, 방문을 통해 이루어내는(많은 경우 빈손으로 끝이 나는) 지난한 작업이다. 국내에서 영화를 찾는 작업도 어렵지만 외국으로 나가게 되면 일은 더욱 어려워진다. 대답없는 이메일과 거듭되는 전화 통화와 쥐가 날 정도의 발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영상자료원이(당시는 한국필름보관소) 영화 수집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은 국제영상자료원연맹(FIAF)에 정회원으로 등록된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FIAF에 가입한다는 것은 우리 기관의 국제적 위상과 공신력을 인정받는 것이기도 하지만 외국의 자료원과 절차와 합의를 걸쳐 외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회수하는 공식적인 통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역시 쉬운 것은 아니다. 일단 특정 외국 자료원에 과연 우리 영화가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동북아시아는 늘 조사의 1차 대상이 되어왔다. 중국전영자료관과 대만영상자료원 그리고 홍콩전영자료원과의 교류는 그래서 필수적이었다. 자료원은 지난 3년간의 노력 끝에 중국에서 7편의 일제시기 영화를 발굴하고, 대만에서 <열녀문>을 입수하였다. 그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우리 자료원이 <열녀문>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2004년 11월 FIAF 소속 필름 아카이브간 교류 및 한국영화 발굴을 위한 조사를 위해 대만영상자료원을 방문했을 때였다. 이에 약 6개월간의 조사와 협의과정을 거쳐, 2005년 4월 대만영상자료원에 필름에 대한 수집을 정식으로 요청하였고, 같은해 6월 16mm필름을 기증받을 것을 합의하였다. 그리고 11월 양국 영상자료원간의 상호 합의각서가 교환되고, 12월 드디어 필름을 기증받기에 이른 것이다. 복원-인내심의 한계에 도전한다 수집된 <열녀문>은 16mm필름 세벌이었다. 대만 자료원과의 협의사항은 영화를 HD로 전환하여 기증한다는 조건이었고, 이를 준수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서 우선, 오랜 세월로 인해 손상된 필름을 수선하는 일이 시작된다. 때묻은 프레임 하나하나를 닦아내고, 손상된 필름의 퍼포레이션 하나하나를 복구하는 일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데,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단순한 반복 작업인 것처럼 보이지만(사실 실제로도 그렇지만), 단 한번의 실수가 유일한 원천자료를 영구히 소멸시킬 수 있기에 작업의 중압감은 이루 설명하기 어렵다. 이 과정이 끝나면 복구된 필름을 텔레시네를 통해 자료를 변환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HD 변환작업이 끝나고, 드디어 시사의 순간. 이 감격적인 순간에 부산영화제 관계자도 자리를 함께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열녀문’이 모습을 드러내고, 청상과부와 파란을 일으킬 성칠이 화면에 등장한다. 아름다운 자태의 과부 최은희가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여자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는 시할머니 한은진의 따끔한 가르침을 받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얼마 뒤, 갑자기 잡음이 심해지고, 대사가 들리지 않는다. 뭔가 말을 하지만 통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대사가 잡음 속에 묻혀버린다. 문제다. 영화의 30분가량이 심한 잡음으로 손상되어 있는 것이다. 상영을 위해 사운드를 복원해야 한다는 허문영 프로그래머의 제안에 따라 영화제는 복원 업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몇 군데 접촉을 해보았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 돈은 둘째치고라도 이런 복원이 익숙지 않은 작업인데다가 보통의 노력과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곤란한 상황에서 고민 중에 우연히, 정말 우연히 HFR이 이런 복원 작업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 장비 후원을 해준 업체였다는 이야기에 다짜고짜 연락을 취했다.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고민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HFR의 옥임식 실장은 적극적으로 호의적으로 답변을 주었다. 이제 둘째 문제였던 돈이 우선 문제가 되었다. “후원해주십시오”와 “그러죠”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간단히 문제가 해결되었다. 본격적인 복원작업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복원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던 HFR의 욕구와 소리가 제대로 들렸으면 하는 영화제의 기대가 만난 것이었지만 HFR의 욕구는 우리의 기대 이상이었다. 사운드뿐만 아니라 이미지까지 개선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해온 것이다. 사실 이 회사의 주업무는 이미지 복원이다. 사운드를 복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일차 사운드 복원은 다른 두벌의 프린트에서 음질이 좋은 사운드트랙을 옮겨오는 것이었다(사실 이것이 우리가 바랐던 정도였다). 그러나 60년대 영화들이 그렇듯, <열녀문> 역시 일정한 잡음과 대사에 쇳소리가 묻어나왔고, HFR은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영화 전체 사운드의 잡음 청소에 들어갔다. HFR은 원래 D.I.(Digital Intermediate: 오리지널 네거를 디지털로 변환하여 이미지를 변형 개선시키는 기술) 작업을 주업무로 하는 회사이다. <달콤한 인생> <친절한 금자씨> <형사>와 <웰컴 투 동막골> 등 스타일 넘치는 영화들의 작업을 도맡아 해왔다. 이 회사가 복원에 뛰어든 것은 복원이 “미래사업”이라는 굳은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복원기술은 현재 영화에도 사용된다. 촬영 중 혹은 현상 중에 손상된 이미지를 복원하거나 녹음 중에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복원기술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은 믿음은 영화를 새로 만드는 것만큼 만들어진 영화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경영적 사고와 부딪치지 않고는 배울 수 없다는 실험적 도전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이들의 믿음이 우리 영화를 지키는 첫발이 복원에 있음을 깨닫는 사회적 인식과 맞물리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랄 뿐이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도 <열녀문>은 HFR의 신충섭씨와 이용기씨의 마우스의 쉴새없는 클릭과 단축키를 누비는 화려한 손놀림하에 서서히 아름다운 옛 모습을 되찾고 있다. <열녀문>는 신상옥 작품성을 국내외에 재확인시킨 작품 <열녀문>(1962)은 <연산군>에 이어 신상옥에게 두 번째 대종상 작품상을 안겨준 작품이었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에 이어 아시아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한 작품이었다. 상업적인 성공과 영화적 완성도에서 신상옥의 위상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과부>를 원작으로 한 <열녀문>은 1960년 조긍하 감독이 <과부>(1960)라는 제목으로 이미 영화화했었다. <열녀문>에서 머슴 성칠을 맡은 신영균은 <과부>에서 같은 역으로 데뷔하였다. <열녀문>에서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한은진이다. 그녀는 열녀문을 하사받은 근엄한 시할머니에서 바싹 말라 독기만 남은 노인네로 변해하는 모습을 열연하며 연기력의 절정을 보여준다. 여기에 신상옥 감독의 “사각 앵글의 미학”은 다시 한번 빛을 발하며 뒤틀린 시대에 갇힌 인물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열녀문>은 “과거는 현재를 밝혀내는 단초”(사극을 만드는 이유)이며, “굴곡에 찬 여성의 삶이야말로 영화적인 것”(여성이 늘 주인공인 이유)이라는 그의 주장이 만나며 그의 영화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거기에 인간의 욕망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인 탐험에 나섰던 그의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갔고, 우리는 남아서 그의 빈자리를 당당하게 지키는 그의 영화를 만난다. 이제 영화 <열녀문>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 과거 한국 영화사의 한 조각을 맞추는 것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 된 것이다.

<두뇌유희프로젝트, 퍼즐> 배우 홍석천

얼굴이 알려져 있는 대한민국의 배우 중 성적 소수자가 홍석천만은 아닐 것이다. 공식적인 커밍아웃을 한 사람이 홍석천일 뿐이다.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혼자인 걸 보면 누구나 택할 수 있는 쉬운 길은 확실히 아니다. “왜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자주 출연하지 않느냐”고 일반인들이 묻는다는데,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그를 가둔 성문화적 철책이 걷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점에서, <두뇌유희프로젝트, 퍼즐>의 창녀촌 양아치 ‘노’,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무식하고 과격한 마초 역할을 홍석천이 한다는 것은 그를 둘러싼 기존의 성문화적 선입견과 아이러니한 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본인의 희극적인 연기 항로에 기댄 역이 아닌데다, 그가 지금까지 영화에서 맡았던 것 중에서도 제일 큰 역이다. 그래서 더 눈에 띄었을지 모른다. 담배를 피워보면 어떻겠느냐고 사진기자가 말하자, 선글라스를 쓴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요새는 담배없이 못 산다면서. -담배를 많이 피우나. =이 영화 찍으면서 완전히 중독됐다. 영화 속에서 항상 담배 피우면서 욕을 해대야 하니까 그렇게 됐다. 예전에, 커밍아웃하고 나서 할 일 없어지고, 생각 많아지니까 그때도 이렇게 늘더라. 어디다 스트레스를 풀 데가 없으니까. 담배가 아니었으면 아마 그때 약을 했을 거다. 한번은 경찰이 아침부터 집에 들이닥친 적이 있다. 너무 힘든 상황이니까 저놈이 분명히 뭔가 약 같은 걸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인권 침해니 가만있지 않겠다, 언론에 알리고, 변호사 선임할 거다 했더니, 미안하다면서 조용히 테스트 한번만 받아달라고 하더라. 꿀릴 거 없으니까 그냥 해줬다. 내가 외국에 자주 다니니까 저놈이 뭔가 하긴 하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나보다. -그러고 보면, 이번 영화에서 담배는 ‘노’라는 캐릭터의 기호 같은 것이다. =늘 담배와 욕을 달고 사는 게 내가 맡은 ‘노’의 캐릭터다. 항상 노는 담배를 피우려고 하고, 김현성이 맡은 정은 못 피우게 하면서 티격태격하는 게 있다. 그게 시나리오에서는 훨씬 더 심했다. 나중에도 결국 담배 피우다 정한테 당하지 않나. -언론시사회의 무대인사 때 배우들의 뒷모습을 봐달라며 출연진을 잠시 뒤돌려 세우는 일종의 ‘시사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약속된 것이었나. =갑자기 떠오르더라. 우리는 항상 앞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라, 관객이 우리의 뒷모습을 보는 경우가 별로 없겠구나 생각했다. 얼마 전에 박상훈 사진작가가 유명 배우들을 찍어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주제가 배우들의 뒷모습이었다. 쟁쟁한 분들 찍는 자리에 나도 끼게 됐다. 갤러리에 걸린 내 뒷모습 사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살짝 들었다. 늘 화려한 조명에서 분칠을 하고, 만들어지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배우들의 꾸미지 않은 뒷모습은 어떨까 하는. 그래서 우리 영화를 보러온 관객에게도 한번쯤 보여줬으면 싶었다. -3년 만의 출연이라고 했는데. =방송 이후에 3년 만이라는 이야기다. <완전한 사랑> <슬픈 연가> 하고 나서. 영화는 <작업의 정석> 카메오 출연한 걸 제외하고는 굉장히 오랜만이다. <꽃을 든 남자>가 내 영화 데뷔작이었고, 그건 배역이 꽤 괜찮았다. 그리고 나서, 이번 영화가 거의 처음 무게있는 역인 것 같다. 한 8년 만에 제대로 내가 영화를 찍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조역은 꽤 있었던 편이다. =영화는 하고 싶은데, 안 써주니까…. (웃음) 그래도 한발은 담궈야 이 사람이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열정이 있다는 걸 알고 나중에라도 불러주니까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요즘 한양대 출신 동창 감독들이 굉장히 잘한다. 정용기는 동기고, 정윤철은 후배고, 이한, 김영준, 이시명 등 많다. 이 사람들이 학교 다닐 때는 다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이 인간들이 배신을 하더라. (웃음) 그 사람들 영화 개봉할 때 “도대체 뭐야, 나 없이 영화 잘되겠어” 하는 반협박도 한다. 아무래도, 나는 고정 이미지가 있으니까 부담을 안고 출발하기 힘든 그 사람들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이번 역 제의받고 더 놀란 거다. 김태경 감독이 이런 어려운 역할을 왜 나를 시키나 해서. 사실, 처음에는 고사하고 싶었다. 오히려 제작진과 다른 출연진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출연하는 다른 배우들이 오케이하면 하겠다고 했고, 다행히 모두들 좋다고 해서 하게 됐다. -상황을 이해는 하지만, 그들의 의견을 물어볼 필요까지 있었을까. =나는 그런 입장이다. 커밍아웃 전에는 안 그랬지만, 이제는 주어지는 기회가 한정되어 있고, 내가 갖고 있는 딜레마가 있기 때문에, 나와 관련된 배우나 제작자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커밍아웃한 다음에 생각하는 패턴이 많이 바뀐 게 있다. 연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했으니까 저 사람보다 더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안 그러려고 한다. 가령 주진모하고의 경우에도 될 수 있으면 상대방 감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연기하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더 개인적으로도 가까워지려고 애썼고. 제작사나 감독 입장에서는 분명히 모험이었던 것 같다. -‘노’라는 역은 한국 관객이 홍석천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과 경쟁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모험을 감행한 것인데, 그 선택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이미지가 구체적인 캐스팅 이유가 된 것인가. =‘노’는 외국 배우 느낌이 나는, 그리고 기존 이미지와 다른 걸 해볼 수 있는 배우에게 맡기고 싶었다고 하더라. 사실 맨 처음에 감독은 스티브 부세미 같은 느낌의 배우를 찾았다고 하더라. 그런데 찾아보니 막상 없고, 나를 보고 나서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보는 사람들이 나의 성정체성 때문에 내 연기에 거리감을 갖고 보지 않을까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건 배우로서 내가 깨뜨려야 할 것 아닌가 싶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남자 셋 여자 셋>의 쁘와종을 기억한다. 하지만,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내 이미지가 굉장히 마초 같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 나가서도 “너 참 아시아 남자치고 강한 인상”이라고 말하다가도, 내가 “나 게이야” 하면 그제야 놀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젊은 층의 경우, 내 이미지를 되게 강하게 느낀다는 것도 출연을 결정하는 데 일종의 자신감을 줬다. -연기를 위해 참조한 영화가 있나. =감독이 사실 가이 리치, 타란티노, <유주얼 서스펙트> 이런 종류의 영화 리스트를 일고여덟개 줬다. 근데 별로 안 봤다. 오히려 내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에서 가져오자 하는 생각을 했다. 작품을 할 때는 일부러 많이 안 보는 편이다. -분량으로 보나, 역의 중요도로 보나 이번 영화의 배역은 큰 전환점이 될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세번의 큰 기회가 있었던 것 같다. 대학로에서 포스터 붙여가며 연극하고 뮤지컬하다 <남자 셋 여자 셋> 시트콤에 합류했을 때가 첫 번째고, 커밍아웃한 뒤 고민하다가 <완전한 사랑>에 캐스팅 됐을 때가 두 번째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인 것 같다. 그동안 조심스럽게 나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거라면, 이번에는 좀더 적극적으로 보여줄 생각이었다. -외양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다. 배우들에게 외양이란 상당히 중요하지 않나. 같은 머리 모양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이유가 있나. 성정체성의 문제와는 또 다른 방향에서 그건 제약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헤어 스타일을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한다. 친한 이승연씨는 “석천아, 너 지겹지도 않니. 배우로서 많은 역할을 맡고 싶으면 머리를 길러라”, 이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한다. 집에 가발도 있다. 그거 쓰면 홍석천인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이 헤어 스타일을 유지하는 이유는 일단 내가 커밍아웃 전에 갖고 있던 내 모습이라는 것이고, 연기자로서 홍석천이 복귀했다는 걸 사람들이 인식할 때까지는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다. 그리고 외국 배우 중 나 같은 스타일 얼마나 많나. 그럼에도 별별 역할을 다 하지 않나. 나이 마흔이 되면 그때 머리를 기를까 생각 중이다. 그때 기르면 좀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지 않을까 싶다. 내가 청춘 스타가 될 요량이라면 이미 예전에 뭘 해도 했을 거다. 그런 거 아니지 않나. 나는 내가 생각하는 시기에 맞는 컨셉이란 게 있다. 지금도 이 스타일 때문에 불편해하는 사람은 조명감독님 빼고는 없다. (웃음) -처음에 그 헤어 스타일을 하게 된 계기는 뭐였나. =광고 때문이었다. 한국 사람 인상 같지는 않은데, 두상이 예쁘니, 머리를 밀 수 있느냐는 에이전시의 말에 그렇게 했다. 흑인 느낌, 힙합 느낌이 나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렇게 광고를 시작했고, 그 당시에 머리 깎은 모델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많이 출연했다. 그러다가 텔레비전으로 들어간 거고. -한 가지 더. 자신이 갖고 있는 목소리를 사랑하나. =불만이 많다. 축농증이 있어서 코가 항상 막혀 있다. 그래서 이번에 연기할 때는 담배를 하루에 두갑씩 피웠던 거다. 좀더 거칠고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건강만 악화되고 목소리는 그대로고…. (웃음) -앞으로 어떤 종류의 배역을 맡고 싶은가? 가령, 이 질문을 장동건에게 하는 거라면 상투적인 의미밖에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배우 홍석천의 입장에서라면 거기에 대한 대답은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싶다. 희극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좋은 코미디를 많이 하고 싶다. 많은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었으니까 그걸 극복하고 나오는, 생활 속에서 즐겁게 묻어나는, 남들에게 기분 좋은 감정을 줄 수 있는 코미디 말이다. 두 번째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어떤 작품들.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스스로 나를 닫게 되더라. 그동안 연극, 뮤지컬, 영화 제의가 꽤 있긴 했다. 거의 게이나 그 비슷한 역할이었다. 그래서 고사를 많이 했다. 그런 역만 할 수 있다고 인식되고 싶지 않았다. 그거 아니면 내가 배우로서 밥줄 끊긴다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 번 역할을 과감하게 선택한 이유도 그런 거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여준 뒤라면, 내가 다른 진짜 100% 게이 역할을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오랫동안 생각해온 작품이 있는데, 이번 겨울 지나서 초봄쯤 창작 연극을 하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커밍아웃을 한 유명 연예인이 주인공이다. 내 이야기가 기본 토대지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섞어서 갈 생각이다. 주인공과 그의 자서전을 대필하게 된 일반 이성애자가 한 공간에서 같이 살면서 서로의 이질적인 문화와 성향과 오해와 편견을 부딪치면서 깨가는 이야기다. -불행하게도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당신을 보는 주위의 시선이 당장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에 대한 요즘 생각이 궁금하다.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얼마 뒤,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전화가 온 적이 있다. 소니픽처스였나 그럴 거다. 내 이야기 갖고 영화 만들고 싶다며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메일도 주고받고 했는데, 갑자기 미국 정세 험악해지면서 소식이 끊겼다. 이제는 한국에도 <왕의 남자> <로드무비> 같은 새로운 성에 대한 애정과 노력들이 있는 작품이 나왔고, 그건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계에서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필요로 할 때 내가 주체적인 입장이 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홍석천의 운신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앞장서서 일을 저질러야 하는 시기가 오는 것 같다. 6년 동안 기다렸다고 표현을 한다면,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싶다. 그렇게 하다보면, 사람들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지 않을까 싶다.

아시아와 함께, 인디영화와 함께, CJ인디컬렉션

CJ인디영화관을 통해 인디영화를 꾸준히 소개해오고 있는 CJ CGV가 CJ인디콜렉션 ‘인디, 세상을 만나다!’를 연다. 한국, 일본, 이란,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인디영화 16편을 소개하는 이번 행사는 “관람 시기를 놓쳐 개봉기간 동안 영화를 보지 못했던 관객들을 위해” 마련됐다. 국내에서 개봉한 작품 12편과 아직 공개되지 않은 영화 4편(<몽골리안 핑퐁> <쓰레기 시인> <라이즈> <택시 운전사의 사랑>)으로 구성된 상영작은 ‘나는 성장한다’, ‘내 삶의 기적’, ‘희망 그리고 소통’ 등 크게 세개의 부문으로 나뉜다. ‘나는 성장한다’는 주로 개인 내면의 문제를 고민하고 주변 환경과의 갈등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섹션. 올 여름 개봉했던 조창호 감독의 <피터팬의 공식>과 2005년 개봉작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거북이도 난다>,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 아직 공개돼지 않은 영화 <몽골리언 핑퐁>과 <쓰레기 시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온주완의 첫 주연 데뷔작이기도 한 영화 <피터팬의 공식>은 올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 베를린국제영화제 인터내셔널 포럼부문 초청 등 해외 영화제를 돌며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세상의 무게를 지고 위태롭게 살아가는 고교생 한수의 이야기가 몽환적인 화법으로 그려진다. <거북이도 난다>는 이란의 아슬아슬한 현실이 가슴 아픈 영화. 위험을 무릎쓰고 지뢰를 찾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시울을 적신다. 김지수가 출연한 <여자, 정혜>는 일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영화다. ‘내 삶의 기적’ 섹션은 판타지 요소를 차용해 몽환적이거나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영화들의 모음이다. 원색의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인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의 <시티즌 독>, 시모츠마 시골 마을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로코코 소녀’ 모모코의 이야기 <불량공주 모모코>, 푸켓에서의 ‘보이지 않는 일들’이 신비롭게 흘러가는 아사노 다다노부, 강혜정 주연의 <보이지 않는 물결>, 드랙퀸의 삶을 활기차고도 애절하게 그려낸 제임스 첸 감독의 <드래퀸 가무단>, 신기한 세탁기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판타지극 <나의 아름다운 세탁기> 등이 리스트에 올라있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들도 있다. ‘희망 그리고 소통’의 상영작들은 말 그대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희망과 감동을 안겨주는 영화들. 외로움에 대한 보물같은 스케치, 에릭 쿠 감독의 <내곁에 있어줘>는 잔잔하지만 강한 울림을 안겨주며, 모든지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노총각 택시운전사의 사랑이야기 <택시 운전사의 사랑>은 순수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인권영화 두번째 프로젝트 <다섯개의 시선>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하고 박경희, 류승완, 정지우 감독 등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일상에 잠재된 편견과 차별을 다섯가지 시선으로 고발하고 있다. 이윤기 감독의 두번째 장편영화 <러브 토크>와 남선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모두들, 괜찮아요?>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 밖에도 CJ인디콜렉션은 특별상영작으로 미국 변방의 댄서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라이즈>를 준비했다. 춤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하는 모습이 ‘희망 그리고 소통’ 섹션과 잘 어울린다. CJ인디컬렉션 상영작 소개 쓰레기 시인 Poet of the Wastes 모하마드 아마디 | 이란 | 2005년| 81분 이란에선 청소부가 되기 위해 3가지 과목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과학, 종교, 정치. 실업자가 300만명이 넘는 이곳에선 청소부 되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25살의 한 청년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테헤란의 청소부로 취직한다. 매일 밤 9시가 되면 집 앞에 놓인 쓰레기를 수거하고, 거리를 빗질한다. 하지만 그의 꿈은 시인이다. 쓰레기를 처리하면서도 종잇조각에 쓰여진 문구를 쉽게 지나치지 않는다. 테러리스트들의 암살로 약혼자를 잃은 여인의 사연과 한 시인의 메모는 그렇게 발견된다. 영화는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부가 한 여인과 시인의 삶을 엿보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낸다. 이는 이란의 암울한 현실과 소통해보려는 작은 몸짓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루지 못한 꿈을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성취해보려는 청소부의 기다림, 망설임, 용기를 보여주며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 아래에서 영화를 배운 모하마드 아마디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몽골리언 핑퐁 Mongolian Ping Pong 닝하오 | 중국 | 2005년 | 102분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넓게 펼쳐진 몽골의 초원. 7살 소년 빌리케는 우연히 하얗고 작은 공 하나를 발견한다. 이는 다름 아닌 탁구공. 몽골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알 리는 만무하다. 손으로 만져보고, 혀로 맛을 보다 결국 빛나는 진주라고 믿어버린다. 어른들에게 물어보아도 별다른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우연히 본 마을 천막 극장의 화면에는 또 다른 하얀 공(골프공)이 지나간다. 아이들은 혼란에 빠진다. 이게 스포츠와 관련된 것일까. 영화는 문명의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한 몽골의 삶을 통해 순수함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코믹하게 보여준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에서 ‘국가적 공’이란 말을 듣고 ‘국가를 위해 일한다’고 믿는 경찰관에게 탁구공을 주려는 에피소드는 웃음을 자아낸다. 문명의 아이러니가 동심과 맞물려 묘한 재미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MTV 아시아에서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던 닝하오 감독은 광활한 몽골의 풍경을 유려하게 잡아낸다. 그래서 천안문 현수막을 배경으로 찍은 가족사진이 더욱 씁쓸하다. 2005년 도쿄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된 바 있다. 택시 운전사의 사랑 Midnight My Love 콩데이 자투라나사미 | 타이 | 2005년 | 105분 끊임없이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직업이 있다. 택시 운전사. 하루에 수십명의 사람과 마주치지만, 별다른 대화는 나누지 못한다. 방콕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바티는 항상 혼자라고 느끼는 외로운 중년 남자다. 잠도 혼자 자고, 밥도 혼자 먹는다. 그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라디오 프로그램 <추억의 애창곡>을 듣는 것. 엽서로 사연까지 보내며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누안이란 창녀를 손님으로 태운다. 왠지 모르게 얼굴에 쓸쓸함이 비친다. 동질감에서 시작된 관심이 점점 애정으로 발전하고, 무력하게 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던 두 남녀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려 애쓴다. 한국영화 <편지>의 타이판 리메이크작 <더 레터>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콩데이 자투라나사미 감독은 택시 운전사와 창녀의 사랑을 복잡한 도시 방콕의 뒷골목처럼 그려낸다. 외롭고 황량하지만, 깊은 감동이 찾아오는 엔딩. <택시 운전사의 사랑>은 현대인의 씁쓸한 일상에서 찾아낸 굴곡이 깊은 사랑 이야기다. 라이즈 Rize 데이비드 라샤펠 | 미국 | 2005년 | 84분 이번 상영작 중 유일한 비아시아영화. LA지역에서 발생한 크럼핑이란 댄스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다. 70년대 힙합문화가 뉴욕에서 발생했던 것처럼 크럼핑은 1992년 로드니 킹 폭동사건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생겨났다. 크럼핑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얼굴에 아프리칸 전통 분장을 연상시키는 페인트칠을 한다는 것. 격렬한 손동작과 발놀림이 비보잉과는 또 다른 쾌감을 준다. 영화는 크럼핑이란 춤을 중심으로 커뮤니티에 대한 고찰, 댄서들의 삶에 귀를 기울인다. 특히 폭동사건으로 총살을 당한 댄서를 추모하기 위해 한 흑인 가수가 거리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모습은 이들의 문화가 거리에서 나고 자랐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삶의 고난과 역경을 춤과 음악으로 풀어나가는 모습이 리듬감 넘치고, 이를 감각적인 영상으로 잡아낸 사진작가 출신 데이비드 라샤펠 감독의 연출이 역동적이다. 크럼핑의 창시자이자 이 영화에도 출연한 릴C는 국내 댄스가수 세븐의 <난 알아요>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