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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아시아 작가 영화의 지도그리기

작년에 이어 올해 두번째로 이루어지는 특별 프로그램인 <아시아 작가 영화의 새지도 그리기 2> 에서는 이란의 아미르 나데리, 인도의 V.샨타람, 중국의 추이즈언 감독의 작품 16편이 소개된다. 이란에서 활동하다가 1980년대 이후 미국으로 이주한 아미르 나데리는 지금(실제로 지금도 2편의 영화를 기획, 촬영 중이어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했다)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되는 그의 작품은 이란에서 만들어진 <하모니카>, <달리는 아이들>, <물, 바람, 먼지>와 뉴욕에서 제작된 , <마라톤>, <사운드 배리어> 6편이다. 배경은 이란의 사막에서 번잡한 뉴욕의 거리로 변했지만, 그의 인물들은 여전히 불안하게 달리고 도망치고 찾아 헤매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강박에 사로잡힌 인물과 고통스러운 이미지들은 나데리의 영화 제작 과정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아미르 나데리는 촬영장에서 스탭들과 배우들을 극한 상황까지 몰아넣고 악에 받힌 연기가 나올 때까지 고함을 질러대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란-이라크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바단의 도시에서 촬영되었던 <달리는 아이들>(1985)은 거리에 폭탄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하고서야 촬영을 중단했을 정도였다. 이런 극단적인 제작 환경은 영화 속 이미지뿐 아니라 관객들의 관람 경험에도 고스란히 연결된다. 말 그대로 아미르 나데리는 영화를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견딜 것을 요구한다. 이란의 거리에서 한푼 이라도 벌기 위해 애쓰는 고아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달리는 아이들>은 다분히 자전적이다. 소년의 지독한 고집은 차라리 광기처럼 느껴진다. 구두닦이 도구를 훔쳐간 오토바이 탄 사내를 쫓아 달리는 긴 시퀀스는 감독의 집착과 강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후 1989년 <물, 바람, 먼지>를 마지막으로 이란을 떠난 나데리는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며 잡음으로 가득한 뉴욕이야말로 강박적인 인간을 묘사하기에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욕에서 만든 그의 영화들은 도시를 괴기스러움과 하층민, 학대 받는 인간들로 가득한 정글로 묘사한다. 외로움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도시에서 그의 인물들은 여전히 미지의 무엇인가에 대한 끝없는 추적을 계속하고 광기에 빠져 끊임없이 움직인다. 아미르 나데리의 영화에서 발견되는 다른 특징은 거듭되는 영화 사운드의 실험이다. 지하철의 소음 속에서 퍼즐을 푸는 <마라톤> (2002)에서 고조되는 앰비언스의 불협화음과 아파트의 침묵이 보여주는 극명한 대조 혹은 죽은 어머니를 찾기 위해 테이프를 뒤지는 청각 장애인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운드 배리어>(2005)는 관습적인 사운드를 뛰어넘는 청각적 환기를 경험하게 만든다. 1921년 무성영화 시대부터 1984년까지 영화 제작을 계속한 V. 샨타람은 인도영화계의 거인으로 묘사된다. 영화 제작의 다양한 분야에 골고루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감독뿐 아니라 편집자, 배우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또한 영화 기술의 발달에 몹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30년대 독일의 영화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 UFA 스튜디오를 직접 방문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 결과 일찍 유성영화를 제작하였으며, 인도 최초의 컬러 영화를 만들고, 1935년에 텔레포토 렌즈를 사용하고, 70mm 필름을 배급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를 통해 결혼 지참금, 교도소 개혁, 성직자의 몰락 등 식민지하의 인도와 독립한 인도 공화국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제들을 폭넓게 다루었다. 이번에 상영되는 <예기치 못한 일>(1937)은, 유아결혼을 다루었다는 이유로 당시 인도 내에서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그는 자유주의적이고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독립한 인도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조명하면서, 영화가 무엇인가와 영화가 무엇을 다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지만, 결코 주류 영화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진지한 주제와는 별도로 음악과 춤을 주제로 하는 영화들도 다수 제작하였는데, 대중적인 뮤지컬을 통해서 흥행성와 대중성을 유지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댐 건설을 둘러싸고 종교가 다른 두 친구의 갈등을 그린 <이웃들>과 함께 소개되는 일본 식민시대의 중국에 파견된 의료진의 일대기를 그린 <코트니스 박사의 여정>과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작인 <두 개의 눈동자와 열 두개의 손>에서는 감독뿐 아니라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해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그의 아들인 키란 샨타람은 아버지의 영화제작에 30년 동안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올해 소개되는 <샨타람의 초상>은 딸 마루라 자스라이가 직접 만든 샨타람의 영화 세계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중국 퀴어 영화의 대표주자인 추이즈언은 강의 시간에 동성애를 거론했다는 이유로 최근 베이징 영화 학교의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극단적인 호모포비아가 만연한 중국에서 공공연히 퀴어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추이즈언의 최근 작품인 <스타어필>, <꽃피는 계절에 시들다>, <억제>는 그가 설립한 DV 스튜디오에서 제작되었으며, 디지털 영화 제작이야말로 공식적으로 중국 내에서의 영화 제작이 금지된 그에게 유일한 탈출구이다. 추이즈언은 ‘커밍 아웃’이 주는 트라우마나 국가의 호모포비아에 대해 언급하거나 자기연민의 피해의식에 빠지는 대신, 성적 성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실과 허구 사이를 오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추이즈언과 그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유보를 포함한 배우 3명을 초청하였으며, 토니 레인즈가 참석하는 대담을 마련하여 중국에서의 퀴어 문화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From a World of Madness and Obsession to China's Queer Cinema? Continuing from last year, PIFF's, "Remapping of Asian Auteur Cinema 2" introduces 16 films from Iran's Amir Naderi, India's Rajaram Vankudre Shantaram and China's Cui Zien. From Naderi come six films, three made in Iran, , , and , and three made after he immigrated to New York, , , and . His possessed characters and painful images arise directly from his production process, as in , shot during the Iran-Iraq war, where shooting was interrupted by falling bombs. This impacts not only the images, but the viewers as well. You can't simply watch his films, you are demanded to endure them. The young orphan of is quite autobiographical. His intense persistence verges on insanity. When the runner runs after a thief on a motorbike, Naderi’s own stubbornness is perfectly portrayed. After moving to New York, Naderi depicted the city as a jungle, with characters engaged inendless quests, chasing unknown targets to the point of falling into madness. Naderi’s other specialty is his sound experimentation. Exceeding convention, he creates auditory awakenings, as in , where a sharp contrast is created between an ambient cacophony and the silence of an apartment, and in , where a deaf-mute searches for his dead mother’s audio tapes. From 1921 until 1984, Shantaram was a Indian cinema titan, working as a director, editor and actor. He also developed film technology, creating the earliest sound films and making India’s first color movies. He confronted socialissues, addressing dowries, prison reform, clerical corruption, India's colonial past and the development of the Republic. Screening at PIFF 2006 is his 1937 work, , a film banned in India for dealing with child marriage. Though he employed a liberal and feminist perspective, he never abandoned the mainstream and his musicals were extremely successful. He also appeared as the main character in , , and , winner of the Berlin Silver Bear. PIFF 2006 also introduces , a documentary about Shantram's cinematic world, directed by his daughter, Madhura Jasraj, and produced by his son, Kiran Shantaram, who worked as his father’s assistant director for 30 years. Cui Zien, a prime representative of China's queer cinema, whose films are prohibited from public productionin China, has set up his own "DV Studio," where he produced such digital films as and . More than addressing society’s homophobia or the trauma of "coming out", his works employ a style that weaves between truth and lies, acknowledging the fluidity of sexual inclinations. Chui and three of his actors are also scheduled to discuss the growth of Chinese queer cinema in a PIFF panel with film critic Tony Rayns.

쇼 비즈니스의 계명을 따르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만큼 역사적인 소재와 뚜렷한 제목을 가진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개봉했다. 안드레아 버로프의 시나리오에 근거한 이 영화가 지닌 놀라운 점은 그 사실성이 아니라 절제에 있다. 파괴 전문가 스톤은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수백만달러를 사용해 9·11 직후의 파괴 장소를 재현했다. 하지만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가장 인상적인 효과는 섬세한 편집에 있다. 역사를 바꾼 재난은 빠르게 진행된다. 비행기의 그림자가 보이고 꽝 하는 충격음, 그리고 텔레비전 중계 이미지들. 내내 스톤은 분별력있게 장면들을 전환시키고 어두운 화면을 의미있게 사용한다. 올리버 스톤은 베테랑 군인이다. 그의 주인공도 그렇다. 20년 경력의 항만 경찰 존 맥라글린(니콜라스 케이지)은 새벽 3시29분에 일어나 자는 아내 도나(마리아 벨로)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직장으로 향하고 자동차 라디오에선 신기하게 ‘뉴욕시에 떠오르는 해’를 노래하고 있다. 항만청 터미널에 도착하자 젊은 경관 윌 히메노(마이클 페나)가 혼란스러운 무리를 뚫고 다가오는데, 둘은 곧 우여곡절을 함께 겪게 된다. 이들의 아침 모임은 군대적 성격을 가졌다. 비행기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부딪혔다는 뉴스를 듣자 맥라글린과 부하들은 전쟁터로 향한다. 이것은 그들의 의무인 것이다. “우리는 다운타운으로 간다.” 무시무시한 파괴의 이미지는 CGI를 통해 다소 부드러워졌다. 90층에서 떨어지는 사람도 한명만 보여준다. 가장 놀라운 장면은 사무실 직원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지원한 맥라글린과 히메노가 두 번째 타워 건물이 무너지며 재와 먼지가 큰 파도처럼 몰려오는 것을 첫 번째 타워의 로비에서 목격하는 장면이다. 새로운 스타일의 재앙영화에 걸맞게 재앙의 스펙터클은 이 영화의 경우 산 채로 묻혀버리는 주관적인 경험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 6m 깊이의 건물 잔해 더미에 빠져버린 두 경찰은 땅속 깊이 갇힌 광부와 같다(케이지의 배역은 물리적으로 속박되어 있는데 감독처럼 이 배우도 효과적으로 제어돼버린다). 하지만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스톤의 전쟁 경험과 할리우드 전쟁영화 방식으로 그려진다. 인물들은 <지.아이.제인>을 인용한다. “고통은 너의 친구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뿐 아니라 전투지와 가정이 파괴되었다. 이 사상자들은 집에서 예기치 못한 죽음의 사자들을 기다리는 아내들과 함께 이 비극을 겪게 되는 헌신적인 가장들이다. 마리아 벨로는 절망을 조절하며 버티고 있지만 매기 질렌홀이 연기하는 앨리슨 히메노는 뉴저지 집을 들락날락하며 초조해한다. 스톤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고 의무적으로 스튜디오가 주문했을 말을 반복했다(그것이 가능이나 한가. 사용된 음악도 레이건이 재선을 위해 선거 켐페인에서 사용했던 구질구질한 피아노곡을 연상시키고 있는데…). 하지만 일단 스톤이 카메라를 들어올려 파괴 현장에서 통신 인공위성으로 전세계를 보여주니 필연적으로 정황이 보이기 시작한다. 첫 번째 반응자는 영웅적인 조지 부시고 그 뒤로 셰보이건 경찰관이 “후레자식”이라는 말을 뱉고 또 다른 남자는 “조국이 전쟁에 직면했다”라고 외친다. 코네티컷 어딘가에선 자신을 중사라고 부르는 전역 해병대원이 하늘의 소명을 받고 참사 현장으로 인명 구조를 위해 달려간다. 그는 현장에 접근하며 “신은 연기로 장막을 드리워 우리가 볼 준비가 되지 않은 것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라고 말한다. 스톤이 세공한 것은 무엇인가? 우익한테 스톤은 제인 폰다 이후 마이클 무어 이전 가장 미움받는 할리우드 자유주의자다. 하지만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스톤의 갱생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용기라는 특성만이 아니라 신의 의지다. 단지 사람들만 구조를 받은 것이 아니라 가족이 구출되는 것이고 가족이 지닌 가치 또한 구하는 것이다. 생존을 확인한 맥라글린은 도나에게 궁극적인 공을 돌린다. “당신이 날 살아 있게 했어.” 재앙을 오락으로 바꾸는 열쇠는 정신을 고무하는 것이다. 당신이 신의 간섭을 믿지 않는다 해도, 물론 스톤도 안 믿는 듯 보여왔지만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더 중요한 쇼 비즈니스의 계명을 준수한다. 2700여명이 죽은 잿더미에서 살아남은 20명 중 2명에게 초점을 돌림으로써 영화는 <쉰들러 리스트> 전략을 사용한다. 관객이 이름없이 죽어간 많은 사람들 대신 기적적으로 재앙에서 살아남은 선택된 몇몇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닌 선함을 보여주었다”라고 해설은 결론내린다. 맥라글린과 히메노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 향했다는 점은 감동적이다. 중사가 그들을 찾았다는 점은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자신의 다음 임무를 내다본다. “이제 누군가가 복수를 해야 해.” 9·11은 조지 부시의 설명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일까? 스톤의 자막은 중사가 그 뒤 이라크에 두번 파병됐다고 알려준다. 이라크의 재앙에선 도대체 누가 우리의 용감한 군인들을 구할 것인가?

투덜양, <사랑과 야망>의 미자와 <봄의 눈>의 키요에게 한마디

요즘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하나 있다. 미자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한고은이 열연하는 그 미자말이다. 드라마 속 인물이나 미워하다니 엄청 한가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의 시름이 깊을수록 믿고 의지할 건 텔레비전밖에 없다는 옛 성현의 말씀도 있지 않나.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잘잘못을 따질 수도 없겠지만 딱 하나, 아주 죄질이 나쁜 사랑이 바로 미자가 태준에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곁에 있을 때는 온갖 무시와 외면으로 상대방의 인내를 시험하다가 상대방이 다른 사람에게 가는 순간 돌아와달라고 매달리는 건 사실 사랑이 아니라 ‘나 갖긴 싫은데 남주긴 아까워’병의 발작 증상에 불과하다. 미자와 태준의 재결합 이후 벌어지는 파탄의 풍경을 보라. 여기부터는 시청을 중단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의 정신건강이니까. 그래서 한동안 평화로웠던 나의 마음상태를 다시 발칵 뒤집어놓은 미자의 이란성 쌍둥이가 등장했으니 <봄의 눈>의 주인공 키요다. 키요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토코에게 매몰차게 대한다. 그저 거절하는 게 아니라 사토코에게 없는 말을 지어 자기가 유곽을 전전한다는 편지를 보내고, 가장 친한 친구와 사토코를 맺어주려고도 한다(아, 미시마 유키오!). 결국 사토코가 모든 걸 포기하고 황족인 다른 남자와 약혼을 하는 순간 그는 사토코의 유모를 협박해 사토코와 만난다. 그리고 남들의 눈을 피해 여관 같은 곳을 전전하면서 사토코와 금지된 연애를 시작한다. 영화는 끝내 실패하고 마는 이들의 사랑을 슬픈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다. 모든 파탄은 키요가 만든 것에 불과하다. 그는 사토코와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도 있었지만 자기 발로 차버린 다음 ‘이 세상에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징징거린다. 좋아하는 여자애가 노는 고무줄을 끊는 건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정리할 일이다. 그런데 나잇살이나 먹은 어른이 자신의 감정과 욕망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가 수습할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때 눈물, 콧물 다 흘리며 “그건 사랑이었어요” 외치는 건 추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는 외모의 소유자 쓰마부키 사토시라 할지라도 <봄의 눈>의 키요가 괴로워하는 건 연민을 주지 못할뿐더러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았을 때 “쌤통”이라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눈물, 콧물 빼고 있을 세상의 미자와 키요 들이여, 인면수심이란 꼭 강간범한테만 쓰이는 말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악행을 중단하시라. 안 그래도 세상은 고달픈 일투성이인데….

[외신기자클럽] 류승완 감독, 쓸쓸한 얼굴로 돌아보다

<포지티브> 특별호, <카이에 뒤 시네마> 특집, 400쪽 분량의 중요한 책 한권, 텔레비전과 파리의 한 극장에서의 회고전 등…. 1970년대 미국영화가 유행이다. 아마도 이 현상은 부시의 두 번째 임기의 보수주의와 일부 할리우드영화의 무기력함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반대로, 1970년대의 위기는 미국 영화사에서 가장 성숙한 영화들을 탄생시켰다. <이지 라이더>(1969)가 거둔 의외의 성공에 이어 스튜디오들의 주류는 반문화와 청년문화의 비주류에 문을 열었다. 할리우드는 코폴라, 스코시즈, 알트먼, 드 팔마, 스필버그, 루카스와 그 밖의 많은 감독들이 만개하는 것을 보게 됐다. 이 시기는 1975년 <죠스>와 함께 쇠락하기 시작했다. 작품의 장점이 어떠했든 간에 영화는 <씨네21> 독자들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새로운 배급방식을 구축했다. 일반 작품이 125~200개 스크린에서 개봉하던 당시, <죠스>의 상어는 단번에 500개관을 점령했으며, 1980년대를 지배하게 됐던 ‘블록버스터’라는 모델의 서장을 열었다. 1977년 <스타워즈>가 나왔고, 1978년엔 <슈퍼맨>이 나왔고… 비주류는 추방됐고, 주류가 자신의 권리를 되찾았다. 또는 비주류가 결국 새로운 주류를 만든 것이라 하겠다. 물론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이런 왔다갔다하는 현상은 미국만의 고유한 것은 아니다. <짝패>를 보고 난 뒤 생각하게 됐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의 도시로 되돌아와, 청소년기 패싸움의 사심없는 폭력이, 냉소적인 성인이 된 옛 친구에 의해 조직된 범죄에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을 목격한다. 복수 이외에도 다분히 고전적인 영화의 주제는, 결론적으로 말해 순수함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감독 자신이 자기 영화의 근원을 찾으며, 극중 인물의 여정과 공명하는 것이다. <짝패>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열정적인 영감을 되찾으려는 절망적인 시도나 마찬가지다. 결국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 말이다. 따라서 영화는 영원히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향수 속에서 끝을 맺는다. 류승완 감독은 비주류 출신으로 주류에 새로운 스타일을 불어 넣었던 작가군에 속한다. 기존 주류의 내부에서, 그는 매우 개인적인 자신의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둥지를 트는 힘이 있었다. 그렇지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같은 작품을 분출시켰던 정돈되지 않은 원동력은 성숙함이 생기면서 떨어졌다. 이것이 주류 속에서 살아남는 데 치르는 대가다. 최근에 <엽기적인 그녀>를 다시 봤는데, 이 작품은 대략 <스타워즈>가 새로운 할리우드에서 그랬듯이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에 속한다. 기존 규범으로의 회귀는 이 작품의 구체적인 한 장면에서 드러난다. 처음에 농구화를 신은 여주인공은 지하철 역사 끄트머리, 노란선 가장자리 훨씬 너머 자리잡고 있었다. 완전히 변두리 비주류 속에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여전히 지하철 역사에 있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되는데, 이번에는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있다. 감독은 전지연의 발 클로즈업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뒤로 한발 물러선다. 노란선 너머로 자리를 옮기고, 더이상 위험과 불균형이 없는, 합리적인 사람들이 서 있는 규범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즉, 주류 속으로 말이다. 그녀와 함께 모든 한국영화는 가장자리 비주류의 텅 빈 공간을 과거 향수에 젖은 이들에게 남겨둔 채 자신의 한계를 다시금 그린다. 지금도 용기있는 몇몇 독립영화감독들은 그들의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며 주변부가 다시 활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파리] 프랑스 영화의 현재와 미래는 여기에

지난 9월14일에서 18일까지 파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는 프랑스 영화교육의 요람인 국립영화학교 ‘페미스’의 개교 2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제가 열렸다. 페미스는 프랑스 고유의 교육 시스템인 그랑제콜로 영화와 오디오비주얼 분야의 전문인을 양성하는 국립교육기관이다. 어려운 입학시험과 엄격한 나이 제한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입학생을 선발하는 이 학교는 프랑스에서 영화를 전공하려는 많은 영화학도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20년 동안 600여명의 인력을 양성했으며, 국내에도 잘 알려진 프랑수아 오종, 아르노 데스플레생, 노에미 르보브스키, 세드릭 칸 등도 이 학교 출신이다. 페미스는 촬영, 조명, 음향 등 테크닉 분야를 중점적으로 교육하는 ‘에콜 루이-뤼메에르’(Ecole Louis-Lumiere)와 더불어 프랑스 영화교육을 주도하는 학교이다. 개교 2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이번 영화제에서는 졸업작품 중 단편영화 20편과 페미스 출신 감독의 대표 장편영화 20편을 상영했다. 상영과 더불어 열린 토론회에서는 ‘현대 프랑스 영화계에 전문 영화학교가 끼친 영향’, ‘영화교육과 프랑스영화의 전망’ 등의 주제로 열띤 토론이 펼쳐지기도 했다. 누벨바그 이후 프랑스영화를 이끌어온 두 부류는 실험성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독학을 통해 영화를 만드는 이들과 전문영화학교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직업영화인으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비평가이자 영화학자인 르네 프레달에 따르면 90년대 이후 페미스 출신의 감독들을 ‘내면주의’적 경향으로 해석하는데, 이는 정치·사회적 시선의 부재로 보여지기도 하며, 몇몇 감독들을 제외하고는 페미스 출신들의 진로는 텔레비전이나 광고 등으로 많이 향하고 있어 영화분야의 규격화된 엘리트주의적 교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또한 나오고 있다.

당신을 조롱하는 B급 컬트, <기묘한 서커스>

살면서 괴로운 순간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힘들었던 장면이 떠오를 때다. 기억 속의 나는 고통받는 처절한 피해자지만 종종 나의 탐욕이 그 결과에 도움을 주었을 경우 괴로움은 더욱 커진다. 이때 비겁하긴 해도 손쉬운 정신적 해결책으로 프로이트가 말한 ‘죽음에의 충동’이 있다. 상상에서나마 가해자에게 참혹하게 복수하거나, 나 자신을 자책의 구렁텅이로 빠뜨림으로써 정신적 위안을 얻는 것이다. 소노 시온 감독이 <기묘한 서커스>에서 발휘한 상상력을 빌려서 표현한다면, 가해자의 사지를 전기톱으로 자른 뒤 내가 당한 것과 똑같은 시련을 당하도록 방치하고, 못난 나의 피부를 벗겨 집안의 도배지로 활용한다. 이것으로도 모자란다면 그 모든 기억의 기표를 환상의 환상의 환상… 이라고 무한히 미끄러트린다. 영화의 전반부는 노골적으로 정치적이다. 학교 교실의 교단에는 소설 <1984>에서 등장한 텔레스크린이 설치돼 있다. 화면 속에서 훈계를 하는 교장 선생님은 학생인 12살 소녀 미츠코(구와나 리에)의 아버지다. 그가 딸을 탐하는 방식은 강압적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인데 구멍을 뚫어놓은 첼로 가방에 딸을 넣은 뒤 부모의 성교를 훔쳐보도록 한다. 미츠코는 이런 관음에 취해서 어머니 사유리(미야자키 마스미)의 자리를 탐한다. 질투심에 광분한 어머니가 사고로 죽자 미츠코는 아버지의 여자로 살아가지만 자책감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다가 결국 휠체어 인생을 살게 된다. 남성 권력의 장 안에서 조종되는 여성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그러나 이상의 이야기는 영화 중반에 사유리와 같은 모습을 한 타에코의 소설 내용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렇다면 미츠코는 휠체어를 탄 타에코의 어린 시절일까? 아니면 딸을 죽인 사유리가 자책감에서 자신을 딸로 치환한 것일까? 거듭되는 반전의 스릴감은 영화의 진행에 탄력을 준다. 노골적으로 남자를 밝히는 타에코가 정체불명의 출판사 직원 유지(이시다 이세이)를 만나면서 문제는 한층 복잡해진다. 가족사의 미궁이 밝혀지는 듯하더니 현재도 현실, 꿈, 서커스의 사형대 사이를 거듭 평면 이동한다. 유지는 관객에게 조롱하듯이 말한다. “과연 어떤 것이 꿈일까요?” 전작 <자살 클럽>에서 잔혹한 죽음에 현혹당하는 현대인을 비판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유지의 질문은 가부장제를 감내의 숭고함으로 소비해버리는 풍조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소노 감독은 이 작품으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진보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독특한 코드의 아시아영화”라는 평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이래 엽기적인 소재 때문에 화제가 되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A to Z [2]

Meryl Streep: 메릴 스트립 “미란다 프리슬리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악마나 마녀가 아니다. 나는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모순되고 정의내리기 힘든 하나의 인간을 창조하는 데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원작의 미란다 프리슬리는 그저 냉혹한 악마의 캐리커처에 불과했다. 하지만 영화 속 미란다 프리슬리는 성공을 위해 버린 것들을 독한 마음속에 다잡은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 숨쉰다. 이는 시나리오작가 알린 브로시 매켄나의 능숙한 각색 덕이기도 하지만, 능숙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메릴 스트립의 능력이기도 하다. “메릴의 미란다 프리슬리는 코미디적인 잔혹함과 진실된 슬픔의 경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미끄러진다. 메릴이 지닌 엄청난 재능의 키포인트는 코미디와 드라마를 섞는 절묘한 능력이다.”(데이비드 프랭클 감독) Numbers: (출판) 기록들 2003년에 출간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6개월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전세계 27개 언어로 번역되어 대부분의 국가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으며, 북미에서만 지금까지 140만권이 팔려나갔다. 한국에서는 책이 발간된 2006년 5월부터 대형 서점의 주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10월 현재까지 모두 40만부가량이 판매되었다. Original: 원작 원작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가는 가뭄의 염전처럼 짰다. <하퍼스 바자>의 케이트 베츠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리뷰에서 로렌 와이스버거가 <보그>에서의 독특한 경험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비난했다. “앤드리아는 왜 그녀가 상사인 미란다 프리슬리를 존중해야 하는지를 깨닫지조차 못한다. 그렇다면 왜 독자가 앤드리아를 존중해야 하는가. 왜 싸구려 스릴로 점철된 작가의 문장을 환대해야만 하는가.” <데일리 페이퍼>의 재닛 마슬린은 “비열한 비난으로 점철된 이 책은 작가가 문장을 가십으로 도배하지 않고서도 흥미진진한 내러티브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암시를 보여줄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책을 난도질하든 독자들은 서점으로 달려가 ‘프라다’를 외쳤다. Prada: 프라다 전세계 패션계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이탈리아 패션 회사. 프라다는 1913년에 마리오 프라다에 의해 가죽을 취급하는 회사로 설립되었고, 사업을 물려받은 마리오의 손녀 미우치아 프라다가 1989년에 여성복 라인을 만들면서 지금처럼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아우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프라다의 디자인은 별다른 장식이 없는 간소하고 세련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모든 것이 이탈리아의 투스카니에서 이루어지는 프라다의 디자인과 생산 공정은 단일 운영 시스템으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프라다의 집념도 동대문의 장인들을 피해갈 수는 없는 일. 프라다는 샤넬과 함께 한국에서 짝퉁이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레이블이기도 하다. Queer: 패션계의 게이 파워 톰 포트, 칼 라거펠트, 존 갈리아노, 마크 제이콥스, 지아니 베르사체, 돌체 & 가바나, 장 폴 골티에, 입생 로랑, 빅터 & 롤프. 패션 문외한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남성 톱디자이너들은 (여성분들에게는 아쉽게도) 대부분이 게이다. 스트레이트 남자들보다 심미안이 발달한(혹은 그렇다고 알려진) 게이 남성들에게는 성정체성에 대해 언제나 관용적인 분위기를 제공해온 패션계가 가장 적합한 일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호사가들의 통설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는 미란다 프리슬리의 오른팔이자 앤드리아의 조력자인 나이젤(스탠리 투치)이 패션계 게이의 스테레오 타입을 흥겹게 캐리커처한다. Runway: 런웨이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걸어다니는 스테이지를 일컫는 말. 영국에서는 캣워크(Catwalk)라는 단어를 대신 사용한다. Stiletto Heel: 스틸레토힐 일명 스파이크힐(Spike Heel)이라고도 불리는 스틸레토 힐은 하이힐 중에서도 가장 좁고 긴 뒤굽을 가진 신발을 일컫는 말. 1955년에 유명한 구두 디자이너 살바토레 페라가모에 의해 발명되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 앤드리아는 스틸레토힐을 신고 딱딱거리며 돌아다니는 런웨이 직원들을 딱딱이(Clackers)라는 경멸조의 명칭으로 부른다. Television Series: 텔레비전 시리즈 2006년 10월12일, <폭스TV>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시트콤 시리즈로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시트콤은 2007년 중 방영될 예정이다. Underplot: 언더플롯(곁줄거리) 원작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원작의 결줄거리들이다. 알코올 중독증에 걸린 앤드리아의 친구 릴리의 존재는 영화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며, 그럼으로써 앤드리아가 <런웨이>를 그만두는 이유가 외부적 요소보다는 자아의 선택이라는 사실이 강조되었다. 그외 영화에서 사라진 원작의 흥미진진한 요소 중 하나는 패션계의 거두로 성장하기 위해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린 미란다의 뒷배경이다. 이 같은 설정에 대해 원작자 로렌 와이스버거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한다. “나는 보수적이고 개혁적인 시너고그(유대교회당)를 골고루 거치며 성장했다. 특히 유대교가 나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끼친 영향은 이스라엘에 대한 나의 사랑이다.” Vogue: <보그> ‘Vogue야 넌 잡지가 아냐. 섹스도 아냐 唯物論(유물론)도 아냐 羨望(선망)조차도 아냐. 羨望이란 어지간히 따라갈 가망성이 있는 상대자에 대한 시기심이 아니냐, 그러니까 너는 羨望도 아냐.’ 김수영이 67년에 발표한 시 에 따르면 <보그>는 잡지가 아니라 선망할 수도 없는 선망의 대상이다. 이토록 선망하기도 두려운 패션계의 화려함을 대변하는 <보그>는 1892년에 뉴욕 상류층을 대상으로 창간된 잡지다. 현재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러시아, 스위스, 독일, 그리스, 브라질, 오스트리아, 일본, 중국, 한국에서 발간되고 있으며, 창간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패션잡지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보그’는 팝가수 마돈나의 몫이다. 앤드리아가 “Strike a pose, Strike a pose”(포즈를 취해! 포즈를 취해!)라고 읊조리는 마돈나의 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수많은 디자이너 옷들을 갈아입으며 뉴욕 거리를 행진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 는 영화 <딕 트레이시>의 비공식 O.S.T인 앨범 수록곡으로, 1990년 북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싱글로 기록됐다. Working Girl: 워킹 걸 여성상사와 부하의 갈등을 다루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워킹 걸 장르’에 속하는 영화다. 88년작 <워킹 걸>은 증권회사에서 성공을 거두기를 원하는 비서 테스(멜라니 그리피스)의 성공담을 다룬 로맨틱코미디로, 세련된 비즈니스 우먼에 대한 선망이 가득하던 80년대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었다. 물론 <워킹 걸>은 성공을 획득하려는 여성과 여성상사의 대결을 보여줌으로써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편견을 재생산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기도 하다. Xtra: 엑스트라, 카메오들 지젤 번천 외에도 패션계의 유명 인사들의 모습을 영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눈에 띄는 인물은 패션계의 거장 발렌티노 가바라니. 인터뷰에서 “나는 메릴 스트립의 열렬팬이다. 잠깐 나오는 카메오 출연이지만 정말 큰 영광”이라고 감흥을 표현한 그는, 미란다 프리슬리가 자선 파티에서 입은 드레스를 직접 만들었다. 패션쇼 장면에서는 미란다 프리슬리의 근처에 슈퍼모델 하이디 클룸이 앉아 있는 모습이 슬쩍 지나간다. 또한 톱모델 알리사 서덜런드는 <런웨이> 직원으로, 브리짓 홀은 그녀 자신으로 잠시 스크린에 등장한다. 안나 윈투어의 후환이 두렵지 않은, 용맹한 카메오들이다. Yawp: 불평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대한 패션계의 불만은 영화가 패션계의 현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영화의 개봉 직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누더기들’이라는 기사를 통해 “도대체 시크함이라곤 없다”며 영화 속 스타일의 실패를 벗겨냈다. “가장 끔찍한 실패는 미란다 프리슬리의 의상이다. 지나치게 평범한 은행원 같은 동시에 그냥 예쁘기만(Pretty) 하다. Fabulous의 세계에서 Pretty로는 충분치 못하다.” <엘르>의 패션 디렉터인 앤 슬로위는 “이 영화는 패션계를 모르는 사람들이 패션계 사람들이 어떨 것이라는 편견에 입각해 만든 작품이다. 캐릭터들의 의상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무 완벽한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이에 영화 의상을 담당한 패트리샤 필드는 자신의 의상들이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은 아니라고 변호했다. “내 직업은 사람들이 잠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오락거리를 창조하는 일이다. 패션계 사람들이 현실을 원한다면, 역사채널이나 볼 일이다.” Zillionaire: 억만장자 2000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패션 디자이너들의 평균 연봉은 4만8530달러(약 4600만원)다. 연봉 순위의 중간 50%에 해당하는 디자이너들은 3만4800달러에서 7만3780달러 정도를 벌고, 가장 연봉이 낮은 10%의 디자이너들은 연간 2만4710달러를 받는다. 연봉 피라미드의 최상위 10%에 선 톱디자이너들이 1년에 벌어들이는 평균 수익은 10만3970달러(9800만원). 이런 디자이너들의 연봉을 올렸다 내렸다 할 힘을 쥔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의 연봉은 무려 200만달러다. 한해 20억원을 패션쇼와 파티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트렌트와 디자이너를 개발하는 조건으로 받는 셈이다. 물론 윈투어에게 무료로 지급되는 의상비와 호텔비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제3회 메가박스 일본영화제 개막작 <편지>의 다마야마 데쓰지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나나>에서 가장 만화 같았던 순간은 하치(미야자키 아오이)와 다쿠미(다마야마 데쓰지)가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도쿄 생활에 지쳐 어깨를 늘어뜨린 하치가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자, 다쿠미가 문을 열어주며 인사를 건넨다. “하치, 어서 와.” 카메라는 다쿠미를 클로즈업으로 잡고, 시간은 그 위에 잠시 멈춰선다. 평소 블랙스톤즈 멤버 중 베이시스트 다쿠미를 좋아했던 하치는 눈물을 떨어뜨린다. 만화 같던 환상이 현실로 재현되고, 도쿄의 무게는 잠시 프레임을 벗어난다. 순정만화 속 주인공의 눈을 닮은 배우 다마야마 데쓰지는 속눈썹이 유난히 길다. 하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그의 속눈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큰 키와 가는 선, 또렷한 눈동자는 그를 종종 음악과 만화 속 프레임 안에 데려다놓기도 했다. <나나>의 베이시스트, <체게랏쵸>의 보컬, 뮤지컬 영화 <사랑을 노래하면>과 영화 <역경나인>(시마모토 가즈히코의 동명 만화가 원작)의 야구부 주장 등 그는 일견 일상에선 찾아볼 수 없는 어떤 모델이었다. 특히 인지도가 낮은 한국에서 다마야마 데쓰지는 과도하게 가공된 역할로만 기억되고 있다. 올해로 27살, 다마야마 데쓰지는 모델로 연기를 시작한 배우다. 고등학교 시절, 모델 제의를 받고 텔레비전 CM을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다. 중학교 때 활동했던 육상부 경력이 신체적 조건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당시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도, 연기에 대한 의식도 없었어요.” 하지만 그는 이번 영화 <편지>를 통해 배우란 직업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내가 배우다’라는 기분은 글쎄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들었던 것 같아요.” 메가박스 일본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한 <편지>는 죄와 벌에 대한 가슴 아픈 이야기다. 형 다케시는 동생 나오키의 학비를 위해 절도와 살인을 저지른 뒤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형이 살인자라는 사실은 이후 동생의 생활을 침범하고 동생은 세상의 차별에 꿈과 미래를 포기한다. 여기서 다마야마 데쓰지가 연기한 역할은 사형수 다케시다. “시나리오를 받아본 순간, 이 영화가 하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영화가 가해자의 시선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었죠. 다케시는 절도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지만, 동생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형이기도 해요.” 이는 곧 살인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글쎄요, 이번 영화 이후엔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다르게 생각하게 됐어요. 살인이라고 하면 무조건 나쁜 놈은 가해자고, 착한 놈은 피해자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는 결국 동전의 양면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형과 동생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다마야마 데쓰지의 모습은 사실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형무소 안에서의 생활도 그의 얼굴과 몸보다는 목소리로 대체된다. “목소리만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어요. 그래서 최대한 목소리 톤을 밝게 가자고 생각했죠. 나오키는 세상의 차별과 싸우느라 목소리가 어둡잖아요. 동생의 내레이션과 대조가 되기 위해선 최대한 밝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영화를 위해 록스타 다쿠미의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야위어 보이기 위해 몸무게도 4kg 감량했다. 심지어 영화를 촬영하면서는 “입 속에서 죄수의 옷 색깔 벌레들이 나오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영화적 체험”이다. 다마야마 데쓰지는 자신의 외모를 조금씩 지워나가며 일종의 모험을 시도했다. “제 자신은 제가 프로듀스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다마야마 데쓰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제 희망이죠. 모델을 그만두고 연기만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가능한 역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어요.” 그는 올 여름 방영됐던 드라마 <누구보다도 엄마를 사랑해>에서는 게이로 출연하기도 했다. 일본의 젊은 여성들은 최근 다마야마 데쓰지를 다마데쓰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배우가 애칭을 갖는다는 건 어느 정도 인기스타가 됐다는 지표다. 아직 영화보다는 드라마로, 연기보다는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는 스스로의 미래를 긍정하고 있다. “특정 역할이 하고 싶거나, 특정 배우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스스로에 대한 컨트롤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조금은 뒤늦은 스포트라이트지만 그의 레이스는 전혀 힘겨워 보이지 않는다.

[오픈칼럼] 그림 감상법

아내의 보스에게 선물을 받았다. 그림이다. 40인치 텔레비전 정도 크기 될까. 기껏해야 그림이라곤 드문 외국 출장 때 미술관에서 사오는 아이 손바닥만한 명화 마그네틱이 전부였으니 호수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장님 코끼리 만지듯 그림을 부여잡고서는 ‘이건 무슨 뜻일까’, ‘저건 무슨 뜻일까’ 보고 있다. 벽에 못 하나 제대로 못 박으니 그냥 소파 위에 올렸다가 TV 뒤에 놓았다가. 그림의 운명은 기구하기도 하지. 카산드라 통신에 따르면 올해 우리 부부가 삼재수라고 한다. 아내는 돈 많은 근사한 남자가 유혹을 하는데 거기 넘어갈 거라고 했다. 또 소문통신에 따르면 보스의 매우 주관적이기 짝이 없는 다면평가에서 아내가 1위였다고 한다. 아내가 직장에서 질투든 유혹이든 둘 중 하나는 받을 것 같다. 어쨌거나 ‘둥지’라는 이 그림, 정확히 말하면 판화는 심신에 아주 큰 평화와 안정을 준다. 어제까지 아내와 나는 ‘둥지라는데 새는 어디 있는 거야’ 하면서 그림 속을 장님처럼 찾아 헤매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림만큼 좋은 선물은 없는 것 같다. 이준익 감독이 평생 뜻을 같이한 정승혜, 조철현 대표에게 남은 평생도 같이하자며 자화상을 줬다는데, 또는 황지우 시인이 연초면 지인들에게 손수 그린 엽서를 보낸다는데 그림만큼 우정을 전달해주는 선물도 없는 것 같다. 새삼 아내의 보스에게 깊은 감사를 보내는 바이다(다음엔 조금 더 알아보기 쉬운 그림을 선물로 받고 싶은 소망이 뭉게뭉게 떠오른다만). 사랑하는 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아서 앨범으로 선물하거나, 아름다웠던 순간을 붙잡아서 단편영화로 만들어 선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당신의 애타게 아름다운 순간을 캡처한 jpg 또는 동영상 파일이랍니다, 하고 틱, 클릭을 해서 메일로 보낸다면 거기엔 온기는 조금 없을 것 같다. 그걸 만드는 과정은 따스했을지언정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미디어는 조금 춥게 느껴진다. 자신의 마음을 쏟아서 그걸 붓이나 연필로 옮긴 뒤 종이 위에 꾹꾹 누르고 그걸 전했을 때 상대방은 꾹꾹 누른 마음속에 피어나는 향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 아닐까. 돌이켜보니 옛날 애인들은 참 잘도 그랬던 것 같다. 낙엽부스러기를 손수 골라, 그러니까 가을의 살점을 한잎 떼어, 정성껏 육필로 시를 옮겨 적은 그 갈피 사이로 얌전히 옮겨놓은 뒤, 그걸 전해줬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또 나도 연필로 끼적끼적거린 그림이나 시를 친구들에게 선물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쉬운 건 그 기억들을 박제하지 않고 그대로 다 날려버렸다는 데 있다. 아마 오해 때문에 태우기도 하고, 새 애인에게 들켜서 에드거 앨런 포처럼 벽 사이에 던져넣고 콘크리트를 바르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나는 무슨 선물로 답례를 하나. 참다 못한 아내가 드릴로 못을 박아 그림을 걸자고 못을 박는다. 드릴이 뭐지? 먼 이국의 동사 변화처럼 들린다. 못 하나 제대로 박을 줄 모르는 주인을 만나 그림은 거실에서 작은 방으로 이주를 해야 했다. 그나저나 둥지 속의 새를 찾아야 할 텐데.

가족의 재구성, <트랜스아메리카>

‘트랜스아메리카’의 뜻에는 남자에서 여자가 되려는 트랜스섹슈얼 브리(펠리시티 허프먼)의 이야기라는 뜻도 있고 브리가 아들 토비(케빈 지거스)와 뉴욕에서 LA까지 횡단한다는 뜻도 있다. <천하장사 마돈나>나 <헤드윅>처럼 남자가 여자가 되기 위해 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에, 아버지와 아들의 뜻밖의 만남이라는 이야기를 더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는 드라마도 극적이지만, 부정하고 싶은 자기 과거와 어떻게 화해하고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이야기는 더 극적이다. 그런데 이 영화, 또는 주인공 브리는 끝까지 수줍은 목소리로 말한다. 남자의 몸 안에 갇힌 것에 대해,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의 질서에 갇힌 자신의 삶에 대해 분노도 설움도 터뜨리지 않는다. 그건 여자가 되기 위해 고심하는 브리의 태도와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브리는 찔끔, 살짝 울고는 눈물을 손등으로 톡톡 훔친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오동구처럼 옥상에서 카세트를 틀어놓고 춤을 추거나, 광란의 스테이지 매너를 보여주는 헤드윅을 흉내내기엔 브리는 너무 내성적이다. 욕을 할 줄도, 주먹을 휘두를 줄도 모른다. 털을 제때 안 깎은 건 아닌지, 제때 여성 호르몬을 먹지 않아서 가슴이 작아진 건 아닌지 그게 먼저 문제가 된다. 나이가 들어서 과격함이 준 것도 있겠지만 그 남자, 천생 여자다.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것이다. 오동구나 헤드윅의 독기도 없고 이해해주는 가족도 없고 번듯한 직장이나 벌어놓은 돈도 없는데 이 연약해빠진 남자가 과연 험난한 세상도 뚫고 수술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게다가 아들이랍시고 머나먼 동쪽 끝 뉴욕 구치소에서 연락을 한 망나니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배짱은 있는지. LA의 한 멕시코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브리는 평생 기다려온 수술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 짬날 때마다 집에서 텔레마케팅을 하는 브리는 운도 없게 업무 중에 뉴욕 구치소로부터 전혀 기대하지 않던 전화 한통을 받는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상담치료사인 마가렛은 브리가 아들을 뉴욕까지 가서 만나야 하며 아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레즈비언’ 시절, 잠깐 남긴 사랑의 흔적에 대해 브리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가렛이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해주지 않을 것이다. 과거는 남자 스탠리. 현재는 여자가 되고 싶은 트랜스섹슈얼 브리. 미래는 아마도 여자 브리, 그리고 아마도 토비의 아빠. 수학에 가까운 복잡한 삶이다. 브리는 수줍고 내성적이며 겁이 많지만 이 만만치 않은 질문에 하나씩 답을 던진다. 아버지-남자-스탠리 안에 갇혔던 어머니-여자-브리의 진심을 꺼내 세상에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미국의 가치를 횡단하지는 않는다. 트랜스섹슈얼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라는 정치적 주제만을 묵직하게 밀고 나가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가족을 재구성하는가라는 질문에 영화는 더 예민하다. 가족이 결합한 뒤 모든 게 평화롭고 순조롭게 진행되는 당연한 과정을 따라가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타인이었던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며 거기엔 어떤 새롭고 다른 가족의 도덕이 필요한가를 모색한다. 전혀 알지 못하던 아들과 아버지의 만남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있다. 브리의 젊은 날 남자 모습, 또는 브리의 성격만 본다면 <파리 텍사스>의 트래비스와 퍽 닮았다. <돈 컴 노킹>이나 <브로큰 플라워>의 쿨하고 유연하지만 부자인(그래서 쿨하고 유연한지도 모른다) 아버지들과는 거리가 있다. 아버지다운 외양이 전혀 없다는 것, 아버지인데 아버지라고 말하지도 못한다는 것(어느 자식이 여자 아버지를 믿겠는가), 아버지 노릇을 할 돈도 없고 거기에 대해 미안해하지도 않는다는 게 브리의 다른 점이다. 게다가 보수적이다! 술, 담배 등과 거리가 멀며 아들에게 교회 전도사 흉내를 냈지만 흉내를 못 낼 것도 없을 정도로 ‘착한’ 사람이다. 그런데 아들은 난잡하며 제어하기 어렵고 충동적이다. 여기까지 본다면 코미디가 아닐까 싶지만 그건 아니다. 감독은 궁금증을 던져 관객을 낚고는 끝까지 그 긴장을 초보답지 않게 신선하게 밀고 가는데 그 궁금증이란 아버지가 과연 자식에게 진실을 솔직하게 전달하고 좋은 사이가 될 수 있겠냐는 거다. 생물학적인 남자(무엇보다 허리 아래 달려 흔들리는 그 묵직하고 무거운 종루)를 자식과 세상에 들키지 않고 무사히 수술실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 집 밖을 벗어나자마자 브리에게는 난감한 과제가 연달아 달려든다. 호르몬이 떨어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돈이 떨어져서 한방에서 자야 할 때는? 뱀이라도 당장 튀어나올 것 같은 벌판에서 우아하게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는 있을까? 상냥한 인디언 남자 캘빈이 브리의 정체를 알면 어떻게 될까? 이 리스트는 창의적이지는 않지만 공감할 만하다. 이 공감에는 이유가 있다. 여자가 되고플 뿐인 가냘픈 아버지 역의 펠리시티 허프먼이 조용히 우리 내면 속에 스며들면서 이 영화는 볼만한 것이 된다. 아들이라는 작자의 한심함에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았을 때, 뱀에게 물릴까봐 막대기로 정신없이 수풀을 뒤지고 있을 때, 아들에게 자신의 생물학적 기관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쓸 때, 우리는 토비가 아버지를 어서 이해해주었으면 하고 소망하게 된다. 아니, 나아가서는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아버지라는 타이틀에 대해 어쩔 줄 몰라하는 수많은 아버지들의 곤경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토비에게 섣불리 강요하지도 않고 호의를 내세워 부담을 주지도 않으면서 친구로 만드는 브리의 진심은 그 반대편에 있다. 거기는 여자, 남자 또는 아버지, 어머니 같은 계급장과 상관없는 마음의 영역이다. 서툴게도 토비가 그런 마음에 대해 감동한 나머지 성적인 대접(토비식 효도)을 하려고 할 때 우리는 웃음을 머금게 된다. 브리의 그런 마음이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불씨라는 걸 토비도 알고 우리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건 가족은 무엇이고, 가족에게 필요한 건 뭔지 알기 위해 떠나는 ‘트랜스패밀리’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