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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피가 끓는다!

부산국제영화제 11월 14일 개막, 올해부터 남포동과 해운대 이원상영 11월 중순의 매운 한기를 단박에 제압할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오늘 대단원의 막을 연다. 부산아시안게임, 합창 올림픽 등 유난히 다양한 국제적인 행사에 밀려 지난해보다도 5일이나 늦은 11월14일부터 시작, 23일까지 10일동안 열리는 이번 영화제는 58개국에서 온 227편의 푸짐한 영화 꾸러미를 관객들에게 안겨줄 계획이다.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은 오후7시30분 범일동 부산시민회관에서 안성기, 방은진씨의 사회로 열리게 된다. 시민회관의 좌석수가1812석에 불과해 역대 영화제 사상 가장 소규모로 기록될 이번 개막식은 ‘문화 게릴라’ 이윤택이 연출하는 공연 ‘동해안 오귀굿’이 식전 행사로 열리며, 이어 안상영 부산영화제 조직위원장의 개막선언, 심사위원 소개, 개막작 감독, 배우 소개, 포토타임 등을 갖고, 8시부터 대망의 개막작 <해안선> 상영과 함께 마무리될 예정. 개막식장에는 <해안선>의 김기덕 감독과 주연 장동건을 비롯, 심사위원장이자 일본영화에 정통한 미국의 영화평론가 도널드 리치, 프랑스의 클레어 드니 감독, 홍상수 감독 등 심사위원단, 디터 코슬릭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 회고전의 주인공 김수용 감독, 영화배우 윤정희, 피아니스트 백건우, 강우석 감독, 배우 이병헌, 장진영, 문소리, 배두나, 설경구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개막식장의 적은 좌석수를 감안해 스타들과 게스트들의 입장 모습과 개막식이 부산극장 1, 2, 3관에서 동시에 실시간 중계될 예정이며 개막작인 <해안선> 또한 같은 시간에 일제히 상영될 예정이다. 올해부터는 기존의 남포동 뿐 아니라 해운대에서도 상영이 이뤄지는 탓에 영화제를 준비하는 손길은 더욱 바빠지고 있다. ‘개장을 앞두고 있는 해운대 메가박스의 공사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관객들이 불편을 겪을 것’이라는 일부 지방 언론의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해운대와 남포동을 오가며 영화를 봐야하는 관객들의 경우 시간을 넉넉히 잡고 움직여야 할 전망이다. 한편 23일의 영화제 폐막식에선 영화광들이 고대하던 소식이 발표될 예정이다. 내년 8회 영화제가 초가을인 10월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반가운 내용. 아직 일자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내년 개막일이 10월 초순경인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이와 함께 내년에는 수영만의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영화를 관람하는 야외상영도 부활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해 볼만하다. 예년에 비해 추운 날씨와 상영관 간의 먼 거리, 이런저런 시설의 부족 등이 예상되지만, 쌀쌀한 바람과 뒹구는 낙엽을 가르며 영화관으로, 매표소로, 식당과 숙소로 총총히 걸음을 옮기는 관객들이 있는 한, 올 부산영화제도 뜨겁고 아름다운 나날로 기록될 것이다. News Winter, Be Away! The Festival is on Fire! November 14: PIFF 2002 sparks up in Nampo-dong and Haeundae Today, the 7th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finally makes its grand opening. The curtain goes up in the late evening of November 14th (5 days later than last year's schedule due to other international events, such as Pusan Asian Game and Choir Olympics) and the festivity will continue till the 23rd. In these 10 days, a wonderful package of 227 films from 58 different countries will be presented to the audience. The Opening Ceremony, hosted by Ahn Seong-Ki and Bang Eun-Jin, will begin at 7:30 pm in Busan Citizen Hall, Beomil-dong. The ceremony will be recorded as the smallest scale opening ceremony in history due to Citizen Hall's limited seating of 1812 seats. It will begin with a performance sOh Gui Kut(a rite performed for the spirit of a dead person) of the East Sea' directed by 'literary guerilla' Lee Yoon-Taek and will close with the screening of Opening Film . Kim Ki-Duk, the director of and its starring actor Jang Dong-Kun, American Film Critic and this year's Chairman of the Juries Donald Richie, French director Claire Denis, director Hong Sang-Soo, actress Yoon Jung-Hee, pianist Paik Kun-woo and director Kang Wu-Seok will attend the ceremony. The pre-ceremony red carpet entrance and the screening of the Opening Film will be simultaneously broadcasted in Busan Theater 1, 2 & 3 due to limited seating in Citizen Hall. Then at the Closing Ceremony on the 23rd of November, the long awaited news by film manias will be announced. It is a delightful news that the next year's the PIFF 2003 will start in early October with warmer fall weather.

통속적인 불륜영화의 틀을 깨뜨린 <밀애>

나는 언제나 내 안의 진정한 내면의 소리에 따라 살기를 원했을 뿐이었다.그러나 그것이… 왜 그렇게 힘들었던가 -헤르만 헤세- 한 여자가 빨간 원피스를 입은 채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사는 ‘뭐 오늘 특별한 날이라도 되는가’라고 물어보고 여자는 그저 사진이 없어서 찍는다고 대답한다. 대개 가족사진의 후면을 이루는 것 같은 환한 꽃무늬 빛깔의 배경은 더없이 화사한데, 여자는 소리없이 울다 웃는다. 채 얼굴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감독의 카메라가 점점 물러나며, 여자의 전신을 비추는 순간, 깨닫게 된다. 태어나서 혼자 처음 찍는 백일 사진이 자신의 생물적 탄생에 대한 증거물과 같다면 이 여자의 혼자 찍는 가족사진은 이제 갓 태어난 여자의 존재론적 탄생에 대한 증거물이라는 것을. 한 남자를 사랑했고 문득 그를 떠나보냈으며 가정을 벗어나 싸구려 음식과 시간제 일자리로 생계를 연명한다는 여자는 환히 웃는다. 존 바에즈의 고요한 목소리가 스크린을 채우고, 채 물기가 마르지 않은 여자의 뺨 위로 빛이 쏟아진다. 이제 그녀는 혼자 시작할 것이다. 불륜영화 현상, 왜? 올해 한국 영화계의 드문 수확 중 하나인 <밀애>의 마지막은 좀체 잊을 수 없는 긴 여운을 드리운다. 이 마지막을 통해 변영주 감독은 한국영화 역사상 멜로 혹은 불륜드라마의 자장 안에서도 여성이 살아 있음을, 여성이 살과 피와 가슴뿐 아니라 존재론적 볼륨을 가진 입체임을 고요하게 각인시킨다. <밀애>의 정사는, <밀애>의 주인공들은, <밀애>의 빛과 색깔은, <밀애>의 카메라와 미장센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단지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팬시한 아름다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여자의 내면을 종과 횡으로 엮어 그것을 사뿐히 즈려밟는 변영주의 미학적 완결성 때문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것은 <자유부인> 이래 한국영화가 탄생시킨 수많은 부인 시리즈와 여자 시리즈 그리고 <정사>와 <해피엔드> 등 불륜을 다룬 90년대의 한국 영화들이 차마 다루고 싶었으나 다루지 못한 것, 혹은 기꺼이 얻고 싶었으나 얻지 못한 전복성과 기존의 장르적 공식을 뿌리치는 거부의 몸짓에 있기도 할 것이다. 근자에 들어 가장 촉망받는 신인 감독들이 가장 통속적이고 축축한 장르로 인식되고 있는 불륜영화의 계보 안에서 기꺼이 데뷔하는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밀애>의 변영주 외에도 단편 <생강>과 <호모 비디오쿠스>로 독립영화계의 스타가 되었던 정지우, 이재용 같은 명민한 신인들 역시 이미 <해피엔드>와 <정사>로 데뷔전을 치른 바 있으니 갈수록 불륜영화의 주가는 높아져가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불륜영화는 내심 ‘여배우들이 벗는다’는 입소문에 기대어 흥행의 선전을 기대하는 제작사의 바람과, 금기의 테제를 다룸으로써 자신을 실험해보려는 신인 감독의 야심이 일치하는 최소공배수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는 장르인지 모른다. 살내음이 농밀한 정사장면은 육체라는 출입구를 통해 신인 감독들의 연출솜씨를 한눈에 가늠케 하게 하고, 일부일처제라는 금기를 위반하는 불륜의 속성에는 사회제도를 뒤집어보려는 도발적 시선이 똬리를 틀고 있다. 여기에 불륜이 야기하는 감정이란 한 인간의 내부에 자리잡은 그리움과 열정과 두려움이 범벅된 가슴벅찬 혼동, 그리고 불륜영화란 선천적으로 그 회오리 불꽃을 점화시키는 가장 손쉬운 발화점을 접착하고 태어난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불륜에 대한 환상은 결혼이란 제도에 발이 묶인 채, 이제는 무심하게 천천히 늙어갈 일만 남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꺼지지 않는 유일한 불씨, 언제나 매혹적인 ‘위반에 대한 충동’은 아니던가. 그래서 불륜영화는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소모되며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사라진다. <안나 까레니나> 이래 대개 불륜영화의 여주인공들은 누군가와 살을 부비며 사랑에 대한 환상에 젖다 바로 그 환상을 실현한 대가로 죽거나 쫓겨난다. 이러한 가운데 견고한 빌딩의 안쪽에 숨어서 서서히 부식해가는 녹슨 철골처럼 가부장제의 허실은 그렇게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운명은 주인공들을 희롱하고, 감독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불륜이라는 좁은 경계선에 아슬아슬한 내기를 걸고 싶어서 안달을 내는 것이다. 한국의 조폭영화나 코미디영화 같은 장르영화들이 그러하듯 불륜영화의 장르 안에서도 어떤 관습적 공식이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멜로영화의 넓은 테두리 안으로 구겨넣거나 몇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이러한 공식들은 암암리에 관객과 감독의 은밀한 묵계처럼 스크린 위에서 거듭 재현되고 용인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마도 불륜영화의 가장 큰 관건은 불륜에 빠지고 불륜을 저지르는 여주인공들에 대해 관객이 느낄 부정적인 전이감정과 죄의식을 낮추는 방식에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한국적인 장치는 흔히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여주인공의 불행감 혹은 가부장제하에서 심한 사회적 억압을 경험하는 여주인공의 가정상황에서 예비되어진다(이것이 얼마나 한국적인 장치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데이비드 린 감독의 <밀회>부터 최근의 <인피델리티>까지 불륜을 다룬 수 많은 서구의 영화들은 반대로 여주인공들이 더없이 좋은 남편을 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더 관습적인 공식 중 하나는 이러한 여성들의 불행감에 대한 기호학적인 장치로 요리, 제사와 같은 무의미한 집안일을 서비스하는 여주인공이 등장하고 공간적으로는 거실을 할당받지 못하는 여자, 부엌에 유폐된 듯 보이는 여자, 즉 가정이란 평면도에 공간적인 구획을 함으로써 그녀가 얼마나 고정된 성역할 안에서 신음하는지를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그날 이후, 빛나는 `여성` 그런데 <밀애>는 이러한 도상을 과감하게 깨버리거나 혹은 무시한다. <밀애>의 주인공 미흔은 영화 내내 가족들을 위한 어떤 서비스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설사 요리를 할지라도 스스로 먹기 위해 하는 것 같다. 그녀는 ‘남편처럼’ 거실에서 아이와 함께 TV를 보고 여가를 보낸다. 기실 그녀가 겪는 상처는 어느 겨울, 크리스마스에 불쑥 들이밀어진 남편의 외도와 얽힌 불행감만은 아니다. 이후 미흔이 경험하는 깨질 듯한 두통과 멍한 눈동자는 남편의 외도가 그녀의 세계를 산산조각 내버렸음을, 혹은 이로 인해 그녀가 충만감으로 가득 채웠던 자신의 세계를 텅 빈 구멍으로 비워냈음을 보여준다. 변영주 감독은 창 밖의 화창한 빛이 한 조각도 들어오지 않는 질식할 것 같은 어둠이 드리운 집안의 풍경으로 미흔의 균열된 세계를 형상화한다. 동시에 당집의 대나무밭이나 휴게소의 정자 그리고 자동차의 프레임처럼 틀 안에 갇힌 그녀를 통해 그녀가 그저 불행하거나 우울한 정도가 아니라 일종의 넋이 빠져나간 상태임을 드러낸다. 그녀는 죄의식보다는 일종의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고, 그녀는 자신의 만들어낸 텅 빈 구멍에 포위되어 있다. 밀애의 유화 같은 질감은 마치 고흐가 <감자먹는 사람들>에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자의 고통을 칠흑 같은 어둠으로 표현했던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미흔이 인규와의 첫 번째 정사 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딸과 함께 미장원에 앉아 있는 장면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불륜이 그녀의 삶에 윤기를 준다는 사실, 가출했던 그녀의 넋이 다른 남자의 육체에 의해 제 집을 찾아 되돌아온다는 설정은 이전의 많은 한국의 불륜영화들이 보여주는 여성들의 ‘그날 이후’와는 상당히 차별화되는 지점에 <밀애>를 밀어올린다. 껍데기뿐인 가정이라도 자신의 울타리가 돼줄 가정에 대한 양가감정으로, 대개 불륜영화 속 여주인공들은 남편을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남편과 시선이 엇갈리는 그녀들의 외관은 영화 <정사>에서 내면으로 침잠한 이미숙의 얼굴로, <해피엔드>에서는 차가운 표면을 유지하려는 전도연의 얼굴로 형상화되어 있었다. 미흔이 이들과 다르다는 사실, 첫 정사의 나신을 보여준 이후 막바로 환한 웃음이 들어찬 여자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편집시킨 감독의 대담함에는 무엇보다도 <밀애>가 구현하는 여성 캐릭터가 기존의 남성 시각으로 그려진 여성 캐릭터가 아님을, 지나치게 조신하거나 지나치게 차갑거나 지나치게 나쁘거나 지나치게 엽기적인 그녀가 아닌, 매우 능동적이고 삶의 생기를 염원하는 ‘여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러기에 정사 뒤 여자는 수줍게 남자에게 ‘내가 잘했나요’라고 물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처음으로 섹스를 맛본 여인처럼. 미흔의 질문에 대해 인규는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유혹적이라는 것을 모른다. 온몸이 빨려드는 것 같았다’고 대답한다. 미흔의 남편과 불륜관계를 맺었던 낯선 여자 역시 미흔에게 ‘우린 아줌마가 평생 꿈도 꾸지 못할 사랑을 했어. 오빠는 내가 오빠를 통째로 빨아들인다고 했어’라고 내뱉었다. 아주 유사하게 들리는 이 두 대사는 <밀애>의 가장 도발적이면서도 유혹적인 화두이기도 할 것이다. 통째로 빨아들인다는 것. 여성성이 갖는 그로테스크함과 매혹을 동시에 표현하는 이 말은 불륜이 갖는 일탈의 핵심에 육체가 그것도 여성의 육체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그곳은 자신의 육체가 누군가를 유혹할 수 있고 갈망의 중심에 놓여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만족하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놀라운 각성에 도달하는 장소로서의 육체이다. <밀애>의 주인공 미흔이 다른 불륜영화의 여주인공과 달리 근심하기를 멈추고 생기의 에너지로 환히 빛났던 것은 그녀의 육신이 관객에게 보여지거나 한 남자의 손길에 의해 대상화되기 이전에 스스로가 스스로의 육체를 확인한 희열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로소 미흔은 인규뿐 아니라 남편과도 잠자리를 함께할 수 있게 된다. 너희가 섹스를 아느냐? 그렇다. 모든 불륜영화의 중심에는 섹스신이 놓여 있다. 좋은 싫든 관객은 그것을 봐야 하고 감독들은 그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것을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부부의 그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불륜영화의 정사에는 통속성과 도발성의 아말감이 함께 혼재한다. 지나치면 관음증의 끈적끈적한 게임으로 부족하면 밋밋한 그저그런 멜로로 전락할 이 위험한 게임은 신인 감독들에게는 흥미진진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리움과 정열과 결핍과 그것의 메움이 함께하는 정사신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고민한다. 이 흥미진진한 내기에 대한 가장 점잖고 고상한 태도는 뜨거운 입맞춤과 아름다운 몸을 지닌 두 연인의 상반신을 진열시킨 뒤 수돗물 떨어지는 소리나 창 밖에 부는 바람 같은 여백숏을 삽입, 병치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통상 불륜의 섹스도 행간을 띄엄띄엄 둔 시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것이 된다. 더 적극적으로는 롱테이크든 핸드헬드이든 정사에 젖어드는 주인공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격렬한 호흡과 열정을 그대로 담아내는 방도이다. 섹스의 강도와 관계의 진정성이 비례하는 것처럼 격렬하게 카메라는 떨리고 그야말로 주인공들은 몰아지경의 상태가 되어간다. 여기에 모텔이라는 공간은 너무 뻔하다는 듯 젊은 남성의 방을 밀애의 장소로 선택하는 관습 또한 잊지 않는다. <밀애>는 이러한 공식 모두를 거부한다. 그리곤 자신의 섹스장면에 대해 무척이나 솔직하게 군다. 인부들의 새참을 주거나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오는 것을 까먹을 정도로 육체에 새겨진 성적 욕망은 미흔을 뒤흔든다. 그것은 살아갈 힘을 주고 심지어 인규의 아내가 ‘여보 여보’라고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서 남편을 찾아도 버젓하게 남자의 몸을 탐닉하는 뻔뻔한 용기까지 선사한다. 동시에 그것은 부드럽고 위무적이다. 남해라는 장소, 천혜의 바다를 옆에 두고도 변영주의 카메라는 붉은 주단이 깔린 모텔의 침대 방으로 직행하고 두 남녀의 나신을 그대로 잡아낸다. 개인적으로 <밀애>의 정사신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인규의 몸을 애무하는 미흔의 손이었다. 남자의 완전히 벗은 육체에서 시작하여 허공을 가르며 남자의 육신을 애무하는 그녀의 손은 고즈넉하고 둥실했다. 풀숏으로 침대 위의 두 사람의 나신을 잡았을 때도 인규는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보통 거칠게 잡아내는 가쁜 숨소리 대신 변영주가 꾸민 화면에는 생생한 키스 소리가 가득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상황설정 숏 외에는 남해에 관한 어떤 풍광도 삽입하지 않은 변영주의 정사신이 미학적으로 무척 도전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카메라는 오감을 자극하는 동시에 여자의 성적 욕망과 판타지를 부드럽고 정성스럽게 잡아낸다. 그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밀애>의 정사신에는 두 남녀의 서로 육체와 영혼 모두를 보듬는 ‘쓰다듬음’이 있었다. ‘당신이 날 그렇게 잘 알아’' 정사가 끝난 뒤, 여자는 남자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신을 드러낸 채 모텔의 창가로 걸어간다. 비로소 빛은 다시 방 안에 쏟아져 들어오고, 그녀는 어떤 자족함을 맛보는 사람처럼 가만히 그 창가에 기대어 서 있다. 그때 그녀의 뒷모습을 잡은 카메라는 고요하게 이 부드러운 각성의 시간, 여성이 스스로의 육체를 가지게 되는 시간을 지켜본다. 이후 여자는 더이상 남편과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불륜을 숨기거나 은폐하려들지 않는다. 여성 이외의 시선은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밀애>의 남자주인공 인규라는 캐릭터가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매혹적인 남성 캐릭터의 하나를 구현한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감우성과 함께 인규는 대한민국 멜로영화 속에서 가장 권력과는 거리가 먼 남성을 구현한다. 이 남자에게는 결혼제도에 대한 환상이나 사랑에 매달림으로써 다시 여자를 사회제도의 틀 안으로 끌어 잡아당기려는 자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는 여자 막지 않고 가는 여자 잡지 않는 것 같은 그의 태도는 일견 바람둥이의 그것으로 전형화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생각보다 매우 ‘구질구질’하며 ‘세상엔 스스로 나빠지고 싶어하는 여자들이 있다’고 말한 만큼 인간에 대한 너그러움을 드러낸다. 또 하나 이채로운 것은 미흔과 일종의 자매애적인 유대로 맺어진 쉼터 휴게소의 나은연이란 여성의 존재이다. 남편에게 맞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다소 중성적인 이미지의 은연은 결국 미흔이 남편에게 맞은 뒤 그녀가 살다 떠난 쉼터 휴게소에서 하룻밤을 보냄으로써 미흔과 은연의 상처가 매우 비슷한 부위임을 암시한다. <밀애>의 은연과 미흔, 두 여인의 관계는 전형적인 불륜영화에서 동생과 언니가 혹은 친구와 친구가 서로 연적이 되어 경쟁하는 지긋지긋하게 많은 드라마와 영화들보다 훨씬 의미있는 여성간의 관계를 이루어낸다. 변영주란 감독은 그렇게 도전적이면서도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여자였다. <밀애>는 제3의 시선이 개입된 흔적이 거의 없는 영화이다. <밀애>는 불륜영화인 동시에 온통 미흔이란 여성의 시선이 가득한 영화이다. 물 속에서 유영하는 미흔을 잡은 미디엄숏에서 다시 사진을 찍는 미흔을 잡는 미디엄숏까지, 그러니까 물 속에서 유영하는 미흔이 본능적인 여성의 원형적인 모습이라면 혼자 사진을 찍는 미흔은 그 여성성이 다시 사회의 표면에 떠올라와 스스로의 형체를 사회라는 감광원료로 인화시킨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둘 모두는 자족적이고 고요하다. “내 이름은 ‘이미흔’이다 ”라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밀애>는 여성이 자신을 정의하고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며 또한 다른 세계로 날아가려는 나비의 거센 날갯짓을 담고 있다. 그러한 면에서 변영주는 가장 통속적인 불륜영화에서 <데미안>의 헤세가 성취했던 아브락사스의 면모를 지니고 있지는 않은가. 거듭하는 암전을 통해 죽고 살아나기를 거듭하는 미흔의 영혼은 영겁처럼 그러나 또한 찰나처럼 아름답고 다사롭게 흘러간다. 그것은 빛과 어둠의 윤무, 주인공의 내면에 조금씩 스며들었던 변영주라는 감독이 만들어낸 미학적 완결성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나 또한 길거리에 깔린 무수한 미흔을 만난다면 어떤 몸짓을 지을까. 자궁에 난 비슷한 상처를 내보이며 깔깔거리고 웃을까. 이제는 환해진 가랑이로 또다시 이야기의 물을 길을까. 새어나오는 울음을, 어금니를 통해 심장까지 이어진 울음을 삼키며, 사진을 찍던 그녀를 떠올려본다. 그리하여 힘이 되는 슬픔이 다시 내게 왔을 때, 어느덧 가을인데도 극장문을 나서니 찬란한 슬픔의 봄이 개화하고 있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본 아이덴티티>의 주무대 파리에 대한 아저씨의 단상

지하철 삼성역에서 메가박스까지 가는 땅속길은 지금도 내게 미로다. 코엑스몰이라는 언더그라운드 상업도시는 이방인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할 만큼 거만하다. 간신히 찾은 메가박스는 여느 주말처럼 붐볐다. 아내와 나는 매표구에 다다르기 위해 40분 넘게 서 있었다. 매표구 앞에서 우리는 잠시 망설였다. 그 이름도 찬란한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와 처음 듣는 이름인 더그 라이먼의 <본 아이덴티티> 사이에서. 느려터지게 줄어드는 줄 속에서 우리는 당초 <본 아이덴티티>를 골랐었다. 그런데 매표소 앞에 이르자 채플린이 그 명성의 힘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위대한 독재자>를 포함해 채플린 영화를 이미 대부분 본 터였지만, 그건 오로지 브라운관을 통해서였다. 그러니 매표소 앞의 망설임은 작은 스크린으로 이미 본 명품을 큰 스크린으로 다시 보느냐, 아니면 이왕 돈 들여 시간 들여 보는 건데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는 ‘쌤삥’ 영화를 보느냐 사이의 망설임이었다. 매표원이 건네는 재촉의 눈길 속에서 망설임이 길 수는 없었다. 아내가 결단을 내렸고, 내가 맞장구쳤다. 우리는 다시 2시간 반을 기다려 <본 아이덴티티>를 봤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았다. CIA를 윤리적으로 비난하는 체하면서도 실상 그 전능함을 선전하는 꼼수,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자기 과거의 단서를 찾을 때마다 어김없이 닥쳐오는 위험, 어울려 보이지 않는 남녀의 우연한 만남을 필연적 사랑으로 바꾸는 조홧속 등 그 상투적 코드들이 주는 기시감(旣視感)에도 불구하고 <본 아이덴티티>는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였다. 처음 이 영화 제목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줄곧 그것을 born identity, 곧 ‘타고난 정체성’으로 해석했다. 그것이 본(Bourn)이라는 사나이의 아이덴티티를 가리킨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영화를 보면서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말놀이일 터이다. 그러니 <본 아이덴티티>(Bourn identity)는 본이라는 사내의 ‘타고난 정체성’(born identity)에 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본(本)아이덴티티로도 읽힌다. 아무튼 영화 속의 제이슨 본은 기억을 잃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늘 본능적으로 사위를 경계하고 민첩하게 위기를 벗어난다. 타고난 CIA 최정예요원답게. 그의 이름이 가장 유명한 살인면허 소지자 제임스 본드와 닮은 것도 우연 이상일 터이다. 기억 상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언젠가부터 술자리에서 ‘필름이 끊기는’ 일이 잦다. 이게 알코올 중독의 초기 증세라는 말을 들은 듯도 하다. 술을 마시다가 필름이 끊긴 이튿날엔 불안과 자괴로 우울하다. 서로 다른 이름의 자기 여권들 앞에서 본이 난감해하듯, 술 먹은 이튿날에는 주머니 속에서 나온, 모르는 사람들의 명함과 메모 때문에 난감하다. <본 아이덴티티>의 주무대는 파리다. 30대에 바람이 들어 다섯해 동안 그 도시에 산 적이 있다. 그 바람의 기원은 어린 시절 텔레비전의 케미슈즈 광고에서 인상 깊게 보고들은 에펠탑과 <파리의 하늘 밑>이라는 노래인 것 같다. 자라면서 나는 그 도시에 프랑스 혁명과 파리코뮌과 레지스탕스의 이미지를, 앞에 신(新)자나 반(反)자가 붙은 역사학 철학 소설 연극의 이미지를, 그리고 구조주의니 해체주의 하는 기괴한 주의들의 이미지를 보탰다. 실상 이것은 파리에 대한 상투적 이미지다. 그리고 이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은 프랑스인들만이 아니라 미국인들이기도 하다. 몇 개월 전 케이블로 본 한 미국 방송은 파리를 “2000년 동안 술과 연애에만 몰두해온 도시, 가끔 제 정신이 나면 예술과 혁명에 몰두했던 도시”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술과 연애의 도시 파리’라는 상투에 가장 충실한 문학 작품 가운데 하나가 헤밍웨이의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일 터이다. 술과 연애로 젊음을 탕진하는 소설 속의 미국인들, 그 ‘길 잃은 세대’는 10대의 내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 소설의 영향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게 그럴듯하게 생각된 영미인들은 대체로 파리를 거쳐간 사람들이었다. 에즈라 파운드, 헨리 밀러,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코트 피츠제럴드,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제임스 조이스, 맨 레이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 ‘파리의 미국인들’이 진짜 파리 사람들과 어울리며 빚어냈다는 1910~20년대 파리 풍경은 내 상상력 속에서 헛바람으로 한없이 부풀었다. 그러고보면 <본 아이덴티티>도 파리의 미국인들 얘기다. 술과 연애 얘기라기보다 음모와 배신과 살인, 총싸움, 몸싸움 얘기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모든 세대가 그 당사자들에게는 길 잃은 세대라면, 영화 속의 제이슨 본도 그럴 것이다. 게다가 그는 정말로 길을 잃지 않았는가. 그 길 잃은 본이 파리의 길을 헤맬 때, 그 도시의 낯익은 거리들이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이방인들의 파리 애호는 대체로 허영심과 뗄 수 없다. 내 파리 애호도 그럴 터이다. 그러나 나는 이 소박한 사치를 거두고 싶지 않다. 길 잃고 망가진 40대 아저씨가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사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고종석/ 자유기고가 aromachi@hk.co.kr

책장 위에서도 역사는 흐른다,<쇼군 토탈 워>

나에게 게임은 놀이지만 일이기도 하다. 한달에 서너개, 많을 때는 네댓개까지 새 게임을 해보고 글을 쓴다. 이 많은 걸 다 해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만, 플레이를 끝낸 뒤 보관하는 것도 문제다. 우선 큰 박스를 주워온다. TV나 냉장고 박스는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고, 라면 박스는 너무 작아서 몇개 못 담는다. 모니터 박스 정도가 제일 적당하다. 박스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6개월 정도면 하나가 가득 찬다. 그러면 창고에 집어넣는다. 그런데 가끔 박스 속의 게임을 못 견디게 하고 싶어진다. 질릴 만큼 하고 집어넣은 지 6개월, 어떤 때는 1년이 훌쩍 지났는데 당장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생각에 휩싸인다. 정기적으로 일어나는 발작이고 치유책도 없다. 박스란 박스는 다 꺼내놓으며 난장판을 만드는 게 몇번 반복된 뒤 대책을 세웠다. 다시 하고 싶을 것 같은 게임을 엄선해 박스에서 구출한 뒤 책장과 천장 사이 빈 공간에 나란히 세워놓았다. 어떤 게임은 세월이 지난 뒤 새롭게 떠오른다. <쇼군 토탈 워>를 처음 했을 때는 독특하고 잘 만든 게임이라는 생각은 했어도 그다지 오래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2년이 흐른 지금 난데없이 불타오르고 있다. 어떤 게임은 벗어나려고 애써보지만 실패한다. <던전시즈>는 3D 롤플레잉 게임이다. 순발력이 떨어지는데다가 3D에 적응 못하는 체질을 가지고 있어서 큰 기대 안 했는데 의외로 너무 재미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새벽이 돼서야 시뻘게진 눈을 비비며 리뷰를 썼다. 이러다간 안 될 것 같아서 친구에게 빌려줬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기에 돌려받았다. <위자드 앤 워리어>나 <바람의 기사>는 굉장히 열심히 했지만 어느 순간 진이 빠져서 그만뒀다. 50시간, 100시간을 해도 끝나지 않는 게임은 뭐든 사소한 계기로 중단하게 되면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하리라는 야욕으로 책장 위로 모셨다. <디아블로>와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2>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3> <대항해시대2>는 엔딩을 여러 번 봤는데도 주기적으로 다시 플레이하고 싶어지는 게임이다. 이렇게 오래된 게임들을 지금 운영체제에서 플레이하려면 패치를 해야 하지만 그 정도 수고야 기꺼이 감수한다. 디스플레이 설정을 256컬러로 해놓아서 묘하게 된 바탕화면도 꾹 참는다. <발더스 게이트> <플레인 스케이프 토먼트> 역시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한번쯤 더 해보겠다는 기약 속에 머리에 먼지를 쓰고 있다. 책장 꼭대기의 게임들 중 전혀 해보지 않은 것도 있다. 는 일본에서 97년에 나왔지만 국내에서는 몇번의 연기 끝에 뒤늦게 나왔다. 화려한 3D 그래픽의 시대에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졌지만 혼자서 만드는 게임에 대한 꿈을 접을 수는 없다. 다음 가 나올 때까지는 자리를 지킬 것이다. <탱구와 울라숑> 같은 어린이용 게임은 선물할 애아빠 친구를 만나질 못해 몇달째 지지부진 있고, <마그나 카르타>처럼 단순히 패키지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박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게임도 있다. 명예롭게 은퇴해 안락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게임, 잘 나가다 삐끗해 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게임, 아직도 전성기가 끝나려면 먼 게임, 아직 데뷔를 못한 유망주들, 마음에 맞는 새 주인을 찾아가려는 게임, 팔을 활짝 벌려서 가둘 수 있는 작은 공간에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창고 깊은 곳 박스 속에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

DVD 서플먼트의 은밀한 매력(5)

서플먼트의 매력 4 <점원들>과 코멘터리 : 폭로!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뉴저지의 한 편의점을 배경으로 두 점원과 주변 인물들의 삶을 그린 케빈 스미스 감독의 <점원들>(스펙트럼 출시)은 미국 독립영화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데뷔작 중 하나로 꼽힌다. 21일 만에 단돈 2만6800달러를 들여 만들어낸 이 영화는 94년 선댄스영화제와 칸영화제에서 각각 상을 받으며 돌풍을 일으켰고, 훗날 케빈 스미스는 독립영화계의 기린아로 떠올랐기 때문. 이 영화는 밴쿠버의 영화학교를 중퇴한 경력이 전부였던 스미스와 그의 아마추어 친구들이 스탭과 배우로 참여해 제작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때의 스탭과 배우 대부분은 이후 스미스가 만든 <몰래츠> <체이싱 아미> <도그마> 등에 계속 참여해왔다. 이 DVD 버전의 오디오 코멘터리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바로 이들이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감독이자 사일런트 밥으로 출연했던 스미스를 비롯해 프로듀서이자 편집, 사운드를 담당한 스코트 모시어, 단테 역의 브라이언 오할러런, 제이 역의 제이슨 뮤즈, 촬영감독 데이비드 클라인, 촬영조수 빈센트 퍼라이라, 초반 애니메이션을 담당한 월터 플래너건 등. 이 떠들썩한 오디오 코멘터리의 녹음은 95년작인 <몰래츠>의 촬영세트에서 이뤄졌다. DVD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당시에 무슨 코멘터리, 라고 의심할 필요는 없다. 당시의 녹음은 레이저디스크(LD)를 위한 것이었으니. 이 코멘터리를 듣고 있으면 90분이 넘는 장편영화를 2만6800달러로 만든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예산에 비해 워낙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탓에 현장 캐스팅은 필수적이었다. 제작진은 촬영장인 편의점 주인을 비롯해 오디션 장소를 제공했던 한 클럽 주인 부부, 촬영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백수까지 긁어모아야 했다. 이걸로도 모자라 모시어, 클라인 등 스탭까지 여러 장면에 등장해 중요한 연기를 펼쳤다. 퍼라이라는 본인은 물론 형수와 조카까지 등장시켰고, 플래너건은 출연하기로 약속했던 배우가 펑크를 낼 때마다 등장했다(영화 크레딧에는 그의 이름이 4번이나 등장한다). 또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거의 대부분의 촬영을 뉴저지의 편의점 안팎에서 찍었으며, 할로겐 조명 대신 형광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카드깡’까지 해가며 제작비를 조달한 스미스와 친구들이 고약한 상황에서 분투하면서 영화를 찍었던 이유 또한 이 코멘터리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스미스의 영화학교 친구이거나 스미스의 고향인 뉴저지의 동네 친구들이었다. 또 이들이 영화를 찍은 것은 뭔가 거창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제이 역의 제이슨 뮤즈는 캐릭터와 실제의 삶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방탕한 성격의 소유자인지라, 촬영 중에도 걸핏하면 술이나 마약에 절어 촬영장에 엎어져 있었는데(이 코멘터리를 녹음할 때도 그는 술에 취해 뻗어 있었다), 스탭들은 이를 즐거운 일로만 추억하고 있다. 점원이 포르노영화를 보는 장면에서 ‘효과음’을 스미스와 동료가 직접 ‘연기’한 것은 단지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영화를 하고는 싶지만, 배운 게 없고 돈이 없어서’라고 체념하고 있는 분이라면, <점원들>을 코멘터리와 함께 보면서 도저한 유희정신과 아마추어리즘의 승리를 확인하시라. 문석 ssoony@hani.co.kr 추천작 베스트 3 ▣ <부기 나이트>_ 시넥서스 두 가지 버전의 코멘터리를 갖고 있다. 하나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이 영화장면을 해설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배우들과 각각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흥미로운 버전은 후자쪽이다. 정교하게 편집돼 있어 이들이 한데 모여 얘기를 나눈 것처럼 들리지만, 앤더슨은 마크 월버그, 줄리언 무어, 돈 치들, 윌리엄 H. 메이시, 헤더 그레이엄 등 배우들의 집을 찾거나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영화를 보며 대화를 나눴다. 때때로 이들은 술에 취해서 헛소리를 지껄이기도 하는데, 영화장면보다 이들이 떠드는 모습이 더 궁금해질 정도다. ▣ <블러드 심플>_ CINE KOREA 이 코멘터리의 주인공은 자신이 ‘포에버 영’이란 회사의 케네스 로링이라고 소개하는데, 그가 소개하는 이 영화의 제작과정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예컨대, 남녀주인공이 차 안에 앉아 있는 첫 장면을 해설하면서 그는 “상대편 차 불빛을 연출하기 위해 모두 거꾸로 찍었고, 거꾸로 찍으려면 화면이 뒤집히므로, 자동차를 천장에 매달아 찍었다. 배우들 머리는 무스로 고정시켰고, 피가 머리로 쏠리는 바람에 고생했다”고 설명한다. 이때부터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 배꼽을 잡게 된다. ▣ <소름>_ 아틀란타 이 영화의 코멘터리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등장해 윤종찬 감독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꾸며져 있다 (<소름>은 정성일의 2001년 베스트 한국영화다). 이 코멘터리를 듣고 있다보면, 우리가 영화에서 놓치고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느끼게 된다. “이 장면에서 저는… 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독님께서 이 장면을 이렇게 하신 이유가 있는지요”라는 정씨 특유의 말투와 윤종찬 감독의 느긋하면서 유머있는 대답이 어우러져, 영화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밀애(密愛)밀담(密談) 변영주,전경린과 스치다(3)

# 주부생활 혹은 부인 내실의 철학 변: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그대로 제목으로 쓰자고 고집했는데 팬 카페에서도 오타를 낸 걸 보고 포기했다. 그 다음 후보는 <주부생활>이었고. 전: 출판사에 내가 보낸 다른 제목은 장롱 속에 걸린 여자 원피스를 그린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제목을 따서 <부인 내실의 철학>이었다. 변: 또 하나의 가제도 그림에서 땄다. <무엇이 이 여성을 그토록 활기차고 신나게 만들었는가>라고. (폭소) 원작있는 작품을 영화화할 때는 모두가 동지, 비판자, 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그래서 내가 읽은 원작에서 내가 좋아한 것만 취하기로 했다. 문어체이면서도 권력적이지 않은 대사도 그중 하나였다. 대사가 너무 길고 어렵다고 불평하면 “원작 표지를 봐라, 얼마나 중요하면 앞에 나왔겠냐”고 우겼다. 전: 그래도 역시 문어체 대사가 좀 겉돌지 않았나 그런데 어떤 동료작가가 원래 불륜 중에는 그런 식으로 대화한다고 하더라. (웃음) 변: 그러나 무엇보다 아까운 것은 디테일이 아니라 원작의 운명성이다. 염소 모는 할머니를 비롯해 나비마을에 가득한 원혼과 운명성을 안고 갈 것인가 버릴 것인가를 제일 먼저 선택해야 했다. 영화는 매우 심리적인 영화가 됐을 거다. 전: 프랑스 예술영화처럼 바다를 그렇게 싫어하는 감독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다니 그것도 운명 같다. 공간은 중요하다. 내가 소심해서 그런지 한국 여자가 남편이 바람 한번 피웠다고 이혼한다고 나서면 시댁도 친정도 지지하지 않는다. 그저 부유하다 스스로 나빠지면서 그 상황을 깨는 게 참 비장한 건데, 그것은 외부의 도움없인 불가능하다. 매어둔 염소들이 서로 목을 졸라 죽는 나비마을의 귀기가 바로 그런 외부적 힘이고 독자를 납득시킨다. 어떤 이는 굳이 남편의 부정을 앞세우지 않고 여자가 그냥 바람나면 안 되냐고 반문하는데, 말은 그렇게 해도 그런 필연성이 없으면 아무도 감정을 이입시키지 않는다. 한 여자의 테러로 미흔의 운명이 짜여지면서 독자는 채 파악도 못하고 설득당하는 거다. 변: 그런 맥락에서 외피를 걷어내면 원작은 전경린이라는 작가의 주술 같은 이야기다. 바람 한 줄기도 미흔에게 주술을 거는. 전: 처음 그 마을에 간 미흔은 무서워서 집 밖에도 못 나간다. 변: 크리스마스 이브의 첫 장면은 남편의 불륜으로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영우(남편의 여자) 때문에 중요하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동화는 귀신이 스크루지를 찾아와 끌고 가는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영우는 성탄에 나타나 미흔에게 “니가 만약 니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다면”을 묻는 귀신이다. 영우는 미흔이 후회하지 않고 딴길로 질러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영우는 미흔의 꿈이어도 좋다. 상상으로는 가장 유명한 스타 배우를 영우 역에 캐스팅했다. 영우는 “당신 남편이 내게 뭐랬는지 알아 내가 통째로 빨아들인대” 하면서 저주를, 주술을 거는 거다. 네가 이 마법에서 풀리려면 너도 조이는 수밖에 없다고. 남편의 불륜이 아니라 영우의 저주가 미흔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하고 생각했다. 더 강렬하게 찍었다면 주술의 의도가 전해졌을 텐데 첫 촬영분이라 온갖 악조건이 겹쳐 맘만큼 못 찍었다. 전: 소설은 미흔이 마을로 이사오는 장면으로 시작해 보기도 했지만, 그건 너무 설명적이었다. 크리스마스 사건부터 배치하니 확 흡인력이 생기더라. 굉장한 공감을 얻었다. 출판사에서 영우와 효경의 전일담을 따로 써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영우 같은 여자애들 많다. 유부남들이 “나도 한번 혼났잖아” 하는 캐릭터다. 유부남들은 젊은 여자에 호기심이 있지만 먼저 접근해 오는 여자는 자기 힘으로 나중에 통제가 안 될 것 같아 겁을 먹는다고 하더라. 변: <내 생에…> 다음에 쓴 <열정의 습관>을 보면 나이 든 영우가 몇명 나온다. (웃음) 전: 영화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두 장면이다. 전라의 미흔이 모텔 방에서 홀연히 일어서서 창가로 다가가 밖을 바라볼 때 그녀는 마치 포르르 나비가 되어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맨 끝에 미흔이 증명사진을 찍을 때 김윤진씨의 웃음도 너무 맑고 순수했다. 소설에 없는 순간들이라 인상적이었나 아니다. 소설에 있었다 해도, 있었던 장면이라고 생각되는 영화 속 장면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새로웠다. #열정과 영원 변: ‘영원히’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제일 무서운 후배가 평생 영화할 거라는 애들이다. 영화가 무슨 죄가 그렇게 많아서. (웃음) 전: 영원은 사실 평생 한 마을에서 한 가지 일만 하다 죽었던 우리 이전 세대가 말할 수 있는 단어였다. 예전에는 영원이라니 웬 낡아빠진 이야기인가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어떤 순간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상황에서도 영원이 생길 수 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다시 태어날지도 모른다. 일생일대의 일들, 그것이 영원이 아닐까.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밀애(密愛)밀담(密談) 변영주,전경린과 스치다(1)

각색은 예정된 배반이고 정의로운 배신이다. 작가 전경린의 두 번째 장편 픽션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은 감독 변영주의 첫 번째 픽션 <밀애>가 되었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곡절이 많았던 까닭에, 두 사람은 10월28일 시사회날에야 상견례를 나눴다. 그리고 열흘 뒤 마련된 테이블은 오후의 다과회처럼 태평한 자리만은 아니었다. 작가는 스크린에 생살을 드러낸 ‘옛사랑’의 충격으로 아직 멀미 중이었고, 감독은 영화로 몸을 옮기며 버릴 수밖에 없었던 진실의 조각이 눈을 찌를까봐 원작소설을 다시 들추는 일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한번쯤 만나야 했다. 미흔, 얄팍하고 투명한 몸을 갖고 가까운 데를 가도 아주 멀리 갈 것처럼 걷던 그 여자는 두 사람 모두의 누이였으므로. # 미흔, 그 여자에 대하여 전경린(이하 전): 미흔, 흔하지 않지만 튀지도 않는 이름이다. 온순하고 평범하면서도 열정의 희미한 기운이 느껴지는. 중산층에서 잘 보호받으며 별스런 경험없이 살아온 여자들은 사실 남편에게 배반당해도 얼른 출구를 못 찾는다. 가차없이 정리하고 제 갈 길을 가는 게 리얼리티가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러지 못하는 게 리얼리티다. 미흔은 남해로 가서 부희나 휴게소 여자의 경험을 접하고 자기도 훼손되면서 열리는 출구를 받아들인다. 자기 열정에 브레이크를 놓아버리면서. 변영주(이하 변): 그녀는 내가 그려도 되나 싶게 매력적인 여자다. 신혜은 PD가 날 감독으로 원한 것도 내가 미흔에게 반해서일 거다. 20, 30대 여자들이 미흔의 이야기에 “이 여자 바보 아냐 나라면 바로 이혼해. 그래서 결국 택하는 게 고작 맞바람이야”라고 할지 모르지만, 대개의 여자들은 그러지 못한다. 엄청나게 계급이 떨어지는 거니까. 미흔의 결말은 아마 보험외판원일 거다. 혼자 되는 것도 큰 공포일 것이다. 미흔은 ‘난년’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여자들은 인규 같은 남자도 못 만나고, 가사노동에 필이 꽂힌다든가 하며 죽은 채로 살아버린다. 사람들은 정해진 길을 간다. 미흔이 아름다운 것은 허방을 디딘 뒤 뒤돌아가지 않고 잘못된 한 걸음부터 계속 그 길을 갔기 때문이다. 전: 소설과 영화가 나온 시점은 아주 다르다. 소설을 낸 1999년만 해도 불륜이 이렇게 대중화되지는 않았다. 아니, 드라마 얘기가 아니라 현실의 많은 여자들이 허용되지 않는 사랑에 큰 긴장감 없이, 목숨 걸지 않으면서 빠져든다. 심지어 “내 인생의 추억을 갖고 싶었어”라고 말하면서. 그만큼 가정의 틈은 벌어졌다. 예전엔 여자가 불륜을 했다면 파멸이었지만 지금은 계속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변: 20대 ‘꼬마’들이 “나름대로 아름다운 연애인데 왜 죽였냐”는 반응을 보이는 걸 보고, 이애들은 이걸 연애로 보는구나, 우리 세대보다 훨씬 경계선이 없구나 했다. 전: 영화를 본 여성 작가들이 남편들이 아내를 다시 보게 만들고 여자들은 불륜에 빠지고픈 욕망을 느끼게 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불평을 하기도 했다. 변: 그분들은 이런 영화가 필요없는 분들이고 내가 실제로 상대해야 하는 분들은 “어쩜 저 여자 저럴 수 있냐”고 말할 분들이다. 내가 제일 말을 걸고 싶은 관객은 노래교실 수업을 위안으로 삼는 아주머니들이다. 전: 그분들은 “복도 많은 년” 하면서 가슴 아플지도 모르겠다. (웃음) 아는 후배가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닌데 마흔 전에 남편 아닌 남자랑 자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영화나 소설의 영향이 아니라 그저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액자에 넣고 걸어두듯이. 변: <밀애>가 원한 건 깃발이 되는 게 아니라 혼란이었다. 너무 당연히 여겼던 것을 의혹하기 시작하는 문을 열어주는 역할까지가 몫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영화를 보고 아내들이 바람나면 어쩌냐고 하면 안심시켰다. “영화는 그런 힘이 없다”고. 전: 이런 사랑은 영화나 소설에서 많았다. 그러나 그것을 주로 쓴 것은 남자들이었고 남자 작가들이 써가는 동안 여자들은 사이렌이 되고 마녀가 되고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갔다. 그녀들이 파멸의 길을 그리 당당히 갈 때 거기 있는 필연성을 드러내려고 했다. 변: 영화에서 빠진 장면 중 미흔과 휴게소 여자가 술 먹는 장면을 무척 아꼈다. 거의 둘이 연애하는 분위기라 “미흔이는 양성애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휴게소 여자가 매맞고 둘이 대화하는 장면도 끈끈하다. 음악도 로맨틱한 걸로 고집했다. 김윤진씨가 “비가 올 것 같아요” 하고도 내가 컷을 안 부르니 “키스라도 하란 말이야” 하고 소리치더라. (웃음) 전: 별탈없이 산다는 것은 그만큼 도덕에 붙들려 통제받는 거다. 거기서 나간 여자들은 대신 자유로운 경험을 하고 누구도 그에 대해 뭐라 할 수 없는 반대급부를 얻는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아름다운 시절> <과거가 없는 남자> <남인사십>
<곰의 키스> <작은 마을의 봄> <지옥같은 우리집>

<아름다운 시절> The Best of Times 아시아영화의 창/대만- 일본/ 2002년/ 109분 감독 장초치/ 오후2시 대영1관   서글픈 한숨이 희미하게 배어든 아침의 공기는 <아름다운 시절>을 내내 떠나지 않는다. 마땅히 아름다운 시절을 누리고 있어야 할 십대 아이들이 결코 아름답지 못한 시간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드라마같은 내레이션에서 시작해 차츰 필름 누아르의 그늘을 더하는 <아름다운 시절>은 이처럼 힘들여 잡지 않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말, 근거없는 희망 아래 숨어든 우울한 한때를 잡아내는 영화다. 첫 장면을 꼭 기억해두고 싶은 영화가 있다. 막 어둠이 걷히기 시작할 무렵, 낮고 맑게 깔리는 음악 속에 하루를 시작하는 소음이 섞여들고, 카메라가 부엌과 식당과 방을 침착하게 오가는 <아름다운 시절>이 바로 그런 영화다. 어느 집에나 비슷하게 찾아올 것 같은 아침. 그러나 서글픈 한숨이 희미하게 배어든 그 아침의 공기는 <아름다운 시절>을 내내 떠나지 않는다. 마땅히 아름다운 시절을 누리고 있어야 할 십대 아이들이 결코 아름답지 못한 시간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드라마같은 내레이션에서 시작해 차츰 필름 누아르의 그늘을 더하는 <아름다운 시절>은 이처럼 힘들여 잡지 않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말, 근거없는 희망 아래 숨어든 우울한 한때를 잡아내는 영화다. 웨이와 지에는 단짝 친구처럼 지내는 사촌형제다. 불치병으로 죽은 어머니와 똑같은 병을 앓고 있는 누이, 무력한 아버지를 둔 웨이는 밤마다 술집 앞에서 손님을 유인하거나 대리주차를 하면서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되뇌인다. 그는 그늘진 집안에 숨쉬고 있는 죽음을 애써 피해다닌다. 지에는 자신이 물건을 바꾸는 마술을 할 줄 안다고 믿는 불같은 성격의 소년이다. 폭력조직의 수금원이 된 두 소년은 첫번째 임무를 무사히 완수하고 권총 한 자루를 상으로 받지만, 두번째 임무 도중 지에가 그 권총으로 또다른 조직의 보스를 살해하고 만다. 웨이와 지에는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한적한 바닷가로 탈출한다. 한가로운 도피 생활은 잠깐. 아직 비열하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두 소년은 순진한 믿음 때문에 죽음을 향해 걸어들어가게 된다. 웨이와 지에가 어른들 눈을 피해 은밀한 즐거움을 공유했던 골목길과 강가의 댐은 그들이 모르는 사이 살아남기 위해 헤쳐나가야 하는 미로로 변해버린 것이다. 두 소년 중 비교적 사려깊은 웨이는 영화의 내레이터 역할을 하는 아이다. 아픈 누나와 보내는 저녁의 노을이나 환상처럼 햇빛을 반사하는 물방울과 함께 흐르는 열 아홉 소년의 이야기에는 이상하게도 꿈이 없다. 열 아홉에 벌써 주저앉은 소년. 그가 앞으로 살아야 하는 수십년은 아무런 기대가 없기 때문에, 노인으로 보내는 십년만큼이나 지겨울 것이다. 그때 권총 한자루가 끼어든다. 그것은 조직의 표식이며, 그 안에서 오를 수 있는 첫계단의 표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부패한 자들의 손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99년작 <어둠 속의 빛>에서도 필름누아르와 가족드라마의 틀 속에서 대만 청춘의 현실을 직시했던 장 초치는 또한번 서글프게 한숨을 쉰다. 이 권총이 그들 꿈의 끝인 걸까. 아픈 누나마저 떠나버린 뒤에 아직도 그들을 붙잡을 무언가가 남아있는 걸까. 그러나 <어둠 속의 빛>에서와 마찬가지로 장 초치의 젊음은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없이 되살아난다. 아직 완전히 어두워진 것은 아니라면서. 시간의 흐름마저 바꾸면서 그들 앞에 남아있는 시간 속으로 뛰어드는 두 소년의 모습은, 첫장면과 마찬가지로 꼭 기억해두고 싶을 것이다. 헤엄치며 환호하는 웨이와 지에는 말로만 되풀이했던 마법을 정말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김현정 기자   <과거가 없는 남자> The Man without a Past 월드 시네마/핀란드/2002년/97분/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오후5시 부산1관   분명한 것은 <과거가 없는 남자>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바치는 행복의 판타지이자, 무뚝뚝하지만 진심 어린 응원가라는 점이다. 직업도 돈도 기억도 없는 남자의 생존을 향한 몸부림은 번번이 사회의 벽에 부딪히지만, 결국 사랑이 그를 구원한다는 이야기가, 시종 쓸쓸하고도 우스꽝스럽게 이어진다.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따뜻해졌다. <성냥 공장 소녀>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뉴욕에 가다> <유하> 등 북구의 기이한 희비극으로 잘 알려진 카우리스마키는 그런 평판에 대해 예의 그 뚱한 얼굴로 “현실이 너무 비극적이기 때문에 영화는 해피엔딩이길 바랬다”고 말한다. 그건 사실인 것 같다. 불경기의 한파 속에서 직장을 잃고 자꾸만 더 낮은 계급으로 추락하는 이들에겐 위무가 필요하다. 카우리스마키는 헬싱키 실직 노동자들의 가슴에 낀 서릿발을 녹여낼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화를 구상하기로 했고, 그래서 나온 작품이 <과거가 없는 남자>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헬싱키에 온 남자는 밤길에 불량배를 만나 돈을 빼앗기고 죽도록 얻어 맞는다. 아니 그는 죽는다. 심장 박동이 멈춰 사망 진단이 내려지는데, 죽은 줄만 알았던 그 남자가 병상에서 벌떡 일어난다. 문제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남자는 자신을 구해준 홈리스 무리에 섞여 살게 되고, 매일 그들에게 찬송가를 불러주고 음식을 나눠주는 구세군 여성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우연히 신원을 파악하게 된 남자는 자신에게 아내와 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에겐 엄연히 ‘과거’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보이지 않던 인간이 보인다는 의미에서 <투명인간>의 리메이크라거나, 이 모든 이야기가 주인공이 죽은 뒤에 꾼 꿈이라는 해석들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가 없는 남자>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바치는 행복의 판타지이자, 무뚝뚝하지만 진심 어린 응원가라는 점이다. 직업도 돈도 기억도 없는 남자의 생존을 향한 몸부림은 번번이 사회의 벽에 부딪히지만, 결국 사랑이 그를 구원한다는 이야기가, 시종 쓸쓸하고도 우스꽝스럽게 이어진다.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기 전에는 절대 그 속마음을 헤아리기 힘든 ‘포커 페이스’의 인물들, 여기에 최소한의 동선과 최소한의 장식, 천연덕스러운 유머와 풍자가 조응하고 있는 <과거가 없는 남자>는 영락없는 카우리스마키표 영화다. 감독의 페르소나인 남녀 배우의 무뚝뚝하기 이를데 없는 연기에 킬킬대고, ‘레닌그라드 카우보이’를 연상시키는 구세군 밴드의 쿵짝거리는 연주에 어깨를 들썩대고, 세상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무정부주의자의 뒷모습에 탄식하다 보면, 카우리스마키가 이 시대의 위대한 작가이자 위대한 엔터테이너라는 사실에 절로 수긍하게 될 것이다. <과거가 없는 남자>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평단과 관객의 가장 열렬하고 고른 지지를 받았던 작품으로, 심사위원 대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박은영 기자   <남인사십> July Rhapsody 아시아영화의 창/홍콩/ 2001년/ 103분 감독 허안화/ 오후2시 메가박스9 방황하는 중년남자를 그린 흔한 멜로물을 연상할 만한 영화지만 허안화는 되풀이되는 사랑 이야기에 세월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마흔에 이른 장학우와 매염방은 어떤 선택도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좌절감이 배어나올 때 허안화는 멜로드라마의 원숙한 경지이다. 80년대말부터 90년대초 사이 홍콩영화의 매력에 빠진 적 있는 사람이라면 <열혈남아>의 장학우와 <인지구>의 매염방이 40대 부부로 등장하는 <남인사십>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영 늙지 않고 철없는 젊은이로 남을 것 같던 장학우가 중년에 접어든 남자로 나오는 것부터 <남인사십>이라는 제목을 곱씹게 만드는 이 영화는 <투분노해> <객도추한> 등으로 널리 알려진 80년대 홍콩 뉴웨이브의 대표적 여성감독 허안화의 신작. 1995년작 <여인사십>에서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를 모시는 중년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허안화는 <남인사십>에서 유혹에 흔들리는 중년남자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주인공 장학우는 고등학교 선생님. 아내와 두 아들이 있는 평범한 가장인 그는 자신을 좋아하는 여고생에게 애써 냉담한 척한다. 나이 마흔을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 ‘불혹’이라 부른 것은 뼈 있는 농담일까? 간신히 유혹에 견디고 있는 남자에게 어느 날 아내 매염방은 자신의 옛 애인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아내의 옛 애인은 장학우와 매염방이 함께 고등학교를 다닐 때 그들의 선생님이었던 인물. 매염방은 그때 유부남인 선생님의 아이를 임신했고 그녀를 짝사랑했던 장학우는 매염방의 출산을 돕기 위해 함께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결국 결혼에 이르렀다. 이제 이혼도 하고 늙고 병들어 죽을 날만 바라보는 아내의 옛 애인, 아내는 갈 곳 없는 이 남자를 임종까지 지켜주고 싶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답하는 장학우, 그날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여고생을 만나기 시작한다. 방황하는 중년남자를 그린 흔한 멜로물을 연상할 만한 영화지만 허안화는 되풀이되는 사랑 이야기에 세월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마흔에 이른 장학우와 매염방은 어떤 선택도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좌절감이 배어나올 때 허안화는 멜로드라마의 원숙한 경지이다. 남동철 기자 <곰의 키스> Bear’s Kiss 월드 시네마/ 독일-러시아/ 2001년/ 103분 감독 세르게이 보드로프/ 오후 8시 메가박스 5관 <곰의 키스>는 인종이나 연령의 차이가 아니라 동물과 인간이라는 건널수없는 강을 사이에 둔 안타까운 연인의 사랑을 담은 독특한 멜로다. 떠돌이라는 태생적 비극성을 안은 서커스단을 배경으로 하고 때때로 비극적인 정조를 띄지만 영화는 결국 그들만의 동화적인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서커스단 소녀 롤라는 러시아에서 귀여운 새끼곰 마샤를 친구로 맞는다. 엄마라고 믿고 지내던 단원이 어느날 밤 편지한장만 남기고 사라지자 롤라는 오로지 마샤밖에 의지할곳이 없다. 그렇게 서커스단이 스웨덴으로 독일로 스페인으로 옮겨다니는동안 어린 롤라는 아가씨로 자라나고, 마샤 역시 롤라에게 사다리를 올려줄만큼 큰 키에 위협적인 앞발과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큰곰으로 성장한다. 모든 생활을 마샤와 함께 하며 그에게 단순한 애완동물 이상의 감정을 느껴가던 중 마샤는 갑자기 건장한 청년의 모습으로 롤라 앞에 나타난다. 때로는 사람의 모습으로 때로는 곰의 모습으로 매혹적인 사랑을 나누는 두사람. 스페인에서 만난 한 주술사는 “그가 곧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을 던지고 사라진다. <곰의 키스>는 인종이나 연령의 차이가 아니라 동물과 인간이라는 건널수없는 강을 사이에 둔 안타까운 연인의 사랑을 담은 독특한 멜로다. 떠돌이라는 태생적 비극성을 안은 서커스단을 배경으로 하고 때때로 비극적인 정조를 띄지만 영화는 결국 그들만의 동화적인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또한 곰의 모습을 한 마샤와 롤라가 부퉁켜안고 추는 서정적이고 따뜻한 춤을 보고 있노라면 수간 (獸姦)같은 선정적인 느낌이 끼어들 틈이 없다. 남자주인공이자 감독 세르게이 보드로프의 아들인 세르게이 보드로프 주니어는 최근 코카서스 산맥에서 발생한 눈사태로 운명을 달리해 이 작품은 그의 유작이 되었다. 백은하기자 <작은 마을의 봄> Springtime in a Small Town 아시아영화의 창/ 중국/ 2002년/ 116분 감독 티엔 주앙주앙/ 오전 11시 대영시네마 1관 중국 5세대 감독인 티엔 주앙주앙이 자국에서 상영금지조치 당한 <푸른 연>이후 10년만에 선보이는 복귀작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작은 마을의 봄>은 1948년 제작당시 “소자본주의 계급의 병폐적인 심리를 부각해 해방전쟁인민운동의 시대정신을 퇴색시켰다”는 비판과 함께 자국내에서는 상영불가 판정을 받았던 페이무감독의 <작은 마을의 봄>(小城之春)을 리메이크한 작품. 길고 힘들었던 겨울이 가고 전쟁의 페허더미속에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던 부부에게 손님이 찾아온다. 그러나 도시에서 온 친구와 부인은 어린시절 사랑의 감정을 나누었던 사이. 병약해 약을 달고 살아가는 남편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만을 지키며 시체처럼 살아가던 아내에게 다시 찾아온 옛 연인은 가슴설레는 봄비와 같다. 그의 등장으로 겨울같던 집안에 오랜만에 활력이 돌지만 아슬아슬한 감정의 경계를 타고 우정과 사랑 사이에 갈등하는 친구는 끝내 친구의 아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동생의 생일날, 흥청망청 취한 아내와 친구는 자신들의 감정을 남편에게 들키고, 그들의 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남편은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한다. 중국 5세대 감독인 티엔 주앙주앙이 자국에서 상영금지조치 당한 <푸른 연>이후 10년만에 선보이는 복귀작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작은 마을의 봄>은 1948년 제작당시 “소자본주의 계급의 병폐적인 심리를 부각해 해방전쟁인민운동의 시대정신을 퇴색시켰다”는 비판과 함께 자국내에서는 상영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1980년대 이탈리아에서 상영되어 세계의 관심을 끌며 재발견된 페이무감독의 <작은 마을의 봄>(小城之春)을 리메이크한 작품. <와호장룡>에서 시나리오 및 각색을 맡았던 아청, 의상디자인을 맡았던 예진티엔, <화양연화>에서 촬영을 맡았던 리핑빈 등 영화계에서 실력있는 스탭들이 작업에 참여했다. 2002년 베니스영화제 업스트림부분 산마르코상 수상.  백은하 기자 <지옥같은 우리집> All Hell Let Loose 월드 시네마/ 스웨덴 / 2002년/ 88분 감독 수잔 타슬리미/ 오후 8시 대영1 스웨덴에서 살고 있는 아랍 이민가정으로 돋보기를 들이민 <지옥같은 우리 집>은 끝까지 어떠한 해결책도 감동적인 화합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저 끔찍하고 지옥같지만 살아가야하는것, 뗄레야 뗄수 없는것. 그것이 가족이란 집단이 가진 불변의 속성임을 눈을 돌리지 말고 직시하라고 한다. 행복한 가족은 없다. 덜 불행한 가족은 있겠지만. <지옥같은 우리 집>이 펼쳐놓는 가족앨범은 말 그대로 ‘지옥도’에 ‘콩가루’범벅이다. 컴플렉스에 가득차 모든일을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다혈질의 가장, 재봉틀 정비사와 바람이 난 엄마, 포르노 잡지에서 담배까지, 나쁜짓만 골라하는 사춘기 막내아들, 어떻게 하면 금욕생활을 강요하는 아버지 눈을 피해 남자친구와 섹스를 할수 있을까만 고민하는 작은딸, 주책맞고 말많은 할머니. 이처럼 하나같이 ‘따로국밥’인 가족들의 갈등은 미국에서 포르노 영화배우와 스트리퍼로 일하던 큰딸 미누의 귀국으로 절정을 맞는다. 순결이데올로기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아버지는 큰딸이 미국에서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알기를 두려워하며 낙태 후 미국으로 떠나 고되게 살아온 큰딸은 이 편견 가득한 고향이 진저리 난다. 결국 작은 딸의 결혼식은 미누의 갑작스런 스트립쇼 한판으로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런 소동 후에도 가족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 스웨덴에서 살고 있는 아랍 이민가정으로 돋보기를 들이민 <지옥같은 우리 집>은 끝까지 어떠한 해결책도 감동적인 화합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저 끔찍하고 지옥같지만 살아가야하는것, 뗄레야 뗄수 없는것. 그것이 가족이란 집단이 가진 불변의 속성임을 눈을 돌리지 말고 직시하라고 한다. 이란의 테헤란 대학에서 연기와 연출을 공부하고 스웨덴에서 영화작업을 시작한 배우출신 감독 수잔 타슬리미의 데뷔작. 백은하 기자

<질투는 나의 힘>의 배우 배종옥

배종옥은 차가움과 따뜻함을 동시에 품은 배우다. 동그랗고 귀여운 눈매는 세상 누구에게라도 살갑게 굴 것처럼 다정해 보이지만, 강단지고 야무진 그의 목소리와 말투에서는 가끔 서늘한 바람이 일곤 한다. 그러나 <질투는 나의 힘>과 한 철을 보낸 그녀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비단 어려지고 맑아진 얼굴 뿐이 아니다. “원래 나란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계획없이 사는걸 싫어했거든요. 난 이래야 돼, 이렇게 살아야 돼,하는 스스로 제한도 많은 사람이었죠. 그런데 성연을 연기하고 나서는 좀 달라졌어요. 자유롭게 살고 싶어졌달까? 여유가 생겼달까?” 배종옥은 그런 변화의 은인으로 박찬옥 감독을 꼽았다. “박찬옥 감독이 하루는 ‘종옥씨 한 2, 3일만 세수 안하고 살아봐’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해봤죠, 음… 그렇게 사는 삶도 괜찮던데요.(웃음)” 하지만 삶의 태도의 변화가 리버럴하면서도 아이같은 성연을 위한 준비과정이었다면 그 위에 색깔을 칠하는 단계 역시 만만하지는 않았다. “성연은 아무 것도 해서는 안되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해야하는 캐릭터였어요. 힘든 역할이죠. 사실 오랫동안 배우생활을 하면 인물을 자꾸 유형화하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박찬옥 감독은 다른 면들에 대해 자꾸 물어와요. 그 과정이 배역을 제대로 해석하고, 유형화를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오는 부산에다, 처음으로 참가하는 영화제는 “레드 카펫 밟는 기분도 색달랐고, 축제 기분이 느껴지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영화에다 처음 관객과의 조우를 앞두고 떨릴 법도 한데, 이 만년 소녀같은 배우는 멋진 선물을 준비하고 서프라이즈 파티라도 기다리는 사람같다. “영화가 만족스럽고 자신있어어 그런지 떨리지는 않구요, 기대되고 신나고 재밌고 그런데요?” 그녀의 선물이 궁금하다면 지금이라도 바로 티켓부스로 발을 옮기시길. 아니면 개봉 예정인 내년 봄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을 감수해야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