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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한국영상자료원, 예산 및 인력 확충 시급

“한국영상자료원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여성영화인모임, 영화인회의,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영화계 주요 단체들은 최근 ‘조선희 신임 한국영상자료원장에게 바란다’는 공개서한을 통해 영상자료의 체계적 보존 및 활용을 위해서는 예산 및 인력 확충이 시급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들 단체들은 공개서한에서 한국영상자료원의 2007년 종합영상아카이브센터로의 이전 예산이 국고가 아니라 “실행시기와 규모가 불투명한” 영화발전기금으로 편성되고, 시설 확장에 따른 소요 인력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호주는 230명, 중국은 베이징에만 311명, 러시아는 600명, 베트남은 160명, 영국은 150명, 북한은 250명의 인력이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영상자료원은 고작 직원 수가 29명에 불과하다”면서 필름 복원장비는 물론이고 현상, 인화시설, 텔레시네 등 기본 장비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영화계 단체들은 “많은 영화인들과 국민들이 영상자료원의 존재를 아예 모르거나 안다 할지라도 영화필름을 보존하는 창고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며, 한국영상자료원이 적극적인 마케팅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영상자료의 수집과 보존에 그치지 말고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창구와 아이디어 개발이 절실하다는 것. 이전 뒤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더했다. 국내 장편 극영화를 중심으로 프린트를 발굴하고 상영하는 운영 방식 또한 도마에 올랐다. 4개 단체들은 국내외 시네마테크와의 연계를 통해 그동안 “아카이브의 사각지대로 존재했던 독립영화, 해외 예술영화, 다큐멘터리 부문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면서 “한국영상자료원의 힘만으로 부족하다면 언제든지 저희 영화계에 손을 내밀어달라”고 말했다.

마틴 스코시즈 작품에서 발견되는 차용·참조·오마주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프로젝트에 대해 아직까지 파라마운트가 관심을 갖고 있을 시절, 제작자 제프리 카첸버그와 마이클 아이즈너가 마틴 스코시즈를 찾아와 나눴다는 대화의 한 토막. 지지부진한 상황에 낙담해 있는 스코시즈에게 두 사람은 몇개의 대본 중 하나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베벌리힐스 캅>, 이걸 해볼 생각은 없어요?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을 맡기로 한 영화인데….” 그러자 스코시즈가 어떤 내용이냐고 물었고, 그들은 ‘물 떠난 물고기의 이야기’라며 “왜 있잖아요. 촌 동네 경찰이 뉴욕에 와서 맹활약한다는 이야기 말이에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어지는 스코시즈의 (퉁명스러웠을) 대답. “그건 돈 시겔의 <쿠간의 협박>이잖아요.” 그러자 그들의 (당황스러워했을) 답변. “아니라니까요, <베벌리힐스 캅>이라니까요.” 그 대화의 깊은 속뜻이야 어찌 됐건, 물 떠난 물고기의 이야기라는 그 말에 스코시즈는 적어도 68년까지 올라가 돈 시겔의 <쿠간의 협박>을 기억해내고야 만다. 스코시즈는 어떤 식으로건 자기 영화를 영화사의 명맥 안에 위치지으려고 한다. 이건 어떤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고, 저건 어떤 영화의 부분을 참조한 것이며 등등 수많은 예를 든다. <분노의 주먹>의 주인공 제이크 라모타를 설명할 때는 “(<워터 프론트>의 주인공) 테리 말론을 연기하는 말론 브랜도를 제이크 라모타가 연기하고, 다시 이를 드 니로가 연기한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일단 관객을 잡아채놓고 종종 무심히 사라져버리는 보이스 오버와 거기에 맞춰 사용되는 정지 화면(예컨대 <좋은 친구들>의 오프닝)은 트뤼포 영화 <쥴 앤 짐>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때때로 화면 구성이 아니라 플롯 자체를 참조한 경우도 있다. <에비에이터>가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과 포개어져 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등 위험이 예고되는 장면마다 그의 영화에 끈질기게 등장하는 붉은 색조의 화면들은 어린 시절 본 마이클 파웰의 영화 색감에 영향을 받아 평생을 갖고 가는 것 중 하나다. 스코시즈가 차용한 것 중에서 인물에 관련되어 가장 유명한 것은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트래비스가 사실은 존 포드가 만든 웨스턴 <수색자>의 주인공 이산의 변형이라는 것이다. 그럴 때, <택시 드라이버>의 방황하는 고독자 트래비스는 조카를 찾아 황야를 헤매는 이산의 그 허망한 표정에 기대어 생각하게 된다. 이번 작품도 그렇다. <디파티드>의 촬영감독, 프로덕션디자이너 등 스탭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스코시즈는 하워드 혹스의 영화 <스카페이스>(스코시즈의 전작 <에비에이터>의 주인공 하워드 휴스가 1932년에 제작한 갱스터영화)에 존경을 바친다는 뜻으로 영화 여기저기에 X(문자라기보다는)무늬를 그어놓았다고 한다. 촬영감독 마이클 볼하우스에 따르면 “그건 죽음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스코시즈가 원했다”는 것이다. <스카페이스>는 유명한 갱 알카포네의 별명이자 그의 얼굴에 난 십자 상처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하지만 빌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콜린(맷 데이먼), 두 남자의 관계를 놓고 생각할 때 <스카페이스>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참조 영화가 한편 있다. 스코시즈의 말대로 <디파티드>가 한편으로 “믿음이 없는 것”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빌리가 마약 중독자를 찾아가 예수가 그려진 액자로 그를 내리칠 때 텔레비전에서는 영화 한편이 잠깐 흘러나오는데, 그건 존 포드의 1935년작 <밀고자>다. 친구를 밀고하여 팔아먹은 주인공 기포가 교회에 들어와 십자가에 걸린 예수상을 향해 양손을 뻗치고 “프랭키! 프랭키! 네 어머니가 날 용서하셨어”라고 슬프게 부르짖으며 죽어가는 라스트신이다. 아마도 빌리와 콜린이 나누어 가진 ‘밀고’라는 모티브에 대해 스코시즈는 그런 식으로라도 또 한번 부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게다가 존 포드는 아일랜드 혈통의 대표적 감독이 아니던가. 사실은 그 밖에도 심증이 가는 표식들이 몇개 더 있긴 하다. 국장 이름이나 편지봉투에 쓰이는 시티즌이라는 글자는 확실히 오슨 웰스의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오슨 웰스에 대한 스코시즈의 경외어린 말들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렇다. 오마주나 참조가 실상 영화의 질을 좌우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사의 영향 아래 놓여 살아가는 스코시즈는 그걸 그만둘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아주 특별한 손님>의 이윤기 감독 인터뷰

이윤기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아주 특별한 손님>은 전작 <여자, 정혜> <러브토크>보다 비균질적이면서 다층적이다. <여자, 정혜>와 유사한 배경 아래 있지만 다소 건조해 보였던 그때의 영화적 표현에 비해 훨씬 더 정묘한 화음을 갖췄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보경의 하룻밤 이야기는 의문투성이의 구조로 시작하지만, 마침내 가능한 자기 회복의 조짐을 보이며 끝을 맺는 데까지 이른다. 게다가 영화의 중반부에는 그런 처음과 마지막 사이에 있을 거라 상상하기 힘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우울한 분위기까지 끼어든다. 건조하면서도 직선적인 다이라 아즈코의 단편소설 <애드리브 나이트>와는 달리 <아주 특별한 손님>은 명백히 다른 차원에서의 영화적 중층을 만끽하게 한다. 이윤기 감독은 세 번째 작품에서 확실히 한발 더 디디는데, 그가 말하는 “생경함”이 바로 그 힘이 아닐까 싶다.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이상했나? (웃음) 스탭들은 말이 없고, 배우들은 좋아한다. 아마 다들 조금 생경한가보다. -제작 기간이 길지 않다. =아무래도 예산을 작게 잡으면서도 내가 쓰고 싶은 스탭들을 쓰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프로덕션 기간을 길게 잡으면 많이 늘어지기 때문에 차라리 무조건 정해진 기간 안에 맞추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경우는 큰 보수로 일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배우나 스탭들에게도 믿음을 주는 차원에서 그런 걸 조건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의미에서의 실험적인 면도 있다. 그전보다 더 빡빡한 상황으로 한번 가보자 하는 거였다. 하룻밤에 벌어지는 일을 몇달씩 걸려 찍는 건 안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순간적 시너지’, 이런 게 가능한지에 대한 실험도 있는 거다. -어떤 제안을 받아 시작한 영화인가. =제안 같은 건 따로 없었다. 지난해 말쯤 <러브토크> 끝내고 쉴 때 소설을 봤다. 단편소설집 하나가 재밌더라. 딱 내 스타일이었다. 그게 다이라 아즈코의 <멋진 하루>라는 단편집이었다. 그 소설집 속에 있는 서너개 정도의 단편을 영화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걸 들고 영화사에 가서 기본 예산으로 하자고 말하기에는 좀 평이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영화적으로 가능성있는 게 이 영화의 원작이 된 단편 <애드리브 나이트>였다. 그즈음 KBS SKY쪽에서 창사 특집극 제안이 들어왔는데, 그때 마침 쓰고 있던 다른 시나리오가 잘 풀리지 않아 연기시킨 때였다. 그때쯤 제안이 들어온 거고 내가 거기에 오히려 역제안을 한 거다.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라면 고려해보겠다고. 그리고 그게 영화로 이어진다면 <애드리브 나이트>를 갖고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그렇게 이 영화가 시작됐다. 올해 6월쯤이었다. -원작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어떤 것이었나. =사실은 작위적 설정, 말도 안 되는 설정이다. 그래서 더 영화적인지 모르겠다. 그 단편집에 있던 소설들 모두 어떤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주어지고, 주변 인물들이 바보 같고, 상황에 그냥 이끌려가다가 나중에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낸다. 살냄새, 인간냄새가 나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데, 거기에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주어지니, 그 소재를 갖고 내가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영화적인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어떤 기묘함 같은 것. -원작과 몇 가지 차이들이 있다. 그중에서 한 가지를 말하자면, 일단 소설과 달리 주인공이 이름을 밝히는 시점을 마지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그건 중요한 차이다. =그건 <여자, 정혜> 때 시도했던 것과 비슷한 의도다. 특히 마지막에 정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에 관해서 말이다. 이번 소설은 그런 상황을 주지 않지만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가진 느낌이 바로 그런 거였다. 자기 존재의 소중함이랄까.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라고 주인공이 느끼게 되는 것 말이다. 세상은 살아볼 만한 것 같다고 느끼는 그런 종류. 그게 <애드리브 나이트>가 담고 있는 의도는 아니지만, 그 소설을 보는 내 느낌은 그랬다. 그 여자에게 이름을 물어보고 답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다. 그런 것이 영화 속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야기상으로도 뒤가 맞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너무 많이 들은 이야기겠지만, 여자주인공의 캐릭터를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평을 많이 받아왔다. =비난도 받았고…. (웃음) -(웃음)호평이 있으면 비판도 있을 수 있으니까. 어쨌든 세 번째인 지금까지는 여자주인공들에 대한 애정을 이어가고 있다. =왜 공교롭게 여자여야만 하는가, 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데, 내가 선택한 소재가 여자가 주인공이어서 그런 거지, 꼭 여자여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남자가 더 섬세하고 여린 캐릭터를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여주인공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말하자면) 내가 늘 주장하는 건 내 영화 속 캐릭터는 비겁하거나 물러나는 여자들이 결코 아니라는 거다. -말이 나온 김에, 김지수나 박진희는 그전에 나온 그들의 다른 역할보다 이윤기의 영화에서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배종옥은 연기 경험이 많고, 또 양식적인 연기에 숙련된 배우라는 점에서 제외한다 하더라도, 금방 말한 두 사람은 각각 <여자, 정혜>와 <러브토크>에 나오면서 완전히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들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기에 이런 성과가 나왔는지 궁금하다. =경우마다 다르긴 한데, 김지수는 그전에 나온 텔레비전 드라마하고는 다른 메커니즘의 연기를 했던 거고, 영화로는 내 작품이 첫 번째니까 오히려 그 뒤에 나온 영화하고 비교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내가 특별히 뭔가를 했다는 생각은 안 든다. 내가 캐릭터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그 사람이 이 캐릭터의 처지를 가능한 한 많이 이해하게 하는 것 외에는 없다. 당신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상기시켜주는 것 정도다. 박진희는 영화를 쭉 했지만 금방 지적한 대로 <러브토크>에서의 역할 같은 걸 한 적은 없다고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배우들이 기회가 없어서 발견을 못하는 자기의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박진희는 내 영화를 통해서 그런 걸 발견하고 싶어했다. 그러니 그럴 때는 김지수 경우처럼 내가 다시 적당히 뒤로 빠져서 주인공의 상황을 알려주는 것 정도다. 굳이 노하우라면 상황만 이야기하고, 뒤로 물러나서 그 사람이 빠져들기를 기다리는 거다. -한효주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나. =앞의 배우들에 비하면 신인에 가깝고, 이런 역을 하기에는 너무 어린 친구 아닌가, 너무 여고생 같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는데, 실제로 이야기를 해보니까 놀라울 정도로 어른스러운 친구였다. 어떤 반경으로 가더라도 이 친구가 따라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효주는 그전 영화에 나왔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배우처럼 보였다. 다른 캐릭터를 맡았다는 뜻이 아니라, 인상 자체를 완전히 다른 무엇으로 보이게 한다는 뜻에서 그렇다. =다른 주인공 여배우들에게 했던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절대 예쁘게 보일 생각은 하지 마라, 이번에 너 영화 보면 아마 기절할 거다, 너는 전혀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고. -여배우들에게 항상 그렇게 말하나. =그렇다. -“이번에는 전작에서 보지 못했던 명랑함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현장에서 말한 적이 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 명랑함이란 기이한 유머 혹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주는 웃음 같은 것을 표현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그건 확실히 전작들하고 다른 측면인 것 같다. =그렇다. 일반적인 명랑함을 내가 할 이유는 없는 거고. 내가 여기서 보여줄 수 있는 건, 말한 대로 기묘한 아이러니나 사람들에게 흘러나오는 너털웃음으로 갈 수 있는 상황들이다. 그게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람 죽는 걸 많이 경험했는데 그때마다 가장 슬픈 순간이 코미디 같았다. 가장 진지할 때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들. 그런 명랑함이라면 괜찮겠다 생각한 거다. 웃음 때문에 쓸쓸함이 느껴질 수 있는 그런 기묘한 불균형 같은 것 말이다. 스토리는 하나로 관통되지만, 영화의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이 완전히 다른 영화. 나는 현실을 해석할 때 그렇게 해석한다. 현실 자체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에는 미스터리 버전이고, 어느 순간에는 이렇게 우스꽝스러운가 싶을 때가 있고, 어느 순간에는 너무나 쓸쓸해지는 거다. 이렇게 이번 영화가 세 등분으로 가면 되겠구나 했다. -의도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시작을 항상 핸드헬드로 한다. 움직이는 어떤 상태라는 것이 본인에게는 끌리는 무엇인가보다. 덧붙이자면, 세편 다 주인공이 거리에 서서 끝나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네. 야외에서 어정쩡하게. -어정쩡하다는 말을 좀더 미학적으로. (웃음) 거기에 분명히 어떤 끌림이 있는 것 같다.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 그런 그림이 자꾸 떠오른다. 영화를 시작할 때는 마지막 장면 구성부터 생각한다. 그게 항상 거리다. 주인공 혼자 있는 느낌이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도시 속에서 내가 살아가는 가장 많은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느낌이랄까. 이번 건 특히 보경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그럼 그때 쓰이는 핸드헬드는 어떤 의미인가. =핸드헬드에는 몰입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작할 때 핸드헬드를 하는 것이 내게는 몰입도를 준다. 이번에는 처음에 그 몰입도를 주고, 집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는 어느 순간 픽스가 된다. 그리고 나중에 끝나는 부분에서 다시 핸드헬드가 된다. 그건 의도가 있다. 첫 시퀀스는 핸드헬드, 중간 시퀀스는 픽스, 마지막은 다시 핸드헬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중간 상황은 관객이 관조적인 느낌으로 보았으면 싶었고, 보경이 일상에서 탈피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은 관객이 보경에게 몰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촬영감독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세개의 시퀀스를 따라서 촬영 기법도 세 등분된 거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정박되어 있던 주인공이 지리적 이동 내지는 이탈의 경험을 통해서 다시 자아를 찾는 과정이 형성된다는 건 세 번째 이어지는 테마다. =그러게. 항상 그렇게 되네. (웃음) -아까 여자 캐릭터에 대해 물었는데, 남자 캐릭터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뭐랄까 여주인공의 상대역으로 굉장히 순정한 남자들 혹은 맑은 남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가령, 여자들이 어렵고 피곤하지만 당당하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남자들은 순박하고 순정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항상 맺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데 조금만 잘못되면 어떤…. =도식화된 연결…. -그렇다. 하지만 여하간 지금까지는 그걸 밀고 나가고 있다. =나 역시 그런 남자들이 이상향이라고 생각해서 그린 건 아니다. 그 남자들은 여주인공 스스로의 순수를 일깨워주는 대상에 가깝다. 사랑에 빠지고 싶다고 말할 만한 대상은 아니라는 거다. 실제로 내 영화 속의 그런 남자들은 현실에서 바보 소리를 들을 거다. 캐릭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건 일종의 도구다. 여주인공들의 삶을 일깨워주는 도구. 그래서 실제로 그들을 로맨스로 연결시키지는 않지 않나. -이윤기의 영화에서 로맨스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건, 사랑을 한다는 것이 대상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대상을 사랑하는 자기의 욕망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생각나게 한다. 연애담이 완성되기보다는 그 상태에서 여주인공이 어떤 징후나 조짐만 얻고 자기의 길을 가는 동기가 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렇다. 태생적으로 로맨스로 달려가는 영화가 아닌 거다. 또, 조짐이라는 것이 이 여자들이 가질 수 있는 희망 중 하나인 거고. 이 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삶을 바꾸는 방식을 선택할 때 영향을 주는 수백 가지 중 하나가 남자인데, 어쨌든 사람이니까 가장 영향력이 있어 보이는 거다. 왜 꼭 순정적인 남자가 나와서 이 여자들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가느냐, 지나치게 관습적이고 도식적인 것 아니냐, 그런 걸 많이 의식하긴 하지만 분명히 그건 아니다. -촬영을 하면서도 완성된 이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생경하다고 말할 것이라고 예상했나. 그랬다면 성공인 것 같다. =그런 쪽의 만족도는 확실히 있다. 도대체 이걸 어느 범주에 놓고 생각해야 하는지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내 의도에 맞는 것 같다. 어느 범주에도 안 들어가는 영화가 되기를 바랐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원작의 생경함보다 영화의 생경함이 훨씬 더 분명한 것 같다. =이 스토리라면 <여자, 정혜> 때의 이야기를 또 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다르게 할 수 있겠구나 한 거다. <여자, 정혜>를 하고, <러브토크>에서 좀 다른 시도를 했다면, <여자, 정혜>로 다시 돌아가되 완전히 다른 톤의 영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여자, 정혜>와 유사하지만 또 다른 버전이다. 정혜가 자기 자신의 슬픈 궤적을 따라간 거라면 이번 주인공 보경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과 어느 한 여자의 궤적을 따라간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그 모르는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사실은 순간이나마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는 것일지라도, 오히려 그럼으로써 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받아들이고 되찾는 것이다.

이병헌과 수애의 기기묘묘한 눈빛 <그 해 여름>

휘영청 떠 있는 보름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눈이 휘둥그레져 되묻는다. “그러니까 저기에 사람이 가 있다는겨?” 호롱불로 밤과 어울리던 오지의 시골 마을에 처음 전기가 들어오고 처음 텔레비전을 구경하던 날, 사람들은 암스트롱이 달을 거니는 믿기 어려운 장면과 마주친다. 좌중의 놀라움은 젊은 처자의 천연덕스런 질문으로 정리된다. “그럼 달도 미국땅이 된 겨?” 전깃불을 과학의 최대 수혜처럼 감지덕지할 때, 누군가는 우주선을 띄우는 놀라운 불균형의 시대, 1969년. 예컨대 박정희가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누리려고 헌법을 멋대로 뜯어고치려 할 때, 대학생들은 별이 쏟아지는 밤에 미팅하랴, 계몽과 봉사 정신으로 농촌을 누비랴, 삼선 개헌 반대 데모를 벌이랴 분주하다. 권력은 젊은 반역자들을 간첩단 같은 조직 사건으로 엮어 시대를 훈육하곤 했다. 이런 혼돈과 불균형이 인간의 미세한 운명에 평지풍파를 일으킨다 한들, 그러니까 사랑의 아름다운 여백을 순식간에 지워버린다 한들 믿지 않을 수 없다. 석영(이병헌)과 정인(수애)의 10년 같은 10일, 아니 일생을 건 10일의 사랑은 그래서 가능하다. 10일 이후의 긴 여백을 채우는 건 그들의 순수가 아니다. 미스터리 같은 시대와 미스터리 같은 사랑에 어울리는 건 미스터리 같은 인물이다. 석영은 삐딱한 대학생이다. 학내 집회의 한구석에 앉아 있긴 한데 매우 불편해하는 모습이다. 구호와 손을 내지르지만 힘이 담기지 않는다. 여대생들과 집단으로 어울리는 미팅의 한구석에 앉아 있긴 한데 심드렁하다. 으리으리한 부촌의 골목길을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다 지엄한 아버지를 만나는데 어딘가 반항적이다. 석영이 운동권이 작당한 농촌봉사활동에 갑자기 뛰어드니 운동권 친구 균수(오달수)가 놀랄 만하다. 모기와의 사투로 첫밤을 꼬박 샌 석영이 ‘나, 서울로 돌아갈래’라고 결론짓는 건 타당해 보이는데 정인(수애)의 미스터리가 그 발길을 잡는다. 운치있는 폐가에서 뒤죽박죽 음정으로 목청을 가다듬고, 갸우뚱한 국민체조로 가냘픈 허벅지를 드러내며 이른 아침을 맞이하는 정인을 목도한다. 석영에게 환한 미소를 선사하는, 운명적인 마주침이다. 정인은 당당하고 순백하다. 서울서 온 대학생들 앞에서 어설픈 노래와 춤을 당당히 내지르고, 도서관 사서임에도 <경아의 꽃을 꺾은 남자> 같은 ‘빨간 이야기책’을 마을 어른들에게 서슴없이 낭독해준다. 게다가 그녀는 가족도 없다. 정확히는 부모가 월북해버렸다. 자유로운 영혼의 부자 대학생과 산골의 신비스런 고아 사서가 어울리는 공간은 순수해야 할 것이다. 비록 글을 읽지 못하는 마을 이장이 고집스럽게 군사훈련을 시키는 풍경이 끼어들기는 하지만, 고마운 전깃불이 자식을 송장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수내리 산골은 동막골을 닮았다. 찌든 가난이나 매서운 증오의 기운이 없다. 농활 대학생들과의 갈등 같은 긴장감도 없다. 1969년은 그랬을지 모른다. 석영의 절친한 친구 균수가 운동권이기는 하지만 이념적으로 보이지 않는 건 그 시대의 순수일 수 있다. 혹은 감독의 순수일 수 있다. 균수가 반드시 이념적일 필요는 없지만 코믹해야 할 필연도 없다. 이 지점에서 오달수의 균수는 <그 해 여름>의 이상한 단추가 된다. 독신으로 평생을 보내는, 멋있는 교수 석영의 과거를 좇아 액자 구조를 만들어가는 방송국 김 PD(유해진)과 방송작가 수진(이세은)보다 더 기묘한 자리에 놓인 캐릭터다. 오달수의 균수(가 벌이는 코믹)는 <그해 여름>의 순수가 탈색된 것이라는 흔적이다. 석영과 정인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태생적 테두리(말하자면 계급적 신분)에 초연한 순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탈색된 순수라기보다 21세기의 젊음과 소통하기 위한 고육지책처럼 보인다. 석영이 유일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자본의 아버지는 그의 자유로움을 끝내 오염시키지 못하며, 정인이 편백나무의 은은한 향기처럼 사랑하는 이념의 아버지는 유령처럼 겉돌뿐 그녀의 삶의 지침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21세기적 스타일을 은연중에 지닌 아름다운 청년과 처녀가 1969년과 만나기 위해 필요한 디딤돌이 균수다. 그들을 자연스럽게 여며주기 위해 균수는 시대적인 동시에 시대적이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그 외모가 코믹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석영과 정인의 사연에는 시대의 절절한 아픔이 반영된 개연성이 담겨 있다. 일생을 바친 10일간의 사랑이라는 건 유효할 수 있지만, <그해 여름>은 이것이 영화적 공간에서 가능한 판타지라는 걸 동시에 입증해버렸다. 균수와 수내리 같은 탈색된 순수를 통해서. 가치보다 효용을 따지는 시대를 거슬러 순결한 사랑의 가치를 감동적으로 웅변한다는 선택에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허풍과 겉멋은 삶의 윤활유일 뿐이라는 걸 유머 넘치며 짠하게 보여준 <품행제로>에 비하면 더욱더. 처연한 여운은, 굳이 먼 과거를 빌려와 만든 10일간의 사랑이 이 시대에 온통 자신을 내던질 만한 것이라는 데 동의하더라도 판타지로 가능하다는 역설에서 생겨난다. 순수를 확신하고 향유하는 건 불가능한 시대가 아니냐는 역설말이다.

흔들리는 레지스탕스의 서글픈 초상 <굿모닝, 나잇>

1977년 말 로마의 한 아파트, 어느 신혼부부가 부동산 중개업자의 안내를 받고 있다. 새를 키울 만한 정원이 있고, 적당히 널찍한 침실과 부엌이 있으며, 거실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스며드는 곳. 얼핏 평온한 삶의 안식처처럼 보이나 실은 극좌파 무장세력 ‘붉은 여단’의 아지트가 될 공간이다. 신혼부부로 위장한 남녀는 급진적 혁명노선을 함께 걷는 동지이며, 이들 외에도 두 남자가 더 숨어들어 위험한 미션을 수행한다. 새해가 밝아오고 온 거리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일 때조차 이들에겐 사치스러운 감정을 나눌 여유가 없다. ‘노동자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거사(巨事)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본격적인 아지트 역할을 시작한 것은 1978년 3월16일, 붉은 여단 멤버들이 전 총리이자 기독민주당 당수 알도 모로(로베르토 헬리츠카)를 납치하는 데 성공하면서부터다. 이날은 알도 모로가 공산당과 우파 여당 5당을 연합한, 연립내각이 승인되는 날이다. 알도 모로. 시민들에게는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는 여당 당수지만, 붉은 여단에는 보수정치세력을 대변하는 반동주의자이자 수정주의자일 뿐이다. 단원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이름으로 처형한다”는 명목하에 모로를 아파트에 감금하고, 정부와 교황을 상대로 요구조건을 제시한다. 그러나 협상에 실패하고 국민의 비난만 거세지자, 그토록 견고했던 신념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굿모닝, 나잇>은 이탈리아의 거장이자 대표적인 좌파 감독 마르코 벨로키오의 2003년작으로, 그해 베니스영화제가 ‘미래의 영화상’과 각본상으로 화답했던 작품이다. 함께 이탈리아 영화계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에 비해 벨로키오는 고집스럽게 계급과 정치를 영화의 중심으로 삼아왔다. <굿모닝, 나잇> 역시 감독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정신분석이라는 화두를 관통한다. 거친 화면의 뉴스릴과 픽션이 교차하는 이 영화는, 1978년 이탈리아 전 총리 알도 모로가 납치됐다가 55일 만에 암살당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이탈리아인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을 역사적 트라우마지만 감히 입 밖에 내기 어려웠던 민감한 기록들을, 벨로키오는 대담하게 끄집어낸다. 그러나 벨로키오의 관심은 역사의 한 자락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데올로기와 평범한 일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붉은 여단의 흔들리는 표정에 더 주목한다. 그중 유일한 여성 단원 키아라(마야 산사)는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인물이다. 자유의 대안은 과연 죽음인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신념이 현 이탈리아사회를 구원할 수 있을까? 혹은 혁명이라는 명분으로 사람을 죽일 권리가 있을까? 벨로키오는 섣부른 도덕적 판단 대신 이런 질문들을 통해 조용하지만 파장이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제목 ‘굿모닝, 나잇’은 19세기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 에서 가져온 것. 극중 키아라의 동료 엔조(파올로 브리구글리아)가 테러리스트들을 소재로 쓴 시나리오 제목이기도 하다. 엔조는 건조하게 살아가는 키아라를 자극하는 인물로, 일상생활이 전혀 없는 붉은 여단 멤버들을 비난한다. 바깥세상의 사람들 역시 수군댄다. “붉은 여단은 혁명활동을 하지 않을 때 포르노영화를 볼 것”이라고. 이들의 지적은 과장된 말이 아니다. 붉은 여단은 모로를 가두고 감시하는 동시에, 자신들 역시 모로와 함께 감금된 자들이다. 아파트가 그들의 유일한 세상이고,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뉴스만이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가 되는 것이다. 키아라는 “상상력이 현실을 구하진 못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녀가 그토록 굳게 믿었던 이데올로기 역시 현실을 구하지 못했다. 미묘하게도 그녀는 감시 구멍을 통해 모로의 늙고 지친 모습을 목격한다. 예정된 죽음을 기다리는 모로는, 키아라에게 적이기 이전에 인간의 존엄을 일깨워주는 존재로 변모한다. 동시에 ‘혁명’이라는 명분으로 살인을 정당화하려는 자신의 동지들과 ‘그의 동지들’에게 버림받은 모로 사이에서, 키아라는 점점 정신분열에 가까운 판타지에 시달린다. 이를테면 파시스트들에 대항하다 죽은 키아라의 아버지가 등장한다거나, 모로가 감금에서 풀려나 유유히 걸어나가는 장면들이다. 이제 키아라가 꿈꾸는 것은 혁명적 투쟁 이전에, 인간성이 회복된 세상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녀가 꿈꾸는 판타지가 한낱 백일몽에 지나지 않음을, 냉혹하게 보여준다. 총성이나 끔찍한 구타장면 하나 없이 흔들리는 현실을 잡아낸 벨로키오의 연출솜씨는 놀랍다. 이웃집 여자나 지역 사제의 예기치 않은 방문, 좀도둑들의 침입 등은 언뜻 히치콕 스타일의 스릴러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침묵 속에 감도는 긴장감, 서늘한 시선 속에 감지되는 뜨거운 열기는 어떤 장르적 장치만으로 연출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벨로키오는 대사나 동선을 절제하는 대신 이미지와 음악(핑크 플로이드의 터질 듯한 사운드와 슈베르트 협주곡의 대비!)의 절묘한 조합 또는 배우들의 떨리는 눈동자만으로 짙은 후유증을 남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가 극도에 달한 포스트 9·11 시대, 그 후유증은 좀처럼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굿모닝, 나잇>은 철저하게 감성에 호소하는, 기묘한 정치스릴러다.

마틴 스코시즈의 <디파티드>가 관객들을 사로잡지 못한 이유

어느 스튜디오 감독들보다 마틴 스코시즈는 홍콩 뉴웨이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우삼은 <첩혈쌍웅>을 그에게 헌사했고 왕가위는 <비열한 거리>를 따라 자신의 첫 극영화 <열혈남아>를 만들었다. <택시 드라이버>의 비오는 슬로모션의 도시적 스타일은 수많은 홍콩영화들에 녹아들어갔다. 스코시즈는 최근 가장 강력했던 아시아의 액션영화를 리메이크한 <디파티드>를 통해 이에 대한 보답을 보내고 있다. 유위강과 맥조휘의 2002년작 <무간도>의 뛰어난 이야기는 영화 역사의 두 번째 세기를 맞아서야 등장했다(만약 그전에 나왔다면 독자들은 알려주시기를). 강력한 조직의 두목은 소년기 아이를 데려다 경찰 조직에 심고, 경찰은 비밀 요원을 두목의 폭력 집단에 심어놓는다. 두 조직은 고정 첩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영화의 절정에 가서야 깊숙이 숨겨진 첩자 둘은 서로를 알아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중요한 극적 장치로 휴대폰이 사용되는데 <무간도>는 그 전제가 주연의 역할을 하는 흔치 않은 영화다. 스코시즈는 그러나 불가피하게 유명 배우들로 자신의 리메이크를 가득 채웠다. 맷 데이먼은 경찰로 변신한 조직원으로 나오고 (원작에서 유덕화가 맡은 역)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에 상응하는 (양조위가 깊은 감수성으로 연기한) 비밀경찰로 나온다. 젊은 배우들 위로 군림하는 잭 니콜슨은 비중이 높은 역- 원작보다 훨씬 더 부풀려진 폭력조직 두목- 을 연기한다. 증지위가 둥근 얼굴을 한, 기가 넘치는 악의 화신으로 <무간도>의 장면들을 훔쳤다면 잭 니콜슨은 첫 장면부터 영화를 휘젓는다. <디파티드>는 상업영화로 제작되었지만 아무나 맡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상상하진 마시라. 오프닝 장면에서 터지는 로큰롤 소리, 롤링 스톤스가 거리 싸움을 회상하는 장면을 위해 연주한 부분은 단연 스코시즈풍이다. 감독은 액션을 남부 보스턴의 비열한 거리로 옮겨 자신의 장기를 한껏 보여준다. 폭력단 조직원들보다 더 쌍스런 욕을 해대는 주인공들은 경찰들이고 현란하게 욕을 해댈 수 있는 아이리시 갱단원들은 이탈리아 갱단을 능가한다. 처절한 생존의 사투가 있고 범죄 조직의 두목은 음란한 광인이다. 인용된 존 포드 영화는 <추적자>가 아니고 필수적으로 <밀고자>다(영화 속 텔레비전에서도 중계되었다). 또한 가톨릭 죄의식도 짙게 깔려 있다. <무간도>는 놀라우리만큼 쿨하고 홍콩 액션영화치고 효과적으로 절제되어 있지만 스코시즈는 극한 폭력으로 그 온도를 한껏 올려놓고 있다. 호전성과 중상이 넘쳐나 거의 쿠엔틴 타란티노 수준에 육박하는데, 타란티노의 영역을 넘보고 있으니 그것도 당연하겠다. 시나리오작가 윌리엄 모나한(지난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십자군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을 맡았었다)은 의도된 모독을 퍼붓는다. “야, 나무에 가서 고양이 새끼나 낳아라, 이 동성애자 놈들아!” 콜린(맷 데이먼)은 경찰 대 소방관 럭비 경기에서 상대에게 외친다. 물론 신부를 남색꾼이라고 욕하는 기회도 놓치지 않는다(학교 운동장에서 들을 법한 대사들을 더하는 것 외에도 모나한은 두 주인공의 애정의 대상인 두 여자를 베라 파미가가 연기한 아주 자신없는 한 정신과 의사로 결합했는데 결과적으로 또 하나의 배신의 가능성을 더하게 된다). 카메라의 위치 선정과 델마 스쿤메이커의 팡팡 이어지는 편집 등 기술적으로 영화는 일등급이다, 적어도 초반에는. 두 시간 반의 <디파티드>는 원작보다 50분이 긴데 부분 부분이 긴장을 일으킨다기보다 바로크적이고 영화의 결들이 전제를 삼키고 있다(절정처럼 느껴지지 않는 유혈 낭자한 차 충돌 총격장면에 이르러서는 이야기가 엉망진창이 되어 있다). 극중 베라 파미가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심리는 원초적이다. 가짜 경찰로 위장한 콜린은 자신의 속임수에 눌려가고, 쉽게 격해지고 우울증 약을 먹는 가짜 폭력 조직원 빌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점점 불안해한다(디카프리오가 맡은 역은 충분한 동기를 갖고 있지 않지만 완고한 그의 존재는 데이먼의 연기보다 더 효과적이다). 갖가지 배역들로 특징짓는 영화에서 마크 월버그는 욕을 가장 많이 하는 경찰로 가장 단순하고 동정적이며 (가장 웃기는) 연기를 펼쳐 두각을 나타낸다. 물론 맷 데이먼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연기를 하는 존재들이다. 그와는 다른 잭 니콜슨은 <이스트윅의 마녀들>(1987)에서 자신이 맡았던 악마적인 역을 다시 보여주며 점점 광적으로 변해가고 영화를 피범벅으로 만들며 술에 취해 조소하는 쥐의 얼굴을 흉내낸다(지옥의 악마처럼 아무리 광분해도 조직의 이인자 레이 윈스턴이 훨씬 더 무섭다). 스코시즈는 자신의 영화에 흉악하고 달갑지 않은 중심인물들의 연기를 집어넣길 좋아하는데,여기선 잭 니콜슨이 <갱스 오브 뉴욕>의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맡았던 역의 콧수염을 잡고 빙빙 돌리는 듯한데 이는 제작자 하비 와인슈타인에게 해당되는 역이다. 망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지만, 감독이 자신만의 해피엔딩을 제공하려 노력했음에도 <디파티드>는 어느 선까지만 효과가 있을 뿐 결코 감정적으로 관중을 사로잡지는 못한다. “나는 내 환경의 결과가 되고 싶지 않아”라고 프랭크는 뽐낸다. “난 내 환경을 직접 만들고 싶어.” 주저리주저리… 바로 그 점이 문제인 것을. 공들여 만들어졌지만 잭 니콜슨이 없었다면 (그리고 한 30분 짧았다면) 고쳐지지 않았을까. 어쩌겠나, 스코시즈는 저 분장한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야 했으니.

봉준호 감독, 이누도 잇신 감독 심포지엄 중계

“영화를 보기 이전부터 관객을 흥분시키는 감독이다”, “독특한 감수성으로 관객을 감화시키는 연출자다”. 한국의 봉준호 감독과 일본의 이누도 잇신 감독이 제3회 메가박스일본영화제에서 만났다. 영화제 마지막 날인 11월19일, ‘영화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진행된 심포지엄에서 두 감독은 서로에 대한 칭찬과 질문을 시작으로 각자 개인의 영화적 경험을 털어놓았다. 일본의 영화평론가 데라와키 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의 대화가 다소 거창한 심포지엄 주제인 ‘영화의 현재와 미래’의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TV와 만화를 통해 영화적 감수성을 쌓아온 두 감독의 대화는 현재 한국과 일본영화의 한 경향을 설명하는 데 충분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터치> 상영 뒤, 90여분간 진행된 심포지엄을 여기 옮긴다. 데라와키 겐: 우선 봉준호 감독께 <터치>를 본 소감을 부탁드린다. 봉준호: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 추억이 떠올랐다. 하나는 야구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만화에 대한 것이다. 고교 시절 야구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야구의 정취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야구만의 리듬이 영화에 잘 묻어났다고 생각한다. <터치>의 원작을 보지는 못했지만, 같은 작가(아다치 미쓰루)가 쓴 작품인

는 재밌게 봤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 만화는 많이 보고 있다. 이누도 잇신: 원작을 읽은 관객은 불만이 많더라. <터치>의 원작은 20권이 넘는다. 만화 팬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장면이 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영화는 제작사쪽에서 영화화를 제안받은 프로젝트고, 여주인공이 나가사와 마사미라고 하기에 찍은 영화다. (웃음) 이번 영화제 상영작이기도 한 <로보콘>을 보고 그녀와 작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데라와키 겐: 두 감독은 서로에게 상당히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이누도 감독은 봉 감독을 어떤 감독이라고 생각하는지. 이누도 잇신: 봉준호 감독 영화 중 맨 처음 본 게 <살인의 추억>이다. 그 당시 봤던 영화들 중에서 최고였다. 극본, 조명, 카메라 등 모든 것이 완벽하게 컨트롤돼 있었다. 최근 미국영화는 촬영을 많이 하고, 편집을 하면서 맞춰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영화가 산만해진다. 하지만 봉 감독의 영화에는 산만함이 전혀 없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좋아”, “됐다”라는 느낌이 든다. 지난주에 내가 무리하게 주선을 해서 (웃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을 만났는데, 봉 감독을 만나는 것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을 만나는 것과 똑같이 설레더라.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사람을 흥분시키는 감독이다. 이건 영화를 본 뒤에 “대단하다”고 느끼는 감상만큼 중요한 거다. 내가 너무 칭찬만 하는 건가? (웃음) 봉준호: 이누도 잇신 감독은 독특한 감성을 지닌 분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이나 동성애자가 등장해도, 전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관객을 자연스럽게 인물 곁으로 데려간다. 테마적인 강박이 없다. 인물들이 겪는 감정이 마치 종이에 물이 스며들듯이 관객에게 전해진다. 감정에 마술을 부리는 영화랄까. 강한 자극이나 충격은 없지만, 지진에 비유하면 강한 여진이 남는 영화인 것 같다. 나에겐 텔레비전이 시네마테크 데라와키 겐: 두 감독 모두 어떤 경로로 영화를 만들게 됐는지 궁금하다. 이누도 잇신: 5~6년 전만 해도 일본 사람들은 일본영화를 잘 보지 않았다. 미국영화에는 관객이 많이 들었지만, 일본영화는 외면당했다. 영화감독이라고 하면 생계가 불가능한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영화는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고, 또 많이 봐왔다. 그러다 스스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느꼈고, 17살 때 처음으로 8mm영화를 만들었다. 그게 너무 재밌더라. 그래서 대학교 때까지 몇편 정도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감독을 직업으로 할 생각은 없었다. 학교 졸업 뒤에도 TV광고 찍는 일을 했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서 다시 한번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짧은 애니메이션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게 상을 받았다. 그 덕에 다음 작품을 제작해줄 회사가 나타났고, 좀더 긴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 식으로 영화감독이 되었다. 봉준호: 영화를 만들게 된 과정은 이누도 감독과 참 비슷한 것 같다. 다만 나는 영화를 좋아했어도 극장엔 자주 가지 못했다. 어머님이 지구상에서 가장 세균이 많은 곳이 극장과 지하다방이라고 하셨다. 극장은 세균의 온상이고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곳이라고. (웃음) 당시엔 비디오도 DVD도 없어서 나에겐 텔레비전이 시네마테크였다. 특히 주한미군방송(AFKN)에서 해주는 영화들을 즐겨봤다. 영어 대사라 알아들을 수 없으니 비주얼에 더 집중하게 되고, 무슨 이야기일지 멋대로 상상하고 이야기를 구성해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내가 영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누도 잇신: 나도 초등학교 때는 TV만 봤다. 정말 재밌는 영화에서 정말 시시한 영화까지. 당시엔 영화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추천해주는 작품도 없었다. 하지만 영화를 무작정 보면서 스스로 좋은 영화와 시시한 영화를 구분하고, 자신만의 명작을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공부하는 게 아니라, 그저 즐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봉준호: 우리 가족도 여행, 스포츠, 레저를 전혀 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일년 내내 TV만 봤다. 드라마를 보면서 배우의 흉을 보는 게 가족들의 취미였으니. (웃음) 샘 페킨파 영화를 좋아했는데, 페킨파 영화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될 때는 폭력적인 장면들이 조금씩 잘린다. 그런 걸 보면서 ‘여기는 컷이 연결이 안 되는군, 이런 장면이 있었겠네’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심지어 <겟어웨이>가 낮시간에 방송된 적이 있는데, 폭력적인 신이 나오면 분홍색 별표가, 애정 장면에서는 분홍색 하트가 등장하더라. 만화와 영화는 서로의 씨앗 데라와키 겐: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는 <터치> 외에도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 많은 것 같다. 이누도 잇신: <금발의 초원>도 만화가 원작이고, 이번에 찍은 <노란 눈물>도 만화가 원작이다. 내 영화에는 소녀만화에서 받은 영향이 압도적인데, 이들은 주로 49년조라 불리는 작가군들의 작품이다. 49년조는 1970년대 등장한 49년생 작가들의 집단을 말한다. 일본에서 소녀만화는 남자들이 읽을 수 없는, 읽지 않는 장르다. 하지만 49년조의 작품들은 남자들이 숨어서 볼 정도로 임팩트가 대단했다. 보통 소년만화가 주인공이 어떤 행동을 계기로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점프를 한다면, 소녀만화는 일상은 일상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렇다할 사건은 없지만 이야기는 신선하고 재미있다. 데라와키 겐: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만화를 보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의 젊은 감독들은 만화에서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일본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는 오히려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 만화와 영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은 어떤지 궁금하다. 봉준호: 나는 스스로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우주왕자 고라망>이라고 도라에몽을 모방한 캐릭터가 나오는 만화를 그린 적도 있다. (웃음) 한때는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도 했었으니. 어릴 때는 거의 모든 장르의 만화를 다 봤다. 아무리 읽어도 끝이 나지 않는 <유리가면>과 <들장미 소녀 캔디>. 어린이 만화지만 다크한 감수성이 풍부한 <바벨 2세>, 기발한 SF물 <도라에몽> 등 내 영화가 만화에서 어떤 식으로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화를 무척 좋아한다. 이누도 잇신: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한 적이 있나. 봉준호: <살인의 추억>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영화고, 동시에 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연극 공연이 있다. 절반 정도 원작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 2편 중 하나가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누도 잇신: 그림이 먼저 있는 작품을 영화로 만든다는 거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는가. 봉준호: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들은 장면 연출이 굉장히 영화적이다. 만일 누군가 그 사람의 만화를 영화로 만든다면 굉장한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화 자체가 이미 뛰어나게 영화적으로 연출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이 질문은 오히려 만화가 원작인 <터치>를 만들어본 이누도 감독에게 묻고싶다. 이누도 잇신: 나는 <터치>와 <금발의 초원>을 만들면서 원작을 완전히 잊으려고 했다. 그림을 재현하는 데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다만 아주 유명한 장면들, 너무 유명해서 원작 팬들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는 장면들은 최대한 동일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떼샷이 살아야 영화가 풍부해진다 데라와키 겐: <터치>를 보면 기존의 야구영화와는 다른 각도의 촬영들이 눈에 띈다. 만화의 지면을 영화의 영상으로 옮기면서 나타난 부분인 것 같은데, <터치>에서 주인공들의 시선은 관객의 시선과 일치한다. 보통 만화는 주인공들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지 않나. 이걸 야구경기 장면에서 영화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누도 잇신: 그건 <터치>가 연애물이기도 하고, 시선이 교차하는 게 중요한 모티브니까 그런 것 같다. 기존의 야구영화와 다르다는 건 내가 영화를 만들 때 다소 이질적인 작품에서 힌트를 얻기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터치>의 야구장면을 찍으면서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영화들을 떠올렸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영화에는 주인공이 총으로 세명의 사람을 쏠 때 그 세명의 얼굴이 모두 ‘방! 방! 방!’ 소리와 함께 클로즈업으로 잡힌다. 나는 이 느낌을 야구의 타격장면에서 떠올렸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찍을 때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쓰바키 산주로>를 떠올렸고, 최근 <비잔>이란 영화를 찍을 때는 <죠스>를 떠올렸다. 예전에 봤던 전혀 다른 영화의 장면들이 전혀 다른 형태로 내 영화에 힌트가 되는 것 같다. 데라와키 겐: <터치>의 군중신도 궁금하다. 주인공을 제외한 배경 인물들의 움직임도 굉장히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는데. 이누도 잇신: 그건 내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서 느낀 점이다. <괴물>의 강변장면에서 카메라는 주인공인 송강호를 잡고 있지만, 스크린엔 송강호 이외의 인물들까지 생생하게 비친다. 나는 영화의 이런 장면들이 작품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선 요즘 이런 부분들이 소홀해지고 있다. 예전엔 촬영소란 것이 있어 거기에 소속된 능숙한 엑스트라들이 이 부분의 문제점을 해결해줬지만, 요즘엔 그렇지 못하다. 봉준호: 그런 군중신을 한국에서는 속칭 ‘떼샷’이라고 하는데, 여기엔 나 혼자뿐 아니라 조감독, 연출부 등 모든 스탭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가 이누도 감독에게 궁금한 건 <메종 드 히미코>의 춤신이다. 댄스홀에서 많은 인원들이 함께 춤을 추는데, 그 시퀀스는 몇회에 걸쳐 완성된 건가. 이누도 잇신: 아침부터 점심까지 한번, 그리고 다음날 아침 새벽 4시까지 또 한번 정도. 봉준호: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임과 동시에 주인공의 감정이 섬세하게 상승하기 때문에 무척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본은 감독을 비롯해 스탭들의 숙련도가 대단한 것 같다. 얼마 전에 사카모토 준지 감독을 만났는데, 일본에선 보통 규모의 영화는 한달 반, 대작은 두달 반 정도 걸린다고 하더라. 나는 찍었다 하면 다섯달이니 일본에서 연출제의가 들어오면 겁부터 난다. (웃음) 이누도 잇신: 아마 일본에서 봉 감독에게 연출을 부탁할 때는 빨리 찍는 걸 포기했을 것이다. (웃음)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도 일본에서 촬영기간이 긴 걸로 유명한데, 그 감독이 <살인의 추억> 이야기를 하면서 7개월 걸렸다고 하더라. 근데 실제론 5개월이라고 하니 유키사다 감독이 부풀려 말했나보다. (웃음) 봉준호: 전반적으로 부끄럽다. 이누도 잇신: 아니다. 나는 봉 감독이 계속 시간을 들여 좋은 영화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사실 그게 엄청난 체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100회 촬영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된다. 그래서 실제로 만나기 전에는 매우 마른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봉준호: 실제로 촬영기간에는 4~5kg 정도 빠진다. 편집하면서 제자리에 앉아 많은 양의 음식을 먹으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긴 하지만. 영화는 보는 행위에서 시작된다 데라와키 겐: 최근 어떤 감독들을 만나보면 영화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전혀 보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1년에 5편 정도만 본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는 무엇보다 보는 행위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 같다. 두 감독은 다른 점이 많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영화를 많이 봐온 감독인 것 같다. 또 두 감독의 영화는 재미가 있다. 영화는 결국 재미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누도 잇신: 재미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흥미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봤던 영화들을 떠올리면, 아주 재밌는 미국영화도 있지만 누벨바그 영화처럼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영화도 있다. 그러나 그 영화들은 내게 흥미를 자아냈다. 모든 영화가 그 당시에 해답을 주거나 재미를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 오스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를 처음 봤는데, 그때는 ‘너무 심술궂다’, ‘뭐야’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간 뒤 다시 보니 정말 대단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더라. 봉준호: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의 흥분도 있는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누나의 손을 잡고 봤던 <사운드 오브 뮤직>이 기억난다. 영화가 세 시간이 넘어서, 극장에 들어갈 때는 낮이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밤이 되더라. 어릴 때는 그게 너무 충격이었다. 또 영화 자체의 흥분도 있는 것 같다. 어릴 때 MBC <주말의 명화>에서 봤던 <자전거 도둑>이 기억난다. 그때는 이게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작품인지, 네오리얼리즘인지도 모르고 봤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집에 있는 내 자전거를 가져다주고 싶었다. 영화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휴대폰 폴더를 한번도 열지 않고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스파게티 웨스턴에 대한 ’스시’의 오마주?

미이케 다카시가 새 영화로 일본식 웨스턴을 촬영 중이다. 지난 11월20일 야마가타현 쇼노이 스튜디오의 촬영현장을 공개하면서 밝힌 제목은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 60년대 유행했던 스파게티 웨스턴에 대한 오마주로 지은 제목이다. 특히 프랑크 네로가 주연을 맡고 세르지오 코르부치가 연출했던 스파게티 웨스턴 <장고>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내용은 12세기 일본 겐페이 전쟁을 배경으로 두 집안의 무사가 서로 대립하는 이야기이며, 제작비는 8억엔 정도다. 벌써부터 “스시 웨스턴” 등의 표현을 얻으며 서구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의 대사는 대부분 영어로 이루어져 있어, 배우들 또한 2개월간 영어 훈련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주인공 총잡이 역의 이토 히데아키를 비롯하여 모모이 가오리, 사토 고이치, 이세야 유스케, 안도 마사노부 등 일본과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다. 유명 영화제작자이자 감독이기도 한 쿠엔틴 타란티노도 출연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란티노의 출연은 그가 총제작을 맡았던 영화 <호스텔>에 미이케 다카시가 카메오 출연한 것에 대한 보답 차원이라고 전해진다.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쿠엔틴 타란티노는 11월 말에 일본을 찾아 촬영할 예정이다. 현재로서 그가 맡을 역은 “미스터리 맨”이라고만 알려져 있다. 미이케 다카시는 “아버지가 스파게티 웨스턴의 열혈 팬이셨다. 어린 시절 나는 그와 함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그 영화들을 즐기곤 했다. 나 자신만의 웨스턴을 만드는 것은 나의 오랜 염원이었다”며 이번 일본식 웨스턴 연출의 동기를 밝혔다. <오디션> <이치 더 킬러> 등 폭력성 넘치는 장르영화 감독으로 손꼽히는 미이케 다카시가 일본의 중세와 서구의 웨스턴 장르를 어떻게 결합시킬지가 관심사다.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는 11월 내에 촬영을 마치고 내년 하반기 소니픽쳐스가 배급할 예정이다.

[현지보고] <로맨틱 홀리데이> 시사회와 케이트 윈슬럿 인터뷰

런던의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웨딩 칼럼에 글을 쓰고 있는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럿)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오랫동안 사랑해왔던 재스퍼(루퍼스 시웰)가 다른 여자와 곧 결혼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교외의 조그마한 자신의 집에 돌아가 목을 놓아 통곡하는 아이리스. 바로 그 시각, 햇살이 내리쬐는 LA 브렌트우드 아만다(카메론 디아즈)의 집. 영화 트레일러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른바 잘나가는 그녀는, 남자친구인이던 에단(에드워드 번즈)이 바람을 피운 것을 알게 되고 크리스마스를 바로 앞에 두고 절교 선언을 한다. 이 두 여자의 사정은 낯설지 않다. 집이 떠나가라 흐느끼는 아이리스와 울어보려 별별 애를 쓰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는 아만다는 사랑이 없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기분 전환을 해야 할 절체절명의 필요성을 느끼고는 인터넷에 접속하게 된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크리스마스 휴일 동안 서로의 집을 바꾸어보는 황당한 계획에 동의하게 된다. 자신에게는 벗어나고픈 현실이지만, 아이리스에게 아만다의 LA는, 아만다에게 영국 시골의 동화 같은 아이리스의 집은, 무엇인가 멋진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을 준다. LA에 도착한 아이리스가 아만다의 커다란 집에 환호성을 지르는 반면, 눈 내리는 시골길을 하이힐을 신은 채 가방을 끌고 가야 하는 아만다의 신세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아이리스의 오빠인 그래엄(주드 로)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국 아가씨 아이리스에게 할리우드 황금기의 작가 아서(엘리 왈라치)와의 만남이 판타지라면, 영국의 어느 날 밤 집 앞에 서 있는 아이리스의 오빠 그래엄은 미국 커리어우먼 아만다의 거부할 수 없는 판타지이다. <왓 위민 원트>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등을 통해 이미 시나리오 집필력과 안정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은 낸시 메이어스 감독은 <로맨틱 홀리데이>에서 역시 앞으로 찾아올지도 모르는 사랑에 대한 희망을 로맨틱코미디의 예의 그 달콤한 방식으로 서술해나간다. LA에서 열린 시사회를 마치고 케이트 윈슬럿과 나눈 짧은 인터뷰를 소개한다. 케이트 윈슬럿 인터뷰 “내 생애 최초의 코미디 연기” 아이리스는 한 남자에게서 벗어나는 데 무척 힘들어한다. 본인도 아이리스와 비슷한가. 전혀 아니다. 난 언제나 내 자신의 선택을 믿는 사람이다. 나는 지난 일에 미련을 갖는 스타일은 아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나약해지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지만, 아이리스만큼은 아니다. 이번 작품은 그간 해온 역보다 좀 가벼운 역일 것 같은데, 촬영하기는 어땠나. 아주 힘들었다. 촬영기간도 길었고, 현대 영국 여성을 처음 연기해본다는 점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이전 작품들에서는 가발이나 악센트, 고전 의상 등으로 나 자신을 가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리스를 연기하기 위해 나는 주위의 친구들이나 혹은 내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어떤 단면을 끄집어내야 했다. 그리고 코미디 연기도 처음이어서 걱정이 많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파트너인 잭 블랙에게 컷이 끝날 때마다 내 연기가 웃긴지 아닌지 늘 확인하곤 했다. 코미디 특성상 즉흥연기도 많았을 것 같은데. 맞다. 상당히 있었다. 근데 그것은 시나리오가 탄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엄마로서의 삶과 배우의 삶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은가. 솔직히 말하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배우라는 직업이, 정해진 장시간을 밖에서 일해야 하는 다른 직업을 가진 엄마들보다 수월하다고 생각한다.

[몬트리올] 사라진 80년대의 유명 화가를 찾아서

세상을 살다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을 겪을 때가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에서 범세계적인 사건까지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은 도처에 널렸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건을 깊숙이 파고들지 않을 것이다. 정말 뭐가 뭔지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혼돈의 시간을 살고 있는 시대에 알 수 없는 일은 그냥 덮어두는 게 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예술가, 특히 영화감독들은, 특히 사건이 자신의 영혼과 맞닿을 때 반드시 영화화하고야 마는 일이 종종 있다. 80년대에 화려한 명성을 자랑하던 몬트리올 출신의 어느 화가는 10년이 지난 어느 날 자신의 모든 작품을 한줌의 재로 날려버린 뒤 사람들 시야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다. 한줄로 끝난 이 사건은 그가 사라진 다음 정확히 15년 뒤인 지금, 퀘벡 출신의 영화감독 소피 데라스페의 데뷔작 <빅토르 펠레린을 찾아서>로 다시 이야기된다.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텔레필름이 후원하는 저예산영화 보조 프로그램(캐나다 정부의 문화산업 확장을 위한 프로그램의 하나로 영상부문과 음악부문을 후원하는데 영화부문에서는 기존·신인감독에 상관없이 작품당 75만달러를 지원한다)에 선정된 <빅토르 펠레린을 찾아서>는 올해 선정된 10개의 영화 중 4개의 불어권 영화 가운데 한 작품이다. 빅토르 펠레린을 알고 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띠고 있지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든다. 난데없이 펠레린 그 자신이 등장하는가 하면 실제의 시간에 실제의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그리다가도 회상형식의 본연의 다큐로 돌아가기도 한다. 펠레린이 사라진 사건처럼, 온통 알 수 없는 의문부호들이 가득한 다큐멘터리 혹은 모큐멘터리 혹은 영화적 설치작품 <빅토르 펠레린을 찾아서>는, 그렇기 때문에 펠레린이 사라진 그 미스터리한 사건을 더욱 미궁 속으로 빠뜨리고 만다. 영화를 보고 나면 현실과 픽션은 어쩔 수 없이 연결되어 있어 동시에 존재한다는 감독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