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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히어로즈] 슈퍼히어로 장르의 최종 진화!

평범한 인간들의 슈퍼히어로가 당도했다. 전미 1400만명의 고정팬을 매주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당기며 신드롬을 일으킨 미국 드라마 <히어로즈>가 지난 3월19일부터 케이블 채널 캐치온을 통해 방영을 개시했다(매주 월·화 오전 10시와 오후 10시 방영). 전통적인 슈퍼히어로물의 차원을 전혀 다른 경지로 끌어올린 드라마 <히어로즈>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누구의 손에 의해 탄생했을까. 전세계를 들뜨게 만드는 브라운관 슈퍼히어로들의 면모. “최근 겉보기로는 관련이 없는 듯한 개개인들이 ‘비범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채 출현하고 있다. 지금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이들은 세계를 구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변화시킬 것이다.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의 변혁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다.” <히어로즈>의 1화 도입부에 흘러나오는 자막은 <엑스맨>의 첫편에 그대로 따붙여도 이질감이 없을 듯하다. <히어로즈>가 전통적인 슈퍼히어로물의 적자이며, 평범한 사람들이 슈퍼히어로가 되어 세계를 구하는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노라는 선언이다. 이건 한회당 30여억원의 제작비를 투여하는 값비싼 시리즈로서는 자살에 가까운 만용일 수도 있다. 미국 TV계의 오랜 속설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특정한 장르에 기반한 시리즈의 인기는 특정한 장르의 팬들로만 한정된다. 하지만 <히어로즈>는 장르에 굶주린 팬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도 성공을 거두었고, 미국에서만 매회 1400만명의 고정 시청자를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캐치온을 통해 방영되기도 전에 이미 여러 경로로 소개된 <히어로즈>는 국내 미드팬들이 가장 열광하는 시리즈 중 하나였다. <히어로즈>는 가장 최근에 나타난 미드의 슈퍼히어로다. 평범한 사람들의 "지구를 지켜라!"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숨겨진 능력을 깨닫기 시작한다. 뉴욕의 화가 아이작 멘데즈는 헤로인에 중독된 상태에서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캔버스에 그리기 시작하고, 텍사스의 치어리더 클레어 베넷은 어떤 상처도 자생적으로 치유되며 심지어 죽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LA 경찰 맷 파크먼의 귀에는 타인의 생각이 환청처럼 들려오기 시작하고, 피터 페트렐리는 자신과 형 네이선 페트렐리가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인터넷에 누드 동영상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니키 샌더스는 혹시 자신에게 또 다른 파괴적인 인격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하고, 도쿄의 회사원 히로 나카무라는 갑자기 발견한 재능으로 시공간을 넘어 뉴욕으로 텔레포트해버린다. 그리고 이 모든 비밀을 발견한 채로 살해당한 인도인 유전학자의 아들 모힌더 세레쉬는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아 초능력자들을 찾아나선다. 문제는 새로운 능력을 깨달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비범한 능력을 제정신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평범한 시민들이라는 사실이다. 가정이 있고 친구가 있는 사회의 윤리적 일원들에게 슈퍼파워 따위야 거추장스러운 유전자적 영광일 뿐이다. 하지만 장르에 속한 캐릭터들은 어쨌거나 뭔가를 해야만 하며 <히어로즈>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화가 아이작은 거대한 폭발로 파괴되는 뉴욕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미래로 날아간 히로는 뉴욕에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을 지켜본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파괴적인 미래를 막을 방도를 찾아나서고, 결국 각기 다른 슈퍼파워를 간직한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들의 목표? 너무나 슈퍼히어로물다운, “지구를 지켜라!”다. 여기는 망토와 타이츠가 없는 슈퍼히어로의 세계. 미국 NBC가 제작한 <히어로즈>는 <스파이더 맨>과 <엑스맨>이 이룩한 ‘슈퍼히어로의 진화상’을 브라운관 속으로 진입시키려는 과감한 시도다. 장르의 문외한이 상상해낸 아이디어 <히어로즈>는 베테랑 프로듀서 팀 크링의 손에 의해 창조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남자가 여드름쟁이 시절에도 히어로 코믹스 한권 사본 적이 없는 장르의 문외한이라는 것이다. 별다른 히트작을 내본 경험이 없는 크링은 제대로 된 연재물을 만들어보겠다는 일념하에 머리를 열심히 굴렸는데, 딱 걸려든 이야기가 히어로물이었다. 미디어와 대중은 90년대 이후 진화를 거듭해온 슈퍼히어로영화들에 새로운 열광을 보내던 중이었다. 팀 크링은 텅 빈 노트에 삐뚤삐뚤 써내렸다. “만약, 대자연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종족을 진화시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너무나도 낡은 질문이다. 브라이언 싱어와 샘 레이미의 슈퍼히어로영화들을 모두 챙겨본 팬보이라면 결코 이처럼 고답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크링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정말이지 잘 ‘팔릴 만한’ 이야기의 시작이라 확신했고, <로스트>의 창조자 중 한명인 데이먼 린덜로프에게 넌지시 의견을 물어보았다. 의외로 린덜로프는 머리가 다 아찔했노라 고백한다. “크링의 아이디어를 듣는 순간, 나는 이렇게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썅. 내가 먼저 생각해냈더라면!” <서바이버>류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음모론적 판타지 세계로 도입한다는 꽤나 짬뽕스러운 아이디어로 <로스트>를 성공시킨 그에게 팀 크링의 아이디어는 대중적인 성공이 읽히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거친 초안을 현실화하기 위해 크링은 오랫동안 코믹스계에서 일해왔고 <스몰빌>과 <로스트>에 참여한 작가 제프 로엡을 찾아갔다. 로엡 역시 크링의 순진하고 대담한 발상에 깊이 매혹당했다. “팀은 내게 말했다. 좋아. 캐릭터 중 한명이 손짓만으로 자동차를 들어올려 길거리로 던지는 장면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이것 봐 팀. 그건 이미 <엑스맨>의 마그네토가 했다고’.” 그러나 백짓장 같은 호기심이야말로 크링의 재능이었다. 그는 완벽한 외부인의 눈으로 코믹스 장르에 접근하는 덕에 할리우드의 익숙한 히어로물을 브라운관으로 끌어오겠다는 대범한 아이디어를 탄생시킬 수 있었고, 대중의 눈을 가졌기에 장르적 잔재미에 천착하지 않고 캐릭터 자체로 승부하는 이야기의 힘에 집중했다. 이것이 매주 1400만명의 거대한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이유다. 역시 신드롬을 일으킨 <사이파이>의 SF시리즈 <배틀스타 갈락티카>가 평균 200만에서 300만명 사이의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것과 비교한다면 <히어로즈>의 대중적인 소구성은 놀랄 정도다. 현실적 스토리, ’장르적’ 쇼가 되지 않도록 슈퍼히어로 장르의 투철한 팬들과 심심풀이로 채널을 돌리는 일반 대중 사이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은 <히어로즈>의 가장 까다로운 서커스다. <히어로즈>는 결코 10대와 20대 남성으로 구성된 장르팬들의 환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크링은 밸런스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다면 <히어로즈>가 무너져버리고 말 거란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스토리를 최대한 현실적으로 풀어냄으로써 지나치게 ‘장르적’인 쇼가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제작진의 첫 번째 수칙이다. 이러니 전신 타이츠와 망토는 등장할 여지가 전혀 없다. 브라이언 싱어가 검은 가죽 커스튬을 엑스맨들에게 입히는 것으로 장르와의 원만한 합의에 도달했다면, <히어로즈>는 텔레포트 능력을 가진 히로와 친구 안도의 대사 두줄로 모든 고민을 끝내버렸다. “내가 진짜 신분을 감추어야만 할까? 아마도 커스튬?” “니가 망토나 타이츠 이야기를 꺼낸다면 나는 다 그만둬버리겠어.” <히어로즈>의 커스튬은 작업복과 치어리더복과 경찰복과 평범한 슈트다. 그러므로 모든 캐릭터들이 주어진 능력 때문에 고통받는 ‘인간’으로 묘사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를테면, 불사신 소녀 클레어 베넷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감추고 싸우는 전형적인 십대 소녀다. 할리우드 고등학교 장르영화에서 십대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은 ‘남들과 달라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치어리더 클레어는 자신의 능력이 남들과 다르기에 오해받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 괴물 아니면 기니피그로 취급받게 될 거야. 대부분의 경우 둘 다겠지만.” 홀로 아이를 키우는 스트리퍼 니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오는 얼터에고 제시카 때문에 몸서리치는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그녀의 얼터에고는 어떻게든 아이를 먹여살려야 하는 백인 하층계급 여인의 본심이 과격한 방식으로 표현된 것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다. 타인의 생각을 읽게 된 맷 파크만은 아내의 부정을 알고난 뒤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는 소심한 남편이며, 아이작 멘데즈의 미래를 그리는 능력은 마치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마약쟁이 환쟁이의 환상처럼 보일 지경이다. 샘 레이미가 <스파이더 맨>을 통해 묘사한 ‘슈퍼파워에 따르는 책임감’이라는 과제를 <히어로즈>는 좀더 현실적으로 파고드는 동시에, 수많은 캐릭터들이 저마다 지닌 무게를 한올한올 섬세하게 풀어나간다. 로버트 알트먼이 슈퍼히어로물을 만들었더라면 <히어로즈>와 똑 닮은 시리즈가 탄생했을 것이다. “히어로 영화를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오락적” <히어로즈>는 한때 맹목적인 소수의 팬들만이 열광했던 코믹스(그리고 슈퍼히어로물) 문화가 마침내 주류의 궤도에 올랐다는 증거다. 전신 타이츠도 없는 평범한 인간들의 영웅담은 브라이언 싱어와 샘 레이미가 거대 스튜디오와 싸워서 쟁취해낸 ‘새로운 히어로 블록버스터’의 한계마저 뛰어넘어 히어로 장르의 최종 진화 단계에 도달하고 있다. TV채널 의 대담한 장르적 실험과 대중적인 성공 앞에서 할리우드의 공룡 스튜디오들은 무엇을 더 내놓을 수 있을까. “수많은 팝콘 히어로 영화를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오락적”이라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탄성에 귀기울이라. “할리우드영화로부터 받은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고전적인 슈퍼히어로 스토리의 진정한 본성을 훨씬 제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조차도 따르지 못할 경지”라는 <버라이어티>의 호언장담은 괜한 농짓거리가 아니다. TV와 영화의 질적인 경계를 허물고 달려가는 미드의 진화 속도 앞에서 할리우드는 탄성 대신 탄식을 내놓을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고고하게 채널을 돌리지 마라. <히어로즈>는 어쩌면 올해 당신이 볼 수 있는 최상급의 할리우드‘영화’일지도 모른다. 아주아주 미약한 앞으로의 스포일러 무시무시한 악당과 새로운 히어로들을 만나게 될 것! 아직까지 국내 방영분에서는 <히어로즈>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채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스포일러를 완전히 까발리지 않는 수준에서 슬며시 앞으로의 전개를 들추어보자면, 주요 캐릭터들은 히로의 열정적인 행동에 힘입어 서로를 만나게 될 예정이며, 불사신 치어리더 클레어의 양아버지는 능력자들을 납치해서 실험하는 어느 단체의 비밀요원이라는 것이 곧 밝혀진다. 클레어의 양아버지가 선의를 알 수 없는 악당 노릇을 훌륭히 수행한다면, 전통적이고 무시무시한 악당은 사일러라 불리는 자다. 이 음험한 전직 시계수리공은 곳곳에 있는 능력자들을 찾아낸 다음 머리 두껑을 열고 뇌를 강탈해 능력을 흡수한다. 게다가 후반부에 들어서면 “앞으로 수많은 히어로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팀 크링의 호언장담처럼 <닥터 후>의 닥터 ‘리처드 에클레스턴’이 연기하는 투명인간 캐릭터 등 새로운 히어로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미 인터넷에서는 다음 시즌에 대한 수많은 억측들이 가지를 치고 또 치며 음모론을 양산하고 있다. 물론이다. 국내팬들의 표현대로 <히어로즈>는 ‘낚시드라마’가 맞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낚시’는 ‘클리프행어’(Cliff Hanger)라 불리는 미국 TV시리즈의 오랜 전통 중 하나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능력과 과업을 짊어질 운명인지 약간의 증거만 흘리며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히어로즈>의 낚시는 아주 부드럽고 우아하다.

[히어로즈] 주요 캐릭터 사전, 능력 혹은 집념의 영웅들과 악당들

히로 나카무라 만화광인 도쿄의 회사원. 시공간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텔레포트 능력을 이용해 가까운 미래에 뉴욕이 대폭발로 날아간다는 사실을 다른 능력자들에게 알리려 애쓴다. 심지어 시간을 멈추거나 느리게 만들 수도 있다. 미국의 팬사이트 설문조사에서는 57%의 시청자가 히로를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손꼽았다. 언제나 안도라는 직장 동료와 함께 행동하는데, 팬사이트들에서는 히로의 뒤를 봐주는 안도 역시 모종의 능력을 감추고 있다는 설이 파다하다. 피터 페트렐리 다른 히어로들의 능력을 스펀지처럼 자기 것으로 흡수할 수 있는 전직 호스피스 간호사. 자신이 미래에 발생할 뉴욕 대폭발의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병약한 틴에이저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많지만(<스몰빌>의 클락을 연상하면 된다), 이야기를 둘러싼 모든 음모의 중심으로 밝혀질 가능성이 크다. 네이선 페트렐리 하늘을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닐 수 있는 슈퍼맨. 하지만 엄청난 능력을 비밀리에 억누른 채 정치적 야망의 실현에만 몰두하는 능글맞은 정치인이기도 하다. (야망만큼 여색도 심한 관계로) 다른 캐릭터 한명과 숨겨진 핏줄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후반부에 밝혀진다. 맷 파크먼 타인의 생각을 엿들을 수 있는 능력 때문에 부부관계와 직장생활이 삐걱거리는 사람 좋은 경찰관. FBI와 잠시 일하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자신과 같은 히어로들을 납치해온 장본인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선다. 가장 고생이 심한 캐릭터 중 하나. 클레어 베넷 한마디로 말하자면 ‘불사신 치어리더’. 온몸이 찢기거나 불에 타도 재생이 가능하고 (아마도 몸이 산산조각나지 않는 한) 죽어도 되살아나는 귀신 같은 능력의 소유자. 양아버지 베넷이 능력자들을 납치하는 모종의 기관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방황한다. 현지 팬들 사이에서는 히로 나카무라 다음으로 인기가 높은 캐릭터. 다만 신체훼손 장면이 종종 등장해 심약한 팬들을 어지럽힌다. 아이작 멘데즈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화가. 시리즈의 진행을 모조리 예언한다. 처음에는 헤로인에 취해야만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나 점점 자유자재로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된다. 부잣집 딸인 시몬 드베로를 사이에 두고 피터 페트렐리와 삼각관계에 놓인다. 니키 샌더스 좀 골치아픈 능력을 소유한 전직 스트리퍼. 말하자면 여성판 헐크로, 평소에는 마음 여리고 눈물 많은 여인이지만 위기가 닥치는 순간 슈퍼파워를 소유한 살인녀 제시카로 완벽하게 돌변한다. 아들인 마이카와 남편 D. L. 역시 뭔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사일러 숨겨진 히어로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살해한 뒤 두뇌만 떼가는 연쇄살인마. 능력자들의 두뇌를 통해 능력을 빼앗는 것으로 추측되는 그의 정체는 중반 이후에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한다. <히어로즈> 시즌1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악당. 모힌더 세레쉬 존경받는 유전학자였던 아버지의 사망을 계기로 숨겨진 능력자들을 찾아다니는 인도인 학자. 집요한 탐구 정신 외에는 어떠한 능력도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곳곳에 흩어진 능력자들을 한자리에 모으겠다는 집념은 초능력에 가까울 정도다. 미스터 베넷(H.R.G) 불사신 치어리더 클레어 베넷의 양아버지. 실은 능력자들의 거처를 파악해 납치해서 뭔가를 연구하는 모종의 집단을 위해 일한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관계로 미국 팬들은 그를 H.R.G(Horn-Rimmed Glasses: 뿔테안경)라 부른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인생으로 들여다본 한국 영화사

4월12일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개봉한다. 100개의 작품이라는 말 자체도 기적처럼 느껴지지만 유독 부침 많았던 한국 현대사와 한국 영화판에서 40년 이상 살아남았다는 것은 임권택의 작가적 성공보다 더 기적적으로 보인다. 한국영화와 함께 살아남았고 성장했고 또 현재진행형으로 한국영화를 움직이고 있는 임권택의 영화적 역사를 당시의 충무로 풍경과 함께 들여다본다. 데뷔 전 - 먹고살기 위해 영화판에 뛰어들다 18살, 한국전쟁 통에 집을 나온 임권택은 ‘꿈 없는’ 가출 소년이었다. 일본 유학 중에 좌익이 되어 돌아온 삼촌으로 인해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살아 있지만 죽어 있는” 집안의 공기를 견디지 못한 가문의 장손이자 칠남매의 맏이는 기찻값만 달랑 들고 부산으로 떠났다. 노가다판을 전전하다 만난 군화장사꾼들은 전쟁이 끝나자 남은 군화를 그에게 맡기고 서울로 떠났다. 얼마 뒤 서울서 군화 장사 대신 돈 된다는 영화판에 뛰어든 사람들의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한 제작부의 허드렛일이 감독 임권택의 첫 발걸음이었다. 노가다를 할 때처럼 푼돈이 생기면 늘 술을 마셨다. 그에게 영화는 꿈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한 방편이었다. 1960년대 - 26살 데뷔, 미친 듯이 영화를 찍어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 위에서 영화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낙이었다. 순풍이 불기 시작한 영화판에서 임권택은 5년 남짓 한국 액션영화의 대부로 알려진 정창화 감독의 연출부를 했다. 이때 그는 감독 데뷔도 하기 전에 영화판을 떠날 뻔했다. 정 감독의 <비련의 섬> 촬영 때 주연배우 김삼화가 감독과 시비가 붙어 막무가내로 촬영을 거부하자 연출부 셋째였던 그가 분통을 참지 못해 배우를 한대 때린 것. 결국 김삼화에게 뺨 석대를 맞는 것으로 영화 중단의 위기를 넘겼지만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주연배우가 돌아가는 차 앞에 드러누울 정도로 젊은 혈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판에서 “똘똘하다”고 소문난 그가 감독 데뷔작인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찍은 1962년은 한국 최초의 영화법이 제정된 해이기도 했다. 71개에 달했던 영화사가 16개로 통폐합됐고 영화사 설립도 등록제로 바뀌었다. <오발탄>의 상영이 금지되는 등 군사정권의 검열은 강화됐지만 60년대는 유현목, 이만희, 신상옥, 김기영 등 실력있는 감독들이 활동하면서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일궈낸 시절이기도 했다.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 <만추>, 신상옥 감독의 <벙어리 삼룡> 등이 흥행했고, 한국 영화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두만강아 잘 있거라>가 흥행에 성공했음에도 이때까지 임권택에게 영화적 야심은 사치였다. 첫 영화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도 ‘망하고 나면 조연출로도 안 써줄 텐데’ 하는 걱정 때문에 망설일 정도로 ‘생계형’ 감독이었던 그는 10년 동안 제작자로부터 주어진 작품만 ‘주문생산’하는 데 급급했다. 60년대 말에는 한해에 무려 8편에 이르는 영화를 ‘가케모치’(겹치기)할 정도로 바쁜 나날이었다. 데뷔 뒤 11년 동안 50편의 영화를 연출했으며 임권택은 스스로 그 시대의 자신을 “저질흥행감독”으로 기억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만다라>로 임권택을 발견한 일본 영화평론가 사토 다다오는 그의 평전을 쓰기 위해 한국영상자료원에 의뢰해 임 감독과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보러갔을 때 상영 시작 뒤 5분 만에 자리에서 나가버린 임 감독의 부끄러워하던 모습을 회고하기도 했다. 1970년대 - 새마을영화와 반공영화 사이에서 길을 찾다 70년대에 강화된 검열로 영화 만들기는 점점 더 힘들어졌다. 텔레비전의 대중적 보급도 한국영화를 죽이는 데 한몫 했다. 대부분의 영화사들은 60년대 후반 만들어진 ‘우수영화 보상제’에 ‘올인’했다. 우수영화 추천제는 정부의 ‘우수영화’ 추천을 받은 영화사에 외화수입권을 줬던 제도. 이렇게 한해 스무편 정도 수입됐던 외화는 그야말로 로또복권이었던 탓에 한국영화는 외화수입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고 ‘추천용’ 새마을영화와 반공영화가 범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이 ‘저질흥행감독’ 임권택의 도약을 뒷받침하게 됐다. 제작자들은 어차피 한국영화 흥행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임권택은 늘 그의 머릿속을 짓누르던 흥행압박에서 벗어나 감독으로서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작가적 자의식이 녹아든 첫 영화로 꼽히는 <잡초>를 직접 제작했다가 망한 다음 <증언> 같은 대작 전쟁영화, <아내들의 행진> <왜 그랬던가> 같은 계몽영화를 만들었다. 10년 넘게 훈련된 연출력과 작가적인 비전을 자각하면서 그의 영화들은 서서히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다. 그러나 엄격한 테두리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의 한계는 명백했다. 임권택 작품에서 최초로 고향 또는 한국 땅 이야기를 시작한 것으로 평가받는 <아내들의 행진>의 마지막에는 영화의 맥과 무관하게 무장공비가 튀어나오는 장면이 들어가야 했고, <왜 그랬던가>는 원제 <알래스카의 늑대>에서 알래스카가 함경도를 연상시키며, 그러면 함경도로 넘어가자는 뜻인가라는 정부쪽의 말도 안 되는 추궁으로 <왜 그랬던가>로 바뀌게 된 것. 분단 소재의 영화 가운데 지금도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짝코>가 당시 우수반공영화로 꼽힌 건 평론가들에게도 농담거리가 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환경이었다. 70년 중반 극장가는 또 <별들의 고향>의 이장호, <바보들의 행진>의 하길종으로 대변되는 청년문화의 개화기였다. 그러나 흥행력도 떨어지고 청년문화에서도 소외된 임권택에게는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가 개봉관에서 사라지다시피하면서 우연히 만난 고향친구에게 “자네, 요즘도 영화하는가?”라는 인사를 받으며 “완전히 버림받은 것 같은 기분 속에서 초조하게 이번 영화가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현장에 나가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 - 관객과 만나다, 세계와 만나다 <족보> <깃발없는 기수> <짝코> 등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훗날 재평가되는 영화들을 만들면서 임권택은 80년대로 건너온다. 그 첫 결실이 <만다라>였다. 김성동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만다라>는 한국영화 최초로 베를린영화제에 본선 진출했고, 이후 빨라지고 넓어진 한국영화의 세계 진출에 첫 테이프를 끊었다. 그런데 작가적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이 시기에도 임권택은 상투적인 장르영화를 간간이 만들었다. “(영화작가로) 자부심 같은 건 별로 없다”고 말한 그는 “영화가 직업인 사람이 직장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프로 감독론’을 가지고 있었다. 70년대 말 호스티스영화에 이어 80년대 극장가는 본격적으로 ‘에로’영화가 활개를 쳤다. 80년대 최고 흥행작인 <애마부인> 시리즈는 당시 중학생들에게까지 동시상영관 필수관람영화로 꼽힐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변강쇠> <뽕> 등 토속 에로물 시리즈도 승승장구했다. 이 가운데 등장한 <씨받이>인지라 어쩌면 당연하게 ‘에로’시리즈로 분류가 됐고, 해외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은 것과는 달리 이 역시 동시상영관을 전전하는 신세에 머물렀다. 당시도 살벌했던 검열로 인해 처음 찍었던 필름을 대부분 버려야 했던 <티켓>처럼 찍고 나서 “(작품 훼손으로 인해) 오만정이 다 떨어지는” 작업도 여러 번 했지만 조계종의 거센 반대로 작품 자체가 엎어졌던 <비구니>는 그에게 두고두고 상처로 남았다. “비구니를 벗겨서 장사한다”는 외설시비로 엎어진 이 영화는 “내가 찍었던 전투장면 가운데 가장 훌륭했다”는 대규모 군중신을 비롯해 1만2천자가량 찍어놓은 상태였지만 지금은 필름조차 사라진 상태. <씨받이> <비구니> 모두 어떤 의미에서 당시 에로영화 바람에 제자리를 빼앗긴 영화였던 셈이다. 또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 정부의 제안으로 임 감독은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다큐멘터리- 본인의 작품으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는!- 도 만들기도 했다. 1990년대 -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등극하다 <비구니> 사태로 첫 단추를 잘못 꿰어 악연이 될 뻔한 제작자 이태원(태흥영화사 대표)과의 인연은 이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작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 90년 최고 흥행작인 <장군의 아들>이 이태원과의 인연으로 태어났던 것.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백치 아다다> 등이 해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따내면서 기쁨 못지않게 초조감을 느끼기 시작한 그에게 이태원은 난데없이 깡패 김두환을 소재로 한 액션영화를 제안했다. “영화제에서 뭔가 성과를 얻을 작품을 구상할 때라 몹시 언짢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아무도 기억 못하는 60년대 액션영화 감독으로서 자신의 변화가 스스로도 궁금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90년대는 바야흐로 표현의 자유가 스크린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파업전야> 상영으로 극단 아리랑 대표였던 김명곤이 불구속 입건되는 등 파동이 있었지만 <오! 꿈의 나라> <부활의 노래> <닫힌 교문을 열며> 등 이른바 ‘운동권’영화들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고 빨치산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다룬 <남부군>이 흥행에 성공했다. 이 시점에서 소설가 조정래의 제안을 받아 임권택은 <태백산맥>의 영화화를 구상했다. 그런데 시나리오화 작업이 지체되면서 쉬어가는 작품으로 만든 게 <서편제>였다. <서편제>로 명실상부한 흥행감독뿐만 아니라 작가감독으로서도 인정받게 됐지만 <태백산맥>의 제작은 수난이었다. 그는 <태백산맥> 제작을 앞두고 한 일간지에 자신이 좌익 집안 출신임을 커밍아웃하며 출사표와 같은 글을 기고했다.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황당한 제목으로 뽑힌 기사 탓에 빨갱이 자식에게 그런 영화를 만들게 해선 안 된다는 항의가 빗발쳤고, 촬영장에는 지역경찰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했으며 개봉을 하지 말라는 우익의 협박도 멈추지 않았다. 90년대 역시 모든 작품이 작가의 마스터피스는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다”는 임권택의 지론은 본인이 원하지 않던 <장군의 아들> 2, 3편을 결과적으로 졸속 개봉시켰고, <창> 역시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추석개봉에 맞춰 감독 스스로 무리한 촬영강행을 하느라 “역시 아쉬운 게 더 많은 작품”으로 남게 됐다. 2000년대 - 그리고 거장의 고뇌는 계속된다 90년대 후반부터 한국영화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변화와 성장의 시기를 거쳤고, 임권택은 <춘향뎐>으로 밀레니엄의 첫문을 기분 좋게 열어젖혔다.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칸영화제에서 본선에 오르고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타며 명실상부한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그러나 ‘직업인’ 임권택은 여전히 피가 마르는 작업을 한다.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사전제작 단계에서 오랜 파트너인 이태원 대표가 발을 빼면서 임권택은 60년대 먹고살기 위해 영화를 만들 때처럼, 70~80년대 정권의 눈치를 볼 때처럼 90년대 흥행을 하면서도 안도하지 못했던 것처럼 고뇌와 불안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역설적으로 이 긴장과 불안은 그를 원로가 아닌 젊은 현역 감독으로 각인시킨다. 그래서 100번째라는 숫자는 괄호를 닫는 것이 아니라 이후로도 길게 이어질 목록- 한국영화의 그리고, 임권택 영화의- 의 중간쯤에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숨> 영화평 ① 치유의 환상, 그 환상의 슬픔

한 여자가 남편의 외도를 알고 괴로워하고 있다. 하필이면 그 시간,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한 사형수의 기구한 운명이 흘러나온다. 송곳으로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했던 남자는 죽지 못하고 목소리를 잃었다. 여자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사형수를 찾아가고, 감옥의 면회실에서 그들은 이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김기덕은 이렇게 썼다. “증오가 들이마시는 숨이라면… 용서는 내쉬는 숨이다….” 아마도 <숨>에서 김기덕은 이 조화로운 세계를 꿈꿨을 것이다. 여자는 스스로 사계절이 되어 남자에게 총천연색의 삶을 선물한다. 남자는 자신의 존재 자체로 죽음이 되어 여자에게 두렵고도 매혹적인 죽음의 형상 혹은 열망을 선사한다. 여자의 송장 같던 마음과 남자의 송장 같던 삶에 욕망의 열기가 들어선다. 여자는 말을 하는 대신 노래를 부르고 남자는 육체의 언어로 화답한다. 현실의 언어가 부재하고 현실의 시간이 사라진 이 시공간은 하나의 완결된 세계가 된다. 그렇게 볼 때 이 세계는 더없이 아름답다. 그러나 정녕 아름다울 뿐인가? ‘사형수와 유부녀의 불가능한 멜로’라는 표피를 거두고 본다면, <숨>은 절망에 빠진 한 여자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크게 보자면, 여자의 길은 감옥 밖의 현실에서 시작해서 감옥 안의 세계를 지나 다시 현실로 이어진다. 그것은 마치 현실-판타지-현실, 일상-여행-일상처럼 폐쇄된 순환의 구조를 취한다. 이 커다란 순환의 구조 속에는 또 하나의 순환이 잠재되어 있는데, 그것은 감옥 안에서 펼쳐지는 시간의 순환, 즉 겨울에서 시작해서 겨울에 끝나는 계절의 흐름이다. 그래서 <숨>은 전체적으로 원형의 구조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영화는 끝에 가서 다시 처음의 지점으로 돌아간다. 그 귀환의 행로는 필연적인 순리처럼 그려진다. <숨>과 <시간>의 가장 명백한 차이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를테면 <시간>에서 시간의 반복은 파멸을 낳았다. 여자가 성형수술로 자연을 거스르고 새로운 시간을 꿈꿀수록, 시간은 그녀의 의지를 벗어났다. 반복은 아무것도 복원하지 못했다. 그런데 <숨>의 반복은 <시간>과는 다르다. 이때의 반복은 일면 시간의 순환을 창조한 여자에 의한 것이다. 여기서는 두번의 겨울이 반복된다. 그녀가 처음 사형수를 방문한 현실의 겨울과 그녀가 감옥에 봄, 여름, 가을의 시간을 불어넣은 뒤 다시 세상으로 나올 채비를 하는 겨울이 그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두 겨울은 같은 시간대에 놓여 있지만, 그 둘은 분명 다른 겨울이다. 두 번째 겨울, 여자가 사형수와의 마지막 순간을 섹스로 채울 때, 그녀는 마침내 어린 시절 겪었던, 기원과도 같은 죽음의 경험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는 그렇게 해서 사형수와의 관계를 마무리하고 감옥을 나서고 자기 내면의 분노를 떠난다. 감옥 밖에는 흰 눈이 내린다. 그녀가 남편과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를 때, 과거의 상처와 어떤 죽음(들)은 이미 추억이 된다. 이 두 번째 겨울은 그녀에게 처음보다 ‘덜 나쁜’ 겨울이다. <숨>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어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 과거의 고통이 눈으로 덮이는 더 나은 순간이다. 그럴수록 사형수 장진과 감옥에서의 일들은 이 여정의 흔적 혹은 판타지처럼 기억된다. 그러니 <숨>에는 <시간>에서처럼 처음으로 돌아가 무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운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택하는 의지 같은 것이 없다. 대신 이 영화에는 치명적인 일탈과 결국은 복귀의 움직임이 있다. 그것의 미학을 떠나 그 행로의 윤리를 따지다 보면, 때때로 ‘중산층 여자의 일탈과 가정으로의 복귀’라고 거칠게 요약하고 싶은 욕망도 생긴다. <숨>은 <시간>과 <빈 집>의 그림자를 지니지만, <시간>의 처절한 물질성과 <빈 집>의 시적인 상상력이 주던 울림과 비교했을 때, 무언가로부터 한발 물러서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후퇴의 몸짓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절박한 변명은 화해와 치유라는 말일 것이다. <숨>에서 김기덕은 남녀의 면회실 장면을 훔쳐보는 보안과장으로 출연해서 그의 전작들에 줄곧 등장했던 익명적인 시선의 자리에 자신의 시선을 위치시킨다. 그의 얼굴은 남녀의 행동이 그대로 전달되는 모니터의 화면 위에 그들의 일부처럼 어렴풋이 비친다. 그때 사형수와 여자뿐만이 아니라 김기덕 또한 감옥이라는 영화 속 치유의 공간에 속하게 된다. 영화의 내용과 감독의 행로를 연결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숨>은 온갖 스캔들을 뚫고 한결 평온해진 김기덕의 내면을 반영하는 영화, 그 정도 선에서 멈추는 듯하다. 그럼에도 끝까지 묻고 싶은 질문. 그녀의 두 번째 겨울은 정말 처음보다 ‘덜 나쁜’ 겨울일까? 내게 <숨>은 오히려, 그러한 여정을 치유라고 믿고 싶어하는 여자와 감독 자신과 우리의 환상, 그 환상의 슬픔을 말하고 있는 영화로 다가온다.

어느 쾌락주의자의 절제, 디자이너 정구호

어디에서 읽었더라. 상대에게 옷을 선물하는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치는 일이라고 했다. 디자이너 정구호의 옷은 그 소망을 단호하게 전한다. 품은 넉넉하고 실루엣은 유유하지만, 입는 이가 어떻게 느끼고 움직이길 바란다는 의사를 확실히 표명한다. 정구호의 영화미술도 비슷한 이유에서 압도적이다. <정사> <텔미썸딩>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위해 정구호가 지은 영화 의상은, 과장하자면, 인물의 성격을 거의 ‘폭로’한다. 새로 제작하지 않고 구호(KUHO)의 기성복을 협찬한 경우에도 정구호의 옷은, 여배우를 특정한 각도에서 다시 바라보도록 관객을 부추긴다. 낭창거리는 바지와 셔츠를 입은 <사랑니>의 조인영은, 천방지축으로만 보였던 배우 김정은 속에 숨은 호리호리하고 나긋한 여인을 노출시켰다. 블라우스를 비단뱀처럼 감은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은숙은, 배우 문소리가 가진 줄 몰랐던 싸늘한 광택을 뿌렸다. 6월 개봉을 앞둔 <황진이>는 정구호가 4년 만에 참여한 영화다. 송도 기생 명월도 어김없이 옷과 장신구를 선언처럼 걸친 여인이 될 터다. 정구호가 만든 옷은 좀, 고독해 보인다. 길쭉한 타원형 체경 앞에 홀로 서 있는 여자에게 가장 어울릴 것 같다. 왁자한 모임에도 입을 수 있으나, 자리에 어우러지기보다 외따로 떨어져 주목을 끄는 옷. 디자이너 자신도 다른 브랜드의 옷과 뒤섞어 입기 용이하지는 않다고 긍정한다. 심지어 구호 컬렉션 쇼에서조차 피날레에 여러 모델이 한꺼번에 행진하면, 이게 아닌데 싶다. 흔히 미니멀리즘이라고 요약되는 정구호 스타일의 아름다움은 주의를 기울이고 시간을 들여 보지 않으면 간과하기 쉬운 부류다. 그런데 정구호는 문제의 주의와 시간을 얻는 데 성공했다. 1997년 부티크 구호로 첫발을 내딛은 이래 젠(Zen/禪) 유행에 시동을 걸었고 옷 외에도 인테리어, 문구, 식기, 공연 의상 등의 디자인, 설치미술 작업, 인사동 쌈짓길 프로젝트를 두루 진행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정구호는 옷이 그의 활동의 정점임을 분명히 한다. 나머지는, 아이디어의 배경을 보여줌으로써 옷에 담긴 생각을 더 잘 이해시키는 작업이다. <정사> <순애보> <텔미썸딩> <하루> <쓰리>로 이어진 그의 영화 미술은, 디자이너가 눈치 보지 않고 뽐낼 수 있는 코스튬드라마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물을 만났다. 미국판 <보그> 편집장을 지낸 다이애나 브뤼랜드는 “디자이너란 사람들이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재주를 보여야 한다”고 했는데, 지난 10년간 정구호는 거기에 근접하는 것처럼 보였다. 의 이충걸 편집장에 따르면, 정구호는 세상의 아름답고 맛있는 것을 죄다 섭취하려고 애쓰는 탐식가다. “먹고 싶은 건 다 먹고, 입고 싶은 건 다 입을 거야!”라고 아이처럼 외칠 수 있는. 문외한인 내가 잡지를 통해 엿보는 패션은, 오답은 있으나 정답은 없는- 그리고 가격은 미정인- 세계다. 그러나 디자이너 정구호는, 유사시에는 한 벌의 옷을 가리켜 “옳다”, “그르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법한 선명한 직관을 대화 갈피에 보여주었다. 그와 세편의 영화를 만든 이재용 감독은, 옷본의 선을 내리그을 때나 사람을 대할 때나, 과함이나 부족함이 없는 절묘한 지점을 감지하는 아주 예민한 촉각이 정구호에게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뭇사람들이 ‘재능’이라 칭하는 힘의 정체는 결국 그 촉각이 아닐까? 정구호가 확인해주었다. “항상 그것이 문제예요. 언제 멈추고, 언제 나아갈 것인가.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그 지점을 생각해왔어요.” -옷, 그릇, 문구, 인테리어 디자인, 영화미술, 요리 등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꾸준히 해오셨습니다. 오래된 친구이자 영화를 같이 만든 이재용 감독님 표현으로는 힘이 더 들지언정 일한 자리가 분명히 표나는 쪽을 좋아하신다고요. 요즘은 어떤 일로 바쁘세요? =구호뿐 아니라 제일모직 10개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을 맡고 나서 10배로 바빠졌어요. 저는 둘러보고 지시만 하기보다 영화현장으로 치면 팔 걷고 사다리 올라가 망치질하는 부류예요. 제가 이것저것하니까 처음에는 “저 사람, 옷 하는 사람이야, 뭐야?” 하고 욕한 모 디자이너도 있었대요. 하지만 요새는 “저런 사람이구나”라고 인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실은 다른 일들을 같이 해서 오히려 제 일에 집중할 수 있어요. 옷 한 가지를 하는 데 열 시간을 일한다고 해도 열 시간 전부 실질적인 작업 시간은 아니잖아요? 유학기간에 저는 아르바이트를 스무 가지 넘게 해서 살았어요. 수업 끝나면 일하고 일 마치면 집으로 프로젝트하고 다시 일하러 가는 식으로 시간을 쪼개고 조절하는 생활을 열여덟살 때부터 한 거죠. 그래서 일의 집중도가 높아요. -사람 보는 눈이 좋고 점도 잘 치신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제 종교가 민속신앙이라서. (좌중 웃음) 나이가 들면서 사람을 이해하는 시간이 조금씩 빨라지는 것 같아요. 30분만 말을 나눠도 알 수 있을 것 같고 두번쯤 만나면 확실히 알겠고. -성함을 그대로 브랜드명으로 쓴 경우인데요. 구호라는 이름에 원래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브랜드 이름이 된 뒤 뉘앙스가 더 붙었다고 생각하세요? =구 자는 돌림자고요. 오랫동안 이름 안 짓고 아명으로 버티다가 세 살 반 때 할아버지가 절 불러 “앞으로 이게 네 이름이다”라고 붓글씨로 써서 보여주셨어요. 구할 구 자에 하늘 호 자. 어렵죠. 하늘을 구하라니, 뭘 어쩌라는 건지. (웃음) 철학하는 분들도 이름이 너무 세다고 해요. 브랜드 이름도 많이 고민했는데 외국인들에게 물으니 발음 느낌이 옷과 어울린다고 하더군요. -뉴욕에서 공부를 마친 뒤 출판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하셨는데 곧 그만두셨습니다. 평면 디자인이 주는 답답함이 컸나요? =책상에 가만히 앉아 하는 일을 잘 못해요. 그래픽 디자인을 하다보면 정해진 종이 규격, 화면 테두리 안에서만 움직여야 하니 몹시 답답했어요. 졸업 뒤 2년쯤 그러다보니 뭔가 움직여서 만들고 지저분하게 일을 벌였다가 치우기도 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뉴욕에서 식당을 열었는데 관련된 일 중 디자인에 속하는 일은 전공이니 내가 하자 싶었고 그러다보니 모든 일을 제가 하게 됐죠. 구호의 브랜드 로고도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구호(KUHO)의 로고 글씨체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맨 인 블랙>의 자막 서체(파블로 페로)와 비슷해요. 구호 옷의 실루엣도 그러고 보니 세로로 기름하네요…. (웃음) =워낙 긴 실루엣을 좋아하고 컨덴스드 체(condensed: 옆으로 눌려서 세로가 긴 서체)를 좋아해요. 학창 시절 프로젝트에서도 그 서체만 고집했고 막판에는 아예 <컨덴스드>라는 책을 만들었더니 선생님들이 두손 들었죠. 초등학교 때 TV보고 박공예, 매듭공예 따라했죠 -어려서도 영화를 좋아하셨다는 칼럼을 읽었습니다. 현실보다 서양영화를 보며 원체험을 한 경우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여섯살부터 <주말의 명화>의 단골손님이었죠. 가요보다 팝송, 외국영화를 더 친숙하게 섭취한 세대라서 그것이 더 깊이 흡수됐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저는 고교 졸업 직후 유학을 떠나 80년대 대학가 문화를 경험하지 못했죠. 이런 이야기, 친구들은 화내겠지만 방학 때 귀국해 신촌에 놀러가면 다들 막걸리집에서 인상 쓰고 담배를 피우며 슬퍼하고 있었어요. 내일 하늘이 무너질 표정으로. 저는 기쁘고 즐겁게 사는데 친구들에겐 삶이 역경이었죠. “너희는 왜 그렇게 슬프니?” 물었지만 이야기의 끝은 “넌 이해 못할 거야”였죠. “알았어. 난 이해 못한다. 그냥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할게.” 그랬어요. 저도 한국에서 대학 시절을 보내며 보고 겪었다면 다르게 살았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런 체험을 못하고 물질주의적 세계에서(웃음) 지낸 거죠.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면 <런웨이>의 스타일리스트 나이젤(스탠리 투치)이 “친구들이 풋볼할 때 몰래 재봉을 독학했다”고 회고하죠. 선생님도 어려서 새 옷을 사면 스스로 수선해서 입고 동생의 인형 옷도 지어주셨다고 들었어요. =사실 저는 공예부터 했어요. 흙장난, 소꿉장난부터 종이접기까지 뭐든 손으로 하는 작업을 좋아했어요. 초등학교부터 코바느질도 하고 TV에서 박공예니 매듭공예니 강의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보자마자 재료를 사서 이튿날 똑같이 따라했죠. 다른 아이들은 사탕을 사먹는데 전 사탕을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그 돈으로 재료를 샀고 하나를 완성해야 다른 작품에 착수했죠. 박공예를 해서 몇개 걸어놓고는 다음 프로그램 예고를 보며 “와, 이번엔 매듭이구나!”하고 또 매듭을 만들어서 걸어두고. 어머니는 그걸 떼내시기를 반복하는 그런 싸움을 고등학교 때까지 했어요. -록음악 하겠다는 아들 기타를 아버지가 부쉈다는 이야기의 박공예 버전이네요. (웃음) =아버지는 제가 만든 물건을 말없이 가져다 버리셨어요. 그러다가 홍익대 교수인 어머니 친구분이 소질이 있으니 가르치라고 아버지를 설득해 미대를 지망하게 됐죠. <캔디> <올훼스의 창> 같은 만화를, 트레이싱 페이퍼에 베끼지 않고 대번에 아크릴로 채색해 그리기도 했어요. 이웃 금란여고 학생들에게 인기 짱이었죠. (웃음) -어려서 어머니의 스커트에 매혹된 추억을 쓰신 글을 봤어요. 구호의 옷을 살펴보아도 여성의 치마에 대해 각별한 애정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평소 어머니는 아주 짧은 커트머리에 ‘당꼬바지’라고 하는 시가렛 팬츠(통 좁은 바지)를 주로 입으셨어요. 제가 치마를 입으라고 늘 졸랐죠. 처음 부티크(디자이너가 직접 운영하는 작은 매장)로 구호를 시작할 무렵엔 스커트를 훨씬 많이 만들었어요. 스커트는 여자들의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스커트와 다리의 밸런스와 컴비네이션을 굉장히 좋아해요 샤넬라인보다는 길고 예전 미디스커트보다는 짧은, 무릎과 발목 중간의 길이가 제가 사랑하는 스커트 기장인데, 매장에서 다리가 짧아 보이는 길이라고 불평이 들어와도 우겨서 만들었어요. 트임이 적은 스커트도 좋아하는데 어떤 손님이 제 치마 때문에 출근길에 버스 타려 뛰다가 넘어졌다며 “뛰지 말고 걸으라는 정구호 선생 뜻이구나” 싶었대요. -다리와 치마의 조형적인 조화 말고도 스커트를 입었을 때 따라오는 몸의 움직임을 좋아하시는 것 아닌가요? =스커트는 몸 전체를 길어보이게 해요. 바지를 입으면 서 있을 때 길어보일지 몰라도 걷기 시작하면 달라요. 스커트는 걸을 때도 면(面)으로 움직임을 보여주기 때문에 길어 보이죠. 또, 스커트에는 더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섹시함이 있어요. 여성들이 중요한 결정과 모임을 하는 날은 꼭 스커트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체형이 어떻든 스커트에 넘어가지 않을 남자는 없어요. 제 말을 믿어주세요. (웃음) 제가 여성복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남자라 옷을 직접 못 입어보고 만드는 거예요. 입다보면 옷을 달리 느낄 수 있거든요. 음식은 대여섯살부터 익혀서 자신있었어요 -졸업 뒤 기성복 회사에 취직하고 싶지 않아서 옷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출판사에 입사하셨다고 읽었습니다. 출발부터 아예 독자적인 부티크로 시작하겠다는 건 대단한 자신감 아닌가요? 또 한 가지, 부티크를 차릴 자본을 모으기 위해 귀국 뒤에도 레스토랑을 계획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레스토랑을 해서 거꾸로 빚을 질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돈이란 내가 기획해서 추진하면 벌 수 있다는 굉장한 낙관과 확신이 있었던 것 같아 신기합니다. =직장을 다니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고 제가 지닌 재주 중에 가장 현금화하기 좋은 것을 생각해보니 요리였죠. 음식은 대여섯살부터 익혀서 자신있었어요. 다들 제 음식이 맛있다고 하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퓨전 음식점을 하려고 했는데 정통 프랑스 요리를 제대로 하는 집도 드문 상황이라 제대로 배우자 싶어 요리유학을 간 거고요. 그런데 결국 레스토랑을 차리지 않고 바로 구호 부티크를 열었어요. 젊고 부양가족도 없는데, 간절히 하고 싶은 일부터 하자, 언제든 망하면 난 음식을 하면 된다고 마음먹은 거죠. 처음 기성복 회사에 취직 안 한 것은 패션 전공자도 아니고 경험도 없으니 그 부담을 안고 저를 채용해줄 사람도 드물 것이고 저도 그런 리스크를 남의 회사에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구호는 매장도 없는 상태에서 이태원의 레스토랑을 빌려 쇼부터 하는 특이한 출발을 했는데요. =광고비도 없었고 숍을 여는 것보다 신뢰를 얻기 위해선 제가 어떤 디자이너고 뭘 할 수 있는지 알리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선배 디자이너들께 일일이 찾아가 인사하고 행사를 알렸고 기자들에게도 편지를 보냈어요. 카탈로그와 포트폴리오도 보냈고요. 쇼도 모델라인에 찾아가 그냥 모델만 달라고 청해서 혼자 기획하고 음악 넣고, 이재용 감독을 포함한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죠. 지금 생각하면 겁이 없었죠. 다시 하라면…, 그래도 하고 싶네요. (웃음) 영화미술을 시작한 동기도 돈이었어요. (웃음) <정사>의 의상을 부탁받았는데 미술까지 담당하면 받는 돈도 커지니 목돈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라고 여겼죠. -1990년대 말 청담동 레스토랑 실내장식을 담당하고 부티크 구호를 열면서, 젠 스타일 유행의 한복판에 계셨어요. 패션잡지 편집장들께 여쭤보니 트렌드와 정구호의 고유한 개성이 맞아떨어졌다는 의견도 있고 젠 스타일 바람을 형성한 주체라고 보는 의견도 있더군요. =젠을 굳이 염두에 뒀다기보다 원래 제 취향이 장식보다 기본 구조, 기본색에 충실하게 접근하는 쪽이니까요. 저는 자연은 자연대로 가만히 두되 그 위치만 바꿔놓자는 생각으로 모던한 실내에 돌절구와 잔디만 놓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보여드린 것뿐이죠. 지금이나 그때나 사람들이 저로 인해 동요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2003년 제일모직에 스카우트되기 전에도, 부티크 구호를 내셔널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FNF라는 기업과 제휴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기업과 결합을 모색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일찍 판단하셨나요? =외국 같으면 디자이너에게 아틀리에를 지키라고 말하겠지만 우리나라는 유통구조가 그러기 어려워요. 매니지먼트, 재정, 작게는 천의 직조나 염색도 일정 규모 이상이 돼야 원하는 원단을 얻을 수 있어요. 후배들을 직접 지원 못해도 바람직한 선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07년 봄/여름 시즌 쇼에서 엘스워스 켈리, 프랭크 스텔라 등 미니멀리즘 예술가들에 대한 경의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미니멀리즘에 한결같이 끌리십니까? =다 늘어놓을 수는 있지만 그 늘어놓은 것을 정리할 수 있는 자가 정말 잘하는 사람이라고 믿어요. 제가 말하는 미니멀리즘은 무엇을 덜한 상태가 아니라 무엇을 더 해서 걸러낸 상태예요. 남들이 대여섯개 디테일을 쓴다면 저는 거기서 소거해가는 것이죠. 한편 완벽하게 장식적인 것은 미니멀한 것과 상통해요. 건축도 아주 고전적인 공간은 극히 모던한 공간과 어울릴 수 있고요. 라벨을 떼어내도 브랜드를 알 수 있어야 해요 -구호의 옷은 재단 방식에 큰 무게를 두기 때문에 건축하듯 옷 짓는 디자이너라는 평도 많이 들으셨죠. =구호의 기본 컨셉 중 하나가 뉴 커팅입니다. 일반적 양장 재단 패턴이 아니라, 그 옷이 보여주려는 실루엣에 따라, 표현하려는 체형에 따라 재단법을 바꾸는 거죠. 초기에는 어깨선이 없는 옷도 만들었는데 사이즈 분류를 위해 공장에 보냈더니 이런 옷은 처음 봤다고, 못하겠다고 도로 보내왔더라고요. 사람마다 체형이 다르니까 어떤 사람이 입으면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이 입으면 다른 식으로 옷이 떨어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러니 체형과 상관없이 입는 옷들이 있어서 부티크 시절에는 임신 사실을 공개하기 전인 연예인들이 많이 오기도 했어요. (웃음) 6개월까지 커버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좌중 웃음) 저는 맞춤옷에는 재능이 없는 디자이너 같아요. 팔뚝이 굵으니 소매길이는 반드시 얼마 이상이어야 한다거나 고정관념이 있는 분들을 안 좋아하거든요. 어쩌면 그것이 부티크를 포기할 수 있었던 이유였는지도 모르죠. -매장을 구경해보니 지퍼를 쓴 옷이 드물어요. 여밈 방식도 고집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퍼보다는 단추, 단추보다는 후크(걸고리), 후크보다는 스트링(끈)으로 여미는 옷을 좋아합니다. -여성의 몸에서 옷과 만났을 때 표현력이 가장 풍부한 부분은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목을 좋아해요. 목선이 쇄골을 딱 가리는 크루넥(crew neck)과 어깨선을 보여주는 스퀘어넥 라인을 특히 선호해요. 어깨는 드러내는 한이 있어도 목선만큼은 크루넥을 쓸 때도 있어요. 얼굴 주변을 단순하고 고전적으로 처리하면, 나머지 부분과 상관없이 제가 원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반면 허리선은 좀처럼 드러내지 않죠? 몸의 곡선을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여성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옷인데 이른바 ‘여성적’라고 말하는 조형적 요소는 뭘까요? =여성스러움의 실루엣은 억지로 만들어진 곡선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움직일 때 드러나는 선이라고 봐요. 종이 봉지 속에 사과가 들었을 때, 둥근 형태감은 있지만 정확한 모양은 구분가지 않는 상태처럼. 난 허리가 23이다, 26이다 보여주기보다 상상하게 만드는 편이 좋아요. 가만히 서 있을 때보다 움직일 때 옷이 주름지고 자락이 쏠리는 실루엣 변화가 좋아서 자꾸 그런 장난을 칩니다. -옷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디자인을 강조해오셨죠. 못마땅한 옷의 예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브랜드마다 고유 실루엣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블라우스, 원피스가 색상만 바뀌어 들어가 있는 것은, 옷에 대한 생각이 부족한 결과예요. 옷은 라벨을 떼내도 색깔과 소재에 상관없이 실루엣과 옷이 입혀지는 방법으로 어느 브랜드라는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제가 출발할 때 목표도 라벨을 떼어내도 구호라고 알아볼 수 있는 옷을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1년에 몇벌의 옷을 지으세요? =900개의 스타일을 만들어요. 스타일마다 색채와 소재를 변주하니까 옷의 가짓수는 더 많죠. 미국 경우 연간 400개 스타일이 최대치라고 해요. 미국보다 한국이 매장에 걸리는 옷의 회전 주기가 3배가량 빨라요. -그건 버려지는 옷이 많다는 뜻도 되나요? =맞아요. 아까운 옷이 많습니다. 극장에 걸렸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영화가 많듯이. -한국 여성들이 유행에 순응적이라는 말도 듣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변명하자면 비슷한 옷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해에 새 옷을 사면 원하건 원치 않건 유행을 타게 되는 면도 있어요. =저는 통이 넓은 바지를 좋아하는데 언젠가 새 옷을 사러갔더니 가게마다 시가렛 팬츠만 걸려 있어서 못 산 적이 있어요. 유행은 패션에서 무척 중요한 요소지만 개인이 추구하는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입을 수 있게 옷을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해요. 어렸을 때는 동네 가게에도 사과가 국광, 홍옥, 인도, 골덴, 스타킹 등 20, 30종이었는데 지금은 부사밖에 없어요. 잘되는 건 너도나도 하고 안 되는 건 무조건 없애버리는 문화는 바람직한 게 아니에요. 옷도 마찬가지죠. 덜 팔리는 몇 가지 옷이 바로 그 브랜드를 유지하는 옷일 수 있어요. -구호는 고가 브랜드입니다. 매장 직원 말씀이 단골손님들이 이 옷은 구호의 몇년도 스타일이 돌아온 거라고 거꾸로 가르쳐주는 일도 있다고 하더군요. 친숙한 고객에게 패션 이외의 조언을 할 때도 있습니까? =소비자 의견을 듣는 작업은 계속하려고 해요. 반영 여부는 제 자유지만요. 반면 저도 소비자들의 견해를 납득할 수 없다면 설득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옷을 잘 입는 유일한 길은 많이 입어보는 거예요. -많이 입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양의 멋은 어떻게 살았느냐에 영향받지 않을까요? =그런데 저는 한 사람에게 큰 행복을 주거나 추구하는 가치를 충족시키는 물건이 있다면 다른 것을 포기해서 살 수 있다고 봐요. 진짜 자기가 원한다면 다른 소비를 포기하고 오페라 시즌 티켓을 사는 게 여유라고 생각해요. 학생 시절 저는 옷 10벌을 살 시간을 참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요지 야마모토의 와이셔츠 하나를 사 입었어요. 졸업 때까지 침대없이 살면서 입으로 불어 쓰는 에어 매트리스에서 잤어요. 진짜 원하는 침대는 살 처지가 아니었고, 그 침대를 살 수 있을 때까지는 어디서 자든 상관이 없었어요. 뱅앤올룹슨(덴마크 오디오 브랜드)를 마련하기까지 오랫동안 19달러짜리 스테레오로 버텼어요. 사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는 디자이너니까 다른 걸 포기하고 최상의 디자인을 가진 물건에 돈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음향에 민감한 사람은 다른 것을 포기하고 진공관에 돈을 쓰겠죠. 빨강을 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경우 촬영현장에서 손수 전골을 끓이고 구석구석 정성을 기울이셨죠.그러나 아무래도 편집에 들어가면 주로 음식이나 소품을 보여주는 숏부터 잘려나가지 않습니까. 마음속에 분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 =분노가, 생기죠. 엉엉. <스캔들…>은 심해요. 다 잘렸어요! 하지만 영화의 주체는 감독이니까 할 수 있나요. 해서 딱 한편 영화를 감독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미술이 아주 잘 보이는 영화로 말이죠! --<스캔들…> 이후 방송, 영화계에서 사극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고대사를 다룬 작품은 고증보다 상상이 앞선 의상도 선보였고요. 관심 갖고 보셨나요? =변형 자체가 금기시됐던 과거와 달리 <스캔들…> 이후 전통의상을 응용하는 범위가 크게 늘어난 것은 잘됐다고 봐요. 하지만 일정한 규칙은 있어야 해요. 외부적으로 강제되는 룰이 아니라 이 작품에서 보여줄 의상의 한계, 범위와 뿌리에 관한 창작자 자신의 규칙이죠. 그 범위가 보이지 않으면 깊이가 사라져요. 디자이너가 어깨선을 올리겠다고 말하면 저는 꼭 이유를 요구해요. 그냥 예뻐 보여서라고 답하면 받아들일 수 없어요. 이유있게 어깨선을 올리는 것과 그냥 올리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고, 마찬가지로 영화가 흘러가는 중에 의상이 변한 이유가 분명히 보일 때 남과의 차별성이 생겨요. 단순히 이것 예쁘니 가져다 쓰자는 것과 작품에 맞게 해석하고 변형하는 건 달라요. -미술을 맡은 <텔미썸딩>에서 심은하씨의 캐릭터는 내내 싱글 버튼 H라인 의상을 입었는데요. 스릴러는 너무 정성을 기울이다 보면 옷이 스포일러가 되지 않나요? =맞아요. 보통 미스터리영화는 관능미를 강조하고 화려한 색을 쓰는데 저는 스릴러라고 세련미가 떨어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또한 심은하씨 캐릭터가 치밀한 성격이 아니고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는 여자였기 때문에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죠. -<순애보>를 보면, 우인(이정재)이 매형과 집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마른멸치를 접시에 둥글게 담고 깨, 참기름, 고추장을 찍어먹는 종지 세개를 놓더라구요. 내심 웃었어요. =그 멸치는 저보다 이재용 감독 취향이에요. (웃음) 우인이 감독을 많이 닮았어요. -<스캔들…>이 전작이다보니 <황진이>의 미술 의뢰를 수락하기까지 오래 고민하셨을 것 같습니다. =<스캔들…> 이후 사극을 여러 차례 의뢰받았지만 사양했어요. <황진이>를 하기로 결심한 건, <스캔들…> 이후 나온 사극들이 잘했지만 의상을 해석하는 범위나 틀이 분명히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어요. <스캔들…>이 고증에 제 생각을 약간 더한 영화라면 이번에는 고증에 구애받지 않는 완전한 변화를 한번 시도해보려고 했어요. -고증 대 상상의 양극단으로 대비하셨는데 <황진이>는 어떤 범위에서 두 가지를 결합한 건가요? 홍석중 작가의 원작에는 옷차림과 살림살이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대목이 꽤 많은데요. =원작의 묘사는 개의치 않았어요. 실제 황진이의 시대와 무관한 일제 강점 직전 조선 말기 기생들의 자료를 봤습니다. 신윤복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저고리 위로 치마를 완전히 뒤로 끌어당겨 둘러서 일자형 셰이프가 나오더군요. 미술이 기존 <황진이> 이미지를 깨지 못하면, 차별화의 부담을 연출과 연기가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데 그건 어려운 일이잖아요. 저는 그 부분을 돕는다고 생각해 파격을 제안했어요. -물에 둘러싸인 명월(황진이)의 집과 명월의 옷을 사진으로 보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성공한다면 <황진이> 스타일의 응용이 유행할지도 모르지만, 영화가 만족스럽지 않은 관객의 눈에는 위험할 수 있는 모험이예요. 우스꽝스러워지는 것과 혁신은 종이 한장 차이니까요. =영화를 보면 더 놀랄 거예요. 모험하지 않고 애매해지면 이 영화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기본 컨셉은 제가 잡고 진행은 김진철 미술감독이 하셨죠. 명월 집만 제가 신경을 많이 썼고요. 안채를 둘러싼 중원을 연못처럼 물로 채워서 징검다리로 직접 건너거나 누마루를 통해 갈 수 있도록 했어요. 기생의 집은 밤에 화려한 공간이고 그 화려함을 물의 반영이 증폭할 수 있다는 발상이었죠. 그 추운 날씨에 땅을 파고 물을 채우느라 난리를 쳤는데 영화에 덜 보여 아쉽죠. 그리고 <황진이>는 붉은색이 없는 영화예요. 오방색(청, 황, 적, 백,흑)을 놓고 정리를 해보니 빨강을 빼지 않으면 색 조합이 달라지지 않더군요. 붉은 기가 빠지면서 영화가 차가워졌지요. -붉은색을 쓰지 않고 화려함을 구현한다는 목표네요. <스캔들…> 개봉 당시 마음에 드는 빨강을 얻기가 힘들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빨강의 까다로움은 무엇인가요? =까닥하면 천해 보이고 잘하면 고급스러운, 천의 얼굴을 가진 색이고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지는 위험한 색입니다. <스캔들…>은 그 위험에 대한 도전이었죠. 요즘 사극들이 붉은색을 남발하고 붉은색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서 이번에는 “아니다, 그렇게 센 빨강을 빼고도 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공개된 사진을 본 사람들이 빨강을 쓰지 않은 것보다 검정에 먼저 강하게 반응해요. =우리나라 실내색은 주로 나무와 창호지, 노란 장판인데 <황진이>는 까맣게 갔죠. 일본스러우면 어떡하냐는 우려가 있었는데 안 그럴 거라고 설득했어요. 바닥은 검정 화문석으로, 거문고도 까맣게 칠했죠. 병풍은 빼고 장롱으로 채웠어요. 조선 후기 기생들은 남자들에게 선물받은 가구를 쌓아올려 세를 과시했대요. 북한에서 들어오는 골동품을 사서 장식을 뜯어내고 검게 칠해 리폼하고 백동 장식이 많이 붙은 개성장을 재현했어요. -색채도 색채지만 한복 소재가 인상적이었어요. 검은 크로셰(손뜨개) 레이스도 쓰인 것 같은데요, 엉뚱하게 고야의 여인 초상화가 떠올랐습니다. =한복 소재는 통상 자가드나 실크인데 그보다 로코코 소재를 응용해보고 싶었어요. 오간자(얇고 빳빳한 실크)에 레이스를 덧대고 은박도 썼어요. 기존 한복과 가장 다르게 느껴질 점을 간추리면, 소재, 색채의 조합 그리고 액세서리예요. 액세서리는 다 새로 제작했는데 존재하지 않는 머리꽂이를 만들고 바닥까지 끌리는 1m 넘는 노리개도 제작했어요. 디자이너란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람 -구호의 옷은 미인이라고 무조건 어울리는 옷이 아닌 듯합니다. 예를 들어 2006년 1월에 바비인형에게 옷을 입히는 행사에 참여하신 적이 있는데 저는 어색한 느낌이었어요. =홍보의 일환이지만 제 개인 취향은 아니죠. 사람을 좀 타는 옷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당장은 어색해도 그 어색함을 딛고 나아가면 인이 박힐 수 있는 옷이라고. 공간도 처음에는 다소 어색한 장소가 나중엔 더 오래 친숙해질 수 있는 곳일 때가 많아요. 사람도 까다로운 사람이 접근하긴 어렵지만 한번 친해지면 오래 가는 이치와 마찬가지예요. -무작정 첫눈에 사람을 풀어지게 하는 편한 집보다 약간의 긴장을 유지하게 해 주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하죠. =몸에 밀착하는 옷의 재단이 제일 쉬워요. 옷은 사람 몸에서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만들기 힘들어요. 옷이란 몸이 아니기 때문에 몸과 옷 사이에는 일정한 공기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상의 입체공간, 적당한 공기층을 생각하면서 옷을 만들어야 사람들이 숨쉬고 그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요. -옷을 직접 입었을 때 디자이너의 힘을 강렬하게 느낀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앤트워프 출신 마틴 마르지엘라 같은 전위적 디자이너 옷에 반해 옷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티셔츠 하나에도 다른 느낌이 있는데 그걸 알고 나면 그렇지 못한 ‘상업적인’ 옷을 입기 힘들죠. 저는 구치나 돌체 앤드 가바나 같은 브랜드도 상업적인 옷이라고 생각해요. 사람한테 반짝이 가루를 확 뿌려서 금세 반짝거리게 만들어주잖아요? 그런데 1년이 지나면 그 옷을 다시 못 입고 다른 반짝이를 뿌려야 해요. 예술이나 패션이나 구획화(zoning)가 잘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격대보다도 옷의 분위기와 속성, 연출에 따라 구획이 나누어져야 한다는 뜻이죠. 영역 구분 없이 아무나 어디서나 통하는 건, 모두 똑같은 위치에 소파, 텔레비전을 놓고 사는 우리 아파트 문화와 같다고 생각해요. -한동안 구호는 청담동 ‘규수’들의 옷이라는 이미지가 셌습니다. 그동안 요가, 생활용품 등 라인을 확대하셨는데 상대적으로 중저가 라인을 만들어 구호 특유의 세심한 재단과 좋은 구조가 있는 옷의 맛을 더 많은 소비자에게 알리고 싶은 욕구는 없으신가요?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호의 이름으로는 아니지만 구호의 느낌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어요. -맛과 아름다움에 예민한 만큼 추한 사물과 현상에도 민감하시죠?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재능이 있어요. 민속신앙인데가 운명론적인 사람이라, 예쁘고 세련된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거라고 생각해요. -디자이너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고 속으로 정의하고 생활하세요?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길 좋아해요. 누구나 태어나 살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잖아요. 저는 능력이 많아 자선사업을 크게 할 것도 아니고, 학식이 높아 학생을 가르칠 수도 없으니 다만 가진 감성으로 노력해 새로운 발상을 시각적으로 보여드리고 사람들이 그것의 영향을 받게 할 뿐이죠. 더이상 영향을 줄 수 없는 시간이 오면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하거나 조그만 장소에서 만들고 싶은 물건만 만들면서 지내겠죠. 그 둘을 한꺼번에 할 수도 있고요. (웃음)

[외신기자클럽] 영화제에 로그인하시겠습니까?

2007년 영화제들이 급진적일 정도로 새로운 방식으로 온라인으로 가고 있다. 지난 10년간 영화제는, 재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저작권 소유자에게 1회 상영료를 지불하는 방식을 취하며 대안적인 배급망으로 부상해왔다. 이제 영화제들은 배급사들이 아직 감히 시도하지 못한 방식으로 온라인상에 영화들을 올리고 있다. 독립영화를 다루는 유럽의 주요 영화제인 로테르담국제영화제는 지난 1월, 영화제 상영작을 몇 편 선정해 500명의 로테르담 거주자들이 텔레비전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실험을 감행했다. 영화제는 앞으로 로테르담의 텔레비전과 컴퓨터 모니터에서 영화제를 병행하기 위해 선정작 70∼80%를 온라인으로 가져올 생각이다. 같은 달, 선댄스영화제는 몇 개월간 아이튠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선정된 장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단편영화를 제공하기 위해 애플사와 협력했다. 이는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단편영화 후보에 오른 다섯편의 영화를 애플의 디지털 미디어 스토어에서 각 1.99달러에 온라인에서 볼 수 있도록 한 협력에 연달아 이어진 것이다. 2월에 애플은 베를린국제영화제 탤런트 캠퍼스에서 ‘뉴 가라지 플릭’ 이벤트를 후원했다. 이 이벤트에서 양성하는 세계 각지에서 온 350명의 젊은 감독들은 6일간 매일 한편씩 영화를 만들었으며, 애플은 이 영화들을 온라인에서 상영했다. 애플은 또한 특정 영화제 이벤트와 인터뷰들을 무료 다운로드할 수 있는 파드캐스트(podcast)를 제공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보스턴독립영화제는 17편의 영화제 상영작과 지난 5년 동안 영화제에서 상영됐던 단편영화를 같이 구매할 수 있는 애플TV 세톱박스를 이 기기의 일반적인 소비자 가격보다 50달러 높은 349달러에 판매했다. 500달러를 내면 보스턴의 관객은 애플TV에다가 모든 영화제 상영과 파티에 우선적으로 갈 수 있는 아이디를 받게 된다. 영화제들이 온라인으로 가는 동기는 각기 다르다. 로테르담은 분명히 자신들의 실험을, 그들이 전세계에서 가져오는 영화문화를 더 넓은 커뮤니티로 확대하는 도시민들에 대한 서비스로 보고 있다. 선댄스와 베를린은 신인감독들에게 더 많은 노출기회를 주기 위해 자신들의 브랜드를 이용한다. 보스턴의 경우 비영리 조직인 영화제가 돈을 모으는 방법이다. 올해의 온라인으로의 변화가 급진적인 이유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영화제들이 이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베를린의 인터내셔널 포럼 부문이 영화를 선정하며 독일 인터넷 판권을 요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국의 <아주 특별한 손님>은 참가를 철회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베를린은 유럽의 인터넷 판권을 요구하면서 선정작들을 지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베를린의 포럼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일반적으로 자국 내 박스오피스에서도 블록버스터가 아니며, 해외에서도 거의 팔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주 특별한 손님>은 한국 개봉시 1만5천달러 이하의 총수입을 냈다. 지난해 포럼 영화들 중 <피터팬의 공식>과 <방문자>는 한국 개봉관에서 각각 대략 2만달러와 4만달러의 총수입을 냈다. 만약 한국의 부산국제영화제가 뉴커런츠 부문 참가작들에 국내 인터넷 판권을 요구한다면, 아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경쟁부문을 국내에 더 잘 알리고 젊은 감독들의 노출 기회를 증가시켜줄 것이다. 아시아 최고의 인터넷 접속을 자랑하면서 아시아영화가 가장 약한 마켓 중 하나인 한국은 그런 실험을 하기에 완벽한 나라다. 어쨌든 지난해 뉴커런츠 부문 선정작 중에서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단 한편만이 한국 개봉을 잡고 있다. 이 영화는 더 많은 관객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흥분되는 데뷔작인데, 인터넷에서라면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In 2007, film festivals have gone online in a radical new way. Over the past decade, they have emerged as an alternate film distribution network, paying one-off screening fees to copyright owners for minimal financial risk. Now they're taking films online in ways that distributors don't yet dare. In January, International Film Festival Rotterdam, Europe's key festival for independent cinema, began an experiment in which 500 city residents were able to watch selected festival films through their television sets. The festival hopes to take 70-80% of their programme online in the coming years so as to create a parallel film festival on the city's television screens and computer monitors. In the same month, Sundance Film Festival teamed up with Apple to offer selected features, documentaries and shorts for sale on iTunes over a period of several months. It follows Apple's collaboration with last year's American Academy Awards in which the five nominations for Best Short Film were available online for $1.99 each from the company's digital media store. In February, Apple sponsored a new Garage Flick event at the Berlin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Talent Campus. The 350 young filmmakers from around the world that are nurtured by the event produced a film every day for six days that Apple made available online. Apple also distributed selected festival events and interviews on iTunes as free download-able podcasts. And this month, the forthcoming Independent Film Festival of Boston is selling an Apple TV set top box pre-loaded with 17 festival films and shorts from the past five editions for $349, $50 more than the media device's normal retail price. For $500, Boston moviegoers get the Apple TV and a festival pass that gives priority access to all screenings and parties. The festivals have different motivations for going online. Rotterdam clearly sees their experiment as a service to city residents, sharing the film culture they bring from around the world to the wider community. Sundance and Berlin are using their brand to bring greater exposure to new filmmakers. For Boston, it's a way to raise money for their non-profit making organisation. What's radical about this year's shift online is that it's coming from some of the world's most powerful film festivals. What would happen if Berlin's International Forum of New Cinema demanded German internet rights from films in their selection? Would South Korea's Ad Lib Night have pulled out? I don't think so. Berlin could demand European internet rights and keep its selection. Movies that screen at Berlin's Forum generally aren't blockbusters at their domestic box office and rarely sell outside of their own countries. Ad Lib Night, for example, grossed less than $15,000 on release in Korea. The films in last year's Forum, The Peter Pan Formula and Host & Guest grossed approximately $20,000 and $40,000 respectively on release on Korean screens. If Korea's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required domestic internet rights from films submitting to its New Currents competition, I suspect it would secure them. It would promote the competition nationwide and increase the young filmmakers exposure. With the region's best internet access combined with one of the weakest markets for Asian cinema, Korea is the perfect country in Asia for such an experiment. After all, only one of the films in last year's New Currents selection has a Korean theatrical release scheduled, Driving with My Wife's Lover. It's an exciting debut that deserves to be seen by a wider audience, and the internet could provide just that.

영상 포엠 혹은 생과 사에 관한 고찰 <화이트 발라드>

<화이트 발라드> A White Ballad 스테파노 오도아르디/이탈리아, 네덜란드/2007년/78분/인디비전 이탈리아의 신인 감독 스테파노 오도아르디의 장편 데뷔작. 강건한 양식성으로 일관하는 영상 포엠 혹은 생과 사에 관한 고찰. 어느 노부부 한 쌍이 있다. 그들은 서로 말이 없다. 각자의 상념만이 있다. 그런데 그 상념들이 마치 텔레파시처럼 메아리가 되어 서로의 대답이 되고 질문이 된다. 영화는 그걸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들려준다. 그들이 대화 대신 독백의 교환에 빠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불치병에 걸린 아내는 생이 얼마 남지 않았고 남편은 슬퍼한다.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깊고 긴 상념에 잠겨 지나간 삶과 얼마 남지 않은 공존에 대해 기억하거나 침묵으로 질문하는 것뿐이다. 이 노부부의 에피소드에 지속적으로 또 다른 이미지들이 병치된다. 유적지인 듯 보이는 곳을 배회하는 젊은 여자. 간접적인 주석자처럼 개입하는 이 여자를 죽음의 형상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 그리고 덩그러니 비어있는 두 개의 의자. <화이트 발라드>의 이미지들은 이야기 대신 정신의 상태를 전하기 위해 있다. 감독 자신은 이 영화를 두고 “고독과 젊음, 쇠락과 사랑에 대해 말과 이미지로 이루어낸 영화적 여행”이라고 말했다 한다. 양식적이며 상징적인 영화에 지치지 않는 관객들에게 권함. 2006년 로테르담영화제 상영작.

[일제시대 경성의 매혹] ‘모-던 뽀이’와 ‘모-던 껄’을 만나다

1930년대 경성이 배경인 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는 기묘한 중국 여관을 보며 “이 모든 것이 뒤섞인 지나치게 음울하고 복잡한, 그러다보니 급기야 약간 코믹하기까지 한 분위기는 다시 보니 영락없는 경성풍이었다”는 감상을 토로한다. 식민지 시대 경성은 정말 그런 도시였을 것이다. 한복 치마 아래에 하이힐을 신고 히사시가미(앞머리를 부풀리고 뒷머리를 올린 머리)를 한 여인처럼, 양풍도 아니고 왜풍도 아니며 조선풍도 아니었던 도시, 그리고 사람들. 그 때문인지 요즈음 한국 영화계는 항일을 논하지 않고는 등장하지 못했던 일제강점기를 뒤져 소재를 건져올리고 있다. <모던보이>(감독 정지우, 출연 박해일)는 향락의 밤거리를 쏘다니며 잃어버린 연인을 찾는, 한때 아무 생각 없었던 조선총독부 소속 공무원 청년의 이야기고, <라듸오 데이즈>(감독 하기호, 출연 류승범)는 조선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 PD가 주인공이다. <기담>(감독 정식·정범식, 출연 김태우·김보경·진구)은 1940년대 경성 병원을 배경으로 끔찍한 살인사건을 파헤친다. <다리퐁 걸>(가제, 감독 송일곤)은 비도덕적이거나 욕설이 섞인 대화가 오가면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했다는 경성의 전화교환수 다리퐁 걸(텔레폰의 일본식 발음)을 선택한 로맨스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얽혀 있던 일제강점기 경성. 장르를 불문한 여덟권의 책을 징검다리 삼아 그곳으로 건너가보려 한다. 그 무렵 경성에는 혼부라당이라는 무리가 있었다. 밤이 늦도록 번화가인 혼마치(충무로 일대) 일대를 헤매고 다니는 모던보이와 모던걸을 일컫는 이 속어는 1920, 30년대 경성의 풍경과 더불어 그 구조까지도 알려주는 단서가 된다. 1927년 미스코시백화점 개장을 시작으로 고급 상점가를 형성했던 혼마치는 전통적인 조선 상권을 무너뜨린, 일본인 지역 남촌을 대표하는 상권이었기 때문이다. 클로시와 중절모를 눌러쓴 젊은이들은 혼마치에 들러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치장을 했으며, 웨이트리스들은 상대하는 남자마다 양반집 규수나 프롤레타리아로 신분을 바꿔가며 농락하거나 농락을 당하곤 했다. 비단옷으로 차려 입던 기생들마저 여학생처럼 보이고 싶어 하얀 저고리 검은 통치마 차림으로 나들이하던 그 시절, 만화는 전차 안에서 똑같은 자세로 금시계와 보석반지를 쳐들고 섰는 모던걸들을 그리며 그걸 사줄 돈이 없으면 가정조차 꾸리지 말라는 풍자를 내뱉곤 했다. 모던걸과 모던보이는 남들보다 먼저 외국문물을 받아들였지만 이처럼 자주 희화화되었다. 드러낸 여인의 종아리며 계집처럼 단장한 사내의 얼굴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떤 가치보다도 화폐가 중요하게 여겨지기 시작한 자본주의를, 그들이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만화들은 쓰러져가는 판잣집에서 값비싼 옷을 걸치고 나오거나 부유한 시골 사내의 손을 잡아끌어 백화점으로 향하는 모던걸들을 비난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단순한 허영 이상의 사회현실이 깃들어 있다. 모던걸을 대표하는 여학생과 신여성들은 대부분 학력에 걸맞은 직업을 찾기가 어려웠고, 부유한 남자의 첩으로 지내거나 심지어 거리로 나서 ‘스트리트걸’이 되기까지 했다. 스웨덴에서 학위를 따고 돌아온 ??(나중에 채워넣을게요)이 취직을 하지 못해 콩나물을 팔며 가난에 시달렸던 것이 그 예다. 게다가 모던걸과 연애를 할 만한 모던보이들은 거의 모두 어릴 적에 정해둔 아내와 정혼자가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모던보이보다도 모던걸이 더욱 통렬한 풍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근대의 혼돈과 식민의 아픔이 서로 뒤섞인 시절 그런데 경제력과 겉치레가 어긋남을 조롱하는 만화들을 자세히 보면 당시 조선인들이 감수해야만 했던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불평등 또한 알아볼 수 있다. 조선총독부는 구시가 중심이었던 대한제국의 도시계획을 뒤엎고 용산과 명동을 아우르는 남촌을 중심으로 도로와 사회기반시설을 설계했다. 북촌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었고 하수도 제대로 빠지지 않는데 비해 남촌은 시원한 도로와 더불어 화사한 불야성을 이루었던 것이다. 종로가 더럽고 비좁다 한탄하는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진고개(지금의 명동)로 발길을 돌려 재즈를 들으며 홍차와 칼피스와 커피를 마시고 찰스턴을 추었다. 그 시간이 끝나면 돌아갈 곳은 결국 북촌이었음에도. 이처럼 일제강점기 경성은 모든 것이 어긋나고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기묘한 도시였다. 해수욕과 피서가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모두들 가난했기에 삼십전이면 갈 수 있는 한강철교가 휘어지도록 피서 인파가 몰렸고,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자유연애가 만연하여 구여성들은 버림을 받았으며, 도쿄역사를 그대로 본뜬 서울역사가 찬탄 속에 기둥을 세웠다. 그 시절, 모던은 무엇을 뜻하는 단어였을까. 몸이 채 자라기도 전에 어른 양복을 맞추어 입은 소년처럼 우스꽝스러운 몰골이었을까 혹은 모진 운명을 겪은 경성 트로이카와 나혜석 같은 신여성들에게 그랬듯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자유였을까. 반세기가 넘은 2007년과 2008년에 우리는 몇편의 영화를 통해 현대를 낳은 ‘모던한’ 경성으로 돌아가 그 시대의 명암을 멀리서나마 관조해볼 수 있을 것이다.

[냉정과 열정사이] 21세기에 도래한 신파 뉴웨이브

갖다 붙이자면 ‘토끼굴’ 장르에 속하는 영화들이 있다. 좁은 굴 속에 토끼를 몰아넣고 연기를 피워 질식시키는 토끼 사냥식의 이야기를 가진 영화들이다. 토끼 사냥과 토끼굴 영화들의 다른 점은 사냥에서 토끼는 연기에 질식해 굴을 뛰쳐나오는 시나리오지만 영화에서 토끼는 굴의 구석을 점점 더 파고들어가다가 결국 그 안에서 죽는다. 비극적 죽음이라는 점에서 엔딩은 같다. 토끼굴 영화의 대표작이라면 나는 단연 <어둠 속의 댄서>를 꼽겠다. 2000년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이 장르 최고의 작품임을 인정받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 셀마의 인생은 구석으로 몰리고 몰리고 또 몰린다. 더이상 굴을 파고들어갈 손톱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죽는다. 그것도 사형당한다. 그것도 살인 누명을 쓰고. 밀려오는 연기로 질식하는 와중에 그녀는 마치 순교자처럼 자신의 것을 포기한다. 멀어져가는 눈과 평생 모은 돈과 결국에는 목숨까지. 그리고 7년이 흘러 셀마에 필적할 순교자적 인물이 강림했으니 ‘혐오스런’ 마츠코다. 마츠코가 얼마나 재수없고, 남자복이 지지리 없으며, 또 심지어 그녀의 선택 또한 어쩌면 그렇게 삽질스러운지는 여러 리뷰들이 잘 알려줬기에 여기서 더 쓸 필요는 없겠다. 어쨌든 그녀도 일 버려, 돈 버려, 몸 버려, 마음 버렸다가 결국 죽임을 당한다. 그것도 철없는 꼬마들의 장난 같은 폭력으로. 그렇게 죽은 그녀의 머리 뒤로 영화는 후광을 씌운다. 웃자는 거지? 웃자는 거 맞다. 여기서 토끼굴 제1범주와 제2범주가 갈린다. 전자가 <어둠 속의 댄서>라면 후자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가 창시했다. 이 두 가지 하위장르를 구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한 가지만 꼽자면 ‘토끼몰이’의 적용범위다. <어둠 속의 댄서>는 주인공 인물과 관객 양쪽에게 쌍끌이식으로 운영한다. 셀마가 겪는 인생의 혹독한 시험이 단계를 올려갈수록 관객도 ‘어때, 불쌍하지?’에서 ‘이래도 안 울어? 니가 인간이야?’까지 압박의 단계 상승을 경험한다. 셀마가 교수대에 오를 때에는 그 압박감이 너무 심해 거의 온몸을 두들겨 맞는 듯한 기분까지 든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영화보다 주연배우 비욕의 그 유명한 파파라치 폭행사건이고 내가 비욕으로부터 두들겨 맞던 그 여기자가 된 것 같다. 주인공의 신파성과 파국으로 달려가는 이야기의 그 과감한 보폭으로 따지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도 <어둠 속의 댄서>에 못지않다. 그런데 이 영화는 관객을 압박하지 않는다. 도리어 ‘지금쯤 울어야 할 타이밍이 아닐까’ 싶을 때 ‘릴렉스~릴렉스~’를 외친다. 신파적 표현의 궁극이라고 할 만한 동반자살 기도 장면에서 상대 남자는 입에 들어 있는 수십개의 알약들을 질질 흘리며 “무서워서 못 죽겠어”라고 말하고, 비참하게 망가져서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던 50대의 마츠코는 텔레비전 속 아이돌 그룹에 벼락처럼 꽂혀 책 한권 분량의 팬레터를 신나게 쓴다. 또 마츠코의 유일한 후원자였던 포르노 배우 친구는 죽은 마츠코의 유품들을 수습하던 조카 쇼에게 감사의 표시로 자신의 최신 출연작 3종 세트를 선물한다. 웃다보면 어느새 후광을 배경으로 한 마츠코가 마치 천국의 아버지와 재회하러가는 예수님처럼 계단을 끝없이 올라간다. ‘이 계단, 길어도 너무 긴 거 아냐?’라는 반감이 살짝 들 때쯤 가슴속에 뭔가 뭉클한 게 느껴진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비브르 사 비>(그녀의 삶을 살다)잖아. 왜 꼬이는 인생이라고 삶의 즐거운 순간과 한심스러운 순간과 어처구니없는 순간과 웃기는 순간이 없겠는가. 왜 비극의 주인공이라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안 짓고,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지 않겠는가. <어둠 속의 댄서> 같은 지금까지의 토끼굴 영화들은 내용상의 희생뿐 아니라 눈물을 짜내기 위해 캐릭터의 희생(텔레비전 안 본다! 바보 같은 표정 안 짓는다! 아마 똥도 안 눌걸?)을 동반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손수건을 든 관객에게 아첨하기보다 자신의 캐릭터를 아끼는 마음으로 돌본다. 이것만으로도 ‘21세기에 도래한 신파의 신파(뉴웨이브)’라고 이름 붙일 만하지 않은가.

이세영, 추상미 주연 <열세살, 수아> 첫 공개

일시 5월 30일 오후 2시 장소 씨네코아(스폰지하우스) 이 영화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추상미)와 함께 단 둘이 살고 있는 열 세살 수아(이세영). 평범하고 약간 숙맥이지만 착한 소녀다. 하지만 아빠 없이 사는 요즘 엄마가 고물상 아저씨와 친해지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친구와의 사이는 틀어지고 우연히 수아는 또 다른 친구와 어울리다 경찰서까지 가게 된다. 서먹했던 엄마와의 사이는 나빠지고, 엄마와 싸우고 난 뒤 수아는 진짜 엄마를 찾으러 가겠다며 서울로 상경한다. 수아가 애타게 찾는 진짜 엄마는 자신의 환상 속에 그리고 텔레비전 속에 나오는 유명 여가수다. 말말말 "한 번도 애기엄마가 되 본 적 없다. 그래서 13살 아이 엄마를 하는게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수아가 꼭 내 13살 모습이더라. 모든 게 낯설고 구름위를 걷는 것 같던 때가 아닌가.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이 영화를 하게 됐다. 이번에는 수아가 욕심나서 했다. 그러니까 나는 중요하지 않고 수아를 잘 보아 달라"(추상미) "우리 엄마가 너무 말씀을 길게 하셔서 저는 짧게 하겠습니다. 저는 어리니까요. 재미있게 봐주세요"(이세영) 100자평 "숫자를 세며 걷는 조용한 아이, 수아는 열세 살이다. 아버지가 돌아신 후 식당 하는 지겨운 엄마와 단둘이 산다. 수아에겐 비밀이 하나 있는데, 진짜 엄마가 사실 유명가수 윤설영이라는 것. 고요한 무채색의 세계에 살지만, 자신의 내면에 환상과 마술의 따뜻한 세계를 품은 아이 수아. 삶이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듯, 환상은 환상이고 현실은 현실. 그러나 <열세살, 수아>는 현실과 환상의 균형점을 마침맞게 찾아냈다. 청보리밭 옆으로 지나는 노란 버스에서 수아가 받아들이는 현실과 환상의 화해가 아름답고 감동적. 아이와 소녀 사이, 아릿한 성장통 속에서 한때 수아였던 어른들을 위한 영화. 음악 감독을 맡으며 특별 출현한 자우림 보컬 김윤아의 빨간 드레스도 만날 수 있다." 송효정/영화평론가 “처음보면 이 영화의 주인공이 이세영이라는 걸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깍쟁이 역할을 맡았던 지난 작품들보다 미열에 시달리는 사춘기 초입의 지금 역할을 훨씬 잘 해내고 있다. 이 어린 배우는 지난 영화들에서 어른들의 손때를 탔던 것보다 훨씬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보통아이의 고민이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기대보다 너무 평탄하다.” 정한석/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