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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현지보고] 아~ LA 한복판에서의 승천은 꿈이었던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와이드 릴리즈를 하는 <디 워>의 프리미어가 열린 9월13일의 LA. 전미 2275개 극장에서 다음날인 14일에 개봉될 <디 워>는, 적어도 LA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극장 여름 성수기가 지나 관객이 뜸해진 탓도 있었고, 게다가 가족과 함께 조용히 보낸다는 유대인 설날 휴일이었던 탓에 도시 전체는 더더욱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온통 TV시리즈 광고로 가득한 도시의 전광판들 속에서 간간이 눈에 띄는 영화광고는 같은 날 개봉하는 조디 포스터의 <브레이브 원>과 일주일 전에 개봉한 <3:10 to Yuma>, 그리고 10월에 개봉하는 벤 스틸러의 <하트브레이크 키드>정도였다. <디 워>는 보이지 않았다. 7시30분에 시작하는 프리미어까지 세 시간 반이 남은 오후. 기대했던 반응을 전혀 건지지 못한 채 남은 시간 동안 LA를 돌아다니며 얼마나 많은 <디 워> 광고가 눈에 띄는지를 확인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발견한 것은 할리우드 대로에서 남쪽으로 멀리 보이는 오래된 건물의 낡은 외벽 전면에 붙은 대형 광고 하나와 한인타운 근처 101 고속도로를 내리자마자 보이는 길가 클럽 광고 벽보들 사이에 겨우 끼어 있는 두장짜리 포스터, 그리고 다운타운 길가 한곳에 일렬로 붙어 있는 포스터였다. 그동안 <브레이브 원>의 노란 포스터를 단 버스는 여럿 지나갔고 버스 정류장은 텔레비전 시리즈 광고로 반짝였다. LA에서 <디 워>는 옥외 광고를 거의 하지 않는 듯하다. 포스터 등 광고물 거의 눈에 안띄어 다만 <디 워>의 텔레비전 광고를 보았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려왔다. 그리고 그토록 열정을 가지고 광고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인이었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디 워>의 개봉은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폭스> 등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나간 스폿 광고는 그들 안에서만 화제가 되는 것 같았다. 인터넷에 올려진 트레일러는 상당히 그럴듯했다. 한국 사람들에게서만 광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확인도 할 겸 몇몇 미국인 친구들에게 <디 워> 광고를 본 적이 있냐고 묻자 대부분 고개를 저었지만, 그날 저녁 몇몇은 전화를 걸어 텔레비전 광고를 봤다고 전해주었다. 가족 단위의 커뮤니티인 오렌지 카운티에 살고 있는 지인은 한인 커뮤니티쪽에서는 주말에 자리가 없을지도 모르니 예매를 한다고 했다. 나중에 전해 들을 바로는 토요일 오후 3시 상영관은 비록 매진 사례는 없었어도 그런 대로 사람들이 많이 들었고, 그중 대부분은 가족 단위의 한인 가족이었다고 한다. 할리우드의 이집션 극장에서 개최된 <디 워>의 프리미어는 대다수 참석자가 한인 영화관계자들로 이루어졌고 한인들의 기대를 반영하며 성황리에 이루어졌다. 행사장에서 <디 워>의 홍보담당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어린아이들이 보기에는 폭력적인 장면이 있어서 영화의 타깃을 십대 남자아이들로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화 상영 뒤의 반응을 살펴보면, 십대들보다 어린 관객층이 훨씬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옆자리에 앉은 8살짜리 소년은 영화가 시작한 뒤 용에 대한 전설이 설명되기 시작하자 쏟아지는 정보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 계속 옆에 앉은 아버지에게 저게 무슨 말이야라고 묻곤 했다. 그렇지만 다운타운 액션장면이나 용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소년은 “아빠, 정말 멋져!”라고 중얼거렸다.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설명들을 따라가기 힘들어했던 것이 그 어린 소년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극장엔 대부분 한국인 관객들 일요일 오후에 다시 할리우드의 차이니즈 만 극장을 찾았다. 오후 2시50분, 600석 규모의 상영관에는 11% 정도가 찼는데, 그중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이었고 아이들을 데리고 온 미국인 가족이 몇몇 눈에 띄였다. LA에서 <디 워>는 한국인들의 영화였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디 워>가 어느 나라 영화인지 알지 못하는 듯했다. 심지어 프리미어장에서 만났던 행사 설치요원은 내게 왜 이렇게 아시아인이 많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디 워>를 보았던 지인들은 한국 영화관에서는 영화가 끝나고 박수를 치는 관객으로 떠들썩했다는데 솔직히 좀 부럽기도 했다고 했다. <영구와 땡칠이>를 기억하는 세대들의 열정적인 추임새와 함께 보는 <디 워>는 어떤 것이었을까. LA의 <디 워>는 그런 마법이 빠진 채, 어이 없는 대사와 멍한 연기, 진지하지만 고개가 갸우뚱해지게 하는 플롯 등, 여러 가지 엉성한 요소들 때문에 터져나오는 실소로 의도하지 않은 코미디가 되어버린 감이 있다. 사고를 당한 동료에 대해 어떻게 하느냐는 말에 “뭐, 녀석은 괜찮을 거야”라고 한마디로 무신경하게 내뱉는 장면이라든지 주인공이 가슴에 총을 맞고도 “괜찮아”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서는 장면에서는 객석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컸다. 배급사의 전략은 텔레비전과 인터넷 트레일러를 통해 광고를 한 뒤 한인 커뮤니티를 주요 타깃으로 해 언론의 본격적인 리뷰가 나오지 않는 첫주에 승부를 걸고자 한 것 같다. 주말 개봉 이후 를 비롯한 현지 언론으로부터 혹독한 리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으로 볼 때 이해가 가는 전략이기도 하다. 공통적인 반응은 부실한 플롯, 엉망인 대사 등에 대한 혹평이다. 는 “<디 워>는 웃기려고 하는 부분에서보다 심각한 상황에서 더 웃긴 영화, 케이블에서 방송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술 취한 친구들을 불러놓고 같이 볼 영화”라고 꼬집는다. 500만달러를 벌어들이며 9월14일 개봉 첫주 주말 5위로 올라선 <디 워>는 월요일에는 6위로 떨어졌고, 화요일에는 8위로 떨어졌다. 박스오피스 집계 전문 사이트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디 워>의 매표 수입은 일요일부터 급감하기 시작해서 9월18일(화) 기준으로 1일 평균 40%의 하락율을 기록하고 있다. <디 워>는 개봉 2주차 주말 박스오피스 10위를 차지했다. 태평양 건너 간 <디 워> 논쟁 호러블 보이부터 WWE 경기 피켓 시위까지 <디 워> 논쟁이 태평양을 건넜다. 인터넷 UCC사이트인 유튜브(www.youtube.com)와 IMDb(인터넷영화데이터베이스), 야후닷컴(www.yahoo.com) 등 영어권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한국인이 주도한 <디 워> 관련 논쟁이 한창이다. 특히 유튜브에서는 지난 9월15일 Justinwar라는 아이디의 10대 소년이 “<디 워>는 올해 최악의 영화”라는 동영상 감상문을 올리자 한국인 악플러들이 일제 공세를 퍼부었다. “연기도 호러블하고 특수효과도 호러블하다”라며 시종일관 ‘호러블’(Horrible)이라는 표현을 쓴 탓에 ‘호러블 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소년의 동영상은 순식간에 5만8천여건의 페이지뷰와 176개의 리플을 기록했고, 리플의 대부분은 한국인 악플러들의 원색적인 공격으로 가득 채워졌다. 특히 한국인 악플러들은 ‘깜둥이’(Nigger)처럼 영어권에서는 금기에 가까운 인종차별적 표현들마저 여과없이 사용하고 있다. 해당 동영상이 국내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으로 옮겨져 또다시 리플 전쟁을 낳고 있는 상황에서, ‘호러블 보이’는 유튜브에 2부작으로 이어지는 <디 워> 리뷰를 올려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왜 자신이 <디 워>를 최악의 영화라고 생각하는가”를 조리있게 설명한 소년은 “나는 한국을 욕하는 것이 아니며 <디 워>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한국이라는 나라를 싫어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냥 평범한 십대 소년이고 개인적인 감상을 비디오로 만들 뿐이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아달라. 성숙한 사람들이니 성숙하게 행동해달라”며 한국인 악플러들에게 충고를 보냈다. 이에 몇몇 한국인 네티즌은 “국가주의적인 한국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국가의 정체성이라고 여긴다”고 말하며 한국인 악플러들의 원색적인 모욕을 너무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주기를 당부하고 나섰다. 이미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급속한 하락세를 겪고 있는 <디 워>의 최종성적이 1천만달러를 넘지 못할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동안 국내 <디 워> 팬들의 파상공세로 몸살을 겪어온 IMDb와 야후닷컴의 영화 별점평가 섹션 역시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한때 높은 점수까지 치솟았던 <디 워>의 IMDb의 이용자 점수는 현재 10점 만점에 5점을 기록 중이다. 재미있는 것은 여전히 이용자들의 점수 분포가 극단적으로 10점 만점과 1점에 몰리는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인 이용자들이 IMDb 게시판의 점수 매기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로 해석되고 있다. 야후닷컴의 영화 별점 평가에서도 <디 워>는 9월20일 현재 C+의 낮은 평점을 기록 중이다. 이처럼 북미 관객의 평가와 흥행성적이 기대를 훨씬 밑도는 가운데, 미국 WWE 프로레슬링의 한 관중이 “<디 워> 보지마”(Don’t See D-WAR)라고 쓴 피켓을 쳐들고 있는 장면이 캡처되어 국내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는 ‘디시인사이드 <디 워> 갤러리’의 한 이용자가 WWE 프로레슬링 경기의 국내 중계 방송분에서 캡처한 장면으로, 네티즌 사이에서는 해당 장면이 합성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두고 팽팽한 설전이 벌어졌다. 이 같은 설전은 한 네티즌이 합성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경기 동영상 일부를 인터넷에 올림으로써 마무리됐다. 해당 동영상 캡처는 현재 국내 유머 게시판과 블로그를 통해 급속도로 유포되고 있다. 한편, 많은 네티즌은 북미 언론들의 리뷰가 일부 국내 언론과 <디 워> 팬들에 의해 심각하게 오용되고 있다며 성토에 나섰다. 특히 문제시되고 있는 것은 <뉴욕타임즈>의 리뷰다. 심형래 감독 역시 미국 시사 직후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재미없이 볼 수 없는 영화(It’s impossible not to be entertained)라고 평가해주었다”며 <뉴욕타임즈> 리뷰를 인용했고, 많은 언론들 역시 해당 인용구를 대표적인 격찬으로 간주해 기사에 실어왔다. 하지만 <뉴욕타임즈>의 리뷰어는 “영화는 숨가쁘고 정신착란적인 스튜로, 즐기지 않는다는 게 불가능하다”(It is such a breathless, delirious stew, it’s impossible not to be entertained, provided)라는 문장 뒤에 다음과 같은 조건을 붙여놓았다. “물론, 유머감각이 있어야 하는 건 필수적이다.”(this is crucial you have a sense of humor) 김도훈

부끄러운 역사 앞에 침묵을 거부하다

1950년대 후반 독일 영화계가 처한 상황은 한마디로 처참했다. 패전 이후 독일 영화 산업은 할리우드의 영화적 식민지로 전락해 있었고, 더군다나 텔레비전의 광범위한 보급은 독일 영화산업의 붕괴를 더욱 가속화했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베를린 영화제를 개최하면서도 영화제에 출품할 만한 자국 작품이 없는 것이 당시 독일 영화계의 현실이었다. 1962년 서독 오버하우젠 단편영화제를 위해 모였던 스물여섯 명의 독일 청년 영화인들이 “옛날 영화는 죽었다. 우리는 새로운 영화를 믿는다”라고 선언한 사건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저항의 외침이었고, 그것이 밑알이 되어 독일 영화계는 1960년대 독일 청년영화와 1970년대 뉴저먼 시네마를 꽃피우게 된다. 독일 청년 영화, 오버하우젠 선언의 기수 폴커 슐렌도르프는 오버하우젠 선언이 뉴저먼 시네마로 꽃피울 수 있도록 토양을 다진 대표적인 감독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칸영화제 그랑프리와 아카데미영화제 최우수외국영화상을 동시에 안겨준 <양철북>(1979)으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폴커 슐렌도르프는 프랑스 영화학교인 이덱(IDHEC)을 졸업하고, 이후 루이 말을 비롯해 알렝 레네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등에서 조감독으로 활동하며 영화를 익혔다. 그러던 중 1969년, 그러니까 오버하우젠 선언의 실질적 리더였던 알렉산더 클루게가 자신의 데뷔작 <어제여 안녕>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던 바로 그 해에, 슐렌도르프는 <젊은 퇴를레스>를 발표하며 독일 청년영화의 문을 활짝 열었다. 사라지지 않는 과거, 독일 사회에 대한 폭로자 클루게의 <어제여 안녕>이라는 제목 속에는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역설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동독 출신의 한 젊은 유대인 여성은 서독으로 탈출하지만 가정을 이루는데 실패한다. 사라지지 않는 과거가 끊임없이 현재에 출몰하며 그녀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독일 청년영화와 그로부터 비롯된 뉴 저먼시네마는 과거와의 단절보다는 연속을 강조하면서, 현재 속에 떠도는 유령 같은 과거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탐구하고자 했다. 로베르트 무질의 중편소설을 각색한 슐렌도르프의 <젊은 퇴를레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숙사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슐렌도르프는 독일 3제국의 전말을 알레고리적으로 드러낸다. 두 명의 학생이 어느 유대인 학생을 괴롭힐 때, 한 독일 학생은 한편으로는 불편하고 혐오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즐기는 듯한 시선으로 이를 바라본다. 이처럼 슐렌도르프는 잔혹한 행위를 보고도 이를 묵인했던 나치 시대 체제 순응자들의 과거를 들춰내고자 한 것이다. 뉴 저먼시네마의 감독들은 자율적 작가들의 느슨한 연합체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와, 체제 순응적으로 자기만족적 정서에 빠져가는 대중들의 태도를 비판한다는 점에서만큼은 의견이 일치했다. 슐렌도르프의 초기 대표작인 <젊은 퇴를레스> <살인의 정도>(1967) <반항아, 미카엘 코올라스>(1969) <벼락부자가 된 가난한 사람들>(1971)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1975) 등도 독일 청년영화와 뉴 저먼시네마가 추구했던 영화적 목표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았다. 슐렌도르프는 분명한 독일의 과거이면서도 이전 독일 영화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역사와 사회의 문제들을 폭로하는 비판자 역할을 자처했다. 특히 <벼락부자가 된 가난한 사람들>은 흔히 ‘고향 영화’라 불리는 전통적 독일 영화를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놓는 작품이다. 슐렌도르프가 볼 때, 더할 수 없이 풍성한 이미지로 묘사된 독일의 숲, 경치, 행복 등은 독일 대중의 눈을 현혹시키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와 <양철북>은 슐렌도르프의 영화적 성향을 집대성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슐렌도르프는 자신의 사회비판적 주제의식을 창작 시나리오를 통해 표출하기 보다는 이미 문학성을 인정받은 소설들을 각색하기를 즐겼다(그의 필모그라피는 위대한 작가의 소설들을 각색한 작품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슐렌도르프는 독일 청년영화를 이끌었던 클루게나 장-마리 스트라우브, 뉴 저먼시네마와 함께 등장한 빔 벤더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베르너 헤어조크 등과 비교할 때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감독이었다. 슐렌도르프 스스로도 “난 영화의 존재 이유를 가장 대중적인 전달 매체로 간주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슐렌도르프가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기 위해 독일 사회의 치부에 메스를 가하는 원작의 의도를 훼손하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양철북>의 오스카가 괴성을 질러 유리를 깨면서 자신의 의사를 세상에 전달하고, 양철북을 두드려 나치 전당대회를 왈츠를 추는 무도회장으로 둔갑시키며 회화화했던 것처럼, 슐렌도르프에게 <양철북>은 독일의 역사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윗세대에 대한 거침없는 저항이자 도전이었다. 독일 보수화와 슐렌도르프의 침체, 그리고 부활의 조짐 1982년, 파스빈더의 죽음은 뉴 저먼시네마의 종말이기도 했다. 특히 보수적 정치성이 강했던 헬무트 콜과 그의 기독교민주당이 승리를 거둔 이후, 엘리트주의적이고, 비판적이고, 비도덕적인 영화에는 재정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뉴 저먼시네마의 많은 감독들이 그러했듯이, 슐렌도르프 역시 파리와 할리우드의 작가와 배우들을 기용한 합작영화를 연출하기 위해 독일을 떠나야만 했다. 슐렌도르프는 <스완의 사랑>(1984), <세일즈맨의 죽음>(1985) 같은 작품을 합작으로 연출했지만, ‘독일이라는 영화적 뿌리’를 상실한 그의 영화는 위대한 원작의 충실한 영화적 번역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했다. 독일을 떠난 슐렌도르프의 침체는 그가 헐리우드에서 연출한 <핸드메이즈>(1990)에서 그 정점을 보여준다. 마가렛 앳우드의 <하녀이야기>가 원작인 <핸드메이즈>는 원작이 지닌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는커녕, 흔하디흔한 디스토피아 SF영화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실패작이다. 그 이후 발표한 <사랑과 슬픔의 여로>(1991)와 <팔메토>(1998) 역시도 섬세한 심리 묘사나 장르적 충실함 등의 장점을 말할 수는 있겠지만, 뉴 저먼시네마를 이끈 감독이라는 명성에 비하면 별다른 특징 없는 범작에 불과할 뿐이다. 꽤 오랜 침체의 시간을 보내던 슐렌도르프가 부활의 조짐을 보인 것은 <레전드 오브 리타>(1999)를 통해서이다. 독일로 복귀하며 발표한 이 작품에서 슐렌도르프는 그의 영화적 뿌리인 독일의 역사에 다시 접근한다. 서독의 테러리스트였다가 동독으로 망명한 리타의 삶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혐오하며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이상은 또 다른 현실 앞에서 너무도 초라하게 부서질 뿐이다. 어쩌면,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들려오는 “70년대는 우리에게 황금기였어. 스스로 대단하고 생각했지”라는 리타의 고백은 슐렌도르프의 회상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의 슐렌도르프에게 황금기 시절의 창조적 역량이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망각의 유혹을 뿌리치며 독일의 현대사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적 시도는 청년의 열정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독일 청년영화와 뉴 저먼시네마를 이끌었던 바로 그 저항의 열정.

풍광의 여유와 아프리카 음악 <노란 집>

<노란 집> The Yellow House 아모르 하카르 | 2007년 | 83분 | 35mm | 알제리, 프랑스 | 월드 시네마20:00 | 부산극장3 죽은 아들의 시신을 찾아 길을 떠나는 남자는 말한다. “신이 원하시면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아모르 하카르 감독의 영화 <노란 집>은 무엇보다 삶을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가 가슴을 울리는 영화다. 결혼 행렬이 시끄러운 가운데 물루드는 아들 벨케즘이 이틀 전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는 시신을 찾아 바트남 지역으로 향한다. 군사지역을 통과하기 위한 허가를 받고, 경운기 위에는 경광등도 단다. 느리게 움직이는 경운기와 고장난 경운기를 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남자는 조바심 내지 않는다. <노란 집>은 당연히 난황이라 예상했던 여정을 편안히 그리고, 실제로 남자는 아들의 시체를 찾아 나선 길을 이외로 쉽게 끝낸다. 죽음과 전쟁, 현실에서 벌어지는 외부적인 사건들은 이곳의 평화를 깨지 못한다. 하지만 문제는 두 번째다. 아들의 시체를 찾아 나서는 것보다 물루드를 힘들게 하는 건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부인이다. 물루드는 부인을 위해 강아지를 사고, 텔레비전을 가져온다. 슬픔을 치유하는 색이 노란색이란 말에는 집도 노랗게 칠한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영화는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슬픔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의 태도에서 아름다운 마술을 발견한다. 노란색 집과 어울린 풍광의 여유와 고난과 행복을 관조하는 듯한 아프리카 음악은 이들의 슬픔이 정말로 치유되고 있다는 믿음을 안겨준다. 정작 중요한 건 눈 앞에 벌어진 일보다 그 일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라는 걸 <노란 집>은 침착하게 몸으로 직접 보여준다. 직접 물루드로 출연한 아모르 하카르 감독의 연기도 돋보인다.

[이즈쓰 가즈유키] “아직 발굴되어야 할 과거가 많다”

<박치기!>의 감독 이즈쓰 가즈유키가 후속편인 <박치기! Love&Peace> 개봉을 맞아 한국을 찾았다. 후속편은 68년 교토를 무대로 했던 전편과 달리 74년 도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성격은 청춘영화의 활기에서 소시민 영화의 애환을 담는 쪽으로 변화했다. 주인공 안성의 아버지인 진성의 이야기를 추가하여 재일 한국인의 역사성에 대한 문제에도 더 접근하고 있다. 이즈쓰 가즈유키는 소시민 장르와 희극 장르 등으로 단련되어온 영화 장인으로서, 일본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새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일본사회에 대한 논평을 힘주어 들려주었다. 10월3일 오전 11시경, 마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인터뷰가 시작됐고 그는 문득 “지금쯤 만났을까”라며 말문을 열었다. -인터뷰보다 남북정상회담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웃음) =그건 아니지만, 남쪽의 대통령이 그쪽으로 넘어간 건 그야말로 박치기 정신이 아니겠나. 박치기 정신이란 뭔가 새로운 도전정신이 아닌가. 나도 박치기를 하려고 서울에 와 있는 것이고 한국의 대통령도 박치기 정신으로 지금 넘어가고 있는 거니까 관심이 간다. 북쪽에서 얼마나 호의적인 박치기가 돌아올지 그게 궁금하다. -영화 개봉 직후 일본에서 호평과 혹평을 같이 들었다고 말했다. =재일 한국인의 삶에 대해 알게 되어 감동했다는 말들이 많이 있었다. 반면 이 영화를 반일영화라고 낙인찍고 인터넷상에서 비난하는 일도 있었다. 일본인이 왜 조선인의 편을 드는 영화를 만드나, 지금 조선인 일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필요없다, 그건 그들의 이야기다, 라며 사이버 테러를 가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건 일본의 지금 사회의 한 경향을 보여준다. 일본의 지금 젊은이들은 신보수주의 성향이 강하다. 일본인만의 긍지를 강조한다든가 일본인만의 사회를 생각하고 소수자를 배척하고 소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은 일본 젊은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는 한국 젊은층도 같은 경향을 공유하고 있다 =그럴 수 있다. 눈앞에 당장 보이는 대세를 적당히 따라가려는 것 같고 특히 과거를 돌아보려 하지 않는 경향도 강하다. 하지만 정말로 긍정적인 미래지향이란 과거를 돌아보며 가는 것 아니겠나. 멍청하게도 그런 생각을 너무 하지 않는다. -일본의 텔레비전 시사프로그램에 자주 나오고 또 독설가로도 유명하다고 누군가가 그러던데, 듣다보니 그런 느낌이 온다. =나의 독설이라는 게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다만 말할 기회가 없을 뿐, 현명한 서민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텔레비전에 비쳐지니 독설처럼 보이는 것뿐일 거다 -전편을 말해보자. 전편이 청춘의 활기에 집중됐다면 속편은 재일 한국인의 문제가 더 강조됐다. =그렇다. 이번에는 전편에서 말하지 못했던 것이 주가 됐다. <박치기!>에서는 청춘, 대립, 융합, 공생등이 주제어였고 그것이 재일 한국인 2세들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1세들의 청춘, 그것도 전쟁에 놓인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그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2세들에 관해서도 모르는데 1세들에 관해서는 더 모르지 않았겠나. <박치기!>를 통해 재일 한국인 2세들의 청춘을 보고 관객의 큰 반향이 있었던 건데, 이제는 그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그들이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그들의 삶이 어떻게 생성된 것인지 거슬러 올라가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아버지 진성의 일화들이 너무 적었거나 혹은 자리를 못 찾고 있다는 느낌이 있다 =그럴 수 있다. 가령 제주도에서 남아시아 전쟁터까지 옮겨가는 그런 일화들을 더 자세히 그려내고 싶기는 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지금 일본 관객이 더 이해하기 어려워질 것 같았고, 그래서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현재(안성과 경자의 이야기)로 자주 돌아오는 구조를 취하게 된 것 같다. 제주도나 전쟁 기간의 이야기를 더 해볼 수 있었겠지만, 사실 그것만 갖고도 한편의 다른 영화가 나올 수 있을 만큼 방대한 분량이다. 진성의 이야기는 이 영화제작자의 아버님(씨네콰논 이봉우 대표)이 겪은 거의 실화에 가까운 이야기다. 그걸 더 확장해서 한편의 다른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주연배우들이 모두 바뀌었다. =전작에서 6∼7년 정도 지난 이야기라 모두 바꾸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는 분장이라는 방법 등을 선택하면서 같은 배우를 유지하려 했을 것 같은데, 당신은 좀 다르게 생각했나보다. =전편에 나온 강한 청춘의 인상들을 어른들의 이야기로 이어가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지는 역시 이미지라서 그것을 분장 등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다. <대부>의 알 파치노가 3부작 전부의 주연을 하는 것과는 좀 다른 문제 같다. 또 알 파치노만큼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기용한 것 같지는 않고 해서…. (웃음) -전반적으로 보면 당신은 소시민 장르에 주된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건 이미 내가 영화를 시작했던 20대 초반부터 그래왔다. 그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권력자나 실업가의 성공 스토리 같은 데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그럼, 20대 초반의 이즈쓰 가즈유키는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22살, 23살쯤 포르노그래피영화 현장에 있었고, 포르노그래피영화를 몇편 만들고 나면 그때 메이저쪽으로 가야지 생각했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런 영화를 했던 것도 70년대 상황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유행한, 전 국민이 다 중산층을 지향하고 꿈꾼다는 의미에서 나온 ‘일억 총 중류’의 흐름에 대한 반항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다들 고상한 생활들만 꿈꿨으니까. 하지만 밤 되면 하는 일은 다 똑같지 않냐, 뭐 그런 나 나름대로의 반발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 지금 당신의 관심사는 뭔가. =여러 가지로 모색 중이다. <박치기!> 시리즈 이후 강연 요청이 너무 많아 연말까지는 일단 그걸 해야 할 것 같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죽이는지, 혹은 얄팍한 관계에 놓여 있는지, 그 안에서 터지는 사건은 무엇인지 등에 관심을 갖고 자료 조사 중이다. 그리고 재일 한국인 이야기로는 종전 직후 일본 내 재일 한국인의 상황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내 생각에는 한국의 급진적인 감독 중 누구라도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아직 발굴되어야 할 과거가 많다. 역시 시장의 상업주의가 판을 치고 있으므로 바보 같은 영화나 그저 그런 영화들이 있기는 해야겠지만 말이다.

스물아홉의 성장통, <파니 핑크>

EBS 10월13일(토) 밤 11시 서른으로 가는 길목, 스물아홉살의 여인들은 왜 그토록 불행한가? 아니, 스스로 기꺼이 불행을 껴안고 서른이 자신을 집어삼키는 순간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떠는가? 일찍이 누군가는 서른에 이미 잔치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누군가는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 같다고 고백했고, 또 누군가는 9회말 투아웃이라고 외쳤다. 그뿐인가. 요즘처럼 책 안 읽는 시대에도 불티나게 팔리는 ‘여성자기계발 백서’는 여자 나이 스물아홉에서 서른을 인생의 전환기, 무언가 대대적인 변혁을 실행해야만 하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재차 강조한다. 이러한 무서운 가르침 앞에서 언니들은 어이없게도 십대 소녀 시절을 향수하거나, 세상을 냉소하며 무력감에 빠지거나, 서른 이후에 모든 것을 걸며 미친 듯이 자기투자에 몰두한다. 아무튼 스물아홉 먹은 여인은 스물아홉 번째 해를 살지 않고 과거를 살거나 미래를 산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모든 건 상술이다. 텔레비전과 책과 글들은 스물아홉의 불행을 창조하고 판매한다. 서른 문턱의 불안한 언니들은 최고의 소비자다. 서두가 길었지만, <파니 핑크>를 오랜만에 다시 보면서 난데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항 검색원 파니 핑크는 스물아홉살의 독신녀다. 허름한 아파트에서 말 그대로 하루하루를 견디어가는 그녀는 삶을 밀어내고, 죽음의 순간을 연습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리카 출신의 심령술사인 오르페오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자기 앞에 다가올 사랑에 대한 예언을 듣는다. 그러나 섣부른 희망에 사로잡힌 파니에게 운명은 사랑이 아니라 고독을 안겨준다. 이때부터 삶의 끝자락에서 고독에 몸서리치는 두 사람, 파니와 오르페오의 우정이 시작된다. 파니의 슬픔과 성장이 에디트 피아프가 들려주는 절절한 선율의 고백으로 감싸질 때, 분명 거기에는 서른이라는 한 세계에 대한 불안과 동경이 있다. 하지만 서른이라는 나이 자체에 내재된 자기연민, 삶에 대한 유난한 두려움은 어쩌면 반복되는 일상의 단절과 도약을 꿈꾸는 자들, 그 꿈을 파는 자들이 만들어낸 서른이라는 ‘환상’일 따름이다. 생각해보라. 서른이 다른 시절보다 뭐가 그리 더 대수로운가.

<야경>으로 부산 찾은 피터 그리너웨이의 작품세계

장 피에르 고랭의 표현을 빌자면 영화의 역사에는 두 종류의 영화가 존재한다. 그 하나는 ‘이디엄의 영화’로 이는 기존의 관습적 언어를 재구성해 테크닉을 활용, 삶의 갈등을 표현하고 감동을 만들어내는 영화다. 다른 한 편 ‘그래머의 영화’가 있다. 영화의 문법, 영화 언어의 문제를 고민하는 영화로 이는 어떻게 영화에서 새로운 창조적 언어가 가능할 것인지, 세계를 향한 이미지가 어떻게 창조될 수 있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영화다. 다소 이분법적으로 말하자면 영국의 영화감독 피터 그리너웨이의 작업방식은 후자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의 문법을 사유하는 그리너웨이의 작업방식을 고려할 때 21세기에 그가 만들어낸 삼부작 <털시 루퍼의 여행가방>은 지극히 야심적인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차이는 있지만 고다르, 혹은 크리스 마르케처럼 그리너웨이는 그만의 방식으로 20세기의 문명사를 결산, 혹은 분류하고자 했다. 이 연작은 멀티미디어적인 기획으로, 가령 <털시 루퍼의 여행가방>은 극장용 영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미디어들(텔레비전, DVD, CD-롬, 책, 웹사이트 등)을 통해 상영, 전시되면서 관객들의 상이한 관람체험을 만들어냈다. 모험은 그런데 늘 위험을 동반하는 법이다. 그가 구상한 멀티미디어의 모든 관문을 통과한 관객은 아주 적을 것이고, 그래서 그가 구사하는 ‘그래머의 영화’는 21세기의 항해자로서의 관객을 여전히 가상적인 관객으로 남겨 놓았다. 종종 그리너웨이의 열광적인 지지자들과 만날 때가 있는데, 사실 그들 대부분은 그림을 전공하거나 미디어연구자들로 영화광들은 아니었다. 전통적인 영화광들은 그의 최근 작품에 종종 난색을 표하곤 한다. 가령 <프로스페로의 서재>나 <마콘의 아이>에서 신비스럽고 매혹적으로 지식과 종교의 남용에 대해 비판했고, 일본문화에 관한 에로틱한 시각이 담긴 <필로우 북>에서 디지털 시대의 영화가 동양적인 서예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던 그의 작품은 분명 흥미로웠다. 마치 이 시대의 디드로처럼 수학, 과학, 건축, 회화, 영화의 역사를 거슬러가며 지식과 종교, 섹스와 로맨스를 표현하며 시대를 넘나드는 사유를 보여준 지난 세기의 그리너웨이의 작업은 난해하기는 했지만 시각적 황홀을 제공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21세기의 그리너웨이의 모험은 좀 남달랐다. 그의 작업은 영화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멀리 간 시도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세기의 영화를 창조하고자 한 그의 야심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의 작업은 이미 영화의 경계를 훌쩍 넘어가버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너무 영화와 멀어졌다고 지나치게 푸념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그리너웨이가 제기하는 질문과 모험이 영화의 경계를 벗어났다기보다는 그것을 보다 근본적으로 사유하기 위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리너웨이는 지난 세기의 영화가 너무 스토리텔링에 치우쳐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만약 영화에서 여전히 이야기를 중시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소설을 쓰라고 충고한다. 이제 텍스트에 근거한 영화가 아니라 이미지를 사고하는, 인터랙티비티와 멀티미디어 환경을 활용하는 영화들이 새로운 세기에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에는 새로운 영화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그는 천천히 수를 헤아린다. <차례로 익사시키기>(87)에서 이미 소녀는 줄넘기를 하며 별의 수를 헤아렸다. <털시 루퍼의 여행가방>에서는 ‘92’이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그러면서 아흔 두 개의 여행 가방이 보따리 풀리듯 열린다. 92는 우라늄 원자기호로 그리너웨이는 20세기의 역사가 우라늄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마찬가지로 아흔 두 개의 가방에 담긴 물건들에 20세기의 역사가 숨어있다고 한다. 수를 세고, 알파벳을 호명하는 것, 그것은 세계의 질서, 사물의 형식, 영화의 구조를 파악하려는 노력이다. 그렇게 그리너웨이는 아흔 두 개의 관념들과 인물, 만남들, 모험을 거쳐 미디어를 관통하면서 21세기의 영화를 새롭게 사고한다. 그의 작품은 한 마디로 역사와 픽션, 미디어 매체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자 백과사전적이고 신화론적인 거대기획이었다. 그가 이제 렘브란트의 그림에 담긴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이제 다시 흥미로운 게임이 시작된다. 하나, 둘, 셋.., 질문의 숫자를 함께 세어보자.

[외신기자클럽] 대륙의 새로운 빛

중국은 2007년 400편이 넘는 장편영화를 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숫자는 단지 정부 영화부처에서 상영인가를 받은 영화들, 즉 극장 배급을 목적으로 한 합법적 영화들만을 센 것이다. 텔레비전용 영화와 HD영화, 무인가 영화들까지 포함한다면 제작편수는 적어도 1.5배는 더 많아질 것이다. 2001년 중국은 단지 71편의 인가 영화를 제작했다. 펑샤오강의 <거장의 장례식>, 장위안의 <사랑해>, 황지엔신의 <엄마는 갱년기>, 장양의 <지난날> 같은 인정받는 감독들이 만든 손꼽히는 영화들이 이때 나왔다. 낮은 제작수준에도 불구하고 이해는 새로운 세대의 흥미로운 감독들이 나온 주목할 만한 해였다. 카오바오핑의 <절대적 감정>, 리지시안의 <왕수선의 여름>, 루추안의 <사라진 총>, 멩치의 <눈오는 날>, 텡후아타오의 <100>, 장이바이의 <스프링 서브웨이> 등의 데뷔작이 나왔다. 2001년에 촬영을 마쳤지만 2002년에야 상영인가가 난 작품으로는 천다밍의 <맨홀>, 마리웬의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이의 죽음>, 주징레이의 <아버지와 나> 같은 작품들이 있다. 지난 몇년간 6배로 성장한 영화산업은 외국 감독들과 새로운 재능있는 신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어권 영화는 외국인 감독들은 우선적으로 홍콩과 대만에서 수급한다. 2001년 대만의 추옌핑과 홍콩의 서극, 마초성, 종주가 등이 공식적인 공동제작물의 감독이 되기도 했다. 중국과의 공식적인 공동제작 수가 지난 6년 동안 붐을 이루었을지 몰라도, 이런 성장의 대부분은 국내에서 성장한 인재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심지어 다작을 하는 홍콩 영화감독들도 400여편의 영화에 자신의 자취을 남기긴 힘들다. 그리고 보수적인 홍콩 영화업계는 “수출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을 그동안 키우지 않았다. 베이징과 상하이에 계속해서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지난 2년간 만들어진 중국영화의 작은 일부밖에 보지 못했다. 한 나라 영화의 10% 이하만이 극장개봉을 하면 우회로를 통해 DVD를 받아보는 것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하다보니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1년 이상이 지난 뒤에야 새로운 영화를 보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2007년 동안 주목할 만한 데뷔작들을 충분히 보았고, 이때가 2001∼2002년 이후 중국의 새로운 감독들의 가장 생기 넘치는 시기라고 믿을 수 있게 됐다. 장우신의 <애정적 치아>, 후야오치의 <텅 빈 도시>, 왕웨이의 <타푸> 등 최근의 영화들이 필자를 자극시켰다. 그외 충실한 데뷔작으로는 장멩의 <운 좋은 개>, 레온양의 <콜드 프레임>, 인리촨의 <공원>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 제작자들도 2001∼2002 세대에 투자했고, 그들 중 여러 명은 5년 동안 광야를 헤매다가 두 번째 영화를 만들 기회를 갖게 됐다. 카오바오핑은 생동감 넘치는 블랙코미디 <트러블메이커>를, 천다밍은 앙상블드라마 <계건부녕>을, 그리고 장이바이는 거의 연속으로 두편을 찍었다. 그동안의 불모지 같은 시기가 다시 반복되지는 않을 듯하다. 카오바오핑은 주목받고 있는 로맨틱코미디 <사랑과 죽음의 등식>을 찍고 있고, 천다밍은 잘 알려지지 않은 홍콩의 고전 한편을 흥미롭게 리메이크하고 있으며, <공원>의 인리촨은 이미 <애정적 치아>의 재능 넘치는 주연 여배우를 기용해 두 번째 장편을 찍고 있다. 지난 10년간 한국영화를 무시한 영화제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10년 동안은 본토 중국영화에 대해서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신호들이 보인다.

[미드의 배우들] 내 인생 제8의 전성기는 TV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의 TV스타 조지 클루니와 짐 캐리는 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이미지를 등에 업고 할리우드에 입성, 영화인으로 완벽하게 환생했다. 21세기 ‘미드’의 전성시대에서는 그 반대 공식이 더 유효하다. 시시한 영화배우에서 하루아침에 스타로 돌변한 <위기의 주부들>의 테리 해처, 드라마 두편에 연달아 출연하고 있는 <데미지> <쉴드>의 왕성하고 우아한 노년 글렌 클로즈, 여성적 욕망의 아름다운 초상 홀리 헌터의 첫 TV드라마 <세이빙 더 그레이스>의 소식까지 담지 못하는 게 아쉽다. 현재 미국 TV시장에서 가장 열렬한 대접을 받고 있는 영화배우 6인의 제8의 전성기 스토리. 드라마의 품에 안긴 할리우드의 탕아들 <24>의 키퍼 서덜런드 & <두 남자와 1/2>의 찰리 신 키퍼 서덜런드와 찰리 신은 이른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브랫팩’ 멤버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코폴라의 <아웃사이더>(1983)나 조엘 슈마허의 <세인트 엘모의 열정>(1985) 같은 데 끼진 못했다. 그러나 키퍼 서덜런드는 <스탠 바이 미>(1986)와 <로스트 보이>(1987)를 통해 소년 갱 리더 타입의 금발의 반항아로 주목받는 중이었고, 찰리 신은 <플래툰>(1986)을 향한 언론과 평단의 열렬한 지지 속에 커리어 순항을 예고받은 터였다. 두 사람은 (이제는 별로 기억되지 않는) 브랫팩 무비 형태의 서부극 <영 건>(1988)에 나란히 출연해 상업적 성공을 거둔 뒤 맷 딜런과 로브 로, 톰 크루즈,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등과 함께 본격적으로 브랫팩 군단에 합류할 수 있었다. 문제는 언제나 술과 파티, 여성편력이다. 각각 도널드 서덜런드와 마틴 신을 아버지로 둔, ‘배우 가문’의 공통분모도 지닌 두 아들들은 90년대 들어서면서 문화란보다 가십난의 단골 손님이 되어 부모들의 속을 썩였다. 16살에 캐나다 온타리오의 집을 출가, 19살에 이미 33살의 여성 프로듀서와 결혼했다가 딸까지 둔 키퍼 서덜런드는 <유혹의 선>(1990)에서 만난 줄리아 로버츠와 결혼을 엿새 앞둔 어느 날, 클럽에서 한 여자를 만나 잠을 잤던 사실이 들통나 파경을 맞았다. 런던 출생인 키퍼 서덜런드는 4살 때 이혼한 자신의 아버지가 영화배우인지 18살 때까지도 몰랐다고 한다. 아버지와 상관없이 영화배우의 길에 들어섰던 그는 연기 커리어가 풀리지 않자 연출을 해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1993년에 TV영화 1편, 1995년에 TV드라마 에피소드를 1편 연출한 뒤 1997년 <진실과 결과>라는 장편영화를 만들었는데 악평을 얻고 쫄딱 망했다. 키퍼 서덜런드는 로데오 선수가 되겠다고 할리우드를 떠났다. 아버지를 보며 연기자의 꿈을 키운 찰리 신은 알코올중독과 마약 복용을 상습해오다가 1990년 여름, 그의 가족들이 거의 잡아넣다시피해서 중독자 재활원에 들어가 1달을 지냈다. 그뒤 1년간 술과 약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굳게 지킨 다음, 정확히 366일째에 니콜라스 케이지의 집에 놀러가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고, 아내를 두고서 다른 여자와 27번의 매춘을 해서 고소 및 이혼을 당하고, 여자친구의 팔에 우발적으로 권총을 쏘고, 이름 모를 여자로부터 물리적 폭력을 이유로 고소당했다. 가슴팍에 ‘15분 안에 집에 들어간다’는 글귀를 문신으로 새겨놓고 날마다 술과 약에 절었다. 그는 재활원을 집 드나들듯 했다. 찰리 신은 키퍼 서덜런드처럼 제 발로 할리우드를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와 진지하게 일 얘기를 하려는 사람이 할리우드에 없었다. <못말리는 비행사>(1991), <못말리는 람보>(1993), <머니 토크>(1997) 등의 패러디코미디나 액션물을 하며 찰리 신은 90년대를 보냈다. 2000년, 마침내 ‘멀쩡해’진 찰리 신은 TV시트콤 <스핀 시티>의 새 주연으로 발탁됐다. 는 4년 전 마이클 J. 폭스 주연으로 인기를 끌어모았던 이 시리즈의 ‘재활’에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브랫팩의 또 다른 멤버이기도 했던 폭스의 대체재로서 재기의 기회를 얻은 찰리 신은 자신의 본명을 쓴 캐릭터를 통해 그의 타고난 능글맞은 코미디 연기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는 이 시트콤을 2시즌, 33개 에피소드에서 종결시키고 새로 기획 중인 드라마에 찰리 신을 투입했다. <두 남자와 1/2>(Two and a Half Man)은 그렇게 탄생했다. 매사에 무책임하고 여자나 밝히기 좋아하는 노총각이 집에 조카를 들이면서 벌어지는 이 가족적인 코미디는 ‘누군가의 대신’이 아닌 찰리 신 본연의 캐릭터로부터 출발한 드라마다. 캐릭터의 이름은 당연히 찰리. 현재까지 ??시즌이 이어진 이 시리즈의 전선은 당분간 이상무다. 지난해 그는 에피소드당 35만달러의 조건으로 출연 연장계약을 맺으며 미국 코미디 시리즈 사상 최고의 개런티를 받은 배우가 됐다. 한편 <폭스TV>는 2001년 9·11이 터지고 두달도 채 되지 않은 2001년 10월의 마지막 날, 허구의 기관 ‘대테러진압팀’(Counter-Terrorism Unit)에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 암살 계획을 막는다는 가상의 드라마 <24>의 첫화를 공개했다. 가 <스핀 시티>에 찰리 신을 기용했을 때처럼, <폭스TV>도 키퍼 서덜런드의 기용을 일종의 도박이라 생각했다. 방영 직전 9·11이 터진 것도 우려의 조건이었는데, 속칭 ‘리얼타임 드라마’, 잭 바우어 형사의 24시간을 24개 에피소드로 만든 이 시리즈는 새로운 컨셉과 재미로 호평을 얻고 인기의 급물살을 탔다. 방영 2년 만에 영화화 이야기가 나왔다. 1998년 US 팀 로핑(US Team Roping) 챔피언십에서 보란 듯이 우승을 차지한 다음 순전히 로데오 때문에 사들였던 110만평짜리 목장과 소, 말을 모두 팔아치우고 LA로 돌아온 키퍼 서덜런드는 냉철하고도 목표를 위해서라면 범법을 마다하지 않는 악당 같은 형사 역할로 2002년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올해까지 매해 에미상과 골든글로브(2005년 제외)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권총 사용이 합법적인 세계에 편입되었을 뿐 <24>에서 41살의 그는 여전히 냉온을 오가는 금발의 반항아처럼 매력적이다. 키퍼 서덜런드는 자신의 첫 드라마 <24>를 찍는 5년간 하루 14시간씩 일주일에 6일을 촬영장에서 지냈고, 8시즌까지 계약을 연장하며 3시즌에 4천만달러라는, 미 드라마 사상 최고 개런티를 받기에 이르렀다. 2002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장에서 수상소감을 발표할 때 키퍼 서덜런드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찰리(신)의 기분이 이해가 가는군요. 아랫도리 감각이 거의 없는데요.” 이렇게 말한 까닭은, 그날 그 자리에서 찰리 신이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복귀작 <스핀 시티>로 평생 첫 주연상의 영예를 얻은 찰리 신의 수상 소감은 이랬다. “이거 약도 안 먹고 취한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 빛을 본 근사한 중년의 매력 의 데이비드 카루소 & 의 게리 시니즈 제리 브룩하이머는 알고 있다. ‘반장님’이 멋있어야 수사팀이 먹고산다는 사실을. 누가 뭐래도 시리즈의 주인공은 중후하고도 명석한 중년의 카리스마, 바로 반장님들이다. 특히 스핀오프의 반장님들, 호레이쇼 케인 역의 데이비드 카루소와 맥 테일러 역의 게리 시니즈는 이전에 잠시 얻었다 꺼진 인기의 불씨를 이곳에서 다시 피우며 근사한 중년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두 배우는 생애 결정적 스타덤에 오른 시기가 우연찮게 겹친다. 데이비드 카루소는 1993∼94년에 방영한 TV시리즈 <뉴욕경찰 24시>를 통해 스타가 됐고, 게리 시니즈는 같은 시기 개봉한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를 통해 전세계로 알려졌다. 그러나 호레이쇼 반장님의 화려한 카리스마와 맥 반장님의 침착하고 다정한 카리스마가 서로 다르듯, 배우로서 두 사람이 걸어온 길과 드라마의 합류 배경도 판이하다. 데이비드 카루소는 1956년 뉴욕 태생이다.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아일랜드인 어머니, 전형적인 미국 이민자 가정 출신이었던 그는 26살 때 본격적으로 배우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13년 만에 찾아온 스타덤이 바로 뉴욕 경찰들의 이야기를 다룬 <뉴욕경찰 24시>였다. 마흔에 가까웠던 카루소는 이 드라마를 계기로 이틀마다 들어오는 영화 출연 제안에 마침내 결심을 세우고, 제작자 및 동료 배우들과 모두 불화를 빚은 채 시리즈를 떠났다. 2002년 (CSI: Miami)로 돌아오기 전까지 TV영화를 포함한 11편의 영화에서 그는 단 한번도 재미보지 못했다. 첫 영화 <이중노출>(Kiss of Death, 1995)과 같은 해 <제이드>로 받은 상은 래즈베리 어워드의 ‘최악의 뉴스타’상. 형편없는 신세가 돼버린 그 시절에 카루소는 한 인터뷰에서 “<배트맨과 로빈>도 하고 도 하는 조지 클루니처럼 나도 영화와 TV를 병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한섞인 변명을 털어놓기도 했다. 정작 그의 롤모델 조지 클루니는 <배트맨과 로빈>(1997) 홍보 때 카루소의 영화쪽 진출에 관한 질문을 받고 답했다. “불쌍한 친구. 얼마나 바본지. 그 문제를 갖고 같이 얘기도 많이 했건만. 전 아직도 이해가 안 가요.” 로 다시 궤도에 오른 데이비드 카루소는 쉰을 넘긴 나이가 무색하게 매력적이다. 적당히 단추를 풀어헤친 셔츠, 바람에 흩날리는 옅은 금발, 마이애미 해변을 응시하는 무심하고 우울한 푸른 눈빛. 그리고 카루소는 겸손하게 말한다. “물론입니다. 이제 다시는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은 하지 않아요.” 데이비드 카루소보다 1살 위인 게리 시니즈는 할리우드 배우이기 전에 영향력있는 시카고 연극인이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재미삼아 본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때문에 꿈을 세운 게리 시니즈는 고교 졸업 직후 친구들과 고향 시카고에 극단 ‘스테펜볼프 시어터 컴퍼니’를 차렸다. 2번의 토니 남우주연상 후보(1990, 2001) 및 1번의 연출상 후보(1991) 지명, TV시리즈와 영화 연출, <퀵 앤 데드>(1995) <아폴로13>(1995), <스네이크 아이>(1995), <그린 마일>(1999), <미션 투 마스>(2000), <휴먼 스테인>(2003), <포가튼>(2004) 등의 연기 커리어를 모두 종합해볼 때 게리 시니즈는, 스타덤에 목말랐던 데이비드 카루소와 달리 직업의식과 열정을 성실하고 진지하게 이어온 쪽에 가깝다. 어느 기사에서 “상냥한 말씨를 가진”(sofe-spoken)이라고 묘사된 게리 시니즈는 2004년 초 제작팀이 앤디 가르시아와 레이 리오타에 이어 스핀오프 트리트먼트를 자신에게 들고 찾아왔을 때 “주인공의 삶에 더 깊이 들어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달라”는 조건으로 사인을 했고, 26년 전 연극무대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와 세 아이들 곁에 머물 수 있게 LA에서 촬영하자는 조건도 함께 걸었다. 맥 테일러 반장은 배우 자신의 이런 진지하고 섬세한 성격을 고스란히 닮아, 깐깐하고 부리부리한 외모와 달리 따뜻한 속내를 지녔다. 드라마의 분위기도 시리즈 중 가장 감성적이다. 요즘도 군대를 방문하면 군인들에게 “어이, 댄 중위!”(<포레스트 검프>에서 시니즈가 맡았던 베트남 상이용사의 이름)라는 말을 듣는다는 게리 시니즈는 (CSI: NY)을 시작하던 해에 이라크아동돕기 단체를 만들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그곳의 학교들을 찾아갔다. 군인들이 어설프게 깔아놓고 간 마룻장 위에서 종이와 연필도 없이 수업 듣는 아이들을 위해 게리 시니즈는 베이스 기타를 잡고 지인들과 함께 록밴드 공연을 열었다. 밴드 이름은 ‘댄 중위 밴드’였다. 평범함을 입고 돌아온 개성파 배우들 <고스트 앤 크라임>의 패트리샤 아퀘트 & <보스턴 리걸>의 제임스 스페이더 검사의 꿈을 지닌 세 아이의 엄마. 서른 넘어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률회사에 들어간 앨리슨 드부아의 이야기 <고스트 앤 크라임>(Medium)은 실존하는 동명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리즈다. 원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영매사 존 에드워드의 토크쇼와 유사한 형식으로 기획되었는데 파라마운트 텔레비전이 이를 드라마로 수정했고, 그녀의 에이전트는 이것을 전달하며 말했다. “재미있는 게 들어왔어. 근데… TV물이야.” <트루 로맨스> <에드 우드> <로스트 하이웨이> <하이-로 컨트리> <비상근무> <휴먼 네이처> 등 작품성이 고려된 독특한 영화적 세계를 천천히 밟아온 패트리샤 아퀘트는, 그마저도 더디어진 마흔살의 무렵에 <고스트 앤 크라임>의 내용 자체에 흥미를 느껴 수락했다. “TV라고 해서 가린 적은 없다. 평범한 여성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저 사람은 우리 옆집 사람이랑 진짜 비슷해’라고 느낄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 마침 그녀가 둘째아이를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은 그런 일상을 연기하고픈 욕구를 더 부추긴 원인이었을지 모른다. 니콜라스 케이지와의 격했던 결혼생활 6년을 정리하고 <휴먼 네이처>(2001)에서 만난 새 남편 토머스 제인과의 사이에서 그녀는 아이를 가졌다. 드라마 제작자가 “그래도 살을 좀 뺐으면 싶다”고 말했을 때 단칼에 거절했다. “주인공이 아이 셋이나 키우면서 뒤늦게 공부 시작한 아줌마잖아요. 그런 여자가 살 빼고 멋있는 옷 입고 다닌다는 게 말이 돼요?” 출산 뒤 더욱 불어나고 있는 몸을 관리하지 않은 이유도, 앨리슨 드부아가 특별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꾸려가려고 애쓰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고스트 앤 크라임>이 빚어내는 진짜 기적의 순간은 그래서 앨리슨이 영매 능력으로 범인의 뒷덜미를 턱 잡을 때가 아니라, 할 말 가득한 죽은 영혼들을 떠올린 그녀가 자기 가족을 더 소중히 지키고자 애쓸 때다. 가수 톰 웨이츠의 부인이 “마치 아프로디테의 분신 같다”고도 말했던 신비한 여배우 패트리샤 아퀘트는 여전히 그 영혼은 비범하되, 아늑하고 소박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자신의 40대를 문열었다. 가 제임스 스페이더에 표한 우려는 좀더 노골적이었다. <보스턴 리걸>(Boston Legal)과 이것의 모체인 <보스턴 저스티스>(The Practice)의 기획자 데이비드 E. 켈리의 말을 옮기면 이 정도다. “우리가 그 사람 이름을 꺼냈더니 방송사 간부들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더라.” 스페이더는 아퀘트보다도 더욱더 TV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긴 코에 음흉한 눈빛을 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크래쉬> <세크레터리> 등에 나와 마약 밀매하고, 채찍 들고 ‘SM 플레이’에 심취한 백인 남자를 법률회사의 변호사들 이야기 주인공으로 쓴다니. 물론 켈리에게도 제임스 스페이더가 1순위는 아니었다. 1997년부터 시작된 드라마의 예산을 가 어느 날 절반으로 깎는 바람에 오리지널 캐스트 6명을 갈아치우면서 내놓은 2안이었다. 켈리의 안목에 보답이라도 하듯, 스페이더는 <보스턴 저스티스>에 출연하자마자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샌님처럼 콧방귀를 뀌며 쩨쩨한 한마디를 날리다가 금세 젠틀하고 사무적인 태도로 돌변하는 앨런 쇼어의 <보스턴 저스티스>는 고스란히 <보스턴 리걸>로 이어졌고, 스페이더는 올해 에미 시상식에서 개인 통산 3번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강력한 수상후보 제임스 갠돌피니를 제친 결과. 스페이더는 부시 대통령 부자가 다닌 보스턴의 고급사립학교 필립스 아카데미를 다녔으며 어린 시절 아버지와 시를 읽고 할아버지와 희곡을 낭독한 예술적인 엘리트였다. 동시에 필립스 아카데미를 11학년에 자퇴, 연기를 하겠다고 뉴욕으로 넘어가 똥거름 주기, 마룻바닥 닦기, 트럭 운전사, 건물 경비원 등의 일을 하며 돈을 번 청춘이기도 했다. 이 묘한 인생의 양면. 앨런 쇼어의 이중적 면모보다 어느 면에선 더 흥미롭다.

[미드의 배우들] 드라마의 자궁에서 태어난 스타들

필생의 배역은,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지만 일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 행운없이는 찾아오지 않는다. 미국 드라마 열풍 속에 ‘필생의 배역’을 만나 인기를 누리는 미드의 배우 7명을 소개한다. 드라마의 인기가 오롯이 배우에 기대 있다고 하기엔 비약이 있지만, 이들 없이는 드라마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 배우들이 누리는 지금의 명성 뒤에는 1%의 행운을 만나게 한 99%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미스 어글리: <어글리 베티> 아메리카 페레라 ‘못생긴 베티’는 45분간의 분장으로 태어난다. 제작진이 스타일리시하다고 입을 모으는 아메리카 페레라가 가짜 눈썹과 뿔테 안경을 착용하고 파란 고무줄로 묶인 교정기를 물면, 사랑스러운 못난이 <어글리 베티>가 완성된다.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1400만 시청자를 사로잡음과 동시에 인터넷에 시청소감이 빗발치는 현상을 낳은 <어글리 베티>는 코미디지만 생생한 현실감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예쁜 얼굴에 주근깨 몇개를 그리는 것으로 못생겼다고 우기는 대신 진짜 ‘베티’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못난 외모 덕에 패션잡지의 편집장과 놀아날 염려가 없어 개인비서로 채용된 여자의 분투기는 성공적으로 시즌1을 마무리했고, 지난주 미국 현지에서 시즌2를 시작했다. <어글리 베티>의 제작자인 샐마 헤이엑이 직접 발굴한 다이아몬드 아메리카 페레라는 <청바지 돌려 입기> <진짜 여자는 굴곡이 있다> 등의 인디영화로 데뷔했다. 베티의 아름다운 내면이 외모에 가리지 않듯 숨길 수 없는 영민함과 열정을 가진 ‘진짜 여자’ 페레라는 “캐스팅을 위해 몸무게를 감량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연예산업의 아찔한 기준을 조소한다. 또 “패리스 힐튼이나 니콜 리치를 평가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면서 행복하다면 그건 대단한 거다”라고 당찬 면모를 보인다. 아메리카 페레라는 그가 맛본 성공을 라틴계 여배우의 도약으로 읽는 시선을 거부한다. “라틴계 여배우의 성공으로 읽히지 않을 때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베티가 노력한 것처럼 나 역시 그래야 한다”며 굳은 심지를 내비친다. “외모보다 중요한 것이 많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진정한 비극”이라고 말하는 아메리카 페레라와 <어글리 베티>의 성취는 “양키가 수호해온 낙천주의와 근면, 성실, 온화한 마음 등의 덕목으로 성공을 이룬 드라마”라는 <타임>의 찬사만으로는 부족하다. <어글리 베티>로 골든글로브 TV시리즈 코미디 부문 여자연기자상을 수상한 페레라의 소감을 빌리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깊은 곳에 자리한 아름다움”이라는 메시지의 드라마다. 성공의 증거: 영국의 한 보험사는 트레이드 마크가 된 페레라의 미소에 10만달러를 보장했다. 미세스 뷰티: <위기의 주부들> 에바 롱고리아 대중이 에바 롱고리아에게 원하는 이미지는 하나다. <맥심>이 2년 연속 가장 섹시한 여자로 그녀를 추앙하는 것도 그 요구에 충실한 결과다. 남성 잡지의 표지에 사슬만 걸치고 등장해 화제가 됐고, 드라마에서의 그녀는 달라붙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요가 중이거나, 카탈로그에나 나올 법한 속옷 차림으로 상대를 유혹한다. 최근 시즌4를 출항한 <위기의 주부들>은 미국 중산층을 배경으로한 블랙코미디로, 권태롭고 무료한 삶에 아슬아슬한 외도를 시도하는 전직 모델 가브리엘 솔리스는, 롱고리아에게 찾아온 최고의 기회였다. 에바 롱고리아가 못생긴 아이였다는 건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가난한 부모가 해줄 수 없었던 성인식을 위해 ‘웬디스’로 나섰다는 것과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섯 군데에서 일해야 했다는 사실은 생경하다. <위기의 주부들>은 그녀의 서른에 찾아왔다. 잔치가 끝나는 나이에 축제를 시작한 롱고리아에게, 서른은 연기를 시작하며 그녀가 정한 성공의 시한이었다. “하지만 29살이 되도록 성공의 기미가 없어서 35살로 미뤘다.” 2007년 7월, NBA 스타 토니 파커와 결혼해 진짜 주부가 된 롱고리아는 가족의 중요성을 안다는 점에서 가브리엘보다는 브리나 리네트에 가깝다. 발달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언니를 위해 발달장애자를 돕는 재단을 운영하고, 라틴계 미국인의 인권수호에 앞장서는 것 역시 뿌리를 아끼는 마음에 근거한다. 그녀를 소비해온 이미지가 단일하다고는 하지만 ‘섹시한 라틴 디바’라는 족쇄를 채우기에 롱고리아의 신체는 재능이 많다. 비교적 단신임에도 슬랩스틱이 자연스러운 그녀는 미간의 움직임만으로 다양한 감정 표현이 가능하고 호소력 짙은 눈과 입술을 지녔다. <센티넬>의 정장 속 감춰진 육체를 안타까워했던 이들도 많겠지만, 능숙한 사격술로 키퍼 서덜런드와 마이클 더글러스를 놀라게 했다는 일화는 그녀의 잠재성을 상기시킨다. 이제, 롱고리아 스스로 추녀로 변신하는 미녀 배우의 성공 공식 외에 새로운 루트를 발견해야 한다. 성공의 증거: 연예전문지 는 롱고리아의 결혼식 사진에 200만달러를 지불했다. 닥터 댄디: <그레이 아나토미> 패트릭 뎀지 때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법이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시작이 <24>의 ‘땜빵’이었던 것처럼 시즌 휴지기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그레이 아나토미>의 운명도 그와 같았다. 종합병원 ‘시애틀 그레이스’에서 외과의를 꿈꾸는 인턴들의 이야기 <그레이 아나토미>는 첫 시즌 1850만명의 시청자를 모았고, 9월27일 시작한 시즌4의 첫회는 2100만명을 불러들여 주요 시청자그룹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패트릭 뎀지가 연기하는 외과의 데릭 셰퍼드는 부정한 아내에 대한 상처로 원 나이트 스탠드에 나선 첫회에 이미 TV 앞 여성들의 마음에 들어섰다. 극중 그의 별명인 ‘맥드리미’ 역시 꿈속에나 있는 남자라는 의미다. 깊고 푸른 눈매가 말해주듯 내성적인 성격의 패트릭 뎀지가 배우가 된 것은, 재미로 시작한 외발자전거 묘기를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며 느낀 희열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독증을 겪은 그에게 연기는 도전이었다. “도전이 필요했다. 연기는 죽음과 대면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라앉거나 발버둥치거나 둘 중 하나다.” <러버보이> <캔트 바이 미 어 러브>로 틴코미디를 점령했던 20대의 뎀지는 코미디와 로맨스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젊은 배우였지만, 27살 연상과의 실패한 첫 결혼처럼 달짝지근하지만 강단없는 연하남의 역할이 반복됐다. 이미지가 굳어질 것을 우려한 그는 TV로 무대를 옮겨 성숙한 역할에 도전했지만, 출연한 파일럿이 본방송으로 이어지는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되는 일이 너무 없어서 영화조차 보기 싫었다”는 그의 90년대는 일견 암흑기로 보이지만, 역할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채워진 필모그래피는 그가 영화를 쉽게 떠날 수 없었음을 대변한다. 2002년 <스위트 알라바마>에서 리즈 위더스푼과 호흡을 맞추며 다시금 스크린에서의 지평을 넓힌 뎀지는 <프리덤 라이터스>에서 힐러리 스왱크의 자상한 남편을 연기했고, 최근에는 디즈니의 <인챈티드>에 출연했다. 차기작은 <메이드 오브 어너>로 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한 남자가 그의 역할이다. 성공의 증거: 돈이 성공의 척도는 아니지만, 2006년 패트릭 뎀지의 출연료는 회당 20만달러로 뛰어올랐다. 닥터 압카: <하우스> 휴 로리 <하우스>는 의학 드라마지만 수사극의 모양새를 지녔다. 경찰서를 병원으로, 형사를 의사로 대체하면 현장 조사와 증거 수집 과정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심지어 용의자의 혐의를 지워나가는 소거법마저도 똑같다. 알려진 대로 <하우스>의 주인공 그레고리 하우스의 모델은 명탐정 셜록 홈스로, 하우스의 아파트 호수는 221B이며, 악기에 능하고 약물에 중독된 것 또한 동일하다. 뛰어난 진단학자라는 점을 제외하면 거만하고 이기적이며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는 하우스는 오히려 심술궂은 어린아이로 생각해야 이해가 갈 정도지만, “내가 틀리면 환자는 죽는다”는 프로정신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그를 살짝 존경하게까지 만든다. “완벽한 미국식 발음” 때문에 제작자 브라이언 싱어가 미국인이라고 착각한 영국 배우 휴 로리는 시대착오적으로 말하면 ‘현대의 귀족’이다. 의학박사이며 조정 경기 메달리스트인 아버지를 둔 그는 명문 예비학교를 나와 케임브리지에서 고고학과 인류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가입한 공연 클럽 ‘각광’(Footlights)은 그의 배우 인생에 밑천이 됐는데, <블랙애더> 시리즈와 <어 빗 오브 프라이 앤드 로리> 등을 함께한 스티븐 프라이도 이 시절 만난 친구다. 빼곡한 필모그래피에서 <센스, 센서빌리티> <스튜어트 리틀> 정도가 알려진 영화의 전부일 로리는 영국에서 소설가로도 유명한데 처녀작 <건 셀러>는 ‘제임스 칼럼’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해 베스트셀러가 됐고, 차기작 <페이퍼 솔저>는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는 자의식이 너무 강해서 연기를 모니터하지 않는 배우 중 하나로, 에피소드를 본 적은 없지만 “악인인지 선인인지 규정되지 않는 모호함”을 <하우스>의 매력으로 꼽는다. 촬영 때문에 미국에 머무는 이 영국 배우는 “LA는 날씨도 사람들도 햇살뿐이다. 잔인할 정도로 무례한 사람들의 런던이 그립다”며 특유의 냉소를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장면별로 하우스가 몇알의 진통제를 복용한 상태인지까지 면밀히 분석하는 완벽주의자이며, 동료 배우들에게 암기력과 체력을 시샘받는 타고난 배우는 <하우스>의 인기가 지속되는 한 미국을 떠날 수 없을 듯하다. 성공의 증거: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휴 로리의 출연료는 회당 30만달러다. 부패한 형사: <쉴드: XX강력반> 마이클 치클리스 귀청을 때리는 강렬한 음악으로 시작하는 <쉴드: XX강력반>의 첫 에피소드는 드라마 파일럿 사상 최대의 반전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편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는 파일럿으로 순조롭게 출발한 <쉴드: XX강력반>는 회당 400만이라는 케이블 채널로는 상상할 수 없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드문 케이스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타락한 거리는 햇볕이 있을 뿐 ‘신시티’나 ‘고담’과 거울을 보듯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정의를 구현해야 할 영웅과 악당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극중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구도를 보이는 마초 형사 빅 매키와 아세베다 국장조차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달리해 적군과 아군의 경계가 희미한 살벌한 생태계를 그대로 반영한다. 세상엔 두 가지 경찰이 있다. 좋은 경찰과 나쁜 경찰. <쉴드: XX강력반>는 ‘더 나쁜’ 경찰들의 이야기다. 존 벨루시의 전기영화 <와이어드>(Wired)에 출연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마이클 치클리스는 TV시리즈 <커미시>에서 풍채만큼이나 사람 좋은 경찰관으로 5년간 브라운관을 찾았다. 그래서 그가 20kg을 감량하고 <쉴드: XX강력반>의 기동대장 빅 매키로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도 높은 운동과 삭발로 인상을 바꾸는 데 성공한 그의 메소드 연기 탓에 사람들은 종종 빅 매키와 동일시하지만 그 둘의 공통점은 아이들에게 자상하다는 것뿐이다. 코믹스 <판타스틱4>의 열렬한 팬으로 18살부터 괴력의 ‘씽’ 역할을 소망해왔다는 치클리스는 실제로 영화에서 씽을 연기했다. 꿈의 배역에 캐스팅 된 행운의 배우는 추하게 변한 외모를 표현하기 위해 CG 대신 특수분장을 선택했는데, 체중을 감량할 때보다 더 오래 러닝머신 위를 뛰었고, 특수분장 중에는 화장실을 갈 수 없어서 생체주기를 바꿔야 했다. 하지만 그 결과 치클리스는 추한 육체에 속박된 캐릭터의 정신적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대신 그를 동정할 만한 페이소스를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드라마에서나 영화에서나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입체감을 갖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퀄리티”라고 말하는 장인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의 증거: 꿈의 배역 <판타스틱4>의 ‘씽’은 <쉴드: XX강력반>의 성공없이는 불가능했다. 순결한 살인마: <덱스터> 마이클 C. 홀 “연쇄살인은 모두 나쁘기만 한 걸까?”라는 질문에서 태어난 제프 린제이의 소설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는 소설 그 자체로도 성공했지만 드라마로 만들어져 더 많은 팬을 얻었다. 덱스터는 법의 심판은 피했지만 죽어 마땅한 범죄자들만 골라서 살해하는 ‘기준’있는 연쇄살인범으로, 경찰이 발견하지 못한 세상의 얼룩을 청소하는 그의 직업은 아이러니하지만 혈흔전문가다. 덱스터는 어린 시절 겪은 정신적 충격으로 평범한 감정 대신 살인충동을 얻었다. 양부 해리는 이상한 조짐을 미리 읽어냈지만 정신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범죄자를 알아보는 법, 처리하는 법, 흔적을 없애는 법을 가르쳤고, 마음이 없는 사이코패스 덱스터가 탄생했다. “솜씨 좋은 괴물” 덱스터를 연기하는 마이클 C. 홀은 TV데뷔작인 <식스 핏 언더> 이전에 뮤지컬과 오프 브로드웨이 작품 500편에 출연한 우수한 배우였다. <식스 핏 언더>에서 까다롭지만 책임감있는 장의사 데이비드 피셔를 5년간 연기한 까닭에 “세포까지 데이비드를 닮아”가던 홀은 마지막 시즌 촬영 중 <덱스터>를 만났고, 소원하던 무대로의 복귀를 미루고 브라운관에 남았다. 섬세한 데이비드의 내면까지 연기한 탓일까, 사람들은 호모포비아에 시달리는 옷장 속 게이와 그를 혼동하고 커밍아웃을 격려하기도 했는데, <덱스터>로 키퍼 서덜런드, 휴 로리 등과 골든글로브 TV시리즈 정극부문 남자연기자상 후보에 올라 한번 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덱스터>의 시즌2는 시즌1 중반에 제작이 결정됐는데, 에피소드 두편을 선방영했고 9월30일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소설의 속편이 희생자를 난도질해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흉악한 범죄자를 다루는 것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안전망’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난 새 시즌에 대해 “지난해 우리는 캐릭터와 드라마가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던 때와 비교하면 좋을 수밖에 없다”고 자신한다. <쉴드>의 빅 매키, <소프라노스>의 토니 소프라노를 뛰어넘는 어두운 내면의 안티히어로가 또 한번 시청자를 매혹시킬지 기대된다. 성공의 증거: 마이클 C. 홀이 영화의 타이틀 롤을 맡거나, 브로드웨이로 돌아가면 확인할 수 있을 듯. Asian Face: <히어로즈> 마시 오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수려한 외모에 옷걸이 좋은 다른 출연자들을 제치고 ‘히로’가 <히어로즈> 최고의 인기 캐릭터로 뽑힌 것에는. 평범해 보이는 초능력자들을 다루는 <히어로즈>는 흡사 만화책을 넘기는 느낌을 주는 드라마다. 스토리는 물론이요, 마벨이나 DC코믹스의 만화책에 쓰일 법한 폰트로 이뤄진 크레딧과 각 에피소드를 챕터로 표현한 스타일도 이런 의혹을 제대로 겨냥한 고도의 전략이다. <히어로즈>의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비범함을 저주로 받아들이거나 숨기려고 노력할 때, 주어진 능력을 운명과 임무로 받아들이는 만화 같은 캐릭터가 있으니 마시 오카가 연기하는 히로다. 도쿄에서 태어나 6살에 미국으로 이주한 일본계 미국인 배우 마시 오카의 본명은 마사요리 오카로, 10살 때 ‘미국의 아시아 영재들’이라는 <타임>의 커버스토리로 사진이 실린 적이 있는 그는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IQ 180의 천재다. 조지 루카스의 ILM에서 CGI 아티스트로 근무하며 <퍼펙트 스톰>을 위해 만든 파도 생성 프로그램은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의 그래픽에도 사용됐다. 그런 까닭에 그의 필모그래피는 배우와 CGI 아티스트의 두 가지로 나뉜다. 2000년, 연기자가 되기 위해 LA지사로 옮긴 오카는 영화와 드라마의 단역을 거쳐 <히어로즈>의 오디션에 응했다. 영어와 일본어가 능숙한 오타쿠라니, 제작진이 찾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도쿄의 사무실에서 뉴욕의 타임스스퀘어로 텔레포트한 그가 외친 첫마디 “야따!”(해냈다)는 이미 유행어가 됐고, 길에서 그와 마주친 소년이 “야따맨”이라며 환호한 것도 그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얼굴이 떨릴 정도로 두눈을 질끈 감는 텔레포트 장면을 연기할 때 “화장실 갈 때”를 생각한다는 재치만점의 배우는 코미디영화의 감독을 꿈꾼다. 아시아 배우의 미국 진출은 새로운 일이 아니고 김윤진, 샌드라 오 등 바람직한 표본도 생겼지만, 그 수요는 아직 부족하다며 채플린처럼 웃음으로 문화적 장벽을 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겠다”는 마시 오카가 아시아 배우들의 히어로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성공의 증거: 안티가 판을 치는 인터넷에서도 마시 오카는 “주머니에 넣고 싶은 애완동물(?)”로 사랑받는다. 드라마 한 편으로 이만큼 떴답니다 미드 명예의 전당에 오를 두 배우, <프렌즈> 제니퍼 애니스톤과 <섹스 & 시티> 사라 제시카 파커 드라마 하나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를 꼽으라면 단번에 제니퍼 애니스톤과 사라 제시카 파커가 떠오른다. 두 배우가 새로운 역할에 도전한다 한들 제니퍼 애니스톤은 언제까지나 <프렌즈>의 대책없지만 사랑스러운 레이첼 그린일 테고, 사라 제시카 파커도 <섹스 & 시티>의 섹스 칼럼니스트 캐리 브래드쇼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역할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인물로 거듭남이 요구되는 배우들에게 가혹한 말일지 몰라도, 그 역할 덕분에 지금의 그들이 있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니까. 제니퍼 애니스톤도 그 사실을 인정하는지 <프렌즈> 이후 새로운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고 있으며(코트니 콕스의 새 시리즈 <더트>에 우정출연한 적은 있다), 사라 제시카 파커 역시 “더이상의 드라마 출연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의 후광으로 셀러브리티 대열에 오른 두 사람이 그 뒤 어떤 길을 갔는가 하면, 애니스톤은 영화로, 파커는 제작자와 사업가로 항로를 변경했다. 2002년 출연한 저예산 독립영화 <굿 걸>의 호평을 시작으로, 짐 캐리의 여자친구로 출연한 <브루스 올마이티>는 2억4300만달러를 벌어들였고, 벤 스틸러와 함께한 <폴리와 함께> 역시 1위로 개봉했으며, 그녀의 유명세를 한층 업그레이드하도록 도와준 브래드 피트와 이별 뒤 연인관계로 발전했던 빈스 본과 출연한 <브레이크 업: 이별후애(愛)>도 2억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는 등 애니스톤의 필모그래피는 제법 알차 보이지만, 씁쓸하게도 상대 배우 없이 제니퍼 애니스톤 이름 하나만으로 얻을 수 없는 성과였다는 것이 자명하다. 사라 제시카 파커 역시 <우리, 사랑해도 되나요?> <달콤한 백수와 사랑만들기> 등의 로맨틱코미디로 영화에 출연하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는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가니에르’, ‘갭’ 등의 모델로 활동하며 캐리의 이미지를 대량생산했고, 그녀의 이름을 건 패션라인과 향수를 런칭하는 등 패셔니스타로서의 명성을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타협안을 찾았다. 아무렴 어떨까, 그 둘은 레이첼 그린이고 캐리 브래드쇼인 것을.

[해외단신] <스타워즈> TV시리즈로 제작 外

<스타워즈> TV시리즈로 제작 조지 루카스 감독이 <스타워즈>를 텔레비전 방송용 실사물로 만들 계획을 발표했다. 루카스 감독은 이와 관련한 작업에 이미 착수한 상태로, 루크 스카이워커나 다스 베이더 등 영화의 주요 캐릭터는 등장하지 않을 예정이다. 세부사항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감독은 “마이너한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다. 로봇의 생활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의 TV애니메이션 <클론 전쟁>의 CG애니메이션 제작도 진행 중이다. 미국, 극장 내 광고수입 15% 상승 미국의 극장 내 광고수입이 2006년 4억5570만달러를 달성했다. 3억9480만달러였던 2005년과 비교하면 15% 상승했다. 극장 내 광고는 영화 전 삽입되는 영상광고와 스탠딩, 팝업, 프로모션 등의 오프스크린광고로 나뉘는데, 2006년 각각 4억1740만달러와 3830만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극장광고위원회(CAC: Cinema Advertising Council)는 미국 전체 극장 중 81%의 극장을 대상으로 조사했고, 이 같은 수입 증가는 기술환경의 발달과 박스오피스의 양적 성장에 기인한 것으로 추측했다. CAC는 영상광고에 대한 관객의 선호도도 조사했는데, 응답자의 8%만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다이하드4.0> DVD, 디지털 파일 포함해서 출시 브루스 윌리스의 육탄액션 <다이하드4.0>의 DVD 타이틀 스페셜 에디션이 디지털 파일을 포함해 출시될 예정이다. 디지털 파일은 DVD플레이어와 달리 지역코드에 제한이 없으며, PDP, PC 등 다양한 기기를 통해 재생이 가능하다. 이십세기 폭스 홈엔터테인먼트의 마이크 던은 시청자가 선택한 미디어로 영화 관람이 가능한 장점을 들어 “킬러 애플리케이션”이라고 표현했다. 폭스는 같은 형태로 더 많은 DVD 타이틀을 출시할 예정이다. <아포칼립스 코드>, 러시아 박스오피스 제패 러시아 신작 <아포칼립스 코드>의 비상이 눈부시다. 전세계에 숨겨진 핵무기를 찾으려는 스파이들의 암투가 줄거리로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의 697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첫주 자국에서만 36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바딤 스멜레프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겸하고, 1550만달러로 제작된 <아포칼립스 코드>는 지난주 집계된 전세계 박스오피스 40위 안에 진입한 비영어권 영화 중 최고 수입을 벌어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