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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초자연 멜로드라마 <더 시크릿>

어느 모로 봐도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다. 남편 벤자민(데이비드 듀코브니)과 아내 한나(릴리 테일러)는 사이가 더없이 좋고, 고등학생인 딸 사만다(올리비아 설비)는 그 시절의 청소년들이 그렇듯이 이유없는 약간의 반항심을 드러내며 살고 있다. 갑자기 차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그랬다. 한나와 사만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사만다의 영혼은 세상을 뜨고 딸의 몸속으로 한나의 영혼이 들어간다. 사고의 충격에 빠져 있던 벤자민은 불가사의한 빙의 현상에 당황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하면서 살아가려고 애쓴다. 하지만 딸의 육체 안에 들어가 있는 아내, 그 아내와 같이 사는 남편에게는 이런저런 갈등과 헤프닝이 벌어진다. <더 시크릿>은 히로스에 료코 주연의 일본영화 <비밀>의 리메이크작이다. 뤽 베송이 제작을 맡았고 <크로우2> <여왕 마고> 등에 출연했던 배우이자 감독을 겸하고 있는 뱅상 페레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이 영화에서 일단 반가운 건, 우리에게 미국 텔레비전드라마 <엑스파일>의 주인공 멀더 역으로 친숙한 데이비드 듀코브니가 벤자민으로 출연한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빙의’라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어울릴 만한 서양 남자의 역할에 자연스럽게 그를 떠올렸을 만하다. 어쩌면 딸의 몸속으로 들어간 아내의 영혼이라는 소재는 원작영화에서처럼 소소한 코미디적 소재로도 반길 만 했을 것이다. 혹은 방향을 틀어 스릴러로 풀어내고 싶은 욕심도 생길 만하다. 그 중간 어디쯤일까. <더 시크릿>은 사랑에 관한 정통 드라마의 성격을 여전히 유지하되, 이미 벌어진 일을 담담하게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에 치중한다. 그러면서 헐리우드식 엔딩을 추구한다.

[진중권의 이매진] 시뮬라시옹으로서의 대통령

“거대한 군부 조직과 비대한 군수산업의 결탁은 미국의 체험에서 새로운 것입니다. 이들의 경제적, 정치적, 심지어 영적 영향력의 총체를 모든 도시, 모든 주정부의 청사, 연방정부의 모든 사무실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정부의 위원회에서 이 군산복합체가 부당한 영향력을 획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잘못된 권력이 발흥할 재난의 위험은 현존하며,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 절대로 이 결탁 세력이 우리의 자유와 민주적 절차를 위협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영화는 퇴임을 3일 앞둔 아이젠하워의 연설로 시작한다. 이어서 흑백 뉴스릴의 몽타주로 당시의 미국 상황을 숨가쁘게 스케치하기 시작한다. 1960년 11월 케네디의 당선은 곧바로 취임식 장면으로 이어진다. 마틴 루터 킹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외치고, 말콤 엑스가 격정적인 제스처로 분노를 토하고, 하얀 두건을 뒤집어쓴 KKK 단원들이 십자가를 불태운다. 베를린에서는 케네디가 “나는 베를린 시민”이라 선언하고, 쿠바에서는 군복을 차려 입은 카스트로가 선동적인 제스처로 열정적인 연설을 한다. 망명 쿠바인들을 동원한 CIA의 피그만 상륙 작전은 케네디 정부의 지원 거부로 실패로 돌아간다. JFK는 이른바 ‘자유 쿠바인들’을 죽게 내버려뒀다고 비난받는다. 베트남전쟁에 대해 케네디는 “미국이 참전 안 하면 월남이 질 것이라 하지만, 그런다 해도 그것은 그들의 전쟁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물론 전쟁을 바라는 군산복합체의 이해에 어긋나는 발언이다. 19662년 케네디는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려던 소련의 시도를 무력화시키나 그 대가로 쿠바의 공산화를 묵인했다고 비난받는다. 내레이터의 말대로 “케네디는 자유의 상징이었고, 변화와 개혁을 상징했다”. 민권운동, 히피운동, 반전운동 등 60년대에 미국인은 그야말로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 열망을 인격으로 대변한 것이 케네디. 미국인들은 그에게서 새로운 ‘비전’을 보았고, 그 비전에는 ‘평화’도 들어 있었다. “무기에 의한 평화가 아닙니다. 냉전은 종식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작은 행성에 함께 삽니다. 우리는 똑같은 공기를 숨쉬며, 똑같이 아이들의 미래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 다음 문장이 매우 인상적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습니다.”(We are all mortal) 포맷과 색채로 직조한 서사 영화는 출처와 포맷이 다른 다양한 영상 자료들을 사용한다. 그중에서 가장 섬뜩했던 것은 역시 ‘재프루더 필름’. 여성의류업을 하는 에이브러햄 재프루더라는 시민이 우연히 촬영한 이 동영상은 총탄이 대통령의 머리를 관통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지만, 피가 터지면서 머리의 일부가 날아가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는 순간 객석에 앉은 관객이 비명에 가까운 짧은 탄식을 토해내던 것이 기억난다. 이 장면은 이 사건에 대한 공식기록인 ‘워런 보고서’의 내용이 옳지 않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에는 다양한 자료들이 사용된다. 텔레비전 뉴스, 영화관의 주간뉴스, 8mm 홈무비. 이것들은 각자 포맷도 다르고, 색채도 다르다. 의 생명은 역시 이 다양한 영상 자료들을 결합시키는 방식에 있다. 가령 케네디의 암살을 경고하는 여인이 들판에 버려지는 장면은 극영화에 속하나, 감독은 이 장면을 흑백의 8mm 홈무비 포맷으로 제시한다. 그런가 하면 오스왈드가 이른바 ‘애국시민’에게 저격당하는 장면은 텔레비전의 화질을 갖고 있으나, 극장 스크린의 포맷으로 처리된다. 마치 칸딘스키처럼 포맷과 색채로 작곡을 하는 듯이 보인다. 물론 이는 순수한 형식 실험에 그치는 게 아니다. 이 영화에서 포맷과 색채의 변화는 서사의 전략으로 활용된다. 그리스인들은 서사의 모드를 ‘디에게시스’(diegesis)와 ‘미메시스’(mimesis)로 구별했다. 판소리로 말하면, 가수가 화자로서 아니리를 하는 대목은 ‘디에게시스’, 가수가 직접 등장인물이 되어 창을 하는 대목은 ‘미메시스’에 해당한다. 내레이션과 더불어 디에게시스로 시작한 영화는 곧바로 배우들이 연기하는 미메시스로 돌입했다가, 증인들의 증언과 함께 디에게시스 모드로 들어간다. 이렇게 서사의 모드가 바뀔 때마다 화면의 포맷과 색채가 달라진다. 사실과 픽션의 결합 하지만 거기에 엄격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영화는 외려 평범해졌을 것이다. 출발하는 디에게시스 모드에서 볼 때, 이 영화에서 흑백 화면은 대개 도큐먼트로서 실재(reality)에 속하고, 컬러 화면은 대개 허구(fiction)로서 가상에 속한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재프루더 필름은 도큐먼트이나 컬러로 되어 있다. 극 속의 미메시스 모드로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제 컬러는 극중에서 현실이 되며, 흑백은 외려 기억이나 증언과 같은 가상의 모드로 사용된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어서 몇몇 사람의 증언은 컬러로 제시된다. 극 속에서 증인들이 증언하는 내용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가상 속의 가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가상의 가상이 ‘일종의’ 실재가 된다. 말하자면 ‘워런 보고서’가 밝혀내지 못한 암살의 진리 혹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사실에 가장 근접한 개연적 가설이 되는 셈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이렇게 다양한 포맷과 색채로 모드의 변화를 연출하다가 그것으로 마침내 가상과 현실의 관계를 뒤집어버리는 데 있다. 장자와 나비처럼 꿈속에서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가상에서 다시 가상으로 들어가면 현실이 나온다. 실제로 증언이나 회상장면에도 종종 연출된 화면과 기록영화가 더불어 사용되곤 한다. 이렇게 영화는 여러 겹의 모드를 드나드는 복잡한 서사의 전략을 구사한다. 그러는 가운데 극영화와 기록영화 사이의 경계가 무너져 관객은 어디까지 실재이고 어디까지 현실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관객으로 하여금 이 영화에서 감독이 제시하는 가설을 거의 실재로 받아들이게 한다. 영화의 인기로 결국 1992년 의회에서 케네디 암살사건의 재조사를 명령한 이른바 ‘JFK 법’이 통과되고, 같은 해 가을 조지 부시 대통령이 거기에 서명하기에 이른다. 역사와 음모론 영화가 나오자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음모론을 부추긴다고 비판했고, 감독은 이 영화가 “가까운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것”이라 응수했다. “그것은 흑백에서 컬러로, 거기서 다시 흑백으로 이동하면서, 사람들을 독특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우리는 당신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만든다. 그게 현실인 척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는 배우들을 윌리엄 해리슨 등으로 분장시켜놓고 스크립트를 읽게 한 다음 카메라로 찍어, ‘이것이 진리’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현실’(reality)이라는 바로 그 생각 자체를 의문에 붙이려는 것이다.” ‘현실’이라는 관념 자체를 의심한다는 감독의 말은 보드리야르의 철학을 연상시킨다. 이 프랑스 철학자에 따르면,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시뮬라시옹’, 즉 이미 권력과 매체가 연출로 구성되는 거대한 허구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보드리야르 철학의 민주당 버전을 읽을 수 있다. 자유와 개혁, 민주당 정체성의 인격적 화신이 군산복합체의 정치적 음모에 희생당했고, 그들이 아직도 ‘그 속에서는 케네디의 암살이 오스왈드 개인의 단독 범행인’, 그런 세계를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드리야르의 음모론(?)은 이보다 규모가 더 큰 것이다. 설령 대통령을 뽑을 수는 있어도 권력을 선출할 수는 없다. 우리가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든 권력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민주주의는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환상이다. 이 환상을 위해 대통령은 중요한 존재로 여겨져야 하며, 그 존재의 광휘를 마련하기 위해 케네디는 암살당해야 했다는 것. 이렇게 “권력은 존재와 정당성의 미광을 발견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살해를 연출할 수도 있다”. <그때 그사람>이라고 했던가? 한국에서도 비슷한 모티브를 다룬 영화가 있었다. 그 사건에서 무엇을 주제화해야 할지 감독 스스로 분명하지 않다보니 그냥 사건을 희화화해 블랙코미디를 만드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텔레비전을 보니, 오늘(12월19일) ‘대통령 선거’라는 행사가 있었나보다. 외신을 보니 “개를 데려다놔도 선출될 것”이라고 하더니, 세상에, 그 예측이 맞았다.

[한국영화 후면비사] 천년 후엔 사랑도 죽음도 스크린으로

“달 보러 남산 가세.” 1969년 7월21일. ‘가슴을 죄는 TV 시청’을 위해 남산 야외음악당에는 무려 10만명의 서울시민이 운집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두눈으로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낙도와 산골 사람들도 “TV를 보겠다”고 도시로 향했고, 심지어 “텔레비전 구경을 위해 관광객을 싣고 가던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다”. ‘인간이 달을 걷고 돌아오는’ 그 역사의 순간을 두눈으로 확인하기 위한 열망 때문에 거리와 극장은 텅텅 비었다. 경찰과 신문사는 달 착륙 문의전화로 마비상태였다. 닐 암스트롱이 세기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양복점, 주점, 다과점, 음식점 등은 ‘아폴로’로 상호를 바꿨다. 심지어 “보행을 뜻하는” ‘11호 자가용’이라는 유행어까지 나돌았다. “지금으로부터 천년 후의 영화란? 전쟁도 영화로 하고, 연애도 영화로 한다. 그뿐인가. 정사까지 영화를 이용해서 수정하는 천년 후의 남과 여를 픽션으로 구경해보자.” 1970년 3월 <영화잡지>에 실린 ‘스크린의 혁명’이라는 기사의 경천동지할 미래선언 또한 달나라 구경의 영향 탓이다. 인공태양이 떠 있는 수중도시 한강구에서 살고 있는 100살 먹은 조선달의 하루를 뒤쫓은 이 픽션의 상상력은 끝간 데 없다. 조씨에 따르면 30세기의 영화 촬영스탭들은 김포공항에서 원자력 비행기를 타고 달나라 로케이션을 간다. 옛 지구의 모습을 찍기 위해서다. 그곳 월세계(月世界)에는 지구에서 쫓겨난 원시인들이 있다. 조씨는 NG를 허용하지 않는 로봇 감독과 로봇 배우들을 구경하면서 비타민 한알로 하루 식사를 마친다. 이뿐이랴. 그가 전하는 3000년대의 러브스토리도 파격적이다. 서로 모르는 남녀가 이상형을 필름으로 찍어서 보내면 연애상담소의 컴퓨터가 궁합을 통보해준다. 두 연인이 있다 치자. 먼저 발가벗고 스크린 앞에 앉는다. 영화 속 섹스장면이 정점에 오르면, 연인의 가슴에 꽂힌 심파기가 작동하고, 서로의 국부에 달린 ‘정수기’가 정액을 실어나른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최종적으로 이동 유리병 속에서 정자와 난자가 결합 수정한다. 출산의 고통은 있을 수도 없다. 심지어 “고통없이 죽을 수 있는” 스크린 안락사까지 제시한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도 좋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영화로 해결한다. 1천년 뒤의 일이라는 유예조건을 전제로 했지만, 어쨌든 그런 꿈같은 세상이 오고야 만다는 것이다. 믿기는가. 허무맹랑한 거짓부렁이라고만 할 순 없다. 봉이 조선달이 상상을 쏘아올린 지 이제 30년. 테크놀로지는 그의 방통한 통찰력을 이미 실현했거나 근접하고 있다. 1971년 7월 <영화잡지>에 게재된 ‘10년 후에는 이렇게 된다’는 기사를 살펴보자. 인스턴트 시대 개막과 함께 집집마다 영화관이 설치된다는 기사의 추정은 VTR로 이미 실현됐다. 발가락으로 단추만 누르면 안방에서 자기가 원하는 장르의 영화를 볼 수 있게 된다는 가상은 IPTV로 발전 중이다. “장난감처럼 사용할 수 있는” 무비TV는 테이크 아웃이 가능한 내 손 안의 ‘DMB’를 예언하고 있다. “군대에 있을 때 상관으로부터 매를 맞거나” “알몸으로 목욕탕에 들어갔을 때의 모습을 기록할 수 있다”며 휴대폰 동영상까지 내다본다. 신기술에 인간이 넋을 빼고 있는 사이 친구를 잃은 애완견들을 위한 특수 영상도 개발될 것이라는 추측은 아직 황당하다. 미래에도 만년필이나 전자계산기를 여전히 쓰고 있을 것이라는 모순도 이따금씩 드러낸다. 달에서 가져온 암석으로 1년에 300편 이상 출연이 가능한 스타 로봇을 만든다는 것도 지나치다. 하지만 “손오공이 머리털을 뽑아 후 하고 불면 많은 손오공의 분신이 탄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스타 로봇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애니메트로닉스 기술을 활용한 컴퓨터그래픽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앞서 유비쿼터스 컨버전스 시대를 일찌감치 예감한 지적들 또한 가파른 속도의 테크놀로지 추동이 인간 욕망의 연장(延長)과 무관하지 않음을 일러준다. 하지만 이런 투의 기사들이 일부러 간과하는 게 있다. 새로운 창세기의 주인이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상상으로 써내려간 영화의 창세기는 바람일 뿐, 실은 영화의 묵시록이다. 대신 그 자리엔 “번영과 문명화를 상징하는” TV 제국이 들어섰다. 1970년 이후 영화잡지들의 지면 또한 TV라는 새로운 영역에 지분을 몽땅 내주다시피 한다. 방송사들이 드라마 제작 경쟁을 벌이기 시작하던 무렵 공채 탤런트 모집 공고에 5천명 이상이나 되는 지원자가 몰리고, 충무로 밥 먹던 이들 또한 먹이 찾아 이동하는 철새떼처럼 안테나를 찾아 떠나던 1970년대 초. 미디어와 스펙터클의 교합으로 시작된 TV의 위세는 ‘그후로도 오랫동안’이었고, 영화는 빼앗긴 지위를 되찾기 위해 안간힘이었으나 매번 불발에 그쳤다. 참고; <영화잡지> <한국일보> <동아일보> <한국현대사산책> <스물한통의 역사진정서> <우리방송 100년>

[메신저토크] “인간이란 시시하지만 그런 채로도 괜찮다는 기분을 감염시키는 영화”

김혜리 “혁명 자체를 희화화한 것이 아니라 영웅과 열정적 사람들 말고도, 이런 평범하고 별볼일 없고 치졸한 사람들이 모여서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기분. 인간이란 시시하지만 그런 채로도 괜찮다는 기분을 감염시키는 영화였습니다.” 이동진 “이야기의 틀만 이야기하자면, 일본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를 떠올리게 하는데, 결정적인 지점에서 그런 설정들을 훌쩍 뛰어넘는 시선이 들어 있더라고요.” 불망기: 다음 영화는 세계 영화지도에서 급부상한 루마니아영화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입니다. 혹시 이제 ‘스키’자 돌림 감독님들의 시대가 가고 ‘우’자, ‘쿠’자 돌림의 시대가 오는 건가요? ^.~ 물망가: 욱, 쿡.^^ 불망기: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의 ‘그때’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국민들의 봉기에 항복 선언을 한 1989년 12월22일 12시8분입니다. 소도시 바스루이의 지방방송 토크쇼에서 16주년 혁명 기념일에 즈음해 과연 우리 동네 사람들이 혁명 대열에 나섰던가, 사후에야 거리로 나왔나를 따집니다. 극중 시간으로 보면 가로등이 하나둘 꺼지는 새벽에 시작해서 다시 켜지는 해질녘에 끝나는 한나절의 이야기고요. 보는 동안은 황당하고 독특한 코미디고 보고 나니 따뜻하고 쓸쓸했어요. 물망가: 조금 온도가 낮은 듯, 여유로운 유머감각이 상당한 코미디영화였어요. 앞뒤에 붙인 관조적이고 서정적인 장면이 특히 그런 느낌을 갖게 해주더라고요. 불망기: 일단 많이 웃었습니다! 혁명이 일어나고 16년- 10년도 아니고! 15년도 아니고!- 이나 흐른 뒤 뜬금없이 “가만, 그때 우리 시에서도 혁명이 과연 있었나?”를 따진다는 모티브부터가요. ^0^ 물망가: 이 영화도 이야기의 틀만 이야기하자면, 일본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를 떠올리게 하는데, 결정적인 지점에서 그런 설정들을 훌쩍 뛰어넘는 비범한 시선이 들어 있더라고요. 불망기: 시청자 전화를 받는 토크쇼를 거의 40분쯤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본론이지만, 그것을 앞뒤로 감싸고 있는 소도시 바스루이 사람들의 일상이 영화를 전혀 다른 영역으로 밀어올렸습니다. 물망가: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시점은 우스운 문제 같지만 토크쇼에서는 사실 중요한 질문이에요. “우리 도시에 혁명이 있었는가”라는 토론 주제는 “항복 선언이 있었던 12시8분 이전에 시위가 있었는가”로 판가름나는 게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거대담론에 대한 인간의 과도한 의미부여가 일상의 눈으로 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가를 영화가 말해주는 부분이 있어요. 불망기: 역사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왜소함이 있죠. 종종 자문하게 되잖아요? 내가 살아오는 동안 일어난 한국사회 대사건만 해도 열 손가락이 넘는데 그때 거기서 난 뭘 했을까? 물망가: 바로 그런 자문이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잖습니까. 5·18 그 시각에 친구들과 대구에서 화투를 쳤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고 심하게 자괴감을 느꼈다는 이창동 감독의 경우도 그렇고요. 불망기: 이 영화의 주요 인물은 세 남자인데요. 한명은 토크쇼 진행자이자 혁명 뒤 방송사 사장이 된 즈데레스쿠고요. 내정된 게스트의 거절로 얼떨결에 섭외된 주정뱅이 교사 마네스쿠와 혼자 사는 할아버지 피스코시가 나머지입니다. 즈데레스쿠는 역사의 거창한 의미를 규정하려는 욕심이 있고 마네스쿠는 적어도 그때 나도 한몫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싶어하죠. 피스코시 할아버지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해 있고요.^0^ 꽤나 긴 도입부가 셋의 시시껄렁한 가정사와 일상부터 보여주는데, 뭔가 인생에서 대수로운 기대를 않는 사람들 특유의 코미디가 일품입니다. 한편 토크쇼는 혼란을 가장한 잘 조율된 소극이고요. 이리 멘첼 감독 영화를 봐도 그렇고, 동구권이야말로 코미디의 보고가 아닐까 싶어요. 연극 전통도 강고하잖아요? 물망가: 유머에는 뜬 유머와 가라앉은 유머가 있는데, 동구권의 유머는 후자쪽의 진수 같더라고요. 꾹꾹 눌러담은 유머 상자를 슬쩍슬쩍 아무렇지도 않게 열어서 보여주는 식이라고나 할까요. 불망기: 동유럽 친구를 사귀면 왠지 대화가 즐거울 듯!*.* 물망가: 기왕이면 <원스>의 마르케타 이르글로바 같은 사람으루다가…. ^^ 불망기:-_-# 그런데 토크쇼에 걸려오는 시청자 전화들이 하나같이 가관이잖아요. “그 시간에 당신 술 마시는 거 봤는데 무슨 시위를 했다는 거냐?”는 반박을 비롯해서 점입가경이죠. 이건 뭐 <고도를 기다리며>의 <제대로 된 전화를 기다리며> 버전입니다.T-T 물망가: 그런 전화는 끝내 오지 않는다는 거.^.~ 그동안 출연자 할아버지는 종이배를 접지 않나. ^^ 그걸 또 스탭이 뺏어가고….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모든 잡다함으로부터 갑자기 도약해 전혀 다른 경지를 보여주는 결말로 넘어가죠. 불망기: ‘이 영화가 어디로 가는 걸까’ 싶을 즈음에 막상 의제와는 아무 관련없는 두 대사가 갑자기 머릿속을 확 개게 하더군요. 하나는 피스코시 할아버지가 맥락없이 장황히 풀어놓은 죽은 아내와의 추억이었어요. 혁명이 있던 날 아침 지금은 죽은 아내와 싸웠는데, 꽃을 선사하면 풀어질 것 같아서 목련 세 송이를 훔쳐다주었다고요. 그랬더니 그녀가 미소를 지었고 그 순간 텔레비전에서 차우셰스쿠의 항복 선언이 나와 그녀에게 용감해 보이려고 거리로 나갔다는 추억이었죠. 물망가: ^^ 사실 그 할어버지는 이 영화에서 결정적인 이야기들을 불쑥불쑥 내뱉 듯 하고 있죠. 불망기: 그리고 혁명으로 아들을 잃었다는 아주머니의 마지막 전화가 걸려오죠. 서두만 듣고는 “한심한 놈들아!” 일갈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더이상 아들 이야기를 안 하고, 방금 내리기 시작한 눈 이야기를 합니다. 물망가: 그게 바로 ‘이 한심한 인간들아’라는 일갈임다. ^^ 불망기: 전혀 뜬금없고 예기치 못한 이 두 이야기가, 기적처럼 설득력있는 결말을 턱 안기더라고요. 기가 막혀서… ‘분하지만 졌다’는 기분이었습니다. -..- 물망가: 그리고 카메라는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는 거리로 돌아가죠. 불망기: 혁명 자체를 희화화한 것이 아니라 영웅과 열정적 사람들 말고도 이런 평범하고 별볼일 없고 치졸한 사람들이 모여서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기분. 가로등이 꺼지고 다시 켜질 때까지 그렇게 하루 해가 뜨고 지면서 역사가 한땀 늘었다는 기분, 인간이란 시시하지만 그런 채로도 괜찮다는 기분을 감염시키는 영화였습니다. 물망가: 저도 그 점이 가장 맘에 들었어요. 어느 누구도 몰아세우지 않으면서, 과도한 정치적 의미부여로 빡빡하게 굴지 않으면서, 그 모든 것을 푸근한 서설로 감싸안는 느낌이 들었어요. 혁명을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의 우연한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이문열씨의 소설 <칼레파타칼라>의 냉소적인 태도와 다른 면모였습니다. 이동진 “기본적으로 <헨젤과 그레텔>은 ‘슬퍼하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거기 도달하기 위해서 숱한 난맥을 드러낸다는 거죠.” 김혜리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러 간다면 누구나 그 동화가 모티브라는 점은 염두에 둘 거예요. 그런데 이 영화는 모티브가 된 동화와 영화 전체 이야기, 그리고 극중 은수가 지어낸 동화가 밀도의 차이가 없어요.” 불망기: <헨젤과 그레텔>은 방금 보고 오셨죠? 그림 동화가 원래 알고 보면 무서운 이야기가 많죠? 물망가: 그림동화뿐 아니라 서양 전래동화가 그런 예가 많은데 그건 18세기까지 유럽에서 아이들이 그저 ‘신체가 작은 어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좁은 집에서 많은 식구와 살면서 부모가 잠자리에 드는 모습부터 어른들이 걸쭉한 욕설과 음탕한 말을 하는 모습, 그리고 마을 광장에서 참수하는 장면까지 고스란히 보아온 결과라는 거죠. 술도 일찌감치 마셨잖아요. 불망기: 어린이는 보호해야 할 존재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최근 것이지요. 물망가: 존 카사베츠의 영화 <글로리아>에 보면, 갱이 아이를 쏘라고 명하면서 “그저 좀 작은 어른이라고 생각하면 돼”라고 하는데, 그게 딱 중세와 근세 유럽의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라는 거예요. 불망기: <헨젤과 그레텔>은 학대받은 어린이들이 중심에 있는 영화인데요. 청년 은수(천정명)가 낙태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여자친구의 전화를 받다가 교통사고로 숲에서 길을 잃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사실 도로변에 울창한 숲이 있다는 것부터 일찌감치 판타지 세계의 입구임을 암시하죠. ‘도달불능점’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나, 인물들이 멈출 수 없는 마법에 걸려 있다는 점, 마력적 공간의 비밀을 담은 ‘일기’가 등장한다는 점은 감독의 전작 <남극일기>와 통하는 요소예요. 물망가: 기본적으로 <헨젤과 그레텔>은 ‘슬퍼하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나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도 그런 영화들이죠. 의 마지막 장면은 대부분 사족이라고 비판했지만, 저는 아이의 눈물을 기어이 닦아주려는 스필버그의 따뜻한 마음의 산물이라 느껴져서 감동받았어요. <판의 미로…>의 마지막 장면 역시 그런 면이 있죠. 이 두 영화는, 바다 밑에서라도, 판타지 속의 지하세계에서라도, 기꺼이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하죠. <헨젤과 그레텔>도 그런 지점에서 분명히 강한 전달력을 가진 영화예요. 문제는 거기 도달하기 위해서 난맥을 드러낸다는 거죠. 우선 상상력에 아쉬움이 남아요. 판타지영화이고 잔혹동화를 표방한 영화라서 상당한 볼거리를 안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관습적이거나 다른 데서 차용한 묘사가 많더라고요. 불망기: 숲속의 집 공간 자체가 <헨젤과 그레텔> 같은 동화를 통해서만 ‘행복한 세계’의 상을 형성한 불우한 아이들의 단순한 상상력으로 창조된 상상세계이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변호할 수는 있을 거예요. -.- 물망가: 하지만 불우한 아이들의 상상력이 제한된 것과 그걸 소재로 그려내는 감독의 상상력이 제한된 것은 전혀 다른 문제죠. 극중 악역인 변집사(박희순) 같은 경우는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의 로버트 미첨 캐릭터에서 그대로 빌려온 인물로 여겨집니다. 기독교 광신도 사이코면서 아이들을 공격해 자신의 잇속을 차리려는 인물이잖아요. 날개를 펼치고 포르르 날아오르는 장난감 요정에서 <판의 미로…>가 떠오른다든지, 스타일이 같다는 게 아니라 미술로 방점을 찍는 방식이 <장화, 홍련>을 떠올리게 한다든지, 괴저택에 담긴 아이들과 관련된 비극의 틀이 <더 헌팅>을 생각나게 한다든지, 기시감이 많은 반면 참신한 장면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불망기: 고통받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표명하려 한 영화인 만큼 더욱 어린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정체를 묘사할 때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폭력의 주체가 상투적인 악당으로 묘사된다면 실제로 어린 배우들이 클리셰를 위해 불필요한 희생을 치르는 데 그칠 수 있으니까요. 물망가: 바로 그런 것들이 이 영화의 플래시백에 등장하는 어린이 학대장면이 지닌 문제점이죠. 그리고 그것이 조금 전에 말한 <그르바비차>의 태도와 선명하게 대조되는 대목이기도 하고요. 불망기: 저는 자루를 동원한 매질장면과 “제가 더 예뻐요”라는 대사가 나오는 대목이 오랫동안 섬뜩했습니다. 그런 장면은 정말로 필요할 때만 써야 합니다. 물망가: “제가 더 예뻐요” 장면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아이들의 눈물을 다루는 많은 한국영화들이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거리낌없이 학대를 전시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런 장면들 때문에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영화라는 진심마저 의심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학대의 양상이 너무나 전형적이면서 자극적이잖아요. 이 영화를 일반 시사회에서,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관객이 거의 다인 극장에서 봤거든요. 그런데 저 아이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까 생각하니 마음이 흐려지기도 하더라고요. 불망기: <헨젤과 그레텔>은 은수가 ‘즐거운 아이들의 집’에 온 날부터 날짜를 헤아려 영화를 단락지었는데요. 그 구성에 걸맞게 미스터리 속으로 점점 빠져든다거나 위기가 고조되는 리듬감은 부족했습니다. 물망가: 편집이 상당히 성긴 반면, 카메라는 매우 조급했어요. 카메라가 수시로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특정 신체 부위들을 비추는데, 그런 앵글이 너무 지시적으로 인물의 상태를 전달하려 한다는 거죠. 은수가 혼자 빵을 먹는 장면의 시작은 부감으로 찍혔고 이어지는 숏은 그 빵을 뜯어먹는 입의 클로즈업인데 그런 앵글들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그냥 다양한 앵글을 만들었을 뿐이라는 인상이죠. 편집도 마찬가집니다. 원장이 방문자에게 다른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고 말하자마자 이어지는 숏이 감금되어서 비참하게 굶주린 아이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인데 너무 부박한 편집이라고 느꼈어요. -_- 불망기: 대사가 반복적이라는 점도 약점입니다. 성인 배우들은 대화한다기보다 준비된 대사를 순서가 오면 암송하는 인상도 주었고요. 물망가: 특히 천정명씨 경우가 그랬죠. 클라이맥스의 순간조차도 데면데면한 얼굴에 고저장단이 없는 대사였으니까요. 박희순씨처럼 재능있는 연기자조차 얇아 보이더군요. 불망기: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러 간다면 누구나 그 동화가 모티브라는 점은 염두에 둘 거예요. 그리고 그 모티브를 어떻게 전개시켰는지에 관심을 두겠죠. 그런데 이 영화는 모티브가 된 동화와 영화 전체 이야기, 그리고 극중 은수가 지어낸 동화가 밀도의 차이가 없어요. 무엇이 모티브고 무엇이 그 모티브를 빌려 재구성된 현실인지 차원의 분별이 좀더 명백했다면 재미있었을 거예요. 물망가: 이 영화의 시도는 무척 용감하고 좋았다고 생각해요. 한국영화 상당수가 다 고만고만하고 어슷비슷한데, 이런 영화를 누가 또 만들겠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용감한 시도가 모든 것에 선행하는 지표가 될 순 없다는 거죠. 불망기: 임필성 감독의 단편 <소년기>를 본 관객은 <헨젤과 그레텔>을 보고 그 작품을 많이 떠올릴 듯합니다. 물망가: 저도 그랬어요. 불망기: 어른을 겁내고 미워했던 소년이, 시간이 흘러 어쩔 수 없이 성인이 된 뒤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승인을 받고 ‘어른됨’을 용서받으면서 아버지가 되고 싶어하는 의식을 영화에서 느꼈어요. 어쭙잖은 심리 분석을 하려는 건 아닌데 <소년기>와 이번 영화를 연결해보고 떠오른 감상입니다. 물망가: 뒷부분을 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불망기: 오늘 이야기한 영화들 면면을 보니 기억도 통조림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외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음미하기도 어려운 것이 기억이니, 통조림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감당이 안 되면 그냥 유통기한 지날 때까지 찬장구석에 박아놓다 버리면 되고, 대면할 준비가 됐다 싶으면 그때 깡통을 열어서 먹으면 되잖아요? 물망가: 개인의 성격에 따라선 그 유통기한 때문에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고생하는 <중경삼림>의 금성무 같은 사람도 있답니다. ^^

[영화읽기] 제목의 감옥에 갇히다

장르 감독이 그림 형제 동화의 모티브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 생각을 품는 것은 밤에 해가 지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다. 여러분이 이른바 ‘문명화’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그림 형제의 동화는 대부분 태어나서 가장 처음 접하는 호러다. 토막살인, 카니발리즘, 어린이 학대, 사지 절단, 근친상간, 존속 살인, 성폭행…. 테마도 무궁무진하다. 여러분이 아무리 끔찍한 현대 호러영화의 스토리를 골라도 그림 형제의 동화는 언제나 그보다 한 걸음씩 앞서간다. 그렇다면 카피 제목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한국 영화계에서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제목의 호러영화가 나오는 것은 이상하지도 않다(사실은 이상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지금 이야기할 주제가 아니다). 단지 여기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오리지널 <헨젤과 그레텔>의 무대는 중세 후기의 독일이고 영화 <헨젤과 그레텔>의 무대는 현대 한국이다. 이 두 세계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문화적·지리적 차이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숲’이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평지’의 개념은 유럽에서는 당연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니다. 그림 형제의 동화가 ‘깊은 숲 속에서’라고 운을 뗀다면 우리는 ‘깊은 산속에’라고 말한다. 영화 <헨젤과 그레텔>은 어느 쪽을 택할까? 타협의 여지는 없다. 그냥 숲이다. 이게 잘못인가? 아니다. 우리나라에 서구적 의미의 숲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그리고 영화 <헨젤과 그레텔>의 무대가 되는 공간은 실제 세계가 아니라 아이들의 상상에 나오는 인공적인 환상 세계다(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 말하자면 이 영화는 <헨젤과 그레텔>만큼이나 제롬 빅스비의 와 유사하다. 이 단편은 <트왈라이트 존>의 한 에피소드로 각색되었고 나중에 영화판에서 조 단테가 리메이크했다). 그렇다면 영화의 액션이 가짜 유럽적인 배경에서 펼쳐진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으며 오히려 이것은 두 세계의 충돌을 그리면서 새로운 내용을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 한번 따져보자. 앞에서도 말했듯이 <헨젤과 그레텔>이 그리는 무대는 의사 유럽풍이지만 정말로 그림 형제의 동화의 시대까지 반영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입은 옷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을 고려하면 20세기 초중반 정도가 맞다. 그림 형제 동화의 테마에 맞추기 위해 빨간 망토와 같은 소도구들이 더하는데, 이 역시 불평할 필요 없는 선택이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장화, 홍련> 이후 유행한 ‘청담동 호러’의 감수성에 통제받는다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따진다면 큰 문제가 없는 비주얼 요소들이 일단 <장화, 홍련>에 포섭된 순간 한없이 진부해져버린다. 여기서부터는 논리도 깨진다. 이 세계를 만든 아이들이 구체 관절 인형이 무엇인지 알기나 할까? 상상은 했을까? 쫀쫀하다고? 그게 그렇지가 않다. <헨젤과 그레텔>을 유지하는 힘은 아이들의 상상력이고 결코 그것은 기성품화한 스타일에 종속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상력은 규칙없이 정신없이 터져 나오거나 아니면 철저한 논리를 바탕으로 탐구되어야 한다. 영화 <헨젤과 그레텔>은 그 어느 쪽도 아니다. 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행복한 아이들의 집은 그냥 유원지 놀이동산이며 인테리어만 깔아놓은 모델 하우스다. 이 안에서 아이들은 위축되고 어색해 보인다. 구체 관절 인형을 받아, 어느 쪽으로든 가보자. 과연 자기 세계에서 거의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아이들이 보통 아이들이 가게에서 살 수 있는 장난감만으로 만족했을까? 백배 양보한다 해도 평생 자기 장난감 하나 가지지 않은 아이들이 상상하는 장난감들이 과연 그런 모습일까? 비주얼 소스라고는 흑백 동화책밖에 없는 아이들이 과연 그렇게 온전한 모습의 의사 유럽 스타일을 재구축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를 성서처럼 모신다고 해도, 과연 13살 남자아이가 그림 형제 동화의 환상만으로 만족했을까? 그 아이는 단 한 번도 만화책도, 텔레비전도 보지 못했나? 당연히 그림 형제 동화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꿈꾸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늘 먹는 음식들은 어떤가? 그건 그들의 상상력에 충실한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어른들의 습관적인 관념을 그냥 따른 것일까?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유감스럽게도 <헨젤과 그레텔>은 그 수많은 가능성들 중 가장 안전하고 뻔한 길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건 그냥 상식적인 선택이고 제목을 따른다면 옳은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왜 제목이 가능성을 가두는 감옥이 되어야 하는가? 이럴 경우 염치나 예의를 접고 마구 달리는 편이 더 옳지 않았을까? 어차피 그들이 고른 스타일은 그림 형제 동화를 충실하게 복제한 것도 아니다.

[현지보고] 시공을 초월해 점프, 점프, 점프

가고 싶은 곳을 생각만 해도 갈 수 있다면 어떨까. <본 아이덴티티>와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감독 더그 라이먼이 택한 후속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초능력을 가진 젊은이들을 그린 <점퍼>다. 오는 2월14일 전세계 동시 개봉예정인 이 작품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새뮤얼 L. 잭슨을 비롯해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제이미 벨, TV시리즈 의 레이첼 빌슨 등이 출연한다. 지난해 11월 아직 작품이 완성되지 않은 탓에 간단한 트레일러 상영 뒤 주연배우 크리스텐슨과 빌슨이 참여하는 홍보행사가 열렸다. 이들 역시 아직 완성본을 보지 못한 상태였지만 작품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점퍼>가 3부작으로 제작된다는 소문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크리스텐슨은 “지금으로는 확실하지 않지만, 설정상 3부작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한달 전인가 더그와 내기 탁구를 쳤다. 내가 이기면 더그가 2, 3편까지 다 감독하는 것으로 했는데 내가 이겼다”며 “그럼 결정난 거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요즘 타블로이드 가십난은 물론 인터넷에도 <점퍼>를 홍보하기 위해 투어 중인 크리스텐슨과 빌슨의 로맨스설이 나돌고 있어 영화에 대한 관심은 꽤나 무르익은 편이다. 주인공 데이비드(헤이든 크리스텐슨)는 20대 청년으로, 10대 때 우연히 자신의 텔레포트 능력을 알게 된다. 시공간을 순간이동할 수 있는 ‘점프’ 능력을 십분 이용하며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고, 뉴욕의 고급 아파트에서 부유한 생활을 누린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에 데이비드는 늘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그리핀(제이미 벨)을 통해 ‘점퍼’는 수세기 동안 존재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점퍼라는 초능력자의 설정은 꽤 흥미롭다. 점퍼의 첫 점프는 주로 10살 미만의 어린 나이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점퍼의 감정상태와 경험에 따라 순간이동 행위 자체가 위험해지기도 한다. 특히 감정이 불안정하고 격앙될 경우 시공간에 틈이 생겨 사람과 사물에 큰 해를 입힐 수 있는 ‘점프스카’(Jump Scar)가 발생하기도 한다. 점퍼는 일종의 유전자 변형으로, 자신이 방문했던 곳이나 사진이나 TV에서 본 곳으로만 텔레포트를 할 수 있다. 점퍼의 생활은 항상 위기에 놓여 있다. 점퍼의 능력이 세계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비밀조직 ‘팔라딘’이 점퍼를 사냥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점프’하는 능력은 수세기 동안 점퍼들의 개인적인 이윤을 위해 남용되며 역사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쳐왔다. 영화 <점퍼>는 다른 점퍼들과 팔라딘이 데이비드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부터 시작되고, 데이비드는 이들 사이에서 수세기 동안 계속되어온 전쟁에 휘말려 들어간다. 스티븐 굴드의 동명 공상과학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로케이션 촬영이 많았다. 프랑스와 중국, 이집트, 사하라 사막과 토론토, 뉴욕, 미시간, 도쿄까지. 이중 가장 눈길을 끄는 촬영현장은 로마의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이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서도 보도된 바 있는 콜로세움에서의 <점퍼> 촬영은 전례가 없는 결정으로 여러 면에서 주목받았다. 우선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도 촬영하지 못했을 만큼 규정이 엄격한 곳이라는 것과 관광객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한정된 시간에 최소한의 촬영기구를 사용해야 했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해 말에 이루어진 촬영은 할리우드에 관심이 많은 시네필인 로마 시장 월터 벨트로니의 개방적인 정책에 큰 덕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3일간 촬영허가를 받은 <점퍼>는 오전 6시30분부터 8시30분까지 2시간과 오후 3시30분부터 해가 질 때까지만 촬영이 허가됐으며 촬영시간이 끝나면 관광객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재빠르게 철수해야 했다. <점퍼>는 더그 라이먼 감독이 연출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큰 관심을 끌게 된 영화다. 작품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자 제작비 규모도 갑작스럽게 커졌고, 본래 캐스팅됐던 주연 남녀배우도 지명도가 없다는 이유로 중도 교체됐다. 그러나 촬영 시작 직전과 직후에 참여하게 된 크리스텐슨과 빌슨의 호흡이 잘 맞아 오히려 좋은 효과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본래 3부작으로 기획된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점퍼>의 흥행 여부에 따라 후속편에 대한 판도가 바뀔 가능성도 있으나 지금으로선 제작사인 이십세기 폭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듯하다. 현재 <점퍼>는 전세계 홍보 투어를 벌이고 있으며 2월14일에 마침내 전세계 동시개봉한다. “더그 라이먼 감독을 믿고 출연을 결심했다” 헤이든 크리스텐슨(데이비드 라이스 역) 인터뷰 -지금 ‘점프’를 한다면 어디로 가겠나. =토론토 북쪽에 있는 내 농장으로 가겠다. 가본 지 꽤 됐거든. 하지만 진짜 점프를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한곳을 꼽겠나. 아마도 지구상의 구석구석을 모두 다 볼 것 같다. 열심히 하면 일주일이면 끝나려나. (웃음) -‘점프’ 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최대의 슈퍼 파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밀이지만 더그도 ‘점프’ 능력에 대한 판타지가 있어 이번 영화를 만든 것 같다. -<스타워즈> 뒤에도 프렌차이즈에 대한 미련이 남았나. =고의로 택한 건 아니다. (웃음) <스타워즈> 때문에 많은 것을 배웠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아마 이 작품도 그래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처음에 공상과학이고, 텔레포트를 한다고 하기에 주춤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감독이 더그라고 해서 모든 생각이 바뀌었다. -앞으로도 어떤 영화에 나오든지 <스타워즈>와 계속 연계될 텐데 후회는 없나. =계약서에 사인할 때부터 각오가 돼 있었다. 워낙 전통있는 시리즈였으니까. 물론 앞으로도 <스타워즈>가 늘 따라다니겠지만 절대 후회는 없다. 그런 기회가 어디 쉬운가? 특히 영화상 캐릭터와 실제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어린 팬들이 커다란 눈으로 날 쳐다봐줄 때의 기분은 무척 ‘쿨’하다. (웃음) -농장이 있다고 했는데, 무엇을 재배하나. =200에이커 정도 되는데 유기농산물을 재배하고 있다. 앞으로는 라벤더를 재배할 예정이다. 재배하기 무척 편한 꽃이라더라. 딸 때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하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지금도 공부를 하는 중이지만 라벤더로 할 수 있는 게 많더라. -아니 웬 라벤더인가. =(웃음) 라벤더가 어때서? 사실 <스타워즈> 찍을 때 잠을 잘 못 잤다. 근데 아는 사람이 라벤더 오일을 베갯잇에 뿌려보라고 했다. 그 뒤로 잠을 너무 잘 잤다. 그래서 라벤더의 팬이 됐다고나 할까. 비즈니스까지는 아니고, 개인적으로 재밌어서 하는 거다. 원래 이것저것 공부하는 게 취미다. 지금 파일럿 자격증도 따려고 연습 중이다. 완벽한 오븐 치킨 로스트 요리법도 실험 중이다.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참 판타스틱한 배우다” 레이첼 빌슨(밀리 해리스 역) 인터뷰 -완성된 작품을 봤나. =아직 못 봤다. 무척 기대된다. 이미 촬영이 시작된 뒤 참여하게 돼 준비할 시간도 없었는데, 헤이든을 비롯해 모든 스탭이 따뜻하게 대해줬다. 더그도 작품 전부터 알았었고. 특히 수중촬영 등 육체적으로 힘든 연기가 많았는데 이런 분위기가 큰 도움이 됐다. -당신도 ‘점퍼’ 인가. =아니다. 헤이든의 캐릭터 데이빗의 여자친구인 밀리 역인데, 점프 능력은 없다. 그래도 액션장면이 많았다. 스턴트도 내가 하겠다고 조른 적이 많은데 모든 장면을 내가 연기하지는 못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인터뷰하지 못했을 거다. -만약 지금 당장 점프를 할 수 있다면 어디로 가겠나. =인도. 아마 비행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런 것 같다. (웃음)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함께 연기하기 어땠는지. =참 ‘판타스틱’한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 육체적으로 힘든 연기가 대부분이었는데, 한번도 불평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행복하게 일하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사람들은 그를 그저 <스타워즈>에 나왔던 배우로만 생각하는데, 그 시리즈 이후 헤이든이 출연한 영화들을 본다면 그의 연기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아직도 TV시리즈 의 캐릭터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4년간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경험을 할 시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당분간은 또 다른 시리즈 출연보다는 영화에 집중할 생각이다. -같은 나이의 여배우들과는 달리 가십기사에서 보기 힘들다. =사실 LA에서 자랐고, 세트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고나 할까. 파파라치가 연출하려는 ‘위험한 자세’로 찍히는 것도 잘 피할 수 있고. (웃음) 인기인들이 많이 몰리는 유명 레스토랑 등도 자제한다. 음식이 맛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따른 대가가 너무 크다. 요즘은 그래서 친구들과 집에서 요리해 저녁식사하는 것을 더 즐긴다. - 이후 유명인이 됐는데, 장점이 있다면. =패션 디자이너들의 새로운 의상을 처음으로 접할 수 있다는 거다. 워낙 패션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름이 알려진 디자이너보다는 신인들의 의상을 선호하는 편이다. -가끔 나도는 연애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얼마 전에는 리키 마틴과 사귄다는 기사도 났더라. (웃음) 만나본 적도 없는데 말이지. 그래서 가십기사에는 신경을 안 쓰려고 노력한다. -그럼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사귄다는 루머에 대해서는. =사생활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다. 쇼비즈니스에서 일하면 많은 부분이 외면적이기 때문에 나만의 것으로 간직하고 싶은 것이 있다.

2008년 영화·공연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로 부상한 ‘무비컬’ 열풍

“1년 365일 쉬지 않고 우린 움직이지.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공장은 돌아가지.” 노랫가락에 맞춰 격렬한 춤사위가 펼쳐진다. 양다리를 뒤집어 거꾸로 세우고, 온몸을 빙그르 돌려 회전하는 동작들이 자못 현란하지만, 자로 잰 듯 손과 발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군무는 경쾌함보다는 위압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뮤지컬 <라디오 스타>의 안무 연습 현장. 라디오 스타? 박중훈, 안성기가 출연했던 이준익 감독의 바로 그 영화가 맞다. 변두리 마을을 배경으로 한물간 스타와 속깊은 매니저의 우정을 잔잔하게 펼쳐 보였던 영화와 이곳 연습장의 풍경이 쉽사리 겹쳐지지 않는다면, 그것도 맞다. 영화의 기본적인 드라마와 인물, 테마를 가져온 뮤지컬 <라디오 스타>가 무대적인 상상력을 통해 탄생시킨 새로운 장면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스치듯 짧은 악역으로 등장했던 스타팩토리 최영도 사장의 비중이 커지면서, 공연 2막의 오프닝은 기계를 찍어내듯 스타를 양산하는 매니지먼트 산업을 은유하는 군무로 구성됐다. “영화의 미덕을 놓치지 않는 동시에 뮤지컬적인 장점을 살리고자 한” 김규종 연출가의 고민을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2008년 1월, <라디오 스타>와 함께 신년의 막을 여는 뮤지컬 중에는 <싱글즈>도 있다. 2003년, 장진영, 엄정화, 김주혁 주연으로 200만 관객을 스크린 앞에 불러모았던 영화는 지난해 6월에 뮤지컬로 초연됐고, 80%를 웃도는 객석점유율을 기록하며 창작 뮤지컬로서는 보기 드문 흥행가도를 달렸다. 초연 8개월여 만에 3번째 공연을 올리게 된 <싱글즈>는 신년 첫 무대의 주역으로 손호영, 이종혁, 김지우 등의 라인업을 갖췄다. <라디오 스타>와 <싱글즈>. 두 작품의 공통분모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영화를 뮤지컬화해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라는 것. 당장 시야를 올해 하반기, 혹은 내년까지 넓혀보면 레이더에 걸려드는 작품은 수없이 많다. <미녀는 괴로워> <용의주도 미스신> <내 마음의 풍금>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달콤, 살벌한 연인> <파이란> <은행나무 침대> <신부수업> <번지점프를 하다> <황산벌>…. 이 모든 영화들이 현재 뮤지컬로 제작 중이거나 기획 중인 작품들이다. 언제부터인가 아예 영화(movie)와 뮤지컬(musical)을 합성한 ‘무비컬’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2008년은 무비컬의 전성시대”라는 식의 헤드라인은 최근 각종 언론 매체를 단골로 장식하는 문구가 됐다. 무비컬 전성시대, 영화자본의 공연사업 진출과 맞물려 도래 굳이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영화를 뮤지컬화하는 작업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이미 2004년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무대에 오르며 포문을 열었고, 지난해 <댄서의 순정> <싱글즈>가 그 뒤를 이어 흡족한 흥행 성적을 올림으로써 본격적인 신호탄을 쏘아 올린 바 있다. 사실 최근 들어 급부상하고 있는 무비컬 바람은 그동안 물밑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던 영화자본의 공연사업 진출과 긴밀하게 맞물려 이루어진 바가 크다. 황정민의 무대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은 <나인>을 포함해 <캣츠> <지킬 앤 하이드> <지붕 위의 바이올린> <마이 페어 레이디> 등 2008년 한해에만 스무편 남짓의 뮤지컬에 투자, 제작, 배급으로 참여하는 CJ엔터테인먼트를 가장 대표적인 주자로 꼽을 수 있다. 2003년 <캣츠> 투어 공연의 투자 참여를 시작으로 뮤지컬 시장에 진입한 CJ엔터테인먼트는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 헤븐 등 다수의 뮤지컬 제작사들과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2006년부터는 <거울 공주 평강 이야기> <김종욱찾기!> 등 창작 뮤지컬 제작에까지 행보를 넓히는 등 매년 200~300억원의 예산을 뮤지컬에 투자하고 있다. 한편 싸이더스FNH는 2006년 <날 보러와요> <아트> <클로저> 등의 공연을 제작해온 악어컴퍼니의 지분 25%를 인수해 투자자 형식으로 뮤지컬 사업에 뛰어들었다. 흥행과 비평에서 고른 성공을 거둔 뮤지컬 <싱글즈>에 이어, 얼마 전 극장에서 개봉한 <용의주도 미스신>은 아예 기획 단계에서부터 영화와 뮤지컬 두 갈래로 준비돼 올해 하반기 즈음에는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악어컴퍼니의 조행덕 대표는 “콘텐츠 공유가 기본이다. 싸이더스의 영화, 시나리오와 악어컴퍼니의 연극, 뮤지컬 콘텐츠를 공유하고 있고, 현재 공동으로 기획하고 있는 작품들도 몇편 된다. 같이 하자는 이야기는 한 4∼5년 전부터 있었는데, 재작년 즈음부터 회사를 조금씩 섞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뮤지컬 제작사들의 밀려드는 러브콜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KM컬쳐는 <미녀는 괴로워>의 뮤지컬 제작 파트너로 <헤드윅> <벽을 뚫는 남자>의 쇼노트를 선택했다. KM컬쳐의 류은숙 실장은 “아무래도 지금은 영화 하나만으로는 수익을 내기가 힘든 상황이다 보니, 자연히 부가사업쪽으로 뮤지컬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미녀는 괴로워>처럼 꼭 영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 아니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뮤지컬 제작사들과 함께 공연을 제작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최근 눈에 띄게 활발해진 영화와 뮤지컬의 만남의 배경에는 한국 영화산업의 침체와 뮤지컬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가 맞물려 있다. 영화 부가시장이 실질적으로 고사 상태이고, 유일한 수입원인 극장 수익조차 악화된 상황에서 뮤지컬이 ‘원 소스 멀티 유즈’를 통한 새로운 수익의 활로로 부상한 것은 놀랍지 않은 결과다. CJ엔터테인먼트 공연사업본부의 이성훈 부장은 “작품 편수나 관객 동원 수에서 뮤지컬이 매년 20% 정도 성장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의 4∼5배는 되는 단위산업의 성장률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캣츠>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브로드웨이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시작된 한국의 ‘뮤지컬 붐’은 최근 몇년 사이 신성록, 엄기준, 송창의 등 국내 뮤지컬 스타들을 다수 배출하면서, 창작극에까지 그 열기를 옮겨가는 추세다. 현재 대학로의 소규모 공연까지 포함해 창작극만 한해 100편 정도가 만들어지는 한국 뮤지컬 시장은 총 2천억원 정도의 규모로 성장했다. 원 소스 멀티 유즈, 장기 공연을 통한 수익의 가능성 등이 영화사들의 발걸음을 뮤지컬로 잡아끄는 요소라면, 뮤지컬 제작사 입장에서는 극장 흥행을 통해 어느 정도 검증된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요소다. 악어컴퍼니의 조행덕 대표는 “한 가지 콘텐츠를 다양하게 이용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또 성공한 아이템을 가지고 오면서 마케팅 비용도 절감할 수 있지 않나. 무비컬은 아주 정상적인 흐름이라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원작의 미덕을 보존하되 무대예술만의 매력을 개발하는 게 성공의 관건 하지만 ‘뮤지컬 붐’에 편승한 장밋빛 구상만으로 섣불리 뛰어들다가는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2006년 창작뮤지컬 <폴인러브>를 내놓으며, 향후 공연사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것을 선언했던 시네라인-투는 흥행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고, 결국 현재 공연사업 계획 자체를 중단한 상태다. 뮤지컬 헤븐의 박용호 대표는 “공연 쉬운 줄 알고 왔다가 데어서 나가는 경우가 많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영화사들이 직접 뮤지컬을 하겠다고 자꾸 나서는 것은 단기적인 이익만을 보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뮤지컬 시장을 악화시키는 측면도 크다”고 지적한다. 이른바 ‘킬러 콘텐츠’를 모태로 한 경우에도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60여억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어 만들어진 뮤지컬 <대장금>은 무대에 오르자마자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일제히 혹평 세례를 받으며 외면당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굉장히 좋은 소재에서 출발했지만, 드라마 화면에서 보여졌던 산해진미, 지진희와 이영애의 표정들을 대극장에는 볼 수 없지 않나. 뮤지컬 <대장금>은 그러한 부분을 상쇄할 만한 지점을 무대 위에서 찾지 못했다”고 실패의 원인을 지적한다. 이는 영화를 무대에 올리는 무비컬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부분이다. CJ엔터테인먼트 공연사업본부의 양혜영 대리는 “원작의 느낌을 살리면서 무대적인 상상력을 보여줄 수 있는 포인트를 잡아야 한다. 그게 없다면 굳이 7천원짜리 이야기를 7만원 들여서 보러갈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원작의 미덕을 보존하되, 무대예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매력을 개발하는 것. 그것이 무비컬 연출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작품의 성패를 가르는 열쇠다. KM컬처의 류은숙 실장은 “<미녀는 괴로워> 영화에서 사실 주진모의 역할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부분에 멋진 멘트를 치면서 클로즈업이 들어가지 않나. 하지만 공연에서는 클로즈업이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니까, 그걸 대체할 수 있는 무대적인 부분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 지점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화법을 무대화법으로 ‘번역’하는 과정의 고투는 무비컬이 태생적으로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싱글즈>의 조행덕 연출가는 “하나의 세트라는 공간이 오히려 관객의 상상을 자극하는 부분도 있다. <싱글즈>는 영화의 클로즈업에 해당되는 정서적인 부분을 때로는 경쾌하고, 때로는 서정적인 노래로 처리해 라이브 공연만의 색다른 재미를 주려고 했다”고 이야기한다. 마찬가지로 “영화의 교차편집, 클로즈업 등을 무대 위에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많이 고민했다”는 <라디오 스타>의 김규종 연출가는 “마치 카메라가 돌듯 스테이지가 변화하도록 무대를 구성했고, 그 밖에도 여러 실험적인 장치들을 통해 카메라의 클로즈업, 롱숏의 효과를 내도록 시도했다”고 말한다. “무비컬은 콘텐츠간의 호환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시장을 형성할 것” 최근 몇년 사이 부쩍 달아오른 한국의 ‘뮤지컬 붐’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비약적인 성장세를 인정하면서도 ‘거품이 끼었다’는 점을 일제히 지적한다. 현재 난립한 제작사들과 우후죽순 발표되는 작품들이 앞으로 2~3년 안에 30~40% 정도는 걸러질 것이라는 게 공연 업계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다만 모든 이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으는 것은 무비컬이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니라, 결국 하나의 뮤지컬 제작 방식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라디오 스타> <용의주도 미스신> <미녀는 괴로워> <내 마음의 풍금> 등 새로운 작품들이 전면에 나서는 2008년 한해는 본격적인 무비컬 시대를 개막하는 하나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CJ엔터테인먼트 공연사업본부의 이성훈 부장은 “기존에 별로 사례들이 없었기 때문에 올해가 유독 튀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콘텐츠간의 호환이라는 점에서 무비컬은 앞으로 하나의 시장을 형성할 거다. 올해 성공 케이스가 한두편만 나와주면 무비컬도 제대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김아중이 빠진 <미녀는 괴로워>가, 박중훈과 안성기의 호흡을 잃은 <라디오 스타>가, 포복절도의 대사발이 사라진 <달콤, 살벌한 연인>이 과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한국영화와 뮤지컬의 만남, 그 미래는 이제 막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상태다. “영화와 분명히 다른 지점들을 즐길 준비를 하고 오셨으면 한다” <라디오 스타>의 김규종 연출가 -뮤지컬은 영화와 무엇이 달라졌나. =영화는 사실 안성기와 박중훈의 주름진 얼굴이 화면 가득히 차면 말을 안 해도 그 정서가 묻어나는데, 공연은 그러한 표현이 불가능하지 않나. 영화에서의 클로즈업이 표정이라면, 무대에서의 클로즈업은 노래이고 춤인데, 그 부분을 살리기 위해서 좀더 많은 드라마적 충돌이 필요했다. 또 그런 충돌을 만들려다 보니 말이 많아지고 결과적으로 극이 젊어지더라. 영화가 40대들의 이야기라면 뮤지컬은 조금 연령대를 낮춘 30대들의 이야기다.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이나 캐릭터는 그대로 가나. =사실 변화를 주려고 많이 애써봤다. 각본이 10고가 넘게 나왔다. 많은 인물, 소재를 넣어봤는데 아무리 시도를 해도 만족이 안 됐다. 생각해보니 영화의 미덕을 굳이 벗어나려고 했던 거였고, 결국은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 같더라. 뮤지컬 1막이 최곤의 성공부터 추락, 그리고 영월에서의 재기까지 그린다면 2막은 민수의 정서 라인에 중점을 둔다. 특히 2막에서 스타팩토리의 비중이 크게 등장하는 것이 영화와는 다르다. -음악은 어떤가. 영화 스코어가 사용되나. =<비와 당신> 한곡만 편곡해서 쓴다. 사실 영화가 음악은 많아도, 인물들이 가져가는 주제는 록이고, 그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클래식이고, 영월 주민의 정서는 트로트다. 그걸 한 장르로 담아내는 건 힘들다. 뮤지컬스럽게, 대사가 리듬을 타는 음악을 만들어봤다. -원작이 사랑받은 만큼 작품에 대한 부담도 클 것 같다. =공연이 구정 즈음 시작하는 것부터가 부담이다. 분명히 텔레비전에서 영화 많이 방영할 텐데. (웃음) 배우와 스탭들이 다들 너무나 영화를 감동적으로 봐서, 자기가 좋았던 장면들을 꼭 구현하고픈 욕심들이 있다. 그런 부분이 연출자로서는 사실 부담이다. 좀 나쁘게 본 사람도 있으면 다르게 해석하기가 좋을 텐데. (웃음) 뮤지컬 <라디오 스타>는 영화와 분명히 다른 지점들이 있다. 춤이 있고 노래가 있고 무대 메커니즘이 실험적인데, 그런 것들을 즐길 준비를 하고 오셨으면 좋겠다. 관객이 영화와 비교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뮤지컬적인 장점에 마음을 열고 함께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LA] 펜의 위력!

지난해 11월5일 시작된 미국작가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 WGA)의 파업이 급기야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취소라는 파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말부터 계속되고 있는 찌푸린 하늘 아래, 로스앤젤레스는 피켓을 든 빨간 티셔츠의 파업 지지자들을 거리에서 간간이 마주칠 수 있는 것 외에는 조용해 보인다. 그러나 이 도시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영화인들은 파업 효과를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이제 배우 모집공고는 찾아보기가 확실히 힘들어졌으며, 프로덕션 회사들은 경비 삭감을 위해 직원들의 노동시간을 대폭 줄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업 효과를 가장 실감하는 쪽은 일거리를 못 찾고 공중에 붕 떠버린 현장 스탭들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지난 1월17일, 미국연출가조합(Directors Guild of America, DGA)과 영화및텔레비전제작자협회(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 AMPTP)가 긍정적인 재계약 타협안에 이르렀다는 소식은 모두에게 청신호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미국연출가조합과 (스스로가 창작자로 구성된) 작가조합이 파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연출가조합은 운영진들이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유력 인사로 구성된 감독들이기 때문에 분쟁이 발생할 때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주시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동시에 ‘Below The Line’이라고 불리는 조감독, 스크립터, 프로덕션매니저 등 현장 제작 스탭이 연출가조합 구성원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작가조합의 입장과 궤를 달리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들은 고용인력이기 때문에 이번 파업의 핵심이기도 한 ‘수익배분’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작가들과는 달리 실질적인 혜택을 입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연출가조합이 이번 협상에서 스튜디오로부터 인터넷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gross)의 차후 분배까지 보장받았다는 것을 두고 작가조합과의 타결도 조만간에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 확실히 스튜디오가 한발 물러선 입장임은 분명하다. 연출가조합이 이제까지 스튜디오와 비교적 무난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 이제 3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는 작가 파업으로 텔레비전 파일럿 시즌이 실질적인 타격을 받는 것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 게다가 이번 파업의 전폭적인 지지를 표방하고 있는 미국배우협회(Screen Actors Guild, SAG)와의 계약만료가 3월로 다가왔다는 점. 이 모든 상황이 스튜디오를 압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작가들의 파업이 가시화되기 위해서는 3∼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배우들은 하루아침에 모든 프로덕션을 멈추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배우파업이야말로 할리우드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제80회 오스카 시상식까지 앞으로 한달. 작가파업이 수주일 내에 극적으로 타결되어 2월24일 오스카 시상식이 무사히 치러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곱게 미친 광인, 초인을 꿈꾸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그가 슈퍼맨(황정민)이다. 스스로 그렇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가 태안반도에 퍼진 기름 찌꺼기를 제거할 수 있거나 조지 부시를 지구 바깥으로 던져버리지는 못한다. 그는 사실 슈퍼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자기가 슈퍼맨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미친놈이다. 맨홀 밑에 괴물이 산다며 동분서주하고 주유소 앞 풍선 인형을 향해 돈키호테처럼 달려들 때는 영락없이 그렇다. 하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대체로 남들이 잘 하지 않으려는 작은 선행들을 하기 때문이다. 길가는 노인 짐 들어주기, 건널목에서 차 막아주기, 다친 사람 병원에 데려가기, 소매치기 잡아 주기 등등. 엉터리 감동을 짜내는 방송 다큐 프로듀서 송수정(전지현)이 이 사람을 우연히 알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그럴싸한 방송용 취잿거리로만 생각했는데, 그에게 아픈 과거가 있다는 걸 하나둘 접하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그의 머릿속에 박힌 크립토 나이트(이 영화의 슈퍼맨은 원작 <슈퍼맨>에 나오는 대머리 악한이 자기 머릿속에 그걸 심어놓았다고 믿고 있다)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가 슈퍼맨임을 믿는 사람은 그렇게 하여 이 세상에 또 한명 늘어나게 된다. 원작자 유일한이 PC통신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자신의 소설집 <어느 날 갑자기> 중 한편으로 동명 수록했고 그게 이 영화의 원작이 됐다. 하지만 송수정과의 관계, 크립토 나이트가 머릿속에 박힌 사연 등 굵직한 영화의 모티브는 각본 과정에서 새로 얼개가 짜여졌다. 한편, 슈퍼맨을 연기하는 황정민은 예의 그 인간적 활기를 담는 데 주력했고, 송수정이라는 인물이 조력자로서의 캐릭터임을 알고도 선택한 전지현은 용기있는 시도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가능성만 남겼다). 영화는 텔레비전에서 흔히 방영되는 ‘방송 다큐’의 형식을 빌려 전개하되, 착한 망상과 멀쩡한 무관심 중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묻고 싶어한다. 따뜻함이라고는 없던 송수정이 슈퍼맨을 알고 나서 동화되어가는 과정에 주력한다. 사실 풀어가기 쉬운 이야기가 아닌데도 영화는 재치있는 인물묘사와 뛰어난 편집감으로 흥나게 초·중반을 몰아간다. 그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생기롭다. 그런데 슈퍼맨의 상처를 알아가는 과정과 그의 영웅담이 담긴 후반부는 매력이 덜하다. 아니, 누구라도 후반부는 좀 늘어진다고 말할 것이다. 게다가 음악에 너무 기댄다. 감독은 시사회에서 관객의 반응을 본 뒤 영화를 다시 손봤다는데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경성 라디오에서 생긴 일, <라듸오데이즈> 공개

일시 1월24일 오후 2시 장소 CGV 용산 이 영화 1930년대 경성. 경성방송국 PD 로이드(류승범)는 작가 노봉알(김뢰하)와 함께 <사랑의 불꽃> 드라마를 만들기로 한다. 기생 명월(황보라), 아나운서 만철(오정세), 재즈 가수 마리(김사랑), 독립투사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음향 담당 K(이종혁) 등이 가세헤 드라마팀이 꾸려진다. 조선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 <사랑의 불꽃>은 방송 초기 애드립 사고와 팀내 불화에도 불구하고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음향 효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일본군의 압력을 받고 있는 방송국 국장은 로이드에게 드라마의 엔딩을 수정하라 명령하고 로이드는 고민에 빠진다. 100자평 걱정했던 것만큼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를 노골적으로 흉내내지는 않았다. 배우들의 능청맞은 연기는 썩 좋고 화면 위에 구현된 30년대 경성도 그럴싸하며, 설정도 잘 잡았다. 하지만 영화는 너무 안전하게만 논다. 충분히 폭발할 수도 있었던 농담들이 몸을 사리는 통에 반쯤 주저앉았달까. 재료는 충분히 좋지만 <라듸오데이즈>는 이미 가지고 있는 재료가 가진 기본적인 장점 이상의 무언가를 끄집어내지 못한다. 듀나/영화평론가 늘 충무로가 위기라고 하는데 돈이 남아도는 모양이다. 텔레비전 단막극보다 못한 이야기에 극장용 제작비를 투자할 여력이 있으니 말이다. <라듸오데이즈>는 뭣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어떻게든 웃기려 하지만 마냥 지루하기만 하고, 배우들은 그저 낭비만될 뿐이다. 한국 TV 드라마의 클리쉐를 비꼬면서 튀고 싶었나?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임성한 작가의 <하늘이시여>는 오마주인지 조롱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할것 같다. 누구나 코웃음 치는 그 뻔하디 뻔한 TV 드라마가 <라듸오데이즈>보다는 몇배는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김종철/ 익스트림무비(extmovie.com) 편집장 시대의 아픔을 거둬내고 노곤한 삶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라듸오데이즈>에는 이상할 만큼 이야기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는다.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를 기획하고, 방송국의 압력과 갈등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극적인 결말이 있음에도 영화는 시종일관 나른한 분위기에 빠져있다. 이것이 시대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인지는 모르겠으나 장르의 요소를 갖고도 활용하지 않는 방식은 영화의 위치를 애매하게 한다. K의 드라마가 단지 판타지적인 엔딩만을 위해 사용되는 부분도 아쉽다. 역사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모두 정치적일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선택한 에피소드를 소홀히 하는 건 영화 자체에 대한 태도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재혁/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