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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현지보고] 시공을 초월해 점프, 점프, 점프

가고 싶은 곳을 생각만 해도 갈 수 있다면 어떨까. <본 아이덴티티>와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감독 더그 라이먼이 택한 후속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초능력을 가진 젊은이들을 그린 <점퍼>다. 오는 2월14일 전세계 동시 개봉예정인 이 작품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새뮤얼 L. 잭슨을 비롯해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제이미 벨, TV시리즈 의 레이첼 빌슨 등이 출연한다. 지난해 11월 아직 작품이 완성되지 않은 탓에 간단한 트레일러 상영 뒤 주연배우 크리스텐슨과 빌슨이 참여하는 홍보행사가 열렸다. 이들 역시 아직 완성본을 보지 못한 상태였지만 작품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점퍼>가 3부작으로 제작된다는 소문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크리스텐슨은 “지금으로는 확실하지 않지만, 설정상 3부작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한달 전인가 더그와 내기 탁구를 쳤다. 내가 이기면 더그가 2, 3편까지 다 감독하는 것으로 했는데 내가 이겼다”며 “그럼 결정난 거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요즘 타블로이드 가십난은 물론 인터넷에도 <점퍼>를 홍보하기 위해 투어 중인 크리스텐슨과 빌슨의 로맨스설이 나돌고 있어 영화에 대한 관심은 꽤나 무르익은 편이다. 주인공 데이비드(헤이든 크리스텐슨)는 20대 청년으로, 10대 때 우연히 자신의 텔레포트 능력을 알게 된다. 시공간을 순간이동할 수 있는 ‘점프’ 능력을 십분 이용하며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고, 뉴욕의 고급 아파트에서 부유한 생활을 누린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에 데이비드는 늘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그리핀(제이미 벨)을 통해 ‘점퍼’는 수세기 동안 존재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점퍼라는 초능력자의 설정은 꽤 흥미롭다. 점퍼의 첫 점프는 주로 10살 미만의 어린 나이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점퍼의 감정상태와 경험에 따라 순간이동 행위 자체가 위험해지기도 한다. 특히 감정이 불안정하고 격앙될 경우 시공간에 틈이 생겨 사람과 사물에 큰 해를 입힐 수 있는 ‘점프스카’(Jump Scar)가 발생하기도 한다. 점퍼는 일종의 유전자 변형으로, 자신이 방문했던 곳이나 사진이나 TV에서 본 곳으로만 텔레포트를 할 수 있다. 점퍼의 생활은 항상 위기에 놓여 있다. 점퍼의 능력이 세계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비밀조직 ‘팔라딘’이 점퍼를 사냥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점프’하는 능력은 수세기 동안 점퍼들의 개인적인 이윤을 위해 남용되며 역사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쳐왔다. 영화 <점퍼>는 다른 점퍼들과 팔라딘이 데이비드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부터 시작되고, 데이비드는 이들 사이에서 수세기 동안 계속되어온 전쟁에 휘말려 들어간다. 스티븐 굴드의 동명 공상과학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로케이션 촬영이 많았다. 프랑스와 중국, 이집트, 사하라 사막과 토론토, 뉴욕, 미시간, 도쿄까지. 이중 가장 눈길을 끄는 촬영현장은 로마의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이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서도 보도된 바 있는 콜로세움에서의 <점퍼> 촬영은 전례가 없는 결정으로 여러 면에서 주목받았다. 우선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도 촬영하지 못했을 만큼 규정이 엄격한 곳이라는 것과 관광객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한정된 시간에 최소한의 촬영기구를 사용해야 했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해 말에 이루어진 촬영은 할리우드에 관심이 많은 시네필인 로마 시장 월터 벨트로니의 개방적인 정책에 큰 덕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3일간 촬영허가를 받은 <점퍼>는 오전 6시30분부터 8시30분까지 2시간과 오후 3시30분부터 해가 질 때까지만 촬영이 허가됐으며 촬영시간이 끝나면 관광객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재빠르게 철수해야 했다. <점퍼>는 더그 라이먼 감독이 연출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큰 관심을 끌게 된 영화다. 작품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자 제작비 규모도 갑작스럽게 커졌고, 본래 캐스팅됐던 주연 남녀배우도 지명도가 없다는 이유로 중도 교체됐다. 그러나 촬영 시작 직전과 직후에 참여하게 된 크리스텐슨과 빌슨의 호흡이 잘 맞아 오히려 좋은 효과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본래 3부작으로 기획된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점퍼>의 흥행 여부에 따라 후속편에 대한 판도가 바뀔 가능성도 있으나 지금으로선 제작사인 이십세기 폭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듯하다. 현재 <점퍼>는 전세계 홍보 투어를 벌이고 있으며 2월14일에 마침내 전세계 동시개봉한다. “더그 라이먼 감독을 믿고 출연을 결심했다” 헤이든 크리스텐슨(데이비드 라이스 역) 인터뷰 -지금 ‘점프’를 한다면 어디로 가겠나. =토론토 북쪽에 있는 내 농장으로 가겠다. 가본 지 꽤 됐거든. 하지만 진짜 점프를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한곳을 꼽겠나. 아마도 지구상의 구석구석을 모두 다 볼 것 같다. 열심히 하면 일주일이면 끝나려나. (웃음) -‘점프’ 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최대의 슈퍼 파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밀이지만 더그도 ‘점프’ 능력에 대한 판타지가 있어 이번 영화를 만든 것 같다. -<스타워즈> 뒤에도 프렌차이즈에 대한 미련이 남았나. =고의로 택한 건 아니다. (웃음) <스타워즈> 때문에 많은 것을 배웠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아마 이 작품도 그래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처음에 공상과학이고, 텔레포트를 한다고 하기에 주춤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감독이 더그라고 해서 모든 생각이 바뀌었다. -앞으로도 어떤 영화에 나오든지 <스타워즈>와 계속 연계될 텐데 후회는 없나. =계약서에 사인할 때부터 각오가 돼 있었다. 워낙 전통있는 시리즈였으니까. 물론 앞으로도 <스타워즈>가 늘 따라다니겠지만 절대 후회는 없다. 그런 기회가 어디 쉬운가? 특히 영화상 캐릭터와 실제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어린 팬들이 커다란 눈으로 날 쳐다봐줄 때의 기분은 무척 ‘쿨’하다. (웃음) -농장이 있다고 했는데, 무엇을 재배하나. =200에이커 정도 되는데 유기농산물을 재배하고 있다. 앞으로는 라벤더를 재배할 예정이다. 재배하기 무척 편한 꽃이라더라. 딸 때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하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지금도 공부를 하는 중이지만 라벤더로 할 수 있는 게 많더라. -아니 웬 라벤더인가. =(웃음) 라벤더가 어때서? 사실 <스타워즈> 찍을 때 잠을 잘 못 잤다. 근데 아는 사람이 라벤더 오일을 베갯잇에 뿌려보라고 했다. 그 뒤로 잠을 너무 잘 잤다. 그래서 라벤더의 팬이 됐다고나 할까. 비즈니스까지는 아니고, 개인적으로 재밌어서 하는 거다. 원래 이것저것 공부하는 게 취미다. 지금 파일럿 자격증도 따려고 연습 중이다. 완벽한 오븐 치킨 로스트 요리법도 실험 중이다.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참 판타스틱한 배우다” 레이첼 빌슨(밀리 해리스 역) 인터뷰 -완성된 작품을 봤나. =아직 못 봤다. 무척 기대된다. 이미 촬영이 시작된 뒤 참여하게 돼 준비할 시간도 없었는데, 헤이든을 비롯해 모든 스탭이 따뜻하게 대해줬다. 더그도 작품 전부터 알았었고. 특히 수중촬영 등 육체적으로 힘든 연기가 많았는데 이런 분위기가 큰 도움이 됐다. -당신도 ‘점퍼’ 인가. =아니다. 헤이든의 캐릭터 데이빗의 여자친구인 밀리 역인데, 점프 능력은 없다. 그래도 액션장면이 많았다. 스턴트도 내가 하겠다고 조른 적이 많은데 모든 장면을 내가 연기하지는 못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인터뷰하지 못했을 거다. -만약 지금 당장 점프를 할 수 있다면 어디로 가겠나. =인도. 아마 비행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런 것 같다. (웃음)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함께 연기하기 어땠는지. =참 ‘판타스틱’한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 육체적으로 힘든 연기가 대부분이었는데, 한번도 불평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행복하게 일하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사람들은 그를 그저 <스타워즈>에 나왔던 배우로만 생각하는데, 그 시리즈 이후 헤이든이 출연한 영화들을 본다면 그의 연기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아직도 TV시리즈 의 캐릭터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4년간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경험을 할 시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당분간은 또 다른 시리즈 출연보다는 영화에 집중할 생각이다. -같은 나이의 여배우들과는 달리 가십기사에서 보기 힘들다. =사실 LA에서 자랐고, 세트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고나 할까. 파파라치가 연출하려는 ‘위험한 자세’로 찍히는 것도 잘 피할 수 있고. (웃음) 인기인들이 많이 몰리는 유명 레스토랑 등도 자제한다. 음식이 맛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따른 대가가 너무 크다. 요즘은 그래서 친구들과 집에서 요리해 저녁식사하는 것을 더 즐긴다. - 이후 유명인이 됐는데, 장점이 있다면. =패션 디자이너들의 새로운 의상을 처음으로 접할 수 있다는 거다. 워낙 패션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름이 알려진 디자이너보다는 신인들의 의상을 선호하는 편이다. -가끔 나도는 연애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얼마 전에는 리키 마틴과 사귄다는 기사도 났더라. (웃음) 만나본 적도 없는데 말이지. 그래서 가십기사에는 신경을 안 쓰려고 노력한다. -그럼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사귄다는 루머에 대해서는. =사생활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다. 쇼비즈니스에서 일하면 많은 부분이 외면적이기 때문에 나만의 것으로 간직하고 싶은 것이 있다.

2008년 영화·공연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로 부상한 ‘무비컬’ 열풍

“1년 365일 쉬지 않고 우린 움직이지.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공장은 돌아가지.” 노랫가락에 맞춰 격렬한 춤사위가 펼쳐진다. 양다리를 뒤집어 거꾸로 세우고, 온몸을 빙그르 돌려 회전하는 동작들이 자못 현란하지만, 자로 잰 듯 손과 발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군무는 경쾌함보다는 위압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뮤지컬 <라디오 스타>의 안무 연습 현장. 라디오 스타? 박중훈, 안성기가 출연했던 이준익 감독의 바로 그 영화가 맞다. 변두리 마을을 배경으로 한물간 스타와 속깊은 매니저의 우정을 잔잔하게 펼쳐 보였던 영화와 이곳 연습장의 풍경이 쉽사리 겹쳐지지 않는다면, 그것도 맞다. 영화의 기본적인 드라마와 인물, 테마를 가져온 뮤지컬 <라디오 스타>가 무대적인 상상력을 통해 탄생시킨 새로운 장면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스치듯 짧은 악역으로 등장했던 스타팩토리 최영도 사장의 비중이 커지면서, 공연 2막의 오프닝은 기계를 찍어내듯 스타를 양산하는 매니지먼트 산업을 은유하는 군무로 구성됐다. “영화의 미덕을 놓치지 않는 동시에 뮤지컬적인 장점을 살리고자 한” 김규종 연출가의 고민을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2008년 1월, <라디오 스타>와 함께 신년의 막을 여는 뮤지컬 중에는 <싱글즈>도 있다. 2003년, 장진영, 엄정화, 김주혁 주연으로 200만 관객을 스크린 앞에 불러모았던 영화는 지난해 6월에 뮤지컬로 초연됐고, 80%를 웃도는 객석점유율을 기록하며 창작 뮤지컬로서는 보기 드문 흥행가도를 달렸다. 초연 8개월여 만에 3번째 공연을 올리게 된 <싱글즈>는 신년 첫 무대의 주역으로 손호영, 이종혁, 김지우 등의 라인업을 갖췄다. <라디오 스타>와 <싱글즈>. 두 작품의 공통분모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영화를 뮤지컬화해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라는 것. 당장 시야를 올해 하반기, 혹은 내년까지 넓혀보면 레이더에 걸려드는 작품은 수없이 많다. <미녀는 괴로워> <용의주도 미스신> <내 마음의 풍금>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달콤, 살벌한 연인> <파이란> <은행나무 침대> <신부수업> <번지점프를 하다> <황산벌>…. 이 모든 영화들이 현재 뮤지컬로 제작 중이거나 기획 중인 작품들이다. 언제부터인가 아예 영화(movie)와 뮤지컬(musical)을 합성한 ‘무비컬’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2008년은 무비컬의 전성시대”라는 식의 헤드라인은 최근 각종 언론 매체를 단골로 장식하는 문구가 됐다. 무비컬 전성시대, 영화자본의 공연사업 진출과 맞물려 도래 굳이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영화를 뮤지컬화하는 작업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이미 2004년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무대에 오르며 포문을 열었고, 지난해 <댄서의 순정> <싱글즈>가 그 뒤를 이어 흡족한 흥행 성적을 올림으로써 본격적인 신호탄을 쏘아 올린 바 있다. 사실 최근 들어 급부상하고 있는 무비컬 바람은 그동안 물밑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던 영화자본의 공연사업 진출과 긴밀하게 맞물려 이루어진 바가 크다. 황정민의 무대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은 <나인>을 포함해 <캣츠> <지킬 앤 하이드> <지붕 위의 바이올린> <마이 페어 레이디> 등 2008년 한해에만 스무편 남짓의 뮤지컬에 투자, 제작, 배급으로 참여하는 CJ엔터테인먼트를 가장 대표적인 주자로 꼽을 수 있다. 2003년 <캣츠> 투어 공연의 투자 참여를 시작으로 뮤지컬 시장에 진입한 CJ엔터테인먼트는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 헤븐 등 다수의 뮤지컬 제작사들과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2006년부터는 <거울 공주 평강 이야기> <김종욱찾기!> 등 창작 뮤지컬 제작에까지 행보를 넓히는 등 매년 200~300억원의 예산을 뮤지컬에 투자하고 있다. 한편 싸이더스FNH는 2006년 <날 보러와요> <아트> <클로저> 등의 공연을 제작해온 악어컴퍼니의 지분 25%를 인수해 투자자 형식으로 뮤지컬 사업에 뛰어들었다. 흥행과 비평에서 고른 성공을 거둔 뮤지컬 <싱글즈>에 이어, 얼마 전 극장에서 개봉한 <용의주도 미스신>은 아예 기획 단계에서부터 영화와 뮤지컬 두 갈래로 준비돼 올해 하반기 즈음에는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악어컴퍼니의 조행덕 대표는 “콘텐츠 공유가 기본이다. 싸이더스의 영화, 시나리오와 악어컴퍼니의 연극, 뮤지컬 콘텐츠를 공유하고 있고, 현재 공동으로 기획하고 있는 작품들도 몇편 된다. 같이 하자는 이야기는 한 4∼5년 전부터 있었는데, 재작년 즈음부터 회사를 조금씩 섞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뮤지컬 제작사들의 밀려드는 러브콜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KM컬쳐는 <미녀는 괴로워>의 뮤지컬 제작 파트너로 <헤드윅> <벽을 뚫는 남자>의 쇼노트를 선택했다. KM컬쳐의 류은숙 실장은 “아무래도 지금은 영화 하나만으로는 수익을 내기가 힘든 상황이다 보니, 자연히 부가사업쪽으로 뮤지컬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미녀는 괴로워>처럼 꼭 영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 아니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뮤지컬 제작사들과 함께 공연을 제작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최근 눈에 띄게 활발해진 영화와 뮤지컬의 만남의 배경에는 한국 영화산업의 침체와 뮤지컬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가 맞물려 있다. 영화 부가시장이 실질적으로 고사 상태이고, 유일한 수입원인 극장 수익조차 악화된 상황에서 뮤지컬이 ‘원 소스 멀티 유즈’를 통한 새로운 수익의 활로로 부상한 것은 놀랍지 않은 결과다. CJ엔터테인먼트 공연사업본부의 이성훈 부장은 “작품 편수나 관객 동원 수에서 뮤지컬이 매년 20% 정도 성장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의 4∼5배는 되는 단위산업의 성장률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캣츠>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브로드웨이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시작된 한국의 ‘뮤지컬 붐’은 최근 몇년 사이 신성록, 엄기준, 송창의 등 국내 뮤지컬 스타들을 다수 배출하면서, 창작극에까지 그 열기를 옮겨가는 추세다. 현재 대학로의 소규모 공연까지 포함해 창작극만 한해 100편 정도가 만들어지는 한국 뮤지컬 시장은 총 2천억원 정도의 규모로 성장했다. 원 소스 멀티 유즈, 장기 공연을 통한 수익의 가능성 등이 영화사들의 발걸음을 뮤지컬로 잡아끄는 요소라면, 뮤지컬 제작사 입장에서는 극장 흥행을 통해 어느 정도 검증된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요소다. 악어컴퍼니의 조행덕 대표는 “한 가지 콘텐츠를 다양하게 이용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또 성공한 아이템을 가지고 오면서 마케팅 비용도 절감할 수 있지 않나. 무비컬은 아주 정상적인 흐름이라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원작의 미덕을 보존하되 무대예술만의 매력을 개발하는 게 성공의 관건 하지만 ‘뮤지컬 붐’에 편승한 장밋빛 구상만으로 섣불리 뛰어들다가는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2006년 창작뮤지컬 <폴인러브>를 내놓으며, 향후 공연사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것을 선언했던 시네라인-투는 흥행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고, 결국 현재 공연사업 계획 자체를 중단한 상태다. 뮤지컬 헤븐의 박용호 대표는 “공연 쉬운 줄 알고 왔다가 데어서 나가는 경우가 많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영화사들이 직접 뮤지컬을 하겠다고 자꾸 나서는 것은 단기적인 이익만을 보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뮤지컬 시장을 악화시키는 측면도 크다”고 지적한다. 이른바 ‘킬러 콘텐츠’를 모태로 한 경우에도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60여억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어 만들어진 뮤지컬 <대장금>은 무대에 오르자마자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일제히 혹평 세례를 받으며 외면당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굉장히 좋은 소재에서 출발했지만, 드라마 화면에서 보여졌던 산해진미, 지진희와 이영애의 표정들을 대극장에는 볼 수 없지 않나. 뮤지컬 <대장금>은 그러한 부분을 상쇄할 만한 지점을 무대 위에서 찾지 못했다”고 실패의 원인을 지적한다. 이는 영화를 무대에 올리는 무비컬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부분이다. CJ엔터테인먼트 공연사업본부의 양혜영 대리는 “원작의 느낌을 살리면서 무대적인 상상력을 보여줄 수 있는 포인트를 잡아야 한다. 그게 없다면 굳이 7천원짜리 이야기를 7만원 들여서 보러갈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원작의 미덕을 보존하되, 무대예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매력을 개발하는 것. 그것이 무비컬 연출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작품의 성패를 가르는 열쇠다. KM컬처의 류은숙 실장은 “<미녀는 괴로워> 영화에서 사실 주진모의 역할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부분에 멋진 멘트를 치면서 클로즈업이 들어가지 않나. 하지만 공연에서는 클로즈업이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니까, 그걸 대체할 수 있는 무대적인 부분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 지점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화법을 무대화법으로 ‘번역’하는 과정의 고투는 무비컬이 태생적으로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싱글즈>의 조행덕 연출가는 “하나의 세트라는 공간이 오히려 관객의 상상을 자극하는 부분도 있다. <싱글즈>는 영화의 클로즈업에 해당되는 정서적인 부분을 때로는 경쾌하고, 때로는 서정적인 노래로 처리해 라이브 공연만의 색다른 재미를 주려고 했다”고 이야기한다. 마찬가지로 “영화의 교차편집, 클로즈업 등을 무대 위에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많이 고민했다”는 <라디오 스타>의 김규종 연출가는 “마치 카메라가 돌듯 스테이지가 변화하도록 무대를 구성했고, 그 밖에도 여러 실험적인 장치들을 통해 카메라의 클로즈업, 롱숏의 효과를 내도록 시도했다”고 말한다. “무비컬은 콘텐츠간의 호환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시장을 형성할 것” 최근 몇년 사이 부쩍 달아오른 한국의 ‘뮤지컬 붐’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비약적인 성장세를 인정하면서도 ‘거품이 끼었다’는 점을 일제히 지적한다. 현재 난립한 제작사들과 우후죽순 발표되는 작품들이 앞으로 2~3년 안에 30~40% 정도는 걸러질 것이라는 게 공연 업계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다만 모든 이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으는 것은 무비컬이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니라, 결국 하나의 뮤지컬 제작 방식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라디오 스타> <용의주도 미스신> <미녀는 괴로워> <내 마음의 풍금> 등 새로운 작품들이 전면에 나서는 2008년 한해는 본격적인 무비컬 시대를 개막하는 하나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CJ엔터테인먼트 공연사업본부의 이성훈 부장은 “기존에 별로 사례들이 없었기 때문에 올해가 유독 튀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콘텐츠간의 호환이라는 점에서 무비컬은 앞으로 하나의 시장을 형성할 거다. 올해 성공 케이스가 한두편만 나와주면 무비컬도 제대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김아중이 빠진 <미녀는 괴로워>가, 박중훈과 안성기의 호흡을 잃은 <라디오 스타>가, 포복절도의 대사발이 사라진 <달콤, 살벌한 연인>이 과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한국영화와 뮤지컬의 만남, 그 미래는 이제 막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상태다. “영화와 분명히 다른 지점들을 즐길 준비를 하고 오셨으면 한다” <라디오 스타>의 김규종 연출가 -뮤지컬은 영화와 무엇이 달라졌나. =영화는 사실 안성기와 박중훈의 주름진 얼굴이 화면 가득히 차면 말을 안 해도 그 정서가 묻어나는데, 공연은 그러한 표현이 불가능하지 않나. 영화에서의 클로즈업이 표정이라면, 무대에서의 클로즈업은 노래이고 춤인데, 그 부분을 살리기 위해서 좀더 많은 드라마적 충돌이 필요했다. 또 그런 충돌을 만들려다 보니 말이 많아지고 결과적으로 극이 젊어지더라. 영화가 40대들의 이야기라면 뮤지컬은 조금 연령대를 낮춘 30대들의 이야기다.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이나 캐릭터는 그대로 가나. =사실 변화를 주려고 많이 애써봤다. 각본이 10고가 넘게 나왔다. 많은 인물, 소재를 넣어봤는데 아무리 시도를 해도 만족이 안 됐다. 생각해보니 영화의 미덕을 굳이 벗어나려고 했던 거였고, 결국은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 같더라. 뮤지컬 1막이 최곤의 성공부터 추락, 그리고 영월에서의 재기까지 그린다면 2막은 민수의 정서 라인에 중점을 둔다. 특히 2막에서 스타팩토리의 비중이 크게 등장하는 것이 영화와는 다르다. -음악은 어떤가. 영화 스코어가 사용되나. =<비와 당신> 한곡만 편곡해서 쓴다. 사실 영화가 음악은 많아도, 인물들이 가져가는 주제는 록이고, 그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클래식이고, 영월 주민의 정서는 트로트다. 그걸 한 장르로 담아내는 건 힘들다. 뮤지컬스럽게, 대사가 리듬을 타는 음악을 만들어봤다. -원작이 사랑받은 만큼 작품에 대한 부담도 클 것 같다. =공연이 구정 즈음 시작하는 것부터가 부담이다. 분명히 텔레비전에서 영화 많이 방영할 텐데. (웃음) 배우와 스탭들이 다들 너무나 영화를 감동적으로 봐서, 자기가 좋았던 장면들을 꼭 구현하고픈 욕심들이 있다. 그런 부분이 연출자로서는 사실 부담이다. 좀 나쁘게 본 사람도 있으면 다르게 해석하기가 좋을 텐데. (웃음) 뮤지컬 <라디오 스타>는 영화와 분명히 다른 지점들이 있다. 춤이 있고 노래가 있고 무대 메커니즘이 실험적인데, 그런 것들을 즐길 준비를 하고 오셨으면 좋겠다. 관객이 영화와 비교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뮤지컬적인 장점에 마음을 열고 함께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LA] 펜의 위력!

지난해 11월5일 시작된 미국작가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 WGA)의 파업이 급기야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취소라는 파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말부터 계속되고 있는 찌푸린 하늘 아래, 로스앤젤레스는 피켓을 든 빨간 티셔츠의 파업 지지자들을 거리에서 간간이 마주칠 수 있는 것 외에는 조용해 보인다. 그러나 이 도시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영화인들은 파업 효과를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이제 배우 모집공고는 찾아보기가 확실히 힘들어졌으며, 프로덕션 회사들은 경비 삭감을 위해 직원들의 노동시간을 대폭 줄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업 효과를 가장 실감하는 쪽은 일거리를 못 찾고 공중에 붕 떠버린 현장 스탭들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지난 1월17일, 미국연출가조합(Directors Guild of America, DGA)과 영화및텔레비전제작자협회(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 AMPTP)가 긍정적인 재계약 타협안에 이르렀다는 소식은 모두에게 청신호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미국연출가조합과 (스스로가 창작자로 구성된) 작가조합이 파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연출가조합은 운영진들이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유력 인사로 구성된 감독들이기 때문에 분쟁이 발생할 때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주시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동시에 ‘Below The Line’이라고 불리는 조감독, 스크립터, 프로덕션매니저 등 현장 제작 스탭이 연출가조합 구성원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작가조합의 입장과 궤를 달리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들은 고용인력이기 때문에 이번 파업의 핵심이기도 한 ‘수익배분’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작가들과는 달리 실질적인 혜택을 입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연출가조합이 이번 협상에서 스튜디오로부터 인터넷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gross)의 차후 분배까지 보장받았다는 것을 두고 작가조합과의 타결도 조만간에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 확실히 스튜디오가 한발 물러선 입장임은 분명하다. 연출가조합이 이제까지 스튜디오와 비교적 무난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 이제 3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는 작가 파업으로 텔레비전 파일럿 시즌이 실질적인 타격을 받는 것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 게다가 이번 파업의 전폭적인 지지를 표방하고 있는 미국배우협회(Screen Actors Guild, SAG)와의 계약만료가 3월로 다가왔다는 점. 이 모든 상황이 스튜디오를 압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작가들의 파업이 가시화되기 위해서는 3∼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배우들은 하루아침에 모든 프로덕션을 멈추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배우파업이야말로 할리우드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제80회 오스카 시상식까지 앞으로 한달. 작가파업이 수주일 내에 극적으로 타결되어 2월24일 오스카 시상식이 무사히 치러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곱게 미친 광인, 초인을 꿈꾸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그가 슈퍼맨(황정민)이다. 스스로 그렇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가 태안반도에 퍼진 기름 찌꺼기를 제거할 수 있거나 조지 부시를 지구 바깥으로 던져버리지는 못한다. 그는 사실 슈퍼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자기가 슈퍼맨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미친놈이다. 맨홀 밑에 괴물이 산다며 동분서주하고 주유소 앞 풍선 인형을 향해 돈키호테처럼 달려들 때는 영락없이 그렇다. 하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대체로 남들이 잘 하지 않으려는 작은 선행들을 하기 때문이다. 길가는 노인 짐 들어주기, 건널목에서 차 막아주기, 다친 사람 병원에 데려가기, 소매치기 잡아 주기 등등. 엉터리 감동을 짜내는 방송 다큐 프로듀서 송수정(전지현)이 이 사람을 우연히 알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그럴싸한 방송용 취잿거리로만 생각했는데, 그에게 아픈 과거가 있다는 걸 하나둘 접하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그의 머릿속에 박힌 크립토 나이트(이 영화의 슈퍼맨은 원작 <슈퍼맨>에 나오는 대머리 악한이 자기 머릿속에 그걸 심어놓았다고 믿고 있다)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가 슈퍼맨임을 믿는 사람은 그렇게 하여 이 세상에 또 한명 늘어나게 된다. 원작자 유일한이 PC통신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자신의 소설집 <어느 날 갑자기> 중 한편으로 동명 수록했고 그게 이 영화의 원작이 됐다. 하지만 송수정과의 관계, 크립토 나이트가 머릿속에 박힌 사연 등 굵직한 영화의 모티브는 각본 과정에서 새로 얼개가 짜여졌다. 한편, 슈퍼맨을 연기하는 황정민은 예의 그 인간적 활기를 담는 데 주력했고, 송수정이라는 인물이 조력자로서의 캐릭터임을 알고도 선택한 전지현은 용기있는 시도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가능성만 남겼다). 영화는 텔레비전에서 흔히 방영되는 ‘방송 다큐’의 형식을 빌려 전개하되, 착한 망상과 멀쩡한 무관심 중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묻고 싶어한다. 따뜻함이라고는 없던 송수정이 슈퍼맨을 알고 나서 동화되어가는 과정에 주력한다. 사실 풀어가기 쉬운 이야기가 아닌데도 영화는 재치있는 인물묘사와 뛰어난 편집감으로 흥나게 초·중반을 몰아간다. 그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생기롭다. 그런데 슈퍼맨의 상처를 알아가는 과정과 그의 영웅담이 담긴 후반부는 매력이 덜하다. 아니, 누구라도 후반부는 좀 늘어진다고 말할 것이다. 게다가 음악에 너무 기댄다. 감독은 시사회에서 관객의 반응을 본 뒤 영화를 다시 손봤다는데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경성 라디오에서 생긴 일, <라듸오데이즈> 공개

일시 1월24일 오후 2시 장소 CGV 용산 이 영화 1930년대 경성. 경성방송국 PD 로이드(류승범)는 작가 노봉알(김뢰하)와 함께 <사랑의 불꽃> 드라마를 만들기로 한다. 기생 명월(황보라), 아나운서 만철(오정세), 재즈 가수 마리(김사랑), 독립투사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음향 담당 K(이종혁) 등이 가세헤 드라마팀이 꾸려진다. 조선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 <사랑의 불꽃>은 방송 초기 애드립 사고와 팀내 불화에도 불구하고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음향 효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일본군의 압력을 받고 있는 방송국 국장은 로이드에게 드라마의 엔딩을 수정하라 명령하고 로이드는 고민에 빠진다. 100자평 걱정했던 것만큼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를 노골적으로 흉내내지는 않았다. 배우들의 능청맞은 연기는 썩 좋고 화면 위에 구현된 30년대 경성도 그럴싸하며, 설정도 잘 잡았다. 하지만 영화는 너무 안전하게만 논다. 충분히 폭발할 수도 있었던 농담들이 몸을 사리는 통에 반쯤 주저앉았달까. 재료는 충분히 좋지만 <라듸오데이즈>는 이미 가지고 있는 재료가 가진 기본적인 장점 이상의 무언가를 끄집어내지 못한다. 듀나/영화평론가 늘 충무로가 위기라고 하는데 돈이 남아도는 모양이다. 텔레비전 단막극보다 못한 이야기에 극장용 제작비를 투자할 여력이 있으니 말이다. <라듸오데이즈>는 뭣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어떻게든 웃기려 하지만 마냥 지루하기만 하고, 배우들은 그저 낭비만될 뿐이다. 한국 TV 드라마의 클리쉐를 비꼬면서 튀고 싶었나?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임성한 작가의 <하늘이시여>는 오마주인지 조롱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할것 같다. 누구나 코웃음 치는 그 뻔하디 뻔한 TV 드라마가 <라듸오데이즈>보다는 몇배는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김종철/ 익스트림무비(extmovie.com) 편집장 시대의 아픔을 거둬내고 노곤한 삶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라듸오데이즈>에는 이상할 만큼 이야기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는다.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를 기획하고, 방송국의 압력과 갈등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극적인 결말이 있음에도 영화는 시종일관 나른한 분위기에 빠져있다. 이것이 시대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인지는 모르겠으나 장르의 요소를 갖고도 활용하지 않는 방식은 영화의 위치를 애매하게 한다. K의 드라마가 단지 판타지적인 엔딩만을 위해 사용되는 부분도 아쉽다. 역사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모두 정치적일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선택한 에피소드를 소홀히 하는 건 영화 자체에 대한 태도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재혁/ <씨네21> 기자

배우들이 인정한 최고의 배우

배우가 뽑은 배우는 누굴까. 1월27일 열린 제14회 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 시상식에서 <데어 윌비 블러드>의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영화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부문 여우주연상은 <어웨이 프롬 허>의 줄리 크리스티. 남녀 조연상은 각각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과 <아메리칸 갱스터>의 루비 디가 가져갔다.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트로피를 받은 뒤 시상식장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의 히스 레저는 완벽했다. 나는 그를 만나본 적이 없지만 그는 이미 인생에서 아름다운 일들을 많이 했다”며 수상의 영광을 히스 레저에게 돌렸다. TV부문 남녀 주연상은 분야를 ‘텔레비전 무비·미니시리즈’, ‘드라마 시리즈’, ‘코미디 시리즈’ 등 세 가지로 나눠 <애즈 유 라이크 잇>의 케빈 클라인과 <라이프 서포트>의 퀸 라티파, <소프라노스>의 제임스 갠돌피니와 에디 팔코, <30 록>의 알렉 볼드윈과 티나 페이에게 수상했다. 배우가 뽑은 시상식답게 올해는 최고의 앙상블상과 스턴트 앙상블상이 신설됐다. 최고의 앙상블상은 <소프라노스>와 <오피스>가 가져갔으며 스턴트 앙상블상은 영화 <본 얼티메이텀>의 171명과 TV시리즈 <24>의 7명에게 돌아갔다. 한편 이번 시상식은 계속되는 작가조합 파업, 골든글로브 시상식 취소 등 최근 활기를 잃은 할리우드에서 오랜만에 축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행사였다. 조촐하게 치러지긴 했지만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 케이트 블란쳇, 토미 리 존스, 조지 클루니 등이 레드 카펫을 밟았다.

[전영객잔] 새롭게 사유하라! ①

(스포일러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화를 보실 분들은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충분히 경고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건 프랭크 다라본트의 <미스트>가 아니라 지난 한해에 만들어진 할리우드영화를 한달 동안 몰아서 본 다음 중얼거린 질문이다. 제이슨 라이트먼의 ‘10대 소녀의 지옥을 웃기게 그린’ <주노>와 마이클 베이의 ‘10대 소년의 로망을 심각한 척 담은’ <트랜스포머>를 한해에 동시에 보게 되었을 때, 텍사스에 관한 두편의 ‘웨스턴 이후’의 영화라고 할 수밖에 없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비범한)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라드>와 조엘 코언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본 다음 뉴질랜드에서 온 앤드루 도미닉이 브래드 피트를 주연으로 연출한 ‘웨스턴’ <제시 제임스 암살>을 보게 될 때,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와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플래닛 테러>를 동시상영처럼 보았을 때, 나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을 정반대의 방향에서 던지는 <본 얼티메이텀>과 <아임 낫 데어>(와 <스파이더 맨3>까지)를 거의 연달아 보게 되었을 때, <본 얼티메이텀> 각본을 쓴 토니 길로리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마이클 클레이튼>으로 감독 데뷔했을 때, 미국에 관한 두개의 이상한 연대기인 <조디악>과 <아메리칸 갱스터>를 시즌별로 보았을 때, 그런 다음 1980년대 뉴욕을 무대로 한 경찰과 러시아 마피아 사이에 낀 클럽 매니저를 다룬 제임스 그레이의 <우리는 밤을 지배한다>를 보게 될 때, <클로버필드>를 본 다음 집에 와서 다운로드받은 리처드 ‘도니 다코’ 켈리의 <남쪽나라 이야기>를 볼 때, 지지난해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한 것을 숀 펜이 <인투 더 와일드>에서 거의 이루어낸 것을 볼 때, 그냥 무엇보다도 데이비드 린치의 <인랜드 엠파이어>가 만들어지고 있을 때, 구스 반 산트가 ‘여전히’ <파라노이드 파크>를 찍고 있을 때, 지금 미국영화는 무엇일까, 라고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하는 이야기지만 스필버그가 <우주전쟁>을 찍었을 때 무언가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말을 했다. 프랭크 카프라처럼 <터미널>을 찍은 다음 갑자기 존 포드의 <수색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걸작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하워드 혹스처럼 <뮌헨>을 연출했다. 그러고 난 다음 두편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걸작 전쟁영화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제작했다. 올해 (루카스와 함께)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으로 돌아오지만 지금 준비하는 영화는 <링컨>(!)이다. 할리우드영화가 영화보는법을 바꾸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토픽의 단절이 언제인지를 정확하게 지적하지는 못하겠지만, 1999년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가 (미국에서만) 1억달러 블록버스터가 되었을 때 (할리우드식으로 말하면) ‘무언가’ 벌어졌다. 이 쓰레기는 1999년 버전 <네 멋대로 해라>가 되었다(‘의미심장하게도’ 그해에 <매트릭스>가 만들어졌다). 이걸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비평적 용어란 없다(하지만 온갖 해설은 있다). 그러나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미국영화는 영화를 거의 와해시켰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와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쓴 것이 아니다(그렇다고 긍정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가 원래 가지고 있던 비밀의 형식이라는 것을 마치 잉여인 것처럼 몰아세운 다음 재빨리 거기에 영화와 닮은 새로운 근거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것과 영화 사이에 어떤 공통의 분모가 있는 집합처럼 보였지만 일단 구멍이 뚫리자 그 속으로 새로운 모델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스크린이라는 표면에 구멍이 뚫려 통과하기 시작하자 거기서 어떤 상황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예술이라기에는 너무 생산적이고, 재생산이라고 부르기에는 놀랄 만큼 창조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약간 거슬러 올라가서 데이비드 린치의 <블루 벨벳>과 조너선 드미의 <섬씽 와일드>를 언급하고 있지만 난 그 ‘이후’를 말하고 있는 중이다. 이걸 그냥 포스트모던하군, 이라고 말하는 것은 철지난 유머다. 내가 할리우드영화를 보면서 점점 기괴하게 생각하는 것은 영화 자체는 금방 이해가 되는데 본 다음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거의 플롯의 구조가 붙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이 할리우드영화를 쉽게 이해하게 만드는가? 플롯없이 무엇을 보고 있는가? <조디악>을 본 다음 <살인의 추억>처럼 플롯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가? <본 얼티메이텀>을 본 다음 이 영화가 아무 인과관계 없이 고작해야 세개의 시퀀스만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 텅 빈 플롯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우리를 공허하게 만들지 않는가? 단 하나의 시퀀스로 이루어진 두편의 영화의 (놀랄 만큼 창조적인 다음 한심할 만큼 게으른) 반복 <데쓰 프루프>. 아니, 차라리 스포일러의 만연 속에서 그 영화의 플롯이 궁금해서 영화를 보러간 적이 있는가? 심지어 <클로버필드>를 보러 온 관객의 대부분은 어떻게 찍혔는지조차 알고 온다. 그 앞에서 우리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만일 이것이 새로운 상황이라면 영화를 보는 방법을 바꾸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데 무엇을 어디서? 왜 보는 방법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지 않는가? (혹은 의심하지 않는가?) 나는 지금 미국영화를 예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읽고 있다면 당신은 내 논점으로부터 너무 멀리 벗어나 있는 것이다. 정보를 통해서, 정보로 영화를 설명하는 게임방 시대의 시네필들 오늘날 영화를 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영화라는 사건을 가능한 세계의 한 가지 방식으로 보는 것이다. 영화-사건-가능, 이라는 하나의 삼각형. 다른 하나는 영화라는 정보를 존재하는 세계의 일부로 읽는 것이다. 영화-정보-경험, 이라는 또 다른 삼각형. 전자의 방식으로 볼 수 있는 영화는 눈에 보이게 줄어들고 있다. 후자의 방법은 거의 모든 영화들이 우리 시대의 광학적 기계장치를 다루는 전략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영화를 볼 때 이제는 그것을 보는 직관적 감각이 얼마나 예민하고 풍요로운가라는 (다소 상투적인 비유이지만) 유목민적인 산책의 구경보다 그 영화를 둘러싼 정보를 얼마나 더 많이 갖고 있느냐에 의해서 그 영화가 더 잘 보이는 네트워크로서의 집단적 전송과 리플이 이 시대의 영화감상을 특징짓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착각하면 안 된다. 오늘날 이 네트워크의 특징은 대화가 없다는 것이다. 있다면 오로지 사이버 대화가 있다. 정말 있는 것은 전송뿐이다. 전송하고, 전송받고. 베냐민적 영화보기에 대한 맥루한적 영화보기의 승리. 어쩔 수 없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미국영화(의 관객교육 방법)의 승리. 오늘날 젊은 시네필들이 영화 그 자체보다 영화를 둘러싼 정보에 더 열중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노트북 세대의 첫 번째 시네필들, 게임방 시대의 첫 번째 시네필들. 그들은 사실상 재빨리 새로운 영화 보는 법을 익히는 중이다. 그들은 영화를 본 다음 견해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정보의 오류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정보를 경유하고, 정보를 통해서, 정보로 영화를 설명한다. 그러므로 영화를 더 잘 보려고 혼자서 명상에 잠겨 자기의 생각을 말하려 들 때 새로운 시네필들에게 그 노력이 일종의 영화적 문맹이거나 혹은 부질없이 관념적인 잡담처럼 보이는 것은 이유가 있다. 혹은 지식이 이들을 간섭하려들 때 맹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보는 쪽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쪽에서 이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할리우드영화가 있다. 이제 영화를 볼 때 시각적 플롯이나 시간적 형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코드를 보는 것만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혹은 코드를 놓치면 더이상 영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 MTV는 새로운 감상방식을 교육했고, 게임은 내용보다 룰이 중요한 플롯을 만들었으며, (펄프 소설과) TV와 팝송과 만화는 영화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으며, 멀티플렉스는 거의 테마파크가 되었으며(혹은 그 역을 성립시켰으며), 속편 시리즈물은 영화를 박스 세트로 부풀렸고, 웹은 지구상의 모든 관객에게 각자 자신의 ‘사이버 지면’을 가진 블로그 영화평론가로 만들었으며, DVD 서플은 해설로 해석을 대체하였고, 유튜브는 명장면 발췌의 무법천지가 되었으며, 영화는 우리 시대의 글로벌 라이프스타일의 일부가 되었다. <시민 케인>을 잘 보기 위해서는 리뷰를 찾는 대신 이 영화를 백번 보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다). <아임 낫 데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번 보는 쪽보다 웹 사이트를 뒤지는 쪽이 낫다. 이제는 검색어를 얼마나 정확하게 선택하느냐가 얼마나 적합한 미학적 용어를 알고 있느냐보다 그 영화의 핵심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 그냥 한마디로 이 새로운 영화들의 핵심은 정보를 미학적으로 만드는 데 있다. 미국영화, 말 그대로 정보의 바로크적 네트워크. 우리 주변에 만연한 이상한 태도 중 하나는 할리우드영화가 바보 같다고 그냥 간단하게 말하는 것이다. 사태는 정반대이다. 바보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들은 위대한가? 그것은 또 다른 질문이다. 어떤 이들은 정보로 이루어진 미국영화가 단지 하부의 뇌만을 자극한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므로 상부의 뇌를 자극하는 영화만 다루자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머리 안에서 영화가 작동한다면 그때 상부와 하부는 동시에 활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한쪽없이 다른 한쪽이 설명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표현주의영화들은 필름누아르와 하드보일드와 공포영화와 뒤섞였으며, 러시아 몽타주영화들은 갱스터영화들과 뒤섞였으며, 프랑스 시적 리얼리즘영화들은 멜로드라마와 뒤섞였으며, 네오리얼리즘영화들은 텔레비전과 뒤섞였으며, 모더니즘영화들은 MTV와 뒤섞였으며, 홍콩영화들은 액션 미장센이 되었으며, (… 등등) 변주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만일 우리가 미국영화의 ‘지금’을 설명해내지 못한다면 사실상 동시대 영화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데없는 새로운 상황에 대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 상황은 거의 전면적이고 게다가 ‘여기’서 재생산되고 있다. 나는 그것이 저기서가 아니라 여기서, 그리고 그때가 아니라 지금 우리 동네 멀티플렉스에서 (혹은 당신의 컴퓨터 안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들을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동의를 제안하는 것이다. 같은 말의 다른 테제. 나는 이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낸 미국영화의 전술 앞에서 우리가 새로운 유격전을 벌이기 위해 재빨리 함께 새로운 사유의 훈련에 돌입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말하자면 이 글은 시행착오를 각오하고 훈련을 위한 사용자의 가이드북을 만들려는 일종의 예비적인 서론으로 읽혀야 한다. 가벼운 몸 풀기, 너무 헤비하지 않게. 약간 성공적이고 대부분 엉성하지만, (스포일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직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은, ‘그렇지만’ 전선의 약한 고리를 이루고 있는 <미스트>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다른 영화에서 얻은 경험으로 이해를 요구하는 <미스트> (그러므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모든 것을 안개 속에 가린 상황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쪽은 투명한데 저쪽은 그냥 하얀 벽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슈퍼마켓 유리창 저편을 쳐다보는 것뿐이다. 마지막에 잠시 안개가 걷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다. 프랭크 다라본트의 <미스트>를 보고 있으면 첫 번째 질문은 거기서 시작한다. 하지만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 그건 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그게 상관이 없어진 것일까? 여기에는 어떤 유혹이 있다. <미스트>는 영화를 보는 관객을 슈퍼마켓 안에 있는 누구와도 동일하게 다루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안개 너머의 ‘그것’과 어떤 연대를 이루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 관객으로 하여금 이 상황에 개입하기를 원치 않는 듯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만들어준다. 그것을 구경꾼이라고 말하기에도 다소 애매하다. 이때 관객은 슈퍼마켓 안의 희생자들이나 혹은 ‘그것’ 말고 영화 바깥의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바깥의 누군가? 그렇다. 이때 그 누군가는 이미 이것을 본(것의 반복이라고 믿고 있는) 당신 자신이다. 오늘날 제대로 매장하지 않아서 귀환하고 있는 것은 영화 속의 증후가 아니라 영화 바깥에서 이미 우리가 본 영화들의 경험이다. <미스트>는 자신의 부족한 설명을 그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들에 떠넘기고, 그런 다음 비슷한 상황을 약간 변주한다. 그래서 영화에서 목매달아 자살한 두명의 군인 시체 앞에서 데이빗이 웨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거냐고 다그칠 때, “막을 찢자 저쪽 구멍에서 무언가가 나왔어요”라는 대답을 할 때,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었다고 생각할 때, 나에게 그 말은 화면 저 너머의 영화들로부터 당신이 이미 본 것들이잖아요, 라는 대답의 판본으로 읽혔다. 그래서 관객에게 다 설명되지 않더라도 끝내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어떤 우쭐거림 같은 것을 부추기고 있다. 설명되지 않은 설명된 것들, 이라는 어떤 이상한 합의. 우리에게 떠넘긴 설명.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 합의를 끌어내는 일곱 가지 판본이 있다(물론 이것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카모디 부인의 말을 따라 일곱개의 봉인이 열리는 순간이라고 읽어볼 생각이다).

[전영객잔] 새롭게 사유하라! ②

1. 프랭크 다라본트와 스티븐 킹의 관계로 읽기 첫 번째 판본. 이게 가장 따분하다. 프랭크 다라본트와 스티븐 킹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합의를 설명하는 것이다. 물론 스티븐 킹의 소설을 프랭크 다라본트는 마치 그의 소설의 집사라도 된 것처럼 충실하게 옮겼고, <쇼생크 탈출>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 다음 <그린 마일>은 (지루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이 스티븐 킹의 팬클럽이라면 이 판본은 충분히 따져볼 만한 게임이다. 우선 영화의 절반 정도를 따라갈 때까지 프랭크 다라본트는 매우 충실한 독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카모디 부인이 점점 종교적 광신을 슈퍼마켓 안의 사람들에게 설교할 때부터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핵심은 마지막에 있다. 둘 다 ‘그것’의 정체에 대해서는 함구무언한다. 스티븐 킹은 문자의 상태이기는 하지만 ‘희망’(hope)을 제시한다. 프랭크 다라본트는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아들로 이루어진 ‘유사 대가족’의 몰살로 끝을 낸다. 그런 다음 갑자기 군대가 나타나 데이빗이 살아났음을 알린다. 이것이 절망인지, 아니면 새 출발의 암시인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그러나 아홉살인 아들 빌리를 아버지의 손으로 죽이는 것은 어떻게 읽어도 음울하다. 하지만 프랭크 다라본트는 자신만이 이 책의 유일한 독자임을 주장하면서, 이 마지막 장면은 오로지 스티븐 킹 책의 독서 끝에 “그 다음은?”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말한다. 증후적 독해? 차라리 신경증적 독서라면 어떨까? 좀더 밀고 나아가서 1980년에 쓴 소설을 2007년에 영화로 옮길 때 각자의 배경이 된 각자의 시대의 대중을 통과하기 위해서 엔딩을 바꾸어야 했는가? 레이건 시대로부터 부시의 시대에로. 그런데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차이? 아니면 원래 스티븐 킹의 소설이 이러하게 끝이 나야 했던 것을 오로지 원작에 의지해서 ‘올바르게’ 수정한 것인가? 그러나 이 문제에 매달릴 때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놓친다. 안개가 흐려놓은 것은 진짜 무엇인가? 첫 번째 판본의 변형. 그러므로 만일 <미스트>를 스탠리 큐브릭이 찍었다면?(<샤이닝>) 브라이언 드 팔마가 찍었다면?(<캐리>)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찍었다면?(<데드 존>) 존 카펜터가 찍었다면?(<크리스틴>) 로브 라이너가 찍었다면?(<미저리>) 조지 로메로가 찍었다면?(<크립쇼>) 브라이언 싱어가 찍었다면?(<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괄호의 자리에 호명된 영화 대신 <미스트>가 각자의 그 영화를 만들었을 때 있었다면? 2. 히치콕의 <새> 버전으로 읽기 두 번째 판본. 주유소 근처에 자리잡은 슈퍼마켓에 갇힌 다음 ‘그것’이 찾아든다. 이 상황은 거의 즉각적으로 히치콕의 <새>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멜라니는 슈퍼마켓에 갇히고, 그런 다음 주유소가 폭발하자 새가 날아들기 시작한다. 물론 히치콕의 <새>는 슈퍼마켓에서 내내 진행되지는 않지만 미치의 집에 갇혀서 새들의 마지막 공격을 받는다. 그런 다음 미치와 멜라니,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은 차를 타고 해변가 마을을 빠져나간다. 희망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구름 너머의 햇빛은 여기를 벗어나면 탈출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이 마지막 장면은 프랭크 다라본트보다는 스티븐 킹의 버전에 가깝다(당연히 스티븐 킹은 <새>를 보았을 것이다). 여기서 <미스트>를 <새>와 비교하는 대신 <새>의 버전으로 다룬다면 어떻게 될까? 말하자면 <새>를 ‘새 없는’ 이야기로 읽을 때 미치가 어머니와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서 멜라니와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이야기로 다시 쓸 수 있는 것처럼, 만일 <미스트>에서 ‘그것’들은 단지 맥거핀에 지나지 않으며 사실상 데이빗을 중심으로 가족관계를 다시 세우는 이야기로 읽게 된다면 우리는 시작하자마자 잠시 등장한 다음 영화가 거의 끝날 때 거미줄에 묶인 아내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라는 난처한 질문과 만나게 된다. <미스트>는 데이빗의 가족을 두번 부수는데 한번은 데이빗의 실제 가족이고, 다음 한번은 데이빗의 유사가족이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곤충들의 개입이다. 데이빗이 그의 곁에 다가온 금발의 매력적인 여자 아만다와 서로 결정적으로 이끌리는 순간 슈퍼마켓에 날아온 ‘그것’은 거대해진 불나방들이다. 그 둘 사이에 감정적인 교류가 일어나는 순간 마치 그 불길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곤충들이 날아들고 슈퍼마켓 안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린다. 그건 마치 아만다에 대한 데이빗의 어떤 감정적 물(物)의 즉각적인 현신처럼 보일 정도다. 그런 다음 데이빗을 괴롭히는 문제는 당연히 가족이라는 끈이다. 그때 데이빗을 성가시게 만드는 ‘그것’은 거미들이다. 끊임없이 거미줄을 뽑아내고 데이빗을 붙잡으려 든다. 그리고 마침내 집에 돌아갔을 때 그의 앞에서 기다리는 것은 거미줄에 칭칭 묶인 그의 아내의 시체다. 그런 다음 데이빗은 새로운 가족을 꾸밀 수 있을까? 그러나 데이빗은 더 나쁜 선택 앞에 직면하게 된다. 안개는 그의 눈앞에서 끝나지 않고, 이 오리무중 속에서 결국 아들과 아만다와 (할머니)이렌느와 (할아버지)밀러를 이번에는 자기 손으로 몰살한다. 그리고 혼자서 ‘그것’의 희생양이 되기를 기다린다. 말하자면 <미스트>에는 가족의 몰락이라는 테마가 있다. 이때 질문은 단순하다. 이 욕망의 대가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 공허한 저항의 몸짓 속에서 절망적인 엔딩이 사실상 가족으로부터 데이빗을 완전하게 탈출시키는 알리바이라면 문득 <미스트>의 첫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 포스터를 그리는 데이빗이 지금 거의 완성을 눈앞에 둔 그림은 외로운 총잡이 롤랜드다(IMDb.com ‘잡동사니’ 정보에 의하면 스티븐 킹의 <다크 타워>라고 한다. 그리고 그 옆에는 존 카펜터의 <안개>(The Fog)가 있단다).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고, 갑자기 닥친 폭우가 그 그림을 완전히 망쳐놓는다. 만일 그 그림이 데이빗의 욕망의 지식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그림이 데이빗의 현실 속의 행동으로만 완성될 수 있는 밑그림이라면? 그때 아만다는 팜므파탈이라기보다는 데이빗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죄의 전이를 대신 떠안는 희생양이 된다. 하지만 그때 데이빗은 아들 빌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3. 좀비영화로 읽기 세 번째 판본. <미스트>는 괴물영화인가, 좀비영화인가? ‘그것’의 형상은 괴물이지만 행동은 좀비처럼 보인다. 그때 <미스트>는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거의 리메이크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마을을 점령하고, 그런 다음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오늘은 할로윈 데이도 아니고, 13일의 금요일도 아니다. 그냥 오늘 안개가 마을을 채우고, 그런 다음 안개 저편에서 ‘그것’들이 공격을 해온다. 내 관심은 이들이 공격한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 때맞춰 공격하느냐는 것이다. 때를 안다는 것. 좀비들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아무 계획이 없으며, 전술도 없다. 사실상 좀비는 허깨비들이다. 그런데 항상 슈퍼마켓 안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들이 습격해야 할 때를 우리에게 일러준다. 그런 다음 우리를 경유하여 ‘그것’들은 슈퍼마켓을 습격한다. 이때 나는 이 말을 약간 수정하고 싶어진다. 안개 저편에서 ‘그것’이 습격해온다기보다는 안개가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상 <미스트>를 읽을 때 대부분 기대고 있는 것은 이 판본이다. 이때 안개가 만들어내고 있는 ‘그것’은 슈퍼마켓을 공격해오는 문어처럼 여러 개의 발을 가진 촉수달린 괴물, 날개달린 곤충, 거미들, 티라노사우루스처럼 보이는 거대한 괴물이 아니라 슈퍼마켓 안에서 미쳐가는 사람들의 심리적 공황상태다. 프랭크 다라본트는 슈퍼마켓 안으로 몰아넣은 다음 계속해서 사람들을 자극한다. 물도 충분하고, 먹을 것도 있고, 여러 가지 생필품이 있으며, 공간도 충분히 확보되어 있다. 여기서 바깥이 잘 보이는 슈퍼마켓의 커다란 통유리 창만이 여기와 저기를 나누고 있다. 안개로 가득 차서 차라리 벽처럼 보이는 저기. 나가면 몸이 순식간에 두 동강난 채 돌아와야 하는 안개 속. 매번 다른 ‘그것’들. 이 순간 영화적 게임은 단순하다. 슈퍼마켓 안의 사람들의 드라마가 진행되고 거의 통제 불능까지 밀어붙인 다음 마치 이 내부의 드라마의 진행을 잘 아는 것처럼 한껏 미루었다가 때로는 조금 일찍 때로는 조금 늦게 안개 저편으로부터 대답이 온다. 물론 그 대답은 무자비한 공격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실 안개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부등가교환의 대칭이다. 관객은 바깥에 있는 ‘그것’보다 안에서 (전반부) 설명에 귀기울이지 않는 뉴욕에서 온 흑인변호사 브렌트와 (후반부) 종교적 선동을 하고 있는 카모디 부인을 훨씬 미워하면서 이 영화의 악당의 자리에 배치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이 상황에서 카모디 부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것’을 카모디 부인이 불러들인 것이 아니며, 카모디 부인이 없다고 해서 이들이 안전한 것도 아니다(혹은 그럴 능력도 없다). 이때 <미스트>는 도착적 경제의 방식으로 희생의 대상을 호명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브렌트와 카모디 부인은 자기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대답한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쓴 것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그것이 우리에게 악의적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벌이는 나쁜 행동. 그러나 그 행동이 임무에서 나온 것이며, 그 임무가 법과 종교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때 법과 종교를 동시에 부정한 다음 데이빗과 그의 일행은 무엇을 얻었는가? 아무것도! 그들은 그 다음에 안개 속의 무아지경을 헤맨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다. 그러므로 사실상 <미스트>는 역설적으로 차라리 안개 이쪽 편에 법과 종교의 테두리 안에 있는 쪽과 그 둘을 부정한 다음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속으로 가는 것,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내기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내기가 끝나면 더 나쁜 다음 내기가 기다리고 있다. 이것을 음산한 파시즘의 도래로 읽을 것인지, 아니면 상징적 방어선을 포기했을 때 마주치는 참을 수 없는 현실을 보는 편이 나은지를 선택하라는 내기로 볼 것인지는 당신의 판단이다. 4. 생태파괴가 부른 재난영화로 읽기 네 번째 판본. 이것은 약간 고지식하다. 그냥 제목 <미스트>를 믿는 (척하는)것이다. 말하자면 을 보면서 얻은 교훈을 적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음모론의 신도들은 이야기에 관점의 이동을 통해 일종의 왜상으로 보는 대신 그 자체를 믿음으로써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다음 약간의 재치를 부린다. 자, 스티븐 킹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모두 믿습니다. 다만 안개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나에게 설득시킨다면. 믿는 방법은 간단하다. 여기에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복잡한 음모론과 과학에 대한 비관적 정보들과 저 너머에 총체적인 그 어떤 계획이 있다는 신념이 뒤죽박죽이 된 삼위일체를 세우면 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안개를 믿을 만한 그 무엇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판본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다른 것을 제쳐두고 “안개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매달린다(그렇게 함으로써 안개를 맥거핀으로 생각하는 입장과 불화에 빠져든다). 물론 음모론은 현대판 사이비 알레고리이다. 그러나 이 의심이 어떤 위로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미스트’라는 기표의 형식적인 기의는 ‘안개’지만 실제적인 기의가 ‘사실은’ (사실은?) ‘알고 보니’ (정말?) ‘공해’였다, 라는 환경주의적인 생태학적 의심으로 바꿔치면 갑자기 모든 플롯의 황당무계함이 어떤 상징성의 인과관계를 획득하고 (사이비) 과학적으로 설명되기 시작한다. 여기에 나타난 모든 ‘그것’들은 환경파괴의 희생으로 인한 생물학적 기형의 결과이며, 인간들은 자신이 파괴한 환경의 피해자가 되었으며, 자신의 결과 앞에서 이성과 종교는 무기력하며, 후회는 때가 늦었다. 하지만 … 등등. 이때 <미스트>는 괴물영화나 좀비영화가 아니라 재난영화라는 장르로 재빨리 옮겨간다. 흥미로운 것은 <미스트>가 재난영화가 되었을 때 일차적인 희생자들은 슈퍼마켓 이쪽이 아니라 유리창 저쪽의 ‘그것’들이며, 이쪽의 사람들은 이차적인 희생자들이자 간접적인 가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은 완전히 반대의 방식으로 읽힐 수도 있다. 자, 무엇이 ‘그것’을 저렇게 만들었는가? 그 원인의 고갈이 이루어지자,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자동차는 기름이 떨어져서 멈춘다. 그런 다음 그들은 집단적으로 자살한다. 그때 자살의 행위가 희생자로부터 사실은 자신들이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결정한 선택이라면? 말하자면 멈춘 자동차로부터 전달받은 메시지를 이해한 것이라면? 만일 이 자살이 공해를 만들고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인간들의 잘못을 대표해서 행동하는 죄의식의 표현으로 읽으려고 시도한다면? 그때 데이빗만이 살아남은 결과가 ‘안개’의 진정한 메시지라면? 당신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이때 당신의 자리에 인간이라고 말을 바꾸면 좀더 근사해진다). 그러므로 공존을 모색하라! 하지만 어떻게? X파일에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한 가지씩 있다. 좋은 소식은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그 비밀의 진실이 저 너머에 있다는 것이다. 5. 포스트 9·11로 읽기 다섯 번째 판본은 이것을 반대로 뒤집은 것이다. 이건 좀 웃겨 보이는데 슈퍼마켓을 미국이라고 환유의 자리에 가져다놓는 것이다. 이를테면 1963년에 만들어진 <새>에서 ‘새들’의 공격을 쿠바의 미국 침공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읽는 글이 만연한 적이 있다(그리고 이러한 시사적 읽기를 정치적 읽기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같은 방식으로 ‘안개’를 포스트 9·11로 쳐다보는 것이다. 요즘은 문화 담론에서 이라크가 인기다(그러나 이 논의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스티븐 킹이 1980년에 이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잠시 눈 감아야 한다). 사실 슈퍼마켓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근사한 비유다. 슈퍼마켓 안에는 마치 중계방송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 다른 계층, 인종, 남자와 여자, 직업, 나이, 그리고 종교까지 골고루 배치해놓았다. 그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린 다음 자기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진행을 위해서 슈퍼마켓 주변을 안개로 둘러싼 다음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위협 아래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매번 새로운 ‘그것’이 공격을 해온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다문화주의에 대한 적대적인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정말 목표로 하는 것은 다문화주의인가? 만일 그것을 핑계로 내세워서 법적인 형식의 절차(브렌트)와 종교적인 믿음의 담론(카모디 부인)을 고의적으로 과장하여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다음 그것을 포기하도록 유혹하기 위해서 던져진 미끼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프랭크 다라본트는 우리를 혼란에 빠트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것’들이 공격해왔을 때 문득 카모디 부인에게 달라붙은 곤충이 유심히 만져보더니 마치 그녀를 알아본 것처럼 그냥 무사히 내버려두고 떠나는 장면을 추가했다. 이것이 우연인지 응답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프랭크 다라본트는 의도적으로 그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그런 예외적인 순간을 포함한 ‘그것’(들)의 공격 방식은 예고없는 테러처럼 보이며, 슈퍼마켓 안의 토론은 번번이 중단된다. 말하자면 슈퍼마켓 안의 민주주주의적 절차를 방해하는 것은 안개 너머의 ‘그것’이다. 마치 세계화에 대한 그 어떤 민주주의적 절차를 포기하도록 적절한 타이밍에 테러가 이루어지는 것처럼(그래서 9·11 테러는 빈 라덴이 부시와 짜고 벌이는 사기극이라는 설은 꽤 구체적으로 많은 글에서 제시되고 있다) ‘그것’들은 때를 맞춰 공격해온다. 이때 이 판본에서는 안개보다 유리창이 놀랄 만큼 구체적인 비유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미국은 자신들이 세계화에 무척 열린 입장을 갖고 있다고 몇번이고 반복해서 주장해왔다. 슈퍼마켓의 유리창은 공격을 당하는 이쪽을 투명하게 모두 보이게 전시하고 있다. 반면 유리창 저쪽은 안개에 가려서 무언가 기분 나쁘고 섬뜩한 비밀을 지닌 채 음험하게 이쪽을 감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여기에 ‘그것’과 공존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슈퍼마켓 안에 대해 이유를 알 수 없는 적대감을 지니고 있으며, 안개는 저쪽의 ‘아마도’ 폐허가 되어버렸을 황폐한 풍경을 감추고 있다. 마치 이라크의 진실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북한의 진실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이 판본은 여기서부터 정말 재미있어진다. 왜냐하면 이 논의를 계속하기 위해 이제부터는 영화가 논쟁적 불화를 제기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판본은 슬라보예 지젝이 나보다 백배는 잘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이후’는 지젝에게 맡겨두기로 하자. 6. 텔레비전의 문법으로 읽기 여섯 번째 판본은 <미스트>가 보여주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첫 장면에서 폭우가 내린 다음날 아침 집을 떠나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슈퍼마켓에 들어간 다음 갑자기 이상한 줌이 나온다. 꼭 그것을 드러내놓고 찍은 것은 아닌데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갑자기 망원렌즈로 잡은 다음 마치 인물을 놓치기라도 할 것처럼 잡아당긴다. 전체를 그렇게 찍은 것도 아닌데 종종 ‘느닷없이’ 그렇게 찍었다. 처음에는 <미스트>가 저예산영화이기 때문에 규모를 숨기기 위해서 그렇게 연출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가 절반이 지나도록 슈퍼마켓 안에서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이 공간을 일종의 스튜디오처럼 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공간 안에 들어온 모든 인물들이 어차피 엑스트라이기 때문에 통제할 필요가 없는데도 구태여 그렇게 찍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깥은 온통 안개뿐이기 때문에 <미스트>는 바깥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게다가 이야기는 바깥에 나가면 위험하다, 는 전제를 놓고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연출자 입장에서는 반대로 바깥을 무시해도 된다. 도대체 이 줌은 무엇일까? 그건 줌으로 ‘무엇’처럼 보이고 싶기 때문에 동원된 것이다. 말하자면 이야기의 효율성 때문이 아니라 ‘어떤’ 스타일의 유사 효과 때문이다. 좀더 이상한 것은 테크니컬러로 찍었는데도 매우 흐릿하게 현상했다는 것이다. 바깥은 안개 속이고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것이 투명한 유리창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낮의 채광상태가 가장 나쁜 상태에서 진행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찍었다. 그런 다음 공간의 폐쇄성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닌데도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은 장면을 클로즈업으로 찍었다. 그건 표정을 잘 보기 위한 것도 아니고 미학적인 선택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전체 공간의 마스터 숏도 없고 공간 설정은 유리창을 기준으로 잡고 세로로 진행된다. 그래서 인물들의 동선은 앞과 뒤로만 움직이고, 종종 그게 뒤엉켜서 이 인물이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그래봐야’ 슈퍼마켓 안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공항 터미널이지만 훨씬 큰 공간의 이동선을 정확하게 시각적으로 연결하는 스필버그의 <터미널>과 비교해보라). 말하자면 <미스트>는 이상할 정도로 단조롭게 찍힌 영화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문득문득 끼어드는 페이드다. 그게 필요한 것도 아닐뿐더러(여기서 일주일씩 머무는 것도 아닌데 시간의 경과를 왜 설명해야 하는가) 종종 이런 영화에서는 가까스로 만든 긴장을 중단시키기 때문에 교과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편을 권장한다. 그렇다고 페이드를 이용해서 트릭을 쓰거나 그 사이에 어떤 감정적인 변화의 추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마치 그것이 어떤 리듬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개입한다. 그냥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하더라도 프랭크 다라본트의 <쇼생크 탈출>이나 <그린 마일>에 비해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단조롭게 만들어졌다. 왜 그렇게 찍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미스트>는 텔레비전처럼 찍은 영화이다. 아니, 차라리 영화관보다 텔레비전으로 보는 게 더 잘 어울리는 영화다. 혹은 텔레비전을 보는 방식으로 보아야 하는 영화다. 나는 셋 중 어느 쪽이 가장 좋은 답변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미스트>가 영화와 텔레비전 사이를 흐릿하게 만들 목표를 가진 것은 분명하다. 프랭크 다라본트 자신도 이런 목표에 충실하기 위해서 이전 영화들과 완전히 다른 스탭을 구성했다. 프로덕션디자인을 한 그레고리 멀튼, 촬영을 한 론 시미트, 편집을 한 헌터 M. 바이어는 프랭크 다라본트가 <마제스틱>을 찍은 다음 텔레비전 시리즈 <레인>과 <쉴드: XX 강력반> 에피소드를 작업할 때 함께 일한 스탭들이다. 할리우드에는 오늘날 자신이 텔레비전 드라마인 줄 아는 많은 영화들이 있다. <러브 액츄얼리>(2003)는 그중에서 가장 성공한 예일 것이다. <클로버필드>는 자기가 유튜브인 줄 아는 영화다. 점점 더 영화의 존재론은 외양과의 틈새 사이에서 위협받고 있으며, 그것이 위험인지 혹은 진화인지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힘들다. 그러나 자꾸만 영화는 이 외양의 하위 분할 속에서 새로운 정보의 모델들과 뒤섞이고 있다. <미스트>는 새로운 영화는 아니지만 (이동진의 관용구 ‘재미있는 척’을 다소 변주하여) 새로운 척하는 영화이기는 하다. 7. 안개를 가스로 놓고 홀로코스트의 느슨한 비유로 읽기 일곱 번째 판본만 나에게 중요하다. 그리고 이 때문에 <미스트>를 미루어두었다. 이제 이 영화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보았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스포일러에 대한 두려움없이 비로소 이 판본을 이야기할 생각이다. 나는 스포일러 때문에 이 질문을 하지 않으면 <미스트>에서 안개의 카니발리즘(의 스펙터클)을 본 것 이외에는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매정한’ 취향이다. 내가 <미스트>에서 가장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마지막의 마지막 장면이다. 마지막은 데이빗이 그의 아들 빌리와 아만다, 이렌느 할머니, 밀러 할아버지를 ‘안락사’시킨 다음 죽음을 기다리며 괴물을 기다리는데 안개 너머로 탱크가 나타나서 구조되었음을 알린다. 이 장면 자체는 별로 놀랍지 않다. 슈퍼마켓을 떠난 다음 안개 속을 달리는 자동차를 방향을 맞추지 않고 세번에 걸쳐 반복 편집했을 때 이 엔딩은 예고된 것이다. 이 편집은 사실 계속 그 자리에 있다는 뜻이며, 그런 다음 ‘그것’들이 저 멀리 떠나가는 모습을 롱숏으로 볼 때 그 빈자리를 무엇이 대신 채울 것이라는 질문이 자동적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데이빗은 이 영화의 편집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다음 장면에서 데이빗 앞을 트럭이 지나간다. 그 트럭에서 머리 짧은 한 여자가 두 아이를 안고 가면서 데이빗을 냉랭하게 쳐다본다. 그녀는 거의 영화 초반부에 슈퍼마켓을 가장 먼저 떠난 두 아이의 엄마다. 두 아이가 집에서 자기를 기다린다고 하면서, 큰애가 산만해서 둘째를 돌보지 못할 거라고 하면서, 브렌트에게 도움의 시선을 던지고, 카모디 부인에게 동의를 구하고, 군인들에게 동정을 구하는 제스처를 취한 다음, 아들 빌리를 껴안고 쭈그리고 앉은 데이빗에게 마지막 간청을 한다. 데이빗은 이 모두를 대표하는 것처럼 차마 말을 꺼내길 주저하면서 “보시다시피 저도 지금 아이 때문에”라고 그 눈길을 피한다. 그러자 이 젊은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참으로 모두들 매정하군요”라는 한마디 말을 남긴 다음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는 금방 이 젊은 엄마를 잊었고, 대부분 아마도 그녀가 희생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의 마지막은 그녀가 생존했음을 알린다. 내 질문은 그녀가 어떻게 살았을까, 가 아니라 그녀의 생존이 무엇을 증언하느냐는 것이다. 그녀가 없는 것과 있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말하자면 <미스트>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영화인가? 만일 그녀가 없었다면 <미스트>는 안개가 드리워진 ‘이전’과 걷힌 ‘이후’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생존이 확인되는 순간 갑자기 ‘이전’과 ‘이후’가 하나로 묶인다. 여기에는 체험의 공유라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둘은 공포를 공유할 것인가, 생존을 공유할 것인가? 그녀는 책임을 물을 것인가, 증오를 상대화할 것인가? 그녀가 거기 살아 있을 때 데이빗은 죽은 아들을 위해서 어떤 변명을 할 수 있는가? 여기서 <미스트>를 정말 감당할 수 없게 밀고 가는 것은 슈퍼마켓을 포로수용소로 설정한 다음 안개를 가스로 놓고 홀로코스트의 느슨한 비유로 읽는 것이다. 나는 젊은 엄마의 짧은 세버그 헤어스타일을 보면서 할리우드영화들이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여자들을 다룰 때 항상 관습적으로 보여주는 동일한 머리 모양이 떠올랐다. 물론 <미스트>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질문을 밀고 갈 생각도 없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이후’ 생존의 윤리와 기억의 증언이라는 질문이 반복되고 있다. 만일 <미스트>가 우리에게 단 한 가지만이라도 진지하게 질문을 제기했다면 나는 이 마지막 숏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것이 예술적이건 아니면 상업적이건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 살인을 막을 수 없다면 우리가 방어해야 할 숏은 무엇인가? (첫 번째 유격훈련 끝)

[현지보고] 300년 동안 잠자고 있던 스페인 보물을 찾아라!

1715년. 스페인 여왕의 어마어마한 지참금을 실은 채 허리케인을 맞아 카리브해 바닥으로 사라져버린 아우렐리아호. 이후 잠자고 있는 보물은 예술작품과 당시 문서들을 통해서 희미하게 그 그림자만 드리운 채 전설이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핀과 테스에게는 처음 둘을 맺어줄 만큼 특별한 꿈이었다. 8년 뒤, 여전히 그 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현실에서는 무책임한 남편이 되어버린 핀과 현실에 지친 테스. 결국 테스는 핀이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은 이혼 법정에서 도장을 찍어버린다. 그리고 그런 그녀 앞에 핀과 함께 나타난 것은 300년 동안 잠자고 있던 보물로 그들을 인도할지도 모르는 부서진 그릇 조각. 애써 부정하려 하지만 그 조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테스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으로 성공적인 호흡을 맞춘 적이 있는 매튜 매커너헤이와 케이트 허드슨이 서로 옥신각신 싸워가면서 보물을 찾아나선 핀과 테스로, 이들 부부의 모험에 본의 아니게 동참하게 되는 억만장자 나이젤 역으로는 할리우드의 관록있는 배우 도널드 서덜런드가, 나이젤의 철없는 어린 딸로는 짐 자무시 감독의 <브로큰 플라워>에서 강한 이미지를 남겼던 알렉시스 지에나가, <베오울프>로 존재감을 한껏 높인 레이 윈스턴이 이제 300년 전에 사라진 스페인 왕실의 보물탐험에 뛰어들었다. 핀의 배가 폭발하는 장면을 다소 느긋한 호흡으로 보여주면서 시작되는 <사랑보다 황금>은 박진감 넘치는 액션으로 매 순간 가슴을 죄는 어드벤처영화라기보다는 카리브해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코미디에 가깝다. 각각의 인물들은 전설의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을 통해 자신들을 둘러싼 관계, 소원하지만 내색할 수 없는 나이 많은 아버지와 어린 딸이라든가, 너무나 사랑하지만 같이 있다보면 서로 돌아버릴 것 같은 남편과 아내인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이 보물의 위치를 알아내는 결정적인 순간이 300년 전 스페인 왕실의 가족사의 비밀, 보물처럼 역사 속에 묻혀버린 가족애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때라는 점에서 이 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분명해진다. 카리브해의 황금빛 태양과 맑고 푸른 바다가 배경인 <사랑보다 황금>은 허리케인 때문에 카리브해 대신 호주에서 9개월에 걸쳐 대부분 촬영되었는데, 수중 폭파장면은 촬영에 필요한 물탱크의 규모가 너무 커서 따로 제작하느라 애먹었다고 한다. 겉으로는 너무나 아름답고 평온해 보이는 바다. 그러나 그 수면 아래 있는 ‘이루칸지’라 불리는 독해파리 때문에 촬영 막바지에 제작진은 철수를 결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사랑보다 황금>은 결국 카리브해로 돌아가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랑보다 황금>의 라운드 테이블은 샌타모니카의 호텔 카사 델 마에서 이루어졌다. <스위트 앨라바마>와 의 박스오피스 성공으로 수많은 프로젝트 제의를 받아왔다는 앤디 테넌트 감독을 시작으로 도널드 서덜런드, 매튜 매커너헤이와 케이트 허드슨과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앤디 테넌트 감독 인터뷰 "코미디에서 중요한 것은 웃음의 호흡이다" -처음부터 매튜 매커너헤이와 케이트 허드슨을 염두에 두었나. =원래 리즈 위더스푼을 생각했었다. 아무래도 리즈와는 오랜 친구이다보니까. 알다시피 이런 장르는 상대 남자배우 캐스팅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매튜가 물망에 오르게 되자, 그럼 리즈 대신 케이트가 어떨까 싶었다. 리즈는 호주에 가서 촬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일단 케이트는 재미있고 매력적이고, 육체적으로 힘든 연기도 마다하지 않는데다가 이 둘은 전작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적도 있는 등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알다시피 코미디 연기에서 중요한 것은 웃음의 호흡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케이트는 영리한 배우다. 재미있으면서도 순간순간 또 다른 깊이를 더해낼 줄 안다. 이를테면 영화에서 케이트와 도널드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의 경우, 참 아름다운 순간이지 않나. -그 커플이 특별한 점이 있다면. =둘은 티격대는 남매 같다. 서로 다르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이다. 이를테면 핀이 보물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테스의 지도가, 정확히는 지도를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서로 상대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기에 둘은 동시에 어떻게 하면 상대의 뚜껑이 열리는지도 안다. 사실 이들 둘은 보물 자체에 매료되었다기보다는 역사를 사랑하는 커플이다. 미스터리에 끌리는 두 사람은 서로 싸우지만, 결국 함께할 수밖에 없다. 열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니까. -이번 작품이 이전 작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간 로맨틱코미디를 연속으로 만들면서 이번에는 좀더 큰 규모의 작품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로맨싱 스톤>이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와 같은 어드벤처코미디나 코미디스릴러에서처럼 두 장르를 혼합한 작품들 말이다. 한동안 이런 장르의 영화가 나오지 않기도 했고. 그다지 심각하지 않으면서, 말 그대로 재미있는 영화라고나 할까. 그 두 요소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작품. 이를테면 <러시아워>는 액션코미디이지만 기본적으로 액션영화이기 때문에 10분마다 액션신이 들어간다. 반면, 나는 실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어쩌다보니 모험에 뛰어들게 되는 사람들 이야기 말이다. 주위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캐릭터들이 운전할 줄 모르는 비행기에서 떨어져 내려야만 한다라든지. 그러니까 클라이맥스에서 캐릭터가… 대체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지라고 되묻게 되는 그런 상황. 그게 재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보물 사냥꾼은 깨닫는 것이다. 보물을 찾아 여기까지 왔지만, 사실 내 보물은 내 옆에 있는 아내구나. 뭐 이런 깨달음이랄까. 나이젤 역의 도널드 서덜런드 인터뷰 "멋있다고? 옷을 벗으면 전혀!" -프로덕션 노트에 보면, 캐스팅 당시 제작진에게 이번 캐릭터에 대한 장문의 글을 써서 보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내용이었나. =그 내용은… (무척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꼭 이번 작품이 아니라 에이전트가 내게 시나리오를 읽으라고 보내오면, 나는 에이전트에게 언제나 이 캐릭터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고, 어떤 점이 내키지 않는지에 대한 글을 쓰는 버릇이 있다. 그래야 에이전트도 내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에이전트 보라고 쓴) 그 편지가 제작진에게도 들어간 모양이군. 원래 글쓰는 것을 좋아해서 쓸데없이 긴 글을 쓰는 경향이 있다. -나이젤이라는 캐릭터는 어떤 면에서 끌렸나. =그를 둘러싼 여성들과의 관계, 나아가 가족과의 관계에는 딱 집어낼 수는 없지만 마음에 다가오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리고 판타지라는 것… 판타지 그 자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이제까지 겪어왔던 사람들 가운데 그 정도 재력이 있는 사람들 중 300년 전 가라앉은 보물을 찾아나서겠다라는 판타지를 꿈꿀 수 있는 사람이 있었나 싶었다. 오래전 바다에 가라앉은 보물을 찾으러 나서는 것을 통해 어쩌면 소원해진 딸과의 관계를 되돌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꿈을 꿀 수 있는 사람. 멋있지 않나. 오래전에 <조애나>라는 작품에서 내가 맡았던 영국인을 연상케 하는 면도 있어서 개인적으로 울림이 있는 캐릭터다. -매튜 매커너헤이와 케이트 허드슨과의 연기는 어땠나. =매튜와는 이전에도 한번 연기한 적이 있고, 케이트는… 케이트 엄마랑 잘 알아왔으니까. 둘 다 좋은 아이들이다. -오랫동안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이전과 오늘날의 영화에서 달라진 점을 느낀다면. =요즘 감독들은 기껏해야 14인치 모니터 화면만을 들여다보며 컷을 외치는 것 같다. 예전 감독들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바로 그 공간에, 그 순간에 함께 있었다. 그러나 가장 피부로 느끼는 차이는 관객이다. 60∼70년대 관객을 생각해보라. 세계대전이 끝나고, 존 F. 케네디가 암살되고, 로버트 케네디가, 마틴 루터 킹이 총탄에 쓰러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더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텔레비전이 지금과 같은 파워를 가지지 않았을 때, 관객은 영화관에 가서 영화 속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그때의 영화는 지금과는 다른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관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72살인데도 여전히 멋있어 보인다. =옷을 벗으면… 전혀 그렇지 않다. (웃음) 적어도 140살까지는 계속 연기할 테니까 반 정도 온 셈인가? 연기란 내 인생의 즐거움이니까. 주연 맡은 케이트 허드슨과 매튜 매커너헤이 인터뷰 "롤러코스터 속에서의 순간을 즐기려 한다" -할리우드의 아이콘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가. =케이트 허드슨: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된 나라는 이미지가 있다. 만들어진 이미지이다. 거기에 얽매이기 시작하다보면 버텨낼 수가 없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빌리 허드슨, 골디 혼)이나 그들의 친구들을 보면서 그 이미지가 얼마나 무상한지 늘 지켜보며 자랐다. 결국 나를 단단하게 붙들어주는 것은 가족과 친구들이다. 이 산업은 언제나 끊임없이 움직인다. 롤러코스터처럼. 어느 날은 하늘로 비상하다가도 다음날은 끊임없는 나락으로 떨어져버린다. 그냥 내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관점을 늘 유지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동시에 롤러코스터 속에서의 순간을 즐기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파파라치가 따라다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매튜 매커너헤이: 공공장소에서는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나 내 집까지 침범하는 것에 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그러면 그들도 다 알아듣는다. 나는 레스토랑 같은 곳에 나타나서 보란 듯이 데이트하며 포즈를 잡는다거나 그러는 타입은 아니니까. (그 말에 케이트 허드슨이 “정말?”이라며 웃는다.) -영화에서 둘 다 노출이 많은 옷차람인데, 부담스럽지 않았나. =케이트 허드슨: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나만 그렇게 여기는지 몰라도, 어떤 날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 오늘은 정말 몸상태가 별로인데 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남자들이야 그냥 훌렁 벗어버리면 될지 몰라도 여자들은 다르니까. 필라테스를 계속했다. =매튜 매커너헤이: 전혀. 메이크업이나 의상 때문에 차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싫어해서 영화 내내 간편한 옷차림인 게 좋았다.

여자라서 더 절절해요

연기파 선수들이 ‘헛둘헛둘’ 뛰는 주말연속극의 새로운 만찬이 몇 숟가락 뜨지도 않았는데 제법 배부르다. 오래 입은 속옷 고무줄 같은 진도에 등장인물도 버글버글한 연속극의 마라톤 레이스는 ‘닥본사’의 충성심을 계속 발동하지 않아도 괜찮은, 후덕한 군살을 자랑한다는 게 특징. 그런데 지난 2월2일 나란히 출발한 KBS2 <엄마가 뿔났다>와 MBC <천하일색 박정금>은 시작부터 자장면과 짬뽕처럼 선택의 갈등을 자아내더니 본방과 재방으로 두루두루 맛보고 싶은 매력마저 드러내고 있다. <엄마가 뿔났다>는 김수현 작가표 가족드라마의 정체성을 표출하는 데 한줌의 주저도 보이지 않는다. 목욕탕집에서 세탁소집으로 업종 변경한 대가족이 하루 쌀소비량이 궁금할 만큼 아침부터 꼬박꼬박 따뜻한 밥과 국을 챙겨먹으며 크고 작은 갈등과 권태가 산재한 일상을 복각해내고 있다. 김수현 작가의 똑똑이 어법 페르소나 가운데 한명인 배종옥이 얄궂게도 ‘박정금’으로 출동한 <천하일색 박정금> 역시 아줌마 여형사의 각 잡지 않은 활극 등 짬짬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면서도 가족의 이름으로 얽힌 징글징글한 인간사를 다루는 주말극의 본분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점잖게 방관자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남성들에 비해 김혜자, 배종옥 등 여성들이 분노, 한숨, 독기, 연민, 파이팅 등으로 부지런하게 인생의 고락을 타고 있는 대목은 흥미롭다. 또 그들은 그 진부한 감정의 군더더기로 가슴을 때리고 있다. 제 이름보다 ‘엄마’나 ‘에미야’라는 호칭이 익숙한 60대부터 엄마이면서 여성인 30대까지 여물디 여문 완숙한 암컷들은 인생이 그냥 머물거나 대충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지 못하고 있다. 웬만한 경제력의 배필과 결혼해 잘살았으면 좋겠다는 평범한 희망마저 차례차례 배반하는 자식들 때문에 기막히고 황당한 <엄마가 뿔났다>의 엄마 김혜자는 ‘누군들 제 인생이 맘에 들까’와 같은 긍정과 포기의 넋두리, 걸레 휙 집어던지기와 같은 ‘뿔내기’로 텔레비전 앞 엄마들의 육성을 예리하게 떠내고 있다. <천하일색 박정금>에는 조금 더 카랑카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후련한 공명을 낸다. 첫아들은 실종됐고, 범인 검거 실적도 좋지 않은 이혼한 여형사 배종옥은 신파의 눈물에 익사할 상황에서도 꼿꼿하고 씩씩하게 건강한 생활력을 파닥거린다. 비운의 조강지처이자 박정금의 모친인 나문희는 걸핏하면 동거인 박준규와 툭탁거리며 도도한 이기주의를 버리지 않고 있다. 조강지처의 안방을 차지한 ‘청주댁’ 이혜숙의 등등한 독기, 늘 화가 난 얼굴로 휘청거리는 ‘사공유라’ 한고은의 막돼먹은 방어벽 등도 행복한 생존의 욕구가 번득여 미움과 연민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다. 인생의 후반부를 관통 중인 이들은 답답한 인내나 대책없는 폭발만으로 아물 수 없는 과거의 상처와 예기치 않는 현재의 지뢰를 마주보지 않는다. 중얼거리거나 이글거리는 등 목소리의 볼륨은 다르지만 저마다 부릅뜨고 부딪친 뒤 포기하는 정면돌파로 자잘한 인생의 파도를 넘고 있다. <엄마가 뿔났다>와 <천하일색 박정금>은 주름살과 비례해 절절해지는 엄마의, 여자의 뜨거운 가슴을 경쟁적으로 내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