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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현지보고] “위대한 두 배우와 일하는 것은 축복이었다”

인생에 진척이 없다라고 느낀 30대 초반의 시나리오작가 저스틴 잭햄은 어느 오후, 책상에 앉아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 혹은 해야 할 리스트(버킷 리스트)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리스트에는 며칠 동안 비우지 않아 방 안 가득 냄새를 피우는 쓰레기통을 처리하는 것에서부터 인생의 동반자가 될 여인을 만나는 것, 그리고 스튜디오에 시나리오를 파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몇년 뒤, 저스틴 잭햄의 ‘버킷 리스트’는 전부 현실이 되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미저리> <어 퓨 굿맨>의 롭 라이너 감독은 죽음과 싸우는 두 캐릭터의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다루는 이 잔잔한 코미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70대의 두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한다라는 컨셉에 스튜디오가 그다지 열광적이지는 않았던 관계로 두 주인공이 방문하는 세계의 모습은 모두 컴퓨터그래픽의 도움으로 처리되었다. 모건 프리먼이 한때 역사학자를 꿈꾸었지만, 자동차 수리공으로 그 꿈을 접어야 했던 카터 역을, 잭 니콜슨이 제멋대로인 억만장자 기업가인 에드워드 역을, <윌 앤 그레이스>의 ‘잭’으로 익숙한 얼굴인 숀 헤이즈가 에드워드의 명민한 비서 역을 맡았다. 12월8일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 <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하 <버킷 리스트>)의 정킷은 컨퍼런스와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의 개별 인터뷰로 이루어졌다. 컨퍼런스에는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 시나리오작가인 저스틴 잭햄과 감독 롭 라이너, 프로듀서를 맡은 앨런 그리즈먼, 닐 머론, 크랙 재던 그리고 <윌 앤 그레이스>의 ‘잭’으로 유명한 숀 헤이즈가 패널로 참여했다. 컨퍼런스에서 두 배우가 차지하는 무게는 확실히 다른 어떤 정킷과도 달랐다. 그들은 스타를 넘어서 할리우드의 아이콘으로 존경의 대상이었다. 컨퍼런스 내내 좌중에게 웃음을 안겨주었던 잭 니콜슨은 개별 인터뷰에서는 무척 자상했는데, 영화의 대사 하나하나, 장면의 디테일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인용해내는 모습에서 그가 왜 스타인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먼저 저스틴 잭햄에게 질문을 하고 싶다. 잭 니콜슨은 스스로 대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가로서 어떻게 받아들였나. =저스틴 잭햄: 친구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니 어떻게 저런 대사를 생각해냈냐는데 대부분이 다 잭의 머리에서 나온 거였다. 나로서는 거저먹은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롭 라이너: 잭은 원래 작가로 시작했다. 프리 프로덕션 들어가기 이전부터 각 장면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배우이다. 이를테면 시간이 지나가는 것에 대해 “smoke through a key hole”(열쇠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연기)라고 말하는데, 무슨 말인가 싶다가도 그의 입에서 나오면 묘하게도 그 느낌이 전달된다. -당신에게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 =롭 라이너: <버킷 리스트>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보는 내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영화이다. 재미있으면서도 슬픈 균형이 있다고 할까. 왜냐하면 실제 삶이란 게 그런 서로 다른 요소가 묘하게 뒤섞여 있는 것이니까. 처음 저스틴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 싶었던 것은 바로 그런 인생에 대한 뉘앙스가 깔려 있는 드문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캐릭터들은 둘 다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유머를 지니고 있다. 그게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나. 인생을 바라보는 깊이가 느껴져서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작가가 30대일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다. =저스틴 잭햄: 내가 죽음을 앞둔 70대의 두 남자의 심리를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많이 아프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누었던 대화들에 영감을 많이 얻었다. 그때 할머니는 죽음이 어떻게 보면 참 재밌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싶었다.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과의 작업은 어떠했나. =롭 라이너: 위대한 두 배우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첫 번째나 두 번째 테이크에 더이상 좋은 것이 나오기란 불가능할 것 같은 연기를 뽑아주는 배우들과 일한다고 생각해보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존재가 화면상에 드러나지 않게, 그래서 이들의 연기가 빛이 나게 하는 것이다.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음악이 있되 관객이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게 내 몫이다. -당신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내레이션 작업에 당신만의 비법이 있다면. =모건 프리먼: 글쎄, 특별한 비법 같은 것은 없다. 학교 다닐 때 발성법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던, 무척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공부했다는 것 정도? 목소리 연기는 1970년대경 텔레비전 시리즈 <일렉트릭 컴퍼니>에서 많이 하게 되었다. 그때 늘 이어폰을 꽂고 내 목소리를 들어야 했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연극 무대에 섰던 것도. 극장 안의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발성에 대한 기본을 배우는 곳은 역시 연극 무대만한 곳이 없으니까. -<버킷 리스트>는 삶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는 영화다. 당신은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모건 프리먼: 그 생각이라는 것은 그날그날 매번 바뀐다. 글쎄, 삶은 우연한 사건이랄까. 여기 이 순간 내가 존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해야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존재라는 것. 스스로를 인식하기에 언제나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것 같고. 그렇지만 그 답을 스스로 내릴 수 없기에 ‘신’이라는 답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나 할까. 기본적으로 우리는 죽기 위해서 살고 있다. 죽음을 통해 한 삶이 정의되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나. =모건 프리먼: 죽음 자체는 두렵지 않다. 문제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느냐는 것이다. 나 스스로를 가눌 수 없이 무기력해지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영원히 살고 싶지 않은가. =잭 니콜슨: 개인적으로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안 믿는다. 다들 영원히 살고 싶지 않을까. 문제는 우리 다음 세대를 희생하면서까지 우리 삶을 연장하고 싶냐라는 부분이겠지. 아무튼 가장 하기 싫은 일이(죽음), 결국 가장 나중에 하는 일이 되니까.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 =잭 니콜슨: 무척 어려운 소재라고 생각했다. 죽음에 대해 가볍지 않으면서도 코믹하게 다루겠다라는 시도가 특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매력이었고.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잭 니콜슨: 여럿 있는데. 흠. 왜 에드워드가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America’라고 한마디 내뱉는 장면이 있지 않나. 때로는 이렇게 한 단어만으로도 모든 감정이 정확하게 전해지는 순간이 있지 않나. -당신에게 버킷 리스트가 있다면. =잭 니콜슨: 웬만하면 리스트 만드는 일은 피하려고 하는 스타일이지만, 이번 작품하면서 계속 이 질문을 받다보니 하나 든 생각이 바로 ‘마지막으로 멋진 로맨스를 해보는 것’이다. -롭 라이너와는 작업은 어떠했나. =잭 니콜슨: 롭의 부모와 절친해서 롭이 꼬마일 때부터 지켜보았다. 캐릭터 배우였을 때나 감독일 때나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가 언제나 예술가라는 점이라고 할까? 그는 남들과 의사소통하려고 하기를,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요즘 같은 시대에 다분히 고전적이라고나 할까. -배우로서 역에 접근하는 방식은 어떤가. =잭 니콜슨: 교과서적이라고 해야 하나. 일단 시나리오를 제대로 읽는 것부터 시작한다. 철저하게 읽으면 그게 다 내 의식 아래에 자연스럽게 깔리니까. 그리고 모든 장면 하나하나를 내가 아는 모든 이제까지의 경험을 다 끄집어내 분석한다. 그렇게 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긴장감을 벗어던지고 자신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그럼 어느 순간 캐릭터의 자리에 가 있는 것이다. -아시안 시네마에 관심이 있나. =잭 니콜슨: 구로사와 아키라와 오시마 나기사의 팬이다. 특히 오시마. 그런데 막상 자국팬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근래에는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 몇몇 한국 작품을 보라고 해서 본 적이 있다. -영화에서 에드워드는 커피 하나에도 까다로운 취향을 보인다. 실제의 당신에게 독특한 버릇이 있다면. =잭 니콜슨: 다이어트 코크만 마신다. (웃음) 아, 언제나 내 재떨이는 늘 들고 다닌다.

[LA] 할리우드의 새로운 프로젝트는?

오후 시간 카페 안에서 의자에 기대 책장을 넘기고 있는 이 동네 손님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그들 대부분은 작가가 아니면 배우일 가능성이 크다. 배우들이 새로운 프로젝트에 가장 민감하고 빠르게 반응하는 집단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그들이 읽고 있는 책을 보면 어떤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젝트들이 현재 진행 중인지를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이를테면 옆 테이블에 놓인 스티븐 킹의 <다크 타워>(Dark Tower)는 오랫동안 소문만 무성하다가 지난해 마블사에서 코믹북으로 출판된 이후 영화화가 빠르게 가속화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고보니 흥미롭게도 카페 안의 몇몇 사람들이 같은 표지의 책을 탁자 위에 두고 읽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유난히도 두꺼워 보이는 그 책은 러시아계 미국 여류작가인 아인 랜드의 1957년작 <아틀라스: 지구를 떠받치기를 거부한 신(神)>(Atlas Shrugged)이다. 구석에 앉아 <아틀라스: 지구를 떠받치기를 거부한 신(神)>을 읽고 있는 배우 지망생은 들고 다니기도 만만치 않은 1200페이지 속에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질지도 모르는 숨겨져 있는 역을 찾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이 작품의 영화화에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주인공으로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면서 곳곳에서 자주 눈에 보이고 있다. 기술자, 기업인, 지식인, 예술가 등의 ‘창조적인 소수 엘리트’들이 어느 날 파업을 한다면 사회는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는 아인 랜드의 <아틀라스: 지구를 떠받치기를 거부한 신(神)>은 4월15일로 발표된 미국배우조합(SAG)과 미국제작자연맹(AMPTP)간의 재계약 협상안을 앞둔 시점에서 꽤 흥미로운 소재임이 분명하다. 100일에 걸쳐 진행되었던 작가파업에서 작가들의 성실한 지원자였던 SAG는 감독협회(DGA)나 작가협회(WGA)가 얻어낸 협상안보다 더 유리한 협상안을 끌어내고자 하는 모습이다. 작가파업이 끝나고 텔레비전 시리즈 제작이 재개되었지만, 파업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할리우드에 SAG의 이번 행보는 대체 어떤 결론으로 도달하게 될까.

고독과 사색, 혁신을 조화시킨 전설의 자화상

<사랑의 찬가>(2001)를 보고 난 미국인 가운데 상당수는 영화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언급되는 방식에 대해 다소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레지스탕스의 기억을 돈으로 사는 스필버그라는 존재를 대하며 누군가는 좀더 정확한 사실 관계를 밝힐 필요를 느끼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신랄한 조크이지만 좀 과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사실 스필버그에 대한 장 뤽 고다르의 과격한 공격 혹은 비꼼은 꽤 오랜 시간을 거슬러간 지점부터 시작되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고다르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단지 스필버그 개인에 대한 어떤 악감정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계가 조직된 방식과 그 세상에서 영화가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시인적이면서 철학가적인 통찰력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금세기 들어 고다르가 처음으로 내놓은 영화인 <사랑의 찬가>는 분명 <영화사>(1998) 이후의 작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다르의 너무도 방대하고 야심적인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기도 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의 찬가>에서 고다르는 또다시 20세기의 기억 혹은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의 영화가 맡은 역할의 문제를 사고하고 있는 것이다. (1995)에서 고다르가 한 말은 “유럽에는 기억이 있고 미국에는 티셔츠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사랑의 찬가>에서도 고다르는 미국인은 역사도, 이름도 없는 존재들, 그리하여 다른 이들의 역사를 구매해서 자신들을 위한 기억으로 가공하려 드는 이들이라고 했다. 고다르가 보기에 중요한 점은 이 같은 사람들은 세상을 제대로 보는 방식 역시 알지 못하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지배적인 위치에서 영화 카메라를 들고 있음으로써 영화의 무능력이 두드러지는 현재적 상황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다르가 유럽의 상황에 대해 호의적이거나 낙관적이라고 본다고 말하긴 어렵다. 예컨대 <사랑의 찬가>에서 그려지는 파리는 미국이라는 나라와는 달리 자기만의 독자적인 기억을 갖고 있긴 하지만 때로는 너무나 많은 기억에 짓눌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그곳은 유령의 도시, 과거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불길한 도시인 것이다. 게다가 고다르는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이 구대륙에서도 예술의 가치가 쇠퇴하고 있는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에서 그는 규칙의 문제이고 규칙의 일부인 문화와 예술이며 예술의 일부인 예외라는 개념을 서로 대립시킨다. 그리고는 이어서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규칙을 이야기한다. 담배, 컴퓨터, 티셔츠, 텔레비전, 관광, 전쟁. 하지만 이제 아무도 예외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최근의 고다르에게서 <토킹 픽처>(2003)의 마뇰 드 올리베이라와 유사한 면모를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올해로 100살이 된 포르투갈의 대가처럼 벌써 80대를 바라보는 스위스 출신의 감독은 유럽의 역사를 온몸으로 통과해왔고 그 황혼을 쓸쓸하게 지켜보는 존재인 것이다. <영화사>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다르라는 ‘나’의 구현인 그의 최근 영화들에서 어떤 멜랑콜리의 느낌이 강하게 풍겨난다면 그건 그 ‘나’의 고독함 때문인 것이다. <아워 뮤직>(2004)에서 고다르가 사라예보로 카메라를 가져간 것은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의 절박성도 원인이 되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신이 바로 사라예보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사라예보, 현재의 영화, 이들은 모두 추방의 공간들”이고 고다르 역시 추방 혹은 고립 안에 있는 인물인 것이다. 이 같은 고다르의 자화상에, 어떤 평자들이 지적하듯이, 초월적 자기 신비화의 경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그가 전반적으로 영화의 퇴조를 겪는 세상과 절연하여 자기 영화 속에 고독과 사색과 혁신을 조화시킨 예외적인 인물, 그래서 에서 말하듯 이제는 전설이 되었다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인물이 된 것은 틀림이 없다. <사랑의 찬가> <아워 뮤직>, 고다르의 세편의 근작들을 4월12일부터 20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하는 ‘JLG/JLG: 고다르의 자화상 특별전’은 그의 최근 입지를 재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메신저토크] <댄 인 러브>, <천일의 스캔들>

헬프: 하하. 이걸로 비앙카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면 재미있겠당. 라스가 사는 마을 사람들 같은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는 영화가 또 한편 개봉되죠. <댄 인 러브> 말입니다. 어스: 맞아요.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 동화책에서 집단 탈출한 듯한 이웃들이 등장한다면 <댄 인 러브>에는 그런 가족이 나오죠. 헬프: 어떻게 보면 퇴행적이라는 느낌마저 없지 않았어요. -_- 어스: 아내를 여의고 세딸을 키우는 상담 칼럼니스트 댄(스티브 카렐)이 추수 감사절 가족 모임을 위해 부모 집에 왔다가 하필 동생의 여친(줄리엣 비노쉬)과 사랑에 빠지는 난감한 로맨스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칼럼니스트 댄이 아침에 기상하는 장면인데요. 헬프: 옆에 아내가 있는 줄 알고 더듬거리다가 없음을 확인하고 쓸쓸하게 일어나는 장면이죠. 어스: 더블베드인데도 한쪽에 몰려서 자고, 그의 옆에는 연인이나 배우자가 아니라 밤새 보던 자료들이 누워 있더군요. 보는 제 가슴도 쓰라렸어요. 남의 일 아니거든요. -.- 특히 펜에서 잉크가 새서 이불에 묻었거나 깔고 잔 자료의 스테이플러 칩 자국이 뺨에 남아 있을 때는 정말 서럽죠. T-T 나이 들면 피부 탄력 저하로 자국도 잘 안 없어져요, 흑. 헬프: 일과 휴식은 확.실.히. 분리하셔야 합니다. 침대에서는 잠만 자자! (무슨 70년대 가족계획 구호 같다….) -..- 어스: 그런데 “<어바웃 어 보이>의 제작진”이라는 홍보 문구 영향 탓인지 그 영화를 좀 과하게 벤치마킹하지 않았나 싶은 인상이었어요. 이 영화의 대가족은 <어바웃 어 보이>의 친구/이웃 그룹을 대신한 것 같았고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의 어색한 노래장면이 있는 것도 비슷했죠. 헬프: 노래장면이나 춤장면이 확실히 좀 공식적으로 쓰인 부분이 있죠. 이 영화의 가족은 아주 푸근하고 따뜻하지만, 그 끈끈한 가족애가 지나치게 퇴행적이란 인상은 지울 수가 없더군요. 수십명 대가족이 모여서 서로 함께 춤추고, 남녀 편갈라서 설거지 내기 크로스워드 게임을 하고, 학예회처럼 한명씩 무대에 올라 장기 자랑을 하고…. 특히 실연을 막 겪은 미치가 그 아픔을 가족과의 게임으로 해소하는 장면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어스: 사실 좀 무섭죠. 프라이버시란 눈씻고 찾아도 찾기 힘드니까요. 많은 캐릭터가 실리콘으로 만든 듯(앗, 여기도 리얼 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과 더불어 <댄 인 러브>의 약점은 플롯 진행이 군데군데 작위적이었다는 점이에요. “하필이면 그때!” 라고 느껴지는 고비가 몇 차례나 있거든요. 헬프: ‘시나리오의 냄새’가 너무 강하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죠. 어스: 조크를 먼저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장면을 구성한 다음, 그것을 기승전결에 맞춰 배열했다고나 할까요. 헬프: 동감! 예를 들어서 두 남녀가 모든 상황이 쑥밭이 된 상황에서 볼링장으로 들어가 아이처럼 볼링을 하면서 히히거리는 장면은 아주 이상한 설정인데, 그런 설정이 들어간 이유는 그 다음에 둘이 그곳에서 로맨틱한 키스를 하는 장면을 가족에게 들켜야 하기 때문이죠. 어스: 그리고 형에게 애인을 뺏긴 셈인 동생에게 재깍 대체할 여자친구가 생기는데, 에밀리 블런트가 분한 이 여인은 그저 가족의 평화로운 정경을 파투내지 않기 위해 투입된 접착제처럼 느껴져요. 물론 블런트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이어 섹시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적절한 연기를 보여줬지만요. 헬프: 오직 관객이 두 주인공의 사랑이 이뤄지는 것을 볼 때의 도덕적인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서죠. 같은 경우가 <마법에 걸린 사랑>의 종반에도 있었잖아요. 여주인공에게 외면당한 동화 속 왕자가 현실의 여성과 맺어지는. 어스: 하지만 <댄 인 러브>는 <마법에 걸린 사랑>과 달리 현실적 층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라 불편함이 조금 더 하죠. 게다가 <마법에 걸린 사랑>의 ‘스워핑’은 현실과 환상의 적당한 조합이 좋은 사랑을 만든다는 나름의 주제와도 연결이 그나마 있었으니까요. 헬프: 로맨틱코미디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감각이 있다면 ‘귀여움’이 아닐까 싶은데,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상당히 성공했다는 느낌이 있어요. 전 스티븐 카렐의 연기가 좋더군요. 사실 뻔한 이 영화를 살려낸 경우라고 생각해요. 이전부터 카렐의 얼굴에는 좀 비극적인 진지함 같은 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코미디에서 묘한 입체감과 페이소스를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어스: 그의 전작 <에반 올마이티>에 비하면 <댄 인 러브>는 훨씬 은근하게 이 배우의 장점을 잘 살렸죠.한편 줄리엣 비노쉬는 아까 언급한 줄리 크리스티와 함께 어떻게 늙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여성 관객에게 좋은 대답이 되는 배우예요. ^^ 헬프: 비노쉬는 정말 아무런 방어벽없이 웃는 여배우라는 점에서 독특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어스: 정말 그 웃음! 전 <나쁜 피>에서 그녀가 웃는 걸 처음 보았을 때 무슨 성인이 저렇게 갓난아기처럼 웃을 수 있을까, 충격마저 받았더랬어요. 헬프: 거의 폭소에 가깝죠. ^^ 이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잉글리쉬 페이션트>나 <퐁네프의 연인들>에서도 거의 정신나간 사람처럼 넋을 놓고 마음껏 웃잖아요? 그건 캐릭터가 아니라 자연인 비노쉬의 느낌이란 생각이 절로 들죠. 김혜리: <천일의 스캔들>은 치정관계가 얽히고설킨 구식 소프오페라 같은 면이 있죠. <달라스>나 우리나라로 치면 궁중 여인 열전류의 드라마요. 이동진: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앙상하다는 게 치명적 단점이라고 봤어요. 스토리의 정해진 궤도로만 달리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핵심 정서라고 할 수 있는 자매의 애증까지도 그리 잘 살아 있다고 볼 수 없어요. 어스: <천일의 스캔들>이 우리의 마지막 영화네요. 저는 아직도 리처드 버튼이 헨리 8세, 쥬느비에브 비졸드가 앤 볼린으로 분한 <천일의 앤>을 TV에서 보았던 기억이 선해요. 헬프: 워낙 텔레비전에서 많이 해준 영화죠. 어스: 그렇게 사랑하던 여자를 목을 쳐서 죽였다는 결말이 어린 마음에 충격이었죠. 헬프: 권태에는 그렇게 잔인한 구석이 있어요. 어스: 하지만 전해지는 헨리 8세 초상화를 보면 확실히 이번 영화의 에릭 바나는 지나치게 미화된 버전이 아닌가요? 리처드 버튼이나 다른 판본에서 헨리 역을 맡았던 레이 윈스턴이 훨씬 닮았어요. 게다가 에릭 바나는 <트로이>에서 그리도 멋지던 헥토르가 이 무슨 부끄러운 캐릭터입니까…. 물론 유능한 군주였다고는 하지만. --; 헬프: 세심하죠, 로맨틱하죠, 게다가 몸까지 좋잖아요. 어스: 아마 스칼렛 요한슨이 분한 메리 볼린이 왕과 정말 사랑에 빠졌다는 내러티브를 설득하기 위해 헨리 역에 멋있고 섹시한 배우가 필요했을 거예요. 헬프: ‘바나’(burner^^)까지는 아니라도 헨리 8세 역이라면 관객을 후끈 달굴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납작한 캐릭터라서리…. 어스: <천일의 스캔들>은 치정관계가 얽히고설킨 구식 소프오페라 같은 면이 있죠. <달라스>나 우리나라로 치면 궁중 여인 열전류의 드라마요. 헬프: 이 이야기는 실제, <튜더스>란 미드로 만들어지기도 했잖아요? <천일의 스캔들>은 철저히 야사적인 시각을 가졌죠? 야사에서 가장 애용되는 모티브가 ‘처벌받는 야망’이잖아요. 그런데 결국 야망이 처벌받는 걸 보여주긴 하는데, 그 야사에 몰두하는 대중의 심리는 주인공의 야망과 극적인 신분상승에 대한 미묘한 동일시에 그 핵심이 있죠. 뻔한 불륜 드라마를 보는 관객의 심정과도 비슷한 맥이 있어요. 어스: 처벌받는 인물 앤 볼린(내털리 포트먼)의 행동이 좀 지나치게 현대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은 했습니다. 특히 왕의 선물을 연거푸 거절하는 모험적 행동은 마치 “재벌 2세 실장 마음을 빼앗으려면 그를 무시해서 당신 같은 여자 처음이야라는 반응을 끌어내라”는 농담의 실례를 보는 것 같았어요. -_-# 헬프: 왕과의 관계에서 그녀가 하는 행동에는 확실히 그런 느낌이 강하죠. 뭐, 거의 각색의 만용이랄까요. ^^ 실제 앤이 그와 유사한 전략을 썼다고 하더라도, 좀 과한 각색의 측면이 없지 않았어요. 전 이 영화가 아주 잘못된 것도 없지만, 이렇다 할 매력도 없는 것 같아요. 그냥 헨리 8세의 스캔들이라는 소재가 가진 화끈한 인화력에만 기댄 인상이죠. 어스: 두 자매를 통해 극단적으로 대별되는 유형의 여인상을 보여주려고 약간 무리를 한 감도 있죠. 그래도 시대 의상을 보는 매력은 확실히 있어요. 당시 회화를 보면 여인들의 머리장식이나 드레스를 잘 고증하고 아름답게 표현했음을 알 수 있죠. 헬프: 샌디 파웰의 시대극 의상은 확실히 눈요깃감이 되지요. 어스: 저는 이 영화에서 세명의 주인공보다 아라곤의 캐서린 역할을 한 아나 토렌트와 두 자매의 엄마 볼린 부인 역을 한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에게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헬프: 볼린 부인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어리석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죠. 어스: 영화에 암시된 전사(前史)를 보면 그녀는 오로지 사랑 하나를 위해 신분 하락을 감수하고 남편과 결혼한 여인인데, 바로 그 남편이 자기와 함께 삶을 걸고 지키려 한 가치관을 딸들을 물건 취급하며 배반하는 현장을 보는 심정이 어떻겠어요. 그건 남편과 공유해온 인생 전체에 대한 절망이라고 할 만한 거죠. 마지막에 남매를 차례로 잃을 때는 거의 그리스 신화에서 일곱딸과 일곱 아들을 신의 화살에 잃는 니오베를 연상시키더군요. 헬프: 그 말에 일정 부분 동의를 하면서도 좀 다른 느낌도 받았어요. 볼린 부인은 이 영화에서 홀로 텍스트와 떨어진 채 온갖 훈수를 두는 내레이터 같다는 느낌이 있다는 겁니다. 극중에서 스캇 토머스가 하는 대사들을 들으면, 다른 인물들과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상황에 대해 몇 발짝 떨어져서 팔짱 끼고 코멘트를 하는 것처럼 보여요. 어스: 극의 외부에서 들려오는 선지자의 목소리 같다는 거죠? “데어 윌 비 블러드…” 하는 식으로. ^^ 헬프: ^^ 그렇지. 거의 <밤과 낮> 첫 장면에 등장하는 거지 캐릭터나?? <10,000 BC>의 내레이터 오마 샤리프 같은 캐릭터라는 거죠. ^^ 어스: 아마 제가 그렇게 열외인 그녀의 캐릭터만 좋아했다는 사실 자체가 뒤집어 말하면 이 영화의 나머지 부분에 몰입을 할 수 없었다는 방증이겠죠. 헬프: 이 영화는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앙상하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봤어요. 스토리의 정해진 궤도로만 달리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극을 이끌어가는 핵심 정서라고 할 수 있는 자매의 애증까지도 영화 속에서 그리 잘 살아 있다고 볼 수 없어요. 어스: 워낙 숨가쁜 엎치락뒤치락하는 사건이니까요. 사실 연속극이 맞는 포맷일지도 몰라요. 헬프: 분명 스피디한데도 지루한 면모가 있거든요. 어스: 원래 지루함은 느림에서 오는 게 아니라 리듬감의 부재에서 나오거든요. ^.~ 헬프: 내털리 포트먼이나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도 그냥 그랬어요. 이건 뭐, 거의 콩쥐팥쥐 같더라고요. 어스: 많이 닮았다는 평을 듣는 키라 나이틀리와는 반대라 좀 신기한데 내털리 포트먼은 사극은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합니다. 차라리 <스타워즈> 같은 SF가 나아요. 헬프: <스타워즈>에서도 그리 훌륭하진 않았어요. 어스: 내털리 포트먼의 팬들은 <천일의 스캔들>보다 이미 극장개봉이 끝났지만 <다즐링 주식회사> 앞에 붙은 <호텔 슈발리에>를 찾아보시길 권해요. (DVD에도 첨부되겠죠?) 최근작 중 제일 멋진 모습이었어요. 헬프: 일단 저부터 조언 접수하겠습니다. 자, 이제 정말 메신저토크를 끝낼 시간이 됐군요. 마지막 토크의 첫 영화로 <어웨이 프롬 허>를 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스: 천일을 채우지 못하고 헤어지게 됐네요. 그동안 독자 여러분이 읽어주신 덕분에, 선배와 대화를 통해 많이 배웠고 무엇보다 부지런히 새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일한 이래 가장 많은 신작을 본 한해가 아니었나 싶어요. 헬프: 뜻이 잘 통하는 대화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얼마나 즐거운 경험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어요. 어스: 두 사람이 영화 보는 눈이나 코멘트가 비슷하다는 지적도 많이 받았는데, 서로 더 물들기 전에 일단 헤어지고, 시간이 흐른 뒤 어떻게 변했나 다시 확인해보아요.^0^ 헬프: 언젠가 더 훌륭한 분들이 메신저토크를 맡아주시길 기대하면서, 이제 그만 물러갑니다. 어스: 잠깐요, 쫑파티 해야죠.(*이모티콘 중 케이크와 와인잔) 자, 건배! 헬프: 메신저 밖에서 날 잡아요. 오랜만에 얼굴 보면서 영화 얘기할 수 있겠네요. ^0^ 어스: 앗, 마지막으로 문의해주신 무수한 독자들께 다시 확인 드리겠습니다. ‘메신저토크’는 메신저로 진행한 것, 맞습니다. 맞아요.

[베이징] <로스트 인 베이징>, 싸움 걸다

지난 1월 중국국가광파전영전시총국(SARFT)으로부터 배급과 상영 중지라는 중징계를 당한 <로스트 인 베이징>(원제: 핑궈)이 SARFT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제작사인 베이징 로레알의 대표 팡리는 지난 3월12일 영화에 내려진 중징계를 철회하고 상영 허가를 내달라며 저작권 문제를 다루는 베이징시 제1중급인민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 중국에서 영화에 행해진 정부의 제재에 불만을 제기하고 고소까지 간 예는 이번이 처음이라 관련업계 종사자들과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지만, 문제는 이미 고소장 제출 한달이 가까워오는데도 법원은 묵묵부답이라는 사실이다. 중국행정소송법상 법원은 고소장을 받은 뒤 7일 내에 조사를 거쳐 입안을 하든지 혹은 적법성을 따져 수리 결정을 내리고 통보해야만 한다. 하지만 20여일이 지난 시점까지 법원은 아무런 회답을 주지 않고 있다. 정부의 징계로 향후 2년간이나 영화제작을 금지당한 팡리는 이런 법원의 침묵에 또 한번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왜냐하면 지난 1월의 갑작스런 배급과 상영 중지 명령도 어떠한 법률적 문건 없이 전화 한 통화와 인터넷상에 오른 ‘금지령’ 통보로만 행해졌기 때문이다. 이후 제작사는 광전총국에 해명과 법률적 근거를 신청했으나 아무런 회답도 받지 못했다. <로스트 인 베이징>쪽은 (광전총국 홈페이지와 언론상에 발표된 대로) 외설적 표현이 담긴 영상물이 심사를 통과하지 않은 채 인터넷에 유포되고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런 행위가 건강한 영화 문화를 해치는 행위라는 게 제재 이유라는 걸 알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온라인에 상영된 것은 불법 DVD로부터 나온 소스였고 제작사도 피해자에 다름 아니다. 제작사로서는 영화의 상영을 위해 감내했던 6번의 심사과정과 56차례에 걸친 수정, 17분의 삭제라는 노력이 보람도 없이 최소 300만위안 이상의 손실과 2년간 제작 불가로 귀결된 것을 지나친 처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광전총국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제재와 통보방식은 <색, 계>에 출연한 여배우 탕웨이의 광고가 텔레비전에서 순식간에 내려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지만 광고주나 제작사들은 감히 공개적으로 묻지도 못했다. 광전총국은 최근 좀더 엄중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상영허가증을 받은 영화라도 온라인상으로 배급하려면 ‘온라인 상영허가증’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절차를 추가하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국영(급) 회사만 허가증을 신청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중국 3대 포털사이트 중 하나지만 민영으로 운영되는 ‘소후’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형편이다. 가뜩이나 배급 루트가 적은 저예산영화들에도 답답한 소식이다. 이번 소송 사건이 정부를 향한 중국영화계의 기나긴 저항과 싸움의 시작이라고 보는 견해 뒤에는 올림픽을 지나면 정부의 간섭과 제재가 더욱 심해질 거라는 영화계 내부의 심각한 우려도 있다. 팡리가 건 싸움이 부디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되지 않기를.

[외신기자클럽] 한편의 코미디, 프랑스를 덥히다

지난 3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은 영화는 바로 <웰컴 투 슈티>다. 슈티란 프랑스 북부 지방 사람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제 슈티들은 프랑스에서 가장 귀여움을 받는 지방 사람들이 됐다. 코미디 영화감독 대니 분이 만든 이 작품은 몇주 사이 프랑스영화계에서 가장 큰 흥행작이 됐고, 빙산처럼 떠서 <타이타닉>의 2천만 관객동원 기록 돌파를 향해 둥실둥실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계속 뜨다가는 <타이타닉>의 역사적 기록을 문제없이 깰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시대와 작품을 잘 연결해주고 있는, 그야말로 한눈에 반할 정도의 그런 작품을 접하고 있는 것이다. <웰컴 투 슈티>는 프랑스 남부에 살다가 정반대에 위치한 전혀 매력없는 지역 노르 파드 칼레로 전임해온 한 우체국장의 모험을 그린다. 그는 북부 지역에 관해 온갖 선입견을 안고 부임해온다. 그는 북부 지방이 날씨가 엄청나게 추운 건 물론이고, 알코올 중독자가 많은데다가 탄광에서 나오는 석탄에 시커멓게 그을린 촌사람들만 득실거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나 그의 새 직장동료는 그에게 미리 경고한다. “여기선 두번 운다. 이곳에 도착하면서 울고, 이곳을 떠나면서 울고”라고. 그도 그럴 것이, 도착 직후 적응기의 충돌이 잠잠해지면서 주인공은 차츰 북부지역 사람들 자체와 그들이 가진 순박함, 우스꽝스런 사투리, 심지어는 입 안에 불이 날 정도로 지독한 그 지방 특유의 치즈에까지 애착을 느끼게 된다. <웰컴 투 슈티>는 그리 훌륭하게 촬영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효과 만점인 개그들이 작품에 적당한 리듬감을 주는 ‘정직한 코미디’다. 특히 이 영화는 기상천외한 <아멜리에>(2001)와 똑같은 도식으로 작동된다. 장 피에르 주네가 몽마르트르 동네를 그린 방식처럼 대니 분은 프랑스 북부지방을 따로 고립된 세계처럼 그려낸다. 관객은 세계화 돌풍의 여파가 아직 미치지 않은 밀폐된 공기방울 속으로 들어 가듯이 베르그시(市) 안으로 들어간다. 대니 분 감독은 베르그시를 마치 우체국이나 조그만 광장, 혹은 감자튀김 판매용 가건물이 전부인 양 단순한 지표물들로 축소해놓는다. 거기선 절대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인터넷은 더더구나 없다. 소형 오토바이나 자전거가 교통수단의 전부다. 거기엔 실업자란 없다. 빈민도 없다. 슬픔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 외지인이란 남부에서 상경한 주인공 하나뿐. 이처럼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세계, 동시에 노스탤지아를 자아내는 작품 속의 세계가 대인기를 누린다는 사실은 <웰컴 투 슈티>가 프랑스판 <웰컴 투 동막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프랑스 어느 도시에선 <웰컴 투 슈티>를 본 관람객 수가 주민의 인구수를 이미 초월했다. 이 영화를 여러 번 본 사람들이 꽤 있다는 얘기다. 그것도 같은 날에 말이다. 이처럼 <웰컴 투 슈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예술이 잃어버렸던 관객을 다시 영화관으로 불러모으고 있다. <웰컴 투 슈티>의 교육적 취향은 파리지엔 아가씨 <아멜리에>가 주는 최고급 유행성 미학에서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중·장년층 관객에게 그다지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웰컴 투 슈티>는 또 한 가지 면에서 조심스럽지만 꽤 획기적인 작품이다. 흔히 프랑스식 코미디에선 선한 역할을 하는 배우와 악한 역할을 하는 배우가 서로 듀엣을 이루는 게 보통이다. 이와 같은 프랑스식 코미디는 키 큰 바보 부르빌(Bourvil)과 키 작은 심술보 루이 드 퓨네즈(Louis de Funes)의 전설적인 콤비가 등장하는 제라르 우리 감독의 <파리 대탈출>(1966)이 모델이다. 그러나 대니 분 감독은 선인과 악인이라는 대립 콤비가 아니라 약자 역할을 하는 두 배우를 주인공으로 하여 작품을 연출했다. 위기에 헐떡이던 아시아의 상처를 <쉬리>의 흥행이 치료해줬듯이 <웰컴 투 슈티>는 시장개방과 프랑스화(貨)의 가치 저하, 좋다고 하기엔 아무래도 터무니없이 비싼 유로화(貨), 또 점차 사라져가는 사회보장제도 등을 프랑스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다. 프랑스 관객은 남부와 북부의 화합이라는 상징을 통해 국가 전반적인 화해 분위기 조성을 주장하는 <웰컴 투 슈티>를 이 같은 위기의 시기에 접하게 된 셈이다. 요즘 같은 의혹의 시기, 나라 전체가 작은 온기를 찾아 화면을 향해 손을 내미는 이런 시기에 영화관은 때론 모닥불이 되어주기도 한다.

차가운 ‘애정의 하드보일드’ <입맞춤>

한적한 주택가. 무표정의 남자가 아무 집이나 불쑥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돌아다니고 있다. 그 중 문이 열려 있던 집으로 무작정 들어간 남자는 단란한 한 가족을 몰살한다. 일부러 경찰에 실마리를 던져 주고 잡혀갈 때 그는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웃고 있다. 의문스런 이 살인마의 이름은 사카구치. 그가 왜 살인을 일삼았는지 알 수 없지만 삶에 대해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알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데 마침 텔레비전에서 그의 웃음을 본 한 여자가 운명처럼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평범한 회사원 교코. 그녀는 사카구치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가고 사카구치의 관선 변호사 하세가와를 통해 사카구치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길 원한다. 교코는 둘 사이에 어떤 관계도 없었지만 무언가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자꾸 그에게 가도록 이끌고 있다고 말한다. 한 마디의 자기 변론도 거절한 채 사형대로 가기를 바라던 사카구치에게 쿄코의 존재는 그가 입을 열고 감정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계기를 주고, 마침내 사카구치의 마음이 교코에 의해 열린다. 하지만 남아 있는 충격의 마지막 시퀀스. 살인자를 텔레비전에서 보고 교감을 느낀 뒤 그를 찾은 여자. 단박에 김기덕의 <숨>이 떠오를 만한 이야기지만 만다 구니토시의 <입맞춤>은 김기덕의 <숨>처럼 철학적 이기보다 육감적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간다천 음란전쟁>,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등의 각본에 참여한 바 있으며 평론가로도 활동했던 감독 만다 구니토시는 미사여구 없는 그러나 차가운 ‘애정의 하드보일드’를 선보인다. 갑작스런 교감에서 시작된 이 애정의 하드보일드는 과연 인물들의 관계가 어떤 끝점에 닿게 될 것인지 시종일관 궁금해지도록 만든다. 전반적인 인상은 국내에서 개봉했던 그의 전작 <언러브드>와 유사한데 <입맞춤>의 끝에는 기괴한 감정의 폭발지가 있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추성훈 & 정대세

두 사람이 뜬다. 심하게 말하면, 한 사람은 ‘쪽바리’가 됐고, 또 한 사람은 ‘빨갱이’가 됐다. 그럼에도 뜬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대한민국 고유의 정서와 사상적 기준으로 볼 때,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추궁을 받아야 할 ‘배신자’들이 오히려 환호를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 나라가 거꾸로 간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최근 한달간 가장 인상 깊게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황금어장-무릎팍도사>와 이었다. <무릎팍도사>는 유도 선수 출신으로 일본 이종격투기 K1 히어로즈에서 뛰는 추성훈이 나와 ‘고민 상담’을 할 때였다. 은 얼마 전 북한축구대표팀의 스타로 떠오른 정대세를 그린 ‘안녕하세요 인민루니 정대세입니다’ 편이었다. 두 프로그램의 성격은 판이했지만 두 주인공이 준 느낌과 울림은 비슷했다. 첫째, 눈물샘을 자극했다. 둘째, 그러면서도 밝고 쾌활했다. 추성훈은 재일동포 4세다. 정대세는 재일동포 3세다. 대부분 아는 사실이지만, 추성훈은 한국 유도계에서의 차별을 못 이겨 일본으로 귀화했다. 정대세는 ‘잘사는 조국’ 대신 ‘마음의 조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택했다. 외국인 등록증에는 ‘한국’이란 국적이 표시돼 있다. 추성훈은 일장기가 박힌 유도복을 입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결승에서 한국 대표를 꺾고 금메달을 땄다. 정대세는 지난 2월 2008 동아시아연맹컵 2차전에서 적진의 공격수가 되어 대한민국 대표팀의 골망을 흔들었다. 추성훈은 요즘 한국에서 <하나의 사랑>이라는 노래도 녹음했다. 두 사람은 새로운 미덕의 선구자다. 어떤 난관과 장애가 가로막아도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남아야 한다’는 도그마를 깼다는 점에서다. ‘반일’과 ‘반북’은 쌍둥이처럼 우리 시대의 자유를 억압해온 키워드였다. 그 기준으로 볼 때 그들의 선택은 충격이었다. 한 사람은 숙적인 일본에 이기적인 투항을 했고, 또 한 사람은 ‘월북’을 했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여지가 컸다. 그런 그들이 한국의 공중파 방송에 스스럼없이 등장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어쩌면 ‘쇼킹 코리아’에 속할지도 모른다. 물론 유도와 격투기를 못했거나 공을 못 찼더라면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게다.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과 그들만의 독특한 향기 또는 매력이 없었더라도 마찬가지다. 방송사의 잇속도 작용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두 사람은 한국사회의 도그마를 그냥 깬 게 아니라, 명랑하게 깼다고 평가할 만하다. 한국인들이 오매불망 지녀온 국가에 대한 ‘신앙’을 엔터테인먼트한 포즈로 질타한 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은 ‘재일동포 홍보대사’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른바 ‘자이니치’라 불리는 재일동포(또는 재일조선인) 사회의 구조와 역사는 하도 얽히고설켜 당사자들조차도 정확히 설명하기가 힘들다. 가령 이런 것이다. ‘조선적·한국적·일본적은 어떻게 다르지? 외국인 등록증에 표기된 조선이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이 아니라 남북 단독정부 수립 이전의 조선이라고? 정대세는 한국적으로 돼 있는데 어떻게 북한대표가 됐지?’ 두 사람의 활약으로 그들이 겪어야 했던 ‘자이니치’의 정체성 혼란과 복잡한 현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몇몇 언론이 10여년 동안 ‘자이니치’에 관해 줄기차게 보도한 것 이상의 효과를, 단 몇달 만에 해냈다. 두 사람 중 정대세는 아직 서울에 못 왔다. 올 여름엔 온다. 6월22일 2008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한국과의 경기를 위해서다. 붉은 악마는 “대~한민국”을 외칠 것이다. 혹시 일부 붉은 악마가 정대세를 진심으로 응원한다면 불온할까? “국적보다 실력이 짜릿하다”는 추성훈 팬클럽은 한국에 있다. 정대세 팬클럽은 아직 못 찾았다(일본엔 팬클럽이 있다). 그날, ‘대~한민국’이 아닌 ‘정대세’를 연호하는 한국인들을 보고 싶다. 되게 재밌을 것 같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 코미디언 김미화

초인종처럼, 오후 6시 시보가 울렸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반사적으로 주파수를 맞췄다. 5분 뉴스가 끝나자 행진곡풍 시그널이 흐르고 김미화가 오늘의 가장 인상적인 뉴스를 브리핑하며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1부를 연다. 낱말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 또박또박 천천히. 아마도 그녀가 정한 오프닝의 철칙인가보다. “신기하죠? 방송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뭐에 혹하는지 다 아는 모양이에요. 이 프로그램 오래 하는 걸 보면.” 간간이 혀를 차며 경청하던 아저씨가 신통해한다. 2003년 첫 전파를 탄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은, 이른 출근 시간대의 <손석희의 시선 집중>과 더불어 MBC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양쪽 날개다. 두 프로그램의 결은 판이하고 상호 보완적이다. <손석희의 시선 집중>을 들으면 찬물로 머리 감듯 정신이 번쩍 난다. ‘시사(時事)의 신’ 앞에 뉴스들이 줄을 서서 품평(?)을 받는 광경이 떠오른다. 인터뷰 대상의 정파를 막론한 손석희의 공평한 ‘쌀쌀맞음’은, 밥벌이 전장으로 나서는 아침 청취자에게 적당한 긴장을 선사한다. 반면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은 하루치의 노동과 실망을 감당하느라 피곤해진 해질녘의 귀에 살갑게 달라붙는다. 황당무계한 뉴스의 자초지종을 헤아리고 싶지만 생각할 기운조차 달리는 시간, 그래도 피해를 입은 이웃이 우선 안타까운 우리 대신 김미화는 전문가들에게 재우쳐 묻는다. “아니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났대요?” 무대에서 직접 연기하는 모습을 볼 기회가 드문 김미화의 최근 히트작은 그녀가 최초로 기획안을 만든 <개그 콘서트>라 해도 좋을 것이다. 스탠딩 코미디 르네상스의 신호탄이 된 이 작품은 물론 재미있기도 했지만 “웃겨야 산다”는 젊은 코미디언들의 절절함과 열정이 중독성을 발휘하는 코미디였다. 코미디언들이 얼마나 다재다능하고 지적이며 치열한 대중예술인들인가를 시청자는 폭소 속에서 재발견할 수 있었다. MC 김미화는 25년차 코미디언 김미화와 절연하지 않았다. 매일 저녁 세상만사를 시시콜콜 궁금해하는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김미화 옆에는 셋방살이하면서도 집주인에게 결코 기죽지 않았던 새댁 순악질(‘쓰리랑 부부’), 스타 아니라 스타 할아버지도 화장실은 간다는 사실에 착안해 대중의 호기심을 대신 풀어주던 방송사 미화원 삼순이 아줌마(‘삼순이 블루스’)가 붙어 앉아 있다. 토크쇼와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김미화는 끊임없이 웃기고 싶어한다. 아니, 웃음을 구한다. 느닷없이 구성지게 <새타령>을 부르는 정도는 보통이고, 아이를 얻은 기자에게 오늘의 경제지표를 확인하기 전에 아내한테 인사 한마디 하라고 재촉하기도 한다(그러면 또 한다는!). 이제 패널들도 그녀의 흥에 전염된 눈치다. “물 왜 안 드세요?” “기자들은 물먹는 거 싫어합니다” 같은 대화가 예사다. 그러나 김미화의 진행에서 유머는 개그맨의 프리미엄을 살리는 특별부록이 아니라 본령이다. 그녀의 화법은 우리가 뉴스에 귀기울이고 공동체의 운명에 관심을 갖는 근원적 이유를 환기시킨다. 요컨대 우리는 눈앞에 있는 타인을 걱정하고 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를 때 온기를 느끼는 존재인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자신의 쇼에 출연한 ‘클론’의 강원래에게 “그 눈높이에서 보는 세상은 어때요?”라고 물을 때 아무도 선의를 의심하지 않고 더불어 미소지을 수 있는 진행자가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다. 수십개 비정부 시민운동단체에 참여하는 김미화의 활동을 꾸준히 지켜보았다면, 그 질과 양이 당위와 책임감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었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그녀는 모르는 분야라면 배워서라도 돕는다.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고서야 어려운 경지다. 지난 2003년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처음 기획, 연출한 정찬형 MBC 글로벌 사업본부장은 그가 파악한 김미화의 능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대본을 외건 원고를 읽건 진행자 본인의 마음과 생각에 맞닿아 있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요즘 청취자는 예민해서 맘에 없는 소리를 하면 금방 눈치를 챈다. 사안에 따라 1인시위도 꺼리지 않는 김미화씨의 활동을 보면서 때로는 뜻을 위해서 손해도 감수할 수 있는 연예인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야기를 던져놓으면 살아 뛰게 만드는 진행자다.” 김미화는 코미디언의 입지를 다변화한 인물로도 간주되지만 달리 보면 코미디부터 NGO 참여까지 그녀의 모든 활동은 세상 사람들을 웃게 해주고 싶다는 한 가지 소망이 계속 외연을 불려온 결과다. 매니저 없이 수첩을 손수 채워가며 일하는 그녀는 인터뷰 도중 몇번이나 전화를 받아야 했고 모든 통화를 “감사합니다”로 맺었다. 그러고는 놓았던 대화의 실마리를 한번도 잃어버리지 않은 채 정확히 멈추었던 그 자리로 돌아와 다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인터뷰하실 때면 대개 기자를 학교나 방송사로 부르시는 모양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매니저 없이 활동해온 것은 아니죠? =<쇼 비디오자키>(1986)의 ‘쓰리랑 부부’를 할 무렵에는 매니저가 있었죠. 돈 벌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쓰리랑 부부’가 그런 시기의 정점이었는데 그러다 제가 뱃속의 아기를 잃었어요. 제 일 욕심이 돈에 관한 욕심인지 성취감을 위한 건지 다시 생각했죠. 돈에만 연관된 일이라면 진짜 성취와는 상관없는 거더라고요. 그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랬는데! 그렇게 결심하니까 돈이 쫓아오더라고요. (웃음) -운전이라도 다른 분이 도와주시면, 이동 중에 자료라도 읽을 수 있을 텐데요. =혼자 있는 차 안 공간을 아주 소중히 생각해요. 전 음악도 혼자 듣고 시장도 혼자 가고, 낙지볶음이나 추어탕 같은 음식도 혼자 식당 가서 사먹어요. 방송사 근처 식당 아주머니들은 으레 “아, 김미화씨 오셨네?” 하고 알아서 차려주세요. 일하는 동안 항상 스탭들과 있으니 나머지 시간은 혼자 있으려고 해요. 누가 운전해주면 불편해서 뒷좌석에서 온전히 다리 뻗고 쉬질 못하는 성격이에요. -2003년부터 MBC 라디오에서 진행해온 시사 프로그램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부터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흔히 연예인에겐 시간이 돈이라고 하잖아요. 인기 높을 때는 ‘행사'를 뛰면 시간당 큰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당시 인기가 높은 상태에서 황금시간대에 매일 2시간 생방송을 결심한 건 단지 한 프로그램을 하느냐 마느냐 이상의 결단이었을 듯합니다. 장기적으로 인생에서 뭘 얻고 뭘 버릴까의 결단이랄까. =정찬형 프로듀서(현 MBC 글로벌 사업본부장)가 찾아와 제안을 했을 때 “게스트로 일주일에 한번은 할 수 있다”며 선수를 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마흔이 넘으면서 사회적 책임을 나눠야 하지 않겠냐”며 약점을 찌르시더라고요. 이미 여러 시민단체를 돕고 있는데 굳이 라디오에 시간이 묶여서 일할 필요까지 있을까 했더니, 발로 뛰어 기여할 수도 있지만 방송으로 더 큰일을 할 수도 있다고 그러시더군요. 또 MBC 라디오에서 일하는 건 연예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기도 해요. 라디오는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매체예요. 텔레비전은 감정을 표정과 눈빛으로 속일 수 있지만 라디오는 절대 가짜로 할 수 없어요. 목소리의 떨림이 먼저 진실을 전하거든요. 신기하죠? -정찬형 본부장님이 설득할 때 시사 프로그램 2년 하면 대학원 박사과정에 값하는 내공이 생긴다고 하셨다면서요. 배우는 걸 좋아해 그 대목에 넘어가신 것 아닌지. (웃음) 사실 공부 좋아하는 사람한테 한국의 시사 프로그램만한 학교가 없을 거예요. 오늘 뭐 하나 알아두면 내일 또 다른 분야에서 일이 터지니까요. 그런데 처음에는 광고주들이 회의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광고야 PD가 걱정할 문제고 저야 잘 안 되면 잘리는 것이고 잘되면 오래가는 것이고. (웃음) 다만 MBC가 인내를 갖고 기다려주는 면이 있죠. 방송을 20년 했는데 설마 떨까 했는데 막상 그 큰 라디오부스에 혼자 앉아 있으니 누구든 떨리겠더라고요. 시그널 음악이 나오자 마음은 안 떠는데 몸이 떨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날 방송 들은 분들은 “저래서 시사 프로 하겠어?” 했을걸요. 방송 끝나고 문 열린 화장실 앞을 지나가는데 우리 PD가 소변을 보며 벽에 머리를 찧고 있더라고요. (좌중 폭소) 아마 내가 저 여자를 왜 데려왔나 싶었겠죠. 무척 미안했는데 화장실에서 돌아오더니 제 앞에선 막 칭찬하면서 격려를 해주더라고요. -방송을 듣다보면 상대를 좋게좋게 감싸면서 대화해야 본인도 마음이 편한 성격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협의 중입니다”, “A를 하면서도 B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같은 관료적인 두루뭉술한 답변이 나오면 “그래도, 저기, 대략 언제쯤 윤곽이 나올까요?” 하며 꿋꿋이 물고 늘어지시더군요. =역시 정치인들과의 인터뷰가 가장 힘들어요. 가끔 호통치는 분들도 있고요. 그러면 그냥 받는 거죠. 거기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도 없고요. 진심은 제가 아니라 청취자가 느끼거든요. 저 정치인이 가는 길이 맞구나, 아니야 저 사람 말은 가짜구나라고 듣는 분들이 느껴요. -사실 저는 라디오 전화연결 인터뷰가 듣기 부담스러워요. 질문자와 답하는 사람의 의중이 확실히 어긋날 때 저걸 어찌 마무리짓나 조바심이 나서요. 더구나 1분에 몇회 웃어야 한다 계산하며 연기해온 코미디언으로서 대화가 초점없이 흘러갈 때 초조하지 않으세요? =다행히 제가 아나운서들과 교양 프로그램 MC를 많이 해봤어요. 아나운서들이 처음에는 딱딱하게 진행하는데 어느 순간 제가 유도하는 쪽으로 빠져들다보면 상당히 실력이 향상된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방향으로 게스트들이 빗나갈 때 쓰윽 끌어오는 개그맨만의 능력이 있나봐요. 저희 프로그램에서 뉴스 브리핑을 하는 기자들도 처음에 제가 툭툭 애드리브를 던지면 “나한테 그러지 마세요” 하고 짜증냈어요. 그런데 예를 들어 비 오는 날 넌지시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 하는 노래 한 소절 해보시라고 부추겨 생방송 중 어쩔 수 없이 기자가 노래를 한 거죠. 막 부끄러워했는데 막상 방송 끝나고 친구들이 전화해서 재밌었다고 칭찬을 해주면, 다음부터는 제가 뭔가 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애드리브 하고 싶어하는 눈빛을 보내요. (웃음) -확실히 김미화씨가 긴장을 풀고 진행하니 패널들도 화법이 달라지는 걸 느껴요. 청취자 눈높이에 맞춰서 기본적인 개념도 되묻고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큰 강점입니다. 하지만 이제 김미화씨도 5년쯤 진행을 하다보니 식견이 쌓였잖아요? “이런 견해도 있던데요”라는 인용 대신 ‘나’를 주어로 반론을 하고 싶은 충동이 가끔 생기지 않습니까? =어느 부분에서는 의견을 밝히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의견을 제시해서 패널의 대응을 청취자에게 전달하는 게 더 좋은 방송이라고 생각해요. 또 오늘 우리 프로를 처음 듣는 청취자도 있을 테니, 제가 아는 부분을 모두들 안다고 치고 이야기하면 무례라고 생각해요. 명랑한 성격이 인자 속에 있는 것 같아요 -본래 밝은 성격이죠?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내성적인 시기가 있었다고도 들었습니다만. =명랑한 성격이 인자 속에 있는 것 같긴 해요. 아버지가 폐를 앓아 누워계실 때에도 어른들 앞에서 이미자씨 노래 흉내내고 1원씩 5원씩 받아 군것질하는 재미에 나돌아다녔어요. 수유리 천지촌 부근 반지하방에 살았어요. 창문 위로 사람들 발이 지나다니는. 엄마는 보따리 옷장사를 하느라 시골을 다니다 한달, 보름 만에 집에 돌아오시니 제가 아버지 수발을 들어야 했는데 만날 논둑 밭둑 뛰어다니며 노래하고 삐라 줍고 자연을 즐기고…. (웃음) 환자 입이 계속 마르는데 주전자에 거즈를 담가 아버지 입가에 연결해놓고 나가 놀았어요. 어디서 그런 잔머리가 나왔는지! 그러다 아홉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해장국집 하느라 날 돌볼 정신이 없었죠. 한 친구가 “아빠도 없는 게”라고 놀려서 걔를 때렸는데 선생님이 이유도 묻지 않고 제게 의자를 들려 벌을 세웠어요. 반항심에 학교를 안 가고 길음시장에서 살다시피했죠. 결국 선생님이 집에 연락을 했고 엄마가 일수 찍는 치부책에 칸을 그려서 학교 갈 때마다 선생님 사인을 받아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 사인이 너무 쉬운 거예요. (웃음) 며칠 학교 다니다 그냥 사인을 제가 흉내내고 한동안 또 안 갔죠. 그제야 엄마가 상황을 알고 전학을 시켜줬어요. 새 학교 친구들은 제가 아빠 없는 아이라는 걸 몰랐어요. 그때 “아, 나를 놀린 그 애한테 내가 아빠 없는 아이 표시를 낸 게 화근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더 까불고 명랑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약간의 성격 개조였다고나 할까? -시장 골목이 중요한 추억의 장소겠네요. =정말 그래요. 지금도 친아버지 사진이 한장도 없어 얼굴을 잘 기억 못하는데 그때 시장에 뻥튀기 파는 아저씨가 돌아가신 아버지랑 너무 닮아 종일 쫓아다닌 적이 있어요. 혹시 우리 아버지가 살아서 왔나 하는 어린 마음에. -김미화씨는 지금도 맏딸 기질이 강해 보여요. 뭔가 사달라고 조르면 안 된다는 걸 스스로 알고 나아가 여차하면 엄마를 내가 보호하고 달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딸 있잖아요. 어머니는 맏딸을 어떤 존재로 생각했나요? =지금 생각하면 애증의 관계라고 할 수도 있겠죠. 너무 일찍 혼자가 된 엄마는 심한 고생을 했어요. 동네 개들에게 쫓기며 보따리 행상을 할 때는 “옷 사세요” 소리칠 용기가 안 나 10원짜리 크림빵 대신 막걸리 10원어치를 마시고 기운과 용기를 내서 호객을 했대요. 손님들이 모두 간 뒤, 자식 붙들고 그런 눈물어린 하소연을 하실 때면 엄마한테 정말 잘해야지 가슴이 무너졌어요. 저는 정말 속을 안 썩였어요. 3km 등하굣길을 걸어다니며 차비 100원을 모아 천원, 만원 만들어 갖다드렸죠. 일찍 일어나 시장에 가서 배추 시래기를 마대에 얻어서는 갈래 머리 위에 이고 엄마 해장국집 재료로 갖다드리고 등교했고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공사판에서 하던 함바집에 라면을 끓여 날라준 다음 남은 라면을 먹었어요. 엄마는 지금도 제 말이라면 서방님 말보다 더 솔깃하고 다투다가도 한마디에 눈 녹듯 사르르 녹아요. 그런데 엄마가 가여우면서도 거기서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이 컸죠. -어쩌면 그래서, 첫 결혼을 일찍 스물셋에 한 걸 수도 있겠네요. 어서 내 가정을 처음부터 새롭게 만들어 잘해보고 싶어서요. =나중에 엄마를 원망한 적도 있죠. 엄마한테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선택을 잘못한 게 아니었을까 하면서요. -어렵게 유년을 보내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 인터뷰에서 “당시엔 집이 어려우면 고아원에 보내기도 했는데 그러지 않고 키워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 걸 보고 실감했습니다. =사실 저를 외국에 입양 보내려 한 적이 있대요. 주인집 할머니가 색시 너무 고생한다며 입 하나 덜라고 소개를 해준 거죠. 외국인 군인 두명이 집에 왔는데 팔뚝의 노란 털이 선명히 기억나요. 근데 엄마가 마음을 바꾸셨죠. 커서 왜 그때 미국 안 보냈냐고 따지기도 했어요. “갔으면 오프라 윈프리 저리 가라였을 텐데” 하면서. 하하. -포옹하는 걸 좋아하시죠? 웬만한 남자연예인하고 나란히 서면 겨드랑이 밑으로 쏙 들어가요. =그래서 만든 아이디어가 서세원씨와 했던 KBS <코미디 세상만사>의 ‘밤이면 밤마다’였어요. SBS 전속기간을 끝내고 프리랜서 선언하면서 기획한 프로그램이었죠. 잠옷을 입고 날마다 남편을 바꾸는 스토리라 공영방송에서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덤덤한 반응이더라고요. (웃음) 예쁜 연예인이 했다면 너무 선정적이라고 했을 텐데. 나중에 세어보니 제가 이백몇십명 남편을 바꿔가며 안아보고 누워보고 했어요. 출연자들에게 부인이 뭐라 안 하더냐 물었는데 “김미화씨랑 하는 거라면 전혀 상관없다”고 했대요. 기분 나쁘죠. (웃음) -지금이야 스탠딩 코미디나 버라이어티가 주류가 되면서 연기 도중 코미디언 자신이 웃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지만 김미화씨는 <쇼 비디오자키> 때부터 웃음이 많으셨어요. =웃음이 많아서가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한 컨셉이에요. 당시 여자 코미디언은 꽃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맞장구만 치는 예쁜 여자들을 보면서 왜 저럴까 고민했어요. 그 이면엔 제가 꽃이 될 수 있는 얼굴이 아니라 꽃으로서는 결코 선택될 수 없다는 점도 있었죠. 그럼 내가 살길은 뭘까, 성 구별없이 함께 갈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개발해야 된다고 느꼈어요. KBS 2기 개그맨으로 김한국, 이봉원, 이경애, 조금산, 임미숙 등이 있었는데 그중 대장인 김한국씨와 제가 아이디어 놓고 많이 싸웠죠. 뭘 하더라도 김한국하고는 절대 안 한다고 이를 갈았는데 ‘쓰리랑 부부’ 콤비가 됐어요. (웃음) 싸우면서도 저 사람은 프로다 느낀 거죠. 그 무렵에는 연기하다 웃으면 NG였어요. 연기자가 웃으면 방청객과 시청자는 어디서 웃으라는 거냐며 혼났죠. 하지만 전 다르게 생각했어요. 편집할 때 코미디 프로그램에 가짜 웃음을 깔잖아요. 따라 웃게 하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어울리지 않는 곳에 부적절한 강도로 들어가면 설거지하다가도 굉장히 귀에 거슬려요. 그래서 전 아예 틀을 깨고 그냥 내가 웃자고 생각한 거예요. -1999년 출범한 <개그 콘서트>의 산파 역을 하셨죠? 선후배가 새로운 양식 안에서 같이 연기하는 건 놀랍지 않았지만 까마득한 후배를 더 돋보이게 하는 연기를 기꺼이 선배가 하는 태도가 신선했습니다. =산파가 아니고 제가 낳았다고 할까. (웃음) 주저하는 KBS 본부장을 기획서 들고 쫓아다녔어요. 3개월간 신인들을 연습시킬 테니 기회를 달라, 파일럿을 떠보고 재미없으면 안 내보내면 되지 않냐고요. PD가 결정된 다음 전유성, 백재현씨를 끌어들였죠. 그때 <이소라의 프로포즈>가 인기였는데 그걸 보면서 저런 공연은 방청객이 스스로 오는데 코미디는 왜 돈 주고 방청객을 불러야 할까 고민했거든요. 연극식으로 관객을 모으면 재밌겠다 싶었고 백재현씨는 그런 연극을 이미 하고 있었어요. PD가 관객이 안 오면 어쩌나 겁을 내서, 첫회는 컬투 삼총사가 나온다는 걸 부각하고 신인개그맨도 함께한다는 내용을 뒤에 붙였죠. 컬투가 대학로 연극을 하고 있었으니 그 공연을 공짜로 볼 수 있다면 방청객에게 메리트가 생기잖아요. 그러나 사실은 신인들이 주인공이었죠. 거기서도 제가 중요하게 생각한 컨셉은 선배들이 후배들 공연을 뒤에 앉아 지켜본다는 거였어요. 김대희, 김영철 같은 2, 3개월 된 친구들이 연기할 때 20, 30년 선배들의 웃는 모습이 화면에 비치면 시청자가 “얼마나 웃기기에 베테랑들이 웃을까” 하고 인지하게 되니까요. 실상 우리는 연습장면을 수십번 봐서 웃음도 안 나고 지켜 앉아 할 일도 없지만 반드시 그렇게 했어요. 저는 모든 사회 부문이 여러 개의 탄탄한 층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요즘은 자칫 잘못하면 선배만 있고 후배는 없거나, 선배는 없고 후배만 있는 코미디가 될까봐 걱정이 돼요. 그맘때 저는 서세원씨와 방송사에서 7년째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고 시청률도 괜찮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동생이 “언니는 잘나가는 코미디언이지만 너무 어른들을 위한 코미디만 하는 거 아냐? 고루해 보여”하는 거예요. 성인 코미디를 하는 내 자신에 불만은 없었지만 후배들과 뭉쳐서 한다면 스스로 젊어지고 5년 할 걸 10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후배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주는 일은 어찌 보면 내 파이를 나눠주는 거라 선뜻 용기가 안 났어요. 좋은 선배로 남고 싶은 욕심도 강하지만 내가 만든다고 그 무대에서 내가 오래 갈 것도 아니고 두려웠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코미디가 발전해야 결국 코미디언인 내 가치도 올라갈 거라고 판단했어요. 제가 정해놓은 묘비명이 “웃기고 자빠졌네”예요 -김미화씨는 여러 문제를 그런 식으로 확장해서 사고하시는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개그 콘서트>는 맞아떨어졌어요. 그러나 약간의 오산이 있었죠. <개그 콘서트>를 기획했을 때 저는 <젊음의 행진>의 ‘짝궁들’처럼 1, 2, 3, 4기를 배출하고 그중에 스타를 만들어 다른 프로그램에 내보내는 형태를 생각했어요. 그때 KBS 코미디 프로그램이 세개였는데 예컨대 심현섭, 김영철이 개콘 1기의 스타로 배출된다면 그들을 선배 프로그램으로 보내 기운을 불어넣고 개콘은 2기를 뽑는 거죠. 그러면 세 프로그램이 다 살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방송은 제 생각보다 더 상업적이었어요. 개콘이 잘되니 출연자들에게 다른 프로를 못하게 했고 오히려 다른 프로그램이 폐지된 거예요. 개콘이 제작비 대비 효과가 컸으니까요. 신인은 출연료가 저렴한데다 원래 제가 요구한 컨셉이 빈 무대에 조명만 때리는 거라서 세트도 없었거든요. -동세대 코미디언들에게는 어쩌면 김미화씨가 원망을 들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도요. 미안한 부분이에요. 전 그저 가수 팬클럽이 찾아와 “누구 짱” 하듯 개그맨도 환호받는 풍경을 보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어요. 발전적 방향으로 간 건 맞는데 기성 코미디언 설 자리가 없어진 건 실수였다 싶어요. -그런 오차도 경험했으니 본인 이름을 건 코미디 프로덕션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스스로 자유롭지 못했던 ‘쓰리랑 부부’ 시절 경험이 있어서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직 현장에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정해놓은 묘비명이 “웃기고 자빠졌네”예요. (좌중 웃음) 저는 나이 들어도 방송사에 아이디어를 들고 갈 수 있고 후배들이 코미디를 잘하면 나 좀 키워달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디든 스며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호호 할머니 컨셉으로 젊은이들 버라이어티 쇼 나가서 막 나무라고 웃기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충분히! -기사들을 종합해보면 시사 프로그램 진행은 궁극적으로 더 좋은 코미디언이 되기 위한 것이고, 방송 활동을 열심히 하는 건 세상에 도움을 줄 힘을 갖기 위해서라고 말씀해오셨어요. 목표의 위계가 그렇게 되는 건가요? =하하. 사실 계획없이 살아요. 저희는 영원히 비정규직이잖아요. 며칠 전에 저, 낮 프로그램(SBSTV <김미화의 U>) 잘렸어요. 한 2년6개월 했나봐요. 그렇게 계획없이 살지만 우주의 힘은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 남편과 재혼하고 처음 싸웠는데 제가 일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 원인이었어요. 낮밤으로 일일방송을 하니 새벽에 나가 별 보고 들어가잖아요. 하루는 남편이 아침밥을 차려놓았는데 몸이 힘들어 내려가보지도 않은 거예요. 밥을 차렸는데 눈도 안 떠보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서 힘들다니까, 몸 아픈 건 당신 일 욕심 탓이지 내가 보필을 제대로 못해서냐고 반문하더라고요. 하하. 정색하고 일 줄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얼마 있다가 PD가 “프로그램 잘립니다” 하는 거예요. “아, 네에” 하고 돌아왔어요. (웃음) 그럴 때 서럽긴 해요. 이번엔 안 그랬지만 PD들은 프로그램 지장 생길까봐 MC에게 잘리는 날 알려주거든요. 비정규직의 설움이죠. 암튼 상심해서 “여보 내가 잘린대요” 했더니 경사났대요. 그래서 “서방님은 말대로 되니까 좀 말을 조심해주세요” 했죠. (웃음) -사실 <김미화의 U>가 처음 출범했을 때 제가 받은 인상은 김미화씨가 그냥 인기있는 MC로 기용된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김미화씨가 시민운동 참여와 후배 양성을 통해 축적한 네트워크와 정보를 추수하는 기획이라는 느낌마저 있었어요.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겠죠. 저는 자극이 생기면 그걸 심연으로 끌고 내려가는 게 아니라 박차고 올라가는 기질이 있어요. 물론 팀원들과 프로덕션은 섭섭해하고 일거리 걱정도 되지만요. -<김미화의 U>는 그런데 회를 거듭하면서 사회적 이슈보다 육아나 살림, 개인의 입지전쪽으로 소재가 흐르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어요. =약간은요. 그런 색깔은 CP에 따라 달라지는데 평상시에는 말씀하신 내용을 다루면서 가끔 큰 건을 하나씩 턱턱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셨고 수십개의 시민단체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김미화씨의 자세를 보면 연예인으로서 사회복지에 도움을 준다는 입장이 아니라, 사회복지사업 입장에서 거꾸로 연예인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있어요. =워낙 오래해서 그런가봐요. 사회 참여는 누구한테 보여주거나 인기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기에 보탬이 된다고 봐요. 제가 이만큼 오래 활동할 수 있는 것도 봉사하는 모습을 통해 김미화가 하는 한마디는 진실일 것 같다는 한 자락 믿음을 대중의 마음 저변에 깔았기 때문 아닐까요? 어떤 토크쇼를 하건 코미디를 하건 남을 돕는 이의 연기를 보는 것과 돕지 않는 사람의 연기를 보는 건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신인 시절에는 프로그램에서 잘리는 것이 큰 아픔이었지만 지금은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 굳이 특정 프로 안에서 저를 못 보여줘도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 제가 원하는 대로 끌어갈 수 있는 중량감을 축적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이 드는 건 참 좋은 일이에요. 그렇죠? 2002년 데뷔 20주년 기념 <김미화의 코미디 스쿨>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노래 실력도 뛰어나고 후배들과 어우러져서 보여주는 코너들이 다 훌륭했어요. 4개월 준비했다면서요. =오래 준비한 쇼였는데 AD가 실수를 해서 방청객을 다른 날짜에 모집했어요. 관객이 없으면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공연이어서 부득이 돈을 주고 방청객을 불렀죠. 녹화 보이콧을 하면 방송사의 피해도 컸고요. 진짜 많이 울고 무대에 올랐어요. -그때 무대 오프닝에서 “날 봐 비밀은 전혀 없어”라고 노래하셨죠. 지금은 헤어진 전남편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고요. 오랫동안 힘든 결혼생활이었음을 알게 된 지금, 그 모습을 다시 보니 기분이 복잡해졌어요.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니, 때에 따라선 환경에 따라 아픔을 잊을 수도 있고 관계란 것이 꾸준히 나쁜 건 아니겠죠. 예전 남편이 다른 건 몰라도 제 활동에는 많은 지지를 보내준 편이었어요. -힘들 때 운다고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계신 듯합니다. 2005년 초에 이혼으로 사생활에 큰 매듭을 지었는데 바로 그해에 많은 일에 뛰어드셨어요. 진행을 시작했고 <김미화의 U>도 그해 출발했죠. =제가 일을 벌이려고 그런 게 아니에요. 일은 줘야 하죠. 방송사 PD들에게 너무 고맙고 최선을 다하고 싶은 이유가 그때 경험 때문입니다. 기자들이 연일 제 이혼을 대서특필하는 와중에 PD들이 저를 하차시키지 않고 외려 새 일거리들을 줬어요. PD도 방송사 뒷문으로 다니고 있는 저한테 와서 섭외를 하는 거예요. 깜짝 놀라 “제 소문 못 들으셨어요? 저 지금 복잡해요” 했더니 그거랑 상관없이 해달라고 하셨어요. <세계는 그리고 지금은> PD도 어쩔 거냐는 기자들 질문에 “사생활은 사생활이고 일은 일인데 김미화씨 일 잘하고 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느냐. 아무 계획없다”고 대답해줘서 저를 편견에서 꺼내줬어요. 그런 기사가 나가면 타 방송사의 생각도 영향을 받죠. 헛살지 않았구나 싶었어요. 우리 사회에는 “이혼한 여자가 뭐 할 말이 있어 방송에 나오느냐”고 말하는 보수적인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저 역시 그게 무서워서, 내 일을 모두 잃고 나락으로 떨어져 아이들한테 불행한 엄마의 모습을 보일까봐 오랫동안 망설였던 거고요. 온 동네 도로포장을 뜯는 운동을 해볼까 해요 -모든 연예인이 그렇지만 속으로 우는 일이 익숙하실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도… 예전 제 삶이 참 슬퍼요. 어느 날인가 침대에 누워 있다가 눈을 떴는데 “어, 내가 전혀 행복하지 않은데 왜 이러고 있는 거지?”라는 깨달음이 퍼뜩 들었어요.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여기서 더 잃는다 한들 뭘 잃을까 하는 각성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어요. 배추장사든 풀빵장사든 하자, 리어카 끌고 눈썹에 테이프 붙이고 ‘순악질 풀빵’, ‘일자눈썹 풀빵’이라고 팔면 사람들이 길에서 많이 사줄 거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 거예요. (좌중 눈물 글썽이다 폭소) 그날로 결심하고 PD에게 먼저 “이런 소송을 할 건데 저를 자르세요” 했죠. 음, 그래서 더 부담되어 못 잘랐나? (웃음) 재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여태 살아온 생애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도 있는 건데. -를 함께 진행한 장정일 작가께 들었습니다. 때로는 게스트조차 불성실한 패널일 경우 정독을 안 하고 오는데 김미화씨는 바쁜 와중에도 한권은 반드시 완독하고 방송에 임해서 놀라웠다고 하시더군요. =그 프로그램 하면서 간이 나빠졌어요. 밤중까지 일하고 다시 새벽까지 책을 봐야 하니까. 흥미있는 분야 책은 빨리 읽히는데 때로는 그 뭐냐 우주의 탄생에 관한 책도 읽어야 하니까, 쩝. 그래도 읽어보고 가는 것과 안 읽고 가는 건 달라요. 당시에는 한회에 네댓권씩 소화해야 했어요. 그런데 공짜로 책을 주는 게 너무나 기뻐서 “와 이거 좋은 프로그램이다” 신이 났죠. (웃음)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셨죠. 후배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고 코미디가 발전해야 나중에 돌아갈 곳이 있을 거란 말도 하셨고요. 그런 말씀을 들으며 <친절한 지주님>이라는 동화가 생각났습니다. 소작인들에게 인색하기로 악명 높은 지주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돼요. 순진한 그녀는 자기를 대하는 모습만 보고 남편이 아주 선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만 믿다가 딸 하나를 남기고 숨졌어요. 엄마를 닮은 딸은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동네에서 만나는 모든 어려운 이웃들을 “우리 아빠가 도와줄 거야”라며 집으로 데려오죠. 지주는 “이건 내가 아닌데” 하면서도 딸의 믿음대로 재산을 마을 곳곳에 퍼주고 결국 빈털터리로 죽습니다. 하지만 한푼 없이 남겨진 그의 딸을 이웃은 마을 전체의 아이로 소중하게 키웁니다. 마을 전체를 딸에게 남겨준 셈이 된 거죠. 장황해졌는데 내 가족의 부를 축적하기보다 나를 둘러싼 사람과 세상에 부조해서 나를 확장하고 내 가족을 확장하는 것이 잘사는 길이라는 생각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있어요. 오래된 것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노인들이 동네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두레가 살아 있고 유기농 음식을 먹던 외국의 한 시골 마을이 있었어요. 그러던 마을이 산업화되고 젊은 애들이 돈 벌러 외지로 나가면서 황폐해지죠. <친절한 지주님> 이야기처럼 동네 어른들이 아이를 키워주고 지혜롭게 해주는 것이 젊은 엄마들의 일을 크게 덜어주죠. 그런데 우리는 지금 모든 게 개인적이잖아요. 제가 지금 사는 시골로 이사한 이유도 그런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이라서예요. 얼마 전 한 TV다큐멘터리를 보니 영국 한 마을에서 포장을 뜯어내고 있더라고요. 우리 동네도 도로가 비포장이라 집에 들어가면 진흙구덩이에요. 그런데 길섶에 풀이 돋아나고 내린 빗물이 땅 밑으로 빠져 자연이 순환하는 걸 보면서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삶이구나 절감해요. 지열이 괴면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잖아요. 지금은 이장님이 길을 깔아주신대도 사양하고, 도리어 온 동네 포장을 뜯는 운동을 해볼까 싶기도 해요. 한 마을에서 뜻을 모아 오래된 것으로 돌아가는 거죠.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 들었지만 정부가 기본적인 예산 운영 방침을 얼마 전 발표했는데 사회복지예산을 최소화하고 개발연구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했더군요. 소식을 전하면서도 힘이 빠지지 않으셨나요? =힘빠지죠. 사실 지금 책정된 복지예산도 많지 않고 골고루 돌아가지도 않아요. 사회가 정말 잘되려면 진심을 담아 복지를 해야 해요. 시민들이 당당히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교육도 마찬가지예요. 등록금 걱정 없도록 나라에서 해주면 아이들이 나라를 위해 반드시 봉사하고 그 투자가 돌아와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대출의 이율도 높고, 도와주는 듯하면서도 정말 어려운 사람 입장에 입각해 돕는 정책은 매우 부족해요. 개인적으로는 복지예산을 늘리면서도 다른 분야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봐요. 물론 정치를 안 해봐서 모르고 거기도 나름 아픔이 있겠지만요. 건강보험 민영화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판단한 모양이라 다행이에요. 제가 배울 때도 그렇게 가면 안 된다고 배웠거든요. 그래서는 정말 안 되는데…. 追伸 “방송에 달통한 그를 초심자가 파트너로 얻는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다.” 김미화와 인터뷰를 나누는 동안 그녀와 를 나란히 진행했던 장정일 작가의 전언을 체감했다. “팰 데가 없는 게 아니라 빈틈이 없는 것이제!”라는 순악질 여사의 호언장담도 새삼 떠올랐다. 그녀가 노를 젓는 배에 무임승차한 기분으로 인터뷰를 마치고 한 일이 없다는 자격지심에 곧이어 시작될 생방송 견학을 청했다. 방송 20분 전. 그녀는 대본에 띄어읽기를 표시하고 신문 더미에 고개를 묻었다. “쇠고기 협상은 전 정권의 설거지”라는 주장을 읽으면서는 “설거지를 하려면 깨끗이 해야 하는데”라는 네 아이의 엄마다운 혼잣말을 덧붙였다. 그 와중에도 라디오국의 여러 동료들이 그녀에게 다가와 포옹을 나누고 갔다. 생방송 스튜디오는 연날리기를 하는 현장과 비슷했다. 작가, 스탭, 패널, 프로듀서 모두 따로 조용히 움직이면서도 한결같이 연이 땅에 떨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하나의 목표로 팽팽히 긴장해 있었다. 조금 아까 자신을 비정규직이라고 표현했던 김미화에게 작가들은 노동절 생방송을 여는 말로 적절하게도, 닷새 황금연휴가 남의 나라 이야기인 비정규직/외국인 노동자들을 기억하자는 멘트를 써주었다. 라이브 공연까지 수용하는 큼직한 생방송 스튜디오 안에 홀로 앉은 자그마한 체격의 여인은 아주 외로워 보였다, 라고 취재수첩에 쓰는 순간 김미화는 ‘뒤통수퀴즈’ 코너의 효과음을 위해 자신의 뒤통수를 아낌없이 후려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