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변신

카프카식으로 얘기하면 나는 벌레로 살아왔다. 물론 나 같은 범부의 속류적 해석에 따를 때 그렇다는 얘기다. 적어도 나는 꽉 짜여진 현대의 조직 속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레고리 잠자를 벌레로 변신시킨 상념, “식구들만 아니라면 이런 일은 이제 집어치웠으면” 하는 생각은 언제나 실천됐다. 아니 애초에 식구들 때문에 하기 싫은 어떤 일을 한 적이 없으니 나는 원래 벌레였다. ‘세상인간’(Das Mann)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불행한 아내의 몫이었다. 전적으로 내 무능력 탓이겠지만 나이 마흔 중반에 이르도록 이룬 것이 하나도 없는 데는 이렇게 ‘벌레’로 산 것도 일조를 했을 것이다. 남들보다 대학을 늦게 졸업한 것은 시대상황 탓으로 쳐도 보통 2∼3년이면 따는 석사학위를 7년 만에 받은 건 내가 경쟁의 압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10년이 넘어서 이제는 제출자격조차 말소된 박사학위도 그 때문이라고 해두자. 내가 방송을 시작한 것도 우연이었다. 5년 동안 이름을 날리던 전임 진행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바람에, 그럴듯한 ‘말빨’을 찾아 헤매던 기독교방송 피디의 테스트 제의에 나는 재미삼아 응했고 그것이 3년여 방송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진행을 맡은 그해 9월, 기독교방송 노동조합은 파업에 들어갔다. 내가 안달을 하면서 매일 사장을 비판하고 노조를 옹호하는 내용을 내보낸 것도 내가 원래 벌레라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방송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기독교방송의 전통 덕에 무려 석달이나 버티다가 그해 마지막 날 결국 나는 ‘짤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벌레여서 그랬는지 그다지 충격이 큰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방송은 마약이었다. 결국 별 고민없이 학계에서 한 걸음씩 멀어져서 다른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어느 프로그램도 그리 오래 하지 못했다. 각각 ‘짤린’ 이유가 다르니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결국 내 ‘벌레’ 근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카프카의 벌레가 집과 사회에 무책임한, 좋게 말해서 한없이 자유롭고 싶어하는, 나 같은 인간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옛 기억을 더듬어본다면 카프카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촘촘하게 맺고 있는 타인과의 관계를 끊었을 때 과연 무엇이 남을까” 하는 실존적인 문제였던 것 같다. 내가 공부해온 경제학에 따른다면 원래 성립되지 않는 질문이지만 사람에 따라 촘촘함의 정도는 다를 것이니 내 멋대로 카프카의 뜻을 ‘해석’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렇게 카프카까지 ‘변신’시키면서 누가 물어보지도 않은 내 이야기를 주저리 쓴 것은 내가 이제 생애 처음으로 본격적인 ‘세상인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딱 4주 동안 독자가 되어주신 여러분께 작별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신문이나 다른 매체의 독자에게도 이 지면을 빌려 고맙고 죄송하다는 인사를 드린다. 특히 맨 처음부터 나와 어울리지 않았던 <씨네21> 독자들에게는 송구스럽기 그지없다. 우리의 후덕한 편집자들이 ‘어울리지 않음’을 ‘색다름’으로 해석해서 계속 쓰도록 배려해준 것에도 감사를 드린다. 물론 세상인간으로 오래 살 생각도 없고 또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왕 세상인간이 될 바에는 진짜배기 세상인간으로 살고 싶다. 스스로 진흙탕에 몸을 담그고 쓰레기도 뒤집어쓸 요량이다. 1년여, 또는 5년을 그렇게 살고도 내가 벌레의 속성을 잃지 않고 있다면 다시 여러분을 뵐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그레고리 잠자의 올바른 순서를 밟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 훨씬 더 깊은 사유를 보여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족> 말없이 떠나지 못하고 변명을 하려면 짧을수록 좋은데 아직도 채워야 할 매수가 남아서 혹시 나 같이 ‘거꾸로 변신’을 강요받을지 모르는 분들께 충고를 드린다. 한 사람을 너무 사랑하면 위험해진다. 특히 빼어난 사람을 사랑할 때는 일정한 거리를 두시기를….정태인/ 경제평론가 * 정태인씨가 이 글을 보내온 12월 26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인수위원으로 임명됐습니다. 본격적인 ‘세상인간’, 정치인이 됐기 때문에 언론 매체에 글을 쓰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의사를 글과 함께 전해왔습니다. 그가 ‘벌레’로 겪었던 경험이 정치에 도움이 될 것을 믿어마지 않으면서, 건투를 빕니다. - 편집자

신경질쟁이 영화천재 우디의 <스몰 타임 크룩스>

‘영화 천재’ 우디 앨런의 영화가 모처럼 영화 팬들을 찾는다.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가 국내에서 개봉한 것이 97년 5월이니 6년 만의 일이다. 우디 앨런은 지난해에도 <할리우드 엔딩>을 들고 칸 영화제를 찾았지만 국내 관객과는 멀어져 있었다. 24일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에 간판을 내걸 <스몰 타임 크룩스(Small Time Crooks)>는 우디 앨런 특유의 기발한 재치와 냉소적인 풍자가 살아 있는 코미디 영화. 60대년풍의 주제음악과 함께 도수 높은 뿔테 안경에 반바지 차림의 레이(우디 앨런)가 등장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레이는 은행 옆의 피자가게가 집을 내놓은 것을 보고 자신도 놀랄 만한 범죄 계획을 세운다. 이 가게를 인수해 장사를 하면서 남의 눈을 피해 땅굴을 뚫어 은행 금고를 턴다는 것. 이미 권총을 들고 은행을 털려다가 한 차례 감옥 신세를 졌던 레이의 말을 부인 프렌치(트레이시 울만)가 솔깃하게 들어줄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레이의 끈질긴 설득과 동료들의 바람몰이에 넘어가 무모해 보이는 계획에 동의한다. 부인의 허락은 얻었지만 숱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피자가게를 다른 사람이 인수해버려 새 주인마저 계획에 동참시키는가 하면 수도관을 잘못 건드려 지하실이 물바다가 되기도 한다. 그나마 애를 쓰고 판 땅굴은 지도를 잘못 읽은 탓에 엉뚱한 곳으로 나오고 만다. 레이의 거듭된 실패와는 반대로 눈가림으로 차려놓은 쿠키 가게는 프렌치의 탁월한 솜씨에 힘입어 날로 번창한다. 불과 1년 만에 대규모 생산라인을 갖추고 전국에 가맹점을 둔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때부터 레이와 프렌치의 사이에는 틈이 생긴다. 프렌치는 부에 걸맞은 교양을 갖추기 위해 바람둥이 미술상 데이비드(휴 그랜트)로부터 특별수업을 받고 레이는 그런 프렌치를 못마땅해 한다. ‘순이’를 만난 뒤부터 우디 앨런의 가시 돋친 농담의 강도가 줄어들었다는 세간의 평처럼 이 영화에서도 할리우드를 비웃고 주류 사회의 위선을 까발기는 노골적인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졸부들의 허영을 풍자하는 태도는 여전하다. 새옹지마와 전화위복이라는 인생유전의 법칙을 전달하려는 의지는 더욱 단단해진 느낌이다. 무릎을 치게 할 만한 명대사와 배꼽을 쥐고 허리를 꺾을 만한 폭소탄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다면 약간의 실망은 감수해야 한다. (서울=연합뉴스)

Zap2it 선정 2002년 할리우드 최고·최악

매년 연말이 되면 각종 엔터테인먼트 관련 온라인 사이트들은 바빠지게 마련이다. 한해를 정리하는 필요조건으로 그해의 최고와 최악을 뽑는 행사를 치러야 하기 때문. 인터넷이 대중의 기호를 가장 잘 드러내준다는 특성 때문에 매년 더 많은 네티즌들이 그런 최고와 최악 선정 결과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왔고, 그 결과 그런 행사들이 더 많은 온라인 사이트들에서 치러지는 선순환을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포털인 eonline의 경우, 올해도 어김없이 ‘Year End Poll’이라는 특집 코너를 통해 지난 한해를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 남자배우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로드 투 퍼디션>의 톰 행크스와 함께 <스타워즈 에피소드2>의 요다를 당당하게 올려놓는 eoline의 뛰어난 감각은 이제 어떤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일 정도다. 대표적인 TV정보 사이트였던 Ultimate TV가 영화 관련 정보 사이트였던 MovieQuest를 합병해서 만든 영화/TV정보 포털인 Zap2it은 그런 트렌드에 새롭게 올라탄 경우다.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라는 제목의 특집을 통해 올 할리우드의 최고와 최악들을 선정해 발표했던 것. 중요한 것은 늦게 시작한 만큼 철저히 준비를 해서인지 다른 온라인 사이트들이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분야를 다루었고, 부문별 결과가 촌철살인의 재미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최근 네티즌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Zap2it은 단연 화제가 되고 있다. 그 결과 중에서 눈에 띄는 것들만 골라면 다음과 같다. 우선 ‘최고의 같은 영화, 여러 역할’ 부문에서는 단연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에서 1인4역을 선보인 마이크 마이어스가, ‘최고의 다른 영화, 같은 역할’ 부문에서는 <플루토 내쉬>와 <맨 인 블랙2>에서 주인공 흑인 남자배우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로사리오 도슨이 <미스터 디즈>와 <시몬>에서 스타 배우를 연기한 위노나 라이더와 함께 선정되었다. 한편 ‘최악의 헤어스타일’ 부문에는 <스타워즈 에피소드2>에서 여전히 황당한 머리 모양을 선보인 내털리 포트먼과 <로드 투 퍼디션>에서 완전히 헝클어진 헤어스타일을 보여주었던 주드 로가 별다른 경쟁없이 뽑혔다. ‘면도 필요’ 부문에는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에서 오스틴 파워의 느끼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그의 가슴털과 함께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에 등장하는 호빗들의 털복숭이발이 선정되어 읽는 이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했다. 한편 ‘무인도에 버려질 경우 함께 있고 싶은 배우’ 부문에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콜린 파렐과 <트리플X>에서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과시했던 아시아 아르젠토가 각각 후보군에 올라 관심을 끌었다. ‘오스카상을 반납해야 하는 배우’ 부문은 의외로 치열했는데, <스노우 독>의 쿠바 구딩 주니어와 <드래곤 플라이>의 케빈 코스트너가 선두자리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한편 ‘연기 좀 그만했으면 하는 감독’ 부문에서는 자신의 영화 <싸인>에 출연했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꼽혀 대다수 네티즌들의 생각과 일치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애교라고 봐줄 만한 정도. ‘자신들의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 영화 출연’이라는 긴 제목의 부문에서는 <맨 인 블랙2>에서 에이전트가 되게 해달라고 조르는 역할로 등장한 마이클 잭슨이, ‘아직도 영화계를 기웃거리는 가수’ 부문에서는 마돈나가 뽑혀 웃음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배드 컴패니>의 앤서니 홉킨스, <애널라이즈 댓>의 로버트 드 니로, <미스터 디즈>의 애덤 샌들러,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의 마이클 케인의 경우는 ‘단지 돈만 보고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한편 ‘제발 원작을 가만 내버려둬’ 부문에는 박중훈이 출연해 큰 기대를 모았으나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던 <찰리의 진실>과 함께 애덤 샌들러의 <미스터 디즈>가 선정된 것에는 무리가 없었으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썸니아>까지 거론되어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마지막으로 Zap2it이 회심의 역작으로 선보인 부문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속편들’ 부문. 놀라운 것은 수상작으로 무려 10여편이나 되는 잠재적인 속편이 거론되었다는 사실이다. <애널라이즈 왓>(Analyze what) <블레이드3: A Vampire never really dies> <제이슨XI: Yes, he still alive> <맨 인 블랙: We are back and we are still black> 등이 그중에서도 읽는 이들의 공감을 가장 많이 이끌어낼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었다. 여하튼 Zap2it이 발표한 이런 선정 결과는 지난 한해의 할리우드를 또 다른 시각에서 돌이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 틀림없다.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분명 그 안에는 의미있는 메시지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모쪼록 할리우드의 제작자들과 배우들이 그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연말연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Zap2it 홈페이지 : www.zap2it.com

망년 중2,임옥상의 송년회

해마다 연말이면 임옥상(화가)은 바쁜 중에도 저명인사와 예술가를 ‘조촐하게’ 평창동 작업실로 초청, 포도주 위주의 망년회를 연다. 누굴 초청해서 술과 음식을 즐기는 파티문화보다는 돈 내고 심적 부담없이 시켜먹는, 마냥 죽치기 술집 분위기를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왜냐며 술 먹은 것도 부담인데, 어영부영 술안주 시중을 들리거나 아니면 내가 직접 챙겨 먹어야 한다면 얼마나 부담인가. 그래서 나는 집이나 사무실에서 거의 절대로 술을 먹지 않는다) 그것만 해도 신기한데, 그는 자신의 1년 작업에 대한 충실한 보고를 마련하는 것 외에 특별공연을 마련한다. 올해의 특별 초대손님은 이은미(가수), 그리고 특별공연은 시가 800만원짜리 19세기 독일 손풍금 연주였다. 이은미는 모처럼 쉬러 왔으니 유쾌했고, 파이프오르간과 구조가 똑같다는 손풍금 연주는, 놀라웠다. 마치 기계로 소리의 내용과 질을 높이는 데 너무 혈안이 된 나머지 잊어버렸던 아니 지워버렸던 음의 처녀성 그 자체를 내뿜으며, 음악과 세상의 경계를 하염없이 간질러댔던 것. 두루마리 한 뭉치를 넣고 돌리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저게 무슨 악본가보지 …그랬더니 옆에 앉았던 마혜일(무용가)이 그런다. 이를 테면 실행파일인 셈이죠…. 맞아 그렇군….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르는 <노래는 즐겁구나>의 서주가 바로 손풍금 소리였던 것 같다…. 아, 최소한 음악에 관한 한 옛날 사람들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네…. 아니 분명, 하늘에 더 가까웠을 거다. 고딕성당처럼 높아서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미소로 번졌을 터. ‘처녀성’이므로 질펀할 걱정도 없이…. 이윤기(소설가)의 과천 집은 넓고 단아했다. 특히 서재는 치밀하면서도 푸근한 것이 이윤기라는 이름이 뜻하는 박학다식과 창작열, 그리고 영국 신사를 연상시키는 손님 환대 능력을 그대로 형상화해놓은 듯했다. 서울 밖으로 나가본 것도 오랜만이고, 나로서는 매우 피곤한 일이고, 나는 원래 초청자 명단에 없는, 이를 테면 불청객인 셈인데도 어색한 기분은 채 1분도 가지 않았다. 권영길을 찍을 거였는데, 정몽준이 갑자기 배반을 때리는 바람에, 허겁지겁 노무현 찍었네… 권영길 한테 미안해…. 그러면서도 ‘노무현 당선’은, 특히 예술가들에게, 고난을 딛고 일어선, 명작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그 자체로 다음 세대에게 교훈과 희망을 주는 경사였던 듯하다. 이날은 기타리스트 김광석의 큰기타 작은기타 연주가 특별순서였고, 일품이었다. 김정헌(화가)은 상당한 카바레 춤솜씨를 내비쳤고 직지사에 있다는 스님은 정말 정갈했고, 최열(환경연합 사무총장)은 북한의 ‘굶주림의 핵’이 걱정이었다. 그렇구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O.S.T

또다시 한해가 가고 다른 한해가 온다. 대통령도 새로이 뽑혔고 새 시대가 열릴 것 같기도 한 2003년, 마음 같아서는 뜻깊게 새해를 맞이하고 싶기도 하지만 역시 나 같은 게으름뱅이는 선물보따리처럼 안겨진 새해 휴일을 그 신물나는 TV와 함께 뒹굴면서 새우깡 먹듯 보내기 일쑤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겨냥해서인지 명절 때가 되면 TV에서는 ‘특선’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영화를 틀어준다. 특선외화, 아니면 특선방화. 또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어느 명절에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해주었던 적도 있다. 롭 라이너 감독의 1989년작인 이 로맨틱코미디 영화는 한때 많은 팬들을 지니고 있던 영화다. 멕 라이언과 빌리 크리스털의 따뜻한 연기도 좋았지만 해리 코닉 주니어가 맡아 했던 재즈풍의 영화음악이 분위기를 잡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영화이기도 하다. 아마도 지난 15년 동안 크게 성공한 영화 O.S.T 목록을 꼽으라고 했을 때 이 O.S.T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를 비롯, 대중적으로 빅히트를 기록한 곡들이 이 O.S.T에 수두록하게 실려 있다. 영화음악의 중추를 담당했던 해리 코닉 주니어는 뉴 올리언스 출신이다. ‘재즈의 지세’가 너무도 강한 이 땅에서 태어난 해리 코닉 주니어 역시 정통 재즈의 자장에 철저하게 포획된 음악 스타일을 구사한다. 무시 못할 탄탄한 피아노 실력을 지닌 그는 이른바 ‘스트라이드’ 주법을 쓰는 전형적인 피아니스트 가운데 하나. 왼손의 주기적인 옥타브 연주에 의해 리듬감과 힘을 동시에 부여받는 이 스타일은 재즈의 발생 때부터 젤리 롤 모튼처럼 뉴 올리언스에서 활약한 뮤지션의 손에 의해 전통이 닦인 그야말로 ‘전통’ 주법이다. <해리…> O.S.T에서도 이와 같은 주법을 잘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목소리는 달콤하면서도 어딘지 약간 느끼한 데가 있는, 그래서 미국적인 스탠더드 재즈 보컬리스트의 정통성을 이어받고 있다. 물론 그의 목소리는 프랑크 시나트라나 토니 베넷 같은 가수들보다는 쿨쪽에 더 가깝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의 내한공연을 본 다음부터는 ‘느끼한’ 쪽에 더 무게가 부여되는 걸 느꼈지만 어쨌든 그의 목소리는 적어도 녹음된 것만으로 본다면 쳇 베이커 풍의 드라이한 느낌이 가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가을 느낌의 영화이긴 하나, 연휴나 명절, 연말연시에는 이처럼 따뜻하고 일상적인 영화들이 최근 들어 많이 TV 전파를 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조금 달랐던 것으로 기억된다. 왜 꼭 명절 때가 되면 <빠삐용>을 했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카카오 부대를 타고 빠삐용이 바다 멀리 사라지는 장면에서 흐르던 테마음악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또, 음… <대탈주>도 유독 많이 등장했던 타이틀이다. 독재정권 시절에 왜 그리 ‘탈출’영화들을 명절 때마다 보여주었는지 참. <닥터 지바고>도 자주 등장하던 레퍼토리의 하나가 아닐까. 어떤 명절에는 <남과 여>를 해주었던 기억도 있다. <카사블랑카>도 어느 명절엔가 보았다. 아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벤허>…. 어쨌거나 ‘명절 TV명화’라는 장르를 새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명절영화에도 흐름이 있고 법칙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

할리우드 속편 영화 줄줄이 개봉대기 중

“전편 만한 속편은 없다?”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의 속편이 전편의 기록을 쉽게 뛰어넘을 기세로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는 요즘 이런 식의 징크스는 별 의미가 없는 듯 하다. 멀리보면 <인디아나 존스>나 <록키>, <람보> 시리즈 등이 ‘형보다 나은 동생’을 보여줬고 최근에는 <맨 인 블랙>과 <러시아워>가 전편보다 한걸음 나아간 속편으로 관객들을 찾았다. 제작자들이 속편 제작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전편을 통해 ‘보장된’ 속편의 흥행성이라는 매력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 영화팬들은 전편의 재미를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고 주인공들의 뒷얘기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속편을 기다린다. 올해 개봉예정인 외화들의 특징은 유독 흥행작들의 속편이 많다는 것. 한층 업그레이드된 <터미네이터3>부터 프랑스 영화 <세남자와 아기바구니2>까지 10여 편의 속편이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촬영을 완료한 후 CG작업 중인 <터미네이터3-기계들의 반란>(수입 워너브라더스)의 배경은 미래 인류의 지도자 존 코너가 20대 청년으로 성장한 현재.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2편에 이어 그를 보호하는 T-800으로 출연해 존 코너를 제거하려는 여자 사이버그 터미네이트릭스와 대결한다. 감독은 1,2편을 연출했던 제임스 카메론 대신 잠수함 영화 의 조나단 모스토우가 맡았으며 한국에는 8월께 개봉된다. 6월과 12월쯤 한국관객들을 찾는 <매트릭스>(수입ㆍ배급 워너브라더스)의 속편 리로디드(reloaded)와 레볼루션(revolution)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주인공(키아누 리브스)의 활약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2편과 3편이 동시에 촬영됐으며 2편에는 <라빠르망>, <늑대의 후예들>의 이탈리아 출신 여배우 모니카 벨루치가 출연한다. 감독은 전편에 이어 메가폰을 잡은 래리 워쇼스키. <세남자와 아기바구니 2>(수입 미디어 필름 인터네셔널)는 1편에서 바람둥이 남자 세 명이 갓난애를 맡아 키운지 18년이 지난 2003년을 배경으로 한다. 85년 메가폰을 잡았던 여성감독 콜린느 세로가 다시 연출을 맡았으며 앙드레 뒤쏠리에 등 ‘세남자’도 1편과 같은 배우가 연기한다. 3~4월 중 개봉될 예정. 한편, 콜럼비아 트라이스타는 <미녀삼총사2-맥시멈 스피드>와 <나쁜녀석들2>를 6월말과 8월초 스크린에 내건다. 각각 카메론 디아즈, 드루 베리모어, 루시 루와 윌 스미스, 마틴 로렌스 등 전편과 같은 배우들이 출연해 시원한 액션과 웃음을 선보일 예정. 이밖에도 <아메리칸 파이3>(UIP)와 <분노의 질주2>(20세기 폭스), <금발이 너무해2>(20세기 폭스), <툼 레이더2>(수입 튜브 엔터테인먼트) 등이 1편의 영광을 꿈꾸며 올해 안에 한국관객들을 만난다. (서울=연합뉴스)

‘후보단일화대소동’팀 특별전

충무로 영상센터 활력연구소는 오는 11일부터 19일까지 후보단일화 대소동 프로젝트 특별전을 상영한다. ‘후보단일화대소동’이란 최진성, 김곡, 김선, 윤성호, 김동명, 원숙현, 이창석 등 개인적으로 디지털비디오작업을 해온 젊은 작가들이 모여 만든 팀 이름. “파랗디 파랗게 생기 넘치는 영상메이커들의 모임”임을 자부하는 이들이 보여주는 자유분방한 실험적 영상물 10편이 소개된다. 최진성의 <행복한 청소년, 건강한 대한민국>은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청소년금연캠페인의 홍보 다큐멘터리 형식을 띄고 있지만 영화 속의 과장된 지지를 통해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순결주의적 정책을 비꼰다. 윤성호의 <중산층 가정의 대재앙>은 촘스키의 책을 보면서 자위행위를 하는 아들과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 영화감독인 형이 실성하는 바람에 형 대신 메가폰을 잡게 되는 동생, 이러한 내용들로 영화를 만들고자 하면서 실제는 자신의 영화에 대해서 떠들고만 다니는 독립영화 감독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자기도취에 우월감에 빠진 작가주의 감독의 초상화를 그렸다. 18일 오후 5시에는 후보단일화대소동팀이 관객들과 만나 창작에 대해 격의없이 이야기하는 1월의 활력인 토크 ‘창작과 노가리의 즐거움’이 열린다. 그밖에 11일부터 매주 토요일에는 디지털 편집을 시작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함께 짧은 영화예고편을 만들어보는 초급 영상교육도 진행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곽경택의 <똥개>

‘똥개’는 족보가 없는 개다. 예전엔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개였고 특별히 영리하거나 멋있거나 예쁜 개가 아니다. 하지만 어딘지 정(情)이 가는 개, 똥개는 고향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똥개>의 주인공은 똥개처럼 살아가는 젊은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그는 모든 판단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친구다. 아무 데나 침뱉고 괜히 눈을 부라리는 양아치지만 남들이 허리를 굽히는 권력이나 권위에 주눅들지 않는 남자다. 곽경택 감독은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서 이 영화를 구상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그 사람은 곽 감독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써서 보여줬고 <친구>를 끝내고 영화제 참석차 몬트리올에 갔다가 그 글을 읽은 곽 감독은 귀국하자마자 영화판권을 샀다. <챔피언>을 끝내고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 <똥개>는 곽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휴먼코믹드라마”다. 누가 “똥개야”라고 부르면 주인공과 주인공이 기르는 똥개가 함께 뒤돌아보는 식의 코미디와 더불어 늘 손해보고 희생양이 되는 똥개의 삶에서 인간적 매력을 발견하는 드라마가 진행될 예정. “돌아가신 분 이야기를 가급적 밝게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은 죽음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로 고민했고 짓눌려 있었다. <챔피언>은 그런 면에서 시험을 치른 것 같은 느낌이고 이번엔 재미있게 웃으면서 찍고 싶다.” 곽 감독이 경쾌한 코미디에 마음이 쏠린 이유다. 실제로 그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면 하고 싶은 대로 한 게 하나도 없는 경우가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그렇다. 자기가 정의라고 믿는 가치를 위해 싸우며 살았는데 나중에 보면 희생양이 돼 있다. 똑똑한 사람, 영리한 사람은 안 하는 짓을 하는데 그게 어쩌다 한번 대단한 용기로 보이기도 한다.” 곽 감독은 여기에 검찰수사를 받은 최근 경험까지 덧붙인다. “무엇이 정의냐, 불의냐의 기준은 각자 다르다. 그걸 객관화한다는 게 법인데 법을 쓸 줄 아느냐와 못 쓰느냐는 정의냐 불의냐와는 다른 문제다. 똑똑한 사람들만 법을 쓸 줄 안다.” 검찰 소환을 받고 지명수배까지 당하면서 이래저래 마음고생이 컸던 만큼 개인의 가치관과 법의 잣대가 어떻게 어긋날 수 있는지 고민한 흔적이 드러난다. 오직 가슴으로 행동하는 똥개의 삶에 자꾸 끌리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곽 감독은 데뷔작 <억수탕>부터 꾸준히 선보인 코미디 감각을 이번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펼쳐 보일 생각이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코미디는 주인공은 울고 있는데 관객은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역설적인 표현법이다. “극중 인물은 심각한데 관객은 웃는 영화, 그게 진짜 코미디다. 극중 인물은 웃는데 관객은 우는 영화, 그게 슬픈 영화인 것처럼.” 똥개의 행동이 정말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난 것이지만 상황의 희극성으로 말미암아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테크닉면에서 또 하나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는 동물연기다. 똥개가 출연해 표정연기를 선보이는 작품이기 때문. 액션장면도 전작들과 다른 스타일을 고민 중이다. 관객이 <똥개>를 보고나서 “와, 골때린다. 그쟈”라는 반응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2003년 2월에 촬영을 시작할 예정.남동청 namdong@hani.co.kr 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청춘의 아이콘, 양아치 변신선언 90년대 방황하는 청춘의 대명사가 된 정우성을 별볼일 없는 양아치, 똥개로 변신시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곽 감독은 정우성의 연기에 이번 영화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도발적이고 반항적인 눈빛의 정우성이 아니라 선하고 따뜻한 눈빛의 정우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감독과 배우는 <챔피언> 개봉 직후부터 꾸준한 만남을 가졌다. “처음엔 다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똥개> 이야기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고 여러 번 만나면서 가능하겠다는 판단을 했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정우성이 살이 찐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곽 감독은 이제 정우성이 살을 불리지 않더라도 똥개로 변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감독이 되고 싶어하는 정우성은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가했다. 곽 감독은 시나리오에 정우성의 몇몇 아이디어를 반영하기도 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김성수의 <영어 완전정복>

작금의 세계화 시대를 맞아, 영어는 단지 영미권에서 통용되는 언어를 가리키진 않는다. 영어는 동아시아 변방에 사는 보통 사람에게도 생존을 위한 구명대요, 교양을 증명할 수 있는 자격이며, 지위를 업그레이드하는 연료로 받아들여진다. 스물 몇해를 사는 동안 단 한번도 영어가 자신의 삶과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해본 적 없던 동사무소 말단 공무원 영주 또한 이 영어의 ‘광풍’을 피해갈 수 없다. 동장님의 ‘세계화 시대의 공무원론’에 이끌려 억지로 영어학원에 등록한 영주는 영어에 관심도, 실력도 없는 탓에 학원생활이 괴롭다. 그러던 그녀에게 서광이 비치니, 난생처음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주는 남성 문수를 만난 것. 천성이 바람둥이인 문수의 의례적 행동을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착각한 영주는 그의 눈에 들기 위해 영어에 매진한다. 영어를 매개로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여는 과정을 로맨틱코미디로 담는 이 영화는 “한국사회의 영어 콤플렉스를 통렬하게 부수려는” 김성수 감독의 바람을 담고 있다. “언어나 사랑이나 결국 마음을 활짝 열 때 진정으로 소통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연출을 결정한 뒤로 김성수 감독은 주위의 삐딱한 시선을 느끼고 있다. ‘김성수가 무슨 로맨틱코미디냐’는 의아함과 불만, 그리고 어이없음이 뭉뚱그려진 반응 때문이다.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를 통해 남성들의 거친 세계를 담아온 그의 영화여정을 생각해보면, 여성적 시선이 두드러질 이 영화는 주인을 잘못 만난 건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처음 고민이 됐다. 하지만 뭔가 새롭고 다른 것을 할 때 신이 날 것 같았다.” 또 느린 템포의 멜로영화는 몰라도, 빠른 호흡의 로맨틱코미디라면 스스로의 취향에도 맞을 것 같았다. 사실, 그는 이미 로맨틱코미디를 찍은 적이 있다. 93년 출시된 70분짜리 비디오영화 <결혼 만들기>가 그것. 이미연과 김승우가 처음 만난 것으로 더 유명한 이 작품은 애초엔 결혼 가이드 비디오로 기획됐지만 “극영화로 만들어보자”는 김 감독의 제안에 따라 로맨틱코미디로 변신했으니 그로선 이 장르가 낯설지만은 않은 셈이다. 김 감독으로 하여금 이 영화에 손을 대게 한 첫째 요소는 시나리오였다. 우선 인물들이 모두 “뭔가 모자란 인간들”이란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영어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자신감도 모자란, 이 주눅든 사람들의 유쾌한 이야기는 그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여기에 ‘<무사> 후유증’도 한몫 했다. “<무사>의 후반부처럼 비장하고 무거운 장면을 찍을 땐, 배우나 감독이나 스탭 모두 비장하고 무거워져 힘들었다. 이 영화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찍을 것 같다.” “김성수 스타일은 없다. <영어 완전정복> 스타일만 있을 뿐이다.” 이 영화엔 스텝프린팅, 고속·저속 촬영, 엄청난 컷 수 등 현란한 테크닉으로 대별되는 그의 스타일이 두드러지지 않을 것 같다. 코미디는 인물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고 밋밋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주의 내면을 드러내는 장면 등에선 ‘울림있는 테크닉’을 사용할 계획. 플래시애니메이션, 3D애니메이션, 말풍선 등 다양한 시각적인 장치를 활용할 생각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장애물 중 하나는 “김성수는 여성 캐릭터를 이해 못하고, 피한다”는 주위의 평가다. 때문에 그는 아내로부터 여성의 내면에 관해 열심히 ‘사사’받고 있다. “‘김성수가 변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떡할 거냐고 외려 ‘변하는 김성수’가 되길 갈망한다.” 글 문석 ssoony@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브리짓 존스+아멜리에 어디 있소? 예정대로 3월에 크랭크인하려면 캐스팅이라는 최종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아직 구체적인 캐스팅 작업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관건은 영주 역할을 맡을 여배우다. 겉보기엔 뚱하며 답답하지만, 내면엔 자유로운 상상력과 꿈을 품고 있는 20대 중반의 여성을 연기해야 한다. 첫눈엔 매력없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서서히 매력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르네 젤위거를, 내면에 귀여운 상상의 세계를 담고 있다는 점에선 <아멜리에>의 오드리 토투를 떠올려야 하는 탓에 신인급 보다는 영화경력이 있는 연기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당돌한 성년 실습, <마들렌>의 신민아

햇빛, 바람, 물, 그리고 알코올. 신민아에게는 이 ‘물질’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알레르기 유발요소라는 점. 투명한 피부에 씩씩한 웃음으로 무장하고 ‘세상무적’인 듯 보이지만 신민아는 보기보다 외부 세상에 대해 연약하기만 한 소녀다. 술만 마시면 몸이 붉어지는 알코올 알레르기 때문에 스탭이나 동료 배우들과도 술 한잔 제대로 기울이지 못하고, 바람에 물에 햇빛 알레르기까지 온갖 알레르기의 공격에 시달리는…. 2003년 새해는, 그런 신민아에게 ‘유리온실’을 깨고 나오는 해가 될 것 같다. 스무살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서, 신민아는 다른 자신을 꿈꾸고 있다. “술도 벌컥벌컥 잘 마시고, 터프하게 한손으로 핸들을 돌리며 운전도 하고… 그러고 싶어요. 이제 곧 성년식도 할 거니까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저한텐 그런 것, 환상이었어요.” (웃음) 열아홉의 신민아가 찍은 영화 <마들렌>은 신민아의 그런 ‘스무살 이후’를 조금은 엿보게 하는 영화다. <마들렌>의 여주인공인 미용사 ‘희진’은 인형뽑기 오락을 좋아하는 아이 같은 구석도 있지만, 휴대폰에 남자이름 100명을 채우겠다는 목표를 추진하면서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에게 ‘한달간의 계약연애’를 제안하기도 하는 당돌한 ‘여자’. 영화는 갓 스물을 넘었을 법한 여자(아이)의 슬프고 또 기쁜 여러 감성의 국면들을 아기자기하게 담아낸다. 차가운 바람에도 물에도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신민아지만, 그녀는 <마들렌>의 ‘희진’이 되어서는 노란 우비 하나 달랑 걸치고 줄창 살수기가 쏟아내는 비를 맞으며 진 땅을 뒹굴었고, 새벽 공기 가르고 쌩쌩 신문도 날랐다. 스무살 예행연습이랄까. 영화 촬영 전 3개월 동안 미용 연습을 해서 극중에서 직접 지석의 머리를 자르고 염색하는 실력을 보이기도 한 신민아는, <마들렌> 영화 하나를 찍으며 여러 가지 ‘성년’의 가상현실체험을 한 셈이다. 검도복을 입고 찰랑이는 머리를 뒤로 묶은 뒤 힘차게 검도를 내리꽂는 <화산고>에서의 신민아의 모습이 정말이지 인상적이긴 했지만, 신민아 자신은 <화산고>보다는 <마들렌>에 더 진지해지는 모양이다. “<화산고>는 블록버스터라는 부담감도 컸고, 사람들 기대도 너무 많아서 힘들었어요. 막상 연기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막연한 기분뿐이었죠. 배우가 물론 비주얼이 돼야 하고, 연기는 하는 만큼 느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외모가 배우에게는 자산이라고들은 하지만, 두 번째 작품이라서 그런지 이번에는 예쁘고 안 예쁘고보다는 연기를 잘했나, 어색하지는 않나에 더 신경을 썼어요.” 신민아는 중학교 때 소풍날 찍은 사진으로 모델에 데뷔한 러키걸이다. 이건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이고, 사실은 당시 소풍날 찍은 사진이 그냥 친구들하고 찍은 기념사진이 아니라 잡지사에 보내려고 한껏 멋내고 준비해서 야외촬영한 사진이라고. “그때 막 하이틴 패션지들이 창간될 때였어요. 친구들이랑 그런 데 내려고 서로 사진을 찍었는데 제가 붙었죠.” 어쨌건 친구들끼리 찍어 잡지사에 보낸 사진으로 모델에 데뷔한 신민아는 이후 여러 광고와 뮤직비디오에서 예의 ‘비주얼’로 승승장구했고, 2001년 <화산고>에서 검도부 주장 ‘유채이’ 역을 맡으며 영화에 데뷔했다. 일상의 다양한 연기가 더욱 필요했던 영화 <마들렌>은 주로 이미지로 승부했던 신민아에게 작지 않은 도전이었고, 스스로 어느 정도 만족할 만큼 그 도전을 해내었다. “배우라면 자기 작품을 하는 동안에는 자기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에서는 희진의 감정노선이 바뀌는 게 제일 힘들었죠. 계약연애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연기를 하다보니 긍정적으로 보게 됐어요.” 신민아는 판타지무협 <화산고>, 멜로영화 <마들렌>과는 또 다른 정지우 감독의 이색공포영화 <두 사람이다>로 올해 중 세 번째 영화에 도전한다. “앞으로 계속 영화를 할 거고, 굉장히 무수한 캐릭터들을 만나겠죠. 나이에 비해 조금 빨리 여러 장르를 해보는 것 같지만, 앞으로가 훨씬 더 다양할 거예요.” 신민아가 꿈꾸는 배우상은 장만옥과 카메론 디아즈. 원숙한 여배우가 되는 것 이외에 음악을 워낙 좋아해 영화음악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지닌 신민아는 꼭 대학 새내기처럼 영화 일에서도 꿈도 많고 욕심도 많은 영락없는 스무살 소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