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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흥행돌풍 <조폭마누라> 제작자를 만나다

<조폭 마누라>의 흥행 성공이 지금 영화계의 최대 화제다. 평단에서는 혹평이 많았음에도 지난 주말까지 2주반 동안 전국 관객 320만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독특한 건, 충무로에서도 이 영화의 흥행을 놓고 반기는 이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며 우려하는 이가 많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 영화의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서세원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서세원(45)씨는 어떻게 생각할까. 영화평론가 심영섭(35)씨가 지난 15일 이 영화를 배급한 코리아픽처스 사무실에서 서씨를 만났다. 지난 85년 <납자루떼>를 만든 뒤 16년 만에 다시 영화에 뛰어든 서씨는 “지금 나는 승자이니까 욕을 들어도 행복하다”며 특유의 코믹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인터뷰에 응했다. 심영섭 <조폭마누라>(줄여서 <조폭>)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가. 서세원 좋은 영화는 아니다. 영화적으로 좋은 영화가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십계> <사운드 오브 뮤직>, 근간에는 <택시 드라이버> 같은 로버트 드 니로 나오는 영화들. <조폭>은 약간 복고적인, 70~80년대 홍콩영화의 아류일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을 너무 잘 알지요(웃음). 심 그런데도 전 재산을 다 댈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한 건 왜인가. 서 서세원이 바라보는 좋은 영화는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영화다. 나는 예술성은 없는 사람이다. 작품도 중요하지만 투자는 돈 놓고 돈 먹는 것이다. 이 영화가 한국영화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일 수도 있고, 욕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 흐르는 한국적인 느낌이 있다. 그래서 투자했다. 지난 3월 투자를 결정할 당시 <조폭>은 돈을 못 구해 7개월 동안 표류하고 있었다. 조진규 감독이나 신은경씨, 현진영화사 이순열 대표 모두가 막다른 길이었고, 나도 막다른 길이었다. 모두가 궁지에 몰렸으니 한방 터질 것 같았다. 그게 진짜 터졌다. 하느님이 서세원에게 한방 준 거다. 심 투자자로서 상업주의 논리에 부합해 성공하는 영화가 가장 좋은 영화라는 말로 들리는데, 그러면 이 영화가 우리 사회나 한국영화에 끼칠 영향은 생각했는지. 서 사회에 끼칠 영향을 생각한다는 건 관객을 우롱하는 일이다. 박정희부터 노태우 정권 때 좋은 영화를 채로 걸러서 수입했다. 그건 분명히 잘못된 거다. 관객은 즐기고 문 나오면서 잊어버린다. <친구>가 최근 한 살인사건의 원인이 됐다고 시끄러운데 <친구> 때문에 살인했다는 건 말이 안된다. <봄날은 간다> 보면 모든 국민이 녹음기 들고 연애하겠네. 심 <조폭>이 대박 터진 뒤로 어떤 제작자가 앞으로 무슨 영화할지 갑갑하다고 했다. 흥행기류가 변하면서 앞으로 아류작이 많이 나올 거다. 홍콩영화도 누아르의 아류작이 마구 나오면서 무너진 것 아닌가. 서 홍콩처럼 오갈 데 없는 데서는 아류작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르다. 다 따라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이런 것 하고, 저 사람은 저런 것 하면서 배분이 된다. 이주일씨, 신영균씨 국회의원 됐다고 서세원이 출마하느냐? 나는 영화한다. 갑갑하다는 사람은 영화 안하면 된다. <조폭>은 한 시즌에 1등한 한편의 영화일 뿐이다. 심 <조폭>의 흥행요인은 뭐라고 보는가. 나는 막가파 영화라고 본다. <투갑스>부터 시작한. 막가파 영화는 절대적인 확신과 서비스 정신으로 밀고 간다. 올봄에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 등 그런 영화가 다 잘 된다. 하지만 <교도소 월드컵>은 안 됐다. 다 같은 막가파인데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 서 우선 <투캅스>는 <마이 뉴 파트너>라는 프랑스 영화의 아류다. <조폭>은 조진규 감독이 5년간 연구한, 정성이 많이 들어간 막가파다. 같은 막가파라도 성능있는 막가파와 베낀 막가파는 다르다. 그리고 <신라의 달밤>은 한국적 정서가 있다. 누구나 경주에 수학여행 가서 패싸움하고, 학교 때 아무 것도 아니었던 애가 출세해서 큰소리 쳐서 속상한 일이 있을 거다. <엽기적인 그녀>처럼 요즘 젊은 애들 술 먹고 오바이트 하는 여자 등쳐준 경험이 있을 거다. 거기에 이어 <조폭>은 요즘의 모계사회적 분위기를 잘 그렸다. 우리 집도 마누라가 돈줄 쥐고, 내가 코너에 몰리면 유엔군처럼 나타난다. 영화 마지막에 박상면이 신은경에게 가위 건네주는 장면은 의미가 깊다. 아무리 남자가 복수해도 주도권을 여자에게 준다. 남자의 비애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조폭>은 참 좋은 영화다. 조진규 감독은 우리 시대 최고의 감독이다. 심 여성평론가의 입장에서 이 영화는 한국영화로는 드물게 여성전사를 내세우면서, 그 여성전사가 성을 무기로 삼지 않는다. 신은경은 힘과 물리력으로만 승부한다. 착한 여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가 사용하는 가위는 거세의 이미지다. 하지만 여성성을 접대부에게서 배운다든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새가 뭐냐”는 아이의 질문에 “짭새”라고 말하는 무지를 드러내는 데서 유머를 추구한다. 여성을 세우는 척하지만 그 안에는 여성비하가 함께 들어있다. 서 그래서 신은경의 어린 시절을 많이 넣었고 신은경의 여성적 측면도 나오는데 시간적 제약 때문에 뺐다. 결손가정이고 고아원에 버려지고, 인성교육을 뭇 받고, 그래서 황폐해지고…. 그런데 스피드와 (관객들이)즐기는 것에 승산을 두니까 편집에서 다 드러냈다. 그래서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미안하다. 그런데 참 정확하게 찍네. 다른 평론가들과 달라(웃음). 심 재미와 안이한 발상은 구별돼야 할 것 같다. 모든 사람이 공감하면서 재밌게 보는 영화가 있다. 지나치게 상업주의로 가고, 상업주의라는 논리로 면죄부를 받으려는 건 납득이 잘 안된다. 서 면죄부가 아니다. 옛날에 <미드나잇 카우보이> 같은 좋은 영화를 국제극장에서 열명 남짓한 관객과 함께 보면서 영화는 많이 보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25년간 텔레비전에 출연하면서 더 깊어졌다. 우선 시청률이 높아야 한다. 서세원쇼도 시청률이 높으니까 살아 남는다. 많이 보면 된다는 신념은 내 어머니도 아버지도 심영섭씨도 못 말린다. (심)그게 그말 아닌가. 성공하면 된다는. (서)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같다고 본다면 할 수 없다. 평행선이다. 심 대중들에게 어떤 문화적 아이콘이 되고 싶은가. <조폭>의 이미지와 중첩되길 원하는지, 아니면 스스로 인정하는 좋은 영화의 이미지와 중첩되고 싶은지. (서)나는 변신을 잘 한다. 다음 영화가 발표되면 그 뒤로는 그 영화가 내 이미지가 될 거다. (심)그렇다면 서 대표의 명예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다. 서 이 영화로 지금까지 세금 빼고 한 40억원 벌었는데, 전부 영화에 투자할 거다. 영화로 돈 벌어서 절대 다른 데 쓰지 않는다. 3분의 1은 코믹, 3분의 1은 액션, 나머지 3분의 1은 이른바 좋은 영화에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 7월부터 극비리에 찍고 있는 영화가 있다. 조폭과 무관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코미디다. 또 내년에는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찍으려 한다. 내년까지 여섯 편 만들어서 모두 합해 15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게 목표다. 그러나 캐스팅에 수억원씩 쏟아붓지 않을 것이다. 지금 충무로는 배우들을 움켜쥐려고 캐런티를 올리면서 서로 제살 깎아먹고 있다. 나는 A급 배우는 안 쓰고, 배우를 개발해 나갈 것이다. 정리 임범 기자 isman@hani.co.kr

“TV는 영웅도, 악당도 갖고 싶어한다”

죽느냐 죽이느냐 그것이 문제다. 방송사에 의해 무작위 추출된 시민들이 살인 리그전을 벌이는 영화 <시리즈7>의 세계는 주사선으로 그려낸 현대판 콜로세움이다. 미국 독립영화계의 스타 프로듀서 크리스틴 바천(<세이프> <소년은 울지 않는다> 등 제작)과 손잡고 <시리즈7>을 만든 신인감독 대니얼 미나한은 따지고 보면 ‘텔레비전 키드’. 와 <채널4>를 거쳐 <폭스 TV>에서 시사 프로그램 PD로 일한 그는 메리 해론 감독의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에서 영화 만들기의 실제를 습득한 뒤 4년에 걸친 <시리즈7>의 구상에 들어갔다. 그리고 기나긴 숙성기간이 무색하게도 코네티컷 주의 고향마을 댄베리에서 단 21일 만에 디지털카메라로 촬영을 마쳤다. TV 포맷과 장편영화 시나리오의 결합이라는 난제와 정면승부를 벌인 <시리즈7>은 지난봄 미국에서 개봉해 재기, 기동력, 문제의식, 형식실험 등 데뷔작에 거는 대부분의 기대를 채워주는 ‘똘똘한’ 블랙코미디로 호평받았다. 세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될 TV판 <시리즈8>을 준비하며, TV 수상기로 보면 더욱 신나는 한방이 될 거라고 악동의 미소를 짓고 있는 대니얼 미나한 감독에게 이메일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제작에 참여한 첫 번째 극장용 장편영화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는 아직 공식적으로 한국 관객에게 소개되지 않았다. 그 영화에서 당신이 얻은 소득이 있다면.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의 제작자와 감독은 시나리오 쓰기부터 프로덕션, 편집에 이르는 영화제작의 전 과정에 내가 참가할 수 있도록 불러주었다. 그건 내가 필름메이커로서 맛볼 수 있었던 가장 가치있는 경험이었다. <시리즈7>은 형식과 소재, 주제를 모두 TV라는 매체에서 찾았다. 당신 자신은 TV 시청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나. 지금 현재로서는 전혀 TV를 보지 못하고 있다. 요사이 나는 삶을 ‘구경’(watching)하기보다 삶을 ‘살고’(living) 있다. 방송사 경력이 <시리즈7> 제작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나. TV 프로덕션 경험은 <시리즈7>의 스토리부터 촬영과 편집 스타일까지 모든 면에 정보를 제공했다. 그러나 결국 <시리즈7>은 한편의 독자적 내러티브영화로서 자립해야만 했다. <시리즈7>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떠올렸나. 영감은 여러 곳에서 얻었다. 촬영팀이 실제 경찰관들과 함께 움직이면서 그들의 낮과 밤을 기록해 보여주는 <캅스>(COPS)라는 TV쇼, <롤러 볼> <스탭포드 와이브스> <소이렌트 그린> 등 어린 시절 사랑했던 영화들도 영향을 주었다.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모든 공상과학영화들도 영감의 원천이었고 TV쇼 제작에 참여한 나의 경험도 물론 도움을 줬다. 이따금 나는 <시리즈7>을 가리켜서 내가 TV쇼를 만들며 아둥바둥한 많은 시간에 대한 복수의 판타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리즈7>은 최근 미국의 TV 리얼리티쇼 유행을 다소 초현실적인 세팅을 빌려 극단까지 밀어붙인 영화다. TV 프로듀서들에게 사람들에게 살인을 강요할 수 있을 정도의 말도 안 되는 권력을 부여하는 가상사회를 상상한 것인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초법적 지위를 갖는다는 점만 제외하면, 나는 이 영화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정확히 똑같이 보이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세계는 불합리하고 공포스럽지만 이제 더이상 진실에서 동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스크린으로 TV를 보는 듯한 체험을 주는 <시리즈7>은 제작과정의 기술적 측면이 궁금한 영화다. 어떤 종류의 카메라를 몇대나 썼나? 조명과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은. 우리는 다큐멘터리식 스타일을 택했다. 미리 준비한 세트업을 차례차례 완성해 나가기보다 카메라맨으로 하여금 장면(scene)을 ‘발견’하게 하는 스타일을 택했다. 스탭의 숫자는 아주 적었다. 각각의 기술팀은 1명에서 3명에 불과했다. 조명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만 제외하면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조명만 사용했다. 그런가하면 역할을 맡은 배우들을 직접 인터뷰한 장면들을 제외하면 즉흥 연출도 거의 하지 않았다. 편집은 아비드로 했고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를 뉴욕의 DUART 현상소에서 블로업했다. 배우의 연기 연출에 있어서 당신이 멋진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는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 것이다. 이 연기자들을 어떻게 골랐나. 칭찬 고맙다. 수잔 숍메이커라는 캐스팅 디렉터와 일했다. 그는 대형 극단, 영화배우, 비전문 배우 집단으로부터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데려왔다. 나는 그저 카메라 앞에 처음 섰을 때 ‘실제 존재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적당한 자질을 갖춘 사람들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브룩 스미스는 내가 항상 돈 역으로 캐스팅하고 싶었던 배우다. 연기의 최고치를 끌어내기 위해 한 일이 있나. 음, 고문을 했다. (농담이다.) 나는 그저 가장 진실한 연기를 그들로부터 끌어내고자 노력했지만 늘 그들에게 카메라와 카메라맨이 방 안에 그들과 함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는 <시리즈7>에 걸맞은 자의식적 색채를 그들의 연기에 불어넣는 데 효과를 보았다. 그중에서도 돈 역의 브룩 스미스와의 작업을 묘사한다면? <양들의 침묵>에서 그녀가 맡았던 희생자 역할을 상기하면 <시리즈7>에서 만삭의 살인 게이머가 된 스미스의 모습은 특히 흥미롭다. <시리즈7>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던 1995년 <작은 괴물들>(Little Monsters)이라는 오프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에서 브룩을 본 나는 그 즉시 그녀를 염두에 두고 돈의 캐릭터를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브룩은 시나리오를 쓴 1995년부터 마침내 촬영에 들어간 99년까지 4년간 나를 버티게 해준 존재였다. 우리는 선댄스의 감독 연구실(director’s lab)에서 워크숍을 했고 4년간 이 영화에 대해 끝없이 대화했다. 브룩은 뉴욕연극계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여배우이며 함께 일하는 것이 행복한 진정한 팀 플레이어다. 또한 나는 돈의 캐릭터가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빠져 있고 그 위기를 스스로의 생존 본능에만 온전히 의존해 타개해야 한다는 점에서 <양들의 침묵>에서 범인의 구덩이에 갇혀 있던 소녀 캐서린 마틴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브룩이 해낸 만큼 이 역할에 깊이 들어갈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매우 헌신적인 연기자다.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돈과 제프의 플래시백에 조이 디비전의 노래 를 사용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는 로맨틱하고 향수가 깃들어 있으며 일종의 송가(頌歌)같은 성격을 띤 노래이며 돈과 제프가 한 것 같은 불가능한 사랑에 관한 노래다. 또한 나의 성장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사적으로 소중한 영화다. 조이 디비전의 리드 싱어 이안 커티스는 제프 캐릭터가 늘 시도하는 대로 자살하기도 했다. 당신은 이 영화에서 말하자면 양날의 칼을 썼다. 돈과 제프 스토리의 후반부는 TV 미디어의 사악함을 노골적으로 공격한다. 반면 영화 속 인물들과 그들 각각에게 연결된 이야기들은 TV 브라운관에서 막 걸어나온 것 같다. 영화를 이런 식으로 설계한 의도는. 영화에는 내가 TV와 맺고 있는 ‘애증’의 관계가 명백히 드러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TV의 언어로 TV의 조건으로 TV를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TV를 비판하는 최고의 방법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돈과 제프가 카메라맨에게서 카메라를 빼앗아 쇼의 영웅에서 악당으로 탈바꿈하는 지점을 좋아한다. 내가 지금까지 터득한 진실에 다다르면 TV는 영웅도 갖고 싶어하고 악당도 갖고 싶어한다. <시리즈7>은 명백한 풍자극이지만, 종종 감독 자신이 TV가 현실을 다루는 방식을 놓고 스스로도 즐기는 유희를 벌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다시 말하자면 당신은 영화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수고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를 통해 무엇보다 우선해서 표현하고 성취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무엇을 생각해보라고 나에게 지시하는 영화들을 미워한다. 나는 비누상자를 뒤집어놓고 올라서서 “TV는 나쁘다!”라고 외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 행위는 정직하지 못한 짓일 거다. 나는 진심으로 TV보기를 좋아하니까. 그래서 나는 매우 직관적으로 이 영화의 작업에 임했다. 가장 넓게 말하자면 사람들이 TV를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내 의도였다. 나는 TV문화의 야만스럽고 착취적인 속성을 지적하고 싶었다. 질문을 제기하고 대화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싶었다. TV문화의 병폐에 대해 나는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징후들을 지적하면서 스스로 즐거움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미디어의 선정성과 탐욕에 대한 비평이 되고자 작정한 영화들은 지금까지도 많았다. <시리즈7>에 영감을 준 특정 작품이 있나? 혹시 <글래디에이터>? <글래디에이터>를 봤을 때는 <시리즈7>을 이미 끝낸 뒤였다. 그러나 나는 “와우, 이 영화는 내 영화랑 똑같은 테마를 많이 다루고 있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고마운 비교다. 하지만 <시리즈7>은 아무래도 시드니 루멧의 <네트워크>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비디오드롬>의 직계후배라고 해야겠지. 당신 자신이 <시리즈7>의 ‘컨텐더’같은 살인게임 참가자로 뽑힌다면 당신의 반응은 영화 속 캐릭터 중 누구와 가장 비슷할 것 같나. 내 순서가 닥치면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말하기는 어렵다. 영화 속의 인물들은 모두 내 자신의 여러 단면 중 하나를 대표한다. 돈은 공격적인 분노, 제프는 수동적인 자살 판타지, 코니는 모순된 신념, 토니는 비겁함, 린지는 단순함을 표상한다. 음, 뭐 좋다. 하나를 고르라면 돈(Dawn)이겠지. 어쨌거나 내 이름인 댄(Dan)은 ‘w’만 빼면 돈과 똑같이 쓰니까. 추진중인 다음 프로젝트에 대해 들려줄 수 있나? 만약 그 하나로 <시리즈8>이 있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다. 현대의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를 현재 쓰고 있다. 스릴러 장르에 대한 나의 한 시도가 될 거다. 그리고 당신 말마따나 <시리즈8>의 TV 버전을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내 영화 속에서 죽어갈 미국인들이 아직도 많은 셈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즐기는 TV 프로그램이 있다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국 TV쇼는 <앤틱 로드 쇼>(미국판 ‘TV 진품명품’)다. 사람들이 고물이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물건들을 갖고 와서 전문가들에게 값을 평가받는 프로그램이다. 한 단락이 끝날 때마다 물건의 값어치가 그래픽으로 뜨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다. 김혜리 vermeer@hani.co.kr

테러, 밀라노에도 타격

국제영화 및 텔레비전 마켓인 MIFED가 10월28일부터 5일간 이탈리아 밀라노의 피에라 밀라노에서 열린다. 올해로 68회를 맞는 MIFED는 1960년부터 시작된 세계 최초의 영화마켓으로, 초반에는 4월의 텔레비전 마켓, 10월 영화마켓이 각각 열렸으나 1980년대 중반에 와서 두개의 마켓이 함께 열리고 있다. MIFED는 미국 영화마켓(AFMA), 프랑스의 칸 마켓과 함께 3대 영화마켓으로 영화배급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들어 이 마켓에서 아시아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작가주의 영화 정도만 소개되던 예전과 달리 장르영화로 폭이 넓어지는 추세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작품이 지난해 MIFED를 통해 유럽에 배급되는 등 한국영화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행사에는 시네마서비스, 강제규필름, CJ엔터테인먼트 등이 참여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올해 MIFED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영화마켓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다양한 계획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신임 조직위원장 주세페 졸라는 특히 바이어에게 보여지는 영화가 최고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시설을 강화했다고 발표했다. 또 진행의 원만함을 위해 많은 인원을 참여시켰고, 인터넷에 새로운 사이트를 만들어 신속하고 편리하게 하루하루의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또 그는 2002년부터는 더욱 편한 거래를 위해 행사장의 규모를 넓힐 계획이며, 행사 마지막날에는 MIFED 시상식을 마련하여 그해 최고의 배급업자를 선출하는 등 많은 투자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세페 졸라는 “MIFED가 단지 영화를 사고 파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탈리아영화의 세계화에 도움을 주길 바란다”며 행사 기간 중 이탈리아영화제를 개최하겠다는 이탈리아 영화산업의 발전 전략도 발표했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계획에도 불구하고 MIFED 앞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놓여 있다. 우선 MIFED 영화마켓이 열리기 전 영국 런던 영화마켓이 열린다는 점이다. 배급자들과 바이어들은 같은 유럽에서,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두 마켓 중 한곳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상영 극장이 한데 몰려 있어 편리하고 규모가 크며, 경비가 적게 든다는 이유로 전체의 70%가 MIFED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이슬람 유럽 테러조직의 중심지가 이탈리아라는 의혹과 리나테 공항의 대형참사 등으로 지난해와 비교할 때 매우 저조한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북미지역 배급사는 101사가 참여해 지난해 148개사에 비해 저조하며, 유럽지역 역시 지난해 114개에 비해 올해는 88개사만 참가할 계획이다. 전체적으로 봐도 올해 행사에는 총 222개사가 참여할 예정이어서 지난해 302개사에 비해 규모가 대폭 줄었다. MIFED 조직위원회는 이러한 규모 축소로 인해 30%에서 50%의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마=이상도 통신원

그들이 마흔을 넘기 전에

90년대 후반부터 21세기 초까지 유유히 살아남아 있는 문화적 코드는 ‘복고(회기)’와 ‘엽기’다. 그런 코드의 주기가 상당히 짧게 변화하는 문화시장 속에서도, 이 두 요소는 꽤 장시간 동안 그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요 근래 한국에서 성공한 문화상품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복고’라 불릴 수 있는 부분은 ‘엽기’적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단순한 하위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인기 웹영화나 CF 등에서 보이는 복고 이미지들은 다분히 과장적이고 작위적인 형태로 쓰이고 있다. 극단적인 상황을 즐기는 것이 현대인의 취향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이렇듯 ‘엽기적 복고’가 자주 나오는 이유 중 하나는 제대로 된 ‘복고’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료부족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이나 유럽의 대부분의 장수 미디어상품이 대중과의 꾸준한 접촉을 통해 그 생명력을 연장하고 파워를 다져온 데 비해 국내에서는 수없이 뿌려진 미디어 씨앗들이 점점 잊혀진 채 버려지고 있다. 수차례 복간과 재발행이 이뤄지는 해외 유명작가의 작품에 비해 국내 작품들은 원본은 물론이거니와 그 당시 발행된 책자조차도 찾기가 힘든 지경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복고’의 가치를 가장 극대화할 수 있다고 여겨지던 <태권V>의 ‘부활 프로젝트’가 지연된 가장 큰 이유도 ‘붐’ 조성에 필요한 재료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원천이 돼줘야 할 원작의 필름조차도 소재가 파악된 것은 몇개 안 되고, 대부분은 녹이 묻어 상영이 불가능한 상태이거나 상영 당시 편의에 따라 몇분씩 잘려나간 것들이었다. 80년대 출시되어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보고 있는 <태권V>의 비디오 테이프는 중간중간 수많은 부분들이 잘려나가 처음 본 사람이라면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모를 정도인데다가 화질과 음질이 굉장히 조악하고 손상돼 있다(그 당시 비디오 제작 야사를 들어보면 텔레시네 하는 비용과 시간을 아끼려고 필름을 하얀 벽면에다가 상영해놓고 그 장면을 찍어 비디오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짤막짤막한 영상만 가지고 일반 대중에게 그 당시의 감동을 되살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제대로 된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질 못했다. 얼마전 <딴지일보>에서 제작한 <태권V> 복원 CD-ROM이 출시됐다. 최초에 얘기된 VCD포맷이 아닌지라 집에 있는 DVD 플레이어를 이용해 큰 화면에서 감상하겠다는 ‘계획’은 아쉽게도 무너졌다. ‘화질이 기대보다 안 좋다’든지 ‘극장에서 본 장면이 없다’든지 하는 불만의 목소리들도 없는 것이 아니지만, 앞서 말한 필름과 비디오 테이프, 심지어 해외에서 출시된 비디오 테이프까지 모아 원래 상영시간을 최대한 되살렸고 그 당시 제작진의 인터뷰나 스크립 등의 자료를 수록한 노력이 <태권V>라는 작품의 생명기간 연장에 큰 도움을 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디어상품에 대한 복고 주기는 20∼30년 사이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한 세대를 가르는 주기와 거의 일치한다. 즉 당시 작품을 접한 아이가 안정된 지위를 가지는 성인이 되는 데 드는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1976년에 상영된 <태권V> 1탄을 보고 감동한 아이들은 이제 30대 중반의 직장인들이 되어 있다. 이 계층이 40대가 되기 전에 승부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태권V>는 몇몇 마니아를 위한 수집 아이템으로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이시노모리 쇼타로 원작인 <사이보그009>의 3번째 TV시리즈 제작 소식이 들려왔다.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야말로 그 나라 문화산업의 기반을 지탱하는 요소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세준/ 만화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사랑의 찬가 Eloge de l’Amour

월드시네마|스위스·프랑스|장 뤽 고다르|2001년|98분 거의 반세기가량을 ‘숨가쁘게’ 달려온 노장의 새 영화는 제목과 달리 세상에 대한 근심으로 가득하다. 여기서 고다르의 근심은 이미지와 사운드가 구성해내는 기억으로서의 역사에 대한 근심이다. 텔레비전과 영화라는 강력한 매체는 스스로의 표현수단을 지니지 못한 인민들의 기억을 재구성하며, 진정한 전투는 바로 이 기억의 장에서 벌어진다고 말한 것은 다름 아닌 미셸 푸코이다. 고다르와 더불어 미셸 푸코의 이러한 전언에 대한 충실한 영화적 주석가라 할 크리스 마르케는 <태양 없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총체적 기억은 마취된 기억이며, 하나의 집단적 기억 뒤에는 천개의 개인적 기억들이 존재한다고(또한 성서는 영화와 텔레비전이 없던 시대의 총체적 기억이다, 라고). 크리스 마르케가 꿈꾸었던, 망각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부터 현재로 날아온 인물이 보고 느끼는 것들에 대한 SF영화라는 프로젝트는 <사랑의 찬가>에서 실현되었다. 고다르는 흑백으로 촬영된 현재와 컬러로 촬영된 과거를 대비시키면서 유례없이 명료하게 영화를 전개시킨다.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래프에 관한 노트>에서부터 존 포드 영화의 대사에 이르기까지 예의 인용과 오마주 또한 어김없이 등장한다. 레지스탕스 활동 중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 노부부의 이야기에 대한 판권을 사서 그럴싸한 역사멜로드라마를 만들고자 하는 할리우드 제작자들에 대한 묘사는 의미심장하다. “미국인들… 그들에겐 자신들만의 기억이 없지… 그래서 다른 이들의 과거를 사는 거야. 특별히 저항했던 이들의 과거를. 혹은 그들은 말하는 이미지를 팔기도 해.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결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 그게 그들이 원하는 거라고.” 역사와 기억에 대한 근심으로 빚어낸 이 역설적인 <사랑의 찬가>는 우리로 하여금 한 진정한 예술가의 육체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원망하게 만든다.

픽션과 진실의 결혼을 꿈꾸다

이사온지 얼마 안되는 이 도시는 폭동에 휩싸여 있다.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 거리로 나선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시위가 진압 경찰과 병력을 만나 유혈극으로 변한 국가 폭력의 현장. 하스켈 웩슬러의 헨드헬드 카메라는 어머니 역을 맡은 여배우 베르나 블룸의 시선과 발길을 바짝 쫓아 헤맨다. 196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는 시카고. 그곳은 맥루헌이 ‘쿨 미디엄’이라고 불렀던 텔레비전의 속성과 현대정치에 관한 예리한 성찰을 보여준 극영화 <미디엄 쿨>의 촬영장이기도 했다. “웩슬러, 이건 실제상황이야!” 스탭 하나가 확성기에 대고 소리치고 난 직후, 경찰의 최루탄이 발사됐다. 극본, 감독, 촬영의 1인3역을 한 웩슬러가 “픽션과 시네마 베리테의 결혼”이라고 부르는 이 영화의 상영과 배급은 폭동의 복판으로 게릴라처럼 뛰어든 촬영과정 만큼이나 순탄치 않았다. 미국 정부가 한동안 상영을 금지했고, 할리우드는 냉담했다. 대신, “거대한 시각적 충격, 영화로 만든 <게르니카>”,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영화”라는 평단의 평가가 <미디엄 쿨>의 훈장으로 남았다. 이때, 웩슬러는 이미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 하랴>로 이미 오스카상을 수상한 할리우드의 ‘유명촬영감독’이었다. 동시에 틈만 나면 현실 속으로 뛰어드는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했다. 물론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달려온 것은 아니었다. 1922년 미국 일리노이에서 태어난 그는 버클리 수학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가지만, 일년만에 낙제한다. 그뒤 2차 대전 중 상선의 선원으로 복무하다가 전쟁이 끝나자 고향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와 데플렌의 무기고를 스튜디오로 개조해 영화 제작의 꿈을 펼치려한다. 그러나, 경험이 없는 그에게 실패는 예견되어 있었다. 이를 거울삼아 카메라조수로 다시 시작한 그는 교육과 산업에 관한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게된다. <후드럼 프리스트>(1961), <엔젤 베이비>(1961) 같은 규모가 작은 독립영화를 촬영하던 그는 63년 이민자의 실상을 그린 엘리아 카잔의 <아메리카 아메리카>에 이르러 할리우드의 주류에 본격 합류한다. 강렬한 흑백화면이 인상적인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66년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하고, 67년 노만 주이슨의 <밤의 열기속으로>를 통해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된다. 두 번째 아카데미의 영광을 안겨준 할 애쉬비의 <바운드 포 글로리>(1976)는 차분한 색조의 아름다운 묘사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할과는 <귀향>(1978)에서도 함께 작업한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 <아메리칸 그래피티>(1973)에서는 비쥬얼 컨설턴트로 독특한 영상을 그리는데 일조한다. 하스켈 웩슬러를 주목할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인터뷰 위드 마이 라이 베테란>, <인드로덕션 투 더 에너미>, <언더그라운드> 등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끊임없이 사회적 쟁점들을 이끌어냈다. 그의 렌즈는 때로는 핵확산을 반대하고, 때로는 억울한 자의 정당함을 입증하려하며, 때로는 도주하는 CIA요원을 비추기도 한다. 그는 이러한 작업이 단지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하스켈 웩슬러의 이상은 여전히 ‘픽션과 진실의 결혼’이다. “다큐멘터리는 좋든 나쁘든 실제 삶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잘 만들어진 극영화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진실이 담겨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만이 우리 목전에 닥친 거짓되게 그려진 사회에 대적할 유일한 길이다.” “극영화를 통해 나를 표현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며, 그 외의 일들은 내가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뷰파인더를 통해 일어나는 일들을 보는 것 거기서 기쁨을 느낀다. 물론 다큐멘터리나 광고에서도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넘나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조명과 배치를 조절하는데 자유롭지 못한 다큐멘터리 작업의 경험은 상대적으로 자유스러운 극영화의 공간과 프레임을 구성하는 데까지 영향을 끼치며, 다큐멘터리적 사실성은 극영화 속에 사실성 있는 화면을 그려내는 데 밑바탕이 되어 준 것이다. “프레임 하나하나가 미술작품”이라는 찬탄을 유발하는 그런 화면들. 최근 우디 앨런과의 작업이 취소돼, 어떤 작품으로 다시 그를 만나게 될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진실에 기반한 신념에 차있는 웩슬러의 모습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필모그래피 촬영 (61, 2001)(TV) 빌리 크리스털 감독 <더 맨 온 링컨스 노즈>(The Man on Lincoln’s Nose, 2000) 다니엘 라임 감독 <굿 커드 배드 커드>(Good Kurds, Bad Kurds, 2000) 케빈 맥키어넌 감독 <버스 노동조합>(Bus Rider’s Union, 1999) 하스켈 웩슬러 감독 <림보>(Limbo, 1999) 존 세일즈 감독 <머홀랜드 폴스>(Mulholland Falls, 1996) 리 타마호리 감독 <진실과 탐욕>(The Rich Man’s Wife, 1996) 에이미 홀든 존스 감독 <캐나다 베이컨>(Canadian Bacon, 1995) 마이클 무어 감독 <론 이니쉬의 비밀>(The Secret of Roan Inish, 1994) 존 세일즈 감독 <베이브>(The Babe, 1992) 아서 힐러 감독 <타인의 돈>(Other People’s Money, 1991) 노먼 주이슨 감독 <폴 뉴먼의 블레이즈>(Blaze, 1989) 론 셸톤 감독 (Three Fugitives, 1989) 프랜시스 베버 감독 <범죄와의 전쟁>(Colors, 1988) 데니스 호퍼 감독 <엉클 밋>(Uncle Meat, 1987) 프랭크 자파 감독 <메이트원>(Matewan, 1987) 존 세일즈 감독 <사랑도박>(The Man Who Loved Women, 1983)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 <라스베가스의 도박사들>(Lookin’ to Get Out, 1982) 할 애쉬비 감독 <귀향>(Coming Home, 1978) 할 애슈비 감독 <바운드 포 글로리>(Bound for Glory, 1976) 할 애슈비 감독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1976) 하스켈 웩슬러 감독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75) 밀로스 포먼 감독 <적과의 대면>(Introduction to the Enemy, 1974) 하스켈 웩슬러 감독 <트라이얼 오브 카톤스빌 나인>(Trial of the Catonsville Nine, 1972) 고든 데이빗슨 감독 <인터뷰 위드 마이 라이 베테랑>(Interviews with My Lai Veterans, 1970) 하스켈 웩슬러 감독 <미디엄 쿨>(Medium Cool, 1969) 하스켈 웩슬러 감독 <화려한 패배자>(The Thomas Crown Affair, 1968) 노먼 주이슨 감독 <밤의 열기 속으로>(In the Heat of the Night, 1967) 노먼 주이슨 감독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1966) 마이크 니콜스 감독 <버스>(The Bus, 1965) 하스켈 웩슬러 감독 <러브드 원>(The Loved One, 1965) 토니 리처드슨 감독 <베스트 맨>(The Best Man, 1964) 프랭클린 스카프너 감독 <아메리카 아메리카>(America, America, 1963) 엘리아 카잔 감독 <페이스 인더 레인>(Face in the Rain, 1963) 어빙 커슈너 감독 <로니>(Lonnie, 1963) 윌리엄 할레 감독 <후들럼 프리스트>(Hoodlum Priest, 1961) 어빙 커슈너 감독 <엔젤 베이비>(Angel Baby, 1961) 폴 웬드코스 감독 <사베지 아이>(The Savage Eye, 1960) 벤 메도우 감독 <스터드 로니간>(Studs Lonigan, 1960) 어빙 레네 감독 <파이브 볼드 우먼>(Five Bold Women, 1959) 조제 로페즈 포르틸로 감독 <스테이크 아웃 온 도프 스트리트>(Stakeout on Dope Street, 1958) (uncredited) 어빙 커슈너 감독 제작 <버스 노동조합>(Bus Rider’s Union, 1999) <미디엄 쿨>(Medium Cool, 1969) <러브드 원>(The Loved One, 1965) 각본 <정글의 반란>(Latino, 1985) <미디엄 쿨>(Medium Cool, 1969) <버스>(The Bus, 1965) 감독 <버스 노동조합>(Bus Rider’s Union, 1999) <정글의 반란>(Latino, 1985) <버스II>(Bus II, 1983)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1976) <적과의 대면>(Introduction to the Enemy, 1974) <브라질:고문에 관한 보고>(Brazil: A Report on Torture, 1971) <미디엄 쿨>(Medium Cool, 1969) <버스>(The Bus, 1965)

소녀, 달의 정복자

오늘, 달을 보았다. 달은 가장 커다랗게 도시의 스카이라인에 걸쳐 있었다. 인간이 달을 바라볼 때부터, 달은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우리는 달을 보며 인간이 지닐 수 없는 에너지를 떠올렸고, 우주의 스펙터클을 디자인했다. 만월이 뜨면 나타나는 괴물이나 달에 세워진 식민지나 달에서 온 괴물이라는 소재는 판타지와 SF에 친숙하게 사용되던 것이다. <러브머신>과 <요동의 뱀파이어>를 통해 섹슈얼리티와 폭력이라는 두개의 키워드를 SF와 판타지의 상상력에 유려하게 실어낸 이유정은 <아시안> <가물치전>을 통해 SF의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안타깝게도 데뷔 초기에 보여준 기대에 비해 후속작에서는 상업적 성공이나 비평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이유정의 은 달에서 시작된다. 달의 미개척지 탐사선에 근무하던 미나는 범죄자들에게 폭행당하고 살해당한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미나의 배를 가르고 아이를 구해낸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나 자란 지타는 한날 한시에 태어난 친구(미유키, 루니)와 함께 폭력서클 핑크클럽을 만들어 조직을 와해시키는 여고생이다. 지구는 정체불명의 거대 로봇에 공격을 받는다. 거대 로봇은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살육한다. 인류는 달에 생존의 터를 잡았고, 달에 모인 인류의 지도자들(<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제레’ 같은)은 인류를 구하기 위해 영원의 아이 프로젝트를 시행한다(‘네르프’같은 조직에서). 지타는 영원의 아이를 위한 소모품으로 연구소 같은 조직에 들어온다. 자신이 친구들과 함께 달을 지배하게 될 영원의 아이라고 생각했던 지타는 폭주, 양아버지의 죽음, 자신을 피하는 친구들에게 상처받고 결국 자신이 소모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지타의 내면은 철저히 파괴된다.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고 있던 지타는 달의 아이 중 한명인 케이와 싸우다가 엘을 위한 화원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지금까지의 자아가 죽어버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때부터 텔레파시로 늙어버린(<아키라>의 ‘실험체’ 같은), 그래서 대용품인 지타를 필요로 하는 엘과 소통하게 된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일어난다. 생명체를 못 죽이는 엘은 자신이 흡수해야 할 지타에게 흡수되어버린다. 여기까지가 단행본 2권과 인터넷 사이트 연재분 31회까지의 이야기다. 힘의 섹슈얼리티 이유정이 보여주는 섹슈얼리티는 그가 집착하는 세라복, 짧은 치마에 긴 다리, 루즈삭스,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여주인공, 하얀 팬티라는 몇 가지 요소에 집약된다. 언뜻 매우 전형적인 섹슈얼리티의 관습으로 보이지만, 미소녀 캐릭터와는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익숙한 미소녀 캐릭터는 귀여운 얼굴에 커다란 가슴과 엉덩이를 특징으로 한다. 일본의 18금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디자인된 미소녀 캐릭터는 지금은 꽤 많은 만화를 통해 익숙해져 있는데, 가슴이나 엉덩이가 비정상적으로 강조된 이들 캐릭터는 원시시대에서부터 존재했던 다산을 상징하던 여성상에 근접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커다란 눈에 귀여운 얼굴과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커다란 가슴과 엉덩이는 남성들의 보호본능과 동시에 정복욕을 자극한다. 그걸로 끝이다. 반면, 이유정의 캐릭터는 복잡하다. 거대한 가슴이나 엉덩이도 없고, 얼굴은 어려보이지도 않는다. 우리에게 관음의 시선이 허락되는 건, 담임이 웃옷을 벗겨버릴 때 드러나는 루니의 가슴, 어린 왕자가 그린 루니의 누드, 식물원의 주인이 훔쳐보는 지타의 팬티, 어린 왕자가 바라본 루니의 팬티를 훔쳐볼 때 정도이다. ‘세라복’이라는 일본식 섹슈얼리티의 기표에 가둬진 그녀들의 육체보다 강렬한 것은 힘이다. 지타, 루니, 미유키는 힘으로 근처의 조직을 격파하며 달의 지배자가 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특히 주인공 지타는 수백 대 일의 대결에서도 승리하는 폭주의 힘까지 지니고 있다. 루니를 납치해 나체로 묶어 놓은 55블럭의 조직 전체를 지타 혼자의 힘으로 해결한다. 관음의 시선은 어느새 여성의 공격에 대한 남성의 공포로 이어지고, 지타의 힘에 으깨어지는 남성들을 보며 마조히즘적 환상을 충족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 섹슈얼리티에 동요가 없는 건 아니다.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여신들’ 중 한명을 남성이 조종한다는 설정이 그것이다. 핑크클럽의 3인조 중 한명인 미유키는 지구의 전장에서 하평을 부상입게 한 남자친구 때문에 새로 부임한 선생 하평의 노예가 된다. 달과 지구에서 전개되는 SF의 변주들 은 이유정 특유의 섹슈얼리티를 기반으로 달과 지구에서 각각 특색있는 SF의 양상을 변주해낸다. 친구를 지구로 보냈다는(실은 지구가 아닌 달의 연구조직으로 잡혀간) 자책감에 범죄자들과 무차별 살육의 외계인들이 우글거리는 지구로 내려간 미유키의 이야기는 마치 밀리터리 SF를 보는 느낌이며, 제레와 네르프 그리고 <아키라>의 실험체를 연상시키는 지타의 이야기는 사이버펑크를 보는 느낌이다. 이 두 가지 SF의 변주가 각각 흥미롭게 진행되면서 을 만들어간다. SF에 관한 한 이유정은 우리나라에서 자기 색을 가진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다. 그러나 아직까지 완전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보여주지 못한, 미완의 기대주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새로운 또 새로운… 발견은 계속된다

한상준/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신상옥 회고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7개월 전인 지난 4월의 일이었다. 원래 이 회고전은 지난 해 제 5회 부산영화제를 위해서 기획되었지만, 몇 가지 사정에 의해‘춘향전 회고전'으로 변경되었었다. 나는 일단 이용관 전프로그래머에 의해 작년에 준비된 자료들을 토대로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지난 해 영상자료원 상영 시에 녹화한 테이프들로라도 가능한 한 신상옥 감독의 영화들을 많이 보는 것이 급선무였다. (깜박거림이 심해 영화를 보는 도중 종종 회의주의자로 변했다.)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내시> <로맨스 빠빠> <벙어리 삼룡이> <상록수> 등 전에 본 작품들도 다시 보았고, <어느 여대생의 고백> <동심초> <자매의 화원> <지옥화> <젊은 그들> <로맨스 그레이> <쌀> 등은 이번에 처음 보았다. 신상옥, 최은희 부부를 처음 만난 것도 4월 경이었다. 일단 올해 회고전을 열기로 한 사실을 전달하고, 구체적인 상영작의 결정은 협의해서 하기로 했다. 두 번째로 신상옥 감독을 만났을 때 나는 70여편에 이르는 필모그래피 가운데 5, 60년대 작품을 중심으로 꾸미고 싶다고 말했다. 신상옥 감독은 이에 대해 북한에서 만든 작품과 90년대 작품 <증발>에 관해서 애정을 보이면서 이번 상영에 꼭 포함되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증발>의 상영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의 분위기를 보이는 몇몇 장면들은 인상적이었지만, 좀 낯설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히 신상옥 감독에게 정중하게 거절하려는 의도에서, 비디오숍에서 이 영화를 다시 빌려 보았다. 그러나 신상옥감독의 여러 영화를 거친 이 시점에서 <증발>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즉 60년대 기간 동안 대형 사극을 연출한 뒤, 현실 문제를 중시하는 북한 시절의 영화를 거친 후에 나온 귀결이라고 생각된 것이다. 또 다시 두 번을 보고 이틀 간 고민한 뒤 <증발>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신상옥 감독의 전체 필모그래피 안에서 지니는 중요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8월 말 경에 <증발>과 <탈출기>를 포함해 8편을 결정했다. 물론 여러 번 교체 과정을 거친 후였다. 이미 영문 자막이 있는 프린트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내시> <이조여인 잔혹사> <증발>을 정했고, 새로 영문 자막을 첨가할 작품으로 <지옥화> <연산군> <천년호> 그리고 <탈출기>를 결정해 녹취 작업과 대사의 영어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 동시에 회고전에 관련된 영문 서적도 만들어야 했다. 신상옥 감독의 영화 세계를 조망하는 글을 내가 쓰기로 했고, 몇몇 테마를 골라 필자들에게 원고를 청탁했다. 신상옥 감독의 작품 세계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선정 작품 외에 다른 작품들도 계속 보아야 했다. 그래서 여러 자료를 통해 <꿈> <무영탑>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등의 영화들을 보았다. 그러다가 9월 초에 발견한 영화가 <다정불심>이었다. 출시된지 오래 된, 그래서 안좋은 화질에 화면도 텔레비전 비율로 바뀐 비디오였는데도, 솔직히 아주 매력적인 영화였다. 이 영화는 특히 시각적 탁월성, 그리고 히치콕의 <현기증>을 생각나게 하는 현대적 테마가 놀라웠다. 다음 날 영상자료원에 문의해 프린트를 볼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런데 프린트는 없이 네가 필름만 보존되어 있다는 답이 왔다. 필름으로 작품의 온전한 가치를 확인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비디오로 한 번 다시 본 뒤 모험하고 싶은 유혹에 굴복했다. 그리고 다음 날 프로그램팀에서 실무를 진행하는 양정화씨에게 <다정불심>을 추가하자고 말했다. 그 동안 몇 차례 같은 상황을 겪은 양정화씨는 이번에는 거의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회고전은 매 단계마다 업무가 매우 많다.) 나는 회고전을 성사시킨 뒤의 보람을 생각하면서 좀더 고생하자고 했고, 양정화씨는 다른 말 없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 무척 고마웠다. 이렇게 <다정불심>이 추가되고, 다시 9월 하순 <탈출기>가 <소금>으로 바뀌는 과정을 거쳐 아예 두 편을 다 상영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모두 10편으로 최종 결정된 것이다. (솔직히, 준비 시간과 여건이 허락된다면 20편 정도를 골라 다시 신상옥 회고전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회고전 개막을 눈앞에 둔 지금 안타까운 것은 비용 부족으로 새 프린트에 영문 자막을 새기지 못하고, 원래 계획과 달리 레이저 영문 자막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신상옥 회고전은 벌써 내년 2월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에서도 개최될 예정이며, 프랑스 도빌에서도 <다정불심> 등 몇 작품으로 회고전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영문 자막이 없는 프린트들은 실제로 해외 상영이 어려운 형편이다. 그래서 지금 신상옥 감독 개인이 새 프린트들에 영문 자막을 넣기 위해 애쓰고 있다. 좀 더 많은 예산이 영상자료원에 묻힌 뛰어난 작품들의 영문 자막 프린트를 위해 배정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포커스] 사랑의 찬가

프랑스, 스위스, 2001년, 97분 France, Switzerland 2001, 97 min 감독 장 뤽 고다르 오전 11시 대영2관거의 반세기 가량을 ‘숨가쁘게’ 달려온 노장의 새 영화는 제목과는 달리 세상에 대한 근심으로 가득하다. 여기서 고다르의 근심은 이미지와 사운드가 구성해내는 기억으로서의 역사에 대한 근심이다. 텔레비전과 영화라는 강력한 매체는 스스로의 표현수단을 지니지 못한 인민들의 기억을 재구성하며, 진정한 전투는 바로 이 기억의 장에서 벌어진다고 말한 이는 다름 아닌 미셀 푸코. 미셀 푸코의 이러한 전언에 대한 충실한 영화적 주석가라 할 크리스 마르케는 <태양 없이>에서 ‘총체적 기억은 마취된 기억이며, 하나의 집단적 기억 뒤에는 천 개의 개인적 기억들이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다. 크리스 마르케가 꿈꾸었던, 망각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현재로 날아온 인물이 보고 느끼는 것들에 대한 SF 영화라는 프로젝트는 <사랑의 찬가>에서 실현되었다. <사랑의 찬가>에서 고다르는 현재의 파리를 다시 한 번 알파빌처럼 바라본다. 이야기가 끝나고 의미가 떠오르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도래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세 시기(청년/ 장년/ 노년)를 통해 이야기가 아닌 역사를 드러내 보이겠다는 주인공 에드가의 노력이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상하게도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은 기억(과거)으로만 남은 젊음과 현재의 지친 노년뿐. 저항과 혁명에 대한 기억, 혹은 그에 대한 후일담. 그럼에도 고다르는 기어이 우리가 여전히 성인이 되지 못했으며 아직 아무 것도 말해지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한다. 고다르는 흑백으로 촬영된 현재와 컬러로 촬영된 과거를 대비시키면서 유례없이 명료하게 영화를 전개시킨다. 여기엔 현재를 성찰하고 과거를 우리 앞에 환하게 불러 세우고 싶어하는 고다르의 간절한 소망이 있다. <사랑의 찬가>는 회고조의 역사영화들에 관해 영화로 쓴 비평이기도 하다. 레지스탕스 활동 중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 노부부의 이야기에 대한 판권을 사서 그럴싸한 역사멜로드라마를 만들고자 하는 할리우드 제작자들에 대한 묘사는 의미심장하다. “미국인들… 그들에겐 자신들만의 기억이 없지… 그래서 다른 이들의 과거를 사는 거야. 특별히 저항했던 이들의 과거를. 혹은 그들은 말하는 이미지를 팔기도 해.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결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아. 그게 그들이 원하는 거라구.” 역사와 기억에 대한 근심으로 빚어낸 역설적인 <사랑의 찬가>는 우리로 하여금 한 진정한 예술가의 육체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원망하게 만든다. 유운성

<칸다하르>를 보니

1996년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탈레반 정권이 맨 먼저 수행한 일의 하나는 텔레비전 사형이다. 압수한 티브이 수상기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탱크로 깔아뭉개는 ‘참살형’도 있었고 수상기들을 노끈으로 묶어 나무에 매다는 ‘교수형’도 집행되었다고 한다(이 상징적 교수형 끝에 수상기들은 다시 끌어내려져 박살형에 처해진다). 음악은 금지되고, 영화를 비롯한 영상물들도 텔레비전과 운명을 같이한다. ‘이미지’가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영상 이미지는 사람을 오염시키고 타락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순수 이슬람 국가’를 향한 탈레반의 열정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 그리고 서구풍 대중문화나 서구 영향을 받았다고 판정되는 문화형식들에 대한 탈레반의 혐오가 얼마나 강도 높은 것인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물론 서구적인 것들만 수난당한 것은 아니다. 탈레반이 지난 봄 바미안 계곡의 7세기 석불들을 폭파한 것도 그들의 눈에는 석불이 ‘이슬람에 어긋나는’ 우상의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금지된 그 아프가니스탄에 숨어 들어가 그 땅의 현실을 이미지로 잡아낸 영화 한편이 지금 세계적 화제가 되고 있다. 이란 영화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작품 <칸다하르>(Kandahar)가 그것이다. 마흐말바프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함께 ‘이란영화의 물결’을 일으킨 두 거장 중 하나이다. 그는 영화감독이면서 소설가, 대본작가, 극작가이고 그의 가족은 부인, 딸, 아들이 모두 감독인 ‘마흐말바프 영화인 집안’으로 유명하다. 그가 <칸다하르>를 완성한 것은 지난 2월이고, 이 작품이 유명해진 것은 9월11일의 뉴욕 참사 이후이다. 완성 이후 일곱달 동안 이렇다 할 주목도 받지 못하고 “별 중요성 없는 소재”를 다룬 영화로 먼지 속에 묻힐 뻔했던 작품이 졸지에 화제작이 된 것이다. 더구나 ‘칸다하르’는 탈레반 정권 지도자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의 출신 지명이기도 하다. 감독이 테러사건을 예견했을 수는 없다. 그는 무엇 때문에, 무슨 동기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아무도 영화적 소재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은 나라에 목숨 걸고 숨어들어 렌즈를 들이댄 것인가?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마흐말바프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탈레반은 ‘무지의 군대’이며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재난의 정권’이다. 탈레반 집권 이후 5년간 600만명의 아프간인들이 난민 신세가 되어 나라 밖으로 탈출했고 국민 대다수가 굶어 죽어가고 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부르카’(burka, 장옷)로 가려야 하는 여자들은 학교에서 쫓겨나고 모든 사회활동을 금지당한다. ‘어머니’와 ‘아내’만이 여성의 기능이다. 사내아이들도 80%가 학교엘 다니지 못한다. 마흐말바프가 <칸다하르>로 세상에 알리고자 한 ‘진실’은 그가 무지의 군대라 부른 탈레반의 압제와 그 압제로 고통받는 아프간의 참상이다. 영화를 만들기 전 1년 동안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치밀하게 관찰했다고 한다. 이 관찰과 분석도 그의 인터넷 사이트(www.makhmalbaf.com)의 ‘영화’ 메뉴 <칸다하르> 방에 “석불은 파괴된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올라 있다. ‘작은 지식의 불꽃’으로 ‘인간 무지의 깊은 바다’를 비춰보려 했다는 것이 말하자면 그의 <칸다하르> 제작 동기이다. 극적 구성과 다큐멘터리를 섞은 <칸다하르>는 뛰어나게 아름다운 시적 영상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마흐말바프 사이트의 <칸다하르> 포토 갤러리에 떠 있는 첫 번째 이미지는 쿠란 경전(?)을 펴든 검정 부르카 차림의 두 여자와 그들 뒤로 푸른색, 갈색 부르카를 입고 서 있는 여자들을 보여주는데, 이 화면의 색조와 구성은 숨막히게 심미적이다. 부르카에 갇혀 숨막히는 아프간 여자들의 영화적 이미지가 이처럼 숨막히게 아름답다니, 에고, 이건 무슨 조화인고? 아프간의 비참한 현실을 기록했다는 <칸다하르>의 장면장면 이미지들은 어찌 그리 아름다울 수 있는가? 목발 군상의 장면까지도? 이런 숨막힘은 탈레반의 현실과 탈레반의 저항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분열의 진실이기도 하다. 남의 것 훔치면 손목을 잘라버리기 때문에 길에 빵을 내다놓아도 누구 하나 집어가지 않는다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이런 나라에서 ‘이슬람의 법’은 정신의 차원으로부터 그저 가혹하고 무서운 ‘형법’의 차원으로 주저앉는다. 우리가 탈레반의, 또는 이슬람의 저항을 이해하는 일과 탈레반의 원리주의적 황폐를 지적하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다. 도정일/ 경희대 영어학부 교수·문학평론가 jidoh@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