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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명] 여성 영화인 모임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영화계의 여러 단체 중 ‘사단법인 여성 영화인 모임’이라는 것이 있다. ‘영화인회의’처럼 회원 수가 많지도 않고, 대외적인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 2000년 봄에 창립대회를 가진 이후, 다소 얌전하게, 그러나 성실하게 그 활동이 이루어져왔다. 창립 이후 3년 동안 꾸준히 진행한 사업 중 하나는, 영화계에 취업하고자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이다. 그 내용은 홍보·프로듀서 과정, 프로덕션디자인 부문, 편집부문 등 영화제작 전반에 걸쳐 주요 영역을 다루면서 현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여성 영화인들이 강단에 서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이 워크숍의 수강을 통해 현업에 진출한 여성들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외에도 매해 연말엔 ‘여성 영화인 축제’를 연다. 그해에 여성 영화인들이 제작, 연출, 참여한 작품 중 주요한 영화를 상영하고, 회원들이 직접 투표에 나서 그해의 주목할 만한 여성 영화인들을 선정, 시상하는 행사 및 한해 영화계의 사건 및 사실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1년치 <한국영화백서>를 펴내 발표하는 것이 주요 행사내용이다. 올해는 특히 여성 영화인들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와 설문조사를 통해 여성 영화인의 복지실태와 의식조사 및 현황분석을 마쳐 이번 ‘여성 영화인 축제’ 기간 중에 ‘포럼’ 형식으로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다. 또한 하루씩 나누어 변영주 감독의 <밀애>와 국내 미개봉작인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의 상영 및 Q&A 시간도 마련되었다. 사전에, 사무국에선 연출·제작진의 인터뷰 등을 담은 두 영화의 워크북도 펴낸 바 있다. 위의 사실들을 재미없지만 바쁘게 나열한 것은, 여성 영화인 모임의 대외 홍보가 다소 미약하고 이번 행사를 치르면서도 느낀 바, 실제 회원들의 참여도가 기대보다 낮았다는 데서 다시 한번 ‘여성 영화인 모임’이란 단체를 알리고자 함이다. 2002년 한해 동안 장편영화를 연출한 여성 감독만 해도 5명에 이른다. 이는 한해에 나올 수 있는 숫자만으로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것이다. 매 작품에 참여하는 여성 스탭의 경우도 30%에 육박하는 양적 성장을 보였다. 반가운 일이다. 한국 영화산업의 빠른 변화와 성장 속에 아직은, 상대적 소수인 여성들이 ‘각자 알아서 열심히’ 분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네트워킹’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본다. 여성 영화인들에 대한 제대로 된 주목과 평가, 그리고 그들간의 적극적인 유대관계가 무엇보다 유의미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여성 영화인들의 질적 성장과 한국영화의 성장에 상당 부분 기여한다고 생각된다. ‘포럼’을 통해 회원들이 여성 영화인 모임에 가장 크게 바라는 것에는 여성 영화인들의 복지 증진과 재교육 부문이 있었다. 2003년 사업목표와 계획을 세우는 데 중요한 지침으로 삼아야 할 사항들이다. 마지막으로, 회원들의 좀더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린다. 부족한 면들은 2003년에 적극 보완, 일신할 것이다. 회비도 열심히 내주시고, 질책과 바람의 목소리도 적극적으로 내주시길 바란다. 여성 영화인 모임의 인터넷 주소는 www.wiflim.com이다. 전화번호는 02-922-1087. 회원 가입은 언제나 열려 있다. 여성 영화인 여러분 지난해에도 수고하셨습니다. 새해엔 더욱 건승하시길. 모두 해피뉴이어!심재명/ 명필름 대표 shim@myungfilm.co.kr

지상파 방송사 연말 대중가요 시상식의 결정적 장면들

어찌 영화에만 결정적 장면이 있을쏘냐. 지난해 12월29일부터 31일까지 매일 밤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힌 지상파 방송사 대중가요 시상식에서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엄청난 결정적 장면들이 연출됐으니, 해가 바뀌었다고 모른 척 지나간다면 3시간짜리 생방송에 진땀을 뺀 제작팀과 이를 지켜보느라 눈이 벌겋게 충혈된 시청자들에게 예의가 아닐 터. 더구나 2003년이 밝은 뒤에도 “시상 기준이 모호하다”는 자못 진지한 의문과 “비슷한 형식으로 똑같은 가수들에게 상을 주는 시상식 프로그램을 방송사마다 마련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유로 프로그램 통폐합론이 제기되는 등 일회성 프로그램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강한 여운과 파장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한해에 꼭 한번씩만 방송되는 희귀성, 트로피를 빌미로 가요계 톱스타들을 세 시간 내내 묶어두는 대담한 섭외 방식, 같은 시간 이웃 방송사에서 중계하는 연기 대상이나 코미디 대상 시상식과 번갈아 보아도 전혀 무리가 없는 접근의 용이성 등등 연말 대중가요 시상식(이하 시상식)의 강점은 일일이 열거하자면 입만 아프다. 그러나 시상식의 가장 큰 마력은 뭐니뭐니해도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가격할 기세로 시시각각 터져나오는 온갖 결정적 장면에 있다 할 것이다. 지난해 12월29일 방송 현장, 신인상을 차지한 비와 별의 특별 공연에 박진영이 등장하면서 무대 위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박진영이 누구인가. 인기가수에서 대박 프로듀서로 변신한 뒤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대중음악계의 큰 손. 비와 별에 이어 노을이라는 이름의 가수를 속속 데뷔시킴으로써 가요계에 자연주의 예명 바람을 몰고온 이가 아닌가. 그러나 박수와 환호, 클로즈업 세례를 받은 박진영에게 진행자인 이문세가 “오늘은 박진영씨의 날인 것 같다”는 화끈한 찬사를 날린 것은, 다가올 결정적 장면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잠시 뒤, 강타의 특별 공연에 보아와 문희준이 가세하더니 급기야 현진영이 무대 뒤에서 뛰어나왔다. 이들이 왜 몰려나왔는지 어리둥절해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이문세는 “여러분, SM 패밀리였습니다!”라는 결정적 대사를 날렸으니, 시청자들은 비로소 이날 시상식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렇다. 시상식은 박진영이 이끄는 JYP와 이수만이 이끄는 SM을 비롯한 국내 대형 기획사들이 자사가 보유한 톱스타들의 머릿수를 과시하고, 평소 방송 프로그램 제작과정에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커밍아웃’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계가 몇몇 대형 기획사와 이들이 키워낸 스타를 밑천으로 삼는 방송사들간의 굳건한 연대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이처럼 뻔뻔하리만치 솔직하게 고백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날의 특별 공연이야말로 결정적 장면의 최고봉으로 대접받아 마땅할 것이다. 연말 방송사 3사 시상식 무대에 오른 수상자들의 면면은 또 어떤가. 남들은 평생 한번 할까말까한 수상소감을 피력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서두에 “아무개 사장님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사.장.님. 감격의 순간에 그들의 뇌리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길러주신 부모님이나 자신의 음악에 영감을 준 선후배 음악인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부모’인 사장님이었다. 이처럼 대중음악계 현실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수상자들의 황당하리만치 솔직한 수상소감은 도저히 놓칠 수 없는 결정적 대사가 아니겠는가. 아, 그러나 어떤 결정적 장면보다도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 있었으니 의 네티즌 선정 최고 인기상 발표 장면이었다. 진행자의 말을 대충 옮겨보기로 하자. “일정 기간 동안 네티즌들의 투표를 통해 선정한 네티즌 인기상에 장나라와 신화가 공동 선정되었습니다!” 설명이 필요없는 명·장·면. 본상 15명(팀) 외에 15개 부문별 수상자를 따로 선정하고도 모자라, 7개 부문에서 2명, 3명까지 공동 수상자를 선정하는 독특한 시상 스타일을 선보인 SBS는 네티즌 선정 최고 인기상 공동 수상자를 발표함으로써 ‘이 땅의 네티즌들이 장나라와 신화에게 단 한표의 차이도 없이 똑같은 사랑을 퍼부었다’는, 그 가치를 따질 엄두조차 안 나는 특종을 선사하고야 말았다. 이쯤 되면 음반판매량과 네티즌 투표, 각종 차트 등 그 어떤 공식적인 경로를 동원해 집계해도 젊은 층이 선호하는 가수들 위주로 시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탄한 나머지 ‘청소년 부문’과 ‘성인 부문’이라는 전대미문의 부문을 만들어 공영 방송으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한 은 결정적 장면 선정에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다. 오호, 오호 통재라!이미경/ <스카이라이프> 기자 friendlee@hani.co.kr

송두율 교수 소재 다큐 <경계도시>의 감독,프로듀서

2002년 성탄 전야. 홍형숙(40) 감독과 강석필(32) 프로듀서는 처음 성탄을 맞는 아들 이헌이와 놀아줄 여력이 없었다. ‘표현·창작의 자유 보장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글을 급히 써야 했다. 이들 부부를 갑작스레 바쁘게 만든 것은 저녁에 걸려온 전화 한통이었다. 국정원 소속임을 밝힌 그는 이날 저녁 8시께 전화를 걸어와, 이들 부부가 제작하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 중이던 <경계도시>의 일부 장면이 “사실과 다르고, 또 국정원 직원의 초상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다음 상영을 강행할 경우 “나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씨네21> 384호). 국정원이 문제시한 장면은 2001년 8월28일, 국정원 직원들이 강 프로듀서를 불러내 “제작을 중단하든지 아니면 이적성이 없게 만들어야 한다”며 압박하는 모습을 몰래카메라로 찍은 4분가량의 분량이다. <경계도시>는 한국 정부가 친북인사라는 딱지를 붙여 30년 넘게 입국을 불허해왔던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를 다룬 79분 길이의 다큐멘터리. 제작기간 내내 감독과 프로듀서가 겪어야 했던 국가기관의 간섭과 이국에 머물 수밖에 없는 한 ‘경계인’의 쓸쓸한 뒷모습이 맞물려 레드 콤플렉스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경계도시 서울의 비루함을 곱씹게 만든다. 2002년 12월28일 서울독립영화제 폐막식에서 홍형숙 감독과 강석필 프로듀서는, 그러나 표정이 어둡지 않았다. <경계도시>가 우수상 외에도 관객상을 거머쥐면서 이번 싸움이 자신들만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 2002년의 마지막 날, 민예총 다큐멘터리 강좌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 뒤 서울영상집단에서 카메라를 나눠 든 동지로, 이제는 삶을 나누는 반려자로 살아가는 두 사람에게서 그간의 사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분단 현실에 관한 접근은 처음이다. → (홍형숙) 만들어야겠다 하면서도 매번 미뤄왔다. 그러다 1995년에 윤이상 선생이 돌아가셨다. 당시는 선생의 음악을 즐겨 듣고 있던 때이기도 했는데, 부음 소식을 듣고 나니 지금까지 뭘 했나 싶은 자괴감이 들더라. 본격적으로 기획에 들어간 건 3년이 지난 뒤다. → (홍형숙) 가볍지 않은 주제 때문에 파고들려면 이것저것 공부를 해야 했다. 거기다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를 끝내고 곧바로 <시작하는 순간-두밀리 두번째 이야기> 제작에 돌입했던 터라 늦춰졌다. → (강석필) 처음 기획 단계에서는 여러 가지 테마를 두고 저울질을 했다. 비전향 장기수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도중 송환이 이루어졌고, 어느 정도 종료된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친북인사라는 낙인 때문에 입국이 금지된 인물들의 사례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이중 가장 상징적인 송두율 교수를 택했다. 촬영 전 내부적으로 합의한 원칙이 있다면. → (홍형숙) 연민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휴먼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랬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송 교수님도 우리 생각에 동의했다.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한 인물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상징적인 인물로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영화 속에 담지 못한 인터뷰 중 기억나는 것이 있나. → (홍형숙) 송 교수님이 카메라를 꺼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귀국이 좌절된 이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궁금해하고 있다가 나중에 물었는데 속내를 이야기할 테니 찍지는 말라고 하셨다. 영화 속에서 내레이션으로 처리한 인상적인 답변이 그것이다. 내레이션이나 카메라 시점의 경우, 연출자의 주관적인 시점이 눈에 띄는데. → (홍형숙) 국내 상황을 기록할 땐 감독이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 관객도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경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봐도 다들 어느 정도 준비된 상태로 보니까 소통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이 경우엔 달랐다. 30년 넘게 이국땅에서 살아야 했던 인물 아닌가. 내게도 낯선 경험이었던 만큼 관객 역시 마찬가지라고 봤다. 그래서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서라면 주관적인 시선의 도움이 필요했다. 제작비 마련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강석필) 독일 학술교류처(DAAD)의 기금을 받은 게 큰 도움이 됐다. 95년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베를린영화제에 출품됐는데 그때 베를린 예술인 초청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았다. 윤이상, 백남준, 차우희씨 등 이전에 기금을 받은 이들이 각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예술가들이었으니 우리야 운이 좋았던 셈이다. 체류비용 일체를 부담해주는 것말고도 재독 한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인지 10개월의 촬영기간 동안 편하게 작업했다. → (홍형숙) 앞으로도 그런 집에 살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머문 곳이 40평 정도 되는 아파트였으니까. 황석영 선생이 방북 이후 한동안 머물렀던 곳이었는데 사정 모르는 유학생들은 우리 보고 부르주아라고 했을 거다. 올해 부산영화제 상영에선 4분가량의 몰래카메라 장면이 빠진 채 상영됐다. → (강석필) 완성본 편집을 끝낸 것이 10월이었다. 인권단체, 시민단체, 영화단체들과 함께 내부 시사를 했는데 우려가 적지 않았다. 소재도 민감한데다 국정원 직원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물론 반대 견해도 있었고, 돌이켜보면 기우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에서 국정원의 도청 의혹을 들고 나오는 등 예측 불가능한 정국 상황이라 풀버전 상영은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 (홍형숙) 부산영화제가 아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풀버전을 상영하기로 한 것도 그때 정한 것이다. 그때 집행위원장인 조영각씨한테 그랬다. 상영하면 끌려갈지도 모른다고. 그랬더니 그런 사안이라면 더 좋은 것 아니냐고 그러더라. 제작 중 국정원쪽에서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받았는데. → (강석필) 2001년 8월28일 서울 모 호텔에서 직접 만난 것 외에도 그 전후로 문화관광부나 영진위를 통해 제작사항을 확인하는 내용의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 부산영화제의 경우, 상영하는 줄 모르고 있다가 부랴부랴 영화제쪽으로 연락을 취한 것 같다. 대선 정국이니 그쪽도 바쁘지 않았겠나. 그러다 최근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풀버전을 2차례 상영했는데 상영 이후 성탄 전야에 직접 전화를 걸어와서는 앞으로 계속 상영할 경우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했다. 국정원쪽의 주장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 (강석필) <한겨레21>이 인용한 국정원 직원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했는데 그건 영화를 보면 틀렸는지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고. 자신들의 행위가 국가기관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며 선의의 조언이라고 하지만, 이는 명백히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영화가 채 완성되기 전부터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창작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이는 국정원법의 권력남용 금지조항에도 어긋난다. 초상권 침해 주장 역시 인정할 수 없다. 제3자가 보아도 명백히 그 사람이 누구인지 노출되어야 하는데 뒷모습을 찍었으니 문제될 게 없다. 상영은 계속할 것이다. 몰래카메라 촬영에 대해 국가권력에 대한 개인의 방어수단이라고 했는데. → (홍형숙) 그건 상식 차원의 일이다. 아무런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면 나중에 그쪽에서 언제 그랬냐고 해도 할말이 없다. 현장에서 적법절차 없이 구속될 수도 있다. 그렇게 위협적인 상황에 놓여졌는데 손놓고 있을 순 없지 않나. 출산 직후라 그 자리에 갈 수 없었지만, 어떤 아줌마가 그런 상황의 남편에게 ‘혼자 잘 다녀와’ 할 수 있겠는가. → (강석필) 현장에 놓인 사람이 아니라면 그 긴장감을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소설 쓴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80년대 말 변사체로 발견됐던 이내창씨의 경우도 떠올랐다. 촬영 분량을 영화 속에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 (홍형숙) 일차적인 고발이나 폭로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그때 만났을 때 발표하고 그랬겠지. 당시에도 주변에선 인권운동단체들에 상황을 전한 뒤, 국정원과 싸우라고 했다. 하지만 영화를 완성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싸움만이 남는 결과를 바라진 않았으니까. 그 장면을 넣은 것은 낯선 땅에 사는 입국금지에 관한 한 개인에 관한 다큐로서뿐만 아니라 마지막으로 남은 경계도시 서울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판단해서 넣은 거다. → (강석필) 영화 처음과 끝에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누군가에 대해 말하는 일상적인 행위조차 결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라는 자막을 넣었는데, 실제 관객도 그 장면을 보고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더 실감하는 것 같다. 앞으로의 상영 일정 계획은. → (홍형숙) 1월에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에서 상영될 예정이고, 이후에도 꾸준히 기획 상영을 할 예정이다. 인터넷을 통해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이들이 늘었는데 이들을 위해 웹상에서 상영을 준비하고 있고, 궁금해하는 관객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상영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일반 극장 상영을 배제하고 있진 않지만, 이전의 사례를 볼 경우 투여했던 에너지에 비해 반응은 미비한 편이라 일단은 지켜보겠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에 출품 의사를 밝혔는데, 설령 상영기회를 얻지 못하더라도 따로 소규모 상영을 해야겠지. <경계도시>가 어떤 작품으로 남았으면 싶나. → (홍형숙) 영화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으면 한다. 만든 제작진을 포함해서 레드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운 이들은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반응은 절반의 지지와 절반의 거부로 나타날 텐데 오히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분단에 관한 하나의 쟁점이나 이슈가 형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강석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분들에겐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한다. 물론 새 정부가 들어서는 마당에 이들이 조건없이 귀국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그런 생산적인 논의들을 촉발시키는 데 <경계도시>가 힘이 됐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차기작은. → (홍형숙)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장기적으로 분단과 통일에 관해 좀더 천착하고 싶다. 사실 한국에서 다큐하는 감독들에게 분단은 마지막으로 남은 화두와 같다. <경계도시>로 이제 첫발을 뗀 셈이니 앞으로 좀더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생각이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조석환 sky0105@lycos.co.kr

2003년 스타덤 예감 신인7인 [4] - 남상미·이기우

남상미 롯데리아걸은 이제 잊으세요! 프로필 1984년 5월3일생, 신승훈 뮤직비디오 <크리스마스 미라클>, 현대증권 CF 자기소개 ‘한양대 앞 롯데리아걸’. 사실 이 말이 ‘남상미’라는 제 이름보다 더 쉽게 저를 소개하는 말이 돼버렸네요. 지난해 3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한양대 오빠들이 학교 게시판에 제 이야기를 쓰는 바람에 어쩌다 스포츠신문 1면에까지 나가게 됐고요, 그렇게 저는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중3 때부터 20번도 넘게 받은 ‘길거리 캐스팅’ 제안에도 늘 반대하셨던 부모님도 올해 그런 일까지 겪고 나니 “어쩔 수 없이 이리로 가라는 팔자인가보다”며 배우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오디션에 가면 감독님들께서 “얌전하고 청순해 보인다”고 하시지만 털털하고 리더십이 강한 편이고 몸 움직이고 운동하는 데 소질이 있어서 어릴 땐 경찰이 꿈이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오디션에서 눈물을 흘리라고 해서 갑자기 나도 모르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통에 펑펑 운 적이 있었는데 스스로 참 놀랐던 경험이었어요. 나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 살면서 한번도 소리내 운 적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배우는 나조차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해주고, 소리내어 울어도 되고, 날라리처럼 살 수도 있고 내 머릿속에 이 주체못할 공상을 현실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표현하고 싶은 것도 말하고 싶은 것도 아직 많아요. 저에겐 늘 아주 크고 두꺼운 다이어리가 따라다니는데 그 다이어리의 한칸한칸이 채워지고 마침내 가득 차 있는 뿌듯함을 오랫동안 즐기고 싶습니다. 욕심도 많고 고집도 센 편이지만 혼자만 욕심내고 밖으로는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 해요. 어린 시절 화려하게 잠깐 피었다가 지는 꽃이 아니라 안성기 선배님처럼 존경받으며 할머니 때까지 배우로 살고 싶습니다. 류승완 감독 추천사 <마루치 아라치> 오디션 때문에 처음 본 남상미는 배우에 대해 소녀 같은 환상이나 막연한 동경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직업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의 개인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냥 편하게만 살아오지 않았을 거라는 느낌이랄까. 특히 오디션 중에 이를 악물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을 보면서 결기, 오기, 패기 같은 게 확 느껴졌다. 하지만 남상미는 그런 느낌이 거칠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순수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어리지만 사는 냄새가 확 풍기는 배우, 신인보다는 기존 연기자로 가자는 방침때문에 <마루치 아라치>에서는 함께 일할 기회를 잃었지만 조만간 좋은 신인 하나가 탄생하지 않을까. <클래식>의 이기우 OK 순간의 짜릿함! 프로필 1981년 10월23일생, 영화 <클래식>, 노을 <백일간의 시간> 뮤직비디오 자기소개 제가 몇살인지 맞혀보시겠습니까 짧게 깎은 머리 때문에 다들 십대처럼 보인다고 하지만, 저는 지난해 6월까지 공군 입대를 준비했던 스물셋 청년입니다. 군대에 갔다와서 한번 미친 듯이 연기를 해보자 마음먹고 있던 차에 정말 행운처럼 찾아든 영화가 <클래식>이었죠. 배우가 될까 말까 고민하면서 아르바이트 삼아 모델을 하다가 기획사에 발탁된 겁니다. 정말 흔한 스토리 아닙니까 하지만 처음이 평범하다고 끝까지 진부하라는 법은 없죠. 곽재용 감독님 앞에서, 시나리오라는 모양새를 갖춘 건 생전 처음 봤는데, 일단 대본을 읽었습니다. 다시 오라고 하시더군요. 다시, 또다시. 그렇게 네번 만에 오디션을 통과했습니다. 촬영 첫날, 촬영팀이 웬 T자 같은 걸 던져놨기에 카메라에 잡힐까봐 발로 살짝 밀면서 연기했습니다. 착하죠 근데 그게 카메라 앞에서 위치 잡는 표시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눈길을 뚫고 4개월 촬영을 마쳤습니다. 소감은… 평생직업 삼을 만하다, 라는 거고요. 곽 감독님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 네가 잘돼도 지금처럼 인사 잘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클래식> 개봉이 바짝 다가온 지금은 그 말씀이 더욱 생각나는군요. 앞으로 제가 어떻게 변해갈까 두려워서요. 하지만 저는 영화 촬영 현장이 좋습니다. 수십명 스탭이 대기하고 있는 앞에서 연기하다가 OK 사인을 듣는 그 쾌감! 절대 이곳을 떠날 수 없을 겁니다. 곽재용 감독 추천사 이기우는 처음 보고 반하기보다, 나중에 눈여겨봐야 하는 배우다. 처음엔 너무 신인이라 걱정스러웠다. 큰 키에 흰 얼굴이 영화 스타일과 워낙 잘 어울려서 한번 더 봤는데,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나아졌더라. 그만큼 연습을 했고, 연습한 만큼 성과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이기우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가능성을 보여줬다.

2003년 스타덤 예감 신인7인 [3] - 김광일·이천희

<품행제로>의 김광일 성공이요 자유지요! 프로필 1975년 3월7일생, god 뮤직비디오 <그대 날 떠난 후>JTL 뮤직비디오 ,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후아유> <품행제로> 출연 자기소개 저는 친구가 많습니다. 배우, 가수, 변호사, 건달, 운동선수…. 그들을 만날 때마다 성공이 뭘까,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 목사님이, 목표대로 가는 것, 자유로워지는 것,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가장 와닿은 말은 ‘자유’였습니다. 저는 돈이든, 시간이든 선택의 폭이든 자유로운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새파란 신인이, 진도가 너무 빨랐나요 전 아주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원래 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기엔 제가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고등학교 때까지 하던 야구를 그만둔 다음, 액세서리 자판도 하고, 공사판에도 나가고, 주차 관리도 하고, 배 고프고 돈 필요해서, 가리지 않고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노동 대비 수입이 괜찮은 모델 일을 하게 됐고, 정우성 형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서 연기란 걸 시작하게 됐죠. 그렇게 시작은 늦었지만, 연기에 대한 욕심과 배우로서의 자의식은 남부럽잖게 무럭무럭 크고 있습니다. 전 배우란 다양한 연기를 다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게리 올드먼, 숀 펜, 이성재, 설경구 선배처럼. 평범하기 때문에 수시로 변신할 수 있는 거겠죠. 그런 면에선 저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로는 <품행제로>에서 저를 처음 보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류승범의 라이벌 상만이 저의 역할이었죠. 대사도 별로 없고, 몸으로 하는 연기가 많았지만, 무조건 악랄하고 단순무식해 보일 게 아니라 그 아이 나름의 아픔을 담아 보이고 싶었어요. 잘 드러나진 않아 안타깝긴 하지만요. <고양이를 부탁해>(잘렸습니다. DVD에서 확인하세요!) <후아유>(조은지가 짝사랑한 남자)에도 출연했지만, 제 데뷔작은 <품행제로>라고 말하고 싶어요. 다음 작품이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눈에 안 보이는 배우, 캐릭터 전달 못하는 배우는 안 되려고 합니다. 조근식 감독 추천사 <품행제로> 출연진 중에 광일이만 유독 와이어 액션이 많았는데, 무술팀에서도 놀랄 만큼 체력이 좋았고 또 성실히 임했다. 체력도 좋고 눈빛도 좋고…. 액션배우로서의 자질과 가능성이 아주 많은 친구다. 요즘 스타급 남자배우들이 대부분 여리고 귀엽고 여성스런 이미지인데, 광일이는 선이 굵고 남성적이기 때문에 색다른 매력으로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멜로를 하더라도 광일이가 하면 다를 것 같다. <빙우>의 이천희 제 얼굴, 자주 보시게 될 겁니다 프로필 1979년 2월19일생, 프로스펙스 CF, 하나로통신, 기아자동차 지면광고, GQ, Esquire, Cosmopolitan 등 잡지모델, ’02~’03 F/W S.F.A.A 송지오, 홍승완 등 패션쇼, www. menmodel.com 자기소개 안녕하시렵니까. 성격원만하고 붙임성 착착, 낮 안 가리고 세상을 둥글게∼ 둥글게∼ 살아가는 이천희입니다. 서울예대 연극과 시절 개그클럽에 몸담았던 탓인지 개그적인 피가 펄펄 끓고요. 발레도 배웠고 졸업한 뒤엔 극단에서 수습단원생활도 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데 또래들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한 ‘5분 대기, 준비된 배우’입니다. 첫 영화 <빙우> 오디션장에서도 대본을 보는 데 숨어 있는 다른 맥락이 있는 것 같아 그 점을 잡아 연기했더니 감독님께서 지금까지 그걸 발견해낸 사람은 없었는데, 하고 놀라워 하셨죠. 결국 <빙우>에서 송승헌의 절친한 친구 인수 역으로 캐스팅되어 촬영 중이에요. 운동선수 출신의 분위기 메이커고 극의 윤활유 같은 녀석인데 저하고 찰싹 붙어 있는 성격이라 연기하기에 별 어려움이 없어요. 공부해서 잘하는 연기보다는 옷을 입듯 자연스러운 연기, 아… 설경구 선배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고요. 나이가 들면 더욱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지만 지금은 공감할 수 있는 청춘들의 이야기, <트레인 스포팅> <메이드 인 홍콩> <바이 준>처럼 암울한 20대 청춘들에 대한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아 참, 조만간 <바람난 가족>에서는 주인공 남자와 바람피우던 소녀의 새로운 애인(복잡하죠)으로 나올 거예요. 잘 기억해 주세요. 이 얼굴 자주자주 보시게 될 겁니다. 김은숙 감독 추천사 원래 이천희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친구 오디션에 따라왔다가 상대편 대사를 대신 쳐주고 있었다. 그런 이천희가 더 눈에 들어왔고 결국 그가 친구 대신 캐스팅되었다. 이천희는 모든 설정이나 장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배우다. 잔머리를 굴리기보다는 그 안에 흡수되어버리는 것이다. 갑자기 변하는 상황이나 새로운 상황을 순발력 있게 쳐내는 재주가 있다. 워낙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한 친구라 아무리 우울한 상황이 닥친다 할지라도 어떻게든 주변을 자신의 에너지로 밝게 끌고 나갈 것 같은 사람이다. 미소년처럼 눈을 현혹시키기보다 류승범 같은 개성으로 장수할 것 같은 배우다.

충무로,지각변동 [3]

충무로, 구조조정은 시작됐다 지금으로선 CJS연합에 관한 갖가지 추측과 상상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가능성도 상당하다. 그러나 CJS연합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지금 충무로가 심각한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섰음은 분명하다. 벤처, 금융자본이 너도나도 영화에 투자하던 최근 2∼3년의 이례적 호황이 사그라지면서 새로운 돈줄을 찾기 위한 행보가 빨라진 것이다. 플레너스 지분 매각문제가 의미심장한 것도 이런 대목이다. 영화계 관계자들이 입을 모으는 것은 2003년이 제작사들엔 매우 혹독한 한해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굳이 CJS연합이 아니라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자본은 부족하고 제작사는 넘치는 상태이므로 제작사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챔피언> <연애소설> <굳세어라 금순아> <중독> <품행제로> <이중간첩> 등에 투자한 소빅창투의 손석인 팀장은 “배급사 대 제작사의 수익지분이 현행 6 대 4에서 7 대 3이나 8 대 2까지 변할 수 있으며 제작사가 흥행손실에 대한 책임도 어느 정도 나눠갖는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제작사가 콘텐츠의 힘으로 투자, 배급사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던 시대가 가고 돈을 가진 쪽이 우위에 설 것이라는 예상이다. 제작사들에게 2003년의 ‘보이지 않는 위험’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고 영화계가 CJS연합의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이런 정황 때문이다.글 남동철 namdong@hani.co.kr 02년 배급사별 관객동원 현황 03년 시네마서비스 배급예정작 03년 CJ엔터테인먼트 배급예정작 충무로 돈줄, 어떻게 바뀌어왔나?토종극장 -→ 대기업 -→ 금융자본 80년대까지 한국영화 제작의 주요 자금원이 된 것은 극장이었다. 각 지방 배급업자로부터 미리 돈을 받아 제작비를 마련하는 이른바 ‘입도선매’의 시대. 한국영화의 최고 전성기로 알려진 60년대부터 시작된 이런 제작방식은 정부가 영화사의 수를 제한하는 동안에도 지속됐다. 흥행자본을 제작에 투자하던 ‘입도선매’는 1988년 직배 실시와 더불어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독점적 외화 수입으로 부를 축적했던 영화사들은 할리우드 직배사에 대항할 길이 없다고 판단, 제작편수를 줄여갔고 그러는 사이 비디오라는 새로운 매체가 안방으로 파고들었다. 대기업이 영화업에 뛰어든 것은 비디오를 통해서다. 삼성, 대우 등 가전제품을 팔던 대기업은 비디오 시장에서 영화의 가능성을 보게 됐다. 1992년부터 두 회사는 한국영화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기업의 영화계 진출엔 상당한 수업료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흥행결과가 그들의 예측을 벗어나기 일쑤였다. 대기업이 제작보다 외화수입에 더 많은 돈을 쓴 것은 당연했다. 적어도 한국영화보다는 외화가 흥행예상에 가까운 결과를 보여줬던 것이다. 비디오 시장의 성장세도 90년대 후반부터 반전됐다. 비디오 판권으로 안정된 수입을 얻는 것도 차츰 옛말이 되자 대우, SK, LG 등이 영화에서 철수했다. 비교적 과감한 투자로 1998년 유력한 메이저 배급사로 부상한 삼성영상사업단마저 <쉬리>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는 동안 해체 결정을 내리자 영화계의 대기업 시대는 막을 내리는 듯 보였다. 비디오 사업에서 시작하지 않은 CJ만 남게 된 상황. 한편 대기업이 돈만 쏟아붓고 철수 여부를 검토하는 동안 서울극장과 손잡은 강우석 감독과 영화계에 들어온 최초의 금융자본인 일신창투가 새로운 큰손으로 떠올랐다. 시네마서비스는 대기업에 비디오판권을 팔고 지방 배급업자로부터 선금을 끌어오는 두 가지 방식을 병행하며 제작을 멈추지 않았고 일신창투는 대기업에 비해 가볍고 빠른 움직임을 무기로 제작투자에서 적지 않은 수익을 거뒀다. <은행나무 침대>가 일신창투의 첫 투자작으로 성공하자 영화계 진출을 엿보던 다른 금융자본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민기술금융, 산은캐피탈, 미래에셋캐피탈 등이 일신창투의 뒤를 따랐다. 금융자본의 시대는 KTB, 무한창투 등이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한 2000년부터 화끈 달아올랐다. 일정한 투자액을 모아 조합을 결성해 영화에 투자하고 수익을 나누는 영상전문투자조합은 2000년에만 1380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2001년에 새로 생긴 투자조합 9개를 합하면 2년간 모두 2015억원의 돈이 영화계로 유입되거나 투자 대기 상태였다. 그러나 당초 많은 영화인들이 우려했듯 금융자본은 수익률이 낮으면 언제든 영화계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돈이었다. 2002년에 상당한 손해를 본 몇몇 금융자본은 영화계를 떠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런 변화 속에서 메이저 배급사로 자리를 굳힌 쪽은 오히려 시네마서비스와 CJ다. 이중 CJ는 대기업인 동시에 멀티플렉스 체인을 안정적 자금원으로 삼는 회사. 어찌 보면 한국영화는 80년대까지 제작자본이 됐던 흥행자본에 다시 의지하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는지 모른다. 비디오 판권을 비롯한 기타 판권이 유력한 재원이 되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선 극장에서 회수된 돈만큼 제작에 의지를 보일 자본은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금융자본이나 대기업 자본이 어떤 식으로든 제작에 참여하겠지만 극장에서 회수된 돈이 영화제작에 다시 투자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멀티플렉스 체인을 설립한 동양, 롯데의 동향이 궁금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어쨌든 당분간은 극장 자본, 대기업 자본, 금융 자본이 공존하는 ‘과도기’가 지속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다.

충무로,지각변동 [1]

새해 벽두, 충무로는 폭풍전야다. 시네마서비스의 최대주주인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가 CJ엔터테인먼트에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이른바 ‘CJS(CJ+시네마서비스)연합’. 최근 아이엠픽처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시네마서비스의 관객점유율은 22.2%로 5개 직배사를 포함해 국내 배급사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고, CJ는 18%로 2위를 차지했다. 두 회사가 합치면 관객점유율 40.2%, 이중 한국영화만 떼서 계산한다면 시장점유율 70%를 넘는 거대 배급사가 탄생한다는 얘기다. 과연 한국영화는 이제 짧은 양대 메이저 시대의 막을 고하고 유일 메이저 체제로 접어들게 되는 것일까? 적과의 동침, 미션 임파서블 혹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다. 그간 시네마서비스와 CJ가 한국영화 투자, 배급의 라이벌로 적지 않은 신경전을 벌였던 사실을 기억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적과의 동침’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 것도 틀림없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영화계에선 깜짝 놀랄 일이 여러 번 있었다. 2001년 로커스홀딩스가 워버그핀커스와 주식 스와핑을 통해 시네마서비스를 인수하고 2002년 싸이더스HQ까지 더한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를 탄생시킨 것이나 2000년 3강 진입을 목표로 내걸었던 튜브엔터테인먼트가 2001년 CJ에 배급권을 넘긴 사건도 제3자의 예상을 초월한 일이었다. <쉬리>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는 동안 삼성영상사업단이 문을 닫았던 것처럼 이곳에선 불가능한 일 또한 없어 보인다. 단도직입적으로 CJS연합의 가능성은 현재 반반이다. 시네마서비스 회장인 강우석 감독은 “플레너스 지분 인수에 나선 곳이 현재 대기업 2개, 외국계 펀드 2개 등 모두 4군데”이며 그중 CJ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CJ엔터테인먼트 최평호 상무는 CJS연합이 근거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하다가 강 감독이 협상 중이라는 걸 시인했다고 말을 꺼내자 “관심 정도 갖는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시네마서비스가 CJ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가능성에 대해선 전혀 생각해본 바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공식적인 발표 이전까지 비밀을 고수하는 대기업의 속성을 감안하면 CJ와 시네마서비스의 의견조율이 상당히 진척됐을 수도 있다. 강 감독은 “이르면 1월 초에 공식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일을 놓고 지나친 추측을 할 필요는 없지만, CJS연합이 거론되는 배경은 곰곰이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지금이 지난 2∼3년간 한국영화의 메인투자자로 급부상한 금융자본이 철수하거나 몸을 사리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생각한 2천억원이 넘는 영상전문투자조합의 돈이 지난해 말부터 종적을 감추고 있다. 한때 “돈은 넘치는데 투자할 영화가 없다”던 바로 그 돈이 말이다. 물론 플레너스의 지분 매각이 이같은 금융자본 철수와 일치하는 결과물은 아니지만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플레너스의 최대주주인 로커스는 2000년 우노필름을 인수해 싸이더스를 만들면서 처음 영화계에 진출했고 2001년 자회사인 로커스홀딩스를 통해 시네마서비스를 인수했으며 지난해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를 출범시켰다. 2000년 다국적 벤처자본인 워버그핀커스가 시네마서비스에 투자한 것과 더불어 로커스의 싸이더스 인수는 충무로에 불어닥친 벤처열풍의 대표적 사례였다. 촉망받는 IT기업 로커스는 플레너스를 설립함으로써 거대 엔터테먼트 기업의 청사진을 실현시키는 듯 보였으나 지난해 12월부터 플레너스 지분 매각설에 나왔다. 2002년 12월16일 플레너스가 “SK(주)로의 피인수설이 사실과 다르다”고 공시했고, 같은 날 로커스가 “당사의 자회사인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주) 지분의 매각여부를 검토한 바는 있으나 아무것도 결정된 바는 없습니다. SK(주)로의 매각설은 사실무근입니다”라고 공시했다. SK로 인수된다는 소문은 진화됐지만 매각여부를 검토했다는 사실은 과연 누가 플레너스의 지분을 인수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로커스는 지난해 12월17일 공시를 통해 2002년 실적이 예상치보다 못 미친다고 발표, 플레너스 주식 매각이 계속 추진될 가능성을 암시했다. 로커스가 갖고 있는 플레너스 지분은 전체의 22.1%로 플레너스의 최대주주. 2대 주주인 워버그핀커스는 18.9%를 소유하고 있는데 로커스가 주식을 팔면 함께 매각하는 것이 계약조건이라, 합하면 플레너스 주식 41%가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는 셈이다. 강 감독은 현재 플레너스 주식에 관심을 보이는 4군데 가운데 CJ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이다. 그는 CJ가 금융자본이 아니라 꾸준히 영화사업을 해온 곳이라는 데 끌린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영화사업의 속성을 다른 기업보다 잘 이해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CJ가 국내 최대의 극장체인을 갖고 있다는 사실. 그간 강 감독은 대기업이나 금융자본이 아니라 영화에 투자해서 회수되는 자본이야말로 다른 데로 도망가지 않을 믿을 만한 돈이라고 주장해왔다. CJ가 거대한 극장체인을 갖고 있는 한 영화투자를 중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안정적인 투자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거시적으로 보면 90년대 비디오 사업의 일환으로 대기업의 영화투자가 시작된 이래 언제나 대기업이나 금융자본처럼 영화업계 외부에서 자금을 수혈받아온 한국영화가 제작, 배급, 상영을 하나로 묶어 자립하는 계기가 되는 셈이다. 또 다른 이유는 시네마서비스가 출범시킨 극장체인 프리머스시네마가 효과적인 배급력을 발휘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현재 프리머스는 CGV, 메가박스, 롯데 등 3대 멀티플렉스 체인에 밀리는 상황이지만 CGV와 연대한다면 CGV처럼 큰 멀티플렉스가 들어가지 못하는 지역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전대미문의 사기꾼, <캐치 미 이프 유 캔>

5년 간 전세계 26개국에서 위조수표 250만 달러 횡령. 부조종사, 하버드 수석 졸업의 소아과 전공의, 변호사 등 행세를 무난하게 해내며 21살이 되기 전까지 남미, 호주, 프랑스, 싱가포르 등 세계를 누비며 생활. 체포 후 형기를 마치고 나서는 자신이 개발한 수표와 프로그램으로 연간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갑부. 24일 개봉하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60년대 실존했던 미국의 최연소이자 최고의 사기꾼 프랭크 아비그네일의 영화같은 삶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워낙 흥미로운 소재인 데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직접 메가폰을 잡았고 할리우드 최고 주가의 배우 톰 행크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작품성과 흥행성은 보장이 된 듯한 영화다. 실제로 이 영화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미국에서 개봉돼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에 이어 2주 연속 2위를 차지하며 순항하고 있다. 운명적인 만남으로 결혼에 골인한 사업가 아버지(크리스토퍼 월켄)와 프랑스 출신의 어머니(나탈리 베이) 밑에서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하게 자라던 열 여섯 살의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어느날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부유했던 집안이 기울면서 그의 인생에 태클이 들어온다. 첫번째 시련은 부유한 학생들이 다니던 사립 학교에서 일반 학교로 전학 간 첫날 발생한다. 샌님같은 그를 거친 아이들이 가만 놔둘 리는 만무한 것. 프랭크는 대리교사 행세로 이런 아이들을 골탕먹이며 멋지게 고비를 넘긴다. 하지만 이를 단지 장난으로만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은 그가 단지 한 시간만이 아닌 1주일 동안 전교생들을 속였다는 사실. 결국 들통이 나기는 했지만 프랭크는 학생들에게 숙제도 내주고 꾸중도 치며 학부모회를 소집해 프랑스 빵 공장 견학 계획을 세우기까지 한다. 우울한 생활이 계속되던 중 첫 운전면허증을 받은 어느날, 프랭크는 어머니의 바람피우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이어서 그에게 통보되는 부모의 이혼 사실. 프랭크는 행복했던 순간들을 머릿속에 담아둔 채 무작정 가출을 감행한다. 그의 본격적인 사기행각이 시작된 것은 이날부터. 당시 최고의 인기직업이던 비행기 조종사로 위장한 그는 회사 수표를 위조하고 항공노선에 무임승차하며 전세계를 돌기 시작한다. 한편, 21년 경력의 베테랑 FBI 요원 칼 핸러티(톰 행크스)는 이 수표 사기범의 정체에 점점 접근하며 수사망을 좁혀 가지만 프랭크는 특유의 잔머리와 임기응변으로 순간 순간의 위기에서 벗어난다. 프랭크는 칼로부터 쫓기면서도 의사, 변호사 등의 직업으로 위장하며 오히려 더 대담한 사기행각을 계속하는데.. 고독한 이혼남이지만 자신을 계속 속이는 프랭크에 대해서는 애정을 버리지 않은 칼역의 톰 행크스는 그가 출연하는 다른 작품들에서처럼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그저 잘생긴 배우라는 평을 떨쳐버릴 만큼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외로움에 힘들어 하며 사과도 할 줄 아는 이 사기의 천재를 그만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도 드물 듯. 빠른 줄거리 전개, 매력적인 캐릭터에 <디어헌터>의 존 윌리엄스가 들려주는 재즈풍의 영화음악과 147회의 로케이션으로 보여주는 심심치 않은 화면 등이 이 영화를 대작으로 만들고 있지만 관객에 따라서는 2시간 20분의 긴 상영시간이 부담될 수도 있을 것 같다. 15세 이상 관람가. (서울=연합뉴스)

토종 애니메이션·게임 대작 쏟아내며 대박 꿈

새해엔 어떤 문화콘텐츠산업이 별을 쏠까? 올해엔 진짜 황금알을 낳을까 지연되는 일정과 반짝이익을 기대하는 자본들의 변덕스런 들락거림으로 지난해 문화콘텐츠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2003년은 몇 해 동안 준비해 왔던 대작들이 게임과 애니메이션계에서 쏟아질 해임엔 틀림없을 듯하다. 문화콘텐츠 분야를 ‘들뜨게 하는’ 기대 프로젝트들을 중심으로 올해를 전망해본다. ■ 애니메이션 “토종들이 쏟아진다” 지난해 〈마리 이야기〉로 세계시장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애니메이션계는, 올해 극장판 작품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대중적 검증을 받을 채비를 하고 있다. 예정된 라인업만 보더라도 4월 〈오세암〉 〈원더풀 데이즈〉, 여름 이전 〈스퀴시〉, 6월 〈엘리시움〉, 9월 〈해머보이 망치〉 〈아크〉, 하반기 〈오디션〉 등 7편 이상이다. 큰 흐름은 우선 가족물. 고 정채봉 선생의 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오세암〉(마고21)은 수채화풍의 그림과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돋보이며, 〈스퀴시〉(루크필름)는 6살 전후 연령층에게 어필할 아기자기한 그림이 특징이다. 허영만씨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해머보이 망치〉(캐릭터플랜)는 10대 초반 소년들의 모험담을 그린 유쾌한 작품이다. 또다른 흐름은 공상과학물로, 〈원더풀 데이즈〉(양철집)와 〈아크〉(디지털드림스튜디오)는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현주소를 가늠할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디지털드림스튜디오의 전범준 과장은 “올해가 지나면 제작사별로 제작 시스템 사이클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크〉나 〈원더풀 데이즈〉는 5~6년 동안의 제작 기간과 70억~10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왔다. 텔레비전용은 ‘방송시간 총량제’ 도입 여부가 시장을 판가름할 가능성이 크다. ■ 게임 “춘추전국시대 열렸다” 게임은 호조건이 많다. 우선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플레이스테이션2, 엑스박스, 게임큐브 등이 모두 한국에 출시돼 3대 비디오게임기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공급된 게임기는 30만대 정도지만, 올해가 지나면 약 100만대까지 이를 전망이다. 게임브리지의 유형오 대표는 “특히 북미와 일본에서 서비스가 개시된 비디오게임기의 온라인 서비스가 올 하반기 한국에서 본격화되면 새 바람이 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시리즈 등 영화에 기반한 게임들은 비디오게임기의 콘텐츠 시장도 늘려놓은 상태다. 모바일 게임시장이 2001년 350억원대에서 2002년 1천억원대로 급성장한 것도 큰 특징이다. 아무래도 온라인게임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올해 기대작들은 이쪽에 몰렸다. 우선 엔씨소프트의 〈리니지2:혼돈의 역사〉가 있다. 전편보다 15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3차원 기법으로 암울한 중세 팬터지풍의 매력을 더한다. 소프트맥스가 ‘드라마틱 온라인 액션 롤플레잉게임’이라 이름붙인 〈테일즈위버〉도 만만찮은 상대다. 액토즈 소프트의 성인 전용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인 〈 A3 〉도 명확한 타깃층이 있어 주목되는 작품이다. 유형오씨는 “한국 게임시장의 핵심 소비자라 할 수 있는 10대, 20대 남성 게이머 시장이 거의 개척되어 있기 때문에 올해는 시장 다변화가 업계의 과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 그리고 암중모색 캐릭터, 영화, 음반, 만화는 올해 시원한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만화는 올해 도서정가제가 실시되고, 대여점이 저작권을 허가받은 뒤 영업해야 하는 대여권 도입 움직임이 있어 변동이 예상된다. 영화는 지난해 작은 영화들의 성공에 힘입어 작고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이 주요 흐름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자본의 철수에도 불구하고 제작과 기획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은 희망적 현상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한국영화에 바치는 두편의 필름 에세이 [3]

여인들의 황홀한 초상, 우리들의 기쁜 연대기 김소영의 <황홀경> 모던한 머리 매무새와 양장을 한 부인이 거리를 배회한다. 서울역 지하도를 내려가고 서대문 건널목에 서서 기차를 지나 보낸다. 전차에 오르더니 자리에 앉을 염도 내지 않고 선 채로 손잡이를 의지 삼아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다. 마치 머릿속에 괸 상념을 흘려 보내기라도 하듯이. 갈 곳이나 있는 걸까. 아니, 혹시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일부러 미루고 있는 것일까. 허술한 난간이 세워진 길을 터벅터벅 걷던 그녀가 소스라치듯 뒤를 돌아보는 순간, 화면이 멈춘다. <귀로>(1967)에서 서울을 배회하던 문정숙. 그녀의 시선이 꽂힌 자리에 극장이 서고 은막 위에 <자유부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미워도 다시 한번>의 세 여인이 나타나 그녀를 말끄러미 응시한다. 김소영 영상원 교수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황홀경>의 시작이다. 이애림 감독이 제작한 <황홀경>의 타이틀은 무녀(巫女)의 붉은 부적을 연상시킨다. 눈부시다는 듯 연신 깜박거리는 타이틀 속에서 ‘황홀경’의 ‘경’자는 ‘境’에서 ‘經’으로 다시 ‘鏡’으로 자꾸 재주를 넘는다. 한국 여성들에게 황홀한 경지, 황홀한 거울, 황홀한 기도문, 혹은 몸을 푸는 달거리마냥 마음을 푸는 의식으로 기능해온 한국영화의 자취를 더듬는 프로젝트임을 드러내기 위해 김소영 감독은 자신의 장편영화를 위해 마련했던 ‘경’이라는 제목을 큰맘먹고 꺼내들었다. 그녀는 이만희 감독의 <귀로>를 몇 가지 이유에서 한국영화 속 여성의 ‘황홀경’을 열어젖히는 영화로 택했다. “1950년대부터 시작되는 한국 영화사를 통틀어 여성의 방황이 갖는 근거는 굉장히 추상적이다. <자유부인>만 해도 1950년대 후반에 묶여 있는데 <귀로>에서 그녀의 방황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낯선 밤 거리로 나섰던 유부녀 이응경의 외출보다도 강렬하다.” 그리고 <황홀경>의 프롤로그에서 <귀로>의 그녀는 갈 곳 모르는 혼돈에 휘말린 채 한국영화 황금기의 복판에 서서 앞뒤의 영화사를 바라보고 있다. “기생과 여학생들은 초창기 한국영화의 중요한 관객이다. 당시 극장은 여성들이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외출공간 중 하나였다. 극장을 가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것은 떨림이요 흥분이었다. 은밀한 위반의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영화구경, 그곳에는 여자들의 웃음과 눈물이 있었다. 분노와 비명이 있었다. 영화관에서 여자들은 서로를 만나고 서로를 위안했다.” (-<황홀경> 중 김소영 감독의 내레이션 ) 카메라를 나비채 삼아, 김소영 감독은 한국영화에서 여성들이 경험한 무지갯빛 절정의 모멘트들을 채집하기 위해 나섰다. 그리고 1950년대, 60년대 객석을 메웠던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부터 만났다. 전쟁 직후의 한국영화는 봉건적 정절녀 춘향과 자유부인의 초상을 동시에 그리며 포상과 징벌을 분배했지만 내러티브의 ‘심판’이 내려지기 전까지 컴컴한 극장 안 축제의 주인공은 여자들이었다. <황홀경>은 한국영화 최초의 키스신에 대한 당대 언론의 보도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 순간 반드시 질식할 듯한 외마디 소리가 부인석에서 돌발한다.” 스크린을 지배한 가장 화려한 얼굴이자 격동하는 감정의 주체였던 여자들. 극장을 나선 여성 관객은 벅찬 심장을 안고 눈물을 훔치며 그녀들의 이미지를 곱씹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아들을 떼어놓던 미혼모의 애달픈 모습이 눈앞에 삼삼해서 결국 재개봉관으로 다시 발길을 옮겼다는 자갈치 시장의 아주머니들, 망막에 남은 잔상에 가슴이 먹먹해 길가에서 파는 사과를 베어 물고는 사과 속살과 함께 온갖 감정을 깨물어 삼키며 집으로 힘주어 발길을 옮겼던 추억을 들려주는 중년 부인.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김소영 감독은 종로 단성사 길목을 바라보며 현인의 <서울야곡>을 뒤편에 깔았다가,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똑같은 노래를 여자가수 전영의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바꾸어 들려준다. “여배우가 감독을 하니 자칫하면 자기 연기에 치중해 감독으로서 치우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처음에는 그런 생각보다 남자들만 뭐 감독하나, 여자도 할 수 있어! 이런 게 강했어요…. 그 영화(<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는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이 없으니까 사랑한다는 감정 표현을 할 도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내가) 고안해낸 것이 그 장면이었어요.” (배우 최은희 인터뷰) <황홀경>의 제2장 ‘불어라! 바람’은 구태여 욕망을 가두지 않은, 그래서 더러는 추방되고 살해됐던 한국영화의 여인들을 진혼한다. 사랑의 번민을 다소곳이 피아노 건반에만 털어놓던 어머니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사랑방 손님 중절모의 냄새를 맡고 코를 찡그렸다가는 그제껏 보이지 않았던 환한 표정으로 거울 앞에서 비뚜름하게 모자를 쓰고 귀엽게 미소짓는다. 김소영 감독의 인터뷰 요청에 곱게 차린 위엄 있는 모습으로 응한 최은희는, 그 빛나는 사랑의 장면이 자신의 아이디어였노라 들려준다. 장군의 무용담을 들려달라며 일어서는 체하다 그의 품에 쓰러지는 <천년호>의 요염한 여인, 신성일에게 핀셋을 내밀며 털을 뽑아달라고 요구하는 <맨발의 청춘>의 도도한 여인, 부드럽고 따뜻한 섹스 뒤 잠든 남자를 어깨 뒤로 하고 홀로 일어나 앉은 <정사>의 원숙한 여인. 희귀하지는 않으나 합당한 만큼의 눈길을 받지 못했던 한국영화의 장면들은 한줄로 꿰어져 영롱한 목걸이가 된다. 능동태로 사랑하고 희열도 파멸도 스스로 선택하는 한국 여성의 이미지를 모아 간추린 <황홀경>의 컬렉션은 <해피엔드>의 한 장면에 이르러 ‘전유’(專有)의 전략을 구사한다. 남편의 손에 죽은 전도연이 발코니에서 담배 연기를 깊은 한숨처럼 내쉬다가 날아든 근조등을 향해 무심히 손을 뻗는 장면을 취해 김소영 감독은 음악을 바꾸고 바람의 사운드를 새로 넣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미지는 죽은 아내가 더이상 살지 않는 방에서 아이와 깨어나는 남편이 아니라, 박명천 감독이 찍은 <시월애>의 예고편에서 강가의 버드나무처럼 바람에 긴 머리를 날리며 울고 있는 소녀다. 누구의 시선에도 갇히지 않은 채 자기의 감정과 독대하고 있는 또 다른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이다. “요즘 여배우 중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심은하, 너무 매력있었고 <플란다스의 개>의 누구죠 배두나, 어쩜 그렇게 자연스러워요 배우들은 제일 힘든 게 걷는 거 손 움직이는 걸 자연스럽게 하는 건데 이 여배우는 그냥 자기 세상이에요.”(배우 윤정희 인터뷰) “제가 여성이니 다른 여성들과 공감하고 같이 즐기고 위로가 되는 연기를 하고 싶죠. 언제나 제 느낌에 따라 충실히. 역할은 레즈비언 그런 역 최근 본 오래된 한국영화 중에서는 윤여정 선생님 나오는 김기영 감독님의 <화녀> 보면서 다시 한 번 존경하게 됐습니다.”(배우 배두나 인터뷰) 영화의 작가는, 영화의 창작자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영화의 작가로 남성 감독만 말하고 여배우들을 호명하지 않는가 영화와 우리의 어설픈 연애는 대개 배우에 대한 매혹에서 봉오리를 틔우지 않았던가 <황홀경> 속에서 원로 여배우는 후배에 대한 존경을 말하고 다시 젊은 여배우는 선배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김소영 감독은 영화를 사이에 둔 여자와 여자의 만남을 장르를 뛰어넘어 중재한다. 화가 윤석남과 사진작가 박영숙은 그들이 한국영화에서 경험한 황홀경을 들려준다. 그들이 말하는 영화 속 여성의 이미지들은 인터뷰 도중 연꽃 줄기가 되어 하늘을 바라는 윤석남의 여인상과, 칼을 들고 벗은 가슴을 드러낸 더운 피의 여인들을 찍은 박영숙의 ‘미친년 프로젝트’와 병치된다. “무엇보다 그녀들의 작업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라는 김소영 감독의 말은 해설과 교훈을 주는 정통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음향과 심상이 충돌하는 역동적인 체험으로서의 기록영화를 의도하는 ‘판타 다큐’를 표방한 <황홀경>의 형식적 지향과 직결된다. “야마가타영화제 같은 곳에 갈 때면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를 보는 일이 왠지 내겐 어려웠어요. 그래서 다큐이면서도 다큐가 아닌 방식으로 이탈해나가고 싶었나봐요.” 오정희의 <불의 강>의 한 장면처럼 어느 영화의 촬영장을 강기슭에 선 소설가가 바라보고 그 위로 여성 가수의 노랫소리가 흐르고, 그 풍경을 여성 화가가 그린다. 이것이 <황홀경>에서 깨어난 다음 김소영 감독이 꾸는 다음 영화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