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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전영객잔] 순이가 상길의 뺨을 때린 까닭은? [1]

설마 여기서 엔딩을?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시계를 보았다. 약속된 시간은 다 지나갔다. 베트남전쟁 중의 한복판에서 천리 만길 우여곡절을 거쳐 순이(수애)는 남편 상길(엄태웅)을 마침내 만났다. 그리고는 뺨을 때린다. 또 때린다. 그리고 또 때린다. 순이는 왜 뺨을 때리는 것일까? 상길은 왜 우는 것일까? 아니, 상길은 순이를 알아보기는 하는 것일까? 하지만 거기서 아무것도 대답되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그러고 난 다음에 어떻게 할 건데, 라는 난처한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는 거의 종잡을 수 없는 줄거리로 치달리다가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두 사람을 나눠 찍던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서 순이와 상길을 무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엔딩을 알리는 구도. 이제 더이상의 행동은 없을 것이라는 정보를 줄 만큼 인물로부터 멀리 떨어져나간 카메라. 감정을 가라앉히는 음악. 놀랍게도 영화는 정말 거기서 그냥 끝났다. 나는 자막이 올라올 때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냥 멍한 상태가 되었다. 어쩌자고 이렇게 끝을 내버린 것일까? 이준익의 여섯 번째 영화 <님은 먼곳에>는 마치 부르다가 만 노래처럼 보였다. 실제로 영화에서 이 영화의 제목인 노래 <님은 먼곳에>는 부르다가 중단된다. 그것도 세번이나. 나는 무언가 엔딩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이준익은 정반대로 대답했다. “마지막 장면이 다 설명한다. 마지막을 정해놓고 계단식으로 쌓아올렸다. 영화에서 상길은 20세기 남성성의 은유이고, 순이는 20세기 여성성의 대표이다. 20세기에 남성이 저질러놓은 전쟁이라는 부조리의 현장에서 여성성의 대표가 따귀를 갈기는 얘기다.”(<한겨레> 7월14일자 인터뷰, ‘부조리한 남성성 반성하고 싶었다’) 이준익은 김지운의 반대말이다 영화에서 활동하는 세개의 선, 시선, 동선, 그리고 감정선. 결국 영화는 선의 연결이다. 종종 이준익을 비평적으로 다룰 때 그의 미장센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혹은 신의 내용이 ‘섬세하지 않다’고 말한다.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는 그런 문제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준익은 신 안에서 오로지 감정선만을 따라간다. 종종 그것이 등장인물의 행위와 사건에 집중됨으로써 단순하게 보이지만(실제로 단순해지기도 하지만) 하여튼 이준익은 거의 필사적으로 그 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른 문제를 포기하기조차 한다. 열 번째 신이 눈물을 목표로 한다면 그 앞의 아홉개의 신은 눈물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를 신파로 몰고 가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감정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인물의 내면 속 시간 안에서만 잠재적으로 연결되고 결합하기 때문이다. 좀더 간단한 설명. 나는 여기서 잠시 (올 여름에 거의 동시에 도착한) 이준익과 김지운을 비교하려고 한다(게다가 <님은 먼곳에>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하루 걸쳐 연이어 시사회를 가졌다). 이준익은 감정선의 블록을 만들고 그것을 넘어트리면서 드라마를 만든다. <님은 먼곳에>는 시작하면 엔딩을 보아야 한다. 그 반대의 예. 하지만 김지운은 영화가 시퀀스 단위로 이루어진 집합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서 시작해도 상관없고, 어디서 끝나도 괜찮다. 다만 하나가 끝나면 다른 하나가 다시 시작된다. 그는 매번 시퀀스 안의 그림, 인물들의 활동, 작은 제스처, 즉각적으로 지각되는 소리들(과 음악)의 효과, 이 모든 것들의 상황에 집중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한편의 영화에서조차 각자 자기 완결적인 형식을 보존하기 위해서 다른 시퀀스를 침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김지운은 열개의 신이 있다면 그것들은 각자 활동하면서 자기 안에서 만족을 찾는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면) 첫 시퀀스를 본 다음 중간을 생략하고 마지막 세명의 총격전을 그냥 이어붙여도 아무 문제가 벌어지지 않는다. 종종 김지운의 영화가 (<장화, 홍련> 이후부터) 멈칫거리거나 주변 인물들이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것은 이유가 있다. 김지운은 그게 다 설명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보는 사람은 어리둥절해진다. 그는 영화의 기계적인 지각효과에 매혹된 사람이다. 그래서 영화의 지각요소들이 다가오거나 멀어지고 혹은 제때 부딪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말하자면 콘티의 연속적인 활동. 이미지의 과장. 사운드의 봉사. 그때 영화의 세개의 선은 개별 원 안에서만 활동할 뿐이다. 김지운의 영화는 전람회를 관람하듯이 보아야 한다. 하지만 줄거리를 포기하고 ‘컨셉’만으로 한편의 영화를 묶을 수 있을까? 반대로 이준익은 ‘캐릭터’와 ‘플롯’만으로 영화를 진행시킨다. 그의 영화를 본 다음 ‘볼 게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지각효과를 믿지 않는다. 그 대신 드라마 안의 감정이 진행될 때 일어나는 긴장과 이완에 점점 능수능란해지고 있다. 이준익은 지루하지만 종종 그 다음 신을 기다리게 만든다. 김지운은 그 순간 재미있지만 그럴수록 때로 점점 지루해지기도 한다. 대중은 아이러니하게 불평을 늘어놓는다. 재미없어서 짜증나요. 그런데 재미있어서 더 짜증나요. 나는 둘 중 누가 옳으냐는 문제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이준익은 신마다 왜, 라고 질문한다. 김지운은 똑같은 자리에서 어떻게, 라고 대답한다. 이준익이 목표를 향해서 직선을 그릴 때 김지운은 집합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몇개의 원을 그린다. 두개의 하여튼. 이준익이 ‘하여튼’ 앞으로 나아가지만 단조롭게 느껴진다면 김지운은 ‘하여튼’ 카메라의 구도와 기계적인 움직임, 효과들, 시각적인 충격, 예쁜 취향, 다양한 인용으로 신의 여기저기를 둘러보게 되지만 같은 자리에서 계속 맴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영화에서) 이준익의 반대말은 김지운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준익과 김지운은 정확하게 상대방이 갖지 못한 것을 서로가 나눠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올 여름 두개의 스펙터클. 두개의 사례. 목표와 집합. 원형과 직선. 만주의 광야에 그려넣은 두개의 큰 원과 세개의 작은 원. 목표를 향해 정글을 지나 능선으로 가는 직선. 나는 지금 직선에 대해서 생각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다시 <님은 먼곳에>로. ‘따귀를 갈기는’ 것은 감정선의 결과이다. 여기서 영화는 끝난다. 동선이 등장인물을 따라간다면 감정선은 등장인물을 이끄는 것이다. 힘의 한 모멘트가 신을 넘어트리면 차례로 넘어지기 시작한다. 그때 이 운동은 무언가를 목표로 한다. 종종 눈물(멜로드라마). 혹은 총을 꺼내 드는 행위(서부극, 혹은 갱스터영화들). 말하자면 도미노. <님은 먼곳에>라는 도미노의 최종목표는 ‘따귀를 갈기는’ 행동이다. 만일 내가 ‘따귀를 갈기는’ 행동만을 보고 감정선을 놓쳤다면 남은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차례로 쓰러진 신들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것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리고 앞에 선 면들의 어느 부분이 뒤에 선 면의 어디를 넘어트리는지를 살펴야 한다. 면으로서의 신. 그때 그 면은 감정의 힘들 사이의 집합이다. 말하자면 힘의 선. 나는 그냥 순진한 척하면서 이준익의 말을 믿기로 했다. 어쩌면 정말로 <님은 먼곳에>는 마지막 장면을 먼저 떠올린 다음 거슬러 올라가면서 구성된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 대신 나도 거슬러 올라가면서 물어보고 싶어졌다. 역순으로 따라가는 이야기. 순이는 베트남전에 가서 남편 상길을 만나 뺨을 때린다. 매우 극적이고 멋진 장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순이는 베트남에 가야 한다. 어떻게?) 순이는 ‘써니’가 되어 정만 일행과 위문공연단을 꾸려 베트남에 온다. 처음에는 잘 안 되지만 점점 순이는 ‘써니’가 된다. 하지만 순이는 일편단심 상길을 만나고 싶어한다. (그런데 왜 순이는 베트남에 왔을까?) 순이는 삼대독자 외아들 상길에게 시집을 왔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고대하고 있고, 아들 상길은 베트남에 갔다. 순이는 아이를 갖기 위해, 시어머니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혹은 남편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베트남에 가기로 결심한다. 하여튼 왜 순이가 베트남에 갔는지는 모호하다. 그러므로 뺨을 때리는 이유도 모호하다. (그런데 왜 순이는 아이를 갖지 못했을까?) 군대에 입대한 상길은 결혼하기 전 ‘대학생 애인’이 있었으며,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순이에게 관심이 없다. 면회를 와도 등을 돌리고 잔다. 그런데 상길에게 옛 애인으로부터 편지가 온 것을 고참 김상병이 공개해서 소대원들에게 읽자 화가 난 상길은 그와 크게 싸우고, 하극상의 죄를 물어 군에서는 두 사람에게 영창과 베트남 중 선택하라고 한다. 두 사람은 베트남에 간다. 그들은 왜 베트남에 가야 했는가? 마지막 장면이 다 설명하기는커녕 그 반대로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왜 뺨을 때리는 것일까? 그게 사랑의 확인인지, 아니면 참을 수 없는 분노인지, 혹은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한 것에 대한 만족인지, 그녀 자신에 대한 회한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너무 사소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내 의문에 대해서 이준익은 어마어마하게 대답했다. “부조리의 현장인 전쟁에 대해서 책임자인 남성성의 은유에게 여자의 대표가 때리는 따귀.” 물론 이준익의 대답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상길은 20세기 남성의 은유일 수가 없다. 20세기 남성이라는 말은 그렇게 간단하게 비유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저 단순하게 (<님은 먼곳에>의 배경이 된) 1971년 베트남에 와 있는 한국 남자와 미국 남자는 얼마나 다른가? 대학생으로 베트남전에 사병으로 온 크리스(<플래툰>)와 상길의 차이. 그런 다음 순이는 어떻게 20세기 여성성의 대표가 될 수 있는가? 20세기의 여성들은 얼마나 서로 다른 계급과 국가와 인신의 차이 속에서 각기 다른 여성의 인권을 쟁취하였는가? 순이가 20세기는커녕 1971년 한국 여성의 대표성조차 가질 수 있는가? 이를테면 <영자의 전성시대> 혹은 <별들의 고향>으로 설명되는 근대화 과정 속에서 부서져간 여성의 육신들과 그 소비의 과정들. 돈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와 시내버스 차장을 하다가 한쪽 손이 잘려나간 다음 몸을 팔러 전전하는 영자와 남편 만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위문공연단과 베트남까지 가는 순이. 두 여자의 고향을 떠나는 행위. 그때 순이는 영자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가. 혹은 애인으로부터 버림받은 다음 차례로 남자들에게 육신을 망가트리고 결국 한강에 한줌의 재가 되어 흩날리는 경아와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다음 베트남까지 찾아가는 순이. 남자로부터 버림받기와 그 이후, 그때 순이는 경아와 얼마나 다른가. 순이는 1971년의 여자들 사이에서도 매우 특별한 선택을 한다. 그 다음 상길의 책임. 베트남전은 20세기 남성이 저질러놓은 전쟁이라기보다는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열강이 아시아 사회주의 블록의 약한 고리를 끊기 위해 시작된 침공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호치민이 이끄는 공산당과 농민들이 얼마나 끈끈한 유대관계 아래 놓여 있었으며, 민족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이준익은 이 전쟁에 한국 이외에는 어떤 다른 나라도 참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기해야 했다. 여기에는 20세기를 대표할 만한 어떤 정황도 없다. 말하자면 베트남은 1942년 유럽이 아니었으며, 호치민은 히틀러가 아니었다. 베트남전은 시작부터 미국의 패배가 예상된 전쟁이었다. 유럽의 미국 동맹국은 누구도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부대를 파견하지 않았고, 심지어 소련조차 이 전쟁의 무의미를 경고했다. 닉슨은 전쟁이 수렁에 빠지는 것을 임기 내내 지켜보다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자기의 경력을 파국으로 몰고 갔다. 텔레비전은 정글을 생방송으로 중계했고, 대학생들과 대중문화의 스타들은 이 전쟁을 반대했다. 만일 이준익이 정말 그런 의도로 <님은 먼곳에>를 찍기를 원했다면 멀리 베트남의 정글까지 갈 필요없이 그저 한반도에서 벌어진 1950년 그해 여름의 전쟁을 찍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므로 내 첫 번째 질문은 왜 <님은 먼곳에>가 한반도가 아니라 베트남에 가야만 했을까, 라는 것이다. 첫 번째, 바보 같은 대답. 그렇게 되면 영화 제목으로 <님은 먼곳에>를 쓸 수가 없다. 왜냐하면 1970년에 김추자가 불러서 히트한 이 곡을 한국전쟁을 무대로 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답이 바보 같긴 하지만 이 질문마저 의미없는 것은 아니다. <님은 먼곳에>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이 영화는 ‘노래에 바쳐진’ 이야기라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밖에 없다. 만일 <님은 먼곳에>를 보았는데 끝내 <님은 먼곳에>가 흘러나오지 않았다면 당신은 영화가 끝난 다음 어떤 기분이 되었을까? 물론 베트남전을 다룬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베트남전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이 문제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래와 역사가 도착적인 관계를 이룰 때, 전쟁이 노래를 위해서 존재할 때, <님은 먼곳에>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베트남전이 거기 있을 때, 이 로맨스는 우리에게 이상한 질문과 대답의 관계를 상기시켜준다. 나는 이준익에게 왜 <님은 먼곳에>를 위해서 베트남전이 거기 있어야 하나요, 라고 질문하고 싶다. 영화의 대답은 왜 하필이면 그때 베트남전이 <님은 먼곳에>에 가장 좋은 장소가 되었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나는 자꾸만 순이가 남편을 찾으러 베트남에 간다기보다는 ‘수애’가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1971년의 베트남에 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착시를 멈출 수 없다. 순이와 ‘수애’ 사이의 숨바꼭질. 왜 하필이면 <님은 먼곳에>를 이준익의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에 이어지는 ‘음악 삼부작’이라고 불렀을까? 다른 두편과의 관계 속에서 <님은 먼곳에>는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 말고는 어떤 유사성도 없다. 그런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주제도 아니고 테마도 아니다. 간단하게 박찬욱의 ‘복수’ 삼부작과 비교해보라. 그렇다고 이 세편의 영화가 가수를 모델로 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노래를 부른다는 행위만 공통점이 있다. 그때 베트남이라는 전쟁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님은 먼곳에>에서 과잉한 것은 노래가 아니라 베트남전이라는 전쟁이다. 베트남은 노래를 위해서 무대를 제공하고, 그런 다음 발정난 군인들이라는 관객을 동원하고, 그 앞에서 노래는 특별한 전시성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똑같은 노래가 라이브에서 불릴 때와 나이트클럽에서 불릴 때 이상하게도 전혀 다른 감흥을 전해 받는다. 물론 그것을 이준익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순이의 라이브로 시작한다. 그녀는 동네 아주머니들 앞에서 마치 공연을 하듯이 잔뜩 감정을 잡은 다음 <늦기 전에>를 부른다. 노래 <늦기 전에>의 가사는 순이가 호소하는 것처럼 들린다. ‘늦기 전에/ 늦기 전에 빨리 돌아와주오/ 내 마음 모두 그대 생각 넘칠 때/ 내 마음 모두 그대에게 드리리/ 그대가 늦어지면 내 마음도 다시는 찾을 수 없어요/ 늦기 전에/ 늦기 전에 빨리 돌아와 주오.’ 누구에게? 애인에게. 하지만 우리는 곧 그런 호소가 완전히 오해이거나 아니면 잘못된 가정이라는 걸 알게 된다. 순이는 이미 결혼을 했으며, 그녀의 남편 상길은 군대에 있으며, 그녀에게 시집오기 전 애인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그래서 ‘이미 늦은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녀의 남편에게는 마음속의 다른 애인이 있다(하지만 구태여 순이의 마음이 떠나가기 전에 남편에게 돌아와 달라는 호소로 들을 수도 있다). 물론 이 노래 부르는 행위를 가사로부터 떼어내서 완전히 순이의 사회적 상상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녀는 혼자 부르지 않고 동네 아줌마들을 앞에 앉혀놓고 부른다. 말하자면 순이의 꿈은 가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님은 먼곳에>를 <즐거운 인생>의 여성판 솔로 가수 데뷔 버전으로 읽는 것이다. 이 영화의 시어머니, 남편, 베트남전, 1971년은 모두 핑계이며, 시골 아낙 순이가 ‘하여튼’ 가수로 무대에 서는 이야기로만 설명하는 것이다. 나는 이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준익이 베트남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실재의 장소라기보다는 ‘캐릭터’와 ‘플롯’ 사이의 상호주관성이라고 부를 만한 서로의 요구에 대한 대답의 장소처럼 다루어진다. 베트남전쟁은 적당하게 순이와 위문공연단을 괴롭히고, 그런 다음 그들이 완전히 포기하지 않도록 적당한 시점에 그들을 도와준다. 이때 베트남전은 역사 속에서 불가능한 것을 영화에서 가능하도록 ‘마술처럼’ 응답한다. 말하자면 동일한 사건이 실재에서는 가능한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지만 <님은 먼곳에>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도록 돕는다. 물구나무 선 가능성. 그러나 베트남전 자체가 그들에게 근본적인 외상을 입히거나 혹은 태도를 바꾸게 만들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베트남전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보자. 이때 이 영화들에서 신기한 점은 베트남에서 대부분 누군가를 찾아간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심지어 <람보2>. 혹은 공수창의 <알포인트>. 이때 베트남은 어떤 형식으로건 등장인물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람보에게조차!). 왜냐하면 그것이 베트남전이 미국과 한국의 근대사 안에 자리잡은 방식이다. 그러나 순이는 베트남에 가서 전쟁 한복판을 통과하면서 ‘자기 안에 있는 자기 이상의 것’을 얻지 못한다. 물론 베트남에 가서 순이는 두개의 인물로 분화된다. 하나는 남편을 찾으러 호이안으로 가는 순이이고, 다른 하나는 무대에 서는 ‘써니’이다. 하지만 이것이 새로운 인물에로 도약할 수 있는 둘 사이의 변증법적 성찰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 둘은 끝내 세 번째 인물로 거듭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목표를 향해, 남편을 만나기 위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이준익이 <님은 먼곳에>를 단지 베트남을 무대로 한 ‘음악영화’ 삼부작 중 하나로 기획했다 할지라도 내가 궁금한 질문에는 대답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순이는 결국 ‘써니’가 되지 못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순이’로 돌아오느냐는 것이다. 순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나? 이준익은 “모든 대답이 마지막에” 있다고 말했다. 순이는 원하는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마지막’ 대답이다. 하지만 나는 행위를 대답 대신 질문으로 읽고 싶다. 순이는 무엇을 원하는가? 자, 대답과 질문을 잘 구별해주기 바란다. 먼저 이준익의 ‘대답’으로 따라가기. 이준익은 자기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순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순이는 자기가 무엇을 바라는지 정말 잘 알고 있을까? 그렇게 되면 <님은 먼곳에>는 매우 끔찍한 요구의 판본이 된다. 왜냐하면 순이가 자기의 목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때 그녀의 행위는 주관적 요구로 위장된 객관적 희생이 되기 때문이다. 그녀의 요구는 무엇인가? 그녀가 목표를 잘 알고 있을 때 자기의 행위에 대해서 그녀가 기대는 진지한 믿음이란 무엇인가? 잠시만 마지막으로부터 처음으로 뒤집어서 소급해보자. <님은 먼곳에>를 요구와 대답으로 읽으면 슬프다기보다 기괴하게 느껴지는 것은 순이의 목표 때문이다. 왜냐하면 순이의 목표는 사랑이 아니라 섹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대가를 얻으려고 한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순이는 베트남에 가서 남편 상길과 섹스를 한 다음 임신을 하려고 그 전쟁터에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어머니가 삼대독자 외아들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요구하기 때문에 거기에 응하는 것이다. 21세기에 유교의 남아선호사상이라는 전근대적 봉건제 이데올로기가 명령을 요구할 때 당신이 보기에 그것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데올로기도 현실 속에서 수행을 시작하면 더이상 웃을 수 없다. 이데올로기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없을 때, 그 제도의 네트워크 안에서 그것을 행해야 할 때, (이것이 핵심인데) 그래서 그것을 실제로 해야 할 때, <님은 먼곳에>는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 익살맞은 상황이지만 그 무대를 1971년 한국의 시골 마을로 옮겼을 때 이 요구는 시골 아내 순이의 육신을 둘러싼 참담한 수난의 드라마가 된다. 결국 ‘따귀를 갈기는’ 행위가 유교의 남아선호사상에 대해서 순이가 내리는 대답이라면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행동에 대해서 비로소 비판적 거리를 얻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해석은 <님은 먼곳에>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모호하게 보이는 것은 순이를 따라 베트남의 호이안까지 가면서 단 한번도 이 영화는 유교의 남아선호사상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히 순이를 집 바깥으로 내몰아 베트남까지 보내는 전근대적 요구에 대한 복종에 대해서 <님은 먼곳에>는 그 명령을 방해하는 근대적인 장애를 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만을 열거한다. 그런 다음 순이는 이 조건을 내면화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러므로 나는 정말 순이가 자기의 요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전체 108신 중에서 시골집을 떠나는 16신 이후 두번 다시 시어머니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으며, 순이 자신도 시댁을 떠난 다음 두번 다시 연락하지 않는다. 순이가 서울에 올라간 다음, 좀더 정확하게 육군본부 앞에서 위병소를 지키는 군인에게 “아저씨, 저 월남 꼭 가야 돼요”라고 말한 다음, 순이는 마치 자발적인 의지로 남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자기의 목표를 향해서 다가간다. 좀더 인상적인 순간은 신83에서이다. 베트콩에 붙들린 땅굴 안. 용득이 순이에게 “근데 남편 왜 만나러가요?”라고 물었을 때 순이는 대답하지 않고(못하고?) 그냥 고개를 돌려 웃음짓는다. 순이는 바보가 아니다. 그녀가 대답 대신 웃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네 가지이다. 하나는 잘 알고 있지만 차마 용득에게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녀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좀 다르다. 그 질문을 듣자 비로소 잊고 있던 그 질문을 떠올린 것이다. 순이는 내내 남편을 만나러 가고 싶다고 말했지 단 한번도 왜 만나러 가는지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다. 물론 네 번째도 있다. 그 질문을 듣자 남편을 만나러 가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용득(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에 대해서 기뻐하는 것이다. 나는 순이의 대답이 세 번째와 네 번째 그 둘 사이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왜 그 둘 중 하나가 아니라 그 둘 사이에 걸쳐져 있는지가 <님은 먼곳에>를 모호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야기 전체의 진행 과정 안에서 순이의 요구를 추론한 것이지 순이의 행동을 통해서 왜 베트남에 가려고 하는지의 대답을 구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준익은 그 대답이 ‘따귀를 갈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용득에게 웃음으로 대답한 것을 왜 상길에게는 ‘따귀를 갈기는’ 행동으로 대답했는지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차라리 나는 남편을 만나러 가는 순이의 행위가 일신의 인정투쟁이 아닌가, 라는 의심을 멈출 수 없다. 말하자면 그녀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녀가 상길의 아내라는 사실이다. 상길의 애인도 하지 못하는 행위, 오로지 그의 아내만이 할 수 있는 행위. 이때 이 행위는 목표와 아주 가까이 있다. 상길의 애인은 두려워하지만 그의 아내 순이는 간절하게 원하는 목표. 말 그대로 임신이라는 목표. 육신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결과. 비로소 그녀는 용득의 질문을 받은 다음 의심한 적이 없는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 대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이 질문이 매우 이상한 장소에서 던져졌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그녀는 다른 위문공연단 남자들과 함께 베트콩의 땅굴에 잡혀 있다. 그런데 <님은 먼곳에>는 한국군과 미군에 대해서 거의 무관심하거나 종종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마치 정치적 교정을 하기라도 하듯이) 베트콩들의 땅굴 속 삶에 대해서는 매우 친밀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그래서 단 한 순간도 우리는 그들이 베트콩들에 처형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순이가 여기서 베트남전의 역사적 의미를 깨달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으로 평등한 공동체 삶을 본다. 그녀가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문득 깨달은 것은 사이공의 노천식당에서 미군이 모이는 극장에 폭탄을 던진 다음 도망치다가 미군의 총에 맞아 죽는 소녀와의 동병상련일 것이다. 순이는 미군 부대에서 공연을 실패하고 난 다음 노천식당에 앉아 있다가 폭탄을 던진 다음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총에 맞아 죽어가는 베트콩 소녀를 본다. 이 장면은 거의 유일하게 베트남 인민과 순이 사이의 나눠찍기로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다. 그녀는 베트콩 소녀의 죽음에 매우 큰 충격을 받는다(S# 56). 그녀는 왜 이 어린 소녀가 죽음을 마다지 않고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다음 위문공연단은 한국 부대를 전전하기 때문에 베트남 사람들과의 어떤 접촉도 없다. 공연이 끝나고 떠나는 이들은 베트콩들에게 억류된다(S# 78). 공동체의 삶. 그리고 여기서 순이는 베트콩 소녀의 죽음에 대한 어떤 대답 같은 것을 얻는다. 그때 그 대답은 동시에 순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다. 물론 순이와 베트콩 소녀의 행위는 동일한 차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두 행동은 일신의 자살적 제스처이다. 그녀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가 명령하는 요구에 대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대답하는 중이다. 시어머니는 자기 삼대외독자 상길이 베트남에 가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당신께서 직접 가겠다고 나서면서 정작 자기 며느리가 베트남에 갈 때는 말리지 않는다. 순이의 웃음은 자신의 운명에 관한 처량한 대답이다. 여기에는 전근대적 봉건제의 몰상식한 요구와 민족사회주의 공동체의 제국주의 투쟁에 관한 임무의 무자비한 요구가 동일한 제스처로 겹친다. 그것이 이 질문이 이 장소에서 던져진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웃음 이후 순이의 어떤 변화도 그녀의 행동에서 감지되지 않는다. 혹은 이준익은 이 두개의 까다로운 문제를 더이상 발전시키지 않는다. 대신 재빨리 땅굴로부터 그녀와 위문공연단을 빼낸 다음 다시 원래의 목표를 향해서 전진시킨다. 순이는 상길 어머니의 분신 하지만 도미노를 가로막는 것은 장애물이 아니라 역설이다. 여기에 다소 음란한 아이러니가 개입한다. 베트남의 전쟁터 한복판 남편이 있는 장소까지 가기 위해서 순이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그녀 자신의 육신뿐이다. 남 앞에서 말도 잘 못할 만큼 수줍은 그녀는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 오로지 섹스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힌 병사들의 시선 앞에 자기 육신을 전시해야만 한다. 순이는 김추자가 아니며, 병사들은 ‘써니’의 노래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다.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정만이 순이의 치마를 들어올리고, 무대에서 그녀의 옷을 벗기듯이 짧게 자르는 것은 오로지 육신을 전시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순이의 육신을 갈망하는 그 수많은 병사 중에서 오로지 상길만이 그녀와 섹스하기를 원치 않는다. 순이는 그 수많은 병사 중 누구와도 섹스하기를 원치 않으며 오로지 남편과만 섹스하기를 원한다. 이 극단적인 대칭의 관계 속에서 순이는 행위의 모순 속에 던져진다. 난 섹스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라고 병사들 앞에서 자기 육신을 전시한다. 다만 조건이 있다. 오로지 내 남편하고만. 그러나 그녀의 남편 상길은 순이와 할 생각이 없다. 순이는 언제든지 성공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 상대만 가리지 않는다면. 이때 이들 병사들과 상길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단 한 가지 차이. 상길은 그녀의 남편이다. 이때 순이가 섹스하기를 바라는 상대는 남편이지 상길이 아니라는 것을 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상길이 남편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를 찾아 베트남에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수난은 임신을 하기 위한 것이지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길은 마음속에 둔 다른 애인이 있고, 순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적어도 ‘남편’ 상길에게 ‘아내’ 순이는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처녀이다. 순이가 잘 알고 있는 것은 자기의 요구뿐일 때 그녀는 오로지 섹스를 한 다음 임신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요구와 목표 사이의 불협화음, 혹은 도착적인 관계. 말하자면 임신이라는 결과를 기대하는 남편과의 섹스라는 행위. 나를 더 놀라게 만든 것은 이 결정이 그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시어머니의 명령에 대한 복종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순간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오직 목표만을 향해서 거의 일직선을 그리듯이 나아간다는 사실이다. 임신을 해서 박씨 가문의 삼대독자의 대를 잇게 만드는 일은 순이에게 믿음을 지키거나 환상에 빠졌다기보다 무언가 법을 수행하려는 행위처럼 보인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녀는 거기에 대해서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의지한다. 순이는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 이익과 손해에 관한 어떤 셈도 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의 비극은 목표에 가닿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정작 그 목표가 순이가 다가오는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는 데 있다. 말하자면 순이는 목표를 향해 간다기보다 붙잡으러 가는 것이다. 이준익이 원하는 대답은 어떤 판본인가? 순이가 ‘따귀를 갈기는’ 행위를 그녀 스스로 잘 알고 있을 때 사실상 그것이 그녀를 베트남전쟁의 한복판으로 내몬 시어머니의 명령이 내면화된 것이 아니고 다른 무엇이겠는가? 그때 여기에는 순이의 행위가 환상의 전이라는 무아지경 속에 던져지는 것이라는 걸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순이가 자기의 행동에 대한 손해와 이익을 따지는 셈을 못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녀는 자기의 행동이 이미 자기의 계산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 아내가 남편을 만났다기보다는 어딘가 어머니가 아들을 만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차라리 <님은 먼곳에>를 어머니가 아들을 면회하러 가는 이야기로 설정했다면 얼마나 설득하기 쉬운가? 나는 여기에 내기를 걸고 싶어진다. 이를테면 시어머니와 순이의 마지막 대사를 떠올려보라(S# 16). 시어머니는 순이에게 “앞장서라, 월남 가자”라고 말한다. 그러자 순이가 “월남 간다고 다 죽는 거 아닙니다”라고 대답한다. 시어머니가 반문한다. “니 전쟁 겪어봤나? 니 시아버지 전쟁 나가 죽은 거 모르나?” 약간의 셈. 상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때 시어머니는 상길을 임신하고 있었을 것이다(혹은 막 출산한 다음이었을 것이다). 상길의 나이의 역산. 1971년으로부터 1950년으로. 순이가 “월남이 어딘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갑니까?”라고 묻자 시어머니는 “내 혼자라도 갈끼다”라고 대답한다. 그런 다음 “마누라 싫어 도망간 놈이 살 것 같나? 비켜라”라고 말하며 대문을 열자 순이가 대답한다. “어머니 제가 갑니다.” 이때 시어머니가 순이에게 하는 요구는 정확하게 자기의 행동의 반복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희생을 공유하려는 것이다. 그것이 이 공동체의 채무를 나누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매우 비합리적이고 전근대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그 내면에 좀 더 복잡한 계산이 들어 있다. 세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 말 그대로 시어머니만 베트남에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현실적으로 시어머니가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순이는 이 공동체 안에서 ‘상징적’으로 살해될 것이다(좀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그렇게 되면 영화는 시어머니와 순이 둘 중 누구를 따라가야 하는가, 라는 난처한 질문과 만나게 된다). 두 번째 경우. 시어머니와 순이가 함께 가는 것이다. 그때 이 상황은 고스란히 연장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 없이 무대만을 바꾼 게 될 것이다. 이것은 순이가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마지막 남은 경우. 순이가 혼자 가는 것이다. 이때 순이는 사실상 시어머니의 ‘상상적’ 분신이 되어서 그 자리에 가는 것이다. 이것이 이 가혹한 비합리성 안에서의 수동적 합리성이다. 물론 네 번째 선택이 있다. 순이가 서울로 가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네트워크는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이것은 이준익이 가장 피하고 싶은 버전이다. 그는 베트남에 가는 편이 서울로 가출하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여전히 공동체 안에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순이는 네트워크를 끝장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공동체 안에 머물면서 그 안에서 분신이 되는 것을 떠안는다. 그러므로 마지막 장면에서 순이는 동시에 상길의 어머니이기도 한 것이다.

[전영객잔] 순이가 상길의 뺨을 때린 까닭은? [2]

이번에는 질문으로 따라가보자. 순이는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천신만고 끝에 베트남 최전선인 호이안 능선까지 가서 ‘따귀를 갈기는’ 것이 최종 목표라면 순이의 행동은 희극적이 된다. 나는 질문을 약간 비틀고 싶다. 이준익은 순이에게서 무엇을 원하는가? 차라리 이쪽이 질문의 핵심이 아닐까? 우선 나는 이준익이 단 한번도 여자에 관한 영화를 찍지 않았음을 환기하고 싶다. 그는 언제나 남자를 중심에 둔 다음 진행하였다. 심지어 종종 그 사이에 여자가 끼어드는 것을 차단하기까지 하였다. 계백은 아내를 죽인 다음 전쟁터에 나간다(<황산벌>). 광대 공길과 장생 사이에 여자가 끼어들 틈은 없다. 심지어 연산조차 장록수를 밀쳐내고 공길에게 이끌린다(<왕의 남자>). 가수 최곤과 매니저 박만수는 지방 방송국까지 함께 좌천된다. 심지어 서울로 돌아온 박만수에게 아내조차 자기보다 최곤을 챙기라고 충고한다(<라디오 스타>). 4인조 ‘아저씨’ 밴드는 단 한명의 여성 게스트도 영입하지 않는다. 그럴 바엔 차라리 ‘꽃미남’ 미소년에게 마이크를 넘긴다(<즐거운 인생>). 나는 이준익이 퀴어(-야오이- BL?)영화와 마초영화 사이에서 모호하게 오가면서 남성성에 거의 경도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님은 먼곳에>는 ‘여자’ 순이가 주연인 영화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준익의 새로운 시작일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님은 먼곳에>는 그 이전의 어떤 영화보다도 여자가 바깥에 있는 영화이다. 설명은 간단하다. 순이는 본질적으로 이준익 영화의 ‘남자들’의 환상이다. 이 말을 잘 읽어주기 바란다. 순이는 어떻게 영화 안에서 존재하는 대신 이야기 안으로 들어오는가? 그녀는 상길의 아내로 이야기 안으로 들어온다. 그런 다음 ‘써니’가 되어서 무대 위의 ‘남자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약간 우스꽝스러운 표현이지만 순이는 이 영화의 유일한 여자이다. 그런데 그녀는 단 한 순간도 주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대상으로 다루어지고, 그런 다음 남편과의 관계 안에서만 자기 의미를 찾는다. 다소 삭막할 정도로 여자들이 화면에서 사라진 <님은 먼곳에>에서 ‘유일한 여자’ 순이는 남편에게 다가가려는 그 활동 안에서만 의미를 얻고, 주변 ‘남자들’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도 거기에 기대어서 감정적인 호소를 한다. 몇번이고 순이는 ‘남자들’에게 다짐하듯이 말한다. “저 민간인 아니구 그 사람 부인이에요.”(육군본부 정문 앞) 정만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묻는다. “월남 가면 한몫 잡는다는 이야기 어디서 들었어?” 순이는 그냥 말을 돌리지 않고 대답한다. “남편이 월남에 참전했어요.” (식당) 베트콩들에 붙잡혀 머리에 총구가 겨눠질 때도 대장에게 말한다. “남편 만나러 왔어요.” (베트콩 땅굴) 그녀는 자신이 상길의 부인이라는 것을 매번 새로운 상황이 주어질 때마다 확인시키다시피 한다. 그것은 주변 남자들에게 확인시키는 행위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환기하는 행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말하자면 베트남에 와서조차 시어머니의 요구는 단 한 순간도 중단되지 않는다. 영화의 가장 강력한 명령. 혹은 공동체의 법. 그때 순이에게 자유의 행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자유의 의지가 없는 텅 빈 행위. 그런데 영화는 내내 그것을 순이의 의지로 보고 싶어한다. 공동체의 요구를 따르는 수동적 행위와 오로지 행위의 능동적 활동만을 보고 싶어하는 감정선의 체현. 나는 이 불일치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님은 먼곳에>에서 가장 기이하게 여겨지는 것은 순이가 이 힘겨운 임무를 단 한 순간도 포기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녀는 포기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 아니 차라리 포기할 수 있는 알리바이를 댈 수 있는 가장 좋은 순간, 그러니까 그녀의 남편 상길이 실종되었으며 정만과 그의 위문공연단 동료들이 모두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을 때 그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 오로지 남편 상길만을 위해서 간직해왔던 순결을 미군 장교에게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것을 포기했을 때 순이가 남편을 만나서 내줄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미군 캠프에서 순이가 용득을 내보내고 결심한 듯이 그녀 혼자 남아 미군 중령의 숙소 방문을 닫을 때 이준익,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 물어보고 싶어졌다. <님은 먼곳에>에 결정적으로 없는 것은 여주인공 순이의 구원이라는 해결이다. 이 악순환의 구조 안에서 순이의 진정한 구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당연히 이 희생의 구조를 탈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순이는 홀린 듯이 희생의 유혹에 저항하기를 포기한다. <님은 먼곳에>가 감정적으로 다소 둔하게 여겨지는 것은 순이가 이 유혹을 어떻게 포기하는지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불편해진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 대신 순이는 거의 영웅적으로 이 모험담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순이의 행위는 모든 고난을 무릅쓰고 결국 원하는 것을 얻는 영웅적 제스처인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대답하려면 우리는 순이가 무엇을 포기했는지를 셈해야 한다. 대답은 참으로 가련하다. 순이는 단 한 순간도 사랑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내내 사랑하는 행위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준익은 자살적 제스처에 만족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문제를 좀더 확장하고 싶다. 이준익은 여자에게 환상을 갖기보다는 차라리 자살적 제스처에 만족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반문을 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계백의 선택(<황산벌>). 공길과 장생의 마지막 광대놀음(<왕의 남자>). 둘의 우정을 위해서 그냥 시골 방송국에 남기로 한 결정. 말하자면 ‘상징적’ 자살의 제스처(<라디오 스타>).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온 다음 ‘사회적’ 자살을 결심하는 밴드 결성(<즐거운 인생>). 그리고 베트남에 있는 남편을 만나러 가는 순이의 결심. 그들은 거의 일제히 어떤 자살의 제스처를 선택한다. 그 행동이 이준익을 감동시킨다. 그런 다음 이준익은 단 한 순간도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무언가 약속이 지켜졌다고 생각한다. 어떤 약속? 희생이라는 환상. 손해라는 만족. 이 역설적인 계산법을 지켰다는 약속. 이때 환상은 주인공들을 잡아먹는다. 그런 다음 환상의 목표가 요구하는 것이 자기가 바라는 것이라는 알리바이에 굴복한다. 이때 희생은 모든 계산을 교란에 빠트린다. 모두에게 사랑받는다는 환상보다 모두를 사랑하는 환상이 훨씬 더 고상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이 희생적이기 때문이다. 왜 희생이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그것은 현실의 약속보다 더 큰 무엇이 지켜졌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희생은 사랑을 하는 자리가 주는 자리보다 언제나 우위를 점하게 만든다. 이때 핵심은 둘 사이의 대가의 교환이 불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준익이 자신의 등장인물들에게 반복해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단지 관념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목표는 그 희생을 자발적으로 행하고 있다는 믿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믿음? 나는 사랑받지 못하지만 목숨을 걸고 사랑을 베풀고 있어요.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어요. <님은 먼곳에>의 환상은 오로지 사랑을 베푸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는 요구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여기 예기치 않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이준익이 이 환상의 공식을 남자들 사이의 문제로 다룰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 사이가 되자 갑자기 공식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남자와 여자는 남편과 아내가 되었고, 여기에 매개자로서 시어머니가 동원되고, 그런 다음 그녀에게 전근대적 봉건제의 유교에 따른 ‘가문을 잇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명령이 주어진다. 물론 당신은 이게 웃긴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속해 있는 공동체 안에서 그녀에게 그것을 요구할 때, 게다가 그것을 거절할 수 없을 때(친정아버지는 출가외인이라고 집에 돌아온 그녀를 쫓아낸다), 그래서 그것이 공동체의 법이 되었을 때(그녀는 달리 갈 데가 없다), 그런 다음 당신이 그 법을 수행해야 하는 자리에 갈 때, 당신은 더이상 웃지 못할 것이다. 사실상 그녀가 호이안의 능선에서 남편 상길을 만날 때 결국 그 기회는 그녀의 두 번째 ‘상징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사랑의 불가능한 교환관계를 바탕으로 한 희생을 건드릴 때 이준익이 순이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해서 대답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님은 먼곳에>를 보면서 이 질문이 모호하게 느껴진 것은 사랑이 끼어들 구석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영화의 감정선 모멘트의 희극적 비극성이다. 이 이야기의 조건의 복기. 상길은 아내 순이 말고 다른 마음속 애인이 있다. 아마도 순이는 시골 동네에서 배운 것 없이 자라서 아버지의 요구로 상길에게 시집왔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시집살이에서 쫓겨나면 친정 말고는 갈 데도 없다. 상길이 마음에 둔 상대는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 사귄 여자이다. 그걸 순이도 알고 있다(시어머니가 “니가 우엣으면 서방이 결혼하자마자 군대로 내빼더니 전쟁통엘 갔나 말이다”라고 다그치자 순이는 “그이 애인이 따로 있다 아닙니까?”라고 대답한다). 말하자면 상길과 순이 사이에는 감정의 끈이 없다. 상길의 마음은 서울에 두고 온 애인에게 향한다. 그가 고참 김 상병을 때린 것은 그가 서울에서 온 애인의 편지를 읽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이전에는 순이로부터 편지가 왔을 것이다. 그래서 김 상병은 내무반 부대원들에게 “주목, 박상길 일병의 마누라께서 오늘도 불철주야 조국수호에 여념이 없는 서방님께 편지를 보내왔다”라고 소개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편지는 서울에서 온 애인의 편지였다. 순이에게서 편지가 왔을 때는 참았던 상길은 이번에는 참지 않는다. 그런 다음 둘이서 외박을 나가 여인숙에서 술을 마시면서 순이에게 상길은 묻는다. “니 내 사랑하나?” 순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혹은 못한다) 상길은 말한다. “니 이제 면회 오지 마라”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질문한다. “니 사랑이 뭔지 아나?” 이 말은 상길이 영화 전체에서 순이에게 한 마지막 대사이다. 이 말의 순서는 음미해볼 만하다. 만일 이 말이 반대의 순서로 진행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니 사랑이 뭔지 아나?”라고 먼저 물었을 때 그 말의 뜻은 순이가 사랑이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니 내 사랑하나?”라고 물을 때 사랑이 ‘뭔지 모르는’ 순이가 사랑을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희망이 있다. 만일 사랑이 무엇인지 안다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의 순서를 바꾸면 단지 질문의 순서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니 내 사랑하나?”라고 먼저 물었을 때 질문의 뜻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이다. 다른 하나는 나를 사랑할 리가 없지 않느냐는 반어법이다. 그런 다음 “니 사랑이 뭔지 아나?”라고 물을 때 이 질문은 비참하게도 두 개의 뜻을 모두 무효화시킨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 “니 내 사랑하나”라는 질문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더이상 상길이 순이에게 한 말은 없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장면 다음에 우여곡절 끝에 베트남 정글의 능선에서 만나는 마지막 장면까지 순이는 상길을 만나지 못한다. 순이가 ‘따귀를 갈기는’ 행위를 “니 사랑이 뭔지 아나?”에 대한 대답으로 읽는다면 우리는 이준익의 설명과 정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해서라도 당신을 만나러 오는 행위, 이래도 내가 사랑이 뭔지 모른다고 당신은 말할 수 있습니까, 라는 앎의 제스처라고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여인숙에서 호이안의 능선까지의 우여곡절은 그렇게 간단하게 뛰어넘을 수 있는 주름이 아니다. 앎과 무효의 관계. 두번의 질문과 침묵. 나는 이준익이 이 사랑의 무효 관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잔인하기 짝이 없는 대사의 순서는 단지 어떤 한 장면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 전체를 통해서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님은 먼곳에>는 얼핏 보기에는 순이와 상길 사이의 평행편집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장면에서 순이가 <늦기 전에>를 부른(S# 1) 신의 다음 신은 바로 남편 상길의 군대 생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S# 2) 이 도입부의 편집은 좀 이상한 방식으로 중복되어 있다. ‘상식적으로’ 다음 장면은 순이가 부대에 면회를 오면 된다. 그런데 장면은(S# 3) 다시 시어머니와 순이의 집으로 되돌아가서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상길의 내무반으로 돌아온다(S# 4). 김 상병은 상길의 서울 애인으로부터 온 편지를 읽다가 둘 사이의 큰 싸움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다음 신은 둘 사이의 싸움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순이가 버스를 타고 면회 오는 장면이다(S# 5). 다음 장면은 중대장실에서 둘이 질문을 받는다. “니네 영창 갈래 월남 갈래?”(S# 6) 그런 다음 순이는 부대 위병소에 도착해서(S# 7) 상길의 면회를 신청한다. 그리고 난 다음 여인숙에서 순이는 상길로부터 ‘사랑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이 도입부의 신은 홀수(순이)와 짝수(상길)의 순서로 오간다. 이게 너무 기계적이어서 어떤 규칙이 거기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앞의 신은 다음 신의 원인이 아니며, 다음 신은 앞의 신의 결과가 아니다. 그 둘은 자기의 모멘트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순이는 시어머니의 요구로 상길을 면회 가고, 상길은 순이가 아니라 서울에서 온 애인의 편지 때문에 베트남에 간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이별의 고통이 없다. 나는 그런 다음 상길이 영화에서 사라지고 맨 마지막 장면에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그 둘이 만나지 못하긴 하지만 상길이 영화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순이가 베트남에 가는 갑판 위에서 “월남에 있는 용호부대 29연대가 어딨어요?”라고 묻자 군인이 지도를 꺼내보면서 “호이안에 있는데요”라고 말한 다음 위치를 설명해준다. 순이는 “이거 저 주시면 안 돼요?”라고 묻는다.(S# 34) 다음 신은 호이안에서 김 상병과 함께 참호를 파고 있는 상길을 보여준다. <님은 먼곳에>는 순이가 남편 상길을 찾으러 베트남에 가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이지 상길이 베트남에 가서 겪는 고통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이준익은 순이만큼 상길이 수난을 겪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한다. 왜 이 장면이 필요해진 것일까? 그건 상길의 고통만이 순이의 수난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길은 순이의 행위를 보충설명하고 있는가? 결과는 반대이다. 상길과 순이의 차이는 서로의 수난에 대해서 서로가 서로를 보충해주지 않는 데서 생긴다. 순이의 수난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보충이 필요하지만 상길을 위해서는 설명의 프로그램이 필요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왜냐하면 상길은 베트남전의 일부이지만 순이는 베트남전의 얼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이가 베트남전으로부터 지나치게 현실성을 상실하고 이야기가 요구하는 환상 안으로 이탈할 때 상길은 그것을 원래의 자리에 되돌려주기 위해 돌아온다. 말하자면 상길은 순이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무효 선언이라는 방식으로 끼어든다. 순이가 군인으로부터 지도를 전해받을 때, 그래서 상길의 위치를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지리적으로 고정지을 때, 그런 다음 두 사람 사이를 연결지을 때, <님은 먼곳에>가 단지 베트남전에 대한 낭만화뿐만 아니라(그 이상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만큼의 수난을 다루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좀더 분명한 모습은 베트남전에서 상길의 모습을 두 번째 보여줄 때이다. 순이는 미군 부대에서의 첫 번째 공연을 완전히 실패하고 좌절해서 앉아 있다. 그때 갑자기 이야기를 둘러싼 평화로운 분위기를 찢듯이 갑자기 상길의 부대가 전투 중인 고지로 옮겨간다(S# 55). 그리고 다시 노천식당으로 돌아온다(S# 56). 여기서 순이는 폭탄 테러를 하는 베트콩 소녀의 죽음을 목격한다. 말하자면 낭만과 수난의 동거. 혹은 환상과 역사의 평행편집. 그런 다음 낭만 속의 현실의 한 조각. 나는 이것이 이준익의 알리바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순이의 환상이 도착적인 만큼 상길의 수난은 단조롭기 짝이 없다. 아마도 <님은 먼곳에>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순이가 한국 군부대에서 공연을 끝내고 헬리콥터로 이동하면서 <님은 먼곳에>를 부르는 장면일 것이다(S# 72). 정글 위로 날아가면서 순이는 노래를 부른다.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산다 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님은 먼곳에>라는 이 영화의 제목과 동명의 곡. 순이가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대답에 대한 요구이다. 노래를 부를 때 가장 절망적인 반응은 상대방이 아무런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지 않을 때이다. 그때 노래를 부르는 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 대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노래를 부를 때 그것은 자기 자신을 향해서 요구하는 행위이다. 노래를 듣는 우리는 그 노래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거기에 감정적으로 대답한다. 그때 대답은 정확하게 대답이라기보다는 내 마음속의 상대에게 마치 내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인 것처럼 슬그머니 호소하는 행위에 기대는 것이다.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기 전에 감정을 잡는 것은 그 노래를 들을 자기 자신을 불러내기 위한 것이다. 종종 가수들이 많은 관객 앞에서 공연을 실패하거나 반대로 텅 빈 객석 앞에서도 성공적인 라이브를 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 자신은 자기의 노래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자신은 자기 자신에게 간절하게 호소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순이는 지금 누구를 위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 이 장면의 이상한 점. 첫째, 이 노래는 순이가 갑자기 정글 위에서 남편 상길을 생각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헬리콥터 비행사의 “노래 한곡만 불러주실래요”라는 요청에 대한 대답이다. 물론 그 요청을 따르기는 했지만 정글 어딘가에 있을 상길을 부르는 호소일 수 있다(이 장면은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헬리콥터에서 마이크도 없이 부르는 노래가 들릴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적 설정이 <님은 먼곳에>를 잘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그렇다면 그 다음 장면에 이어 붙여놓은 상길의 신(S# 73), 베트남의 어느 마을에 수색을 나갔다가 베트콩과 교전을 벌이는 이 장면 위에 노래가 (물론 들리지는 않겠지만) 마치 텔레파시처럼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상길의 신이 시작되자마자 노래는 즉시 중단된다. 마치 두개의 신은 결코 하나로 묶여서는 안 되는 것처럼 순이의 노래는 여기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부르는 것인가? 나는 이 노래가 그런 다음 그들이 베트콩에 붙잡혔을 때, 그래서 순이와 위문공연단 동료들에게 총이 겨눠졌을 때, 정만이 “She is a singer, 써니야, 노래해”라고 말할 때, 그들 앞에서 다시 <님은 먼곳에>를 부를 때 어리둥절해졌다(S# 78). 이 노래는 순이의 18번이 아니다. 그녀의 애창곡은 <늦기 전에>다. 게다가 가사의 내용도 이 자리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베트콩 사령관은 한국말을 알아들을 리 없다. 순이는 이 노래를 베트콩의 땅굴 속에 붙잡혀 있을 때 베트남 어린아이들을 위해서 한번 더 부른다(S# 85). 이 노래는 어떤 응답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걸 순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부를 때에만 순이는 이 수동적인 행위의 수행에 대한 목적을 낭만적으로 만들 수 있다. 지금 무언가를 행하고 있는데 그 의미를 알 수 없을 때 유일하게 남은 방법은 목적을 위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헬리콥터를 타고 가면서 순이가 <님은 먼곳에>를 부를 때 이상할 정도로 낭만적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낭만적으로? 그렇다. 지금은 불행하지만 앞으로는 행복할 것이라는 무책임한 희망의 사악한 유혹. 순이가 노래를 부르는 것은 슬프게도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이다. 가장 비참한 진실은 상길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지만 남편은 그를 사랑할 것이라는 기대가 거기에 있다. 만일 남편의 실체를 지울 수만 있다면 아내는 남편의 사랑받는 존재라는 일반론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라는 텅 빈 이름. 순이의 환상을 상길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니 내 사랑하나?”라고 물은 다음 “니 사랑이 뭔지 아나?”라고 (그 반대가 아니라) 질문한 것이다. 순이가 부르는 <님은 먼곳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 이 불가능한 관계를 순이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중이다. 약간 짓궂게 가정해보자. 여인숙에서 상길이 질문을 한다. “니 내 사랑하나”라고 물었을 때(‘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순이가 “네”라고 대답한다면 상길은 뒤이어 “니 사랑이 뭔지 아나?”라고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니 내 사랑하나”라고 물었을 때 침묵을 지키다가 뒤이어 “니 사랑이 뭔지 아나?”라고 물었을 때(‘사랑하다고 말할걸 그랬지’) “네,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대답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때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상길이 된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상길이 바보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일까? 하지만 순이는 사랑에 관한 두번의 질문을 받는 동안 한번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다음 다른 장소에서 <님은 먼곳에>를 부른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라고 노래한다. 순이가 부르는 노래 <님은 먼곳에>는 그녀 자신을 수수께끼에 던져넣을 뿐만 아니라 사랑과의 관계에서 그녀 안의 무엇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모호하게 남겨놓는다. 그때 우리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두번 모두 (헬리콥터 비행사와 정만) 그녀를 순이가 아니라 ‘써니’라고 불렀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요청과 대답의 불일치. 노래를 청한 이들은 질문을 알지 못하고, 질문을 한 사람은 노래를 듣지 못한다. 말 그대로 노래는 그저 허공을 떠돈다. 순이는 자기의 목표에 도착할 수 없다 자, 여기까지 검토한 사실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 순이는 어떻게 해서도 자기의 목표에 도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길에게 다가갈수록 남편은 점점 더 멀리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순이가 ‘따귀를 갈기는’ 장면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모든 대답이 마지막에 있다”는 이준익의 말을 문자 그대로 따를 생각이다. 그 대신 나의 방점은 대답이 아니라 마지막에 있다. 이 장면 ‘이후’가 없는 마지막 장면으로서 ‘따귀를 갈기는’ 행위는 단지 역설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두개의 해석. 하나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순이 앞에 전투에서 금방 빠져나온 상길이 서 있다. 그는 김 상병의 죽음을 본 다음 반쯤 넋이 나갔다. 그런 다음 그의 앞에 순이가 선다. 순이는 뺨을 때린다. 그때 그 행위는 상길이 아니라 그녀의 남편을 일깨우기 위해서 ‘따귀를 갈기는’ 것이다. 제발 정신을 차리세요, 당신 앞에 당신의 아내가 와서 서 있답니다. 만일 그 자리에 넋이 나간 박상길 일병만이 있다면 순이의 존재는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순이가 자기의 존재를 확인받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다. 그러나 상길이 정신을 차릴 때, 그의 아내를 알아볼 때, 사실상 순이는 다시 환상의 구조 안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주체에 대한 존재론적 자살의 제스처. 다른 하나의 해석은 다소 음산하다. 만일 그 자리에 순이가 남편의 ‘상징적’ 존재만을 원하고 상길의 실체가 폐지되기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안간힘을 써서 온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녀를 참을 수 있게 만들어준 유일한 희망. 남편이 영원히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모두에게 허락되는 그 자리, 하지만 오로지 자신만이 그를 사랑하는 자리, 마치 자기 안의 자기를 위해 노래 부르듯이, 상실을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는 소유의 자리. 순이는 시어머니가 “월남 가자, 앞장서라”라고 짐을 싸들고 나오자 대답한다. “월남 간다고 다 죽는 거 아닙니다” 물론이다. 하지만 이 말의 절반의 진실은 그 반어법에 있다. 베트남에서는 정말로 많은 병사들이 죽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겠는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순이가 베트남에서 기대하는 것은 물론 ‘남편 상길’을 만나는 것이다. 나는 ‘남편’ ‘상길’이라는 호명이 하나가 아니라 둘을 하나로 묶은 것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그때 상길과 남편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는 없을까? 왜냐하면 그것만이 여인숙에서 던진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니 내 사랑하나?” 그런데 누구를? “니 사랑이 뭔지 아나?” 순이는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의 대상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에게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순이가 베트남에 가는 것이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대상을 결정하기 위한 행동이다. 그때 그 노력은 동시에 순이의 희망의 가면을 뒤집어쓴 환상이다. 그런데 호이안의 능선에서 ‘남편’ ‘상길’과 마주칠 때 순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말 그대로 환상의 무효화. 여기가 마지막 장면이라면, 그래서 더이상 진행할 어떤 이야기도 남아 있지 않다면, 오로지 ‘따귀를 갈기는’ 행위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이에게 이 시간은 상길을 삭제하고 남편만을 남기기 위한 은밀한 소망의 노력이 좌절되는 순간이라고 가정할 수는 없을까? 그냥 간단하게 순이가 이 악순환의 구조를 끝장내기 위해서, 그래서 박상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도착했는데 살아 있는 박상길을 만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때 ‘따귀를 갈기는’ 행위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까, 라는 확인이다. 박상길은 살아남았고 순이는 그가 원하는 남편을 얻지 못할 것이다. 순이는 비로소 상길과 남편의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걸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환상에 대한 자살의 제스처가 될 것이다. 결국은 어떻게 해도 같은 결론. 세상의 중심에서 역사의 주변으로 그러므로 ‘하여튼’ <님은 먼곳에>는 여기서 끝난다. 그때 카메라는 그냥 우두커니 서 있는 것처럼 바라본다. 그들은 베트남전의 일부일 뿐이다. 그것이 이준익이 이야기를 끝내는 방식이다. 이준익 영화의 엔딩의 특징은 세상의 중심에서 시작한 다음 역사의 주변으로 사라져가는 인물들이다. 계백과 김유신의 그 유명한 역사적인 전투로 시작했지만 <황산벌>의 마지막 장면은 여기가 백제의 땅이건 신라의 땅이건 아무 관심없이 모내기를 하고 있는 농촌의 논밭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백제의 병졸 거시기(이문식)는 어머니를 찾아서 조국의 몰락은 벌써 잊어버린 듯 신나게 뛰어온다. 광대 장생과 공길은 마지막에 외줄 위에서 목숨을 건 멋진 공연을 펼친다. 하지만 거기에 어떤 관객도 없다. 연산군의 폭정을 쓰러트리기 위해서 저 멀리 궁궐의 문이 열린다. 광대의 자리. 역사의 무관심(<왕의 남자>). 두편의 음악영화(<라디오 스타>와 <즐거운 인생>)는 그냥 허접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거기서 무언가 심금을 울리거나 어떤 대단한 깨달음을 주지는 않는다. 나는 그것이 이준익 영화가 지닌 세상에 대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는 세계에 중심 따위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자기가 붙잡은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따라서 거의 일직선을 그으면서 종종 사례들에 역량을 부여하고, 사건들에서 의미를 찾고,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는 묘수를 찾고, 그들을 둘러싼 세계를 돌아보고, 더이상 진행할 수 없을 때 이제 그 선을 인물들에게 넘겨주고 갑자기 뒤로 물러난다. 그러면 우리는 이 직선이 세상의 수많은 선 중 하나였다는 것을 보게 된다. 종종 털실처럼 뒤엉킨 실타래. 아니, 차라리 실타래라는 세상. 실이 끝날 때 세상이 시작된다. 이준익은 세상이 시작될 때 영화를 끝낸다. 1971년 12월, 그러니까 순이가 베트남 공연을 하던 그 다음달. 박정희는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베트남 파병 ‘이후’ 첫 부대가 철수하여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 배에 순이와 상길이 타고 있었을까?

올림픽 특수 노린 지상파 3사의 결전

“베이징 환잉 니(베이징은 당신을 환영합니다)!” ‘2008 베이징올림픽’이 8월8일 오후 8시8분에 열리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17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중국 당국이 철저히 비밀에 부쳤던 개막식 내용도 개최일이 다가오면서 조금씩 공개되고 있다. 지난 7월29일 SBS 뉴스를 통해 단독 공개된 개막식 리허설 장면은 궁금증을 기대감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중국 5천년의 역사와 개혁 개방 이후의 발전을 표현한 매스게임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정교한 그림 같았다.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움직이는 수천명의 무용수들이 하늘을 날고, 바다를 헤엄쳤다. 개막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우렁찬 북소리는 새둥지 모양을 본뜬 올림픽 주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 올림픽을 앞두고 지상파 방송 3사도 바빠졌다. 결전을 중계하는 또 다른 결전을 위해 다양한 특집방송과 경기 중계 준비에 한창이다. 특히 올림픽이 열리는 중국과의 시차가 한 시간이어서 세 방송사는 주요 경기 대부분을 생중계로 방송할 예정이다. KBS는 주중에는 2TV, 주말에는 1TV에서 올림픽 방송을 집중 중계한다. 올림픽 기간에 2TV에서는 오전 7시30분부터 전날 경기를 다시 정리해 보여주는 <베이징 리포트>를, 밤 12시45분에는 그날의 주요 경기 하이라이트를 묶은 <베이징 24>를 편성해 방송한다. 영화감독 장이모의 총연출로 준비기간만 3년, 투입된 인원만 2만여명으로 알려진 화려한 개막식과 축제의 뒤풀이인 폐막식은 1TV에서 밤 9시부터 생중계한다. 개막식 당일에는 주경기장 인근 공개 스튜디오에서 <9시 뉴스>도 전한다. MBC는 비보이를 활용한 브리지, 만화로 보는 올림픽 소사, 사자성어를 이용한 경기 정리 등으로 시선을 붙들 예정이다. 이를 위해 현지 중계단에 처음으로 작가와 음악·컴퓨터그래픽 담당자가 동행한다. 베이징 현지에서는 <2008 베이징 올림픽>(낮 12시), 서울 스튜디오에서는 <니하오 베이징>(밤 12시)을 통해 올림픽 주요경기와 하이라이트를 정리한다. SBS는 매체 접근 방식을 넓혀 KBS와 MBC를 견제할 예정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과 협약을 맺어 중국 문화 관련 다큐멘터리를 올림픽 기간 내내 다양하게 펼쳐놓는 한편 SBS 홈페이지에서도 올림픽 개막식과 주요 경기들을 실시간 중계한다. <금메달을 부르는 과학>(8월5일 오후 8시50분), <마린보이 박태환을 만나다>(8월5일 밤 11시5분) 등 특집 프로그램으로 한국선수들의 선전도 기원한다. 올림픽은 지상파 방송 3사가 같은 화면을 공유하는 특성상 생중계 시 캐스터와 해설자의 능력이 시청률을 좌우한다. 세계 각국 스포츠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감동의 드라마를 전달하기 위해 방송 3사는 앞다퉈 전 국가대표 선수들을 해설자로 영입했다. MBC는 김수녕(양궁)·임오경(핸드볼)·방수현(배드민턴) 등 여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KBS는 김광선(복싱)·여홍철(기계체조)·전병관(역도) 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SBS도 전주원(농구)·황영조(마라톤)·문대성(태권도) 등이 시청자를 생생한 올림픽 현장으로 이끈다. 한국이 금빛 영광을 기대하고 있는 양궁, 태권도, 역도, 수영은 주요 중계 종목이다. 특히 국민들의 관심이 많이 쏠리는 야구와 축구는 방송 3사가 각각 1경기 1개사, 1경기 2개사가 중계하기로 합의하면서 전파 낭비로 지적받던 중복 중계의 여지도 없앴다. 이렇듯 방송 3사가 서로를 경계하며 중계에 매달리는 이유는 ‘올림픽 특수’를 기대해서다.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강력하게 시청자를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모을 수 있는 올림픽 중계엔 상상을 초월할 중계권료와 광고시장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올림픽 중계 수맥’을 잘 짚어 ‘돈맥’도 흐르게 할 요량이다.

[런던] 엄마의 옛 남친들, 뒷심을 발휘하다

영화 <맘마미아!>가 뮤지컬의 도시 런던에서 선전하고 있다. <맘마미아!>는 결혼식을 앞둔 소피가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친아버지를 찾기 위해 엄마의 옛 남자친구를 몰래 초대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지난 7월11일 개봉한 이 영화는 총 496개 스크린에서 1만3294파운드를 벌어들이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7월25일 전세계를 강타한 블록버스터 <다크 나이트>가 개봉하기 전까지 1위 자리를 고수했다. 하지만 8월1일, <다크 나이트>가 개봉 2주차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다크 나이트>가 개봉 2주차까지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고수했지만, 흥행수입이 절반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평단과 관객의 고른 호평에도, 스크린 수도 502개로 줄었다. 반면 <맘마미아!>의 상황은 호전됐다. 흥행수입은 1천파운드가량이 늘었고, 스크린 수는 개봉 첫주보다 무려 22개가 많은 519개로 늘었다. 이를 두고 런던의 공연·예술 전문지 <타임아웃>은 “<맘마미아!>로 장편 상업영화에 데뷔한 감독 필리다 로이드는 1970년대의 향수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제대로 아는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디자인과 로케이션, 캐스팅, 안무는 70년대의 감성을 제대로 차용했지만, 당시의 다소 무거운 냉소와 풍자, 반어적인 분위기는 적절히 걷어냈다는 것. <가디언>과 <미러> <타임스> 등 영국 주요 언론의 영화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렸지만, 소피의 엄마인 도나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의 연기에 대해서만큼은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메릴 스트립과 소피의 아버지로 ‘의심되는’ 샘과 해리 역을 맡은 콜린 퍼스, 피어스 브로스넌은 지난 8월4일 발표된 2008 ‘내셔널 무비 어워즈’(National Movie Awards) 남녀 주연상 후보에도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맘마미아!>는 <스위니 토트: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등과 함께 뮤지컬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내셔널 무비 어워즈는 평단이 아닌 오직 대중의 투표만으로 수상자를 가리는 영화제로, ‘내셔널 텔레비전 어워즈’(National Television Awards)의 성공에 힘입어 비슷한 컨셉으로 2007년부터 시작된 영화제다. 오는 9월 런던의 로열페스티벌홀에서 열릴 계획인 이 시상식은 를 통해 TV로도 중계될 예정이다.

[오픈칼럼] 시간은 언제나 슬프다

한 박스는 족히 넘을 일들이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났다. 밀린 일들이 다 소화되기도 전에 다음 일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아직 다 정리하지 못한 잡동사니들은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고 심지어 텔레비전 한대는 현관에 내앉았다. 꼼꼼히 정리해서 되새겨야만 마음이 편했던지라 쉽게 적응이 안 됐다. 갑작스런 노출에 황급해진 기분을 추스를 여유도 없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방치된 꼬라지였다. 그렇게 대충 20일이 지났다. 이사를 했고, 아빠를 보냈고, 생일을 맞았고, 회사에 앉아 있을 겨를도 없이 부천에서 일주일을 지냈다. 아직 이사한 집엔 실감도 없다. 어정쩡한 기쁨인지, 조금은 좋은 누군가의 비밀도 알아버렸다. 역시 정리할 기분은 되지 않았다. 원래 놓여 있던 위치를 잃은 물건들은 어떻게 재배치를 해도 어색하다. 그냥 몰려오는 시간에 찡기듯 사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조금은 스펙터클하지 않은 사건들로 꾸며졌다면 즐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결국 밤을 새워야만 여유가 가능했다. 언젠가부터 25살이 되면 나는 안심할 수 있는 어떤 모습이 될 거라 생각했다. 막연한 희망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때는 25란 나이가 성장해야 할 일종의 데드라인처럼 느껴졌다. 10cm씩 자라던 키가 멈추기 시작했을때, 괜찮아 대학생 때까지는, 군대에 갈 때까지는 더 자랄 수 있을 거라며 위로했던 것처럼 그때는 아직 25살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했다. 하지만 25살이 돼도 변한 건 없었다. 오히려 25에 그려 놓았던 그림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주어진 것도, 놓여진 것도 없어 막막했다. 시간은 계속 아무런 의미없이 지나갔고 어느새 27이 되었다. 오늘같은 내일이 쌓여 만들어낸 25살은 시시하고 재미없었다. 막연하게 희망차 보이지만 미래는 결국 코앞의 일을 수백번 반복하면 찾아오는 허무한 것이었다. 스펙터클한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면 과연 시간을 실감할 때가 있을까 싶었다. 키 따위는 잊어버리자며 포기했던 것처럼 나이 따위 잊어버리자고 체념했다. 호소다 마모루가 그린 애니메이션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소녀 마코토는 자꾸만 과거로 뒷걸음질을 친다. 아프게 쨍 하고 지나가려는 여름의 뒤꿈치를 잡고 소녀는 자신도 잘 모를 칭얼거림을 늘어놓는다. 그래서 소녀가 “여름이 갔다”고 말하는 순간 스크린은 그 어느 때보다 아프게 울렸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갔으며 당연스레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던 일상에서 어느 순간 시간이란 게 느껴졌을 때, 그건 겁이었다. 마코토는 아무렇지 않게 왔다갔다 하며 보고 지났던 것들이 이젠 돌아볼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어버린다는 상실감 앞에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그때 나도 덩달아 겁을 먹었다. 시간은 그리고 칠하며 손가락으로 세서 계획할 수 있는 아름다운 미래의 대상이 아니었다. 25가 돼도 느끼지 못했던 어떤 실감을 27이 되던 날 불쑥 내미는 불친절한 선언 같은 것이었다. 다시 한번 밤을 빌려 여유를 부려보려 했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은 꼬랑지도 없이 달아나 있었다. 마코토의 여름처럼 나의 7월이 불쑥 나타나 가슴을 찌르고 도망갔다. 시간은 언제나 슬픈 법이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 무술감독 정두홍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시사회에서 정두홍 무술감독을 보았다. 5시 방향 뒤쪽에서 비스듬히. 나의 자리는 극장의 맨 뒷줄, 그는 바로 앞줄 왼쪽이었다. 속눈썹이 참 길다고 생각했다. 김지운 감독과 세 배우가 입장하자 정두홍 감독은 열렬히 박수를 쳤다. 마이크를 잡은 김지운 감독은 무대인사를 하고 정두홍 무술감독이 이 자리에 있다고 알렸다. 관객이 두리번거렸다. 벌떡 일어나 목례라도 하면 분위기가 화목할 텐데, 정두홍 감독은 질색하며 좌석 깊이 몸을 파묻었다. 수줍은 사람이네. 설마. 그 날의 잔상이 인터뷰를 감행하게 했다고는 차마 말 못하지만, 정두홍 무술감독이라면 야전에서 만나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이 있었다. 한끼 식사나 몇잔의 커피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올 사람, 어깨를 부대끼고 넘어지며 무엇인가를 함께 만든 다음에야 간신히 첫 문장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대상. 정두홍은 액션 연기자로서 무술감독으로서 싸우듯 일을 해왔지만, 우선 무술감독이기 위해서도 싸워야했다. 무술 연기자 선배들이 좋았던 시절을 안주삼아 이야기하고 영화 크레딧에 무술감독 대신 무술지도라는 직함이 오르던 1990년대 초 과도기의 충무로에 착지한 그는, 자기의 길을 닦아가며 걸어야 했다. 1990년 <장군의 아들>에서 배우 이일재의 대역으로 영화계에 점을 찍은 이래, 무술감독으로 성장해 급속히 산업화한 한국영화가 필요로 하는 크고 작은 몸싸움을 만들어냈다. 액션 장르영화의 전통이 단절된 상태에서 선봉에 선 정두홍의 작업은 행운인지 불운인지 실전이 곧 학습이었다. <명성황후> 뮤직비디오에서 와이어 액션을 처음 체험했고, <쉬리>의 시가전은 그가 최초로 시도한 총기 액션이었으며, <태양은 없다>와 <반칙왕>은 권투와 레슬링 액션에 대한 첫 도전이었다. 정두홍은 누울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팔자다. 액션 연기자들의 ‘집’이 간절해서 동료 넷과 함께 1998년 보라매공원 체육관 한구석을 빌려 설립한 공동체 서울액션스쿨은 체육관에서 출발해 스턴트맨들의 학교가 됐고 <짝패> 이후로는 제작사 성격도 띠고 있다. 액션 연기의 맥을 이어갈 수 있는 안정적 텃밭을 한국영화산업 안에서 사수하는 문제도 정두홍의 현안이다. 뜻 맞는 감독들과 시도하는 액션배우 공모 프로젝트는 그런 고심의 결과다. 말이 좋아 ‘국가대표’지, 장르영화 시장이 허약한 충무로에서 정두홍 감독의 고민은 여전히 사활의 차원이다. 그래서 그는 여태 뜨겁다. 정두홍의 액션이 우아하다는 평을 들었던 기억은 많지 않다. 그가 디자인한 싸움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몸부림의 냄새로 진동한다. 정두홍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준 김성수 감독의 <비트>를 다시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당대의 청춘을 전율케 한 교무실 액션의 시동은 그제껏 묵묵하던 민이(정우성)가 친구를 패는 교사의 몽둥이를 움켜쥐고 낮게 내뱉은 대사였다.“때리지 마세요.” 지긋지긋하게 세상의 주먹에 두들겨 맞은 자의 항변. 그 한마디는 정두홍표 액션의 정서를 꿰뚫는다. 당신이 정두홍과 대화하며 가장 자주 듣게 될 단어는‘미치다’,‘부딪히다’,‘아프다’다. 위기가 왔을 때 이 내향적인 남자가 취하는 유일한 전술은 본인의 몸을 들들 볶는 것이다. 슬럼프에 빠진 2004년 겨울에는 계절이 바뀔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시기도 했고, 서른여덟살이 된 이듬해 여름에는 코뼈를 부러뜨려가며 프로 복서로 데뷔전을 치렀다.“이러다 죽겠구나”라고 체감하는 점에 도달하면 그는 죽지 않기 위해 다시 운동화 끈을 매고 달린다. 기체가 되어 자유를 얻는 비등점에 이르기 위해 자신을 지글대는 탄불 위에 올려놓는 형국이다. 정두홍의 동지이자 천적(?)인 류승완 감독은 “딱 <삼국지>의 조자룡”이라고 잘라 말한다. 과연 정두홍은 <칼의 노래>를 보고 울었다고 했다. 그것도 부록을 읽고. 장수들의 인명록에 모함과 누명으로 죽은 영웅이 하도 많아 분을 가누지 못한 것이다. <너는 내 운명>을 보며 오열을 참느라 온몸의 잔근육이 다 불거진 사건은 류승완이 정두홍을 놀릴 때 애용하는 일화다. 강하지만 안타까운 사람, 그는 우리가 파주 액션스쿨에 도착했을 때 땀에 절어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쓴‘몸만들기’에 관한 책을 읽었어요. 과거에는 운동을 몇 시간 했느냐에 집착했지만 나이 드니 일주일에 단 몇 시간이라도 즐겁게 운동하는 쪽이 몸에 이롭다는 걸 알았다고 썼던데요. 감독님에겐 아직 그런 여유를 부릴 시점이 안 왔나요? =이미 왔죠. 지금 제가 마흔셋인데 서른아홉 무렵 왔어요. 그 다음부턴 내 몸이 이기는지 내가 이기는지 싸우는 건데 결국은 바보짓이죠. 밤 되면 아프니까. 전에는 작품 회의가 있어도 운동이 미치게 하고 싶어서 핑계를 대고 빠질 정도였어요. 요즘도 파주에 있으면 종일 운동하지만 집중적인 개인 운동은 하루에 평균 네댓 시간 정도? -평생 육체를 쓰면서 살아온 사람에게 나이 먹는다는 사실은 보통 사람들보다 무겁게 다가오겠죠? =슬프죠. 겁난다는 말도 자주 써요. 촬영현장에서도 몸을 다 못 풀고 살짝 시범을 보여주면 “오, 맛이 갔는데?”라고 놀리잖아요? 무심코 던진 농담이지만 속으로 철렁하죠. (웃음) 서울액션스쿨에는 20대, 30대 펄펄 나는 애들이 있잖아요. 부러우면 부러운 걸로 끝내야 하는데 단원들 다 보낸 다음에 그 애들이 했던 걸 저 혼자 한번 그대로 해봐요. (웃음) 축구를 즐겨요. 20대들과 뛰어도 몸으로 들이받으며 서로 사정 봐주지 않는 신선한 경쟁의 느낌이 좋아요. 체력은 질 수밖에 없지만 이겨보려고 애쓸 때 제 속에서 올라오는 에너지가 좋거든요. 악을 써서 계속 운동을 하는 것은 꼭 한창때만큼 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지 않으면 정신력까지 약해지기 때문이에요. -관객이 극장에서 확인한 정두홍 감독님의 최근작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입니다. 김지운 감독과는 세 번째 작업인데요. =누군가가 영화계에서 제가 대화할 때 가장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상대를 딱 집으라고 한다면 김지운 감독이에요. 이 양반이 자기가 원하는 정서를 말해주면 제 머릿속에 그림이 딱 떠올라요. 근데 제가 흥분하면 남들이 제 말을 못 알아듣는 경향이 있거든요? (웃음) 김지운 감독님한테 “아하!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하라는 거지?”라고 떠들면, 그냥 넘어가질 않고 “뭐? 못 알아듣겠어”라고 꼭 반문을 해요. “감독님만 내 이야기 못 알아들어”라고 투덜거리면“뭐 나만? 다들 못 알아들어”그러죠. (좌중 폭소) <반칙왕>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불편했어요. 사람이 눈으로 말을 해야 하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짜증났어요. 말도 작게 자분자분 해서 잘 안 들려서 일단 “알겠습니다” 하고 나중에 스탭한테 확인하곤 했죠. 그러다 <달콤한 인생>을 하면서 편해지더라고요. 원하는 정서를 분명히 말해주니까. 류승완 감독 같으면 여기서 돌아서 발을 몇번 차고 하는 식으로 자세히 들어가니까 정서는 저쪽에 두고 동선만 쫓아가기 쉽거든요. (웃음) -<놈놈놈>에서 재미있는 요소는 주요 인물의 성격과 액션 스타일이 이루는 조화였어요. 그런데 도원과 창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태구의 액션 스타일이 모호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태구는 알고 보면 운이라고 보인 것이 다 내공과 타이밍인 인물인데 그런 절묘함을 내비치는 액션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요? =감독도 나도 태구에게 액션을 더 주는 건 부담스러웠어요. 태구는 옷에서 철판 빼내고 잠수헬멧으로 총탄 튕겨낼 때가 제일 태구스러운 거죠. 뭔가 액션을 줘서 잠재력을 암시하기보다 그냥 무한정 정이 가는 인물이길 바랐어요. 귀여움이 최강이에요. 아무리 우성이와 병헌이가 기막히게 액션을 해도 태구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은 따라갈 수 없어요. 현장에서 보다가 태구라는 인물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저도 모르게 송강호 방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니까요. (웃음) 에, 사실 송강호씨 본인 얼굴이 귀엽지는 않잖아요? 근데 태구는 깨물어주고 싶더라고요. -스턴트와 대역 연기를 하면서 많이 다치셨던 걸로 알아요. 거의 죽다 살아난 경험도 있을 텐데, 죽음의 근처에 가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뭐라고 보세요? =죽음 근처에 가면 오히려 두려움을 알게 돼요.이런 게 죽는 거구나 알고 나면 도리어 침착해지고 고개를 숙이게 되죠. 부모님들이 자식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데 전 여기(가슴을 가리키며) 너무 많이 묻었어요. 처음 보낸 분은 선배였는데 제가 무술감독을 맡았던 드라마에서 서강대교 투신장면을 찍다가 사고가 났어요. 10월의 새벽이었는데 너무 추워서 선배가 물에서 나오면 같이 뼈다귀해장국 먹으러 가야지, 온통 그 생각뿐이었어요. 첫번에 잘 뛰어내렸는데 촬영감독님이 한번 더 가재요. 헤엄쳐 나오는 선배한테 “형, 다시 한번 가야 한다는대?” 했더니 “응, 그래? 그럼 가야지” 하면서도 선뜻 몸이 안 움직였어요.“형, 농담 아냐. 진짜야”라고 보내고 두 번째 뛰어내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형이 안 나왔어요. 그 뒤 일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때 제 위에 있던 회장님이 “네가 떠나는 건 좋은데 하던 작품은 책임지고 끝내는 게 맞지 않겠냐”고 해서 알겠다고 했어요. 작품을 마친 뒤 회장님이 무술감독 시절 팀원을 잃은 경험을 들려주시더군요. 저는 그 어떤 종교보다 돌아가신 제 아버지를 믿어요 -종교를 갖고 계신가요? =저는 부처님이나 하나님보다 돌아가신 제 아버지를 더 믿어요. 아버지가 절 살려줘서 지금까지 살아 있다고 생각해요. 원래는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어요. 많이 맞으며 자라서 무섭기도 했어요. 농사일하기 싫어하고 말썽을 많이 피웠거든요. 농약 치라고 하면 오기로 일부러 바람을 맞으며 거꾸로 뿌려서 다 얼굴에 쐬고 중독돼서 쓰러져버렸죠. 하하. 그런데 군대에 입대하는 날 아침밥을 먹으며 이별하는데 아버지가 우셨어요. 그러니 아들은 얼마나 눈물이 났겠어요. -형제 중 막내인 걸로 알아요. 막내라서 사는 게 힘든 쪽이었나요? =힘들었죠. 4남3녀의 막내예요. 형, 누나들은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일찌감치 산업전선으로 나갔기 때문에 외동처럼 자랐죠. 집에 돈도 없고 공부도 타고나지 않았으니 얼른 졸업해 농사지으라는 말만 들었어요. 중학교도 안 보내려고 하셨는데 누님들이 고집 피워서 겨우 갈 수 있었고 고등학교 갈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공부에 목표도 없으니 정말 할 일이 없어서 겨울방학 동안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어버렸어요. 제가 유일하게 받은 상이 다독상이죠. (웃음) 그 시간이 없었다면 사람이 지금보다 더 휑했을 거예요. 한달 동안 책 빌리러 갈 때만 빼면 이불 속에서 나오지도 않고 읽었어요. 그게 몇 학년 때였더라? 이거 직업병이야. 기절을 많이 해서 기억력이 없어요. 하하, 웃다가 미안해지죠? -외람되지만 아버님이 많이 때리고 진학도 말리셨는데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게다가 감독 데뷔작으로 준비하신다는 <데어 스토리>(Their Story)라는 영화도 자전적인 부자관계 이야기라고 들었는데요. =<데어 스토리>는 제작자가 액션이 들어가길 원해서 3인칭의 시대극으로 만들까 싶어요. 아버지는 당신이 돈이 없으니까 저를 학교 보내려면 큰 자식들한테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자신이 자식을 돕진 못할망정 도움을 받아서 막내를 교육시키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었어요. 아버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거죠. 그걸 저는 나중에야 이해했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명절 다음날이었고 저는 군대에 있었어요. 형제들이 하고 싶은 말씀 다 하시고 돌아가시라고 청했는데 아무 할 말 없다면서 벽에 걸린 달력과 시계에 세번 번갈아 시선을 던지다 임종하셨대요. 어머닌 이유를 아셨죠. 달력에 막내 제대하는 날을 표시해놓았던 거예요. -너무 늦게 화해해서 더욱 애틋하신 거네요. 보통 남자애들이 레슬링이든 태권도든 TV로 보고 흉내내다가 운동을 시작하잖아요? =동네에서 두 번째로 우리 집에 텔레비전이 들어왔어요. 큰형이 폼 잡느라 월급까지 가불해서 장만해준 거죠. 어린이 태권왕 대회를 보고 너무나 태권도가 하고 싶었지만 시골이라 도장이 없었어요. 그래서 산에 가서 혼자 타잔놀이하고 동네 골목대장했죠. 심심한 형들이 아이들 데려다 싸움 붙이면 거기서도 승승장구하고. 하지만 옥녀봉파니, 촛불파니 하는 ‘조직’에는 들어가지 않았어요. 실망스런 모습을 봤거든요. 그러다 고등학생 때 처음 이각수 관장님의 도장이 동네에 생긴 거예요. -운동을 통해 자기의 몸이 변화하고 못했던 것을 할 수 있는 즐거움이 컸나요? 아니면 TV에서 본 멋진 장면을 재현하는 기쁨이 컸나요? =그보다 무엇인가에 내가 열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어요. 친구들 몰래 다녔죠. 창피하기도 하고, 운동한다고 소문나면 촛불파에서 더 데려가려고 할 테고. (웃음) 누나들이 명절 때 준 용돈을 모아서 관비를 냈는데 몇달씩 밀려서 엄마한테 고백을 했더니 긴장하시더라고요. 옛날 사람들은 태권도 배운다면 깡패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체육관에 가서 돈 없어서 못 가르치니 못 나오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는데 관장님이 공짜로 다니게 해주셨어요. 제가 은인이 많아요. -태권도 시범단으로 대학 시절 해외 여행도 많이 하셨는데요. 무술 시범이라는 것도 보여주는 액션에 속하니까 실제로 어떻게 하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보이느냐를 염두에 두셨을 것 같습니다. =쇼맨십이 필요했죠. 내성적이고 수줍었지만 무대에 올라가면 변했어요. 주인공을 맡은 내가 적극적으로 안 하면 팀워크가 깨지니까요. 멕시코시티에서 보인 시범이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어요. 마이크도 없이 고산지대에서 기합을 지르며 했는데 커다란 체육관이 열광으로 진동했어요. 한국에선 시범을 보여도 좀 시니컬하잖아요? 쟤네들 약 파는가보다 그러고. (웃음) -영화와 드라마 일을 하게 된 데에도 그 짜릿한 경험이 은연중에 영향을 끼친 걸까요? =그렇죠. 두 번째 짜릿함은 <테러리스트>에서 최민수씨 대역을 할 때 왔어요. 패션쇼 장면에서 가죽점퍼에 모자를 쓰고 양복 입은 수십명 패거리들과 맞서는데 내 안에서 뭔가가 쫙 올라오는 거예요. 아, 이게 무슨 힘일까. 당시 현장에서 정강이가 찍히고 깨져도 괜찮다고 다시 가자고 그랬어요. 선배들은 방금 비명도 지르고 눈도 풀렸던 애가 그러니 너 마약했냐고 물었어요. 그렇게 영화에 미쳐간 거죠. <본투킬>을 하면서는 쇄골이 부러졌는데 그 이튿날이 <런어웨이>에서 대역을 하기로 한 날이었어요. 그냥 붕대를 감고 현장에 가서 일곱번 차창에 부딪혔어요. 사람이라 아픔은 어쩔 수 없어서 멈칫거렸는지 여섯 번째는 유리창이 깨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곱 번째는 유리창이 다가오는 걸 보면서 뒷머리를 의식적으로 내둘러 깨고 떨어졌어요. 몸에 힘을 주면 기절을 하다가도 피가 머리에 쏠려 기절을 안 할 수 있다는 걸 그때 배웠죠. (좌중 탄식) 지금도 전 대역하고 싶어요. -<태양은 없다> 촬영 당시 현장을 취재한 선배기자가 말하길 정두홍 무술감독의 첫인상이 “한이 많아 보였다”고 해요. 그 무렵에는 무술팀이 스탭의 일원으로 간주되지 않고 밥도 따로 먹고 했다고 들었어요. 언제부터 그런 분위기가 달라졌나요? 아니면 지금도 그런 경계를 느끼시나요? =지금은 다른 한이 있고요. 당시에는 스스로 백정이라고 불렀어요. 그 정도로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고 공깃밥 하나를 먹어도 제작부에서 눈치를 줬어요. 제작비가 빠듯했고,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스탭이 아니니까요. 물론 액션팀도 잘못한 게 있어요. 거칠고 못 배운 것 같은 태도를 보여줬거든요. 그것이 몹시 싫어서 술 먹으면 실수할까봐 회식자리에도 안 갔어요.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활황기 추억담하면 제가 선배들이 이렇게 만들어놓은 거 아니냐고 화내다가 맞기도 했어요. 저는 지금도 현장이 어렵지만 액션스쿨 젊은 친구들은 스탭들과 너무나 빨리 친해지고 어울리더라고요. 부러워요. 저로선 <짝패>가 처음부터 끝까지 스탭들과 함께한 첫 경험이어서 그때 많이 친해졌습니다. -펀치나 킥에 감정을 실어보내는 게 액션이라고 생각하시는 걸로 압니다. 그런데 배우에게 액션 연기를 지도할 때 결과적으로 그의 감정이 좋다 나쁘다는 판단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왜 좋고 나쁜지를 배우와 이야기하다보면 월권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요? =‘쟤가 감독이냐?’ 하는 눈총도 많이 받았죠. 그런데 액션을 하다보면 감정이 보여요. 태권도 시범은 테크닉을 보이는 것이지만 영화 액션은 왜 때리는 건지 정서가 보여야죠. 폼나게 주먹질만 하면 그가 분노한 건지 질투하는 건지,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때린 건지 알 수 없거든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잘 봐야 해요. 모니터를 보면서 앞숏의 감정이 어떻게 끝났나를 보죠. “으아아” 하면서 감정이 격하게 끓어올랐는데 다음에 발로 때리면 이상해요. 멀어 보이거든요. -확실히 발차기는 상대방과 접촉하기 싫어하는 느낌이 있죠. 그래서 <달콤한 인생>의 도입부 액션이 좋았어요. 한강 다리에서 시비거는 패거리들을 선우(이병헌)가 제압하는 장면에서도 스스로에 대한 짜증과 상대에 대한 경멸이 표현되어 좋았어요. 회자되는 액션은 불각목 싸움입니다만. =<달콤한 인생>의 불각목 장면도 따지면 개싸움에 속해요. 아름다운 합의 형식과 동작은 없잖아요. 살아남아야 한다는 몸부림인 거죠. 그것도 장점이 있지만 액션의 양식으로서 감상해주지는 않거든요. 저 역시 한강 다리 장면 같은 액션이 좋아요. 준비한 콘티를 한컷도 안 바꿨는데 숙제검사해서 칭찬받은 기분이었죠. -촬영현장에서 감독은 사실감을 위해 다소 위험한 몸 연기를 배우가 해주길 바라고, 배우는 내심 안전을 염려하는 상황이 잦을 텐데요. 그때 무술감독이 중재하는 경우도 많을 듯합니다. =주연배우가 다치면 전체 프로덕션이 멈추니까 안전이 우선이죠. 요즘 배우들은 카메라 방향이나 편집을 너무나 잘 알아서 이럴 때는 대역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똑 부러지게 요구해요. 모든 감독은 기본적으로 잔인해요. 당신들이 직접 극한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몰아붙이죠. 편집 다 된 외국영화를 보고 와서 “외화에선 다 하던데?”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예전에 제게 “63빌딩에서 뛰어내려서 착지할 수 있냐?”고 진지하게 물어본 TV 감독이 있었어요. (좌중 경악) 흠칫 당황했죠. 그러면서 한국 스턴트가 무술사범이지 스턴트라고 할 수 있냐고 하더라고요. 어디 해보자는 마음으로 오토바이 점프 액션을 했는데 그분이 감탄하는 순간 “이겼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정받아 기뻤죠. 평소에 선하다가 촬영만 들어가면 악마로 변하는 스타일이셨는데 뭔가 위험한 걸 하려고 하면 또 갑자기 “기도합시다” 그랬던 기억이 나요. (일동 폭소) -감독님 스스로 가장 두려운 부상은 무엇인가요? =척추가 협착된 상태라 인공관절을 다섯개 넣어야 한대요. 근육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건데 마비가 오는 게 무섭죠. 항상 고통을 안고 살아와서 그런지 통증에는 면역이 됐는데 역시 심하게 아플 때는 힘들어요. <서울의 달>에서 한석규씨 대역할 때는 진통제에 의지하다가 아침이 되면 약기운이 떨어져 기어가다시피 귀가했죠. 진통제에 의존하는 것이 싫어서, 무술감독 일을 하면서는 끊었어요. -스턴트맨으로 활동하실 때에는 무조건 몸을 던진다는 전설이 있었잖아요. 그간 자기 관리하는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면 언제인가요? =제작 환경이 나빠서 그럴 수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어요. 카 스턴트를 할 때 안전롤바라는 장비가 있어요. 차의 천장에 파이프를 대서 충돌했을 때도 쭈그러들지 않게 보호하는 150만∼200만원 하는 그 장비가 없어서 알아서 살아남아야 했어요. 아마 현장에서 보는 그림은 우리나라만큼 박력있는 나라가 없을 텐데 화면에는 잘 안 나와요. 반면 할리우드는 우리처럼 격하게 하지 않는데 화면을 보면 힘이 느껴지죠. 나이를 먹어가며 현장에서 몸을 던지는 일은 줄었어요. (건너편 액션스쿨에서 운동하는 단원들을 가리키며) 우리 애들이 비애가 있어요. 저렇게 발차기 하루 500번 연습해도 주인공이 한방 차면 발 한번 못 써보고 끝이니까. 하지만 대역을 하면 적어도 공격을 할 수 있잖아요? 신이 나고 몸의 느낌도 살아나죠. 지금도 전 대역하고 싶어요. ‘정두홍표 무술’이 생긴다면 그 성분은 한(恨)이겠죠, 하하 -얼마 전 좌담에서 보니까 류승완 감독님은 정두홍 무술감독님이 옆에 있으면 자꾸 놀리고 싶은 충동이 솟는 것 같습니다. =‘톰과 제리’죠. (웃음) 류 감독도 변화해가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아온 사이예요. 처음 만났을 때는 나한테 의리 찾는 사람들은 다 가식덩어리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을 보고 “정서가 죽인다”고 전화를 했더라고요. 양조위가 누군가를 위해 화살을 막으면서 대신 맞아주는 장면에 열광하던데요. 옛날 같으면, 그렇게 막을 정신 있으면 칼로 쳐내면 되지 않냐고 따졌을 사람이. (일동 폭소) 멋을 알아가는 거지. -영화 속 액션을 볼 때 관객이 국적을 나누어서 평가하지는 않아요. 한국영화 액션을 <와호장룡>이니 <매트릭스>니 동시대 할리우드나 홍콩영화의 액션과 수평적으로 비교하게 마련인데요. 트렌드에 대한 부담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국내 액션에 대해서는 좀더 엄격하게들 보죠. 한국 액션은 왠지 기승전결이 없는 것 같고 싸우나 싶으면 빨리 끝나버리고 합 자체가 상세하지 않은데 할리우드나 홍콩은 동작이 잘 보이니까요. 과거에는 우리 관객이 스케일만 재미있어했는데 이제는 정확하게 동작을 읽는 눈이 발달했어요. 솔직히 액션이 길고 정확해야 드라마와 액션이 같이 나아갈 수 있는데 감독님이나 스탭들은 액션을 길게 찍는 걸 본능적으로 꺼리다보니 현장에서 저와 많이 부딪히죠. 류승완 영화의 액션이 길어 보여도 실상 외화에 비하면 그리 긴 편이 아니에요. 저도 류승완 감독과 찍다보니 기술이 발전했지, 다른 감독들과 드라마에 부속되는 작은 액션만 찍어봤다면 이 정도나 됐을까 자신이 없거든요. 그런 면에서 <비열한 거리>와 <말죽거리 잔혹사>를 부럽게 봤어요. 액션이 길지만 길다는 말이 안 나오고 드라마와 서로 상승효과를 냈죠. 아무리 액션스쿨에서 백날 비디오를 들고 편집을 해도 현장에서 35mm카메라로 뭘 해보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현장에서 액션을 할 시간을 조금만 더 준다면 우리 무술감독들도 홍콩처럼 본인들의 아이디어를 확장시킬 수 있을 거예요. -이미 한국 영화계에서 ‘정두홍표 액션’이라는 용어는 통용되고 있어요. 언젠가 ‘정두홍표 무술’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그 무술의 성분은 무엇일까요? =한(恨)이겠죠? 하하. 기술적으로는 고민중이에요. 이소룡의 절권도처럼 저만의 특화된 무술을 만들고 싶은데 지혜가 모자라요. <본 얼티메이텀>을 보면 액션은 간단명료한데 그렇게 안 보이잖아요? 카메라 메커니즘과 관련된 문제는 나중이고 저는 일단 무술 부분을 연구해야죠. 그런데 영화액션은 워낙 세계화가 돼버렸어요. 이소룡 시대에 비해 영화액션에서‘히트 상품’ 만들기가 어려워진 거예요. -아시아의 영화액션을 누구보다 유심히 관찰하셨을 텐데요. 신체조건이 그닥 다르지 않은데도 각국의 스타일이 확연히 차이나는 이유를 생각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역사와 민족정서, 문화가 완벽히 다르기 때문이죠. 상대적으로 우리 문화 색깔이 불분명해서 속상해요. 중국은 쿵후, 일본은 사무라이 검도와 가라테가 있죠. 우리에겐 태껸이 있지만 무술 스타일상 <다찌마와리>에서 보신 대로 웃음부터 나잖아요. 긴장하고 싸움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흔들거리면서 “이크, 이크” 하니까. -한국의 영화액션 하면 생존형 막싸움이 대표적인 이미지잖아요. 한국의 문화와 품성의 어떤 점 때문에 이런 액션이 주류가 된 걸까요? 중국이라고 거리에서 평소에 쿵후로 싸우진 않을 텐데요. =막싸움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실생활이잖아요. 실제 역사 말고 영화의 역사만 따지면 중국과 일본은 무술의 문화가 단절이 없었죠. 반면 우리는 액션영화가 10여년간 에로 장르에 시장을 내주면서 딱 끊어졌거든요. 제가 그 과도기에 일을 시작했어요. 방송사에 일하러 가서 돌려차기를 하니까 홍콩 액션을 흉내낸다고 싫어하더라고요. 우리 선배들은 사실 일본영화가 수입되지 않은 환경에서 홍콩식 무술과 카메라 테크닉이 유일한 교과서였거든요. 그런데 저는 홍콩 액션에 대한 거부감을 접하고 나서 일부러 실베스터 스탤론을 좋아하고 개싸움 스타일로 가버린 점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단출한 장비만 쓰고 확연히 피아가 식별되지 않는 액션만 익숙해졌어요. 제 선배 세대가 계속 일을 하셨다면 홍콩, 일본, 타이처럼 세계화된 액션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안타까워요. -액션 스타가 배출되지 않은 데에는 한국식 액션 스타일의 영향도 있을 것 같네요. 그런 화면에서는 주연 외 배우들은 무리지어 싸우고 있다는 정도로 인지되니까요. 한국 배우 가운데 액션 연기에 재능이 있는 배우들을 무술감독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최민수씨는 감정을 수반한 액션에서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배우예요. 몰입도가 뛰어나죠. <테러리스트> 이후로 액션의 맛을 알고 확 변했어요. 권상우씨와 송승헌씨도 액션이 짧은 시간에 발전했어요. 정우성씨도 그런 예지만 본인이 즐기는 거죠. 류승범씨는 액션하기를 싫어하는데 하면 굉장히 잘해요. 연기를 본능적으로 하듯 액션도 마찬가지예요. 이병헌씨는 이번에 할리우드 가서도 대역이 오히려 더 못하는 바람에 본인이 많이 했다고 해요. 설경구씨, 정재영씨도 잘하고 송강호씨도 감정 표현이 좋죠. <살인의 추억>의 두발 모아차기는 <반칙왕>에서 익힌 건데 <놈놈놈>에도 나오죠. <전우치>의 강동원씨는 요새 액션스쿨에서 훈련 중인데 운동신경이 좋은데다가 <형사 Duelist> 때 춤을 배웠대요. 사흘째부터 와이어를 나보다 더 예쁘게 타더라고요. -정우성씨와 각별하시죠? 관우가 장비 대하듯 아끼신다고 들었습니다. =전 우성이 형이라고 불러요. 혼자 있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애어른 같은 동생이에요. <비트>부터 점점 스타가 아니라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무사>의 여솔이 역부터 창술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많았어요. 그래서 <중천>에서도 본래 없던 창 액션을 만들어 넣었죠. 정우성의 창술을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무엇으로 굳히고 싶었어요. 그런데 <놈놈놈>은 서부극이니까 장총을 쓴 거고, 총을 쏘는 멋보다 돌려서 총집에 꽂는 쾌감이 크다는 데에 착안했죠. 사실, 초반에 많은 사람들이 우성이를 걱정했어요. 창이는 기막히게 멋있고 태구도 포스가 느껴지는데 도원은 가끔만 등장하는 것 같아서. 우성이한테 가서 감독님하고 대화 좀 해야 하지 않냐고 했더니, 감독님한테 문제를 들고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까지 그러면 머리아파서 쓰겠냐고 하더라고요. 본인이 태평하니까 옆에 있는 사람들이 챙기게 되죠. 귀시장 장면부터 우성이가 편안해졌죠. -개인적으로 홍콩식의 과장된 코미디와 액션보다 할리우드의 사실적 액션을 선호하시는 걸로 알아요. 그런데 <와호장룡>이나 <매트릭스> 이후 쿵후가 할리우드 액션을 지배하게 됐으니 조금 허전했겠어요. =프랑스영화도 미국영화도 모두 우슈가 집어삼킨 것 같았죠. 그런데 이른바 중국 무술에는 우리 고유의 발차기가 합성돼 있어요. 성룡의 액션도 쿵후와 태권도 발차기의 합성이죠. 원래 중국 무술에는 직선적 발차기가 없어요. 그런데 중국에서 자신들의 것으로 특화해 선점한 거죠. 한국인들은 발차기를 잘하는데 영화로 볼 때 하체만 갖고 싸우면 그림이 빈약해요. 앵글이 비슷하고 단조롭거든요. 반면 중국인들은 상체 동작이 발달해서 우아하죠. 탁탁 내지르다가 큰 발차기를 한번 하면 시원스럽죠. -특별히 선호하는 무기가 있습니까? =심플한 거요. (테이블 위를 살피며) 이 빨대도 무기가 돼요. 상대 눈을 툭 찌르면 손가락으로 찌르는 것보다 거리가 단축되어 시간을 벌 수 있죠. 여기 있는 물건 중 제일 흉악한 건 쓰고 계신 볼펜이죠. 제가 좋아하는 조 페시 형이 쓰셨던 만년필이라든가, 하하 그런 사실적인 호신 무기를 좋아해요. 인물이 늘 쌍절곤을 휴대하거나 칼을 찰 순 없잖아요? -근년 들어서는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진출의 소망을 전만큼 자주 언급하지 않으시던데요. = 예전에는 진짜 목표가 “타도 홍콩, 고 투 할리우드”였는데 물 건너갔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조금은 남아 있는 희망이 있고, 사람이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아도 가야 할 목표가 있으면 힘을 낼 수 있잖아요. 반드시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지웠지만, 힘을 내기 위해 무형의 목표를 세워놓은 거죠. 남들은 저더러 운동에 미쳤다지만 저는 영화에 미친 거예요 -영화에서 서로 치고받는 격투장면을 볼 때면 “저 사람이 내 남자친구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고 엉뚱한 생각을 해요. 액션배우란, 주변 사람들한테도 견디기 쉬운 직업이 아닐 텐데요. =일단 액션스쿨에 지망생이 오면 제 첫 마디도 만류예요. 멋있어서 하려고 왔다는 말을 들으면 “임마, 여기 사람들 현장에서 대우 못 받고 그전에 일단 정두홍이한테 욕먹으면서 해야 돼”라고 말하죠. 따뜻하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너, 어디 아프니? 어떡하냐. 저기 가서 쉬어라”, 이래서는 촬영을 못해요. 아이들이 힘들고 분노할 때 에너지의 150%, 200%가 나오고 그래야만 비로소 화면에 에너지가 꽉 차요. 그게 슬프면 이 직업을 갖지 말아야죠. 아마 지금 <무사> 찍으라면 못할 거예요. 당시 단원들 앉혀놓고 “이 작품으로 꼭 인정받고 할리우드로 가고 싶다. 여기서 너희들이 다쳐도 난 영화 끝날 때까지는 눈 깜짝 않겠다”고 다짐을 했어요. 낮 촬영분이 미흡해 보이면 사막에 집합시켜서 선착순까지 시켰어요. 그러던 어느 날 촬영하다 점심 휴식이었는데 애들이 칼을 안 놓고 덜렁덜렁 들고다녀요. 어서 풀고 쉬라고 했더니 녀석들이 칼을 놓는 게 아니라 손에서 풀어놓는 거예요. 알고 보니 손가락을 맞아 뼈마디가 부어서 칼을 못 잡고 손에다 칭칭 묶어서 연기를 한 거예요. 그때 많이 울컥했어요. 그런 고통과 분노가 <무사>에 들어 있는 거죠. -요즘도 액션스쿨 훈련생들이 부모의 반대로 도중하차하는 예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제일 안타까운 경우는 힘든 시기 다 보내고 무술감독으로 데뷔할 시점이 된 친구들이 떠날 때예요.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돼지농장을 물려받아야 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그래도 괜찮아요. 막연히 대안도 없이 반대를 못 이겨 나가는 아이들이 가슴 아프죠. 스턴트라고 하면 부모님들은 “죽을 수도 있다”가 아니라 “저러다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에요. <놈놈놈>을 하다가 잃은 중현이(故 지중현 무술감독)의 부모님도 그렇게 말리셨대요. 제가 다시 눈물을 흘린 건 아버님 말씀 때문이었어요. 언젠가 중현이가 집에 와서 “아버지 술 한잔 사주세요” 하더래요. 안 그러던 놈이 왜 그러나 했더니 “정두홍 감독님이 오늘 처음으로 제 이름을 불러주셨어요” 하더래요. (침묵) -액션의 진정성이라는 말을 가끔 쓰십니다.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이를테면 연기자도 고통을 느끼는 액션이라거나 하는 단순한 뜻은 아닐 것 같은데요. =그건 아니죠. 시나리오를 따라가는 진정성을 말하는 거예요.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경우는 와이어를 타도 되지만, 조폭영화에서 와이어를 타고 날아가서 때리면 어색하다는 거예요. 진짜 치고받아서 진정한 액션이 아니라 극화된 액션 안에 감정이 살아 있을 때 진정한 액션이죠. 맥락없는 액션을 위한 액션은 에너지 낭비일 뿐이에요. 외국 관객은 오히려 한국영화 액션 특유의 감정에 민감해요. 제일 가슴 아픈 경우가 영화를 보고난 사람들이 “액션만 돋보인다”고 말할 때예요. 이런 말을 할 때는 분명 뭔가 문제가 있죠. -정두홍 감독님의 무술팀이 특정한 특수효과팀이나 특수분장팀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일 기회가 공평히 돌아가지 않는다는 불평의 목소리도 있다고 합니다. 들어보셨나요? =가슴이 너무 아파요. 영화도 프로들의 세계잖아요. 한국영화계가 실력도 없는데 가엾다거나 친분이 있다고 일을 시켜주는 여유가 있는 곳이 아니에요. 나를 써달라고 로비한 적도 없고 우리 아이들 다치고 죽어가면서 뼈아프게 열심히 노력해왔어요. 그것과 별도로 특수효과팀과 무술팀의 호흡은 확실히 중요해요. <여명의 눈동자>에서 수류탄 터지는 장면을 찍을 때 특효팀에서 기름을 묻어놓고 시멘트라고 거짓말하는 바람에 화상을 입은 적이 있어요. 저는 특수효과회사 데몰리션과 일을 많이 해왔는데, 이분들은 손가락 태워가면서 화약 개발하는 사람들이에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배우 원빈 눈에 폭약이 터져서 들어갔는데 망막 손상을 안 입었어요. 그런 폭약을 만든 거죠. 가보면 다른 곳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돈 벌어서 다시 투자를 해요. 액션스쿨의 스턴트 장비도 마찬가지예요. <씨네21>에서도 ‘정두홍 1인체제’라는 말을 쓴 적이 있는데 액션스쿨에만 무술감독 직함을 가진 사람이 열명이 넘고 다른 무술팀도 많아요. 제조업도 아니고 문화를 만들어내는데 시장 독점이란 말이 적당한가요? 매니지먼트사처럼 끼워팔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계약에서도 약자의 입장인데 더구나 제작자들이 그런 말을 했다는 소릴 들으면 기가 막혀요. -무술연기자협회 회장이기도 합니다. 윗세대 무술연기자와 후배 무술연기자들에 대해 어떤 책임감을 느끼시나요? =사람은 저도 모르게 발을 담그고 있는 공간이 있어요. 거기서 발을 빼는 건 자유지만 일단 담그면 뭔가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먹는 걸 해결하는 거죠. 2002년에 영양실조로 낙향한 애도 봤고 가슴에 묻은 연기자들도 있어요. 20년 동안 그런 일을 겪다보면 부지중에 소명의식이 생겨요. 저도 모아놓은 돈이 없고, 액션스쿨도 단원들이 지분을 나눠갖고 있어요. 내년 봄이면 액션스쿨로 인해 진 은행 빚을 원금까지 한달에 4350만원씩 갚아야 하는데 여기서 쫓겨날 각오도 하고 있어요. 손 안에는 힘이 없는데 이뤄야 할 일은 많아요. 제가 못하면 후배들이 이어받아야죠. 스턴트맨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만들고 싶은 꿈도 있어요. 다들 월세 살고 뼈 부러뜨리며 일해도 제대로 돈을 못 버니까 어울려 사는 단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제가 한국영화를 이끄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세계에서 밥만 축내고 싶지는 않아요. 한편으로는 힘있는 제작자들이 본인의 회사만 생각지 말고 조금씩 힘을 모으면 저보다는 훨씬 일이 쉬울 것 같아요. 두 사람이 손잡으면 원이 작지만 여러 사람이 잡으면 둘레가 커지잖아요. -감독님은 마음속에 좁은 방이 있어서 몇 사람만 들여놓고 애지중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조금만 외면받아도 상처를 받을 것 같고요. =사람들은 애정을 다 주면 그 사람을 무시하고 반대로 말 안 하고 삐쳐 있으면 다가와서 위해주죠. (웃음) 류승완 감독도 같이 영화 만들고 나면 몇달씩 안 만나고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 해요. 질릴까봐, 더 오래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서죠. 한국 액션영화에서 중요한 인물로 내가 찍어놨기 때문에 어떤 상처를 줘도 감내할 수 있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저를 남이라고 여기겠지만 전 가족과 다름없이 생각해요. 짝사랑을 너무 치밀하게 하는 거죠. (웃음) 예전 여자친구가 “너 자신을 사랑하고 지키는 데에 우선 힘을 쓰라”고 타박하기도 했죠. 지금은 담담해지려고 노력 많이 해요. -다음에 달려갈 목표가 없으면 시들어져 죽을 것 같은 불안이 몸에 밴 것처럼 보입니다. 움직이고 뭔가를 도모해야만 살아 있다고 실감하시나요? =요즘은 허수아비처럼 껍데기만 움직이지 영혼은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중현이를 잃고 나서부터 그래요. 사고가 있고나서 액션스쿨 사람들도 열명 정도 떠났어요. 누가 그만둔다고 해도 이유를 물은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물어봤어요. 무서워서 그러냐고. 그랬더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고생한 것 아깝지 않느냐고 잡고 싶지만, 이 직업이 위험한데 어떻게 잡아요? 그래서 더욱 괴롭습니다. -경력이 20년에 가까우니 그래도 예전처럼 “내가 가진 것은 몸밖에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다른 것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것이 지혜여야 할 텐데,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이 제 콤플렉스예요. 운동능력이 떨어지면 현명함이 늘어서 보완해야 하는데, 정신능력도 약해지니 불안해요. 축적된 노하우야 현장에서 순발력으로 발휘되지만요. 그것마저 없다면 은퇴해야죠. 은퇴해서 시골로 내려가면 TV고 뭐고 아무것도 놓지 않을 생각이에요. 남들은 저더러 운동에 미쳤다지만 저는 영화에 미친 거예요. 영화가 저를 살려줬고 스턴트와 액션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이 너무나 좋아 지금까지 버틴 거예요. 그런데 나이들어 일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TV나 스크린에서 남이 한 액션장면을 본다면 미쳐버릴 것 같아요. 追伸 인터뷰 도중 전화가 울렸다. 시카고에서 온 미국인 영화학도였다. 촬영감독 지망생인 청년은 정두홍 감독을 만나기 위해 인천에서 서울로, 다시 파주로 다섯 시간을 헤매서 도착했노라 말했다. 막 배우기 시작한 한국어로 빼곡히 적은 꼬깃한 한국영화 베스트 목록을 펼쳐 보이고는 견자단과 정두홍이 주연한 영화를 꼭 보고 싶다고 청했다. 정두홍은 지친 팬을 쉬게 하고, 한국영화를 찍고 싶다는 그를 위해 홍경표 촬영감독에게 선뜻 전화를 걸었다. 청년을 배웅한 정두홍 감독은 말했다.“내가 할리우드에 가면 저렇겠죠.”난생처음 만난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이국의 영화 지망생에게 그는 대뜸 감정을 이입하고 있었다. 청년의 열띤 말투와 간절한 눈빛, 이마에 맺힌 땀, 몸의 언어만으로 소통은 충분했던 모양이다. 아, 그리고 이 말은 반드시 보태고 싶다. 정두홍 감독은 내가 아는 한, 어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제일 다정하게 받는 남자였다.

거장의 영화 속에서 빛나는 소시민들의 일상

오즈 야스지로의 회고전이 9월2일부터 21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열린다. 이번에 상영될 총 17편의 영화는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작품까지 고루 선정되었다. 무성영화 <태어나기는 했지만>(1932)을 비롯해 <동경이야기>(1953)를 포함한 40, 50년대 흑백영화, <피안화>(1958) 이후의 컬러영화까지 그가 작업한 영화의 다양한 형식도 비교할 수 있다. 흔히 가장 일본적인 감독이자 할리우드식 고전적 영화문법과 대비되는 동양적인 숏을 창안한 감독으로 일컬어지는 오즈는 이 같은 한정된 수식어에 가두기에는 훨씬 더 깊은 세계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이 점에 대해 하스미 시게히코는 “돈가스와 두부”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 바 있다. 비슷비슷한 영화를 만든다는 지적에 대해 오즈 자신은 “두부가게 주인이므로 두부밖에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실제 그의 영화에 두부만 있는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주로 가족멜로드라마의 틀 안에서 오즈는 “인생은 결국 혼자”라는 씁쓸한 성찰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즈의 영화가 이런 결론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의 영화는, 비록 마지막 결론은 같을지라도 반복되는 일상을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는 인간조건을 예의 바르게 관찰하고 있다. 1927년 <참회의 칼>을 시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오즈의 작품목록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은 앞으로 전개될 그의 영화 세계를 예시하는 영화다. 아버지가 가장 훌륭한 사람인 줄 알고 있었던 아이들은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는 아버지를 보고 실망한다. 소시민 가정의 부모와 아이들이라는 소재는 나중에 <안녕하세요>(1959)에서 다시 다루어진다. 여기서는 텔레비전을 사달라고 시위하는 아이들과 부모의 갈등이 중심이 된다. 오즈의 첫 발성영화 <외아들>(1936)은 일본의 산업화로 야기되는 가족의 문제를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로 보여준다. <도다가의 형제 자매들>(1941)은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성공한 초기작으로 여백 숏이나 정적인 카메라 등 오즈 후기 양식의 토대가 마련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셋방살이의 기억>(1947)은 패전 뒤 일본의 피폐한 풍경이 생생하게 반영된 영화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정’에 대해 그린다. 역시 전후의 힘든 생활을 보여주는 <바람 속의 암탉>(1948)은 독특하게 매춘문제가 다뤄진다. 생활고 때문에 매춘에 나선 젊은 주부가 겪는 고난과 이로 인한 가족간의 갈등을 그린 이 작품은 과도기적 오즈의 영화미학을 보여준다. 오즈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전성기에 해당되는 시기에 만들어진 계절 시리즈 <늦봄>(1949), <초여름>(1951), <이른 봄>(1956)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동경이야기>와 더불어 오즈의 형식미를 잘 보여주는 대표작들이다. 딸의 혼사문제는 오즈가 즐겨 다루는 소재로 <늦봄>은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딸 노리코의 결혼 이야기가 중심이다. 편부모와 사는 딸의 결혼은 후기작 <가을 햇살>(1960)에서 다시 변주되고,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은 오즈의 첫 컬러영화 <피안화>와 그의 유작 <꽁치의 맛>(1962)에서 다시 다루어진다. <꽁치의 맛>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장년 남자들의 일상과 이들의 영락해버린 은사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노년의 삶, 늙는다는 문제는 바로 전 작품 <고하야가와가의 가을>(1961)의 주제이기도 하다. <초여름> 역시 대가족의 막내딸 혼사가 중심이 되는 영화이나 스토리보다는 ‘윤회’나 ‘무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반복되는 일상과 행동의 변화를 세밀하게 그렸다. <이른 봄>은 권태기를 맞은 부부의 문제를 다룬 멜로드라마로 외도를 다루고 있어 오즈 작품 중에는 다소 이색적이다. 부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오즈의 작품은 많지 않지만, 그중에서 <오차즈케의 맛>(1952)은 결혼생활이나 부부애에 대한 오즈식의 답변을 엿볼 수 있다. 이외로 유랑극단의 배우가 주인공인 <부초>(1959)나 아내가 가출한 가정의 풍경을 그린 <동경의 황혼>(1957)은 가족의 결손문제를 다룬다.

이번 영화는 어떤 텔레파시가 통하는 작업이었다

이케와키 치즈루의 한국 나들이는 잦은 편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한국의 영화팬들에게 얼굴을 알린 그녀는 이후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는 자리라면 빼놓지 않고 한국을 찾았다. 그녀의 신작 <음표와 다시마>가 초청된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역시 마다할 수는 없는 자리였을 것이다. “이제는 낯선 구석이 없다. 서울에 오면 숙소도 거의 비슷한 곳에서 있고, 밥도 주로 먹던 곳에서 먹는다. 마치 옆동네로 놀러온 기분이다.”(웃음) 게다가 최근에는 한일합작영화인 <오이시맨>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녀의 이번 한국 나들이에는 <음표와 다시마>를 연출한 이노우에 하루오 감독이 동행했다. - <음표와 다시마>의 이야기는 어떻게 구상한 건가. 이노우에 하루오| <음표와 다시마>는 지난 2006년 에픽레코드재팬이 설립한 시네뮤지카의 4번째 작품이다. 영화를 통해서 음악을 알리고 음악을 통해서 영화를 표하는 시도라고 보면 된다. 일단 ‘음표’라는 것을 떠올렸고, 이걸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구상했다. 언니가 한동안 잊고 있던 음표를 찾아 동생에게 자장가를 들려주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 영화와 음악을 공동프로모션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룰이 있을 것 같은데. 이노우에 하루오| 그렇다. 영화의 한장면은 무조건 그 자체로 뮤직비디오가 되어야 한다. 이건 너무나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말하는 건데, 그 장면은 예고편으로도 그대로 쓰인다.(웃음) - 이케와키 치즈루가 연기한 가린은 아스페루가 증후군이라는 걸 앓고 있다. 가린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이케와키 치즈루| 가린은 매사에 열정적인 여자다. 물론 여동생 모모에게 엉뚱한 행동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녀가 하는 모든 행동은 오로지 여동생을 위해서 이루어진다. 그런 에너지가 마음에 들었다. 이노우에 하루오| 가린이 앓고 있는 아스페루가 증후군은 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은 게 특징이다. 그래서 가린에게는 여동생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게 하나의 모험이다. 그런 도전의 이야기라고 보면된다. 당연히 열심일 수 밖에.(웃음) - 이케와키 치즈루의 어떤 점을 보고 캐스팅했나. 이노우에 하루오| 그건 직감 같은 거다. 영화의 여러 이미지를 간직하던 중, 문득 이케와키 치즈루가 떠올랐다. 사실 그렇게 영화를 만들면 부담되는 게 너무도 많은 데, 이번에는 그녀의 연기 덕분에 영화에 깊이가 더해진 것 같다. 그녀는 크랭크인 전부터 가린이 되어 있었다. 누가 준비하기도 전에, 먼저 양손에 큰 트렁크를 들고와서는 “가린은 이런 모습으로 모모를 찾아왔겠죠?”라고 말하더라. 이번 영화는 그처럼 뭔가 텔레파시가 통하는 작업이었다. - 가린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조제와 비슷해 보였다. 조제는 몸이 불편하지만, 사실상 그 때문에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벽을 쌓고 있지 않나. 그것도 자폐증과 다름없는 증상이지 않을까? 이케와키 치즈루| 사실 나에게 있어서 그들은 별개의 인물이다. 하지만 말씀하셨듯이, 조제는 몸 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상처를 안고 있다. 그런 걸로 봤을 때, 가린이나 조제나 몸과 마음을 일치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런 아픔을 혼자 안고 살아가야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여자일 수도 있다.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한국에 수입한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가 ‘조제’라는 이름의 와인바를 만든 걸 알고 있나? 이케와키 치즈루| 아, 알고 있다. 그 가게가 오픈하던 날 갔었다. 나로서는 굉장히 기쁜일이었는 데, 마치 그 와인바가 내 가게 같더라.(웃음) - 조성규 대표가 혹시 수익배분을 해준다고 하지는 않았나. 이케와키 치즈루| 그런 건 안했는 데, 혹시 주시지 않을까? (웃음) 한국에 와서 그 가게를 가봤다는 사람들을 종종 봤는데, 그러면 마치 내가 감사해야 할 것 같더라.(웃음) - 한일합작 영화인 <오이시맨>은 얼마나 작업했나 이케와키 치즈루| 거의 완성단계다. 그 영화를 찍으면서 정유미를 만난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너무 귀엽더라. 영화 속에서는 직접 만나는 장면은 없는데. 같이 식사를 한적이 있다. 예쁘고, 겸손하고, 털털한 사람이었다. 감독님도 정유미는 공주가 아니라서 좋다고 하더라. (웃음)

[이주의 추천프로] 주말엔 요것들과 노세요

<뉴 핑크팬더> 투니버스 금요일 오전 1시 <심슨네 가족> 투니버스 토요일 밤 12시 잠만 자기엔 아까운 주말 새벽, 못 말리는 심슨 가족과 정의의 표범 핑크팬더를 만나보자. 애니메이션 채널 투니버스는 9월5일부터 한달 동안 금요일 오전 1∼5시에 <뉴 핑크팬더>를, 토요일 밤 12시∼일요일 오전 5시에 <심슨네 가족>을 방영하는 ‘올나잇 특집 방송’을 마련했다. 1964년 개봉한 영화 <핑크팬더>의 오프닝에 등장하면서 인기를 모은 분홍색 표범 ‘핑크팬더’는 오리지널 단편만 140여편에 이르는 매력만점 캐릭터다. 주도면밀하고 약삭빠른 핑크팬더와 어눌하고 어수룩한 크루즈 경감의 대결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재미. 헨리 맨시니가 작곡한 오프닝 음악은 <핑크팬더>를 모르는 이들에게도 친숙할 정도로 유명하다. 미국 텔레비전 방송 역사상 최장수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심슨네 가족>은 스프링필드 마을을 배경으로 게으른 가장 호머와 남편 뒷수습을 도맡는 마지,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바트·리사·매기 3남매가 펼치는 좌충우돌 일상을 그린다. 주류를 향한 통렬한 풍자와 유머가 심슨 가족의 필살기. 에미상을 10번이나 받았고 세계 60여개 나라에서 방영됐으며 미국에서는 현재 시즌19가 방영되고 있다.

다큐로 보는 일본의 삶, 예술 그리고 사회

9월20일부터 10월2일까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일본 다큐멘터리 특별전’이 열린다. 이 프로그램은 ‘아시아 독립영화 교류 상영 및 아시아 다큐멘터리 초정 상영’의 첫 번째 행사로 기획되었다. 총 19편이 상영되는 이번 기획전에는 일본의 거장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작품이 아니라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젊은 감독들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극영화를 통해 알 수 있었던 동시대 일본과는 또 다른 모습을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상영작은 총 3개의 섹션으로 나뉘는데 각각의 주제는 ‘삶’, ‘예술’, ‘사회’로, 이들 작품 안에 현재의 일본이 거의 다 담겨 있다 할 수 있겠다. 일본 젊은이들의 고민, 당면한 사회문제, 예술가들의 발자취, 세계 속의 일본의 모습, 일본의 미래 전망, 과거사에 대한 성찰 등 다큐멘터리가 기록할 수 있는 무한한 영역을 탐사한 결과들이 모여 있다. ‘삶’을 다루는 첫 번째 섹션에 준비된 6편의 작품은 성장과 죽음, 가족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고, ‘예술’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섹션에 상영될 5편의 작품은 앞선 세대 사상가, 예술가들의 업적과 삶의 궤적을 따라가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소개되는 인물들은 팔레스타인 출신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에서 다큐 감독 야마기시 다쓰지와 쓰치모토 노리야키, 포크 가수 다카다 와타루, 음악비평가 간장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현 일본 ‘사회’를 보여주는 세 번째 섹션에는 8편의 다큐가 준비되었다. 임시직을 전전하는 일본의 청년, 과거 피폭 피해자, 터키에서 온 난민 등 일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계각층의 모습과 환경, 이데올로기 등 첨예한 사회 이슈들이 고루 카메라에 담겨 있는 섹션이다. <미운오리새끼> 오노 사야카/ 2006년/ 75분 1984년생인 오노 사야카 감독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기록한 다큐이다.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살 이유가 없다는 자기 비하감에 고통받는 사야카 감독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을 만나기로 결심한다. 가족은 어린 시절 그녀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안겨준 장본인이므로 용기를 내어 가족 구성원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사야카가 생각할 때 가장 큰 상처는 5살 때 경험이다. 그때 그녀는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야마기시 유치원에 보내져 일년간 지냈는데, 그 기간 동안 자신이 버려졌다는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온 다음부터는 “착한 딸”이 되려고 애써야 했다. 그 다음으로 큰 상처는 4학년 때 큰오빠로부터 얻은 것이다.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사춘기 소년이었던 큰오빠는 사야키가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을 했고 이로 인해 그녀는 자신의 몸을 불결하다고 느끼며 살게 된다. 사야키는 가족들과 유치원 동급생들을 만나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과거 흔적들을 재구성하면서 점차 스스로를 옥죄었던 고통에서 조금씩 빠져나온다. 이 영화는 감독이 의도한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유아의 훈육방식에 대해 돌아보게 해주는 면도 있다. 15년 전 야마기시에서 생활했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현재 크고 작은 상처를 갖고 있었다. <치즈와 구더기> 가토 하루요/ 2005년/ 98분 이 제목은 16세기 이탈리아 방앗간 주인 메노치오의 우주관에서 따온 것이다. 우유에서 치즈가 나오고 거기서 다시 벌레가 생겨나는 신비한 일상에 대한 성찰을 축약한 말이 ‘치즈와 구더기’로 미시사가 진즈부르그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이 다큐의 출발은 암에 걸려 죽어가는 가토 하루요 감독 엄마의 일상을 기록하려는 것이었다. 아마도 감독은 “죽으면 우주의 먼지가 되겠다”는 엄마의 말에서 이 제목을 떠올렸을 것 같다. 비디오카메라로 촬영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감독은 엄마가 치유되는 기적을 소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리 냉정하게 진행되었고 마침내 엄마가 눈을 감는 날이 찾아온다. 소소한 엄마의 일상과 가족들의 모습을 기록하던 카메라지만 엄마의 마지막 순간만은 차마 담지 못한다. 필름은 이미 장례의식에 따라 염을 마친 엄마의 얼굴 클로즈업에서 다시 시작되는데, 철없는 조카는 엄마의 시신 옆에서 과자를 먹으며 장난을 친다. 장례를 마친 뒤, 감독과 딸을 먼저 보낸 나이 드신 할머니는 비디오테이프 안에 담긴 엄마의 생전 모습을 보며 함께했던 시간들을 추억한다. 비디오테이프에는 치료를 위해 머리를 짧게 깎은 엄마와 새 텔레비전을 사서 기뻐하는 오빠 가족의 모습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함께 담겨 있다.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 다큐가 많지만 삶의 바로 옆자리에 놓인 죽음을 일기처럼 기록한 이 영화의 담담함이 인상적이다. <쓰치모토 노리야키의 다큐멘터리와 삶> 후지와라 도시/ 2006년/ 93분 쓰치모토 노리야키는 1970년대 화학공장에서 흘려보낸 수은 때문에 생긴 “미나마타병”으로 일본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미나마타 지역에 관한 17편의 다큐를 찍은 감독이다. 젊은 감독 후지와라 도시는 쓰치모토 노리야키의 삶과 그가 제작한 다큐들에 관한 영화를 찍기 위해 그의 작업실을 방문한다. 이 영화에는 쓰치모토 노리야키가 미나마타 지역을 찍은 유명한 다큐 <미나마타: 희생자들과 그들의 세계>(1971), <시라누이-바다>(1975)의 장면들이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다. 감독은 쓰치모토 노리야키와 함께 2004년 미나마타를 방문하여 과거 필름 속에 찍혔던 인물을 찾아가기도 하고 촬영에 얽힌 이야기도 듣는다. 쓰치모토 노리야기라는 거장이 들려주는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삶과 다큐에 대한 철학,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영화다. 1960년대 그가 만든 <길 위에서>(1964), <기관사 조수>(1963) 같은 작품도 영화에 등장한다. 안전을 홍보하기 위해 철도청에서 제작 의뢰한 <기관사 조수>를 보고, 미국 평론가가 안전과 거리가 먼 모습을 지적했다는 에피소드를 들으며 다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상실의 파편> 기무라 다쿠로, 미요시 히로키/ 2008년/ 10분 이번에 상영되는 작품 중에서 가장 짧은 다큐이다. 장편 위주로 기획된 이번 특별전에서 생부를 찾아가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그림자>와 <상실의 파편>만이 단편이다. 이 영화는 443분의 상영시간을 갖고 있는 야오야마 신지 감독의 의 반대편에 놓일 수 있겠다. 단지 10분에 불과한 이 영화에 대사는 없다. 한편의 영상시처럼 느낌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영화다.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푸르스름한 화면에 비추는 것은 적막한 섬의 모습이 전부이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외딴섬의 풍경을 아무 설명 없이 보여주는 이 영화에 대해 감독은 주제를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혼자 노래를 부르는 할머니, 섬을 배회하는 고양이들, 녹슨 자물쇠, 허공에 매달린 빈 빨래집게 같은 이미지들이 조합되었다. 도시 집중화라든지 노인문제 같은 사회적인 이슈는 전혀 언급되지 않지만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쓸쓸한 현상에 대해 깊은 각인을 남긴다. ‘로보-코보’라는 독특한 감독의 이름은 두명의 감독이 모여 만든 팀 이름이다. 기무라 다쿠로와 미요시 히로키 감독은 2006년부터 팀을 꾸려 함께 활동하고 있다. <조난백수> 히로키 이와부치/ 2007년/ 10분 어느 사회나 청년실업 문제는 가장 민감한 이슈일 수밖에 없다. 그 사회의 안정과 성장을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흔히 뉴스를 통해 통계 수치로 제공되는 실업률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 같은 문제는 개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캐논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감독 히로키 이와부치 자신의 이야기다. 잉크 카트리지를 분리하는 일을 하는 히로키는 한 시간당 1250엔을 받고 있지만 비정규직으로 계속 있다면 30년이 지나도 그의 급여는 달라지지 않는다. 캐논은 지난해 엄청난 이익을 냈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는 같다. 일하는 기쁨을 느낄 수 없이 빚 때문에 할 수 없이 일하는 히로키는 도쿄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 시위에 참여한다. 그런 과정에서 는 그에게 출연을 제의한다.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촬영을 마친 히로키는 사실을 왜곡한 방송을 보게 된다. 실업이 줄어들고 있다는 진행자의 말로 시작되는 이 프로그램에서 히로키는 마치 범죄자처럼 취급되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난다. 봄부터 겨울까지 히로키의 생활을 담은 이 영화는 일본의 노동 현실을 개인을 일상을 통해 조망하고 있다. 결국 일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히로키는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며 기록을 마친다. <배, 산에 오르다> 혼다 다카요시/ 2007년/ 88분 히로시마현 북동부 하이쓰카 지역에는 산꼭대기에 커다란 뗏목형 배가 놓여 있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고 할 수 있는 이 기이한 사건의 시작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댐 건설 계획이 세워지고 오랜 기간 반대운동이 벌어진 끝에 댐 건설이 착수되고 미로사키, 기소, 소료 마을이 물에 잠긴다. 이로 인해 20만 그루의 나무가 물에 잠기게 되자 PH스튜디오 그룹은 그 나무를 이용해 배를 만들 프로젝트를 설계한다. PH스튜디오는 건축가, 미술가, 사진가가 모인 그룹으로 다양한 작업들을 해왔는데 나무를 배로 만들어 산으로 보내는 이 작업에 12년의 시간을 투자했다. 1999년부터 나무를 모으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를 만들어 마침내 2005년 댐에 물을 채우는 날 배를 띄운다. 2006년 시험 담수가 끝나면 다시 물이 빠지고 배는 산 정상에 홀로 남게 된다. 혼다 다카요시 감독은 처음에 이 프로젝트의 전시용 영상 제작을 맡았다가 다큐 제작까지 하게 되었다. 감독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촬영을 진행시킬 동력이 되었고 이제는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산 정상에 놓인 거대한 나무배를 항공 촬영한 장면을 보면 감독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된다. 중간에 나오는 ‘에미키’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500년 된 푸조나무의 이사장면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