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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추위 속 강행군,겨울 촬영현장 풍경 스케치 [1]

정작 영화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이다.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시켜보고 연출부로 쓸 것인지 결정하는 김성수 감독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그렇게 말할 것이다. 영화는 말이나 글로 찍는 게 아니라 몸의 피로와 다리의 수고로움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영화는 정신노동의 산물로 받아들여진다. ‘영혼이 담긴’, ‘정밀하게 계산된’, ‘지성이 번뜩이는’, ‘상상력이 뛰어난’ 등 온갖 수사들이 영화의 정신적 측면을 강조하는 데 동원된다. 하지만 그렇게 믿고 영화 찍는 현장에 도착한 이들은 한결같이 당황할 것이다. 그곳에서 영화가 정신적 노동의 산물이라 말하는 자는 야유를 받기 알맞다. 막상 현장에서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배우건 스탭이건 기꺼이 스스로를 일용직 노동자, 속칭 ‘노가다’라고 부른다. 건설현장의 인부처럼 촬영현장에서 그들의 정신은 오직 육체의 한계와 싸우는 데 집중한다.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부어 집을 짓는 것처럼 조명기를 설치하고 카메라를 옮기는 동안 생필름은 차츰 영화가 된다. 누구도 영화가 육체적 노동의 산물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촬영현장은 그래서 힘들지만 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기도 한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는 맛볼 수 없는 고통과 희열이 여기 있는 것이다. 겨울은 촬영현장의 이런 이중적 모습을 숨길 수 없는 계절이다. 두터운 옷을 몇겹씩 겹쳐입어도 송곳처럼 파고드는 영하의 바람을 맞으며, 그 추위 속에 강우기로 쏟아붓는 비를 흠뻑 맞으며 현장의 사람들은 피와 땀을 흘린다. 지난 한주 뚝 떨어진 수은주에도 굴하지 않고 촬영을 계속하는 영화들을 보면서 <씨네21>은 완성된 영화에선 볼 수 없는 그 현장의 풍경에 초점을 맞춰보기로 했다. 촬영일정상 취재가 가능했던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김유진 감독의 <와일드 카드>,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 장형익 감독의 <별> 등 네편의 영화현장을 공개한다. - 편집자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한번 저작권, 영원한 저작권

저작권은 과연 얼마 동안 보호돼야 마땅한 것일까. 미국 연방대법원이 저작권 시효를 연장하는 법은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려, 이것이 창작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조치인지, 아니면 독점적 특권에 불과한 것인지,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다.이번 판정은 학자와 인터넷 관련업자들이 지난 1998년 제정된 ‘저작권 시효 20년 연장법’이 공공의 이익을 해치고 있다며 위헌 소송을 낸 데 따른 것. 98년의 저작권 연장 조치로 인해 기업의 저작권 시효는 75년에서 95년으로, 개인의 저작권 시효는 저작권자의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늘어나게 된 상황이었다.미키 마우스나 도널드 덕 같은 애니메이션 캐릭터, <오즈의 마법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의 고전영화, 조지 거슈윈의 음악 등은 이 법이 아니었다면 저작권 보호 시효가 만료됐을 작품들. 따라서 고전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의 저작권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영화사들은 이들 캐릭터와 작품을 통해 벌어들이던 연간 4억달러의 로열티 수입을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미국의 상황만이 아니다. 일본도 최근 영화의 저작권 시효를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해, 곧 만료될 예정이었던 <도쿄 이야기> 등의 저작권이 향후 20여년 동안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저작권을 갖고 있는 영화사 등의 입김으로 이처럼 저작권 연장법이 제정되고 또 시행되는 데 대해선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이미 상업적 가치가 사라진 고전 예술 작품까지도 그 저작권을 들어 사용을 통제하고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 어쨌거나 미국과 일본의 법원이 나란히 ‘저작권자의 영속적(90∼95년) 독점’을 지지하고 나섰다는 건, 재미난 우연이다.

우디 앨런식 웃음의 방식,<스몰 타임 크룩스>

■ Story 접시를 닦는 일을 하고 있는 레이(우디 앨런)는 어느 날 큰돈을 벌 기막힌 계획이 있다며 아내 프렌치(트레이시 울먼)에게 이야기한다. 그의 계획인 즉 은행 옆의 가게를 인수해 가게 지하실에서 은행 금고까지 터널을 파자는 것. 결국 프렌치는 범죄행위에 대한 일종의 방어막으로서 쿠키 가게를 열고 레이 일행은 은행금고에 이르는 터널 파기 작업을 실행한다. 그런데 레이와 프렌치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다. 프렌치의 쿠키 가게가 갑자기 번창하게 된 것. 결국 레이와 프렌치는 거대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벼락부자가 된다. 그럼으로써 상류사회에 진입한다. 그러나 어느 날 프렌치는 자기를 가리켜 ‘교양’이 없는 졸부라 비난하는 소리를 엿듣게 되고 잘생긴 미술상 데이비드(휴 그랜트)에게 속성으로 교양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는 사이 레이와 프렌치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간다. ■ Review 우디 앨런의 데뷔작 <돈을 갖고 튀어라>(1969)의 모자란 범죄자 버질이 나이를 먹으면 이렇게 될까 <스몰 타임 크룩스>의 주인공 레이는 말 많고 지나치게 예민하며 선병질적인, 다시 말해 지극히 앨런적인 캐릭터이지만, 그는 전혀 지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그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일종의 선입견을 거스르는 인물이기도 하다. 감방 동료들이 자신에게 ‘두뇌’라는 별명을 붙여줬다며 우쭐해하는 그는 사실 그게 어리숙한 자신을 비꼬는 표현이란 것도 알지 못할 정도다. 그런 레이가 은행털이에, 그것도 우두머리 자격으로 가담했으니, 이 범행 과정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은행 가까이에 위치한 가게를 인수해 그 지하에서 은행 금고에 이르는 터널을 파겠다는 레이 일행의 계획은 처음부터 어려움에 부닥친다. 배수관을 터뜨리는 바람에 지하실을 물바다로 만드는가 하면 지도를 잘못 보는 바람에 엉뚱한 방향으로 터널을 파는 헛수고를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스몰 타임 크룩스>의 출발은 분명 지난주에 국내에서도 개봉한 <웰컴 투 콜린우드>(앤서니 루소·조셉 루소, 2002)를 연상케 한다. 서툴기 이루 말할 데가 없는 범죄자들의 (거의 필연적인) 패배를 향한 우스꽝스런 범죄를 다룬다는 점에서 <스몰 타임 크룩스>는 분명 <웰컴 투 콜린우드>와 대응관계를 이루는 면이 있다(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은 <스몰 타임 크룩스>의 참고 대상이 된 한편의 영화로 이탈리아산 코믹범죄영화 <마돈나 거리에서의 큰 건수>(마리오 모니첼리, 1958)를 드는데, 공교롭게도 이 영화는 <웰컴 투 콜린우드>의 ‘원본’에 해당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몰 타임 크룩스>는 코믹 범죄스토리라는 이 출발지점에서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사정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감으로써, 다시 말해 은행털이를 위한 일종의 위장전술 정도로 생각하고 열었던 쿠키 가게가 뜻밖에 큰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성공확률도 높지 않고 불필요한 노고만을 요하는 범죄행위에 더이상 레이 일행이 관여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레이와 그의 아내 프렌치가 경영하는 쿠키 가게는 체인점을 둘 만큼 거대한 비즈니스로 급성장했다. 이렇게 사정이 돌변했으니 영화가 새로운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그 새로운 진전 방향의 발단점을 영화는 진정으로 상류사회의 일원다운 삶을 누려보겠다는 프렌치의 애절한 욕구에서 찾는다. 자신이 그저 못 배운 졸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프렌치는 핸섬한 미술상 데이비드로부터 교양속성강좌를 받기로 한다. 이제 영화는 상류사회에의 ‘진정한 진입’에 불가결한 요소로서 교양의 문제를 둘러싸고 코믹한 전개상황을 만들어낸다. 비유해 보자면, <스몰 타임 크룩스>는 <웰컴 투 콜린우드>를 지나 <귀여운 빌리>(Born Yesterday, 루이스 만도키, 1993)- 조지 쿠커의 50년작을 리메이크한 영화로 교양이라곤 전혀 없는 벼락부자의 정부가 한 남자의 개인교수를 받으며 변화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 로 이월해가는 영화다. 이쯤에서 잠깐 앨런의 예전 작품 <스타더스트 메모리즈>(1980)의 한 장면을 상기해보자. 여기서 영화감독 역을 맡은 앨런은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나는 예전 당신의 우스운 영화들이 더 좋았어요.” <스몰 타임 크룩스>는 바로 이런 생각을 가질 사람들의 마음에 들 법한 영화일 것 같다. 영화는 시종 가라앉는 법 없이 날렵하게 우스운 상황들을 이어가며 부담없는 재미를 안겨준다. 그렇다고 이 가벼운 코미디영화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편의상 대략 세개의 장(章), 즉 어설퍼서 웃긴 은행털이 시도에 대한 범죄 코미디인 첫째 장, 계층의 문제로부터 파생된 코미디를 그린 둘째 장, 그리고 또 다른 상황의 반전에 의해 레이가 제목 그대로 ‘삼류도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클라이맥스 상황을 그린 셋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세개의 장에다가 영화는 웃음의 강도를 골고루 분포시키지 못한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영화의 핵심부분에 해당하고 따라서 러닝타임도 가장 긴 둘째 장이 가장 흥미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예컨대 여기서 등장하는 교양 갖춘 미남 데이비드(휴 그랜트)의 존재는 첫장에서 비실비실 웃음을 새어나오게 만들던 레이의 멍청한 동료들, 특히 데니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그를 둘러싼 관계의 상투성 때문에, 그리고 그 캐릭터의 밋밋함 때문에 다소 힘이 부친다. 그렇다고 계층 상승을 꿈꾸는 졸부의 헛된 야심에 대한(상류사회의 교양이란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야유에 그리 농담 이상의 큰힘이 실려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아직 실망만 하기에는 이르다. 셋째 장에 이르면 졸부에서 어설픈 도둑으로 돌아온 레이와 아내 프렌치의 친척인 메이(일레인 메이)- 영화에 그리 오래 등장하지는 않음에도 이 영화를 통해 오래 기억될 만한 캐릭터!- 의 ‘덤 앤 더머’ 콤비가 펼쳐내는, 서투르기 짝이 없어 흥미로운 절도 시퀀스가 나오니까 말이다. 아마도 이 시퀀스가 없었다면, 앨런의 필모그래피에서 그리 돋보일 자리에 처하지 못할 게 분명한 이 영화의 재미는 상당히 반감되었을 것이다. 어느덧 70살에 가까이 간 앨런은 <애니 홀>(1977)이나 <맨하탄>(1979) 같은 대표작을 만들던 전성기는 지났지만 여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보는 우리를 웃음짓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는 듯하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모두 10편으로 마감한 거장 모리스 피알라

지난 11일, 프랑스 영화의 거장 모리스 피알라 (Maurice Pialat)가 77살을 일기로 타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반 고흐>라는 작품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 모리스 피알라는, 술꾼에 바람둥이인 아버지와 남편 뒤치닥거리에 아들은 늘 뒷전이기만 한 어머니로 인해 고독하고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후에 그의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기질은 이러한 어린 시절의 소외감과 무관하지 않을 듯 하다.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 1987년 <사탄의 태양 아래서>라는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때 그의 수상에 불만을 품은 관객들을 향해 그는 불끈 쥔 주먹을 들어올리며 “당신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당신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피알라의 이처럼 꼿꼿하고 강직한 성격은 평생 그의 인간관계 뿐 아니라 영화 투자자를 구하는 데도 상당한 어려움을 야기했다. 반 고흐와 같은 화가를 꿈꾸며 국립 예술학교에 들어갔던 피알라는, 1960년 피에르 브론베르제 (프랑스 ‘누벨바그’의 출현에 기여한 제작자)의 후원으로 <사랑은 지속된다>라는 단편 영화를 만들고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시기에 영화계에 입문한 누벨바그 주자들에 비해 그는 첫 장편 영화를 만들기까지 거의 10년의 시간을 단편만을 만들며 기다려야 했다. 그에게는 프랑수아 트뤼포나 장 뤽 고다르처럼 입신양명을 도와줄 비평자도, 알랭 레네처럼 ‘출중한’ 학벌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지루한’ 기다림은, 어쩌면 피알라의 작업 스타일을 규정짓는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몇 배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느린’ 예술가군에 속한다. 피알라는 플로베르가 평생 6권의 책을 썼듯이 30년 동안 열 편의 영화밖에 만들지 않았다. 그러기에 한 편, 한 편이 ‘걸작’에 이르고, 한 영화는 이전 작품에 대한 주제적이고 형식적인 전복성을 담고 있다. 가령 첫 장편인 <벌거벗은 아이>(1968)는 불행한 한 아이의 좌절을 비직업 배우들을 고용해 드라마적인 감동을 배제한 채 사실적으로 묘사한 반면, 두번째 영화 <우리는 함께 늙어가지 않을 것이다>(1972)는 사랑하는 커플의 위기를 스타 배우들을 기용해 심리적인 묘사로 극적인 재미를 더한다. 이 두 작품에서 보이는 ‘상처받은 유년기’와 ‘사랑하는 남녀의 갈등’이라는 주제는 상드린 보네르가 출연한 <우리의 사랑을 위하여>(1983)나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출연한 네 편의 영화 (<루루> (1980), <폴리스>(1985), <사탄의 태양 아래서>, <갸르쉬>(1995)) 모두에서 드러난다. 피알라는 누벨바그 세대와 같은 시기에 작업했지만 그들과 스타일이 전혀 달랐다. 그의 영화는 고다르 영화처럼 형식주의로만 흐르지도 않고, 클로드 샤브롤의 영화처럼 심리 분석으로만 치우치지도 않는다. 그는 프루스트처럼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적 진실을 찾기 위해 작품을 만들지만 (이는 분명 가장 고전적인 창작가의 태도다), 그것은 텍스트 어디에도 직접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다. 그가 현대 프랑스 영화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이유는 이처럼 인간주의적인 질문이 형식에의 추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파리/박지회·파리 3대학 영화학 박사과정

<웰컴 투 콜린우드>의 형제 감독 앤서니 루소,조 루소

솔직히 우연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의 조엘 코언과 에단 코언, <매트릭스>의 앤디 워쇼스키와 래리 워쇼스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의 바비 패럴리와 피터 패럴리, <어바웃 어 보이>의 폴 웨이츠와 크리스 웨이츠. 장르의 장인으로 대성해 가문의 영광을 쌓은 미국 영화계의 막강 형제 클럽의 신입 회원으로 클리블랜드 출신의 앤서니 루소(32)와 조 루소(31)가 명함을 내밀었다. 범죄계의 무능력자들이 가망없는 금고털이를 도모하는 루소 형제의 코미디 <웰컴 투 콜린우드>는 얼핏 지칠 줄 모르고 수다를 떨며 치고 받으며 내러티브 퍼즐을 즐기는 또 한편의 ‘선댄스표’ 영화처럼 보이지만 이 신예 감독들의 시트콤식 유머 너머에는, 애정을 갖고 인물을 지그시 지켜보는 고전 할리우드 드라마의 미덕과 공업도시 클리블랜드 토박이의 몸으로 체득한 미국 자본주의의 가혹한 풍경이 깔려 있다. 형제를 발탁한 것은 영화사 섹션 에이트를 차리고 프로듀서 일에도 발을 들여놓은 스티븐 소더버그와 조지 클루니. 1991년 슬램댄스영화제에서 루소 형제의 첫 장편 <조각들>을 접하고 영화적 동지애를 느낀 소더버그는 무명의 신예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콜린우드>의 제작자 크레딧에 조지 클루니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영화 한편을 연출하는 것은, 달리는 차의 뒷범퍼에 매달려 4개월을 끌려 다니는 일과 같다는 선배 스티븐 소더버그의 정의를 “만약 두 사람이 같이 차에 묶여 끌려다닌다면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지 않겠냐”고 슬쩍 비트는 루소 형제에게 <씨네21>은 이메일로 질문을 보내 답을 얻었다. 형제는 맨 처음 어떻게 영화에 매료되었습니까 처음부터 두 형과 아우가 영화에 대한 관심을 나누었나요. → 영화의 세계를 우리에게 처음 소개한 사람은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험프리 보가트, 캐리 그랜트가 출연하는 TV의 옛날 영화를 감상하곤 했지요. 제일 좋아한 영화는 레오 고르시와 헌츠 홀이 나오는 <바워리 보이즈>였는데 <…콜린우드>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열세살, 열네살이 됐을 때 프랑스 누벨바그,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영화 등 외국영화에 매혹됐고 세르지오 레오네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거대 공업도시였던 클리블랜드 이스트 사이드의 노동계급 이탈리아 이민지역에서 자라난 우리의 유년기는 엄청나게 컬러풀했습니다. 아버지는 1970년대 후반 곤궁한 시대를 리버럴한 행동파 정치가로 사셨습니다. 클리블랜드 경제는 무너져가고 있었고 도시는 파산 직전의 벼랑에 서 있었죠. 우리는 어떻게 클리블랜드를 살릴 것인가를 놓고 이곳저곳에서 사람들과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아버지를 따라 차를 몰고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아버지의 정치의식은 감독으로서 우리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콜린우드>는 자본주의에 대한 엄중한 고발이기도 합니다. <…콜린우드>는 루소 형제의 이름을 한국 관객에게 처음 알린 영화입니다. 감독으로서의 수련과정을 소개해주십시오. → 우리는 뒷마당에서 비디오카메라로 영화를 찍는 타입의 영화광들은 아니었어요. 영화는 숏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메타포를 찾는 공부의 대상이었습니다. 앤서니는 첫 번째 영화 <조각들>(Pieces)을 만들 무렵 법대에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를 중퇴했고, 1994년에 아주 적은 돈으로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완성할 돈이 모자랐던 우리는 궁여지책으로 영화학교에 지원해 학교의 장비를 써서 영화를 편집할 수 있었습니다. 스티븐 소더버그가 그 영화를 1997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보고 우리의 다음영화를 기꺼이 제작하겠다고 제의했구요. 그래서 우리는 영화학교를 다시 중퇴하고 <웰컴 투 콜린우드>를 만들게 된 겁니다. 스티븐 소더버그에게 처음 전화 연락을 받은 날 기분은 어땠습니까 <…콜린우드>의 실제적 제작과정에 소더버그는 어느 정도 개입했습니까. → 조가 LA의 아파트에서 소더버그의 전화를 받았는데 처음 자기 소개를 듣고는 장난전화인 줄 알았죠. 여전히 우리는 첫 영화로 진 빚을 갚고 있는 처지였고 더군다나 조는 막 딸아이를 낳은 참이었으니 우리가 흥분한 건 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스티븐과 조지(클루니)는 <…콜린우드>를 만드는 내내 간섭하지 않다가 우리가 도움을 요청할 때만 제공하는 자세를 지켰습니다. 그들과 일하기 전 소더버그와 클루니의 작품에 대해 관객으로서, 필름메이커로서 어떤 견해를 갖고 있었나요. → 물론 우리는 소더버그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성적인 발육을 겪고 있었던 15, 16살 무렵 등장한 성적 각성에 관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는 매우 결정적인(seminal) 영화였습니다. 소더버그는 현재 미국 영화계에서 가장 세련되고 모험심 강한 감독입니다. 클루니는 배우로서 제작자로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영리한 커리어를 쌓아올렸고 이제 감독으로서도 훌륭히 데뷔했습니다. 그에겐 캐리 그랜트의 매력과 험프리 보가트의 위트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한 전작 <키스>와 <조각들>은 어떤 영화인가요 두 영화와 <…콜린우드> 사이에는 스타일의 일관성이 있나요. → <키스>는 포드사가 젊은 영화감독을 지원하도록 부추기기 위해 만든 CF의 확장판 같은 영화였고 장편 데뷔작 <조각들>은 프랑수아 트뤼포의 <피아니스트를 쏴라>에 감화받은 작품이었습니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스키조폴리스>와 유사한 실험적인 톤의 부조리 누아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소더버그가 연락한 것도 그런 감수성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각들>은 클리블랜드 길거리에서 게릴라 스타일로 촬영됐고 일정한 내러티브에 거의 집중하지 않는 고도로 양식화된 영화입니다. 세계를 극중 인물들이 극복하려고 몸부림치는 포스트 모던한 황무지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콜린우드>와 통합니다. <…콜린우드>는 기존 영화 <마돈나 거리의 한탕>(Big Deal on Madonna Street)의 리메이크이면서 독특한 지역색을 강도영화의 공식에 가미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설계는 어떻게 나온 것입니까. → <마돈나 거리의 한탕>은 우리 형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였고 우리는 그 영화를 신세대 관객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마돈나 거리의 한탕>은 역사상 최고로 재미있는 영화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와 그 사회의 밑바닥 인생들에게 닥치는 일에 대한 통렬하고 날카로운 관찰이라고 생각합다. 우리는 영화의 스토리를 고향 클리블랜드로 옮겨놓고 언제나 하층 노동계급의 삶터였던 클리블랜드 특유의 태도와 퍼스낼리티를 불어넣었습니다. 테마면에서 <…콜린우드>는 인종적으로 다양한 인간들이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짧은 연대감을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벨리니’(큰 건수)니 ‘멀린스키’(돈 받고 대신 옥살이를 해주는 사람)니 하는 은어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 그런 속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더 재미있는 답이 됐겠지만 애석하게도 그 단어들은 LA미드 윌셔 지역에 있는 열두 걸음쯤 되는 크기의 사무실 안에서 열 걸음쯤 왔다갔다하며 지어낸 것입니다. 콜린우드 패거리는 <오션스 일레븐> 드림팀의 네거티브 이미지처럼 보입니다. 이런 앙상블을 어떻게 구상했나요 또 이처럼 다채로운 배우들을 어떻게 한데 모았습니까. → 공교롭게도 우리는 클루니와 소더버그가 <오션스 일레븐>을 찍은 똑같은 시기에 <…콜린우드>를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범죄자 사회의 다른 양극단을 탐구한 셈이죠. 클루니와 소더버그는 능수능란한 도둑을, 우리는 어떻게 해도 한건 올릴 리가 없는 구제불능들을 말입니다. 앙상블의 구성은 <마돈나 거리의 한탕>의 스케치를 따랐지만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복잡하기로 악명높은 콜린우드 지역의 필터를 댔습니다. 우리가 자라면서 겪었던 사람들, 친척 아줌마, 아저씨, 아버지의 친구들, 이웃 사람들 등에 대한 구체적 기억을 동원해 캐릭터를 강화했고요. 소재를 요리함에 있어 우리는 매우 ‘배우 집약적’인 접근법을 택했는데 꿈같이 훌륭한 캐스팅을 얻었습니다. 책상에 앉아 각각의 연기자에게 그들이 왜 역할에 맞는지 설명하는 편지들을 써서 보내야 했던 우리는 행운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코언 형제, 워쇼스키 형제, 패럴리 형제 등등 기묘하게도 형제 감독 듀오의 다수가 장르영화의 진화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루소 형제가 특별히 야심을 품은 장르가 있습니까. → 열정을 가진 특정한 장르는 없고 모든 영화를 사랑합니다. 실은 코미디부터 만든 사실에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본래 만들고자 했던 것은 시대극이었거든요. 형제 듀오들이 장르영화에 끌리는 까닭은 장르영화는 모험적이며 오페라적인 극적 장치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형제팀이 특정한 스타일의 공통적 영화언어를 발전시키기 시작하면 그 스타일을 유지하고 심화시키는 것이 쉽다고 봅니다. 우리의 바람은 가능한 한 상이한 영화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클리블랜드는 어떤 공간입니까 몇몇 인디 감독들이 그렇듯이 앞으로도 고향을 기지로 삼아 영화작업을 계속할 계획인가요. → 클리블랜드는 20세기 초 미국의 산업혁명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경제난을 숱하게 겪었고 1970년대 말 파산지경을 거치고 나서는 몇해 전 부흥기까지 오랫동안 우울하고 황량한 곳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클리블랜드를 무대로 해 풀어놓고 싶지만 실제로 많은 시간을 외국에서 보내고 있으며 미국식 스토리에 얼마간 싫증이 난 상태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세계 관객도 그렇게 느끼겠지요. 더욱 중요하고 유의미한 소재들은 미국 밖에 존재한다는 느낌입니다. 세계는 복잡하고 매혹적인 곳인데도, 할리우드가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는 동안은 적당한 자기 표현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콜린우드>를 보고 사람들은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애리조나 유괴사건> <펄프 픽션> 같은 영화들을 떠올립니다. 이런 반응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영화적 내러티브 구조를 갖고 벌이는 게임에 특별한 흥미를 갖고 있습니까. → <…콜린우드>는 극히 단순한 톤과 테마를 가진 복고적 영화로 계획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가 <록 스탁…>이나 <펄프 픽션>보다 <바워리 보이즈>나 막스 브러더스 영화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록 스탁…> <펄프 픽션> 같은 영화들과는 되도록 거리를 두려 했습니다. 두 영화가 영화적 자의식이 무척 강하고 팝 문화와 연결돼 있는 반면 <…콜린우드>는 매우 순진하고 자의식이 탈색된 영화입니다. <…콜린우드>는 세트디자인, 아트디렉션, 촬영에 있어 고답적입니다. 모든 숏이 단순하고, 전통적인 에이젠슈테인식 몽타주로 붙어 있습니다. <록 스탁…>과 <펄프 픽션>의 촬영은 프로그레시브한 스타일이지만 <…콜린우드>의 촬영은 마치 로버트 와이즈 영화 같지요. 하지만 영화적 구조에 대한 생각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데뷔작 <조각들>은 한 줄기의 스토리로 이해하기 힘든 반(反)내러티브적인 영화였습니다. 전통적 할리우드 내러티브가 아니라 월드 시네마에서 싹튼 새로운 해체적 내러티브가 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식의 영화언어로 일하면서 역사의 나선을 뛰어넘어 한층 흥분되고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려 했습니다. 두 사람은 영화 창작팀으로서 해체 불가능한 하나의 유닛이라고 느끼나요. → 다른 형제 감독 팀과 다르게 우리는 일을 정해서 나누지 않습니다. 아이디어 착상부터 시나리오, 스토리보드, 캐스팅, 연출까지 모든 작업을 함께합니다. 배우와 촬영감독에게도 같이 이야기하지요. 그런 면에서는 확실히 불가분의 유닛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루소 형제와 섹션 에잇사와 맺은 계약의 정확한 성격은 무엇입니까 현재 작업 중인 프로젝트는 무엇입니까. → 섹션 에잇과는 어떤 공식적인 관계도 없지만 현재 우리의 차기작에 대해 대화를 진행 중입니다. 얼마 전 에 <퀴즈 쇼> <도니 브라스코> <호미사이드>의 폴 아타나시오가 제작자로 가담한 TV쇼를 연출해 납품했습니다. FX 케이블방송 채널을 위해 <러키>라는 쇼의 파일럿 프로그램도 연출했습니다. 영화 차기작으로는 미국 바깥을 무대로 하는 이야기를 구상 중이고요. 김혜리 vermeer@hani.co.kr

`로즈버드`에 대해 묻지 말아주오, <시민케인>

국도극장이었는지 대한극장이었는지 하여튼 처음으로 일류극장에서 가서 봄. 당시 고등학생이던 사촌형들이 중학생 관람가라며 초등학생이던 나를 빡빡 깎여서 데리고 감. 겨우 표를 샀음. 애국가가 나오자 자리에서 모두 일어났음. 애국가가 끝나자 자리에 모두 앉음. 대한뉴스 시작됨. 영화 시작됨. 성룡 땜에 거의 정신나감. 갑자기 내 뒷자리 아저씨가 나 땜에 안 보인다고 짜증내며 모자를 벗어달라고 함. 나는 빡빡이가 창피해서 엄마가 털실로 짜준 방울모자를 쓰고 있었음. 벗기 싫은 모자를 억지로 벗었는데 주위가 온통 웃음바다가 됨. 뒷자리 아저씨는 영화는 안 보고 내 하얀 빡빡머리를 만지작대면서 낄낄댔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성룡의 동작 하나하나에 취해 깔깔댐. 다음날 반아이들 모아놓고 온갖 포즈로 신나게 <취권> 흉내내며 자랑함. 아이들 침흘리며 나의 이야기에 압도당함. 중학교 때 - <로미오와 줄리엣> 지금은 없어진 광화문 국제극장에서 봤음. 단체미팅에서 만난 여자애들과 같이 갔음. 여자애들은 지들끼리 뭉쳐서 앞서가며 깔깔댔고, 남자애들은 한참 뒤처져서 지들끼리 쑥덕대며 걸어갔음. 영화는 참 낯설고 졸렸음. 로미오로 나온 남자가 기생오라비 같다고 생각함. 여자애들은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았음. 집에 돌아와서 ‘교양’에 대해 깊이 생각함. 브룩 실즈, 피비 케이츠 좋아하는 것보다 올리비아 핫세 좋다고 하는 것이 있어 보인다는 것을 깨달음. 덕분에 <로미오와 줄리엣> 볼 때 옆에 앉았던 여자애와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사귐. 덕분에 유치환의 <행복>이나 윤동주의 <별 헤는 밤> 같은 시를 낯간지러운 꽃편지지에 적어보기도 함. 이때부터 이중인격이 형성됨. 그리고 연애가 한 인간에게 참 많은 공부를 시킨다는 것도 이때 어렴풋이 알게 됨. 재수할 때 - <영웅본색> 1편부터 십몇편까지 노량진 재수학원 지하 음악다방에서 다 보았음.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구했는지 빔 프로젝터에 제법 큰 화면으로 보여줬음. 전부 삐짜 테이프였음. 주윤발 나오는 거는 다 <영웅본색>이었음. 나중에 알고 보니 1, 2편만 진짜고 나머지는 다른 제목이 다 있었음. 강호정, 타이거 맨, 감옥풍운 같은…. 그중 <영웅본색> 7편에 왕조현이 나왔음. 그때 내가 딱 침 발라놨는데 나중에 <천녀유혼>으로 완전히 떴음. 그리고 그 영화는 나중에 우연찮게 극장에서 다시 보게 됐는데 그때 진짜 제목이 <의개운천>(에스케이프 걸)이라는 걸 알았음. 어쨌든 내가 여자 보는 눈은 있다고 믿게 됨. 대학교 때 - <시민케인> 수업시간에 시도 때도 없이 보았음. 영화가 보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거라는 걸 이 영화 땜에 알았음. 거의 모든 수업시간에 언급이 되며 거의 모든 영화책에 등장하고 시험 때마다 한두 문제씩은 꼭 나옴. 가히 당시 한국영화 교육계의 얼굴마담이었다고 할 수 있음. 그러나 불행히도 아직까지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음. 시험 때마다 에로영화 보듯이 중요한 장면 서치해서 보았음. 아직까지도 행여 누가 ‘로즈버드’의 의미나 이 장면의 미장센 어쩌고 하면 경기를 일으킴. 영화아카데미 다닐 때 - 오즈와 브레송의 내가 본 모든 영화들 고다르는 머리에 쥐가 내렸고 타르코프스키와 베리만은 졸렸는데 오즈와 브레송에게 완전히 필이 꽂힘. 이후부터 소설가인 마루야마 겐지와 더불어 이 세명을 평생스승으로 삼아야겠다, 고 하다가 오버하는 것 같아서 관뒀음. 연출부 때 - <거짓말> 한 100번 넘게 보았음. 나중엔 연출부들끼리 대사 따라하기 하며 놀았음. 장선우 감독님 연출부에다가 만 19세 이상 전 국민의 바람이었던 벗는 현장 구경한다는 절호의 찬스에 덥석 물었다가 마음고생 했음. 감독님의 까다로움과 애매모호함과 죽 끓듯 하는 변덕에, 하루종일 여관방에 쭈그리고 앉아 숨도 제대로 못 쉬던 촬영현장의 긴장감에, 하루에도 몇번씩 울음을 터뜨리던 배우에 대한 안쓰러움에, 밤마다 연출부들끼리 술 마시며 감독님 뒷다마 까다보니 영화가 끝나버렸음. 그래도 나중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는 거저 먹었다는 생각이 듬. 지금 - <품행제로> 개봉날 메가박스에서 마음 졸이며 사람들 몰래 계단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 밖에 곳곳의 극장에서 친구들이랑 또는 혼자서 몰래 여러 번 봤음. 어서어서 200만명 넘고 300만명 넘어서 보너스 두둑이 받고 몇년 동안 놀고먹었으면 좋겠음. 근데 꼴을 보아하니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음. 그래서 요즘 섹스코미디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음.

이 녀석들만은 내 거다,<라쿠카키 왕국>

팬클럽이란 건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모두 라이벌이다. 감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뭐가 좋다고 팬클럽을 결성해 웃고 떠드는지 모르겠다. 어쩌자고 경쟁자를 늘리고 또 늘리는지 이상하다. 다른 모든 사람들한테도 똑같은 웃음을 흘리는 존재는 싫다. 오직 나만 쳐다보고 나한테만 웃어주고 다른 사람들하고는 말도 안 했으면 좋겠다. <라쿠카키 왕국>은 재패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지브리 스튜디오’가 참여해서 유명해진 게임이다. 전체적 게임 이미지와 캐릭터들을 지브리에서 만들었다. 또 하나 화제가 된 건 게임에 도입된 독특한 기술이다. 임의로 그린 2D 캐릭터를 3D 오브젝트로 전환할 수 있는 이 기술은 도쿄대에서 이론화하여 개발된 것이라고 한다. 얼핏 듣기만 해도 굉장해 보인다. 여기에 도쿄대의 후광이 둘러져 있고, 그 유명한 지브리 스튜디오까지 참여한다니 이름값은 차고 넘친다. 관심이 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라쿠카키’는 ‘낙서’라는 뜻이다. 지브리풍의 이국적인 풍광을 가진 라쿠카키 왕국에서는 신기하게도 낙서들이 살아 움직인다. 태초에 색깔이 존재했고, 신은 이 색깔들로부터 바람과 태양과 물과 풀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사람과 낙서들이 태어났다. 인간과 낙서는 조화롭게 공존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욕심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더 큰 힘을 갈구하며 낙서들을 잡아 가둬 색깔을 빼앗기 시작했다. 신은 격노했고, 인간은 낙서를 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다. 이제 낙서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천사 ‘펜젤’(펜+엔젤)의 도움 없이는 낙서를 할 수 없다. 펜젤이 아무리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혼신의 힘을 다해 도와줘도 처음부터 거창한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 사용할 수 있는 색깔도, 붓의 종류도 서너 가지에 불과하다. 마음 같아서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멋지고 대단한 걸 그려내고 싶었지만 첫 작품으로 탄생한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찌그러진 빨간 공이다. 보잘것없는 결과에 실망하기도 전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활기차게 뛰어다니며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즐거워한다. 덩달아 즐거워진다. 마음대로 튀어다니는 녀석을 달래 격투장으로 가자. 자기가 만든 낙서를 데리고 나온 다른 사람들과 한판 승부다. 이기면 이길수록 사용할 수 있는 색깔이 늘어나고 물감 양 제한도 올라간다. 이제 팔이나 다리, 날개처럼 세밀한 그림도 그릴 수 있다. 태초에 색깔이 존재했고 이 색깔들로부터 모든 것이 태어난다. 나는 신이다. 나의 손가락 끝에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가슴 벅찬 경이로움이 물러가면 비뚤어진 자부심과 만족감으로 목이 메어온다. 이건 나만의 게임이다. 내가 그린 그림들이 세계를 완성한다. 이 게임을 산 사람들은 나말고도 얼마든지 있겠지만, 이 세계는 내가 온전히 만들어낸 나만의 왕국이다. 그림 실력은 중요하지 않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귀엽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주저앉은 퍼런 연두부도, 뻘건 털이 숭숭 난 일그러진 송충이도 예뻐 죽는다. 3D로 바뀌어 이리저리 퉁퉁거리며 다니는 게 신기한 나머지 못생긴 게 못생겨 보이지 않는다. 보다보면 그게 또 귀엽다. 다른 낙서들과 싸워가며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은 더욱 사랑스럽다. 이 녀석들은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 그 어떤 유명한 캐릭터 디자이너가 매끈하게 뽑아낸 그림도 이보다 더 황홀할 수는 없다. 너무 달콤해서 가끔은 두렵지만 그래도 참고 견딘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

주연아 수필집 <누구나의 가슴에도 빙하는 흐른다>

나는 문학을 ‘땜통’으로 시작했다. 시는 김상진 장례식 때 미리 정했던 유명 대학생 ‘문인’이 사양을 하는 바람에 ‘사건 전날’ 취생몽사 중 쓰고 호된 데뷔 신고식을 치렀고, 산문은 한 계간지의 시집 서평 원고를 ‘원로’ 신경림(시인)이 2개월, 그리고 ‘중견’ 정희성이 3주를 써먹고 마감 일주일이 남은 시점에 황급히, 문단 (‘신예’는 아니고) 신참이었던 내게 숙제처럼, 아니 명령조로 떠맡겨졌던 글이 첫 작품이다. 문학이, 글쓰기가 운명이라고 자못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때마다 ‘땜통은 나의 글쓰기의 운명’이라고 속생각할 정도로 그런 처지는 계속 이어졌다. 소설은 유일한 예외지만 그래서 그런지 문학하는 친구들은 나를 소설가로는 특히 별로라고 여기는 눈치다. 어쨌거나,그런 운명의 시련()을 견디는 와중에 나는 수필이 정말 대단한 문학 장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수필이야말로 뭔가 문학을 ‘땜통’하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문학 전체에 내용-미학적 총체를 부여하고 급기야는 총체 자체를 미학화하는 궁극의 장르 아닌가…. 지난 세기 말 한 잡지의 편집을 잠깐 맡으면서 박완서(소설가)-신경림-김윤식(평론가)-김병익(평론가)의 산문을 집중 4회 연재한 적이 있는데, 그때 ‘산문=수필’은 시간의 낭떠러지를 건너는 ‘늙음=아름다움’의 다리였고, 그때 수필은 문학의 위기, 아니 ‘진지함의 위기’를 극복하는 구원의 장르였다. 오늘날 한국에 수필가는 무수히 많다. 그(녀)들은, 원고 청탁도 없이, 그러니까 땜통의 기회도 없이, 그냥 글을 쓰고 책을 낸다. 그 숱한 책들 중 많은 부분이 총체를 능가하는 땜통의 미학보다는 종이가 아까울 정도의 낙서 혹은 일기에 가깝다는 점이 나를 무겁게 짓누를 때 나는 주연아의 글을 만나고 모종의 희망을 느꼈었다.주연아의 첫 수필집 <시보다 짧고 사랑보다 긴>에 실린 글들은 여러 문단 원로들을 ‘수필의 젊음’으로 찬탄케 했고, 상당 기간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다. 6년 만에 나온 위 책은 자기보다 나이 어린 집안 식구의 죽음을 머금고, 문체가 ‘나이의 아름다움’을 뿜는다. 그것은, 여전히 ‘한국적 수필풍’보다 젊지만, 예술 속으로, 총체 미학 속으로 나이를 먹은 아름다움이다. 가령, 표제작의 이런 귀절. “누구나 가슴속엔 녹지 않는 빙하가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빙산들…. 그의 아픔을 보듬고 싶지만 두개의 육안밖에 없는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나에게 천개의 눈이 있다면…. 그 빙하가 나의 눈에서 그의 눈으로, 그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으로 흐르게 할 수도 있을 텐데….”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

타이틀 시퀀스의 세계 [3]

인간의 위선과 배반을 한눈에 영화제목에 담긴 뜻을 설명하는 타이틀 시퀀스 타이틀 디자이너 솔 바스는 “<싸이코>는 워낙 많은 뜻을 가진 단어이기 때문에 오프닝 타이틀이 제목의 의미를 분명하도록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제목이 지나치게 풍성한 의미를 담고 있거나 심오하다면, 그리고 그 제목을 포기할 수 없다면, 단어를 깎고 다듬어서 관객에게 안기는 가이드 역할은 오프닝 타이틀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파이크 리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주로 작업했던 랜디 볼스마이어는 <차이니스 박스>에서 바로 그런 역할을 떠맡았다. 당시로선 드물게 100% 컴퓨터그래픽으로 작업한 이 오프닝 타이틀은 홍콩의 그림엽서와 염주, 우표가 붙은 편지봉투 등 기억이 담긴 물건들을 차이니스 박스 속으로 차곡차곡 밀어넣는다. 식민지로 보낸 백년의 시간이 뒤섞여 오래된 나뭇결 안에 봉인되는 것이다. 볼스마이어는 “나와 웨인왕 감독은 끝나지 않는 나선과도 같은 차이니스 박스가 홍콩의 반환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솔 바스가 디자인한 <현기증>과 <살인의 해부>는 제목을 곧이곧대로 따라가는 것 같으면서도, 간단한 그래픽 안에서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의미를 풀어낸 타이틀이다. 인체를 조각조각 나눈 애니메이션이 퍼즐을 맞춰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살인의 해부>는 바스가 “영화의 미스터리와 함께 인간의 위선과 배반을 메타포로 응축한” 걸작. 이 간결한 오프닝 타이틀은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면서 오랜 파트너로 인연을 맺었던 오토 프레밍거와 솔 바스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나를 각기 다른 형태로 완성한 듯한 느낌을 준다. 앨프리드드 히치콕의 <현기증>은 제목의 의미가 그대로 몸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타이틀이다. 타이틀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정말 현기증이 나기 때문이다. 히치콕이 좋아하는, 커다랗게 뜬 여자의 눈동자는, 검은 동공이 확대되면서 소용돌이치는 태극문양 나선으로 변해간다. 암흑 속에서 출렁이는 네온빛 그래픽은 다시 카메라와 함께 여자의 눈동자 바깥으로 물러나온다. 마치 현기증에 비틀거리는 한 여자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나온 것처럼. 이에 비해 <몬스터 주식회사>는 명료한 제목이 귀여운 애니메이션으로 살아난 경우다. <몬스터 주식회사>는 밤이 되면 벽장 속에서 괴물이 나온다는 옛날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 때문에 이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을 구성하는 요소는 문과 괴물 딱 두 가지뿐이다. 그러나 그 문과 괴물은 결코 단조롭지 않다. 전세계 모든 아기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 비명소리를 빨아들이는 ‘몬스터 주식회사’는 몬스트로폴리스를 먹여살리는 거대 전력회사. 그 회사의 모든 문과 모든 괴물 직원이 출동한 것 같은 이 타이틀은 문들이 모여 글자를 뱉어내고, 몬스터들이 종횡무진하며 다시 글자를 집어삼키는 생기발랄한 애니메이션이다. 스탭 직업 따라가는 타이틀 LP판은 음악감독, 타자기는 시나리오 작가 <델리카트슨> 오프닝 타이틀은 그림엽서처럼 아늑하다. 거친 면포대와 손길에 닳아 희미하게 빛나는 나무탁자, 아직도 선명한 흑백사진은 오래 전에 버려진 어느 작은 방 안에 좋았던 시절을 향한 향수를 흩어놓는다. 그 소품들을 만날 때마다 잠시 멈추는 카메라도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 세심한 행보는 고운 먼지 위에 바람을 일으킬까 마음쓰기 때문은 아니다. 소품 하나하나에 얹힌 글씨, 그들이 하는 일을 따라 주어진 스탭들의 이름을 읽기 위해서다. <델리카트슨>은 검은 잿가루가 앉은 책 위엔 시나리오 작가를, 나란히 인화된 두장의 흑백사진엔 편집을, 분홍색 스티치가 수놓인 천조각 위엔 의상을, 나무로 만든 자 위엔 프로덕션디자이너를, 구식 수동카메라 위엔 촬영감독을 올려놓았다. 함께 영화를 만든 수십명의 스탭들은 자기 이름이 먼저 나가길 바라겠지만, 이런 정성이라면 이름이 언제 나가느냐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도 같다. <애들이 줄었어요>는 <델리카트슨>의 배려를 고스란히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한 타이틀이다. 영화 내용처럼 조그맣게 줄어든 아이들은 집안과 정원에서 커다란 글자들 사이를 미끄러지는 모험을 겪는다. 쏜살같이 돌아가는 LP판은 음악, 거대한 타자기 자판이 찍어내는 글씨는 시나리오 작가, 연필과 도화지는 프로덕션디자이너를 위한 것이다. 결국 우체통까지 휩쓸려 들어간 두 아이가 아우성치는 편지봉투 바깥엔 감독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