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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듀나의 배우스케치] 박신양

전 <파리의 연인>도 안 봤고 <쩐의 전쟁>도 안 봤습니다. 다시 말해 박신양이라는 스타의 경력을 제대로 평가할 입장이 아니라는 거죠. 저에게 박신양은 <범죄의 재구성>이나 <4인용 식탁>과 같은 영화에 출연한 장르 전문배우입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어요. 좀더 인기있는 <편지>나 <약속>은 단 한번도 진지하게 자리를 잡고 본 적이 없으니 뭐라고는 못하겠고. 아무래도 전 박신양을 멜로드라마 배우로 본 적이 없나 봅니다. 적어도 그가 선택하는 멜로영화들이 제 취향이 아닌 것이겠죠. <바람의 화원>을 보기 시작했을 때 전 이런 선입견을 갖지 않고 그의 연기를 보는 게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와는 달리 텔레비전 시리즈는 혼자 보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 해도 사방에서 온갖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게다가 거의 완벽하게 신윤복 캐릭터에 적응한 문근영과는 달리 비판도 셉니다. 지금도 전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과 비교해 그와 송일국을 까는 인터넷 기사를 읽고 있는 중이죠. 그래도 전 궁금해집니다. 과연 <바람의 화원>에서 보여주는 박신양의 연기는 <쩐의 전쟁>이나 <파리의 연인>을 보고 나서 볼 때와 보지 않고 볼 때가 다른가? 다르면 얼마나 다른 거지? <바람의 화원>에서 그가 보여주는 김홍도 연기에 걸리는 구석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그는 정통사극의 테크닉을 보여줄 때 많이 약합니다. 드라마의 김홍도는 이미 궁중생활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베테랑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왕 앞에서나 다른 신하들 앞에서 서툴기 그지없어요. 일부러 규율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어떤 식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확신이 서 있지 않은 것입니다. 정조 역을 하는 배수빈과 비교해보면 차이는 더 분명해집니다. 경험문제가 아닌가 생각해요. 사극이란 그냥 아무렇게나 시작해도 되는 게 아니죠. 하지만 그의 다른 연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저는 그가 일상적인 현대극의 대사로 사극을 하는 게 뭐가 그렇게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어차피 우리는 18세기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는지 아는 바가 없으며 당시의 언어와 동작을 그대로 재현할 수도 없습니다. 그걸 고려한다면 배수빈의 좀더 정통적인 왕 연기나 박신양의 김홍도 연기는 큰 차이가 없어요. 여전히 궁중장면은 거슬리지만 그가 문근영과 함께 다소 나사가 풀어진 스승 역을 연기할 때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배우 궁합도 맞는 편이며 (여전히 ‘사제라인’을 생각하면 오싹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감정 표현도 좋고 특히 코미디에 뛰어납니다. 원작의 김홍도는 이보다 더 심각한 사람이지만 문근영이 자기만의 신윤복을 만들었다면 박신양이라고 자기만의 김홍도를 연기하지 말라는 법은 없죠. 하지만 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연기 매너리즘은 그의 경력을 따라온 시청자에겐 방해가 됩니다. 전 얼마 전 인터넷에서 어느 외국 시청자와 함께 이 프로그램과 박신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박신양이 …에서 보여준 이 연기는 <쩐의 전쟁>(또는 <파리의 연인>)과 똑같아!”라는 반박을 몇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는 주객이 전도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죠. 저에겐 이런 상황에서 대처할 기성품 반박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럼 케리 그랜트나 오드리 헵번 같은 배우들은 어쩌고?” 맞는 말이죠. 자신의 고정된 매너리즘을 고수하면서 평생을 스타로 보낸 사람들은 넘쳐납니다. 그건 문제가 아니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전 이 고정된 반박을 제시할 수 없어요. <파리의 연인>이나 <쩐의 전쟁>을 보지 않는 한, 특정 매너리즘이 특정 상황에서 반복될 때 시청자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PD와 DJ가 티격태격하더니…

드라마 <온에어>와는 주력 분야부터 엄연히 다르다. 드라마 왕국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고든 동명 드라마와 달리 뮤지컬 <온에어>가 다루는 건 총천연색 텔레비전 세상에 빛을 잃어가긴 해도 여전히 낭만적인 라디오 방송. 게다가 달큰하고 발랄한 로맨틱코미디다.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매직타임>. 융통성없이 진지하기만 한 김순정 PD와 엉뚱한 우아미 작가가 몸담은 이곳에 아이돌 그룹 그리핀 출신의 가수 알렉스가 합류한다. 지난 3년을 군대에서 보낸 알렉스는 라디오 DJ로 컴백하는 게 못마땅하고, 라디오의 따스함을 사랑하는 김순정 PD는 그의 태도가 실망스럽다. 이후는 당신의 상상대로. 다투다 화해하길 반복하던 두 사람은 결국 이 수상쩍은 감정의 정체가 사랑임을 깨닫는다. 관객의 사연을 직접 읽어주는 등 라디오 방송의 형식을 이어받은 주크박스 뮤지컬. 다만 익명의 다수에게 열린 라디오 프로그램의 특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인지 곁가지로 첨가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시즌2’라는 꼬리표가 더해진 이번 공연은 2008년 선보인 뮤지컬 <온에어>를 각색·보완한 작품. 알렉스가 군 제대 뒤 복귀하는 아이돌로 설정된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김동욱과 아이돌 그룹 클릭비의 오종혁, 연극 <실연>의 장서원이 알렉스에 캐스팅됐다.

[듀나의 배우스케치] 윤진서

윤진서가 처음으로 관객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올드보이>. 유지태의 죽은 누나로 나왔었죠. 뭐랄까, 매력적인 역할이었지만 그만큼 배우로서 평가하기 어려운 역할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 그것도 정신이 그렇게 온전하다고 할 수 없고 집착이 심한 남자의 회상 속 주인공이었으니 꿈이 도대체 몇겹으로 겹친 건가요. 그 때문에 <올드보이>를 보고 “와, 이 배우가 도대체 누구야?”라며 궁금해 하고 흥분했던 관객이 <파리의 연인>에 카메오 출연했던 같은 배우를 보고 급실망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죠. 그 뒤로 한동안 윤진서의 배우로서 기능성과 가치는 의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이 사람이 그 이후 <액션배우 정맑음>(TV)이나 <슈퍼스타 감사용>과 같은 작품들에게 보여준 연기엔 <올드보이>의 영화적 매력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배우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 단점들만 노골적으로 드러났지요. 특히 비음이 강한 윤진서의 독특한 발성은 문제였습니다. 이 배우는 지금 <돌아온 일지매>(TV)로 첫 미니시리즈 주연을 준비하는데, 과연 이 핸디캡을 어떻게 돌파할지 모르겠어요. 영화 관객에겐 이런 것도 슬슬 개인적 매력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지만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비전형적인 발성법에 훨씬 민감하지요. 그럼에도 <올드보이> 때 우리가 접했던 윤진서의 가치는 조작된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조작된 환상인 건 맞았어요. 하지만 거기엔 배우의 개성이라는 기반이 있었던 거죠. 단지 그 기반은 일정한 조건이 주어졌을 때 나타났습니다. 윤진서는 러닝타임이 짧을수록, 작품이 비주류일수록, 대사가 적을수록, 주인공의 개성이 일상성에서 벗어나 있을 때일수록 좋았습니다. <따로 또 같이>나 <나의 새 남자친구>와 같은 허진호 단편들에서도 그랬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도 그랬지요. 둘 다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만 그걸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위태롭게 흔들리는 젊은 배우의 매력을 잘 잡아낸 작품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전 윤진서의 주목할 만한 장점을 하나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건 이 배우가 전형적인 시네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고 심지어 연기까지 하는 많지 않은 한국 배우 중 한명이라는 것입니다. 가끔 이 배우를 바라보다보면 시네마테크의 옛 영화들과 채널링을 하는 게 보여요. 매체의 꿈과 같은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장르적 이해는 종종 기술적 테크닉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그 때문에 윤진서는 여전히 기술적인 결함에도 영화 재료로서 좋은 배우입니다. 이게 배우에게 꼭 좋은 소리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배우를 캐스팅하려는 감독에게는 좋은 소식이죠. 최근 몇년 동안 윤진서는 독립적인 배우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노력했습니다. <두사람이다>와 같은 장르호러물의 주연을 맡기도 했고 <바람 피기 좋은 날>이나 <비스티 보이즈>와 같은 주류영화에 도전하기도 했지요. 그 결과는 앞에 제가 예를 든 영화들보다 평범했지만 그래도 나름 적응의 흔적이 보입니다. 여전히 강한 비음은 남아 있지만 발성은 자기 개성에 맞추어 통제되고 있고, 앙상블도 좋아졌어요. 소문에 따르면 결코 모범적인 팀플레이어라고 할 수 없었던 성격도 나름 개선되었다던데, 그건 제가 신경 써야 할 일은 아니죠. 장률 감독의 <이리>가 곧 개봉됩니다. 윤진서는 이 영화에서 이리 폭발 사고 때 태어난 지적장애인을 연기했죠. 설정만 봐도 딱 라스 폰 트리에식 성녀학대극이라, 이런 종류의 영화에 민감하신 분들(저 같은 사람 말이죠)에겐 그리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배우 윤진서의 기능성과 매력이 극대화된 작품이라는 점은 밝히고 싶군요.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박자의 북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어긋난 리듬감, 비전형적인 캐릭터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해, 그리고 꿈결과도 같은 시적 질감과 같은 것 말이죠.

‘대학살의 왈츠’를 기억하라 <바시르와 왈츠를>

<바시르와 왈츠를>은 기묘한 영화다. 아리 폴만 감독은 어머니와 아이를 포함한 3천명의 무슬림이 이스라엘 군부의 비호와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한 ‘사브라-샤틸라 학살’의 개인적인 기억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다큐멘터리인 동시에 애니메이션인 학살의 증언이 가능한 일일까. 사실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다큐멘터리, 환상을 창조하는 그릇으로서의 애니메이션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조화롭게 왈츠를 출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아리 폴만 감독은 <바시르와 왈츠를>을 통해 흥미로운 영화적 왈츠를 안무해냈다. 정치적으로 논쟁적이고, 형식적으로 전복적인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을 탐험한다. 오리 시반: 대학살에 대한 자네 관심은 그 사건보다 훨씬 오래전에 생긴 거야. 다른 학살에서 비롯된 거라고. 사실 ‘다른’ 수용소가 그 밑바탕이 된 거야. 자네 부모님도 수용소에 계셨었나? 나: 응 오리 시반: 아우슈비츠? 나: 응. 오리 시반: 그러니 대학살이란 (문제는) 여섯살 이후로 자네와 함께해온 거야. 자넨 그런 학살과 수용소(라는 문제)들을 통과하며 살았던 거고. 해결책은 사브라와 샤틸라에서 진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는 수밖에 없어. 사람들을 찾아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있었는지 물어봐. 상세하게 들어보라고. 그러다보면… 자네가 정확히 어디 있었는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될 수도 있어.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 중에서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은 기억과 망각의 이중무다. 1982년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촌 사브라와 샤틸라 두 지역에서 일어났던 대학살의 기억을 독특한 방식으로 길어내는데, 흥미롭게도 이 기억에 관한 영화는 감독 아리 폴만 개인의 망각에 대한 경험에서 출발했다. 그는 당시 레바논에 주둔한 이스라엘군 중 한명으로 그곳에서 벌어진 많은 참사를 목격했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어느 날 돌아보니 자신의 많은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지워져 있음을 알게 된다. 아리 폴만은 이 이상한 경험을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레바논의 강성 기독교도인 팔랑헤 민병대가 사브라와 샤틸라에서 어린아이, 노인 가리지 않고 무슬림을 학살하고 있을 당시 몇백 미터를 사이에 두고 그 광경을 지켜본 영화 속 주인공 ‘나’. 25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친구의 꿈 이야기를 듣는다. 레바논의 한 마을에 진입하기 위해 죽였던 26마리의 개에게 쫓기는 악몽을 자주 꾼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던 주인공 ‘나’는 갑자기 무언가를 깨닫는다. 친구와 다르게 그 자신에게는 그때의 일이 상처로 남아 있기는커녕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말소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그때의 일을 잊을 수 있을까. 왜 그런 거대한 망각의 늪이 내 머릿속을 차지했을까.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나는 무엇을 본 것이며 무엇을 잊은 것일까. 영화감독인 영화 속 ‘나’는 마침내 레바논에 함께 있었던 자신의 동료와 그 밖의 증언자, 조언자 등을 찾아나선다. 나의 기억을 애타게 찾아 떠나는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자신의 ‘이상한 경험’을 영화로 만들다 2008년 칸에서 처음 선보였을 당시 <바시르와 왈츠를>은 큰 호평을 얻었다. 특히 아우슈비츠 문제를 원죄처럼 공유하는 유럽인들에게 대학살이라는 사건이 중심을 차지하는 이 영화가 크게 호소력을 발휘했으리라 추정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단지 소재 덕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비범하다 말하기는 힘들어도 <바시르와 왈츠를>은 명민하고 매력적인 애니메이션이다. 무엇보다 제작방식에서 감독 아리 폴만은 독창성을 발휘했다. 어떤 이유로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인 아리 폴만이 애니메이션 작업에 손을 댔던 것인가. <바시르와 왈츠를>은 1962년에 첫 작품이 나온 뒤 이스라엘에서 나온 두 번째 장편애니메이션이다. 이 믿기지 않는 기록에도 <바시르와 왈츠를>은 완성도 면에서 뛰어나다. 하지만 여기엔 어떤 열악함이 있긴 했다. 그걸 감독은 재치있게 호소한다.“어떤 사람들은 Q&A 시간에 영화 속 인물들이 느리게 걷는 건 그들이 정신적 외상을 입었기 때문이냐고 묻는데,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그들이 늦게 걷는 건 (정신적 충격 때문이 아니라) 예산이 적어서라고.” 인물들의 움직임을 한장 한장 전통적으로 그려내는 컷아웃 기법에 의해 만들어진 <바시르와 왈츠를>에서 그들의 더 정교한 움직임과 실제적인 속도감은 다 돈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큐멘터리로 잔뼈가 굵었던 아리 폴만이 열악한 작업 조건을 넘어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생각을 했던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다. 다큐멘터리를 애니메이션과 접목시켜 표현의 영역을 확장해보자는 것이었다. 영화에는 9명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꿈속에서 개에게 매번 쫓긴다는 ‘나’의 친구 보아즈 레인 부스키라, ‘나’의 정신적 외상을 상담해주는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인 오리 시반, 지금은 네덜란드의 조용한 마을에 칩거하며 사는 옛 동료 카미 크난, 죽음의 위기에서 겨우 살아나 부대로 귀환했던 로니 데이즈, 전장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기관총을 난사한 적 있던 ‘나’의 룸메이트 슈뮤엘 프렌켈, 또 다른 정신치료 상담자 제하바 솔로몬 교수, 그리고 용감무쌍하게 전장의 소식을 알리던 텔레비전 기자 론 벤 이샤이와 당시 탱크 부대 책임자 중 하나였던 드롤 하라찌 등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나’라는 인물. 카메라 앞에 서기를 끝까지 거부했던 이들 대개는 실존 인물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아리 폴만은 일단 실존 인물들을 스튜디오로 불러들여 카메라를 동원하여 인터뷰했다. 이 과정에서 카메라 앞에 서기를 끝까지 저어했던 보아즈 레인 부스키라와 카미 크난은 각각 두명의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아리 폴만은 “9명 중 7명은 실제 인물에게서 영감을 얻었고 2명은 발명됐다”고 말하고 있는데, 일부러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지만 이 두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다음 그 인터뷰 영상을 다듬어 편집했고 몇개의 극중 대화장면도 촬영했다. 그 다음 영상자료를 기초로 심화된 시나리오 작업을 한 뒤 애니메이션 작업에 착수했다. 그 과정에서 실존 인물들은 애니메이션의 인물들로 바뀌고, 성우들에 의해 목소리가 입혀졌다. 그러니까 실제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인물들을 인터뷰한 뒤, 혹은 그게 불가능하면 배우들로 하여금 인터뷰를 바탕으로 카메라 앞에서 연기시킨 뒤, 그 영상 증언을 토대로 전체 극화된 이야기를 정리하고 짜내는 방식으로 나아간 셈이다. 때문에 어떤 이들이 <바시르와 왈츠를>에 관해 말할 때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애니메이션 <스캐너 다클리>와 비교하며 이것도 로토스코핑(실사로 촬영한 뒤 애니메이션 이미지로 전환 출력하는 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냐고 물을 때마다 이 영화의 총감독 아리 폴만과 애니메이션 감독 요나 굿맨이 발끈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들은 <바시르와 왈츠를>을 실사 화면 위에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입혀 완성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다큐멘터리처럼 한번 만들어진 다음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만들어져 나온 이중의 결과물이다. 이 과정에서 아리 폴만이 중요하게 여긴 건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바탕이되 어떻게 애니메이션의 무한한 표현력으로 그 설득력을 확장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중년의 남자가 어두운 과거를 취재하고 그것에 대한 기록을 이야기로만 표현한다면 아마 무척 지겨운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반드시 환상적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이렇게도 말한다.“당신은 이 영화에서 잃어버린 기억·꿈·잠재의식 그리고 전쟁·마약·잃어버린 사랑을 볼 것이다.” 잃어버린 기억… 꿈… 잠재의식… 아리 폴만은 그것을 다큐멘터리로는 표현하기 힘들어도 애니메이션의 보완을 통한다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더 사실적으로, 더 환상적으로 <바시르와 왈츠를>의 매력이 여기 있다. 인물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그 증언이 곧 비주얼로 바뀌는데, 다큐멘터리 화면으로는 도저히 보여줄 수 없는 환상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대체로 애니메이션으로만 가능한(혹은 실사영화라면 엄청난 예산이 들어야 가능한) 초현실적 이미지들로의 확장, 그 슈퍼 표현력의 획득이라는 점에 <바시르와 왈츠를>의 성취도가 있다. 예컨대 이런 장면들. 카미 크난이 전장으로 가던 첫날. 그 이름도 아름다운 러브보트에서 뱃멀미에 고생하던 그는 잠깐 잠이 들고 꿈을 꾼다. 저 멀리서 바다의 여신처럼 보이는 여자가 다가와 배 위로 올라온다. 보니 엄청난 거인이다. 카미 크난은 배를 떠나 그녀의 몸에 아기처럼 안겨 바다를 유영하고 그때 러브보트는 폭발한다. 혹은 ‘나’가 우연히 보게 된 베이루트 공항. 처음에는 활기차고 세련돼 보이지만 순간 환상에서 깨어나고 나면 이곳은 폐허다. 시계는 멈춰 있고 비행기는 불타 있다. 특히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제목을 선사한 시가지 전투장면은 아이러니하다. 룸메이트 프렌켈이 적과의 대치 중 영웅 심리를 참지 못하고 다른 동료의 기관총을 빼앗아 전장 한복판에 뛰어나가 난사할 때의 장면. 그때 그는 기관총의 거친 반동으로 마치 왈츠를 추듯 종종거리면서 주변을 뒷걸음치며 돌아다니게 되고 음악도 그렇게 깔린다. “그 왈츠장면은 전시에 시간이라는 것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보여주려 사용했다. 나는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기관총을 난사했는지 알 수 없다. 누가 그걸 말할 수 있을까? 2초? 10초? 30분? 그 기관총과 함께 시간은 멈춘 것이다.” 감독은 그때 기억의 문제를 시각화하여 제시하는 것이다. 그때 들려오는 ‘나’의 내레이션은 이렇다. “그는 교차로를 건너가지 않고 무아지경에 빠진 듯 춤을 추고 있었어. 적군을 저주하며 거기 영원히 있을 것 같았지. 포격 한가운데에서 왈츠 솜씨를 과시하는 듯했어. 머리 위에 바시르의 포스터가 보였지. 바시르의 추종자들은 200m도 안된 곳에서 복수를 준비했고. 그게 바로 사브라와 샤틸라 대학살이야.” 바시르는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아니지만 그들 모두와 연관을 맺은 역사적 인물이다. 또한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제목은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동맹을 빗대어서 하는 말이다(박스 기사 참조). 마침내 <바시르와 왈츠를>은 마지막 장면에서 바시르라는 정치적 인물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어떤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는지를 짧지만 고통스러운 동영상을 덧붙여 보여준다. 아리 폴만은 가편집본 다큐멘터리를 한편 완성하고 그걸 바탕으로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완성하되, 다시 마지막 장면에서는 충격적인 실사 화면을 덧붙여 마침내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의 접목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정리하고 있다. 왜 ‘깡그리 망각’은 되풀이되는가 <바시르와 왈츠를>에서 정신과 의사이자 친구인 오리 시반은 ‘나’에게 충고한다. “대학살에 대한 자네 관심은 그 사건보다 훨씬 오래전에 생긴 거야. 다른 학살에서 비롯된 거라고…. 그러니 대학살이란 (문제는) 여섯살 이후로 자네와 함께해온 거야. 자넨 그런 학살과 수용소(라는 문제)들을 통과하며 살았던 거고.” 이 문제가 실은 가장 중요하다. 400만명이 넘는 유대인이 온갖 종류의 고문과 도륙으로 죽어간 그날 이후 몇 십년이 흘러 기독교를 따른다는 레바논의 팔랑헤 민병대들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학살하는 역사의 불운이 이어졌다. 그걸 옆에서 목격한 유대인의 자손이자 이스라엘의 한 병사이자 참혹한 학살의 동조자로서의 ‘나’는 충격에 기억을 잃었다. 그러니까 망각은 어떤 식으로건 계속되는가. 언젠가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말했다. “방글라데시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은 소련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의 기억을 덮어버렸고, 아옌데의 암살은 방글라데시의 신음 소리를 가라앉혔으며, 또한 시나이 사막의 전쟁은 아옌데 사건을, 캄보디아 대량 학살은 시나이 사막의 전쟁을 잊게 했다. 이러한 식으로 매사는 계속되고, 결국은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깡그리 망각할 때까지 되풀이된다.”(<웃음과 망각의 책>) 그러니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을 깡그리 잊었던 영화 속‘나’의 망각의 경험도 사실은 전쟁의 외상 때문이 아니라 이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영화 속 ‘나’가 그렇게나 애타게 기억을 찾아 나선 것도 그에 대한 죄책감은 아니었을까? 역사는 반복된다. 슬프게도 망각의 역사로. 알고 나면 충격적인 기억의 역사로. <바시르와 왈츠를>이 전하려는 바다. 사브라-샤틸라 사건 3천명을 학살한 팔랑헤의 복수 1982년 9월16일 레바논의 사브라-샤틸라 난민촌에서 휴머니즘은 학살당했다. 1982년 7월. 레바논 테러리스트들에 의한 미사일 테러로 몸살을 앓던 이스라엘은 대규모 군대를 보내 레바논 남부를 점령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원했던 것은 팔레스타인 해방전선이 레바논에 설치한 미사일 기지를 색출하고 40km에 이르는 안전구역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을 수장으로 한 군부세력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점령한 뒤 기독교도 수장인 바시르 제마엘(영화의 제목 <바시르와 왈츠를>은 그의 이름으로부터 따온 것이다)을 대통령으로 앉히려는 계략을 세우고 있었다. 이는 1975~76년의 내전 이후 끝없는 모슬렘과 기독교도 사이의 테러로 분열된 레바논에 친이스라엘 꼭두각시 정부를 설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리엘 샤론의 계획은 1982년 9월14일 바시르 제마엘이 대통령 취임 9일 전 폭탄 테러로 살해당하면서 좀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바시르의 죽음에 광분한 레바논 기독교도 팔랑헤 민병대가 이스라엘군이 포위하던 팔레스타인 난민촌 사브라와 샤틸라로 기습해 들어간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팔랑헤 민병대의 목적이 팔레스타인군의 색출이라고 믿었지만 이미 팔레스타인군은 시리아로 거처를 옮긴 지 오래였다. 팔랑헤 민병대의 목적은 애초부터 복수였다. 그들은 사흘 동안 3천여명에 이르는 난민을 남녀노소 구분없이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학살극은 <뉴욕타임스> 레바논 특파원에 의해 신속하게 서방에 보도되었다. 기사를 통해 이스라엘 군부의 개입 여부가 문제시되자 이스라엘 정부는 책임자를 색출하는 위원회를 구성했고, 아리엘 샤론은 학살을 방조한 책임을 판결받아 국방장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사브라-샤틸라 학살이 벌어진 지 20년이 지난 2001년, 아리엘 샤론은 이스라엘 총리에 당선됐다. <바시르와 왈츠를>이 공개된 직후 극소수의 서구 및 무슬림 언론은 아리 폴만의 영화가 사브라-샤틸라 학살로부터 직접적인 책임을 회피해온 이스라엘 정부의 전형적인 입장을 대변한다고 공격했다. 이에 아리 폴만은 <바시르와 왈츠를>이 당시 사브라-샤틸라 지역에 사병으로 주둔하던 개인적 기억에 근거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변호했다.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학살의 직접적인 책임자는 레바논 기독교 팔랑헤 민병대들이라는 것이다. 나 같은 이스라엘 사병들이 학살을 직접 자행한 일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민병대들의 계획된 극단적 복수극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는 그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김도훈

대영제국 영화의 OTZ

트뤼포와 고다르를 배출한 프랑스의 영화지 <카이에 뒤 시네마>가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100편”을 선정했다. 프랑스의 감독, 평론가, 산업 관계자 76명이 선정한 이 목록의 1위는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이다.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과 찰스 로턴의 <사냥꾼의 밤>이 공동 2위로 그 뒤를 잇는다. 프리츠 랑의 , 장 비고의 <라탈랑트>,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 버스터 키튼의 <제네럴> 등이 20위까지 순위를 채웠는데 이 영화들은 1960년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1위부터 20위까지 할리우드영화가 14편이나 되는 가운데 오즈 야스지로의 <도쿄 이야기>와 미조구치 겐지의 <우게츠 이야기>가 각각 14위와 16위에 랭크된 점도 눈에 띈다. 그러나 20위 내 일본영화 2편의 존재는 <인디펜던트>와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이 100위 안에 영국영화가 한편도 없는 점을 꼬집어 “프랑스가 대국의 영화를 잊었다”고 대서특필할 만한 구실을 던져주었다. 영국 출신 영화감독인 채플린과 히치콕의 영화가 순위 내에서 몇번이나 언급되지만, 영국 언론들의 분노는 영국에서 제작된 순수 영국영화가 순위 내에 단 한편도 없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텔레그래프>는 데이비드 린, 피터 그리너웨이, 켄 로치 등 위대한 영국 감독의 걸작들이 순위에 오르지 못한 점이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인디펜던트>는 파리에서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는 호주 작가 존 백스터의 말을 빌려 “<카이에 뒤 시네마>를 위시한 프랑스영화계는 오랫동안 영국영화라는 존재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왔다”고도 전했다. 이같은 반발에 대해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 장 미셸 프로동은 “반영국사상이라니 말도 안된다. 설문에 참여한 76명의 선택이 반영돼 만들어진 우연의 결과다. 놀랍지만 의도적이지는 않았다. 브라질영화도 순위에는 없다”고 변명했다. 프로동의 말은 사실이다. 미국영화협회(AFI)에서 선정한 최고의 영화 100편 목록과 비교하면, 독일·이탈리아·스페인·러시아·스웨덴·인도영화까지 섭렵하는 <카이에 뒤 시네마>의 식견은 다양하기까지하다. 참고로 AFI가 선정한 100편 중 98편은 할리우드영화였으며, 그중 외국영화는 영국 감독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콰이강의 다리> 단 2편에 불과했다.

[CF 스토리] 그 슬로건, 동의할만 한가?

최근 몇개 브랜드가 새로운 슬로건을 선보였다. SK브로드밴드는 이라 하고, BC카드는 ‘Beyond Card’를 선언했다. 삼성카드는 ‘생각의 프리미엄’을 말한다. 한번도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겠다, 기존 카드를 뛰어넘겠다, 새로운 생각의 프리미엄을 돌려드리겠다고 장담한다. 세상의 어떤 슬로건도 틀리거나 나쁜 말은 없다. 슬로건만 들여다보면 멋진 말 찾기 경연장 같다. 영문 슬로건을 쓸 때는 중학생도 알 수 있는 수준의 영단어로 참 잘도 조합을 한다(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이해하려면 그 이상 수준의 단어는 암호다). 하지만 말이 멋있다고 좋은 슬로건은 아니다. 좋은 슬로건의 기준은 분명히 있다. 글로벌 브랜드인 BMW의 ‘ultimate driving machine’은 광고계에서 최고의 슬로건으로 꼽히는데, 브랜드가 지향하는 차별적 가치(궁극의 드라이빙을 위한 첨단 기술)를 명쾌하고 강렬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슬로건이 여러 마케팅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는 이유는 1975년부터 현재까지 한번도 바꾸지 않고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슬로건은 경영자들이 교체될 때 함께 바뀌고 그래서 평균 2년6개월의 수명을 가진다고 한다. 슬로건도 마케팅의 수단이므로 필요에 따라 바뀌어야 하지만 슬로건은 개별 광고의 카피와는 다르다. 브랜드 전체를 설명하며 좌우하는 문구이기 때문이다. 슬로건은 원래 스코틀랜드에서 위급할 때 집합 신호로 외치는 소리(sluagh-ghairm)를 슬로건으로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광고로 치면 상황이 위급할 때가 아니라 수많은 ‘말’들 속에서 쉽게 잘 들리도록 외치는 소리가 돼야 한다. 슬로건은 그 유래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소비자뿐 아니라 내부 직원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지침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슬로건은 없다. APPLE의 슬로건 ‘Think different’는 ‘발상의 전환’이라는 흔한 말로 들릴 수 있지만 APPLE은 그 슬로건을 중심으로 직원 모두가 움직였고 그 결과 정말 다른 실체들을 보여줌으로써 흔한 말을 자신의 고유한 슬로건으로 만들었다. SK브로드밴드, BC카드, 삼성카드 모두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담아 슬로건을 런칭했다. 흥미롭게도 SK브랜드밴드와 BC카드는 모두 밴드 음악과 팝아트적인 비주얼을 보여준다. 두 브랜드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새로운’ 세상을 표현하기에 젊은 세대의 음악, 전형을 뛰어넘은 팝아트가 적합했을 것이다. 들리는 음악처럼 새롭고, 보이는 그림처럼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겠단다. SK브로드밴드는 후속광고에서 ‘컨버전스의 새로운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세계 여러나라 민속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힙합춤을 추는 광고를 내보냈다. 전에 보지 못한 춤이다. 광고는 브랜드가 하는 행동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광고 자체가 ‘see the unseen’ 해야 하고 ‘beyond card’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그런 면에서 두편의 광고는 모두 매력적이다. 이처럼 소비자의 기대를 끌어올렸다면, 이제 그에 합당한 실체가 드러나야 한다. 슬로건은 말의 향연이 아니라 실체의 응축이어야 한다. SK브로드밴드에서 하나로텔레콤 때와 똑같은 텔레마케터의 전화를 받았다면 껍데기만 바뀌고 알맹이는 그대로라는 이야기니까. ‘말이 얼마나 강력한가’가 아니라 ‘동의할 만한가’가 슬로건의 기준이 돼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기업의 슬로건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최고 경영자의 생각이다. 광고대행사에 ‘말 맛나는’ 슬로건을 요구하기 전에, 그 광고를 원하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는 어떤 생각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살펴야 한다.

[듀나의 배우스케치] 구혜선

여러분은 특정 배우의 연기력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그리고 그러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전 몇달 전 미니시리즈 <최강칠우>의 첫 2회를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이 시리즈는 1, 2회를 같은 날 방영했지요. 그런데 2회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인터넷에서는 벌써 에릭의 연기력을 비꼬는 기사가 올라오지 않겠습니까? 그 기사라는 게 인터넷 반응을 실시간으로 정리해 올린 것에 불과했지만요. 그날 방영이 끝나기도 전에 에릭에 대한 평가는 정립되었고 그게 시리즈 끝까지 갔던 겁니다. 제 의견은 어떠냐. 전 당시 에릭의 연기나 캐스팅에 별 문제가 없었다고 봅니다. 캐릭터를 건들건들 현대적으로 연기하긴 했지만 원래 그 시리즈 자체의 분위기가 그랬죠. 게다가 전 에릭이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전 오히려 그 사람이 너무나도 조선시대다운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19세기나 20세기 초에 조선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에릭처럼 빈궁하게 마른 얼굴을 한 남자들이 가득하지요. 여기에 대한 제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 주장은 나름대로 객관적인 판단기준을 따르고 있고 논리도 나쁘지 않습니다.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될 거라는 거죠. 그런데도 시리즈 초반에 고정된 미스 캐스팅과 연기 스타일에 대한 비판은 바뀔 줄 몰랐죠. 이같은 논란은 다른 배우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전에 전 송혜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마 <왕과 나>의 구혜선도 비슷한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에덴의 동쪽>의 이연희의 경우는… 아, 불쌍한 배우 같으니라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연희의 <순정만화> 연기는 <에덴의 동쪽>보다 낫습니다. 이 사람은 텔레비전으로 넘어갈 때마다 심각해져요. 더 꼼꼼하게 관리되고 더 어울리는 대사가 주어지는 영화 장르에서 이연희는 유용한 배우입니다. 구혜선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왕과 나>의 악명이 시작된 건 구혜선의 우는 연기를 잡아낸 움짤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구혜선 움짤’로 검색하면 십중팔구 그 움짤이 뜨지요. 보면 엄청 웃깁니다. 하지만 과연 전 그게 한 배우를 평가하는 데 객관적인 기준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움짤이란 결국 순간 캡처와 특별히 다르지 않지요. 순간 캡처 한장으로 한 사람의 미모를 평가할 수 없듯이, 한 배우의 연기를 평가하려면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봐야 합니다. <왕과 나>처럼 호흡이 긴 드라마는 배우의 적응 기간도 고려해야 하지요. 실제로 구혜선은 중·후반부엔 상대적으로 나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같은 우는 장면이라도 표현이 다르지요. 하지만 그래도 ‘구혜선 움짤’의 힘이 강한 건 어쩔 수 없어요. 아무리 팬들이 더 나은 후반 연기를 캡처해 반박용 ‘구혜선 움짤2’를 올려도 오리지널은 그 반박을 능가합니다. 한번 찍힌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린 순간 평가와 움짤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이는 불가항력의 자연현상입니다. 배우가 뒤늦게 항의하거나 변명하면 모양만 나빠질 뿐이죠. 그런 변명을 주변 사람들이 대신 해주어도 마찬가지이고요. 결국 적응하려면 테크닉을 강화하고 전형적인 연기 스타일에 올인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뻔한 답변이 아니냐고요? 네, 뻔한 답변입니다. 그리고 정말 재미가 없지요. 모든 텔레비전 배우들이 움짤과 순간 평가를 겁내면서 모두에게 적당히 통하는 한 지점으로 모인다면 얼마나 심심할까요? 시청자가 좀더 여유있게 대처하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눈에 보이는 걸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며 불끈하는 유희본능을 억누를 필요도 없는 거겠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그렇게 수렴될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아무리 테크닉을 한점에 수렴하려 한다고 해도 배우들의 비균질성이 그렇게 쉽게 깨질 수도 없을 것이며 캐스팅 과정이 그렇게 공정하기만 할 수도 없겠죠. 이런 난장판은 여전히 남을 것이며 뒷담화하길 좋아하는 시청자와 배우들의 기싸움 역시 여전할 것입니다. 그건 좋은 것이겠죠. 줏대없는 인터넷 기자들이 받아쓰기 기사로 이를 억지로 부풀리지 않는다면.

배우 박광정 폐암으로 사망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배우 박광정 씨가 15일 오후 9시40분께 지병인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46세.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인 박씨는 1992년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에 출연하고 같은 해 연극 '마술가게'를 연출하면서 배우 겸 연출가로 데뷔, 영화와 드라마, 연극 무대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해왔다. 그가 출연한 영화로는 '뜨거운 것이 좋아', '작은 연못', '오로라 공주', '물고기자리', '자귀모', '넘버3', '박대박', '아이언팜', '진짜 사나이' 등이 있으며, '사랑을 그대 품안에', '아일랜드', '단팥빵', '하얀거탑', '뉴하트', '대박인생', '사랑한다 말해줘' 등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로 조연을 맡아 개성 넘치는 감초 역할을 했던 그는 작년 개봉한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에서는 주연을 맡았으며, 이 작품으로 작년 제1회 모나코 국제이머징탤런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연극 연출가로도 활발히 활동해 온 그는 2001년 극단 파크를 설립, '개그맨과 수상', '청혼 그리고 결혼피로연', '여성반란', '매직타임', '진짜, 하운드 경위', '죽도록 죽도록' 등의 연극을 선보였다. 올해 초 폐암 판정을 받은 후에도 MBC 드라마 '누구세요'에 출연하며 연기 투혼을 불살랐고, '부드러운 매장', '서울 노트' 등의 연출을 맡으면서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유족으로는 연극인인 부인 최선영 씨와 2남이 있다. 발인은 17일 오전 10시. 장지는 경기 성남. ☎02-2072-2091. hisunny@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니콜 키드먼, 濠 전통악기 불었다가 구설수>

(시드니=연합뉴스) 이경욱 특파원 = 호주 출신의 영화배우 니콜 키드먼이 호주 전통악기 '디저리두'를 불었다가 애보리진(원주민)으로부터 반발을 사는 등 혼쭐났다. 자신이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 '오스트레일리아' 홍보차 독일을 방문한 키드먼은 지난 주말 독일의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예정에 없었던 디저리두를 잠시 불었다고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가 16일 보도했다. 문제는 호주에서 여성이 디저리두를 부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는 것. 긴 대나무 모양의 디저리두는 원주민들이 각종 축제 때 흥을 돋구기 위해 사용하는 악기다. 시드니의 한 애보리진 관련 단체에서 일하는 앨런 매든은 "키드먼이 뭔가를 더 잘 알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마도 키드먼이 디저리두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가 디저리두를 입에 댔을 리가 없다"면서 "키드먼이 디저리두를 불어 보려 했을 때 주변에 있었던 오스트레일리아 제작팀이 말렸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방송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남자 주인공 휴 잭먼 등이 함께 출연했다. 영화배우이면서 영화대본작가인 리처드 그린은 "독일 사람들이 디저리두를 부는 키드먼의 모습을 보기 원했을 것"이라며 "키드먼은 요청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디저리두를 입에 대지도 말아야 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디저리두를 부는 여성은 불임이 된다"면서 "키드먼은 앞으로 임신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린은 "다른 여성들도 키드먼의 행위를 따라 디저리두를 무심코 부는 일이 있을 수 있다"며 "임신을 원하는 여성들은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2편의 호주 홍보 동영상을 제작한 오스트레일리아 감독 버즈 루어만 제작팀이 애보리진의 허가도 받지 않은 채 애보리진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서호주(WA) 킴벌리의 킹조지폭포 밑 연못 발랑가라에서 수영장면을 촬영한 데 대해 애보리진들이 비난하고 나서 루어만 감독팀은 이래저래 구설수에 오르게 됐다. 한 애보리진은 "호주관광청이 전 세계에 우리의 애보리진 문화는 마음껏 짓밟아도 되는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앞서 지난 9월 출판사 하퍼콜린스는 여성들을 위한 한 단행본에서 디저리두 연주 방법을 서술했다가 애보리진 사회로부터 반발을 사 결국 수정판에서 이 부분을 삭제하기도 했다. kyunglee@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 재밌는 게 왜 안 걸렸지?

올해 많은 영화들이 극장 개봉을 했지만, 극장에 걸리지 못한 영화들도 부지기수다. 이들 미개봉 영화 중 올해 국내와 해외에서 DVD로 출시된 영화 10편을 소개한다. 2007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부터 애덤 샌들러의 배꼽 빠질 코미디까지 연말연시 당신을 즐겁게 할 리스트다. 소설 <백야>와 발리우드가 만나면 <사와리야> Saawariya 2007년/감독 산제이 릴라 반살리/138분/출시 소니픽쳐스 노래와 춤에 열광하거나 어색함에 치를 떨거나. 인도영화의 고유한 특징과 마주한 대다수 한국인의 반응은 그럴 것이다. 수입과 개봉은 물론 홈비디오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은 한국에서 인도영화가 차지하는 위치를 잘 말해준다. 일전에 <라간>을 선보였던 제작사에서 <사와리야>를 출시함으로써 몇년 만에 인도영화의 DVD 한편이 추가됐다. 고작 DVD 한장에 반가움과 신기함이 교차하는 경우다. <사와리야>는 <데브다스>(2002)를 연출해 인도 안팎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산제이 릴라 반살리의 신작이다. 사라트찬드라 차테르지의 고전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리메이크된 <데브다스>와 달리 <사와리야>는 특이하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소설 <백야>를 원작으로 선택했다. 언뜻 북구의 밤과 인도영화의 궁합을 상상하기 힘든데, <사와리야>는 그것이 기우였음을 증명한다. 일찍이 루키노 비스콘티가 각색한 <백야>(1957)가 공인된 걸작임이 분명하지만, <사와리야>의 환상적인 분위기 또한 원작의 몽환적인 성격과 몽상가의 이야기와 썩 어울리는 게 사실이다. <사와리야>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옛 연인이 빚는 사랑 이야기를 노래와 춤으로 해석한다. 시리도록 푸른 색감을 기조로 한 세트는 이국적이고 비현실적인 미술로 채워져 있으며, 배우들은 꿈과 사랑과 약속을 마음 깊은 곳에서 내뿜는다. 인도의 전통음악과 팝과 현대음악을 적절하게 섞은 노래는 중독성이 너무 강해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다. 영상과 소리의 재현이 A급인 DVD는 음악의 제작과 프리미어 시사 관련 영상(20분, 22분)을 부록으로 제공한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화장실 코미디 <조한> You Don't Mess With The Zohan 2008년/감독 데니스 듀간/109분/출시 소니픽쳐스 애덤 샌들러와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로 빅히트를 친 주드 애파토우 감독이 만났다. <조한>은 애덤 샌들러가 극중에서 분한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 최고 요원의 이름이다. 조한은 인간 능력을 가볍게 뛰어넘는 슈퍼히어로에 가깝다. 격투의 달인이며 날아오는 총알을 가볍게 피할 정도로 재빠르다. 심지어 총알을 잡아내기도 하며, 엄청난 정력을 자랑하는 섹스머신이다. 이런 겉모습과 달리 그의 진짜 꿈은 커트 기술을 배워 최고의 미용사가 되는 것. <조한>은 대단히 유쾌한 코미디영화다. 조한이 섹스머신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코미디 성격은 정해졌다. 마치 벤 스틸러의 음란 코믹영화처럼 저질 대사를 남발하며, 툭하면 허리를 휙휙 돌리며 강렬한 디스크 춤을 선보인다. 그리고 흡사 아이큐 두 자리 수를 가진 관객을 배려한 것처럼 이야기는 헐렁하다. 바로 이 점이 <조한>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강점이다. 진지하게 영화를 보며 고상을 떨기보다 술을 마시며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즐기기에 그만인 영화! <조한>은 그 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액션 코믹물로 포문을 연 <조한>은 동네 미용실을 배경으로 할머니 손님들에게 음란 서비스를 행하는 질펀한 섹스코미디를 지나, 훈훈한 로맨틱코미디로 마무리 한다. 애덤 샌들러의 다시 없을 음란, 저질 만점의 연기도 압권이지만 미국 퍼스트레이디와 그 자녀들을(부시와 클린튼, 심지어 오바마까지) 두고 벌이는 음탕한 성적 농담들이 저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수위가 높아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화장실 코미디 스타일을 고수하기 때문에 취향을 많이 탈 수 있으니 참고하길. 2007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천국의 가장자리> Auf der anderen Seite(The Edge of Heaven) 2007년/감독 파티 아킨/116분/ 출시 대경DVD 2004년 <미치고 싶을 때>가 베를린영화제를 포함한 수많은 영화제를 휩쓸면서 파티 아킨은 독일영화를 이끌 주자로 나섰다. 이후 3년, 다큐멘터리와 단편 작업에 이어 연출한 <천국의 가장자리>가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자 아킨은 예술영화를 주도할 차세대 작가의 위치에 오른다. <천국의 가장자리>의 복잡하면서도 농밀한 이야기와 성숙한 연출 그리고 대중적인 화법은 전작을 확실히 뛰어넘는 것이다. 터키계 독일인인 감독은 이번에도 자신의 정체성에 뿌리를 둔 이야기를 계속한다. 여섯 사람- 육체의 만족을 얻으려고 매춘부를 집에 들인 터키계 노인,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못마땅한 지식인 아들, 딸의 교육 때문에 독일에서 매춘부로 일하는 터키의 중년 여자, 반정부활동을 하다 독일로 피신한 그녀의 딸, 의지할 곳 없는 터키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독일 여자, 딸의 자유분방한 삶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엇갈린 운명에 관한 이야기인 <천국의 가장자리>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테르의 죽음, 로테의 죽음, 천국의 가장자리’라는 소제목대로 두 사람의 죽음이 벌어진 뒤에야 남은 자들은 천국의 가장자리로 겨우 진입한다. 아킨은 인터뷰에서 사랑이 용서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했다. <천국의 가장자리>는 사랑하기 위해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영화다. 세대간, 민족간, 국가간, 계급간의 날이 쉬 무뎌질 리 없겠지만, 이야기와 연기의 힘이 적잖은 호응을 얻어낸다. DVD 부록인 메이킹필름(57분)이 마음에 든다. 감독의 아내인 모니크 아킨이 영화의 시발점, 주제, 캐스팅, 리허설, 로케이션, 영화제 현장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털이 거뭇거뭇한 래드클리프 <디셈버 보이즈> December Boys 2007년/로드 하디/105분/출시 워너브러더스 올 겨울에 ‘해리 포터’를 만나지 못해 마음 아팠던 팬들에게 <디셈버 보이즈>는 뜻밖의 선물이다. 대니얼 래드클리프는 그간 해리 포터의 캐릭터로만 인식됐는데, 첫 키스와 첫 경험 앞에서 수줍어하는 소년의 역할은 그를 연기자로 바라보게 한다. 마냥 귀엽던 꼬마에서 털이 거뭇거뭇한 청년으로 성장하는 래드클리프를 보는 것 자체가 팬들에겐 기쁨이다. 마이클 누난의 소설을 각색한 <디셈버 보이즈>는 초로의 남자가 1970년대에 보낸 소년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오지에 있는 고아원의 원생 가운데 생월이 12월인 네 소년은 ‘디셈버 보이즈’로서 운명을 공유하는 사이다. 생일을 맞아 휴가 여행을 떠난 넷은 외로운 어른들이 모여 사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도착한다. 가족과 살기를 갈망하는 네 소년이 소소한 사연을 간직한 어른들과 만나 벌어지는 사건은 의외로 심심하다(원작을 읽지 않아 그게 각색 탓인지 연출 탓인지 알 수 없다). 호주의 영화자본이 적극 투입된 <디셈버 보이즈>의 진짜 즐거움은 호주의 거대한 황야와 바다와 해안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서 비롯된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풍광이 소년들의 순수한 마음처럼 빛나는 영화이며, DVD는 고운 영상으로 영화에 답한다. 유일한 부록인 삭제장면 모음(8분)은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고 넘어간 몇몇 부분을 보완한다. 괴짜 작가 어거스틴 버로스의 어린 시절 <러닝 위드 씨저스> Running with Scissors 2006년/라이언 머피/122분/출시 소니픽쳐스 작가 어거스틴 버로스에게도 십대는 혼란과 고통의 시간이었다. 남들과 달랐다면 그는 힘들게 통과한 시기를 글로 써 스스로를 치유했다는 점이다. <러닝 위드 씨저스>는 베스트셀러가 된 성장소설(<가위 들고 달리기>로 번역, 소개됐다)을 각색한 영화다. 1972년, 어린 버로스는 유명작가의 꿈에 빠진 허영심 많은 엄마와 가족에게 무관심한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다. 1979년, 부모의 불화 끝에 어머니의 정신과 의사가 14살 소년을 입양하기에 이른다. 스트레스로 억압받은 인생을 분노로 표출하라는 의사의 주문에 어머니의 질환은 갈수록 심해지고, ‘아담스 패밀리’에 버금가는 의사의 가족 구성원은 십대 소년의 삶을 뒤흔들어놓는다. 소년은 자기 삶이 왜 우울한지, 어디에서 잘못된 건지 궁금하다. TV시리즈 <닙턱>의 각본·제작·연출로 유명한 라이언 머피의 <러닝 위드 씨저스>는 <로얄 테넌바움>과 <아이 하트 허커비>의 가운데에 자리할 영화다. 괴짜 인물들의 엉뚱한 행동을 에피소드식으로 전개한 영화에선 묘한 매력이 흐른다. 명배우들의 앙상블, 1970년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명곡들부터 ‘크로노스 쿼텟’의 재즈연주에 이르는 선곡도 훌륭하다. 수준급의 영상과 소리를 자랑하는 DVD는 캐릭터, 원작자, 미술에 관한 세 가지의 특별영상(19분)을 부록으로 담았다. 오쿠다 히데오 소설이 원작 <인 더 풀> インザプ-ル 2004년/감독 미키 사토시/100분/출시 태원엔터테인먼트 <인 더 풀>은 요즘 가장 사랑받는 일본 작가 중 한명인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처음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동명의 원작 소설은 나오키상 수상작 <공중그네>의 전편에 해당하는 것으로 엽기적인 의사와 간호사 커플인 이라부와 마유미가 여러 환자들과 벌이는 기이한 행각이 내용의 주를 이룬다. 영화는 소설의 다양한 사례를 세건으로 줄였고, 인물의 구성을 상당 부분 바꾸었으며, 배우들의 익살맞은 연기가 원작의 맛깔스러운 대사를 대신한다. 발기가 지속되는 바람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든 젊은 직장인, 정신건강을 원해 수영을 시작했다가 오히려 수영 중독에 걸린 남자, 전열기구로 인한 사고와 화재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바깥 출입에 지장을 받는 여자가 등장한다. 이라부는 이들의 사례를 전혀 의사답지 않은 자세로 임하거나 뚱딴지 같은 행위를 요구하는데, 미키 사토시 감독은 의사의 이름을 빌려 관객에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라는 주문을 건다. <인 더 풀>은 등장인물들처럼 문제를 안고 살던 관객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태도와 소신껏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마음자세를 구하길 원한다. DVD 본편은 깔끔한 영상과 소리를 갖추었으며, 부록으로 캐릭터 분석과 감독의 연출 스타일 등을 다룬 메이킹필름(38분), 리허설 과정(18분)을 수록했다. 본편의 음성해설에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건 아쉽다. 만화 <군계>의 격투를 영상으로 <군계> 軍鷄(Shamo) 2007년/감독 정 바오루이/105분/출시 Tai Seng Video 여문락 주연의 <군계>는 하시모토 이조, 다나카 아키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원작은 격투 만화 팬들의 필독서로 손꼽히는 걸작으로, 주인공 나루시마 료는 소년 시절 부모를 살해하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곳에서 다른 죄수들에게 폭행과 강간을 당하면서 자기 보호를 위해 가라테를 배우며 무도인의 길을 걷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영화는 각색 작업을 거쳤지만 원작을 크게 훼손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이뤄졌고, 핵심 요소인 격투의 비중은 변화가 없다. 그러나 원작 팬의 입장에서 볼 때 아쉬움이 있다. 나루시마는 사악하지만 자신의 결정과 의지를 믿고 실천하는 카리스마를 지녔다. 여문락이 연기한 나루시마는 강렬하지만, 짧은 시간에 이야기를 압축한 탓에 인물을 깊이있게 다루지 못했다. 또한 나루시마의 주변 인물들과 얽히고설키는 사건 전개도 매끄럽지가 않다. 하지만 원작 만화의 백미인 격투에 관해서는 훌륭하게 영상으로 표현했다. 만화에서의 무도인이 발산하는 무게감은 재현하지 못했지만, 기교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아쉬울 것이 없다. <권계>의 격투 연출은 기존 홍콩 액션영화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보고 즐기기 위한 액션이 아닌 사실적인 대결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서 실제 K-1 MAX의 챔피언 마사토를 기용해 나루시마와의 마지막 승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또한 오랫동안 홍콩 권격영화의 팬이었다면 영화 중반 멋진 실력을 발휘하는 양소룡의 건재함이 반가울 것이다. 프로레슬링의 박력을 원하신다면 <컨뎀드> The Condemned 2007년/감독 스콧 와이퍼/100분/출시 소니픽처스 지난해 공개되어 액션영화 팬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컨뎀드>는 미국 프로레슬링 단체 WWE가 설립한 WWE 필름스에서 제작한 영화로, ‘스톤 콜드’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레슬러 스티브 오스틴을 기용한 박력 만점의 액션영화다. <컨뎀드>의 이야기는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러닝맨>을 떠올리게 한다.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들이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 동원되고,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죄수들은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인다. 이 과정은 고스란히 인터넷으로 중계된다. 자극을 좇는 시청자에게 최고의 오락 프로그램이다. 프로레슬링의 명승부를 보는 것처럼 <컨뎀드>는 화끈한 액션이 눈요기다. <러닝맨> <배틀 로얄>을 대충 섞어놓은 이야기는 진부하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담고 있는 액션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80년대 극장가를 장악했던 마초 액션을 재현하듯이 <컨뎀드>의 격투는 힘과 힘의 대결이며, 레슬러로서 갈고닦은 기술까지 영화에서 멋지게 재현한다. <컨뎀드>는 보고 나면 남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B급 액션 애호가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맛있는 영화다. 이번엔 여자 옹박이다 <초콜렛> Chocolate 2008년/감독 프라차야 핀카엡/92분/출시 Magnolia Home Entertainment <옹박>으로 새로운 무술 액션의 세계를 연 프라차야 핀카엡 감독은 넘치는 아류작들과 차별화를 위함인지 여배우를 기용해 또 다른 액션영화를 내놓았다. <초콜렛>이란 특이한 제목의 영화다. <초콜렛>의 여주인공 센은 자폐증을 앓고 있지만, 엄청난 무술 잠재 능력이 있다. 대개는 피나는 수련 과정을 거치고 고수가 되지만, 그녀는 단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무술의 테크닉을 자기 것으로 흡수한다.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무술의 천재이다. 재미있는 것은 트레이닝 과정에 등장하는 것이 이소룡과 토니 자의 영화들이다. 그녀는 열심히 무술영화를 보고 머릿속으로 기술들을 흡수하며 어느덧 고수가 된다. <초콜렛>의 무술 액션들은 <옹박>의 그것과 동일하다. 남녀 성별만 바뀌고 파워가 조금 모자랄 뿐 대단히 높은 기술을 구사한다. 토니 자처럼 점프하며 무릎과 팔꿈치로 실제 가격하는 리얼 액션의 계보를 잇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움찔할 정도로 실감나는 격투를 소화한 여주인공 지쟈 야닌은 가냘프고 앳된 외모의 소유자로 거친 액션을 소화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스턴트까지 소화하는 그녀의 진면목은 영화가 끝난 뒤 이어지는 NG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수입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개봉을 못하고 있어 아쉽다. 유적지에 피어난 죽음의 식물 <루인스> The Ruins 2008년/감독 카터 스미스/91분/출시 CJ엔터테인먼트 스콧 B. 스미스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호주·미국 합작영화 <루인스>는 2008년에 나온 공포영화 베스트 목록에서 빠지면 섭섭할 정도로 괜찮은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멕시코의 휴양지. 해변과 수영장을 오가는 놀이에 싫증이 난 미국인 관광객 4명과 독일 청년 1명이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고대 마야문명의 유적지를 찾아 나서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유적지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총과 활로 감시를 하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갈팡질팡하던 다섯명의 멤버들은 유적지 안으로 몰리면서 하나둘씩 끔찍한 일을 당한다. <루인스>는 잔혹한 살육 행위를 앞세운 최근 공포영화들의 트렌드와는 살짝 거리를 둔다. 돌로 다리뼈를 부수고 절단하는 끔찍한 고어장면도 있지만, <루인스>의 매력은 매 순간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탁월한 분위기 묘사로 심리 공포를 추구하는 데 있다. 유적지에서 여행객을 위협하는 것은 식물이다. 강한 전염성을 가진 이 식물과 접촉을 하면 얼마 뒤 숙주가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식인식물이 나오지만 시각적인 화려함은 전무하다. 그러나 <루인스>의 공포 효과는 대단히 효과적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로 관객을 긴장과 공포로 몰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