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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댓글로 보는 TV] 귀여웠던 ‘우리 약용이~’

올 한해 동안 댓글가에서 가장 인기를 모은 방송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인터넷 포털 ‘다음’의 협조를 받아, 방송·연예 전문 게시판인 ‘텔레비존’에 가장 많은 댓글이 올라온 프로그램을 꼽아보았다. 1위는 MBC 드라마 <이산>이다. <이산>의 댓글은 초반엔 정조(이서진)와 성송연(한지민)의 애틋한 사랑을 꼭 이루어달라는 바람이 주를 이뤘지만, 드라마 후반 정약용(송창의)이 등장해 좌충우돌 사고뭉치로 그려지면서 게시판이 후끈 달아올랐다. 누리꾼은 그에게 ‘정초딩’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우리 약용이’라 부르며 몹시 귀여워(!)했더랬다. 2위를 차지한 <베토벤 바이러스>(MBC)와 5위인 <바람의 화원>(SBS)은 게시판에 누리꾼의 예술적 감수성이 흘러넘쳤던 드라마들이다. 강마에와 그를 따르는 ‘신도’들은 ‘똥.떵.어.리’ 동영상 패러디로 댓글가에 한 줄기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뒤 안으로는 드라마에 삽입된 클래식 음악의 제목을 공유하고 밖으로는 연주장면 동영상을 퍼날랐다. 음악 전공자들이 <베토벤 바이러스>에 등장하는 악기와 연주법, 용어 및 곡 해설에 전념하는 사이, 미술 전공자들은 <바람의 화원>을 패러디한 아름다운 그림과 조각을 선보였다. 기념 티셔츠를 디자인하고 도화서 문양을 낙관으로 만들어 나눠 갖는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됐다. 올 한해 드라마를 사랑한 누리꾼은 <일지매>(4위)를 보며 ‘파문놀이’(예: 인조 “난 MB를 벤치마킹 했다” 파문)를 즐겼고, <쾌도 홍길동>(6위)과 함께 ‘멍청이놀이’(모든 말을 ‘멍청이’로 끝내는 놀이)를 했으며, <에덴의 동쪽>의 무수한 등장인물을 소재로 ‘짝짓기놀이’에 심취했다. 올해 드라마 시청률 순위에선 찾아볼 수 없는 <태양의 여자>(7위)의 독특한 재미를 먼저 알아보고 “본방 사수”를 외쳤던 누리꾼이지만, <너는 내 운명>(10위)의 가혹하리만치 뒤틀린 설정에 대해선 “막 나가는 드라마”, “다중인격 새벽”이라는 악플을 서슴지 않았다. 지금 <뉴하트> 게시판에는 지난 12월15일 세상을 떠난 배우 박광정을 추모하는 글들이 줄을 잇는다.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의 게시판이 붐비는 건 당연하지만, 시청률과 댓글 수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시청률 집계 기관인 AGB닐슨미디어리서치가 발표한 2008 시청률 상위 10개 프로그램과 ‘텔레비존’ 댓글 수 상위 10개 프로그램 중 겹치는 것은 <이산>과 <뉴하트> <너는 내 운명>뿐이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는 일일극이나 주말극이고, 게시판이 붐비는 드라마는 주중에 방영되는 ‘미니시리즈’다.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경우, <일요일 일요일 밤에-우리 결혼했어요>는 시청률 상위 5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댓글 수에선 단연 1위로 꼽혔다. 텔레비전 시청층이 점차 고령화된다는 또 하나의 방증이 아닐까. 안녕, 우리가 열렬히 사랑했고 잘근잘근 씹었던 2008년 방송 프로그램들이여! 다음 ‘텔레비존’ 댓글 수 순위 드라마 부문 1. <이산> 2. <베토벤 바이러스> 3. <뉴하트> 4. <일지매> 5. <바람의 화원> 6. <쾌도 홍길동> 7. <태양의 여자> 8. <온에어> 9. <에덴의 동쪽> 10. <너는 내 운명>

[2009 라이징 스타] SK 텔레콤 부장님편 CF모델 최다니엘

사람들은 종종 캐릭터와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를 혼동한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의 양수경이 다혈질에 앞뒤 가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들이대는 캐릭터라고 해서 양수경을 연기한 최다니엘이 그런 성격일 리는 없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최다니엘은 능청스러울 것 같다. 이동통신사 광고에서 신입사원이 되어 ‘부장 싫으면 피하면 되고~’로 시작되는 노래를 불러대는 모습 또한 능청스러워서였을까. “양수경 같은 모습이 내 안에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람 대하는 것도 되게 어려워하고, 한번도 내가 능청스럽다고 생각한 적 없다. 난 항상 진지했다.” 드라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이다인은 그가 “의외로 감성적이고 또 굉장한 노력파”라고 얘기했다. “고시공부하듯이 대본을 달달 외우”기도 했던 그는 초짜 연기자 특유의 근성으로 캐릭터에 놀랍게 몰입했다. 그 결과 전체 드라마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양수경만의 개성을 발산하는 ‘수위 조절’에 성공했다. 데뷔 동기는 의외다. 고등학생 때 빼빼로CF로 데뷔한 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부귀영화를 꿈꾸며 허황된 꿈에 젖어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몇편의 CF를 찍고 방송에 잠깐씩 얼굴을 비추긴 했지만 제대로 된 연기는 해보지 못했다. “그땐 별의별 알바를 다 했다. 입에 풀칠하기 바빴는데, 그 안에서 행복을 누렸다.” 누구나 다 배고픈 시절이 있지 않냐며 과거를 툴툴 털어버리고 현재에 충실한 모습이다. 아직 잡혀 있는 작품 계획은 없다며 “백수라서 요즘 힘들다”고 엄살을 피웠지만 “나이를 먹어서도 계속 연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은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처럼만 땀 흘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말이다.

[영화화 추천 만화] 네모칸 뚫고 스크린에서 놀자

네모칸 속 그림들이 답답한 틀을 벗어버리고 넓은 스크린 위에서 살아 움직인다면? 만화책을 읽으면서 누구나 한번쯤 품어봤을 상상이다.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를 토대로 한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 이어 만화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들이 계속 탄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화전문지 <팝툰> 기자들이 영화화할 만한 만화들을 추천했다. 한국 히어로만화의 선구자 <트레이스> 고영훈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웹툰 <트레이스>의 캐치프레이즈는 ‘한국형 히어로만화’다. 30여년 전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트러블과 트레이스가 나타났다. 때로는 괴물의 모습으로 때로는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트러블은 인간을 무차별 공격하고, ‘트러블의 흔적’이라 불리는 초능력자 트레이스가 유일하게 그들에게 맞설 수 있다. 인간이면서 특수한 능력을 지닌 트레이스는 일종의 돌연변이다. 미국 드라마 <히어로즈> 혹은 영화 <엑스맨>처럼 다양한 능력자가 등장하는 <트레이스>는 호쾌한 액션신과 탄탄한 스토리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미 수백만 네티즌의 검증을 받은 작품으로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싶다는 의견과 영화로 보고 싶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일부 네티즌은 <트레이스>의 주인공과 닮은 배우들을 가상 캐스팅하기도 했다. 트레이스를 이용하려는 권력과 이에 맞서는 트레이스의 대결을 다룬 ‘거지’ 에피소드가 가장 높은 호응을 얻었다. 복수를 설계하라 <란의 공식> 양영순 상대의 캐릭터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동선을 짠 뒤 누구도 알아챌 수 없는 ‘설계’를 통한 복수를 거행한다. 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다. 설계자는 절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항시 복병은 숨어 있는 법. 아이의 가벼운 복수는 끝내 살인까지 이어지는데, 이것 역시 또 하나의 설계다. 그렇다면 자신 외 제2의 설계자가 있다는 결론. 숨겨진 진범을 찾기 위한 진짜 설계가 시작된다. 양영순 작가의 <란의 공식>은 이렇듯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로 마지막까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치밀한 두뇌게임이다. <더 게임> <쏘우> 등 기존 영화와도 맞닿아 있지만, 이 만화의 묘미는 엄격하기로 소문난 명문고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이라는 점이다. 골드클래스의 숨겨진 권력구도가 드러나고, 모두를 파멸시키는 설계자의 실체가 밝혀진다. 이 정도면 청소년과 성인 모두를 겨냥한 숨막히는 추리게임이 되지 않을까. 연재가 끝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댓글에서는 속편과 영화에 대한 독자의 요구가 이어진다. 가상 캐스팅을 생각해본다면 소심한 성격이지만 불같은 결단력을 지닌 인물, 사람의 행동을 세심히 관찰하는 주인공 란에는 류덕환, 온화한 미소 뒤에서 복수의 칼날을 가는 담임은 송영창이 어울릴 것 같다. 좀비라서 행복해요? <좀비의 시간> 이경석 내가 좀비가 된다면? 그냥 죽어버릴까, 그러기엔 억울하니까 다른 사람도 좀비로 만들까. 죽음을 마냥 기다려야 하는 이 시간은 아마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경석의 <좀비의 시간>은 이 고통의 시간을 행복한 시간으로 바꾼다. “웃긴 얘기지만, 좀비에 물리고 나서 더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라는 주인공 준수의 대사에 이 만화의 핵심이 있다. 준수는 느닷없이 좀비에게 물리고, 소심한 백수에서 가족과 연인과 친구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멋진 남자로 변한다. 좀비로 변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 만화는 좀비물의 단순한 규칙에서 진화했다. 인간은 좀비에게 무조건 쫓기고 좀비의 머리를 총으로 쏴서 죽이는 것이 기본이라면 이경석의 만화에는 좀비로 변해가는 사람들의 슬픔과 희망이 동시에 녹아 있다. 말하자면 좀비애와 인간애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광화문에 운집한 좀비들 사이에서 좀비가 된 아들과 그 아들을 죽여야 했던 형사 아버지의 운명적인 만남은 명장면이다. 장르의 공식을 무너뜨린 <좀비의 시간>은 B급 장르에서 S급 감동을 선사한 작품이다. 물론 이경석 특유의 유머도 빠질 수 없다. 굳이 비슷한 작품을 꼽으면 2004년 영국에서 제작된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 닮았다. 에이즈 보균자를 사랑한 남자 <푸른 알약> 프레데릭 페테르스 20분의 1밀리미터의 얇은 고무, 즉 콘돔 없이는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연인이 있다. <푸른 알약>은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작가 프레데렉 페테르스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HIV 양성반응, 즉 에이즈 바이러스 보균자인 카미를 사랑한 남자 프레데릭의 특별하지만 평범한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그런 사랑은 아니지만 대신 에이즈 환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아들의 생활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담아낸다. 그들은 ‘푸른 알약’만 있으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불안은 존재한다. 작은 상처에도 두려움을 느끼고, 콘돔이 살짝 찢어지기라도 한다면 바이러스 감염이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부리나케 찾아간 의사는 바이러스 감염이 “지금 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갔을 때 하얀 코뿔소를 만나는 확률”이라고 말하지만, 그 두려움은 쉽게 떨쳐낼 수 없다. 그리고 남자는 그 불안이 자신의 사랑임을 깨닫는다. <너는 내 운명>처럼 에이즈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지만, 소재 자체에 지나치게 기대지 않고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려고 애써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들의 따뜻하고 행복한, 그러나 조금 불안한 삶을 엿보는 것뿐이다. 동심은 아름다워 <마음이 만든 것> 정필원 만화의 인물들이 실사로 눈앞에서 움직인다면 어떤 느낌일지 너무나도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다음 미디어세상’에서 그리 길지 않게 연재된 정필원 작가의 <마음이 만든 것>은 많은 이들에게 어린 유년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깨워주고 그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선머슴 같은 동주와 그저 꼬마로 느껴지는 호진은 둘도 없는 친구다. 고무줄놀이보다 축구가 더 좋은 동주는 엄마의 죽음도 아직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천둥벌거숭이 꼬맹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물고기를 놓아주기 위해, 그리고 선생님에게 얼굴을 붉히는 아빠에 대한 반항심으로 바다를 찾아 떠난다. 한여름 호진과 함께한 여행에서 기면증에 시달리던 아저씨도 만나고 성추행범으로 추정되는 변태도 만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도착한 곳은 엄마의 유해를 뿌렸던 바닷가 마을. 그곳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를 겪게 된 동주는 물고기와 함께 비로소 엄마를 떠나보낸다. 흘러가버린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 따뜻하고 섬세한 인물의 감성을 더욱 빛나게 한 것은 치밀한 배경과 아름다운 색채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연출까지 모든 박자가 시계 태엽처럼 잘 맞물려 찬사를 받았다. 아이들이 주인공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는 인생의 철학까지 던져준, 어른을 위한 성장물에 더 가깝다. 실사영화보다는 아름다운 색채와 풋풋한 감성, 순수한 마음을 오롯이 표현하기에 더 적합한 애니메이션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예쁜 로봇-왕따 짝궁 <3단합체김창남> 하일권 로봇을 사랑한 소년이 있다. 인간처럼 생긴(엄청 예쁜) 로봇 시보레는 고등학교에서 생활하며 시운전을 하게 되고 우연히 왕따인 호구와 짝이 된다. 친구가 없었던 호구는 자연스레 시보레에게 의지하고, 둘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그렇게 교감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시보레가 감정이 없는 로봇이긴 하지만. 로봇과 인간의 교감,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흔하다.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의 이야기도 이젠 질릴 만하다. 하지만 전편인 <삼봉이발소>에서 외모콤플렉스를 다르면서 예뻐지고 싶은 평범한 여고생에게 생의 용기를 주었던 하일권 작가의 역량은 <3단합체김창남>에서도 뛰어나게 발휘된다. 청소년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집단 따돌림을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네티즌의 공감을 얻었다. <3단합체김창남>은 영화보다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원작의 그림이 출판만화나 기존의 웹툰과 달리 애니메이션 그림과 비슷해서 그대로 움직임만 주면 애니메이션이 완성되지 않을까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영화도 물론 가능하지만 이때는 무표정한 로봇 시보레를 연기할 여배우가 영화의 성패를 결정지을 것이다. <3단합체김창남>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되었던 웹툰이다. 찌질해서 더 뭉클해 <최강전설 쿠로사와> 후쿠모토 노부유키 40대 육체노동자 쿠로사와의 일상은 일, 퇴근길 혼자 한잔, 집, TV 시청, 잠의 반복이다. 그 나이 먹기까지 연애도 한번 못해본 건 물론, 친구도 없다. 혼자 지내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나날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외로움을 숨길 수는 없는 일. 생일 저녁 홀로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던 그는 주변의 즐거운 일행을 바라보다 “인망을 얻고 싶다, 크흑” 하며 자신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동료들의 신망을 얻는 데 성공, 다 함께 술자리를 갖게 된다. 작은 성공에 흥분한 쿠로사와는 술집에서 행패를 부리는 중학생 불량배들을 야단치는데, 이게 사단이 되어 매복하고 있던 중학생들에게 끌려가 흠씬 두들겨 맞는다.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중학생들과의 일전을 선포하고, 치밀한 계획과 집요한 추적 끝에 그들을 일망타진한다. 이후 동네 불량배들의 도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쿠로사와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 맞서 싸우며 전설이 되어간다. 잠깐의 비굴함으로 편안한 인생을 영위하는 게 인생철학이라면 철학이었던 그는 이 싸움으로 자신의 존엄함을 발견해나간다. 조금만 띄워주면 우쭐하고, 위기가 닥치면 우선 움츠리고 보는 덩치만 큰 이 남자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 불의와 맞서 싸우고, 궁극의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은 <플라이 대디, 플라이>와 비슷하지만 주인공의 찌질함 지수가 높아 훨씬 더 뭉클하다. 가상 캐스팅은 젊은 시절의 주현, 또는 손현주? 호그와트와 비교하지 마시라 <강특고 아이들> 김민희 왜 한국 청소년영화엔 귀신만 나오나. 교육현실이 이 모양이라 원한에 찬 귀신만 나오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제 식상하니 시원한 초능력자 학원물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강특고는 강원도 오지에 있는, 초능력자를 키우는 학교다. 학생들은 변신능력· 천리이(耳)·괴력 등을 지닌 육체파 능력자와 텔레파시·염력 등을 지닌 정신파 능력자로 나뉜다. 혹여 <해리 포터> 같은 고상한 기숙학교를 상상할까봐 하는 말이지만, 이 학교 엄청 후졌다. 기차도 전기도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TV도 인터넷도 없고, 재래식 화장실에, 쓰러져가는 건물에… 심지어 교장도 시간만 나면 미소녀로 변신하는 초능력자이긴 하나, 그뿐. 특별히 초능력을 가르친다기보다는 초능력자를 격리해 고등교육을 받게 하는 기관이다. 이야기는 동물로 변신하는 능력을 가진 세나와 그의 오빠 태권소년 지문이 초대장을 받아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특별한 줄거리 없이 회마다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되는 개그물인데, 독특한 캐릭터와 황당한 배경설정, 장면마다 빛나는 개그센스로 큰 웃음을 선사한다. 이글대는 야망도, 눈에 불을 켠 경쟁도, 뼈에 사무치는 원한도 없는 유쾌한 학원물! 가상 캐스팅은 세나 역에 이민영, 박예진. 캐리보다 화끈한 노처녀들 <플리즈 플리즈 미> 기선 칙릿 계열 만화로 리얼리티나 재미 면에서 단연 으뜸. 연애하고 싶어 안달난 일러스트레이터 구애리,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커리어우먼 강나경, 남자를 낚는 천재적 기술보유자 점숙은 서른살 동갑내기 친구다. 얼핏 멀쩡해 보이는 이들이지만 하는 짓은 바보 수준. 구애리는 한껏 차려입고 간 클럽에서 모르는 남자와 벨트버클이 얽혀 무대를 뒹굴고, 강나경은 저돌적으로 대시하는 남자후배에게 딱지를 놓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설사를 하고(그래서 결국 후배랑 사귄다!), 점숙은 알고 보니 심각한 애정결핍에 성형중독이다. 여느 칙릿과 같이 30대 여성의 일과 사랑, 자아 찾기를 다루고 있는데, 어딘가 모자란 주인공들의 이야기라 더 정이 간다. 러브 라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개그물이지만 돈, 외모, 계급 같은 문제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매력. 노처녀 시장은 점점 커지는데 <싱글즈> 이후 이렇다 할 ‘노처녀물’이 부족한 한국영화시장에서 노려볼 만한 수작. 가상 캐스팅은 구애리 역에 이하나 혹은 공효진. 천명 중 한명, 당신 아닙니까 <이키가미> 마세 모토로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24시간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배경은 일본, 지금과 비슷한 모습이나 ‘이키가미’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국가번영유지법을 도입한 뒤 국가생산이 증대하고 출산율은 높아지고 범죄율을 낮추는 효과까지 얻는다. 이 법에 따라 모든 국민은 초등학교 입학 때 ‘백신’을 맞는데 1천명 중 1명의 확률로 나노 캡슐이 들어가 있다. 이 캡슐이 들어 있는 주사를 맞은 사람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누가 백신이 들어간 주사를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게 해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고 생산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만화의 주인공인 이키가미 배달원 후지모토는 사망 바로 하루 전에 해당자에게 사망예고증을 전달하고 그의 시신을 수습하는 임무를 맡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자친구에게 마구 폭력을 가하던 남자, 국가번영유지법에 광적인 열광을 보내던 청년, 모두에게 똑같이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고, 이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 자신의 삶을 정리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까지 했지만, 굳이 한국영화로 보고 싶은 이유는 책 속 세상이 지금의 우리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법에 따라 국가의 번영을 위해, 권력의 유지를 위해 국민의 생명을 관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일본식 전체주의가 거슬린다는 독자가 있기는 하나 조지 오웰도 <1984년>에서 국민을 통제하는 암울한 미래사회를 예견하지 않았나.

[포커스] 레드원카메라는 필름을 삼킬까

충무로에 괴물이 나타났다. 작고 날렵한 몸집의 이 괴물은 같은 과인 HD카메라를 먹어치우는 것도 모자라 자신보다 덩치가 크고 힘도 센 필름카메라까지 단숨에 삼킬 기세다. 영화인들도 이 괴물이 궁금해 여기저기서 모여들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먼저 괴물을 만져보려고 나서지 않는다. ‘처음’이라 두렵다는 게 그 이유다. 그리고 누가 먼저 시도할 건지 눈치작전도 치열하다. 도대체 이것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충무로가 이처럼 술렁일까. 이 괴물은 바로 ‘레드원(Red One)카메라’다. <국가대표>가 처음으로 촬영 시작 레드원은 HD카메라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HD카메라와는 다르다. 상업영화로선 국내 처음으로 레드원카메라 촬영을 시도하고 있는 <국가대표>(감독 김용화)의 박현철 촬영감독이 지난해 6월 발표한 영진위 보고서(<디지털카메라의 진화, 레드원 4K카메라>)에 따르면, 레드원과 기존 HD카메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필름과 대등한 화질’이다. 그는 ‘기존의 HD카메라가 2K크기로 촬영한다면, 레드원카메라는 4K방식’이라고 말했다(K는 영상, 색 정보를 저장하는 단위다. 단위가 클수록 화질이 좋다). 필름 역시 4K방식인 점을 감안하면, 레드원카메라는 디지털이면서도 필름과 유사한 화질을 구현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필름카메라의 깊은 심도를 따라갈 수 없었던 기존 HD카메라의 약점을 보완한 것도 레드원의 강점이다. 기존의 HD카메라에는 필름카메라에 사용되는 렌즈를 장착할 수 없었던 것과 달리, 레드원은 렌즈 호환이 가능하도록 제작됐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레드원은 자체 저장장치(기존의 HD카메라가 영상을 테이프에 사용했다면 레드원은 파일 형태로 저장한다)가 가벼워 현장에서의 기동성이 뛰어나다. 이것은 필름카메라는 물론이고, 바이퍼카메라(디지털카메라의 한 종류로 박찬욱 감독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만들 때 사용한 카메라다)와 차별되는 점이다. 지난해 한 기업광고를 통해 국내 최초로 레드원을 사용한 주성림 촬영감독(<뚝방전설> 촬영, <박쥐> B카메라)은 “바이퍼는 외장하드와 연결하는 선이 너무 두꺼운데다가 저장장치가 무거워 현장에서 기동성이 떨어졌는데, 레드원은 크기가 작고 가벼워서 기동성은 물론이고 핸드헬드(카메라를 들고 찍는) 촬영이나 스테디캠(카메라를 몸에 부착하여 찍는)이 용이하다”고 말했다. “현상할 때까지 그림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없었던 필름카메라와 달리, 찍은 당시의 그림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변형 가능성들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도 레드원의 장점이다. 정리하자면, 레드원카메라는 현재 필름카메라를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HD카메라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충무로가 레드원을 주목하는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영화인들은 레드원카메라가 현장에 도입되면 제작 시스템과 제작비 운영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가대표>의 정주균 프로듀서는 “일단 필름 구입비를 비롯한 카메라 대여, 현상, 텔레시네(필름으로 촬영한 영상을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과정), 사운드 작업비용 등에서 2억~3억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필름에 비해 노출범위가 넓은 점도 제작비 절감에 한몫한다. 광량이 부족한 초저녁까지 많은 분량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진행속도가 빨라지고 자연히 전체 회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후반작업업체 C-47스튜디오의 이진 편집기사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현상에서 텔레시네로 이어지는 필름과 관련된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후반작업에 드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을 꼽는다. “레드원의 후반작업은 현재 어려운 영화산업에 적합한 시스템이다. 앞으로는 이처럼 후반작업에서도 비용을 절감한 형태가 상용화될 것이다.” 데이터 부족과 필름업체 저항이 변수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는데도 레드원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촬영감독들은 데이터가 부족한 점을 가장 큰 걸림돌로 꼽는다. HD카메라의 데이터란 일종의 촬영매뉴얼을 뜻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노출수치가 얼마일 때 색감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통용되는 레드원카메라의 데이터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의 빛에 맞춰진 데이터다. 당연히 한국의 상황에 맞는 데이터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데이터가 필요한 것이다. 다른 이유로 레드원카메라의 정착을 꺼리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필름업체들이다. 국내 거대 필름업체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초부터 상황을 계속 주시 중”이라며 “올해부터 필름카메라를 쓰는 현장이 예년에 비해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엄살처럼 들리겠지만 (레드원카메라로의) 시스템 변화는 필름 판매업체부터 관련 장비업체, 필름 후반업체까지 필름산업의 위기가 걸려 있다”고 걱정했다. 필름 판매업체인 태창 엠피필름의 주영대 이사는 “레드원이 아무리 필름과 화질이 비슷하다고 해도 필름만의 질감이 있다. 이 미묘한 차이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며 “현장의 프로듀서, 촬영감독을 대상으로 한 (필름 관련) 세미나를 꾸준히 열고, 테스트 촬영시 촬영기자재를 지원해주는 등” 필름산업도 레드원카메라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 가운데,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국가대표>가 국내에선 처음으로 레드원카메라로 촬영하기 시작한데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체>가 레드원으로 촬영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카메라에 대한 영화인들의 호기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레드원카메라의 한국 수입사인 디지로그시스템의 임희완 대표는 “지난해 봄에는 국내에 3대뿐이었는데, 현재는 주문량이 계속 늘고 있다. 최근 환율 때문에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많은 영화인들이 꾸준히 주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과연 이 작은 괴물이 한국영화산업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2억∼3억원 절약… 결과물에도 만족” 레드원 4K카메라로 촬영 중인 <국가대표> 정주균 프로듀서 -레드원카메라가 필름과 비교해서 제작비 운영 측면에서 어떻게 다른가. =아무래도 필름과 관련된 비용이 절약된다. 현재 레드원카메라 3대로 촬영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필름 구입, 현상, 텔레시네, 사운드 작업비용 등 2억~3억원 정도를 절약하고 있다. 물론 디지털로 작업한다고 해서 후반작업이 다 공짜는 아니다. 디지털에 따른 D.I.(디지털 색보정), 키네코(디지털로 찍은 영상을 극장에 상영하기 위해 필름프린트로 변환하는 과정) 작업은 따로 해줘야 하니까. 하지만 필름으로 찍을 때보다 확실히 비용은 절감된다. 특히 <국가대표>는 컷 수가 많아 3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레드원카메라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충무로에서 최초로 사용하는 만큼 부담감이 크겠다. 지금 다들 누가 총대를 멜 것인가 눈치보고 있는데. =처음 사용하기 때문에 부담감이 크다. 주위에서 많이 기대하고 물어보기도 한다. 박현철 촬영감독이 촬영 전에 많은 테스트들을 거치면서 데이터에 대한 노하우와 감을 잡아갈 수 있었다. 이제는 익숙하다. 그리고 결과물들을 보니까 만족한다. 이 정도 퀄리티면 충분한 것 같다. -단순히 비용문제 외에 현장진행에 있어서도 다를 텐데.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함으로써 진행비용도 절약된다. 필요에 따라 2대 이상을 쓸 수 있으니까. 그것 때문에 촬영시간도 짧아지고 회차도 줄일 수 있다. -프로듀서로서 매력적이겠다. =종전의 HD디지털은 필름과 퀄리티의 차이가 컸다. 그래서 상업영화에서는 높은 수준의 퀄리티를 보장해야 하는 측면에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카메라는 필름과 거의 유사할 정도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런 면에서 매력적이다.

[막장드라마의 모든 것] 찝찝하지만 어차피 다 엉터리잖아

궁금했다. 막장드라마, 왜 보는 건지. 저런 악랄한 설정이 정말 통하긴 하는 건지. 보면서 화는 안 나는지. 그래서 물었다. 흔히들 막장드라마의 주시청자라고 생각하는 아줌마들에게. 직업은 모두 주부이나 40대 중반, 50대 중반, 60대 초반으로 나이대는 제각각인 아줌마 셋을 붙잡고 직접 질문을 던졌다. 흥미로운 답변도 있었고 애청자임을 애써 감추려는 기색도 엿보였지만 남김없이 정리해 재구성했다. 난 삼류라고들 하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주부야. 요즘 인기라는 <너는 내 운명>은 매일 봤어. 그전에 같은 시간 같은 채널에서 했던 드라마도 계속 봤거든. <조강지처클럽>은 중간부터 봤지. 그건 이름이 재밌어. 캐릭터에 맞는 이름을 갖다가 붙여놓으니까 처음 보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더라고. 원수는 정말 원수 같은 짓만 하고 이기적은 이기적이고 복수는 남편한테 복수하려고 딴 남자랑 재혼하고. 한창 방영 중인 <아내의 유혹>도 얘기 듣고 보기 시작했어. 왜 문소리 나오는 거 있잖아, 주말드라마. <내 인생의 황금기> 그것도 봐. 재벌이 나오는 드라마는 나랑은 다른 세계라 호기심이 생겨서 보고. 아침드라마는 시간이 남을 때만 보고 저녁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이지. 대체 드라마를 왜 보냐고? 사실 오후 8시부터가 텔레비전 보기 좋은 시간대거든. 저녁밥 먹고 대충 치운 다음이니까 좀 한가해. 그때 텔레비전 틀면 하는 게 드라마잖아. 어떤 드라마든 한번 보다보면 다음 내용이 자꾸 궁금해져서 또 틀어놓게 되고. 왜, 드라마 보는 거 습관적이잖아. 뭐가 재미있는지 확실하게 집어서 얘기할 순 없지만 중독성이 있어. 젊은 애들처럼 어떤 배우를 좋아해서 보는 것도 아니고. 주위에 그런 사람 있긴 하더라만. 그런데 <에덴의 동쪽>도 그렇고 <너는 내 운명>도 그렇고 갈수록 별로인 것 같아. <너는 내 운명>의 시어머니는 진짜 이상하더라. 자기 자식이 마치 분신인 것처럼. 완전히 병이지 병. 근데 진짜 그런 사람 있어. 자식한테 집착해가지고 떠나보내지 못하는 사람들. <아내의 유혹>은 너무 착하기만 한 며느리라고 함부로 대하는 게 조금 속상했는데 조금씩 신원을 바꿔가지고 복수의 칼을 가는 중이야. 오늘 재미있던데. <내 인생의 황금기>는 일단 가족드라마인데 그 여자가 결혼하기 전에 임신해서 아기 아빠가 아닌 사람하고 결혼했다고. 그것도 출생의 비밀이긴 하지만 드라마에선 안 다뤘던 문제 같아서 신선해. 설정이 파격적이더라고. 아, 듣자하니 <너는 내 운명>은 할머니들이 많이 본다던데? 물론 공감하면서 볼 때도 있지. 슬픈 장면이 나올 땐 애절하기도 해. 눈물 연기할 땐 나도 모르게 같이 울기도 하고. 주책이라고 남편한테 구박도 받고. 멜로드라마에선 내가 안 겪어봤던 것도 나오고 하니 감정이 아릿하더라. 약간 맘적으로. 너무 착한 남자 보기 좋긴 하지만 현실적이진 않잖아. 계속 착한 남자가 어디 있을 수 있나. <에덴의 동쪽>은 가족애라는 끈끈한 사랑과 정, 형제라면 최선을 다해서 뒷바라지해주는 모습이 흐뭇하더라고. 드라마에 항상 나쁜 놈만 나오는 건 아니라고. 요즘 나오는 독한 설정은 어떠냐고? 난 솔직히 이해가 안되던데. 내용도 천박하고 사악하고 그렇잖아. <에덴의 동쪽>의 신태환만 봐. 말도 못하게 나쁜 사람이고 그 간호사는 더 사악하고. 명예와 부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이용한다는 생각에 경악하게 되지. 삼각관계도 짜증나고. 보면서도, 보고 나서도 정말 찝찝해. 조금 잘나가는 드라마다 싶으면 작가들이 질질 끄는 것도 싫고. 비비 꼬면서 궁금증 유발시켜가지고. <너는 내 운명>도 그렇잖아. 골수를 이식하네 마네. 그런데 그게 그 드라마를 안 보는 이유는 안돼. 다들 한번 보면 끝까지 보려고 하지 않나. 어차피 다 엉터리잖아. 게다가 잔인한 면만 있진 않거든. 동기간 우애도 있고 모성애도 있고. 그래서 계속 볼 거냐고? 일단은 그렇지. 하지만 자꾸 이렇게 악랄하게 나오면 텔레비전 꼴도 보기 싫어질지 누가 알겠어?

작년 극장 영화 관람객 5%나 줄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지난해 극장 영화 관람인구가 전년도에 비해 5%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영화진흥위원회의 '2008 영화소비자 조사 결과'와 CJ CGV의 '2008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해 극장 관객수는 1억4천918만명으로, 2007년보다 5.3%(834만명) 줄었다. 영진위가 지난해 11월 28일~12월 5일 전국 16개 시.도의 15~49세 남녀 2천4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표본 오차 95% 신뢰수준에 ±2.0%포인트)결과도 비슷한 추세가 확인됐다. 지난해 1년간 극장 영화를 한 편이라도 본 사람은 88.5%로 전년의 93.6%에 비해 5.1% 포인트 떨어졌다. 전체 소비자의 1년간 극장 영화 관람편수는 평균 8.9편으로 2007년보다 3.7편 줄었고, 관람 경험이 있는 소비자의 평균 관람편수는 10.1편으로 전년도보다 3.3편 줄었다. 24~29세 남녀의 관람편수 감소폭이 각각 6.5편과 6.2편으로 가장 컸다. 성별로는 남성의 86%, 여성의 91.1%가 극장에서 영화를 봤으며 연령대로는 남성은 24~29세, 여성은 19~23세의 관람률이 가장 높았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관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영화 국적은 한국이었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영화가 밀리고 미국 영화가 40.7%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추세는 남성들이 주도했다. 여성의 경우 30대 후반을 제외하면 한국영화를 가장 선호했지만, 남성은 20대 초반을 제외한 전 연령층이 미국영화를 더 좋아했다. 장르별로는 액션을 가장 좋아하는 관객은 43.3%로 드라마(29.5%), 로맨스(19.2%)보다 많았다. 관객들은 영화를 선택할 때(복수응답) 줄거리와 내용(90.4%), 장르(84.8%), 주위의 평가(71.9%) 순서로 우선 고려했으며, 출연배우(57.9%), 흥행순위(57.9%), 전문가 평가(39.2%)는 덜 생각했다. 최근 영화계에서 영화 관람료 인상론이 제기됐으나 관객들은 극장 관람료가 비싸다고 인식했다. 55.6%가 7천원 정도의 현재 관람료가 비싸며 적정 가격은 5천100원이라고 답했다. 적절하다는 의견은 43.4%였다. 또 극장 요금이 1천원 오르면 관람 횟수를 줄이겠다는 응답자가 36%로 가장 많았고, 500원을 올리면 덜 보겠다는 사람은 20.6%였다. 관객들은 영화를 고를 때 참조하는 정보를 인터넷(61.6%)에서 가장 많이 얻었다. 인터넷을 참조하는 경우는 전년보다 11.1%포인트나 늘었다. 극장에 갈 때는 배우자 및 자녀(37.9%), 친구(34.7%)와 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관람할 영화는 극장에 가기 전에 미리 선택하는 경우가 87.1%로 극장에 가서 결정한다는 12.9%보다 많았다. 불법 다운로드를 해본 사람은 48.1%로 전년보다 소폭 증가했으며 불법 업로드를 해본 사람은 19%, 불법 DVD를 직접 사봤다는 관객은 7.3%로 2007년보다 약간 줄었다. 한편 지난 한해 동안 텔레비전 수상기를 이용해 영화를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98.8%, 인터넷ㆍ모바일 영화를 본 적 있는 사람은 85.8%로 전년도와 큰 변화가 없었다. 1년간 여가 시간이 늘었다는 사람은 전년도보다 5% 포인트 늘어난 31.4%였지만, 여가 소비액이 늘었다는 사람은 전년보다 6.2%포인트 줄어든 41.7%였다. cherora@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알렉 볼드윈] 캐릭터에 폭소엔진 장착

NBC·GE·유니버설·K마트 동부해안지역 텔레비전/전자레인지 사업부 부사장. <30록>에서 알렉 볼드윈이 연기하는 잭 도나기의 공식 직함이다. 웃겨보려고 일부러 붙인 것이 분명한 이 생뚱맞게 긴 타이틀은, 야망의 미중년 잭 도나기가 한번의 쉼도 없이 나열할 때 본색을 발한다. 해외 기사들은 ‘잭 도나기’와 ‘알렉 볼드윈’ 사이에 커다랗고 굵은 등호를 그려 넣으려 원고지를 바친다. “알렉 볼드윈이 아닌 잭 도나기는 상상할 수 없다.”(<백스테이지웨스트>) “<30록>을 놓치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이유, 알렉 볼드윈.”(<뉴요커>) 연기 인생 30년 만에 정점에 올라 1987년 스크린에 데뷔한 알렉 볼드윈은 <붉은 10월>(1990), <글렌게리 글렌 로스>(1992)를 통해 스타급 배우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유명세에 도움을 준 것은 킴 베이싱어와의 시끌벅적한 결혼과 요란스러웠던 이혼이다. 그 뒤 1997년까지 출연한 모든 영화를 “폭탄”이라고 자평하듯 점차 조연으로 밀려났고, 날렵한 턱선을 가졌던 아일랜드계 청년은 시간에 순응하며 중년의 풍채를 갖게 됐다. 사실 영화계는 그의 푸른 눈동자보다 금속을 긁는 듯한 목소리를 사랑했다. <파이널 환타지>부터 <마다가스카2>까지, 그는 영상만큼이나 꾸준하게 목소리 연기로 관객과 만나왔다. 그리고 2007년, 연기를 시작한 지 30년 만에 만난 <30록>으로 그는 명실공히 커리어의 정점에 오른다. 두툼한 뱃살과 뻔뻔한 인격으로 무장한 알렉 볼드윈은, 2007년부터 3년 연속 SAG(배우조합)에서 남우주연상, 2008년 에미상, 2007년과 2009년 골든글로브까지 모두 6개의 트로피를 잭 도나기의 이름으로 거머쥐었다. 잭 도나기는 수완 좋은 사업가인 동시에 교묘한 조정가다. 자본주의를 맹신하는 그의 목표는 의 모기업 의 CEO. 비즈니스 성공수칙을 줄줄이 꿰는 잭은, 칭찬하지 않고도 고래를 춤추게 할 인물이다.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그의 청년기를 정리해보면, 북극곰을 (아마도 맨손으로) 때려잡았고 킬리만자로를 등반했으며 단지 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허드슨강으로 차를 몰아 탈출을 시도했다. 땅콩 알레르기도 정신력으로 이겨냈다. 이 남자가 극복할 수 없는 존재는 덜떨어진 가족들과 독설가인 어머니뿐이다. 그러나 자수성가한 잭과 다르게 평범 이하의 삶을 사는 가족들은, 달리 보면 그를 오늘에 이르게 한 원동력이다. 모두 배우가 된 4형제의 맏이로서 볼드윈이 느꼈을 성공에의 의지와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정작 그는 “나에게 영화적 재능은 없다. 못하는 건 아닌데 타고나지도 않았다”며 잭 니콜슨, 알 파치노 같은 대배우들로부터 거리를 둔다. 오히려 그는 오슨 웰스에 자신을 견준다. “파워풀한 배우지만, 언제나 위대한 배우는 아니었다. 거만하기도 했지.” 스티브 카렐이나 짐 캐리와는 다른 웃음 사람들은 알렉 볼드윈이 꽤 웃기는 남자배우이자 빼어난 재담가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젊은 시절 보여준 선 굵은 연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짧은 결혼생활 뒤 이어진 지난한 이혼소송과 딸의 휴대폰에 남긴 욕설 파문, 숨김없이 드러내는 정치적 견해 등이 그가 가진 코미디언으로서의 재능과 유명인으로서의 존재감을 분리시키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코미디 배우의 대표 격인 스티브 카렐이나 짐 캐리와는 다른 지점에 서 있다. 전자에 속하는 배우들이 슬랩스틱으로 웃음을 유발한다면, 볼드윈은 하늘 아래 그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캐릭터로 승부한다. <30록>의 파일럿을 본 에서 볼드윈이 시즌1 전회에 출연하는 조건으로 승인했다는 사실은 전적으로 수긍이 간다. 그러나 알렉 볼드윈은 작품을 장악하는 신스틸러(Scene Stealer)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에피소드를 빛나게 하는 감초에 가깝다. 스티브 부세미, 제니퍼 애니스톤, 이사벨라 로셀리니 등 화려한 게스트들과의 앙상블에서 눌리지 않으며 티나 페이, 트레이시 모건 등 출연진과 조명을 나눌 때도 튀지 않고 어우러진다. 전자레인지 시장에 돌풍을 몰고와 텔레비전 사업부까지 진출한 잭 도나기식으로 말하면, 그는 <30록>의 “3번째 열선”이다.

[정한석의 블랙박스] 오, 빗자루!

<씨네21> 688호 ‘해외 평단이 뽑은 2008 베스트10’을 읽다가 그들의 좀더 상세한 개별 리스트에 한국영화는 없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참고한 건 <사이트 앤드 사운드> <필름 코멘트> <카이에 뒤 시네마>의 명단이다.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설문에 참여한 평자 중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의 팀 로비만이 유일하게 한국영화를 꼽았는데, 이창동의 <밀양>이다.“이창동이 그가 하고 있는 것에 관하여 훨씬 더 깊이 사유하고 그의 여주인공에게서 놀랄 만한 연기를 얻어냈다는 진일보의 증거.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영화는 여기서(영국) 극장 개봉을 할 수 없단 말인가?”라고 그는 한탄하고 있다. <필름 코멘트>는 미국 내 개봉작과 미개봉작으로 나눠 매년 각 20편씩 선정하는데 미개봉작 16위에 홍상수의 <밤과낮>이 올라 있다. 개별 리스트에서는 페데릭 보노가 2위에, 필립 로페이트가 10위에 <해변의 여인>을 꼽았다. 올라프 뮐러의 선택이 특히 눈에 띄는데, 그는 이지상의 뚝심있는 연작영화 <십우도3-견우(티벳에서, 제망매가)>를 무순으로 넣었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필진은 <해변의 여인>과 <밤과낮>에 더 주목한다. 루도비크 라망은 6위에 <해변의 여인>을, 장 필립 테세는 공동 8위로 <해변의 여인>과 <밤과낮>을 묶어서 꼽았다. 그중 다섯편의 공동 2위에 <밤과낮>을 올린 에르베 오브롱은 <해변의 여인>과 <밤과낮>에 관해 멋스럽게 썼다.“풍경에 무관심한 이 우발적인 여행자들은 그들의 강박을 숙고하길 계속했다. 계몽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훨씬 더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건 여전히 거기 있다. 무한함과 편평함, 숭고함과 시무룩함 사이에 일어나는 종국의 조우- 오즈와 로메르, 우리가 물끄러미 보는 녹색 광선과 술잔.” 재미있는 건 <씨네21>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던 뱅상 말로사의 선택이다. 그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신인감독 김동주의 <빗자루, 금붕어되다>(전주국제영화제, 테살로니카영화제 상영작)를 공동 5위에 꼽았다. 무엇과 함께?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와 함께.

[전영객잔] ‘인민의 초상’ 넘어선 ‘인민의 응시’

1958년에 세워져 50여년을 이어져왔으나 지금은 허물어지는 군수공장 팩토리 420의 마지막 시간. 그러나 그것을 허물고 들어설 현대식 주거지 24시티가 아직 완전하게 들어서기 이전의 시간. 그 흔한 말처럼 과거의 것이 사라졌지만 아직 새것은 오지 않은 불확정적인 이행의 시간. 지아장커의 <24시티>는 강제로 생겨난 그 이행의 시공간과 그곳의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댄다. 이 영화 <24시티>에 관해서는 허문영이 <씨네21> 689호 전영객잔을 통해 이미 한 차례 썼다. 그가 해낸 풍요로운 서술 이상으로 내가 이 영화에 더 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바람이라면 그가 말한 이 영화의 위대함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일종의 첨언을 해보는 것이다. 그게 이 영화를 볼 때 느껴지는 모호함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태도일 거라 짐작하며 <24시티>는 그런 식의 대화가 멈추어서는 안된다는 걸 실로 요구하는 영화인 것 같다. 안과 밖으로 이어지는 상호작용 그러니까 이상하다. 이 영화는 단순하고 간결한 것처럼 보이고 심지어는 정제된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결정된 것들로서의 사람과 풍경을 마지막으로 채집한 것처럼 보인다. 정지된 스틸로 마지막을 기억하고, 떠나가는 마음을 아련하게 추억하는 것 같다. 기억으로 우리를 정박시키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거부할 수 없는 건 그 아련함과 쓸쓸함과 함께 있는 무엇이다. 이 영화는 어딘가 시종일관 운동하고 있다. 어느 한점에서조차 멈추지 않고 서로 오가는 정감의 힘이 <24시티>에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오해가 될 것인가. 아니 차라리 어느 한편에서 멈추지 않고 서로 왕래하는 오고감의 운동성 자체가 이 영화의 운명이라면 지나친 생각일까. 즉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그쪽에서 또 반대쪽으로 던지고 받는 어떤 상호작용이 이 영화에는 있다. 어느 한점이 아니라 바로 그 왕래. 시적인 정취로서의 왕래. 문턱 또는 문지방 그 사이에 놓여 겹겹이 일어나는 상호작용. <24시티>가 단순하거나 정제된 것처럼 보이는 건 오히려 이 몇 가지 양방향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완벽한 결과에 가깝다. 이것이 결국은 지아장커가 마침내 이 영화를 중국 인민의 것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지아장커가 <스틸 라이프>와 <동>에서부터 수정을 시도했던 지점은 바로 여기이며 <무용>의 3부에서 찬란하게 도달했던 지점도 이것이었다. 그것을 풀어 한편의 영화로 만들어낸 것이 <24시티>다. <24시티>가 얼마나 양방향에서 들고 나는지 알아차릴 만한 대표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허문영이 지적한 아름다운 장면. 음악이 흐르고 있고 경비원은 폐허가 된 공장을 마지막으로 시찰한다. 그때 갑자기 창문을 깨고 들어온 돌이 그 순간 흐르던 음악을 중지시킨다. 내재적 화면과 외재적 사운드 사이에 경이로운 영향 관계가 형성된다. 노래가 꿈꾸는 미래지향적 이상을 지금 무너져가는 돌멩이의 파편이 멈춰 세운다. 이것은 지아장커가 텍스트 내적인 장면을 통해 그 바깥에 있는 우리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호이기도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화면의 사건이 외화면의 사운드를 중지시켰을 때 일어나는 그 아득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아장커의 신호를 알아차리는 일이기도 하다. 이 장면은 명백하게 이 영화가 지금 무언가 안과 밖으로 이어지는 들숨과 날숨으로 됐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지아장커는 그런 작용 관계의 면모를 놓치지 않고 이 영화를 보기를 원하고 있다. 다큐와 픽션의 경계를 돌출시키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한편은 다큐이고 또 한편은 극영화인 <동>과 <스틸 라이프>에서 같은 제스처가 반복해서 등장할 때(<동>에서 리우샤오동의 자리와 <스틸 라이프>에서 한산밍의 자리) 그건 이 두 영화를 보는 자로 하여금 서로 다른 자리에서 해석하고 선택할 여지를 주는 상호작용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걸 지아장커는 <무용>에서 1부와 2부에 이어 3부의 에피소드에서 첨예하게 수렴해냈다. 그건 물론 다큐와 픽션의 양방향에서 온다. 다큐와 픽션. <24시티>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양방향의 상호작용이 그것이다. 다큐와 픽션의 결합이라는 점. 그러나 이 점에 관해서라면 그 누구보다 지아장커 스스로가 잘 설명해왔고 이 영화를 본다면 누구라도 알게 된다. 때문에 나는 이 지점에서 오히려 다큐와 픽션이 결합된 형태에 관해 중언부언하기보다 오히려 지아장커만이 아니라 그를 포함한 아시아영화 안에 이런 양식이 있음을 간단하게 지적하고 넘어가고 싶다. 다큐-픽션의 결합은 지아장커가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에게도, 리티판에게도, 류우에게도, 라브 디아즈에게도 있는 것이고 실로 오래되었다. 특히나 기억, 그러니까 구축의 행위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재조립이 불가능한 기억을 다루려고 할 때, 이걸 다루는 아시아영화들은 어딘가 공통적인 가상선을 설정해낸다. 그러나 <24시티>에서의 특별함이라면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며 지금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사라지는 기억을 환기시키기 위해 지아장커가 <24시티>에서 하는 일은 전문적인 배우와 인민을 한자리에 놓는다는 점이다. 알려진 것처럼 <24시티>에는 루리핑, 진건빈, 조앤 챈, 자오타오가 등장하여 인민의 한 사람인 척 구술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지아장커는 그들이 중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배우라고 말한다. 이렇게 상상해보자. 만약 장미희가 이 영화의 조앤 챈처럼 어떤 영화에 출연하여 시민의 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지나간 70년대를 회고하고 또 당시에 자기의 우상이 장미희였다며 회상에 젖은 다음 <겨울여자>의 장면이 흘러나온다면 우리는 어떤 감정을 갖게 될 것인가. 혹은 그것이 장미희가 아닌 당대의 유명한 어떤 다른 배우라도 정서적 파장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역할을 하는 배우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알려져 있는 배우가 지금 우리 눈앞에서 진짜 인민과 섞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더군다나 지아장커는 비전문 배우를 연기시키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연출자가 아니다. 그러니 <24시티>에서 보통 사람인 것처럼 등장하여 구술연기를 펼치는 그들을 배우라고 부르기보다는 유명 배우 즉 스타라고 인식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지아장커가 필요했던 것은 무명이지만 충분히 인민의 한 사람으로서 등장하여 감쪽같이 구술해낼 수 있는 누군가의 능력이 아니라 한눈에도 그가 유명 배우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한 스타의 출연이자 출현이라는 양상이다. 이때 경계의 선긋기와 구별이 중요해진다. 즉, 이 사람은 스타입니다, 허구입니다. 지아장커는 경계를 무화한 다음 하나가 어느 하나로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경계를 돌출시켜 조화보다는 구별되는 것으로서의 방점을 찍는다. 실은 그 이유는 지금 그 경계를 넘어 무언가 오고 가고 있음을 끊임없이 가리키기 위한 것이다. 스타가 발휘하는 보편성의 장 여기서 보편성과 개별성의 장이 어떻게 설정되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지아장커가 인민들 사이에 스타를 기용하는 것은 그 말의 설득력을 애초부터 펼칠 수 없는 개별 인민을 대체할 방편으로 생각했던 것이지만, 그들이 출연함과 동시에 스타가 발휘하고 포섭하는 보편성의 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심지어는 그들과 같이 출연하는 실제 인민들의 구술조차 그 스타들의 구술이 지닌 보편적 장을 뚫고 개별적으로 승화하지 않는다. 이건 스타의 말을 보편적으로 만들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을 개별적으로 만들어내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그 너머엔 무엇이 있는가. 스타의 말이 텔레비전 드라마의 말처럼 보편적으로 들릴 때 그렇다면 그 상대편에서 개별적이며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무엇인가. 이때 지아장커가 사람들을 카메라를 향해 정면으로 멈춰 세운 장면을 지속적으로 삽입한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개별적이며 구체적인 것은 오히려 그 초상일 것이다. 스타의 말이 들숨이라면 인민의 이름없는 초상은 날숨이다. 일단 이 영화는 자기의 말을 다 하지 못하는 개별 인민을 대신하여 등장한 스타의 보편적 말(구술)에 귀기울일 것인가, 혹은 침묵하는 개별적 인민의 초상을 볼 것인가의 양분된 문제로만 귀결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말없이 초상을 볼 수 있는가, 초상없이 말을 들을 수 있는가의 문제를 우선 껴안게 된다. 나는 우선 말이 초상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아장커에게 이 영화에서 말과 초상은 서로 작용하는 것으로서 동등하게 중요하다. 말이 없이 초상만 더 중요해지지는 않으며 말이 있어야 초상이 중요함을 알게 된다. 그러나 지아장커가 무엇을 의도했건 스타의 보편적 말과 인민의 개별적 초상이 경계를 드러낸 이후에는, (지아장커가 어느 것을 더 원했건 간에) <24시티>에서 결국 초상의 힘이 말의 힘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더 강력하게 부상한다. 문제는 더 분화되며 더 구체적으로 미세하게 상호작용한다. 나는 <24시티>를 보며 지아장커가 유도한 것처럼 인민의 초상을, 인민의 얼굴을 본다고 처음에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미세한 경계의 설정이 있으며 또한 그걸 넘어서는 작용이 있다. 초상을 그 이상의 무엇으로 이어내는 장면을 마주치지 못했다면 나는 이 영화가 위대하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이 영화가 강력한 상호작용으로 이뤄져 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스타의 보편적 구술의 장을 넘어서 무심하게 서 있는 인민들을 보았을 때 그것은 다만 그들의 초상이며 얼굴인가. 그들은 대상이며 우리는 그들을 보고 있는 것인가. 시선의 주관성은 여전히 우리에게 있으며 그들은 단지 대상으로 남는 것인가. 영화 속 한 장면이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있다. 두 남자는 장난을 치다 웃음을 참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있다. 마지막까지 공장에 남아 철거되는 기자재 틈바구니에서 마지막 노동을 하는 두 노동자. 선후배로 보이는 이 두 남자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카메라 앞에 선다. 그런데 서로 어깨를 걸치던 그들 중 선배로 보이는 한 사람이 나머지 사람의 목에 살짝 손을 대고 간지럼을 태우며 장난을 건다. 또 다른 남자는 웃으려다 참는다. 그러기를 두번 반복한다. 그들은 이 카메라에 담길 때 감독과 한 가지 약속을 했을 것이다. 이 카메라를 보세요. 그냥 잠시만 보고 계시면 됩니다. 그들에게 웃으라거나 연기하라고 지아장커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한 남자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웃음을 참으려고 한다. 하지만 결극 그들은 대상으로서 지켜야 할 약속을 자의적으로 어긴 셈이 된다. 그러니까 한 남자가 장난을 걸고 나머지 한 사람이 웃음을 참기 위해 애쓰는 것은 지아장커가 연기를 주문하여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고다. 물론이다. 지아장커의 당초 의도는 다른 이들처럼 마지막까지 공장에 남아 철거되는 기자재 속에서도 마지막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두 사람의 초상을 묵묵히 기억하려는 것이다. 이때 미세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지아장커는 이 장면을 멈춰 세운 다음 다시 찍거나 빼버리거나 다른 장면으로 대체해도 됐었겠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이때 지아장커가 마침내 자신이 인민의 초상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응시를 찍는다는 사실을 감지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초상이 아니라 응시다. 우리가 보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이 보내오는 반사적인 시선이다. 그 응시란 그들이 규칙을 깨고 돌발적인 상황을 일으켰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양방향의 상호작용이며, 다른 무표정들에서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이 두 노동자가 돌출행동을 하여 이것이 지금 사이의 경계를 오고가는 행위임을 일깨워줌으로써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네가 나를 찍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는 사실. 그 두 노동자가 은연중에 카메라의 명령을 따르거나 기억에 봉합되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일어난 돌발적 사건. 그걸 받아들이는 지아장커의 유연함이 놀랍다.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인민의 몸이, 인민의 개별적 몸이 미세한 사건을 통해서 마침내 자율적으로 실체를 드러내는 그 양방향의 순간을 지아장커는 놓치지 않았다. <24시티>에 이르러서도 지아장커가 그토록 바라는 대상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그것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정말 그걸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끝내 대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서로 오고가는 경계의 문턱을 만들어냄으로써 서로 공정한 양방향적이고 상호작용적 시선의 상태가 형성됨을 입증하는 것 같다. 경계를 넘어 오고가는 시선의 양방향. 때문에 이 두 노동자의 유쾌하고 불가사의한 장면은 지아장커의 모든 영화를 통틀어도 가장 아름다운 장면에 속한다. 영화에 평등함의 마술을 부리다 다큐와 픽션이라는 두 양식, 그 안에서 보기의 서로 다른 위치를 유도하는 스타와 인민, 그들이 사용하는 말과 초상, 그리고 마침내는 무표정의 초상을 넘어 무언가 반응하고 손짓하는 초상에서 표정으로 그리고 표정에서 응시로의 전환.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그 두 노동자의 장면은 마침내 <24시티>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평등한 장면이 되며 동시에 <24시티>는 위대한 영화가 된다. 돌이켜보면 지아장커는 데뷔작에서부터 의도적으로 어떤 상호적인 응시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왔다. 인민이 영화를 응시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그는 깨닫고 있었다. <소무>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매치가가 길거리 전봇대에 아무렇게나 묶여 있을 때 카메라는 갑자기 몸을 돌려 묶여 있는 그를 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보여준다. 그들은 동원된 엑스트라가 아니라 영화를 찍는 걸 구경하던 사람들이다. 과연 그때 그들은 소매치기 <소무>를 본 것일까. 그들은 전봇대에 묶여 있는 소매치기를 본 것이 아니라 그걸 찍는 영화를 본 것이다. 동시에 그때 그들의 시선은 영화를 찍는 것을 보는 단순한 구경꾼의 시선이 아니라 영화가 만들어지는 현장에 응하는 인민의 응시로 전환된다. <24시티>는 문득 이것이 지아장커의 중요한 영화적 의무 중 하나였음을 환기시킨다. <24시티>는 진정으로 양방향의 영화란, 그리고 공평한 영화란 어떻게 완성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르게 한다. 이것이 바로 팩토리 420이 무너지고 24시티가 들어서는 사연을 듣고도 우리가 무언가 희망을 걸게 하는 이 영화의 미덕이다. 흔히들 말하는 인터랙티브한 영화. 그것이 관람자의 선택에 따라 없는 숏을 삽입하고 신을 설정해 넣는 것으로 온전히 가능할 것인가. 그건 영화를 게임화하는 위험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응시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숏이나 신을 새롭게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내밀하고 영화적인 양방향의 방법을 가능하게 한다. 말하자면 문턱을 넘어서 오고가는 양방향의 영화, 상호작용의 영화. 그리고 그것이 더군다나 민초의 시선이라면. <24시티>는 더 많은 질문을 포괄하지만 영화에 평등함이 깃드는 진짜 마술 같은 순간을 창조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나다.

[나의 길티플레저] ‘텔레걸’은 곗돈을 탑니다

한주의 시작인 월요일 밤부터 난 남몰래 갈등한다. 내가 좋아하는 유재석과 멋진 여자 김원희의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를 볼 것이냐, 강호동과 그의 친구들은 물론 완전 소중한 아저씨 최양락의 합류로 시작된 <야심만만2>를 볼 것이냐. 뭔 같지도 않은 고민이라고들 비웃겠지만 난 그렇다. 그뿐이 아니다. 좀 시들해지긴 했으나 화요일엔 <상상플러스>를 수요일엔 알토란 같은 재미의 <황금어장>을 목요일엔 편하고 사랑스러운 <해피투게더>를 꼭꼭 챙겨본다. 웃겨주는 프로그램 보기가 취미이며 그것들을 되도록이면 실시간으로 봐야만 찜찜하지 않을 정도의 마니아다. 얼마 전까지도 좋아하는 프로그램 본방 사수를 위해 주말엔 외출을 삼갔을 정도니 어디 가서 자랑 삼긴 참 부끄러운 취미를 가진 셈이다. 아침잠을 포기하더라도 일요일 오전 9시에 성당을 다녀오는 이유는 3개 방송사의 저녁 오락 프로들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줌마들의 거침없는 수다판 <세바퀴>, 이 나이에도 결혼 체험 한번 해보고 싶도록 샤방샤방한 <우리 결혼했어요>, 여섯 남자의 복불복 여행기 <1박2일>, 즐거운 한바탕 MT 분위기의 <패밀리가 떴다> 등 주말 저녁엔 리모컨 돌려가며 곗돈 탄 기분이 된다. 마무리로 오랫동안 빼먹지 않고 사랑해오던 <개그콘서트>와 절친이 주인인 <박중훈쇼>까지 보고 나면 한주의 마무리 끝. 나이 꽤나 먹은 여자가 더구나 20년간 영화를 하면서 밥을 먹고 살아온 영화인이 영화보기는 오히려 그리 즐겨하지도 않으면? 그러나 내게 TV는 결코 바보상자가 아니라 안 보면 바보가 되는 상자이며 얄팍하고 짧은 그나마의 내 상식을 쌓아준 것도 TV다. 그때그때 유행이거나 꽂힌 드라마는 실시간으로 보고, 놓친 프로들은 케이블을 뒤져 재방송으로라도 보아야 하니 난 결국 텔레비전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다. 그런 나의 별명은 ‘텔레걸’. 함께 일하는 L 감독님에게는 그 때문에 종종 무시(?)를 당한다. L 감독님은 뉴스나 다큐멘터리가 아닌 다른 것을 보기 위해 TV를 가까이 하는 사람은 절대로 이해가 불가능하다며 TV에 열광하는 나를 거의 한심하다는 눈으로 본다. 그러나 적어도 난 사무실을 방문한 꽃미남 배우를 보고 매너없이 “넌 누군데 이렇게 예쁘냐?”라고 하거나 세상 사람 다 아는 여배우를 보고도 “어디 나오셨더라? 이름이?”라고 당황스러운 질문을 던지진 않는다. L 감독님에게 배우들을 들이대 캐스팅을 하고 영화를 찍게 한 사람은 그래도 어쨌든 나인걸. 솔직히 연예인들 이름과 TV 프로그램들을 줄줄 말하거나 유행어에 특별히 민감한 내가 고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 비해 수준이 떨어져 보이긴 한다. 하지만 그런 체면 때문에 나의 유일하고 오래된 일상의 즐거움을 이 나이에 포기할 순 없다. 사람을 만나다가도 집에 급한 일이 있는 양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무한도전>의 무모한 도전기를 보며 받은 감동이 재미없는 영화 보며 시간 죽이는 것보다 마음에 남으니 어쩌겠는가. 이런 나의 과도한 텔레비전 사랑이 ‘길티플레저’의 예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기엔 쑥스러운 대단한 취미 정도까지도 아니지만 이 글을 쓰며 돌아보니 남다른 중독 수준인 것만은 분명하다. 나잇값도 못한다는 소리를 일생 들어가며 꼼꼼하고 부지런하게 코믹 프로들을 챙겨보고 실생활에 응용하며 살아온 결과, 충분히 실없는 사람일 수도 있었건만 다행히 유머 센스를 지닌 사람으로 인정을 받으며 살고 있다(고 난 믿는다). 누가 뭐라거나 말거나 실망하거나 말거나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나의 텔레비전 사랑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게으르고 귀찮은 내가 남보기 반듯한 취미생활을 새롭게 찾아내서 즐길 일은 절대로 없어 보이니 말이다. 정승혜 영화사 아침 대표. <도마뱀>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등을 제작했다. 그녀는 강우석 감독이 가장 신뢰하는 영화평자이자 카피라이터다. 종종 일간지와 영화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며,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는다. 또한 하루 평균 몇 백명이 방문하는 인기 블로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월10일 현재 그녀의 블로그 대문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난 파란 눈동자… 외계인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