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할리우드 넘어설 차별화 전략있다`

4년만에 메가폰 강제규 감독지난 5일 오후 2시 신라호텔에서 열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제작발표회는 기자들과 각종 영화관계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쉬리> 이후 4년 만에 메가폰을 잡는 강제규 감독의 새영화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그동안 공개석상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던 강 감독의 얼굴도 자못 긴장돼 보였다. 전보다 홀쭉해진 모습의 강 감독은 “살인적인 촬영 스케줄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우려돼 몸만들기 차원에서 5kg 정도 감량했다”고 말을 꺼냈다.순제작비 130억, 촬영기간 8개월, 엑스트라 총동원수 2만5천여 명, 20여 개의 대규모 세트 제작 등 이날 공개된 제작규모는 세번째 작품에서도 한국대중영화의 기록을 다시 쓰고자 하는 강감독의 만만치 않은 야심을 드러내준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는 두 형제의 엇갈리는 운명을 그린 작품. 장동건과 원빈이 나란히 강제징집을 당하는 진태, 진석 형제로, 이은주가 진태의 약혼녀로 출연한다.강 감독은 두가지 면에서 이 영화를 기획했다고 한다. 첫번째 의도는 동남아를 뛰어넘는 세계시장 진출이다. “<쉬리>를 수출하며 해외시장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서 배웠다. 한국영화가 국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아시아 뿐 아니라 헐리우드와 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 내적인 완성도와 함께 해외 동시 개봉 등 배급도 개선돼야 한다. <태극기…>를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는 발판을 만들겠다”. 장동건과 원빈을 캐스팅한 것도 아시아 시장에서 그들이 가진 스타파워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특히 두 전작의 상영에 실패했던 거대한 시장 중국에서 반드시 개봉을 하겠다는 게 강 감독의 야심찬 계획이다.두번째는 올해로 휴전 50년을 맞는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 제시다. 강감독은 <태극기…>가 이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영화임을 강조한다. “2년 전 가을, 텔레비전에서 한국전쟁 발발 5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 전쟁 당시 임신한 상태로 남편을 군에 보내고 생사여부도 모른 채 살아온 여성이 50년 뒤 남편의 유해발굴 통보를 받고 쉰살 된 딸과 함께 현장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이 작품을 보면서 한 인간의 삶을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뜨리는 전쟁의 폭력성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소재는 한국전쟁이지만 전쟁으로 파괴되는 가족과 사랑 등 관계들에 대한 성찰은 세계인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감독은 낙관한다. 대규모 전쟁 신같은 볼거리를 화려하게 준비하되 애국주의나 영웅주의적 무용담으로 흐르지 않도록 한다는 게 강제규 감독의 헐리우드와의 차별화 전략이다. 오는 10일 크랭크 인해 다음 해 설쯤 개봉할 예정. 한국전쟁 당시 쓰였던 탱크, 총기 등 군 장비 지원을 받고자했지만 육군에서 시나리오 수정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최소한의 장비를 제작하고 컴퓨터 그래픽에 상당 부분 의지해야 해 후반작업만 4개월 이상 예상하고 있다. 전체 제작비의 30%는 일본 제작사의 투자를 받아 완성한다.김은형 기자

군계일학, <매트릭스2>!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최신호가 영화, 대중음악, TV 분야를 통틀어 2003년 미국 연예산업의 빅 카드를 망라한 특집에서 올해 할리우드의 뉴스메이커가 될 영화들을 미리 꼽았다.2003년 할리우드의 봄은 <매트릭스>의 황사로 뒤덮일 것으로 보인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 비디오 게임 <엔터 더 매트릭스>, <매트릭스> 외전에 해당하는 단편애니메이션 DVD가 5, 6월 중에 출시돼 바람몰이를 한다. 5월 초 앞서 개봉할 <엑스맨2>를 제외하면 <매트릭스> 열풍에 맞불을 놓을 액션 대작은 찾아보기 힘들다. 짐 캐리는 <전능한 브루스>로 코미디에 복귀하는 한편, 애덤 샌들러는 잭 니콜슨과 4월 개봉하는 <분노의 조절>에서 짝을 이뤄 영역확장을 꾀한다. 시대극 전문 제작사 머천트 아이보리는 유망주 나오미 왓츠, 케이트 허드슨을 내세운 <이혼>으로 현대를 방문하고 피터 위어 감독은 <마스터 앤드 커맨더>로 러셀 크로와 함께 나폴레옹 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봄 시즌의 흥미로운 다크호스는 <파 프롬 헤븐>과 같은 방식으로, 도리스 데이-록 허드슨 짝의 50년대 로맨틱코미디를 복제한 <다운 위드 러브>. 르네 젤위거와 이완 맥그리거가 공연한다.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각 스튜디오를 전전한 롭 좀비의 고어영화 <시체 1000구의 집>도 관심을 자극하는 작은 영화다.<매트릭스2 리로디드>와 <엑스맨2>가 실질적으로 개막된 여름 시즌은 6월 이후 프랜차이즈영화들로 절정에 달한다. 데미 무어가 착한 편에서 타락한 악역으로 분하는 <미녀 삼총사2> <금발이 너무해2> <툼레이더2>, 8년 만에 돌아온 <나쁜 녀석들2>, 12년 만에 돌아온 <터미네이터3>가 차례로 진군한다.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 3편 <아메리칸 웨딩>과 <덤 앤 더머러>도 속편 전성시대를 거들 예정. 후반작업 중인 리안의 <헐크>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몸에 들어간 성룡 같은 액션”을 여름 관객에게 예고하고 있으며 디즈니는 조니 뎁, 올란도 블룸, 제프리 러시로 진용을 짠 1억달러 규모의 <카리브해의 해적>을 7월 개봉해 해적영화에 번번이 실패하는 징크스에 도전한다. 웨스 크레이븐과 케빈 윌리엄슨의 늑대인간호러 <저주>는 공포영화 팬의 구미를 당기는 소품이며 현실의 커플 제니퍼 로페즈와 벤 애플렉은 공연작 <기글리>와 <저지 걸>을 공개한다. 액션 프랜차이즈에 얼얼하게 연타당한 관객의 감각을 다시 회복시켜줄 가을 개봉예정작은 로버트 알트먼, 클린트 이스트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마이크 뉴웰, 코언 형제, 앤서니 밍겔라 감독이 준비 중이다. 주드 로, 니콜 키드먼, 르네 젤위거의 황금 캐스팅을 자랑하는 밍겔라의 <콜드 마운틴>은 연인을 찾아 남부를 헤매는 북군 병사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루마니아 산간지대에서 촬영 중. 오랜 기대 끝에 완성된 타란티노의 <킬 빌>, 줄리아 로버츠가 여대생들을 각성시키는 1950년대의 자유분방한 교수로 분하는 마이크 뉴웰의 <모나리자의 미소>도 가을에 개봉한다. 코언 형제의 <참을 수 없는 잔혹>은 조지 클루니와 캐서린 제타 존스가 주연하는 이혼 이야기. 노장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발레영화 <컴퍼니>로 복귀한다. 이 밖에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톰 크루즈의 <라스트 사무라이>, 마이크 마이어스의 코미디 <모자를 쓴 고양이>가 가을과 초겨울 박스오피스의 홈런을 꿈꾸는 영화들이다.김혜리

불우한 천재의 야심작, 햇빛 속으로

70년대를 대표하는 프랑스 감독의 하나로 꼽히는 장 외스타슈(Jean Eustache)의 (Numero zero)(아트님, 두 개의 e에 오른쪽 위가 올라가는 액센트 붙습니다!)이 제작된 지 30년 만인 지난 1월22일 개봉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집단운동으로서의 누벨바그가 쇠락하기 시작하는 1963년 데뷔한 외스타슈는 이 영화를 만들기 전 두편의 중편영화와 두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평단에서 주목받았지만 감독으로 명성을 얻은 것은 1973년 작품인 <엄마와 창녀>를 발표하고 나서다. 은 곧 0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감독의 의도를 타이틀에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으로 감독이 이전까지 만든 자신의 작품들을 비판하고 영화의 역사가 쌓아놓은 수많은 기법들을 벗어던지려는 선언문과 같은 성격을 띤다. 외스타슈는 프랑스 현대사를 체화하고 있는 외할머니의 삶의 기록을 자신과의 대화형태로 영화에 담는다. 동원된 장비는 16mm 카메라 두대와 2시간 분량의 필름이 전부였다. 완성된 영화시간은 정확히 사용된 필름의 시간과 일치한다. 감독이 직접 슬래이트를 치고 이것은 편집에서 잘려나가지 않고 그대로 영화의 일부로 남아 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바람둥이 남편 때문에 속앓이를 한 할머니의 삶의 기록은 할머니가 자신의 손자인 외스타슈를 언급하면서 끝난다. 완성된 영화를 감독은 장 마리 스트라우브 감독을 포함한 극소수의 친구들에게만 보여주고 극장에 상영하는 것을 거부한 채 영화가 세월과 함께 점점 가치가 높아서 모두가 보고 싶어할 때 보여주겠다는 야심차지만 황당한 결정을 내린다. 영화를 본 친구들은 걸작이라고 환호했지만 그외의 사람들에게는 원하는 만큼의 반향을 못 얻은 채 시간은 흐른다. 외스타슈가 1981년 자살하고 저주받은 천재와 같은 전설적인 인물이 되면서 미공개 작품인 역시 본 사람은 거의 없지만 전설적인 작품이 되어 감독의 의도대로 모든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욕망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화제 속에 개봉되기에 이른다. 이 영화가 감동을 주는 것은 영화의 기원으로 돌아감을 통해 외스타슈가 진정한 감독으로 태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감독은 거듭나기 위해 영화의 문법이 없던 영화의 기원으로 돌아가 카메라와 대상 사이에 놓인 자신의 위치를 아무것도 영화에 대해 모르는 사람처럼 다시 고민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만큼이나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낸 자신의 가족사를 다시 정리하고 할머니를 통해 ‘감독’으로 불림받는 것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감독의 바람은 이뤄진 것 같다. 이 영화 이후 7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의 하나로 서슴없이 꼽히는 <엄마와 창녀> 즉 제대로 된 첫 번째 작품, (Numero un)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파리=성지혜 통신원

로맨틱 코미디다운 해피엔딩,<투 윅스 노티스>

■ Story 환경운동가이자 변호사인 루시 켈슨(샌드라 불럭)은 유서 깊은 구민회관을 철거하려는 부동산업체 사장 조지 웨이드(휴 그랜트)를 설득하기 위해 찾아간다. 고문변호사를 맡아주면 구민회관을 유지시키겠다는 웨이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켈슨은 이내 자립심 없고 돈만 많은 웨이드의 개인 비서가 되다시피 한다. 2주 뒤에 사직하겠다는 통보를 하고 후임을 구하는데, 예쁜 변호사를 즉석 채용해서 파티에 데리고 다니는 웨이드에게 은근히 질투를 느낀다. ■ Review 장르란 매일 차리는 밥상과도 같다. 익숙한 편안함을 기대하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설렘이라곤 도무지 없는 것이다. 샌드라 불럭과 휴 그랜트가 나오는 로맨틱코미디라고 하면, 점심식사용 치즈와 샐러드처럼 선명하고 단출하다. 궁금한 게 있다면 양상추는 얼마나 신선하며 소스는 맛이 있는지 정도일 것이다. <투 윅스 노티스>의 주재료는 능숙한 로맨틱코미디가 늘 그렇듯이 깔끔하게 정리된 두명의 캐릭터다. 간단히 말하자면 똑똑하지만 입바른 소리를 잘해서 피곤한 여자와 돈많은 바람둥이 마마보이의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다. 길게 풀어서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나고 자라 하버드 법대를 나온 루시 켈슨은 진보적인 부모의 영향을 받아 지역운동과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실천적인 활동가이다. 법대 교수인 어머니와 변호사 아버지의 농담에 따르면 켈슨은 다섯살 때부터 백악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그러므로 출세를 향한 경력 관리 대신 무료 변론과 항의 시위를 더 중요시하고, 외모 관리나 결혼에 대한 관심 대신 그린피스 회원으로 먼 바다를 떠도는 남자친구와의 전화통화를 연애라고 생각하며 산다. 무언가에 남다르게 집중하는 사람 특유의 신경증적인 강박증세를 켈슨 또한 가지고 있으니 바로 식탐이다. 조지 웨이드는 부르주아 집안의 막내아들이라는 전형적인 설정에 충실하다. 매력적인 외모에 잘 다듬어진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여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사업에서는 얼굴 마담 역할에 그칠 뿐 집안의 배후조종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별 생각이 없다. 로맨틱코미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선명하게 대비되는 미혼의 남녀 캐릭터를 설정해서 작가의 상상세계 속에 풀어놓고 그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살아가도록 기다리면 된다. 각본 겸 감독을 맡은 마크 로렌스의 머릿속에서 점차 모습을 드러낸 켈슨과 웨이드는 샌드라 불럭과 휴 그랜트라는 숙련된 배우의 육체를 입고 뉴욕을 종횡무진한다. 우리에게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일으키는 사랑의 화학작용을 마치 예상치 못했다는 듯이 즐기는 역할이 맡겨진다. 2주간의 사직 예고 기간을 뜻하는 제목(Two Weeks Notice)에서 알 수 있듯이, 떠나도록 예정된 두 사람은 스스로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감정에 당황하면서 상대의 빈자리를 새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거리에서의 키스로 끝날까 아니면 결혼식 장면일까? 아하, <투 윅스 노티스>다운 재치있는 아이디어를 썼군. 아! 장르의 전통이란 얼마나 유용하고 매력적인지. 혹은 시큰둥한지. 뉴욕은 미국이 아니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뉴요커영화는 할리우드영화와 어딘가 다른 구석이 있다. 문화적 다양성과 다채로운 교양에 바탕을 둔 수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이지만 심각하게 살 이유가 없는 데서 오는 가벼운 냉소주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예리한 감수성과 언어화 능력 같은 것들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섹스 & 시티>라는 TV시리즈의 성공은 이같은 특징들이 상업적으로 안전한 장치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투 윅스 노티스>에서도 유쾌한 냉소주의가 자주 발견된다. 웨이드는 잘생긴 외모 때문에 웨이드 그룹의 대외적인 활동을 도맡아 하지만 실권을 쥔 사람은 형 하워드다. 그는 늘 러닝머신에 올라 뛰지만 육체의 매력과는 거리가 먼 애처로운 부르주아 남자의 모습으로만 나온다. 근사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파티에서 웨이드를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한 켈슨이 일을 핑계대며 자신있게 웨이드의 호텔방으로 향하는데 막상 문을 열고보니 새로 들어온 예쁜 변호사가 야한 차림새로 웨이드와 놀고 있다. 체면을 다친 루시가 친구에게 뛰어가 훌쩍거리자 친구가 하는 말, “너 걸스카우트 이래로 우는 모습 처음 본다. 아니 부시가 당선됐을 때도 울었구나. 어떤 부시 때였지? 두번 다였나? 그래도 이번의 조지는 그 조지가 아니잖아.” 이때 한국의 관객도 웃음을 터뜨린다. 미국 대통령을 비웃을 정도의 정치 감각이 극장에도 찾아온 것이다. 루시에게 청혼하는 조지가 이제 자신은 가난해졌는데도 괜찮겠느냐고 묻는다. 헬리콥터도 가족과 나눠 타야 한다는 것이다. 돈에 대한 계급의 감수성 차이를 도무지 심각할 것 없는 유머 한마디로 활용하는 것은 한국영화 속에서는 아직 발견하기 어려운 배짱이다. 개그와 유머의 차이, 이것은 한국과 미국의 로맨틱코미디의 내공 차이인지도 모르겠다.김소희/ 영화평론가 cafe.daum.net/cwgod

경쾌하고 현란한 농담,<샹하이 나이츠>

■ Story 청나라 공주를 구하러 미국에 왔다가 정착한 장 웨인(성룡). 수많은 현상수배범을 잡으며 잘 나가던 보안관 장에게 조그만 상자 하나와 함께 편지가 배달된다. 여동생인 린(판웡)이 보낸 편지에는 옥새를 지키던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옥새를 도난당했다는 비보가 적혀 있다. 장은 허풍쟁이 친구 로이 오배넌(오언 윌슨)에게 맡긴 돈을 찾아 범인이 있다는 런던으로 가기 위해, 우선 뉴욕으로 향한다. 하지만 로이는 이미 모든 돈을 날리고 호텔에 찾아오는 여자들을 꼬시며 웨이터로 살아가는 신세다. 결국 오배넌과 웨인은 무일푼으로 런던에 도착하여 린을 찾아가 범인의 정체를 알게 된다. 웨인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은 영국의 왕위를 노리는 라스본 경이었고, 그의 배후에는 중국에서 추방당한 왕족 우가 있었다. ■ Review 성룡의 할리우드 히트작 <러시아워>가 <폴리스 스토리>라면, <샹하이 눈>은 <프로젝트 A>에 비교할 수 있다. 성룡 영화의 전형을 창출해낸 기념비적인 작품 <프로젝트 A>는 근대화 물결이 밀어닥친 상하이를 배경으로 진기한 풍물과 성룡의 애크러배틱한 액션이 어우러진 새로운 컨셉의 영화였다. 2000년 개봉된 <샹하이 눈>은 미국 서부의 풍경에 중국 무술인의 아기자기한 액션을 더하며 독특한 볼거리를 선보였다. 하지만 그건 이미 이연걸의 <황비홍-서역웅사>에서도 보여준 것이었다. 충분히 즐거웠지만, 조금 아쉬웠던 <샹하이 눈>에 비해 <샹하이 나이츠>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화려한 풍물에 세련된 유머, 그리고 성룡과 견자단의 화끈한 액션까지 더해 포만감을 안겨준다. 엘튼 존과 쿨리오의 뮤직비디오, 하이네켄 광고 등으로 뛰어난 영상감각을 인정받은 데이비드 돕킨은 1998년 리들리와 토니 스콧 형제가 제작한 <클레이 피죤>으로 데뷔했다. 와킨 피닉스와 빈스 본이 나오는 블랙코미디 <클레이 피죤>은 데이비드 돕킨의 장기가 영상만이 아니라 이야기 전달에도 있음을 증명했다. 아기자기하게 인물과 사건들이 맞물리는 <샹하이 나이츠>는 데이비드 돕킨의 유쾌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샹하이 눈>에 이어 <샹하이 나이츠>의 각본을 쓴 앨프리드 구프와 마일즈 밀러는 인용과 변주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작가들이다. <샹하이 나이츠>에서는 과거와 현재,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허무맹랑하지만 섬세하게 연결시키며 웃음을 자아낸다. 과거의 인물과 실재하는 배경 그리고 영화사의 사건들까지 휘황찬란하게 끌어들이는 덕에 그것들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서부로 간 찬왕은 자신의 이름을 장 웨인이라 개명하고, 런던에서 만난 소매치기 소년의 이름은 찰리 채플린이다. 뒷골목의 시장에서 우산으로 펼치는 성룡의 액션 위에 <사랑은 비를 타고>가 흐르고, 빅 벤에 매달린 로이 오배넌의 모습은 무성영화 시대의 코미디언 해롤드 로이드의 <세이프티 래스트>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잭 더 리퍼’가 어느 날 갑자기 살인을 멈추고 사라진 이유도 <샹하이 나이츠>를 보면 알 수 있다. 귀족으로 가장한 오배넌에게 라스본의 하인이 이름을 묻자 오배넌은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가 벽시계에서 셜록과 홈스라는 이름을 따오고, 라스본의 소굴에서 도망치느라 훔쳐입은 옷은 바로 홈스와 와트슨의 단골 복장이다. 그 덕에 웨인과 오배넌을 도와주던 아티 도일 형사는 영감을 얻게 되고, 마침내 그 유명한 코넌 도일이란 이름으로 전업하여 소설을 쓰게 된다. 황당하다고? 물론이다. 하지만 <샹하이 나이츠>는 모든 것을 유쾌한 농담으로 만든다. 그 경쾌하고 현란한 농담이 바로 <샹하이 나이츠>의 즐거움이다. 라스본이 주최한 파티에 잠입했던 웨인과 오배넌이 자동차를 타고 도망치다가 겨우 도착한 풀밭 위에는 거대한 돌들이 놓여 있다. 이런데 누가 돌을 쌓아놓았냐고 투덜거리는 오배넌의 머리 위로 보이는 것은 스톤헨지다. 왜 런던 교외에 스톤헨지가 있냐고 묻는다면, <샹하이 나이츠>를 즐길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성룡 단독 주연인 <턱시도>도 이미 히트를 쳤지만, <샹하이 나이츠>의 묘미는 역시 성룡과 오언 윌슨의 앙상블이다. <아이 스파이>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오언 윌슨은 파트너를 돋보이게 하는 능력에서는 가히 천부적이다. <아이 스파이>의 어설픈 스파이 못지않게, <샹하이 나이츠>의 말많은 바람둥이 로이 오배넌은 성룡의 액션을 부각시키는 파트너로서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러시아워>에서 ‘말’을 담당하던 크리스 터커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오언 윌슨은 배경으로 물러서는 데도 익숙하다. 그래서 <샹하이 나이츠>는 <러시아워> 시리즈보다 훨씬 과거 성룡의 홍콩영화를 떠올리게 한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관객과 벌이는 흥미진진한 게임,<히 러브즈 미>

■ Story 미술을 전공하는 안젤리끄(오드리 토투)는 심장전문의 루이(사뮈엘 르 비앙)에 대한 사랑으로 항상 애달아 있다. 루이에게 선물도 보내고 그의 초상화를 그려 보내기도 하고 같이 여행갈 계획도 세우지만, 그는 임신한 아내를 떠나지 못하고 늘 안젤리끄를 바람맞히거나 혼자 남겨두기 일쑤다.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목격한 안젤리끄는 상심한 마음에 자살을 기도하게 되고, 그 순간 영화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 Review 핑크빛 하트로 가득 찬 아기자기한 포스터에 ‘그는 나를 사랑해’(he loves me)라는 달콤한 제목, 게다가 오드리 토투의 묘한 미소까지 합쳐졌을 때 과연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를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러나 이 영화는 단연코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며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놀랍게도 스릴러의 토양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물론 이 스릴러는 결코 섬뜩하거나 긴장으로 가득 차 있지 않다. 이 영화에서의 ‘무서운 짝사랑’은 결코 미저리의 사랑처럼 위협적이지 않다는 거다. 관객은 계속해서 안젤리끄의 안타까운 사랑에 시선을 빼앗긴다. 관객을 속이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이 영화는 매우 신선하게도 몽타주를 이용하고 있다. 숏과 숏이 맞물려 있을 때 관객은 그 연결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낸다. 예를 들어 공원에서 아이와 즐겁게 뛰노는 루이를 보여주는 숏 뒤에 미소를 지으면서 그를 그리고 있는 안젤리끄의 숏이 붙을 경우 둘이 한 화면에 같이 담겨 있지 않아도 관객은 그들이 같이 공원에 놀러온 것으로 자연스레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카메라의 시선을 주관적인 시선으로 대체해버린 것 같은 숏들은 영화 곳곳에 드러나지 않는 장치처럼 숨어 있다가 나중에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영화의 후반부에 보여지는 반전은 여타의 스릴러나 공포영화들의 반전처럼 숨겨졌던 이야기들을 갑자기 짜잔 하고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관객이 눈치채지 못했던 카메라의 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방식으로서의 반전이다. 이렇게 볼 때 ‘그는 나를 사랑한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he loves me, he loves me not)라는 영어제목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것이 된다. 감미롭게만 느껴지는 사랑이 실은 얼마나 허구나 환상에 의존하는 건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혼자만의 읊조림은 매우 커다란 복선을 가지면서 새롭게 다가온다. 따뜻한 색감에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낫 킹 콜의 <러브>, 게다가 오드리 토투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살짝 비튼 영화는 제법 탄탄한 시나리오의 구조 위에서 관객과 흥미진진한 게임을 벌인다. 그리고 그 게임은 관객에 익숙해져 있는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사랑의 문법’을 영화적으로 관찰하고 비튼 것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wetsox@hanmail.net

대상받은 <질투는 나의 힘> 프로듀서가 본 로테르담영화제 참관기

1월23일 오후 5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주변은 저녁 어스름의 잿빛 구름에 덮인 채, 환하게 불 밝힌 꽃 농장의 온실 불빛들만 반짝거린다. 우리식 대로라면 공항 출구부터 영화제 깃발로 뒤덮여 있고, 당연히 이름이 적힌 피켓이라도 들고 누군가 기다릴 줄 알았는데…. 공항에는 영화제를 알리는 흔한 포스터 한장 붙어 있지 않았다. 물어물어 픽업 서비스 창구에 가서야 여행안내 책자 사이로 영화제 홍보엽서가 조금 놓여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 개막 이틀째라 영화제 사무국과 게스트 라운지 등은 한가로운 편이었다. ID카드를 받아들고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시차 때문에 새벽에 눈을 떠보니 눈은 어느새 비로 바뀌어 있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공식일정을 확인하려고 일찍 영화제 사무국으로 향하던 중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9시가 다 되어서도 어둑어둑한 하늘에서는 계속 비가 내리는데, 아직 문도 열지 않은 창구 앞에서 티켓을 예매하려는 사람들이 건물 밖까지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꾸물거리던 날씨는 낮이 되자 언제 그랬냐 싶게 갰지만, 티켓 예매소 앞의 분주함은 하루종일 계속 됐다. 거기다 국내영화제에선 하루 4회 이상 상영하는 경우가 드문데, 여기선 종일 6편까지 볼 수 있게 상영시간표를 짠 것도 신기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 넘어서까지 상영과 관람이 이어지는데, 이른 오전이나 늦은 밤에도 극장은 영화를 보러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형스타나 유명감독이 방문하지도 않고, 대규모 이벤트나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상영장 주변 외에 로테르담 도시 전체는 조용한 편이었지만, 이 영화제에 온 사람들은 열심히 영화를 보고 얘기를 나누면서 정말 실속있게 영화제를 즐기고 있었다 “영화 속 한국 직장문화가 신기해요”영화제 공식 데일리 뉴스지와의 첫 인터뷰. 꼼꼼히 수업 듣는 학생처럼 박찬옥 감독의 답변을 열심히 받아적던 여기자는, <질투는 나의 힘>의 영문제목()에서 코미디영화가 연상된다고 한다. 다음날 이어진 네덜란드 문화예술 TV와의 인터뷰. ENG 카메라 인터뷰라 배경이 괜찮은 곳을 고르느라 영화제 본부 건물을 여기저기 헤매고 나서야 간신히 시작됐는데…. 정작 그 옆에서 음식과 식기 나르는 일을 하는 바람에 사운드는 엉망이었다.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으나 사운드 담당자는 나중에 더빙이나 자막을 입힐 것이니 상관없다는 태도다. TV기자는 영화에서 묘사된 한국 내의 직장문화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일이 끝나고 그렇게 자주 직장사람들끼리 어울려 술을 마시는지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 한윤식처럼 부하 직원과 특별한 관계를 갖는 일이 빈번한지 등등…. 드디어 첫 일반 관객 시사. 약 500여석의 객석이 대부분 채워진 것을 바라보며,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사이먼 필드의 소개로 감독과 함께 무대인사를 했다. 상영을 한 곳은 7개관이 밀집된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우리 영화가 상영된 곳은 중간 크기의 상영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스크린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영사기 마스킹을 허술하게 해서인지, 우리나라에선 아직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필름 풀 사이즈 크기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상영 도중 자리를뜬 건 정확히 38명이었다. 영화 중반 이후부턴 한명도 없었는데, 500석 규모 극장에서 이 정도면 실적이 좋은 걸까?기술적인 아쉬움, 한국적 정서와의 교감 등에서 불안감이 있었지만 대체로 관객은 영화를 무리없이 이해하는 편이었다. 특히 문성근, 배종옥 등 배우들의 연기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좀더 적극적인 관객 질문과 의견들은, 토니 레인즈가 진행한 두 번째 상영부터였다. 두 남자주인공, 이원상과 한윤식의 호모섹슈얼리티 분위기에 대한 내용, 박성연, 안혜옥 두 여성 캐릭터에 대한 여성 감독으로서 페미니스트적인 시각여부에 대한 질문 등, 국내 시사 때와 비슷한 내용들이었다. 특히 홍상수 감독에 대한 유럽 관객의 넓은 인지도 때문인지, 진행하는 토니 레인즈부터 일반 관객에 이르기까지 홍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서 작품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와 연출 스타일을 비교하는 질문이 많았다. 하긴 영화제 공식 책자에 소개된 박찬옥 감독의 약력에서도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 경험 사실을 공들여 밝히고 있는 걸 보면, 자신들의 영화제에서 발굴한 작가(홍상수 감독은 1997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작품상인 타이거상을 수상했다)에 대한 긴밀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느껴졌다. 송종국 선수, 로테르담에 떴다! 12개 부문에 걸쳐 700여편이 넘는 장·단편 영화들이 상영되는 터라 관심갈 만한 영화를 골라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우리 영화와 함께 경쟁부문인 타이거상에 오른 작품들이었는데, 시상식이 있기 전 감독이 기억에 남는 영화들도 있었다. 영화제에서 주최한 만찬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과 작업방식 등을 설명하던 앤드루 청의 <웰컴 투 데스티네이션 상하이>(Welcome to Destination Sanghai), 사진모델 출신으로 감독이라기보다는 귀여운 악동 같은 1976년생의 재기발랄한 모습을 보여줬던 이세야 유스케의 <가쿠토>(Kakuto), 박찬옥 감독만큼이나 수줍음을 많이 타 사람들과의 접촉을 어려워했던 아이슬란드 출신 다구르 카리의 <노이 알비노이>(Noi Albinoi) 등. 특히 앤드루 청은 본인이 직접 제작, 연출, 촬영, 편집을 담당하며 순발력 있게 비디오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최근 상하이 주류사회의 일상적인 하위문화를 컬러풀하고 역동적인 MTV스타일로 선보인다. 결국 시상식에서 <웰컴 투 데스티네이션 상하이>는 심사위원 특별상(Critic’s Special Mention)을 수상했다. 영화제에 참가한 사람들 의견에서 가장 수상 가능성이 많은 작품으로 점쳐졌던 <노이 알비노이>는, 자연의 재난에 대응하는 17살 소년의 태도와 방식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는데 주위의 대단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수상을 하진 못했다. 메인 프로그램에 선보인 작품들은 지난해 부산영화제에 참가했던 것들과 중복되는 게 많았다. 하지만 눈길을 끄는 몇몇 작품들은 항상 상영관을 가득 메웠다. 포스터부터 도발적인 래리 클라크와 에드 라흐만의 공동연출작 <켄 파크>(Ken Park). 데뷔작인 <키즈>만큼이나 파격적인 장면과 적나라한 묘사로 시선을 끈 이 작품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네 가족의 끔찍한 사연들을 보여주고 있다. 감독은, 로버트 알트먼의 <숏컷>에서 보여진 방식처럼 각각의 이야기들을 병렬적으로 늘어놓으며 태연하고 건조하게 비극적이고 위선적인 사건들을 풀어놓는다. 이미 많이 알려졌지만, 안정되고 개성적인 연출력을 다시 보여준 감독은 단연 폴 토머스 앤더슨을 꼽을 수 있다.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 그는, 사운드를 이용한 화면의 충격과 긴장 그리고 상징적인 파스텔 색감과 독특한 카메라 움직임 등으로 이전작인 <부기 나이트>나 <매그놀리아>가 허투로 만들어진 게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네마 리게인드(Cinema Regained) 부문에 선보인 호금전 감독의 <대취협>은, 우연히 보게 되었지만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는다. 홍콩 무협영화의 유명한 제작자인 ‘란란 쇼’의 쇼브러더스에서 1966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이야기 구성의 상업적 진부함을 제외하면 액션연기와 연출, 편집 등에서 요즘 무협액션영화와 비교해 손색이 없다. 홍콩의 무협액션영화의 기본 전형은 이미 그 시절 호금전 감독이 완성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이번 영화제에 참가한 국내 작품들은 폐막작인 <취화선>을 비롯해 <오아시스> <생활의 발견> <죽어도 좋아> <로드무비> 등이었다. 이중 <오아시스>의 이창동 감독과 명계남 대표, <로드무비>의 김인식 감독은 영화제에 와서 일반 관객 시사와 Q&A 등의 행사에도 참여했다. 영화인은 아니지만 영화제에 참석한 주목할 만한 한국 인사로 가장 눈에 띄었던 사람은, 네덜란드 축구리그에서 뛰고 있는 송종국 선수였다. 그는 <오아시스>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는데, 그가 소속된 페예노르트 구단은 로테르담을 연고지로 하고 있다. 역시, 상받는 순간은 감동의 도가니 타이거상 부문 시상식은 폐막 이틀 전에 열렸다. <질투는 나의 힘>의 공식상영 두 번째날 로테르담에 도착한 부산영화제 김동호 위원장은 나름대로 동향을 파악하면서 조심스레 수상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시상식장에서, 장만옥의 전남편으로 더 잘 알려진 프랑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드디어… 정말로… “”을 호명하는 순간, 뭉클함과 아득함이 함께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항상 그렇지만, 수상을 하는 박찬옥 감독은 담담한 편이고 오히려 통역을 맡은 이픽처스의 조은정 실장이 더 상기된 표정이었다. 객석 맨 앞에 자리한 김동호 위원장은 연신 셔터 누르기에 바빴고…. 타이거상 공동수상 작품은 러시아의 라리사 사딜로바 감독의 <위드 러브, 릴랴>와 아르헨티나의 산티아고 로자 감독의 <스트레인지>였다. <위드 러브, 릴랴>는 러시아 시골에 사는 평범한 여인의 삶과 일, 남자관계 등을 다큐멘터리적 느낌으로 냉정하게 응시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그리 크게 울림이 있지는 않았지만 여성 감독의 세심함이 돋보였다고 생각했다. 산티아고 로자 감독은 수상소감에 5분 이상을 말하는 등, 상을 받은 것에 꽤나 감동스러웠던 표정이었다. 그는 이 영화제가 지원하는 허버트 발스 펀드자금으로 <스트레인지>를 만들었는데, 또다시 같은 영화제에서 경쟁부문상을 타게 된 것이다. 수상한 세 작품을 놓고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들어온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적인 이야기, 인간관계의 섬세하고 미묘한 문제를 보여준 작품들이라는 점. 로테르담영화제의 성격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영화제 수상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다음날 이른 새벽, 스키폴 공항으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우연히도 공동수상한 로자 감독을 만났다. <스트레인지>를 약 5천달러에 만들었다는 그는, 제작비 마련의 어려움을 떠듬거리는 영어로 토로한다.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Q&A 시간에 토니 레인즈가 물어본 게 생각났다. “… 이 영화를 앞으로 어떻게 관객에게 보여주고 만나게 할 것인지…?” “… 그건 앞으로 풀어야 할 임무이자 숙제라고…” 말했던 거 같은데…. 어스름한 새벽 여명 너머 차창 밖으로 불 밝힌 꽃 온실 농장이 환하게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