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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그 요리] 신비의 열쇠, 그까짓 마늘

먼, 아주 먼 옛날 시궁쥐 로스큐로가 수프의 왕국 ‘도르’에서 사람들의 오해와 무지로 여왕을 죽게 한 뒤 도르 왕국은 대혼란에 빠진다. 우리의 영웅 생쥐 데스페로가 이 왕국에 나타나 다시 도르 왕국을 살리고 위험에 빠진 공주도 구한다는 그런 줄거리다. <작은 영웅 데스페로>는 요리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의 내러티브에 핵심 노릇을 하는 게 수프다. 할리우드가 지중해의 소박한 요리 라타투이에 재미를 봤는가 보다. 또다시 소박한 남부 유럽 요리인 채소 수프를 가져다 썼으니 말이다. 우리도 국물 요리에 요리 이상의 어떤 상징을 부여한다. 노숙자들이 ‘어허’ 하면서 뜨끈한 국물 한 그릇을 비우는 장면이려야 텔레비전 다큐 프로그램의 ‘그림’이 되지 그들이 설사 최고급 빵집 제품인들 케이크를 물어뜯으면 영 재미없게 되는 거다. 요리의 대가를 묘사하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도 눈을 지그시 감고 국자로 국물을 떠먹어보는 장면이 가장 그럴듯하게 차용된다(이 영화에서도 비슷한 신이 나온다). 하긴 일본 열도를 지금도 울린다는 <우동 한 그릇>도 국물 요리이다. 사실 수프를 왕이 사랑하는 고급 요리로 묘사하는 장면은 좀 과장이다. 게다가 등장하는 수프는 라타투이처럼 소박한 서민 수프다. 이 영화의 무대는 중세 유럽일 텐데, 이 시절의 유럽 문화를 평균적인 미국 관객의 선입견과 교양에 대충 두들겨 맞춘 인상이 짙다. 중세 유럽의 왕이 수프 따위에 목숨을 건다는 설정은 코미디 같은 얘기다. 축구공 만한 트러플버섯이나 사냥한 황금색 뇌조의 척수로 만든 수프라면 몰라도. 어쨌든 영화 도입부에 궁정 요리사가 수프를 맛있게 만들려는 지난한 노력이 묘사된다. 왕의 입맛에 착 붙는 수프를 만들어야 한다. 그는 비전의 요리책에서 불러낸 요리 도사에게 비법을 전수받으려고 한다. 이때 마늘이 등장한다. 그까짓 마늘, 할지 몰라도 서양 관객에게 마늘은 맛의 신비를 쥔 열쇠처럼 통용되곤 한다. 마늘을 평생 먹지 않는 사람도 흔한 서양인들에게는 꽤 그럴듯한 소재이다. 여기에다 포도주병이 수프에 빠지면서 수프의 맛을 환상적으로 바꾸는 장면도 나오는데, 술이 음식 맛을 낸다는 것을 신기해할 미국 어린이 관객을 겨냥한 설정이 아닌가 싶다. 술은 학교에서 담배나 코카인과 함께 마약류로 취급되고 교육받기 때문이다.

[원태연] “난 이단아지, 나쁜 놈이지, 이제 익숙해”

비현실적이다. 맞다, 사실 그런 이야기다. 홀로 남은 소년, 소녀가 등을 맞대고 한집에서 살면서 서로 눈물을 닦아주는 러브스토리. 소녀는 아름답게, 소년은 건실하게 자라지만, 선의를 품었다 해도 침략자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남자가 둘 사이에 끼어들고, 누군가는 시름시름 앓다 목숨을 잃는 뻔한 결말. 그렇지만 조금 솔직해지자. 가슴 시린 어느 저녁이라면, 당신 역시 그림같이 예쁜 남녀가 그림같이 예쁘게 사랑하다 그림같이 예쁘게 이별하는 그림같이 예쁜 멜로영화에 선뜻 손이 가지 않을까. 게다가 권상우, 이보영, 이범수 주연에, 지휘자로 이름을 올린 이가 원태연이다. 아니, 원태연이라니? 맞다. 90년대 초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손끝으로 원을 그려 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같은 시들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시인 원태연이, 맞다. 남녀주인공의 이름부터 케이와 크림이라니 감상적인 그의 시쓰기와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 아닌가. 주특기인 러브스토리를 데뷔작으로 선택한 시인, 아니 감독 원태연을, 3월3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인처럼 안 생겼다는 말을 듣기 싫다”던 그는 의외로 줄담배에, 말수 적고, 돌려 말할 줄 모르며, 사격을 배운 탓에 상대의 눈을 지그시 조준하는 딱 남자 같은 남자였다. -개봉을 앞둔 심정은. =떨린다. -그전에도 시나리오를 몇편 쓴 걸로 아는데 이번 시나리오는 어떤 계기로 쓰게 됐나. =공동작가가 있다. 그 친구 노트 저쪽에 ‘사랑하는 여자 결혼시키기 대작전’이라고 적혀 있더라. 베스트셀러 극장 공모할 거라고. 그거 로맨틱코미디로 하면 안될 것 같고, 나한테 맡기면 슬픈 멜로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된 거다. -기본적인 얼개는 본인이 짠 건가. 각본가에 다른 사람 이름이 함께 올라와 있고, 각색가도 따로 있던데. =일단 초고를 썼고. 그걸 다른 분이 각색했다. -원래 대답을 단답형으로 하나. (웃음) =말주변이 없어서. 길게 말할까? 알겠다. -각색가가 초고에서 덜어낸 부분, 첨가한 부분은 뭔가. =덜어낸 부분은 거의 없다. 구성이나 순서를 좀. -예를 들면? =솔직히 말해도 될까. 내가 작가잖나. 근데 작은 아이디어나 그런 것들 있잖나. 그걸 사람들이 너무 자기 것으로 착각하더라고. 그런 게 싫어서 그분들 이름을 크레딧에 넣은 거다. 시나리오는 내가 다 썼다. -시집에 등장할 것 같은 대사들도 등장하던데 이런 건 즉흥적으로 쓰는 편인가. =그렇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게 재떨이 좀 갖다 달라, 혹은 그냥, 같은 대사들. 아주 평범한 말인데 그 사람의 캐릭터를 나타내는 말. 사랑은 양치 같은 거다, 그런 건 설명이 필요한 대사잖나. -사랑하는 남자가 원한다 해도 죽어가는 사람을 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여주인공은 이해하기 어렵던데. =그걸 어떻게 말로 이해를 시키겠나. 구조 같은 걸 말하자면 이건 할 말이 없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크림은 당장 강원도로 내려가서 집을 팔아서 산삼을 사야 한다, 고 생각한다. 케이는 그런 크림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을 느끼고. 산삼을 파는 사람은 사기꾼이어야 한다. 그리고 둘이서 단칸방으로 옮겨서 진정한 사랑을 나누고 같이 약을 먹어야 한다. -그러면 이렇게 그린 이유는 뭔가. =안타깝잖아. -안타까움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고? =크림은 아마 시집까지 갈 생각 없었을걸. 타이밍을 봤겠지. 거기서 그러잖나. 결혼식을 올렸으니 진짜 부부가 됐다. 이보영씨 코디네이터가 결혼식 장면을 찍을 때 나한테 살짝 와서 아무도 안 물어봤던 질문을 하더라고. 감독님, 왜 결혼식 하객들이 박수를 안 쳐요? 그래서 너는 참 예리해서 내가 알려줄게. 여기가 결혼식장이 아니라 장례식장이야, 그랬지. -케이와 크림이 식사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더라.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에 의미를 많이 둔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 집이 경기도에서 농사하던 집이라 밥에 민감하다. (웃음) 밥 먹었냐, 가 인사고, 밥 먹은 배가 왜 이래, 이게 인사다. -주인공들이 라면을 좋아하던데 라면은 좋아하나. =여긴 내가 좋아하는 게 다 나왔다. 라면, 담배, 커피. -제목도 직접 지은 건가. =제목은 회사에서. 내가 원래 지었던 제목은 ‘사랑에 빠진 미운 오리들’이다. -극중 라디오 프로그램의 이름 말인가? =그게 원래 제목이었는데 회의를 하던 중에 대표가 슬픔보다 더 슬픈, 뭐 그런 거 없어,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차라리 그걸로 하자. 이야기만 붙여서. 안 슬프면 나 바보 되는 건데 딱 오니까 간 거지. -이모개 촬영감독과 조근현 미술감독이 합류했다. 화면이 인상적이던데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작업했나. =그 영화 자체가 누가 이야기를 해주는 형식이다. 미술까지는 모르겠는데, (이)모개랑은 누가 이야기해주는 느낌을 살렸으면 좋겠다고 의견 조율을 했다. 자칫 비현실적인 이야기인데 모개가 현실감을 잡아줬다. -권상우는 그전에 다른 영화의 출연을 번복하면서 말들이 많았는데 어떻게 캐스팅했나. =나는 캐스팅이 된 다음에 만났다. -연출을 하기로 했으면 그전부터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시나리오를 썼을 때는 감히 내가 권상우를 캐스팅하자 그럴 환경이 아니었다. 이 회사에서 시나리오를 잡고서 나를 기쁘게 해줬지. 권상우가 캐스팅될 것 같아, 어때? 고맙죠, 그랬다. -이보영도 비슷한 케이스인가. =그렇다. 내가 주장한 건 정애연씨밖에 없다. -이승철, 정준호, 남규리 등 얼굴 보면 알 만한 연예인들이 깜짝 출연했다. =제작사의 인맥 덕이다. 나는 그렇게만 주장했지. 이승철씨 역으로 진짜 가수가 나와야 한다고. 우려하는 사람도 많았거든. 이걸 배우가 해야지, 아님 화면이 튄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한 게 이건 진짜 같은 이야기가 돼야 해서. -사랑, 연애, 이별, 그런 것들에 대한 시들을 주로 썼다. 첫 영화도 멜로인데 사랑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있나. =관심이 많다기보다 내가 더 잘하는 거고. 내가 코미디를 쓰면 보지도 않더라고. -사랑 이야기에 소질 있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솔직하거든. 왜? 돌려 말하는 남자보다 솔직하게 말하는 남자가 멋있지 않나. 나는 그렇더라. 솔직하게 대하면 여자들이 좋아한다. -크림과 케이라니 이름부터 좀 민망하다 싶은 관객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의견은 없었나. =많았지. 사실 이름이랑 직업을 못 정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카페에서 대학 교수인 친구랑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친구가 크림을 따로 달라고 했다. 그런데 저 멀리서 교수님, 그러더라고. 어, 너 어떻게 지내. 저 엠넷 PD 됐잖아요, 그러면서 명함을 주더라고. 그 상황에서 크림 나왔습니다, 이러는데 사람 이름처럼 들리더라. 오케이, 여자 이름 크림. 남자 직업은 라디오 방송국 PD. 여자 직업은 작사가. 남자 이름은 뭐로 하지? 강철규, 내가 아는 싸이더스 PD 이름이다. 생각해보니 이름이 참 착하더라고. 성이 강이니까 케이로 해야겠다. -1998년부터 영화 연출을 준비했다고 들었다. 자기가 직접 만들고 싶은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건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그때 쓴 시나리오는 차승재 대표가 갖고 있다. 차승재 대표가 그걸 사서 연출을 하라 그랬는데 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 하면 안되겠다 싶더라. -그것도 멜로였나. =멜로였다. -혹시 기술적인 부분을 배우진 않았나. =안 배웠다. -1995년 신씨네에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 일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때 제대를 했는데 민병천 감독이라고 알지? 그날 신철 사장도 만났던 것 같다. 당시에 민병천 감독이 준비하던 <나비>라는 시나리오를 썼고. 그게 잘 안돼 삼영필름으로 가서 또 쓰고. 딴 데 가서 또 쓰고. 2년이 지나더라고. 솔직히 나는 영화 연출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열 받아서 시작했다가 거기 빠져버린 거야. 그러고 비디오가게에서 영화를 빌려보다가 5개월째 안 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되게 찍는 것도 힘든 거구나. -그 부분에서는 성공했다고 보는가. =안타깝긴 하지만 이게 내 손을 떠나갔을 때 작가가 가져야 할 마음상태가 있다고 본다. 그냥 애가 나오니까 청결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 거다. -청결한 마음? =난 그걸 굉장히 중시한다. 탁한 마음 갖고 있으면 여지없이 날아온다. -그럼 민병천 감독은 이미 알고 있었나. =그날 만났다. -어떤 계기로 만났나. =그게 기억이 안 나. (웃음) -책 출판하려고 출판사에서 잡일을 하기도 했다고 하던데. =7년 동안 습작을 했고, 네달 동안 잡부로 일했다. 원래 세달 하는 건데 한달 더 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먼저 도전하는 타입이 아닐까 싶던데. =나는 그런 게 아니라 무모한 사람이다. 옛날에는 몰랐다. 내가 무식하다는걸. 요즘에 나이가 드니까 나한테 내가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게 나는 여기 툭 나를 밀어놓고 그걸 지켜보는 사람이다. 울면서 배우는 스타일이다. -뮤직비디오도 두편 연출했다고 들었다. =정말 잔인한 경험이었다. 처음 작품은 이요원씨랑 서태화씨가 주인공이었다. 노래는 모를 거다. 안 떠서. 나는 뭐 하여튼 잘 찍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제작자가 마음에 안 든다고 흑백으로 만들어버린 거다. 성질이 나가지고. 그 다음번엔 내가 작사한 노래를 가지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거지. 댄스음악이었어. 그런데 월드컵이 터졌지. 사장됐어. -요즘은 시 안 쓰나. =서른세살 때인가. 시를 쓰고 앉아 있더라고. 책 내려고. 슬펐지. 구라거든. 그 뒤에 안 썼다. -책 내려고 시 쓰는 게 싫어서? =그거야말로 진짜 구라지. 다른 시인들이 나를 욕하는 게 그 사람들이 나를 모르기 때문이지, 시에 대한 내 자세는 훌륭하다고 본다. -사람들이 뭐라고 욕하는데? =그게 시냐. 나도 쓴다. 그리고 이단아지, 쉽게 말하면. 나쁜 놈이지. 영화판에서도 그럴걸? 난 이제 익숙해. 작사판에서도 그랬고. -경희대에서 체육학을 전공했다고 나오더라. =사격선수였다. 고2 때부터 한 거다. 대학 들어가서 중국 시합 갔다 와서 그만뒀지. -사격을 시작한 계기는 뭔가. =너무너무 좋아서였지. 우리 학교에 사격부가 있었다. 고가의 운동이라서 참고 있다가 어떤 사고로 인해 보호가 필요해서 사격부에 들어갔지. 총을 갖고 다니면 날 괴롭히지 못할 것 같아서. (웃음) -혹시 누군가한테 찍혔나. (웃음) =농담이다, 농담. 총을 되게 좋아했다. 총이랑 말만 보면 가슴이 뛰어. -의외로 남성적인 취향 아닌가. =난 완전 남자다. 그리고 남자다운 사람을 좋아한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 배우 류승범

스무살의 그는 짝퉁 아르마니 티셔츠를 입고 껌을 질겅이며 건들건들 영화 속으로 들어왔다. 고개 숙인 채 치뜬 눈과 궁상맞게 쪼그려 앉은 포즈가 엄청 잘 어울리는 배우구나 생각했지만, 정작 본인은 어울리고 자시고 한 오라기 관심도 없는 게 분명했다. 모처럼 날아차기를 해도 목표물에 미치지도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류승범은, 끝내 홉뜬 눈으로 눈밭에 널브러진다. 그러나 쓰러진 그 청년과 빼도 박도 못하게 눈이 마주쳐버린 관객과 영화인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신동’형 배우의 탄생이었다. 2년 뒤 류승범을 대중 스타로 만든 드라마 <화려한 시절>은 극중 인물들의 구박을 통해 그에게 “맷집 좋은 놈”이라는 애칭을 선사했다. 된통 얻어터지고 돌아서서 “내 영혼까진 빼앗진 못할걸”이라고 구시렁거리는 류승범 때문에 한바탕 웃고 나면 휑하니 슬펐다. 너, 영혼은 그렇다 치고 당장 오늘 해질 때까지 서럽고 고달픈 일이 너무 많을 텐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대한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이 요약한 대로, “인생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라는 주제를 구현한 캐릭터들을 통해 류승범은 난생처음 인생을 뜻대로 열어갔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품행제로>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이 이어졌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재능은, 양수겸장, 기습공격, 측면돌파로 쌩하니 질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20대 반환점을 돌고 찍은 영화 <주먹이 운다> <가족의 탄생> <사생결단>은 공인된 류승범의 걸출한 표현력이, 더 긴 호흡과 타이트한 화면의 압박 속에서도 능히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눈썹보다 길게 빠진 눈꼬리, 얼굴 절반을 역삼각형으로 덮는 입. 이목구비가 오목조목한 미남은 아니지만 길쭉한 선이 지배하는 류승범의 얼굴은 멀리서 봐도 표정이 선명하다. 비틀리고 구겨지는 변주의 가짓수가 끝이 없어서 단편 옴니버스 <이공>에서 함께 작업한 민규동 감독의 말대로 편집실을 행복한 고민에 빠뜨리는 표정의 편람을 과시한다. 풍부한 표현과 더불어 류승범 연기의 또 다른 고유함은 그의 몸에 내재된 ‘엇박’이다. <품행제로>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공동작가이자 중단된 프로젝트 <29년>을 류승범과 준비했던 이해영 감독은, 주어진 상황에서 엇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본능이 그에게 있다고 관찰한다. “인물들이 심각한 논의를 하는 장면에서 의자를 빼고 뒤에 앉아 다리 떨고 농담을 던져 심각함에 물을 타야만 직성이 풀리는 캐릭터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코미디 중 백미는 류승범의 엇박 기질을 활용하고 있다. 주인공 상환이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받은 텔레파시에 응대하는 대사, “방송실에 계세요?”가 예다. 어쩌다 멜로 연기를 할 때 류승범의 엇박자는 수줍음으로 나타난다. 영화에서 그는 로맨틱한 기분이 들면 햇빛에 눈이 부신 듯 찡그리는데 어찌 보면 울려는 것 같다. 우리 눈앞에서 끓어오르는 20대를 보낸 류승범은 요즘 부쩍 달라졌다. 아니, 축적된 변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슴없이 기독교 신앙을 언급하고 작은 행복을 예찬한다. 반항아의 투항이라고 실망할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없다. 일도, 방황도, 놀이도, 남들이 20년에 걸쳐 치를 분량을 10년 동안 밀도 높게 해치운 덕에 다음 단계로 진행도 빠른 걸까? “그렇죠. 우리는 한번 발 담그면 끝까지 가야 도로 나오니까요.” 류승범의 웃음 섞인 동의다. 차기작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류승범과 일할 계획을 세운 이준익 감독은 “동시대 남자 배우 중 그만큼 야성적 내면이 그대로 연기에 구현되는 배우는 여전히 드물다”고 말한다. 우연한 데뷔 직후 그를 인터뷰했던 전 <씨네21> 조종국 기자 역시 “변했다고들 말해도 상대적으로 다른 배우들보다 본래 모습을 잘 간직한 배우”라고 평한다. 한편 이해영 감독은 “철부지 막내이기만 했던 인상에 언젠가부터 오빠의 이미지가 보인다”고 말한다. 생활의 변화가 그의 연기에 무엇을 더하거나 뺄지 우린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류승범이 인터뷰에서 열심히 들려준 이야기는 뜨거웠던 20대에 대한 안면몰수가 아니라 일탈과 월반의 선수가 찾아낸, 열정과 청춘을 연장하는 현실적인 방책으로 들렸다. -1년 전 어느 인터뷰에서 2008년은 학생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움직이고 싶다는 희망을 말하셨어요. 실제로 어떻게 보냈나요? =‘개과천선’의 의미는 아니었고요. (웃음) 왜 삶의 방식이 조금 달라지면 되게 재밌잖아요. 저는 워낙 무엇이 재미있나 초롱초롱 살피며 사는 사람이라서 제가 경험 못한 아침형 생활이 어떤 것인지, 이른 아침의 ‘내추럴 하이’(자연스러운 고양감)가 어떤 건지 맛보고 싶었어요. 더운 여름날 편의점 파라솔 아래서 시원한 맥주를 마실 때 세상이 멈춘 듯한 느낌 있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영화를 위해 몸을 만들었다가도 촬영 끝나면 억한 심정으로 몸을 망가뜨린다고 한 적이 있죠? 실제로 <주먹이 운다> 마치고도 15kg 쪘고요. 하지만 방금 말씀하신 느낌을 구하게 됐다면 생활 습관도 달라질 거 같아요. =영화 끝나면 그동안 지긋지긋한 운동에서 해방된 것처럼 손을 놓아버렸죠. <야수와 미녀> 찍을 때는 79kg이 나갔어요. 가만히 있어도 살이 안 붙는 체질은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직업이 배우니까 살이 찌면 결국 빼야 하는데 그러기가 너무 피곤해서 이제는 평상시에 기본적인 운동을 하고 체력을 마련하려고 해요. -류승범씨는 운동신경이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몸을 필사적으로 만들지는 않잖아요. 그 점이 늘 흥미로웠어요. =지금도 배에 왕(王)자 만들려고 운동하진 않아요. 몸의 미학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몸의 미학은 이런 거예요. 몸이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과 역사를 말해줄 때가 있잖아요. 우리가 말하는 노가다 근육도 그렇고, 걷지 않고 앉아서 일하는 현대인의 복부비만도 그렇고요. 제 직업은 모델이 아니고 배우라서- 배가 나온다거나 하면 곤란하겠지만- 필요 이상 몸을 만들면 오히려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웃긴 얘기지만, 몸을 만들기보다 만들어진 몸을 없애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2년 동안 먹을 것 안 먹고 몸을 만들어놓았는데 들어온 역할이 완전 아저씨라면요. 스스로 “아, 내가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데”하는 아까움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꺼리지 않을까요? 몸이란 것이 또 만들면 보여주고 싶거든요. 몸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그쪽으로 끌고 가게 되는 거죠. 배우는 어느 선배 말대로 하얀 상태로 있다가 뭐든 시키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헬스클럽에 가면 유산소 운동만 한다고 잔소리 듣는데 아직도 무거운 역기랑 씨름하는 사람들 보면 “아유 왜 저런 데 힘을 쓰지?”싶어요. (웃음) -이준익 감독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견자 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오랜만의 영화라 각별한 점이 있나요.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현장에 네번인가 다섯번 나간 것이 다였고 <라듸오 데이즈>도 여러 배우가 같이 연기하는 장면이 많아서 스스로 느낌은 영화 찍은 지 아주 오래된 것 같아요. 언론에 알려진 <29년> 외에도 중단된 작품들이 있었어요. 쉬고 싶어서 쉰 게 아니죠. 그러다보니 작품 선택의 기준이 좁아지는 게 아니라 넓어져요. 며칠 전 <29년>의 이해영 감독님을 만나는데 당분간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 계속 가동하는 것이 일단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죠. 제작사쪽에서도 요즘은 “우리만 믿지 말라”고 해요. 과거에는 남의 영화가 먼저 들어가면 배우 뺏긴다고 안타까워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더 확정적인 자본을 끌 시간을 벌었다고 좋아하는 분위기예요. 활기차고도 어두웠던 10대 -여섯살 무렵 충남에서 서울로 올라오신 걸로 압니다. 그 이전 기억이 남아 있나요? =짤막짤막하게요. 온양 시내에서 주로 살았는데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시골에 머문 적이 있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서 뱀을 본 일이 기억나요. 긴 오솔길을 할머니랑 걸으면 아직 초저녁인데도 하늘이 까맣고 별이 무척 밝았어요. 잔디에 물 주는 호스를 틀어놓고 수영복 입고 형이랑 조스 놀이한 것도 기억나고요. -태어날 때, 어머님 몸에 무리가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들었어요. 무사히 태어나게 해주면 목회자로 키우겠다고 기도드리셨다면서요. =그건 뭐, 어머니가 제 성향을 잘 모르실 때라 마음대로 정하신 거죠. (좌중 웃음) 어쨌건 결과적으로 모태신앙을 갖게 되었고 종교를 못 떠나요. 나름대로 거칠어지려고 해도 기본을 어쩔 수 없어요. 신앙이 곧 제 자유의지가 되어버렸어요. -최근 들어 류승범씨의 신앙이 주목을 받지만 2001년 기사를 봐도 “찬송가를 쓰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신의 존재가 매일 자신 안에 작용하는 힘인가요? =매일 만나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돼요. 이따금 극한상황에서 무서우리만큼 가까이 다가와 대화를 하는 일이 있죠. 하지만 저는 종교를 친구나 지인에게 강권하지 않아요. 교회에서는 권하라고 말하지만, 아니 하나님이 나보다 능력이 좋으신 분이…. (좌중 웃음) 신이 매일 저를 작동하는 것까진 아니라도 작용하죠. 운전하다 앞차가 끼어들면 “아이시!” 하려다가도 “형제님, 축복합니다. 가시죠”한다거나. (폭소) 종교는 갖고 있다고 떠벌려야 딴 짓 못해요. 컴퓨터 배우려고 싸이월드를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사진을 보고 “크리스천이 담배 피우고 술 먹고 뭐하는 짓이냐”는 리플이 장난 아닌 거예요. 원래 남의 욕에 심장이 무딘데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담배도 지금 멈춘 상태고 클럽에서 디제이할 때도 주로 물을 마셔요. 10년 넘게 술과 담배를 해서인지 더이상 재미도 별로 없고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고비마다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은 성장기였을 거라고 짐작해요. =부유한 환경에서 학업에 열중하기만 하면 미래가 보이는 처지가 아니었죠. 꿈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요. 그래도 불우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덕분에 선택이 빨랐죠. 어차피 초이스가 별로 없으니 빨리 선택해서 빨리 갔죠. 활기차고 좀 어두웠어요. -활기차고 어두웠다고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품행제로> 같은 영화 속 캐릭터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지만…. =사실 <품행제로>의 중필이라는 아이 보면 스산하거든요. 저는 중필이가 가슴 저렸어요. 어둠이 만성이 되다보니 견디는 방법을 알게 된 아이랄까. 10대 때 생각해보니 조직 생활은 못할 것 같았고 혼자 할 수 있는 일 중 음악에 목표를 뒀어요. 당시 컴퓨터 한대면 할 수 있는 미디음악이 유행이어서 천호동 이태원을 전전하면서 나이트클럽 DJ 형들을 쫓아다니며 음악과 디제이 공부를 같이 했는데, 으아 재능이 너무 없는 거예요. 지금도 제가 DJ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요. 제가 약간 박치 끼가 있거든요. 음치도 있고. -설마! =배워보면 금방 알아요. 제가 아니다 싶으면 포기는 빨라요. 한데 그렇게 꿈을 접고 나니 그나마 밝은 어둠은 없어지고 어두운 어둠만 남았어요. 다크하게 살았죠. 지금 2000년, 2001년에 찍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면 영화 속 제 눈을 똑바로 못 쳐다보겠어요. 너는 왜 그렇게 화가 많았니, 묻게 돼요. -그나저나 박치라는 말씀은 정말 의외입니다. 류승범씨의 대사, 액션, DJ 활동에 공통된 요소는 리듬감이라고 생각해왔거든요. =흑인의 리듬감은 리듬감이라고 안 하고 그루브(groove)라고 해요. 얘들은 백인의 그것과 달리 리듬이 엇박인데 일종의 박치인 거죠. 흑인음악을 들어보면 “딱 딱” 이 아니라 “딱 따닥 딱딱” 하는 마치 한국의 장단 같은 박자예요. 제게도 엇박의 리듬감은 있는 것 같아요. 딱 떨어지는 리듬감을 지닌 사람과 달리 전체적인 삶의 태도나 방식도 조금씩 어긋나 있고. -힙합 음악도 같은 이유에서 좋아하는 건가요? =예전에는 음악을 들을 때 가사나 정서를 중요시했어요. 지금은 가사도 없는 하우스 음악,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좋아해요. 단순한 것을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음악인데 네가 알아서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느끼라는 음악이에요. 시니컬하죠. 똑같이 춤을 추고 있으면서도 어떤 이는 슬퍼하고 어떤 이는 기뻐해요. -2007년부터 공식적인 자리에서 디제잉을 시작했습니다. 엊그제 강남 클럽에서 열린 한 대학의 졸업파티에서 플레이하시는 모습을 구경했는데요. 스타 DJ의 장단점이 있더군요.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는 직방인데, DJ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이 쏠려 사람들이 스스로 춤추고 즐길 때까지 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매번 그렇다면 힘들겠죠. 노는 데에 익숙한 클러버들이 모이는 자리는 또 달라요. 저도 에너지를 많이 받죠. 음악 틀다가 너무 흥분해서 떨어진 적도 있고. 하지만 엊그제 같은 행사는 제가 에너지를 확실히 빼앗기는 날이죠. 한창 나이에 공부하느라 놀이에 목말랐던 학생들이 클럽에 왔으니 팍팍 제 기운을 빼가는 거죠. (웃음) 돌다리, 두들기면 관객이 알아차리더라 -데뷔 초 인터뷰에서는 영화도 많이 안 본다고 했는데요. 그동안 활동하면서 음악, 패션 등 문화예술계쪽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한 걸로 보입니다. 그냥 어울리는 게 아니라 본인의 취향과 관점도 있는 것 같고요. 의식적으로 접근하고 배우신 건가요? =책으로부터도 배우지만, 저는 공부는 돌아다니면서 사람한테서 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항상 많이 만나고 눈과 귀를 세우고 있어요. 다행인 것이 인복이 많아서 만남의 시간이 아까웠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전 배우들이 움츠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직업이 좋은 것이 다른 분야 아티스트들을 만나고자 하면 보통 사람보다 쉽게 만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식당에 걸린 좋은 그림을 보고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아무래도 일반 손님보다 성의껏 알아봐줘요. 배우가 관심분야에 대해 조금만 더 적극적이면 길은 훨씬 많이 보여요. 백현진 형도 그랬고 그런 식으로 만난 분들이 많아요. 만나서 그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느끼고 싶거든요. -액션이 좋은 배우를 언급할 때 항상 거명됩니다. 류승범씨의 경우 역시 몸 연기의 근본은 춤이었다고 봐야 할까요? =사실 강동원 같은 친구들이 팔다리가 길어 검을 잡으면 동작이 멋지죠. 다만 액션에도 연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때릴 때도 왜 때리는지 왜 칼을 뽑는지 감정을 갖고 하려고 노력해요. 액션 잘하는 배우들 보면 동작으로만 소화해내는 게 아니라 연기를 함으로써 좀더 잘하는 것처럼 보여요. 1번부터 10번까지 합을 짰다면 동작으로만 외워하는 것이 아니라 합을 완전히 숙지해서 툭 치면 그냥 나오게 만들고, 그 다음에 연기를 하는 것이죠. 성룡의 동작은 이연걸만큼 멋있지 않지만 동작의 마무리와 연기가 뛰어난 거예요. -감독들이 류승범씨를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본능, 순발력, 직관 등이에요.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제작기를 보면 연기를 하다 보니 정말 계란을 밟아도 안 깨졌다거나 와이어도 없이 대뜸 물구나무서기에 성공하는 모습이 나오잖아요? 이상한 연상이지만 저는 그런 모습이 상징적인 것 같아서 재밌더라고요. 본능적으로 뛰어난 배우라는 평가에 자부심을 가졌던 시기도 있을 것 같은데요. =자부심까지는 아니에요. 단 우연하게 데뷔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배우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말해주는 면은 있는 것 같아요. 본능을 믿는다기보다 제 자신을 믿어요. 내가 이 돌다리를 건너기로 선택했고 감독이랑 함께 바위랑 작은 돌을 멀찍이 가까이 배열했어요. 그러면 건널 때는 그냥 당당하고 씩씩하게 쭉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또 두들기고 흔들리면 관객이 알아차려요. 하지만 천재도 아니고 “난 100% 본능적인 배우”라고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해요. 전세계를 통틀어 혹시 그렇지 않나 의심되는 배우는 드니 라방(<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개런티 받고 일하는 배우 중에 “난 본능에만 충실하면 돼”하면서 촬영 전날 두 다리 뻗고 자는 배우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상대적으로 직관이 발달한 배우쪽에 속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텐데요. =다른 배우를 두고 어느 분이 쓴 말에 감탄한 적이 있어요. “10점은 못 맞추는데, 4점, 5점짜리 과녁을 화살로 뻥 뚫어버리는 배우”라는 표현이었어요. 10점을 딱 쏘면 박수가 쏟아지는데, 우리 같은 배우는 4점, 5점을 쏘되 아예 관통해버리니까 보는 사람이 멍해져서 점수 매기는 걸 잊어버린다는 거죠. (좌중 웃음) 그래서 과녁을 다시 설치해주고 쏴보라고 하면 또 뚫어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10점을 못 맞춰도 계속 일은 할 수 있는 거예요. (웃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배우”같은 식상한 표현에 비해 참 훌륭한 묘사였어요. -(웃음) 정진하겠습니다. 봉태규씨 인터뷰에서 읽었는데 2000년에 영화상 신인상 후보로 시상식에 갔다가 알아봐주지 않아서 2층에 앉은 적이 있었다면서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찍고 <와이키키 브라더스> 들어가기 전에 옥수동 형네 집에 얹혀 살 때였어요. 깡소주 사와서 새우깡이랑 먹고 있는데 태규가 우리집에 놀러와 자장면을 시켜먹었어요. 태규가 시상식은 가고 싶은데 혼자 가긴 뻘쭘하니까 나를 엮으려고 작전을 세운 것 같아요. (웃음) 당시 배우라는 의식도 없었던 저는 생각도 전혀 못했는데 태규가 시상식 구경 가자는 거예요. 택시 타고 세종문화회관에 갔는데 쪽팔려서 차도 멀찌감치서 내렸어요. 레드카펫 말고 옆으로 올라갔는데 후보라고 말해도 문을 지키는 분이 모르는 거예요. 어찌어찌 스탭이 나와서 입장은 했어요. 원래 신인은 2층에 앉는 줄 알고 자연스럽게 2층에 앉아 있는데 후보 호명할 때 옆자리 관객이 무슨 큰일난 것처럼 저를 흘끔거리는 거예요. 그 순간까지 아무렇지도 않다가 왠지 무안해져서 태규를 끌고 도중에 나왔어요. -<와이키키 브라더스> 포스터가 아직도 기억나요. 류승범씨가 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었죠. 역할 비중을 생각하면 뜻밖이었어요. =흑백 사진인데 기태 머리만 빨갛죠. 30대 세명은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축 처져 우중충하게 걷고 있는데 영화 속 유일한 20대인 기태는 거기 딸려가면서 뒤를 돌아보며 웃고 있어요. 어딜 가는지도 모르면서 좋은 거죠. 그 미소는 인생의 뒤를 돌아보는 웃음이 아니라 관객을 바라보며 영화의 의미를 전달하는 거죠. “나 어딘가로 가요. 기분 좋아요.” -<품행제로>는 배우 류승범이 가진 표현력의 진열장입니다. 이소룡 연기도 해보고 송강호 연기도 해보고, 지금 보면 그맘때 사진첩 보는 기분이겠어요. =중학교 시절이라고 똑같이 말해도, 누구는 수학여행을 누구는 체육대회를 기억하잖아요. <품행제로>는 제 20대에 그런 추억이에요. 굉장히 재밌는 시절이었죠. 월드컵이 있었고 연애도 시작했고 돈도 벌기 시작할 무렵이었어요. 그즈음 내 길이 미세하게 열리는 걸 느꼈어요. 그때까지는 교회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한번도 실감 못했거든요. (좌중 웃음) “나도 사람이구나, 뭔가 할 수 있구나” 처음 느꼈어요. 신파 같은 정박보다 엇박에 끌린다 -류승범씨 연기는 유난히 혼잣말이 많아요. <품행제로>에서는 상대를 때리면서도 두려움을 감추느라 어쩌고저쩌고 말이 많고,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상환도 ‘아유’, ‘저기’하는 식으로 사이 메우는 혼잣말이 끊이질 않죠. <다찌마와리…>의 문어체 독백은 말할 나위도 없고요. =지금은 여백에 끌리지만 당시에는 여백이 싫어서 꼭 채워넣어야 했어요. 대사도 말이니까 “너 밥 먹었어? 뭘 먹었어?” 하기보다 “야, 너 밥 먹었어? 아니, 근데 뭘 먹었는데?”라고 하는 편이 더 찰지고 맛있다고 생각한 거죠. 지금이라면 “밥 먹었어?”그러고는 한참 콤마를 찍겠죠. 제 성향이 바뀐 건 음악 들을 때 실감해요. 전에는 웅장하게 시작해서 하이라이트가 다시 하이라이트를 낳는 모든 걸 주는 음악을 선호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끝까지 계속 줄 것처럼 안 주는 음악이 좋아요. 다 듣고 나서 “야잇”하며 화가 나서 또 듣는 거예요. (웃음) 근데 그 긴장이 클라이맥스보다 더 미쳐요. 일렉트로니카 음악 중 미니멀이라는 장르는 기본 리듬과 멜로디 하나로 이루어지거든요. 그래서 누구나 음악을 만들지만 또 누구나 훌륭한 걸 만들진 못해요. 거기에 숙제가 있는 거죠. 누가 침묵할 때 “저 사람은 많은 걸 내면에 안고 있어서 침묵하는 거구나”하는 거랑 “아, 쟤는 말을 하면 깨니까 안 하는구나”는 구별되잖아요. (폭소) -웃을 포인트를 주지 않고 끌고 가다 끝에 가서 피식 바람이 새게 만드는 코미디에 능해요. 다들 진지한 분위기에서 심각한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바람을 빼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캐릭터에 드러나고요. =그것도 역시 엇박의 일종이죠. 충청도에서 자라진 않았어도 핏속에 있나봐요. 형이 만든 <짝패>에도 나오지만 충청도는 살벌한 걸 살벌하게 표현 안 해요. 가령 사람을 죽일 때 “아프지? 아프지?” 하면서 때리다가 죽으면 “죽으니까 사람이여” 이러는 거죠. 시니컬하잖아요? 저도 그런 유머가 좋아요. 코미디뿐 아니라 슬픔도 정박 아닌 엇박이 좋아요. 코미디건 멜로건 너무 정직하면 신파처럼 느껴져요. 예술은 현실에서 평면만 보이는 감정을 끄집어내다가 입체적으로 만드는 작업이잖아요. 곧이곧대로 옮긴다면 우리가 할 일이 뭐 있겠어요. -<아라한 장풍대작전> 마지막 결투장면도 생각나네요. 흑운(정두홍)이 비장한 구세주로 등장해 세상을 구제하려고 하는데 상환이는 놀이로 맞서잖아요. “아 왜 이러셔? 심각하게” 하면서 널빤지를 스케이트보드처럼 올라타고 싸웠죠. =일부러 목소리도 한번 까뒤집어서 연기했어요. 흑운이 한대 치면 “아이씨, 배 아프잖아아아”하면서 투정부리는 톤으로 갔죠. -연기생활에서 <주먹이 운다>가 두 번째 중요한 지점 같습니다. 그전까지 별로 없던 클로즈업도 많았고 반면 표현은 최소화됐죠. 평소 매우 풍부한 눈과 입의 움직임을 대폭 제어했어요. 뭐랄까. <품행제로>의 중필이 말할 내용이 하나면 열 마디 하는 아이였다면 <주먹이 운다>의 상환은 할 말이 열개라면 한마디하고 마는 성격이었는데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연장선 위에 있는 연기이기도 해요. <품행제로>가 과장과 허풍으로 자기 속내를 감추었다면 <주먹이 운다>는 다른 방식으로 감춘 거죠. 상환이가 딱 한번 우는데, 할머니 면회실에서 눈물을 흘리잖아요. 할머니가 맨정신이었다면 못 울었을 텐데 넋을 놓고 자기를 못 알아보니까 혼자라서 운 거예요. 사람이 다 그래요. 스스로에게도 솔직해지지 못하고 주위의 딴 것을 뜯어다가 자기를 포장하죠. 내 학교, 사는 동네, 그런 나 아닌 것들로 가짜의 나를 만들고 그것이 점점 커져서 마침내 자신도 스스로 어찌할 수 없게 되고, 그걸 지키기 위해 살잖아요. 제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비겁하다기보다 솔직해지기에는 환경이 너무 받쳐주지 않는 아이들이었어요. 사랑스러운 것까진 아니라도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인물, 영화에 담길 만한 인간인 거죠. -<주먹이 운다>를 마치고 연기하는 일이 재미없어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한 적 있어요. 그건 직업으로 연기한다는 사실에 따라오는 여러 요소를 받아들이기 힘겨워서 한 말인가요? =짧은 시간이지만 그때까지 앞만 보고 왔잖아요. 근데 어느 순간 내가 인감도장 갖고 이번에는 이 영화, 다음에는 저 영화 도장 찍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아마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그때까지도 갈등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시 심각하게 유학을 고민했죠. 언젠가는 나이 들어 떠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남들이 인정하건 안 하건 전 이제 평생 연기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몇년의 공백은 차이가 없거든요. 그래서 불황이라 해도 불안하지는 않아요. 다만 약간의 생활고가…. (웃음) 어려서 일을 시작해 돈을 허투루 썼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건 꼭 해야 하고, 전셋집에 인테리어를 하질 않나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곤 했죠.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왜 단역이 오버를…” -<가족의 탄생>은 당시로서는 공효진씨와 공연한 사실 자체가 외부자에겐 놀라운 일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공효진씨 최고의 연기라고 생각하고, 두분이 함께한 장면들이 무척 좋았어요. 출연에 망설임이 없었나요? =완전히 다시 연애는 아니었지만 잘 지낼 때였죠. 1년 정도 헤어진 건 우리가 연애는 좀 안 맞는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지 서로 사람한테 실망한 적은 없었거든요. <사생결단>을 찍고 있었는데 김태용 감독님이 승범이가 하면 어떨 것 같냐는 말을 꺼내셨고 효진이가 선뜻 쿨하게 저한테 연락을 한 거예요. 저도 두번 생각하지 않고 일단 시나리오를 달라고 했는데 참 좋았어요. 카메오를 원래 좋아하진 않지만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말하기엔 <복수는 나의 것>부터 <만남의 광장>까지 카메오 출연이 꽤나 많잖아요? (웃음) =일단 하기로 하면 카메오로 인식하지 않고 똑같은 역할로 봐요. 하는 역도 없이 얼굴만 내미는 카메오는 싫어요. 서너신만 나와도 시나리오 전체를 읽어요. 단 한 장면 나와도 필요없는 인물은 없다고 보거든요. 시나리오상 불필요하더라도 좋은 연출자는 결국 필요를 불러일으켜요. 그런데 <가족의 탄생>은, 우와 서러웠어요. 나름 준비를 많이 했거든요? 감독님, 촬영기사님과 설정과 캐릭터를 의논하고 그랬는데,“왜 단역이 오버를…” 하는 공기가 현장에서 느껴지는 거야. (폭소) 그래서 그냥 상의 안 하고 준비한 연기를 했죠. 근데 모니터를 보니까 내가 없어! 무슨 설정을 해도 내 대사의 반은 효진이 반응숏인 거예요! 몇신 없으니 디테일로 승부하려고 설정이 무지 많았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대화를 하다가 여자 앞에서 양말을 털면서 신는 연기가 있어요. 그걸로 전 그 집의 공기를 표현한 거예요. 또 여자 앞에서 양말을 턴다는 행위로 둘이 살림을 했던 것 같은 느낌을 전한 것이고 젊은 애들은 하지 않는 동작이니까 인물의 나이도 어느 정도 표현한 거죠. 그런데 얄짤없이 넘어가더라고요. (좌중 웃음) -<만남의 광장>에서 부임하는 길에 지뢰를 밟아 며칠이나 꼼짝 못하는 교사 역으로 출연해 ‘장면 도둑’ 소리를 들었는데요. 연극 워크숍처럼 하나의 상황을 주고 끝없이 변주하는 연기라 본인도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시간 경과와 설정은 시나리오에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대사와 행동을 만들었어요. <주먹이 운다>와 <사생결단> 같은 지독한 영화를 한 다음이라 대놓고 희극을 하고 싶었던 욕구를 나름 해소했어요. 그런 경우는 완전 품바짓을 해야 해요. 피에로는 자신이 미쳐 있지 않으면 딱 걸리거든요. 쌈마이라고 욕 먹는 걸 무서워하면 안돼요. 쌈마이의 끝을 가줘야 욕을 안 먹어요. 그런데 다 찍고나서 퇴장이 흐지부지한 것 같다고 추가촬영을 하자는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제가 연기를 좀 과하게 한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렸죠. 시나리오에 없던 신이 필요해졌다는 건 제가 잘못 했다는 뜻이거든요. -출연작을 보면 공효진씨 정도를 제외하면, 경력이나 모든 면에서 강한 남자배우와 공연한 예가 많아요. 백찬기 선생 같은 TV 대선배부터 안성기, 최민식, 황정민씨까지. 차기작 후보 중에 <용서는 없다>라는 작품도 설경구씨와 나란히 출연할 가능성이 있다고 들었고요. 남자쪽이 좀더 편합니까? =생각보다 제가 여자를 잘 못 대해요. 누나들이 도리어 편하고 또래 이성은 불편해요. 특히 요즘 또래 여배우들은 너무 예쁘잖아요. 저만 꼭 뒤떨어진 인간 같고 나만 연예인, 배우 아닌 거 같아요. 시상식 같은 데를 가도 왠지 뒤에 가서 비웃고 쟤는 왜 여기 왔냐고 할 것 같다니까요. (웃음) 근데 최민식 선배님, 황정민 형 만나면 편안한 것이 같은 부락 식구 같아요. (좌중 폭소) -그렇다면 여자를 친구로 둔다는 것이 류승범씨한테는 쉬운 일이 아니군요. =거의 불가능하죠. 저는 남녀는 친구가 되기 어렵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보거든요. 덤덤해지지 않으니 이성을 만나기 두렵죠. 전 여자친구가 있으니까. (웃음) 무슨 말이냐면 남녀불문하고 저는 남성/여성으로서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우리 배우들은요. 결혼해서 자식이 생기고 할아버지가 되어도 누군가의 감정을 빼앗아와야 하는 직업이니까. 제가 여자라면 아직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보고 설렐 거 같아요. 미키 루크가 재기할 수 있었던 것도 아직 촉촉함을 간직해서라고 생각하고요. 브래드 피트가 천재라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 자기를 참 잘 알잖아요. 장르영화의 거친 역도 하지만 배우로서 여자들에게 언제든 탄성을 자아낼 힘을 끌고 가니까요. 옷 입기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 -최근에 옷에 대한 집착이 없어졌다고 밝히긴 했지만, 옷 입기를 즐거워하시잖아요. 한때 쇼핑 중독이었다고 표현한 적이 있기도 했죠. 옷 입는 즐거움도 여러 가지일 것 같은데요. =옷은 저한테 그날의 기분을 만드는 도구예요. 제가 옷을 꾸며 입는 이유는 자애(自愛)라고 해야 하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식이에요. 사실 옷 잘 아는 사람들이 옷 모르는 사람보다 돈은 덜 쓸걸요? 잘 모르는 사람이 백화점 가서 한꺼번에 사죠. “난 돼지고기를 좋아해”라는 말과 “난 옷을 좋아해”라는 말은 다르지 않아요. 다만 전에는 옷에 허비한 에너지가 많긴 했어요. 말하자면 다른 거 안 먹으면서 돼지고기 좋다는 곳마다 쫓아다닌 거죠. 그런데 이젠 확실한 내 스타일이 생기니까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있는 옷으로 돌려입고, 막아입어요.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무조건 편안하게. 과거에 옷에다 저를 맞췄다면 이제 옷이 나한테 맞춰야 해요. 그리고 저는 솔직해졌으면 좋겠어요. 옷 잘 입고 겉모습 화려한 배우를 보면 “쟤는 영혼이 맑지 않고 허영기가 있어. 저런 데 신경을 쓰니 연기적 에너지가 덜할 거야”라는 편견이 있잖아요. 반대로 허름하게 하고 다니면 막연히 연기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든가. 사실 그렇진 않거든요. -그래도 ‘패셔니스타’로 인식되고 패션 에디터, 디자이너와 가까우실 텐데 “요즘 스타일이 나빠졌다”거나 감을 잃었다는 말을 듣게 되는 일이 걱정되진 않나요? =받아들여야죠. 이정재씨가 한 시대 풍미한 패션 아이콘인데, 그렇다고 지금 빅뱅 옷을 입을 순 없잖아요? 그건 오히려 이뤄놓은 바를 깎아먹는 거죠. ‘패셔니스타’라는 호칭도 잘 모르겠어요. 저, 꽤 오랫동안 워스트 드레서, 패션 테러리스트로 불렸거든요. 어느 날 평가가 바뀐 거예요. 기본적으로 사람이 멋있어야지 옷이 사람을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임스 딘이 패션 아이콘이 된 데에는 그의 성격과 표정이 포함돼 있는 거죠. -TV 연예 프로그램이나 가끔 나올 때면 영화 속 모습과 크게 달라서 희한했어요. 굉장히 공손하고 좀처럼 나서지 않으려는 태도가 확실히 보이거든요. 고정 이미지가 강해서 방어를 하는 걸까 싶기도 했고요. =데뷔 초에는 방어하려는 태도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배우에 대해서는 편견이 좀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조금만 변해도 달라보일 거 아니에요? (웃음) 제가 원래 일대일 만남은 편한데 다수를 상대로는 불편해요. 학교 다닐 때도 교실 안에서는 장난을 못 치고 하굣길에 친한 친구 앞에서는 난리였죠. 게다가 “35번, 일어나서 읽어봐”하면, 글씨가 입체로 보이고 철자를 틀리게 읽는 난독기도 있어서 수업 시간에 공포가 좀 있었어요. 데뷔 뒤에도 라디오를 할 때면 불안감이 남아 있었죠. 20대의 설레는 마음 유지하고파 -동물을 키우는 일을 무서워한다고 말한 적 있어요. 류승완 감독님에 의하면 어디 나들이 가면 조카들이 차 근처에만 가도 다칠까봐 굉장히 챙기고, 감독님이 어디 멀리 가도 사고날까 걱정이 많다고 들었고요. 가까운 존재를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강한 편인가요? =무의식에 있을지는 몰라도 트라우마까진 아닌 것 같고요. 동물은 원래 싫어했는데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우는 중이에요. 효진이가 기르던 갈색 푸들을 맡았어요. 제가 워낙 걱정을 사서하고 늘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요. 예를 들어 효진이가 상을 타오면 기쁜 날이잖아요? 요즘은 달라졌지만 예전의 저는 축하하기보다 “야, 넌 이제 X된 거야” 하는 반응을 보였어요. 제가 상을 받아도 “와, 이제 난 끝장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빡세게 살아야 되나, 큰일났다.” (폭소) 그런데 효진이 만나서 제가 사람 된 거예요. 이 친구는 정말 낙천적이에요. 완전 신이 내린 평범한 기준에 합당한 삶을 사는 아이거든요. 그런데 평범한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세상이라 독특한 매력을 갖게 된 거죠. -거기서 평범하다는 말은 비범의 반대말이 아니군요. 신이 인간에게 의도한 방식대로 산다는 뜻? =‘노멀’이죠. 희로애락을 다 받아들이고 자연을 사랑하고… (기자가 웃자) 진짜로 효진이는 그래요. 분리수거 꼭 해야 하고, 환경운동에 꿈이 많고, 저보고도 이제 너도 시작하라고 말해요. 보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형과 형수(영화제작자)가 사는 모습이 류승범씨가 지닌 결혼의 상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까? =결혼생활의 현실을 지켜보았기에 숙제가 많다고 느껴요. 연상의 친구도 많다보니 유치원 다니는 아이를 둔 연배의 이야기도 많이 듣거든요. 과연 나라는 사람이 현실을 헤쳐갈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죠. 그러나 현재로서는 꼭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왜냐하면 그거 해야 사람 되는 것 같아요. 못 이길 것 같아서, 희생과 사랑이 두려워서, 피하는 건 비겁해 보여요. 그만큼 힘들다는 건 분명 그 너머에 뭔가가 있기 때문이겠죠. -류승범씨에게 20대를 보내는 일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일도 무척 많이 했고, 배우로서 청춘의 얼굴을 연기하다보니 남보다 두세배 인생을 살며 청춘의 행복과 힘겨움을 경험했을 테니까요. 시네마테크 행사에서 <아이다호>를 추천작으로 고르신 것이나, 신앙에 다시 부쩍 진지해진 것도 그래서 아닐까 짐작했어요. =스물아홉, 서른이라는 숫자가 주는 느낌이 굉장한 건 아닌데, 고민의 폭이 점점 커져요. 저란 사람이 고민하길 좋아하고 자기를 혹사해야 제대로 산 것처럼 느끼는 피곤한 타입이에요. 심장이 멈추지 않고 항상 뜨거웠으면 좋겠어요. 늘 설레지 않으면 배우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20대에는 나이 먹은 선배들 삶이 재미없을 것 같았지만 나이 들어보니 다른 재미가 있잖아요? 아이돌들 보면서 “너네도 나이 들어봐라. 알록달록한 옷 입고 찍은 사진 다 태우고 싶단다” 할 수 있는 재미도 있고요. (폭소) 그래도 앞으로 30년을 더 산다고 치고, 30살에서 60살까지 한번 살래, 20대를 세번 살래 묻는다면 후자를 고르긴 할 것 같아요 에너지를 잃고 싶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좌충우돌을 계속해도 사람들이 아무 말없이 기다려 준다는 점이 좋겠죠. (웃음) 追伸 2월 말 서울의 한 클럽에서 열린 어느 대학 졸업파티에 류승범이 DJ로 나선다고 하여 구경하러 갔다. 밤 11시를 넘기자 후드를 눌러쓰고 흰 캔버스화를 신은 그가 생수통을 들고 도착했다.“일 마치고 가서 빨리 쉬어야죠”라는 엷은 피로감이 밴 잔잔한 말투가 영락없이 일하러 온 사람이다. 젊은이들의 환호로 시작된 그의 플레이는 1시간 반가량 계속됐다. 천변만화하는 컴퓨터그래픽 영상과 일렉트로닉 리듬의 무궁동(無窮動) 속에, 부지런히 음반을 고르는 류승범의 자리만 이상하게도 동그마니 고요해 보였다. 이틀 뒤 인터뷰에서 내가 던진 많은 물음은, 결국 민망해 꺼내지 못했던 하나의 질문을 에둘러간 샛길이었는지 모른다. 안정과 애정의 결핍으로부터, 그러니까 머리가 아닌 몸으로부터 예술을 길어 올린 아티스트의 육체가 시간과 함께 자연히 변해갈 때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류승범이 다른 이야기 끝에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대답을 들은 기분이 되었다. “배우는 내 직업이고 좋은 인간으로 살아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예술이에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장대비를 우두커니 맞던 그 몇초간…

<석양의 무법자> (1966) 1950년대 후반 텔레비전 시리즈 <로하이드>에서 농장의 미남 감독관으로 첫 주연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후 세르지오 레오네에게 발탁되어 스파게티 웨스턴의 ‘이름없는 사나이 3부작’으로 옮겨간 뒤에는 질겅질겅 시가를 씹어대는 거칠고 비정한 사나이로 돌변한다. 이 둘의 차이는 그 부드러운 미소와 찡그림만으로도 확연하다. 이름없는 사나이 3부작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성공적인 첫 번째 연기 변신이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말수는 별로 없지만 말을 잘 타고 피곤함과 체념에 젖은 걸음걸이를 가졌다”는 걸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린 남자의 시가와 언제나 장전된 총은 오랫동안 그의 도상이 됐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세르지오 당신이 시키는 건 다 하겠어. 담배만 빼고”라고 말할 정도로 담배를 싫어했다). <석양의 무법자>에서 “어이 친구,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어. 하나는 장전된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땅을 파는 사람이지. 어서 파”라며 말하는 것조차 피곤하다는 투로 윽박지르던 그의 대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고독한 방랑자> (1982) <고독한 방랑자>(원제 <홍키통크 맨>은 싸구려 술집을 돌아다니며 연주하고 노래하는 가수를 뜻한다)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무명의 컨트리 가수로 등장한다. 이 영화는 구두 세일즈맨에서 별 볼일 없는 서커스 단장이 된 뒤에도 진정한 카우보이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인물 <브롱코 빌리>(1980)의 그 주인공과 앞뒷면을 이룬다. 꿈을 좇는 사내들이라는 주제로 묶인다. <브롱코 빌리>에서 그가 좀 나사 빠진 카우보이였다면 이 영화에서는 건들거리는 예술가다. 그는 나이 어린 조카를 데리고 허름한 술집을 전전하면서 지내는데, 마침내 프로듀서의 눈에 띄어 인정받아 그토록 꿈에 그리던 녹음을 하게 된다. 하지만 더이상 폐병을 이기지 못한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어딘가 처연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직접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서너번 등장하는데. 실력이 그다지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페인트 유어 웨곤>(1969)을 제외한다면 그가 영화에서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장면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의외의 명장면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 (1992)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렇게 돌아오리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냉혹한 신화적 총잡이로 살아온 그가 서부의 늙은 승냥이로 돌아올 줄 누가 알았을까. 아니 자기가 만들어서 이룩한 신화의 계보를 이렇게 냉혹하고 처량하게 끌어내려 파산시킬 줄 누가 알았을까. 몇개의 유명한 장면이 있는데 그걸 스파게티 웨스턴에 나왔던 그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이건 장르만 유사할 뿐 완전히 다른 인간이다. 처음 사람을 죽였노라 겁에 질린 신출내기 총잡이에게 허망한 선배 총잡이로서의 교훈을 던질 때, 후반부 쓸쓸한 모습으로 퇴장할 때 그가 선보인 연기의 가치는 이미 많이 말해져왔다. 그럼 윌리엄 머니가 악당들의 소굴로 들어가 악당보다 더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르던 순간은 어떤가. 이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주인공 윌리엄 머니를 피에 굶주린 짐승, 살인기계로서의 본성을 지닌 집행자인 것처럼 보여준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1995) 그 유명한 대사.“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하오. 단 한번도 말해본 적 없는 거요. 이렇게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단 한번만 오는 거요.” 1965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이방인으로 찾아온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는 그날 밤 망설이는 시골 여인 프란체스카 존슨(메릴 스트립)에게 그렇게 말하고 그녀의 집을 나섰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말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대사이자 동시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의 연기인생에서 한 가장 로맨틱한 대사다. 하지만 그 장면보다 더 가슴을 치는 곳은 그가 장대 같은 빗줄기 속에 우두커니 서서 식료품점에서 나오는 그녀를 마지막으로 볼 때다. 차에서 저 여인이 내려 자기에게 오기를 기다리는 그 몇초간. 늙은 육체가 한마디 말없이 마지막 사랑을 호소하는 그 순간. 물 기운에 헝클어져 무너져내린 머리칼과 가늘고 단단하게 뜬 눈. 그러나 상대방은 망설인 다음 오지 않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는 이 영화의 전에도 후에도 이만큼 강렬한 로맨스를 연기한 적이 없다. 물론 메릴 스트립이라는 당대 여배우와의 합이었기에 가능했겠지만, 그래도 빗속에 서 있던 그의 어깨를 잊을 수가 없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2004) 보호자 또는 대체부모 그러나 어딘가 완전한 보호와 양육을 약속하기에는 부족한 어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런 인물을 종종 탁월한 연기로 완성해낸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늙은 트레이너 프랭키 던은 그 정점이다(그리고 <그랜 토리노>의 왈트 코왈스키는 좀더 고약한 그 후속인물쯤 될 것이다). 프랭키는 여자 복서를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매기의 끈질긴 청에 못 이겨 드디어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이다. 친딸과는 불화를 겪는 이 노인이 수양딸이나 다름없는 매기를 정성으로 가르치고 보살핀다. 불행하게도 링에서의 사고로 매기가 불구가 됐을 때도 그녀를 아끼는 건 그녀의 가족이 아니라 프랭키다. 그는 영화에서 그녀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몇 가지 행동을 하는데, 물론 약물을 투여하여 그녀의 뜻에 따라 저세상으로 보내주는 마지막 장면이 가장 강력하다. 하지만 프랭키가 “나 이제 일어나 이니스프리로 가리…”로 시작하는 예이츠의 시를 다정다감하고 유머러스하게 읽어주는 이 장면은 쉽게 지나치기에 너무 자애롭다. 코에 안경을 걸치고 예이츠의 시를 읽어주는 백발의 노인 프랭키 혹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전영객잔] 당신의 확신을 고발한다

올해도 아카데미 시즌을 전후로 흥미로운 미국영화들이 많다. 그중에서 시간이 좀 지났지만 배우들의 황홀한 연기를 제외하곤 더 말해지지 않은 영화 <다우트>, 닉슨 연기로 호평을 받은 프랭크 란젤라에 대한 관심 이외에 다른 초점이 부가되지 않는 <프로스트 vs 닉슨> 두편에 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두 영화는 서로 의식하고 맞닿아 있지는 않지만 <프로스트 vs 닉슨>을 보면서 뒤늦게 <다우트>에 관해 더 깊게 생각해볼 계기를 얻었고 둘을 짝지어 어떤 문제를 말해도 좋겠다는 판단을 갖게 됐다. <다우트>는 1964년 브롱크스 지구에 있는 성 니콜라우스 가톨릭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다. 이 학교의 근엄한 원장 수녀 알로이시스(메릴 스트립)는 폴린(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라는 자유분방한 신부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때 젊은 제임스 수녀에게서 폴린이 도널드라는 흑인 소년을 추행한 것 같다는 보고를 받는다. 알로이시스는 폴린의 죄를 밝히려고 하고 폴린은 죄가 없다며 항변한다. <프로스트 vs 닉슨>은 토크쇼 진행자 프로스트(마이클 신)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닉슨(프랭크 란젤라) 전 대통령의 1977년 5월 TV대담이 성사되고 진행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한다. 프로스트는 부패한 거물급 정치인 닉슨을 발판삼아 스타덤에 오르고 싶어 하고 닉슨은 만만해 보이는 연예인 프로스트를 자기의 정계 복귀를 위한 제물로 본다. 양측이 맞붙는 ‘대(vs)’의 구도에 주목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지금 설명한 이름들이 이 두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아니다. 우리는 알로이시스 수녀, 폴린 신부, 혹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본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프로스트, 닉슨, 혹은 프로스트와 닉슨에 관한 이야기를 본 것도 아니다. 실제로 이 인물들의 정보에 관하여 우리가 한정적으로만 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두 영화의 주인공은 그들이 아니다. <프로스트 vs 닉슨>은 그 점을 제목으로 명시한 것 같다. 그리고 비록 <다우트>가 제목에서 명시하지 않더라도 이 영화의 부제를 알로이시스 vs 폴린이라고 붙인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우리는 정확하게 프로스트 vs 닉슨, 알로이시스 vs 폴린의 이야기를 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주인공은 어떤 상태, ‘대’(versus)다. 두 영화는 마치 승패를 건 승부차기처럼 진행된다. 두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주목하게 되는 것이 그들의 역량 때문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것이 이 ‘대’의 구조 안에서 전개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이 영화들을 보고 명연기를 말하는 것은 배우가 인물의 내면에 대한 끈을 풀어낸 것에 대한 감동이기보다 그들의 승부가 얼마나 표면적으로 팽팽하게 상연되었는가에 관한 사후 진술이 된다. 그러므로 우선 질문은 ‘대’의 상태가 어떻게 매력적으로 전개되는가, 승부의 긴장감은 어떻게 진전되는가, 이다. 이때 두 작품 모두 성공한 연극을 영화로 옮긴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다우트>가 연극에서 영화로 곧장 건너온 것에 비해 <프로스트 vs 닉슨>은 애초 대담을 사칭한 텔레비전 TV쇼에서 연극으로 그 다음 다시 영화로 바뀌어왔다는 차이가 있다. <다우트>는 배우들의 곡예 같은 대사로 빈칸을 만들어 의문의 눈덩이를 굴린다. 이 영화의 문제제기와 그 해결법이 전부 그 방식 안에 있다. 제임스 수녀가 먼저 플린 신부의 의심쩍은 행동을 말로 옮겼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무슨 근거로 나를 의심하느냐는 폴린 신부에게 말한다. 창밖으로 보았을 때 한 소년이 당신이 잡은 팔을 뿌리치는 걸 보았다고. 그때 알로이시스 수녀는 폴린 신부가 소년에게 한 말을 듣지 못했다. 폴린 신부는 말썽쟁이 소년에게 훈계를 하고 있었지만 그 말을 듣지 못하고 상황을 넘겨다본 알로이시스 수녀는 그것을 유혹의 현장으로 본다. 이를테면, 사건의 중심에 선 흑인 소년 도널드의 증언이 있으면 해결될 일이지만 영화에서 아이는 증언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 결국 알로이시스 수녀가 들이민 증거도 다른 교구에 전화를 걸어 뭔가 폴린 신부의 비리를 확인했다는 거짓말이다. 그런데 그때 폴린이 주춤거린다. <다우트>에서 빈칸은 말로 시작되어 말로 종결되며 긴장은 이 사이에서 벌어진다. 배우들이 그 말을 상연한다. <프로스트 vs 닉슨>은 좀 다르다. 프로스트와 닉슨의 대립각이 특별한 숏(중계방송의 숏)으로 시작해서 그걸로 정점을 맺는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초반부 닉슨의 사임에 관한 정황을 알리는 뉴스들이 흘러나온 뒤 사임 연설의 녹화가 다 끝날 때까지 영화는 닉슨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다 헬기를 타고 떠나는 닉슨이 대중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을 프로스트가 브라운관으로 볼 때, 그때 마치 닉슨은 프로스트에게만 짓는 것 같은 눈빛을 보낸다. 물론 프로스트의 오해다. 하지만 그때 프로스트가 닉슨을 만나야겠다는 운명적인 생각을 갖게 된 거라고 영화는 보여준다. 그때까지 왜 닉슨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지에 관한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속 닉슨의 얼굴을 우리는 이제야 처음 확실하게, 그것도 사임 연설을 하는 그곳의 현장에서가 아니라 떠나가는 현장을 중계하는 텔레비전 브라운관에서 보는 것이다. 중요한 건 브라운관 안에서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프로스트와 닉슨의 첫 만남은 닉슨이 결정적으로 패한 걸 알리는 TV토론회 중계방송의 그 문제의 클로즈업으로 연관된다. 무승부입니까, 승패가 갈렸습니까 <다우트>는 영화가 연극을 무대화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때 말에 힘이 생긴다. 반면 <프로스트 vs 닉슨>은 텔레비전 중계를 연극화한 것을 다시 영화적 무대화로 옮긴다. 이때도 말은 중요하지만, 방점은 클로즈업에 찍힌다. 긴장의 정점에 마침표를 찍는 방식이 서로 다르며 각각 흥미로운 선택이다. 그러니 이것을 승부차기이지만 승부차기를 진행하는 룰이 다르다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는 질문은 있다. 대결의 구도를 전제한 상태에서 마침내 다시 돌아와 공통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관심사는, 그러면 누가 승자인가 하는 점이다. 그건 괜한 질문이기보다는 이 영화가 제기한 구조를 따라 영화를 본 우리의 정당한 의문이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재현의 장치가 다를지언정 이 점은 결국 누가 진실에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는가를 예감하게 한다는 데서 중요해진다. 이때 개인적으로는 이미 알려진 평가들에 공감하지 않는다. 가령, <다우트>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의견과 <프로스트 vs 닉슨>을 부패 정치가들이 보고 배울 점을 찾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 말은 <다우트>를 보고 나면 누가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알기 어렵고 <프로스트 vs 닉슨>을 보고 나면 승자가 확연해진다는 것으로 들린다. 하지만 나는 그와 반대로 <다우트>가 확고하게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준 영화이고, <프로스트 vs 닉슨>이 반대로 진실을 미루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우트>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은 대립이 주인공인 이 영화에서 결과가 무승부라는 뜻이다. <프로스트 vs 닉슨>에서는 엄연히 마지막에 닉슨을 사각으로 몰아넣어 항복 선언을 받아낸 프로스트가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다우트>는 무승부인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초반에 영화는 플린을 교인들 앞에 선 웅장한 강연자로 보여준다. 알로이시스는 그 반대편에서 일어나 걸어나오는 구도로 잡는다. 플린 vs 알로이시스의 대항 구도를 예고한다. 내내 폴린은 활기차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신부로 알로이시스는 과거에 붙잡힌 보수적인 옹고집으로 등장하는 것 같다. 그건 대체로 그렇다. 하지만 영화에는 이런 신도 있다. 두 사람의 식탁을 비교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노골적으로 우리의 판단에 혼란을 요구한다. 특히 폴린 신부의 식탁으로 화면이 넘어갔을 때 화면 가득 클로즈업으로 잡히는 벌건 핏물이 배어 있는 고깃덩이, 그리고 그걸 포크로 집어 먹으며 느끼한 웃음을 흘리면서 뚱뚱한 두 모녀에 관해 쓸데없는 농담을 지껄이는 폴린 신부의 모습은 그를 사악한 자로 의심하도록 유도하는 장면이다. 그러니까 알로이시스 수녀가 진실을 밝히겠다며 나가려 할 때 폴린은 왜 그녀를 못 가게 막은 것인가. 그것은 그의 죄에 대한 인정인가, 아닌가. 이때 그 고기의 살점과 느끼한 농담의 잔상이 끼어들게 되고 그의 무죄를 믿기에 석연치 않다. 혹은 알로이시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마지막 장면에서 흐느끼는 그녀의 행동이 옳은 일을 한 이후에 오는 허망함인지 아니면 그녀 자신의 오해에 대한 인정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이런 뒤죽박죽의 정황들이 알로이시스 vs 폴린이라는 구조에서 누군가의 손을 들어줄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게 한다. <다우트>는 의심이 아니라 ‘회의’한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른 방식으로 이 영화를 보기를 제안한다. 그건 이 영화의 다우트라는 단어의 뜻이 의심과 회의(懷疑)라는 두 가지 의미로 나뉠 수 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다우트>라는 말을 전적으로 의심이라는 말로 풀이하고 이 영화를 볼 때 오해가 생긴다. 결정적인 건 영화의 첫 신과 마지막 신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영화에서 다우트라는 말은 첫 신에서 폴린 신부가 사용한다. 그때 그의 강론의 요지는 ‘회의가 확신만큼 단단한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첫 신이 지나서 다우트라는 단어는 내내 등장하지 않다가 마지막 신, 알로이시스 수녀의 신에 가서야 다시 등장한다. 이 영화가 말과 단어의 적확한 사용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자. 그들은 진실을 두고 그렇게나 다투는 그 사이에도 의심(다우트)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대신 확신(certainty)이라는 말을 쓴다. 나는 확신을 갖고 있다거나 당신은 그걸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서로 논쟁한다. 폴린을 의심하는 알로이시스의 행위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영화는 의심이 아니라 확신과 그 확신에 대한 회의에 관한 것이다. 폴린 신부는 첫 신에서 신앙적 회의를 믿으라 했다. 그런데 알로이시스는 의심을 가장한 확신을 영화 내내 밀어붙인 다음 결국에는 폴린 신부가 가르친 그 회의의 순간으로 이끌린다. 이 구조에 따른다면 첫 번째 신에서 있었던 폴린 신부의 강론, 즉 회의는 확신만큼 힘이 있다는 말을 마침내 가장 귀기울여 들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알로이시스 수녀다. 누가 죄를 지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가 누구의 말에 승복하였는지는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알로이시스가 폴린의 강론에 따라 자기의 확신에 대해서 회의하는 것으로 끝나는 구조다. 그러므로 그녀의 마지막 말은 “의심이 들어요 정말 의심이”보다는 “(그동안 확신을 해온 것에) 회의가 들어요, 정말 회의가”라고 해야 더 맞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누구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것인가. 누구의 강론을 따라 고백하는가. 영화는 이미 말해준 것이다. <프로스트 vs 닉슨>은 결국 무승부 반면 <프로스트 vs 닉슨>은 프로스트의 승리인가. 역시 그런 것 같지 않다. <다우트>가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무승부다. 이 과정은 좀더 간단하며 많이 보아온 것이다. 물론 기록상 닉슨은 그 토론회에서 패배했다(프로스트와 닉슨의 대담은 클립의 일부나마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 다시 제안하는 것이고, 우리는 이미 있었던 사실이 아니라 이 영화가 제안하는 효과에 관해서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닉슨을 미워할 수 있는가? 이 영화를 보고 우리가 닉슨을 인간적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걸 외면할 수 있을까. <프로스트 vs 닉슨>에는 이상한 장면이 있다. 즉 <다우트>에서 폴린 신부의 식탁을 보여준 것처럼 갑자기 끼어들어 혼란을 유도하고 전환을 시도하려는 장면인데 효과는 그 반대다. 닉슨이 술에 취해 프로스트에게 전화를 하는 장면. 우리는 이 장면을 나중에야 그가 기억을 못하는 것이라고 알게 된다. 이 사실을 그 신의 출현 즉시에 아는 것과 그 뒤에 알게 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장면은 의외로 그의 곤경에 대한 우리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계기를 낳는다. 그건 닉슨이 대담이 모두 끝난 뒤에 프로스트가 그를 찾았을 때 둘만 얘기하고 싶다며(즉 중계방송이 아닌, 진정 사적으로) “내가 정말 그날 밤 전화를 했느냐”고 묻기 때문에 인간적이다. 프로스트와 닉슨은 그전까지 일말의 교감도 통하지 않는데 결국은 이 한밤의 전화통화로 교감을 성사하고, 유능한 서로의 적으로 마지막 대전을 치른다. 결과는 프로스트의 승리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는지 아닌지 모르는 이 장면이 실제 기록된 닉슨의 패배자적 이미지를 넘어서서 훨씬 더 강하게 닉슨을 구제하는 동조감을 조성한다고 본다. 영화적으로 볼 때 둘은 경쟁구도에 있지만 이해할 만한 친구의 위치로도 격상한다. 닉슨은 죄를 지었지만 적어도 인간이기에 끌어안을 만한 사람이 된다. 정작 이때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닉슨의 무엇이 무마되고 있는가이다. 닉슨은 토론회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불법이라도 대통령이 하면 그건 불법이 아니다.” 뒤이어 그걸 후회하는 말을 했다고 해도, 그건 닉슨의 불변의 확신이다. 닉슨은 역사상 가장 강력하게 텔레비전에서 자기의 불법적 확신을 근거없는 방식으로 피력한 인물로 기록되었는데(거기에 비견할 만한 인물은 부시밖에 없다), 그러나 그 다음 이어지는 그의 클로즈업은 그의 무서운 확신을, 그에 대한 패배를 은연중에 인간적인 왜소함의 얼굴로 돌려 무마하는 효과를 낳는다. <프로스트 vs 닉슨>은 은연중에 나쁜 확신에 대한 무마가 있다. 알로이시스 수녀가 한 말,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확신이 이때 겹친다. 한 번의 확신(<다우트>)과 또 한번의 확신(<프로스트 vs 닉슨>), 알로이시스의 확신과 닉슨의 확신. 이것이 이 두 영화에서 인물들이 승부를 겨룬 쟁점이다. 승부차기 결과 알로이시스가 지고 닉슨은 가까스로 무승부를 기록한 것 같다. 어째서 둘 다 1960년대인가 <프로스트 vs 닉슨>에서 닉슨은 1960년 대통령선거 TV토론회에서 “입술 위의 땀 때문에 대통령 자리를 빼앗겼다”고 말하는데, 그때 대통령직을 앗아간 건 존 F. 케네디였다. 그리고 영화 속 폴린 신부의 말에 따르면 <다우트>는 케네디 암살이 일어난 바로 다음해인 1964년을 무대로 한다. <다우트>의 감독 존 패트릭 셰인리는 부시가 이라크 전쟁에 살상 무기가 있다고 확신하고 이라크에 침공하는 걸 보고 이 이야기를 생각했다고 했고, 시대를 1964년으로 돌려놓았다. 두 영화의 시간대가 우연이라 해도 이건 생각해볼 만한 문제일 것이다. <다우트>의 폴린 신부는“확신이 든다고 해도 그건 감정이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반문했다. 우리는 여기서 폴린을 케네디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폴린은 그저 망설임을 아는 사람이다. 망설임 없이 확신에 가득 찬 사람들이 언제나 가장 무섭고 위험하다는 걸 지적할 줄 아는 사람이다. 여기에 영화적인 것 외에 판단의 문제를 개입시키는 건 위험한 일이다. 다만 <다우트>와 <프로스트 vs 닉슨>은 어떤 확신, 그러나 우화 안에서의 확신과 더 명료하게 남은 역사 안에서의 나쁜 확신의 사례로서 서로 근접하여 비춘다. 확신에 대한 두개의 드라마. 차이가 있다면 하나는 우화이며 또 하나는 쇼였을 뿐이다.

[김은형의 아저씨의 맛] 맞으면서 커야 한다니까^^

네이버 사전에 쳐보니까 ‘역량이나 능력 따위를 모아서 다시 일어섬’ 이라고 나오는 ‘재기’라는 단어는 이제 거의 클리셰다. 잠시 텔레비전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해도 재기, 손목 좀 다쳤다가 깁스 풀고 나와도 재기, 웬만하면 재기나 부활 따위를 갖다 붙이니 말이다. 그래서 누가 재기했다는 기사를 봐도 감동적이지는 않은데 지난해 ‘재기’라는 말을 흐뭇하게 곱씹게 했던 인물이 있다. 아직 전성기라는 말을 붙이기엔 좀 뭣한, 그래서 여전히 재기 중이라고 봐도 무방할 개그맨 김국진이다. 내가 일하는 <한겨레> 섹션의 TV대담 코너에서 <라디오 스타>의 초창기 무렵 김국진을 열나게 ‘깠던’ 적이 있다. 하필 공중파 독한 프로그램의 효시가 된 이 코너로 복귀한 김국진은 웃자고 한 (센) 농담에 죽자고 버럭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고 그 모습은 생뚱맞다 못해 처연해 보였다. 물론 오래전부터 불쌍해 보이는 이미지의 그였지만 독하고 능구렁이 같은 다른 출연진과 장단을 맞추지 못해 진짜 불쌍해지는 상황이 돼버린 거다. 말 그대로 영화 <라디오 스타>의 몰락한 왕년의 스타를 보는 기분이었달까. 우리의 독한 질타를 그가 봤는지, 그게 약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부터 김국진은 변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체념이었을 거다.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들이 결코 자기를 ‘존경하는 대선배’로 대접해주지 않으리라 깨달은 것 같다. 물론 무시당하고 놀림받는 걸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아서 예의 이혼이나 골프 이야기로 공격당하면 얼굴은 벌게지고 코에서는 김이 나왔지만 그는 흐름을 깰 만큼 버럭하지는 않았고 강박적으로 뭔가 이 상황을 뒤집기 위해 억지를 쓰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의 벌게진 얼굴은 CG로 빨갛게 칠해지고 똥 씹은 표정에 역시 CG로 비가 마구 쏟아지면서 웃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여자 게스트만 나오면 이상하게 엮는 다른 MC들의 짓궂은 농담을 통해 그는 다시 수줍은 ‘늙은’ 청년으로 점점 돌아갔다. 그렇게 살벌한 정글에서 주춤주춤 적응을 해가더니 걸그룹 카라로까지 전수되는 “예예예” 회춘 댄스를 터뜨리고 사정없는 MC들의 공격에 “원펀치 스리 강냉이”(내가 한번 때리면 이빨이 3개 나간다)라는 귀여운 앙탈 개그로 포효하기에 이르렀다. 요즘 <라디오 스타>에서 가장 덜 뻔한 캐릭터인 그를 보면 재기라는 말보다는 성장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성장한다는 게 공자님 말씀만은 아니라는 걸 사십대 중반의 김국진을 보면서 새삼 느끼게 된다. 만약 김국진이 ‘국찐이빵’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 또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복귀해서 자리잡았다면 성장담이 아니라 그냥 재기담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결과적으로는 다행스럽게도 복귀작으로 ‘지뢰’를 밟는 바람에 이 험한 (오락 프로그램의) 시대에 군내 나는 아저씨의 아집- 왕년의 스타야!- 을 버리고 탱탱하게 맷집 좋은 ‘젊은 오빠’로 돌아왔다. 역시 사람은 맞으면서 커야 큰 그릇 된다니까…?

<슬럼독 밀리어네어> 이 부조리한 기적을 어떻게 믿지?

Q : 이 부조리한 기적을 어떻게 믿지? A :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대니 보일 감독은 여전히 몽상가거든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최다 8개 부문을 수상했다. 게다가 정말 ‘골고루’라는 표현에 걸맞게 원작이 있는 작품으로서 각색상, 인도풍 음악이 대부분인 사운드트랙으로 음악상과 주제가상, 그리고 100% 낯선 인도 로케이션으로 촬영됐음에도 촬영상을 수상한 것을 보면 말 그대로 올해 아카데미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단 하나의 작품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얼핏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생각될 법도 한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그들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 이유는 뭘까.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둘러싼 이모저모와 더불어 이 영화를 바라보는 듀나와 남다은 평론가의 서로 다른 두개의 시선을 싣는다. <텔레그라프>의 데이비드 그리튼이 ‘오바마 시대의 첫 번째 영화’라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한 인도 빈민가 소년의 기적적인 판타지에 관한 영화다. 뭄바이 빈민가 출신의 18살 고아 자말(데브 파텔)은 거액의 상금이 걸린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최고 인기 퀴즈쇼에 참가한다. 처음에는 모두에게 무시당하던 그였지만 예상을 깨고 최종 라운드에 오르게 된다.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그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본 경찰은 자말을 사기죄로 체포한다. 하지만 경찰에게 증언하면서 지금껏 자말이 살아온 모든 순간이, 정답을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음이 플래시백으로 차례차례 보여지고, 그가 퀴즈쇼에 출연한 진짜 목적도 서서히 드러난다. 그렇게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하나뿐인 형 살림(마두르 미탈)과 갖은 어려움을 다 겪고, 또한 처음부터 운명이라 믿었던 여자 라티카(프리다 핀토)를 향한 오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도가 배경인 현대판 <올리버 트위스트> 인도 태생의 비카스 스와루프가 자신의 일을 하면서 두달 만에 완성했다는 소설 는 믿기 힘든 행운에 관한 이야기이자, 위선과 거짓을 배제한 정직한 삶에 관한 동화다.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는 가난한 고아 청년이 지상 최대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서 우승한다. 모두가 그를 의심했지만 그 열두 문제는 모두 우연하게도 그의 삶과 관련된 문제였다. 책상 위에서 머리로 익힌 ‘지식’이 아니라 그의 몸에 깊게 새겨진 ‘체험’의 문제들이었다. 종교 싸움에 휘말려 어머니를 잃고, 형과 함께 타지마할에서 관광안내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며, 거대 조직의 보스가 된 라티카를 구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알게 된 해답들이었던 것.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기획자 테사 로스는 2005년 가 출간되자마자, 필름4의 북 스카우트 케이트 싱클레어의 권유로 접하게 됐다. 열두 문제에 얽힌 이야기를 재구성해나가면서 펼쳐지는 인도의 풍경과 현실이 꽤 복잡했지만, 이야기 자체가 지닌 메시지의 힘을 믿었다. 그리고는 곧장 <풀 몬티>(1997),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2008)의 시나리오를 쓴 사이먼 뷰포이에게 연락했다. 원작 소설을 읽고 ‘인도에서 펼쳐지는 찰스 디킨스의 이야기’라 생각한 그는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빅토리아 시대의 빈곤과 부조리한 사회계층 구조에 대한 신랄한 비판자이자, 가난하고 고통받고 박해받는 자들의 지지자이기도 했던 찰스 디킨스는 무엇보다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문체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사이먼 뷰포이는 바로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퀴즈 프로그램 하나로 빈민과 부자 사이를 오가면서, 갖가지 인간 군상이 등장해 영화 전편을 풍성하게 메우는 현대판 찰스 디킨스 이야기가 되길 바랐던 것이다. 라는 밋밋한 제목이 <슬럼독 밀리어네어>라는 제목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도 순전히 그의 의지였다. 시나리오가 완성되자마자 사이먼 뷰포이를 비롯한 제작진이 가장 먼저 떠올린 감독은 바로 대니 보일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어 내려가던 대니 보일은 그가 전혀 손대지 않아도 되는 훌륭한 시나리오임을 알아채고는 단숨에 제의를 수락했다. 이 이야기가 인도를 배경으로 한 현대판 <올리버 트위스트> 스토리가 될 것이란 제작진의 의도도 거기에 한몫했다. 영화지 <시네아스트>의 로버트 콜러도 “찰스 디킨스가 주요한 배경으로 다뤘던 영국 산업혁명 초창기의 느낌과 확산되는 글로벌리즘의 새로운 영토로서 급속한 산업화가 이뤄지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인도가 꽤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대니 보일은 처음에는 퀴즈쇼가 중심에 놓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의구심이 들었지만, 상당한 분량으로 출연하는 아이들의 맑고 순진한 품성에 매료됐다. 그들은 대니 보일의 2004년 작품 <밀리언즈>의 아이들을 연상시키는 측면도 있다. <밀리언즈>의 두 꼬마 안소니와 데미안은 어느 날 100만파운드가 담긴 가방 하나를 발견하고 마음껏 돈을 쓰기로 결심하지만(유로화 통합 전 열흘 동안), 그것이 사실은 은행강도가 훔친 돈가방임이 드러나면서 골치 아픈 소동을 겪게 된다. 특히 천사표 동생 데미안은 돈가방을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라 믿고서, 그 돈으로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나눠주는 착한 아이였다. 영화 속 자말의 어린 시절 모습이 딱 그렇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면 <밀리언즈>의 형 안소니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형 살림도 권력 지향적인 속물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배낭여행자처럼 촬영했던 추격신 대니 보일은 오직 영화 때문에 처음으로 인도를 방문했다. 원작을 새롭게 해석하고 변형을 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인도 외의 로케이션 장소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뭄바이 빈민가의 풍경을 그려내는 것은 오직 인도 내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전쟁 때 인도에 오신 적이 있고, 제게 많은 인도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는 게 대니 보일 감독의 사전 정보였다. 하지만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컬처 쇼크’를 받았다. 엄청난 인파와 소음, 그리고 뭄바이라는 도시가 뿜어내는 에너지에 압도당한 것. 환경 자체가 지금껏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스템을 필요로 했다. 그러한 어려움은 인도의 로컬 프로덕션 회사인 테이크원(Take One)의 도움으로 거의 하루 종일 교통마비 상태인 인도에서 무사히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제작진은 인도에서 가장 큰 슬럼가인 다하라비, 그리고 뭄바이에서 서쪽에 위치한 가장 활기 넘치는 장소인 공항 근처의 주후 등지에서 촬영했다. 슬럼가에 최대한 방해가 가지 않게 최근 레드원 카메라와 함께 한창 주목받는 경량 디지털카메라 SL-2K를 사용했다. 이미 대니 보일과는 <28일후…>(2002) 등의 작품에서 디지털 작업을 함께했던 앤서니 도드 맨틀 촬영감독이기에 호흡은 문제없었다. 주인공 소년들이 슬럼가를 질주하는 추격신의 경우 앤서니 도드 맨틀이 한손으로 카메라를 들고서도 슬럼가 구석구석을 담아냈다. “촬영감독이 아니라 거의 배낭여행자 수준”이었다는 게 감독의 얘기다. 캐스팅은 더 어려운 문제였다. 최대한 슬럼 지역 실제 주민들을 캐스팅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영어 대사로 진행하기 때문에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인도를 비롯 영국과 미국 등지를 돌아다니며 7살, 13살, 18살을 연기할 세 그룹의 배우를 동시에 캐스팅하기 시작했는데 연령대별로 일단 외모나 분위기가 비슷해야 하는데다가, 영어를 할 줄 아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중학교 이상의 나이라는 점이 걸림돌이었다. 스탭 중 한명의 제안으로 어린 자말은 그대로 힌두어를 사용하게 하고 그 이후부터 영어로 이어가는 방식을 택하게 됐다. 그래서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아이들은 실제 슬럼가에서 캐스팅됐으며 촬영 기간 동안 짧은 영어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착한 눈’을 가진 18살 자말 캐스팅은 순전히 대니 보일의 딸의 아이디어였다. 영국 인기 TV시리즈 <스킨스>의 광팬인 딸이 데브 파텔을 추천한 것이다. 그렇게 <스킨스>의 말썽쟁이 모슬렘 소년 ‘앤워’는 그와 정반대의 청년 자말로 태어나게 됐다. 주인공 자말 캐스팅은 감독 딸의 아이디어 얼핏 돈이라는 요소로 인해, 정체불명의 돈가방을 둘러싼 이야기인 대니 보일의 데뷔작 <쉘로우 그레이브>(1994)나 마약으로 번 돈다발이 등장하는 <트레인스포팅>(1996), 혹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가방 이야기 <밀리언즈>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그러고 보면 대니 보일 영화에서 ‘돈’은 늘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했다), 사실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가장 가까운 느낌의 그의 이전작을 고르라면 단연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1997, 이하 ‘<인질>’)이다. 물론 두 작품 사이에 꽤 큰 정서적 차이가 있긴 하지만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자말처럼 <인질>의 로버트(이완 맥그리거) 역시 한심한 가난뱅이 청소부이고, 끊임없이 곤경에 빠지게 하는 현실과 싸우며 미국 전역으로 도주하는 커플의 로맨스 로드무비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무엇보다 두 영화 모두 완전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거기에는 원작을 자기 식대로 만들고자 하는 대니 보일의 의지가 숨어 있다. 그가 영화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이전에 만든 <28일후…>(2002)를 딱히 스스로 좀비영화 장르라고 생각하지 않듯, <슬럼독 밀리어네어> 역시 다른 많은 발리우드영화를 봤지만 그에 대한 직접적인 오마주라 생각하고 만들지는 않았다”고 말한 데서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니 보일이 생각한 실마리는 무엇일까. 대니 보일은 <인질>에서 두 남녀에게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허락했듯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도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을 지켜보며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등장시킨다. 이는 희랍고전극의 극작술 중 하나로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해 극의 긴박한 국면을 일시에 타개하고 극적인 결말로 이끌어가는 수법’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갑자기 나타난 신’ 정도 될 텐데 극중에서 기계장치로 작동하는 구름 따위를 타고 느닷없이 내려오기 일쑤였으므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종종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런 해결’을 일컫는 표현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대개의 로맨스 모험 소설들이 애용하는 장치인 것만 분명하다.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보여주는 기적은 그렇게 이해될 수 있다. 다시 <인질>로 돌아가자면, 로버트는 “어떻게 이처럼 부조리하고 비이성적인 운명을 믿어야 하지?”라는 질문에 “왜냐하면 난 몽상가니까”라고 답한다. 그렇다. 대니 보일도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향한 수많은 질문에 바로 그렇게 답할 것이다. 난 여전히 몽상가야. 똥 뒤집어쓰게 한 그 배우는… 아미타브 밧찬과 아요디아 등 영화 속 실제 이야기 아미타브 밧찬은 어린 자말이 똥을 뒤집어쓴 몸으로 다가가 사인을 받을 정도로 사랑하는 배우다. 1942년 인도에서 태어난 그는 명문 델리대학 출신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해 무수히 많은 영화들에 출연했으며 한때 정계에 진출하기도 했다.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가 2000년부터 인도에서 방송될 때 진행을 맡기도 했었다. 영화에서도 그 인기가 확인되듯 발리우드를 대표하는 위대한 배우 중 하나로 그의 아들 아비셰크 밧찬 또한 영화배우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정작 아미타브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너무 인도의 음지만을 보여줬다며 불쾌감을 표했다고. 인도는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들과 그 속에서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이슬람교도들의 갈등의 역사가 깊다. 특히 원작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성장기의 중요한 일부분이라 말하는 아요디아는 1992년 두 종교집단의 극단적 유혈 충돌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바브리 이슬람 사원이 힌두교 람 사원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세워졌다고 믿는 힌두교도들이 그 사원을 파괴하고 난장판으로 만들며, 전국적으로 힌두와 이슬람의 충돌이 번지면서 수천명이 목숨을 잃게 된 것. 영화에도 등장하듯 이런 폭동을 힌두 경찰들이 묵인했다는 소문도 공공연하다. 자말 가족은 이슬람교도로 나오며 어머니는 그 폭동의 한가운데서 숨을 거두고 만다. 영화 속 퀴즈 중 하나는 ‘역사상 가장 먼저 100점을 기록한 크리켓 선수’에 관한 것이다. 인도에서 크리켓은 거의 종교에 가까울 정도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다. 세계 최강은 호주라 할 수 있으며, 자말은 예시들 중에서 호주의 대표적 크리켓 스타 리키 폰팅, 그리고 천문학적인 수입을 자랑하는 인도 최고의 크리켓 스타 서친 텐두카 사이에서 고민하다 정답 ‘잭 홉스’를 맞히게 된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찬성하는 듀나의 견해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대한 글을 청탁받았을 때,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도 않았었다. 심지어 영화 예고편도 제대로 보지 않았고 몇주 전 사다놓은 원작 소설도 읽어보지 못했으니, 이 영화에 관련된 내 지식은 이 영화와 관련된 몇몇 사람들의 이름과 기본 설정뿐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당연히 이 영화를 옹호해야 할 입장이 되었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잠시 머리를 굴리자 답이 나온다. 아, 출신성분.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작품을 보지 않고 출신성분을 읊는 것으로 비평 절반이 끝날 수도 있는 영화다. 생각해보자. 이 영화의 주인공은 뭄바이의 빈민가 출신 소년이다. 종교분쟁으로 고아가 되었고 뭄바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온갖 험악한 일들을 다 겪는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엘리트 가문 출신인 부유한 인도 외교관 비카스 스와루프의 영어 소설이 원작이고 인도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국 감독 대니 보일과 영국 작가 사이먼 뷰포이가 각색한 영국영화다. 심지어 인도인 주인공을 연기하는 데브 파텔도 영국에서 태어난 영국 배우다. 여기에 영화가 제목에서부터 자랑스럽게 과시하는 물질적인 해피엔딩까지 치면 당연히 보는 사람들은 미심쩍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제3세계의 빈곤을 이야깃거리로 착취하는 선진국의 오락물로 봐도 할 말이 없다. 실제로 이 영화는 다국적 식당 체인점의 번지르르한 코스 요리와 같은 맛을 풍긴다. ‘영국 감독 작품’이라는 출신성분의 문제 여기에 대해 변호할 필요는 없다. 다 공공연하게 표면에 드러난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물로 나온 작품이 유해한가? 그렇다면 얼마나 유해한가? 가장 기초적인 질문부터 해보자.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현대 인도를 얼마나 정직하게 바라보는가. 미안하지만 나는 모른다. 아마 이 글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나라의 본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책이나 신문이 제공하는 간접정보를 흡수하는 것 이상을 해야 한다. 최소한 그곳에 가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 몇년 이상 살아봐야 한다. 인도처럼 복잡한 나라라면 사실 그것도 모자란다. 그러나 비교대상은 있다. 오리지널 발리우드영화들과 미라 네어나 디파 메타와 같은 감독들이 만든 정통적인 아트하우스영화들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출신성분이 의심되는 것은 영국영화여서이기도 하지만 형식적으로 이 영화가 이들 중 어느 쪽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다. 빈민가의 밑바닥 세계에서부터 호사스러운 인도 텔레비전 세트까지 커버하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세계는 일반적인 현실세계가 가지는 복잡성과 입체성을 상당한 수준으로 모방한다. 이 묘사가 서구인의 관점이냐를 따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인도에서 나오는 아트하우스영화에서 ‘서구적 관점’을 제거하면 뭐가 남는가? 이야기 자체는 어떤가? 이 영화가 제공하는 완벽한 해피엔딩과 정갈한 로맨스, 술술 흘러가는 드라마는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분명 이 영화의 주인공 자말 왈리크의 이야기는 미라 네어의 <살람 봄베이>(1988)의 길거리 소년들처럼 당시 사회의 정확한 반영은 아니다. 하지만 자말과 <살람 봄베이>의 소년들은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 전혀 다른 방식을 통해 디자인되었다. 그리고 관객은 모두 자말과 그의 이야기가 어떤 목표를 위해 디자인되었는지 안다. 모를 수가 없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묘사되는 세계가 복잡한 것만큼이나 단순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자말의 이야기는 가장 안전한 부류의 오락이다. 관객에게 박진감 넘치는 즐거움과 대리 만족을 제공해주지만 정작 그것을 통해 거짓된 희망을 약속하지는 않는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모든 영화’가 아니다. 그냥 제한된 목표를 가진 하나의 영화일 뿐이다. 이 영화의 치명적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들은 인도를 다룬 수많은 다른 영화들에 의해 해소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많은 관객에게 그 영화들로 가는 길을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韓日 스타 총출동 '텔레시네마' 면모는>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한국의 PD 및 연기자가 일본 작가와 손잡고 만드는 한일합작 '텔레시네마' 프로젝트가 각 작품의 제작을 속속 마치며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현재 제작이 확정된 7편 중 '천국의 우편배달부' 등 6편이 제작 중이거나 제작이 완료됐다. 제작사인 삼화네트웍스 측이 '101번째 프러포즈'의 노지마 신지 작가와 계약을 협의 중이어서 1편이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90-105분 분량으로 제작되는 각 작품은 10월께 한국 SBS와 일본 TV아사히에서 동시에 방영될 예정으로 편성 시간을 협의 중이다. TV 방영에 앞서 이르면 5월께 극장에서 3-5편을 상영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양국의 최정상 작가와 PD, 스타 배우들이 뭉쳐 화제가 된 이번 프로젝트의 각 작품의 면면에 양국 드라마팬의 이목이 쏠려왔다. '천국의 우편배달부'는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이형민 PD가 연출하고 '롱 베케이션'의 기타가와 에리코 작가가 극본을 썼다. 주연은 동방신기의 영웅재중과 탤런트 한효주가 맡았다. IT기업의 젊은 사장이 죽은 사람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편지를 천국에 전해주는 우편배달부가 되고 우연히 만난 여자와 그 일을 함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트라이 앵글'은 '귀가일기'의 오자키 마사야 작가와 '오! 필승 봉순영'의 지영수 PD가 호흡을 맞추며 안재욱, 강혜정, 이수경 등이 출연한다. 젊은 재벌 미망인이 소장한 세계적인 미술 작품을 둘러싸고 그의 주변 인물들이 벌이는 속고 속이는 서스펜스 블랙 코미디 드라마이다. '결혼식 후에'에서는 '고쿠센'의 요코타 리에 작가와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윤철 PD가 만났다. 신성우, 예지원, 배수빈, 고아성 등이 출연한다. 40대 중반의 대학 동창생들이 오랜만에 모인 친구의 결혼식장, 한 여자 동창생의 딸이 동창생 중에 아빠가 있다고 찾아오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담긴다. '얼굴과 마음과 사랑의 관계'는 '퍼스트 러브'의 오오시이 시즈카 작가와 '천국의 계단'의 이장수 PD의 조합에 강지환, 이지아가 주연으로 나선다. 꽃미남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예쁘지는 않지만 밝은 성격을 가진 여자의 사랑을 둘러싸고 얼굴과 연애라는 주제를 다룬 코믹 멜로물이다. '돌멩이의 꿈'에서는 '야마토나데시코'의 나카조노 미호 작가와 '왕초'의 장용우 PD, 차인표와 김효진이 손을 잡았다. 세계적인 축구선수를 꿈꾸는 열 살 소년과 돌팔이 관상쟁이의 한국 일주 여행기를 따뜻하게 그린다. '파라다이스'는 지진희, 김하늘이 주연을 맡아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오카다 요시카스 작가와 이장수 PD와 함께 촬영 중이다.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여성이 '낙원'이라는 섬을 찾아 무작정 탄 배에서 만난 남자의 도움으로 섬 학교 급식소에 취직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다. '나이 19세'는 다음 달 촬영을 시작할 예정으로 '하얀 거탑'의 이노우에 유미코 작가와 장용우 PD가 뭉쳤다. 빅뱅의 탑과 승리, 박산다라가 출연한다. 3명의 19세 남녀가 어느 살인사건으로 인해 함께 도망다니며 겪는 성장기다. 삼화네트웍스 신현택 회장은 "텔레시네마는 신한류의 주춧돌을 놓기 위한 프로젝트"라며 "이제 한류가 국내가 아니라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갈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50부작과 같은 긴 드라마는 해외에서 방영이 힘든 상황에서 8부작 이내의 작품으로 승부해야 한다"며 "이번 프로젝트는 아시아 최고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능력으로 외국 자본을 들여와 킬러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double@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