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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신문 제7회 (1919~1922) [1]

표현주의 물결, 영화에서도프리츠 랑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극적 반전 눈길 1919년. 영화에도 표현주의 시대가 도래하는가. 영화 매체에서는 처음으로 표현주의를 도입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 비평가들과 관객 사이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칼리가리…>의 세트를 디자인한 표현주의 화가 헤르만 바름은 “영화는 살아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회화”라고 말했는데, 이 영화에서 그의 의도를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 액자 형식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프란시스라는 젊은이가 들려주는, 칼리가리 박사와 그의 사주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몽유병 환자 세자르의 이야기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화의 결말에 가면 화자인 프란시스가 실은 정신병자이며, 칼리가리는 그를 이해하려는 정신과 의사임이 밝혀진다. 그래서 잡지 <전진>은 <칼리가리…>를 “정신병 환자에 대한 연민을 담은 영화”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대담한 반전의 아이디어는 <칼리가리…> 제작자 에리히 폼머 휘하의 젊은 감독 프리츠 랑에게서 나왔다. 애초 <칼리가리…>의 연출을 맡았던 랑은 <스파이더>를 감독하면서 이 프로젝트에서 손을 뗐으나, 시나리오 작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영화에 액자 구조를 도입해야 한다고 폼머를 강력하게 설득해 결말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칼리가리…>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표현주의 회화와 연극을 빼닮은 세팅과 연기. 표현주의 미술가 바름과 발터 뢰리그, 발터 라이만이 창조한 세팅은 극단의 공간 왜곡과 명암 대조로 구부러진 인간의 심리를 그대로 공간화한다. 배우들은 시각적 요소의 일부가 되는 반면, 세팅은 거의 살아 있는 요소로 기능한다. 제작진은 극히 양식화된 공간을 세트와 회화를 통해 만들어냈다. 이 영화에 나타난 극명한 명암 대조도 조명이 아니라 ‘회화’를 통해 나타난다. 그런 만큼 제작비가 크게 줄 수 있었다. 폼머는 “각본을 읽고 제작비가 비교적 적게 드는 영화가 될 것”임을 알아차리고 흔쾌히 제작을 수락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표현주의적 특징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요지는 이제 막 연극에서 벗어난 영화를 다시 연극화했다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 비평가들이 혹독했다. 블레즈 상트라스는 노골적으로 “이 영화가 싫다”면서 그 이유의 하나로 “영화답지 않음”을 들었다. 또한 리오넬 란드리는 ‘칼리가리즘 혹은 연극의 복수’라는 글에서 “앞으로 모든 영화가 이렇게 되지는 않을까”를 진지하게 걱정했다. 소, 영화산업 국유화 모스크바에 영화학교 설립, 선전물 작업 1919년 소비에트 정부가 영화산업을 국유화했다. 또한 인민교육위원회 산하의 영화위원회는 세계에서 최초로 모스크바에 영화학교를 세웠다. 이같은 소비에트 정부의 조처는 침체의 늪에 빠진 소비에트의 영화산업을 진흥하는 동시에, 거의 대부분이 문맹인 소비에트 민중을 교육하고 볼셰비키의 이념을 선전하는 데 영화를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서다. 영화의 선동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볼셰비키 정부는 뉴스릴과 소비에트를 지지하는 내용을 담은 선전물을 러시아 전역에서 상영해왔다. 1917년 사회주의혁명 이후 소비에트 영화산업은 크게 위축돼 있었다. 볼셰비키에 적대적인 영화제작자들이 반혁명에 가담하거나 아예 러시아를 떠났기 때문이다. 해외로 도피하면서 이들은 제작장비와 생필름을 몽땅 들고 갔다. 이중 어느 것도 러시아는 자체 생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정부에 대한 서방의 무역 봉쇄는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이에 정부는 1918년 개인 제작사가 구입하는 모든 생필름은 정부에 등록해야 한다는 법령을 발표했으나 제작자들과 상인들이 즉시 생필름을 감추는 바람에 도리어 부작용만 일으켰을 뿐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소비에트 정부는 영화를 국가의 관리 하에 두기로 결정했다. 한편 이번 조처로 그동안 방치되어온 러시아 국내외 영화들이 일반인에게 공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단 신 들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창설 1919년 4월17일. 할리우드의 빅스타 찰리 채플린, 메리 픽포드, 더글러스 페어뱅크스가 데이비드 그리피스와 함께 영화사 유나이티드 아티스츠를 창설했다. 유나이티드 아티스츠는 앞으로 이 네 사람이 제작한 영화와, 이들과 뜻을 함께하는 영화인들의 신작들을 배급하게 된다. 이들이 메이저 스튜디오들에 저항해 이같은 조처를 취하게 된 것은 그들의 봉급을 억제하려는 움직임 때문. 출연료가 영화 한편당 15만달러를 넘는데다 입장료 수입의 일부를 배당받아 이들에게 들어가는 제작비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지자 스튜디오들은 출연료 동결을 위해 이들에 대한 경쟁 입찰을 하지 않기로 비밀 협정을 맺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이들은 스튜디오를 떠나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바로 이 꼬마다!” 1921년. ‘신의 은총’을 받은 것 같은 꼬마를 찰리 채플린이 발견했다. 채플린은 <키드>의 아역 주인공을 선발하는 오디션에서 4살의 재키 쿠건을 보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부모의 보드빌 희극에 출연하곤 했던 쿠건은 채플린에 따르면 시쳇말로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주었다”. 쿠건이 이혼에다, 태어난 지 3일 된 아들의 죽음으로 낙담에 빠진 채플린을 구원할 수 있을까? <키드>에서 쿠건과 채플린은 각각 미혼모가 버린 아이와 우연히 쿠건을 거두게 되는 떠돌이 찰리로 호흡을 맞추게 된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모글리의 정체성 혼란,<정글북2>

■ Story 정글을 떠난 모글리는 자신을 인간 마을로 이끈 여자친구 샨티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모글리는 정글에 두고 온 아빠 곰 발루와 친구들을 그리워하지만, 양아버지는 위험한 정글에 다시 발을 들여선 안 된다는 엄명을 내린다. 어느 밤 발루가 모글리에 대한 그리움으로, 호랑이 쉬어칸이 모글리에 대한 원한으로, 나란히 인간 마을로 넘어오면서, 마을엔 일대 소동이 벌어진다. ■ Review 강보 바람으로 정글에 버려진 인간의 아기 모글리를 친아들처럼 키워준 아빠 곰 발루는 그 아들을 떠나보내야 할 때를 알고 있었다. “여긴 네가 살 곳이 아니다. 인간의 마을로 돌아가렴.” 아빠 곰의 호소와 설득에도 끄떡 않던 모글리를 흔들어 놓은 것은 또래 여자아이와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야릇한 눈맞춤이었다. 그렇게 인간의 마을로 섞여 들어간 모글리는 그뒤 어떻게 됐을까. <정글북2>는 36년 만에 청해 듣는 ‘그 뒷얘기’다. <정글북2>는 인간의 마을에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가는 한편 가슴에 ‘정글의 리듬’이 고동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모글리의 정체성 혼란을 주된 이야기축으로 삼는다. 몸은 정글을 떠나왔지만, 마음은 그럴 수 없었던 모글리의 갈등은, 정글로 통하는 “강을 건너지 마라”라는 양아버지의 엄명과 “인간은 믿을 만한 존재가 못 된다”는 아빠 곰의 회유 사이에서 깊어간다. 그 둘 모두가 모글리에겐 소중한 ‘가족’이기 때문에 더더욱. 물론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이 예비돼 있긴 하다. 모글리와 발루를 비롯, 지혜롭고 의젓한 흑표범 바키라, 사악한 호랑이 쉬어칸, 최면술이 특기인 보아뱀 카아, 코끼리 부대의 리더 하티, 수다스런 독수리 4총사 등이 전편에 이어 등장하며, 새로운 캐릭터로 모글리의 여자친구 샤틴과 동생 란잔이 활약을 펼친다. 액션이 지루할 만하면 뮤지컬 시퀀스가 끼어드는데, 특히 1편에서 발루와 모글리가 함께 부르던 정겨운 노래 를 다시 들을 수 있다. 모글리가 고향을 그리며 부르는 <정글 리듬>, 모글리와 상봉한 발루가 숲 속 파티에서 부르는 <와일드> 등의 신곡이 이끄는 뮤지컬 시퀀스도 흥겹다. 그러나 <정글북2>의 결정적인 결함은 극의 긴장감이 부족한데다, 시각적으로 그리 새롭지 못하다는 것. 디즈니텔레비전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태어난 이 작품은, 월트 디즈니가 직접 매만진 마지막 작품 <정글북>(1967)을 넘어설 야심이 처음부터 없었던 듯하다. <정글북2>는 목소리 출연진이 화려한 편이다. 정글 보이 모글리는 <식스 센스>와 의 영민한 소년 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목소리를 얻었고, 아빠 곰 발루는 푸짐한 몸매, 후덕한 인상의 코미디언 존 굿맨이 연기했다. 쉬어칸을 약올리는 수다쟁이 독수리 럭키의 목소리는 뮤지션 필 콜린스가 맡았다.박은영 cinepark@hani.co.kr

평범男子 감격時代, <쇼쇼쇼>로 돌아온 유준상

요즘 대한민국에서 유준상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신세대 와이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봉강철(<여우와 솜사탕>)부터 민초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자애로운 지도자 박문수(<어사 박문수>)까지 TV 속 그의 분신들이 유난히 친근했던 까닭이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이웃집 아이 대하듯 “고생이 많네” 하며 등을 다독이고, 꼬마들은 “하이마트다”를 연발하며 아는 척을 해온다니, 전 국민적 관심과 애정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이즈음이다. 개인적인 경사도 앞두고 있다. 유준상은 오는 삼일절에 아리따운 후배 홍은희를 아내로 맞아, 만세 삼창을 외치게 된다. 입이 귀에 걸려도 모자랄 판이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요. 가장 큰 변화라면, 제가 결혼을 하게 됐다는 거죠. 저, 여자 못 만날 줄 알았거든요. (웃음) <여우와 솜사탕>으로 많이 알려졌다는 것도 의미가 크고요. 뮤지컬(<더 플레이>) 공연할 때도, 그래서 많이들 보러 와 주셨어요. 시작할 때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어때요, 저, 지난번 만났을 때랑 지금이랑 달라요? 1999년 겨울, <텔미썸딩>으로 영화 데뷔한 유준상을 서둘러 만났더랬다. <남자대탐험> <베스트극장-네발 자전거> <백야 3.98> <안녕 내 사랑> 등을 기억하고 있던 우린 그가 영화에 발을 들였다는 소식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좋은 배우를 하나 더 확보했다는 기쁨에서였다. 그러나 영화로 옮겨온 유준상의 행보는 그다지 기운차지 않았다. <텔미썸딩>과 <가위>. 두번 다 범인추적 과정에 혼선을 주는 캐릭터로 출연했던 그는, 불편해 보였다. 딱히 뭐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냥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모양새였다. 지금 하라면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최선을 다한다는 데도 그 안에서 차이가 있거든요. 마음이 편해야 몰입할 수 있는 건데, 그땐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어요. 더 아쉬운 건 그 인물의 행동에 어떤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거죠. 역할 비중상 편집과정에서 잘려나가기도 하고. 지금이 좋은 건, 캐릭터의 기승전결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는 거겠죠. 유준상이 물을 만난 건, TV로 건너가 그가 스스로 밝힌 장점인 ‘평범함’의 미덕이 두드러지는 역할들과 조우한 뒤부터였다. 몇편의 가족드라마에서 그는 가족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적당히 모자라고 부족해서 ‘인간미’가 느껴지는, 그런 인물이 되어 나타났다. 누군가는 그런 그를 일컬어 최근 들어 위에서 눌리고 밑에서 치이는 386세대의 애환을 가장 잘 그려낸 연기자라고 평했다. 오래지 않아, 특정 성별과 연령대에 치우침 없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유준상의 연기에 공감하고 위안을 얻는다고 고백해왔다. 바로 옆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인물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보시는 분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겠죠. 예컨대 사악한 인물에 대해서도, 나도 저럴 것 같다, 나도 저런 적 있었지, 하는 공감을 끌어내고 싶어요. 장르나 비중에 관계없이 작품 속에 제대로 그려진 인물이면, 그런 묘사가 가능할 것 같아요. 이제 유준상이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스크린에 돌아온다. 홍수환이 챔피언을 먹던 ‘감격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쇼쇼쇼>에서 그는 칵테일바를 열어 성공해 보려는 청춘들의 리더 산해를 연기한다. 허풍기도 있고, 재기 발랄하던 기존의 캐릭터와 달리 시대의 슬픔을 품고 있는, 조금은 거칠고 묵직한 역할이다. 오랜만에 하는 영화인데다 첫 주연작이라, 영화에 거는 유준상의 기대는 남다르다. 웨딩 촬영에 따라붙은 취재진에게 줄곧 영화홍보만 해댔다는(그것도 자진해서) 자랑 아닌 자랑도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바텐더 역할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바텐더에 관한 뮤지컬을 할 뻔한 적이 있었거든요. 인연인지 영화에서 맡게 되네요. 그리고 저는 1970년대를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거든요. 암울한 시대였지만, 사람들은 밝았던 것 같아요. 잊혀져선 안 될 어떤 순수함과 따뜻함이 있었구요. 보는 분들 마음에 그런 순수함과 따뜻함이 물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유준상은 예나 지금이나 TV, 영화, 연극, 어느 한곳에 자신의 활동을 한정지을 생각이 없다. 자신의 이름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팬클럽 ‘꿈의 동반’에서 에너지와 자극을 동시에 얻는다는 유준상은 그 든든한 ‘빽’ 때문인지 일말의 조바심도 내보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이미 삼십대 중반에 들어섰으니, 이제 마음을 다스려가면서, 자유로워지고 싶다고만 소망했다. 그리고 뮤지컬에서 자신이 읊었던 대사를 도인처럼 툭 던지고 사라졌다. “인생, 뭐 있습니까?”

유쾌한 소동 이상이 있는 영화 <스몰타임크룩스>

웃음은 늘고, 심술은 줄었다 우디 앨런의 <스몰 타임 크룩스>는 그의 다른 몇 작품들과 달리, 잘 만들어진 유쾌한 야단법석 이상의 뭔가가 있는 척하는 영화가 아니라서 반갑다. 이것은 근 십년간 앨런이 만든 영화들 중 가장 웃기고 또 가장 덜 심술궂은 작품으로서 단정한 클라이맥스를 곁들인 소품이다. 지난해의 <스윗 앤 로다운>(Sweet And Lowdown)과 달리 <스몰 타임 크룩스>는 시대극은 아니지만, 이 영화가 제공하는 구식 미덕들을 고려해보면 시대극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크리스 웹의 가 흐르는 가운데 프롤레타리아 앨런이 <데일리 뉴스>를 들여다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어느 정도 환상적일지는 모르지만 아주 분명하고 확고한 30년대 취향으로 일관한다. 이것은 부르주아의 무릎 위에 편안히 둥지를 틀지 않는 보기 드문 우디 앨런 코미디다. 영화의 배경은 어떻게 손써볼 수 없을 정도의 하류층 사회다. 전과자 출신 접시닦이 레이 윙클러(앨런)와 그의 미련맞은 파트너들(마이클 라파포트, 존 로비츠, 토니 대로)은 은행을 털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눈가림으로 레이의 아내 프렌치(트레이시 울먼)가 운영하는 과자가게를 이용하기로 한다. 레이는 복역 시절 감옥에서 자기 별명이 ‘브레인’이었다는 점에 대해 적이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것은 오히려 나쁜 머리를 비웃는 별명이라고 동료 하나가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상관없다. 은행을 털려고 짜놓은 그의 계획은 초장부터 틀어지는 반면 엉뚱하게도 프렌치의 과자가게가 미친 듯이 잘된다. 옛날 이야기에나 나오는 식으로, 밀가루반죽이 마구 돈으로 변해버렸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프렌치의 약간 멍청한 사촌 메이(일레인 메이)가 그들의 음모를 경찰에 알린 뒤에도 가게는 여전히 잘되고 번창한다. 1년 뒤 가게는 여러 지점들을 거느릴 정도로 융성하고, 이들 악당 일당은 TV에 “사업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기업문화”의 훌륭한 예로 소개되기까지 한다. <스몰 타임 크룩스>는 상황과 캐릭터 사이에 절묘한 균형을 보여준다. 영화 작가인 앨런 자신이 비쩍 마르고 말 많은 늙은이를 연기하는데, 배우로서의 그는 폴 마줄스키의 <결혼 기념일>에서 베트 미들러와 함께 보여준 것보다 더 나은, 최고의 파트너 연기를 보여준다. 콧소리 섞인 포커페이스 트레이시 울먼과 재빠르고 재치있는 단문 대화를 주고받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파란 재킷과 노란 바지로 반짝반짝 차려입은 레이는 그 요란한 옷차림으로 프렌치의 졸부 히스테리를 잠재워버릴 지경이다. 부부가 꾸며놓은 파크애버뉴 펜트하우스의 화려함이란 보는 이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들 정도인데 에서 재클린 수잔의 캐릭터가 보여준 ‘새로운 상상력’(Nouveau Imagination)조차도 뛰어넘는 수준이다. 영화의 또 하나 번뜩이는 대목은 프렌치가 자신을 뉴욕 상류사회에 던져넣기로 결심하면서 아이작 미즈라히에게 요리총책임을 맡겨 주최한 파티다. 휘트니 비엔날레 전시관 벽에서 곧바로 잡아뜯어온 것 같은 ‘작품’을 걸치고 나타난 프렌치는 손님들이 그녀의 천박함에 대해 수군대는 것을 듣게 된다. 그러고나서 얼마 안 있어 상류사회 바람둥이(휴 그랜트)를 교양교사로 채용한다. 그리하여 <스몰 타임 크룩스>는 솜씨좋은 세구에(단절없이 다음 악장으로 이행하는 지시 - 역자 주)로 <마돈나 거리에서의 빅 딜>(Big Deal on Madonna Street)에서 <귀여운 빌리>로 넘어간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내내, 영화의 화려한 캐스팅과 계급에 뿌리를 둔 풍자, 그리고 잘 조절된 슬랩스틱은 프레스턴 스터지스의 코미디를 연상시키며 시종 솜씨좋게 빚어진다. 또 다른 파티 주최자로까지 나서게 되는 일레인 메이는 단순무식한 불평쟁이 수다꾼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관객 눈을 사로잡는다(게다가 그녀는 우드먼과 함께 아주 인상적인 화학작용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특히 마치 대화하듯이 소리를 서로 고래고래 지르는 대목이 그러하다). 탁월하게 짜이고, 생생하게 촬영됐으며, 솜씨좋게 페이스조절된 <스몰 타임 크룩스>는 전통적인 우화이되 호방한 스크루볼 코미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천박함이라는 것에 사랑스런 의미를 부여한다. 짐 호버먼/ 영화평론가 <빌리지보이스> * (<빌리지 보이스> 2000. 5. 23.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

CJS 연대, 강우석, <실미도> [2]

-시네마서비스 입장에선 CJ의 극장체인이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그 목적은 분명하다. 제작, 배급, 상영 3가지 모두에서 독점적 위치를 확고하게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CJ와 시네마서비스의 경쟁을 지양하는 대신 제2, 제3의 회사가 크는 것은 사전에 막겠다는 것 아닌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CJ와 시네마서비스가 양립하고 있으면 동양이나 롯데나 시장에서 절대 못 큰다. 오히려 CJ와 시네마서비스가 몸을 섞은 지금이야말로 또 하나의 메이저 집단이 나올 수 있다. 얼마 안 돼서 분명 나온다. CJ와 시네마서비스가 이런 관계가 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보는 건 쇼박스 같은 곳이다. 충무로에 안티 강우석 세력이 있지 않은가. (웃음) 아무리 힘들어도 나한테 안 오는 사람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다 거기로 몰려간다. 심정적으로 강우석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그러다보면 어나더(another) 시네마서비스 하나 더 나오게 돼 있다. 쇼박스가 됐든 어디가 됐든지, 위기감이 그 회사를 더 크게 만든다. 내가 만약 그 입장이었다면 쾌재를 불렀을 거다. 니네 나한테 죽었어. 빨리 섞으라고 난리났을 거다. 나한테 드디어 절호의 찬스가 오는구나 했을 테니까. 두고보면 알겠지만, 건강하게 발전할 거다. 정말. -2002년 시네마서비스의 시장점유율은 22.44%, CJ는 17.62%. 합하면 40.06%. 한국영화만 따지면 시네마서비스 21.94%, CJ 29.13%, 도합 60.07%이다. 전체 영화시장의 50%를 넘지 않으므로 당장 법의 저촉을 받지 않겠지만 두 회사가 힘을 합한 뒤 독점적 권력을 행사한다면 독점규제에 관한 법에 걸릴 수도 있다. 과거엔 한국영화도 메이저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지만 이제는 독점이 문제인 것이다. 두 회사가 연대하는 것이 미묘한 문제인 만큼 법적 자문을 받았을 텐데, 이에 관해 어떤 결론을 내렸나. =그거야 딜 하는 사람들의 문제다. 법적으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으니까 딜을 하지 않았겠나. 내가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공정거래를 어기는 독점이라고 법적 잣대를 들이대기가 애매할 거다. 지난해 점유율이 40%라고 하지만, CJ나 우리나 <집으로…>와 <가문의 영광>을 빼면 어느 정도인지 한번 계산해봐라. 두 작품 모두 또 그렇게 돈벌 거라고 기대한 작품도 아니지 않았는가. 코리아픽쳐스도 지지난해에 시장점유율에서 2위를 했지만, <친구>와 <조폭 마누라> 두편 빼면 없었다. 쇼박스도 <이중간첩>이 만약 잘됐더라면 올해 1등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독점이네 아니네 하는 건 이전까지 시네마서비스와 CJ 중 누가 1등이니 2등이니 하고 주위에서 떠들어댔으니까 그런 거다. 사실 결과는 까보기 전에는 누구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러니 편수만 기준으로 말할 수 없는 문제다. 시네마서비스야 적자낸 해가 없었고 다만 몇억이라도 법인세를 내다보니까 다 해먹는다는 악소문이 도는 것이겠지만. 이번 딜은 CJ쪽에 자문 좀 해주고, 대신 돈 때문에 부대끼지 말고 영화 좀 편하게 만들어보자는 것 이상은 아니다. -1948년 미국은 스튜디오가 극장체인까지 소유하는 수직통합을 금하는 판례를 내렸다. 일본은 도호, 도에이, 쇼치쿠 3대 메이저가 극장체인까지 일괄 독점하는 바람에 영화산업이 활력을 잃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아무리 재능있는 인물이 나와도 3대 메이저가 워낙 꽉 잡고 있어서 또 다른 메이저로 발전할 수 없게 막는다는 거다. 영화가 산업으로서 힘을 잃은 일본과 결정적 차이가 있다고 보나. =일본하곤 비교할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 일본 사람들이야 자기네 것을 다 버리려고 하지 않나. 그들이 찾는 것은 이른바 브랜드다. 영화뿐 아니라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도 명품화된 유럽이나 미국 문화를 선호하고. 애니메이션을 빼면 자기 나라 영화 안 본다는데 그건 민족성과 가치관의 문제라고 본다. 우리의 경우는 산업적인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자금력이나 브랜드로 봐서 앞으로 쇼박스가 잘해줘야 한다. CJ만큼 해야 하는 거지. 여기에다 롯데도 어서 영화제작해야 하고. 튜브 친구들도 빨리 옛날 모습을 되찾아야 하고. 아까도 말했지만, 이번 딜이 이를 막는 것이 아니라 촉발시킬 거라고 본다. 메이저 회사 3개 정도는 언제나 나와야 하고, 나온다. 서로 경쟁을 해야 하니까. -일반적으로 제작자들의 관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CJ가 자체 제작 시스템을 계속 가동할 것인지이고 다른 하나는 CJ가 강우석 감독의 선구안을 높이 평가해서 플레너스를 인수하는 것이라면 투자작 선정에서 강우석 감독의 성향이 그대로 반영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재수의 난>이나 <취화선> 같은 영화도 제작했지만 <눈물>이나 <집으로…>는 거절했던 프로젝트다. 과연 강우석 감독의 선구안이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을 유지할 것인지가 문제다. =CJ가 어떤 회사인데 다 손놓겠나. 세상에 나한테 다 줄 그런 곳이 어딨겠는가. 실제로 ‘제작관리는 포기해라, 내가 할게’라고 말한 적도 없다. 내가 거기 직원도 아닌데 어떻게 그러나. 만약 여기 버리고 들어가서 연봉받고 일한다고 쳐보자. 이건 된다, 이건 안 된다 했는데 몇번 틀려봐라. 바로 모가지다. 그거 알아맞힐 수 있을 능력이 있다면 <가문의 영광> 지분을 내가 왜 정태원에게 양보했겠나. 안 했지.(웃음) 흥행이란 게 인간의 능력 밖의 일 아닌가. 내가 하는 건 편수가 많을 경우, CJ쪽에서 좀 해달라고 추천을 하는 정도다. 아니면 반대로 그건 정말 아닌데라고 생각이 드는 경우, 검토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은 할 수 있겠지. 그래도 CJ쪽에서 가겠다고 하면 라인업에 포함되는 거다. CJ쪽에서 지금 내게 부탁한 것도 유능한 프로듀서를 구체적으로 추천해달라는 주문선이다. -CJ와 관계를 맺고 있었던 일부 제작사들의 우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싸이더스, 명필름, 튜브 그런 회사들이 전엔 CJ와 같이 했었는데 이젠 어떡하냐고? 강우석이 중간에서 어딜 까내고 누굴 걷어내고 그런 걱정은 안 해도 좋다. 난 오히려 명필름이 CJ와 안 하겠다고 하면서 딴 데 가면 어떡하나 그게 걱정이다. (웃음) 영화사 봄도 <스캔들>에 CJ가 투자 안 한다고 말 바꿀까봐 서둘렀던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반대를 하나. 예전에 제작사할 때 같이 경쟁하는 경우라면 사촌이 땅을 사서 배 아프다고 누굴 찍어냈을지 모르지만 지금 내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뭘 얻겠나. 그쪽에 이런 걸 물어보고 싶다. 앞으로의 상황을 걱정한다지만 이젠 <접속> 같은 영화들을 만들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건지. 그게 아니라면 다 기우다. 나라도 좋은 시나리오 보면 뛰어간다. 앞으로 더 호의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들이 느끼기에 CJ의 태도가 달라졌다면 그건 누가 어떻게 한 것이 아니라 CJ 스스로 느낀 거다. 요즘 나 보면 그런다. 앞으론 시나리오 검토하겠다고 그러더라. 지금까진 다들 안 된다고 그러는데도 사람이 귀해서 그냥 따라간 경우가 많았다는 거다. -대부분의 제작자는 강우석 감독이 어느 정도 구색맞추기는 하겠지만 작품의 주류가 <고양이를 부탁해> <와이키키 브라더스> 같은 비주류영화일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 저예산영화나 예술영화, 작가영화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데 있어서 어떠한 계획이 있는가. =예를 들어 시네마서비스에 한지승이를 불러앉혔다고 생각해보자. 매번 <고스트 맘마>나 <찜> 같은 영화만 만들 것 같나. 상업영화 하다보면 이창동 콤플렉스, 홍상수 콤플렉스 그런 게 있다. 그런 게 생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다른’ 영화에 손이 가게 된다. 안 그랬다면 내가 임권택 감독님한테 <취화선> 저와 하십시다고 안 했겠지. 돈은 다른 걸로 벌고, 이건 명분이 있으니까 가자고 했던 거다. <이재수의 난>이나 <초록물고기> 할 때도 돈벌려는 생각 안 했다. 의미있는 투자라고 판단했으니까 갔지. 아, 저 새끼 돈버는 것 때문에 욕먹으니까 그러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비난 정도는 얼마든지 들어도 상관없다. 어떻게 매번 좋은 소리만 듣고 살 수 있나.

외화는 나의 힘?

할리우드 프로덕션 유치를 둘러싼 국가들 사이의 경쟁 치열 할리우드영화 및 TV시리즈 프로덕션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부쩍 치열해지고 있다. 캐나다 재경부 존 맨리 장관은 2월18일 저녁 캐나다에서 이루어지는 해외영화 및 TV프로덕션의 세금감면 비율을 11%에서 16%로 상향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이제 할리우드를 비롯한 외국 제작자들이 캐나다에서 영화를 찍으면 캐나다 노동력에 지불한 비용의 16%를 환급받게 됐다. 최근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미국영화와 TV시리즈로는 <캐치 미 이프 유 캔> <위험한 마음의 고백> <스몰빌> 등이 있다. 즉시 효력을 발휘할 이번 조치는 할리우드 프로덕션 유치를 둘러싼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부쩍 뜨거워지면서 캐나다 프로덕션 업체들이 정부에 압력을 행사한 결과로 보인다. 캐나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의원 데이비드 다이어와 민주당 하워드 버먼 의원이 할리우드의 해외 프로덕션 바람이 미국 경제에 끼친 손실(약 100억달러 추산)을 지적하며, 임금 2만5천달러 이하 스탭 고용비에 대한 25%의 세금 감면을 제안한 것에 대응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영화 프로덕션이 시장 안에서 창출하는 보이지 않는 경제적 효과는 실제 비용의 7배에 달하다는 것이 통설. 세계 최대 자국영화산업이 캐나다, 호주, 유럽 등지에서 판을 벌임으로써 후반작업 시설부터 출장 요리업계에 이르기까지 일자리가 해외로 유출되는 현상에 대한 미국인들의 위기감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18일 리처드 M. 데일리 시카고 시장은 아카데미 최다 노미네이션을 따낸 영화 <시카고>가 토론토에서 촬영된 사실에 유감을 표하면서 “우리가 돈과 크리에이티브를 댄 작품의 프로덕션을 왜 해외로 내보내야 하는가?”고 덧붙였다. 어처구니없게도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의 전기영화 촬영지를 몬트리올에 뺏긴 뉴욕시 영화·텔레비전 오피스도 2월18일 토론회를 열어 세금 혜택을 디지털영화에 확장하는 등의 방안을 논의했다. <버라이어티>는 뉴욕시가, 닷컴기업 거품이 남긴 건물들을 스튜디오 시설로 전환하는 정책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경쟁적으로 고급한 인력과 저렴한 비용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해외 로케이션은 미국의 공세적 방어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당분간 할리우드 제작자들을 유인할 것으로 보인다. <미션 임파서블> <스타워즈> 등 블록버스터의 요람으로 주가를 올린 호주는 <피터팬> <크로코다일 헌터> 프로덕션을 유치했다. 자원과 역량을 집중했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마무리짓는 뉴질랜드는 북섬에 <라스트 사무라이>의 무대인 19세기 일본을 부활시킨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외에 부상하고 있는 할리우드 해외 촬영지는 저임금의 고급 인력 외에도 유럽영화 전성기의 유적인 유서깊은 거리와 스튜디오를 보유한 동유럽. 체코 프라하는 2003년 <밴 헬싱> <헬 보이> <추한 미국인> <그림 형제> 등 4편의 할리우드 메이저영화와 의 히틀러 전기물 <악의 기원>에 로케이션을 제공할 예정이다. 슬로베니아는 옛 수도 류블랴나에 800만달러를 투자한 종합촬영소를 열었으며, 헝가리도 <스파이게임> <아이 스파이> 프로덕션을 끌어들인 실적을 이어나갈 전략을 세우고 있다.

<바람난 가족> 서 바람난 시어머니 윤여정

"김기영감독 없어서 십수년 영화 안했다 최근 촬영을 마친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에서 “야심적인 캐릭터”는 옆집 고삐리와 바람나는 30대 아내 은호정이나 남편의 애인인 20대의 김연 보다도, 60살의 시어머니 홍병한 여사다. 알콜중독으로 골병든 남편과 지난 15년간 잠자리 한번 없다가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며 삶에 희열을 느끼는 인물. 문소리·황정민 등 젊은 배우와 함께 ‘온가족이 바람나는’ 이 대담하고 뻔뻔스런 가족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에너지를 뿜어낼 역할로, 윤여정(54)씨가 스크린에 복귀한다. 고 김기영 감독의 미개봉작 <죽어도 좋을 경험>(88) 이후 십수년 만인 셈. 지난주 막바지 촬영이 한창인 동대문의 한 캬바레에 예의 그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기영 감독과 명자 70년대 김기영 감독의 <화녀><충녀>와 텔레비전 <장희빈>에 잇달아 출연할 때 윤씨는 ‘한국의 팜므파탈’이라 불렸었다. 어느 작곡가집의 가정부로 들어가 임신을 하고 낙태를 당한 뒤 주인집의 아이를 죽음에 몰아넣고 소유욕에 미쳐 남자에게 동반자살을 강요하는 명자, 윤씨의 나이 불과 23살때였다. “김기영 감독, 되게 집요해요. 당시 최무룡씨가 날 예뻐해서 고영남 감독에게 데려가 영화를 찍고 있었어. 그때 김감독이 자꾸 오더니 그때까지 찍었던 비용까지 다 물어줬다니까. 점점 사슬에 묶였지.” 계약조건에 몇달동안 하루에 1~2시간씩 감독과 만나는 게 들어있었다. 매일같이 이야기하며 매일 보러다니던 영화가 나중에 생각하니 “엄청난 수업”이었다. 김감독이 리얼리즘 경향에서 인간, 특히 여성의 내면세계를 ‘해부’하는 영화로 옮겨갈 때, 윤씨는 김감독의 ‘명자’였던 셈이다. 당시만 해도 20대초반의 나팔 청바지 펄럭거리며 발랄한 이미지였던 윤씨에게서 김감독은 “청승스러움”을 미리 보았고, “내 말을 유일하게 알아듣는 배우”라며 아꼈다. “김감독처럼 대단한 사람이랑 처음 영화를 하고나니 다른 사람이랑 못하겠더라고. 그 분이 없어서 그동안 영화를 안 했던 것 같아요.” 임상수 감독과 병한 그랬던 윤씨가 병한역을 맡은 건 한국영화나 드라마가 50대이상 배우에게 흔히 요구하는 ‘어머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배우는 다른 역 하는게 가장 좋아. 이것도 맨날 눈물지으며 쌀 씻는 역이면 안했어요.” “원래 내가 캐스팅 1순위가 아니었다우. 감독이 거짓말 했으면 그때 안한다고 했을꺼야. 영화촬영이란 게 기억도 가물가물한 데다 감독이 처음 생각했던 이미지와 내가 너무 다르지 않을까 겁도 났지. 근데 걱정하는 내게 임상수 감독이 ‘연기는 해석 아닌가요’ 하더라고. 그래, 배우는 해석자지. 또 물었지. 근데 시나리오에서 왜 애는 느닷없이 죽이우. 임감독이 ‘우리모두 느닷없이 죽지않나요’했어요. 그래, 우린 참 느닷없이 죽지.” 50대의 나이가 되었으면 둥글둥글도 해지련만 윤씨는 싫은 사람에게 좋다고, 연기 못하는 사람에게 잘한다고 말할 줄 모르는, 대신 자신이 납득하면 몇배의 정열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김기영 감독이 사람연구를 참 많이 한 사람이었다우, 근데 임감독을 보고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난 나보다 못한 사람이랑 작업은 싫지만, 아 저사람이 나보다 낫구나 싶으면 납작 고개 숙여요.” 이날 촬영을 위해선 생전 처음 며칠간 사교댄스 하드 트레이닝까지 받았다. 90년대 윤씨가 도시적이며 깐깐한 어머니, 특히 억센 운명을 담배 연기 한모금으로 날려버리는 여인을 연기할 때, 비록 작은 텔레비전 화면일지라도 사람들은 매순간 자신을 불사르는 듯한 그를 느꼈었다. 여성들이 볼 때 정말 통쾌함이 느껴지는”(임감독) 영화에서 윤씨의 모습을 기대하는 마음이 특별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리라. 글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사진(명필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