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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개최장소 이전 반발

부산국제영화제(PIFF)의 개최장소가 중구 남포동에서 해운대로 이전해야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자 남포동 극장가 등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25일 중구 남포동 극장가에 따르면 1회부터 7회 대회까지 부산국제영화제는 남포동 피프광장이 주무대였으나 갑자기 영화제조직위측에서 남포동 상영관들의 비협조로 개최장소를 옮기겠다는 뉘앙스를 언론을 통해 표명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중구 남포동 부산극장 하봉근상무는 "남포동 상영관이 부족해 해운대와 시민회관으로 분산개최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라며 "지난해 영화제 당시 남포동 극장가에는 씨네시티 등 7개관 1천300석이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하상무는 "영화제 초기에는 대관료도 안 받을 정도로 도와줬는데 이제 영화제 위상이 높아지자 남포동을 버리고 해운대로 가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영화제거리로 지정해 거액을 투자한 피프광장을 외면한다면 시민들로부터 커다란 저항을 받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대영시네마 고순희 총지배인은 추석대목 상영관 대관이 불가능해 해운대에서 개최하겠다는 김동호집행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지금까지 추석연휴를 이유로 대관을 못해주겠다고 한 적은 한번도 없다"며 "앞으로 언제라도 대관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주경업 피프전용관 유치위원장도 "영화매니아인 젊은층의 열기가 높은 피프광장 주변 극장가를 두고 해운대로 옮기는 것은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성공한 국제영화제를 망치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며 "대관에 따른 극장측 손실을 범구민 성금모금으로 보전하겠다"며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대해 조직위 이성진사무국장은 "지난주 조직위 총회에서 남포동과 해운대의 장단점을 설명했을 뿐"이라며 "지난해 대회에서 영화인들과 해외게스트들이 분산개최로 불편을 겪어 올해부턴 집중개최를 할 수 있도록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사무국장은 또 "남포동지역의 상영관수가 적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추석연휴에 대관을 기피하는 바람에 영화제 개최시기가 고정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남포동 극장가들과는 상반된 입장을 밝혔다. 한편 부산시는 "영화제 개최지 이전여부와 영화제전용관 부지 장소에 대해 전문가와 각계인사 등이 참석하는 공청회를 개최하고 객관적인 여론조사 등을 통해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연합뉴스)

[새 영화] <언디스퓨티드>

권투를 소재로 한 영화들 중 진짜 권투영화라고 할 만한 영화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존 보이트 주연의 70년대 영화 <챔프>는 부정(父情)이 인상에 남는 작품이며 실베스타 스텔론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록키>는 3류 인생의 성공기를, 우리 영화 <챔피언>은 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다음달 7일 관객들을 찾는 영화 <언디스퓨티드>(Undisputed)는 권투 경기 장면의 역동성을 강조한 영화로 이들 영화와는 달리 '본격 권투 액션 영화' 쯤으로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교도소 안의 챔피언과 교도소 밖의 챔피언의 '한판 승부'라는 비교적 단순한 줄거리지만 몸 만드는데 신경 꽤나 쓴 듯한 배우들이 출연해 다양한 각도의 카메라와 빠른 편집으로 연출되는 권투 시합 장면은 힘있고 역동적으로 보인다.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빠른 화면과 감각적인 인서트 화면 등도 인상적이지만 교도소 안에 쇠 창살로 지어진 링에서 해설자와 초대가수, 매니저에 심판까지(모두가 수감자들이다) 등장하는 권투시합이 정말 있기는 할까라는 식으로 생각이 흐른다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카메라 워킹이 부담스러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 <라스트맨 스탠딩>의 월터 힐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네 멋대로 해라>와 <블레이드> 시리즈로 알려진 웨슬리 스나입스가 주연으로 출연한다.캘리포니아 모하비사막의 스윗와터 교도소. 직원포함 750명이 수용돼 있는 이곳에는 교도소 내 복싱경기에서 68승 무패를 기록 중인 '교도소 챔피언' 먼로(웨슬리 스나입스)가 10년째 복역 중이다. 바람난 아내를 살해한 죄로 교도소에 들어온 그는 이곳 뿐 아니라 미국 전역의 죄수들 사이에는 영웅적인 존재. 어느날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헤비급 세계챔피언 아이스맨(빙 래임스)이 쇼걸을 성폭행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스윗와터에 수감되면서 교도소는 둘 사이의 대결을 보고싶어하는 죄수들의 기대로 술렁거린다. 교도소 내에 자신 이외에 또 다른 챔피언이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한 아이스맨은 먼로와 신경전을 벌이고 말썽이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는 교도소장은 먼로를 독방에 감금한다. 이에 교도소 내의 '어르신'이자 마피아 두목인 맨디 립스타인(피터 포크)는 교도소장을 협박해 둘 사이의 시합을 이끌어 낸다. 규칙은 심판 없이 둘 중 한 명이 못 일어날 때까지. 시합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아이스맨은 가석방을, 먼로는 게임에 걸린 판돈의 40%를 얻게 된다. 드디어 시합날, 둘은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승부를 위해 링에 오르는데… 제목 'undisputed'는 '논의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이란 뜻의 형용사다.(두산 동아 영한사전) 15세 관람가. 상영시간 94분. (서울=연합뉴스)

이경실과 오프라

‘이경실 사태’ 이후 며칠간 나도 공연히 불안했다. TV 밖의 이경실씨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터무니없게도 불안했다. 이유는 한 가지. 이씨가 “여전히 남편을 사랑한다”라거나 “그래도 아이들 아빤데” 하면서 그냥 참고 살겠다고 할까봐. 오로지 같은 여자라는 인종적 동질성 때문에 과도하게 감정이입해가면서 ‘이경실 사태’를 지켜보니,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남편도 엽기적이지만, 황색언론이 휘두르는 야구방망이도 만만찮게 엽기적이었다. ‘하이에나 저널리즘’에 스타란 얼마나 탐스런 먹잇감인가. 스타가 잘 나갈 때는 건들지 않는다. 잘 나가는 시절의 사생활은, 보호받는 프라이버시다. 하지만 일단 스캔들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의 프라이버시는 뼈도 못 추린다. 기자들은 150% 취재와 보도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150%인 것은, 이따금 픽션의 경계까지 침범하기 때문이다. 만일, 결혼을 앞두고 수면제를 과량복용했거나, 바람난 남편이 이혼선언을 했거나, 남편에게 맞아서 병원에 입원했거나, 이런 상황이라면 스타는 자신의 명예를 질풍노도처럼 달려드는 기자들에게 당분간 맡겨두는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 정도다. “무리한 부탁인지는 잘 알지만, 제 명예를 갖고 놀다가 제발 제자리에 갖다놔주세요.” 하이에나 저널리즘에 물어뜯기는 경험이란 악몽일 것이다. 하지만 이경실씨가 악몽을 빨리 털어버리기 바란다. 골반의 골절도, 정서의 골절도 봉합된 뒤에는 그의 커리어 역시 감쪽같이 봉합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는 다섯개 TV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데, MC를 교체하지 않고 대타를 기용하면서 그가 퇴원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준다면, 그 방송사는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것이다. 비극적인 이미지에 가려서 이제 사람들을 웃길 수 있겠냐고 하는 칼럼들도 보았지만 나는 그런 시각이 못마땅하다. 사생활의 불운함이 반드시 스타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최진실씨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타는 종이인형이 아니다. 어떤 스타가 보통 사람들에게 있음직한 그런 고통과 비극들을 함께 겪으면서 그것을 극복했을 때 대중으로부터 더 두터운 신뢰와 사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자신들의 마음가짐에 달렸다. 만일 그들이 엔터테이너로서 진정한 프로였다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오프라 윈프리라는 여자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오프라 윈프리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돈 많고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16년 동안 롱런해온 토크쇼 <오프라 윈프리 쇼>의 사회자이고, 방송사와 영화사, 출판사 등을 거느린 ‘하포’ 그룹의 주인이기도 하다. 미시시피주의 가난한 흑인 미혼모의 딸로 자라난 그가 한 지방방송의 TV토크쇼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으로 만들면서 최고의 스타가 되기까지, 그도 스캔들의 암초 앞에서 여러 차례 침몰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런 스캔들은 그를 스타덤에서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의 스타성을 공고히하는 데 기여했다. 가령, 그가 토크쇼 진행자로 한창 뜨고 있을 때 그의 이복 여동생이 오프라가 열네살 때 아빠를 모르는 미숙아를 낳았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때부터 한동안 오프라의 사생활이 미국의 타블로이드 신문들을 뒤덮었다. 그는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 그는 토크쇼에서 훨씬 솔직해졌고 자신이 어렸을 때 친척들에게 성폭행당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아동학대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적극적인 활동가가 되었고 그가 제안한 아동보호법은 나중에 ‘오프라 법안’이라는 이름으로 미 의회에서 통과됐다. 95년, 그는 마약을 주제로 한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20년 전 한 남자에게 푹 빠져서 그와의 관계를 위해 마약을 복용했다는 고백을 했다. 그는 카메라가 멈추고 광고방송이 나가는 동안 마이크를 내려놓고 울었다. 이런 그를 솔직한 방송인으로 봐주는 시선과 연기 잘하는 배우라고 비꼬는 시선이 있다.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상처를 지혜로 바꾸어라. 실수는 모든 사람이 한다”라는 말은 평범하고 상투적인 레토릭이다. 하지만 그게 오프라 윈프리가 한 말이라면 다를 것이다. 이경실씨, 그리고 최진실씨. 우리가 TV에서 원하는 건 그저 판타지만은 아니랍니다. 얼굴에 솜털도 덜 벗어진 공주들의 재롱잔치도 신물이 났답니다. 이제, 프로의 엔터테이너로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조선희/ 소설가·전 <씨네21> 편집장

유머광고의 대명사,맥도날드·롯데리아 광고

제작연도 2003년 광고주 한국맥도날드대행사 레오버넷 제작연도 2003년광고주 롯데리아 대행사 대홍기획 제작사 리틀쥬(감독 이지형) 코미디와 개그의 차이? 유머감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으로서는 웃길 수 있는 주체 모두가 경원의 대상이다. <개그콘서트>의 갈갈이와 옥동자와 노통장이 신기하고, 코믹연기 능숙한 배우가 감탄스러우며, 코믹물이라 통칭되는 모든 것을 만드는 이들이 부럽다.그러나 웃기려는 것 같은데 추운 바람만 몰고오는 것에는 얄밉게도 가차없는 경멸을 보낸다. 노력이 가상하다며 이해의 박수를 보낸다든지, 내 웃음이 인색한 것 아니었나라고 반문하지 않는다. 웃기는 자는 칭찬받을 만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무시받아 마땅하다는 식이다. ‘똑딱, 똑딱’ 몇번이면 끝나는 시간 안에 웃기면서 소비자의 지갑을 자극하는 CF를 만들기란 여간한 배짱으론 엄두내지 못할 일 같다. 그럼에도 맥도날드, 롯데리아 등 패스트푸드 브랜드의 CF는 줄기차게 웃음포를 장전해 ‘이번에도 나 웃겨요?’를 묻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매번 어이없는 실소나 무표정의 반응을 자아낸 적은 없었다.특히 예전에 이 지면에서 단독으로 소개한 바 있듯이 맥도날드 CF는 품질 좋은 유머광고의 대명사다. 지난해에 ‘살인미소’ 신구 선생의 벌침 같은 한마디로 대단한 반향을 낳은 롯데리아 광고도 늘 신작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 탄생한 신규 CF들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눈길을 끈다. 그런데 웃음의 방식에는 약간 차이가 난다.얼마 전 맥도날드 CF는 탄생 15주년을 기념하는 기업PR성 광고에서 모든 점원이 한국인이란 사실을 강조하며 그냥 맥도날드가 아니라 한국맥도날드임을 강조했다. 반미정서를 고려한 다국적 브랜드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맥사사’(맥도날드 광고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한국’자에 유난히 힘을 주며 반미의 파편을 맞지 않겠다고 속내를 까발린 게 못내 아쉬웠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간결하고 깔끔하게 ‘스마일’ 표시를 낳는 방식이 이 CF의 강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빅맥햄버거’ 및 하나 사면 하나 더 주는 프로모션을 알리기 위해 돌아온 이번 CF는 뾰로통한 이전의 반응을 일거에 날려버리고 있다.모델이 없다. 화면에는 햄버거만 덩그러니 등장한다. 빵와 빵 사이에 얼마만큼 푸짐한 내용물이 들어가는지를 단계별로 보여주는 몹시 간단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비범함은 빅맥 제조과정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에 있다. 내레이터는 노무현 대통령. 엄밀하게 말해 ‘노짱’의 화법을 흉내내는 배칠수다. “양상추 위에 치즈 맞습니까, 고기 위에 빵 맞지요. 사실 이대로도 훌륭합니다만은, 빅~맥 아니겠습니까? (좀더 빠른 템포로) 다시 양상추, 피클, 고기 계속 얹어줍니다. (다시 정상 빠르기로) 심하게 큰 거 알고 있습니다. 하나 더 주는 것 맞는 것 같습니다. 거짓말 하겠습니까.” 햄버거와 대통령의 만남이 이채롭다. ‘성대모사의 달인’으로 불리는 배칠수는 ‘노통장’ 김상태와 달리 전혀 ‘오버’없이 침착한 말투를 구사하는 게 특징. 빵, 고기 등이 팬터마임의 주인공처럼 소리없이 움직이는 가운데 튀겠다는 과욕없이 감칠맛나게 청각을 책임지고 있다. 영상 전개와 말의 리듬이 아귀가 딱 맞게 흘러가는 것도 돋보인다. 똑같은 영상에 배칠수가 배철수 목소리로 해설하는 버전도 있는데 이것 역시 개운한 미소를 끌어내기는 마찬가지다. 건방진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성대모사를 1차원적인 잡기 같은 코미디라 생각했다. 온갖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수, 개그맨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이 개인기를 뽐내며 ‘우격다짐’식 웃음을 강요하는 것이 심드렁했다.그러나 아메바처럼 자유자재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넘나드는 이 능숙한 내레이터는 너무 태연하게 원조처럼 굴며 작위적 장치의 냄새를 없애고 있다.덕분에 한국의 대통령이 외산 브랜드를 자랑한다는 이 CF의 대담한 발상은 미워할 수 없는 발칙함으로 다가가고 있다. 신구, 노주현을 통해 ‘중견 연기자, 코믹하게 망가지다’ 시리즈에 재미를 톡톡히 맛본 롯데리아 CF는 이번엔 김애경-선우용녀를 여성버디로 내세웠다. 감자를 썰고 있는 김애경과 통감자를 만지는 선우용녀가 책읽는 말투로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감자는 왜 써나?”(용녀) “우리는 삼대째 썰고 있다네.”(애경) “요즘 감자는 통이라던데.”(용녀) “통? 통 뭔 소린지.”(애경) 통감자 제품을 알리기 위해 ‘통’이란 말로 언어유희를 즐기고 있다. 다소 연기력이 부자연스러운 구석은 있지만 아주 썰렁하진 않다. 경품으로 내건 세탁기를 만지작거리며 김애경이 콧소리로 ‘롯데리아’를 외치는 것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 ‘통 뭔 소린지’를 따라하며 웃는 시청자가 많다고 하니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데도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신구 선생처럼 이들이 뒷통수를 치는 짜릿함은 없다. 발바닥을 간지럽히듯 단순하게 웃기고 만다. 두 광고 공히 웃음 유발의 장치로 요즘 가장 유행하는 성대모사와 말장난을 활용했다. 그러나 재가공의 크리에이티브를 발현한 것은 전자다. 왕창 웃기고 싱겁게 떠나는 개그와 달리 코미디가 음미하고 싶은 여운을 남기는 것이라면 적어도 전자가 그것에 더 근접한 것 같다.조재원/ <스포츠 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

<갱스 오브 뉴욕> 맛보기 광고만으로 주말점령

마틴 스코시즈의 대작이 한국 극장가에 바람을 일으킬까. <갱스 오브 뉴욕>은 극장티켓 사이트인 맥스무비의 예매순위에서 26일 오전 현재 예매율 35% 정도로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3위로 끌어내리며 1위를 달리고 있다. 극장이나 텔레비전 광고에서 보인 맛뵈기만으로도 압도적인 느낌의 화면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카메론 디아즈, 대니얼 데이 루이스 등 인기도와 비평 면에서 모두 지지를 얻는 배우들의 열연이 관객들의 기대를 부풀리고 있는 듯. ‘뻔한 신파’일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베스트셀러의 원작을 차분한 감정으로 연출해낸 멜로물 <국화꽃 향기>는 예매순위 2위에 올랐다. 영화인회의의 박스오피스 발표가 중단(<한겨레> 25일치 39면)되면서, 흥행의 윤곽은 이같은 예매순위와 각 영화사가 자체 발표하는 수치에 기대어 잡아볼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지난주는 유난히 수작들이 한꺼번에 개봉해 다양한 영화에 목말라하던 관객들에게 행복한 주였을 듯싶다. 일단 성적상 가장 좋은 반응을 얻은 영화는 홍콩 누아르의 부활이라는 <무간도>. 영화사 쪽 집계에 따르면 전국 15만 정도의 관객이 들었다. 전통적인 장르를 따르는 듯하면서도 감상적이거나 남성적인 영웅주의가 아닌 이야기가 새로운 관객층을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은 에미넴이 인기가 있다지만, 아직까지 랩이라는 장르가 확실히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 실정에선 전국 12만명이라는 괜찮은 성적을 보였다. 전국 6만명에 머물렀지만, 감정몰입이 쉽지 않은 영화 <디 아워스>가 전국 6만명 가까이 든 것도 반가운 소식이며, 일본의 공포영화 <검은 물밑에서>는 높은 객석점유율을 보였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세가의 끝은 어디인가?<팬저드래군오르타>

세가가 하드웨어 시장에서 철수한 지 2년이 넘었다. 메가드라이브에서 새턴, 드림캐스트까지, 세가는 한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다. 세가 게임기는 항상 두 번째에 그쳤고, 팬들은 <샤이닝 포스3>나 <아젤 팬저 드라군> 같은 새턴의 명작들이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나왔다면 <파이널 판타지>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평가와 대접을 받았을 것이라고 억울해했다. 드림캐스트로 출시된 <쉔무>나 <스페이즈 채널 파이브> 같은 참신한 시도들이 묻혀버린 것은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이머들뿐 아니라 경영진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누적되는 하드웨어 적자로 빈사상태에 놓여 있던 세가를 개혁하기 위해 가야마 데쓰가 COO로 불려왔다. 가야마는 취임하자마자 세가가 그토록 집착했던 플랫폼 홀더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그리고 도입한 게 플레이스테이션2, 게임 큐브, 엑스박스 등 어떤 기종으로든 게임을 출시하겠다는 멀티 플랫폼 정책이다. 마이너리티 집단은 다 그렇지만 세가 팬들은 충성도가 높다. 하드웨어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비통해하면서도 이제야 세가 게임이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면서 기뻐했다. 이들은 세가가 모든 플랫폼을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리는 게임 제작사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 같지 않았다. 2002년 게임판매량 집계에서 세가는 5위에 그쳤다. 1등인 닌텐도의 1020만장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290만장이다. 닌텐도의 24개보다 훨씬 많은 57개의 타이틀을 발매했다는 걸 고려하면 참담한 결과다. 세가보다 먼저 멀티 플랫폼을 선언했던 코나미, 캡콤은 모두 세가보다 많은 타이틀을 팔았다. 소니나 남코, 에닉스 등을 누르기는 했지만 이들이 각각 37개, 31개, 12개의 타이틀을 출시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몇십만장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 총량에서 밀린 것은 물론이고 확실한 빅히트작을 내지도 못했다. 세가의 간판 중의 간판 <버츄어 파이터4>는 일본에서 고작 54만장 팔리는 데 그쳤다. 100만장을 판 캡콤의 <귀무자2>, 110만장의 코나미의 <월드 사커 위닝 일레븐6>, 280만장의 닌텐도의 <포켓 몬스터 루비, 사파이어> 같은 메가 타이틀이 세가한테는 없었다. 세가 게임들이 <포켓 몬스터>나 <파이널 판타지>만큼 팔리지 못한 것은 보급대수가 적은 마이너 하드웨어로 출시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외곬이었던 것 같다. 세가 게임기로만 나온 <버츄어 파이터> 시리즈는 늘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하지만 여러 플랫폼으로 나오니 오히려 판매량이 줄었다. 마니아 취향이라는 인상이 강한 세가 게임에, 세가의 하드웨어는 판매 장벽이 아니라 오히려 안정적 판매공간을 만들어주는 울타리였는지 모른다. 세가의 하드웨어를 구입한 사람은 오기로라도 세가 게임을 더 많이 사들였고, 다른 플랫폼을 가진 사람과 신경전을 벌이면서 세가를 옹호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다르다. 마이너 게임기를 살리기 위해 살신성인하지 않아도 된다. 세가 게임은 안 사면서 다른 회사 게임을 사도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 세가 게임이 독창적이고 뛰어나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세가는 기존 팬의 호의에 의지하면서 안이한 기획을 쏟아내는 회사와는 거리가 멀다. 잘 만든 게임이 반드시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더 넓은 세계에서 더 큰 꿈을 펼칠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특유의 색깔을 버릴까봐 걱정도 된다. 신화가 깨진 지금, 세가는 어디로 갈 것인가? 아는 것은 바람뿐일 것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

감독으로 산다는 것은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초대박 열풍이 2003년 충무로의 봄을 뜨겁게 열어젖혔다. 혹자는 ‘또 코미디야’ 하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지만, 한국영화가 관객의 사랑을 받고 흥행을 한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충분한 이유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이 영화를 보고 온 배우 조재현의 칭찬은 마음의 울림으로 잦아들었다. “영화가 너무 재미있었다. 김하늘의 연기는 뛰어났고, 권상우는 자신의 캐릭터 그대로 영화에 스며들었다. 김하늘이 투수라면 권상우는 포수다. 김하늘이 어떤 공을 던져도 권상우는 편하고 자연스럽게 받아줬다. 그래서 두 사람의 연기호흡은 환상적이었고, 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감독의 연출은 신인답지 않게 무서운 내공이 엿보였다. 예사로운 감독이 아니다….” 그러면서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사실 내가 <동갑내기 과외하기>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온 것은 이 영화보다 감독 김경형에 대한 남다른 애증의 시선 때문이다. 그는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어 감독으로서의 자기 이름를 세상에 내비쳤다. 그를 아끼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기꺼이 축하해주고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을 것이다. 또한 그를 잘 모르는 또 다른 대다수는 화려한 감독 데뷔식을 막 치른 김경형을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를 진심으로(!) 아끼는 소수의 그 누군가는 기쁨보다는 인간 김경형이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가슴속에 고여 있는 눈물을 새삼 삭이고 있을지 모른다. 그가 감독이 되기 위해 투쟁(?)하며 보낸 세월은 줄잡아도 10년이 훨씬 넘을 것이다. 그 사이에 그는 결혼도 했고 가족도 꾸렸다. 감독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감독하는 것이 무슨 벼슬이냐”는 질책을 누군가로부터 듣지 않아도 자신 스스로 끝없이 되뇌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감독의 길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을까. 내가 이 자리에서 김경형의 인생을 평하는 것은 자격도 없고 관심사도 아니다. 다만 감독 이전에 인간 김경형으로서의 ‘삶’을 엿보고 싶은 것이다. 제작자로서 많은 감독들의 삶을 엿보지 않을 수 없고, 필연적으로 그들의 고통스런 삶과 함께 부대껴야 한다. 감독으로 산다는 것은 ‘벼슬’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감독이 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쉽다.” 최근 몇년간 세대교체 바람이 급격하게 불면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데뷔하는 감독들이 많이 배출되며 나온 말이다. 그러나 감독 개개인에게 물어보라. 누구도 이 말에 섣불리 동의하지 않을 거다.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면, 수년간 충무로에서 고단한 연출부 생활을 겪지 않고도 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이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이지 감독되기가 쉬어진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감독의 길을 자기의 삶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오늘 하루가 너무 고달프고, 내일의 희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감독이 되어서도 사정은 별로 나아질 게 없다. 사회적으로는 집도 절도 없는 신용불량자에다가 언제 작품을 할 수 있을지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작가로서의 나의 영혼을 팔아버리고, 차라리 내 재능을 누군가에게 싼값으로 팔 수만 있다면 하고 희망한다. 감독으로 산다는 것이 때로는 너무 구차하기 때문이다. 김경형의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글로나마 진심으로 축하하고, 앞으로도 그의 삶을 계속 엿보고 싶다. 그리고 감독의 길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삶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의 모든 감독님들 힘내십시오!이승재/ LJ필름 대표

영화감독 출신 문화장관 맞는 문화계

영화감독 이창동씨가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27일 입각하자 영화계를 비롯한 문화예술계에서는 환영과 기대의 분위기가 넘쳐나고 있다. 88년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이래 처음으로 현장 문화예술인이 문화정책을 관장하는 부처의 수장을 맡는 것인데다 김한길 장관(소설가 출신이나 정치인 신분으로 입각)에 이은 두번째 40대 장관이어서 문화예술계 전반에 젊은 바람을 일으켜 줄 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특히 현업 영화인들은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상승과 잇따른 국제영화제 수상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대규모 제작비 영화의 흥행 실패에 따라 침체에 빠진 충무로가 영화인 장관의 등장을 계기로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은 "지금까지 몇년 만에 영화를 처음 봤다느니 수십년 동안 연극 한편 안봤다는 인물을 문화부 장관으로 맞았는데 이씨의 입각 소식을 듣고 우리나라가 갑자기 선진국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면서 "이씨가 문화행정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영화계가 앞장서서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스크린쿼터문화연대를 비롯한 문화관련 시민단체들의 기대도 크다. 지난 13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WTO 시청각분야 양허요청안 철회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문화 개방 반대운동에 동참해온 이씨의 취임으로 지금까지의 문화개방 정책의 기조가 급선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미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 16개 가맹단체는 이씨의 문화부 장관 임명에 대한 환영성명을 발표하기로 의견을 모은 상태다. 양기환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 집행위원장(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이씨는 교육자로, 소설가로, 영화감독으로 문화현장을 두루 거친 인물이어서 소신과 함께 균형감각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 뒤 "정부 주요 부처를 설득해 문화에 대한 몰이해 풍토를 바꿔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씨의 입각은 보수 위주의 주류 문화계 풍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 시절 김명곤씨가 국립극장장에 발탁되고 최근 현기영씨가 문예진흥원장에 임명됐지만 아직까지 문화관련단체는 사실상 주류, 보수, 원로들의 독무대였고 운영방식이나 제도에도 관료적 분위기가 많이 남아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시영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직무대행은 "문화예술 현장을 직접 체험한 젊은 예술가가 문화예술계 전반에 역동적인 기운을 불어넣어줄 것"이라면서 "보수와 수구 중심의 문화 풍토를 일신하고 지금까지 변방에 머물러왔던 비주류 민족예술인들의 활동영역을 획기적으로 넓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의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은 <오아시스>의 베니스영화제 수상으로 절정에 올라 있는 연출 감각이 무뎌질 것을 걱정하고 있고, 인간 이창동을 아끼는 사람들은 뜻하지 않은 구설수에 시달려 소설가와 영화감독으로 쌓아올린 명예가 한순간에 실추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일각에서는 행정이나 관리 경험이 거의 없는 그가 문화, 예술, 관광, 체육, 종교, 청소년 등 다양한 업무를 두루 관장하며 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내비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를 잘 아는 영화계 인사들은 이씨가 영화인회의 정책위원장을 맡으면서 영화계의 지략가로 인정받았다는 점을 들어 장관의 업무도 잘 해낼 것이라고 반박한다. 또한 이창동 감독의 평소 스타일로 보면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는 대로 영화감독으로 복귀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몇년간의 공백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세상에 하나뿐인 저 목소리! 윤여정 스토리 [3]

“윤여정 쟤는 목소리 때문에 안 돼, 그랬대요.” 잠자리에 누운 성우에게 영희가 말한다.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거야. 길가다 교통사고처럼 아무랑 부딪칠 수 있는 게 사랑이야. 사고나는 데 유부남이, 할아버지가, 홀아비가 무슨 상관이 돼. 나면 나인 거지.”(<거짓말>) 경에게 유순이 울먹이며 말한다. “우리 복수 울렸다간… 너 절단 나. 나한테… 나 땜에… 울 만큼 운 애야… 나는 걔 울렸지만 남이 울리는 건 못 봐….” (<네 멋대로 해라>) 윤여정은 드라마 작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배우다. <내가 사는 이유>로 만난 노희경 작가를 비롯해 <네 멋대로 해라>의 인정옥 작가까지 조용하던 그들이 윤여정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 할라치면 갑자기 말이 늘어난다. 그러나 누구보다 윤여정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름 석자는 바로 작가 김수현이다. 데뷔 초 <무지개>를 시작으로 성공적인 복귀작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최근 막을 내린 <내 사랑 누굴까>까지 윤여정과 김수현은 운명적인 짝패처럼 늘 함께 존재했다. “다시 연기하라고 옆구리 찌른 사람도 김수현 선생이었어요. 대뜸 ‘조영남 마누라가 그렇게 대단한 건 줄 아니?’ 그러더라고. 하지만 쟤는 김수현 아니면 안 돼, 라는 누명을 벗으려고 김수현 선생 드라마 할 때면 다른 배우가 하는 것보다 100배쯤은 노력해왔어요. 촬영 있으면 그 전날 밤을 새다시피 해요. 대사 분량도 워낙 많은데다 1쪽부터 130몇쪽까지 머릿속으로 쭉 훑고도 한번에 이게 다 안 꿰어지면 일어나서 대본을 다시 봐요. 게다가 그 사람 브로킹이 정말 복잡하거든요. 그 많은 대사를 하면서 밥을 놓으면서 다리미질하고, 그걸 집에서 실제로 다 해보는 거예요. 예전에 누가 집에 와서 내가 연습하는 걸 보고 ‘윤여정이란 사람, 상당히 열심히 하는 배우구먼. 그런데 노력하는 거에 비하면 정말 빛 안 나네’ 그러더라고. (웃음)” <네 멋대로 해라> <저 푸른 초원위에> 윤여정은 <거짓말>에서 가끔은 청승맞고, 가끔은 소녀 같은 귀여운 여인이. <네 멋대로 해라>에서는 소매치기 아들의 철없는 엄마가 되었다. “안 보여요, 안 보여, 안경주세요.” 을지로의 한 카바레. 늙은 나이에 “몸이 원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살겠다”고 선언한 시어머니 병한이 초등학교 동창생과 카바레에서 멋지게 탱고를 추는 <바람난 가족>의 촬영현장. 감독의 컷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안경부터 찾는다. 춤동작이 어색할까봐 모니터 앞으로 달려오는 그는 바로 앞 모니터를 볼 때도, 심지어 가까이 있는 사람도 안경이 없으면 잘 알아보지 못한다. 본인 표현대로 “장애인” 상태로, 눈에 맞지 않아 그 흔한 콘택트렌즈 한번 끼지 않은 채, 30년 긴 시간 동안 연기해온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또 어떠한가. “요즘엔 개성있는 목소리들이 많지만 옛날엔 진짜 해괴한 목소리였죠. 나중에 들었는데 사람들이 뒤에서 윤여정 쟤는 목소리 때문에 안 돼, 그랬대요. 그러고보면 난 참 많은 난관을 딛고 일어선 거지. (웃음)” 그러나 윤여정은 배우에게는 2.0의 소머즈 같은 시력이 아니라 바늘 하나 떨어지는 것도 느끼는 민감한 촉수가, 성우 같은 낭랑한 목소리가 아니라 걸걸한 한마디의 대사로도 가슴을 치는 살아 숨쉬는 음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하루는 자고 있는데 한진희씨가 전화를 했어요. ‘여보세요’ 하고 걸걸한 목소리로 받았는데, 그러더라고. ‘아! 천상 천하에 하나뿐인 저 목소리!’” “혹시… 나 못 알아보면 전화줄래요?” “김기영 감독이 날 보고 늘 알렉 기네스 같은 훌륭한 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우리 때는 알랭 들롱이 최고였지, 알렉 기네스가 누군지나 알았겠어요. 난 그 사람이 영화에 나오면 누군지 잘 몰라봐요. 한참을 찾다가 후반부쯤에 아, 저 사람이 알렉 기네스구나 그런다니까. <콰이강의 다리>도 그렇고 <닥터 지바고> 때도 그랬고. 그런데 마흔살쯤엔가 <인도로 가는 길>을 보는데 어쩜 어쩜, 끝까지 그 사람이 누군지 몰라봤어요. 까만 분장을 하고 나오니 알아볼 수가 있나. 그때 깨달았죠. 아, 김기영 감독이 원하는 배우가 저런 배우였구나. 그 인물이 되어버리는 그런 배우가 되라는 말씀이셨구나.” “이제, 김기영 감독이 원하는 배우가 되어가고 계신 것 같으세요?” “글쎄요. 많이 바라고 원하면 가까워진다고 하잖아요. 앞으로 더 애써볼게요. 혹시… 나 못 알아보면 전화줄래요?” 1966년에 데뷔해 2003년까지 37년. 한때를 풍미했던 여배우들이 흑백사진 속의 우아한 자태로 박제되어 추앙받는 동안, 그는 70년대 마포선술집 작부가 되어, 남편의 외도를 알고 무너진 가슴을 쓸어내리는 부인이 되어, 소매치기 아들의 철없는 엄마가 되어, 첫사랑과 바람난 행복한 시어머니가 되어 우리 곁에서 늙어가고 있다. 부디, 그를 몰라보는 날이 빨리 다가오기를, 그리고 궁금한 마음에 정신없이 전화기 버튼을 누르게 되기를.글 백은하 lucie@hani.co.kr·사진 이혜정 socapi@hani.co.kr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