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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배명훈] L씨에게 창작지원 받았어요~

빈스토크. <재크와 콩나무>에서는 하늘로 솟은 거대 콩나무 줄기에 붙여진 이름이었지만 배명훈의 소설 <타워>에서는 674층, 2408m 50만명이 밀집해 사는 상상의 국가이자 초대형 복합빌딩의 이름이다. 배명훈은 상상의 건물 하나를 세상으로 구축한 뒤 여기에 세상살이의 은밀한 촌극과 그렇게 조금씩 웃다가 정신차려보면 문득 서글프고 무서워지는 모순 혹은 어딘가 남아 있을 사랑과 희망까지 동시에 그려 넣었다. ‘알라딘’에 연재되었던 6개의 단편을 묶어 <타워>라는 이름으로 출간했고, 그러자 한국 SF소설계에 주목할 만한 작품이 나왔다고 다들 재미있어 하는 분위기다. 대한민국과 지구상에서 벌어진다 믿었던 일들이 빈스토크 안에서 여러 변형으로 벌어지고 휘어져 반영되는 걸 보고나면 이 재기 넘치는 건물의 설계자가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한국 SF소설계의 인기 필자다. =나로서는 SF만 계속 써온 건 아닌데… 어찌 보면 블루오션이라 좋기도 하지만(웃음) 외롭다고 느낄 때도 있다. <타워> 나오기 전에도 인터뷰를 몇번 했는데 그때마다 인터뷰 3분의 1의 질문은 SF 장르 전체에 대한 어떤 거였고 거기에 답해야 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말이다! 그때 느낀 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여럿이 같이 있어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거였다. SF작가라는 것이 일종의 낙인이 될 때가 있다. 어떤 이들은 <타워>를 보고 “이게 무슨 SF야”라고 하고 또 누구는 “이건 SF야”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정해놓고 쓰지는 않는다. -주위에 팬들이 있어 이것저것 좀 물어봤다. 집필 습관 중에 이런 게 있다던데. 어떤 작품의 구상을 누가 미리 알게 되면 그건 당분간은 쓰지 않는다고. <타워> 후기에 소설은 꽁한 사람이 쓰는 거라고도 썼던데, 관련있는 건가 =문학 하는 분은 아니셨는데 대학원 지도교수님이 해주신 말이다. 성격 좋은 사람은 말로 하면 된다. 하지만 소설 쓰는 사람은 뒤에 가서 깊이 생각하고 쓰게 된다고. 맞는 말이다. 나는 블로그를 하지 않는다. 관리하기 힘들어서이기도 한데, 더 중요한 건 거기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버리면 다른 곳에서 할 게 없어서다. -소설은 언제부터 썼나. =대학 2학년 때 시작해서 군대 가면서 본격적으로. 그때 썼던 것들이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2003년쯤 되니까 이제 뭔가 좀 되는구나 했던 것 같다. 2004년에 제대하면서 <테러리스트>를 썼는데 대학원 어떤 선배가 읽어보더니 어디 내보내라고 해서 대학문학상에 냈고, 단편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먹히는구나(웃음), 알게 됐다. -20대 때와 지금 글쓰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나. =지금은 즐겁게 쓴다. 20대 때는 다들 그렇듯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뭔가 좀 확실해졌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실은 이런 이야기하면 돌 맞는데, 요즘은 괴롭지 않고 즐겁게 쓴다. 돌 맞아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한달에 한편씩 쓰지 않나. 해보니까 실은 스타일 차이다. 보통은 한 가지 소재를 잡고 치열하게 쓴다고들 하지 않나. 그런 경우에는 몇달을 잡고 계속 고치게 된다. 그런데 나는 다른 것을 써가면서 발전시킨다. <타워>에 실린 단편 <동원박사 세 사람_개를 포함한 경우>는 다른 단편 <초록연필>을 발전시킨 거다. 사무실에서 필기도구가 사라지자 이게 어디로 가나 추적하는 건데, 이론과 리서치를 더해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게 <동원박사 세 사람_개를 포함한 경우>다(빈스토크 내부 미세권력연구소의 권력장 연구의 일환으로 값비싼 술병에 바코드를 붙인 뒤 그 술병이 선물로 전해질 때 어디로 어떻게 흘러들어가는지를 연구하여 권력의 계보와 흐름을 계측한다-편집자). <초록연필>을 생각했던 게 지난해다. 요즘 말 많은 회사 KISDI(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있었는데 대통령 바뀌자 출근 시간을 당기지 않나, 좀 이상했다. 히틀러 같은 절대 악마가 있어서 그렇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한칸 한칸이 변하는 것 아닌가, 싶었고 그걸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어떤 리뷰는 내 소설을 보고 권력에 대한 심오한 풍자라고 하던데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나는 어떤 누가 문제여서 그 권력자를 단순하게 치환한 게 아니다. 의인화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면 각 단편들은 무엇을 따라 배치됐나. =맨 앞의 두편은 비판, 그 다음은 긍정적인 문제제기,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원래는 풍자가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쓰다보니 웃기기만 해서 되겠나 싶었다. <타클라마칸 배달사고>는 처음에 말랑말랑한 로맨스로 가려고 했는데 <타워> 소재에 녹이면서 처음의 것이 아니라 좀더 큰 이야기의 사랑이 됐다. 도대체 왜 하는 거지, 하는 사랑. -<타워>는 알라딘에 연재한 단편을 묶어 낸 책이다. =편집자들이 먼저 추진했다. 지난해 12월쯤. 대강 간략한 내용을 달라고 하더라. 1월에도 얘기가 있었는데 다른 연재가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 시작했다. -<타워>의 주무대인 빈스토크의 설계 계기는.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다가 갑자기 떠오른 거다. 다큐멘터리 채널이었다. 두바이쪽 빌딩에 관한 것이었는데 엘리베이터를 더 빨리 가게 하는 건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그걸 못하는 건 사람들이 어지러워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지하철도 사실 그럴 것이다. 더 빨리 갈 수 있지만 문제는 사람이다. 공학적인 문제 이외의 것, 사람의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공학적인 이야기를 할 때 사람의 문제는 어떤 식으로 들어오나, 하는. 그렇다면 그걸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로 써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면서 보는 이야기를 여기에 넣고 그걸 SF라고 우기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웃음) 수직주의, 수평주의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왔던 것 같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가 이 거대 빌딩 빈스토크의 ‘건물 안내도’를 그려서 따로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하철 노선도도 잘 못 그리는데 3차원 공간을 그리기는 좀 어렵고. (웃음) 누가 여기 산다, 그러면 이 사람은 어디쯤 살아야 하는가. 하는 걸 생각한다. 도시에서 중심지가 발생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될 것 같다. 도시에서 중심지가 발생하듯이 여기서도 땅값이 비싸고 싼 곳이 형성될 것이다. 가령, 상층은 운송문제 등이 있으므로 부촌일 것이고 하층은 좀 빡빡하고, 그 사이사이 못사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하는 식으로. 엘레베이터들을 가운데에다 공용으로 만들어놨는데 그게 모자라니까 건물 외곽쪽에 더 만들고 그게 도시의 고속도로 역할과 비슷해지자 고속도로 주변 땅값 오르듯이 그 엘레베이터 주변 집값 오르고. 혹은 창가쪽은 경관이 좋으니까 비싸고. 이런 식이다. -그 빈스토크 안에 당신의 거주지가 있다면 몇층이라고 상상하나. =창가쪽에 살았으면 좋겠다. 휴양지쪽에. 대한민국 영토로 치면 동해안쯤 될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겠네. (웃음) 674층 중에서 50층쯤 살고 있는 거 아닐까? 미세권력연구소가 30층쯤에 있으니까. -<타워>가 정치적인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여하튼 국내외 사회정치적인 일을 연상시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후기에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신 L씨의 건강을 기원한다”라고 썼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다 아는 그 분일 거라 추측한다. =그렇다. 그분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단편 중에 <바이센테니얼 챈슬러>라는 단편이 있다. 2007년 대선 끝난 다음에 쓴 글인데 어떤 주인공이 총통 선거 다음날 천재 과학자인 와이프에게 지금이 너무 살기 싫으니 5년쯤 동면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해서 나중에 깨어났는데 여전히 4년 중임이고, 다시 동면에 들어갔다가 깨보니 유신이고, 뭐 이런 식이다. 그분이 가끔 매스컴에서 한마디하실 때 보고 있으면 너무 기발하지 않나. 작가로서는 오랫동안 우리 세대가 겪은 게 너무 없어서 불리한 것 아닌가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분명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작가로서 말하자면 꼭 창작지원사업 받는 것 같다. (웃음) -<씨네21> 동료가 말하길 당신 소설은 “설정은 강력한데 정서적”이라고 하더라. =설정이 강력한가? 여하튼 나는 SF라고 생각하지 않고 썼는데 SF라고 규정된 사례다. 원래 SF 마니아들은 그런 소설을 많이 읽고 이 분야 대가들의 감성을 잘 아는데 나는 사실 잘 모른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이 푸는 방식으로 풀 수밖에 없다. -예컨대. =살면서 보고 느끼고 하는 이야기들. SF를 쓰기 위해 그 종류의 책을 열심히 읽는 게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되레 과학책을 읽거나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거나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공학적인 것으로만 채우면 메뉴얼만 나온다. 사람들 사는 데에서 많이 문제의식이나 해법을 끌어온다. -마지막에 실린 단편 <샤리아에 부합하는>의 후반부에 “이 나라 전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이 동네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어요”라고 쓰여 있다. 글 안에서 빈스토크가 바벨탑이 아니라고 누차 강조하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처음 구상단계에서는 비판적인 시선만을 염두에 두고 가늘고 높은 건물을 상상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곳으로 쓰자 했더니 건물이 뚱뚱해지더라. 빈스토크를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 나조차도 수직주의자들처럼 살고 있지만 수평방향에 대해 생각하고자 했다. 이 소설에 일종의 대안이 있다면 그건 생명, 삶이다. 그게 우리 사회에 대한 나의 대안과도 비슷하다. 처음에는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생명의 문제인 것 같다. 그걸 작가로서 말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이 죽으면 눈을 깜박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질문은 문명에 대한 것에서 시작했지만 풀기는 생활이라는 형태로 해본 거다. -책의 뒤편에 실린 부록은 독자들의 댓글을 반영한 것이라고. =<자연예찬>에서 K라는 작가가 북극곰이 해탈했다는 이야기를 썼다는 게 농담처럼 나오는데 그것에 대해서 짧게라도 덧붙여 써달라고 해서 썼고, P와의 인터뷰(P는 사람이 아니지만 <타워>를 관통하는 중요한 존재이며 권력장 연구의 핵심적 변수에 해당한다-편집자)는 독자 서비스고, 카페 빈스토킹 이야기는 내 생각에 꼭 들어가야 하는 부록이었던 것 같다. -빈스토크를 소재로 한 또 다른 이야기들이 남아 있을 것 같다. =30년 동안 써먹을 수도 있을 거다. 그중 몇 가지만 잘 써도 좋은 책이 나올 것 같긴 하다. 작가로서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내 작품을 보고 누군가 그도 뭔가 하고 싶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타워> 일러스트 해주신 ‘오기사’ 오영욱씨도 처음에는 바빠서 못하겠다고 했는데 책을 읽어보고 맡아주셨다. 그런 게 가장 좋다. 어떤 창작자의 마음속 불을 지피는 게 내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우문이겠지만 <타워>에 실린 작품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더 애착이 가는 걸 꼽을 수 있나. =<자연예찬>. 실은 읽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대개 여자들은 <타클라마칸 배달사고>, 남자들은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을 좋아한다. 어떤 경우에는 닉네임만 아는 사람이라도 <타클라마칸 배달사고>를 좋아한다고 하면 아 여자군, 하고 알게 된다. -다음 작품은. =어떤 행성에서 15만년 뒤에 일어나는 일이다. 장편인데 이게 설명이 쉽지 않다. 신이 있는데 그가 인공위성의 궤도를 돌고 있다. 그 행성에 사는 사람들이 거기 도달해야 하는 이야기다. 성직자가 나오는데 신이 궤도에 있으니까 성직자는 천문학자여야 하고….(듣고도 아직은 정말 잘 모르겠다-편집자) <타워> 들어가기 전에 절반 정도 썼고 8월까지는 끝낼 생각이다. -상투적이지만 영화지니까 이런 질문 하나 해보자. 어떤 영화 좋아하나. =인도영화! 우리나라에 왜 많이 안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인도대사관에서 상영회할 때면 가끔 간다. 그런데 인도영화와 인도 음식만 좋아하고 인도는 별로 안 좋아한다. 뭄바이에 갔었는데 이미지가 너무 안 좋더라. (웃음) -이 표현 쓴 기자가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니 가서 묻지는 말라고 그랬는데 그래도 물어보자. 요즘 유행하는 초식남이 분명할 거라고 하더라. (웃음) =맞다. 나 초식남이다. (웃음) 그런데 그게 뭐 나쁜가? -초식남에게는 애인보다 취미생활이 제일이라던데, 가장 열중하는 취미는.. =글을 자주 빨리 쓴다고 말했으니 당연히 취미생활은 글쓰기라고 해야 욕을 덜 먹을 것 같다. 한달에 한편씩 쓰니까 취미생활 열심히 하긴 하는 거다. -취미생활 하나 더 하면 어떨까… <씨네21>에 길티플레저라는 코너가 있는데. =좋다. 그런데 뭘 쓰지? 요즘 곧잘 인터뷰하다 보니 아닌 말도 하게 되더라, 이런 거? (웃음)

[오마이이슈] 방송 비즈니스

대단위 아파트 단지마다 인터넷 기반 텔레비전(IPTV) 무료사용 혜택이 즐비하다. 공정 거래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다. 거래시장도 만들어지기 전에 물량부터 퍼붓는 형국이니까. 신문 무가지 경품 제공 차원을 뛰어넘는다. 신문은 재미없지만 이 텔레비전은 재미있거든. 게다가 편리함이 중독된다. <결혼 못하는 남자>를 볼까, <선덕여왕>을 볼까 본방 사수를 고민할 필요없다. 편한 시간에 모니터가 아니라 브라운관을 통해 앞으로 뒤로 멈춰가며 볼 수 있다. 흥행영화도 며칠만 지나면 입장료의 절반도 안되는 돈으로 온 가족이 떠들면서 볼 수 있다. 지금은 콘텐츠를 지상파 등에서 제공받지만 조만간 자체 제작의 길까지 열리면 굿바이~ 마봉춘 굿바이~ 김봉수씨. 온 국민이 예능인으로 거듭나는 일만 남았다. 아참, 무료사용 기간 공짜로 퍼먹은 것까지 지갑 열어 몇배로 뱉어낼 일도 남았구나. 이번에 ‘조중동 방송법’과 함께 날치기 처리된 ‘IPTV법’은 방송 장악의 다음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대기업이나 신문, 뉴스통신사가 이 인터넷 기반 텔레비전의 콘텐츠 사업을 쥐락펴락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들은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 콘텐츠 사업을 겸영하거나 소유할 수 없었다. 외국자본에도 빗장이 풀렸다. 한마디로 돈 많은 놈들 다 뛰어들어 새로운 시장을 만들라는 말씀이다. 어휴. 등골 빼가는 과정이 뭐 이렇게 선진 글로벌하다냐. 가장 큰 혜택은 사양길에 놓인 거대 신문사(신문사주)들에 돌아간다. 바뀐 미디어 환경에도, 여론·정보 독점의 지위를 대대손손 세습할 길이 열렸다. 왕비호 말투대로 너희들 이거 아니었으면 대체 어쩔 뻔했니. 직권상정을 한 국회의장조차도 이번 방송법 등이 민생과는 관련없다고 했다. 국민의 60% 이상이 반대하는데도 밀어붙이며 내건 명분은 지상파 방송사들의 여론 독과점 체제를 허물겠다는 것이었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지만 비즈니스의 세계는 그런 거다. 이 비즈니스를 위해 여러 종류의 멍멍이 역할을 해준 국회의원들이 딱해 보일 정도였다. 살짝 아쉬운 마음도 든다. 머지않아 국회의 개싸움조차 욕할 일이 없어질지 모르니. 휙 채널 돌리면 그만. 아, 그럴 필요도 없겠구나. 시청률 안 나오면 뉴스도 없어질 테니.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의 파스칼 로지에 감독 인터뷰

-올해 본 가장 강렬하고 무서운 공포영화였다. 결과물에 대해서는 만족하는가. =내 자신이 이 영화에 대해서 만족스럽다거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건 터무니없고 바보 같은 짓이니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나,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감정을 느끼기 힘들다. 단지 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굉장히 진실되고 거짓없이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부천영화제에서 많은 관객과 이 영화로 소통을 하게 되어서 뜻깊은 자리였다. 관객의 질문이 많았는데, 그 점이 대단히 기쁘다. -<마터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영화 제작은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나. =프랑스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적은 예산으로 공포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제안이 왔다. 나는 그들이 평소 개방적인 사람들임을 알았기 때문에, 영화를 자유롭게 만들겠다는 판단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계획을 하고 진행하기보다는 직감적으로 이야기를 쓰면서 작업했다. <마터스>는 내면에 있는 어두운 면들을 한꺼번에 쏟아낼 기회였다. 그래서 순간순간의 느낌에 충실한 영화로 만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마 오랜 시간을 두고 계획을 짜고 영화를 진행했다면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할리우드 공포영화와는 스타일이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캐릭터를 소개하는 구성이나 묘사 방식에서 기존의 공포영화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어떤 점에 중점을 두었는가. =나는 프랑스 사람이기 때문에 내 영화가 주류 공포영화와 다른 것은 당연하다. 할리우드가 재미를 추구하는 대중적인 오락이라면 나는 개인적인 것을 추구하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할리우드 공포영화와는 다르다. <마터스>의 여성 캐릭터는 희생양이다. 그녀는 고통과 아픔을 매일매일 겪고 그것을 견딜 수 없기에 늘 패닉 상태다. 그리고 영화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순교자’로서의 느낌이 나오도록 묘사했다. -<마터스>는 두 가지 이야기로 진행된다.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한 루시의 이야기가 절반이고, 그녀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안나가 체험하는 것이 나머지 절반이다. 하나는 장르 클리셰이며, 뒤의 이야기는 참신했다. =루시가 주인공인 앞의 이야기는 기존의 공포영화들에서 흔히 나오는 것들을 몰아넣었다. 뒤에 안나가 주인공일 때는 내 자신이 창조한 새로운 것들로 채워넣으려고 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주인공 루시가 영화 시작 45분 지점에서 죽임을 당할 때, 당혹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지점에서 안나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관객이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로 끌고 싶었다.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겠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구성하고 영화를 찍었다. -루시는 탈출 과정에서 같은 고통을 겪는 한 여자를 외면하고 죄책감에 빠진다. 루시의 환상 속에서 그 여자는 뒤틀린 이미지로 계속 등장하는데, 그 기이한 이미지가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루시를 괴롭히는 여자의 뒤틀린 몸은 그녀의 죄책감을 형상화한 것이다. 루시는 도움을 줄 수도 있었지만, 외면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벗어날 수 없는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다. 육체가 꼬이고 뒤틀린 것은 루시의 트라우마다. 그 형상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단순하게 생각을 했고, 상상을 통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억눌린 상처는 영화의 한 주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판단했다. -루시와 안나 캐릭터는 연기를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 같다. 이런 영화를 계속 촬영하면서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겠다. =그렇다. <마터스>를 찍는 것은 악몽 같은 경험이었다. 촬영현장은 조금도 즐겁지 않았고 너무 지치고 힘이 들었다. 여배우들은 촬영 전에 리허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촬영에 들어갈 때는 호흡이 맞춰진 상태여서 역할을 잘 소화했다. 그녀들은 내가 표현을 하려는 의도를 잘 따라와주었다. 연기에 대한 자신감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순조롭게 촬영했던 것 같다.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는 연기를 했지만 배우들이 탈진한 일은 없었다. 단지 촬영을 담당한 스탭 가운데 한명이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면서 피범벅이 된 루시를 지켜보다 실신을 해버렸다. 그 피들이 너무 사실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배우들이 별일이 없었다니 놀랍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은 탈진을 한다. 시각적인 것보다 정서적인 쇼크가 워낙 강한 탓이다. 프랑스에서 개봉 당시 많은 논란을 일으켰겠다. =물론이다. 가정과 관련한 사회단체에서 개봉을 저지하려고 했다. 그 일 때문에 법정 소송까지 갔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승소했다. 법정에서 이기지 못했으면 정상적으로 개봉이 불가능하다. <마터스>는 프랑스 공포영화 최초로 18살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18살 이상 등급을 받는 영화는 ‘포르노’밖에 없다. 영화는 감독이 의도한 온전한 상태로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법이다. 법정 투쟁 끝에 16살 이상 등급을 받았다. 심의는 영화를 상영하는 나라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완전한 상태로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당연한 일이다. -안나의 고문 과정은 어떻게 구상을 했나? <호스텔> <쏘우>는 영화적인 느낌이 강했지만, <마터스>는 실제 체험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두 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멋지게 보이거나 흥미를 유발하는 장면 구성은 무조건 피하려고 했다. <마터스>의 고문 행위는 평범하다. 그래서 관객으로 하여금 슬픈 느낌이 들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호스텔>처럼 도구들을 사용한 고문을 배제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관객이 안나와 함께 고문을 받는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것이 그 장면의 핵심이다. 덧붙이자면 <호스텔>의 경우 공포영화라는 장르로서 내가 좋게 본 영화이다. 다만 <호스텔>의 연출은 내가 선호하는 취향은 아니다. -영화의 절반을 ‘고문’ 행위가 채우지만, 나는 그것이 고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숭고한 의식이기도 했다. 종교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예수가 받는 고행의 길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터스>는 고통에 대한 영화이다. 고문과 고통은 다른 의미라고 생각한다. 나의 관점은 안나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절대로 고문자들에게 동조하지 않았다. 안나가 고문을 받으면서 고통을 겪는데, 그 과정에서 그녀는 현재의 세계를 초월한다. 영화 컨셉 자체가 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마터스>를 통해서 신이 떠나고 없는 사회를 그리고자 했다. 믿음이 끝나버린 사회, 그건 지금 현실이기도 하고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안나를 고문하는 자들은 죽은 뒤의 세계를 보고자 한다. 그들 스스로가 신을 만드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공포영화란 어떤 것인가. =집착했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공포영화를 좋아했다. 영화 장르 중에서 인생을 가장 거짓없이 표현할 장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죽고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느끼는 것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표현할 만한 훌륭한 매개체가 공포영화다. 다시 말하자면 공포영화는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조건들이 얼마나 흉측하고 괴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는지를 거짓없이 드러낸다. 그럼 점에서 존 카펜터나 로만 폴란스키 같은 감독들이 개인적 감정들을 훌륭하게 표현했던 감독이라고 본다. 나는 세상이 너무나 좆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분 좋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내 자신을 배신하는 행위로 본다. 그건 정말 역겨운 일이다.

<퍼블릭 에너미> 대도적이 죽여준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가이자 동시에 대중영화의 단련된 장인인 마이클 만이 매력적인 갱스터영화 <퍼블릭 에너미>를 만들었다. 마이클 만이 대공황 시대의 갱단을 주인공으로 갱스터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쏟을 만하다. 그의 영화세계 안에서 <퍼블릭 에너미>는 과연 어떤 자리에 놓인 것일까. 그가 역점을 둔 건 무엇일까. <퍼블릭 에너미>의 매력을 탐구해본다. 더불어 오랜만에 찾아온 갱스터영화를 계기로 1930년대를 풍미한 실제 대도적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갱스터영화의 지칠 줄 모르는 매혹의 계보를 정리해본다. 잊을 수 없는 두 갱스터 스타 제임스 캐그니와 에드워드 G. 로빈슨의 배우론까지 읽는다면 당신은 이미 갱스터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W. S. 반다이크가 연출하고 클라크 게이블이 출연한 1934년작 갱스터영화 <맨해튼 멜로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 블래키(클라크 게이블)가 사형대로 향하며 주지사인 그의 동생(윌리엄 파웰)에게 쓸쓸하고도 매력적인 농담을 던지는 것으로 끝난다. 블래키는 자신의 사형집행을 명령하고 나서 고통스러워하는 주지사 동생에게 괜찮으니 어서 사형장으로 가자고 스스로 재촉한다. 클라크 게이블이 분한 블래키라는 이 역할은 영화 속에서 그가 저지른 범죄나 패배에도 어딘가 시대의 법 집행을 향해 당당하게 대응하는 면모가 배어 있다. <맨해튼 멜로드라마>의 이 주인공이 1930년대 초 당대를 휩쓸던 전설의 은행강도 존 딜린저에게서 큰 영감을 얻었다는 지적이 많은데 마이클 만 역시 그렇게 믿고 있다. “존 딜린저는 굉장한 민속 영웅이 됐고 당시 할리우드는 그들의 캐릭터화에 딜린저라는 인물의 어떤 면모를 각인해 넣기 시작했다. <맨해튼 멜로드라마>는 ‘딜린저식’이었다! 이건 정말 기이한 고리다. 그가 영화를 베끼자 할리우드는 영화를 베낀 그를 베꼈던 것이다.” 미국의 대공황기란 현실의 갱스터와 할리우드의 갱스터영화가 서로를 베끼는 데 매혹되어 있던 때였다. 갱은 영화를 베끼고, 영화는 갱을 베끼고 마이클 만의 새 영화 <퍼블릭 에너미>에는 존 딜린저가 극장에 앉아 <맨해튼 멜로드라마>를 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1934년 7월22일 바이오그래피 극장. 갱스터영화를 즐겨보고 더군다나 클라크 게이블을 좋아했던 존 딜린저는 쫓기는 위협 속에서도 극장을 찾아 <맨해튼 멜로드라마>를 보았고 극장 문을 나서자 수사국 요원들의 총에 사살됐다. 그로써 존 딜린저라는 갱스터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한 일은 갱스터영화를 본 것이며 더구나 자신을 모델로 한 작품을 본 것이 됐다. 영화 속 블래키의 죽음을 잔영으로 안고 극장을 빠져나오던 그때 존 딜린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단 몇분 안에 은행을 털지만 그곳에 있는 시민의 돈은 빼앗지 않고 여성 인질 앞에서는 절대로 욕설을 쓰지 않으며 붙잡혀서 감옥에 들어갈 처지에도 호방하게 검사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었던 대공황기의 대도. 어쩌면 영화를 현실로 착각한 사내. 마이클 만이 미치광이 같은 삶을 산 공황기 대도적의 삶을 놓치지 않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퍼블릭 에너미>는 존 딜린저의 실화를 조사하여 글로 써낸 브라이언 버로의 논픽션 <공공의 적들: 미국의 최대 범죄증가와 FBI의 탄생>을 원작으로 삼았다. 마이클 만에게 오기 전 이 논픽션에 먼저 관심을 보인 건 HBO였다. 책이 출판되기도 전이었지만 버로의 리서치를 토대로 텔레비전 시리즈를 완성하자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다가 끝내 실패했다. 마이클 만은 <퍼블릭 에너미>를 만들기 전 이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주인공으로 하여 1930년대 말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위해 일하던 사립탐정의 이야기를 구상했다(<퍼블릭 에너미> 역시 주인공으로 조니 뎁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먼저 시나리오가 갔다는 말이 있지만 마이클 만은 거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는다). 당대의 또 다른 열차 및 은행 강도 앨빈 카피스에 관해 오래전 각본을 쓴 적도 있다. 또 1970년대부터 존 딜린저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런 그가 버로의 원작을 놓칠 리 없었다. 게다가 버로가 마이클 만의 제안을 듣고 가장 끌렸던 건 존 딜린저의 러브스토리가 영화의 한축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범죄의 시대, 전설의 갱단, 무법의 반영웅, 그의 사랑, 그의 파멸의 이야기가 마이클 만 식으로 완성된 것이다. 반영웅적 행위에 대한 우아한 환상 영화는 존 딜린저(조니 뎁)가 무법천지로 은행을 털다가 쇠락해가는 흥망성쇠의 몇 개월을 보여준다. 문득 클럽에서 코트를 받아주는 아가씨 빌리 프리쳇(마리온 코티아르)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FBI의 전신인 수사국(Bureau of Investigation)에 “공공의 적 1호”로 지목된 뒤 쫓긴다. 국장 에드거 후버(빌리 크루덥)는 냉철한 요원 멜빈 퍼비스(크리스천 베일)에게 존 딜린저 사건을 전담시킨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은신처를 옮겨다니며 범죄를 저지르던 존 딜린저 일당은 조금씩 수사의 압박을 느끼며 동료를 잃고 궁지에 몰린다. 조니 뎁, 마리온 코티아르,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는 각자의 명성에 걸맞게 흠잡을 데가 없다. 조니 뎁은 외양뿐 아니라 연기에서도 할리우드 갱스터 주인공의 거칠면서도 중후한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마리온 코티아르는 <라비앙 로즈>에서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하층민 여성의 단단한 면모를 완성해낸다. 크리스천 베일은 어쩌면 <배트맨>보다 멜빈 퍼비스(만화가 체스터 굴드의 주인공 딕 트레이시는 이 인물에게서 영감을 얻어 창조됐다)에 더 어울려 보일 정도다. 정교한 구축과 훤칠한 이음으로 빛이 나는 장면들도 많다. 오티스 테일러의 노래 <텐 밀리언 슬레이브>가 울리며 멜빈 퍼비스가 범죄자 프리티 보이를 사살하는 장면, 같은 음악이 흐르며 존 딜린저 일당이 은행 안으로 들어가 총을 뽑아들고 은행을 터는 장면은 말 그대로 활극적인 위용을 뽐낸다. 혹은 자신을 잡으려는 경찰국 안으로 들어가서는 라디오로 야구중계를 듣는 경찰관들을 향해 “지금 몇 대 몇이냐”고 점수를 묻는 장면에서는 음악과 연기와 카메라의 움직이는 속도들이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려 어떤 반영웅적 행위에 대한 우아한 환상의 쾌감을 실어준다. 그런데 의외로(?) <퍼블릭 에너미>의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존 딜린저라는 악당이 있었고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으며 그를 시대의 적으로 삼아 처단하려는 정부의 집행이 있었고 그는 결국 패배했다는 진술 이외에 더 덧붙일 만한 것이 실은 없다. 아니 마이클 만의 영화는 처음부터 복잡한 이야기에 기대오지 않았으며 극단의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심리묘사에 많은 걸 걸어왔다. 그의 영화 중에서 그나마 가장 탄탄한 서사 구조를 갖췄다고 할 만한 <맨 헌터>나 <히트>, <콜래트럴>에서조차 대개 독보적인 장면은 그것의 서사화보다 심리적 긴장감이 돌출되는 순간들이다(그의 영화에서 종종 아주 긴 대화신이 그 자체로 긴장을 자아낸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으면 안된다). 마이클 만이 <퍼블릭 에너미>에서 좀더 주목하는 것이 있다면, 혹은 좀 더 치중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 점인 것 같다. 그의 관심은 파멸하는 남자들의 심리를 어떻게 더 구체적으로 다룰 것인가, 더 정확히 말하면 심리를 어떻게 육체를 통해 묘사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그게 <퍼블릭 에너미>의 새로운 성취점이다. 지금 그곳에 ‘입회해 있는 카메라’ “갱스터영화의 궁극적인 갈등은 갱스터와 그의 환경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갱스터와 경찰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갈등은 갱스터 자신 내부 속의 모순되는 충동에 있다. 이런 내적인 갈등- 개인적인 성공과 공동선 사이, 남자의 이기성과 공동체의 본능 사이, 야만성과 이성적인 윤리 사이- 은 사회에 투사된다”고 영화사가 토머스 샤츠는 말한 적이 있지만 사실 이 말은 마틴 스코시즈의 많은 갱스터영화들에도 충분히 적용된다. <좋은 친구들>이나 <카지노>는 토머스 샤츠의 말의 영화화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혹은 마이클 만의 몇몇 영화는 그 말에 충분히 화답한다. 하지만 <퍼블릭 에너미>는 개인 내부의 비틀린 심리적 좌충우돌을 다루되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 짓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카메라에 담는가, 하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때 데뷔작 <도적>에서는 거친 욕망으로 엿보였고 <히트>에서는 잘 짜인 이야기와 어울렸고 <알리> <인사이더>에서는 심리극과 어우러졌고 디지털을 만난 뒤 <콜래트럴>과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분명해진 그것, 좀더 가까이 인물들의 그 자리에 있으려는 카메라의 욕망이 <퍼블릭 에너미>에서 정점에 이른다. 디지털로 갱스터의 심리극을 만든다고 할 때 마이클 만이 영화 속 육체와 사물들을 다루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한눈에 드러난다. 이를테면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편집장 닉 제임스는 <퍼블릭 에너미>를 가리켜 “디지털 베리테”라는 표현을 쓰며 “심지어 주요 주인공들의 심리상태는 만의 기준을 따라 훨씬 감소됐다”고 지적하는데, 그만큼 육체의 묘사쪽으로 더 과감하게 기울었다는 말로 들어도 좋을 것이다. <퍼블릭 에너미>는 시대적 환경을 거의 끌어들이지 않고 오로지 주인공이 처한 그 자리의 환경에 집중한다. 마이클 만은 그러므로 우리의 일반적인 기대를 일부분 저버린다. 미국의 1930년대를 배경으로 갱스터무비가 만들어진다고 할 때, 그 시대를 풍미한 은행 갱단의 삶이라고 할 때 우리에게는 고전적으로 풍요로운 비극의 서사시를 보고 싶어 하는 기대가 있다. 그걸 보는 쾌감을 어떻게 마다할까. 마이클 만은 그런데 <퍼블릭 에너미>에서 확실히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시선을 초대하는 것 같다. 지금 그곳에 ‘입회해 있는 카메라’. 이 점에 그는 온 힘을 쏟는다.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 카메라는 시대의 전반을 말할 만큼 전지적이지 않으며 전지적이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더 구체적이고 육체적이며 신랄하다. 올해 가장 중요한 영화일지도… “나는 도덕적인 관점에서 사태를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가치있는 무언가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존 딜린저)를 조종한 심리, 특정한 시대의 심리에 관심이 있었다.” 마이클 만의 이 말은 그가 인물의 심리묘사에 여전히 매진함을 말해준다. 그러나 동시에 “1930년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 것”을 추구한다는 말은 <퍼블릭 에너미>를 만든 그의 방식의 적극적인 변호가 될 것이다. 도덕을 거부하고 심리를 그리되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는 그들의 육체 옆에 카메라가 있음으로써 심리가 드러나게 하는 방식. 그것에의 재현이 아니라 ‘체화’에 매진하는 디지털-갱스터영화. 이 때문에 <퍼블릭 에너미>는 더할 나위 없이 건조한 갱스터영화로 기록될지 모르겠다. 다만 그 매혹의 건조함을 근거로 말한다면, <퍼블릭 에너미>를 올해의 영화 중 가장 중요한 한편으로 예고한다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성기완] 언어는 연, 음악은 후렴구

토요일 점심 무렵 성기완에게 인터뷰 요청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지산밸리록페스티벌에 가 있었고, 주변이 무척 시끄러워 통화가 힘들었다. 비로소 조용한 통화가 가능했던 건 월요일에서였다. 페스티벌에 3일 내내 머무르는 동안 어떤 팀이 흥미로웠는지 물었을 때, 그는 패티 스미스(“너무 멋있는 할머니라서, 누나라고 불러드려야 한다”)와 베이스먼트 잭스(“카니발처럼 잘 준비된 패키지 쇼를 선보였다. 사운드도 다른 팀보다 확연히 좋았고”)를 꼽았다. 1970년대부터 활동했던 펑크 신의 대모와 2004년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댄스 앨범상을 수상했던 일렉트로니카 그룹을 함께 즐기는 그의 취향이 새삼스러웠다. 성기완은 시인이자 번역자이며 홍대 인디 뮤직 신의 대표주자 ‘3호선 버터플라이’(이하 3호선)의 멤버다. <싱글즈> <플라이 대디> 등의 영화음악을 맡았고, 2005년부터 올해 초까지 EBS FM 프로그램 <세계음악기행>(이하 세음행)을 진행했다. 현재는 음악 관련 강의, 홍대 앞 최고의 술집 ‘곱창전골’의 DJ, 프리랜서 글쟁이 등의 부가 활동도 겸한다. 그중에서도 최근 저서 <홍대 앞 새벽 세 시>는 홍대 앞 10년간의 풍경을, 그 안에 담긴 수많은 군상의 정서를 느슨하고 분방하게 펼친 독특한 에세이집이다. 10년 전의 홍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슴이 먹먹해지거나 다시금 뜨거워질 수밖에 없을 생생한 기록물을 읽다가, 대체 이 사람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어떻게 가능할까 궁금해졌다. -새삼스럽게 뭐가 본업이냐고 묻는 건 무의미한 질문 같다. 대신 어떤 시점에 특정한 매체를 택하는 이유를 묻는 쪽이 더 맞을 듯하다. =많아 보여도 정리해보면 별것 없다. 내가 관심 갖는 두 분야인 문학과 음악이 다양한 매체에 적용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집 <당신의 텍스트>와 솔로 앨범 <<당신의 노래>>는 같은 시기 ‘한쌍’으로 등장했다. 특정한 테마를 언어와 사운드로 분리한 이유가 뭔가. =‘당신’이라는 테마가 어느 순간엔 장황한 시로, 어느 순간엔 단순한 사랑 노래로 표현될 수 있다. 서로 소용돌이처럼 휘돌면서 감싸는 연(verse)과 후렴구(chorus)의 관계라고 할까. 이러저러했어, 그래서 사랑한단 얘기야, 이러저러했어, 그래서 미안하단 얘기야. 일단 전달해야 할 이야기를 연에서 건넨 다음, 후렴구에선 그 내용의 핵심이나 더 아래쪽의 단순한 마음을 이야기한다. 전자가 시집이고, 후자가 앨범이다. 1절에서 2절로 그냥 넘어가는 것도 아쉽고, 후렴구만 공허하게 외치는 것도 아쉬워서 같이 한쌍으로 발표했다. -요즘도 연과 후렴구의 관계를 동등하게 유지하는 편인가. =점점 후렴구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단순하고 무의미한 무언가가 반복되면서 중심을 형성하고, 그 따뜻하고 물렁한 중심으로 뭔가 슉 들어올 수 있는 과정 자체가 후렴구의 힘이 아닐까 싶다. <문학과사회> 가을호에 <ㄹ별곡>이라는 시를 썼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글 자모가 ㄹ이다. 돌돌 굴러가고, 감기도 하고, ‘로큰롤’이라는 단어에도 많이 들어가고. (웃음) 시나 노래의 발음상에 ㄹ이 여왕벌 역할을 하는 것 같다. <ㄹ별곡>은 ㄹ을 사용한 단어들을 죽 따와서 ‘리랏다’로 끝나는, 전체가 거의 무의미한 후렴구인 시다. 이젠 글 역시 후렴구적으로 쓰고 싶다. -<홍대 앞 새벽 세 시>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90년대 홍대 앞’에 관한 좋은 입문서다. 이에 따르면 ‘홍대 앞’은 홍대 미대쪽으로부터 시작하여 90년대 중반 인디음악의 발흥과 함께 대중화되었다고 정리할 만 하다. =예를 들어 미대 출신이자 ‘황신혜밴드’로 잘 알려진 김형태씨가 운영하던 클럽 ‘곰팡이’는, 당시의 전위적인 극과 음악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공간이었다. 지금은 엄청 유명해진 미술가 이동기씨가 ‘곰팡이’ 벽에 스파이더맨 그림도 그렸고. 그렇게 병존하던 다른 장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스스로를 퍽 터뜨리는 과정에서 파편들이 튀었다. 그 파편들이 서로 교류했고, 안에 있던 진액들이 점점 스며드는 데까지 꼭 10년이 걸렸다.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을 배출한 클럽 ‘드럭’도 처음엔 레게 바였다. 그런데 희한한 애들이 자꾸 드나들면서 공간의 성격을 바꾸었다. 미술에서 말하는 ‘의도적인 점거’(squat)처럼 특정 세대가 그 공간을, 말하자면 점거한 것이다. 보통은 주인들이 침입자들에게 나가라고 할 텐데, 여기선 받아들일 준비가 됐던 것 같다. 90년대 중반 <말달리자>가 그 세대의 송가가 되고, 그애들이 이쪽 동네의 주인으로 활개치고 다니면서 더 심화되었다. 결정적으로 2002년 월드컵 이후 홍대 앞은 완전히 대중화되었다. -지금도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싶어 하고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홍대 앞에 많지만, 90년대 중반만큼 폭발력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욕구불만의 상태는 팽창했는데, 그때처럼 자연스럽게 터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글쎄, 구심점이 생긴다면 이젠 다른 데서 다른 느낌으로 생기겠지. 일례로 젊은 미술가들은 문래동 빈 공장지대에 모여 흥미로운 작업을 하는 중이다. 그것도 힘있게 터지려는 하나의 싹 아닐까. 홍대 앞은 2002년 이후로 다른 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 예전엔 비일상적이었고, ‘우리는 달라’라고 주장했다. 이젠 ‘장기하와 얼굴들’의 인기만 봐도 그런 모습을 낯설고 웃기게 보기보다 ‘내 안에 존재하는 어떤 부분을 여기서 공유할 수 있구나’라고 받아들인다. 예전보다 의미는 덜 강렬해졌을지 몰라도 일상화됐다고 해야 할까. 저쪽에서 터질 것 같으니까 홍대는 죽었구나라는 생각보다 ‘거기도 있고 여기도 있고 그렇게 산발적이면서 비중심적으로 흘러간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미디어법이 통과되면서 더 심각해질 텐데, 상업적인 대중매체의 압도적인 트렌드에 저항하는 조그만 거점들이라고 할까, 그게 형성되는 과정인 것 같다. 또 다른 초기 단계다. 아직 뭘 좀 더 만들어야 한다. -홍대쪽 토박이로서 혹시 그런 현상에 대한 상실감은 없나. 예전의 홍대를 그리워한달지. =다른 건 몰라도 아직 음악은 홍대 앞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단순히 소비적인 차원을 떠나, 뭔가 행해지고 있고 실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만한 곳은 여기밖에 없다. 그러니까 아직 상실감을 느낄 때가 아니다. (웃음) 90년대 중반의 모든 움직임에는 뭔가 알리려는 목적이 있었다. 우리끼리만 놀려고 한 건 아니었다. 지금의 홍대는 그렇게 알려진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재처리 방법들이 나와야 한다. 예전보다 밍밍해졌다면, 다시 진한 걸 탄다든가 끓인다든가. 상실감이 아주 없다고, 지치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홍대 앞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예전엔 주차장 거리에 몰렸던 공간들이 산울림소극장쪽이나 신촌, 연남동까지 넓어진다. 이 공간 자체도 변화한다는 걸 다른 국면으로 이해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지난해에 <라듸오 데이즈> 음악을 담당했다. 한때 쏟아져 나왔던 30년대 배경의 영화나 드라마들과 어떤 차별점을 두려고 했나.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음악은 두 가지 방향으로 가게 된다. 현대적인 요새 음악을 써서 “그때는 쟤들도 우리랑 똑같이 연애하고 음모를 펼치는구나”라고 받아들이게 하는 쪽이 있다. 반대로 철저하게 그 시대 음악을 쓰면서 “너희들도 이리 와봐”라고 권하는 쪽이 있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언터처블>은 신시사이저를 사용하여 80년대 트렌드 뮤직을 수용했지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카튼클럽>은 완벽한 30년대 음악을 썼다. 난 <라듸오 데이즈>에서 후자로 가보려 했다. 신경을 나름대로 많이 썼고, 지켜내고자 했던 일관성을 비교적 잘 가져갈 수 있어서 만족한다. -구체적으로 30년대 음악의 어떤 점에 집중했던 건가. =개인적으로 30년대가 한국 대중문화의 첫 번째 폭발이라고 본다. 이상이나 박태준 같은 작가가 배출됐고, 스윙이나 탱고처럼 최초의 월드 와이드 트렌디 뮤직이 쏟아져 들어왔다. 30년대 음악인들은 그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굉장한 음악들을 만들어냈다. 예전까지 민요를 만들던 사람들이 스윙을 처음 접했을 때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 더군다나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 ‘내 것’으로 소화했다는 게 대단하다. 음악적인 포스도 엄청나고. 대표적인 분이 김해송이다. 그분의 노래 <청춘계급>을 <라듸오 데이즈>에서도 리메이크했다. -사실 이난영 노래를 찾아 듣다가 김해송이 이난영의 남편이자 그녀에게 수많은 노래를 선사한 작곡가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난영 하면 딱 떠오르는 노래 <목포의 눈물>과는 완전히 다르더라. =그러니까! 30년대 음악은 뽕짝스럽지 않다. 일본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뽕짝이 대중화된 건 오히려 해방 이후부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김해송에 대해 뭔가 해보고 싶다. 그분의 전기를 소설 형식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구상 중이다. 거의 텔레파시 수준, 빙의 수준으로라도 시도해보고 있다. (웃음) -O.S.T 앨범은 독립적으로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이런 30년대 컨셉의 음악을 따로 기획 앨범으로 만들면 어떨까. =안 그래도 한복밴드를 결성해서 빅밴드 형식으로 공연해보고 싶다. 지금의 인디 뮤직 넘버를 스탠더드 풍으로 편곡해서 패키지 쇼를 펼치는 거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인원과 악기를 많이 잡아먹는 작업이라 여의치가 않은데… 심지어 꿈까지 꿨다. 깨고 나니 슬퍼서 뜬눈으로 누워 공상을 오래도록 했다. (웃음) 사실 올해는 ‘3호선’ 10주년이라서 그쪽에 집중하느라 30년대 커버밴드는 미루고 있다. -정말! 1999년에 결성됐으니까. 3집은 2004년에 나왔는데 혹시 신보를 낼 계획이 있나. =어느 날 꿈에서 어떤 노래를 만들었는데 괜찮더라고. 깨자마자 휴대폰에 대충 그 테마를 녹음한 다음 멜로디를 붙였다. EP라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밴드 멤버들과 열심히 작업 중이다. 9, 10월경에 나올 것이다. 요즘 인디 뮤직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산뜻한 ‘샤방샤방’으로 많이들 가는데, 우리 EP에선 ‘그런 거 아니야, 한번 더 구질구질해져보자’라고 말할 거다. ‘3호선’의 예전 앨범들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이게 정말 10년 전에 나온 음악 맞아?”라고들 하더라. 나도 다시 들어보니 민망하지만 요새 애들보다 더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 흠흠. (웃음) 우리 색깔을 죽이지 않고 유지하더라도 괜찮다는 자신감을 얻었달까. -EBS 라디오에서 <세음행> DJ를 오랫동안 맡았다. =그동안 월드뮤직이라고 하면 너무 비슷비슷했다. 라틴이나 이탈리아 계열, 혹은 각 국가의 민속음악을 팝음악화한 것 위주로 소개했다. 그것만으로는 미흡하다. 젊은 친구들은 록이나 힙합처럼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된 문법들을 수용하면서 자기들 로컬만의 색깔을 내잖아. 소말리아 사태가 터진 날에는 방송에서 소말리아 힙합을 트는 식으로, 그렇게 일반적인 월드뮤직에서 빠진 음악들을 찾아 새롭게 채워넣는 일이 재밌었다. 한국의 인디 뮤직, 아시아 록도 그 연장선상에서 함께 소개했다. 특히 피노이 록(Pinoy Rock)은 발견이었다. 필리핀의 60, 70년대 록을 들어보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한국의 뺨을 열대씩 때려도 될 정도다. (웃음) 갑작스레 하차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4년 동안 꾸준히 쌓아온 그 데이터베이스가 현재 프로그램에서 유지되거나 수용되지 않는 것 같다. 뭐 요즘 시대엔 어느 문화판에나 늘 있는 일이지만. 안 그래도 <세음행>의 안재필 작가와 합동 블로그 이야기도 나누었다. 개인적으로 지난해에 두달 동안 아프리카를 여행했는데, 그때 가져온 음악과 느낌들을 나만 갖고 있기가 아깝다.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업데이트를 하면 어떨까…. -8월부터 한예종 자유예술캠프에서도 강의한다고 들었다. =예전에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강연했던 ‘크리에이티브 리스닝’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갖고 갈 예정이다. 예를 들어 산울림 노래에서 폴 베를렌의 시를 떠올리고 그러면서 고려가요로 넘어가는 게 가능하다. 우리 모두 음악을 듣더라도 사실 소리만 듣는 게 아니라 다른 마음들을 듣는 거잖아. 그런 통합적인 느낌이 참 중요한데 별로 얘기되는 것 같지 않다. -이 일들을 한꺼번에 하다니… 설마 올해 준비하는 다른 일들이 더 있는 건가! =아프리카 여행기를 가을쯤 책으로 묶는다. 시집도 한권 더 낼 예정이고, 연말까지 성장소설을 한편 쓰기로 했다. 밴드를 하는 10대 후반 청춘의 이야기인데, 배경은 1996년으로 잡되 직접적으로 홍대 앞을 거명하진 않으려고. 사실 특정 공간을 형상화하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24시간 파티 피플>을 봐도, 맨체스터 클럽신을 영화화하는 데 20년이 걸렸잖나. 대신 당시 그곳 사람들의 마음을 드러내는 청춘소설 형식은 가능할 것 같다. 근데 지금까지 한 열줄 썼나…. (웃음) 그리고 EP 작업까지. 어휴, 사람이 이 네 가지 이상 어떻게 더 하겠나. (웃음)

새로운 행성 판도라로, 떠날 준비 됐습니까?

지난 7월23일 샌디에이고 컨벤션센터에서는 어느덧 40주년을 자랑하는 코믹콘이 열렸다. 코믹콘은 단순히 젊은 코믹북 팬들만이 아니라 40년 전 최초의 코믹콘에 참가했을 당시의 10대들, 이제는 나이든 팬들 역시 한데 모이는 의미있는 장이다. 손을 꼭 잡고 전시장 내를 돌아다니는 천진난만한 표정의 노부부에서부터 그룹 코스프레를 한 심각한 표정의 10대 아이들, 벌써 지쳐버린 어린 아들을 달래며 상기된 표정으로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젊은 아버지, 그리고 여느 관객이나 다름없는 표정으로 슬렁슬렁 돌아다니며 사진기를 눌러대며 구경하는 텔레비젼 시리즈의 익숙한 얼굴을 이곳저곳에서 마주치는 곳이 올해의 코믹콘이었다. 제임스 카메론이 14년간 꿈꿔온… 코믹콘 첫날 오후 3시, 6천여명 규모의 인원을 수용하는 H홀. <타이타닉> 이후 처음으로 장편영화를 들고 나온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25분 분량의 <아바타> 클립을 전세계 최초로 팬들 앞에 공개했다. 새벽부터 기다렸지만 밖에는 미처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뒤로한 채, 사람들이 가득 찬 H홀 속으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성큼성큼 들어왔다. 캐나다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스타트렉>을 보면서 우주를 꿈꾸어왔다던 14살 소년의 마음 그대로 그가 14년간을 꿈꾸고 4년 동안 만든 3D영화 <아바타>가 공개되기 직전, 카메론은 6천명의 군중 앞에서 외쳤다. “여러분, 그럼 새로운 행성 판도라로 떠날 준비가 되었나요?” <아바타>는 인류가 발견해낸 새로운 행성 판도라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미래 액션서사극이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판도라에는 파란 피부, 3m가 넘는 신장, 뾰족한 귀, 긴 꼬리를 가진 나비라는 종족이 산다.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인간의 몸은 견뎌낼 수 없는 환경의 행성 판도라. 이 행성의 무한한 자원에 접근하기 위해 인간은 나비족과 같은 육체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한 아바타라는 하이브리드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공개된 25분 클립에서는 거대한 밀림 속 움직이는 식물들, 마치 물속에서 부유하듯 판도라의 공기를 가로지르는 신비로운 생물들, 원시시대 공룡을 닮은 위협적인 생물들이 눈앞에서 끊임없이 펼쳐진다. 지구에서는 휠체어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하반신 불구의 몸이지만 아바타의 육체를 통해 판도라에 발을 내딛게 된 제이크(샘 워딩턴)에게는 이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들떠서 판도라의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는 제이크를 향해 활시위를 겨누는 나비족 공주 네티리(조이 샐다나)가 등장한다. 그녀의 팽팽한 활시위 위로 꽃가루가 신비롭게 사뿐히 내려앉고, 그 모습에 네티리는 조용히 활시위를 내리고 만다. 조용했지만 가장 인상깊은 장면이었다. 그러고 나면 아름답고 신화적인 판도라의 자연 속에서 신화 속 영웅처럼 제이크가 사나운 익룡을 길들여 하늘을 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해 25분짜리 영상이 끝난다. 지구 및 인간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기존의 실사영화 방식으로 촬영되었고, 판도라와 그 속에서 숨쉬는 생명체는 말 그대로 제작진에 의해 가상의 공간에서 창조되었다. 아바타와 나비족은 배우들의 ‘퍼포먼스 캡처’를 통해 살아 움직이게 되었고, 3차원 공간의 환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스테레오 카메라 시스템이 도입되어 3D영상이 완성되었다. 이 새로운 세계의 언어와 억양을 창조하기 위해서 전문 언어학자가 동원되었으며 판도라의 지리·역사·문화 역시 빠짐없이 실재처럼 창조되었다.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고픈 바람, 바람, 바람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뒤 관객과의 문답에서 제임스 카메론은 판도라는 미지, 미개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잊어버렸던 우리의 또 다른 영적인 모습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는 10여년 전 디지털 도메인의 수장으로서 기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자 하는 욕심으로 <아바타>를 시작했지만, 오랫동안 힘겹게 달려와 마침내 도달한 곳은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같은 낭만적인 서사시였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타이타닉>의 프로듀서이기도 했던 <아바타>의 프로듀서 존 랜도, 생물학자이자 아바타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그레이스 어거스틴 박사를 맡은 시고니 위버, 인간의 입장에서 판도라를 지배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쿼리치 대령를 맡은 스티븐 랭, 네티리 역의 조이 샐다나가 이어지는 패널에 참석해 팬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샘 워딩턴은 촬영 때문에 영상 인사로 대신했다. 소년은 조그마한 마을을 벗어나고 싶었고, 생물학자는 황폐해진 지구를 벗어나고 싶었고, 휠체어 위 군인은 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벗어나서 자신과는 다른 세계를 만나고 싶고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아바타>에서 그들 모두는 그 꿈을 이룬다. <아바타> 밖의 세계에서도 그 바람은 여전한 것 같다.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고픈 그 바람은 실시간으로 트위트를 하며 감상을 올리는 옆사람의 모습에서도 여실히 느껴졌다.

[나의 친구 그의 영화] 이렇게 사실적인 개소리가 있나

이름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계속하는 말이지만, 2005년에 서울에서 국제문학포럼이 열린 적이 있었다. 프로그램에 실린 방문작가 리스트를 보니까 오에 겐자부로, 오르한 파묵, 게리 스나이더 같은 이름이 보였다. 어릴 때부터 소설만 읽던 사람에게 그건 세계적인 밴드가 총출동하는 록 페스티벌이나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작가들은 모두 한 사람이라는 점. 옛날에 고은 선생께서 미당 서정주를 두고 하나의 공화국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정말 작가는 혼자니까 반란이 일어날 일도 없고 그 공화국은 꽤 오래갈 것이다. 그렇게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다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듀엣인가요?” 거기에는 응구기와 시옹고가 발제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런저런 이름 때문에 생기는 애환은 나날이 깊어간다. 이건 H.O.T. 때부터 생긴 오래된 애환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남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기 전에 확인과정을 거치는데, 그때 큰 도움을 주시는 분이 바로 쭝혀기와 쫑코남이다. 둘이서 커피숍에서 노닥거리다가 마침 텔레비전에 어떤 여성그룹에 관한 뉴스가 나와서 내가 물었다. “투네원은 예쁘냐?”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쭝혀기와 쫑코남은 나를 바라보더니 얼마나 ‘쫑코’를 주든지. 놀랍다는 둥 무슨 한의원 얘기하는 줄 알았다는 둥. 아, 진짜…. 기획사들이여, 그룹 이름 좀 그렇게 짓지 마시라. 어쨌거나 이런 지경이니 잔뜩 소심해진 내가 ‘유피’를 볼 생각이라고 말하자, 쭝혀기와 쫑코남의 표정은 차라리 평온하더라(젠장, 발음대로 읽어도 틀렸고, 알파벳으로 읽어도 틀렸고). 개망신 깔때기 쓴 더그의 표정이라니… 오랜만에 픽사의 새 작품을 봤더니 정말 놀라웠다. 연예기획사들이 ‘아이 돈 케어’ 하는 나 같은 사람은 <개구리 왕눈이> 같은 만화영화를 보면서 자랐다. 그 구슬픈 주제곡, 생각나는가? “개구리 소년.”(여기까지 읽고 “빰빠밤!”이라고 따라 부른 사람들이 있다면 참 동병상련이다. 안쓰럽겠지만 우리끼리라도 끝까지 투네원이라고 부르자). 그랬던 만화영화가 픽사가 나오면서 천지개벽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그 과장된 얼굴만 나오지 않으면 실사영화와 거의 구별되지 않을 정도의 그래픽을 보여주게 된 것이다. 이게 대략 30년 정도의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이 칼럼은 ‘이 세상은 나아지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연중기획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업>을 보니까 분명해지더라. 탄압받는 왕눈이가 무지개 연못에서 울던 시대는 진짜 끝났다. 뉴스에 나오는 정부 관계자들을 보면 여지없이 개구리 왕눈이가 생각나긴 한다. 하지만 그건 다시 한국이 그런 시대로 돌아간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라기보다는 촌스러워서 그렇다. 촌스러워서 못 살겠다(“속아준 거짓말만 해도 수백번. 무릎 꿇고 잘못을 뉘우쳐. 아님 눈앞에서 당장 꺼져. 아이 돈 케에에에에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기술이 진보해지자, 만화영화는 점점 현실에 가까워지게 됐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업>에서는 알레고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개구리 왕눈이>와 비교하면 분명하게 알게 된다. 칼 프레데릭슨은 실제로 현실에 존재할 만한 그런 인물이다. 생김새가 남기남씨에 가까운 점만 빼면 소년 러셀도 픽사가 있는 캘리포니아에서는 흔히 만날 동양계 미국 소년을 닮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여기에 등장하는 개들도 특수장치를 이용해서 말을 한다뿐이지, 실제 지구 물리법칙의 영향을 받는다. 집에서 개를 키우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 개들의 사실적인 동작이 정말 놀라웠다. 특히 개망신 깔때기를 뒤집어쓴 더그의 표정은 인상적이었다. 그 난감하고도 슬픈 표정은 정말 사실적이었다. 그럼 점 때문에 나는 픽사의 제작자들이 목조주택의 무게를 지탱하려면 풍선을 몇개 매달아야만 할까까지도 계산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봤다. 찰스 먼츠와 황우석의 공통점?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업>이 픽사 사실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먼 미래에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아무리 많은 풍선을 매단다고 해도 집은 하늘을 날 수 없을 것이며 개들의 목에 번역기를 매단다고 해서 그처럼 멋진 농담을 던지는 개를 만나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더 많은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대용량의 컴퓨터가 등장하는 등의 기술적인 진보 덕분에 만화영화는 이제 알레고리의 형식이 아니라 직접 현실에 대해서 말하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 칼과 엘리의 일생은 몇개의 중요한 순간들을 보여주면서 지나가는데, 그 부분에는 대사가 없었지만 이해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엘리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자라는 진단을 받는 장면에서 주위의 어린이들은 왜 저러냐고 물었지만, 어른들은 대부분 그게 무슨 장면인지 아는 듯 보였다. 이건 몇개의 풍선이면 목조주택이 하늘로 떠오를 수 있을까는 질문과도 비슷한 얘기다. 그 장면은 <업>의 등장인물들은 우리와 같은 현실 속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 <개구리 왕눈이>의 무지개 연못처럼 알레고리화된 리얼리티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리얼리티. 집이 하늘을 날아다니는데도 <업>은 사실주의적 규약을 거의 어기지 않았다. 이 영화는 다른 만화영화보다 좀더 감상적인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사는 리얼리티가 그렇게 좀 감상적인 곳이니까. 우리와 같은 리얼리티를 배경으로 만든 만화영화라는 점이 최종적으로는 찰스 먼츠라는 안티히어로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이 인물은 만화영화에서 좀체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다. 물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이런 인물을 잘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던데) 황우석 박사 같은 경우. 나는 아직도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찰스 먼츠처럼 그분 역시 자기 인생의 알리바이를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겠는가. 진지한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이런 복잡한 캐릭터를 자주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모험의 정신’이란 비록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뿐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에 굴하지 않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의 정신일 것이다. 그중 몇몇은 사기꾼으로 밝혀지고, 몇몇은 명예를 회복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난 뒤에도 우리는 과연 그 사람이 사기꾼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인물이 등장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업>은 충분히 놀랍다.

배수빈, SBS '천사의 유혹' 주인공 발탁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탤런트 배수빈이 SBS TV 드라마 '천사의 유혹'의 남자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27일 소속사 BH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배수빈은 '드림' 후속으로 10월 방송되는 '천사의 유혹'을 통해 처음으로 드라마 주인공에 도전한다. '아내의 유혹'의 김순옥 작가와 '조강지처클럽'의 손정현 PD가 호흡을 맞추는 '천사의 유혹'은 복수를 위해 원수 집안의 남자와 결혼한 여성과 이를 뒤늦게 안 남편이 또 다른 복수를 감행한다는 내용이다. 배수빈이 맡은 신현우 역은 초반에는 부드러운 남자로서 천사 같은 모습을, 복수를 결심한 후반에는 악마 같은 모습을 선보이게 된다. '주몽', '바람의 화원'을 거쳐 최근에는 SBS TV '찬란한 유산'에서 모든 것을 갖춘 '훈남' 박준세를 연기하며 사랑받은 배수빈은 "첫 주인공에 대한 기대가 크다. 오랫동안 맡은 배역에 충실하게 임하다 보니 좋은 기회가 닿은 것 같다"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연기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자신의 출연작인 영화 '애자'와 '비상'의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한일합작 텔레시네마 '결혼식 후에'도 10월 SBS를 통해 방송될 예정이다. pretty@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아저씨의 맛] 네오 마초, 어딨니?

며칠 전 나로호 발사 실패 충격도 무력화시킬 만큼 경천동지할 톱스타 여배우의 비밀결혼 소식을 듣고서 적막강산이 따로 없던 사무실에 갑자기 텔레비전에 나오는 신문사처럼 분주한 활기가 돌았다(내가 주동이 됐다고는 차마 말 못하겠다). 마감 중이던 우리 팀 여기자 셋은 현안을 파고드는 기자 정신을 발휘해 ‘의문’, ‘비밀’ 따위의 단어가 주로 등장하는 자료들을 면밀히 검토하다가 한 가지 날카로운 의문에 봉착했다. “도대체 왜, 왜, 왜, 결혼했을까?” 돈? 돈 많은 남자라면 57박58일 단체 면접봐야 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달려들지 않았을까? 외모? 갖가지 추정자료를 검토한 결과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젊음? 구구한 억측으로 보나 하다못해 ‘여권 나이’로 보나 그럴 리 없고. “그는 진짜 사나이가 아니었을까?” 셋 중 하나가 말했다. 웃자고 한 이야기였으나 나름 설득력있는 답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사나이. 그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던가. 언젠가 우리 지면에 상담글을 기고하는 김어준은 ‘땅에 떨어진 돌쇠의 도를 되찾을, 네오 마초가 필요한 시대’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여기서 돌쇠라 함은 여성에게 들이대는 데서 얄팍한 자존심 따위 내던져버리고 스트레이트하게 질주하는 진짜 사나이의 동의어 되겠다. 그럼 진짜 사나이란 무엇일까? 손잡은 지 100년 됐는데 이제 키스하면 제 감정이 너무 앞서가는 거겠지요? 라고 조심스레 묻는, 왜 그녀는 준비된 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않을까요? 근심하는 ‘요즘 남자’의 반대말이라 할 수 있겠다. 사나이라는 말은 요즘 세상에서는 퇴출된 단어나 다름없다. 하지만 쿨하고 깔끔한 남자가 대세라고 하더라도 한 떨기 끈적임과 거칠고 직설적인 무엇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열망하는 건 나만의 변태적 성향일까? 언젠가 영국 남자 배우들에 대해 수다를 떨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꿈속에라도 만난다면) 물론 콜린 퍼스를 선택해야겠지. 하지만 클라이브 오언이 나를 확 끌고 간다면….” ‘그걸 어떻게 거부해, 아우’를 의미하는 신음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왔다. “40평대 아파트 당첨됐지”라고 뿌듯해할 것 같은 콜린 퍼스보다는 “지구가 반쪽이 나도 넌 내가 지킨다”라고 버럭 외칠 듯한 클라이브 오언 같은 남자, 그가 진짜 사나이 아니겠는가. 내가 친한 남자들이나 연애했던 남자들, 그리고 결혼 뒤 남자의 탈을 쓴 여자로 입증된 남편에 이르기까지 마초랑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게 사실이다. 그래도 초식남, 토이남 등등의 단어들만 만연한 이 세상에서 진짜 사나이를 한번 만나고 싶단 생각이 든다. 아 물론 김어준 말마따나 ‘인문학적으로 각성된’ 네오 마초면야 금상첨화겠지만,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냥 매력적인 진짜 ‘싸나이’만 만나더라도 간만에 안구가 정화되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소망한다.

[spot] 8mm 필름 다 가져오시오

체감 200%의 불쾌함. 시종일관 지글거리는 화면. <고갈>의 이 비주얼을 완성하기 위해 김곡 감독은 유럽 어딘가로 날아가야 했을지 모른다. 만약 이 남자가 없었다면 말이다. 아시아에서 8mm필름을 유일하게 현상할 수 있고, 텔레시네 작업까지 마칠 수 있는 곳. 우병훈씨가 대표로 있는 8mm필름은 김곡 감독의 욕심을 보기좋게 완성해준 곳이다. 영화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해 8mm필름에 탐닉한 게 벌써 6년. 이화여대 근처 사무실에 자리잡고 홀로 8mm 세상에 빠져사는 우병훈 대표를 만났다. 그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모든 종류의 8mm필름을 만질 수 있는 남자다. -<고갈> 작업은 어떻게 제안받았나. =8mm film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한다. 보통은 단편영화하는 학생들이 많이 온다. 대부분 단편영화이고 극중 잠깐 나오는 회상신 등의 작업을 맡긴다. 그런데 김곡 감독은 장편 작업을 제안하더라. 기술적인 스탭, 서포트를 하는 위치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8mm가 가진 특징 같은 거. 가령 8mm필름은 선예도가 좋지 않다. 8mm로는 샤프한 느낌이 잘 나오지 않는다. 16mm만 돼도 꽤 샤프하지 않나. 하지만 클로즈업으로 찍어도 8mm는 부드러운 느낌이 많이 난다. 입자들이 많이 부딪치니까. 나는 그 느낌이 영화의 분위기, 주제와 어울린다고 봤고 그런 것들에 대한 조언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조언이었나. =가령 사운드 문제. 8mm는 사운드백이 없어서 커버되지 않는 소리 파장이 있다. 야외에서는 어느 정도 괜찮지만 실내에서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또 8mm 화면이 위아래로 미세하게 떨리는 현상이 있다. <고갈>에서도 맨 마지막 갯벌장면을 보면 화면이 떨린다. 그게 떨림을 방지하는 장치를 쓰면 조절할 수 있다. 손가락 크기만한 건데 필름 안에 끼운다. 작은 화면에선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큰 화면에선 바로 보인다. -장편 작업이라 부담도 됐겠다. =부담이 없지 않았다. 일단 학생 작품이 아니고 두 시간 넘는 장편이니 8mm로서는 대작이다. 찍은 분량만 5시간이 넘었고. 현상도 많이 힘들었다. 현상 작업이 기계로 하는 게 아니잖나. 몇천 피트나 되는 필름들을 일일이 손으로 만져서 해야 하니까. 한롤 작업하는 데 한 시간 넘게 걸린다. 프레임 하나하나를 사진 파일로 만들고, 그걸 또 컴퓨터로 부르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2004년에 8mm필름 사이트를 만들었다. 어떻게 8mm 작업에 빠지게 됐나. =처음엔 영화를 많이 좋아했다. 책도 많이 보고 영화도 많이 보고. 고등학생 때엔 교과서 대신 영화 책 보고. (웃음) 그러다 8mm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외국 사이트에 가보면 많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작업하는 사람도 꽤 있는 것 같았고. 나도 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16mm는 비싸니까 일단 8mm로 찍어보자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찍은 것도 있다. 사실 비디오든, 8mm든, 16mm든, 35mm든, 그리고 HD든 선택 가능한 포맷 아닌가. 자신이 찍고 싶은 컨셉에 따라 고르는 거다. 그 선택의 폭을 넓혔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정보를 모으고 현상, 텔레시네 작업까지 가능하게 하려면 힘든 점이 많았겠다. =2004년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8mm필름을 구할 수 없었다. 한국 코닥쪽에서 필요성을 못 느끼니까 정식 수입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해외의 개인 판매자에게 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코닥쪽에 메일을 보냈다. 주문을 하면 코닥쪽에서 살 수 있도록 하게 해달라고. 자체 회의를 하고 메일을 보냈더라. 그래서 이제는 대리점에 문의하면 바로 살 수 있다. 국내 재고는 없지만 선주문식으로 판매한다. -현상과 텔레시네 작업을 한 건 언제부터인가. =사이트 문 열고 1년쯤 지나서였다. 사실 이전까지 사진 현상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책과 인터넷을 보고 직접 찍어서 해보면서 배웠다. 독학이었다. 텔레시네를 시작으로 네거필름 현상, 컬러리버셜, 흑백순으로 배웠다. -8mm 작업에 대한 수요는 어느 정도인가. =많지는 않다. 가끔 뮤직비디오나 CF 작업 의뢰가 들어온다. 일년에 두세편 정도. 대부분은 연말이나 학기말에 가져오는 졸업작품이나 워크숍 작품이고. 또 가끔은 70, 80년대 찍어놓았던 홈비디오 같은 걸 가지고 오는 분들도 있다. 80년대 이전에는 비디오가 없었으니 필름이 있어도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래서 30년 전에 한번 봤는데요, 하면서 작업을 맡긴다. 결혼식 영상 같은 거. -해외에서 작업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나. =예전에 일본으로 유학 간 사람이 작업을 맡긴 적은 있다. 일본에서도 네거필름 현상이랑 텔레시네는 안되니까. 한번은 필름을 급하게 구할 일이 있어서 친구에게 부탁해 일본에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네거필름을 문의하니까 현상 못하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더라. 그래서 이쪽에서 할 수 있다고 그랬더니 정말이냐고, 대단하다고. (웃음) -사실 이제는 대학생도 디지털로 작업하는 게 대세다. 8mm의 어떤 점이 좋아 계속하는 건가. =얼마 전에 극장에서 <무지개 여신>을 보면서 저런 걸 언젠가 해봐야지 생각했었다. 그 영화에 8mm 화면이 나오지 않나. 필름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디지털로 찍은 화면과 달리 차가워 보이지 않는다. 편안한 느낌이다. 값이 싸고 편하기 때문에 한다기보다 결과물이 주는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