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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뿐인 저 목소리! 윤여정 스토리 [1]

16년만에 <바람난 가족>으로 스크린 복귀하는 그녀가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이유 고 김기영 감독의 미개봉 유작인 <죽어도 좋을 경험>(1988)을 마지막으로 영화계를 떠났던 윤여정이 16년 만에 돌아왔다. 남은 인생을 육체와 감정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기로 작정한 <바람난 가족>의 속시원한 시어머니가 되어. 허스키하면서 높은 음성,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독설, 알맞게 계량된 감정의 부피와 무게. 긴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무뎌지지 않은 채 더욱 날카롭고 깔깔한 표면을 유지하고 살아가고 있는 그는, 또래 배우들 앞에 놓여진 모성애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어머니’란 대명사에 묶여지지 않은 채, 윤·여·정·이라는 이름 석자를 대중의 머리 깊숙이 박아넣었다. <화녀> <충녀>의 팜므파탈로 시작해 진정한 팜므파탈로 돌아온 이 배우의, 이 여인의, 아니 이 인간의 인생유전 위에, 자신의 드라마 속에 그를 불러오는 영광을 누렸던 노희경, 인정옥 작가 두 사람의 윤여정에 대한 헌사를 보탠다. - 편집자 1984년, 윤여정은 김포국제공항 플랫폼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13년 미국생활의 막바지, 영원할 거라 믿었던 사랑의 균열을 감지하고 다시 한국땅에 발을 디딘 이 여자. 그에게 남은 거라곤, 40kg이 조금 넘는 여린 몸뚱이와, 줄이은 담배로 새된 목소리, 더이상 발랄이란 수식어가 부담스러운 서른여덟의 얼굴, 그리고 자신의 손을 꼭 붙잡은 두명의 아이들뿐이었다. 나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되나. 나 이제 늙고 못생겨졌는데. 돌아갈 비행기는 떠났다. 도망칠 곳도 없다. 이제 할 수 있는 것도, 해야 하는 것도, 연기밖에 없었다. “TV에 이상한 아이가 있다” 2003년, 오늘도 TV를 켜면 윤여정의 목소리가 들린다. 일일연속극에서 내뱉는 특유의 칼가는 목소리는 멀리서 들어도 ‘윤여정이군…’ 할 만큼 독특하게 차별화된 것이다. <화녀>에서 독기와 광기로 뒤범벅된 명자를 연기했던 ‘발칙한 아이’는 사랑을 했고 결혼을 했고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 그리고 13년 만에 이혼을 했고 다시 드라마로 돌아왔다. 이후 <사랑과 야망>류의 주말극에서 멋지게 담배연기를 뿜어대는 도시적인 여자로, <사랑이 뭐길래> 같은 홈드라마에서는 쉼없이 말을 쏟아내는 깐깐한 아줌마로, <거짓말> 같은 미니시리즈에서는 가끔은 청승맞고, 가끔은 소녀 같은 귀여운 여인으로, 그렇게 그는 자신의 늙어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허락해주었다. 어떤 이에게 윤여정은 여전히 <네 멋대로 해라>의 ‘복수엄마’이겠지만, 그는 이미 임상수 감독의 새 영화 <바람난 가족>의 현장으로 날아와 속옷만 걸친 채 남자친구에게 샴페인 잔을 권한다. 센티멘털한 향수를 허용하지 않는 채, 그때 윤여정이 이랬었는데…, 회상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는 늘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이 부산한 배우인생의 시작은 다 ‘대학’ 때문이었다. “고2, 고3 때 위궤양 때문에 안 가본 병원이 없을 정도로 무지 아팠거든요. 수업일수는 모자라는데, 낙제시키면 시집가는 데 지장이 있을 거라고 낙제는 안 시켰어요. 그때만 해도 이화여고 나와서 어느 대학 가면 반에서 몇등했는지 다 알 정도였는데, 그 상황에서 갈 수 있는 대학은 뻔하고, 사람들이 그걸 아는 게 왜 그렇게 죽고 싶고 부끄러웠는지. 그래서 일단 높은 데를 지원해서 치고 떨어지자고 마음먹었죠. 우리 엄마는 지금까지도 내가 자기 때문에 연기를 시작했는지 모를 거예요.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나는 스타였어요. 공부 잘하는 애, 웅변대회, 글짓기대회 나가면 일등하는 애, 결국 엄마에게 대학 대신 뭔가 대단한 걸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때 막 탤런트라는 신직종이 나왔죠. 당시만 해도 영화배우하고 다르게 탤런트는 이순재 선생같이 서울대학 나온 똑똑한 사람이 하는 거라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동그란 콧망울에 웃을 때마다 보조개가 작은 샘물처럼 피고, 귀엽고 애교 있는 작은 몸집의 이 여고생을 처음 알아본 건, 사실 옆집 아저씨, 김재형 PD (<용의 눈물>)였다. “김재형 아저씨가 동생하고 나를 당시 TBC에서 하던 <어린이 열차>라는 프로그램에 견학을 시켰는데, 그때 잘 보였는지 김동건 아나운서 옆에서 선물주는 MC보조를 하게 됐어요. 그곳 사람들이 얼마 뒤 탤런트 시험이 있다며 한번 응시해보라고 했고 그래서 시험을 보게 된 거죠.” 결국 TBC 탤런트 공채 3기로 뽑히긴 했지만 탤런트란 직업은 이 어린 아가씨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꽤 지루한 것이었다. 윤 여 정 프 로 필 1947년 6월19일생 1966년 TBC 탤런트 3기 1971년 <화녀> 1972년 <충녀> 1985년 <어미> 1988년 <죽어도 좋은 경험> 2003년 <바람난 가족> TV 주요작 <저 푸른 초원 위에> <네 멋대로 해라> <꼭지>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거짓말> <내가 사는 이유> <목욕탕집 남자들> <작별> <분례기> <엄마의 방> <사랑이 뭐길래> <사랑과 야망> 상궁 1, 2, 나인 A, B에서 머무르는 시시한 역할은 고사하고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늘 야단만 맞는 신인의 시간들이 왜 고달프지 않았으랴. “대학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시작한 일이었으니까, 그만두는 것도 별 미련이 없었어요. 그렇게 학교를 다니면서 1, 2년 놀다가 우연히 8·15특집극을 하게 되면서 다시 연기를 시작했죠. MBC 개국하면서 스카우트되어 간 거고.” 슬슬 배우로서 운이 튼 건 <수사반장>의 ‘백바지클럽’편에서 여자깡패 두목으로 나가면서였다. “어릴 때 내성적이고 얌전해서 아무도 내가 배우가 될지 몰랐대요. 그런데 원래 세상 다 아는 양아치가 공주역할 하면 잘하잖아. 그건 걔가 양아치지만 늘 마음속으로는 공주를 그렸기 때문일 거예요. 아마 내가 얌전하고 내성적인 아이여서 여자깡패 같은 연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그가 윤여정이라는 이름의 탤런트로 불리게 되었을 때는 “말 잘 듣는 얌전한 소녀”는 더이상 없었다. 대신 그는 ‘이상한 아이’, ‘획기적인 아이’로 불렸고, 당시 이낙훈 선생은 “TV에 이상한 아이가 있다”며 영화배우들을 데리고 방송사에 구경시키러 올 정도였다. 그렇게 윤형주며 송창식 등 대학 나온 연예인들이 ‘새로운 물결’을 이루었던 70년대 초, 이 발랄한 젊은 아가씨에게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것은 고 김기영 감독이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디 아워스> [2]

----------버지니아는 쓰고 로라는 읽고 클래리사는 책을 만든다. 처음 내가 쓴 글줄들은 일기였던가, 편지였던가. 그러나 어쩌면 회색노트를 나누어 썼을지도 모르는 첫 ‘독자’는 잊지 않는다. 때로 우리는 사랑의 시작을 날짜와 시간까지 공기와 냄새까지 기억한다. 안녕, 나야. 다가오며 인사하는 그애를 둘러싼 하얀 빛의 부챗살이 충충한 학교 복도를 사라지게 했다. 머릿속이 말갛게 비었을 때에도 멍하니 세수를 하고 창을 여는 나의 입술이 멋대로 그의 이름을 소리내어 나를 놀라게 했다. 희열, 고통, 뭐라 부르건 난생처음 의심을 허락지 않는 감정이 날카로운 칼처럼 명치를 뚫고 등 뒤로 빠져나갔다. 난 평생 너의 시선으로 내 삶을 검열하며 살게 되겠지. 시시때때로 네 비웃음의 환청에 소스라치면서. 그러나 흐른 시간이 세월이라 할 만한 두께가 되었을 때, 다시 만난 친구는 우리가 원한 것들이 아직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얼굴을 풀어헤치고 웃고 있었다. 덩달아 미소지으며 나는 겁이 났다. 이제부터는 그저 마음의 바닥을 뒤지며 근근이 연명하는 일뿐일까. ----------댈러웨이 부인에게 피터 월시가 그렇듯이 클래리사에게 리처드는, 로라에게 키티의 키스는, 전 생애를 그 빛에 비추어 보게 만드는 등대다. 갑판 위에 서서 바람을 맞을 때 산의 정상에 올라섰을 때 아무런 맥락도 없이 무례하게 가슴을 열고 들어오는 존재다. 하지만 그녀들은 등대를 지나쳐 조류에 휩쓸렸을 때도 배를 버리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와 그녀의 ‘자매’들은 사랑하는 자아를 넓히고 사랑의 대상을 확장한다. 끝없이 다시 태어나기를 열망한다. 올란도는 수 세기에 걸친 욕망의 역사를 관통한 다음 런던의 번잡한 시가지를 달려가고, 신디 셔먼은 끝없이 카메라 앞에서 육체를 조작해 거듭나는 의식을 치른다. 버지니아 울프의 펜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 소묘한 인물들은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영매처럼 새로운 자아를 영접하고 스쳐가는 다른 영혼의 색에 붉게 푸르게 물든다.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사나이들은 그것을 정복해 못을 치고 싶어하지만, 그녀들은 떠다니며 스며들고 감싸면서 세상을 다 가지려 한다. 누군가를 그의 곁에 있는 타인들과 함께 그가 서 있던 장소와 더불어 이해한다. 그녀들은 종을 대표하는 단수로서 나를 격려한다. 지금 여기 보이는 너는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나에 비해 하찮다고. “그녀는 고향에 있는 나무들의 일부분이며 그곳의 초라한 집의 일부분이며 그녀가 결코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사람들 사이로 안개처럼 풀어져 나무 위를 흘러간 안개처럼 그 가지에 얹혀 그녀의 삶을 그녀 자신을 두둥실 먼 곳으로 띄워 보낸다.”(<댈러웨이 부인> 중에서) 이상하다. 이처럼 완전한 해체와 부재의 고발로 삶을 충만한 것으로 느끼게 만들다니. ----------나는 피아노도 그림도 매우 서툰 여자아이였다. 교습 학원에 가야 하는 날이면 오전부터 마음이 어두워졌다. 글을 쓰고 자판을 두드리게 되고 나서는 가끔 소곡을 뜻대로 연주하고 있는 것 같은 희미한 환상을 갖는다. 여기는 강하게 여기는 어루만지듯이, 보이지 않는 너그러운 누군가가 귀를 기울일지도 모른다는 몽상에 젖어서. 맨 처음 글을 쓰게 만든 완전한 몰입과 사랑의 기억이 개기일식만큼 드문 것임을 배운 뒤에도 나는 왜 멈추지 않았을까. “달리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서”가 맞는 대답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었다면 그것을 했을지도 모른다. 파티를 열고 케이크를 굽고 병자를 간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읽고 쓰는 일도 치욕스런 패배의 연속이다. 어느새 나는 무엇을 읽고 썼는지 잊어버리는 일조차 더이상 슬퍼하지 않게 되었다. <디 아워스>의 침묵과 휴지(休止)의 시간은 나를 위협한다. 손을 뻗어 잡으면 모두 문장으로 변할 것만 같다. 그 무형무음의 막간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말에 적합지 않아 우리가 굳이 말로 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것을 다시 말로 바꾸는 일은 무익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쓴다. 어디로도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을 뿐이어서 가장 견디기 힘든 일상은 글로 옮겨지면서 적어도 일정한 형상을 얻는다. 종잡을 수 없는 얼룩의 상태를 벗어난다. 어느 날에는 삶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글 한줄을 쓸 수 있을까. 그 역시 벗어놓은 더러운 속옷처럼 보인다 해도. ----------언젠가부터 영화를 볼 때 나의 나이는 너무 많거나 너무 적거나 둘 중 하나가 됐다. 영영 상실한 시간 혹은 결코 닿을 수 없는 시간을 데려다놓는 영화는 신통하게도 많지만, 지금 내 곁을 스쳐가고 있는 시간, 우리가 곧 걸어들어가야 할 시간을 건져올리는 영화는 진귀해졌다. <디 아워스>에서 30대의 로라, 40대의 버지니아, 50대의 클래리사가 보여주는 중년과 노년의 24시간은, 청춘이나 죽음의 풍자와 모방이 아니다. 그녀들은 순간순간 청춘을 기억하고 죽음을 상기하며 나아간다. 그녀들은 가래로 눈을 치우듯 밀고 쌓아올린 바로 그 시간의 무게에 기대어 <디 아워스>가 택한 생의 어느 날, “우리보다 행복할 수 있던 다른 사람을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 사랑이 많은 하나님의 다른 이름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디 아워스>는 과거와 현재이면서 동시에 미래일 수 있는 시간을 질투하는 영화다. 그리고 질투를 통해 삶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그것은 아주 깊이 가라앉아 기도와 비슷해진 사랑이다. 자기를 버리고 눈을 감아 빛을 버리고 좁은 우물의 바닥 같은 평화를 대가로 얻는.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2월15일 폐막한 제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4]

독일영화 100편 상영, 물량공세 성공 이변과 화제3 - 독일영화의 부흥? 독일영화가 르네상스를 맞았다고, 감히 말해도 될 것 같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에 독일영화는 전체 299편 상영작 중 무려 100편이라는 엄청난 비율을 차지했다. 경쟁부문에 3편이 포함된 것을 필두로 파노라마, 포럼, 단편영화, 킨더필름 등 부문마다 대략 ‘다섯 중 하나’는 독일영화였고, 여기에 신인들의 영화를 소개하는 ‘독일영화의 전망’ 섹션, ‘저먼 시네마’ 섹션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회고전까지. 독일영화만을 모아 상영하는 부문도 3개나 됐다. <늙은 원숭이의 불안> <크누트가 잡혔다> <데보트> 이들 독일영화들은 상영시간대도 비교적 좋은 시간에 배치돼 영화 상영 시간표를 보며 볼 영화를 고르고 있자면 싫어도 볼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았다(하지만 독일영화들은 빨리 매진돼 보기 힘든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제쪽에서는 친절하게도 영화제의 모든 독일영화들을 모아 소개한, 상당한 두께의 ‘베를리날레 저먼 필름스’ 카탈로그를 메인 카탈로그와 별도로 배포하기도 했다. 최근 독일에서 만들어진 웬만한 영화는 다 모아놓은 듯한 물량공세 때문에 일각에서는 영화들의 질을 의심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영화제 날짜가 지날수록 “독일영화, 뭔지도 모르고 그냥 시간이 맞아서 몇개 봤는데 보는 것마다 다 괜찮더라”라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더니, 비교적 후반부에 경쟁부문의 독일영화들이 상영되면서 그 소문은 ‘공식’ 인정을 받아 나가기에 이르렀다. 한스 크리스티안 슈미트의 <불빛>(Lichter), 볼프강 베커의 <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 오스카 뢸러의 <늙은 원숭이의 불안>(Der Alte Affe Angst) 등 경쟁부문의 독일영화들은 매우 독일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영화들이었다. <늙은 원숭이의 불안>은 베를린에 사는 우울증과 발기부전 환자가 주인공으로 암 말기에 걸린 그의 소설가 아버지, 우발적인 자살시도에 시달리는 그의 간호사 애인, 그녀가 간호하는 소아 에이즈 환자, 핍쇼 걸로 일하는 그의 어머니 등 도시의 그늘진 캐릭터들을 엮어낸 드라마. <불빛>은 독일과 폴란드 국경지방에 사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다중시점으로 그린 작품이었고, <굿바이, 레닌!>은 통독 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관계를 동베를린 출신의 한 가족을 중심으로 코믹하게 그려낸 흥미로운 영화였다. <불빛>은 공식 심사위원이 주는 상은 못 받았지만 국제 영화비평가 연합이 주는 FIPRESCI의 경쟁부문 최고 작품상을 받았다. 이 밖에 ‘독일영화의 전망’ 부문의 <크누트가 잡혔다>(슈테판 크로머), 포럼부문의 <사막의 고프>(하인츠 에믹홀츠), 파노라마 부문의 <기민당의 비히만> (안드레아스 드레젠), <데보트>(이고르 차리츠키), <볼프스부르크>(크리스티앙 페촐트)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크누트가 잡혔다>는 독일판 80년대 운동권 후일담을 단정한 남자와 바람기 있는 여자를 등장시킨 연애 이야기로 녹여낸 드라마. 운동권에 대한 풍자와 성개방 얘기 등이 특히 독일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사막의 고프>는 감독이 두달 동안 미국을 여행하면서 건축가 브루스 고프(1904∼82)가 설계한 건축물 62개를 모두 찾아 연대기순으로 보여주는 작품. 관객이 마치 영화 공간 속에 들어가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이 영화는, 한 건축가의 전기일 뿐만 아니라 지난 20세기 건축의 역사를 보여주는 독특한 다큐다. 역시 다큐멘터리인 <기민당의 비히만>은 보수적이면서 출세욕 강한 기민당 소속의 젊은 정치가 비히만에 관한 작품으로, 감독은 한달 동안 연방 총선거에서 우커마르크-바르님 지역의 기민당 후보로 출마한 후보의 유세에 동행해 다큐멘터리 시리즈 <나는 독일을 생각한다>의 한편인 이 작품을 만들어냈다. <데보트>는 하드고어 멜로드라마. 물에 빠져 자살하려는 젊은 여자를 우연히 본 남자가 그녀에게 몸값을 물은 뒤 집으로 데리고 가며 시작해 계속해서 오해와 거짓말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볼프스부르크>는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어느 슈퍼마켓 냉동식품부 점원 여자가 사고의 가해자와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의 이야기. 스토리만으로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에 가깝지만 페촐트 감독은 멜로라는 장르를 라우라가 일하는 냉동식품부 냉동고에서 막 꺼낸 듯한 느낌으로 신선하게 재단장해 선보인다. <볼프스부르크>는 FIPRESCI의 파노라마 최고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새 영화] <리크루트>

충무로에서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사당에서 촬영하려 해도 여배우가 담을 넘어야 하는 처지지만 할리우드에는 성역이 없다. 우리에게는 `금단의 땅'으로 여겨져온 정보기관이나 권력기관 내부에 서슴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가 하면 풍자나 해부는 물론 조롱까지 거칠 것이 없다. 미국 CIA 요원들의 훈련과정을 담은 <리크루트>(The Recruit)(배급 브에나비스타)도 그런 점에서 우리 영화인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CIA는 제작진의 본부 방문을 허락하는가 하면 현직 대변인인 체이스 브랜든이 직접 자문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면 이 영화가 CIA 홍보영화냐고? 천만에. 우리나라 국가정보원이라면 소재로 삼는 것까지 꺼렸을 만큼 부정과 음모와 배신으로 도배질돼 있다. 주인공 제임스 클레이튼(콜린 파렐)은 명문 MIT공대를 졸업한 컴퓨터의 귀재. 스스로 개발한 컴퓨터 시스템을 델 컴퓨터 직원에게 설명하러 나갔다가 CIA 요원을 선발하고 훈련시키는 교관 월터 버크(알 파치노)의 눈에 띄어 지원을 권유받는다. 수십만 달러의 연봉을 포기하는 것은 아깝지만 남다른 일을 해보고 싶던 제임스의 귀에는 월터의 제의가 솔깃하게만 들린다. 더욱이 제임스의 아버지가 순직한 CIA 요원이었으며 아버지보다 훌륭한 자질이 충분하다고 귀띔해주자 결심을 굳힌다. 서류시험을 거쳐 요원 후보로 선발된 제임스. `사육장'이라 불리는 악명 높은 훈련소에서 고된 훈육을 견뎌내다가 막판에 고문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동료의 이름을 대는 바람에 퇴소를 통보받는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괴감에 빠져 있는 그에게 월터가 다가와 비밀요원으로 삼기 위해 `작전상' 탈락시켰다면서 임무를 부여한다. 함께 훈련을 받은 레일라 무어(브리짓 모이나한)는 CIA의 비밀을 빼내기 위한 이중간첩이므로 그가 누구에게 보고하는지 알아내라는 것. 제임스는 `어느 누구도 믿지 말라'는 월터의 당부를 가슴에 새기며 레일라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해 비밀의 실체에 한발짝씩 다가간다. <노 웨이 아웃>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로저 도널드슨 감독은 쿠바 위기의 진상을 추적한 「D-13」에서 보여준 것처럼 사실적인 화면만으로도 긴박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CIA의 협조 덕분인지는 몰라도 첩보영화치고는 액션 장면이 밋밋하다는 것이 별 흠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거듭되는 반전이 막판에 관객의 허탈감을 자아낸다. 감독이 관객의 뒤통수를 치려는 생각에만 매달린 탓일까. 명배우 알 파치노의 연기마저 지나치게 꼬아놓은 줄거리에 묶여 매력이 반감되는 듯한 느낌이다. 오히려 알 파치노에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맞대결을 펼친 콜렌 파렐의 배짱이 돋보인다. <리크루트>는 2월 첫째주에 북미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국내 개봉은 14일. (서울=연합뉴스)

이창동 감독 문화부 장관 취임

영화감독이 장관 되기는 처음, “최선을 다하겠다” 이창동 감독이 문화관광부 장관에 취임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틀 뒤인 2월27일 출범한 새 정부 첫 내각에서 이 감독은 문화부 장관을 맡아 이날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이 장관은 캐주얼한 양복 차림에 손수 차를 몰고 문화관광부로 첫 출근을 했으며, 취임식을 생략한 채 간부들과 차를 마시며 인사를 나누고, 장관 취임 뒤 의례적으로 있어온 언론사 방문도 하지 않는 등 이전의 장관들과 다른 스타일을 드러냈다. 한 측근은 “이 장관이 문화정책 못지않게 경직된 관료문화를 바꿔가는 데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고 전했다. 이 장관도 이날 오후 문화부 기자실에 들렀을 때 “‘딴따라’ 출신 장관의 별난 개성이라기보다 관습을 버리고 국민들의 생각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모습으로 봐달라”면서 “형식이 굳으면 내용이 살지 못한다, 문화예술인들을 자주 만나는 문화부 공무원들은 권위주의보다 일상적 감각과 형식을 통해 그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감독이 장관을 맡은 건 국내에선 처음이며, 외국에서도 전례가 드문 일이다. 장관 후보 추천장을 대표로 작성했던 정지영 감독의 말. “이 감독은 다른 감독과 달리 독특한 캐릭터다. 상당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분석적이다. 스크린쿼터 운동할 때 이 감독이 정책위원장을 맡았다. 성명서를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작성했는데 이 감독이 항상 마지막 감수를 맡았다. 그만큼 치밀하고 정확하다. 그는 또 연극, 문학도 해봤고 고교 교사에 대학 교수까지 해봤다. 감독이 장관한다고 할 때 우선 걱정되는 게 행정력일 텐데 그는 공적인 생활을 남들보다 많이 해봤다. ‘노문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가 문화부장관을, 되든 안 되든 최소한 추천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했다. 노문모에서 이 감독이 1순위로 뽑혔다. 처음에 고사하는 바람에 애먹었지만….” 정 감독은 “감독으로서 지금 한창 피크에 오르고 있는데 다른 짐을 지워준다는 게 가장 미안했지만 장관직을 2~3년 해보는 게 그가 지향하는 작품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장관은 “주변에서 추천할 때 중책을 맡을 역량이 부족하다고 여겨 사양했으나 노 대통령이 현장 문화예술인을 발탁하겠다고 후보 시절 약속한 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군대 영장받고 공익근무한다 생각하고서, 부끄럽지 않게 현장 동료들에게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 장관 취임에 대해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 민족예술인총연합은 환영의 성명을 냈으며, 영화인협회는 별도의 성명을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강영우 사무국장은 “영화인이 장관이 된 건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영화계는 이 장관이 풀어야 할 현안으로 △통합전산망 확보 △영화제작 시장의 활성화 △영화진흥위원회의 자율성 제고 등을 꼽고 있다. 김혜준 영진위 사무국장은 “이전까지는 정책기획만 민간기구가 맡고, 그 가운데서 정부가 취사선택해 집행했는데 새 장관 아래서는 기획뿐 아니라 집행과 그 확인작업의 상당부분을 민간기구에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임범

영화채널, 다양한 3월 특집

케이블ㆍ위성 영화채널들이 3월을 맞아 다양한 특집들로 시청자를 찾아간다. 먼저 홈CGV는 감독으로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주연ㆍ감독한 작품들을 방영하는 특집 `카메라 뒤에 선 배우'를 9일부터 4주간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30분에 마련한다. 9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페일 라이더>를 시작으로 멜 깁슨의 <얼굴없는 사나이>(16일), 케네스 브래너의 <헨리 5세>(23일), 대니 드 비토의 <마틸다>(30일)를 방영한다. 또한 뉴욕과 LA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방영하는 특집 `두 도시 이야기, 뉴욕 vs. LA'를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와 낮 12시에 3주동안 마련한다. 7일에는<코튼 클럽>과 <비버리힐스 닌자>를, 14일에는<뉴욕 탈출>과 <제인 폰다의 더 모닝 애프터>를, 21일에는 <도시의 선율>과 <보우핑거>를 각각 방영한다. 클래식 영화채널 TCM&클래식무비는 오는 24일 미국 오스카상 시상식을 앞두고 8일부터 31일간 역대 오스카 후보작을 방영하는 특집을 마련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로리타>(27일 밤 10시50분), (28일 밤 10시55분)와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악대차>(18일 밤 11시10분), <지지>(4월 5일 밤 1시 20분)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벤허>(14일 오후 7시), <작은 아씨들>(15일 밤 1시25분), <카사블랑카>(15일 밤 11시35분), <닥터 지바고>(21일 밤 10시10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4월 4일 밤 9시10분) 등 고전 명작 영화도 방송한다. <브로드웨이의 연인들>(10일 밤 10시50분), <악대차>(18일 밤 11시10분), (22일 밤 7시) 등 뮤지컬 영화들도 시청자를 찾아간다. OCN액션에서 채널명을 변경한 `수퍼액션'에서는 10∼13일 밤 12시 40분 경찰을 소재로 한 동서양의 액션대표작을 방영하는 특집 `경찰액션, 동서대결'을 마련한다. 왕조현, 이자웅 주연의 <대행동>(10일), 톰 앳킨스, 브루스 캠벨 주연의 <코델>(11일), 주윤발, 이원패 주연의<대호출격>(12일), 다니엘 퀸 주연의 <스캐너캅>(13일) 등이 편성된다. (서울=연합뉴스)

성의 긍정적 묘사에 대한 초심?<팬티 속의 개미2>

■ Story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 플로리언(토비아스 솅케)은 몸이 이상하다. 성기가 자신에게 말을 한다. 여성의 가슴이나 엉덩이 등의 부위를 만지라고 부추긴다. 가뜩이나 성욕이 왕성한 나이에 성기의 명령까지 보태져 플로리언은 복도에서 여교사의 가슴을 만지다가 뺨을 맞는 등 여러 추태를 연출한다. 급기야 섹스 중독으로 찍혀 병원까지 간다. 이상형인 여학생 마야(디아나 암프트)를 만나 반하지만, 마야는 플로리언을 섹스 중독자로 낙인찍은 상태. 플로리언은 여러 면에서 수완이 좋은 친구 레드 불(악셀 슈타인)의 도움 아래 구애작전을 펼친다. ■ Review 전편 <팬티 속의 개미>에서 10대 중반이던 플로리언이 10대 후반으로 자랐듯, 그의 성기도 자랐다. 크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바가 달라졌다. 성기가 전편에선 주로 보는 걸 원했다면, 이번에는 직접적인 접촉을 요구한다. “저 여자 가슴 죽인다. 가서 만져. 저 다리. 아, 휘감기고 싶어.” 마초적으로 변했다. “가서 만져. 여자는 다 좋아해.” 남자의 마초성이 성기에서 오는지 머리에서 오는지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차치하고 성기의 변화는 거기까지다. 영화 내내 그 말들만 한다. 성에 막 눈뜨기 시작하는 10대 중반에 성기가 말을 걸어온다는 설정은 신선할 수 있었다. 그놈(성기)은 낯선 놈이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됐다면, 그 인격(아니 성기격)의 독립성에 의문의 여지가 생긴다. 그 2∼3년 사이에 공부는 안 늘어도 성에 대한, 성기의 생리에 대한 지식은 훤하게 꿰어버리게 마련. 그놈은 낯설 게 별로 없다. “가서 만져”, “그러다 뺨 맞으면 어떻게 해” 하는 성기와 플로리언의 말싸움은 플로리언 머리 속의 갈등과 다를 게 없어진다. 남자와 잘까 말까 고민하는 여자 옆에 만화의 말풍선을 그려놓고 창녀가 나와 자라고 하고, 수녀가 나와 말라고 하는 화면이 더 재밌을지 모르겠다. 비슷한 얘기를 플로리언이 멀쩡히 서서 고개 숙이고 눈을 성기 방향으로 향한 채 해대는 화면은 어정쩡하다. 2편에서 성기와 머리가 주장하는 바의 차이는 ‘오로지 섹스’와 ‘애정있는 섹스’이다. ‘오로지 섹스’를 노린 음험한 계획은 다 탄로나 개망신하고, 반성하는 플로리언에게 ‘애정있는 섹스’가 화답해준다는 익숙한 이야기다. 거기에 친구들의 수다와 소란을 병행하면서 섹스코미디라기보다 슬랩스틱코미디 같은 어수선함을 연출한다. 아무래도 말하는 성기의 아이디어를 2편까지 끌고 간 건 좀 억지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3편까지 만들려는지 마지막이 좀 수상하다. 성기가 한 여자와만 섹스하는 건 싫다며 발기를 거부하다가, 그 기간을 6개월로 플로리언과 타협한다. 마초에다 바람둥이까지 그렇게 나쁜 것만 성기에 몰아버린다면(적어도 이 영화에선 바람둥이가 나쁜 걸로 묘사된다), 성을 긍정적으로 그리려던 초심마저 변질되지 않을까. 임범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