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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talk show] “호러로 먼저 안타 치고 <26년>으로 홈런 칩시다”

5·18 시민군의 아이들이 돌아온다. 장성한 그들은 복수를 도모하고, 타깃은 당시의 최고 권력자다. 연재 당시 일일 조회 수 200만건, 매회 댓글 2천여건 이상을 기록했던 강풀의 웹툰 <26년>.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만화 또한 발빠르게 판권이 팔려나갔고, 이어서 영화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캐스팅까지 완료되고 모두가 크랭크인만 기다리던 때에 <29년>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할 이 프로젝트는 돌연 없던 일이 되었다. 명확한 이유를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 이유를 모르는 이 또한 아무도 없었다. <29년>의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했고, 메가폰도 잡았어야 했을 이해영 감독. 그리고 원작 <26년>의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린 만화가 강풀이 만났다. 두 사람의 말에 따르자면 영화 좌초 이후 첫 만남이다. 이미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데다 ‘영화인이 다른 분야의 인사를 만난다’는 본 코너의 취지에 따라 무언가 다른 화제로 꽃을 피울 법도 했건만 좌중의 대화는 <29년>에서 출발하거나, 다시 부메랑처럼 <29년>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영화 <29년>과 강풀의 원작 만화 <26년>은 맥락에 따라 섞어 표기하였습니다-편집자). 이해영: 오늘 강풀 작가와 만난다고 주위에 이야기했더니 모두들 ‘씁쓸한 만남’이래. 강풀: 슬픈 만남이지. 사실 <29년>이라는 끈 때문에 이 만남이 얼핏 자연스러워 보입니다만, 작품으로만 보자면 두분의 성향은 정반대에 가까워요. 절제(이해영)와 감상(강풀), 또는 냉정(이해영)과 열정(강풀)이랄까. 강풀: 저는 <천하장사 마돈나> 보고도 그런 생각 전혀 안 했는데요. 해영이 형이랑 저랑 외모도 닮지 않았어요? 둘 다 하악골도 크고…. 이해영: 강 작가 부인도 저를 보시고 두세 차례 탄성을 지르더니 ‘정말 닮았다!’며 놀라더군요. 굉장히 상처받았어요. 그런데 의외로 동의하는 사람들도 많고. 강풀: 나랑 닮았다는 건 영광이잖아. 어쨌든 강 작가님의 작품이 뜨겁다는 건 누구나 끄덕거릴 이야기고, 그에 반해 <천하장사 마돈나>만 놓고 볼 때 이 감독님께서 좋아하는 유머는 절제되어 있다는 느낌이거든요. 이해영: 그때는 그랬어요. 하지만 그런 유머 코드로는 흥행이 안된다는 걸 깨닫고 뜨거워지려 하고 있어요. 강 작가는 대중이 좋아하는 뜨거운 온도를 맞추는 데는 전문가잖아요. 강 작가님은 이 감독님이 <26년>을 각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떠셨나요. 강풀: 당시 영화사에서는 저에게 감독 후보가 3명이라고 했어요. 이해영: 어? 난 나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웃음) 강풀: 몇 사람이 물망에 올랐다가, 나중에 형이 후보에 들어온 거예요. 그리고 제가 먼저 이해영 감독이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때 마침 <천하장사 마돈나>를 본 지 얼마 안된 때였어요. 영화가 너무 좋아서 이해영 감독이랑 했으면 좋겠다고 했죠. 이해영: 그런데 <천하장사 마돈나>랑 <26년>은 안 어울리잖아. 강풀: 아냐. 나는 <26년>이 사람 냄새 나는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개인적으로 그해에 본 영화 중 <천하장사 마돈나>가 제일 좋았어요. 이해영: 저도 사실 그해에 본 만화 중 <26년>이 제일 좋았어요. (웃음) 이 감독님께서는 <26년> 각색 의뢰를 받기 전에 강 작가의 만화를 보면서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이해영: 작가의 기가 너무 세다고 생각했어요. <26년>도 원체 센 소재를 다루긴 했지만, 다른 작품들도 작가의 센 기가 느껴져서 볼 때마다 주눅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 몇번은 <26년> 못하겠다고 고사했죠. 작가의 기도 세고, 아이템도 세고, 이야기를 푸는 방식도 직설적이라 이렇게 날이 서 있는 작품을 어떻게 감당할까. 스스로 짓눌릴 것 같아 무서웠죠. 강풀: 형이 말하는 작가의 기를 만들어주는 건 독자들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본 작품이라 제 원작은 독이에요. 그런 기사도 봤어요. ‘강풀 원작은 독이 든 성배, 양날의 검이다.’ 잘 만들어도 비교당하고, 잘 못 만들면 엄청 비교당하니까. 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개봉할 때마다 ‘만화 독자들이 아군이 될까, 적으로 돌아설까’라는 부분을 많이들 걱정하시더라고요. 이해영: 사실 강 작가의 만화들이 영화로 만들기에 쉽지 않은 텍스트예요. 어쨌든 영화에 담으려면 서사를 쳐내야 하는데, 그게 워낙 힘들어요. 캐릭터도 많고, 캐릭터마다 사연도 많고, 그 사연들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게 강풀 만화의 근간이니까요. 화제가 된 작품들이니만큼 판권을 사려고 덤비는데, 일단 사고 나서는 전전긍긍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강풀 작가의 만화를 보면 스크롤을 올리는 속도와 눈으로 보는 속도가 일치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잖아요. 그게 강풀 서사의 진수고, 사람들도 영화적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거기에 함정이 있어요. 그게 사실 이야기의 속도가 아니거든요. 강풀 작가는 거대한 이야기를 직조한 다음 스크롤을 올릴 때 정확히 거기에 맞는 정보만 줘요. 그건 웹툰에 적합한 방식이지 영화적이지는 않아요. 영화는 이야기의 체공시간이 더 길다고 생각해요. 영화의 한 시퀀스 안에서 느껴지는 속도라는 게 스크롤의 속도와는 개념이 다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29년>의 시나리오를 잘 썼다고 자평해요. 긴 이야기를 잘라내고, 속도감을 살리는 데 주안점을 뒀거든요. 독자들이 스크롤에 열광하면서 느꼈던 속도감을 영화에서 구현하기 위해 뒷부분 한 시간 정도를 액션신으로만 채웠었어요. 강 작가님도 <괴물2> 시나리오작가로 데뷔하셨잖아요. 아무래도 만화의 서사를 만드는 것과 큰 차이를 느꼈을 것 같은데요. 강풀: 저는 영화 시나리오 작업이 더 편하더라고요. 제가 안 그릴 거니까. 이를테면 제 만화에 야구장을 그려야 한다면 전 그 장면 전체를 빼버려요. 야구장, 그 사람 많은 곳을 어떻게 그려요. 그런데 영화는 어차피 감독님께서 만드는 거니까. ‘괴물 수십 마리, 집채만한 괴물.’ 이렇게 쓰면 끝이잖아요. (웃음) 그래도 어떤 면에서는 확실히 어려워요. 저는 이야기를 풀다보면 끝도 없이 나오는데 그걸 2시간짜리로 줄여야 하고 그 시간 안에 감동을 줘야 하니까요. 저는 캐릭터에 사연을 만들어주는 걸 좋아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죠. 이해영: 상대적으로 볼 때 영화는 공유하는 매체고, 그렇게 공유하면서 작품의 성격이 달라지기도 하죠. 창작자라는 측면에서 만화와 영화는 비슷한 작업일 텐데, 영화는 단지 좋은 이야기만으로 완성되진 않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따져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만화가들은 훨씬 자유롭죠. 창작자들은 좋은 생각을 쌀로 바꿔서 먹고사는 사람들이잖아요.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좋은 생각만으로는 그것을 쌀로 바꾸기 힘든 것 같아요. 강풀: <26년>도 사실 만화가 아니면 나오기 힘든 작품이었어요. 사실 이건 텔레비전 드라마 제의를 받고 16부작으로 준비했던 작품이에요. 그때만 해도 제목이 <23년>이었어요. 10장짜리 시놉시스를 써서 드라마 감독님을 만났는데, 의욕적으로 진행하다가 엎어지는 바람에 그걸 만화로 만들기로 결심한 거죠. 만화로 만들고 나서는 이게 영화로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랐어요.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고, 영화는 파급력이 크니까요. <화려한 휴가>도 개봉하고 해서, 우리 영화는 틀림없이 만들어질 거라 생각했어요. 이해영: 그때만 해도 지난 정권 때였으니까. 엎어지고 나서 영화라는 장르가 참 힘이 없다는 회의감을 많이 느꼈어요. 자본주의는 결국 돈으로 움직이는 건데, 원작의 파워나 캐스팅의 면면을 봤을 때 거기서 갑자기 작품성 운운하는 건 반칙이라 생각하거든요. 누가 봐도 돈이 될 영화임은 명백한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누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죠. 강 작가님이 캐릭터를 만들고 그들을 통해 이야기를 구축하는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수많은 캐릭터들의 사연들을 꿰어내는 솜씨는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하는데요. 강풀: 방법론적인 부분을 말씀드리자면 일단 표를 만들어요. 그리고 모든 등장인물들을 3화에서 5화마다 한번씩 등장하게 배치해요. 연재만화의 특성상 그 정도의 주기로 인물들이 등장해줘야 독자들이 캐릭터라든지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더라고요. 이야기와 인물들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일단 붙여놓으면 이야기에 맞춰서 움직이죠. 이해영: 강 작가의 만화는 굉장히 계산을 잘한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게 또 치밀한 계산을 통해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아요. 3화에서 5화마다 한번씩 출연하게 한다든지 하는 것도 감에 따라 결정하는 것 같아요. 강풀: 맞아요. 감으로 해요. 저는 제가 정말 대중적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이 재미있다는 영화만 재미있고 어려운 영화를 못 봐요. 그래서 이해가 안되는 게 <천하장사 마돈나>가 왜 흥행에 실패했냐는 거지. 난 정말 재미있게 봤거든. 저는 제가 작품을 연재할 때도 ‘내가 재미있으면 사람들도 재미있게 본다’는 확신이 있어서 제가 재미있는 쪽으로 이야기를 써요. 연재하다가도 스토리상 필요하지만 재미없는 부분이면 ‘괜찮아, 뒷부분이 재미있으니까’ 하면서 그냥 가요. 언제나 느낌대로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이해영: 저는 지금까지 작업하면서 제 안에 있는 무언가를 뜯어서 팔았던 것 같아요. <29년>은 그렇지 않았던 최초의 이야기였고요. 말하자면 무언가를 구축하자는 게 목표였어요. 그러다 사회·역사적 맥락이 강했던 <29년>에 호되게 데이고 나서 이제는 아예 사적인 영역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더라고요. 강풀: 요즘은 어떤 거 써? 이해영: 그래서 섹스코미디를 준비하는데, 강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내가 보기에 재미있는 것을 용기있게 드러내보자는 생각이에요. 영화화된 강풀 캐릭터들 중 특별히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가 있나요. 강풀: <바보>의 승룡이요. 차태현씨의 웃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요. 처음 캐스팅 단계에서 차태현씨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갸웃했었어요. 그런데 현장에 놀러가서 보니 진짜 바보 같더라고요. 저는 원작자로서 ‘바보지만 장애인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차태현씨가 그 묘한 경계를 잘 지켰던 것 같아요. 이해영: 저는 개인적으로 <순정만화>의 이연희씨가 제일 좋았어요. 강풀: 앗, 그렇지. 깜빡했다. 이해영: 어느 영화인지는 모르겠는데, 이연희씨가 출연한 어떤 영화의 촬영감독님이 현장에서 고민을 하더래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이연희씨 피부가 너무 투명해서 포커스가 맞을지 모르겠다’며. (웃음) 강풀: 너무 예쁘죠. 소녀시대(<순정만화>에 출연한 수영)도 빼놓으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이해영: 소녀시대는 대한민국의 평화지수와 행복지수를 한껏 높였지요. 영화 <순정만화>를 보면 수영씨가 누워 있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다리부터 천천히 위로 올라가요. 그때 극장에서는 남자들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가 일제히 낮은 탄식을. (웃음) 강풀: 형, 수영씨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모르지? 이해영: 원래 아는 사이였어? 강풀: <순정만화> 연재할 때 팬이라고 메일을 보낸 중학생이 있었어. 나중에 커서 꼭 가수나 연기자가 될 거라고. 나는 원래 답메일을 잘 안 보내는데, 중학생답지 않게 글을 너무 잘 쓴 거야. 그래서 답메일을 보냈지. 열심히 하라고.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중학생이 수영씨였던 거지. 그 뒤로 작업실에도 놀러왔고. 내 유일한 자랑거리예요. 소녀시대와 친하다는 건. 이해영: 부럽다. 나는 <천하장사 마돈나> 만들고 나서 길을 다니다 보면 씨름부로 보이는 애들이 와서 메일주소 물어보던데. (웃음) 굳이 <29년>이 아니라도, 지금 시대의 공기가 창작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강 작가님도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후 최근에는 두 작품 연속으로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계신데요. 강풀: 딱히 의식한 건 아니에요. 오히려 사회 분위기가 무거울수록 가벼운 이야기가 잘 팔려요. 그런데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서 그리는 거예요. 워낙 호러나 스릴러 장르를 좋아해요. 그리고 지금 연재 중인 <어게인> 끝나면 다시 순정만화할 거예요. 돈 벌려면 순정을 다루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하고 싶은 걸 먼저 하게 되더라고요. 이해영: 그건 부럽네요. 시기나 정권에 무관하게 갈 수 있는 것. 사실 영화를 하면서도 딱히 의식을 못하고 살았는데, 최근 1~2년 사이 여러 가지가 급격히 바뀌면서 처음으로 의식하게 되었어요. <29년> 엎어지고 나서 시나리오를 많이 받았는데, 전부 사회적인 이야기들이었어요. 트라우마 때문인지, 족족 거절했어요. 이건 완전히 상관없는 작품을 해야 치유될 것 같았어요. 어떻게 보면 눈치를 보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제가 생각해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변상황과 잘 조율하는 것에 의미를 두려고 하죠. 강풀: 예전에 저는 별 생각없이 삼성 광고를 그렸다가 독자들에게 혼이 난 적이 있어요. 다시 생각해보니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더군요. 광고만화도 꽤 많이 들어오는데, 대한민국 기업 중에 걸리지 않는 데가 없어요. 인터뷰도 <조선일보>와는 8년간 안 하다가, <26년> 출판일에 맞춰서 인터뷰를 요청하기에 그때는 수락했어요. 대신 조건을 달았죠. 하는 이야기는 다 실어달라고. 하지만 사옥 앞에서 포즈도 취해줬는데 결국 데스크에서 반려되어서 기사는 못 나갔어요. 그 이후로 <조선일보> 인터뷰도 사절이에요. 그런데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와는 인터뷰를 하니까 사람들이 기준이 뭐냐고 하죠. 그래서 그래요. ‘그냥 한놈만 팬다’고. (웃음) 제목이 <33년>이 되어도 좋으니 나중에라도 <26년>이 꼭 영화화되기를 바라는 입장입니다만, 혹시 그외에 두분이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볼 수 있을까요. 강풀: 형, 혹시 호러영화해볼 생각 없어? 이해영: 많아. 강풀: 많아? 그럼 호러로 한번 안타를 치고, 그 다음에 <26년>으로 홈런을 치는 거야. 이해영: 그거 괜찮다. 강풀: 근데, 지금 준비하고 있다는 섹스코미디 제목은 뭐야? 이해영: <페스티벌>. 강풀: 음, 뭔가 굉장한 장면이 떠올라버렸는데…. 이해영: 카니발이 아니고 페스티벌이라니까. 이해영(1973년생) 서울예술대학 광고창작학과 졸업. 2000년 김지운 감독의 단편 <커밍아웃> 시나리오로 영화계 입문. 이후 <신라의 달밤> <품행제로> <아라한 장풍대작전> <안녕! 유에프오> 시나리오 작업. 2006년 <천하장사 마돈나> 연출. 현재 EBS 영화정보프로그램 <시네마천국> 진행. 강풀(1974년생) 상지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0년 참여연대에서 만화와 삽화를 그리다 2002년 ‘강풀닷컴’을 오픈하고 본격적으로 웹툰 작업 시작. 주요 작품으로 순정만화 시리즈 <순정만화> <바보>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미스터리 심리썰렁물’ 시리즈 <아파트> <타이밍> <어게인>(연재중), 그리고 <26년>이 있다.

영웅재중 "연기는 신선한 도전이었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연기는 신선한 도전이었습니다. 좀 더 시간이 많았다면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을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그룹 '동방신기'의 영웅재중은 9일 왕십리 CGV에서 열린 '천국의 우편배달부' 언론 시사회 뒤 기자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영화와 드라마로 방영되는 텔레시네마의 2번째 작품인 '천국의 우편배달부'는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이형민 PD가 연출하고, 기무라 다쿠야가 주연한 일본 드라마 '롱 베케이션'의 기타가와 에리코 작가가 극본을 쓴 작품이다. IT기업의 젊은 사장이 죽은 사람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편지를 천국에 전해주는 우편배달부가 되고 우연히 만난 여자와 그 일을 함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에서 우편배달부 재준 역을 맡은 영웅재중은 "정극 연기는 처음이어서 어떻게 감정을 표출해야 할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며 "감독님과 효주 씨가 연기를 모르는 풋내기인 저를 많이 가르쳐줘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동방신기 다른 멤버들의 응원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촬영 당시 컴백을 앞두고 있어서 멤버들 모두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멤버들로부터는 별다른 조언을 얻지 못했지만, 평소 연기에 관심이 있었던 윤호와 창민이가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고 덧붙였다. 재준을 만나 점차 사랑의 감정을 다시 찾아가는 하나 역의 한효주는 "텔레시네마라는 새로운 장르여서 흥미를 가지고 도전했다"며 "이야기나 정서가 동화 같지만 가끔은 동화가 잘 쓰인 소설이나 에세이보다 마음에 다가올 때가 있다. 저에게는 이 작품이 그랬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돌과의 연기가 부담스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솔직히 부담이 됐지만, 촬영을 하면서 점점 그러한 부담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이어 영웅재중의 연기에 대해 "순발력이 매우 뛰어난 분인 것 같다. 제 연기에 대한 리액션이나 적응력이 좋았다. (연기에) 가능성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buff27@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글로벌 프로젝트 ‘텔레시네마7’의 첫 타자 <내눈에 콩깍지>

synopsis 교통사고가 웬수다. 한국에서 최고 잘나가는 건축가인 강태풍(강지환)은 동물 잡지 기자 왕소중(이지아)에게 한눈에 반한다. 미녀들과 찰나의 불장난을 즐겨왔던 그는 외모는 물론 성격까지 ‘소중’한 그녀에게 ‘태풍’처럼 달려들지만 정작 중국 출장을 다녀온 연인을 알아보지 못한다. 알고 보니 교통사고 후유증인 일시적 시각장애로 추녀를 미녀로 인식했다는 진단이다. 상처 입은 소중은 태풍에게 복수하리라 이를 갈고, 건물의 외관보다 기능이 먼저라고 주장하던 그는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퍼뜩 떠오르는 영화는 패럴리 형제의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다. 그저 그런 남자 할에 비하면 강태풍은 파트너를 엄선할 이유가 충분해 보이고, 너무 무거운 여자 로즈마리에 비해 왕소중은 평균치에 가까우며, 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최면술이 아닌 교통사고라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까. 그 밖에도 추녀와 미남(혹은 그 반대)의 만남을 다루는 로맨틱코미디는 대개 비슷한 공식을 따르게 마련이다. 결점은 사랑의 힘으로 극복되거나 장점으로 승화한다. 관건은 이를 풀어내는 방식, 그러니까, 공식의 뼈대 위에 디테일을 붙여가는 능력이다. 교통사고가 시각장애를 유발하고, 그게 하필 “폭탄”을 “여신”으로 탈바꿈시킨다는 설정을 받아들인다 해도 <내 눈에 콩깍지>를 뻣뻣하게 굳어버린 캐릭터와 플롯으로 일관하는 영화라고 평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 <7급 공무원>의 강지환이나 드라마 <스타일>의 이지아를 기억한다면 대놓고 과장하는 그들의 연기도 극 초반까지는 일부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그렇지만 약혼녀를 잃은 강태풍이 마음을 닫아버렸다는 식의 설명을 늘어놓는 각본가나 이를 고민없이 찍어낸 연출가는 항의를 받을 만하다. 더 큰 문제는 일관성이 없다는 데 있다. 중요한 건 내면이라는 진리를 깨달은 강태풍과 달리 “머스마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이지아가 변하지 않는 까닭은 뭘까. 미와 사랑의 상관관계를 다루는 영화가 이에 대한 어떠한 관점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건 상당히 문제적이다. 그나마 마음을 끄는 건 침팬지부터 새끼 고양이까지 여주인공의 직업 덕에 함께 출연하는 사랑스러운 동물들이다. 한국 연출가와 일본 작가의 협업을 꾀하는 글로벌 프로젝트 ‘텔레시네마7’의 첫 타자.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 <별을 쏘다> <천국의 계단>, 영화 <러브> 등의 이장수 감독이 연출했다.

<박스오피스> '2012' 압도적 1위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할리우드의 재난 블록버스터 '2012'가 주말 박스오피스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16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스크린 가입률 99%)에 따르면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2012'는 13-15일 사흘 동안 전국에서 상영관 858개를 차지해 관객 130만704명(64.5%)을 모았다. 개봉 첫 날인 12일 동원한 30만명을 더하면 누적 관객 수는 160만5천147명이다. 박예진ㆍ임창정이 주연한 '청담보살'은 2위로 출발했다. 470개 상영관에서 38만4천278명(19%)을 모아 11일 개봉 이후 누적 관객 수는 55만8천324명이다. 3주 동안 정상을 지킨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3위로 내려섰다. 12만2천117명(6.1%)을 더해 누적 관객은 244만2천426명을 기록했다. 6만1천927명을 더한 판타지 로맨스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4위를 지켰다. 지난달 28일 개봉해 누적 관객은 67만3천7명이다. 조재현ㆍ윤계상 주연의 '집행자'는 세 계단 내려선 5위로, 5만4천730명을 더해 누적 관객 32만2천319명을 기록했다. 12일 함께 개봉한 텔레시네마 시리즈 '천국의 우편배달부'와 '19'는 6~7위를 차지했다. 관객은 각각 3만4천158명, 1만3천563명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은 세 계단 밀려났다. 1만1천544명을 더해 지난달 28일 개봉 이후 누적 관객은 32만1천863명이다. '펜트하우스 코끼리'와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은 9-10위다. eoyyie@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talk show] “1년 개봉작 몽땅 본 적도 있어요”

이슈가 된 영화가 있으면 단체관람한다. 그것도 연례행사에 가깝다. 최근 화제작에 대한 질문을 공식석상에서 받으면 “바빠서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한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는 거의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협소한 경험과 무관심이 낳은 빈곤한 감수성은, 대개 산업논리로서의 영화에 대한 역설로 이어지기 일쑤. 그들에게 <쥬라기 공원>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가 아니라 자동차 150만대였다. 인터뷰어로 나선 영화감독 장항준이 대담을 희망한 이는 진보신당의 노회찬 대표. 평소 영화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관심’을, 정치인 일반의 영화에 대한 이해에 빗대거나 ‘정치인 중에서는 영화를 좀 아는’ 수준으로 넘겨짚어서는 곤란하다.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된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좌중에는 과거 PC통신 시절의 ‘영퀴방’마냥 영화제목들이 난무하기 시작했으니. 그러니까 이 인터뷰는 영화감독과 정치인의 만남이 아니라, 어느 두 영화광의 만남이라 이름 붙이는 게 옳을 것이다. 장항준: 오늘 노 대표님 뵈러 간다고 하니까 ‘휴대폰 번호 교환해라. 나중에 술자리에 모시게’라는 사람이 절반, ‘괜찮겠어? 좌파 감독으로 찍히는 거 아냐?’라는 사람이 절반이더라고요. 사실 제가 정치에 큰 관심은 없지만 노 대표님께서 영화 좋아하신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오셨고, 그 과정에서 좋아하게 된 영화의 변천사 같은 것이 궁금하더라고요. 물론 제 최고의 관심사는 노 대표님과의 차후 술자리입니다만. 노회찬: 저에게는 음주가 중요한 행사입니다. (웃음) 의미있는 행사가 될 것 같으니,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장항준: 영광입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대표님께서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세요? 노회찬: 기본적으로 영화는 다 좋아합니다. 다큐멘터리는 무조건 좋아하고요. 그리고 코언 형제의 영화를 좋아해서 작품이 개봉되면 무조건 봅니다. 장항준: 뜻밖이네요. 노회찬: 한국 감독 중에서는 김기덕 감독 영화 좋아하고요. 장항준: 센 거 좋아하시는군요. 노회찬: 그렇죠. 에스프레소 계통으로. (웃음) 한때는 이란영화도 많이 봤고 터키영화, 유고영화… 할리우드풍이 아닌 영화들을 좋아했어요. 그리고 문제의식이 있는 영화들. 최근에 봤던 영화 중에서는 <이리나 팜>의 여운이 길게 남더라고요. 장항준: 문제의식있는 작품 중에도 본질을 살짝 덮은 영화들이 있고,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이 있잖아요. 저는 고등학생 때 영화쪽으로 진로를 정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음악선생님께서 부르시더라고요. 그리고 일일찻집 티켓을 하나 주시더니 ‘서울대 앞 녹두거리의 어느 다방에 가면 생전 보지도 못한 영화를 하나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찾아서 다방에 들어갔더니 커튼 사이로 불빛이 간간이 새어나오고 있었어요. 보니까 24인치 텔레비전 앞에 수십명이 담배를 피우며 영화를 보고 있더라고요. 그게 <전함 포템킨>이었어요. 노회찬: 아, 저도 그 이야기하려고 했었어요. 저도 에이젠슈테인 영화는 구할 수 있는 데까지 다 구해서 봤어요. 장항준: 그때 ‘영화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대사없이 자막과 음악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게 가슴 벅찬 무언가를 주더라고요. 그때부터 센 영화들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결국 발견한 제 취향은 에미르 쿠스투리차 감독의 영화였어요. 코미디이면서도 몽환적이고, 냉철하지는 않지만 다시 돌아보게 되는 사회비판이 담겨 있더라고요. 대표님의 취향은 어떻게 변해왔나요? 노회찬: 저희 부모님은 두분 다 피난민이셨고, 저는 그때 부산에서 태어났죠. 피난민촌에서 생활하느라 어려웠는데 그런데도 부모님이 학교 교육보다 문화예술을 중요시하는 분들이셨어요.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인데, 제가 어릴 때 방 하나에 다섯 가족이 살았단 말이에요. 그런데도 그 와중에 두분이 가끔 부산에서 하던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가셨어요. 그리고 저도 초등학생 때 한달에 한번 이상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서 영화를 봤는데, 그때 채플린 영화를 많이 봤죠. 그 기억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는 그해에 개봉한 영화를 모두 본 적도 있어요. 노트에 감독 이름도 적고, 나름 별점도 매기고. (웃음) 그때까지는 정말 마구잡이로 영화를 보다가 그 뒤에 사회문제에 눈을 뜨면서 취향이 달라지게 됐죠. 장항준: 학창 시절에 많이 보고 감동받은 영화들은 대부분 미국영화들이었을 것 같은데요. 대략 어떤 영화들이었나요? 노회찬: 당시에 네번 본 영화가 있는데,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왔던 <젊은이의 양지>였어요. 그 영화도 사실은 미국사회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생겨난 문제들에 관한 이야기였죠. 장항준: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촘촘하게 잘 만든 영화인 것 같아요. 노회찬: 네번 중에 두번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얼굴 보려고 간 것입니다만. (웃음) 그 시절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이 두편인데, <닥터 지바고>와 <대부>였어요. <닥터 지바고>는 중학생 때 누나가 단체관람하는 걸 따라가서 처음 본 이후로 지금까지 다른 판본으로 10번 넘게 봤죠. <대부>가 개봉했을 때는 학생이어서 당연히 볼 수 없었는데 사복 입고 가서 봤고요. 장항준: <대부> 3부작 중에서는 몇 번째가 개인적인 취향에 맞으시던가요? 노회찬: 2편이죠. 1편도 손댈 데 없이 완벽하다고 생각됩니다만 2편에는 서사성이 있잖습니까. 제 취향이 그쪽 계열이기도 하고요. 장항준: 저도 최근에 기고할 일이 있어서 <대부2>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요. 저는 2편이 시리즈의 1편인 것 같아서 좋았어요. 다시 보면서 예전에는 별 생각 없이 넘어갔던 장면에서 크게 감명을 받았는데요. 젊은 시절의 비토 콜레오네(로버트 드 니로)가 동네 유지를 죽이러 가는 장면을 보면 바깥 길거리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있고, 건물 내부 계단에는 복도 등이 깜빡깜빡 점멸되고 있어요. 그 어둠 속에서 비토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점멸과 함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를 반복하는 대목에서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더라고요. 노회찬: <대부>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그 대비 효과가 좋은 것 같아요. 1편 결혼식 장면도 그렇고, 2편의 그 장면에서도 살인자는 옥상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아래에서는 축제가 이어지고. 그 대비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긴장감을 주는 거죠. 장항준: 대표님께서 지금까지 보신 영화 중에 가장 좋았던 영화 세편을 꼽는다면요? 노회찬: 너무 난감한 질문인데. 장항준: 지금 이 순간, 아니면 2009년 버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노회찬: <모던 타임즈>를 우선으로 꼽고 싶어요. 그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워낭소리>. 세 번째는 <로큰롤 인생>이라는 다큐멘터리영화. 다큐멘터리는 스토리를 강제하기가 쉽지 않은데 아주 절묘하게 스토리가 만들어졌고, 메시지 자체도 강렬하더라고요. 근간에 본 영화 중에서는 제일 좋았어요. 장항준: 영화를 그토록 사랑하신 만큼 한번쯤은 영화계로의 진로도 고민해보셨을 법한데요. 노회찬: 고등학생 때는 영화도 많이 봤지만 다른 예술과 문학에도 심취했었어요. 당시에는 소설 월간지가 있었는데, 4개를 정기구독했고 그해에 발표된 단편문학을 모두 읽은 해도 있었어요. 음악회는 입장료가 비싸니까 못 다녔지만 전시회는 공짜니까 국전을 포함해서 전부 다녔고요. 그렇게 영화나 소설을 보고 전시를 찾아다닌 이유는 세상을 알고 싶어서였던 겁니다. 사춘기였고 세상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았으니까, 독서를 통해서 간접경험을 하고 <대부> 같은 영화를 보면서 ‘마피아가 저런 거구나’ 같은 걸 알게 된 거죠. 장항준: 성장기에 집안이 부유한 편이셨나요? 노회찬: 그렇지는 않습니다. 부모님께서 자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악기는 하나씩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첼로를 배웠고요. 제가 중학생 때 전교를 통틀어 첼로를 하는 유일한 학생이었습니다. 제 동생은 부모님의 그 방침을 거부해서 많이 맞았고요. (웃음) 음악보다 축구가 좋다고. 장항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교육 방침이네요. 요즘의 하버드나 예일이 원하는 신입생 아닙니까? (웃음) 그럼 영화는 그 많은 취미활동 중 하나였을 뿐이네요. 노회찬: 그렇게 무언가를 많이 했던 건 아니고요. 영화는 제 생활에서 중요한 일부였죠. 못 보고 지나가는 영화도 있잖아요? 못 보더라도 어떤 영화인지는 다 아는, 그런 상태였던 거죠. 당시 우리나라에는 영화잡지가 없어서 일본 <스크린>을 헌책방에서 사다 보곤 했었어요. 일본어는 몰랐지만 한문만 가지고 대충 이해하면서 사진 중심으로. 장항준: 한국의 관객 중에 할리우드 키드가 아니었던 이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대표님께서 마지막으로 할리우드 키드였던 건 언제였습니까? 노회찬: 아무래도 고등학생 때죠. 그런데 제 세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릴 적에 보고도 계속 기억에 남는 것은 <쌀> <갯벌> <마부> 같은 한국영화들이에요. 당시에는 한국영화들이 사회적인 문제를 리얼하게 다루었는데, 이후에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많이 바뀌었죠.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볼 만한 한국영화가 없어지고, 할리우드영화들이 많이 들어오니까 엄청나게 보게 된 거죠. 장항준: 사모님도 대표님과 영화적 취향이 비슷하신가요? 노회찬: 네, 영화 좋아합니다. 처는 80년대 초반에 문화계 근처에서 일을 했었어요. 그래서 안성기, 배창호, 이장호 감독과 매우 친합니다. 얼마 전에 저는 이장호 감독을 처음 만났는데, 제 처 안부를 먼저 묻더군요. 장항준: 80년대에는 비판적인 문화들이 모두 지하로 숨고, 오버그라운드에는 전두환이 육성한 3S가 장악하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저희 세대한테 한국영화는 에로영화였어요. 고등학생 때도 동시상영관을 즐겨 찾았죠. 주로 두 번째 영화를 보기 위해서. (웃음) 혹시 에로영화들도 가끔 보시나요? 노회찬: 제가 도덕성이 높아서가 아니라, <애마부인> 같은 영화는 한번도 안 봤어요. 시간이 나면 더 재미있고 좋은 영화를 보려고 했죠. 장항준: <감각의 제국> 같은 영화는요. 노회찬: 그건 봤어요. 그런데 저는 그 영화도 센세이션을 내세운 작품이지 영화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거의 다 본 편인데, 그런 영화들이 훨씬 좋죠. 장항준: 굳이 에로가 아니더라도, 흔히 길티 플레저라고 하잖아요. 단지 오락을 위해 즐기는 영화는 없으신가요? 이를테면 화끈한 액션영화를 보고 스트레스를 푼다든가. 노회찬: 저는 예전에 EBS에서 일요일 낮에 해주는 영화들을 좋아했어요. 문제작들을 많이 방영했었는데, 그런 걸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곤 했었어요. 액션을 찾아서 보는 편은 아니에요. 그런데 ‘제이슨 본’ 시리즈는 그런 영화 중에서 제일 나았던 것 같아요. <미션 임파서블>이 촌스러워 보일 정도로요. 촬영기를 보니 새로운 시도도 많이 했더군요. 그리고 무기 안 쓰는 것, 그게 참 마음에 들더라고요. 가재도구 같은 걸 무기삼아 싸우는데 보는 재미도 있고. 장항준: ‘제이슨 본’ 시리즈는 액션장면만 봐도 정통 할리우드 스타일과는 다르죠. 예를 들어 마이클 베이 감독은 자동차 추격신을 찍어도 와이어에 매달아서 차를 공중에서 두 바퀴 돌린 다음 반대 차선으로 떨어트려서 쿵쾅거리게 만들잖아요. 저도 홍콩에서 자동차 액션신을 찍으려고 할리우드 출신 액션 스탭들과 상의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이슨 본’ 시리즈처럼 리얼로 가고 싶다고 했는데, 그들은 그게 관객에게 별로 재미를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노회찬: 튀니지에서 촬영한 신 중에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집 창문으로 뛰어들어가는 장면. 거기서 카메라맨도 같이 뛰었다는 거 아니에요. 그게 훨씬 훌륭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새로운 시도나 발상 같은 것들이 의미있게 생각되더라고요. 장항준: 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태도가 멀티플렉스 시대와 함께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예전에는 취미란에 ‘독서, 음악감상, 영화감상’이라고 흔히들 썼었는데, 요즘은 영화를 ‘감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영화 보기 아니면 관람. 이게 영화를 예술로 보느냐 아니냐의 어떤 척도일 수도 있을 텐데,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대표님의 입장은 어떠신지요. 노회찬: 저는 기본적으로 영화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순수예술처럼 소수들만 향유하다가 사회가 민주화되고 경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고급한 예술을 즐기는 방향으로 변해온 거죠. 예술 자체의 콘텐츠가 대중화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들이 피카소를 보고, 더 많은 사람이 베토벤을 듣게 된 것처럼 말이죠. 장항준: 현장에서 느끼는 좌절감은 그보다 좀더 깊은 부분이 있어요. 마치 막장드라마가 시청률을 올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인데, 예술이냐 아니냐의 고민을 넘어서 좋은 상업영화와 좋지 않은 상업영화로 나뉠 뿐인 것 같다는 느낌이죠. 노회찬: 과거에 영화는 유일한 활동사진이었어요. 그러다 TV가 나왔고, 인터넷이 등장했고, 광고가 발달하면서 이제는 재미없는 영화보다도 훨씬 재미있는 뮤직비디오가 나올 수 있는 시대가 된 거죠. 그만큼 동영상의 세계가 훨씬 확장되었는데, 그럼에도 영화의 영역도 넒어졌잖아요. 마이클 잭슨을 그렇게 많이 들어도 베토벤 역시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듣는 것처럼요. 영화도 그렇게 시장이 확장되면서 예술영화와 재미있는 상업영화가 공존해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기본적으로 팔려야 하니까, 장사가 되는 이야기에 일단 몰두할 수밖에 없지만 기본적으로 시장이 커지는 것은 좋다고 봐요. 장항준: 기본적으로 좌파는 로맨티시즘에서 출발한다고 하잖아요. 노회찬: 그렇습니다. 특히 혁명가는. 장항준: 그런 관점에서 영화에 대한 대표님의 시각도 현장에서 느끼는 것보다는 좀더 낭만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웃음) 노회찬: 그렇죠. 영화라고 하면 일단 좋아하니까요.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영화를 출판산업과 비슷한 관점에서 보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1년에 책 1권도 못 내는 출판사가 90%를 넘습니다. 출판사들도 일단 잘 팔리는 책을 낼 수밖에 없어요. 그나마 양식이 있는 대형 출판사들은 잘 팔리는 책을 내서 번 돈으로 안 팔리지만 있어야 할 책들을 한두권씩 냅니다. 하지만 자금여력이 없는 출판사들은 안 팔리는 책 한권 내고 나면 이후 1년간 책을 못 내는 거죠. 이런 문제는 정책적으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 200권만 찍더라도, 그 책을 찾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 책은 도서관에 꽂혀 있어야 합니다. 그 관점은 영화에 대해서도 똑같아요. 독립영화 중 우수한 시나리오들은 심의해서 영화예술·산업진흥 차원에서 자본을 지원해야 합니다. 장항준: 사실 오늘 대표님 만나러 오면서 어느 정도 생각은 했었어요. 영화를 좋아하신다고 하는데, 보통 좋아하는 정도가 아닐 거라고. 오기 전에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의 김병욱 PD와 통화했는데 ‘너보다 영화 더 많이 아실 것 같다’더군요. 진짜 그렇습니다. (웃음) 장항준(1969년생)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졸업. 1996년 <박봉곤 가출사건> 시나리오에 참여하며 영화계 데뷔. 2002년 <라이터를 켜라>, 2003년 <불어라 봄바람> 연출. 2008년에는 케이블 채널 OCN의 TV시네마 <전투의 매너> <음란한 사회> 두편의 메가폰을 잡았다. 현재 SBS TV의 영화정보 프로그램 <접속! 무비월드> ‘영화는 수다다’ 코너 진행 중. 2010년 <연극열전> 시리즈 ‘감독열전’의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노회찬(1956년생)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창립. 1989년 인민노련 사건으로 2년6개월간 수감생활을 마친 뒤 90년대에 한국노동정책정보센터 대표, 진보정치연합 대표, <매일노동뉴스> 발행인 등을 역임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으로 제17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 2008년에는 진보신당 창당, 현재 상임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

영웅재중의 이름에 크게 기댄 영화 <천국의 우편배달부>

synopsis ‘천국의 우편배달부’ 재준(영웅재중)은 죽은 연인에 대한 원망어린 편지를 보내려 하는 하나(한효주)를 만난다. 남겨진 사람들이 쓴 편지를 천국에 먼저 간 이들에게 배달하고 그들의 답장을 지상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게 자신의 일이라 소개하는 재준의 말이 믿기지는 않지만 하나는 그와 동업하게 된다. 부인을 잃은 남편, 자식을 잃은 아버지를 만나 땅으로 꺼져가는 한숨을 건강한 삶의 에너지로 바꿔놓는다. 둘의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재준의 정체도 서서히 밝혀진다. 아이돌의 영화 도전이 더이상 새로운 이슈는 아니라 하더라도 영화 포스터에 큼지막하게 찍힌 그 이름에 눈길이 멈추는 건 어쩔 수 없다. <천국의 우편배달부>는 영웅재중의 이름에 크게 기댄 영화다. 영화의 주요 타깃층은 당연히 영웅재중 혹은 동방신기의 팬들이다. 그들에겐 ‘영웅재중이 연기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그가 기대치 않은 호연을 펼쳐 진짜 영웅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서툰 연기를 선보였다 하더라도 영웅재중은 언제나 그들 마음속의 영웅이다. 문제는 감동 멜로드라마를 예상한 일반 관객이 <천국의 우편배달부>를 봤을 때 발생한다. 14일 동안 재준과 하나가 천국에 편지를 배달하고 답장 전달 작전을 실행한다는 이야기는 참신하지는 않아도 관객의 감수성을 건드릴 만한 부분이 존재한다. 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연출했던 이형민 감독과 드라마 <롱 베케이션> <오렌지 데이즈>의 각본을 썼던 일본의 기타가와 에리코 작가 역시 머리로 이해하는 영화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무지 감정이입되지 않는 캐릭터, 낯간지러운 대사, 손발이 오그라드는 연기를 어떻게 두 시간 동안 견딜 것인가. 영웅재중의 발성은 답답하고, 한효주는 혼자서 아등바등하는 느낌이다. 김창완, 신구, 주진모 등 훌륭한 조연들이 순간순간 영화에 광을 내주지만 전체와 조화롭지 못하다. 영화의 후반부 재준의 실체가 밝혀지고 이야기의 아귀가 맞물려야 하는 지점에선 급기야 실소가 터져나온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판타지로 폭넓게 소화하는 일본의 문화와 달리 우리에겐 그런 소재가 아직 낯설다. <천국의 우편배달부>는 일본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한국 감독이 연출하는 ‘텔레시네마7’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전영객잔] 언젠가 본편을 보고 싶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적으로 미비하나 놀랍게도 그 미완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호의적 해석을 낳고 있는 영화 <파주>는, 그 때문에라도 관심을 갖고 말해질 자격이 충분하다. 쓴소리조차 무색한 영화에 비한다면 필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많은 호평이 있었으니 이견이 하나쯤 첨부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파주>에 관한 호의적 평가들로는 <씨네21>에 실린 주성철, 김용언, 남다은의 글을 귀담아들으면 좋겠다. 드물게 김봉석만이 <씨네21>의 20자평에서 “인물과 이야기, 어디에도 논리와 일관성은 없다”고 비판적 태도로 잘라 말했다. 나는 <파주>에 대한 그의 평가에 공감한다. 하지만 스무자 정도의 요약으로 재단될 만큼 이 영화가 간단치는 않다. <파주>의 인물과 이야기에 논리와 일관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른 종류의 어떤 집요한 논리와 일관성이 이 영화를 다스리고 있어 그런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 부재하다’는 것과 ‘무언가 강력하게 존재하는 것이 부재함의 인상을 주고 있다’는 건 다른 문제이며 다른 진술이다. 전자가 아니라 후자의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인상으로만 먼저 말하자면 <파주>는 결국 닿고자 했던 목적지에 닿지 못하고 표류하는 상태에서 끝난 것 같다. 나는 이 영화가 표류하는 느낌을 준다, 가 아니라 표류하고 있는 상태다, 라고 쓰고 있다. 이 영화의 만듦새에 헐거움이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의외로 파주의 만듦새가 다소 헐겁다고 보는 편인데 여하튼 만듦새와 무관하게 호의는 존재할 수 있으니 그건 그 자체로 인정하자. 그런데 이때 쟁점은 <파주>에 관한 대부분의 호의적 평가의 근거가 제시될 때 ‘안개 같은 영화, 모호한 영화, 형부와 처제 사이의 금지된 사랑에 대한 묘연한 심리드라마’라는 쪽으로 말해진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건 관객 혼자 만들어낼 수 있는 감상이 아니고 영화쪽에서 걸어오는 서술에 대한 긍정이거나 합의일 가능성이 더 크다. 문제는 이 합의과정에 동참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곳, 어떤 식으로건 관념적인 이 영화가 어렵다, 애매하다고 말하는 쪽은 보았어도 수긍하기 어렵다는 쪽을 거의 보지 못했다. 왜 수긍하기 어려운지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아예 보지 못했다. 어렵지만 어쨌든 수긍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생각을 대체로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안개처럼 다가와 붙잡히지 않는 신비로운 영화로 인식되는 <파주>에는 그러나 앞서 말한 어떤 집요한 논리와 일관성이 진주해 있고 그것이 실제로 사태가 그렇지 않은데 그렇다고 믿게 만들고 있으며 그럴 때 우리는 환상이 여기 서성이고 있음을 감지해야 한다. 안개를 일으키는 환상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그러므로 질문은 이것이다. <파주>는 어떤 환상을 기술하기에 이 영화에 관한 지대한 해석의 사랑을 끌어내는 것일까. 지금은 <파주>의 환상에 대해 말할 시간이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두 가지 상징적인 제시어로 자기의 영화적 정체성을 예고해왔다. 하나가 ‘파주’이고 나머지가 ‘안개’다. 이 두 낱말의 조합 때문에라도 나는 인터넷에 이 영화의 후기를 올린 몇몇 블로거들처럼 한국문학 속의 한 지명으로 이끌린다. 당연한 일이다, 그곳은 ‘무진’이다. 박찬옥이 은연중 파주를 가상의 소도시 무진처럼 보이고 싶어 했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곳으로 나의 생각이 이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964년에 나온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무진은 안개를 명물로 가진 가상의 소도시다.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무진기행>)” 주인공 윤희중이 찾아들던 곳. ‘안개에 휩싸인 채 도사리고 있는 음험한 상상의 공간, 지도위의 어느 곳도 아니면서 도처에 널려 있는 도시, 일상에 밀려 변방으로 쫓겨난 아득한 도시, 문득문득 삶의 한복판을 점령해 들어오는 신기루의 도시’(김훈), ‘어촌도 아니고 농촌도 아닌 규정 불가능한 공간, 안개에 둘러싸인 상상적 관념적 공간’(신형철). <파주>에도 안개가 상주해 있다. 게다가 이곳도 신기루의 도시, 규정 불가능한 상상적 관념적 공간으로 보인다. 누군가는 여기 머무르고 있고 누군가는 들고 난다. 애써 비교하자면 중식이 아니라 은모가 윤희중인 것 같고 중식은 하인숙에 가까울 것이다. 혹은 은모가 파주에 들어올 때 택시에 함께 탔던 나이트클럽 사장(이경영)은 <무진기행>의 미친 여자처럼 당신은 파주로 들어왔습니다(혹은 지금 파주를 벗어나고 있습니다)를 알리는 표지판쯤 될 것이다. 물론 그 유사성에는 빈틈이 많고 두 작품 사이에는 차이가 많다. <무진기행>의 무진은 변화의 징후를 갖지 않지만, 아이의 화상과 한 여자의 죽음과 사랑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관계로 한 타래 얽혀버린 <파주>는 갑자기 솟아나는 세계의 융기가 있다. <무진기행>에는 세계에 대한 결론이 없지만 <파주>에는 세계에 대한 결론이 징후적으로 내정되어 있다. <무진기행>에서 하인숙에게 보내려고 썼으나 찢어버린 편지로 하인숙에 대한 윤희중의 연모의 수준을 알기란 어렵지만, <파주>에서 은모를 위한 중식의 마음은 이제 그의 말과 행동을 따라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무진기행>을 빌려 <파주>를 말하는 것에는 무엇보다 이곳이, 안개 낀 파주가, 말 그대로 신기루처럼 느껴지고 변하지 않는 관념의 섬처럼 종종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곳은 어떤 식으로건 관념적이다. ‘솔직한 막연함’의 설득력은 있으나 그렇다면 <파주>는 전적으로 관념만을 다루는가. 짧게 덧붙여야 할 한 작품이 더 있으며 이번에는 문학이 아니라 영화다. 김소영이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파주>는 더도 덜도 아닌 10여년 전 일산이라는 도시를 떠올리게 한다. 그곳의 도시 개발이 한창일 때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창동의 <초록물고기>를 불현듯 생각나게 한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서울 외곽지역의 저개발의 기억들은 현실에 떠밀려 상실되어가고 소실되어가는 사람들의 주거의 현장을 만들어낸다. <파주>는 분명 서울 외곽의 삶이라는 발전과 소실에 대한 지역적인 구체성을 안고 있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구태여 <파주>를 말하기 위해 <무진기행>과 <초록물고기>를 우회한 이유가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파주>에 대한 일차적 환상 하나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무진이 일견 관념적 장소인 것처럼 파주도 그러하다. 안개는 그때 이 영화의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둘째, 하지만 한편으로 <초록물고기>의 일산이 현실의 현저한 저개발의 기억이었던 것처럼 <파주>의 파주는 재개발의 현실적 싸움터다. 중식과 은모는 그곳 철거대책위원회에 몸담고 철거 용역들과 대치 중이다. 그러니까 <파주>는 한쪽으로는 관념적, 혹은 비현실적인데 또 한쪽으로는 현실적이다. 박찬옥은 비현실과 현실 사이에 인물들을 밀어넣는다. 이 지점은 간단치 않고 더 나아간다. <파주>의 비현실성은 중식과 은모의 미완의 관계라는 심리적 긴장상태를 은연중에 보장한다. 한편 현실적 상황은 저 밖의 괴물들과 싸우는 활동가(중식)의 사회적 믿음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이중의 계통을 꾸린다. 의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더 깊어져, 미학과 윤리학으로 번진다. 비현실적인 파주에 대한 인상과 그 안에 있는 미완의 관계는 안개의 미학으로 심화되고, 현실적 싸움과 그 싸움을 이끄는 활동가와 주민들의 투쟁은 윤리학으로 심화된다. 미학과 윤리학. 이 둘의 상승적 기운과 효과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영화에는 그러니까 중요한 한 순간이 있다. 투석과 화염이 난무하는 곳을 느린 화면으로 지나친 다음 건물 위로 올라간 은모는 물대포를 맞으며 용역 깡패들과 싸우는 중식에게 “왜 이런 일을 하세요. 이 일이 형부한테 무슨 보람이 되죠?”라고 문득 묻는다. 중식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글세… 처음엔 멋있어 보여서 한 것 같고 그 다음엔 내가 갚을 게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그냥 늘 할 일이 생기는 것 같아. 끝이 안 나”라고 답한다. 선언적이기는커녕 최소한의 자신감도 결여되어 있는 이 말, 그러나 어떤 선언보다 울림이 있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사람의 윤리를 근거로 이 영화의 미학을 온당하게 믿고 싶어진다. 저 불확실의 윤리, <파주>에는 안개가 낀 것처럼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지금 몽롱하구나, 라고. 그가 자신의 활동에 대한 적절한 이유를 대지 못할 때 그 솔직한 막연함이 영화 일단의 막연함에 대한 믿음의 근거로 받아들여지는 환상이 작동한다는 것이 지금 이 부분에서 나의 요점이다. 물론 이 환상은 받아들이기에 나쁘지 않다. 그 감정의 파동은 아름답다. ‘영화를 보는 동안’ vs ‘영화를 보고 나서’ 하지만 문제는 지식인 남자의 윤리적으로 올바른 그러나 가식 떨지 않고 이유를 찾지 않은 그의 대답이 이 영화의 미학적 행위를 결정적으로 관할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는 데 있다. 이 장면이 영화 <파주>에서 가장 공들여 찍은 장면 중 하나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우리는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그 남자 중식의 고뇌에 기원한 망설임과 이 영화의 미진함을, 그리고 그 남자의 세계에 대한 근심이 <파주>의 세계에 대한 근심인 것처럼 받아들여져 그의 막연함이 이 영화의 막연함에 대한 준거로 삼아지는 것을. 이때 인물의 고뇌를 통하여 윤리에 빚진 다음 <파주>의 미학에 응당함을 부여하는 잠정적 결론에 관객은 스스로 도달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런 다음 이 영화는 안개 같은 것이라고 탄식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일단 이 환상은 너무 아름다워서 한번 믿으면 회피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이 해석의 덫을 경계해야 한다. <파주>의 미학과 <파주> 속 특정 인물 중식의 대의적 윤리는 아무 상보적 관계가 없다. 이것이 걷어내야 할 첫 번째 <파주>의 환상이다. 그의 윤리는 올바르지만 <파주>가 애매해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러니 더 큰 환상을 말할 차례다. 이렇게 재차 물어보자. 정돈되지 않고 미완의 느낌을 주는 <파주>의 인상이 주인공의 윤리와 작품의 미학을 혼동하는 것에서 오는 오해라고 하자.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 아닐 것이다. 그의 윤리는 그의 것으로 두고 이번에는 영화의 구조에 대면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이 영화가 모호하고 애매하다는 것은 이야기, 즉 <파주>의 서사가 그러하다는 것인가. <파주>의 서사는 ‘영화를 보는 동안’ 단숨에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의 서사를 요약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나는 많이 보지 못했다. 아니 일반의 관객이 전체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들 중 누구라도 이것이 형부와 처제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라고 자신있게 일축하는 건 자주 보았다. 이때 ‘영화를 보는 동안’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나서’라는 표현에 유의해주기를 부탁드린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이야기가 어렵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이야기를 요약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건, 또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영화를 보고 나서도 도저히 이야기가 요약되지 않는 영화들이 있다.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들이 그렇다). 그 말에는 차이가 있다. ‘서사’와 ‘신의 배열’은 미묘하게도 실상 다른 영화적 항목이다. 좋은 영화에는 그 둘 사이의 조화가 필요하다. <파주>는 신들의 관계를 느끼기에 어렵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보는 동안 서사 파악의 난점을 불러오는 실제적인 이유다. <파주>는 의도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이 이야기에서 미로에 빠지도록 신들을 배열하고 있다. 하지만 보고 나면 이야기는 요약할 수 있다. 그건 어떻게 가능한가. 결정적으로 “은모야, 난 단 한번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라는 말이 등장할 때 대부분은 이 영화의 서사적 열쇠를 쥐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한마디의 대사는 문득 우리가 <파주>의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심을 심어준다. 지적한 것처럼, 이로써 많이 사람들이 이 영화를 금지된 사랑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영화구조상 좀더 복잡한 문제가 있다. 결론으로 가기 위해 그걸 말해보자. 방치된, 수습되지 않은 것들 박찬옥의 <질투는 나의 힘>을 몇 차례 보아도 계속 남는 인상은 영화가 지루하지 않은데 무언가 펼쳐놓은 것들을 채 수습하지 못하고 방치된 상태로 끝맺는다는 것이다. 영화의 음성이 과장되지 않고 과묵하고 차분하여 그것에 끌려 보게 되는데 그러자면 좀 주마간산 격이다. 물론이다. 수습되지 않는 것은 수습되지 않는 대로 놓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방치되어 아름다운 영화가 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방치됨을 고안할 것인가는 영화의 몫이다. 그냥 놓아지는 것이 아니라 놓아진 것 같은 느낌을 주도록 고안되는 것이 방치를 아름답게 하는 영화의 형식이다. 박찬옥의 <파주>에서 그 방치됨은 고안되지 않고 불철저하다. 편집 전문가가 아니므로 그냥 한명의 관객으로 말하자면 <파주>는 커팅 포인트(숏의 편집점)가 불안한 지점이 많다고 느껴진다. 혹은 신 배열이 좋지 않아 내내 서성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신이 서성이는 것과 다른 평자들이 지적한 이 영화의 안개 같음, 모호함은 멀고도 다른 문제일 것이다. 물론 박찬옥은 세계의 전체가 있고 그 전체의 일부를 어떻게 분산시켜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남다은이 적절히 지적한 것처럼 “영화가 모호함을 끌어안고 대면하며 세상 안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파주>의 힘이 있고 그 모호함이 영화 서사상의 모호함이 아니라 세상의 모호함을 대하는 이 영화의 태도”일 수 있다. 이것이 원래 박찬옥이 세계를 보는 방식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인물의 관계가 마침내 영화를 보고 나서 서사로서 완성되는 것에 비해 장면(신 또는 한신 안에서의 숏들)들의 밀도는 종종 중요시하게 생각되지 않는 것 같다. 이 점이 바로 영화를 보고 나서 서사는 요약할 수 있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서사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 이런 예를 들고 싶다. 언젠가 극장에서 한 영화의 예고편을 상영한 다음 연이어 그 영화의 본편을 상영한 적이 있다. 이 행태가 이미지 학습의 효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경험했다. 적어도 그 극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예고편이 미리 짚어준 영화의 포인트마다 정확히 한번도 빠짐없이 반응하여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관객의 웃음은 준비되어 있었다. 정확히 예고편에서 알려준 지점에서 웃는 것이 학습의 효과였다. 예고편은 언제나 그 영화의 전부가 아니라 본편을 위한 전략이다. 당연하지만, 예고편은 본편의 신 순서를 전략적으로 뒤섞는다. 그때 예외없이 편집이 중요하며 그때 몇개의 신들을 배치하는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은 첫째 어떻게 궁금증을 유발할 것인가이며, 그러기 위해 둘째 어떻게 방점들을 찍어야 할 것인가이다. 마침내 그걸 다 보고도 관객이 얼마간은 알았다고 생각하지만 또한 얼마간은 알지 못한다고 느껴야 뛰어난 예고편이다. 그러므로 모든 예고편이 가져야 할 최상의 비수는 환상에의 기술이다. 본편을 괄호 안에 넣고 지금 그 본편에 대한 환상을 일구는 것이 예고편이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뛰어난 예고편이다 말을 돌릴 필요가 없겠다. 비유컨대 <파주>는 뛰어난 예고편이다. 나는 안개 같음, 모호함, 등으로 묘사되는 찬사가 <파주>의 이 예고편식 구조가 지닌 환상의 기술에 대한 환호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파주>는 111분짜리 예고편인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파주>의 본편은 따로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파주>는 세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그 형성의 의지가 있었음을 예고하는 데서 그친다. 이것이 이 영화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미스터리 구조의 플래시백’과 ‘방점의 에디팅’은 구체적 기능이다. 영화에는 두번의 문답이 있다. 은모가 학생들과 공모하여 중식을 놀렸을 때 중식이 “왜 그랬니”라고 물으면 은모는 “우리 언니 건드리지 마”라고 말한다. 얼마 뒤 장면에서 중식이“3년 전에 왜 그랬니”라고 물으면 은모는 “혼자 못 살아간다는 게 두려워서요”라고 답한다. 시간의 혼란을 느끼며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재빨리 답을 찾아야만 한다. ‘언니를 건드리지 말라고 한 건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은데, 그건 8년 전이다. 그런데 3년 전에 왜 그랬냐고 묻는 걸 보면, 이 질문은 그 뒤에 다른 일이 있었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식의 빈칸을 남겨두고 오가는 미스터리 구조는 흥미진진하다. 우리는 이후에 알게 된다. 첫 번째 대답과 두 번째 대답에 모두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두려워서요’와 ‘당신 밑에서 살아가는 게 두려워서요’라는 중의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많은 신이 매번 뒤로 밀리는 답안지처럼 수수께끼 같다. 우리는 첫 장면에서 확신하지 못하고 유사한 다음 장면에서 확신한다. 혹은 영화를 보는 동안 확신하지 못하고 본 다음 확신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이 확신이 사후적 승인이라는 데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녀의 욕망과 두려움에 대한 수수께끼 같은 수신호를 먼저 받은 다음, 그 대답으로서의 정보는 나중에 받게 된다. 그런데 궁금하다. 그렇다면 그와 그녀의 욕망이 전이되는 순간은 언제였던가? 욕망이 전이되는 장면을 보지 못했는데 그들이 서로 욕망한다고 우리가 확신하게 된 것은 아닌가. 욕망의 장면에 대해 우리가 본 경험치는 부족하고 사후에 정보로서만 그렇다고 인정받도록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솔직하고 싶다. 당신은 <파주>를 ‘보는 동안’ 은모의 욕망과 중식의 욕망을 접한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은모가 계단을 급히 올라서 중식의 안위를 살피고, 연행된 그의 전화를 받으며 우는 것으로? 한발 물러서서 그것이 암시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암시를 배열하는 것으로 욕망을 전이시키지 못할 것이다. 오직 방점뿐이군 우리는 <파주>가 미스터리를 위한 플래시백 구조라는 걸 이상에서 말한 셈이다. 이런 구조에서 중심이 되는 건 어디에 방점을 찍는가 하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미스터리는 방점이 좌우한다. <파주>는 시간을 여러 차례 옮겨가고 있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방점을 제시한다. 그중에서 영화의 중·후반부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장면이 연이어진다. 은수가 죽고 중식과 은모는 단둘이 산다. 같이 트럭에서 장사하는 중식과 은모의 신이 지나면 곧장 시장에서 브래지어를 함께 고르는 중식과 은모의 신이 이어진다, 그 다음 공부방에서 중식과 은모가 돌아올 때 집 앞에 자영이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기 사진을 보여주면 중식은 운다. 그 다음 신에서 자영의 전화를 받고 중식은 활기차게 나간다. 그 다음 신에서는 중식과 은모의 집에서 회의가 열린다. 자영이 중식과 은모의 관계를 염려하고 은모가 듣는다. 그 다음 중식이 연행되었다고 자영이 은모에게 알려주고, 은모는 유치장으로 중식을 만나러 간다. 오는 길에 은모는 인도행을 결심한다. 바로 이어지는 다음 신, 현재로 돌아와 장미아파트에서 용역 깡패와 싸우는 중식에게 가서 은모가 질문을 던지고, 연이어지는 신에서 마침내 중식의 고백이 나온다. 몇개의 신을 놓쳤을 수도 있지만 대략은 맞을 것이다. 이 신들의 연결은 벅차다. 신마다 거의 하나씩의 외상 또는 전환점 또는 사건들이 놓여 있다. 따지자면 어마어마한 변화와 진실 출몰의 지점들이 총망라 되어 있다. 이 영화가 포괄하던 앞과 뒤의 문제가 모두 터져나오는 지점들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그걸 보여주는 신들은 오래 머무르거나 망설이지 않고 인물의 아주 일부분적인 상징적 제스처만 보여주고 넘어간다. 가령 브래지어를 고르는 중식과 은모는 은수를 잊은 것 같다. 다 나은 아기의 사진을 본 중식은 외상에서 벗어난 것 같다. 그러다 갑작스런 연행을 당하고 그런 그를 본 은모는 진짜 멀리 가는 가출을 결심한 것 같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면에서 그녀는 이미 돌아와 있고, “왜 이 일을 하느냐”는 갑작스런 질문을 던진다. 그 다음 은모의 방을 찾은 중식과 은모는 끌어안는다. 이 뒤의 장면들을 거론해야겠지만 이 정도의 예시로도 벅차다. 이 연속된 신에서 우리는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아니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여기에는 너무 쉽게 물러서는 트라우마와 너무 많이 출몰하는 새로운 사건들이 들어찬 것은 아닌가. 영화의 구조인 신이 내밀하게 상황을 포괄하지 않고 넘어가버리는 방식의 반복으로 은수가 죽은 뒤 단지 몇신 만에 많은 걸 털어버리거나 새로 문제를 설정한다. 숏과 신이 그 정보와 변환의 홍수 속에서 미처 세계의 모호함과 아픔을 다 담지 못하고 매번 부서지면서, 다음 신, 그 다음 신으로 넘어가다가 마침내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 없다”는 대사에 모든 걸 맡기고 있다. <파주>는 매우 많은 신에서 사건이나 정보의 매듭을 너무 세게 묶은 다음 때로 납득할 수 없을 만큼 그 매듭을 너무 쉽게 끊어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세게 묶은 다음, 쉽게 끊어버리는 이 구조적 결단은 <파주>에서 지속적이며 일관적이며 잘못된 선택 같다. 금지된 사랑 혹은 그들은 사랑하였다.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를 말하기 위해 괄호 속에 쳐진, 존재했어야 할 그 순간의 감정의 부재함은 안타깝다. 서사는 되돌아와서 질문에 대답을 줄 수 있지만 감정의 신의 빈칸은 이미 시간을 따라 지나가버렸다. 박찬옥은 영화의 리듬으로 세계의 리듬을 형성하는 것에 골몰하지 않고 영화의 방점찍기로 전체라는 세계를 예고하는 것에 골몰한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가 예고편처럼 보인다는 건 그런 뜻이다. 방점에 골몰할 때 영화는 신별로 개별의 정보를 다루고 플래시백으로 숨긴 뒤 그것이 거대한 세계의 이면인 것처럼 행세하게 된다. 박찬옥은 방점의 사이사이를 느끼게 하기보다, 그 방점을 너무 여러 번 찍는 것에 주력했던 게 아닐까. 나는 그런 방점의 연쇄가 묶어낸, 숏과 신이 세계를 버티지 못하고 뒤로 넘겨지는 그 영화적 세계관에 공감하기 어렵다. 그건 잘 만들어진 텔레비전 시트콤이나 유능한 예고편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보는 동안의 감흥이 있어야 누군가는 기술적 문제에 집착한다, 이것이 정색하고 물어야 할 만큼 중요한가, 라고 반문할 것이다. 중요하다. <파주>의 서사가 ‘무엇을(그들은 사랑했다)’이라는 목적어를 결코 놓치지 않은 것에 비해, <파주>의 신의 배열들은 ‘얼마나(그들이 지금 이 순간 이만큼 사랑하고 있다)’라는 영화적 경험의 현재적 밀도를 지나치게 놓쳤기 때문이다. 때로 영화에서는 그것만이 전부다. 사후적으로 그들이 얼마나 사랑했는지 설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보고 있는 그때에, 그 흐르는 시간에, 목도하고 대면한 그 순간에 느낀 맨눈으로서의 감정의 덩어리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거기에 바로 드라마틱한 것과 시네마틱한 것의 차이가 있다. 나는 보는 동안 감흥을 미루고 보고 나서 해독으로 뒤늦게 감흥을 되찾는 영화를 지지하지 못하겠다. 그러므로 박찬옥의 <파주>가 미완성 교향곡인 것처럼 말해지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우리는 그 순간 음악을 들어야지 악보를 해석한 다음 음악이 훌륭하다고 말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 언젠가 <파주>의 본편을 보게 되면 좋겠다.

[세계의 관객을 만나다-LA] 아주 좋았다, 그런데 마지막 5분…

1960년대 초 영국을 배경으로 영민한 십대 소녀의 성장을 다룬 <에듀케이션>(An Education)은 2009년 독립영화계의 단연 화제작이다. 선댄스영화제에서의 호평이 무색하지 않게 영화를 본 관객의 입소문 역시 자자하다. 목요일 저녁 선셋대로의 아크라이트 극장 앞. 많은 영화들의 레드 카펫 행사가 이루어지는 극장이라 미처 치워지지 않은 카메라 라인 앞에는, 다른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이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화기애애한 장면이 펼쳐졌다. 그 앞에서 <에듀케이션>을 보고 나온 스티브 루돌프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에듀케이션>을 보러 오게 된 이유는 뭔가. =지난 주말 이곳에서 코언 형제의 신작 <시리어스맨>(A Serious Man)을 보러 왔을 때 트레일러를 봤다. 영화를 꼭 극장에서 보아야 한다는 주의는 아니었지만, <시리어스맨>을 보면서 이런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도 영화관을 찾게 되었다. -영화관에서 보아야 할 영화라. 얼핏 생각하기에 두 영화 다 이른바 대규모 블록버스터급은 아니라서 오히려 반대의 경우일 것 같은데. =<시리어스맨>은 영화 한컷 한컷에 생각을 많이 담았다. 큰 화면에서 관람하다보니 작은 화면에서 봤으면 그냥 지나쳤을 디테일들이 보여서 좋았다. -그럼 <에듀케이션>은 극장에서 볼 만했나. =그냥 영화가 시작한 지 한 10여분 지나는데 ‘와- 이 영화 상당히 훌륭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계속 아주 좋았다. 사실 론 셰르픽 감독의 이전 작품인 <초급 이태리어 강습>(Italian for Beginners)을 재미있게 봐서 감독에게 기대감이 있었다. 그 작품은 도그마영화라서 두 작품을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하기는 무리일 것 같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 영화도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잘 끌어냈다는 정도?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은 어떤가. =사람 사이의 관계, 그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을 아름답게 담아냈다. 어떻게 보면 뻔할 수 있는 연애에 대해 1960년대 초 영국사회를 배경으로 십대 소녀와 그녀의 중산층 가족, 그에 대한 그녀의 미묘한 감정을 유려하고 아름답게 잡아냈던 것 같다. 각자가 서 있는 상황들이 모두 이해되는 좋은 시나리오였다. -아주 재미있었던 모양인데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있던가. =마지막 5분! 이렇게 엄청난 걸 만들어놓고는 마지막을 평범하게 끝내버렸다. 게다가 내레이션으로 끝내다니. 시작을 내레이션으로 했었나? (아니었던 것 같다고 확인을 받자)그것 봐라. 시작을 내레이션으로 한 것도 아닌데 끝을 소녀의 내레이션으로 끝내다니. 흠. 그게 과연 감독의 의도였을까. 내 생각에는 편집실에서 다른 사람들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 틀림없다. -이를테면 프로듀서의 입김이라든가. =왠지 어느 한명의 의견이라기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한데 섞여서 얼렁뚱땅 영화를 끝내버린 것 같다. 상처입었지만 결국에 주인공은 행복해졌다는 결론으로 꼭 맞추어야 했을까. 인생은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시리어스맨>도 <에듀케이션>도 1960년대가 배경이다. 그러고보니 텔레비젼 시리즈 <매드멘>의 시간적 배경과도 겹치는데, 영화인들이 그 시기에 매력을 느끼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나. =글쎄. 베이비 붐 세대가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가장 영향력있는 세대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1960년대 이후는 각종 매체에서 다각도로 많이 다루어진 데 반해 1950년대 말 60년대 초는 상대적으로 노출 빈도가 낮았던 것 같다. 그래서 작가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