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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9404)

30부작 TV시리즈 <샐러리맨 딜버트>

웃기엔 너무 아픈, 잊기엔 너무 같은 내가 대학생에서 회사원으로 신분이 바뀌고, 악명 높은 선배한테 별것도 아닌 일로 된통 혼이 난 뒤 혼자 씩씩대고 있을 때, 아버지는 조용히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네가 받는 월급에는 상사한테 욕먹는 값도 들어 있다. 그게 회사생활이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흐른 지금, 지난 2월 말부터 EBS에서 방영되는 30부작 <샐러리맨 딜버트>(월∼금 밤 9시)를 보면서 당시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리고 여전히 회사원인 나는, 주인공 딜버트의 모습을 보며 그의 월급이 얼마인지 생각해본다. 딜버트는 엔지니어다.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하이테크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아이큐가 170이나 되는 천재에다 정직하고 책임감 있는 모범직원이다. 하지만 그의 진지함과 진득함은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머리털이 귀 뒤로 뿔처럼 솟아오른 상사를 비롯해 사사건건 시비걸기 좋아하는 여직원 앨리스, 회사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는 냉소적인 왈리, 무능하고 심약한 인턴사원 에쇽은 딜버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가 가진 문제의식은 딴짓거리만 일삼는 동료와 책임회피에 급급한 상사에 의해 무시된다. 결국에는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책임만 떠안게 되기 일쑤다. 그의 친구인 말하는 천재 개 독버트는 한술 더 뜬다. 안경을 쓰고 헬기를 타고 다니는 독버트는 잔머리의 대가이자 인간을 경멸하는 개. 딜버트를 도와주기는커녕 독설을 퍼붓고 곤경에 빠뜨린다. 그가 딜버트에게 해주는 충고는 이렇다. “어떤 일을 해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아무것도 안 하고 직업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낫다.” 강아지의 이기적이고 냉정한 목소리가 조언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샐러리맨 딜버트>는 실적 만능주의 사회에 날카로운 비수를 던진다. 스콧 애덤스가 1989년 이 만화를 신문에 연재했을 때 미국사회는 이른바 ‘경영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직장인들이 거센 풍파에 휘말리고 있을 때였다. 그 역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17년간 일하다가 대기업에서 실직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딜버트는 바쁘다. 감사패를 받고 싶어 불우이웃돕기 모금대회를 개최한 부장도 도와야 하고, 세상의 모든 공휴일을 없애고 대신 독버트 데이를 만들겠다고 상원회의에 진출하는 독버트의 음모도 저지해야 한다. 회사생활을 배경으로 온갖 인간군상의 적나라한 모습을 까발리는 <샐러리맨 딜버트>는 솔직히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딜버트의 진지함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첫 번째고, 둘째로 작품 속 말도 안 되는 세계가 사실은 우리 사회의 복사판이며,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우리 모두가 바로 딜버트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럼 회사를 운영하는 간부인 ‘캣버트’가 되면 되지 않겠느냐고. 조금만 비겁하면 세상이 즐거운 게 아니냐고 말이다. 말이야 맞을지 모른다. 그런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듯하다. 글쎄, 하지만 그렇게 악랄하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딜버트처럼 조금은 손해보면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도 집에 가면 딜버트가 더 편하게 누워 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애니메이션이 밤 9시에 편성됐다는 점이다. 15살 이상 시청이 가능하다는 고지도 강조된다.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어린이용이라는 선입관을 깨고 과감히 밤 9시라는 황금시간대에 편성한 EBS의 시도를 높이 사고 싶다. 무겁고 뒤숭숭하기만 한 요즘 보다는 그래도 이게 좀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정형모/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hyung@joongang.co.kr

차승원 스토리 [1]

"달라 보이나요? 여전히 웃기고요? 그럼 됐군요." 부패 교사 ‘김봉두’가 온다. <신라의 달밤>으로 일약 코믹 캐릭터의 중심으로 도약한 차승원은 <라이터를 켜라>와 <광복절특사>에까지 그 이미지를 밀어붙였다. 차승원의 입장에서 보면 ‘삼부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의 코믹한 캐릭터가 짙어질 것이라는 소문과 달리 <선생 김봉두>는 조심스럽게 전환을 모색하는 차승원의 행보가 보인다. 차승원은 결코 화려한 연기 인생을 살아온 노배우가 아니다. 약력을 펼쳐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흔치 않은 출구를 통해 배우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그가 살아온 ‘또 다른 나’, 영화 속 캐릭터를 따라가며 그를 물어본다. “리딩할 때부터 열심이더니 차승원은 갈수록 에너지를 쏟아낸다. 처음 만난 날이었던가. 문어체 대사를 원래 싫어하니까 그냥 쉽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가도 좋다고 했더니 그는 자신도 그런 생각을 했다면서 시나리오를 고쳐왔다. 고3 수험생처럼 그는 시나리오를 무슨 글씨인지 모를 정도로 새까만 뭉치로 만들어왔다. 그런 그가 요즘은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내놓느라 골몰하고 있다."("<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이 쓴 눈물나는 제작일지". 씨네 21. 361호. 장항준) “제가 워낙 소심해서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제가 관여 안 하면 안 되는 거. 편집실에 가본다든가 포스터를 찍었는데 어떻게 됐나, 이런 거. 개인적으로 바쁜 거죠. 남들은 남는 시간에 쉬면 되지 왜 그러냐 그러는데 제가 못 견디거든요. 거의 뭐 2월 중순까지는 못 쉬었어요. 이제 조금 쉬는 거죠. 근데 쉬는 게 여유롭지가 않아요. 마음은 오히려 찍을 때보다 더 불편하고 안절부절하고. 모든 배우들이 다 그렇지 않나요?” 틀린 말이 아니다. 그의 말처럼 모든 배우들이 다 그렇다. <선생 김봉두>의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는 ‘배우’ 차승원은 모든 배우들이 그렇듯 긴장으로 얼룩진 기다림의 시간을 지내고 있다. “에이 차승원 스토리는 무슨, 설경구 스토리라면 모를까”라고 너스레를 떨긴 했어도, 그는 이제 배우에게 너그러운 휴식이란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은연중에 고백하고 있었다. 만약 차승원이 배우로서의 자의식을 고민하지 않고, “소모품”의 용도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았더라면, 수려한 외모만이 배우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그 말은 정말 우습고 진부하고 가식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차승원은 이미 많은 고민과 그 안에서의 몇 가지 해답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차승원의 말처럼 그는 이미 한 분야에서 “일등을 해본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게 일등을 해본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도 일등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흔치 않은지는 스스로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보통의 경우들이 그렇잖아요. 그 당시의 이슈가 될 만한 남자들을 끌어다가 잘못된 용도로 쓰죠. 그리고는 얘는 별로 가능성이 없을 것 같애, 라고 하죠. 그중에 하나였죠. 소모품이 돼버린 많은 사람들의 전철을 밟아왔던 거죠.” 차승원은 그렇게 영화를 시작했고, 또 동일한 이유로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왔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기 싫어한다. 자멸의 시간을 앞당겨 간단하게 폐기처분당할 수도 있었던 궤적을 그는 한마디로 일축한다. “내가 아닌 내가 나오니까 너무 싫었어요. 그건 제가 아니잖아요. 남들에 의해서 그렇게 만들어지고 포장된 거니까.” 그는 99년 말부터 텔레비전 출연을 그만뒀다. 암담했다.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내 안에는 다른 사람이 있단 말이지”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여전히 지금도 “그렇게, 그렇게 방송을 해왔을 거고, 흘러갔을” 것이다. 언젠가 한번은 그 다른 자아를 “꼭 한번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영화의 길이 트인” 것이다. “내가 아닌 나는 너무 싫다” 그러나 그가 “어차피 산업”이라는 단서를 다는 것처럼, 영화 역시 처음부터 그에게 자신 속의 다른 자아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지는 않았다. <홀리데이 인 서울>에서 그의 첫 등장을 기억해보자. 호텔 909호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타난다. 남자는 문 밖에 서 있는 벨보이를 향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없이 느끼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뭐지~?” 차승원이 영화에서 말한 첫 번째 대사다. <홀리데이 인 서울>에서의 차승원은 영화 시작 30분이 지나면 죽어 잊혀지는 인물이었고, ‘완벽한 다리’의 스쳐가는 애인일 뿐이었다. 전직과 외모 탓인지 차승원의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배우로서 그의 용도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저를 보면 고생도 안 하고 나름대로 순탄하게 살아온 것 같다고 얘기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거든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서 그는 라면회사 사장이라는 지위를 얻어 상류층으로 등장했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그러나 약간은 치사한 사장님께서 여배우를 앞에 두고 장황하게 라면광고를 설명하며 하는 말. “너 라면 먹고 싶다!” 대사 속에 드러나는 중의적인 농담이 차승원의 이미지에 처음으로 균열을 낸다. 그러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인물 역시 스스로의 자평에 의하면 그와는 “일치하는 면이 거의” 없었다. <리베라 메>에서 차승원은 어릴 적 트라우마로 연쇄방화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성 범죄자를 연기했다. “일단 비주얼로 센 걸 하면 50%는 관객에게 흡수가 빠르다는 걸”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인지도 모를 그 역은 새로운 도전인 셈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다면 “한번은 그런 걸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장르로 말하면 스릴러가 가장 적당할 것 같다”는 말이 <리베라 메>에서의 희수를 자꾸만 상기시킨다. 그만큼의 아쉬움이 그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오히려 <리베라 메>에서의 연쇄방화범을 맡기까지 차승원에게는 중요한 하나의 성격이 지속적으로 부여된다. ‘바람둥이.’ 영화 <자귀모>에서 그는 자살한 귀신들의 모임의 일원이 되도록 애인을 내팽개치는 몰염치한 바람둥이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신혼여행>에서는 끝내 그 바람둥이의 최후로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명백하게 이 두 작품 모두 배우 차승원에게는 단 한 걸음의 전진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조각 같은 외모가 이끄는 당연한 부정성으로 휩쓸리고 있었다. <세기말>에서 보여준 그의 모럴 헤저드한 면모가 단순한 방식으로 성격화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다시 돌아가 <세기말>은 차승원에게 무척 중요한 영화로 남는다. <세기말>에서 처음으로 차승원이라는 배우에 대해 묘한 느낌을 받았다는 말에 그는 “<세기말>은 저하고 가까운 부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 경우는 그 사람이 충분히 이해가 되겠어요.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못 들어가고, 그래서 욕하고, 그런 게 이해가 돼요”라며 동의를 표시한다. <세기말>에서 차승원이 연기하는 대학강사 부분의 소제목은 ‘모럴 헤저드’였다. 이성복의 시와 루카치의 문장을 비틀어 인용하며 세상을 질타할 줄 아는 지식인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한낮에 다른 여자와 여관방을 찾아 “영혼을 잃어버리는”, 그리고 그외에도 몇명의 애인을 더 두어 결국 간통죄로 인생을 접어가는 유부남을 연기하며 차승원은 처음으로 입방체의 성격을 드러낸다. 여관방에서 나와 차에 붙어 있는 불법주차 딱지를 떼며 “이런 씨발 새끼들”이라고 욕할 때의 그 대학강사의 무식한 표정과 액션은 영락없이 최기동과 양철곤과 최무석을 연기할 때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차승원을 알게 된 건 꽤 오래 전 일이다. 그간 술도 같이 먹고 어울리면서 <신라의 달밤>의 ‘최기동’ 이미지를 많이 봤다. 시나리오를 받아 본 차승원이 ‘이건 날 위해 쓴 시나리오’라는 말을 했는데 조금 오버이긴 해도 차승원의 실제 모습과 굉장히 닮은 인물이다. 기동이로 변신한 게 아니라 자기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니까 편했다. ”("쌈마이? 그건 나만이 할 수 있는 거다". 씨네 21. 311호, 김상진) “저를 잘 써먹은 거죠. 제가 갖고 있는 부분을. 평상시의 차승원을 써먹은 거예요. 지금도 가끔 얘기하는데, 차승원이 이런 걸 누가 알까, 이런 말들을 하거든요. 저한테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쓴 거죠. 없는 거 자꾸 꺼집어내려는 거 억지잖아요. ‘사람’을 알아야 한다는 게 그런 거예요.” 어떻게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코미디 연기를 하게 된 것 같으냐는 질문에 차승원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람을 알아야 그것이 가능하다고 강조해서 덧붙였다(차승원을 알 만한 사람들이 그에 대해 지적한 문구와 말들을 여기에 달아놓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신라의 달밤>의 “최기동 같은 경우는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남성상이에요. 왜 고등학교 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언행을 따라 하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그런 유의 남자예요. 그런 남자가 나는 매력이 있어 보이고 굉장히 투박하고 둔탁해 보이지만 또 따뜻한 마음도 있고요.” 깡패 같은 체육선생으로, 더 깡패 같은 짓을 해가면서, 정말 “어딘가에 꼭 있을 것 같은 사람”을 연기하면서 차승원은 기존의 자신이 갖고 있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었다. 촌티나는 체육복 안에 잘 빠진 몸을 숨기고, 공중을 날아 헛발차기를 하면서 웃음을 자아냈다. 이때부터 차승원은 과장된 코미디 캐릭터 연기라면 누구와도 경쟁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섰고,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움을 심어줬다. 최기동의 캐릭터를 영화배우 차승원과 동일시하는 것은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신라의 달밤>에서 최기동을 연기하는 차승원의 모습은 <라이터를 켜라>의 양철곤과 <광복절 특사>의 최무석에까지 이르러 숙련된 자기만의 스타일을 세워놓은 것이다. <신라의 달밤>에서 마주친 최기동이 차승원 그 자신에게 또 다른 자신으로의 표출이었다면, 관객에게 최기동은 차승원이 연기하기 때문에 더 놀랍고 새로운 캐릭터였다. 그리고 이어진 양철곤과 최무석은 그 놀라움을 불식시키는 명료한 확인작업이었으며 수긍이었다.

프랑스의 홍상수 편애 이유 [3]

감성과 지성의 연금술<르몽드> 2003년 2월26일 게재된 비평 요약문 마침내 홍상수의 세편의 영화가 안목있는 작은 배급회사인 ASC 덕택에 극장에 소개되었다. 그들이 선택한 작가는 지금부터 반드시 주목을 해야 할 감독이다. 단지 또 하나의 걸출한 세계적인 감독이 될 아시아 대륙의 새로운 재능으로서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드물게 나타나는 귀한, 까다로운, 정확한 또 그러면서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대담한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표현을 위한 장치들을 사색의 도구로 변환시키는 능력을 지녔고 그러면서 또 오늘날의 애정과 섹스생활에 대한 냉철한, 또 가끔은 씁쓸하고 비관적인 초상을 그려낸다. 이것은 서울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 세 영화에서 표현된 세계보다 더 보편적이고 더 직접적이고 그러니까 더 가깝게 느껴지는 세계는 없을 것이다. 심리극을 넘어, 모더니티를 향해 세 영화는 각각 아주 조금씩 그들의 비밀을 드러낸다. 이는 느리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이뤄지는데 이야기는 연출의 힘에 의지해 촉각되지 않는 뭔가를 잡아내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 또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그 무엇들과 등장인물들이 그들의 정신상태와 기분과 특히 좌절감을 투사시킨 것의 결과물인 그 무엇인가를 포착해내려 한다. 홍상수의 세편의 영화들은 각각 뭔가 준거점을 찾는 관객에게 정보들을 내주는 데 시간을 들인다. 이는 관객을 일견 대단히 평범한 사건과 시간의 복잡하고 예측이 어려운 조직망 속으로 빠뜨리는 것이다. 일어나는 사건들이란 먹거나 마시거나 남녀간에 시시덕거리거나 기다리거나 버스를 타거나 서울의 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들이다. 그러다 우리는 마침내 정교하게 짜여진 이야기 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이 이야기 구조는 출발점으로 되돌아와 닫히는 형태를 띠거나 이중구조를 가져 시간이 겹쳐지는데, 이러면서 이야기는 이제까지 우리가 보지 못한 방향으로 열린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한 등장인물은 마르크시즘과 유교를 조화시킬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선언한다. 홍상수의 영화가 서로 반대되는 요소들을 혼합시키는 방식에서 이들 영화에서도 <돼지…>의 등장인물의 그것과 비슷한 종류의 바람을 찾을 수 있다. 시간의 해체를 통해 합리성을 위협하는 것, 인과율의 연쇄라는 수평성을 동시성이란 수직성에 연결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그의 영화들은 이렇게 단순한 심리극을 뛰어넘어 영화의 모더니티로 향한다. 이는 인간행동의 불투명함과 무의미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끔찍할 정도로 진실한 감정 개념적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이런 방식이 구체적이고 끔찍할 정도로 진실한 감정들을 묘사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중간 크기나 넓고 긴 컷들은 각 시퀀스의 실제 시간을 준수하고 긴장감을 조장시킨다. 이 긴장감은 매번 해소되는 것처럼 보이다 다음 장면에서 되살아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에서 콘돔이 찢어지는 장면은 그것을 낀 등장인물에게 극도의 불안감을 불어넣는다. 이는 성병에 걸릴 걱정 때문이기보다 이 사건이 그로 하여금 실제적인 접촉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일련의 감정적이고 성적인 흐름 속에 빠진 인물들을 묘사하는데 이들은 대도시 공간 속에서 방황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대상을 발견하는 데 이르지 못한다. <강원도의 힘>만큼 사랑하다 헤어진 다음 이어지는 나날들을 사는 인물들의 안개가 낀 듯 흐릿하고 몽유병에 걸린 듯한, 또 병에 걸렸다 다 나아갈 때쯤과 같은, 아주 차분하게 좌절된 상태를 잘 보여준 영화는 드물 것이다. 세편의 영화 중 가장 형식적으로 정교한 <오! 수정>은 한국의 겨울의 혹독함을 더 강화시켜 보여준 것으로 생각되는 흑백화면에 힘입어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이는 우리가 그들의 행동이 성적인 좌절에 의해 조장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감정들과 맑은 지성을 결합시킬 수 있는 연금술과 같은 이 능력은 우리에게 위대한 감독을 지목해준다.

<섹스 & 시티>의 등장 인물 소개

캐리 브래드쇼(사라 제시카 파커) 수시로 바뀌는 머리스타일과 때로는 지나치게 모험적인 요란한 색의 스커트, 그리고 트레이드마크가 된 캐리라는 이름이 새겨진 목걸이. 캐리의 패션을 보면 뉴욕의 트렌드를 엿볼 수 있다. <섹스 & 시티>라는 제목은 극중 캐리가 연재하는 칼럼의 제목이기도. 연애경력 20여년에 안타 두어개, 홈런 없음. 스스로 연애운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비관하지만, 4시즌에서 에이단의 청혼에 기겁을 하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면 주위 남자들만의 문제는 아닌 듯. 5시즌을 맞아 캐리에게도 새로운 로맨스가 싹튼다고 하니 기다려볼 일이다. 사라 제시카 파커(38)는 <화성침공> <조강지처 클럽>에 출연했다. <섹스 & 시티>의 제작에도 참여한 그녀는, 실생활에서는 배우 매튜 브로데릭과 7년째 행복한 결혼생활을 구가하고있다. 2002년 10월, 아들 제임스를 낳았으며, 그 때문에 5시즌은 8화까지 녹화된 뒤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사만다 존스(킴 캐트럴) 섹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여성의 몸에 남성의 자아’를 지닌 사만다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섹스 도사다. 사만다에게 도전은 있으나 한계란 없는 게 바로 성생활의 즐거움인지라 게이 커플, 레즈비언, 친구 샬럿의 오빠, 72살 먹은 할아버지, 그리고 미스터 투 빅(too big)에 이르기까지 오르가슴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마다않고 눈빛을 빛내며 콧소리를 낸다. 그런 그녀에게도 시련이 있었으니, 진실한 사랑이었던 그이가 ‘너무 작았던’ 것. “어째서 번데기 거시기인 거야! 정말 그를 좋아하는데”라며 오열하는 사만다를 보고 있자면 낄낄거리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삼키기 힘들다. 그런 사만다가 5시즌을 맞아 자신보다 한술 더 뜨는 바람둥이 리차드를 만나 사랑이라는 이름의 게임에 재도전한다. 사만다 역의 킴 캐트럴(47)은 2003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부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미란다 홉스(신시아 닉슨) 변호사인 미란다는 가장 연애에 비관적인 캐릭터. 게다가 미란다는 냉철한 이성으로 친구들의 우유부단함과 남자에 매달리는 모습을 가차없이 비난하는데, 캐리의 말을 빌리면 “미란다의 낙관적인 애정관은 2월의 폭염보다 황당한 것”일 정도. 2시즌에서는 바텐더인 남자친구 스티브 때문에 ‘여피로서의 죄의식’에 시달리기도 한다. 4시즌에서 옛 남자친구 스티브가 고환암으로 고환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것에 절망하는 것을 위로하다가 그만 임신까지 하게 된다. 아이를 낳은 것은 물론이다, 혼.자.서. 이번에 방영되는 5시즌에서는 애엄마가 된 미란다의 살이 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연극배우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 신시아 닉슨(37)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의 연기로 LA연극비평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샬롯 요크 (크리스틴 데이비스) 네 여인 가운데 가장 보수적이라고 놀림을 받긴 하지만, 사실은 그녀 역시 바쁜 성생활을 구가하고 있다. 진실한 사랑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샬롯의 모습은 눈물겹기까지하다. 트레이(카일 맥라클란)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었던 그녀는, 그러나, ‘그이’와의 혼전순결(새삼스럽게도! 정신적인 재(再)처녀화가 될 것이라 생각하며)을 지키며 결혼한 뒤 막상 그가 ‘그것을 세울 수 없음’에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좌절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 4시즌에서 이혼의 아픔을 겪은 그녀의 ‘운명적 사랑’찾기는 5시즌에서도 계속된다, 쭈~욱. 샬롯 역의 크리스틴 데이비스(38)는 드라마 <멜로즈 플레이스>에 출연하였으며, <섹스 & 시티>에 나오는 것처럼 요가 마니아라고. 미스터 빅(크리스 노스) 우리말로 하면 거물(巨物)씨. 이래저래 상상의 여지를 많이 남기는 이름을 가진 이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도 이름도 없이 그냥 ‘미스터 빅’이라고 불린다. 사랑의 아픔만을 주고는 홀연히 떠나버리고, 되돌아오고, 그리고 다시 떠나 버리기를 반복하는 그. 결국 친구와 애인 사이, 사랑하면서도 사랑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캐리와 우정 비슷한 관계로 남는다. 덕분에 ‘미스터 빅’이라는 말은, ‘난생처음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해봤던, 지금은 사귀고 있지 않지만 언제라도 다시 불질러보고 싶은 남자’라는 뜻의 일반명사가 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크리스 노스(49)는 톰 행크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에도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

[제작현장]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얼핏 보이는 방만 아홉 칸은 돼 보이는 조선시대의 저택. 방안엔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된 듯 기품있어 보이는 가구들이 보기 좋게 늘어서 있고 창 밖에 곧게 뻗어있는 대나무들은 정결하게 하늘을 향해 있다. 부용정(芙蓉亭)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정자의 위엄이나 그 밑 연못에 피어있는 연꽃의 우아함까지 보통 부잣집 같아 보이지 않는다. 13일 오후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제작 영화사봄)가 촬영장을 공개했다. 으리으리한 저택이 들어서 있는 곳은 서울 남양주시에 위치한 영진위 종합촬영소의 스튜디오 내부. 제작진은 한창 번성하던 18세기 사대부들의 사치 문화를 묘사하기 위해 4억의 비용과 철저한 고증을 통해 한옥 세트를 제작했다. 영화 <스캔들…>은 배용준, 이미숙, 전도연 등 '톱스타'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배우 세명이 한 영화에 모였다는 사실로 화제가 되어온 영화. 조선 최고의 요부 조씨부인(이미숙)이 바람둥이 조원(배용준)을 내세워 9년간 수절해온 과부 숙부인(전도연)을 유혹한다는 내용으로 18세기 말 프랑스 서간체 소설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소설은 그동안 동명 영화 <위험한 관계>(감독 스티븐 프리어스) 와 <발 몽>(밀로스 포먼),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로저 컴블) 등으로 수차례 영화화 된 바 있다. 이날 촬영분은 조원과 숙부인이 처음 만남을 갖는 장면. 좌의정 부인(전양자)과 숙부인이 조씨부인의 집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조원이 나타나 숙부인을 떠보지만 이 '정절녀'는 쉽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카메라와 조명 세팅이 마무리될 쯤 전도연의 익숙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복의 긴 치마를 잔뜩 안아 든 여배우들이 정자에 올랐다. "조강지처를 여태 못 잊고 혼자 지낸다면서요. 젊으신 분이 무후해서 되겠습니까?"(좌의정 부인) "절개를 지키는 일이 어디 아녀자에게만 해당되겠습니까? 마음속에 백년해로의 배필이 들어설 자리는 오직 하나 뿐인 게지요"(조원) 현장에서 본 이 영화 촬영스태프들의 특징은 점퍼에 모자, 스튜디오 내 먼지 때문에 쓴 마스크까지 복장이 비슷하다는 것. 대여섯 번의 NG 후 이들 중 한 명의 입에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스태프들 안에 섞여 모니터를 응시하는 감독은 <정사>와 <순애보>를 연출했던 이재용. <스캔들…>은 90년대 초반 대학가를 돌며 단편영화의 고전이 됐던 <호모비디오쿠스>를 변혁 감독과 함께 연출하며 이름을 알린 감독이 상업영화계에 들어와 만든 세 번째 영화다. 전작에서 이미 세련된 연출을 인정받은 바 있는 감독은 조선시대 귀족의 생활을 그린 이 영화를 서양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담아낼 생각이다. 조선시대 상류층을 담은 스타일있는 영상이 서구적 음악과 충돌하는 셈. 이를 위해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씨가 프로덕션 디자이너로 참여하며 듀오 '어떤날' 출신의 키타리스트 이병우씨가 음악을 맡는다. 46억의 제작비를 들여 민속촌, 하회마을. 남산 한옥마을, 문경 세트장 등에서 촬영되는 <스캔들…>은 6월 중 크랭크업해 추석 극장가에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남양주=연합뉴스)

할리우드 명 프로듀서 3인전(傳)-하비 웨인스타인 [1]

“할리우드에서는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 <갱스 오브 뉴욕>의 하비 웨인스타인, <디 아워스>의 스콧 루딘, <매트릭스 레볼루션>의 조엘 실버, 이들 3인의 프로듀서는 오랫동안 할리우드에서 일했지만 올해만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은 없다. 지난해와 올해, 그들은 각자 일생 최고의 프로젝트라 할 만한 영화를 제작했기 때문이다. 각자 다른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이지만 그리 많은 나이 차가 나지 않는 그들의 경력에는 몇 군데 겹치는 지점도 있다. 하비 웨인스타인과 스콧 루딘은 <다 아워스> 등의 영화에서 함께 작업했고, 스콧 루딘과 조엘 실버는 로렌스 고든 밑에서 프로듀서 일을 배웠으며, 세 사람 다 유대인이다. 또한 그들은 불같은 성격에 저돌적인 스타일로 일하는 프로듀서들이다. 목표를 향해 전진할 뿐 퇴각을 염두에 두지 않는 그들은, 어쩌면 그래서 할리우드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에너지의 밑바탕에는 그들 각자가 이상으로 품었던 영화를 만들려는 끓어오르는 창작의 열망과 강렬한 의지가 있다. 2003년을 최고의 해로 만든 이들 3인 프로듀서의 성공 비밀을 들어보자. - 편집자 헐크같은, 때론 너무 살떨리는 <갱스 오브 뉴욕> <시카고>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Harvey Weinstein) 2000년 선댄스영화제에 모여든 독립영화인들은 기묘한 정적을 느꼈다. 그해 파크 시티에는 뭔가 빠져 있었다. 이 시원섭섭한 허전함의 원인은 미라맥스의 구매와 대외 활동을 총괄하는 대표 하비 웨인스타인(51)의 결석. 미라맥스의 선댄스 구매 규모는 이미 예전 같지 않았지만, 그가 박테리아성 질환에 걸려 앓아 누웠다는 소식이 나오자마자 파크 시티에는 암 운운하는 추측이 나돌기 시작했다. 한 라이벌 스튜디오의 간부는 이때 분위기를 가리켜 “마치 옛 소련의 안드로포프 사망설이나 옐친 와병설을 연상시켰다”고 재치있게 표현한다. 미국 독립영화계의 권위자 거기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을 조성하는 미국 독립영화계의 권력자이자 인디 배급사 미라맥스를 7대 메이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니 스튜디오로 키운 하비 웨인스타인에게 2002년은 특별히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다. <스파이 키드2>를 빼면 돈을 번 영화도 없었고, 75명의 직원을 감원했다. 그러나 지난 2월 아카데미가 2003년 오스카 전초전에서 미라맥스 영화에 반세기 동안 유례없는 무려 40개 후보 지명(공동제작 <디 아워스>를 제외하면 31개)을 안겨주자 “상도 좋지만 밥벌이도 해야지”라고 꼭 집어 빈정댔던 영화인들조차 잠깐 입을 다물었다. 할리우드의 화제는 이내 웨인스타인이 이번 노미네이션을 받은 작품을 어떻게 주물럭거렸는가에 대한 에피소드로 옮아갔다. 퀸즈 출신의 형제 하비와 밥 웨인스타인은 1979년 미라맥스를 설립했다.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회사를 차린 형제는 효자답게 어머니의 이름 미리엄과 아버지의 이름 맥스를 합쳐 회사 간판을 정했고 록 콘서트를 프로모션하고 작은 영화들을 배급했다. <트위스트 앤 샤우트> <정복자 펠레> 같은 조그만 성공작을 내며 1980년대 내내 천천히 성장하던 미라맥스는 <스캔들>을 제작한 1988년 당시 영국 미들랜드 은행으로부터 500만달러를 투자받고 1989년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북미 배급권을 110만달러에 사들여 2600만달러 흥행기록을 내면서 도약했다. 1993년 웨인스타인 형제는 경영권을 보전하면서 디즈니에 미라맥스를 매각해 소니 픽처스, 폭스 서치라이트, 파라마운트 클래식 등 메이저 스튜디오의 예술영화 자회사 설립 바람에 불을 붙였다. 1994년 반격의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 미라맥스는 대중적 저예산영화를 제작하는 디멘션을 설립했고 이후 밥은 배급 실무와 디멘션의 경영에 집중하고 제작과 배급권 구매, 대외활동은 하비의 몫이 됐다. 미라맥스는 선댄스영화제에서 쇼핑한 영화를 본격적인 마케팅의 지원을 붙여 제대로 배급하는 한편, <펄프 픽션>(1994), <잉글리시 페이션트>(1996), <굿 윌 헌팅>(1997),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으로 칸과 오스카를 접수함으로써 미국 독립영화계의 지도를 고쳐 쓰고 또 인디영화의 배급을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로 뒤바꿔놓았다. 미국 인디영화에 미친 많은 긍정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미라맥스의 쇼맨 하비 웨인스타인의 애칭은 산타클로스나 메시아와는 거리가 멀다. 주류와 비주류를 막론하고 미국 영화인들이 그를 부르는 별명은 협박자, 폭군, 가위손 따위다(공교롭게도 웨인스타인의 제작 데뷔작은 가위 살인극 <버닝>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2002년 연례 파워 101 기사의 캐리커처에서 22위에 오른 하비 웨인스타인을 반대자를 다 깔아뭉개는 헐크로, 밥은 조용히 헐크가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는 브루스 배너 박사로 그렸다. 사람들은 미라맥스가 영화는 고상하고 우아하지만 비즈니스는 난폭하고 공격적인 회사라고 말한다. 하비 웨인스타인은 다른 온화한 예술영화 제작자들과 달리 테스트 시사 뒤 재편집을 구체적이고도 강력하게 요구하고 약속을 완수하지 못했다고 생각되면 제작진이건 경쟁자건 협박하고 직원들의 보수도 야박하다. 1990년 이스마일 머천트는 <브리지 부부>의 배급을 두고 웨인스타인과 흥정하다 “차라리 내가 도로 영화를 사겠다!”고 일갈한 뒤 문을 하도 세게 닫는 통에 유리벽에 약간 금이 갔다는 전설이 있고, <아이리스> <디 아워스>의 프로듀서 스콧 루딘은 영원히 금연을 꿈꾸는 웨인스타인에게 담배 한 박스라는 알쏭달쏭한 선물을 하기도 했다. 물론 제프리 카첸버그나 마돈나처럼 웨인스타인과의 작업을 호평하는 ‘동족’도 있고 “스튜디오 뺀질이들처럼 등 뒤에서 칼 꽂진 않는다”고 호평하는 너그러운 인사들도 없지 않지만. 하비 웨인스타인 주요 필모그래피 <시카고>(2002)<갱스 오브 뉴욕>(2002)<다크니스>(2002)<스파이 키드2>(2002)<아이리스>(2001)<디 아더스>(2001)<제이 앤 사일런트 밥>(2001) <초콜렛>(2000)<말레나>(2000)<무서운 영화>(2000) <사이더 하우스>(1999)<홀리 스모크>(1999)<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벨벳 골드마인>(1998)<재키 브라운>(1997)<굿 윌 헌팅>(1997)<잉글리쉬 페이션트>(1996)<스모크>(1995)<펄프 픽션>(1994)*출연작으로는 <포가튼 실버>(1995)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인터뷰]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배용준

"노출신이요? '요'신이 좀 있죠"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94년 데뷔한 이후 10여 년 동안 10여 편의 드라마를 히트시키며 브라운관을 '점령'했던 연기자 배용준(30)의 첫번째 영화다. <사랑의 인사>, <젊은이의 양지>, <첫사랑>에서부터 최근의 <겨울연가>까지 이미 TV드라마에 확고한 둥지를 튼 그가 이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하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웠을 듯하다. 영화의 촬영현장이 공개된 13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의 종합촬영소에서 만난 배용준은 우려와 달리 머리에 쓴 갓을 제외하고는 온통 흰색뿐인 조선시대 의상이 썩 잘 어울려 보였다. "문무에 능하지만 벼슬을 마다하고 뭇여성들과 풍류를 즐기는…" 몇 번의 인터뷰를 통해 달달 왼 듯한 '멘트'로 쑥스러운 듯 배역소개를 하는 그가 데뷔작에서 맡은 조원이라는 인물은 간단히 말해 '넉살좋은 바람둥이'쯤되는 인물. 부인과 사별한 조원은 말솜씨, 학식, 재산 등 뭐 하나 부족할 것 없는 남자로 다양한 방법으로 수많은 여자들과 사랑을 즐긴다. 자신과 피가 섞이지 않은 사촌인 조씨부인(이미숙)은 그의 첫사랑으로 '정절녀' 숙부인(전도연)을 유혹하라는 그녀의 달콤한 제안을 조원은 받아들인다. 이미숙의 표현을 빌리면 배용준은 "촬영장에서 순직할 지도 모를 정도"로 배역에 몰두하고 있었다. 부담감에 '죽고 싶다'는 말이 입에 밴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설렘도 많고 동시에 두려움도 있습니다. 멋모르고 (영화출연을) 시작했는데 TV와 많이 다르더라고요. 그동안 말투를 부드럽게 해야하는 역만 맡다 강하고 냉소적으로 대사처리를 하는 것도 힘들고, 사극의 예스런 말투도 쉽지 않네요. 감독님이나 선배님들로부터 많은 지도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스캔들…>을 영화 데뷔작으로 선택한 이유를 묻자 "모든 점이 안성맞춤이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영화를 택한 이유요? 모든 게 좋았어요. 연출자가 이재용 감독님이라는 사실도 좋았고, 두 여배우와 같이 연기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캐릭터도 딱이고 제작사가 봄영화사라는 것까지 좋습니다" 부담은 가지만 딱 원하는 영화를 데뷔작으로 선택한 그는 이번 영화에서 몇 가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몸무게를 줄이고 그동안 쭉 써왔던 안경을 벗었다. "한 3㎏정도 뺐어요. 수염 분장은 얼굴살이 빠진 게 보기 좋거든요. 게다가 옷을 벗었을 때 부담스럽기도 하고. 영화 속에 '요'신이 좀 있거든요" 지독하다 할 정도로 몰두하던 대본'연구'를 버리고 현장 연기에 의존하는 것도 달라진 점. '부드러운 남자'에서 '넉살좋은 남자'로의 변신도 처음 해보는 시도다. 같은 원작으로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 <위험한 관계>에서 존 말코비치가 냉소적이고 야비한 인물을 보여줬다면 조원은 이보다는 넉살 좋고 유머도 풍부한 바람둥이다. "진정한 바람둥이요? 부지런해야죠. 시간 배분을 잘 쪼개서 해야 좋은 바람둥이가 됩니다. 바람둥이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요…" (남양주=연합뉴스)

앙드레 말로와 이창동

“앙드레 말로의 삶은 그의 모든 소설들보다 더 소설적이다.” 프랑스 작가이자 기자인 레미 코페르가 그에 대한 소설로 쓴 평전에서 한 말이다. 이는 비단 그만의 평가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러르는 신화이며, 말로 자신이 한 말이기도 하다. 앙드레 말로는 1901년 11월에 태어나서 1976년 11월까지 문학가와 모험가로서 때로는 정치가와 기회주의자로 20세기의 한 시대를 살았다. 1920년대에 말로는 인도차이나에서 반식민주의의 투사로 20대의 모험과 열정에 사로잡힌다. 프랑스 식민주의의 잔혹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세계주의 이념을 실천하는 데 앞장선다. 이러한 그의 탐험은 문학적 상상력으로 발전하여 <왕도> <정복자> <인간의 조건>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인간의 조건>이 콩쿠르상을 받으면서 그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30년대에는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하여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고, 이때의 경험으로 <희망>이라는 대서사시가 탄생한다. 40년대에는 레지스탕스 대장으로 활동하고, 47년 드골을 만나면서 맹렬한 드골주의자로 변신하여 그의 오른팔을 자처한다. 이후 말로의 정치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이제는 더이상 세계주의자 말로가 아니라 프랑스를 대변하는 민족주의자로 완벽하게 돌아선다. 그리고 1959년 문화부를 신설하여 세계 최초로 문화부 장관이 되어, 이후 10년 동안 영욕의 세월을 보낸다. “그의 인생은 한편의 영화다.” 최근 언론들이 이창동에 대하여 쏟아낸 수사 중 하나다. 1954년에 태어나 교사, 소설가, 영화감독, 교수의 이력을 거쳐 장관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의 편력에 대한 평가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1980년대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분단의 질곡과 사회의 부조리를 통찰하는 소설들을 발표하였고, 이상문학상과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90년대에 영화계로 뛰어들어 감독으로서 빛나는 성취를 일구었고, 2000년대에는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월드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제는 21세기 첫 정권인 새로운 시대에서 문화부 장관이 되었다. 앙드레 말로를 굳이 끌어와 이창동을 비견하여 말하는 것은 그에 대한 화려한 수사를 더욱 빛나게 하고 싶음이 아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철학을 가진 정치인을 만나본 경험이 전혀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런 기대를 한번도 가져보질 못했다. 그만큼 모든 문화예술인들의 이창동에 대한 시선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한번에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지만, 앞으로 한국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이라도 놓여진다면 하는 바람이 우리의 작은 소망이다. 앙드레 말로가 오늘날 프랑스를 문화대국으로 발전시키는 데 초석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드골, 호치민, 나세르 등의 뛰어난 전기를 쓴 장 라쿠튀르가 <말로, 시대와 함께한 삶>을 출판한 직후에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문화정책은 미국식의 시장체제와 소련식의 국가주의 사이의 중간노선을 추구했어요. 지방문화원은 정말로 독창적인 생각이었고, 그가 주도한 대규모 전시회는 전시회 문화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어요. 한편으론 말로 정도의 인물이라면 프랑스 문화계를 진짜로 뒤흔들어놓을 수 있었는데, 이해가 안 가는 경우도 많았어요. 하지만 그는 상당한 업적을 남겼고, 제가 말로를 존경하지 않았다면 그의 전기를 쓰지 않았을 겁니다.” 지난 2월27일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에서 이창동 문화부 장관의 취임을 환영하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일부 내용을 발췌해서 옮겨 싣는다. “이제 사실상 처음으로 문화예술인이 문화부 장관에 기용된 만큼 이번 인선이 지금까지의 산업 중심의 문화정책에서 문화 본연의 가치가 중심이 되는 진정한 문화정책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한다. 문화정체성과 다양성의 증진, 문화교류의 확대라는 문화적 관점의 과제가 문화정책의 중심이 될 때 문화산업의 발전이라는 산업적 관점의 과제도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창동은 스스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장관직을 수락한 배경에는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위의 연대회의가 천명한 대승적 차원의 인식을 함께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쩌면 감독으로서의 생명이 끝날지도 모르는 영화계 안팎의 회의적인 시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의 고백처럼 21세기 한국 문화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이승재/ LJ필름 대표

오스카 트로피는 6억달러?

13.5인치 남짓한 오스카 트로피의 가치는 약 300달러. 그러나 오스카 트로피가 움직이는 돈은 6억달러가 넘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는 3월9일치 기사에서 인터뷰와 통계, 전문가의 분석을 종합해 아카데미영화상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달러로 산출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경제 개발원 잭 키저 수석연구원이 추산한, 오스카가 로스앤젤레스 지역 경제에 끼치는 효과는 약 6100만달러. 리무진 렌트 비용부터 시상식 참석 스타들이 얼굴에 주입하는 보톡스 주사 비용까지 포함된 수치다. 그러나 오스카 시상식이 LA의 지역 이미지에 더하는 매혹은 달러로 환산이 불가능하다. 가 산출한 오스카가 움직이는 돈 중 가장 덩치 큰 항목은 물론 아카데미 후보지명과 수상이 낳는 박스오피스 효과다. 미국 내 극장수입, 해외 극장수입, DVD 및 비디오 수입 증가분 3억달러에다 <디 아워스>처럼 오스카 전망으로 투자가 성사되는 케이스의 효과 1억달러를 더하면 약 4억달러에 이른다. 이러한 막대한 보너스를 놓칠 수 없는 스튜디오들은 오스카 홍보전에 총 5400만달러가량을 쏟아넣는다. 캠페인의 최대 수혜자인 업계지 <버라이어티> <할리우드 리포터>는 연간 광고 수입 9천만달러의 35%가량을 오스카 시즌에 벌어들이는 것으로 알려진다. 후보작을 못 본 아카데미 회원을 위한 테이프 배송, 스타들을 실어나르는 전세기와 리무진, 호텔 숙박료도 스튜디오의 캠페인 비용에 포함된다. 행사의 당사자인 아카데미는 운영예산의 95%인 4740만달러를 오스카 시상식 중계권료로 충당한다. 그리고 지상 최대의 쇼로 시상식을 진행하는 데 2190만달러를 들인다. 아카데미쪽에 중계권료를 지불하는 월트 디즈니 그룹의 방송은 편당 135만달러의 30초짜리 스폿광고 58개를 팔아 시상식 본방송 광고 수입만 7800만달러를 올린다. 취재를 위해 코닥극장 붉은 카펫 앞에 모여든 전세계 취재진 221명의 체류 비용은 140만달러, 탤런트 에이전시들의 사후 축하광고 비용은 100만달러로 추산되며 보석상과 유명 디자이너들이 스타들에게 선사하거나 대여하는 귀금속과 화장품, 드레스의 가치도 25만달러로 평가된다. 심지어 대형 TV 제조업체도 2150만 달러의 특수를 누린다. 4200만명이 TV 수상기 앞에 모여드는 바람에 레스토랑 업계는 불황이지만 패스트푸드와 배달음식, 음료수 판매고가 뛰어올라 평소보다 매출이 2500만달러가량 상승한다. 마지막 트로피인 작품상이 임자를 찾은 뒤에도 오스카 비즈니스는 밤새 계속된다. 오스카 공식 뒤풀이인 주지사 파티와 스튜디오 파티를 제외하고도 LA 시내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파티 비용은 약 350만달러, 미국 전역에서 오스카를 빌미로 열리는 각종 자선파티에 들어가는 돈은 약 200만달러에 달한다. 복잡한 계산 끝에 가 추산한 오스카 머니의 규모는 6억4350만달러. 는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예술영화 전문 자회사를 설립하면서 이 액수는 당분간 10억달러선을 향해 계속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카데미상은 이제 오스카를 노리는 작품들이 공개되는 9월 초 토론토영화제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속되는 하나의 계절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