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CASHFILTER365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 검색결과

기사/뉴스(2003)

[시사 티켓] 그러고도 공영방송이라고?

영화명: <주먹이 운다> 관람자: 김인규 KBS 사장, 박효규 책임 프로듀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1월1일부터 완전 기분 잡쳤다. KBS 인기 버라이어티 쇼 <스펀지2.0>에서 한건 터뜨렸다. ‘스페셜하고 재미있는(fun) 지식’이라는 프로그램명이 무색하게, 심각한 여성비하 내용을 공공연하게 방송했기 때문이다. 내용인즉 ‘새해특별기획’이라는 명목으로 유부남 2103명에게 “아내를 소녀시대보다 예뻐 보이게 만드는 최고의 내조는?”이라 물었다 한다. 4위는 술먹은 다음날 “여보, 꿀물 드세요”라고 꿀물을 대령하는 아내다. 3위는 “설거지는 그냥 두세요”라며 집안일 신경 안 쓰게 해주는 아내다. 2위는 “여보,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세요”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는 아내다. 1위는 남편보다 먼저 출근하며 “여보, 저 오늘도 돈 많이 벌어올게요”라고 웃어 보이는 맞벌이 아내다. 그리고 최악의 내조는 ‘꾸미지도 않고 저축만 하는 아내’란다. 얼마 전 “키 180cm 이하 남자는 루저” 발언으로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 <미녀들의 수다>의 추억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KBS가 노이즈 마케팅의 묘를 터득했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정신으로 저런…. 이 와중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KBS 수신료를 현행 2500원에서 올해 5천~6천원 정도로 인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아오… 텔레비전을 잘 안 보면서 꼬박꼬박 당연하게 수신료를 내는 것도 억울해죽겠단 말이다. 진실로, 주먹이 운다.

[그 요리] 요리도 환경입니다

한국에서도 알게 모르게 인기를 끌었던 책 <앗 뜨거워>의 주인공 마리오 바탈리가 실제 텔레비전에 등장해서 책에 묘사된 그 거대한 덩치를 흔들며 요리를 한다면? 바로 <철인요리왕>(Iron Chef)에서 만날 수 있다. 붉은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유아틱한 칠부바지에 이탈리아산 빨간 요리화를 신은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묘한 포스가 느껴진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일본식 등 알아주는 미국 요리계의 거장들이 등장하는 뜨끈뜨끈한- 높은 열량 때문이기도 하다- 프로그램이다. 이들에게 도전자가 나와 일대일 ‘맞장을 뜬다. 격투기라도 할 만한 덩치 좋은 사내들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요리로 결투를 한다. 제한시간 내에 주어진 재료로 누가 더 맛있게(필자가 보기에는 ‘누가 더 칼로리가 높게’) 만드냐가 관건이다. 마치 주방 한구석을 훔쳐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활력이 넘치는 스튜디오를 꾸몄다. 출연 요리사의 실제 어시스트들이 마구 칼질을 해대고, 믹서를 돌린다. 뜨거운 주방 열기가 안방에도 그대로 배달된다. 역시 미국 프로그램답다. 요리사 한두명이 소박하게 오밀조밀 요리를 해나가는 유럽식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서너명의 보조 요리사들이 실제 주방 같은 어마어마한 장비를 다루며 요리를 ‘생산’하듯 한다. 장비들은 왜 그리도 크고 힘이 좋은지 마치 군용 ‘지엠시’ 같은 파워를 보인다(돼지 한 마리라도 통째로 갈아버릴 것 같다). 요리조차도 에너지 과소비다. 에너지만 그런 건 아니다. 프랑스식, 이탈리아식, 그리스식의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데 하나같이 원래의 그 나라 요리가 가진 소박하고 섬세한 정서와 스타일은 없다. 나는 그렇게 살찌는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그리스나 이탈리아 요리는 처음 봤다. 글쎄, 출연자들이 그 나라 요리라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수밖에 없는 걸까. 게다가 접시당 칼로리가 엄청나다. 코스로 먹게끔 전채부터 메인, 디저트까지 만들어 경쟁하는데 한 접시만 먹어도 성인 일일권장량이 될 것 같다(하긴, 미국의 한 패스트푸드점의 디저트 1인분은 자그마치 3천 칼로리가 넘는 것도 있단다). 에너지처럼 칼로리도 과소비다. 아하, 저렇게들 드시니 비만 왕국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요리는 고급이되, ‘웰빙’에 대한 성찰 따위는 없다. 철학? 그런 건 옥수수기름에 튀겨버리라고 그래, 이런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다. 뭐, 신나는 요리 쇼라니까 거창하게 철학 따위가 등장하는 건 그야말로 웃기는 소리라고 해도 이건 좀 심하다. 누군가가 이럴 것이다. “쳇, 요리 프로그램조차도 철학 교수들이 나와서 토론해야 하겠수? 그냥 맛있으면 되는 거지.” 틀린 말씀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맛있으면 그만’에 지구가 다 멍들어서 대책이 없다는 게 문제 아니겠수. 이젠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에서 ‘적은 에너지로 지구를 보존하면서 맛있게’ 먹을까를 고민하는 시대로 변했다. 이건, 이미 우리 생존의 문제니까 말이다. 조리법에 성찰 같은 건 없어, 라고 생각한다면 출연하는 요리사들의 화려한 기술은 볼 만한 눈요깃거리다. 날고 기는 근·현대 요리사들이 이룩한 기술은 죄다 나온다고 봐도 좋다. 저온조리법- 형태를 잃지 않으면서 재료를 부드럽고 맛있게 익히는 기술 sous vide 조리법- 은 물론, 갈고 튀기고 찌는 놀라운 기술들이 죄다 선보인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 MC 김제동

예능인들은 우리가 가장 친근하게 느끼는 연예인이다. 구르고 넘어지고 고함치고 춤추고, 사적인 약점을 농담의 소재로 삼아 쾌활하게 노출하는 그들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수록 나는 그들이 ‘언제나 맑음’을 연출하기 위해 카메라 뒤에 봉인해놓은 우울과 분노, 무거운 생각들의 가공할 부피를 상상하며 아찔해지곤 한다. MC 김제동은 희로애락의 절반만 선택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유난히 여의치 않아 보이는 예능인이다. 그건 ‘분열’을 스스로 강렬히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제동은 웃음을 주는 중에도 농담에서 혹시 파생될지도 모르는 부작용에 신경을 쓰고, 의례적인 마무리 멘트도 허언(虛言)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티가 역력하다. 2인 MC 체제일 경우 그는 대개 여성적 역할을 수행한다. ‘진지함’은 웃음을 주는 사람들에게 매우 경계해서 다루어야 할 물건일 텐데, 신념과 의견을 자신의 무대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일은 김제동에게 불가능해 보인다. 한명의 시민으로서 공동체에 대해 갖는 견해도 거기 포함된다. 그는 행사를 열고 닫으며, 사이를 메우는 MC인 동시에 스스로 풀어놓을 ‘본론’을 갖고 있는 유창한 이야기꾼이며 대중 강사다. 김제동은 하릴없는 구식이기도 하다. 7년의 방송계 생활도 그를 별로 바꾸어놓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여전히 산에 올라 흥에 취하고 종이신문을 오려 스크랩하고 피부가 맞닿는 느낌이 살아 있는 대화를 할 때 가장 신명을 느끼는 남자다. 김제동은 고운, 어쩌면 지나치게 고운 체를 지녔다. 유보와 부연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예컨대 성을 상품화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한 다음, 밖에 나가 미녀에게 눈길이 끌리는 자신을 마음에 걸려한다. 야구의 미덕을 예찬하다가도 배구나 축구가 상처받을까봐 걱정한다. 서기만 표기하면 단기가 섭섭할까봐 병기한다. 침묵도 표현에 포함시키고 무반응도 반응의 범주에 넣어 사고하려고 애쓴다. 그러다보니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견해를 수집해 오류를 줄이려고 한다. 토론을 가장 잘할 것 같은 연예인으로 뽑혀 <100분 토론> 400회 특집에 초대되는 반면, <일요일이 좋다-X맨>의 ‘당연하지’ 같은 상대를 일축하는 게임에 서툴렀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리얼리티 쇼와 말하는 순서가 공평히 배분되지 않는 ‘가로채기’ 형식의 토크쇼가 부상하면서 방송에서 그가 느꼈을 곤혹은 능히 짐작되는 바다. 2009년 12월 초부터 대학로에서 열린 ‘노 브레이크’ 토크 콘서트는 그런 김제동이 자신에게 깔아준 최선의 멍석이다. 유난히 추운 겨울 저녁, 지하 소극장 통로에 줄을 선 사람들은 어떤 온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찌감치 매진된 이 공연의 표를 몇주 전에 예매하고 기다려왔을 남녀노소 관객은, 소곤소곤 킥킥거리며 주최쪽에서 마련한 ‘김제동하면 연상되는 단어’의 빙고 카드를 채우고 주제 토크 게시판에 자신의 경험담을 붙였다. 그날 주제는 ‘내가 살아오면서 받은 작은 탄압’이었다. 150석 규모의 객석에 둘러싸인 야트막한 무대에, 김제동이 예의 약간 어깨가 솟은 구부정한 자세로 등장했다. 그리고 “아주 웃기거나 재미있는 공연은 아닙니다”라고 허두를 뗐다. 재미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말은 진담이었지만 능청이기도 했다. 그는 노래하고 농담하고 책을 읽고 속삭이고 호소했다. 때로는 점점 빨라지는 생각의 속도를 말의 속도가 따라잡지 못해 문장의 끝에 이르면 숨차했다. 말하는 김제동의 음성은 메밀베개처럼 잘그락댔지만, 김광석의 <일어나>를 부를 때는 관악기의 리드마냥 처연한 바이브레이션을 냈다. 두 소리 사이에 걸쳐진 음역이 그가 가진 정서의 폭인 듯했다 마이크를 들고 세 방향의 객석을 향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은 부흥회의 전도사 같기도 했고 로커 같기도 했다. 아니, 안경을 벗은 클라크 켄트 같았다. 1시간 반으로 예정된 공연이 3시간이 다 되어서야 끝났을 때 김제동은 정말 외모조차 달라 보였다. 그는 크고 강했다. 김혜리: 엊그제 MBC 방송연예대상에 참석한 모습을 봤습니다. 시상이나 수상을 하지 않는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 박수를 쳐주시더군요. 속없다는 말도 들으실 법한데요. 김제동: 그런 재미있는 자리를 놓칠 이유가 있나요? 특히 지난해처럼 상에서 완벽히 자유로우면 더욱 편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웃음) 콘서트 특석을 잡은 기분이죠. 상은 권위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박수를 쳐주느냐가 중요… 하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떠나서(웃음), 가야지요!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방송 일을 시작한 이래 3사 연예대상은 한번도 불참한 적이 없어요. 지난해는 토크 콘서트와 겹쳐서 KBS와 SBS 시상식은 가지 못했습니다. KBS는 연락이 없긴 했는데 아마 제 콘서트 일정을 고려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김혜리: 유재석씨가 수상소감을 밝히면서 “쟤(김제동)는 웃고 있는데, 나는 마음이 아파요”라고 언급했을 때 김제동씨 얼굴이 확 붉어지시더라고요. 김제동: 무대 위에서 누가 제 얘기를 하면 그렇게 부끄럽습니다. (웃음) 유재석씨에게 진짜 고맙습니다. 저도 타봐서 압니다만(웃음) 대상을 타면 그 와중에 누굴 챙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지난해 SBS 연예대상 때에는 제가 <야심만만> 잘리고 SBS 프로그램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재석이 형이 시상식엔 네가 있어야 된다며 전화를 하셨습니다. “자식아, 너 지금 뻘쭘하지? 어서 와” 하는 마음 너머 마음이 읽혔어요. 누가 다가와서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어준 것 같았어요. 관객은 비밀과 언어 공유할 때 일치감 느껴 김혜리: 살아오면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말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김제동: 마이크를 잡은 이후로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권력을 상징하죠. 그래서 힘있는 자는 기자회견을 할 수 있고 그 자리에 마이크가 얼마나 모여드느냐가 사안의 중대성을 방증하기도 합니다. 힘이 없어 아무도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집회고, 그래도 안되면 추운 날씨에 고공으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제가 사회를 볼 때는 대통령이 와도 순서가 아니면 마이크를 넘겨주지 않습니다. 다스릴 사(司)자, 모임 회(會)자입니다. 사회자는 모임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잘 사용해야 하므로 정당한 권리행사가 아니면 누구에게도 발언권을 주지 않습니다. 제게서 마이크를 빼앗을 수 있는 사람은 관객뿐입니다. 김혜리: ‘노브레이크’ 토크 콘서트는 무대의 턱이 있는 둥 마는 둥 해서 조금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무대의 높이나 객석과의 거리가 천차만별일 텐데, 본인에게 편안한 무대는 어떤 형태입니까? 김제동: 사실 이런 무대가 제일 편합니다. 원래는 아예 턱을 없애자고 했는데 그래도 무대인데 조금이라도 높이자 해서 이렇게 됐습니다. 바로 관객을 볼 수 있고, 무대를 원형으로 감싼 계단식 객석에서 관객이 어떤 각도에서든 무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가 좋습니다. 사회자 한명이 고개를 들면 해결되는 쪽이 좋죠. 김혜리: 무대 공포증은 조금도 없습니까? 김제동: 왜요, 지금도 있습니다. 무대 오르기 전에 담배도 서너대씩 피우고 벌벌벌 떱니다. 그런데 막상 오르고 나면 어느 순간 공중부양을 하는 느낌이 듭니다. ‘작두’에 한번 올라타면 그때부터는 저도 없고 아무도 없습니다. 제 경험에 따르면 사회를 1년쯤 보면 객석의 사람이 보이고 거기서 1년이 더 지나면 한명 한명의 얼굴과 특성이 보입니다. 2년차가 넘으면 저 관객은 오늘 안 좋은 일이 있구나, 저 사람은 불러올리며 춤을 잘 추겠구나 짐작하는데 80, 90%는 맞아떨어집니다. 안 맞으면 또 그걸로 웃기는 겁니다. “집에 감나무 있어요?”라고 넘겨짚어서 없다 그러면 “있었으면 죽었습니다” 하는 거죠. (좌중 폭소) 김혜리: 어린이들이 모인 자리부터 공무원, 대학생 등 대하는 청중의 속성이 천차만별일 텐데, 그날 청중의 상태를 어떤 단서로 파악하시나요? 김제동: 행사의 속성을 알고 갈 때는 미리 조사합니다. 대학축제라면 2시간 정도 일찍 가서 운동장도 걸어보고 구내식당에서 밥도 먹고 벽보를 읽어 이슈가 무엇인지 파악합니다. 지난해, 지지난해에 걸쳐 제가 법제처, 국가정보원, 법원 등 정부부처를 거의 다 돈 것 같은데요. 그런 모임에 가면 그분들끼리 쓰는 용어를 섞어 씁니다. 의사 모임에 가면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요?” 대신 “BP(혈압)가 지금 얼마?”냐고 묻고, 군대에 가면 휴가증 이야기를 하죠. 비밀과 언어를 공유할 때 사람들은 일체감을 느끼거든요. 내게 마이크는 여의봉 같아 김혜리: 2006년 KBS 연예대상을 받은 무렵부터 토크 콘서트를 하고 싶어하셨다고요. 이같은 형식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은 거꾸로, 방송에서 본인이 봉인된 부분, 100% 발휘 못하는 능력이 있다고 느껴서 아닌가요? 김제동: 어제 <야심만만>을 함께했던 윤선주 PD가 공연에 왔다가 <야심만만> 초창기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연세대 앞 프린세스 모텔인가에 기거하면서 주머니에 늘 동대구역행 기차표를 넣고 다닐 땝니다. 언제 내려갈지 모른다는 마음이 오히려 사람을 편안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해온 방송을 죽 보시면 운이 좋았던 것이 모두 관객이 있었습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도 카메라가 숨어 있는 시스템이었고 <폭소클럽>도 스탠딩 코미디였죠. <야심만만>도 초기에는 관객이 콜로세움처럼 뒤로 둘러싸고 앉은 구조였습니다. 그것이 제게 엄청난 더하기 요인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방송하기 전 사회자 시절에 축적된 모든 것을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풀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겁나는 것도 없었습니다. ‘어차피 그대들이 갈 길과 내 갈 길은 다르다’는 생각이었고 상경할 때 최대목표는 서울 대학가에서 사투리로 축제 사회를 보는 거였으니까요. 그런데 하다보니 방송 주류에 편입이 됐죠. 그 다음엔 방송 형식의 변화에 맞춰 진화해나가야 하는데 흔히 말하는 리얼 버라이어티건 비공개 녹화건 거기 맞는 적응력과 탄성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제 능력이 방송으로 인해 봉인됐다기보다는 제가 방송을 통해 확실히 보여줄 만한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김혜리: 무대 위에서 종종 마이크를 권총처럼 돌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김제동씨에게는 마이크가 어떤 상징 이전에 하나의 사물로서 갖는 의미도 클 것 같습니다. 유선/무선 마이크, 핀 마이크, 얼굴에 붙이는 마이크를 대하는 감각도 모두 다를 것 같고요. 김제동: 마이크를 보면 여의봉 같다고 생각합니다. 잡으면 힘이 나고, 쑥쑥 자라나기도 하고 좀 어수룩하게 보여야 할 때는 작게 만들어 숨길 수도 있고요. 뒤쪽 관객에게 빨리 가닿게 해주는 근두운이기도 하죠. 한편으로는 손오공 머리를 조이는 금고아처럼 끊임없이 저를 긴장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전 손으로 잡는 마이크가 좋아요. 사진 찍을 때도 뭐 쥘 것 없나 찾죠. (웃음) 무대에서 마이크를 돌리는 건 그것이 제 손에 그만큼 붙어 있다는 확인이기도 해요. 마이크 앞부분과 뒷부분의 무게를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음향관계자들이 걱정하기 때문에- 마이크 비싸거든요- 떨어뜨린 적 없다고 미리 안심시킵니다. 김혜리: 마이크를 잡고 신들린 듯이 말하다가 급속히 힘이 빠지는 순간도 있겠죠? 김제동: 반응이 생각만큼 안 나오면 힘이 빠진다기보다 더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또 표내지 말아야 합니다. 관객을 웃기고자 했다는 의도 자체를 숨길 수 있어야 합니다. 못 웃긴 걸 사과하면서 웃길 수 있고요. 또 어떤 상황에서든 무조건 웃기는 비장의 이야기를 적어도 50~60가지는 갖고 있어야 합니다. 김혜리: 장금이가 비장한 감식초 같은 거군요? 김제동: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의 라면수프 같은 거죠. 뭘 장금이까지. 하하. ‘아는’ 돼지 못 먹겠어서 육식 끊어 김혜리: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간다투어’ 코너에 다섯 누님과 어머니가 출연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보니 어머니가 굉장히 눈물이 많으시더군요. 김제동: ‘간다투어’ 이틀 찍고 귀성하시면서 하루 전에 만난 카메라 감독님하고 KTX 차창에 손바닥을 맞대고 우시는데, 참…. (좌중 폭소) 무슨 <클래식>의 한 장면인 줄 알았습니다. (웃음) 그새 정이 드신 거죠. 지금도 엄마 성경책 옆 기도 목록에 그때 만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틀린 철자법으로 쓰여 있습니다. 어머님이 특별히 정이 많으시다기보다 한국에서 칠순 넘은 어머니들이 모두 한도 정도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종교전쟁이 없는 이유도 가족이 종교여서인 것 같습니다. 아놀드 토인비도 지구에서 우주로 가져가야 할 유일한 제도는 한국의 가족제도라고 했다잖습니까? 김혜리: 누나들과 터울도 많이 지고 집안의 유일한 남자였는데요. 누구랑 무엇을 하며 놀았나요? 김제동: 주로 밖에서 뛰어놀고 썰매 탔습니다. 여기 보시면 동그랗게 팬 흉터가 있죠?(무릎 근처를 보여준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인가 장난치다가 우산으로 찍혔습니다. 엄마도 바쁘고 누나들도 공장에 다닐 때라 곪는 걸 방치했는데 뒤늦게 병원에 가니 절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대구 큰 병원에서 절단은 안 해도 되겠다고 해서 거의 1년을 쉬며 대구 외숙모댁에서 통원치료를 했습니다. 깁스를 한 무거운 아이를 더운 날 업어 나르신 외숙모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오면 요강 하나와 책밖에 없었으니까요. 역사 전집 70권을 다 봤고, 사촌형들이 숨겨놓은 <리더스 다이제스트> <건강 다이제스트>도 봤죠. 그때 촌아이가 받은 성적, 문화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웃음) 김혜리: 어려서 도축하는 모습을 본 이후 육식을 못하시는 걸로 압니다. 굉장히 강력한 이미지였나봐요? 아니면 남의 고통에 이입하는 감수성이 발달했든가요. 김제동: 동네에서 돼지를 잡으면 울음소리가 들리고 피가 흐릅니다. 많이 먹고 살찌라고 돼지를 거세하는 것도 봤고요. 하여튼 “안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우리집 돼지가 아니라도 오가면서 보았던 ‘아는’ 돼지, ‘면식있는’ 돼지 아닙니까. (좌중 웃음) 사람이 일면식이 없다는 건 어진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더 어려서는 고기를 되게 좋아했다고 합니다. 꼬마 때 쇠고기국 끓인다고 부뚜막에서 춤추다가 국 위에 엎어져 덴 흉터가 등에 있습니다. (폭소) 김혜리: 더욱 마음 아팠던 건 돼지 잡으면 학교 안 간다고 김제동씨가 떼썼더니 어머니가 “돼지 안 잡으면 어차피 너 학교 못 간다”고 하셨다는 일화였습니다. 어머님과 누님들이 모두 말씀이 조리있고 위트 넘친다는 인상입니다. 김제동씨의 재능이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김제동: 한 시간짜리 드라마를 보고 다섯 시간 정도 토론을 하니까요. (웃음) 그 정도면 작가 못지않은 열정이죠. 돌아가신 분 치고 천재 아닌 분, 전설 없는 분 없지만 저희 아버님도 그렇습니다. 엉덩이쪽에 북두칠성 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뭐, 몽고반점이었을 가능이 높죠. (좌중 폭소) 어머님이 들려주시는 돌아가신 아버님 이야기는 거의 위인전인데, 요는 어머님의 이야기 만들어내는 능력이 대단하시다는 거죠. 거기에 일말의 진실이 있다면 아버님은 언어와 논리쪽에 좀 뛰어나셨던 것 같고, 어떤 사물을 보고 말로 끝장을 내고야 마는 점은 어머니와 누나들을 닮은 것 같습니다. 김혜리: 선생님이 장래 희망이었다고 하셨죠. 교사가 말로써 뜻을 전달하고 좌중을 휘어잡는 일이라고 생각하셨던 건가요? 김제동: 사회자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없었을 때 선생님의 그런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일어서서 동작을 곁들여)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서서 말을 하고, 칠판에 따닥따닥 글씨를 휘갈겨쓴 다음, “자 이건 시험에 나온다!” 하며 점을 탁 찍을 때 분필이 반으로 꺾이면서 촥 날아가는 모습, 그러고는 돌아서서 마치 서부의 총잡이처럼 손가락에서 백묵가루를 ‘훅’ 불어내면서 창문에 기댈 때 너무나 멋있었습니다. 묘사가 아주 세세하지요? 하하. 김혜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대에서 소질이 억눌리는데 문선대를 통해 소질을 계발한 특이한 경우입니다. 김제동: 특히 방위로 가서 그러긴 쉽지 않죠. (웃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데다 부양가족이 있어서 18개월 방위였습니다. 못 웃기면 두들겨 맞으면서 배웠습니다. 50번 웃기라고 했는데 30번 웃기면 20대 맞았고, 40회 웃기라고 했는데 30회밖에 못 웃기면 10분 동안 머리 박았습니다. 군악대와 문선대가 같이 있었는데, 연습하라고 하면 트럼펫 불고, 기타 치고, 드러머는 타이어 두들깁니다. 그런데 저희 사회자들은, 뭘 해야 됩니까? (좌중 폭소) 선임하사가 마이크랑 녹음기 주면서 주제를 하나주고 50분 동안 녹음을 하라고 했습니다. ‘독도’가 주제면 “러일전쟁 직후에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데… 어쩌고저쩌고”해서 채웁니다.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개인 장비 수입!”하면 기타, 스피커, 드럼은 윤나도록 닦느라 애를 먹는데 우리는, 계속 이만 닦았습니다. (좌중 폭소) 노 전 대통령 노제 사회를 진행하면서… 김혜리: 저는 레크리에이션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부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는 기분 탓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일에는 어떤 희열이 있습니까? 김제동: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희열이라기보다 나아가 사람들과 제가 하나가 되는 희열이에요.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레크리에이션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웃음으로 하나가 되는 겁니다. 예컨대 카드 섹션을 연습시켜 하는 건 별로지만, 웃음이 퍼지면 알아서 카드 섹션이 됩니다. 관객이 허리를 숙이고 박장대소할 때 객석이 하얘졌다 까매졌다 합니다. 또, 집중해서 경청할 때는 정적이 흐릅니다. 꼭 왁자지껄해야 하나가 되는 건 아닙니다. 이야기가 딴 데로 갑니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님 노제 때 몇 십만명이 모였는데 숨소리 하나 나지 않았습니다. 그 정적 속을 혼자 마이크를 들고 올라갔습니다. 김혜리: 김제동씨에게도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겠습니다. 김제동: 거기 모이신 분들은 이미 하나가 돼 있고 저만 섞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올라갔어요. 사회자로서 “슬프시죠. 힘드시죠. 화나시죠” 하는 말조차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대본대로 하지 않고 여러분들을 보고 느끼는 대로 말하겠다, 마이크를 든 건 저지만 말씀은 여러분이 하신다는 생각으로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김혜리: 그렇다면 노 전 대통령의 유서에 구절구절 답사한 대목도 즉흥이었습니까? 김제동: 즉석에서 유서 구절을 건네받아 했습니다. 미리 써놓을 정신적 여유도 없었습니다. 전날까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7, 8kg이 단숨에 빠진 상태였거든요. 노제 사흘 전엔가 매니저가 장의위원회쪽 연락을 처음 받았습니다. 유족의 의사가 반영됐다는 말 한마디에 수락했습니다. 장례 전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전 출연진이 시청 앞 프라자 호텔에서 잤습니다. 호텔 창문으로 보는데 전경버스로 서울광장이 빙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제가 이제껏 본 원(圓) 중에 가장 흉측한 원이었습니다. 사실 모두에게 욕을 먹은 일이었습니다. 저쪽에서는 “역시 좌빨이구나” 하는 반응이었고 이쪽에서는 “무게감이 없다, 무슨 대학 축제도 아니고 일개 개그맨 따위가”라고 반대하는 십자포화였습니다. 평소 노 전 대통령을 조금이라도 아셨던 분이라면 웃음에 대해 그렇게 폄하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례식 직전 생각을 정리하러 산에 올라갔는데 5분간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문득 너무 죄송했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 놈이라 간사해서 내 이미지, 앞길을 염려하는구나. 그 5분 동안은 철저히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와 비통함을 잊고 무례했던 것이죠. 그래서 그저 온 마음을 다해 보내드리자는 딱 한 가지 생각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노제가 끝나고 만장 지나가는 걸 본 다음, 딴 곳으로 가서 술을 마시다가 정신을 잃었습니다. 김혜리: 무대 뒤편에서 윤도현씨 품에 안겨 울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김제동: 한마디하고 내려와 쭈그리고 앉아 울기를 반복했습니다. 무대에서 울어버리면 진짜 선동이 되니 울면 안됩니다. 그게 힘들었습니다. 사실 고인을 두번 뵈었지만 그분은 절 모르실 겁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저랑 상관없는 <느낌표! 아시아 아시아> 잘 보고 있다고 하셨으니까요. (웃음) 실은 당선자 시절 우리 어머니를 먼저 보셨습니다. 어머니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연히 노 당선자 일행을 보고 막무가내로 다가가 “윤도현씨 아시죠? 윤도현이랑 친한 김제동이 엄마입니다” 하셨는데, 그분이 다 응대해주셨다고 합니다. 김혜리: 방송 출연 초기인 2003년 무렵 기사를 보면 방송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자신은 엄연히 MC라는 강한 정체성과 자부심을 피력했습니다. 이 직업 안에서 어떤 경건함을 발견한 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제동: 한때 레크레이션 강사를 겜돌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200명 정도가 모인 한 신입생 환영회 사회를 보러 갔는데 과대표가 “오늘의 겜돌이를 소개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안 나갔습니다. 당황한 과대표에게 겜돌이 찾아오시라, 난 사회자로 왔다고 했어요. 오늘의 사회자를 소개하겠다고 말을 고쳤습니다. 그래도 안 나갔습니다. 기싸움이었죠. ‘사회사’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썰렁한 분위기 속에 마침내 올라가서 사과를 드리고 “지금부터 제가 겜돌이와 사회사의 차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하고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휘몰아쳤습니다. 몇명은 웃다가 토했습니다. (좌중 폭소) “아, 제발! 그만!” 비명도 지르고요. 한 시간 예정 행사를 두 시간 반 하고 나서 말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어떤 직업을 갖든 그 직업이 어떻게 불릴까는 여러분들이 결정합니다. 어떤 직업도 비하마시고 여러분이 재단하는 이름으로 부르지 마십시오. 소명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하고 큰절을 하고 내려왔습니다. 물론 과대표가 저를 모욕하려고 그러지 않았다는 걸 알죠. ‘사회사’란 말이 무리란 것도 압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 시절 대구 법원 앞에 즐비한 변호사 사무실을 후배들과 보면서 내가 반드시 저기 ‘사회사 김제동 사무실’을 내고 만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의 죄를 변호하고 구제하는 것도 위대하지만 우린 천명, 만명을 웃기는 사람들인데 저 정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무당의 작두, 택시 기사의 운전대, 설거지하는 어머니의 수세미 안에는 다 신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마이크를 잡으면 다 사회자입니다. 동네 이장님들이 가장 훌륭한 사회자입니다. 청중을 속속들이 알고 그분들이 알아듣는 적확한 단어와 명확한 정서로 말하는 것이 훌륭한 사회자 아닙니까. 신동엽·유재석·강호동이 웃기는 각각의 모양새 김혜리: MC로서 전범으로 삼는 인물이 있었습니까? 김제동: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MC 방우정 선생님이 계십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연구했습니다. 신동엽 형, 유재석 형, 강호동 형, 주병진 선배님, 모두 각자 사람을 웃기는 ‘모양새’가 있습니다. 방송에서도 말씀드린 적 있지만 제 안경을 어떻게 벗기느냐를 보면 다 나옵니다. 호동이 형은 (격한 말투로) “이야, 벗으면 진짜 웃길 텐데! 이렇게들 박수를 치는데 외면하시겠다고요?” 하면서 몰아갑니다. 경규 형은 옆발질을 하며 “벗어!” 합니다. 재석이 형은 자기가 먼저 벗습니다. 동엽이 형은 빙빙 주위를 돕니다. 저희는 ‘매 개그’라고 부르죠. (손을 설득하듯 움직이면서) “김제동씨는 못생겼다고 하는데 실제로 별로 안 그런 것 같아요. 안경 벗어도 안 웃길 것 같고요. 그렇다고 꼭 벗으시란 말씀은 아니고요. 하지만 굳이 벗으시겠다면 말리진 않아요.” 그분은 손 묶어놓으면 개그 못하는 분입니다. (좌중 폭소) 이런 모양새들로 선배님들을 다 표현할 순 없지만 다 배우고 수용해보자 싶었습니다. 김혜리: 애주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콘서트에서도 술 예찬론을 펴시는 걸 들었습니다. 그만큼 즐겨 마시다 보면 술이 오히려 자기를 제어한다는 두려움이나 경계심이 들 때도 있을 텐데요. 김제동: 공연 기간 중에는 그래서 겸사겸사 끊고 있어요. 술을 먹으면 자꾸 아래로 침잠된다는 느낌도 있고 요즘은 알코올이 해독되는 데에 이틀 가까이 걸리니까 몸도 힘듭니다. 지금까지는 술과 밀착해서 블루스를 췄다면 이제는 포크댄스 정도를 추고 싶습니다. 하하. 김혜리: 방송에서도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을 했습니다. 스탠딩 코미디 <폭소클럽>, 토크쇼 <야심만만> 퀴즈쇼, <스타 골든벨>도 있고 <눈을 떠요>나 오지(奧地) 노인들에게 의료봉사를 실천한 <느낌표-산넘고 물건너> 같은 공익성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어떤 포맷이 가장 잘 맞았습니까? 김제동: 공익적인 예능이 보람은 크지요. 그런데 전 웃음이란 말 속에 공익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막말 개그’라는 말은 ‘음식 쓰레기’처럼 모순된 단어조합이 아닌가 합니다. <산넘고 물건너>처럼 어르신들과 지내는 프로그램이 좋았습니다. 가만히 앉아 어른들 말씀 듣고, 일주일에 한번씩 제대로 된 밥 먹을 수 있잖아요.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그분들의 잔잔한 일상에 이야깃거리를 제공해드릴 수 있었거든요. 저희가 가면 무조건 동네잔치를 하세요. 비용을 걱정했더니 제작진이 상품권으로 구입하실 수 있게 한다고 걱정 말라더군요. 어르신들은 방송국에서 가기 한달 전부터 즐거워하시고 간 다음 또 한달 동안 이야깃거리로 삼으시죠. 그것만으로도 보람있었습니다. 김혜리: 방송을 시작하고 첫 번째 소진된 느낌은 언제, 어떻게 왔습니까? 김제동: 을 하다가 <느낌표!-눈을 떠요>로 옮긴 적이 있습니다. 호동이 형, 재석이형과 함께하면서 좀더 배웠어야 했는데 너무 빨리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재석이 형도 “공익오락쪽은 너만의 색깔이 있지만, 뛰어 노는 프로그램에도 자연스레 녹아들어야 좋은 사회자가 될 수 있다”는 충고를 해주셨고요. 다시 시도해봐야겠죠. 몸개그는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시도를 하는데 잘 안됩니다. 위기는 항상 있었는데 그 저점이 1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혜리: <김제동의 황금나침반>은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패널들이 조언을 하는 쇼였는데요. MC가 때로는 게스트에게 공격적이 되어야 하는 프로그램이라 김제동씨 같은 스타일의 사회자에겐 힘든 기획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김제동: 손님 자체를 인정했습니다. 잘못된 것 같은 부분이 있으면 다른 의견을 이야기했고요. 사회자는 어떠한 경우라도 연민과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국선변호사의 느낌을 가져야 합니다. 김혜리: 본방에 편성되진 못했지만 지난해 10월16일 방영된 파일럿 프로그램 <오 마이 텐트>는 김제동이라는 달변형 MC가 지닌 다른 면을 보는 기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준묵 담당 PD의 말씀을 들어보니, 야외로 환경을 바꾸고, 김제동씨의 조심스런 성격을 살려서 손님에게서 이야기를 자연스레 이끌어내는 토크 프로그램이었는데요. 김제동: 말을 하지 않는 것도 표현입니다. 침묵시위라는 것도 있잖습니까? 저는 그 침묵마저 담길 수 있는 방송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제 스스로 주인공이 된 파일럿 프로그램에서도 강가에서 아이들 노는 것 보면서 한 시간 반 동안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연출자도 보고 느끼는 대로 말하고, 없으면 말할 필요없다고 하시더군요. 김혜리: 그러나 이른바 ‘방송분량’의 압박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요? 김제동: 그걸 많이 고민했는데, 여백의 미를 최대한 활용했던 방송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쉬면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저는 밤 12시, 1시대에 가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혜리: 좀 엉뚱하지만 ‘경상도적인 유머’가 있다면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김제동: 압축적이죠. 인터넷 유머에도 나오지만 “할머니, TV가 안 보이니까 머리 좀 치워주실래요?”를 “할매, 쫌!”이라고 합니다. (웃음) “할머니 진짜 멀리 오셨지요? 저희들이 찾아뵈었어야 하는데…”라는 말도 길게 안 하고 “할맨교?” 이럽니다. 대구, 경북은 처음에는 잘 안 열지만 한번 열면 많이 웃습니다. 가족 정서가 아주 강하죠. 끈끈하고, 아는 사람이 하면 많이 웃어주고 모르는 사람이 하면 “치아라!”합니다. (웃음) 김혜리: 김제동씨의 진행을 보면 여성적이라고 느낍니다. 옆에 앉은 사람과 스킨십도 많고 말하는 방식도 그렇습니다. 친절하게 배려하는 진행으로는 유재석씨가 꼽히지만, 그분은 깍듯한 쪽인데 김제동씨는 자기 속내를 많이 열어 보이는 쪽입니다. 김제동: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정에 굶주려서. (웃음) <야심만만>은 여성 출연자를 항상 제 옆에 앉혔습니다. 그러다보니 편해지면 저도 모르게 툭 치거나 하는 움직임이 나온 것 같아요. 저는 일단 저를 먼저 엽니다. 물론 다 드러내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요. 제 것부터 털어놓아 스스로 밑으로 내려간 다음 남들에게 “내려와볼래? 괜찮거든?” 하는 겁니다. 남들부터 먼저 내려가라고 하면 나락에 떨어뜨리는 거지만, 저부터 내려가면 동행이 되거든요. 내겐 끊임없이 묻고 풍자할 권리가 있다 김혜리: 웃음 주시는 분한테 이상한 이야기지만, 김제동씨를 보면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우울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둠을 알기에 그런 부분을 건드리는 이야기도 할 수 있고. 김제동: 요즘 좀 밝아진 게 이 지경입니다. 비관적은 아닌데, 기본 성향이 아주 밝고 쾌활한 쪽은 아닙니다. 긍정적인 일이 생기면 능력을 넘어선 혜택이라고 여기고 부정적 일이 일어나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알려진 사람은 누구나 그런 측면이 있지만 저는 과대포장돼 있습니다. 한데 때론 그것이 힘도 됩니다. “산에 업히러 간다”는 말을 자주 하다보니 등산객들도 제가 산을 잘 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르는 도중 섣불리 쉬질 못합니다. (웃음) 책도 많이 읽는다고들 하시니, 곱절로 읽으려고 애쓰게 됩니다. 짐이란 무겁지만 하체를 튼튼하게 합니다. 소수자적 성향이 강한 것도 사실입니다. 아버지 일찍 여읜 것도 그렇고 육남매 막내로 자란 사람이 제 또래에 흔치 않죠. 제 나이에 할아버지가 된 사람도 흔치 않고요(그의 큰조카가 딸을 낳았다). 시각 자체는 확실히 남들과 좀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김혜리: 지난해 5년간 진행한 <스타 골든벨> 하차가 정권의 입김 때문 아니냐는 논란으로 시끄러웠습니다. 하차 자체의 충격 못지않게 그 사건으로 말미암은 논란과 언론 보도로도 큰 부담을 안았을 듯합니다. 김제동: 그 상황의 주체는 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주체에게 왜 그랬냐고 질문이 가야 맞습니다. 객체인 저는 할 말이 없고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릅니다. 김혜리: 그러나 본인이 명확히 아는 진실의 범위를 건드리는 말도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동아일보> 사설에 “김제동씨의 유명세가 5년간 올라가면서 제작진과 관계가 부드럽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인용됐습니다. 김제동: 정말 그랬다면 <스타 골든벨> 작가들이 왜 토크 콘서트를 보러 왔겠습니까. 인간관계에 대한 그와 같은 언급은, 적어도 직접 제게 물어보시고 나서야 하셨어야 합니다. <100분 토론>에 나오신 청와대 정무수석이 “김제동씨 때문에 우리도 재보선에서 표 손해 많이 봤다”는 발언을 하셨는데, 행위 주체를 저라고 했으면, 제가 한 행위를 적시하고 나서 그 결과를 말씀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저의 어떤 행위 때문에 표를 잃었는지를 밝혀야 정상적이죠. 제가 민주당 지지자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어느 당을 지지하는 선거운동을 한 적도 없는데, 자꾸 색채를 덧씌워가기 시작하면 불쾌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감 중에 “이념적 편향이 눈에 띄는 사람은 제작진이 사회자 고를 때 부담스럽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이 나왔고 KBS 사장이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오히려 거기에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이념적 편향을 띤 것으로 보였다면 그건 제 실수입니다. 다만, 제가 한 어떤 행위에 편향이 있는지 설명해 달라는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 분향소에 헌화하지 않은 사람이 현 정부 인사 중에 있습니까? 공인으로서 의견의 표출에 대해 가져야 할 신중성을 말씀하신다면 경청하겠습니다. 그러나 옳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표하는 데에 있어서는 앞으로도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또한 제가 믿은 것이 옳지 않다고 검증되면 언제든 사과할 자세도 되어 있습니다.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 <동아일보> 황호택 논설위원 등 이번 일에 대해 여러 말씀을 하신 정치인, 언론인들이 한번 토크 콘서트에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홍정욱 의원은 성향이 다르다고 그 사람을 방송에서 내친다면 촌스런 정권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옹호해주신 건 고맙지만 ‘촌스럽다’는 단어는 그런데 붙이면 안됩니다. ‘촌스러움’을 모독하면 안됩니다. 저는 현 정부가 잘되길 바라는 한 시민으로서, 끊임없이 묻고 풍자할 권리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일을 하는 한, 어느 집단이 힘을 쥐건 설령 제가 그 집단에 투표를 했다 하더라도, 이념 성향에 관계없이 풍자의 대상으로 삼을 겁니다. 제 가장 큰 이념은 웃음이고 그걸 포기하면 저는 끝입니다. 그것을 비판이고 반정부라고 말한다면 죽을 때까지 비판적이고 반정부적일 겁니다. 김혜리: YB, 김C 등 같은 소속사 연예인들과 매우 친하고 프로그램에도 내레이션, 게스트 등으로 함께 출연하는 일이 잦습니다. 여기에 단점은 없을까요? 김제동: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이승엽 선수만 해도 그만 팔아먹으라는 말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친한 사람들끼리 방송을 하면 아주 유대가 없는 사람들보다 편하고, 특히 예능의 경우 훨씬 잘 흘러갑니다. (웃음) 야구는 가족적인 스포츠라 매력적 김혜리: 이승엽 선수와 관계를 보면 좋은 친구, 어려울 때 날 알아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 이상의 유대가 보입니다. 경상도 남자들끼리 미주알고주알 관계를 정의하고 만나진 않으시겠지만, 서로를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하는 면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무엇인가요? 김제동: 이승엽 선수를 가리켜 “제 인생의 영원한 4번 타자”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요즘은 그 말도 후회합니다. 야구를 하든 야구를 하지 않든 그냥 이승엽으로 충분합니다. 그럴 경우 ‘4번’이란 말은 소중하다는 의미의 상징이 되겠죠.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건, 글쎄요. 뭘 해도 호적수입니다. 당구를 쳐도 3승2패, 장기를 둬도 3:2, 같이 있으면 수다떨고 즐겁습니다. 김혜리: 소중하다보면 상처도 받지 않습니까? 김제동: 싸운 적은 없습니다. 굳이 말하라시면, 아무리 친한 동생이지만 주위 사람에게 소개시켜준 뒤 저보다 더 친해보이면 약간 샘납니다. (웃음) 서울에선 매번 집 앞에 와 있고 나오라고 채근하던 사람이 대구 가면 운동하는 후배들 만나느라 전화가 뜸합니다. 예전에는 그럼 서운했는데 요즘은 제가 먼저 전화 걸어 타박합니다. 그럼 (이승엽 목소리로) “아, 형, 인생이 다 그런 거야” 합니다. 뭐, 저도 가족 생기면 거들떠나 보겠습니까? 하하. 김혜리: 기본적으로 야구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제동: 야구는 인간과 공이 유일하게 경쟁하는 스포츠입니다. 축구도 공이 골대에 들어가면 득점, 배구도 코트 라인 안에 공이 떨어지면 득점, 미식축구 역시 공만 들어가도 점수는 됩니다. 그러나 야구는 홈에서 인간과 공이 다퉈 인간이 먼저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아주 가족적입니다. 포수는 안방마님, 투수가 아빠라면 핫 코너 3루는 궂은일하는 장남입니다. 1루수는 막내, 중간에서 잘 연결하는 유격수는 며느리입니다. 외야수들은 장성에서 해외 내보낸 애들입니다. 가끔씩 연락오고 명절돼서 한회 종료하면 집에 모이죠. (웃음) 김혜리: 김C가 김제동씨더러 “책에 너무 매여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록’도 갖고 계시는데요. 무대에서 경구, 아포리즘을 쓸 때 얻는 혜택과 결함은 무엇입니까? 김제동: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선도하고 가르치려는 마음이 드는 순간 격언이나 명언은 그 가치를 상실합니다. 저는 이렇게 묻습니다. 이 구절이 제겐 이렇게 와닿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또, 경구가 지나치게 무거워지거나 시의적절하지 않아 웃음과 섞이지 않으면 실패입니다. 김혜리: 2009년 성공회대에 편입했습니다. 김제동씨의 꿈인 대안학교 설립에 필요한 바탕을 갖추기 위해서라고 동기를 밝혔는데요. 특히 어떤 커리큘럼이나 교수진에 끌렸습니까? 김제동: 신영복, 김창남 선생님도 계시고요. 이력으로서 학력보다 배우는 힘을 얻고 싶었습니다. 이력은 전문대 졸업으로도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를 자주 못 나가고 있지만 얼핏얼핏 배우고 선생님들과 대화하고 평상에서 학생들과 자장면 시켜먹고, 그 모든 것이 김C 형이 말한 책에 얽매이지 않는 뭔가를 갖고 싶은 마음의 발로입니다. 지하철로 통학하는 시간에 얻는 단상들도 많습니다. 큰 매형의 죽음과 “철사 사온나” 김혜리: 토크 콘서트를 시작하면서 “술 취해서 횡설수설도 해보고, 환불도 해보고 돌도 맞아보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저도 관람했지만 혹시 한달이 지난 지금, 방송에선 못하는 내용을 더 해볼걸 하는 아쉬움은 없나요? 김제동: 그래서 어제(12월30일)부터 조지 칼린이라는 미국의 스탠딩 코미디언을 인용하면서 정치와 종교를 슬슬 건드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정치문제는 첫 공연부터 조금씩 건드렸고요. 용산참사 협상 타결에 대해서는 잘했다고 말했습니다. 충분한 해결이 아니겠지만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건 잘된 일이니까요. 종교도 예컨대 예수님을 비판하진 않아도 교회를 비판할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일이니까요. 김혜리: 죽음이 많았던 지난해였습니다. 막내들은 부모님과 지내는 시간도 가장 짧고 형제들을 여의면서 혼자 남겨질 처지라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많을 것 같습니다. 김제동: 아무것도 모른 채 아버지를 여읜 뒤, 제가 인지한 첫 죽음은 큰 매형의 죽음이었습니다. 대우조선 근로자로 근무하시다가 산업재해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찾아온 사람이 보상금을 탁 던지면서 “합의를 보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고 했던 광경이 어린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장지에서 그 돈 봉투를 제 가슴에 꼭 품고 있었죠. 매형은 집안에 남자가 아무도 없는 제게 썰매를 만들어주신 분입니다. 날아갈 듯 기뻤죠. 제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감동적 한마디는 “철사 사 온나!”입니다. 그 다음 맞은 죽음이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제 일의 숙명은 죽음마저도 웃음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해가 흐르고 나면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다른 방식으로 추모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분이 하신 농담을 모아서 영상으로 대화해보는 방식도 있을 거고요. 김광석 추모 콘서트는 이미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웃음에 대해 관대해져야 그 사회가 건강할 수 있습니다. 追伸 지난해 10월 MBC의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영됐으나 정규 편성되지 못한 <오 마이 텐트>의 조준묵 PD는 MC 김제동의 배려심과 수줍음을 살려, 야외로 나온 게스트들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토크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의도를 설명한다. 조 PD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솔깃한 대목이 있었다. 상대가 채식만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PD는 김제동의 집 근처 방배동 곱창집으로 첫 만남의 장소를 정했고 김제동은 선선히 응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주인아주머니가 김제동 앞에 된장찌개부터 내놓았을 때에야 조 PD는 그의 사려를 알아차렸다고 했다. 만약 <오 마이 텐트>의 제작이 실현된다면, 우리는 MC가 무슨 말을 하느냐보다 그의 성품이 만들어내는 공기가 중요한 토크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영진의 점프 컷] 소년의 절실함에 뼛속까지 아팠네

때로 영화에서 단 하나의 장면만 떠오르게 된다. 필립 리오레의 <웰컴>의 경우, 후반부에 쿠르드족 청년 비랄이 도버해협을 수영으로 건너는 장면이 그랬다. 감독이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영화를 만든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 장면 하나가 인상 깊었다. 몹시 추운 날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뼛속까지 시리는 아픔 비슷한 것이 그 장면을 보고 찾아왔다. 표면적으로 17살 소년은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인데,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극적 인위성을 감안하고서라도 소년에게는 다른 삶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4,000km 이상 사막을 걸어 프랑스에 온 소년은 영국에 가려 한다. 거기에는 연인도 있고 자신의 우상인 축구선수 호나우두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끝장면에서 비랄을 우연찮게 잠시 돌봐준 수영코치 시몬이 비랄이 도버해협을 건너다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 런던으로 가서 비랄의 애인을 만나 자신의 것이었던 결혼반지를 비랄의 선물이라고 속여 전해주려는 상황이 나온다. 비랄의 애인은 거절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아버지의 친구인 중년 남자에게 곧 시집을 가야 한다. 맥없이 그곳을 떠나던 시몬의 눈에 텔레비전 중계 중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축구 경기 모습이 잡힌다. 마침 호나우두는 골을 넣고 포효하듯이 거만한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화면 속의 호나우두,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겠다는 듯 의기양양한 모습과 그를 쳐다보는 시몬의 얼굴에서 영화는 끝난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감시하는 사회 삶에서의 불가능한 판타지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불우한 17살 쿠르드족 소년에게 있었던 것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웰컴>의 후반부 두 장면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을 띨 수밖에 없는 이 영화의 선의에서 가장 뾰족하게 튀어나온 이미지였다. 많은 가난하고 비전없는 소년과 청년들이 호나우두의 성공을 보며 꿈을 키울 것이다. 극소수의 성공 아래에 바벨탑처럼 쌓인 숱한 좌절의 기록들이 있을 것이다.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목숨을 걸고서라도 도버해협을 맨몸으로 건너겠다는 결심을 한 영화 속 소년의 절실함은 어떤 것일까. 비랄이라는 이 소년은 바람처럼 빠르게 달리는 말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고 축구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유서 깊은 박해의 역사를 가진 고향을 떠나 서구사회로 그가 건너왔을 때 기댈 것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희망과 애인을 만나겠다는 달뜬 마음뿐이다. 이런 것들이 부질없는, 한줌 재와 같은 기대라는 걸 비랄을 보살펴주는 프랑스인 시몬은 안다. 그는 한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으나 이제는 지방 소도시에서 수영 강습을 하며 살아간다. 방금 이혼을 했고 삶에 별다른 희망이 없다. 겉으로 딱딱하게 구는 그의 태도는 앞으로 남은 삶에서 기대할 것이 없는 중년 남자의 공허를 감추기 위한 갑옷이다. 그가 미친 듯이 수영 연습을 하는 소년을 보며 한심해할 때 그는 소년에게서 자신에게는 없는 절실함을 감상적으로 느낀다. 거기서 잠시 연민을 품은 뒤 하룻밤 그를 재워준 것이 그를 둘러싼 적대적인 환경을 그로 하여금 자각하게 만든다. 이웃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시몬은 요주의 인물로 감시당한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감시하는 사회가 된 칼레의 서슬 푸른 풍경이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두 남자, 중년의 서구인과 쿠르드족 소년의 희미한 교감을 방해하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감독 필립 리오레의 신중함이다. 예전에 이 지면에서 몇번 지적했듯이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는 정치적 올바름의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할 경우 거꾸로 수직적인 시선의 덫을 피하지 못한다. 한국도 이제 어느 나라 못지않은 다인종 사회가 돼가고 있으나 소수자 이방인을 대하는 시선은 이제 막 열리기 시작했을 뿐이다. <웰컴>과 비슷한 소재를 다뤘으며 역시 한국에서 자그마한 규모로 개봉한 <비지터>란 영화에도 감독은 그들 내면을 다 아는 척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삶에 무감각해진 교수는 젊은 아프리카인에게서 북치는 솜씨를 배우고 그 리듬에 반해 열심히 북을 두드린다. 그것 때문에 그는 본국으로 추방당하는 젊은이를 번거롭게 끝까지 도와야 하는 처지를 감내한다. 갱생의 기회는 모두에게 오지 않고 나는 이런 종류의 망설임, 도와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내키지 않는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끌려가다가 결국 세상의 비극을 목격하게 되는 주인공들의 처지를 그리는 것이 비교적 솔직한 창작자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웰컴>의 필립 리오레 감독도 그 비슷한 것을 해낸다. 시몬이 비랄을 도와준 것은 하룻밤의 감상적인 휴머니즘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행위였다. 그에게는 이 행위가 사소한 것이었으나 불법 체류자 문제로 시끄러운 칼레에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시몬은 원치 않는 가운데 자꾸 비랄의 처지를 기웃거리게 된다. 비랄이 묵고 있는 칼레의 불법 이민자 수용소, 경찰이 무지막지한 몽둥이로 다스리는 그곳의 현실을 알게 되면서 시몬은 비랄을 더 도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이는 그 자신이 비참하다고 여겼던 삶에 다소 원기를 불어넣는다. 비랄과 마찬가지로 시몬도 이 자기갱생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 영화 중반, 시몬이 걱정돼서 찾아온 전처와 고민을 나누다가 시몬은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가 완곡하게 거절하는데도 관계를 맺는다. 관계가 끝난 뒤 황폐한 심정으로 어쩔 줄 모르는 두 남녀에게 비랄의 불행한 운명에 관한 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온다. 시몬의 전처는 자신에게 달려든 시몬을 책망하고 그곳을 떠난다. 애인을 찾아 도버해협을 건너던 소년의 실패와 전처와 재결합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실패가 겹치서 시몬의 삶은 더욱 어둠에 갇힌다. 개인적인 것을 전체의 삶과 반드시 이을 필요는 없지만 <웰컴>은 우리의 개별적인 삶이 어떻게든 필연적으로 상호연관되어 있는 지점을 드러낸다. 시몬이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걸 하기 위해선 그가 개인적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걸 해냈음에도 갱생의 기회는 시몬에게나 비랄에게나 오지 않는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며 끝난다. 작은 규모의 영화이고 관객에게 큰 제스처를 취하는 영화도 아니지만 <웰컴>을 보는 느낌은 요즘 같이 시절이 하 수상한 세상에선 좀더 공명이 컸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시선을 줬을 때 그건 전과 다른 삶의 경험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어디서나 있는 불행이라고, 신문 방송에서 볼 듯한 일이라고 지나치며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의 시몬처럼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시선을 줬을 경우 그의 삶의 개별성은 나의 개별성과 묶이고 연대가 가능하지 않은 세상의 질서로부터 진한 복수를 당한다. 전반적으로 차가운 이 영화에서의 풍경, 소년이 수영으로 건너는 도버해협의 압도적인 무서움, 그런 것들이 영화가 끝나고 잔상으로 남게 된다. 활기찬 한 젊은 육체가 필사적으로 헤엄쳐가는 바다 위로 넘실대는 위압적인 파도와 거대한 배가 지나가는 풍경은 아무리 인위적으로 창조된 광경이라 해도 육체적으로 진한 통증을 남긴다.

[전영객잔] 당신이 즐긴 것은 무엇입니까? [1]

…(모든 글에 이어서) 결국 나도 <아바타>에 대해서 말하게 되었다. 지금 열광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영화. <아바타>를 보러가는 사람들은 영화를 본다, 라기보다는 차라리 목격하러 간다, 는 태도로 참을성을 갖고 기다려서 3D 극장(의 중앙 뒷자리좌석)으로 향한다. 줄거리도 잘 알고 있고, 엔딩은 예상한 그대로이지만 아무도 실망을 늘어놓지 않는다. 오로지 테크놀로지의 경이를 즐기기 위해서 영화를 보러간다. 여기에는 어떤 다른 기대도 없다. 그런 다음 갑자기 다들 영화의 미래에 대해서 찬양하거나, 혹은 근심한다. 하지만 우리는 열광이 일시적으로 만들어낸 찬사와 근심의 미래로부터 간극지어진 실재의 제자리로 되돌아와야 한다. 요점은 간단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의 오래된 질문. 왜 영화는 미학이 아니라 기술이 미래를 결정짓는가? 물론 대답도 잘 알고 있다. 이 바보야, 영화는 결국 돈이 결정하는 거라고! 2억6천만달러짜리 영화와 비평적 싸움을 벌이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해야 한다. 나는 좀더 시간적 거리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했다. 이것은 나의 임무이다. 곤란한 임무. 그러나 하스미 시게히코는 단호하게 말했다. 영화가 나빠지는 걸 구경한 다음에는 세상이 나빠지는 걸 보게 될 것입니다. 가장 따분한 비판은 저들은 그저 자본을 앞세운 (문화) 제국주의자들일 뿐이지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가장 역겨운 찬사는 저들 없이 영화의 진화가 이루어진 적이 있나요, 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우리가 놓인 자리, 제국의 주변. 영화를 둘러싼 생산과 확산과 분배와 착취와 기만과 매혹의 여러 국면들. 그리고 비평가들의 처세술. 혹은 그들 (각자)의 비평적 전술. 대중의 환호와 일시적인 변덕. 자신의 습관적인 영화관람 행위를 전시하고 그것을 즐기는 블로거들. 자신을 갱단처럼 여기는 악동들. 비평적 테러. 그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영화가 공격당할 때 전투를 불사한다. 새로운 시네필의 지도. 말하자면 영화 인텔리겐차라는 새로운 관객의 형성. 여기에서 분화되어나온 영화 룸펜 지식인들. 그들은 자신을 비평가와 동일시한다. 점점 기민하게 대처하고 냉소적으로 대꾸하는 영화담론의 ‘사이버’ 세계. 마술처럼 일시적으로 한자리로 몰려든 담론의 폭발. 하지만 이것은 좋은 결론인가? 동의하지 않는다. 자본이 결국 미래를 결정하는 논쟁이라면 이것은 아무리 말을 바꾸어도 새벽없는 밤을 준비하는 황혼이다. 미네르바 따위는 여기에 없다. 지칠 줄 모르는 밤. 이것은 비관주의자의 탄식인가? 포기하면 안된다. 비평이라는 방어선이 무너졌을 때 영화는 주어진 선택이라는 수동적 구경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이라는 가련한 단서의 애처로움. 낙관주의자들도 웃지 못할 것이다. 당신들의 믿음이 사실이라면 당신들도 영화의 미래 안에서 예외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음산한 논쟁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논의가 어쩌면 영화의 역사에서 군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이 <아바타>에 대해 지금 여기의 시장과 영화의 미래 사이에서 진행되는 우리의 비평적 담론을 방해하는가? 왜 동일한 사건이 다양성의 가면을 쓰고 핵심을 회피하게 만드는가? 3D 효과는 미래의 ‘시네마틱한’ 경험인가? 약간의 우회. 나는 지난해 12월14일 이후 모든 자리에서 내내 <아바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그 자리가 공적이건 사적이건, 모임이건 두 사람의 만남이건, 강의실이건 카페이건, 눈 구경을 하면서 커피를 마시건 눈 걱정을 하면서 술을 마시건, 내내 <아바타>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할 이야기가 없었다. <아바타>는 보는 내내 지루했고, 3D 안경은 너무 불편했다. 나는 안경을 쓰기 때문에 두개를 껴야만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질문의 요지는 간단하다. <아바타>는 그런 불편함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내 대답은 없다는 것이다. <아바타>의 줄거리는 거의 바보에 가깝다. 만일 누군가가 이 영화의 서사를 분석한다면 나는 그게 <트랜스포머>를 분석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아바타>는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가 아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스탠리 큐브릭이 아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그저 (스필버그의) <우주전쟁>과 비교했을 때 <아바타>는 2시간41분 동안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순하고 평면적인 서사와 매력없는 주인공들의 신파에 가까운 멜로드라마가 진행된다. 그렇다면 <아바타>라는 태풍의 눈은 무엇인가? 당연히 3D 효과의 경험이다. 좋다. 알겠다. 하지만 왜 그 다음 질문을 하지 않는가? 3D 효과는 미래의 ‘시네마틱한’ 경험인가? 나는 <아바타>가 창조적인 예술품이라기보다는 혁신적인 발명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발명을 경험하는 것. <아바타>를 보러가는 것과 3D영화를 경험하러 가는 것은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의 차이이다. 둘 사이에는 어떤 변증법적 긴장도 없다. 동일한 현상의 두개의 측면. 두개의 태도. 예술적 경험을 문화적 체험으로 환원할 때 둘 사이의 차이는 영화를 보는 우리의 형식적 조건들을 완전히 다른 자리로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아바타>를 둘러싼 비평담론들은 잠시 그 차이를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구경의 덫에 걸렸다. 예술적 경험의 기쁨을 기술적 발명의 놀라움과 맞바꿔칠 때 영화관객은 감상을 포기하고 카메라의 자리에 가게 될 것이다. 내가 아니라 베냐민이 한 말이다. 이때 왜 그 경험을 갈망하고 움켜쥐려고 하는가? 여기서 신기한 것은 <아바타>를 둘러싼 대중의 열광이 아니라 비평담론의 실패이다. 나는 지금 <아바타>를 지지하느냐, 혹은 비판하느냐를 놓고 입장을 가르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문제제기를 이해한다면 당신은 사태를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비평이란 영화를 견딜 수 없는 관객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아바타>를 둘러싼 논쟁에서 무효화되었다. 그러기는커녕 비평가들의 <아바타>에 대한 열광에는 무언가 할 일을 하고 있다는 태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슨 일? 3D 테크놀로지의 미래를 예언하는 일. 그러면서 한결같이 영화의 미래를 예언한다. 3D는 영화의 ‘유일한’ 미래인가? 나는 비평담론이 예언가의 역할에서 비평가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바타>를 지지하는 그렇게 많은 비평담론 중에서 ‘혁명이 찾아왔다’고 열광하는 사실상 혁명(이라고 생각하는 경험)의 핵심인 3D 기술에 대해서 진지한 성찰을 담은 글은 정작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영화가 너무 가까이 있(거나 3D 기술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거나 영화비평의 수사학을 사용하긴 하지만 대부분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아바타>의 3D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최양현의 글이 거의 유일했다(‘최후의 승리까지 한뼘 더 필요해’ <씨네21> 736호). 이 글에서 지적한 대로 0점 지정을 한 숏들의 패럴렉스 미장센 디자인(mise-en-parallax-scene)을 설명하지 않으면 <아바타>에서 미학적 논쟁과 경험의 미래학은 고스란히 남겨질 수밖에 없다. 3D와 2D의 영화적 경계는 어디냐 나는 종종 <아바타>를 보다가 안경을 벗었고 많은 숏들은 2D로 진행되다가 3D로 옮겨갔다(반대로 3D 화면들은 인물을 중심에 놓고 원경은 스크린 프로세스처럼 보였다). 이때 즉각적으로 궁금해진 것은 3D와 2D의 영화적 경계는 어디냐는 것이다. 둘 사이의 경계는 시선과 동선 양쪽 모두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두개의 영토. 이차원의 공간을 삼차원으로 활용하는 것과 가상 삼차원을 놓고 이차원을 배경으로 설정할 때, 먼 것과 가까운 것이 상상적인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오차를 만들어내는 뇌신경의 스크린에서 물리적으로 투사될 때, 영화를 보는 관객은 무엇으로 영화와 봉합(縫合, suture)되어야 하는 것일까? 질문의 핵심은 <아바타>의 3D 프레임과 관객의 시각적 투사의 관계에서 영화를 보는 나의 자리는 어디냐는 것이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시각적 네트워크와 관객의 지각 사이의 거리(perceptual distance)를 재구성하는 메커니즘은 어떻게 시청각적 기호들을 재배치할 것인가? 3D는 영화의 구성을 새로운 조합의 집합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단지 새로운 소여에 불과할 것인가? 이 질문을 과학적 용어로만 설명할 때 <아바타>의 3D 효과는 관념적 상태에 머물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것을 다시 영화적 개념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그냥 간단하게 제임스 카메론과 로버트 저메키스는 어떤 다른 목표를 갖고 있는가?(이상하게도 <아바타>와 거의 동시에 개봉된 <크리스마스 캐롤>에 대해서는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다) 좀더 단순하게 질문해보자. <아바타>의 표면은 3D 안에서 만들어내는 굴곡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가? 이때 표면의 맹점이라는 문제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프레임의 굴곡이 선형진행의 구조 안에서 암흑지점을 만들어내는 지점. 0점 지정의 영화에서 존재하는 것은 맹점인가, 아니면 과잉된 두개의 자리인가? 거기 있다고 가정된 대상을 정말 거기서 볼 때, 나는 이 말의 방점이 본다, 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라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거기라는 지점은 이제까지 영화에서 가정하지 않았던 암흑지점이다. 3D 효과는 바로 이 암흑지점의 페티시즘에 다름 아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저메키스와 다른 점은 패럴렉스 디자인을 하면서 미장센을 일종의 인스톨레이션에 가까운 방식으로 설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레임의 내용을 전시할 때 서사의 진행은 둔해지고 감정은 산만해진다. <아바타>를 보았을 때 내가 즉각적으로 느낀 것은 필요 이상으로 음악이 과잉하고, 대사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 대부분 바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바타>의 모든 시청각적 기호들은 지금 프레임에서 진행되고 있는 내용을 설명하는 데 바쳐지고 있다. 궁금증. 제임스 카메론은 이렇게 바보 같은 서사를 진행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왜 바보같이 단순한 서사가 필요해진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타이타닉>을 3D로 진행한다고 가정해보자. 타이타닉이 빙산에 부딪혀 가라앉는 장면을 제외하면 이 영화의 대부분은 무효가 될 것이다. 왜? 프레임을 전시할 때 화면 안의 요소들 사이의 집합 안에서 운동과 그 관계는 정보가 된다. 감정선의 포기. 시선 네트워크의 단순화. 동선의 평면성. 영화 안에서 (마주)본다는 것과 영화 바깥에서 (쳐다)본다는 것 사이의 차이. <타이타닉>은 전자의 영화이며, <아바타>는 후자의 영화이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무효라는 문제가 있다. 이때 3D의 문제점을 단지 입체효과 때문에 영화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가 단순해진다는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 가설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소박한 결론이다(더 한심한 가설은 <아바타>가 비싼 영화이기 때문에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크 나이트>는 예술영화인가?). 제임스 카메론에게 질문하고 싶은 핵심은 3D라는 전시효과에 매달리게 될 때 부딪치는 한계라는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여기서 영화가 이미지의 전시효과에 집중하게 될 때 영화의 존재론은 위협받는 것이 아니라 빈곤해진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발명은 창조가 아니다 약간의 우회. 다소 산만해 보이는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이미지는 ‘하드 보디’(hard body)다. 이 개념을 발전시킨 것은 수잔 제퍼드이다. ‘소프트 보디’가 성병, 부도덕성, 마약, 공해에 오염된 기형, 게으름, 위험에 빠진 태아를 담고 있는 잘못된 몸이라면 힘, 노동, 결단력, 충성심, 용기를 감싸고 있는 표준적인 몸을 ‘하드 보디’라고 불렀다. 이 ‘하드 보디’는 국가 혹은 사회, 몸담고 있는 커뮤니티, 상황이 요구하는 몸을 위해서 종종 국가적 표준을 이상화할 수 있는 판타지를 끌어들였다. 국가적 몸과 할리우드 영웅의 몸의 동일화. 이를테면 ‘매파’ 레이건의 도착과 ‘하드 보디’ 람보의 등장. ‘비둘기파’ 지미 카터의 퇴장과 ‘소프트 보디’ 트래비스의 자멸(<택시 드라이버>). 제임스 카메론은 ‘하드 보디’를 아이러니하게 비틀었다. <터미네이터>와 그 속편은 타임머신에 관한 (역설적) 이야기(의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계-인간을 놓고 벌이는 게임이다. 한번은 악당으로, 그 다음에는 도움을 주는 선인으로 ‘동일한’ 터미네이터 T800이 찾아온다. <에이리언2>에서는 리플리에게 로봇 신체를 제공함으로써 ‘여성 하드 보디’를 제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두편의 <터미네이터> 사이에 끼어 있는 <어비스>이다. 심해 속의 ‘낯선 존재’를 만나기 위해 인간은 무시무시한 수압을 견딜 수 있는 ‘하드 보디’ 잠수복을 입는다. 그러나 잠수복은 수압을 견디지만 호흡 곤란을 가져온다.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 <트루 라이즈>는 제임스 카메론 버전의 제임스 본드 액션이다. 차이가 있다면 ‘하드 보디’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유머이다. 그런 다음 환유로서의 ‘하드 보디’인 호화로운 여객선 타이타닉에 두 연인을 태운 다음 추운 겨울바다 한복판에서 그것을 다시 빼앗는다. 부서져버린 육체. 애매하지만 남겨진 감정. <타이타닉>은 제임스 카메론의 결론이다. 20세기는 여기서 끝났다. 그리고 14년 동안 침묵을 지켰다. 말하자면 기다림. 미래를 앞에 놓고 예언을 하는 것은 바보짓이거나 잡담이다. 역사는 변수가 많고 상황은 수시로 변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위험을 무릅쓰고 싶다. <아바타>는 영화사에서 어느 자리에 놓일 것인가? 질문을 약간만 비틀어보자. <아바타>의 3D는 토키인가, 딥 포커스인가? 비유적으로 질문을 바꿀 수도 있다. <아바타>는 <재즈 싱어>인가, <시민 케인>인가? 김혜리는 (사석에서) 좀더 간단하게 질문했다. <아바타>는 (상업적) 이벤트인가, (예술적) 혁명인가? 내 대답은 둘 다이다. 문제는 폭스사는 <재즈 싱어>라고 생각한 것이고, 제임스 카메론은 <시민 케인>이라고 믿은 것 같다는 사실이다. (영화적으로) 결과는 <재즈 싱어>가 되었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이 남아 있다. <아바타>는 <재즈 싱어>인가, <성의>인가? 무성영화로부터 토키영화에로 옮겨온 1929년 ‘이후’처럼 기술적 전환뿐만 아니라 영화문법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아니면 1953년 시네마스코프 ‘이후’처럼 새로운 스크린 사이즈의 추가에 지나지 않을 것인가? 나는 여기서 잠깐 영화사의 기술적 ‘혁명’에 관한 몇 가지 기록을 환기하고 싶다. 이십세기 폭스사의 대표였던 윌리엄 폭스는 와이드 스크린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집착했었다. 워너영화사가 사운드를 영화에 끌어들였을 때 폭스는 영화의 미래가 와이드 스크린에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미 1929년에 두편의 70mm영화를 만들었다. 불행히도(다행히도?) 영화관은 폭스의 요구에 맞는 스크린을 준비하지 않았다. 워너영화사는 폭스의 70mm에 대항해서 65mm 바이타스코프를 개발했다. MGM은 폭스 사이즈를 받아들였고, 유나이티드 아티스츠는 워너 사이즈를 받아들였다. 폭스는 이때 좀더 나아가고 싶어 했다. 폭스는 진지하게 ‘이미’ 1929년에 3D 화면을 테스트했다. RKO는 이 시기를 영화에서 일종의 전환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3D 효과가 나는 내추럴 비전을 <댄저 라이트>에서 실험했다. 이들은 운이 나빴다. 무성영화에서 토키로 넘어오면서 사운드 레코딩 문제는 극장에 1.33 사이즈 영사기를 강요하다시피 했다. 사운드와 스크린 사이의 기술적 경쟁은 서로에게 적대적인 관계로 전화하였다. 사운드는 영화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지만 와이드 스크린은 관객에게 단지 화면에 커졌다는 이상의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할리우드는 와이드 스크린에 맞는 장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사운드는 뮤지컬과 갱스터무비를 만들어냈다. 춤과 총소리, 노래와 비명. 한 가지 더. 1929년 할리우드영화는 텔레비전이 아니라 라디오와 경쟁하는 시대였다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갑자기 라디오의 미디어 기능을 동시에 갖추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미디어 사이의 잡종교배였다. 발명은 창조가 아니다. 그렇다면 3D는 무엇과의 교배인가? 즉각적으로 당신은 온라인 게임을 떠올릴 것이다. <아바타>를 경험하면서 느끼는 낯선 반응은 어쩌면 내가 전혀 게임을 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바타>는 게임에 익숙한 관객과 그렇지 않은 관객 사이에서 서로 다른 친화성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논의를 하기에 이 자리는 적절치 않다.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예술적 야심 두 번째 질문에 대한 기록. 시네마스코프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 영화기술적 핵심은 ‘안경을 쓰지 않고 보는’ 3D영화였다. 그래서 1953년 2월17일자 <버라이어티>의 <성의>에 대한 소개는 “안경을 쓰지 않고 보는 현대의 기적을 보라”였다. 그렇다면 시네마스코프는 3D영화로 가기 위한 매우 긴 장기적 이행기의 중간 단계 사이즈였던 것일까?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고 관객은 3D영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일까? <아바타>는 시네마스코프의 21세기 버전인가? 나는 화면비에 관한 지루한 역사를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그냥 간단하게 폭스사는 전통적으로 끈질기게 화면이 결국 영화의 미래라고 믿었다. 최초의 시네마스코프영화인 <성의>는 폭스사의 ‘혁명’이었으며, 지금 3D영화 <아바타>도 폭스사의 영화이다. 이것을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문화’ 산업에서 미래를 선점한다는 문제. 미래의 독과점. 어쩌면 이런 논쟁을 당신은 따분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3D에 환장하는 모습도 고작해야 이런 기술적 ‘환영’(幻影/歡迎) 논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환기해주기 바란다. 정확하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바타>가 영화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라기보다는 외설적 판본처럼 보인다. 우리는 영화의 새로운 미래의 잠재적 가능성을 위해서 무엇을 건너가야 하는가? <아바타>는 분명하게 대답한다. 응, 그건 미학이 아니라 돈이야.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건너가서 만날 수 있는 미래는 무엇인가? 이때 자본을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제임스 카메론의 예술적 야심에 찬 비전은 역사적으로 모두가 실패한 3D 효과라는 물신주의의 성공에 대한 열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희극에 가까운 프로젝트가 정말 성공했을 때 사태는 2D영화의 전면적인 파국이 될 것이다. 그때 무엇이 전도될 것인가? 혹은 무엇을 전도시킬 것인가? 나는 논쟁의 초점을 어떤 각도에서 들어가도 3D로부터 벗어날 때 핵심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아바타>를 수정주의 서부극이나 문화이론의 패러다임을 빌려온 이데올로기 판본으로 읽는 것은 사실상 이 영화의 기술적 쇼크를 문화적 영역으로 끌어들여서 충격으로부터 방어하려는 보수적 오독(misreading)이다. 만일 오로지 <아바타>를 문화적 판본으로만 읽는다면 이건 가장 나쁜 형태의 매우 지루한 뉴 에이지 아류의 동어반복으로 보인다.

맛있는 대사, 웃음 한줌, 눈물 한 방울…

영화를 보셨는가. 그렇다면 읽을 차례다. 혹은 그 반대라도 상관없다. 영화를 먼저 보았다면 책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눈에 익은 에피소드들이 툭툭 떨어질 것이며, 책을 먼저 읽었다면 영화와 원작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을 테니까. 니콜라의 세계에 처음 입문하는 초심자부터 더 자세히 파고들기를 원하는 숙련자까지 모두 아우르는, <꼬마 니콜라> 시리즈 단계별 독서를 소개한다. 초급반 추천/ <꼬마 니콜라> <꼬마 니콜라의 쉬는 시간> <꼬마 니콜라의 여름방학> <꼬마 니콜라와 친구들> <꼬마 니콜라의 골칫거리> 니콜라가 어떤 아이인지 알고 싶다면, 시리즈의 뿌리인 <꼬마 니콜라>를 비롯해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한 다섯권을 읽길 권한다. 니콜라가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친구 마리 에드비주의 생일파티나 학생주임 부이옹 선생님 이야기, 선생님 때문에 먹던 빵을 떨어뜨리고 이성을 잃는 니콜라의 먹보 친구 알세스트에 대한 에피소드는 영화에 차용되었다.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꼽자면 <꼬마 니콜라>에 수록된 ‘멋진 꽃다발’이 있다. 니콜라는 엄마에게 선물할 꽃을 사지만, 집에 오는 길이 평탄치 않다. 결국 다 찌그러진 꽃을 내밀며 울음을 터뜨리는 니콜라의 모습은 짠하면서도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중급반 추천/ <우리는 천하무적> <선생님은 너무해> <아빠는 괴로워> <공동 꼴찌> <초콜릿 공장 소동> 기본 시리즈를 섭렵했다면, 이제 르네 고시니의 딸 안나 고시니가 출간한 미발표 원고들을 읽을 차례다. 1977년 르네 고시니가 작고한 뒤, 그의 딸 안나 고시니는 이사를 하다가 수백장의 니콜라 원고를 발견한다. 그녀가 발견한 80편의 미발표 원고들은 책으로 묶여 출간되자마자 이틀 만에 초판 5만5천부가 모두 매진됐다. 이들 원고에서도 르네 고시니가 창조해낸 위트있는 에피소드를 엿볼 수 있다. 수학숙제의 답이 틀렸다고 선생님이 주의를 줬는데 알고 보니 아빠가 푼 문제라든지(<우리는 천하무적>), 선생님이 단체 반성문을 벌로 내리자 자기는 잘못도 안 했는데 반성문을 쓸 수 없다며 떼를 쓰는 모범생 아냥(<선생님은 너무해>)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니콜라는 순진하게 보이다가도 방심하는 순간 영악한 모습을 드러내는데, <공동 꼴찌>의 다음 대사가 압권이다. “클로테르가 꼴찌를 하지 않고, 극장에 못 가거나 간식을 못 먹거나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으려면 자전거를 빼앗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 (중략) 산타 할아버지가 원하신다면 클로테르가 어른이 되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될 때까지 내가 그 자전거를 맡아줄게요.” 상급반 추천/ <꼬마 니콜라의 빨간 풍선> 이 단계쯤 되면, 알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챙겨’ 보는 거다. <꼬마 니콜라의 빨간 풍선>은 2008년 꼬마 니콜라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책이다. 르네 고시니가 생전에 쓴 열편의 에피소드들을 읽고 장 자크 상페가 그림을 그려 완성했다. ‘빨간 풍선’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알베르 라모리스 감독의 단편이 먼저 떠오르지만, 생각해보면 빨간 조끼가 트레이드마크인 니콜라와 빨간 풍선은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부활절 달걀’ 에피소드의 경우 꼬마 니콜라가 처음 등장한 1959년 잡지에 실렸던 이야기이며, 풍선이 터질까봐 엄마와 함께 집에 걸어오지만 이웃집 아저씨를 놀라게 하려고 그 풍선을 단숨에 터뜨린다는 ‘빨간 풍선’ 이야기는 미발표 원고에 속한다.

[오마이이슈] 협찬 정신

아하 협찬 때문이었구나. 지난 연말 어느 저녁 텔레비전에 지글지글 맛있어 보이는 고기가 나오기에 침 흘리며 유심히 보았다. 시종 수입 쇠고기는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멘트로 일관했는데 대체 왜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건지는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화면 가득 맛있는 장면과 통관 절차만 보여줬을 뿐. 무슨 실험 결과 안전하다거나 어떤 검사를 해보니 깨끗하다거나 하다못해 검역 과정에 새 기술이 도입됐다거나 하는 그렇고 그런 정보 하나 등장하지 않았다. 명색이 과학 프로그램에서 말이다. 알고보니 정부 협찬으로 제작한 꼭지란다. 한우도 아니고 수입 쇠고기 홍보에 나랏돈 쓰이는 것도 거시기하지만 아휴, 촌스러. 제작진은 얼마나 짜증났을까(나 한때 협찬 받아본 여자야~). 하여간 올겨울 ‘윈터 이슈’들은 하나같이 후지고 구리다. 대통령 딸과 손녀의 해외순방 동행 뉴스와 뒤늦은 청와대의 허둥지둥 해명은 ‘소심한 듯 다크한’ 이 정부 패션의 화룡점정이랄까. 자비로 부담할 것이라 하지만 대체 ‘사후 정산’을 어떻게 해. 대통령 특별기 좌석값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인도 정부에서 이들에게 든 의전과 경호 등 비용을 청구할 리도 만무하잖아. 게다가 부양가족이 아닌 가족을 외교 관례상 데리고 다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네. 일찍이 성냥으로 속눈썹 말아올리고 급우들이 하이틴 로맨스에 열 올릴 때 고고하게 <논노>를 교과서 아래 깔고 보던 소녀 시절의 내 기준에 따르면, 패션은 단순한 옷차림이 아니다(비록 지금은 고무줄 바지로 연명하지만 나름 실용주의거든. 그리고 공식 행사장에는 이렇게 입고 가지 않는다. 더군다나 아버지의 영업장에는 절대로…). 말투와 제스처, 나아가 행동과 처신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신과 세계관을 드러내는 키워드다. 정신세계가 그리 넓고 깊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고 말끝마다 돈돈돈 하는 분을 일컬어 우리는 ‘업자’라 부른다. 4대강의 엄청난 미래 가치도 건설 붐과 이에 따른 땅값 상승으로만 계산하니까 이 사달이 난 거잖아. 오죽하면 돈 없는 학생들 돕겠다는 등록금 취업후상환제가 고리 대부업으로 전락했을까. 이런 사장님이 해외 출장에 가족 동행 협찬 좀 받은 걸 갖고 이렇게 파르르 하는 걸 보니 확실히 나는 소인배다.

[포커스] “아날로그 필름, 아직도 발전중이다”

패션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최근 현장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 정도라고 할까. <국가대표>(2009)로 첫 선을 보인지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대세가 된 레드원 카메라 말이다. 요즘엔 드라마 <추노>를 찍은 카메라로 더 유명하다. 이후 이 카메라로 안 찍은 영화를 세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레드원 카메라는 충무로의 유행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필름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필름과 비슷한 화질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충무로가, 특히 10억원 내외의 저예산상업영화들이 너도나도 앞 다투어 이 카메라를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모른다. 그만큼 디지털이 급성장했다. 풍부한 명암과 색 구현하는 ‘이터나 비비드 500’ 지난 1월25일, 잠실 롯데월드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후지필름 신제품 발표회가 다소 비장하게 시작된 것도 그래서다. “최근 디지털 산업이 성장하면서 필름 업계가 다소 위축된 것은 사실”이라는 최승돈 후지필름 이사는 “이번에 선보일 신제품 ‘이터나 비비드 500’(ETERNA Vivid 500)을 통해 필름이 다시 영화산업의 중심에 서게 되었으면 한다”는 말로 행사를 열었다. 그러니까 필름 업계 스스로 디지털이 필름을 따라잡았음을 인정하고, 다시 한 발짝 앞으로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또 이번 행사는 그간 한국 영화용필름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인 코닥의 아성에 도전하겠다는 후지의 출사표이기도 하다. 확실히 이터나 비비드 500은 고감도필름으로서 훌륭했다(‘500’은 필름감도로, 빛에 반응하는 정도를 뜻한다. 숫자가 높을수록 고감도라 불린다). 한국의 황기석, 윤주환 촬영감독과 미국촬영감독협회의 페든 파파마이클, 클레이머 모겐타우, 디온 비비 촬영감독이 만든 테스트 영상을 본 결과, 다른 필름에 비해 색 재현 능력이 월등히 뛰어났다. 광량이 적은 해질녘이나 새벽에도 피사체가 가진 색을 선명하게 살려내는가 하면, 어둠 속에서도 미세한 밝음과 붉은 립스틱 색 등을 모두 표현할 줄 안다. 또 적은 광량으로도 밤장면 촬영이 가능할 정도로 계조가 풍부하다. 한마디로 밝음과 어둠의 큰 대비 속에서도 높은 채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고감도필름의 단점을 극복했음을 의미한다. 보통 입자가 굵어서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감도필름은 색이 필름 위에 완전히 입혀지기도 전에 상이 맺히는 경우가 많다. 고감도필름이 채도가 낮은, 무채색 느낌이 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번 신제품을 통해 “기존의 것에서 한 단계 진화했다”는 윤주환 촬영감독은 “무엇보다 밝음과 어둠, 그리고 색을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필름누아르 장르에 적합한 필름”이라고 말했다. 역시 테스트 촬영을 해본 디온 비비 촬영감독(<콜래트럴>(2004), <마이애미 바이스>(2006) 등 촬영)도 이에 동의했다. “전체 조명 없이도 섬세한 그림자까지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어둠을 얻을 수 있었다.” 필름의 고비용 문제, 해결 가능할까 이처럼 촬영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지만, 여전히 레드원 카메라와 같은 디지털 매체에 쏠려있는 게 충무로의 현실이다. 이에 필름 업계는 디지털에 대항하기 위해 몇몇 자구책을 마련했다. 지난해 11월, 필름 비용을 줄이기 위해 후지필름이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와 함께 실시한 ‘3P’(Perforation) 테스트가 그중 하나. 3P는 이런 식이다. 필름 한 프레임에 구멍이 좌우 4개씩 있다. 퍼포레이션이라는 이름의 이 구멍을 좌우 3개로 줄이면 어떻게 될까. 줄어든 면적만큼 프레임 숫자가 늘어난다. 그러니까 사용할 수 있는 프레임의 숫자가 많아진다는 말이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 카메라에 필름을 끼우는 부분인 게이트 역시 4개에서 3개로 개조해야 한다. 이렇게 개조하면 후반작업비용이 약 30% 절감된다는 게 테스트의 결과다. 또 4P에 비해 화면의 좌우가 늘어나 시네마스코프(2.35:1) 작업에서 효과를 볼 수 있다. “원래 시네마스코프용으로 개발된 것은 아닌데 3P는 이미지의 손실없이 시네마스코프를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장점을 발견”했다는 게 영진위 기술사업부 조성민씨의 말이다. 3P는 필름을 사용하고 싶지만 제작비 때문에 고민하는 프로듀서와 촬영감독들에게 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로 3P로 필름 비용 절감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영화가 있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 <포화 속으로>와 원빈의 신작 <아.저.씨>가 바로 그것. “보통 400자 필름을 사용하면 3분50초 정도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3P를 적용해보니 5분50초, 그러니까 2분 정도 더 쓸 수 있더라”라는 최명기 프로듀서는 “필름 관련 비용이 30% 절감됐다”고 만족해했다. 하지만 3P가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카메라 한대당 개조비용 7천만원을 부담해야 하고, 4P에 최적화된 극장 영사기에 맞추기 위해 D.I.(Digital Intermidiate: 디지털 후반작업)는 필수다. 신제품 개발, 필름 비용 절감방법 등 필름 업체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인들은 무조건 디지털을 선택하는 풍토를 경계한다. 비용이 싸다는 이유로 말이다. <박쥐>(2009),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의 정정훈 촬영감독은 “작품의 퀄리티를 위해 어떤 카메라가 잘 어울리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카메라 선택에는 반드시 미학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디지털이 계속 성장하는 것처럼 필름 역시 신제품이 계속 나오고 있다. 신제품을 써봐야 더 나은 필름이 또 나오는 게 아닌가”라고도 했다. 그만큼 작품의 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인 <달빛 길어올리기>(2010)를 디지털로 촬영하고 있는 황기석 촬영감독 역시 “장르에 맞는 카메라를 선택하는 게 평범한 진리”라고 강조했다. 촬영방식에 적합한 매체를 골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포화 속으로>의 경우 추운 겨울에 로케이션 촬영이 많다보니, 온도에 굉장히 민감한 레드원 카메라보다 필름카메라가 더 적합하다”는 게 최명기 프로듀서의 설명이다. 작품에 따라 필름과 디지털 혼용되어야 디지털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현상, 인화, 텔레시네 등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필름보다 비교적 간단한 공정의 디지털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위축된 충무로의 투자환경에서 한푼이라도 더 깎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고 필름이 사라질 것이라는 성급한 판단을 내려서도 안된다. 디지털과 필름, 필름과 디지털 모두 창작자에게는 중요한 도구이고, 관객에게는 다양한 볼거리다. 그런 의미에서 후지필름의 와타나베 히로시 국제마케팅 매니저의 말이 떠오른다. “디지털이 대세가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아날로그 필름에 대한 지지층은 굳건하다. 그래서 앞으로도 디지털과 필름이 공존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아날로그 필름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도서] 존재론적 문학실험

출판사 설명 하나만 정정하자.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와 더불어 세계 3대 SF작가로 손꼽히는 필립 K. 딕.” 이게 무슨 달나라 토끼가 반중력 우주선에서 초공간 점프하는 소리? 세계 3대 SF작가, 그러니까 SF 문학계의 빅 스리(Big 3)는 아시모프, 클라크, 그리고 로버트 하인라인이다. 여하튼 필립 K. 딕의 팬들이라면 온갖 영화평론가들이 영화화된 단편들만을 가지고 필립 K. 딕의 철학을 사유할 때 좀 배알이 꼴렸을 텐데, <매트릭스>를 비롯한 수많은 사이버펑크 개똥철학 영화들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유빅>의 출간은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무대는 (언제나 그렇듯이) 가까운 미래다. 시간여행이 가능하고 죽은 사람마저 ‘반생인’이라는 이름으로 생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다. 염력과 텔레파시도 이미 일상화됐다. 그러다보니 초능력자들에 의한 사생활 침해가 잦아졌고, 런사이터 어소시에이츠를 비롯한 여러 기업은 초능력을 무효화시킬 줄 아는 ‘관성자’들을 고용해 사생활 침해 방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열한명의 관성자들을 데리고 달로 떠난 런사이터 어소시에이츠의 대표 글렌 런사이터가 폭탄 테러로 사망하고, 주인공 조 칩은 이상한 메시지를 받는다. 달에서 죽은 것은 런사이터가 아니라 동행한 관성자들이라는 거다. 대체 누가 살아남은 것이고, 누가 죽은 것일까. 혹은, 삶과 죽음이라는 게 더이상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유빅>은 필립 K. 딕의 존재론적 문학실험의 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