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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내 왼손이 곱다구요?그럼 오른손을 보세요,배용준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라는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한껏 자존심을 세우며 돌아선 윤손하가 화장을 고치는 척 콤팩트 거울을 꺼내더니 뒤돌아가는 배용준을 슬쩍 훔쳐본다.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띄우며 걸어가던 배용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읇조린다. ‘거울로 나 봤지? 그래, 오늘은 그걸로, 만족해….’ 이 장면을 보면서 배용준에게 저런 면도 있구나, 잠시 놀랐던 것 같다. 모범생에 반듯한 성품으로 누군가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하거나,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는 역이라면 모를까, 저렇게 머리 굴리며 사랑을 시험대에 올리는 그는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라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후로 오랫동안, 그는 우리의 상상력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정답만 나오는 역할 사이를 오고갔으니까. 그러던 올해 초, 배용준이 데뷔 10여년 만에 영화를 찍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영화는 사극이라 했고, 장안의 여자들을 섭렵해 나가는 천하의 바람둥이 역할이라고 했다. 도대체 이 사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겨울연가>의 인기가 증명해주었듯 25인치 TV 안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그가, 왜 안경을 벗고, 왜 상투를 틀며, 왜 부드러운 말투를 버리려 하는지. 왜 이제 와서 ‘착한 남자’의 온실에서 벗어나려 하는지. 그러나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 속에서 난생처음 이 배우가 궁금해졌다. 무모하거나 혹은 용감한 그가.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뭘 찍고 있는지, 잘 찍고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도포자락 휘날리며 다가오던 배용준이 소파에 털석 주저앉으며 말한다. ‘아니, 글깨나 읽으신 선비가 어찌 그런 것도 모르시오.’ 갑자기 이런 농담을 날리고 싶은 것을 꾹 참는다. 물론 이재용 감독에 대해 “처음부터 믿음이 갔어요”라고 말할 때나, 자신의 팬들은 “처음 사랑 끝까지”변함없다며 고마워할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소리없는 미소, 자로 잰 듯 딱 거기까지만 뻗어져 올라가는 입의 크기, 웬만해선 침착함을 잃지 않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예의바른 태도, CF카피로 써도 될 만큼 늘 정돈된 말투. 이렇듯 배용준의 첫인상은 예상하던 대로였다. 물론 “시나리오를 보다보니 살이 있으면 안 될것 같아서 7kg 정도 감량했다”는 그의 얼굴에 갈색으로 휘날리던 ‘바람머리’ 준상이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쭉 같은 학교를 다니던 남자아이가, 고등학교에 와서 처음 말을 건넨다면 이런 기분일까? 90년대 초 드라마에서 처음 ‘사랑의 인사’를 건넨 10년 뒤, 이재용 감독의 신작 <스캔들- 조선시대 남열 상열지사>의 촬영현장에서 이루어진 그와의 첫 번째 조우는 익숙함과 생경함이 뒤섞여 있었다. “왜 갑자기 영화를 찍겠다고 생각했나요?” “갑자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거였는데, 늘 인연이 안 되서 포기하곤 했어요. 충무로는 언제나 빨리 돌아가야 하는 곳이었지, 언젠가 가보아야 할 곳은 아니었어요. 왜냐면 시작이 영화였으니까요. 92년에 합동영화사에서 제작부 막내로 일할 때에도 무엇이 되든 간에 내 꿈은 영화 일을 하는 거였어요.” “안경을 벗고, 상투를 트는 사극연기에, 바람둥이 역할이라니, 모험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요. 큰 결정이었어요. 어렵고 쉽고를 따지기 이전에 나중에 넘어야 할 산인데 처음부터 넘으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이에요. ‘왜? 뭐 때문에?’ 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래, 너답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산을 넘으면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주변에서 떠드는 것처럼 안경을 벗는 건 오히려 큰일이 아니었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이상 이렇게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제는 정말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 나를 계속 괴롭혔던 것 같아요. 스타가 아니라 배우로 불리고 싶다는 것이 이런 욕심을 가지게 된 출발점이겠죠.” 이제 그에게 목도리 매는 법을 묻지 말자. 어떻게 말을 타고, 어떻게 검을 쓰고, 어떻게 춘화를 그리는지를 물어보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거죠, 나 대신 누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면 되겠다는 건 알겠는데 절대로 그렇게는 안 되고…소리라도 지르고 싶고, 이게 아닌가봐 아닌가봐, 해봐도 답은 안 나오고….” 이제 10여회차 넘어간 촬영 동안 배용준은 10년 동안 느꼈을 연기의 어려움을 한꺼번에 겪었다. “시나리오 재밌어, 이미숙 선배에 전도연씨까지 배우들 휼륭해, 감독 믿음이 가죠, 재고의 여지가 없었어요. 상투를 트니까 힘들겠다, 옛날 말투가 힘들겠다, 이런 디테일에 대한 걱정은 하나도 안 했던 셈이죠. 그냥 죽기 살기로 해보자 했는데… 와, 그런데 이거 촬영 들어가니까 죽겠네요. 이렇게 어려울 수가, 이렇게 어려울 수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연기를 못했었나 느껴지더라구요.” 게다가 여전히 배어 있는 TV연기 습성은 끊임없이 그를 방해했다. “카리스마가 있으면서 자기감정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는, 그러면서도 능청스럽고, 장난기 있는” 희대의 바랑둥이 조원을 연기하기엔 그의 표정이나 말투는 여전히 “너무 부드럽고, 너무 착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안 하던 연기잖아요….” 꽉 조여맨 상투 때문에 이마에 피멍이 들고, 따끔거리는 수염 때문에 갑갑해도 그가 일그러진 얼굴로 가슴을 퍽퍽 치며 괴로워하는 원인은 다른 데 있었던 거였다. “며칠 전 이미숙 선배랑 촬영하는데 “지금 가슴으로 안 느꼈어, 다시 해봐” 그러시는 거예요. 난 분명히 가슴으로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야기 듣고 다시 해보니 조금 다른 느낌이더라구요.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고 배워나가겠죠. 이제는 인기가 쌓이고 타인의 평가를 받는 것만이 아니라, 운동에서 1단, 2단 따올라가듯 보이지 않는 내 만족도에서 연기의 단을 따나가야 한다는 걸 알겠어요.” 학생이란, 내 상태를 인정하고 기꺼이 새로운 깨달음을 받아들일 자세가 된 사람을 일컫는 것이라면, 그는 당분간 학생으로서 행복할 것 같다. 극중 조원이 조씨 부인(이미숙)의 다리를 슬며시 쓸어올리는 장면, 배용준의 손이 모니터에 클로즈업된다. 희고 얇은 손가락이 여자손보다 훨씬 곱다. “손이 참 예민하게 생겼다”고 했더니 그가 불쑥 오른손을 내민다. 그것은 모니터 너머로 보던 곱디 고운 왼손과는 많이 달랐다. “이런 손도, 저런 손도 다 나한테 달려 있는 내 손이에요.” 그동안 우리는 그의 한손만 보아온 건지도 모르겠다. 10년 동안 따뜻한 아랫목에서 사랑받던 그가 제 발로 충무로 거친 들판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제 나머지 오른손을 내민다. 일단 한번 잡아보자. 믿고 잡아도 후회없을 손일지, 썩은 동아줄일는지는 몇달 뒤 그가 스스로 증명해 보일 것이다.

선제작 후선곡의 뮤직비디오 <관운 이야기>

상상 속에 음악이 있다 3년 전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작곡가 간노 요코의 도쿄 콘서트에 간 적이 있다.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 O.S.T 발매 기념 콘서트였다. 그 자리에는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도 와 있었는데, 이들에게 들은 공동작업 방법은 의외였다. 그토록 잘 어우러진 영상과 음악이 사실은 한두번의 미팅만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감독이 곡이 들어갈 장면과 분위기에 대해 설명하면, 작곡가는 아, 그래요? 하고 돌아와서 ‘마음대로’ 만든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끔은 영상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든다나. 물론 말이야 쉽게 했지만, 상상력을 발휘해서 곡을 만드는 사람이나 거기에 어울리도록 영상을 편집하고 연출하는 사람, 모두 만만치 않은 힘을 들였을 게 틀림없다. 다만 놀랐던 것은 아무리 호흡을 오래 맞춰온 사이라지만, 서로의 상상력이나 의외성에 기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도 박완규의 <천년의 사랑>이 <카우보이 비밥>의 영상을 뮤직비디오로 사용해 성공한 것을 보면, 치밀한 계산과 잦은 대화만이 능사는 아닌가보다. 한혜진, 안재훈 감독이 음악도 정해지지 않은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앗! 괜찮다! 싶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이미 5분가량의 레이아웃 영상이 완성된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관운 이야기>는 죽마고우인 관(關)과 운(雲)의 이야기다. 그동안 대부분의 뮤직비디오가 음악 위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애니메이션 영상이 주체가 되어 음악을 고르겠다는 두 감독의 시도는 새롭고 도전적이다. <관운 이야기>에서는 일단 도시적이고 사실적인 영상이 두드러진다. 세련된 캐릭터와 실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 소품을 보고 있자면 한혜진, 안재훈 감독이 형식뿐 아니라 표현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려한 도시 거리와 누추한 뒷골목이 대조를 이루면서 영상은 흘러간다. 프로 복싱 선수인 ‘관’과 태권도 선수인 ‘운’은 어린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노력하지만, 운은 도중에 경찰로 진로를 바꾼다. 그러나 복싱산업은 서서히 쇠퇴기에 이르고, 이윽고 관은 조직폭력단을 위한 도박 경기를 제안받는다. 한편 경찰에서 은퇴한 운은 어둠의 실체에 다가서고, 이를 눈치챈 조직폭력단은 여자친구를 미끼로 그를 유인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관과 운은 결투가 벌어진 건축 공사장에서 조우하고, 둘은 수많은 폭력단을 상대로 결투를 벌이는데…. 처참하게 망가지는 이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에서는 과연 어떤 음악이 흐르게 될까. 기다려지고 궁금해진다. 내용은 염두에 두지 않고 봐도 ‘쿨’한 영상이다. 쿨한 영상 아래 절박하고 끈끈한 인간미가 흐르는 게 큰 매력이기도 하다. 연필로 몽상하기 스튜디오 홈페이지(www.mwp.pe.kr)에서 Club8의 와 장남들의 <바람과 구름>에 맞춰 실험적으로 연출된 두 버전을 볼 수 있도록 준비중이다. 신곡 뮤직비디오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가수가 있다면, 어서 감독들에게 연락해보길 바란다. 영상을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아예 <관운 이야기>라는 제목의 곡을 만들어야겠다! 뭐 이렇게 나온다 해도 두 감독은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 같다 :-D 김일림/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illim@korea.com

잠자는 걸작 10편, 깨워라! [1] - 임소요

개봉촉구! <임소요>에서 <아들>까지, 반드시 ‘극장에서’ 만나고 싶은 걸작 10편 지지선언 수입은 해놓고 개봉을 못하는 영화들이 있다. 때로는 걸 만한 극장을 찾을 수 없어서, 때로는 수입사 스스로 흥행 가능성에 자신이 없어서, 때로는 심의문제가 걸려서. 영화사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이런 영화 가운데 상당수가 외국의 각종 매체에서 그해 베스트 10에 꼽힌 작품들이다.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경탄을 자아내고 열렬한 지지를 받은 영화들을 하루빨리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씨네21>의 이번 특집은 그 방법 가운데 하나로 기획된 것이다. <임소요> <큐어> <해피니스> <팜므파탈>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아들> <막달렌 시스터즈> <볼링 포 콜럼바인> <노 맨스 랜드> 등 10편에 대한 추천사를 모은 이번 특집이 관객의 조바심을 재촉해 정식 개봉의 그날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임소요> 마음을 얻고 나는 쓰네 2000년 중국. 그러니까 이제 막 21세기에 들어선 중국의 변경 도시 따퉁에는 시골집에서 가출해서 지금 막 상경한 두 소년이 있었다. 그들은 도시에 가면 금방 취직이 되고, 돈을 벌어서 금의환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처럼 모든 것이 잘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춥고 배고프게 지내야만 했다. 도시는 그들을 돌보지 않았으며, 이제 그들의 호주머니에는 남은 돈이 없었다. 두 소년은 국수를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베이징 근처의 석가장에서 폭파사건이 일어난 것을 알려주었다. 범인인 실직한 노동자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기 집을 폭발시켜 버린 것이다. 그때 한 소년이 다른 소년에게 말했다. 우리 폭탄을 들고 은행에 들어가서 그 은행을 털든지 아니면 폭발시켜 버리자. 그 소년들은 은행 강도가 사회주의 중국에서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들은 사제폭탄을 만들었다. 그리고 비장해진 두 소년은 그들이 빌려다 본 불법 복사 홍콩영화의 주인공들처럼 고향에 계신 부모에게 편지를 썼다. 그런데 한 소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라디오에서 (대만 가수가 부른) 유행가 <임소요>(任逍遙)가 흘러나왔다. …어떤 후회나 슬픔이 와도 사랑만 있다면 상관이 없다네. 어떤 고통이나 괴로움이 있다 해도 나는 바람처럼 자유롭지. 내가 만일 영웅이라면 당신은 내 출생의 미천함을 물어보지 마시오. 높은 야망으로 내 가슴은,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지. 그러나 사랑만은 잊을 수 없네. 평생 동안 간직했으나 이룰 수 없었지. 영웅은 초라한 태생을 두려워하지 않지. 내 마음은 야망과 자존심으로 가득 차 있네. 그러나 내가 잊지 못하는 것은 바로 사랑. 평생 동안 헛되이 간직해왔건만 사랑에 빠져 나는 눈멀었네, 애증이 가슴에 가득 하구려. 운명은 진정한 사랑을 갈라놓으니, 내 어찌 당신을 잊으리오…. 열아홉살 소년은 그 가사를 베껴 써서 그의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보냈다. 그것이 그가 보낸 마지막 고향 편지가 되었다. 두 소년은 은행을 털러 들어갔다가 미숙하게 폭탄을 만지는 바람에 그만 폭발하였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신문은 이 사건을 사회면의 작은 난에 실었다. 그리고 그걸 지아장커는 읽었다. 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 이걸 읽으면서 망연자실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곡을 찾아서 다시 한번 들어보았다. 그리고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따퉁을 찾아갔다. 그는 매일 출근하듯이 아침 6시에 따퉁에 도착해서 저녁 9시까지 따퉁의 여기저기를 찍었다. 거기서 두 소년과 같은 수많은 19살을 만났다. 그렇게 지아장커의 세 번째 영화 <임소요>의 시나리오는 거리에서 쓰여진 것이다. 그는 유릭와이가 촬영하는 디지털카메라의 도움으로 따퉁의 거리에서 19일 만에 촬영을 끝냈고, 편집을 비밀리에 끝냈다. 칸에서 이 영화의 공식상영은 2002년 5월23일 오후 4시에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그 자리에 있던 관객은 기꺼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지아장커는 그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여섯달 뒤에 나는 부산에서 물어보았다. 칸에 온 것이 그렇게 당신의 마음을 움직였습니까? 지아장커는 대답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운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 아이들이 버림받고, 죽어가고, 묻혀질 때, 아무도 그 아이들을 기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일깨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든 것입니다. 이 영화가 지구 반대편에 와서, 그 아이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들로 하여금 박수를 치게 만들 때, 나는 그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너희들은 잊혀진 것이 아니야. 너희들의 분노, 너희들의 슬픔, 너희들의 고통을 영원히 기억할 거야. 나는 그렇게 자꾸만, 자꾸만 다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 지아장커의 <임소요>는 마음으로 만든 영화이다. 그는 더이상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하소연하듯이 만든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이 사무친다. 나에게 영화에서 점점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진심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안고, 절실하게, 정말 소망할 때, 그 영화는 내 마음을 움직인다. 나는 영화관에 가서 시시하게 팝콘이나 처먹고 콜라나 마시면서, 거기서 얼마 남지 않은 내 삶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지아장커의 <임소요>를 보기 위해서라면 열두 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지구 반대편에서라도 그 영화를 보고, 그 마음에 응원을 하고 싶다. 나는 그렇게 영화를 사랑한다. 그것이 내 방식의 사랑이다.

장준환과 <지구를 지켜라!> 탄생기 [5]

06. 에필로그 2003년 초 편집실 감독은 적이 당황하고 있다. “이 장면은 너무 어두워. 빼는 게 좋겠어.” 제작진들이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2002년 5월부터 11월까지 힘겨운 촬영을 끝낸 가뿐한 상황임에도 감독의 표정은 어두워진다. 모든 스탭과 배우가 고생했지만, 그중에서도 누구보다 힘들어했던 주연 신하균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장면을 뺀다고 생각하니 감독은 하균 앞에 면목이 서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구? 다음을 봐라. 플래시백- 2002년 여름 강원도의 어느 국도 감독은 병구가 친구인 태식으로부터 무시당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찍고 있다. 태식이 자신의 상처를 건드려 괴로운 병구의 내면이 드러나야 하는 장면이다. 병구가 자신의 뺨을 세게 때리며 트럭을 운전한다는 설정은 이렇게 그의 아픔과 이상심리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감독은 생각한다. 근데 왠지 불안하다. 병구 역의 신하균이 수동기어를 어색하게 조작하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드디어 감독은 ‘슛!’이라고 외친다. 불안한 기어소리와 함께 트럭이 출발하고 병구가 자신의 뺨을 때리기 시작한다. 어찌나 세게 때리던지 엄청난 엔진 소음 속에서도 ‘짝! 짝! 짝!’ 하는 따귀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이때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대형트럭. ‘악 이러다 사고가 나는 게 아닐까?’ 재수없는 생각을 하는 찰나, 아슬아슬하게 대형트럭을 비켜가는 병구의 트럭.하지만 그 순간에도 하균은 그치지 않고 ‘짝! 짝! 짝!’ 소리를 낸다. 놀란 가슴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감독이 뺨이 벌겋게 부어오른 하균에게 다가간다. 감독: 얼굴 괜찮아? 아이구 많이 부었네….하균: (눈을 번득거리며) 어땠나요?감독: 좋아, 잘했어!하균: 정말 괜찮으세요? 전 괜찮으니까 맘에 안 드시면 한번 더….감독 : (당황해 고개를 마구 흔들며) 아… 아냐. 딱 좋아. 내가 원하던 대로 나왔어흐뭇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하균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음,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신하균 무서운 놈이다.’ 영화의 주무대인 지하공간은 두개의 공간이다. 지하 2층은 병구가 마네킹을 만들며 외계인을 연구하는 작업실이자 연구실. 그리고 1층은 올라가는 사이에 비밀스런 공간인 외계인 고문실이 자리잡는다. 초록과 빨강색의 강렬한 대비로 인물들의 갈등을 증폭시켰다. 다시 2003년 초 편집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목숨 걸고 찍은 장면을 빼내는 감독. ‘미안하다 하균아. 이 장면은 DVD에는 꼭 넣을게.’ 감독은 마음속으로 외친다. 2002년 3월 중순의 어느 날 녹음실 감독은 이제 5개월간의 긴 후반작업까지 거의 마무리짓고 있다. 이동준 음악감독에게 열심히 주문 사항들을 외쳐댄다. 엔딩 크레딧에 나올 병구의 테마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장중한 분위기의 음악이 화면없이 들려오는데 감독의 눈이 붉어진다. 그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고생했던 게 떠올라서였는지, 미쳐갈 수밖에 없었던 병구의 슬픔이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감독은 생각한다. ‘이게 내 개인적인 느낌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딱 이 정도였으면 좋겠다고. 극장에 불이 켜지고 관객이 영화관을 나갈 때 이런 느낌으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감상에 빠졌던 감독을 깨우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장 감독,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감독은 또다시 데뷔작을 놓고 뿌듯함과 설렘, 아쉬움과 불안함이 뒤섞인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촬영현장의 5대 사건외계인들은 말한다 “꾸오아-악떼ㄱ꾹” 첫 번째 사건: 2002년 6월 부산 - 외계어를 창조하다 병구가 강 사장의 외계인 이름을 알고 있다며 소리치는 장면. 감독은 신하균과 함께 외계인 말을 어떻게 소리낼 것인지 궁리 중이다. 비밀이지만… 사실… 감독은 외계인 언어를 모른다! 그래서 일단 시나리오엔 ‘quoaaktekguk’라고 적었는데. 그러니까 소리나는 대로 읽으면 ‘꾸오아-악떼ㄱ꾹’ 정도 될까? ‘아 그게 이렇게 목을 몇번만 상하좌우로 움직여주면 되는데….’ 감독은 마음속으로 이미 완벽한 연기를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 외계 언어를 모른다는 사실을 스탭들이 알아챌까봐 모른 척 시치미 떼고 고민하는 척한다. 그런데 신하균이 눈의 끔벅거림, 삐죽거리는 입, 목 관절의 놀림까지 완벽하게 감독의 마음을 읽어내며 외계어를 만들어낸다. ‘그래 내가 원했던 게 바로 그거야!’ 두 번째 사건: 2002년 7월 부산 - 구를 길거리 캐스팅하다 감독의 마음은 갑갑하다. 병구가 키우는 집 강아지 이름이기도 한 지구의 캐스팅이 좀처럼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미술감독이 촬영장 근처 식당에서 졸고 있는 강아지를 발견했다며 안고 왔다. ‘안기에는 좀 지저분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뚱뚱한 게 멍청해 보이고, 다리도 짧다며, 그리고 결정적으론 너무 더러워서 이가 있을 것 같다면서 반대한다. 하지만 감독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지구도 강아지 세계에서는 뭔가 상처가 있는 존재로 보였으면 좋겠어~. 일단 씻겨놓으면 괜찮을 거야.” 세 번째 사건: 2002년 8월 강원도 모 여관 - 감독, 상태가 나빠지다 벌써 세 번째다. 태풍 말이다. 감독은 화가 치밀어 오른다. 러브호텔 내음이 물씬한 숙소에 독수공방 묶여 있는게 어언 한달째 아닌가. 감독은 음주를 통해 기공을 단련하려 한다. 하지만 공력이 너무 쌓였는지, 신경만 예민해진다. ‘안 되겠다. 오늘은 무슨 수라도 내야지.’ 감독은 30여분을 걸어서 마을로 나온다. ‘뭘 해야 하지?’ 두리번거리는데 미용재료상이 눈에 들어온다. 비닐봉투에서 염색약을 꺼낸 감독은 욕실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정성껏 색을 칠한다. 아주 샛노란 색깔로 머리칼을 물들이니 감독의 마음도 가라앉는다. 완성. 그런데 스탭들의 눈치가 이상하다. 뭐라고 수군거린다. 네 번째 사건: 2002년 9월 강원도 산골 벌집언덕 - 벌떼, 습격하다 왱왱-. 감독은 이제 벌떼가 나오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 그때 감독의 머릿속에서 아픈 상처가 되살아난다. 어릴 적 그는 풀밭에서 놀다가 땅바닥에 뒹구는 벌을 발견하곤 장난을 쳤는데, 벌이 갑자기 독침을 드러내고 그의 다리를 공격한 것이다. ‘교활한 외계인 같은 놈.’ 어쨌건 촬영시간을 맞은 감독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연출부에 외친다. “벌이 너무 힘이 없어. 생생한 놈으로 풀어봐!” 감독은 얼른 보호망을 뒤집어쓴다. 흠흠…. 다섯 번째 사건: 2002년 11월 변산반도 해변 - 신하균, 유인원 변신 드디어 마지막 촬영이다. 대역을 써도 된다는데 신하균이 직접 유인원을 하겠다고 나선다. ‘이상하다. 어차피 유인원 탈을 쓰면 얼굴이 안 보일 텐데?’ 아무튼 하균의 열의는 감독의 마음을 촉촉하게 만들었다. 감독은 그 보답으로 이런 결심을 한다. ‘내가 너무 디테일에 집착한다고? 흥! 오늘은 마지막 촬영인데다 털옷을 입고 뼈를 내려치기만 하면 되니 연기도 필요없고. 좋았어. 가볍게 가는 거야.’잠시 뒤. 감독은 어느새 이렇게 말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균아. 눈빛이 조금 더 슬퍼보였음 좋겠어. 손바닥이 5도만 뒤로 젖혀지면 어떨까?” 등등. 그러는 사이 조수간만의 차이가 뚜렷한 서해안 해변은 물이 차 오른다. 스탭들이 웅성거린다. “어 물 들어온다…. 우리도 잠기겠는데. 카메라는 저기 두고 왔는데 어쩌지?” 하지만 감독은 딴 생각을 하고 있다. ‘역시 털이 바람에 나부끼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영화사 신문 제9호(1925~1926) [1]

영화사신문 제9호 The Cine History 격주간·발행 씨네21·편집인 이유란 1925 ~ 1926 걸작 <탐욕>, 만신창이 개봉제작자 어빙 탈버그, 이번에도 무차별 가위질 1925년 1월,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신작 <탐욕>이 드디어 개봉했다. 1923년 3월에 크랭크인했으니, 거의 2년 만이다. 잔인성을 피 속에 타고난 치과의사가 결국엔 아내와 그를 배신한 옛 동료를 죽이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은 이 어두운 영화는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흥행에서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정작 감독인 스토로하임은 이 영화 보기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편집에서 감독이 배제된 채 제작자의 의도대로 최종 프린트가 나왔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문제는 상영시간이었다. 사단은, 스트로하임이 1924년 초 9시간 분량의 편집본을 제작사인 골드윈에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안그래도 스트로하임이 제작비를 3배나 초과하는 바람에 골머리를 썩고 있던 골드윈은 1, 2부로 나누어 개봉할 수 있도록 상영시간을 줄여오라고 지시했다. 이에 스트로하임은 270분짜리 최종 편집본을 내놓으며, 그 이상은 절대 줄일 수 없다고 통고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돌출했다. 그해 골드윈이 MGM에 합병되면서 <탐욕>이 제작자 어빙 탈버그 수하에 들어간 것이다. 탈버그는 MGM 소속의 작가 조셉 판함에게 이 영화의 편집을 맡겼다. <탐욕>의 원작소설도, 촬영 스크립트도 읽어본 적이 없는 판함은 서브 플롯들을 왕창 들어내는 등 자의적으로 영화를 편집하고 나머지 필름을 파기했다. 2년 제작과정 끝에 25년 1월 개봉한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탐욕>. 사실, 스트로하임과 탈버그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악연은 스트로하임이 유니버설에서 <어리석은 아내들>을 찍으면서 시작됐다. 이때 스트로하임은 제작비를 6배나 초과한 112만달러를 쏟아부은 끝에 6시간짜리 영화를 내놓았다. 이에 탈버그는 영화를 150분짜리로 재편집하도록 했다. <어리석은 아내들>은 흥행에 대성공했으나, 결국 23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어쨌거나 능력을 인정받은 스트로하임은 차기작으로 유니버설에서 시대물인 <메리 고우 라운드>를 찍는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어리석은 아내> 짝날 듯이 보이자 탈버그는 스트로하임을 해고한다. 이에 스트로하임은 유니버설을 떠나 골드윈으로 적을 옮겨 프랭크 노리스의 자연주의 소설 <맥티그>를 원작으로 한 <탐욕>을 찍었다. 그런데 편집을 둘러싸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골드윈이 MGM에 합병되면서 역시 유니버설을 떠나 MGM에 합류한 탈버그와 재회하게 된 것이다. 스트로하임이 MGM에 잔류,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의 여부는 <탐욕>의 흥행 성적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가지마! 루돌프루돌프 발렌티노 장파열로 사망, 한 여성팬 자살 1926년 8월30일, 여름비 속에서 만인의 연인인 루돌프 발렌티노의 장례식이 열렸다. 이날 장례식에는 4만여명의 군중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았으며,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파라마운트 대표 아돌프 주커,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사장 요셉 슈넥 등이 관을 운구했다. 여성들이 그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탓인지 이날 장례식 분위기는 거의 폭동에 가까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그중 일부가 발에 깔려 다쳤으며, 묘지에서는 한 여성팬이 손목을 그어 자살했다. 이 여성만이 아니다. 경찰에 따르면 발렌티노가 사망한 8월23일 이후 일주일 동안 적어도 10명의 여성이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죽음은 너무 빨랐고, 너무 느닷없었다. 발렌티노는 겨우 서른한살이었는데, 장파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1913년에 미국으로 건너온 이 라틴계 미남은 뉴욕의 한 카페에서 전문 무용수로 활동하다 1917년 할리우드로 날아갔다. 처음엔 전형적인 사악한 외국인 역할을 맡았으나 1921년 <묵시록의 네 기사>에서 운명적인 플레이보이로 출연하면서 여성들의 광적인 사랑의 대상이 됐다. ‘분홍 분첩’(pink powder puff)으로 불렸던 그는 여성들에게 부드럽고 낭만적인 애인이었다. 여성들은 그에게서 완벽한 사랑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현실과 영화를 혼돈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내가 아니라 스크린 속에 그려진 나와 사랑에 빠지는 거다. 나는 그저 여성들이 그들의 꿈을 그려넣는 캔버스에 불과하다.” 죽기 얼마 전, 발렌티노는 이렇게 말했다. 단 신 들 <기쁨없는 거리> 영국 상영 금지 1925년 G. W. 파브스트 감독, 그레타 가르보 주연의 <기쁨없는 거리>가 영국에서 상영 금지됐다. 또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프랑스에서는 장면 일부가 잘린 채 개봉했다. 문제는 이 영화가 어두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는 데 있었다. <기쁨없는 거리>는 초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는 비엔나를 배경으로, 한 중산층 가정의 몰락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아버지가 파산하는 바람에 원치 않게 싸구려 밤무대 가수가 되는 여주인공 마리아 역은 최근 급부상한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맡았다. “히치콕, 거장의 비전을 가진 젊은이 ” “거장의 비전을 가진 젊은이.” 영국 영화계에 새로운 기린아가 탄생했다. 1926년 3월, 영국의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최근 <쾌락의 정원>으로 데뷔한 신인감독 앨프리드 히치콕(27)에게 이러한 찬사를 보냈다. 10대 후반에 파라마운트 런던 지사에 입사한 히치콕은 편집기사로 영화에 입문했으며, 이어 마이클 발콘의 영화사로 자리를 옮겨 각본과 미술감독, 조감독으로 일해왔다. <쾌락의 정원>은 런던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두명의 여성, 질과 패치의 사랑과 실패한 결혼을 그린 멜로드라마다. 독일 쿼터법 제정 1925년 1월 독일에서 외국영화의 수입을 제한하기 위한 쿼터법이 제정됐다. 이 법에 따라 앞으로 독일영화 한편을 만들어야 외국영화 한편을 수입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이번 조처는 점증하는 할리우드의 영향력을 막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사운드시대 열렸다 1926년 8월26일 워너브러더스가 자체 개발한 바이타폰 영화 <돈 주앙>의 시사회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워너는 이날 성악가 지오바니 마르티넬리의 콘서트와 함께 존 배리무어 주연의 <돈 주앙>를 상영했다. 극중인물의 대사에 소리가 입혀진 것은 아니지만, 관객은 극장 안 오케스트라단의 실연이 아니라 스크린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자연스러운 소리의 재생, 악기들의 음질, 뮤지션들의 입모양에 맞춘 음악의 타이밍은 정말 놀라웠다. 바이타폰이 관객을 유례없는 흥분에 빠뜨렸다”라고 시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워너브러더스는 유성영화 개발을 위해 지난해 바이타폰사를 설립하고 사운드 실험에 300만달러를 투자해왔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21세기형 최루성 음악,<국화꽃향기> OST

영화 관객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함으로써 흥행을 꾀하는 영화들을 ‘최루성 영화’라고들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최루성 영화는 간단한 법칙을 지니고 있었다. 남편이나 아내, 자식이나 부모, 애인 중 한 사람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무조건 울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객은 내용이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우는 주인공’을 보고 따라서 운다. 이와 같은 ‘따라하기’는 유치한 것 같아도 영화의 프로이트적 힘 중 하나를 표시한다. 관객은 모두 ‘우는 주인공’의 품에 안긴 아기가 된다. 최루성 영화의 호소력은 결국 이와 같은 퇴행적 보편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최루성 영화의 음악은 주인공의 볼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다. 그것이 그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한국 최루성 영화의 음악은 늘, ‘줄줄 늘어지는’ 스트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음악 역시 그쳐서는 안 된다. 그만 좀 울었으면 싶은데 주인공이 계속 우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따라 울게 되듯, 그만 좀 울렸으면 싶지만 이 음악은 절대로 그치지 않고 줄기차게 늘어진다. 그리하여 관객에게 줄기찬 슬픔을 강요하다 못해 나중에는 관객의 귀에 매달려 애원한다. 그 ‘늘어짐’은 내용의 늘어짐과 완전하게 부합한다. 죽다가 살아나고 다시 죽다가 살아났다가 끝내 죽고나면 어디선가 드라마를 끝내기 위해 잃어버렸던 아버지가 나타나는 이 늘어지는 내러티브와 징징거리는 스트링은 일심동체다. 때로는 필름이 늘어져서 실제로 음높이가 저절로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흔히 사진 같은 것을 보고 ‘배경이 울었다’라고 말할 때 쓰는 바로 그 ‘운다’는 형용사에 가까운 자동사는 이 늘어진 음악에도 딱 어울린다. 우리가 지겹도록 들은, 녹음의 기술적인 미숙함과 보존의 소홀함의 결과인 이 ‘징징 스트링’은 한국영화의 눈물 젖은 역사를 말해주는 한 상징이다. 세월은 흘러 바야흐로 21세기. <국화꽃향기>를 보면 몇 가지 신선한 법칙들이 선보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슬픔은 속에 감추고 우는 장면은 가급적 돌아서서 어깨만 들썩이게, 우는 장면 앞에는 즐거운 장면, 그것도 살짝…. 그렇긴 해도 최루성 영화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죽고 자식은 남으며 남편은 자식과 함께 있다. <국화꽃향기>의 내용이다. 예전에 나왔던 <편지>는 반대다. 남편은 죽고 자식은 나무와 함께 남았고 어머니는 그 나무 밑에서 자식을 기른다. 이처럼 최루성 영화의 면면한 전통에 나름의 세련된 옷을 입힌 <국화꽃향기>의 음악 역시 예전의 최루성 영화와는 다른 세련된 옷을 입고 있다. 성시경이 부른 주제가 <희재>는 애절하게 팬들의 가슴에 와닿는다. <산타루치아>를 비롯,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이 그때 그때 기민하게 선곡되었고 메인 테마는 차분하고 단정하게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 사람들은 울고 싶은 마음을 예전처럼 단도직입적인 호소에 내맡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믿는다.

아카데미 울려펴진 반전

아카데미의 '반란'‥예상깨고 중반부터 술렁 ◇2003년 시상식 풍경 “<시카고>와 마이클 무어가 오스카에 불을 지피다.” <버라이어티>가 아카데미 시상식 도중 보도한 기사의 제목처럼, 70년대 제인 폰다가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격렬하게 벌인 이래, 2003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가장 큰 반전과 평화의 기원으로 달궈진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바로 전날(22일) 로스앤젤레스의 샌터모니카 해변에서 열린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에선 “이 전쟁이 제국주의와 석유를 위한 것”이라든가 “좀더 ‘스피릿’을 쏟아 올해엔 부시를 사무실에서 몰아내자”는 영화인들의 수상소감이 쏟아졌었다. 그에 비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과격한’ 발언이 없을 것이라고 예측됐었다. 하지만 <볼링 포 컬럼바인>의 감독 마이클 무어는 예상외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거머쥐며 얌전하던 아카데미 무대를 뒤엎어버렸다. 무어는 <볼링…>에서 99년 있었던 미국 콜럼바인 고교 총격 사건을 통해 총기가 난무하는 미국의 일그러진 초상을 그려냈고, 부시를 비롯한 우익세력을 <멍청한 백인들>이란 책에서 정면으로 비판했던 인물. 그는 시상자인 다이언 레인의 환호와 이례적인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고 다른 다큐멘터리 후보들과 함께 올라섰다. “우리가 함께 연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올라왔다”며 “우리는 실재의 세계가 좋아 다큐멘터리를 만들지만, 지금의 세계는 허구같다”로 시작한 그의 발언이 부시에 대한 맹공으로 나가자, 시상식장은 야유와 환호가 엇갈리며 웅성거렸다.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보수적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국의 대통령을 공격한 그의 발언은, 두고두고 미국내 논쟁거리가 될 것 같다. △ 제75회 아카데미영화제에 참가한 많은 영화인들은 평화를 표시하는 브이자를 그리며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사진은 배우 앤디 세르키스, 수잔 새런든. 행사취소 소문까지 나돌던 아카데미 시상식은 레드카펫 행사를 비공개로 간단히 치르고, 시간과 규모를 축소시켜 진행됐다. 실제 엄격하게 지켜진 45초의 연설시간 때문에, 연설 도중 음악이 연주되고 마이크가 내려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 팀 로빈스-수잔 새런든 부부는 행사장에 입장하며 평화의 사인을 그려보였고, 많은 참석자들이 평화를 기원하는 뱃지를 달아 소극적이나마 그들의 평화의 의지를 내보였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에드리언 브로디는 긴 소감 끝에 “1초만, 1초만”을 호소한 뒤 “나는 상을 받고 있지만 정말 이상한 시대다. 이 영화를 만들며 전쟁이 가져오는 슬픔과 비인간적인 면이 얼마나 심각한지 절실히 깨닫게 됐다”며 파병된 친구가 돌아오길 빌었다. 여우주연상의 니콜 키드먼도 자신의 어머니와 자식 이야기를 하며 “지금 많은 부모들이 전쟁 때문에 자식을 잃고 있다”고 전쟁의 비극을 상기시켰다. 멕시코의 혁명적 화가 프리다의 삶을 그린 <프리다>의 주제가를 소개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이투 마마>의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프리다가 살아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반전의 목소리를 높였을 것”이라고 말해 사람들의 환호를 끌어냈다. 사실 보수적인 아카데미 위원회는 “20세기에도 전쟁의 바람에 숨기보다 자신을 전쟁의 분위기에 적응시켜왔다”(<엘에이 타임스>)고 평가됐다. 하지만 명분없는 전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그 언제보다 높은 올해, 아카데미 위원회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듯 “45초의 시간만 제한될 뿐, 수상자들의 발언에 어떤 가이드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보수적인 아카데미는 결국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막지 못했고, 세계인은 이 순간을 똑똑히 지켜보게 됐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부문별 수상자ㆍ작품 △ 감독상 폴란스키,작품상 리처드,남우주연상 브로디,여우주연상 키드먼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작품상=<시카고> ▲감독상=로만 폴란스키(<피아니스트>) ▲남우주연상= 애드리언 브로디(<〃>) ▲여우주연상= 니콜 키드먼(<디 아워스>) ▲남우조연상= 크리스 쿠퍼(<어댑테이션>) ▲여우조연상= 캐서린 제타-존스(<시카고>) ▲각색상= 론 하우드(<피아니스트>) ▲각본상= 페드로 알모도바르(<그녀에게>) ▲촬영상= 콘래드 W. 홀(<로드 투 퍼디션>) ▲편집상= 마틴 월쉬(<시카고>) ▲장편 애니메이션상=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단편 애니메이션상= <춥춥스> ▲미술감독상= 존 마이어 등(<시카고>) ▲음향상= 마이클 밍클러 등(<〃>) ▲음향편집상= 마이클 홉킨스 등(<반지의 제왕:두개의 탑>) ▲시각효과상= 짐 라이젤 등(<〃>) ▲의상상= 콜린 앳우드(<시카고>) ▲분장상= 존 잭슨 등(<프리다>) ▲작곡상= 엘리엇 골든탈(<프리다>) ▲주제가상= 에미넴 등(의 ‘루스 유어셀프’) ▲장편 다큐멘터리상= <볼링 포 컬럼바인> ▲단편 다큐멘터리상= <트윈 타워스> ▲외국어영화상= <노 웨어 인 아프리카>(독일) ▲단편영화상= <디스 차밍 맨> ▲공로상= 피터 오툴 특정작품 독주없이 골고루 수상 다른 어느 해보다 작품성이 쟁쟁한 작품들이 후보에 많이 올랐던 올 아카데미에선, 특정 작품의 독주없이 골고루 상을 나눠가졌다. 이 가운데에는 기대 이상으로 선전한 작품도 있었고, 아쉬움을 남긴 작품도 있었다. <갱스 오브 뉴욕>의 부진과 <피아니스트>의 선전 아카데미와 마틴 스코시즈 감독는 언제쯤 화해할 수 있을 것인가. <성난 황소>(1980)와 <좋은 친구들>(1990)에 이어 다시 오스카 감독상에 도전했지만 이번에도 아카데미는 그를 호명하지 않았다. 마틴 스코시즈 개인 뿐 아니라 <갱스 오브 뉴욕>에 이번 아카데미는 재난이었다. <시카고>, <디 아워스>와 함께 가장 많은 주요 부문의 수상이 점쳐졌지만 단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했다. 반면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는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각본상 등 주요 부문 가운데 3개를 석권해 전체 후보작 가운데 가장 실속있는 장사를 했다. 특히 잭 니콜슨, 다니엘 데이 루이스 등 노련한 배우들의 경쟁에 가렸던 에이드리안 브로디의 남우주연상 수상은 예상 밖의 결과였다. 미성년자 추행사건으로 미국을 떠났던 로만 폴란스키의 감독상 수상 역시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점쳐졌었다. 에미넴, 미야자키 하야오 ‘이변’ 이번 아카데미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피터 오툴은 “지금까지는 늘 수상자의 들러리만 섰는데 이제야 나도 받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50년 세월의 서러움을 고백했다. 오툴은 50여 작품에 출연하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만 7번이나 올랐지만 단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장편애니메이션 부문 수상과 함께 의 에미넴이 주제가상을 수상한 것도 이날의 이변 가운데 하나였다. 에미넴은 시상식의 전통인 주제가상 후보들의 축하공연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본래 시상식에 참가할 생각도 있었으나 그의 돌발행동을 우려한 아카데미 조직위에서 “축하공연에서 본래의 노랫말을 바꿔서 부르지 말라”는 주문을 해와 에미넴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는 후문. 이날 무대에는 ‘아카데미 가족사진’이 연출되기도 했다. 줄리 앤드류스, 잭 니콜슨, 더스틴 호프만, 지난해 수상한 할리 베리까지 역대 수상배우 66명이 나란히 앉아 포즈를 취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