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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울 선생님,어쩌다 개과천선 했게요?<선생 김봉두>

■ Story 촌지를 챙기는 데 일가견이 있는 초등학교 선생 김봉두(차승원)가 강원도 산골의 분교에 부임한다. 전교생이 달랑 5명에다 촌지와는 거리가 먼 이곳에서 우울증에 빠진 김봉두. 서울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학교가 폐교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는 학생들을 서울로 전학시키기 위해서 술수를 부린다. 그 와중에 도리어 선생과 학생, 마을 사람들 사이에 이해의 가교가 마련된다. ■ Review <선생 김봉두>는 코미디를 주축으로 한 대중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제작진과 배우가 결합한 영화다. ‘촌지킬러 불량 티처 고군분투 오지 탈출기’라는 한줄짜리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명료한 컨셉을 바탕으로 한국 관객에게 호소력이 있는 대중적인 코드를 찾아 배합해나가는 데 별다른 실수가 없다. 안전한 장르영화를 생산하는 능력이 산업으로서의 영화를 유지시키는 핵심 요소라고 한다면, <선생 김봉두>는 본연의 임무 수행에서 합격점은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를 구축하는 데 뼈대가 되는 것은 두 가지의 선명한 이항대립이다. 타락한 교사와 교사를 타락시키는 현실이 그 첫 번째 요소겠다. 촌지 비즈니스에 날이 새고 해가 지는 밉상맞은 교사의 실상을 사실감 있게 묘사하는 반면, 선생 월급으로는 안정된 가정생활을 꾸리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양날 공격을 가하고 있다. 김봉두의 아버지가 오랜 병치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영화 속에서 너무 빨리 드러나는 바람에 김이 좀 새기는 하지만, 어쨌든 타락한 주인공을 미워할 수만은 없게 만드는 공감의 장치는 마련되어 있고 후반부에 들어서면 김봉두의 어린 시절이 소개되면서 좀더 강화된다. 서울에서 폭탄주에 밤을 새웠던 봉두라지만, 지역주민들과의 첫 술자리에서는 "서울 사람이라 술에 약하구먼" 하는 소리를 들을정도로 취해 나가떨어진다. 다른 한축은 서울과 강원도 산골이라는 공간 대립이다. 서울은 무엇이든 차고 넘치며 이해관계와 감정이 선명한 역동적인 공간으로 묘사된다. 직원 조회에 지각한 김봉두가 교무실 문을 나서는 교사의 무리에 슬쩍 섞여 되돌아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허접한 삶을 묻혀두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기도 하다. 반면 강원도 두메산골 사람들은 뚱 하다 싶을 만치 감정표현이 적고 불친절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호감을 표현하는 방법이 덜 발달되어 있을 뿐, 타인을 말없이 배려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무방비에 가까울 정도로 개방적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된다. 춘식(성지루)과 최 노인(변희봉)이 이런 성격을 잘 대변하는데 스스로가 ‘강원도 산골아이’였다는 장규성 감독 덕분에 빚어진 캐릭터인 것 같다. 강원도에 대한 이런 규정은 사실 <선생 김봉두>에 고유한 것이라기보다는 한국 사람 전체가 강원도를 소비하는 방식에 가깝다. 자연이 수려하고 민심이 순박한 고장이라는 규정 덕분에 오늘날 강원도는 관광과 휴식의 이미지로 형상화되며, 영악한 도시 사람들은 그곳에 다녀오면 심신이 정화될 거라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을 가지고 강원도를 열광적으로 순례하는 것은 아닐지. 다섯명의 어린 학생들과 늦깍이 할아버지 제자가 봉두를 우러르는 눈길은 결국 봉두 마음속 무엇인가를 쥐어흔든다. 그렇게 <선생김봉두>는 "웃다가 웃으면 이상한 데 털난다"는 봉두의 말에 관객까지 뜨끔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도 ‘불량 티처’ ‘휴money스트’ 김봉두는 강원도 덕분에 진정한 휴머니스트로 거듭난다. 고향과 시골에 대한 감독의 애틋한 추억과 애정이 도시인들을 위한 상업영화에 질좋은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아이러니는 ‘강원도의 힘’을 시니컬하게 돌아보았던 영화를 제외하고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반복되는 일이기도 하다. 시사회 직후에 어떤 관객이 “<선생 김봉두>가 <집으로…>만큼이나 감동적”이라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게 된다. 어쨌거나 이런 코드는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특히 ‘소석이의 3만원’은 철심장이라도 흔들리게 만들 만큼 기습적이다. 개인적으로 상상한 또 하나의 감동 요소는 20년간이나 산내분교에서 근무하다가 심장병이 도지고 나서야 떠났다는 전임 교사다. 그는 영화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만 등장하지만, 그 선생님 또한 김봉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우여곡절을 갖고 있지 않을까, 그런 회심 덕분에 두메산골의 작은 학교에 청춘을 묻지 않았을까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봉두와 아이들의 물놀이 장면은 때를 놓친 것이 한눈에 드러난다. 시나리오상의 계절과 제작 시기의 불일치는 촬영감독에게 고통스런 숙제였을 것으로 보인다. <선생 김봉두>는 배우 의존도가 무척 높은 영화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차승원의 연기가 “경이롭다”는 의견이 벌써 올라와 있는데, 그가 캐릭터드라마 한편을 무리없이 끌어가는 배우로 성장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웃음을 끌어내는 박자 감각이 몇 군데에서 빛을 발하지만, 연기력이라는 측면에서 제일 돋보이는 순간은 코믹한 우울증을 표현하는 대목이다. 일급 모델로부터 출발해서 장르를 건너뛰어 다시 한번 배우의 일급으로, 두번에 걸쳐 생의 도약을 이룩하는 인간을 만나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다만 배우의 감정을 짜내는 것에 비례하는 시나리오상의 디테일 혹은 컷과 숏의 이야기 능력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특히 아역배우 5명 중에서 소석이를 제외한 4명의 아이들에게 디테일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영화 전체의 감동을 인위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수준의 위험 요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소희 cwgod@hani.co.kr

소리없이 감정의 결을 읖조린다,<하늘정원> 촬영 이승우

대진고속도로의 개통으로 4시간이면 도착하는 경남 사천의 바닷가. 눈구경하기 힘들다는 경상도 가운데서도 사천은 따뜻하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11월의 바닷바람은 대찬 기운으로 크랭크인을 앞둔 <하늘정원> 촬영팀을 위협했다. “바람만 안 불면 하와이 안 부러운” 그곳에서 겨울이라 명해진 3개월을 꼬박 채운 촬영감독 이승우는 아직 짠기가 덜 가신 듯 바다 풍광을 묻는 기자에게 “글쎄…”라고만 얼버무린다. 지난해 1월 <폰>을 시작으로 4월엔 <청풍명월>의 퍼스트로 한해의 반을 정신없이 넘기던 그는 이석기 제작부장의 권유로 <하늘정원>을 입봉작으로 받아들였다. 김의석 감독의 <그 여자 그 남자> 촬영팀 막내로 들어와 영화밥 먹은 지 꼭 10년째였다. 덕분에 <청풍명월>팀에서는 중도하차했다. 강원도 춘천의 고구마섬에서 300명에서 700명에 이르는 대규모 군중신을 찍어대다 경상도 사천의 조용한 바닷가 절벽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비장미에 눌린 카메라에 가벼운 기운부터 불어넣었다. 이동현 감독이 주문한 것은 영화의 태그라인이 되었다.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고, 행복하게 그려질 죽음이 그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밝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하늘정원>은 영화 속 장면 중 60% 이상이 호스피스 병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촬영지를 선택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감독은 이미 한해 전에 풍광이 좋은 전국 각지의 병원 후보지를 돌며 호스피스 병원의 무대가 될 만한 장소를 찾다 우연한 기회에 내부수리를 위해 잠시 운영을 중단한 경남 사천의 작은 호텔 하나를 발견했다. 그곳은 바로 ‘사천 비치관광 호텔’. 호텔 앞에는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고 호텔 뒤로는 우거진 수풀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이곳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만들기엔 제격인 장소였다. 안채로 사용되던 살림집은 오성(안재욱)의 방이 되었고, 숲길은 두 사람만을 위한 데이트 코스가 되었다. 위암 말기 환자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영주(이은주)의 방과 호스피스 병동을 비추는 카메라는 따뜻함을 강조하는 암바(아이보리와 옐로의 중간)톤으로 더욱 뽀얀 화면을 연출해낸다. 공대출신인 이 감독은 음악과 사진에 관심을 가지면서 광고쪽으로 진로를 틀었다. CF 제작과정을 들으면서 오히려 영화에 더욱 끌리더라는 그는 오랜 시간 살을 부대끼며 정을 나누는 현장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고 회고한다. <그 여자 그 남자> 현장에 출근 도장을 찍었던 첫날, 그는 ‘이게 내 길이야’ 하고 읊조렸다. 감정의 변화를 잡아내는 게 특기인 그의 카메라는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의 결을 세세히 훑는 화면을 만들어내고 싶어했다. 이번 <하늘정원>은 컷 수가 많지 않지만, 등장인물들과 함께 울고 웃게 만드는 화면의 힘 덕분에 지루할 새가 없어 보인다. 4월4일 개봉예정.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조석환 sky0105@hani.co.kr 프로필 → 1969년생→ 1993년 한국광고연구원 수료→ <그 여자 그 남자> <장미의 나날> 촬영팀→ 1994년 <구미호> <그리움엔 이유가 없다>·1995년 <총잡이> <보스>·1996년 <용병이반>·1997년 <표류일기>·1998년 <화이트 발렌타인>·1999년 <신혼여행>·2000년 <비밀> <하면 된다>·2002년 <폰> <청풍명월>→ 2003년 <하늘정원>으로 데뷔

수수께끼 속의 걸작,더글러스 서크 감독의 <바람에 쓴 편지>

Written on the Wind, 1956년감독 더글러스 서크 출연 록 허드슨 EBS 3월30일(일) 낮 2시 “난 이 영화를 수천번 되풀이해서 봤다.” 스페인의 알모도바르 감독은 언젠가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그 영화가 <바람에 쓴 편지>다. 더글러스 서크 감독의 <바람에 쓴 편지>는 놀라운 영화다. 그것은 영화가 반복해서 볼수록 매번 새롭게 보인다는 것에 기인한다. 한 가지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영화가 난해하기 때문이 절대 아니다. <바람에 쓴 편지>는 참으로 대중적인 영화이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제작한 TV시리즈를 보고 있는 기분으로 감상해도 큰 무리가 없다. <바람에 쓴 편지>는 비유컨대, 여성의 속마음 같은 영화다. 깊숙하게 접근해갈수록 이것은 전혀 다른 텍스트가 되어 나타난다. 카일 해들리는 석유 갑부의 아들이다. 뉴욕에서 루시라는 매력적인 여성을 만난 뒤 카일은 그녀와 순식간에 결혼한다. 이들의 만남을 주선했던 미치는 뭔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게 된다. 한편, 오랫동안 미치를 짝사랑했던 이가 있다. 메릴리는 카일의 여동생으로 버릇없는 편이지만 미치를 끔찍하게 사모한다. 메릴리는 미치와 카일의 관계에 끼어들어 둘을 갈라놓고, 집안은 쑥대밭이 된다. 영화는 한 가지 미스터리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도입부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누군가 술에 만취한 채 방황하고 있고 어느 대저택엔 거센 바람이 몰아친다. 명백한 살인의 전주곡이다. 다음에 우리는 플래시백, 그러니까 시간을 거슬러올라 과거를 들여다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바람에 쓴 편지>에 대해 영화학자 토머스 샤츠는 “즐겁지 않은 회전목마 같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누군가 다른 이를 사랑하지만 그는 또 다른 누군가를 가슴에 품고 있으며 이 구도가 한없이 되풀이된다는 의미다. A는 B를, B는 C를, 그렇게 또 그렇게. 메릴리와 미치, 루시와 카일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상대를 애타게 갈구하지만 앞서가는 회전목마를 따라잡을 수 없듯 사랑은 불가능하다. 희망은 없다. 여기까지 보면 <바람에 쓴 편지>는 다른 서크 감독의 영화, 그러니까 <슬픔은 그대 가슴에>나 <순정에 맺은 사랑>이 그렇듯 무난한 멜로드라마처럼 여겨진다. “미국 가족의 무기력함에 관한 비명 같은 에세이.” 어느 평자는 <바람에 쓴 편지>에 대해 일갈했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이같은 메시지를 어딘가 ‘숨기고 있다’는 것. 서크 영화의 주제의식은 잘 드러나지 않고 어딘가 은닉해 있다. 관객에게 ‘나 찾아봐라!’라고 주문하듯 말이다. 호화로운 미장센과 대저택의 거대함은 탄성을 자아낸다. 강렬한 원색과 흥겨운 영화음악 역시 관객을 사로잡는다. <바람에 쓴 편지>는 수많은 기호와 상징, 그리고 미스터리를 구비한 채 조용하게 관객을 맞아들인다. 어서오세요, 라며. 서크의 영화는 신비롭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

귀여움이 세상을 구하리라,카툰네트워크 <파워퍼프 걸>

범죄가 들끓는 도시 타운스빌. 과학자 유토늄 교수는 절망 속에 살다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소녀들’을 만들기로 한다(이래서 ‘로리타 콤플렉스’ 얘기가 나오는겨…). 설탕, 양념, 온갖 좋은 것들을 섞는 와중에 미지의 화합물, 케미컬X가 들어가는 바람에 눈이 왕똥그랗고 초절정깜찍소녀들이 태어났으니, 바로 ‘파워퍼프 걸’이었다고 한다. 이름하여 블로섬, 버블, 버터컵! 타운스빌은 이 유치원 꼬마 셋에게 도시의 평화를 맡기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 그러나 모조 조조를 비롯해 온갖 악당들이 파워퍼프 걸에게 계속 시비를 걸어오고, 족족 얻어터지며 평온하게 공존(?)하며 살아간다. 카툰네트워크의 최고 인기 캐릭터인 파워퍼프 걸의 파워는 정말로 막강하다. 과장스럽게 큰 눈, 지나칠 정도의 매력발산, 색색별로 나뉘는 캐릭터 등 일본 만화의 장점과 ‘히어로물’에 대한 패러디 등 미국적 장점이 모인 작품이다. 주로 머리를 쓰는 일과 리더를 맡는 블로섬, 울보에 말도 버벅거리지만 너무 귀여운 버블, 한 터프하고 힘이 늘 넘치는 버터컵의 조화. 파워퍼프 걸의 매력은 미치도록 귀여운 와중에 무한히 뻗어나가는 힘이 넘친다는 것이다. 이 유치원 아이들이 보여주는 미덕은 과연 무엇일까? 뜻밖에도 21세기에 걸맞은 강한 ‘여성상’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유치원 꼬마들이? 그렇다. 90년대까지는 의 데이나 스컬리와 <미션특급/신종횡사해>의 국장이 ‘강한 여자’들이었다. 이들은 섹스어필하면서 동시에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21세기로 넘어오면, 여자이면서 강한 것이 아니라 그 여성성 안에 강함을 아예 기본으로 장착한 캐릭터가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섹시하고 강한 여자의 다음 개념은 귀엽고 힘센 여자가 되는 것이다(<엽기적인 그녀>의 그녀는 청승을 떨기 때문에 당연히 탈락해야 한다). <파워퍼프 걸> 극장판에서 버터컵이 ‘때려눕힌다’라는 개념을 배우는 장면은 ‘파워기본장착’의 중요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열받은 버터컵. 원숭이 로봇을 그냥 뻥 하고 때린다. 그러자 원숭이 로봇이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이 뜻밖의 사태에 얼어버린 버터컵. 그러나 그제야 블로섬은 사태를 깨닫는다. 말을 안 듣는 원숭이를 해치우는 방법은 때려눕히는 것이다. ‘힘의 논리’를 배운 유치원 아이들은 곧이어 도시 전체의 ‘존중’을 얻게 된다. 바로 이래서 파워, 힘, 혹은 권력이 내제된 여성이 단지 여성이 아니라 인간이 되는 것이다. <파워퍼프 걸>에서 ‘귀엽다’와 ‘힘세다’는 절대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귀엽지 않으면 파워퍼프 걸이 아니고, 힘이 세지 않으면 파워퍼프 걸이 아닌 것이다. <파워퍼프 걸>은 본의 아니게 페미니즘의 구현체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작가 매크레켄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토늄 박사가 예쁜 소녀를 만들려다 슈퍼파워소녀를 만든 것과 비슷하다. 이 경우 ‘화합물X’(케미컬X)는 ‘귀엽다’이다. 손에 꼭 쥐고 싶은 아이들. 부벼대고 싶은 대상. 그러나 귀엽다는 것 안에 강함이 들어 있기에 존중해야 한다. 사랑은 가능하지만 지배는 불가능한 것이다. 매크레켄이 처음에 구상했던 ‘파워퍼프 걸’의 전신(이라고 하기엔 너무 똑같다)인 ‘우패스걸’에게는 ‘귀여움’이 적다. 묘한 사악함과 터프함은 있지만 귀여움이 없는 우패스걸은 어째서 ‘귀여움’이 ‘강함’과 만나 진보적이 되었는지 반어적으로 보여준다(DVD에서 확인 가능함). 여기서 진지함을 접고 <파워퍼프 걸>의 본질을 이야기하자면, <파워퍼프 걸>이 일으키는 대부분의 웃음은 사실 ‘비틀기’와 ‘막 나가기’에서 나온다. 악당은 매일 나와서 주인공에게 당해줘야만 한다. 악당이 있어서 파워퍼프 걸이 나서는 것이 아니라, 파워퍼프 걸이 나서야 하기 때문에 악당이 등장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확실하게 보여주기에 더더욱 웃음을 일으키곤 한다. 일반 상식은 없다. 유치원을 다니면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악당을 해치워야 한다는 것부터, 악당들도 ‘타운스빌 시민’으로서의 권리주장을 하는 것까지 기존의 상식 비틀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이 전복성이 반복성 안의 전복성임은 무시할 수 없다. 지난주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멀쩡하게 돌아와 또다시 치고받는 뻔뻔함 자체가 무한반복의 웃음을 일으킨다. 지난주에 언제 도시가 쑥대밭이 되었냐는 듯이 멀쩡하게 나타나는 타운스빌은 말 그대로 ‘반복’의 미덕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다. 만날 부수고 넘어지는 김에 건물을 차라리 안 짓는 에피소드도 생겼으면 한다(만날 괴물과 싸우느라 더러워져서 목욕하기 싫어하는 버터컵의 에피소드를 보고 영감을 받았음). 처음부터 느꼈던 것. 여자 3명으로 이뤄진 일본 그룹 쇼넨 나이프와 닮았다! 했더니 쇼넨 나이프가 실제로 극장판 사운드트랙에 참가하기도 했다. 아싸~.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pe.kr

할리우드 커플이 <동갑내기 과외하기> 밀어내

액션과 로맨스, 그리고 연인간의 합동작전 성공 지난주말 개봉한 <데어데블>과 <러브 인 맨하탄>이 각각 박스오피스 1, 2위를 기록하며 개봉 6주 동안 1위였던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3위로 밀어낸 것으로 집계됐다. <데어데블>과 <러브 인…>에서 각각 주연을 맡은 벤 에플렉과 제니퍼 로페즈는 할리우드에서 공인된 연인관계이기도 하다. 마블 코믹스 가문 출신의 <데어데블>이 지난해 같은 가족 <스파이더맨>이 한국시장에서 모았던 인기를 재현할 수 있을까 관심거리지만, 이번주 개봉작이 워낙 막강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주말마다 많게는 7~8편의 새 영화가 개봉하는 데 비해 이번주 개봉작은 한국과 미국 대표 1작품씩이다. 특히 미국 대표 <시카고>는 23일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부문을 휩쓴 바람을 타며, 26일 오전 현재 예매율 57%로 1위를 굳히고 있다. 르네 젤위거, 캐서린 제타 존스, 리처드 기어 등 스타들이 관능적이고 환락적인 재즈와 춤으로 펼쳐보이는 1920년대 시카고의 모습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몸을 흔들어대는 뮤지컬 <시카고>에 맞서는 한국대표 <선생 김봉두>도 예매율 25%(2위)로 만만찮은 상대임을 예고하고 있다. 촌지를 밝히던 ‘불량교사’가 시골분교에서 개과천선할 때까지, 웃음과 눈물을 함께 선사하는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다. 처음으로 영화에서 단독주연을 맡은 차승원씨는 오버하지 않은 연기로 코미디의 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며, 변희봉씨의 시골 할아버지 연기, 다섯 아이들의 천연덕스런 강원도 사투리 연기도 발군이다. 한편 이번주 예매순위에는 오는 4월1일 저녁 8시50분 스카라 극장에서 상영하는 <후아유>가 3위에 올라 눈길을 끈다. 지난해 월드컵을 앞둔 불운한 시기에 개봉해, 좋은 평을 얻고도 흥행에 실패한 이나영·조승우 주연의 이 영화는 디브이디 출시를 앞두고 팬들의 요구에 의해 단 한번 상영된다. 김영희 기자dora@hani.co.kr

장관실에서 이창동 감독을 만나다 [3]

문화정책은 시장에서 배제되는 중요한 가치들을 보존하는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테면 극장에 걸리기 힘든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는 정책적 지원으로 제작되고 상영된다. 민간 자율이라는 건 결국 시장의 힘에 전적으로 맡기는 결과가 될 수도 있지 않나. → 시장에 맡기겠다는 게 아니다. 민간이 갖고 있는 자발성과 창조성에 의존한다는 거다. 예컨대, 영화진흥위원회는 현장과 직접 맞닿은 사람들이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기구다. 책상에서 만들어지는 정책보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고민해서 제안되는 정책이 훨씬 더 존중돼야 한다. 처음부터 최상의 제안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시행착오의 과정이 문화적 힘을 향상시킬 거라고 믿는다. 공적인 조직이 그 방향으로 가는 데는 분명히 충격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지난 대선, 반전시위, 촛불시위 속에는 분명히 무언가 새로운 게 있다. 그것의 정체를 몇 마디로 단정짓긴 힘들지만, 분명히 새로운 문화적 힘이 싹트고 있다. 난 그걸 믿는다. 그 새로운 문화에 형식을 부여하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껏 문화부의 영화정책은 아무래도 문화산업론이 우세했다. 확실히 변화는 있겠다. → 인사말에도 밝혀두었지만, 나는 돈이 안 되는 문화분야는 지원하고, 돈이 되는 분화분야는 육성한다는 분리적 사고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화는 거대한 유기체다. 이 유기체에 피가 제대로 돌게 하는 게 우선이다. 나는 그 피가 창의성과 자율성이라고 보는 것이다. 좀 구체적인 사안 한 가지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CJS연합(한국 영화계의 양대 메이저인 CJ엔터테인먼트와 시네마서비스의 연합) 시도는 어떻게 보는가. 몇몇 시민단체는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공정거래위 제소까지 검토하고 있다. →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다만, 몇개의 메이저가 서로 경쟁하는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왔는데, 그런 방향으로 가진 않고 있어서 일단 염려는 된다. 효과에 대해선 좀더 지켜봐야 할 테고, 공정거래 위반 여부는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문제다. 느리고 의뭉스럽게 한 발자국씩 전진 ------이창동 장관은 말이 느리다. 그건 여전하다. 약속된 한 시간은 어어 하는 동안에 가버렸다.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곧이어 저녁식사 겸 회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관 취임하면서 공익근무하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공익근무는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 2년은 안 넘었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밝힌 장관의 최소 임기가 2년이다. 잠은 충분히 자는가. → 못 잔다. 그게 제일 큰 고통이다. 아침 7시 전에 나오는 게 제일 적응하기 어렵다. 나도 새벽부터 영화 찍는 일은 몇번 해봤지만, 매일 7시 출근이라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역시 가장 단순한 게 가장 어렵다. 술도 못 마시겠다. → 출근시간이 부담돼서 못 마신다. 휴일에도 참가해야 하는 크고 작은 행사 때문에 못 자니까 힘들다. 당분간 인사동에서 마주칠 일은 없겠다. → 당장은 아니지만, 약간 틀이 잡히고 나면 현장엔 자주 나갈 생각이다. 큰 행사에 가겠다는 게 아니라 극장이나 공연장 다니는 건 틈나는 대로 할 생각이다. (약속장소로 가려는 장관을 비서가 다시 붙들었다. 차관이 보고할 사항이 있다고 했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된 일과가 12시간이 지나도 끝날 줄 모른다. 거의 매일 그렇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게으른 사람이라고 몇번 말했었는데, 게으름의 즐거움은 이제 사라졌을 것이다. 게으름을 포기한 대가로 그가 얻는 게 뭘까? 영화만큼 감동적인 정책? 지금은 기다리는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글 허문영 moon8@hani.co.kr · 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 편집 심은하 eunhasoo@hani.co.kr 이창동 장관의 첫 인사말 (아래 글은 별도의 취임식을 하지 않은 이창동 장관이 홈페이지에 직원들에게 띄운 첫 인사말 중 일부이다. 이창동 방식과 노선을 잘 드러내는 것으로 보여 여기 옮겼다.) 제목:“문화의 비단옷으로 갈아입자” (전략) 장관실 앞에만 깔려 있는 붉은 카펫, 장관이 나타나면 부동자세로 서 있는 직원들, 행정고시를 통과한 사무관 비서가 꼬박꼬박 장관의 차 문을 대신 열어주는 것, 장관에게 누구나 허리를 90도로 꺾고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좀 실례되는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조폭문화’를 연상했습니다. ‘조폭’이란 조직의 특징은 그것이 일반사회와 격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격리되어 있으므로 자기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그래서 곧잘 영화나 드라마에서 흥미롭게 묘사되기도 합니다. 오늘날 행정문화 속에 이런 권위주의적인 독특한 문화와 관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행정부와 일반국민과의 거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께 우리 문화관광부에서부터 과감히 이런 권위주의적 관습과 문화를 버리자고 권합니다. 장관이라는 직위에 걸맞은 권위와 책임을 인정하고 자연스런 예의를 표시하는 것과 권위주의적인 형식을 통해 장관을 대접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공무원이므로 반드시 넥타이와 양복을 매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과 공무원으로서의 품위와 도덕적 엄격함을 지녀야 한다는 것 또한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저는 영화감독으로서 해외를 다니며 그 나라 문화부 공직자들을 더러 만나보았지만 그 누구도 복장에서부터 ‘공무원 냄새’를 피우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복장이 자유로운 만큼 그들의 사고와 행동은 자유롭고 유연했습니다. 그런데도 21세기의 언필칭 세계화 시대에 아직도 우린 장관이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느냐 어쩌냐가 신문 방송의 뉴스거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권위주의적인 문화 속에서 진정한 토론, 소통과 이해가 이루어지리라 믿을 수는 없습니다.문화예술 행정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문화예술인이 되어야 합니다. 체육행정과 관광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공직의 의무 속에 갇혀 있지만,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그들과 끊임없이 교감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우리는 권위주의의 두꺼운 철갑옷을 벗어던지고 부드러운 문화의 비단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문화관광부가 국민들에게 ‘문화가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꿈을 부여하는지’ 안내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여기에 우리 문화관광부의 위상이 자리매김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함께, 감동이 살아 있는 문화행정을 펼쳐나갈 것을 약속하면서 두서없는 인사말을 마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3월13일 오후 이창동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장관실에서 이창동 감독을 만나다 [1]

현실의 감격을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여기 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개막식에 참석하는 게스트들에게 정장 차림을 요청했다. 몇몇 사람들이 그 요청을 무시했는데, 이창동 감독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개막일 밤 남포동 포장마차에서 이창동 감독은 이렇게 불평했다. “영화 하는 사람들한테 정장 입으라는 건 무리다. 자유롭고 싶어서 영화를 택한 사람들인데, 그런 격식이 맞겠나.” 감독에서 장관으로 직책이 중대하게 바뀐 뒤에도 그는 격식을 무시했다. 넥타이를 매지 않았고, 자기 차를 직접 운전했으며, 장관에게 90도 각도로 절하는 관료 문화를 ‘조폭문화’와 유사하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래서 취임 첫날부터 그의 행동거지는 뉴스거리가 됐다. 화제만 제공한 건 물론 아니다. 기자실 폐쇄 등의 조치는 언론으로부터 공격받았고, 특히 <조선일보>는 문성근, 명계남씨와 그를 묶어 도마 위에 올리기도 했다. 격식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감독 시절의 자유를 누리진 못하겠지만, 그는 어쨌든 자신의 방식대로 장관 노릇 3주를 보냈다. 이창동 장관에게 아직 세부적인 영화정책을 물어볼 단계는 아니지만, 우리는 장관실 속의 이창동이 궁금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 인사동에서 술 마시다보면 마주치는 사람이었고, 새벽까지 느리지만 집요하게 영화와 세상을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촬영현장에서 구긴 얼굴로 그리고 피로에 지친 말투로 “경구야, 이거 다시 찍어야겠다”고 중얼거리던 ‘영화쟁이’였다. 혹시 그는 엄숙한 장관실 안에서 격식과의 싸움에 벌써부터 피로를 느끼고 있진 않을까. 아니면 감독 때와는 다르게 전투적이고 씩씩한 표정으로 개혁의지를 불태우고 있을까. 아니면 영화 만들 때처럼 느리고 의뭉스럽게 한 발자국씩 전진하고 있을까. “ 변질될까봐 두려웠다 ” ------지난 3월17일 오후에 문화관광부 장관실을 찾았다. 책상 위에 있는 몇 가지 서류의 제목이 얼핏 눈에 띠었는데, 그중 하나는 ‘관광업소에서 공연하는 외국여성’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맞다. 그는 문화관광부 장관이며, 스포츠까지 관장하는 사람이다. 이 막중하고도 번잡한 변화를 어떻게 소화하고 있을까? 그러고보니 책상 한편에 담배꽁초가 수북이 싸인 재떨이가 놓여 있다. 여기 금연 아닌가. → 정부청사에선 금연이다. 그런데, 나는 담배 피우지 않고는 일을 도저히 못하겠더라. 이것만은 양해해달라고 직원들에게 특별히 부탁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나중에 확인해보니, 노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회의할 때 비서관들과 맞담배를 피운다고 했다. 금연건물로 지정된 정부청사 여기저기서 대통령과 장관이 눈치봐가며 담배 피우는 모습은, 아름답진 않지만 재미있는 얼룩이다.) 취임 초기인데 벌써 언론의 비난을 많이 들은 편이다. 불편하지 않은가. 아님 재미있나. → 우리야 영화할 때부터 욕먹는 일에 익숙해져 있지 않은가. 욕먹는 일이 재미야 있겠냐마는, 그게 아주 고통스럽지는 않다. 욕먹으면 혹시 내가 허위의식에 빠져 있지 않나, 하는 의심하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이 일의 크기를 실감하게 되니까, 나쁘게만 작용하진 않는다. 아, 그리고, 약간의 고통을 느껴야 편해지는 체질 탓도 있다. (웃음) 아, 이건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 비난받기를 의도한 적은 한번도 없다. 다만, 각오는 늘 하고 있다. 지금까진 일부 신문으로부터의 공격이었지만, 자신을 이해하리라고 생각하는 쪽으로부터의 비난이 올 수도 있다. → 글쎄, 나를 이해하는 쪽과 이해하지 않는 쪽이 그렇게 명료하게 갈리진 않을 거다. 어느쪽이든 충분히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처음에 장관직을 완강하게 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그럴 거라고 여겼다. 적어도 그는 장관보다 감독 노릇을 휠씬 더 재미었어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그의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소박한 바람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그는 장관직을 수락했다. 장관 취임 직전에 가진 짧은 전화 통화에서 그는 그 수락의 이유에 대해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때가 있다”고 둘러 말했다. 그 말의 뜻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그가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는지는 여전히 궁금하다. 하지만 아마 물어도 그는 곧바로 대답하진 않을 것이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장관직을 수락할 리 없다”고 어떤 영화인이 말했다는데. → 내가 바보인 거지. (웃음) 굳이 말하자면,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100가지 있었다면 해야 될 이유가 101가지 있었다는 정도다. (역시 돌려 말한다. 그래도 좀더 물어본다. 언젠가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100가지지만, 해야 할 한 가지 이유가 너무 커서 결심한 것으로 짐작했다. → 음,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어떤 순간에 이건 운명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이런저런 계산을 하면 그게 답이 아니지만, 그걸 할 수밖에 없는 때가 인생에는 있다. 그런 순간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았는가. (힘들다) 음, 그건 모르겠다. 분위기가 홍콩누아르 같다. → 아, 그건 아니다. 난 습관적으로 본능에 몸을 맡기는 편은 아니니까. 결국 내가 판단한 거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선택이다. 한 가지만 부탁하자. 내가 일단 장관직을 맡은 이상 고사를 했던 사실에 대해서 길게 얘기하는 건 모양이 좋지 않은 것 같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고. 딱 한 가지만은 묻고 싶다. 고사했던 건 뭐가 제일 두려워서였나. → 내가 변할까봐, 변질될까봐 두려웠다. 50년을 살아도 그런 두려움이 생기는가. → 물론이다. 죽기 전까진 계속 그럴 거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케이블TV가 신나는 10가지 이유 [1]

틀었노라, 돌렸노라, 만족하였노라!당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기발하고 하수상한 케이블TV 프로그램 10선(選) TV를 벗삼아 사는 사람들에게 리모컨은 반드시 도움되는 물건만은 아니다. 수십개 채널을 쉴새없이 바꿀 수 있으니, 첫눈에 반할 만한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마음붙일 채널을 찾기가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편성표도 소용없을 때가 많다. 조그만 글씨로 빽빽이 채워진 방영 스케줄은 제목만 봐선 뭐가 뭔지 모를 프로그램투성이. 조금만 참다보면 한 시간 채워줄 보석을 발견할 수 있으련만, 아직 득도하지 못한 백수들은 공연히 마음만 바쁘다. 여기 소개하는 프로그램과 채널들은 광속으로 쏘아대는 리모컨 끝에 우연히 걸린 결과물이다. 두 시간짜리 영화에도 집중 못하는 사람, 긴 밤을 벽만 노려보며 보냈던 사람, 영양가보다는 맛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특히 유용할 것이다.김현정 parady@hani.co.kr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헐리웃 이야기> 스타도 시작은 미약하였으니2 Z 동아TV/ 월요일 오전 10시 40분 케이도 케일런은 할리우드만의 스타였다. 그는 블록버스터영화에 출연한 적은 없지만, 어떤 블록버스터 못지않게 스펙터클했던 사건에 주역으로 등장했다. O.J. 심슨의 살인사건 재판. O.J. 심슨 옆집에 살았던 그는 심슨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증언을 했고, 그뒤 시트콤에 출연하면서 새떼 같은 사진기자들의 초점이 됐다. 할리우드가 아니라면 어느 동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헐리웃 이야기>는 제목만 보고 기대하게 되는 것과 달리 화려한 꿈의 도시에서 흘러나온 전설이 아니다. 어이없는 이유로 스타를 만들고 한순간에 폐기하는 할리우드, 거짓과 사치와 퇴행이 고여 있는 타락한 마을의 이야기다. <헐리웃 이야기>에는 부유한 집안에서 가족 끈팬티와 가죽 멜빵만 두른 채 청소하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그렇게 스타들의 이야기 밑바닥을 들추는 것이다. <헐리웃 이야기>는 내레이션이 거의 없다. 직접 설명하는 대신 인터뷰와 편집으로 할리우드의 속성을 폭로한다. 케일런에 이어 치정이 얽힌 살인미수 사건의 주인공으로 유명해진 조이 버타푸코를 영입한 에이전트들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당신들 언론이 우리 친구예요. 당신들이 스타를 만들잖아요.” 이어지는 장면은 죄수를 스타로 포장하는 <시카고>의 신문기자들처럼, 무차별로 플래시를 터뜨리는 사진기자와 파파라치들이다. 비슷한 방식은 여러 사람의 인터뷰를 교차하는 방식에서도 응용된다. 존 보빗, 강간당하다시피한 아내가 성기를 자르는 바람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이 못난 남편에 관한 에피소드는 할리우드가 과연 사람사는 동네인가 의심하게 될 정도다. 보빗은 세 시간 동안 버려졌던 성기를 다시 붙인 다음에 성인영화 배우가 됐다. “그는 섹스도 안 해본 것 같아요. 남들 하루 찍는 성인영화를 8일 동안 찍었어요.” “보빗은 재능이 있어요. 크게 될 거예요.” 이 에피소드의 대단원은 보빗이 출연했던 영화 시사회가 열렸던 날의 기억이다. 정장을 입고 성인영화를 보러 극장에 몰려든 명사들은 보빗의 성기가 노출되려는 순간 한없는 침묵에 빠졌다가 기립박수를 쳤다고 한다. 할리우드에도 정직한 사람들은 있다. 배우가 되고자 몰려든 꿈 많던 젊은이들은 웨이터와 피에로, 운전기사, 영업사원을 하면서도 연기학원에 다니고 오디션을 받는다. “오일 발라줄까요?”라는 대사 한마디를 위해 가능한 모든 억양을 연습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자신들이 증오하던, 성상납까지 받는 할리우드 최고층에 편입되거나, 60살에 에미상을 받았다는 어느 배우의 성공담만 믿으며 늙어갈 것이다. <헐리웃 이야기>에는 부유한 집안에서 가죽 끈팬티와 가죽 멜빵만 두른 채 청소하고 배선을 손보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부모의 직업에 따라 파티에서도 서열을 정해 앉는 아이들이 등장하고, 지쳐서 어린아이인 척 놀이를 하며 환호하는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헐리웃 이야기>는 윤기나는 종이에 인쇄된 스타들의 이야기 그 밑바닥을 들추는 프로그램이다. <특종! 파파라치> ‘카더라’ 통신의 증인들 무비플러스/ 화요일 오후 6시30분 파파라치에게도 권리는 있다. <특종! 파파라치>는 할리우드에서 나름의 명성과 경력을 인정받은 파파라치들이 출연해 직접 목격한 스타들의 면모와 취재과정에서 겪은 애환을 털어놓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좀더 솔직해진다면, 이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의 핵심은 파파라치들이 찍은 비디오 화면이다. 짐 캐리와 로렌 홀리가 바람부는 절벽 위에서 치른 쓸쓸한 결혼식, 클럽에서 울먹이며 뛰쳐나오는 르네 젤위거, 파파라치에게 욕설을 뱉는 토미 리와 어찌할 바를 모르는 파멜라 앤더슨, 홀로 방황하는 니콜라스 케이지. <특종! 파파라치>는 “그렇다더라…”라고 소문으로만 떠돌던 스타들의 무방비 상태를, 길게는 십년 넘게 그들을 따라다닌 파파라치들의 증언과 함께 방송한다. 아무리 욕을 퍼부어도 결국 팬들이 파파라치를 먹여살리는 것이다. <특종! 파파라치>는 2001년 비디오와 DVD로 발매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때로 분열하고 때로 분노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복잡한 심리를 깊이 분석할 수는 없겠지만, 이 프로그램은 생각하지 못한 인간적인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공항 출구에서 매몰찬 대접을 받은 어떤 파파라치는 “여덟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탄 다음에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죠”라며 조그만 배려를 보인다. 엎치락뒤치락 전쟁을 치르다시피 취재를 하는 와중에서도 파멜라 앤더슨이 겉보기보다 똑똑하기 때문에 지금껏 팔리는 이미지를 구축해왔다고 판단하는 여유도 있다. 그들이 가장 참기 힘들어하는 행동은 장비를 부수는 것과 이유없는 폭력. 그러나 자폐적인 면이 있는 짐 캐리가 취재진을 따돌리기 위해 하객도 없이 결혼하는 장소까지 쫓아가 말을 거는 행동을 보면 역시 파파라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특종! 파파라치>는 파파라치와 스타를 향한 동정심을 자극하면서도 그들을 욕하게 만들고, 훔쳐보는 시청자 자신을 한탄하게 만드는 기묘한 경험을 준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여우계단: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뉴 페이스를 만나다 [5]

끝나고 나서 울었어요? 김민선 너희는 어디서 촬영해? 조안 수도여고에서 찍어요. 최강희 요즘엔 학교에선 다 찍게 해줘? 우린 되게 힘들었어. 속이고 찍었거든. 선생님이 죽임당하고 그러니까. <아카시아>라는 이름의 다른 대본까지 만들었다니까. 지혜가 목매달아 죽는 장면에서도 짱 보는 스탭이 따로 있었어. 인기척이 들리면 ‘내려’ 그러고, 아무 소리 없으면 다시 끌어올리고 그랬는데…. 박한별 현장에선 안 떨려요? 최강희 제일 먼저 촬영하나 보네. 난 등교장면이 첫 촬영이었어. 영화에 처음 나오는 장면. 현장에 가면 생각보다 맘이 편해. 나만 그런가. 김민선 난 처음엔 숙소 보고 기절했던 게 기억나. 방이 너무 좁고 허름하니까. 좋은 데로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장롱 열면 이불 쏟아지는 그런 곳이었어. ‘여기서 어떻게 지내요’ 했더니만 심은하, 전도연 다 여기서 잤다고 그러시는 거야. 그래서 조용히 잤지. 최강희 첫 촬영 때 아침부터 감정잡았더니 밤 되니까 힘이 뚝 떨어지는거야. 그때 알았지. 에너지는 모았다가 한방에! 그러다 나중에 미연 언니 머리 잡고 너무 세게 던지는 바람에 된통 찍혔지. 그거 끝내고 미연 언니가 화장실에 갔는데 일 본 다음 바지 올렸는데 너무 허전해서 다시 봤더니 바지가 다 찢어졌더래. 김민선 난 개인적으로 촬영 전에 대사연습 많이 하는 거 안 좋은 거 같아. 연습이 완벽하면 현장에선 그 톤밖에 못하는 거지. 상황만 숙지하고 대사를 치는 것도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감독님이 여자분이셔? 최강희 되게 좋겠다. 대화가 편할 테니까. 김민선 우리 땐 감독님들이 여자들의 미세한 감정을 더 잘 알았다니까. 여자보다 여자를 더 잘 아는 거지. 중간 이후론 대본이 없어서 막막하긴 했는데. 그래서 같이 풀어나가려고 이야기도 많이 했고 그래서 좋은 것 같아. 볼살이 쏙 빠질 정도로 몸은 힘들었지만. 최강희 박 감독님은 열등감 심어준다고 (윤)지혜한테는 되게 무섭게 했어. 싸한 감정이 안 온다고. 얼마 전에 지혜 만났는데 지금도 억울하대. 송지효 우리 감독님도 이간질 시작하셨어요. (웃음) 최강희 이번엔 귀신이 누구야? 내 촬영 때는 거의 코미디였거든. 귀신이라고 이동차 타고 다니는데 중심 못 잡아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흔들고 다녔어. 그때 와이어 좀 연마했는데 이번에 대역 해줄까? 나중에 10편 정도까지 가면 귀신들만 다 모아서 영화 만들어도 되겠다. 박한별 <여고괴담> 끝나고 뭐했어요? 제 경우엔, 갑자기 할 게 없을 것 같은데…. 최강희 귀신 역할 많이 들어와. (웃음) 걱정 마. 김민선 나 같은 경우 반년을 붕 떠서 살았어. 그래도 지금까지 왔잖아. 둘러보고 앞으로 가다보면 어느 순간 자기 뒤에 길이 나 있다잖아. 최강희 아직 잘 모르겠고. 그런 부분에 대해선 이야기하는 게 뭐라 말하기 좀 겁나. 부담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조안 끝나고 나서 울었어요? 최강희 우린 끝나면서 아무도 안 울었거든. 학교 친구처럼 내일 보자 그랬어. 열심히 학교를 안 다녀서 그런지 나는 촬영 때 진짜 학교를 다시 다녀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 박지연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 같은 건 없어요? 전 그게 잘 안 되거든요. 최강희 나도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야. 근데 그건 자기한테 너무 힘들어. 반대로 생각해봐. 어떤 직업이 6개월마다 남자친구 바꿔주냐. 사람들이 알아봐주지. 밥 먹여주지. 4년째 나도 남자친구 없지만 잘 견디잖아. 김민선 네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하고, 친해지고 싶을 때 친해지고 그래. 최강희 대인관계 좁은 배우 중 하나야, 나도. 그래도 잘 지내고 있어. 그걸 신경 쓰는 게 더 문제야. 송지효 이번에 노출신 있는 거 아시죠? 최강희 음, 관객을 그걸로 더 모으려고 하는군. 김민선 우리 때랑 똑같네. 감독님이 우리 쓰러지는 장면에서 치마 조금만 더 올리고 요염한 포즈를 취하라고 항상 강조하셨는데. 송지효 전 엉덩이까지 나오는데요. 최강희 이제 보니까 자랑하는 거네. 난 몸 나오는 거였으면 캐스팅 안 됐을 거야. (웃음)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