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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기대작 없고 화산재 날려도 칸은 걸작을 발견한다

제63회 칸영화제 개막일의 가장 거대한 적? 정치적 논쟁도 미학적 논란도 아니다. 올해 영화제의 첫번째 강적은 자연이다. 아이슬란드 화산 분화의 영향으로 올해 영화제는 거의 열리지 못할 뻔 했다. 시커먼 화산재가 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스페인과 독일의 일부 공항들이 잠시 문을 닫았다. 영화제 개최 이틀전까지만해도 니스 공항마저 폐쇄될 거란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게다가 영화제를 열흘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칸 해변에는 6미터가 넘는 쓰나미가 밀려들었다. 큰 돈 들여 설치한 영화제 구조물들이 희생양이 됐다. 일기예보는 영화제 기간 내내 강풍과 뇌우가 작렬할 것이라고 경고하느라 바쁘다. 문제가 어디 자연의 횡포 뿐이랴. 올해 경쟁부문의 영화들이 예년만큼 영화제 객들을 흥분시키지 못한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듯 하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마이크 리, 기타노 다케시의 이름이 고고하긴 하지만 유명한 거장의 숫자는 압도적으로 적다(유명한 감독과 배우가 없으면 찾아오는 기자의 수도 확연히 줄어든다). 마누엘 데 올리비에라와 장 뤽 고다르, 지아장커 등 칸이 사랑하는 감독들의 신작이 경쟁부문이 아닌 주목할 만한 시선에 이름을 올린 것도 불평을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올해 칸이 또다른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는 건 사실이다. 올해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확실히 ‘발견’이라는 단어에 힘을 싣고 있는 듯 하다. 영화제 사상 최초로 아프리카 차드의 영화 <울부짖는 남자>(Un Homme Qui Crie)와 우크라이나 영화 <나의 기쁨>(Schastye Moe)가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하녀>의 임상수 역시 처음으로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경쟁부문 스무편 중 거의 절반이 경쟁부문에 처음으로 진출하는 감독의 영화다. 프랑스 잡지 <텔레라마>는 "올해 영화제의 선점권은 경쟁부문의 단골들이 아니라 아주 특별하지는 않은 미지의 감독들에게 주어져있는 듯 하다"고 말한다. "그들 역시 매혹적인 감독들이다. 그래서 약간 혼란스럽기도 하고, 약간 경계심이 일기도 한다" 국가적으로 보자면 프랑스 영화의 우세와 미국 영화의 몰락이 두드러진다. 프랑스는 무려 네 편의 영화를 경쟁부문에 올렸다. 베르트랑 타베르니와 자비에 보부아는 <몽펭지에 공주>(La Princesse de Montpensier)와 <사람들과 신들>(Des Hommes et des Dieux)로 오랜만에 칸에 복귀했다. <잠수종과 나비>로 유명한 프랑스 배우 마티유 아말릭이 <순회공연>(Tournee)으로 경쟁부문에 진출한 건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면 지난 몇년간 경쟁부문을 장악해 온 미국 영화는 단 한편 뿐이다. 그것도 순수한 상업적 오락영화를 만드는 덕 라이먼의 <페어게임>이다.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에 따르면 테렌스 말릭과 구스 반 산트의 신작은 영화제 직전까지 완성을 보지못해 결국 경쟁부문 진출에 실패했다고 한다. <르몽드>에 따르면 줄리앙 슈나벨의 <미랄>(Miral)은 비경쟁부문 출품 제안을 거부했고, 소피아 코플라의 <어딘가에>(Somewhere)는 이미 베니스가 선점해버렸다. 어쨌거나 다들 덕 라이먼의 경쟁 진출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상태인 와중에 젊은 필진으로 물갈이 된 <카이에 뒤 시네마>는 쌍수들고 환영이다. "이 얼마나 훌륭한 선택인가. 그는 유일하게 순도 100%의 좋은 미국영화를 세 편 연속으로 만든 감독 아닌가" 시대가 하수상한 만큼 정치적인 논쟁도 거세다. 이탈리아 베를루스쿠니 정부는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드라퀼라>(Draquila)가 "이탈리아 민중과 진실에 반하는 프로파간다"라며 항의를 하다못해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이 칸 방문을 보이콧 하기로 했다. 물론 <드라퀼라>는 작년 4월 아퀼라 지진에서 불거진 베를루스쿠니 정부의 비리를 파헤치는 ‘이탈리아 민중과 진실에 협력하는 좋은 영화’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경쟁부문에 진출한 라시드 부샤렙의 <법의 외곽>(Hors La Loi)은 프랑스 극우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1942년 알제리인 2만여명이 프랑스 경찰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탓이다. <르 피가로>를 비롯한 극우 신문들은 부샤렙의 영화가 살해당한 28명의 프랑스인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며 항의하는 중이다. 영화가 공개되는 날 극우 단체의 항의 시위가 열린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니키타 미할코프의 <위선의 태양 2>도 논쟁의 불꽃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다. 러시아 영화감독 협회는 극단주의적인 푸틴주의자인 미할코프가 그간 러시아 정부지원금의 분배권을 독점해왔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고, 프랑스 언론들은 이 영화가 스탈린을 새롭게 복권하려는 푸틴의 야망을 지원하는 영화라며 연신 폭격중이다. 전통적인 영화 배급 방식의 해체 역시 올해 칸영화제의 논쟁거리 중 하나다. <리베라시옹>에 따르면 올리비에 아싸야스의 <카를로스>(Carlos)와 장 뤽 고다르의 <필름 소셜리즘>(Film Socialisme)이 경쟁부문에서 탈락한 이유는 두 영화가 기존의 관습과는 전혀 다른 상영과 배급 방식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아싸야스의 신작은 이미 프랑스 채널 <카날 플러스>에서 방영을 시작한 5시간30분짜리 TV 시리즈다. 고다르의 신작은 영화제가 시작하자마자 VOD 서비스로 단돈 7유로에 다운로드가 가능해졌다. 경쟁부문 진출이 유력했던 두 작품은 결국 전통적인 상영과 배급 방식을 지지하는 영화제 이사회의 반대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미디어의 진화에 재빨리 적응하길 거부하는 칸의 보수주의가 화산처럼 분출한 사례라고 해야할까. 한국 영화 역시 올해는 뜨거운 칸의 뜨거운 감자다. 이창동의 <시>와 임상수의 <하녀>가 경쟁부문에, 홍상수의 <하하하>가 주목할만한 시선에, 그리고 김기덕 조감독 출신인 장철수 감독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비평가주간에 초청됐다. 물론 모두가 (궁금해하지 않는 척 짐짓 점잔을 떨면서도) 궁금해하는 건 이창동과 임상수 중 누가 트로피를 손에 들고 ‘merci beaucoup’를 외치는가다. 황금종려상의 행방이 심사위원장의 개인적인 성향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는 걸 생각하며 팀 버튼의 속내를 궁리하더라도 마땅한 정답은 없다. 만드는 영화와 좋아하는 영화는 다르게 마련이다. 1999년도 심사위원장이었던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에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안겼던 사례를 떠올려보자.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젊은 편집장 스테판 들로름은 칸 특별호 에디토리얼에 이렇게 썼다. "매년 모두가 투덜댄다. 올해 칸은 정말 셀렉션이 별로라고. 하지만, 매년 그 해 최고의 영화는 결국 칸에서 나온다". 더욱 중요한 건 이거다. 올해 최고의 영화는 칸에서 나올테지만, 그건 아마도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새로운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것. 화산재와 저온과 빗방울을 뚫고 칸에 도착한 올해 최고의 영화는, 지금 발견을 기다리고 있다. 심사위원장 팀 버튼 기자회견 “올해는 유명 감독들이 모두 시나리오 집필 중이거나 촬영 중이다.”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의 발언은 푸념이 아니다. 개막작 감독인 리들리 스콧까지 무릎수술을 이유로 불참했다. 말 그대로 스타가 부족한 해다. 심사위원장으로 참석한 팀 버튼 감독이 간판 역할까지 이중으로 해내야 할 판이다. 팀 버튼 감독을 비롯 배우 케이트 베킨세일, 베네치오 델 토로, 평론가 알베르토 바베라, 에마누엘 카레르, 영화음악가 알렉산더 데스플레, 인도 감독 세크하르 카프루 등 8명의 심사위원단이 참석한 심사위원 기자회견장이 예년보다 관심을 모은 이유도 여기 있다. 이들은 개막일인 12일부터 오는 23일까지 총 19편의 경쟁작을 평가한다. 12일 낮 열린 기자회견에서 팀 버튼 감독의 답변을 들어보았다. 이화정 -심사위원단의 역할은 무엇인가. =우린 전문가이고 모두가 평가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작품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작품을 보고 그 작품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교감을 주는지, 그것들에 대해서 토론하고 합의를 보길 원한다. 이번 영화제의 심사위원단이 모두 다른 문화와 나라에서 온 것들에 대해서 굉장히 흥미롭게 생각한다. 작품을 즐기고, 토론할 것이다. -화제작이 예년보다 없는 편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영화를 보러갔을 때 난 그 영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갔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영화에 대해서 모든 걸 다 안다. 제작비는 얼마고, 어떻게 만들어 졌고 등등. 그런데 모르고 볼 때 그게 더 놀랍다고 생각한다. 경쟁부문의 작품들은, 우리가 아는 감독들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은 감독들도 있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목표를 향해, 우린 일종의 의무감으로 함께 이 여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여행에서 놀라운 발견을, 새롭게 떠오르는 작품들을 발견 하길 바란다.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정치적 이유로 수감 중이다. 상징적인 의미로 심사위원 석 한 자리를 비어두었다. 그의 석방이나 구속 중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석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당연히 석방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일생에 걸쳐 우린 모두 그걸 위해 싸운다. 당연히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걸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녀>, 병적 사회에 대한 완벽한 통찰

'황금종려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에 <하녀>를!' 프랑스의 문화잡지 <테크니카르>는 14일(현지시간)까지 상영된 깐느영화제의 경쟁작을 대상으로 한 모의 수상에서 왕 샤오슈아이의 <충칭 블루스>와 마티유 아말릭의 <순회공연>을 제치고 <하녀>에게 세 개 부문의 수상 영광을 안겨줬다. <크로니카르>는 "이 영화를 두고 ‘끌로드 샤브롤의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초현대식 자동차 광고’ 같다는 비난이나,‘또 하나의 박찬욱식 영화만들기’라고 칭하는 것은 잘못 짚은 이야기다.”라며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매우 섬세한 영화”라고 호평했다. 이날 저녁 공식 갈라상영까지 마친 <하녀>에 대한 프랑스 현지 반응은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다. <바람난 가족>부터 이미 임상수 감독의 영화를 지지해 온 프랑스의 문화 주간지 <텔레라마>는 <하녀>를 ‘이번 깐느 영화에서 본 영화 중 최고작품’이라고 칭하며, “미쟝센과 스토리, 정치적 코멘트까지 함께 함의하는 <하녀>의 완성도는 단순히 이 작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한국의 감독들이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강조했다. 김기영 감독의 리메이크작에 대한 관심도 이어졌다. 문화웹진 <에벤느>는 "<하녀>는 김기영의 유산을 훌륭히 계승하고 있는, 보기 드물게 뛰어난 작품이자 동시에 놀라운 현대성과 예술적 자유를 가진 작품이다."라고 호평했다. 반면 지나치게 스타일을 지향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문화 주간지 <레 인록>은 “역설적 시각, 팬시한 세트, 시크한 의상, 끈적하고 병적인 분위기의 무거움은 70년대 샤브롤 작품들을 환기시키지만, 영화가 냉소적 살인 게임을 넘어서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라고 평했으며, 일간지 <르몽드>는 "<하녀>의 양식주의적인 연출이 오히려 작품에 해를 준다”며 “사회적 소외를 육체적 욕망이라는 쟁점으로 접근하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영화는 단지 멋드러진 스타일 실습에 머물렀다."라고 혹평했다. 일간지 리베라시옹 역시 "지나치게 스펙타클하고 센 이미지로 마무리하려는 욕망 때문에 오히려 결말에 가선 굴복하고 만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병적 사회에 대한 감독의 완벽한 통찰력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하녀>에 대한 평가가 단선적일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알렸다. 한편, 영화제 초반, <하녀>는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기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생의 아이러니 담긴 서스펜스 주고 싶었다" 임상수 감독 기자회견 -깐느에서 복원작으로 상영되기도 한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를 리메이크 했다. =리메이크라기 보단 재해석이다. 50년 전 작품을 똑같이 지금 만들 수는 없다. 김기영 감독의 작품이 당시 사회상을 깔고 있다면, 지금의 하녀는 2010년 지금의 한국 사회 전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오프닝 장면과 엔딩 시퀀스가 굉장히 독특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선 어린이의 트라우마를 묘사하려 했다. =영화 첫 부분은 이후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과 매우 다르다. 그러나 지금 여기 공존하고 있는, 섞일 일은 없지만 두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함께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마지막 장면은 그 소녀가 받은 트라우마가 어떻게 될까? 그것이 과연 좋은 선물이 될까라는 무서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여성의 이야기를 이렇게 잘 표현하는 감독은 별로 없다. =아시아 감독 대다수가 남자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아시아 남자들의 편견이 담긴 여자를 그리고 있다. 반대로 난 좀 덜 그런 편이라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난 기본적으로 남자보다 여자를 좋아한다.(웃음) -아무리 세월이 변했다지만, 원작을 만들던 당시와 지금의 사회가 이렇게까지 변했나? =전세계적으로 봐도 한국은 빠르게 변하게 나라로 유명하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경제적인 면은 변했으나 집안에서 변하는 일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성적 관계, 임신, 그에 따른 반응이 얼마나 변했는지 생각 해 볼 일이다. -서스펜스보다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영화에서 서스펜스적인 측면은 어떤 것인가. =내 작품에 대해 블랙 유머나 풍자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그런데 인생을, 세상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보다 보면 웃기다.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블랙 유머가 절로 나온다. 서스펜스에 관해서는 이 영화야 말로 히치콕 서스펜스의 정석에 따라 연출했다. 거기서 더 비틀고 깊이 들어가서, 단순히 아슬아슬하다기 보다 인생의 아이러니가 담긴 서스펜스를 주려고 했다. -미술 세트가 대단히 효과적으로 사용됐다. =김기영 감독님은 그 당시 세트 촬영을 가장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내가 그런 기술을 넘어설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세트에 대단히 공을 들였고 그 세트를 몸으로 느끼면서 표현하려고 애썼다. -'이번 경쟁작 중 가장 지루하지 않을 영화’라고 단언했다. =항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지, 깐느에 출품하던 하지 않던 중요한 건 아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어떤 영화를 지지할 지다. 가장 지루하지 않을 영화라는 건 페스티벌에 끝까지 참석하시면 알게 될 것이다. 한국영화가 두 편이나 깐느에 온 것을 주변에서 상당히 놀랍다고들 하는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늘 깐느에 가던 감독이 있었는데 내가 끼어든 게 고소하게 느껴졌다.(웃음) 칸=이화정, 김도훈, 취재지원 유동석(파리 한불영화제 예술감독)

[김영진의 인디라마] 상처를 품은 도시의 표정을 보다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 두편의 다른 장르의 영화를 소개하겠다. 한편은 다큐멘터리로 박동현의 첫 장편 <기무>다. 다른 한편은 전규환의 두 번째 장편 극영화 <애니멀 타운>이다. 전규환은 벌써 세 번째 영화 <댄스 타운>을 거의 찍어, 첫 번째 영화 <모짜르트 타운>과 함께 ‘타운 3부작’의 완성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무슨 3부작 운운하는 걸 좀 우습게 생각하는 편인데 <애니멀 타운>을 보고 그의 3부작을 모두 보고 싶어졌다. 한국에서 처음 공개된 <애니멀 타운>은 서구의 일부 영화제에서 호평받았으나 한국에서 열린 국제영화제에서는 죄다 떨어진 작품이다. 전작 <모짜르트 타운>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재능에 비해 과하게 구박받은 전규환이라는 감독에게 느끼는 호감 때문이다. 그는 빠른 속도로 영화를 찍고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기무>와 <애니멀 타운>은 각기 다른 장르의 영화인데도 묶어 소개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이 영화들은 모두 우리의 삶과 사회에 묻힌 상처에 관해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대개 가장 안이하게 떠도는 말로 상처를 겪으면 인간도, 사회도 성숙한다고 한다. 그건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상처를 겪으면 인간도, 사회도 거기서 헤어나기가 힘들고, 상처로 내파된 부분을 감추고 겨우 버티게 된다. 상처를 딛고 일어서자는 투의 성의없는 말에 기대기보다는 상처를 직시하는 게 괴롭더라도 차라리 현명한 일이다. 고통스럽지만 상처의 기원과 확산을 자각하는 게 우리를 약간은 더 강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곧 사라질 그래서 더 무서운 <기무> <기무>는 한때 기무사 건물이었던, 지금은 현대미술관 터가 된 공간의 역사성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다. 영화의 상당 부분은 조선 왕조의 종친부였고 식민지의 근대화된 병원이었으며 한때 보안사라 불리던 기무사 건물로 쓰인 이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조망하는 데 바쳐진다. 건축학자를 비롯한 전문가의 해설이 덧붙는 동안 카메라는 건물의 외관과 내부를 천천히 탐색한다. 화면에는 이 건물이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이름을 바꿔가며 존재한 역사적 정황들이 자막으로 깔린다. 이 영화가 근엄하고 미적인 탐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지향하는 것은 숨가쁘게 짧은 상영 시간 동안 버텨내면서 끄집어내려고 하는 어떤 흔적이다. 공적인 역사적 기록과 별개로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마모되어 흔적이 없는 것을 카메라가 안간힘을 쓰며 마치 초혼제라도 지내는 양 불러내려고 하는 듯한 기운은 이 영화에 이상한 영적 분위기를 입힌다. 그렇더라도 물론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기무>에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는 것은 그때부터다. 영화는 갑자기 옛 기무사 건물과 아무 상관없는 서울의 퇴락한 골목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우리가 전혀 몰랐던 역사적 건물의 시간성을 공들여 탐색한 뒤 동시대의 서울 거리를 카메라가 헤맬 때 파괴와 해체의 전개 과정은 동시대에 가공할 정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자각하게 된다. 이윽고 카메라가 움직임을 멈추고 어느 허름한 동네 골목길에 버티고 서서 오랫동안 그 골목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무런 논평없이 지켜보고 있을 때 우리가 무심하게 지워가는 삶의 흔적, 동네라는 개념이 살아 있는 공동체의 살아가는 순간들이 잠시나마 충만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동네 사람들이 저녁 찬거리로 뭘 준비하고 있는지까지 알 수밖에 없는 동네 골목길의 스킨십이 지금 지워지고 있는, 곧 사라질 상처의 일부분이 될 거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드는 것이다. 기묘한 서스펜스 보여주는 <애니멀 타운>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전규환의 <애니멀 타운>도 화면 곳곳에 상처의 기운을 품은, 그럼으로써 일상적으로 지각되지 않는 도시의 다른 면을 건져올리는 영화다. 아동성범죄 전과자와 작은 인쇄소 사장의 일상을 번갈아 병렬하는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삶의 관련성이 드러나는 것은 거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다. 별다른 설명이 없는데도 비상한 긴장감을 갖고 두 인물의 일상을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힘이다. 특히, 아동성범죄 전과자 오성철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감독의 방식이 특이한데, 그는 가스도 수도도 공급되지 않는 곧 철거될 아파트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건설현장을 전전하다 택시회사에 취업한다. 먹고사는 문제 외에도 그는 매 순간 자신의 범죄충동을 억누르며 힘겨워하는데 이 기묘한 서스펜스는 우리에게 그를 혐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동정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이 동정은 우리 자신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당혹스러운데, 이는 어떤 알 수 없는 불행을 겪은 뒤 영혼이 빠져나간 듯이 보이는 인쇄소 사장의 생기없는 삶과 대조적이다. 따지고 보면 두 사람 다 현세의 삶을 저당잡히고 간신히 살아내기는 마찬가지인데 한 사람은 시시각각 엄습하는 고통에 자신의 신체기관을 다 열어두고 있는 듯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다른 한 사람은 모든 감각기관을 닫아둔 듯이 행동한다. 습관적으로 교회에 간 인쇄소 사장은 목사의 설교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목사가 낚시 때 잡은 커다란 물고기들을 선물로 양동이에 담아주자 그것들을 싣고 오다 대로변에 버리고 퍼덕거리지도 않는 죽은 물고기를 냉정하게 응시하며 담배를 피워 문다. 마치 자신의 몸과도 같은 그 물고기들의 죽음을 자학적으로 즐기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에 비해 성범죄자 오성철은 공황장애에 시달리며 한시라도 약을 먹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고, 수시로 형사를 비롯해 다른 사람의 감시를 받는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된 범죄자와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는 듯이 유령처럼 살아가는 인쇄소 사장은 결국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한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유형의 상처로 괴로워한다. <애니멀 타운>에서 반복적으로 전시하는 것은 그 상처다. 영화에는 범죄자 오성철이 난방이 되지 않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몸을 박박 씻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이 장면 때문에 나중에 오성철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시 모종의 범죄를 저지르고 난 뒤 한적한 학교 운동장 수돗가에서 찬물로 피투성이가 된 상반신을 닦으며 울먹일 때 관객은 이상한 느낌에 휩싸이고 만다. 슬프다기보다 처절하게 다가오는 그 느낌은, 오성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천형처럼 벗겨내기 힘든 그의 삶의 주홍글씨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학교 수돗가에서 몸을 다 씻고 난 오성철이 어느 소녀를 발견하고 따라가는 것으로 이어지는 장면, 그를 보고 수상하게 여긴 학교 경비가 오성철을 따라가자 오성철은 건물 뒤편에서 오줌을 누고 있다. 오성철은 “죄송합니다. 너무 급해서요”라고 말하면서 울음을 그치지 못한다. 지극히 불행한 사건의 복판에서도 참을 수 없는 생리작용이 빚은 해프닝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오성철 몸의 주홍글씨를 우스꽝스러운 비극으로 다시금 각인하는 잔인함을 감추고 있다. 더 잔인한 것은 이런 일들이 이 도시에서는 일상의 편린으로 숨어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는 느닷없이 도시에 출몰한 멧돼지들로 아수라장이 된 상황을 전하는 텔레비전 뉴스 화면이 반복적으로 전해지는데 대다수 사람들이 뉴스로 접하는 이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에 침입한 실제 사건이듯이 <애니멀 타운>의 두 주인공이 겪는 개인적인 거대한 비극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우리 일상의 주변부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일 수도 있다는 대비가 이 영화를 더욱 섬뜩하게 만든다. 영화는 도시에 출몰한 멧돼지 때문에 벌어지는 다소 난폭한 상황으로 종결되지만 감독은 (그는 실제로 멧돼지를 도시에서 봤다고 이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주장했다) 곧잘 인위적인 영화의 상황에서 도시가 주는 보편적인 상처의 흔적을 주조하는 데 성공했다. 두 주인공이 겪는 상처보다도 그들의 상처를 무심히 품은 도시의 표정을 찍어내는 데 이 영화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 없는 무명의 감독이 찍은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꼼꼼하게 묘사하는 세공력을 보여준다. 음악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밀어붙이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아마 좋은 감독이 될지도 모른다.

[actor/actress] <하녀> <하하하> 배우 윤여정

소녀의 사랑스러움과 노인의 지혜. 이 두 가지가 동일한 육체 안에 공존할 수 있을까. 그녀를 직접 보면 수긍할 수밖에 없다. 화면을 통해서만 듣던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생각지도 못한 소박함과 일상성을 품고 있을 때, 그저 추억을 얘기하는 것 같은데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한국영화사의 한 단면이 겹칠 때 실로 감동적이었다. 실제와 허구 사이를 교묘하게 줄타기하며 여유와 유머를 적절하게 배합했던 <여배우들>, ‘엄마’와 ‘여자’를 동시에 보여주는 <하하하>, 현실적이고 속물적이지만 끝내 스스로를 해방시켰던 <하녀>. 전개상 필요한 역할이 아니라, 그 자리에 바로 그 모습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역할들. 영화도 좋았고, 거기서 큰 존재감을 발휘한 배우 윤여정도 좋았다. 우리에게는 이 배우, 윤여정이 있었다. 홍 감독에게 현장에서 막 성질 부렸지만…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 텔레비전 배우들이 놀려요. 영화배우로 거듭났다고. (웃음) 기분 좋죠. <여배우들>은 만날 같이 영화 보러 놀러다니던 이재용 감독과 나와 (고)현정이가 한번 해보자고 뭉친 거였기 때문에 그 프로젝트가 현실화된 것 자체가 참 기뻤어요. 우리끼리 행복하게 찍었고, 완성된 영화 보고 나선 다들 즐거워했어요. 지우까지 “선생님, 나 그때 그거 할걸 그랬어요”라고 후회하더라고. 촬영할 때 원래 넣으려던 장면이 있는데 지우가 못한다고 그랬어요. 내가 “그걸 깨야 해 지우야, 그걸 깨고 나가면 아무 소리 없을 거야”라고 했는데 결국 포기했었거든. 보고 나서 안타까워하더라고요. 내가 늘그막에 이런 젊은 감독을 알아서 큰 선물을 받았구나 싶었어요. 이 감독이 아주 예쁘게 얘기했어요. <여배우들>은 선생님 소장품으로 갖고 계시라고. 사람이 나이 들면 혼자 감동을 잘해요. <여배우들>은 이재용 감독이 나 같은 노배우에게 바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이미숙이 ‘선생님이 중심에 계셔서 우리 영화가 빛났어요, 선생님, 잘난 척하셔도 돼요’라는 문자를 보내줘서 제일 기뻤어요. 동료한테 인정받거나 감사받을 때가 진짜라고 생각해요. 그게 보람이었어요.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 원래 <밤과낮>에서 김영호씨 엄마로 출연할 뻔했어요. 하루 정도만 촬영하면 되는 분량이었는데 결국 스케줄이 안 맞아서 못했지. 지난해 6월 <여배우들> 찍을 때 홍상수 감독을 만났는데 <하하하> 얘기를 하더라고. <밤과낮> 정도 분량을 생각하고 그러마라고 했지. 7월에 통영 내려갔는데, 분량이 엄청 많은 거야. 아주 죽을 고생을 했어요. (웃음) 젊은 배우들이야 한달 내내 거기서 찍었지만 난 뭐 늙은 사람이 걔네들하고 놀 일도 없고 그 술을 어떻게 다 먹어. 서울하고 통영을 왔다 갔다 하느라고 힘들었어요. 사람이 참 미련한 게 자기가 당하지 않으면 몰라. 현정이한테 홍상수 감독 연출 스타일을 다 들었는데 잊어버렸던 거지. 잘하는 배우들이 전부 단역으로까지 나올 순 없으니까, 비전문 배우들까지 같이 찍게 되잖아. 근데 감독은 자기 원하는 장면을 뽑아낼 때까지 재촬영을 해야 하니까. 상황은 다 이해를 하는데, 늙어서 체력이 안되는데 뭐. 나 같은 경우는 테이크를 세번 이상 가면 더이상 안 나와요. <하하하>에선 20, 30번씩 테이크를 가니까 힘들었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막 성질 부렸거든. 시사회 때 보니까 내가 제일 연기 못한 거 같아 미안하더라고. 사과도 했어요. (웃음) <하하하> 속 문경과 엄마의 관계 아들들이 다 그래요. 자기 엄마가 엄마여야지 여자인 걸 싫어해. 내가 문경이 회초리 때리는 장면 찍을 때도, 홍 감독의 참 섬세한 부분이라고 생각한 게 자꾸 나보고 속옷 끈 내놓으라고. (웃음) 엄마 입장에서도 그렇지. 엄만 본능적으로 다 알아요. 정화가 없어지고 내 아들이 없어졌으니까. 문경이가 남자들이랑 시시덕거리는 엄마 보는 걸 싫어하는 것처럼, 엄마도 그래요. 내 아들이 물론 성인인데, 다른 여자와 다른 짓을 하는 게 또 그런 거야. 물론 정화를 예뻐하지만, 내 아들하곤 아닌 거야. 그런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어요. 김기영과 임상수는… 고 김기영 감독과의 인연 생각해보면 김기영 감독님과 내 인연이… 아마 그런 게 인연일 거예요. <화녀> 때 너무 고생해서 ‘영화는 부모님이 돌아가실 지경인데 약값이 없는 사람 아니면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웃음) <화녀> 다음에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와도 죄다 거절했다가, 어쩔 수 없이 <여대생 또순이>를 찍었어요. 사실 안 하려고 출연료를 일부러 높이 불렀는데 그 자리에서 돈을 내놓더라고. (웃음) 난 그때까지 감독들은 다 김기영 감독님처럼 머리가 좋은 줄 알았어요. 근데 이 영화에선 너무 이상했어요. 윤정희씨가 이 신을 이렇게 찍지 말라고 하면 정말 바뀌고, 엔딩까지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그거 찍은 다음 김기영 감독님이 또 왔어요. “이거는 내가 미스 윤을 위해 썼다. 미스 윤이 안 해주면 난 못하는 거지 뭐.” 나한테 반말 한번 안 하던 분이에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충녀>를 또 찍었어요. <화녀> 때 그렇게 고생했는데도 그분이 특별하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었나봐요. 사실 고생은 <화녀> 때 더 많이 한 거 같아요. 본편에선 편집됐는데, 날 욕조에 넣고 막 물먹이고 그랬어요. (웃음) 내가 김기영 감독님께 마지막까지 잘 못했어요. 부산국제영화제 2회 때 김기영 감독님 회고전을 하는데, 나한테도 참석해달라고 전화가 왔어요. 근데 전화하는 사람이 아주 재수없이 걸었어. 나 바빠서 못 가요, 라고 끊어버렸지. 김기영 감독님이야 뭐 내가 원체 틱틱거리고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걸 잘 아시니까… 그러고선 돌아가신 거죠. 사람이 참, 그렇게 반성하면 안되는데… 그 다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기영 감독님 유작 <죽어도 좋은 경험>을 튼다고 해서 그땐 내려갔어요. 그때까지도 잘 몰랐는데, 이번에 <하녀>를 찍으면서 마음이 많이 착잡하더라고요. 임상수 감독이 김기영 감독님의 수혜자일 수 있어요. 촬영 내내 내가 감상적이었거든. 24살 때 철없던 내가 <화녀>를 찍으면서 힘들다고 툴툴거렸던 게 너무 후회되더라고. 그때 못했던 걸 임상수 감독한테 다 했어요. 사람이 그렇게 바보야, 그분한테 그랬었어야 하는 걸 애꿎은 임상수 감독한테 다 해준 거지. (웃음) 하라는 대로 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아요. 인생이라는 게 참 그래요. 임상수 감독, <하녀>, 병식 <바람난 가족> 현장에서 임 감독 디렉션 보면서 김기영 감독님하고 닮은 데가 참 많다고 느꼈어요. 혹시 <하녀>나 다른 영화를 봤냐고 물었더니 잘난 척하면서 ‘뭐 전 그냥 별로…’ 하더라고. (웃음) 부부로 나왔던 김인문씨랑도 얘기했는데, 그분 말이 더 히트였어. “아냐, 쟤는 김기영보다 더 ‘또라이’야.” (일동 폭소) <하녀>에서 도연이가 연기하는 은이가 미스터리하잖아요. 백치 같기도 하고, 알고 저러는 건가 모르고 저러는 건가 싶은데. 그런 점이 바로 김기영 감독님이 나한테 요구했던 거거든요. 그거 보면서도 둘이 참 많이 닮았다고 다시 한번 느꼈죠. 처음 <하녀> 시나리오 읽었을 땐 대체 뭐라는 거야 싶었어요. 병식이래서 남잔 줄 알았어요. (웃음) <바람난 가족>에서 내 역할 이름이 병한이였거든. 병 자 돌림을 좋아하는구먼 하면서 읽었어요. 내가 아무 답을 안 주니까 임상수 감독이 전화를 걸었어요. “글세, 난 잘 모르겠어”라고 했죠. “제가 시나리오를 못 썼다고 생각하시는 거 압니다. 하지만 전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그러더라고요. 멋있었어요. 임상수 감독 스타일이 좀 그래요. 어떤 감독들은 완만하게 표현하죠. 모든 관객에게 친절하고. 임상수 감독은 김기영 감독님처럼 뚝뚝 생략하니까, 굉장히 강하고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그래서 내가 나름대로 병식한테 살을 붙여줬어요. 그 집에 아주 오래 있었던 여자, 미희(해라의 엄마)한테 오래 헌신했고 아들을 검사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세월을 견뎌낸 여자, 그 집안의 모든 걸 다 아는 여자라고. 처음에 의상 가봉할 때도 감독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임상수 감독이 그중 스커트 하나를 더 짧게 만들고 싶어 했는데, 내가 질색을 했거든. 이제는 알겠어요. 아마 병식이를 좀더 여자로 보이게 하려고 의도했던 거 같아요. 그 여자한테도 무슨 사연이 있었을 수 있잖아. 늙었지만 여전히 섹시해 보이는 여자, 은이랑 똑같은 일을 겪었을 수도 있는 여자거든. 그래서 병식이 와인 마시는 장면에서도 임상수 감독이 자꾸 치마를 좀더 올리라고 그랬는데… 시사회 보고 나서 후회했어요. 만날 후회해. 엔딩 때문에 말이 많겠지만, 이게 임상수지 싶더라고. 자기 터치를 잃지 않는 거지. 잘사는 사람들을 로봇으로 만들어버렸잖아요. 사실 그 엔딩 직전에 내가 집을 나서면서 펑펑 우는 장면도 이틀이나 찍었는데 편집에서 빠졌어요. 그래서 내가 막 뭐라고 그랬어. (웃음) 난 임상수 감독보고 좀 친절하라고, 군더더기도 붙이면서 설명을 하라고 잔소리를 해요. 어느 날엔가 진심으로 충고하는 거냐고 묻더라고요. “진심은 아니야. 그냥 흥행하라고….” (웃음) 내가 자랑스럽다, 오래 살아서 임상수 감독 아버님이 영화평론가 임영씨예요. 옛날에 임영 평론가가 김기영 감독님 영화를 무지 비판했대. 그래서 김기영 감독님이랑 정일성 촬영감독님이 집까지 찾아갔대요. 따지러. (웃음) 참 재밌잖아요? 그 아들이 그 감독 영화를 리메이크하고…. <하녀>에서 병식의 목욕장면 찍을 때, 욕조에 두세 시간 앉아 있으면서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돌고 돌아 우리가 어디서 만나게 될지 모르는 거다. 내가 <화녀>를 찍고 40년 뒤에 <하녀>에 다시 출연하다니, 내가 자랑스럽다, 오래 살아서. (웃음) 연기 인생을 돌아보며 어릴 땐 나보고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내가 진짜 연기 잘하는 줄 알았어요. 십 몇년 공백 다음에서야 내가 못한다는 걸 알았어. 내 말소리가 들리고, 내 몸이 뜻대로 안 움직이고. 30대 말인데, 굉장히 처참했어요. 너무 심하게 바닥을 친 거지.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기 시작한 게 쉰살 무렵이에요. 이제 60이 넘었는데, 다들 너무 잘해요. 문소리도 잘하고 전도연도 잘하고, 나도 내년부터 더 잘해야겠다는 희망이 생겨요. 연기라는 게 끝없는 도전이에요. 나 혼자서 끊임없이 장애물 경기를 하는 거예요. 완벽한 연기는 있을 수도 없고, 운때가 잘 맞아떨어지면 잘했다는 소릴 듣는 정도죠. 우린 우매하니까 남들이 잘했다면 진짜 잘한 줄 아는데 그건 착각이에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표현하는 데 정답이 있을 수가 없잖아요. 그걸 잘했다 못했다 맞았다 틀렸다를 말하는 게, 답 없는 길을 그냥 가는 거지.

"수상작 명단에 오를만한 작품이다"

<시>는 이창동 감독의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주제적으로 완결된 영화다". 제63회 칸영화제의 공식 경쟁작인 이창동의 <시>에 대한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평가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5월19일 수요일 아침 8시 30분에 공식 기사 시사를 가진 <시>가 현지 언론들로부터 고르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수상작 명단에 오를만한 작품"이라고 상찬을 보낸 <텔레라마>는 "점진적으로 펼쳐지는 서사적 완성도가 훌륭한 작품이다. 이야기의 가닥이 차츰 차츰 엮어지다가 전체적 그림은 영화의 결말에 도달하여 완전한 형태를 취하게 된다"고 썼다. <까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 뱅상 말로사 역시 <크로니카>에 기고한 글에서 <시>의 서사적 완결성을 칭찬했다. "서사가 저절로 부풀어 오르면서 이야기의 모든 요소들을 무차별적으로 쌓아올리는 것 같아보이나, 이렇게 냉담한 서사의 축적 뒤에는 엄청나게 강력한 효과를 갖는 검은 불꽃이 지펴진다"고 말했다. 주연 배우 윤정희에 대한 칭찬도 꽤 눈에 띈다. <르 몽드>는 "줄리엣 비노슈와 레슬리 맨빌 다음으로, 윤정희는 우리가 여우주연상감으로 가장 지지하는 배우"라고 썼다. <르 피가로>는 "거의 무중력 상태에 있는 듯한, 미묘한 뉘앙스와 감수성으로 가득찬 윤정희의 연기는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하다"고 평가하며 "이창동 감독은 여배우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감독이기도 하다"고 했다. 윤정희와 함께 현재 가장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오리지널 카피>에 출연한 줄리엣 비노슈와 마이크 리의 <어나더 이어>에서 호연을 펼친 영국의 신인 여배우 레슬리 맨빌이다. 현재 이창동의 <시>는 전세계 평론가들의 별점을 집계하는 <스크린 인터내셔널> 데일리지의 별점평가란에서 2.7점의 높은 점수를 받으며 21일 현재 경쟁작 중 마이크 리의 <어나더 이어>와 자비에 보브와의 <인간과 신들>에 이어 세번째로 높은 순위를 점유하고 있다. 프랑스 언론들의 별점을 집계하는 <필름 프랑세즈>에서도 <시>는 별점 1점을 안긴 <까이에 뒤 시네마>를 제외하고는 좋은 점수를 획득했다. 제63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수상작은 현지시간으로 5월23일 일요일 오후에 발표될 예정이다. "작년보다는 올해가 더 좋은 것 같다" 이창동 감독 공식 기자회견 -이 영화의 성공적인 부분은 미쟝센 내부에서 시란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준데 있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이 작품 제작 초기부터 기획되어 있던 것인지, 아니면 촬영 중 혹은 편집 중에 이런 복잡한 기획을 실현시킨 것인지. 혹시 제인 캠피온의 <브라이트 스타>를 염두에 두셨는가. =이창동/ 문학의 한 장르로서 시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면 예술, 또는 제가 하고 있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또 더 나아가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그 어떤 것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어떻게 영화로 드러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시라는 것이 꽃처럼 그저 눈에 드러나 보이는 아름다움, 눈으로 볼 때 그냥 아름다운 것만 시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우리의 삶 그 자체, 어쩌면 아름다워 보이지 않고 추하고 더러워 보이는 것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것을 어떻게 영화에 드러내는가를 끊임없이 고민을 해야만 했다. -영화 속 사건은 현재 한국에서 실재로 벌어지는 일인가. =이창동/ 영화에서 보여지는 사건은 뭐 꼭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은 아닐 것이다.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드물게 일어나기는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일상에 숨어있는 도덕성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술집에서 한 인물이 부르는 독일어로 된 노래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이 노래는 독일어로된 가장 아름다운 노래이기도 한데, 대체 어떻게 발견했고 왜 영화에 넣었는지 알고 싶다. =이창동/ 슈베르트의 <보리수>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노래다. 남자가 시인들을 환영하는 뜻에서 그 노래를 부르는데, 독일어를 하시는 분이 들으면 약간 가사가 틀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거다. 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그 정도의 멋을 부린다고 할까. 어떻게 보면 약간 허영기가 있고 위선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들 나름대로 순수한 마음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작품과 <밀양>을 비교해주셨으면 한다. 두 영화 모두 아이의 죽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밀양>에서는 남자아이가 죽고, 여기서는 영화 초반 여자 아이가 죽는다. =이창동/ <밀양>에서는 남자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고통을 다루었다. <밀양>이 피해자에 관한 이야기라면, 굳이 구분하자면, 저는 구분하기는 싫다만, 이 영화는 가해자쪽에 있는 사람의 고통을 다룬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가해자를 손자로 둔 할머니의 고통이랄까 마음의 죄의식이랄까. 그런 것과 시를 쓰기위해서 찾아야 하는 세상의 아름다움과의 긴장, 갈등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여자주인공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셨는가. 왜 이런 질문을 하냐면, 마치 선택하신 배우를 위해 존재하는 것 처럼 훌륭한 연기였기 때문이다. =이창동/ 여자 주인공을 생각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윤정희씨를 떠올렸다. 윤정희씨는 과거에는 한국 영화의 전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고, 어릴 때 부터 하늘의 별 처럼 우러러 보던 배우였지만, 10여년 넘게 활동을 하지 않은 분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자연스럽게 윤정희 선생을 떠올렸다. 왠지 시나리오의 주인공과 윤정희 본인의 외면이나 내면이 굉장히 닮아있을 것 같은 예감을 했다. -윤정희씨는 영화에서 은퇴하신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당신은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 공주가 된 후 받은 것보다 더 많은 시나리오 제안을 받으셨고, 거절하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왜 <시>로 복귀하게 된건가. =윤정희/ 나는 영화를 절대 떠난 적이 없으며, 영화는 내 인생이다. 여러 시나리오를 받아보았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창동 감독이 "제가 지금 당신을 위해 시나리오를 쓰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이창동 감독이 시나리오를 보냈다. 읽어보니 너무 너무 좋은 거다. 아직도 계속 영화를 하고 싶고, 절대 영화를 떠난 적이 없다. 계속 하고 싶다. 90살까지. -보도 자료에서 보면 당신은 "시는 위협을 받고 있다. 마치 영화가 그런 것 처럼"이라고 썼다. 한국 영화든 영화 일반이든, 무엇이 영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이창동/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영화가 죽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모든 영화가 죽어가지는 않을거다. 다만 어떤 영화는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에는 심사위원으로 이자리에 오셨었고, 금년에는 경쟁작을 가지고 오셨다. 작년과 금년의 마음 상태를 비교해주실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것이 더 좋은가? =이창동/ 둘 다 그렇게 썩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심사위원으로 온 것은 남의 영화를 평가하고 점수를 메겨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웠고, 영화를 즐기고 싶었지만 종종 즐길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썩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심사위원으로 온 것 보다는 제 영화를 직접 가지고 와서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어쨌든 경쟁이기 때문에 결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즐기기만 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좀 부담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작년보다는 올해가 더 좋은 것 같다. 칸=김도훈, 취재지원 유동석(파리 한불영화제 예술감독)

[must10] 법정 스님을 기억하다 외

1. 법정 스님을 기억하다 지난 3월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의 미출간 원고 63편이 발견됐다. <불교신문>은 “<불교신문>의 전신인 <대한불교>의 영인본을 조사한 결과 법정 스님이 1963년부터 1977년까지 쓴 수필과 시, 제언과 칼럼, 서평 등 63편의 글을 찾아냈다”과 밝혔다. 스님의 뜻을 따르던 이나, 스님의 입적을 슬퍼하는 이에게나 소중한 선물이 될 글이다. 한편, MBC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특집 프로그램 <법정,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를 방송한다. 내레이터는 배우 고현정이다. 2. 신의 손길을 느껴봐~ 신의 손, 로댕님의 작품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8월22일까지 전시됩니다. 해외 반출 금지됐던 <신의 손>을 포함해 <생각하는 사람> <아담> <이브> 등이 공개된다네요. 추상과 구상의 절묘한 조화를 느껴보시길. 3. 투표, 우리가 격려해드려요~ ‘지방선거 독려공연’이라고 들어보셨는지? 6월2일, 투표 꼭 하시고 오후 7시 홍대 클럽 사운드홀릭으로 9천원만 들고 오세요. 저희가 마구마구 격려해드립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텔레파시, 아침 밴드의 재밌는 공연. 4. 아이폰 과외 받으실래요? 메일, 로밍, 캘린더, 어플 설치. 힘들어서 못하시겠다고요? 저희가 달려갑니다. 아이폰 개인교습 받거나 하고 싶으신 분, 포털사이트 알바천국(www.alba.co.kr) 게시판을 확인하시길. 기본 시급은 7천~1만원에 재택근무까지. 이거, 손발이 오글거리게 당기는 아르바이트. 5. GGGG 베이베베이베베이베~ 아이폰 3gs로 갈아탄 지 6개월밖에 안됐다. 그런데 6월에 4g가 나온단다. 애플은 오는 6월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세계개발자컨퍼런스(WWDC)를 통해 아이폰 4g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동안 아이폰이 없는 편집장 이하 몇몇 기자를 무던히도 놀렸더랬다. 흑, 이제 그 자랑질을 어떻게 견디나. 6. 연아씨, 울지 마요 MBC가 파업을 중지하면서 <황금어장>이 쟁여둔 <무릎팍도사> ‘김연아’편이 5월26일 방송된다. 이제는 <무릎팍도사>가 그토록 갈망했던 장동건보다 더 궁금한 아이템이다. 강호동, 우리 연아에게 함부로 소리지르지 말지어다. 7. 목소리 미남의 귀환 근사한 출근용 음악을 소개한다. 목소리 미남 김동률과 기타리스트 이상순의 베란다 프로젝트가 음반 <>를 발표했다. 첫 트랙 은 한번 들으면 이내 흥얼거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으니 필청. 매번 이 목소리와 사랑에 빠진다. 8. 소녀들, 웰컴 백! 국민 여동생 원더걸스와 톡톡 튀는 아이돌 포미닛, <2dt>와 로 컴백! 소희는 보이시해도 예쁘고나. 래퍼 소현도 멋지고나. 그런데 요즘 노래들은 왜 이렇게 팝송 같냐. 한글이 잘 안 들리는 이 기현상은…. 9. 전화벨이 울리고… 대학생은 물론 그 어머니들까지 귀를 쫑긋 세울 신간 소식. 신경숙의 장편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가 출간되었다. 2009년 초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인터넷을 통해 연재된 작품. 성장소설이고 청춘소설이며 연애소설이다. 10. 니들이 태양을 알어? <씨네21> 새 사무실까지 매일 등산을 하다 보니 자외선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다. 양산을 쓰려고 했더니 온갖 아침 정보 프로그램을 섭렵하는 어머니의 진중한 조언. “자외선 차단에는 선캡이라고 뉴스에서 그랬다.” 선캡! 김혜수도 쓰는 울트라캡숑시크 아이템 아니던가! 태양이 무서운 자들이여, 가려라!

시리즈 10년, 마지막 모험을 떠나요

윌리엄 스타이그의 인기 동화책이 원작인 <슈렉>은 마법에 걸려 흉측한 괴물로 변한 아름다운 공주가 진정한 사랑과의 키스를 통해 저주에서 풀려난다는 내용의 고전 동화를 신선하게 패러디하면서 지난 10년간 팝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아왔다. 진정한 사랑과의 만남, 이후 서로를 각자의 삶 속에 받아들이는 과정, 친구와 가족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거쳐 도달한 <슈렉> 시리즈의 마지막 장인 <슈렉 포에버>는 어느 순간 불현듯 드는 “이렇게 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슈렉 포에버>는 슈렉이 드래곤으로부터 피오나 공주를 구하기 전 왕(테리 길리엄 감독의 <몬티 파이톤>의 존 클리스)과 왕비(줄리 앤드루스)가 마법사 룸펠스틸스킨(월트 돈)을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피오나 공주의 저주를 풀어주는 대신 왕국을 차지한다는 계약서를 들이미는 룸펠스틸스킨. 소중한 딸을 생각하며, 왕이 계약서에 서명을 막 하려던 차에 슈렉이 공주를 구했다라는 소식이 전해져오고 룸펠스틸스킨의 계략은 수포로 돌아간다. 슈렉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며 이를 갈면서 사라지는 룸펠스틸스킨을 뒤로하고 화면에는 피오나 공주를 구해내고, 진정한 사랑임을 서로 확인하고,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자리를 잡은 슈렉의 일상이 보인다. 피오나 공주는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정신이 없고, 슈렉 역시 자신만의 시간은 꿈도 꿀 수 없다. 이제 하루하루가 똑같이 정신없는 아버지로서의 일상에 숨막혀하던 슈렉은 문득 고개를 돌려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한때 모두가 무서워하던 오거로서의 자유로운 삶,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자신만의 삶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런 슈렉 앞에 나타난 마법사 룸펠스틸스킨. 그는 슈렉에게 하루 동안의 일탈이라는 달콤한 제안을 하고, 슈렉은 그 대가로 자신이 지불해야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덥석 받아들인다. 그러자 바로 슈렉은 슈렉이 태어나지 않았던 평행우주의 세계로 떨어진다. 룸펠스틸스킨이 슈렉이 태어난 날을 가져가버린 탓에 이 세계에서는 슈렉이 태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태어나지 않았기에 당연히 슈렉은 피오나 공주를 구출한 적도, 용과 싸운 적도, 동키를 만난 적도 없다. 슈렉이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와 그 모든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갑자기 등장한 슈렉. 이곳에서 동키는 슈렉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람들은 예전처럼 슈렉을 두려워하고, 장화 신은 고양이는 장화를 신지 못할 지경까지 살이 쪄 있다. 자신을 구해줄 기사를 기다리다 지친 피오나 공주는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성 안에서 빠져나와 왕국을 통치하고 있는 독재자 룸펠스틸스킨에 맞서 오거 저항군을 이끄는 여전사가 되어 있다. 슈렉에게 그녀는 여전히 사랑이지만, 여전사 피오나는 더이상 진정한 사랑을 믿지 않는다. 한때 자신이 가졌던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고 피오나 공주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이번에는 슈렉이 진정한 사랑의 키스를 필요로 하게 된다. 3D로 제작되어 마이크 마이어스(슈렉), 카메론 디아즈(피오나 공주), 동키(에디 머피) 및 안토니오 반데라스(장화 신은 고양이) 등의 친숙한 목소리와 함께한 <슈렉 포에버>가 지난 5월16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프리미어를 가졌다. 하루 앞서 에디 머피가 빠져 아쉬었지만 베벌리힐스의 포시즌 호텔에서 배우들과 마이크 미첼 감독을 라운드 테이블에서 만날 수 있었다. 카메론 붙잡고 3D 관해 질문 천개쯤 했을걸 마이클 미첼 감독 -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 작업의 차이가 있다면. = 엄청난 디테일을 미리 다 계산해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실사로 마차를 찍어야 한다고 하면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가지고 온 몇장의 샘플 사진 중에서 한장을 고르면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슈렉 포에버>에서 동키가 끄는 마차를 정하기 위해서는 애니메이터들의 수없이 많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마차가 움직일 때 랜턴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흔들리는 마차의 아래는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등등. 그런데 그게 바로 애니메이션 디렉팅의 재미 같다. - 실제와 캐릭터간의 싱크로율이 가장 높은 배우는. = 모두 다 각자의 캐릭터를 상당 부분 가지고 있다. 마이크 마이어스는 굉장히 머리회전이 빠르면서도 괴짜 같은 모습이 슈렉과 잘 맞고, 항상 넘치는 에너지의 카메론 디아즈도 피오나 공주 그 자체다. 녹음실에 배우들이랑 같이 들어가서 작업을 하는데, 어떨 때에는 이들을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 금세 진이 빠지는 느낌이다. 다들 목소리 연기를 하면서 몸을 많이 움직이는데, 그런 모습을 애니메이터들이 카메라로 녹화해두었다가 애니메이션에 참고하기도 한다. 에디 머피의 경우 그 방법을 많이 썼다. - 이번 작품에서 캐릭터에 이전과 다른 변화를 주려고 한 시도가 있었다면. = 살찐 장화 신은 고양이도 있고, 재니스 조플린처럼 머리를 내린 피오나 정도? - <슈렉> 시리즈의 매력이 무엇인 것 같나. = 슈렉에게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게 있다. 이번에 피오나는 슈렉에게 구출되지 못했다. 그리고 스스로 오거 전사로 거듭났다. 그 과정에서 진정한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필요로 할 때 구해주지 못한 피오나를 바라보는 슈렉의 딜레마를 보면 마음이 아프지 않은가. 슈렉은 이른바 애니메이션 버전의 ‘토니 소프라노’( 텔레비전 시리즈 <소프라노스>의 주인공)라고 생각한다. (웃음) 그러고보면 슈렉은 우락부락한 체구에, 늘 화난 표정의 무뚝뚝한 토니와 비슷하지 않나.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하면 코가 늘어난다는 것을 굳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유머가 그대로 전달된다라는 등에서 또 다른 재미가 있다. - <슈렉> 프렌차이즈의 마지막 장을 만드는 것은 부담이 꽤 컸을 것 같은데. = 그렇기도 하면서 동시에 애니메이터들 모두가 다들 들떠 있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난 두 아이의 아빠였고, 생일 파티에 한창 시달렸을 때라 슈렉의 심정이 딱 와닿았다. 부담보다는 우리 모두 이 작품을 만드는 데 자부심과 즐거움이 더 컸다. - 그래도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 3D 작업이었다는 점이다. 3년 전 일이라 3D 작업을 그때 처음 해보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제임스 카메론을 붙잡고 질문만 천개를 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아바타> 작업물을 누구보다 먼저 볼 수 있어 좋았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드래곤 길들이기>도 함께 3D로 제작돼 우리끼리 문제점이 생기면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곤 했다. 드림웍스에는 이른바 히피 문화같이 서로 돕는 분위기가 있다. 그래도 3D 작업을 이렇게 하나 해보고 나니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기술만이 아니라 스토리텔링 기능으로서의 3D가 가진 매력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동키를 바라보며 혼자가 되는 슈렉을 3D로 잡아 후면에 배치하는 장면이 있다. 앗, 3D다 하고 눈에 확 띄는 장면은 아니지만, 그를 통해 슈렉의 심리를, 슈렉의 관점에서 훨씬 더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3D는 모노 사운드에서 스테레오 사운드로의 변화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슈렉 포에버>의 주인공들을 LA에서 만나다

영국 TV 시리즈처럼 우아하게 끝낼 수 있다니 슈렉 목소리 역의 마이크 마이어스 - <슈렉> 시리즈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 고정수익이 있다는 것이 좋았는데. (웃음) <슈렉> 시리즈는 애니메이션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젠장, 이건 그냥 만화일 뿐’이라고 하면서도 마음이 끌리지 않는가. 그리고 이렇게 우아하게 마지막 장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질질 끌지 않고) 영국 텔레비전 시리즈처럼 우아하게 끝을 낼 수 있다니! (웃음) - 목소리 연기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 나는 뉴욕에 사는데, 녹음실로 가면서 살인현장을 두번이나 봤다. 길거리에서 죽어 있는 시체랑, 칼이랑, 피로 가득한 현장을 지나 녹음실로 들어와 동화의 세계에 적응하는 것이 어색했다고 해야 하나? 녹음실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서 연달아 살인사건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 슈렉과 자신이 어떤 면을 공유하는 것 같은가. = 나는 캐나다 출신이고, 부모님은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쉽게 화를 내면서도 정이 많다. 이를테면, (걸걸한 목소리를 윽박지르며) “당장 거기서 손을 떼지 못해!” 하다가도 (갑자기 씩 웃으며 누그러진 목소리로) “이리 와. 자, 한잔 들이켜자고” 하는 식이다. 그 모습이 슈렉이 속한 오거의 문화랑 비슷한 것 같다. 뭐랄까, 오거는 동화 세계의 ‘일하는 사람들’(working people)이랄까. 또 하나는 캐나다인이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미국인 사이에 그냥 잘 섞여 있는 것 같지만, 나 스스로는 언제나 그 미묘한 차이를 의식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어렸을 적에 캐나다 텔레비전 시리즈를 보고 학교 친구들에게 신이 나서 이야기하면 “캐나다 TV, 난 그런 것 몰라” 혹은 “그런 것은 관심 없어”라는 표정의 친구들의 반응에 풀이 죽었던 기억도 나고. - 당신이 생각하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어떤 것인가. = 안토니오와 그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는데, 우리 둘 다 “happy”라는 단어보다는 “joy”라는 말을 훨씬 더 좋아한다. happy에는 왠지 그래야 한다고 강요하는 뉘앙스가 있다. 결과로서의 행복함이 아니라 스스로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더 마음에 든다. 나한테 일어나는 행복이 아니라, 내 안에서 행복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 <슈렉> 시리즈는 10년간 이어져왔다. 감회가 있다면. =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사실 좀 슬픈 것 같다. 이제 47살이 되는데, 되돌아보면 그때는 언제 이 일들을 다 할 수 있을까 했는데, 그동안 참 많은 일을 해온 것 같다. 엘리아 카잔의 <라이프>라는 자서전을 보면 장마다 너무나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힘든 일들만 첩첩이 쌓이다가 마지막에 기적이 일어나면서 장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장으로 들어서는 식이라 인상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인생이 그런 것 같다. 1편부터 공주라기보단 전사였지 피오나 공주 목소리 역의 카메론 디아즈 - 피오나 공주로서도 마지막인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슈렉과 나는 비슷한 삶의 궤적을 걸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나 역시 내가 가진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불현듯, 도대체 어디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이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 4편을 통해 공주에서 아내로, 엄마로, 이번에는 전사로 인생의 다양한 단계들을 거쳐왔는데, 어떤 피오나가 가장 마음에 드나. = 그 여러 모습의 피오나는 실은 다 똑같은 피오나이다. 내게 피오나는 1편부터 공주라기보다는 언제나 전사의 모습이었다. 언제나 슈렉을 이끌어갈 수 있었던 것도 그녀 스스로가 사실은 내면이 강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대체 어딜 봐서 내가 공주의 모습인가. (웃음) 내 안의 14살 난 소년은 나도 어쩌질 못한다. - 안 그래도 다들 당신이 에너지가 넘쳐난다고들 이야기한다. 에너지를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인가. = 그래도 3주 전에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때는 진짜 지쳐 있었으니까. <나잇 & 데잇>으로 톰 크루즈와 6개월간 거의 매일 12시간 이상의 강행군 촬영을 하고, 바로 다음 작품으로 들어갔으니까. 진짜로 힘들었다. 아, 다시는 이렇게 앞뒤로 영화를 찍지 않고 싶다. 그렇지만! 잠을 제대로 자니까 이렇게 다시 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잠이 최고다. 앞으로는 여러 작품을 연달아 하는 것보다 1년간 한 영화만을 제대로 집중해서 해보고 싶다. - <슈렉>을 하면서 어떤 점이 즐거웠나. = 다른 것도 많지만, 내 영화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런 좋은 작품을 하게 되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듣고, 영화를 정말로 즐길 수 있는 기쁨을 준다. <슈렉>이 내게 그랬다. - 어떻게 하면 피오나처럼 진정한 사랑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가. = 진정한 사랑에 대한 잘못된 인식 중 하나가 그런 사랑이 18살 즈음에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 데 있다. 진정한 사랑이 20살에, 30살에, 40살에, 혹은 60살이 되어야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렇게 만난 사랑과 남은 여생을 계속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도 문제다. 그런 사랑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쪽이 훨씬 많다는 것이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만약 한 사람과 앞으로 남은 여생을 늘 함께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면, 그런 약속은 (단호히) 하지 말아야 한다. 5년, 10년, 혹은 20년 이렇게 쪼개어서 인생의 시기별로 충실한 사랑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라는 게 내 생각이다. - 30대 여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마음껏 표현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최대한 누리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10년 뒤에는 옷을 입더라도 지금만큼 예쁘지 않을 테니까. 현재 가진 것을 최대한 누리면서, 또 가진 것의 최고를 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동화나라 이야기에 머물지 않아 장화 신은 고양이 목소리 역의 안토니오 반데라스 - 이번 작품에서 꽤 몸무게를 늘려야 했는데, 어땠나. (웃음) = (웃음) 그러게 말이다. 로버트 드 니로 말고는 나만큼 영화를 위해 찌운 배우가 없다. - 장화 신은 고양이의 연기를 하면서 특히 염두에 둔 점이 있다면. = 내가 해석한 장화 신은 고양이는 짓궂은 캐릭터이다. 달콤한 목소리로 “당신을 사랑해…. 아, 그렇지만 당신도 사랑해”라고 속삭이는 바람둥이이기도 하고. 처음에 어떤 목소리로 연기를 할까 고민할 때, (가느다란 목소리를 내며)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너무 뻔하지 않나, (슈렉 속의 목소리로 돌아가서) 뭔가 대비되는 맛을 주고 싶었다. 그 조그마한 몸에 뭔가 우아하면서도, 무게가 있는 그런 목소리가 나온다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았으니까. (다시 본래의 목소리로 돌아와) 그래서 장화 신은 고양이가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 스스로 깜짝 놀랄 것 같은…. - 목소리 연기를 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 브로드웨이에서 한창 <나인>을 공연하다가 장화 신은 고양이 역을 하러 녹음실에 오면 바로바로 적응이 안될 때가 있곤 했다. 녹음하고 다시 공연장 가면 또 헷갈리고. 아, 그리고 나는 <슈렉>의 미국 버전 말고 스페인어 버전, 이탈리아 버전에 다 참여했는데, 각 버전에 따라 악센트 등의 변화를 주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 마지막 <슈렉>이다. 어땠나. = <슈렉> 시리즈는 팝컬처를 비틀면서 독특하게 다가왔는데, 이번 작품은 단순히 동화 나라의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파게티 웨스턴과 같은 에픽적 성격을 띠고 있다. 신선했다. - 극중 캐릭터처럼 그렁그렁한 큰 눈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스타일인가. = 하하. 노력 중이다. - 애니메이션 작품에 참여하면서 얻게 되는 것이 있다면. = 애니메이터들은 ‘뛰어난 것’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작가에서부터, 애니메이터들에 이르기까지 이런 팀워크의 한 부분이 되는 것에 매력이 있다. - 스핀오프로 제작되는 <장화 신은 고양이>에 샐마 헤이엑과 함께 출연하기로 되어 있는데 스튜디오에 샐마 헤이엑을 추천했다고 들었다. = <데스페라도>를 찍으면서 샐마와 알게 되었다. 샐마는 코미디 연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여배우이다. 서로 쥐어뜯고 으르렁거리면서도 결국에는 함께하게 되는 클래식한 관계를 보여줄 계획이다. - 장화 신은 고양이를 연기하게 되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을 수 있었던 것. 체코슬로바키아에서부터 한국까지 다양한 나라의 영화들이 선보이는 곳에 같이 설 수 있었던 기억이 좋았다.

교육감님이라도 영화클럽 만들어주세요

프랑스 학생들은 참 좋겠다. 전세계를 통틀어 영화를 가장 사랑하는 나라 프랑스에서, 오는 9월부터 프랑스 전역의 중등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온라인으로 전세계 걸작 고전 200여편을 볼 수 있는 온라인 시네 클럽(www.cinelycee.fr)을 런칭한다고 한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 장 뤽 고다르의 <경멸>,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지난 5월18일자 <가디언>에 따르면, 프랑스 교육부와 국영 프랑스 텔레비전이 협력하여 구축한 이번 시네 클럽은 2009년부터 시작된 중등학교 시스템 개혁 논의의 일환이라고 한다. 이 야심찬 계획의 목표는, ‘로맨스와 섹스와 반항’이 가득한 영화를 통해 10대들로 하여금 문화의 다양한 영역과 국제정세 등에 자연스럽게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 시네 클럽이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파리 교외 혹은 타 지역 학생들에게도 문화적 혜택을 공평하게 제공하기 위함이다. 교육부 장관 뤽 샤텔은 “불평등이 절규하는, 학교가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 곳에 문화가 존재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파리 시네마테크 대표 코스타 가브라스는 “이미지는 우리 사회에서 엄청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청소년은 그 이미지들을 따라잡고 해독하는 걸 배워야 한다”라고 두팔 벌려 환영했다. 문화부 장관 프레데릭 미테랑은 “여러분은 <시민 케인>을 보면서 권력과 야심의 음모가 구축되는 방식에 대해 특별한 통찰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역시 몇년 전부터 영화를 수업의 일환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여왔지만, 그것은 언제나 ‘특화된’ 무엇인가로 여겨졌다. 가장 손쉽고, 가장 저렴하게, 가장 다양한 분야에 접근할 수 있는 교육방식으로서의 영화를 고민할 수도 있지 않을까.

[김영진의 인디라마] 취향은 존중하지만, 유감이다

첫 번째 장편영화 다음에 꽤 시간이 흘러 두 번째 장편 <폭풍전야>를 만든 조창호는 한국영화계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재능을 지닌 감독이다. <폭풍전야>는 개봉 당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데뷔작 <피터팬의 공식>이 특이한 정서를 갖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던 터라 이번에는 조창호가 어떤 것을 보여줬을지 궁금했다. 잊고 있다가 뒤늦게 영화를 찾아봤다. 역시 특이점이 있지만 그만큼 대중적인 외연은 옅은 영화였다. <폭풍전야>는 이야기만 놓고 보면 텔레비전 드라마 소재로 봐도 별 무리가 없다. 그만큼 통속적인 자극이 강한 상투형의 범벅인데 감독의 취향이 이걸 전혀 다른 방식으로 버무린다. 여주인공은 마술사 상병을 사랑한다. 상병은 실은 동성애자이며 그걸 안 미아가 상병의 애인을 총으로 쏴 죽인다. 상병은 미아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가고 거기서 수차례 탈옥을 시도한 수인을 만난다. 요리사 출신인 수인은 에이즈 환자는 출옥한다는 그릇된 정보를 믿고 상병의 피를 받지만 출옥하지 못하자 탈옥한다. 상병의 부탁으로 미아가 운영하는 카페에 칸 수인은 거기서 주방장으로 일하며 수인과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환상적 리얼리즘이 아침 드라마와 만난 부조화 데뷔작인 <피터팬의 공식>과 마찬가지로 금지된, 치명적인 사랑이라는 모티브에 죽음의 기운을 얹은 <폭풍전야>는 보여주고 싶은 것을 위해 스토리를 강제한 흔적이 짙다. 논리적으로 무리한 부분을 억지로 밀고 나가며 마치 특정 상황에 처한 인물의 내적 심상을 풍경으로 펼쳐 보이기 위해 기능적으로 전개된다는 느낌을 준다. 미아가 운영하는 카페는 세상의 오지처럼 거의 이웃이 없고 손님도 별로 없는 한적한 곳인데 동시에 외부자들에게 완벽하게 노출된 투명유리창 안의 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에이즈에 걸린 수인은 시한부 생명이며 미아도 마찬가지다. 수인은 쫓기고 있으며 미아는 스스로 유폐돼 있다. 수인과 미아, 그리고 상병 모두 거둬내기에는 깊이 박힌 심한 마음의 자상을 입고 있다. 조창호는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를 지어낸 것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인물들을 감싼 무기력과 출구없는 절망과 가끔 느껴지는 관능과 느닷없이 벌어지는 마술적 상황이 주는 놀라움의 정체에 대해 궁금했다. 영화 속 인물의 삶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철저하게 방기되어 있는데 그걸 채운 내용은 때때로 덧없는 생의 감각을 일깨우는 쪽이다. 수인이 요리를 만드는 장면, 그 요리를 미아와 함께 먹는 장면은 공들여 반복적으로 묘사되고 상병과 미아가 보여주는 마술은 속임수가 아니라 진짜로 벌어지는 일 같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환상적 리얼리즘이 아침 드라마와 만난 이 부조화 속에서 조창호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영화 내내 생기없는 표정으로 텔레비전 연속극 연기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 미아와 수인 역의 황우슬혜와 김남길의 연기가 그냥 그랬던 것은 이 맥없는 이야기의 굴레에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역시 너무 전형화돼 있다. 가끔 이들이 자신들의 배역에 동화되어 연기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배우들을 정물처럼 배치하고 감독은 천천히 느린 호흡으로 풍경을 각인시키려 한다. 화면의 물성을 포착하려는 이 노력은 영화감독 조창호의 재능이 배어 있는 부분이다. 어쩌면 그가 찍고 싶었던 것은 이 부분인지도 모른다. 나른하고 무심한 풍경, 겉으로 심심해 보이지만 너무 초연해서 오히려 무섭고 잔인하게 다가오는 풍경, 비바람이 불 때만 비로소 억센 표정을 보여주는 풍경, 불행이 예정되어 있는 운명과 닮아 있는 풍경의 각인이 스토리를 지탱하는 명분이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그 풍경의 부분으로 가려 있으나 아주 가끔, 특히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 그 풍경에 자신들의 뭔가를 새긴다. 오로지 진짜 마법으로만 성취 가능한 이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해변 가득 날리는 색종이들의 흩날림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그토록 가라앉아 있었다는 인상을 준다. 풍경에 묻히고 바람 속에 밀리기만 하던 인물이 이윽고 거기에 자신들의 자취를 새기는 것은 운명에 스러지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생명과 관능의 몸짓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 자체로 아름답고 인상적이지만 미로에 갇힌 발버둥처럼 보인다. CF 같은 가공의 세계는 착시를 불러일으키고 조창호라는 감독이 이런 길을 택한 것은 유감이다. 우리가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상업영화판에서의 생존방법이라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방식으로 복수한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극적 충격을 갖춘 이야기를 꾸미는 척하면서 거기 감독 나름의 개성을 새긴다고 하는 추상적인 명제는 실제로 증명되기 힘든 신기루 같은 것이다. 숱한 감독들이 실패했으며 성공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조창호는 <폭풍전야>에서 상투적인 이야기에 비관적인 패배주의와 거센 영화적 에너지를 심고자 했다. 보호받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모티브, 인간이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 세상의 구석에서 유배당했거나 유배를 자청한 인간들, 루저의 삶에 무관심한 세상의 표표한 질서를 그려내는 것은 그의 취향이지만 상업적으로 용도폐기당하기 쉬운 그 상상력의 겉에다 그는 가짜 충격의 당의정을 입혀놓고 실은 알맹이는 그게 아니라는 식으로 접근했다. 어떤 정서만 갖고 영화가 성립될 수 있을까. 삶의 이력이 전시되는 공간으로서의 풍경에 정서만 남고 나머지는 휘발될 수 있을까. <폭풍전야>의 배경이 된 해변가의 공간적 질감은 멋있는 외양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서너명의 등장인물들만으로 애욕과 상처가 전시되는 이야기를 펼치고 풍경은 이야기를 걸치는 긴 사다리 노릇을 한다. 실제의 풍경이 완전한 인공적 산물이 되는 순간들이다. 비관의 정서는 현실적으로 착목될 목침을 갖지 못한 채 풍경속에 떠도는데 이 CF 같은 가공의 세계는 마술이라는 모티브와 결합해 환상적 리얼리즘의 비약을 가능하게 할 것처럼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잔인한 상황의 도래와 그것을 치유하는 데 드는 시간이 이어지며 영화는 내내 그런 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는 영화적 제스처가 나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초월적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치미를 떼고 벌어지면 그걸 관객에게 기적이라고 믿고 싶게 만드는 것 같다. 지금은 시효가 지난 듯이 보이는, 이 계열의 대표자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영화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은 등장인물들의 총합적 에너지의 맥을 따라 펼쳐진다. 쿠스투리차의 <아빠는 출장중>과 같은 영화에서 주인공 꼬마의 비상하는 순간은 구체적이고 실증 가능한 듯이 보이는 일상적 사건들의 질감을 뚫고 나옴으로써 충격을 준다. 쿠스투리차의 근작들에서 더이상 그런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은 것은 남용된 영화적 수사의 시효가 끝난 이유도 있지만 구체적인 현실의 실감을 뚫고 나오는 것이 아닌, 가공된 영화적 장치로서만 기능했기 때문이다. <폭풍전야>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무분별한 경계 속에서 창조력을 이상한 방식으로 펼쳐낸 안타까운 사례이다. 재능있는 감독 조창호가 오랜만에 만든 신작에 대해 야박한 글을 쓰는 것이 미안하지만 이건 한 감독 개인의 사례가 아니라 한국영화계 전체의 불길한 사례로 재고되어야 한다. 영화에 대중적인 외피를 두른다는 강박이 의식적으로 일정한 자극을 배열하는 텔레비전 막장드라마식의 패턴을 모방하는 퇴행의 증거로서, 동시에 감독의 자율적인 상상력이 제한된 이야기 소재 범주의 굴레에 갇혀 낯선 방식으로 분출되는 증거로서, 창조적 표현욕구가 시장의 사이즈에 맞춰 예측 불가로 어그러진 사례로서 남을 것이다. 조창호의 실패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는 더 적극적으로 타협하거나, 아니면 자기 영역을 고수하는 쪽이 좋을 것이다. 당장 많은 이들이 보지 않는 개인적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이 볼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폭풍전야>는 어느 쪽으로도 자세가 잡혀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