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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성에서 깨어나다,<돌이킬 수 없는>의 모니카 벨루치

세상에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청명한 하늘에 펼쳐진 뭉게구름, 잔잔한 호수에 비친 숲의 일렁임, 대나무숲의 가지와 잎새를 스쳐가는 바람소리, 고흐 그림의 강렬한 색채, 로댕의 조각에 불끈 솟아 있는 근육 같은 것은 인간의 감각기관이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미적 대상이다. 이 여인, 모니카 벨루치도 그렇다. 그녀의 신체는 그리스 신화가 숨쉬던 시절 존재했던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주조된 듯하다. 목탄으로 그린 듯한 진한 눈썹, 오뚝한 콧날에서 도톰한 입술로 이어지는 명료한 윤곽, 실크처럼 반짝이며 물결치는 풍성한 검은 머리, 여체의 곡선이 만들어내는 온갖 신비와 비밀을 집약시킨 대리석 조각 같은 몸매, 벨루치가 모델로서 경력을 시작했던 것은 당연하다. 그녀를 그리고, 그녀를 사진에 담는 것은 거기 이미 존재하는 절대적인 관능의 선을 포착하는 일일 따름이다(<말레나>가 상영됐던 베를린영화제에 취재갔던 한 사진기자는 그녀가 나타나자 자신의 손이 신들린 듯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눈부신 외모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우가 됐지만 사실 벨루치는 아직 모델에 가까워 보인다. 사람들은 여전히 “<라빠르망>에 나왔던 그 예쁜 여자 있잖아”라고 말하거나 “이탈리아 글래머”라고 부르길 즐긴다. 이건 <말레나>에서 묘사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처럼 완벽한 여자라면 평범한 인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 거라는 선입견이 배우로서의 벨루치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브루스 윌리스와 공연한 <태양의 눈물>과 <매트릭스> 연작에 캐스팅되면서 최근 벨루치를 발견한 미국 언론은 그녀를 유럽에서 건너온 새로운 섹스심벌로 부각시키고 있다. ‘제2의 소피아 로렌’은 찬사에 가깝지만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비교하는 기사를 보면 좀 어색하다. 벨루치는 이미 10년 전에 코폴라의 <드라큐라>에 등장하지 않았던가. 그녀가 <돌이킬 수 없는>처럼 도발적인 영화에 목말라했던 것은 이해가 가는 일이다. 벨루치는 이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루는 뱅상이 집에 와서 가스파 노에(감독)가 우리와 함께 포르노를 찍고 싶다고 하기에 거절했다는 말을 했어요. 저는 매우 화를 냈지요. 뭐? 가스파한테 ‘노’라고 했다고. 미쳤어? 내가 얼마나 그와 같이 일해보고 싶었는데, 라고 소리쳤죠. 가스파는 시나리오를 사탕발린 언어가 아닌 뭔가 다른 식으로 상상하길 좋아해요.” <돌이킬 수 없는>에서 벨루치는 현실에서 그런 것처럼 실제 연인인 뱅상 카셀과 친밀한 감정을 나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웃고 떠드는 자연인 벨루치의 모습은 무척 낯설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생생함으로 그려진다. 강간장면에서 등장하는 모델 같은 모습과 상반되는 이런 이미지는 여신 벨루치가 아니라 자연인 벨루치에 주목해달라는 주문처럼 느껴진다. 9분에 걸친 끔찍한 강간장면을 참을 수만 있다면 관객은 벨루치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환희를 맛볼 수 있다. “가스파 노에가 처음으로 현실적인 실제의 여인, 웃고 괴로워하고, 말하고 감정을 지닌 여인, 감동시킬 수도 있고, 파괴시킬 수도 있는 여인, 그런 역을 준 겁니다. 항상 유리를 통해 제 자신을 쳐다보던 제가 그 유리를 깨부순 거죠”라는 벨루치의 말은 사실이다. 그동안 그가 맡은 인물은 대체로 환상의 여인이나 신화의 여인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은 그녀의 천부적 절대미가 아니라 생의 활기가 만드는 상대적 아름다움에 카메라를 들이민 첫 영화이며, 그녀의 타고난 외모가 아니라 노력과 용기와 지혜가 빚어낸 결과에 집중하는 첫 작품일 것이다. 벨루치는 지난해부터 할리우드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태양의 눈물>, <매트릭스> 연작, 멜 깁슨이 연출하는 <더 패션> 등이 줄지어 개봉할 예정이다. 아마 할리우드 역시 그녀의 신체적 자산을 활용하는 데 혈안이 되겠지만, 벨루치는 자신이 걸어갈 길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미는 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생물학적 순간이고, 10년 뒤에는 똑같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돌이킬 수 없는>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파괴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가고 있다”.

누구를 위한 법정인가? MBC <실화극장-죄와 벌>

<실화극장-죄와 벌> MBC 매주 월요일 밤 11시 사건 1. 서울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현장에 출동한 구조대원들은 이미 숨을 거둔 여성과 겁에 질린 채 떨고 있는 네살배기 딸을 발견했다. 이 사건은 화재를 위장한 강도 살인인 것으로 드러났는데, 유일한 목격자인 어린 딸은 진범을 지목할 수 있을까? 사건 2. 인기 정상을 달리던 가수가 숙소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그의 여자친구. 그녀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 한 동물병원에서 마취제를 구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은 한층 커졌다. 그렇다면 인기가수의 팔에 선명한 28개의 주사 자국은 정말 그녀가 한 짓일까? 사건 3.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세 친구가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두 친구는 의식불명 상태인 나머지 한 친구를 운전자로 지목했다. 의식을 찾았으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그는 당시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이번 사고에 책임을 질 운전자는 과연 누구일까? MBC <실화극장-죄와 벌>의 두툼한 사건 파일을 살짝 들춰보기만 해도, 동공이 커지고 온몸이 근질거린다. 솟아오르는 궁금증, 못 말릴 호기심 때문이다.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으나 끝내 미궁에 빠져버린 사건들,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었다가 극적인 반전을 거쳐 가까스로 의혹을 벗은 사건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논픽션’의 이름으로 방영되니 사건의 내막과 재판부의 결론이 더욱 궁금해진다. 국내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는 <실화극장-죄와 벌>은 실제 자료나 피해자 혹은 피의자의 증언으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주요 무대는 가상의 법정. 변호사와 검사의 치열한 공방이 펼쳐지는 사이, 배우들이 당시 상황을 ‘재연’해 보여준다. 어느 한쪽을 편들기 어려울 정도로 팽팽한 검사와 변호사간의 줄다리기, 그리고 극적인 사건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는 재연극이 <실화극장-죄와 벌>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큰 축인 셈이다. 그러므로 <실화극장-죄와 벌>을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미스터리다큐멘터리 범주에 묶는 것은 무리일 듯싶다. 실험과 자료, 증언을 통해 미궁에 빠진 사건이나 호도된 진실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바람직한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은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사건들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해 다시금 법정에서 진의를 밝히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실화극장-죄와 벌>은 영화 처럼 의혹에 휩싸인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건들을 가상의 법정으로 불러내어 시청자와 사건 당사자들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해주기 위한 프로그램일까? 현실의 법정에서는 다룰 수 없지만, 진실을 밝힘으로써 다시는 억울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작진은 누가 보아도 진실이 궁금할 정도로 미묘한 사건들만을 택해 소재로 삼으면서, 정작 사건의 진실은 말하지 않는다. 경찰 조서와 재판 기록을 토대로 사건의 전말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사건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고, 시청자들의 궁금증과 피해자의 억울함은 여전하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실화극장-죄와 벌>은 제목 그대로 ‘실화’에 기초하기 때문에 막연한 심증만으로 재판부의 결정을 부인하거나 어느 한쪽의 편을 들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제작진이 사건을 독자적으로 조사해 제3의 의견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려 한다면, 굳이 ‘극장’의 형식을 빌려야 할 까닭이 없다. 결국 <실화극장-죄와 벌>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민사, 형사사건들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데 그치고 마는 것은 프로그램의 ‘태생적 한계’인 셈이다. 차라리 ‘허구’를 내세워 사건을 재구성하고 사건 당사자들로부터 쏟아지는 갖가지 비난과 항의를 피해갔던들 방송을 지켜보는 심정이 이처럼 허탈하지는 않을 것 같다. <실화극장-죄와 벌>의 법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냥 호기심으로, 막연한 궁금증 때문에 방송을 지켜보기엔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사건들이 너무나 끔찍하고 선정적이다. 유괴와 성폭행, 살인과 같이 시청자는 물론 사건 당사자들이 다시금 상기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을 법정으로 불러내려면 그에 합당한 이유와 목적이 있어야 한다. 제작진이 프로그램을 만든 의도가 무엇인지, 그것이 정말 알고 싶다. 이미경/ <스카이라이프> 기자 friendlee@hani.co.kr

온ㆍ오프라인에 장국영(張國榮) 추모 물결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는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죽을때지"(영화 <아비정전> 중) 영화배우 장궈룽(張國榮.46)의 자살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온ㆍ오프라인에서는 "충격스럽다"는 반응 속에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그는 "마음이 피곤해 세상을 사랑할 마음이 없다"(感情所困無心戀愛世)"라는 글을 유서에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장국영은 80년대 후반 국내에서 불었던 '홍콩느와르' 열풍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 <영웅본색>, <천녀유혼>, <백발마녀전>을 비롯해 <아비정전>, <동사서독>, <종횡사해>, <패왕별희> 등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당시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모 초콜릿 CF에도 출연하며 청소년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했다. 최근 한 네티즌 설문에서는 왕쭈셴(王祖賢), 저우룬파(周潤發)와 함께 '다시 보고싶은 80년대 홍콩스타'로 뽑히기도 했다. 장궈룽의 국내 팬페이지인 '12956'(www.12956.com)과 중국영화배우 관련 사이트 '신루의 차이나스타'(chinast.com.ne.kr)에는 그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지 12시간만인 2일 오전 10시까지 200여건의 글들이 그의 명복을 빌었다. '명보'라는 이름의 네티즌은 "손이 떨려서 키보드 자판이 눌러지지 않는다"며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 믿고 싶지 않다"고 슬퍼했다. '(사망 소식이) 만우절 농담인 줄 알았다"는 네티즌 'dmgk3'는 "중학교 때 장국영 사진으로 도배된 책받침을 가지고 다니던 기억이 난다"며 "천국에서 더이상 외롭지 않고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오프라인에서도 그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은 화제가 되고 있다. "출근길 라디오에서 사망소식을 듣고 울음을 터뜨렸다"는 회사원 황희경(26.여)씨는 "사춘기 때 왕자님 같은 존재였던 그의 죽음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며 "퇴근 후 비디오로 영화 <아비정전>을 보며 그와의 추억을 되뇌이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홍콩에 헌화하러 가자", "국내에 분향소를 설치하자"는 등 오프라인에서 그의 죽음을 기리자는 의견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서울=연합뉴스)

<오! 해피데이> 기자시사회 성황

4월 18일 개봉예정인 장나라, 박정철 주연의 영화 <오!해피데이>가 4월 1일 오후 2시 종로에 위치한 서울극장에서 첫 기자시사회를 가졌다. 이날 열린 시사회에는 영화의 주연배우 및 국내외 기자와 영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영화상영이 끝난 후 진행된 기자회견에는 윤학열 감독과 영화의 주조연인 장나라, 박정철, 김수미, 장항선, 김해숙 등이 참석해 영화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질문 : 영화에 대한 짧은 소견 한 마디씩? 윤학열 감독 : 첫 작품이니만큼 더욱 발전하는 모습 기대해 주시기 바란다. 질문 : 배우들 소감 한마디? 김수미 : 윤학열 감독이 들꽃 한 다발과 자필로 쓴 편지로 출연을 부탁했다. 그것에 감동해 출연했다. 우울한 시대에 따뜻하게 웃을 수 있는 작품으로 탄생해서 정말 다행이다. 박정철 : 훌륭하신 선배님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영광이다. 장나라 : 모자란 점도 많지만 너그러이 봐주시길 바란다. 장항선 : 이 작품은 오미자처럼 여러가지 맛을 낼 수 있는 작품이다. 찍을 때도 행복했지만 오늘 영화를 보면서도 행복했다. 김해숙 : 사실 찍으면서 이렇게 감동적일 줄은 몰랐다.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얘기다. 너무 재미있게 찍었고 이 영화로 신인상을 수상하고 싶을 만큼 기대가 크다. 질문 :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 한 말씀씩? 박정철 :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기존에 출연했던 역할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촬영이 시작되면서 변신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이 영화 전에 내가 성형 ‘전’의 상태였다면, 이 영화 출연 후 나는 성형 ‘후’의 모습이다. 장나라 : ‘공희지’는 발랄하면서 엽기적이지만 ‘순수’한 사람이다. 남들보다 조금 더 적극적이라고 할까? 많은 선배님들과 이런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 김해숙 : ‘공희지’가 악착같은 건 엄마의 영향이 크다. 질문 : 장나라 씨는 첫 번째 영화 출연인데 영화에 대한 자평은? 장나라 : 정말 열심히 촬영한 영화이다. 추웠던 것말고는 아주 즐겁게 촬영했다. 한강에서 촬영할 때는 뼈에 바람이 들어갈 정도로 추웠다. 질문 : 감독님께 묻는다. 이 영화가 코믹멜로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다른 점이 있다면? 윤학열 : 나는 이 영화를 남녀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으로 그리고 싶었다.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가족애가 살아있는 영화로 봐 주었으면 좋겠다. 질문 : 엔딩을 보면 뮤지컬 적인 요소가 많다. 별다른 이유라도? 윤학열 : 짧은 엔딩이지만 15회나 촬영하면서 다듬었다. 장차 나의 최종적인 목표는 뮤지컬 코미디를 찍는 것이다. <물랑루즈>나 <시카고>를 뛰어 넘는 한국형 뮤지컬을 만들 것이다. 질문 : 배우들이 추천하고 싶은 장면은? 장나라 : 엄마와의 격투 씬과 김수미 선생님이 욕쟁이 할머니로 출연하신 장면을 추천하고 싶다. 박정철 : 장나라 씨에게 노래불러 주는 장면을 추천하고 싶다.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면서 싫은 표정을 짓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재밌었다. 질문 : 박정철 씨와 장나라 씨는 이제까지 함께 호흡을 맞춘 연기자 중에서 누가 가장 편했나? 박정철, 장나라 : 이제까지 함께 한 연기자 중에서 우리 서로가 가장 편했다. 서로 애교가 많은 편이어서 너무 즐거웠다. <오! 해피데이>는 올 4월 18일 개봉한다. 인터넷 씨네21 cine21@news.hani.co.kr

인터넷에 공개된 <시카고>의 제작 과정 다큐멘터리

네트 속의 서플 DVD라는 매체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 혹자는 고화질과 다채널 입체음향을 꼽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서플먼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할리우드가 DVD를 세상에 선보이면서 비장의 무기로 선택한 것도, 바로 본편 영화보다 재미있는 서플먼트였다. 비디오 시장을 위협할 정도로 인터넷을 통한 영화파일의 공유가 확산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DVD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차별적인 요소로 서플먼트가 꼭 필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렇게 해서 DVD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어버린 서플먼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주요 배우나 제작진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제작과정 다큐멘터리다. 항상 편집과정을 통해 정제된 배우들의 연기 장면만 볼 수 있었던 관객에게, 영화의 전반적인 제작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들을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 보여주는 제작 다큐멘터리는 아주 매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도 그런 제작과정 다큐멘터리들은 존재해왔다. 할리우드영화들의 경우, 제작과정 다큐멘터리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 CATV 영화채널이나 다큐멘터리 채널을 통해 방영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홍보차원에서 영화의 개봉을 즈음한 시기에만 방송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막상 보고 싶어도 시간을 못 맞춰 보지 못하는 경우나 더이상 방영되지 않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가 LD가 시장에 출시되면서 남아 있는 저장공간의 활용과 소비자의 구매욕구 자극을 위해 서플먼트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이미 만들어져 있던 예고편과 제작과정 다큐멘터리 등이 서플먼트를 채우게 된 것이었다. 그 이후 제작과정 다큐멘터리는 TV에서 방영될 때를 놓치면, LD를 구매해야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LD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는 DVD가 선보인 이후에도, 그런 인식은 변하지 않아왔다. 뮤지컬 <시카고> 공식 홈페이지 힙합 뮤지션 출신에서 완벽한 재즈 뮤지컬 배우로 변신에 성공한 퀸 라피타. 르네 젤위거에게 연기지도를 하고 있는 롭 마셜 감독 그런데 얼마 전 한 할리우드영화의 제작과정 다큐멘터리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올 아카데미상에서 13개 부분 후보에 올라 최다부문 수상이 확실시 되던 <시카고>의 대한 것이라 네티즌의 관심은 일시에 집중되었다. 대표적인 온라인 상영관인 ‘iFilm’을 통해 무료로 공개된 30분짜리 제작과정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1920년대 후반을 무대로 한 뮤지컬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뮤지컬이라는 형식과 영화라는 형식을 결합시키기 위한 제작진과 배우들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그 핵심적인 내용. 그중에서도 영화 속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들을 스토리 라인과 연계시키기 위해 사용한 기법에 대한 감독과 제작자의 설명이 초반부를 장식한다. 록시(르네 젤위거)가 무대 위의 벨마(케서린 제타 존스)를 보고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는 장면, 무대와 실내를 한 공간에 배치해 록시와 아모스가 언쟁을 벌이는 장면 등이 그 예로 사용된다. 그와 함께 캐서린 제타 존스, 르네 젤위거 그리고 리처드 기어 등 주요 출연진들을 이 영화에서 요구하는 배우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과정도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대스타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열었다는 놀랄 만한 증언(?)에서부터 시작해, 주로 두 여배우가 어떻게 영화배우에서 뮤지컬 배우로 변신해갔는지에 대한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것.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배우들이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모습이다. 별다른 가감없는 그들의 연습현장을 보는 것은, <한밤의 TV 연예>에서 우리나라 배우들의 연습현장을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더불어 힙합가수인 퀸 라티파가 마마 역을 연기하며 재즈풍의 뮤지컬곡들을 훌륭히 소화해내는 장면들을 보여주며, 제작자와 작곡가가 ‘우리 스스로도 놀라웠다’라는 평가를 내리는 부분도 아주 흥미롭다. 문제는 이런 제작과정 다큐멘터리를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시도가 결국 점차 시장규모가 확대되어가고 있는 DVD 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주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과 DVD 제작·유통사들이 그런 입장이다. 물론 이에 대한 인터넷 상영관들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iFilm의 경영진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은 극장 개봉 영화와 관련된 영상자료로 인터넷에 공개된 것들 중에서 가장 상영시간이 길고 내용이 충실하다. 이런 종류의 영상물들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는 것은 배급사나 인터넷 상영관 그리고 관객 모두를 위해 아주 바람직하다”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던 것이다. 물론 관객의 입장에서도 유료 영화채널이나 DVD가 아닌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이런 제작과정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시카고>의 이런 시도가 향후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지는 당분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도가 수익 창출에 궁극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최종적인 분석이 완료돼야만 다른 영화들에의 적용여부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관객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전적으로 제작·배급사의 경제논리에 의해 결정될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만약 부정적인 평가로 인해 당분간 인터넷에서 이번 경우와 비슷한 제작과정 다큐멘터리를 못 보더라도, 그리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모든 콘텐츠가 집중되고 있는 것이 대세라, 언젠가는 DVD보다 더 풍부한 서플먼트가 인터넷 상영관을 통해 제공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영화 <시카고> 공식 홈페이지 : 111 http://www.miramax.com/chicago iFilm <시카고> 제작 과정 다큐멘터리 페이지 : 111 http://www.ifilm.com/filmdetail?ifilmid=2451564 뮤지컬 <시카고> 공식 홈페이지 : 111 http://www.chicagothemusical.com

[인터뷰] <질투는 나의 힘>의 문성근

"신인배우가 된 것 같네요. 긴장도 되고 마음도 졸이고…" 3일 오후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의 시사회가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난 문성근(49)은 "본업에 복귀해 기쁘다"며 소감을 밝혔다. <질투는 나의 힘>은 문씨가 지난해 5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자를 그만두며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인 지난해 3월에 촬영을 마친 영화. 같은 남자에게 두번이나 여자를 빼앗기는 남자 원상(박해일)에 관한 이야기로 문성근은 그로부터 두번씩 여자를 빼앗는 문학잡지 편집장 한윤식으로 출연한다. 이날 기자회견은 문씨가 지난달 31일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탈퇴를 선언한 후 처음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 그는 "어느 정도 선에서 이야기 해야할지 고민했다"고 밝히며 조심스럽게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그는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계획대로 현업에 복귀한 것"이라며 "연기나 방송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지만 '통일맞이'을 비롯한 NGO 단체들의 활동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정치에 뛰어들고 싶은 유혹은 없었냐는 질문에는 "정치를 하려면 희생정신도 있어야 되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아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며 "정치인이나 문화예술인이나 역할이 따로 있으니 주특기대로 하는 것이 맞다"고 답했다. 또 출범 40여일이 지난 노무현 정권에 대해 "긴 맥락으로 봤을 때 바람직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하며 "세부적인 사안에 열심히 나서서 생각을 밝히는 것이 주제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씨는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다음은 문성근씨와의 일문일답. -요즘 근황은? =운동 열심히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몸이 많이 안좋아졌다.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공부도 좀 하고 싶은데 책이 잘 읽히지 않는 것 같다. -극중 한윤식이라는 캐릭터는 실제의 이미지와 다른 '구악' 같은 인물이다. =윤식은 '많이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다. 배우에게 큰 재미는 자기와 다른 인물을 표현해내는 것이다. -영화 속 대사가 독특하다. =대본을 중심으로 했지만 정서적으로 내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은 감독에게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술자리에서 핸드폰 번호 물어보는 장면이나 작가의 어려움에 관한 대사는 애드리브다. 현장 상황에 맞춰 (대사를) 잡아낼 때의 쾌감을 즐기는 것 같다. -같이 연기한 박해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연기하는 자세나 내면의 고뇌를 표현하는 방향을 볼 때 발전 가능성이 굉장히 많은 배우다. 그 정도로 진지하고 무게를 갖는 것이 쉽지 않다. 긴장도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더 많이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영화에 출연하는 일이다. 연극에도 관심이 많지만 지난 몇년간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육체적으로 힘들어할 것 같다. -방송 출연도 계획중인가. =「그것이 알고싶다」를 마지막으로 활동중단을 선언했으니 본업 복귀도 같은 프로그램으로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영화 <진술>의 진행상황을 보고 결정하겠다. -지난 연말 노후보의 대선 승리 당시 소감은 어땠나. =뽑아준 국민에게 마냥 감사할 뿐이었다. 당시 노후보는 대단히 소수정파였다. 나 같은 사람들도 도와야 할 정도로.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지구를 지켜라>의 '강사장' 역 캐스팅을 거절한 이유는 선거운동 때문인가? =영화의 대본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고 감독도 너무 좋았지만 영화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아 출연을 포기했다. -감독이나 제작자로 나설 계획은 있나. =한두번 정도 연출 생각을 해본 적은 있지만 지금은 접었다. 숫자 감각이 느려서 제작자는 못할 것 같다. -조선ㆍ중앙ㆍ동아일보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다면 응할 것인가. =조선(일보)은 하지 않겠다.

제75회 아카데미 영화상 The 75th Annual Academy Award [2]

"미스터 부시 정신차리시오!" 부시 대통령에게 강도 높은 비난을 한 마이클 무어. 캐서린 제타 존스(왼쪽)는 만삭의 몸에도 퀸 라티파와 <시카고>의 주제가를 불렀다. 스코시즈 역시 미라맥스의 열의에 밀려 각종 토크쇼 홍보까지 참여했다. 작품상 후보 중 유일하게 미라맥스와 연고가 없는 <피아니스트>의 선전도 ‘무조건 따놓은 당상이니 인정하라’는 식의 귄위적인 홍보전이 저항을 자극했음을 짐작게 한다. <갱스 오브 뉴욕>에 비할 수는 없지만 <디 아워스>의 실망도 컸다. 문학적 배경, 유려한 형식미, 명품 연기 앙상블로 제작단계부터 확실한 오스카 카드로 불렸던 <디 아워스>는, 영화가 지닌 미덕의 1/3 미만인 니콜 키드먼의 연기를 공인받는 트로피 한개로 만족해야 했다. 또 다른 통쾌한 반란은 시상식 현장 공연에서 제외된 에미넴의 에 돌아간 주제가상. 놀라움을 숨기지 못한 시상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게서 트로피를 받아든 공동 작곡자 루이스 레스토는 의 배경 디트로이트 스포츠팀 티셔츠에 바람막이 재킷을 걸치고 아카데미 무대에 겅중겅중 뛰어올라가 오스카 패션의 신경지를 열기도 했다. <그녀에게>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역시 각본상을 수상해 37년 만에 비영어영화의 시나리오가 각본상을 타는 쾌거를 올렸다. 반면 드림웍스와 디즈니의 후보작들을 가볍게 제압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장편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은 이변이라기보다 재패니메이션이 이미 미국 시장에서 확보한 대중적 입지를 추인하는 절차로 보였다. 눈물과 고함의 반전 메시지 어느 해보다 엄격하게 시행된 45초의 수상소감 시간제한은 가족과 매니저에 대한 통상적 치하부터 세계 평화까지 언급해야 했던 제75회 오스카 수상자들에겐 턱없이 부족했다. 올해 오스카의 승자들은 감사와 기도, 눈물을 바칠 대상이 유난히 많았다. 오랜 인고의 세월을 거친 배우가 쏟은 감격의 눈물은 지금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고통에 대한 무력감이 자아내는 눈물과 섞여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댑테이션>의 난초 도둑 역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크리스 쿠퍼는 힘든 시간을 같이 견뎌온 아내를 향한 울먹이는 감사 끝에 “세상에 현존하는 아픔을 돌이키며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기원한다”고 덧붙여 오스카 시상식의 평화 청원 어록의 첫줄을 새겼다. 다음 주자는 <프리다>의 주제가 공연을 소개한 <이 투 마마>의 신예 게일 가르시아 베르날. “프리다 칼로가 살아 있었더라면 전쟁을 반대하는 우리 편에 있었을 겁니다”라는 그의 말에 프리다로 분했던 객석의 샐마 헤이엑은 환호했다. 반전 발언 수위에 대한 식장의 서스펜스는 장편다큐멘터리 시상자 다이앤 레인이 기쁨을 감추지 않은 높은 음성으로 <볼링 포 콜럼바인>의 마이클 무어를 수상자로 호명하는 순간 폭발했다. 기록영화 작가들의 연대를 표명하기 위해 동료 후보들을 몰고 무대에 오른 마이클 무어는 의례적 치사는 내동댕이치고 “논픽션을 좋아하는 우리는 허구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허구적인 이유로 우리를 전장으로 내모는 허구적인 대통령과 함께 살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아시오 미스터 부시!”라고 분노를 난사했다. 무어의 고발이 길어지면서 최초의 환호는 야유소리에 잡아먹혔지만, 부정적인 반응은 무어의 매너에 관한 것이었지 전쟁에 우호적인 정서의 반영은 아니었다는 것이 중평. 반면 곧이어 단편다큐멘터리상을 탄 <트윈 타워즈>의 감독들은 9·11 사태로 희생된 경찰, 소방관에게 영화를 바치는 심플한 소감으로 대조를 이뤘다. 연출자의 사전 지시를 어기고 소감을 메모지에 적어온 <그녀에게>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오스카를 평화와 국제 법질서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 모든 이에게 바쳤다. 그러나 할리우드와 언론의 심기를 가장 편안하게 어루만진 ‘적절한’ 발언은 파티의 꽃인 남녀 주연상 수상자에게서 나왔다. 울먹이며 무대에 오른 니콜 키드먼은 “이 상황에서 오스카에 참석하는 이유는, 예술은 중요하기 때문이고 우리 일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며 지켜져야 할 전통이라고 믿어서입니다”라고 말해 참석자 전원의 입장을 대변했다. 예기치 못한 수상으로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던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피아니스트>를 찍으며 전시의 슬픔과 비인간화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내겐 쿠웨이트로 파병된 친구도 있습니다. 알라이건 하나님이건 당신의 신이 여러분을 지켜보기를,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길 바랍니다”라고 45초를 훌쩍 넘긴 소감을 마쳤다. 격정 속에서도 두 사람은 예술의 중요성을 언급해 할리우드의 독립을 강조하고, 보편적인 평화에 대한 기원으로 세계적인 반전 정서에 호응하며, 파병된 미국 군인들의 무사 귀환까지 염려하는 황금 비율의 애드리브에 성공해 오스카 연기상 트로피가 보증하는 자질을 즉석 입증했다. 제75회 아카데미는 2001년에 이어 주요 부문상을 고루 배분하고 주제가상, 각본상 등에서 예상 밖 승자를 내놓음으로써, 오스카가 일정한 미학적 기준을 다짐하는 영화상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상에 따라 대중과 함께 움직이는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취향을 반영하는 영화상임을 확인시켰다. 한편 시상내역보다 더한 관심을 끌었던 영화 밖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올해 시상식은- 할리우드영화에 흔한 평화애호 수사(修辭) 수준을 크게 넘기지 않았다 해도- 존중할 만한 용기와 균형감각을 보여주었다. “영화배우란 각양각색입니다. 키가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고, 마를 수도 있고 깡말랐을 수도 있고. 민주당 지지자일 수도 있고, (장내를 돌아보다 대를 이룰 구절이 궁하다는 표정으로) 깡말랐을 수도 있고…”라는 스티브 마틴의 조크는, 박스오피스를 먹여살리는 미국민 다수가 기왕 시작된 전쟁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시기에도 전쟁에 부정적인 할리우드의 지배적 정서를 드러냈다. “워싱턴이 못생긴 사람들의 할리우드라면 할리우드는 단순한 인간들의 워싱턴이다”라고 불평했던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3월23일 밤 다시금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른다. 누가 강자가 약자를 일사천리로 짓밟는 영화를 보러오겠는가? 할리우드의 예술가와 엔터테이너들의 본능은 그 답을 알고 있는 것이다.김혜리 vermeer@hani.co.kr 사회자 맡은 스티브 마틴, 분전하다 “분위기 정말 화기애매하네요” 좌중을 고루 흡족하게 만드는 적당한 조크를 구사하기에 이보다 더 힘든 상황이 있을까. 올해 두 번째로 오스카 사회를 맡은 스티브 마틴은 동정받아 마땅했다. 에 따르면 마틴과 시상식 작가팀은 “사담 후세인, 시상식을 보고 있다면 작품상 발표 직전에 당신 TV가 고장났으면 좋겠네요”라는 농담도 구상했다가 폐기했다고. 지지난해 시상식에서 건조하면서도 쇼 비즈니스계의 자화상을 짚는 자조적인 유머로 호감을 샀던 스티브 마틴은 올해에도 같은 전략을 썼다. 결과는 합격점. 그러나 폭소의 크기가 예년만 못했던 것은 그의 탓이 아니라 마음 편히 박장대소할 수 없는 현실 탓이었다. “작가, 감독, 배우. 이 안에서 식량이 떨어지면 잡아먹을 순서입니다.” “니콜 키드먼은 지금까지 모든 출연작에 가짜 코를 달고 연기했죠. <디 아워스>만 빼고.” “<시카고>에서 호연한 리처드 기어가 후보지명도 못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웰컴 투 마이 월드, 리처드!” (한해간 작고한 영화인의 얼굴이 소개된 다음) “잠시 뒤에는 죽은 줄만 알았지만 실은 죽지 않은 분들의 몽타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할리 베리를 소개하며) “최고로 섹시한 여인들에 대한 오스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무너뜨린 주인공입니다.” (마이클 무어가 부시를 비난하고 퇴장한 뒤) “무대 뒤 풍경이 화기애애합니다. 수송요원들이 무어가 리무진 트렁크에 들어가도록 돕는 광경을 여러분도 보셨어야 했는데….”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지구를 지켜라!> & 백윤식 [3]

<지구를 지켜라!>를 절찬하는 이유 하나는 바로 그것이다. 데뷔작이라는 것. 요즘 한국영화의 신인감독들은 너무 물렀다. 좋은 영화를 만들고는 있지만 너무 쉽게 타협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세련되고, 매끄럽고, 원숙하고, 장르적 규칙을 적절하게 수용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은 나중에도 할 수 있다. 잘 다듬어진 데뷔작을 보는 일은 나름대로 좋은 일이지만, 희열을 주지는 못한다. 나는 지금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허름한 코아아트홀에서, 전혀 낯선 이름의 홍상수 감독이 만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고 나오자, 유난히 바람이 몸을 휘감고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세상이 조금 더 회색으로 보였다. <지구를 지켜라!>는 그런 점에서 탁월하다. <지구를 지켜라!>를 보고 나오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기분이 묘했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엉킨 느낌은 이상하게 즐거웠다. <지구를 지켜라!>는 잡동사니다. <지구를 지켜라!>는 혼란스럽다. <지구를 지켜라!>는 황당하다. 그게 바로 <지구를 지켜라!>의 매력이고, 위대함이다. 거장의 걸작이라고 절대 말할 수는 없지만, 데뷔작으로서 <지구를 지켜라!>는 최고의 영화다. <지구를 지켜라!>를 지배하는 것은, 비주류의 B급 감성이다. 우디 앨런을 좋아하고, 스탠리 큐브릭의 를 차용하고 있지만, 장준환의 영화에서 이를 바득바득 갈며 웅크리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B급 정서다. <지구를 지켜라!>는 적당히, 라는 단어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 끝까지 모든 것을 몰고 나간다. 논리? 일관성? 세련됨? 은근히 그 모든 것을 지향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드러나는 것은 광기와 혼돈이다. 누구에게도 말해줄 수 없는 마지막 반전을 보고 나면, 혼란스러워진다. 씁쓸하면서도, 멋지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B급영화의 낭떠러지로 돌진하는 정서라고 부르고 싶다. 미이케 다카시의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형사와 중국계 갱의 지독한 전쟁을 그리고 있다. 형사는 갱의 유일한 동생을 죽이고, 갱은 형사의 가족을 모두 죽인다. 그들은 이제 마지막 싸움을 시작한다. 권총에 기관총, 로켓포까지 동원하며 싸우던 그들은 거의 죽음 직전이다. 총상을 입고, 팔이 떨어져나갔다. 노려보던 그들은 으…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기를 모은다. 그리고 손에서, 거대한 광선을 발사한다. 마치 <드래곤 볼>의 손오공이 원기옥을 모아 발사하듯이. 그 광선이 충돌하고, 일본 열도는 거대한 폭발에 휩싸인다. 이럴 수가! 이전까지 지극히 현실적이었던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너무나도 황당한 결말을, 너무나도 태연하게 그려낸다. 그런데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아니 너무 이상해서 오히려 현실적이다. 또 있다. 더 황당한 좀비영화 <와일드 제로>에서는 기타를 메고, 칼을 휘두르며 오토바이를 타던 주인공이 건물 옥상에 올라간다. 거기에는 <인디펜던스 데이>에 나오는 것 같은 거대한 UFO가 있다. 머리 위를 날아간다. 주인공은 칼을 빼 머리 위로 높이 쳐들어 UFO에 꽂아넣는다. 그러자 그 칼에 UFO가 두동강이 난다. 그 황당함, 너무나도 어이없어서, 너무나도 멋진 그 결말. 그런 게 바로 B급영화의 정신이다. 알렉스 콕스가 <리포맨>에서 보여주듯, 자동차 트렁크에 들어 있는 빛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아도 좋다. 그 무엇 때문에 벌어지는 지독한 혼돈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리포맨>은 즐겁다. <고무인간의 최후>도 마찬가지다. 결코 하나의 논리나 주의만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혼돈의 세계가, B급영화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고 그것이 바로 힘이다. <지구를 지켜라!>의 폭력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 역시 그렇다. <지구를 지켜라!>의 폭력의 강도는 꽤 센 편이다. 촬영하기에 가장 힘든 장면이었다고 말하는 연구소에서의 격투장면도 꽤 잔인하다. 고문장면은 말할 것도 없고, 병구의 작업실 표본병에 들어 있는 손과 발, 이상한 장기들도 끔찍하다. 폭력의 희생자인 병구는, 다시 폭력으로 모든 것을 되돌리려 한다. 납치하고 살인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병구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지구를 지켜라!>는 혼돈으로 가득 찬, 종횡무진의 영화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법, 촬영과 미술, 세트 등은 무척 잘 다듬어져 있다. 그것은 장준환의 연출력 때문이지만, 또한 B급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제작비 덕분이기도 하다. <지구를 지켜라!> 같은 영화가 주류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 영화계는 정말 재미있고 다이내믹한 곳이다. 신인의 ‘괴상한’ 데뷔작에 수십억원의 투자를 감행하는 제작자의 용기와 결단력에 무조건적인 찬사를 보낸다.

<지구를 지켜라!> & 백윤식 [2]

오래 전에 한 선배가 있었다. 시도 쓰고, 동화도 쓰던 그 선배. 엄청나게 가난한 탓에 중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채 막노동판을 떠돌았고, 글을 쓰면서도 돈이 떨어지면 여전히 막노동을 하곤 했다. 개인적으로 아주 친하지는 않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자주 보고 집에 놀러가기도 했다. 한동안 그 선배의 얼굴이 보이지 않다가 아프다는 말을 들었다. 병원에 입원했고, 정신병원이란 말을 들었다. 정신분열증이었다. 얼마 뒤 조금 호전되어 퇴원했다는 말을 듣고는 친구들과 함께 집을 찾았다. 언덕을 올라 집으로 향한 때는, 날선 바람이 불던 연말이었다. 선배의 얼굴은 약간 수척했지만, 약간은 경박하게 느껴지던, 그 맑은 웃음만은 여전했다. 그런데 조금 달랐다. 선배는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엊그제는 지구의 미래가 걱정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이 지구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를 고민하며 밤새 뒤척였다. 선배의 눈에는 밝은 빛이 서려 있었다. 그건 일종의 믿음이었다. 왜 그랬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그 순간 선배는 정말로 지구의 운명을 걸머지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진지하게, 그 선배의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었다. 그렇게 선배를 만나고 얼마 뒤, 다시 소식을 들었다. 중대 부속병원으로 갔다. 검은 테로 둘러싸인 사진 속에서 여전히 선배는 웃고 있었다. 자살이라고, 한강에서 떠내려온 시신을 발견했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뒤로, ‘세계’를 생각할 때면 가끔 그 선배가 떠오른다. 약자들이 고통받는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자괴감에 빠질 때 간혹 생각이 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로 바뀌고 이러다가 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인간이야, 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나의 약함 때문에 바닥으로 빨려들어갈 때, 나는 그 선배를 생각한다. 나도 조금씩 미쳐가는 것이 아닐까, 아니 미치는 것이 오히려 편하지나 않을까. 선배는 그 거대한 사유 속으로 어떻게 걸어 들어갔을까. 걸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약함을 생각했을까, 자신의 임무를 생각했을까. <지구를 지켜라!>를 보다가 문득 그 선배가 겹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니 내 모습이었던가? 트럭을 운전하면서 자신의 뺨을 때리는 병구를 보면서, 과거를 생각했다. 거대한 세상의 벽과 폭력과 마주쳤을 때, 무릎을 꿇었을 때 스스로를 비웃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는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던 시간을 다시 만났다. 병구라는 인물은,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아주 이상한 캐릭터다. 그의 내면에는 이성과 광기가,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한다. 지극히 논리적으로 선택된 희생자들을, 완전히 비현실적인 이유로 고문을 하고 죽여버린다. 그는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강 사장이 유일한 치료약이라고 말한 벤젠을, 어머니에게 먹이려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래, 나 외계인 맞아’라고 외치는 강 사장의 교활한 속임수를 한눈에 꿰뚫어볼 수 있을 만큼 병구는 영리하다. 아니 그 많은 사람을 납치하여 죽여버리고도 추적을 당하지 않았을 만큼 병구는 영리하다. 그러나 병구는 미쳤다. <지구를 지켜라!>는 그 모두가 옳다고 말한다. 그는 미쳤지만 현실적이고, 과대망상이지만 가장 작은 부분에 상처받는다. 웃기는, 그러나 그뒤에는 지독한 현실이 <지구를 지켜라!>의 모든 캐릭터 역시 그렇다. 병구의 연인인 순이는 동춘 서커스단에서 외줄을 타는 여인이다. 태어날 때부터 서커스단에 있었던 그녀는, 병구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서커스단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에 속하고 평생을 살아왔던 순이는, 지구를 지킨다는 병구의 말에 태연하게 동의한다. 강 사장의 말에 속아 떠나간 것도, 단지 병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병구와 순이는 우리의 비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고, 영화가 막바지로 달려가면서 강 사장 역시 그 비현실로 들어가게 된다. <지구를 지켜라!>는 비현실적이지만,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다. <지구를 지켜라!>는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이다. 누구나 알겠지만, 데뷔작은 인생에서 단 한번이다. 걸작은 평생 몇번이나 만들 수 있지만, 데뷔작은 두번 다시 만들 수 없다. 요즘은 DVD 덕으로 편집을 다시 하거나 해서 데뷔작을 뜯어고칠 수는 있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의 교훈처럼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영화라는 세계에 뛰어들어, 대중을 상대로 첫 승부를 거는 데뷔작에는 특별한 향취가 있다. 피터 잭슨의 <고무인간의 최후>나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 같은 영화들에는, 그 어떤 걸작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원초적인 생명력이 있다. 걸작은 말 그대로 걸작이다. 걸작들에 견주어볼 때 <고무인간의 최후>나 <이블 데드>는 분명하게 못 미친다. 하지만 그 작품들에는, 기존의 논리와 감각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패기와 도전 정신이 있다. 데뷔작에는 조금의 어설픔과 혼란이 용인된다. 때로는 조잡함이 장점이 되기도 한다. 데뷔작에는 모름지기 ‘breakthrough’라고 말할 수 있는, 기존의 상식과 한계를 돌파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제5회 서울여성영화제 가이드 [3]

<안느 트리스테>(Anne Trister) 감독 레아 풀/ 캐나다/ 1986년/ 103분/ 감독 특별전 프로그래머 추천사 _ 이미지로 말한다. 어머니와의 유대를 통한 새로운 여성의 역사 쓰기 침대에 모로 누워 훌쩍이는 여자의 등. 모래 바람이 이는 황량한 사막. 침묵하는 이 두 가지 이미지가 <안느 트리스테>를 열고 닫는다. 다시 침대에서 눈물을 삼키기까지, 다시 사막을 보기까지, 안느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아버지의 급작스런 죽음에 충격을 받고 스위스에서 캐나다로 떠나온 안느는 우연히 아동심리학자인 알릭스를 만나 함께 지내게 된다. 지혜롭고 여유로운 알릭스에게 의지하게 된 안느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느낀다. 알릭스는 ‘그런 식의 사랑’은 줄 수 없다면서도 안느를 변함없이 아끼고 보살핀다. 안느 또한 “날 사랑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며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충직한 남자친구를 떠나 보내고, 알릭스의 남자친구에게 모욕을 당하고, 오래 공들인 설치미술 작품이 철거당하지만, 그렇게 많은 소중한 것들과 이별을 하지만, 안느의 곁엔 알릭스가 남았고, 안느는 비로소 홀로 서게 된다. 심리적, 물리적 망명의 길에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중년 여인의 성장기 <안느 트리스테>는 단순히 늦깎이 레즈비언의 ‘커밍아웃’ 스토리가 아니다. 안느의 혼란과 고민 속에 성 정체성이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탐문은 ‘완료’가 아닌 ‘진행형’ 시제를 취하고 있다. 안느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어딘가를 배회하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게 한다. 알릭스에 대한 안느의 사랑도, 연인을 향한 것이라고 치부하기엔 복잡하고 심오하다. 알릭스는 안느에게도, 알릭스의 고객 사라에게도, 모성에 대한 갈망을 자극하고 또 채워준 존재다. “나는 가족이 없어요. 그래서 모든 일을 망쳐요. 내 엄마가 돼줄래요?” 사라는 이렇게 말했고, 안느는 이렇게 행동했다. 그들 모두에게 이상적인 어머니였던 알릭스가 기꺼이 꾸려간 ‘유사 가족’은, ‘여성 연대’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디 베닝 특별전 <단조로운 삶>/ Flat is Beautiful/ 1998년/ 50분 <쥬디 이야기>/ The Judy Spots/ 1995년/ 15분 <걸 파워>/ Girlpower/ 1992년/ 15분 <소녀 마케팅>/ Aerobidide/ 1999년/ 4분 프로그래머 추천사 _ 이상한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언젠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13살 시골 소녀가 영화를 만드는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말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도래를 환영한 바 있다. 그 예언을 실현해 보이겠다는 듯 사디 베닝이 나타났다. 사디 베닝은 열다섯살에 선물받은 어린이용 홈비디오 카메라로 일기 쓰듯 자신의 삶과 생각들을 기록했다. 비디오아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리라는 야심이나 기대를 품고 시작한 일은, 물론 아니었다. 북미 인디영화계에 ‘픽셀 비전’ 붐을 일으켰던 사디 베닝의 최근작 <단조로운 삶>은 미학적 실험과 초저예산 여성주의 영화제작의 모범이 될 만한 작품. 밀워키 노동계급 가정의 소녀 타일러는 예술에 빠져 사는 아빠와 헤어져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는 엄마와 강퍅하게 살고 있다. 타일러는 커서 멋진 남자가 되는 게 소원인 양성 소녀로, 무료하게 텔레비젼을 보거나 게이인 위층 아저씨와 어울리는 게 낙이다. 종이에 이목구비를 쓱쓱 그려넣은 커다란 가면을 쓴 배우들은 어색하게 과장된 연기로 일관하고, 거친 화소의 흑백화면은 작은 박스처럼 포맷팅돼 답답한 느낌을 주지만, 이 형식적 실험은 영화스토리는 물론 주제와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정상적이라는 것, 아름답다는 것에 ‘절대 기준’이 존재하는 한, 이들- 양성 소녀, 싱글 맘, 게이- 의 일상은 소외와 고독과 좌절과 밀실 공포의 ‘단조로운’ 반복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디 베닝 특별전은 이 밖에도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성찰을 글과 그림과 독백에 실어낸 단편 실험영화 <걸파워>와 5개 주제로 사회와 여성의 관계를 유머러스하게 풍자하는 단편애니메이션 <쥬디 이야기>,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 전략에 대한 비판을 담은 뮤직비디오 <소녀 마케팅> 등으로 사디 베닝의 활동 궤적을 훑고 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태동과 함께 카메라를 잡았던 소녀는 이제 서른살의 여인이 됐고, “하루가 다르게 업데이트되는 테크놀로지에 종속되고 싶지 않다”며 잠시 영화를 떠나 있다. 기이한 아이러니다. <분노를 터뜨려라!: 트라이브 8밴드에 관한 다큐멘터리>(Rise Above: The Tribe 8 Documentary) 감독 트레이스 플레니건/ 미국/ 2002년/ 80분/ 여성영상공동체 프로그래머 추천사 _ 여성 록가수로 살아남기 위해,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 밴드 이야기 “무서워요. 적응이 안 되네요. 그들에게도 도덕 관념이란 게 있는지, 의문이네요.” 남자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입을 모아 말한다. 여자 관객도 크게 즐긴 기색은 아니다. “음악은 정말 형편없어요. 그런데 공연이 흥미롭긴 하네요.” 여성 동성애자들로 구성된 펑크록 밴드 ‘트라이브 8’의 공연 관람 소감이다. 이들의 공연엔 일정한 레퍼토리가 있다. 우선 멤버 대부분이 토플리스로 무대에 등장한다. 남성용 트렁크 차림의 리드 싱어는 그 속에서 거대한 인조 남성 성기를 꺼내 보인다. 그리고 스트레이트한 남성 관객을 무대로 끌어올려 머리채를 잡고 무릎을 꿇려 그 물건에 대고 오럴섹스를 하게 한다. 사도마조히즘적 성행위를 연상케하는 퍼포먼스가 줄줄이 곁들여진다. 노래 가사와 무대 매너도 이와 다르지 않아, 노골적이고 무례하며 폭력적이다. 보통 상식과 취향을 가진 이들이 불편해하고 불쾌해할 만하다. 여성운동 진영에서도 이들의 퍼포먼스에 대한 저항이 우세하다. 엄연히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과도한 성폭력의 재현”이라는 이유에서다. <분노를 터뜨려라>는 트라이브 8 밴드의 공연에 크게 ‘충격’을 받은 한 여성 영상작가가 “에스트로겐의 노예가 되길 거부한” 그들의 신념을 캐내기 위해 무려 4년 동안 카메라를 돌린 결과물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트라이브 8 밴드의 공연 실황과 이에 대한 반응들, 그리고 멤버 개개인을 따라붙은 밀착 인터뷰로 구성돼 있다. 이들의 신념이 어떤 맥락에서 싹트게 됐는지를 차분히 따져 묻는 것. 그리고 이들의 극단적인 행동들은 여성 뮤지션이 정형화된 성적 이미지로 어필해야 한다는, 그리고 활동 장르의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자, 단지 노동계급의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비정하게 배척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임을 역설한다. “행실이 바른 여자는 역사를 만들 수 없다”는 선언과 극단적 실천에 대한 논쟁을 부추길 만한 작품. 판단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