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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파리] 우울한 11월에는 다큐를 보세요

무더운 여름, 시원한 극장은 한국인의 주요 피서지. 햇볕 짱짱한 여름, 어두침침한 극장은 햇볕에 굶주린 유럽인의 기피 장소 1위이다. 청명한 하늘빛 덕에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변화를 감안하더라도 가을은 한국인에게 일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아침이고 낮이고 가릴 것 없이 어둑어둑한 회색빛 유럽의 가을 하늘은 기나긴 겨울을 예고하는 그야말로 ‘우울함’의 대명사이다. 이렇듯 프랑스의 11월은 바로 겨울맞이를 준비하는 참으로 우울한 시즌임과 동시에 영화 배급이나 실내 문화 행사 진행에 가장 위험부담이 적은 시기이기도 하다(대부분의 유럽 배급업자들은 새 영화를 개봉하는 날, 날씨가 좋을까 대단히 노심초사한다). 이런 ‘꿀꿀한 날씨’의 장점(?)을 적절히 이용해 프랑스에서는 지난 2000년부터 매년 11월을 ‘다큐멘터리의 달’로 지정해 한달 내내 전국 국립·시립 도서관, 문화원, 대학, 작은 극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제, 규모, 장르의 다큐멘터리를 다양한 관객층에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를 가진다. 또 대부분의 다큐멘터리(상영작의 70% 정도)들은 상영 이후 영화작업 참여 스탭이나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관객과 토론의 자리도 마련한다. 이 행사는 전국적으로 1200여개 상영관, 3천여개의 상영, 15만여명의 관객으로 쉽게 무시할 수 없는 프랑스의 11월의 중요한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이 행사의 일환으로 ‘스크린의 다큐멘터리’(Documentaire sur Grand Ecran) 조직과 괴테학회(Goethe-Institute) 공동으로, 11월3일부터 5일 동안 독일 다큐멘터리스트 볼커 코엡의 회고전을 진행했다. 이 행사는 파리를 거처 리옹, 클레르몽 페랑, 투르, 툴루즈 등 프랑스 지방에서도 연이어 한달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언제나 상영 뒤 토론과 만남의 자리가 있다 ‘스크린의 다큐멘터리’의 배급 담당 에마뉘엘 마들린 독일 다큐멘터리스트 볼커 코엡의 회고전을 준비한 단체 ‘스크린의 다큐멘터리’의 에마뉘엘 마들린과 짧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당신이 속해 있는 단체 ‘스크린의 다큐멘터리’와 그곳에서 당신이 맡고 있는 일을 간단히 설명해달라. =우리는 2000년에 ‘다큐멘터리의 달’ 행사가 대대적으로 시작되기 10년 전인 1990년에 조직되었다. 그 당시 프랑스 관객은 텔레비전의 르포와 영화예술로서의 다큐멘터리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가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자는 취지로, 단체 이름이 잘 설명하듯이 극장에서의 다큐멘터리 상영을 주된 목적으로 해 활동을 시작했다. ‘다큐멘터리의 달’이 일년 중 한달 동안 집중적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데 반해 우리는 일년 내내 행사를 치른다. 정기적으로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상영하고, 관객과 피드백을 가질 수 있는 토론의 자리를 마련한다. 또한 다큐멘터리 카탈로그도 제작해 배급의 기반을 서서히 구축해왔다. 현재 우리 단체의 카탈로그에 속해 있는 영화는 230개 정도 된다. 나는 이곳에서 배급을 담당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배급만 담당하고 있는데, 극영화 배급과 특별히 다른 점과 노하우는 무엇인가. =‘다큐멘터리의 달’ 행사와 ‘스크린의 다큐멘터리’ 상영의 공통점이 무엇인 줄 아나. 언제나 영화 상영 뒤 토론과 만남의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큐멘터리를 보러오는 관객은 (매체의 특징이 그렇듯이) 영화에 제시된 현실과 진짜 현실과의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작품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극영화의 관객처럼, 영화의 세계만을 일방적으로 제공해서는 만족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관객에게 피드백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객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하지만 아직까지 모든 관객이 다큐멘터리를 하나의 완성된 예술작품으로 인식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2000년 이후, ‘다큐멘터리의 달’ 행사는 우리 단체가 활동범위를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우리 단체도 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강신웅] 10년의 방향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요

영화사 백두대간이 광화문 씨네큐브의 운영에서 손을 떼고 케이블TV 방송 사업을 하는 티캐스트가 급하게 극장을 인수했을 때, 오랫동안 국내 영화문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아온 극장 씨네큐브의 정체성을 걱정했던 건 비단 <씨네21>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수 이후 그간의 과정을 보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올해 씨네큐브는 10주년을 맞아 기존의 정체성을 더 단단하게 다지겠다고 나섰다. 처음에는 정중한 말씨로, 후반에는 사람 좋은 너털웃음으로 인터뷰에 응해준 티캐스트의 강신웅 대표는 머뭇거리지 않고 비전을 약속했다. 당신이 알고 있고 바라고 있는 이 극장의 취향과 품격을 유지할 것이라고. 기분 좋은 약속을 듣고 왔다. -그동안 영상 사업 관련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 얼마 전에는 티캐스트 총괄상무에서 대표이사가 됐고. =전반적으로 관련된 업무에 대한 총괄책임을 지라는 뜻이다. 총괄상무는 이사회의 한 구성원이고 지금은 그 대표인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큰 차이는 없다. 뭐 차이가 있다면 봉급이 조금 올랐다는 거? (웃음) -극장 사업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다른 케이블 사업과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껴지나. =오래 전 삼성영상사업단에 있었다. 방송 사업 분야, 수입이나 제작 분야에 근접했던 편이라 극장 사업도 아주 낯설지는 않다. 영화를 선정해서 일정한 회차에 맞춰 넣는 것이 방송편성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처음 할 때는 걱정을 많이 했다. 주변에서도 우려를 많이 했고. -백두대간이 나가고 많은 사람들이 이 극장의 정체성을 의심한 건 사실이다. =그랬을 거다. 초반에는 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문까지 났으니까. 급하게 맡다보니 당황스러웠고 고충도 있었지만 지금은 안정화됐다. 예술영화를 위해서 멀리에서 우리 극장까지 오는 관객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씨네큐브라는 브랜드가 고정 관객을 많이 갖고 있고 다시 정상화되는 데 그분들이 큰 기여를 했다. 그분들에게 품격을 보여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이 극장의 포지션은 누군가가 약속없이 아무 이유없이 와서 영화 한 편을 봤는데 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냥 와서 보면 여기는 항상 좋은 영화를 할 거다, 하는 기대로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다. 일반적인 상업영화를 하는 곳이 아니라 누적, 반복 관람이 가능한 그런 영화들을 선정하고 상영할 생각이다. 좋은 영화로 감동을 주고 싶다 -씨네큐브는 한국 영화문화 안에서 일종의 상징적 공간이다. 티캐스트가 장기적으로 이 극장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이다. 이 건물이 여기 있는 이상 계속 있을 거다. 건물이 없어지더라도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10년 동안 운영되어왔던 방향이 소중하고 그 방향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 애정을 이어갈 것이다. 지금도 사업성, 수익성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고 있다. 마니아 영화로만 가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상업영화를 극장에 상영하면서 정체성을 애매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아날로그 감성을 유지한다고 해야 할까. 매출로 따져본 적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전체 사업에서 아주 작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브랜드와 극장이 전부 예뻐 보인다. 돈 벌자고 달려들면 의미가 없다. 씨네큐브라는 존재감이 큰 거다. 우리의 영화 취향과 방향에 맞게 구체적으로 수입, 배급을 할 거다. 언젠가는 거기에 맞춰 자체적으로 제작도 할 수 있겠지만, 영화시장에 기웃거린다는 말을 듣는 게 걱정스러워서 그런 말은 잘 안 하는 편이고. -연내 극장 개·보수를 한다고 들었다. =1관과 2관을 번갈아 보수할 생각이다. 공사를 하더라도 극장이 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관을 번갈아가며 공사한다. 의자를 바꾼다. 뭐, 오감형 4D, 그런 의자는 아니고(웃음) 깨끗한 의자로 바뀌는 거다. 우리 극장의 관객은 책을 좋아하고 극장 로비를 둘러보는 분도 많으니 그런 분들을 위한 공간도 많이 늘리려고 하고. 어떤 영화들이 상영되는지 미리 보여드리기 위해 텔레비전 모니터도 설치할 생각이다. 따뜻한 느낌이 나는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홈페이지까지는 아직 손을 못 대고 있는데, 영화 교류의 장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준비를 갖추려고 한다. 이런 것들은 물론 티캐스트 운영 1년 반을 기념해서 하는 게 아니다. 씨네큐브 10주년을 기념해서 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영화들을 좋아하나. (웃음) =잡식성이다. 마틴 스코시즈를 특별히 좋아한다. <보드워크 엠파이어>(Boardwalk Empire)라고 에서 마틴 스코시즈가 제작한 방송용 드라마가 있다. 미국에서는 잘되는데 갖고 오면 잘 안되는 것들이 있다. 문화적 배경이 달라서다. 마틴 스코시즈, 그 양반의 개인적인 연출 특성상 이 드라마도 시청률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 같진 않지만(웃음) 그래도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내년 중에 방영될 거다. 미국의 초기 이민자에 대한 것이다. 되게 비싸게 샀다. 이 드라마가 그 유명한 마틴 스코시즈가 만든 건데 그를 알고 있나, 칸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묻기에, 그런 얘기 하지 마라, 잘 안다, 그런 말 하면 나 화난다, 그렇게 말해줬다.

한국영화를 봤네, 한국 사랑 돋네

지난 11월11일부터 14일까지 뉴욕대학교 영화과는 한국영화에 대한 토론, 한국영화 상영(<옥희의 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 <휴일>), 그리고 한국 음식으로 가득했다. “한국영화-미디어와 초국가성”이라는 제목으로 뉴욕대학교, 한국 교류재단, 코리아 소사이어티, 뉴욕 한국문화원, 한국영상자료원이 후원한 학술행사가 열렸다. 미국 예일대학교 더들리 앤드루,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소영 교수 등 영미권 학자, 평론가, 산업 관계자 30여명이 초청됐다. 이번 행사에서 논의된 것은 <맨발의 청춘>과 <올드보이> 등 불법·합법적으로 일본의 원작 텍스트를 끌어들인 한국영화의 문화적 번역(얼 잭슨 주니어, 한국예술종합대학), <괴물>의 사운드를 담당한 라이브톤 최태영 등이 돌비 컨설턴트로서 한국상업영화의 독특한 사운드디자인에 미친 영향(줄리안 스트링거, 노팅엄 대학), 그리고 2000년대 이뤄진 범아시아 합작영화 붐과 70년대 한국·홍콩 합작 경향의 연관관계(이상준, 뉴욕대학) 등이었다. 한국영화를 주제로 한 단독 국제 학술행사로는 북미 지역 최대 규모로 진행된 이번 컨퍼런스에서 가장 인기리에 진행된 세션은 ‘포커스 디스커션’. 뉴욕아시아영화제의 고란 토팔로비치, 최초의 아시아드라마 합법 스트리밍 서비스 사이트 ‘드라마피버’(www.dramafever.com)의 승 박, 비공식 <왕의 남자> 팬 사이트(wang-ui-namja.com)의 대니얼 고든, 그리고 영화 웹진 시네어섬(cineawesome.com)의 한국 및 아시아영화 담당 루퍼스 드 람 등 팬으로서 한국 문화와 인연을 시작한 4명의 패널이 참여한 시시콜콜한 수다를 전한다(이후 대담 기사는 11월13일 오후 5시30분부터 1시간여 동안 진행된 공식 디스커션과 이후 별도로 진행된 추가 인터뷰와 대담을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고란 토팔로비치 Goran Topalovic 이름 토팔로빅이 아니라 토팔로비치. 17살 때 옛 유고연방에서 뉴욕에 발을 디뎠다. 경력 좋아하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위해 ‘서브웨이 시네마’를 만들어 뉴욕아시아영화제의 전신 격인 ‘두기봉 회고전’을 개최한 지 10년. 차이나타운의 팬보이는, 1년에 한번 아시아영화에 목마른 뉴요커를 위한 오아시스, 뉴욕아시아영화제 공동 수장이 되었다. 최근 한국영화 최고작 <부당거래>. “시네필 류승완이 필름메이커로서의 자신의 길을 찾고 성숙해지면서 감독으로서 뛰어난 본능을 완벽하게 발현했다. 그의 모든 영화를 사랑하지만 이번 영화는 정말 뿌듯했다. 홍콩에 두기봉이 있다면 서울에는 류승완이 있다.” 대니얼 고든 Danielle Gordon 경력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금융회사에서 정보기술 담당으로 8년째 일하고 있다. 영화를 정식으로 공부한 적은 한번도 없지만 평생 고전, 무성, 예술, 인디영화 ‘전문’ 팬으로 살아왔다. 최초로 접했던 한국영화 <춘향뎐>. 2007년 <뉴욕 타임스>에 실린 뉴욕영화제 기사에서 리뷰를 접한뒤 관람을 결심. 승 박 Seung Bak 한국 이름 박승권. 11살 때 가족과 미국행. 이름의 첫 글자를 영어 이름으로 택했지만 그나마 ‘승’보다는 ‘성’에 가까운 발음으로 불린다. 경력 경제학 전공. 연수익 3억달러 규모를 자랑하는 파이낸셜 소프트웨어& 미디어회사의 부사장, 책임 마케팅 담당으로 일하다가 최신·인기 한국 드라마를 무료로, 영문 자막으로 볼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 ‘드라마피버’(www.dramafever.com)를 공동 창립했다. 최고의 한국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남녀 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보편적이고 훌륭한 이야기.” 루퍼스 드 람 Rufus de Rham 경력 뉴욕대 영화학과 학부 졸업, 현재 같은 대학 석사과정에서 영상아카이빙 및 보존을 공부 중. 시네어섬에 한국영화 관련 아티클을 쓰고, 아시아영화 전문 팟캐스트 브이시네마(vcinemashow.com)의 고정패널로 활동 중. 인생의 목표 한국에서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 최고의 SF영화를 제작·감독하는 것(이미 트리트먼트가 있다). 류승완 감독과 술 마시기(자리만 마련된다면 ‘베프’가 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있다). 고란 토팔로비치 개인적으로 1990년대 말, 특히 1999년이 한국영화에서 중요하다. <쉬리>를 처음 보고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구나!” 하고 깨달았으니까. (웃음)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DVD로 봤을 때의 감동은 대단했다. 뉴욕아시아영화제에서 ‘Korean Cinema Attacks’라는 한국영화 특별전을 개최했을 때 관객도 놀라는 걸 확인했다. 첫째,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네, 둘째, 근데 다들 엄청나네. 승 박 가족과 평생 함께 즐겨봤던 한국 드라마를 어떻게 하면 쉽게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지를 궁리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한인마트에서 불법 녹화된 비디오를 대여하는 것 말고 다른 모델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수익모델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2009년 8월 처음엔 방문자가 한달에 3만, 4만명이었는데 현재는 월 40만명 정도다. 대니얼 고든 <뉴욕 타임스>에서 <왕의 남자> DVD 리뷰를 읽었고, 그 뒤로 그 영화는 10번도 넘게 봤다. 그 정도 예산으로 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모든 문화적인 백그라운드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많이 알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대중영화 자체에 매료됐다. 루퍼스 드 람 고등학생 때 한국 친구를 따라 한달간 대구를 방문했을 때 본 <신라의 달밤>이 최초의 한국영화였다. 정말 재밌었고, 진짜 놀랐다.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다니! (웃음) 이후 “"친구 아이가” 같은 부산 사투리로 배우고, 본격적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 3학년 때는 아예 연세어학당에 등록해서 한국에 살았는데, 대부분 영상자료원에서 살았다. 대니얼 고든 해외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팬으로서 모든 한국 DVD의 부가영상에 영어자막이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달시 파켓의 사이트(www.koreanfilm.org)에서는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에 대한 소식을 알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도 좋은 정보처다. 한국영화나 배우들도 손쉽게 팬들과 소통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물론 여전히 한국 콘텐츠에 대한 ‘영문’ 소스는 한정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지만 의외로 인터넷에서 깊이있는 자료를 찾기가 힘들다는 걸 깨닫고 많이 아쉬웠다. 외국 팬들 위해 영문 자막·사이트 만들어주세요 루퍼스 드 람 트위터를 통해 부지영, 윤성호 등 내가 관심있는 독립영화감독들과 멘션을 주고받는다. 인터넷 기술의 최첨단을 걷는다는 한국에 온라인을 활용한 합법적인 배급방식이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한국 콘텐츠를 궁금해하는 더 많은 외국인들을 위한 영문사이트 제공이 시급하다. 한국영상자료원의 VOD 서비스 정도는 해외에서 이용이 가능해야 한다. 한국 독립영화를 합법 다운로드할 수 있는 사이트, 인디플러그를 알게 되어서 신나서 들어갔는데, 영문 제공이 안되는 거다! 대다수의 한국 사이트가 익스플로러에서만 회원가입과 결제 등이 가능하고 공인인증서가 필요하거나, 주민번호를 입력해야 회원가입이 가능한 구조도 문제다. 승 박 처음에 한국에서 MBC 등의 공중파 방송국을 상대로 파트너십 계약을 맺을 때 가장 큰 장애는 인터넷 배급에 대한 의심 혹은 두려움이었다. 인터넷 배급이 해적판 유통을 용이하게 할 거라는 회의가 팽배해 있었다. 아무도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피버’는 긍정적인 경험적 수치를 제공하는 출발지점이다. 고란 토팔로비치 미국은 외국영화에 자국영화 시장을 내주지 않기로 악명이 높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외국영화를 통해 외국 문화를 더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극장들은 언제나 돈이 되는 영화만 튼다. 그러니 인터넷을 배급 창구로 개척하는 것은 합리적인 수순이다. 승 박 우리 사이트에서 한국인 비율은 5%에 불과하다. 30%가 아시안, 40%가 백인, 나머지가 흑인과 히스패닉이다. 온라인에서 국적과 지리적 위치는 무의미하다. 이후 ‘아시아 팝컬처’를 카테고리로 하는 콘텐츠를 배급하는 게 목표다. 한국 드라마 팬이라면 한국영화를 좋아하고, 일본이나 중국의 드라마도 좋아하더라. 한국, 일본, 중국, 대만 그 어떤 국가의 대중문화든 익숙해지면 나머지 국가 역시 거부감 없이 즐긴다. 그러니 배급이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면 예상보다 훨씬 많은 관객에게 접근할 수 있다. 과거에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보듯 쉽게 접할 방법을 제시해주기만 하면 된다. 루퍼스 드 람 한국영화가 인터넷을 통한 합법적인 유통에 앞장서지 못한 것은 2차시장 붕괴에도 원인이 있다. 미국에서 DVD 시장의 최대 소비자인 10대들이 한국에서는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낸다. 이들은 20대가 되어도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살기 때문에 집에서 영화를 보고 음식을 해먹는 등의 미국식 데이트 문화가 불가능하다. DVD방 같은 콘텐츠 제공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이윤이 돌아가지 않는 구조의 소비패턴만 양산된다. 온라인을 통한 2차 판권 시장을 고민할 기술적 여건이 갖춰졌지만 이번엔 10대들이 불법 다운로드에 먼저 맛을 들여버린 게 문제다. 코미디·멜로·액션 두루 섞은 ‘짬뽕 장르’의 매력 고란 토팔로비치 요즘의 관객은 모종의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즐거움을 공유하는 적극적인 수용자들이다. 그들에게 한국영화가 ‘한국영화’로 인상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 한국영화가 미국에서 어떻게 성공을 거둘까, 라는 건 비즈니즈맨 혹은 거대 시장의 입장만 반영할 뿐이다. 콘텐츠로서 한국 대중문화의 가능성은 무척 크다. 더이상 ‘어른’을 위한 상업영화를 만들지 않는 할리우드와 달리 한국에선 여전히 성숙한 어른 관객을 대상으로 뭔가 사회적인 발언을 시도하는 상업영화가 만들어지고 또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예술영화와 장르영화가 종종 결합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대니얼 고든 한국영화가 미국에서 상품으로 지니는 가치는, 그것이 아시아 대중문화 중에서도 거의 모든 장르를 포괄한, 그 자체로 일종의 장르처럼 소비된다는 점이다. 일본 하면 호러, 홍콩 하면 액션, 하는 인식과는 다르다. 내가 한국영화에 매료된 것도 그 때문이다. <왕의 남자>에는 코미디, 비극, 멜로, 액션 등 모든 종류의 이야기가 다 있다. 승 박 나는 드라마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데, 한국 드라마는 매우 리얼하다. 거대 예산에 엄청난 특수효과로 무장한 미국의 TV시리즈와 비교해봐라. 시즌제로 해를 거듭해서 제작되는 미국 TV시리즈와 달리 결말이 명확한 것도 한국 드라마의 장점이다. 모든 게 어떤 식으로든 매듭짓기 때문에 질질 끌지 않고 볼 수 있다. 좀 바보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한국 드라마 속 배우들은 다들 예쁘고 잘생겨서 좋아한다는 미국인들도 많다. (웃음) 한국에서 시청률이 별로 좋지 않았다는 드라마 <소울메이트>도 배우를 좋아하게 된 유저들이 계속해서 본다. 한국에서의 시청률은 우리 사이트에서의 성패와 무관하다. 고란 토팔로비치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외국에 보여주고 싶은 것에 대한 모델이 확실하다. 영화는 대중영화 외에 고전이나 예술영화여야 한다는 것이라든지. 근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한국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영화라도 미국의 대중시장에 제대로 번역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정 멜로드라마나 코미디. 한 나라의 문화 콘텐츠에 대한 인식은 그 나라에 대한 역사와 사회 전반에 대한 인식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은 미국시장에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뒤처져 있지만 지난 10년 사이 많은 발전이 있었다. 이런 것들은 언제나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루퍼스 드 람 ‘Asian Extreme’이라는 레이블링은 일종의 인종주의라고 생각해서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름 유효한 구석은 있다. 한국 장르영화가 극단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바로 폭력의 물리적인 거리 때문이다. 총을 사용하는 할리우드영화에는 수백명의 사람을 죽여도 일정한 거리 밖에서 벌어진다. 근데 총기 문화가 없는 한국영화 <친구>를 봐라. “고마해라 마이 먹었다 아이가” 하는 장면. 평생의 친구에게 쉰 몇번 칼을 맞는 동안 코앞에서 계속 눈을 마주친다. <달콤한 인생>이 한국영화처럼 안 느껴졌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인물들이 총을 예사로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승 박 ‘드라마피버’는 아시아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소개를 제공하는 출발지점이다. <엽기적인 그녀>나 <올드보이>가 많이 알려졌다 해도 그런 걸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태반이라는 전제가 있다. 나온 지 몇년이 지난 <대장금>이나 <내 이름은 김삼순>이 여전히 순위를 다투는 걸 보면 이건 현실적인 전제다. 온라인 세계에선 ‘최신작’이라는 개념이 없다. 중국의 어떤 관객은 지금도 <대부>를 인터넷으로 처음 접한 뒤 “세상에 이런 걸작이!”라고 감탄한다. 물론 언어라는 장벽은 언제나 무시할 수 없다. 루퍼스 드 람 드라마 <쩐의 전쟁>을 중국 불법 DVD로 구해서 본 적이 있다. 처음 1, 2회 때는 그냥 자막 번역이 이상하다 하는 정도였는데, 나중엔 아예 영어라고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내용은 점점 궁금해지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승 박 중요한 건 뉘앙스다. 이를테면 백수가 친구에게 “야, 자장면이나 먹자!”라고 말한다 치자. 이건 그냥 “나가서 뭐나 먹자” 정도면 무리가 없는데 이걸 “우리 나가서 검은 콩 소스 국수 먹자”라거나 혹은 자장면을 jjajangmyeon으로 표기한다. 대체 저게 뭔가를 생각하느라 텍스트에서는 관심이 떠나버릴 수밖에 없다. 대니얼 고든 나는 한국영화나 드라마가 모든 욕을 f**k으로 번역하는 게 이상했다. 자꾸 그렇게 심한 욕이 나와서 처음엔 진짜 이상했는데 한참 뒤에야, 아마도 한국인들은 그걸 일상적으로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가벼운 욕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하게 됐다. 고란 토팔로비치 해괴한 홍콩영화의 영어자막에 익숙해져 있어서 한국영화의 자막은 문제로 느끼지도 못했다. 예전의 홍콩영화 자막은 미국 팬들 사이에서 패러디나 농담의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했다. (웃음) 이명세 감독의 ‘드링킹 세션’ 듣고 한국 문화 배워 루퍼스 드 람 한국영화에서 언어만큼 미묘한 게 바로 술자리 문화다. 한국에서 1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주도를 배웠는데(웃음), 그 이후 대부분의 한국영화를 볼 때마다 ‘아, 이런 거였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대니얼 고든 맞다. 나도 뭔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더랬다. 처음엔 주변 여자들에게 어필하려고 그러는 건가, 짐작했었는데. (웃음) 고란 토팔로비치 이명세 감독이 뉴욕에 체류할 때 ‘드링킹세션’을 수강했는데, 한국 문화에 대해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까지는 아니어도 절반 이상을 그때 배웠다. (웃음) 이젠 삼겹살집에서 소주가 없으면 내가 먼저 허전하다며 소주를 찾는다. (웃음) 물론 한국영화가 뭔지 알겠다고 생각했던 예전과 달리 아무리 해도 모르는 게 있다는 걸 안다. 이를테면 <짝패>처럼 나중에 보면 전혀 새로운 영화라는 걸 깨닫는 경우가 많다.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홍콩영화 등의 흔적만 봤다. 그런데 1970년대 한국 액션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영화 안에 있던 것이 뭔지 진짜 알 수 있었다. 잘생기지도, 엄청난 육체를 가진 것도 아닌데,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두 주먹만 믿고 그 길을 가는 한국적인 남성 액션영웅의 모습이 거기에도 있다. 대니얼 고든 몇년 만에 친구들 사이에선 한국 문화 전문가가 됐다. 동생이나 친구 커플들은 어떤 한국영화를 보면 좋을지 문의하거나 <괴물>을 보고 한국영화의 팬이 되었다며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다른 나라의 역사와 사회, 문화를 배우면서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영화 한두편을 본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를 향한 통로를 개척한 셈이다.

죽음과 함께 방문한 미스터리 스릴러의 대가

올해 9월12일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영화감독 클로드 샤브롤을 기리는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가 2010년 12월14일(화)부터 26일(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상영작은 <미남 세르쥬>(1958), <사촌들>(1959), <마스크>(1987), <지옥>(1994), <의식>(1995), <거짓말의 한 가운데>(1999), <초콜릿 고마워>(2000), <악의 꽃>(2003) 총 8편이다. 데뷔작 <미남 세르쥬>와 두 번째 작품 <사촌들>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전자가 시골에 온 도시 사람의 이야기라면 후자는 도시에 온 시골 사람의 이야기다. 두편은 샤브롤의 초기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영화들이니 이 자리에서는 내용 대신 다른 식으로 소개하는 편이 새롭겠는데, 가령 이 영화들이 나왔을 당시에 동료들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을까. 에릭 로메르는 “<무방비 도시>에서 거리로 나아간 이탈리아의 그것처럼 샤브롤과 함께 우리는 대지로 귀환한다”고 썼다. 한편, <사촌들>을 본 장 뤽 고다르는 라퐁텐의 우화 시골 쥐와 도시 쥐의 이야기로 영화를 비유하면서 “레네가 돌리숏을, 그리피스가 클로즈업을, 오퓔스가 프레이밍의 사용을 발명한 같은 방식으로 샤브롤은 패닝숏을 발명했다”고 선언한다. 궁금하다. 어떤 장면이 <미남 세르쥬>를 본 에릭 로메르에게 대지로의 귀환을 말하게 하고 또 <사촌들>을 본 고다르에게 패닝숏의 발명을 선언하게 한 것일까. 그 다음 상영작들은 몇 십년을 건너뛴다. 우리에게 영화 <시네마 천국>의 아저씨로 오래 기억되고 있는 프랑스의 배우 필립 누아레가 주인공 중 한명인 <마스크>는 텔레비전 쇼의 유명 진행자 크리스티앙과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그의 집에 잠시 기거하는 작가 롤랑, 그리고 크리스티앙의 양녀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지옥>은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한 뒤 어느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휴양지를 운영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어느 날부터인가 부인이 젊은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불안증에 시달린다. 두편 모두 샤브롤의 대표작으로 흔히 꼽히진 않지만, <마스크>에서는 위선이, <지옥>에서는 불안이 샤브롤의 인물들을 덮쳐 이 영화들을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샤브롤의 영화에서 이런 위선이나 불안은 종종 부르주아 세계의 것이며 그건 마침내 파국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샤브롤의 작가적 귀환을 알렸던 <의식>은 부르주아의 파멸의 시간을 가장 명료한 방식으로 보여준 영화로 꼽힌다. 풍족함이 넘치는 어느 가정에 들어온 가정부,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마을 우체국 직원. 그들이 만들어내는 라스트신에서의 충격적이지만 무미건조한 사건은 오래도록 샤브롤의 이름 아래 회자되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들 당시 샤브롤 자신도 “이 영화는 확실히 계급전쟁의 도식적 관망을 묘사한다”고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때 그는 더 중요한 말도 한 것 같다. “영화에서 나의 시작점은 이야기와 인물 사이의 관계이고 나는 인물과 인물 사이의 충돌이 일으키는 구조를 믿으며 내가 수많은 스릴러를 만들긴 했어도 플롯에는 정말 관심이 없고 관심있는 것은 미스터리, 인물들의 고유한 미스터리”라고 했다. <거짓말의 한 가운데>에서는 어느 어촌 마을의 살인 사건으로, <초콜릿 고마워>에서는 이혼했다가 재결합한 부부와 그들을 찾아온 어떤 젊은 여인으로, 그리고 <악의 꽃>에서는 세대를 거치며 이어져온 집안의 업보가 드디어 또 한번 반복되는 것으로 그 미스터리는 시작되거나 지속된다. 샤브롤의 영화에서 그 어떤 방문은 종종 되돌리기 어려운 사건의 도착을 함께 알리곤 했다. 이번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를 찾은 8편의 영화의 방문도 실은 그의 죽음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사건과 함께 왔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전전긍긍, <도약선생>의 마지막 티켓!

12월10일 경험있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은연중에 깨닫는 사실. 배우에게 있어 외모의 매력은 균형 잡힌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다운 불균형에서 나온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려고 애쓴다면 조형적 불완전함을 변명 따위 첨부되지 않은 자족적 아름다움으로 느끼도록 하는 막무가내의 설득력이야말로 비범한 배우의 요건이다. 현실적으로는 그 역도 성립한다. 우연히도 표준형 미모를 타고난 배우라면 그 안에 잠재된 균열과 일그러짐을 노출하는 순간 몇배나 아름다워진다. 단, 많은 미남 배우들이 누아르와 갱스터 장르의 작품을 선택하며 기대하는 바와 달리 일부러 거칠게 꾸민 분장이나 ‘망가지는’ 캐릭터는 대다수의 경우 이와 같은 도약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어이없지만, 결국 우리가 희구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고작? 송강호 배우가 선배 문성근의 말을 인용했던 인터뷰가 기억난다. “조직에서 교육받고,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이 잃어버린 얼굴이 있다. 배우의 일은 그 잃어버린 얼굴들을 찾아주는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슬프게도, 오늘날 자연스러움이란 보통 사람이 자연스럽게 도달할 수 있는 자질과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과거 인류가 신을 구하고 동경하듯, 훼손되지 않은 감정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인간의 얼굴을, 희귀한 ‘쌩얼’을,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사제(司祭)인 배우에게서. 미인이건 아니건 배우의 얼굴은 어딘가 ‘이상해야’ 한다. 그래서 자꾸만 하염없이 들여다보도록 우리의 시선을 붙들고 늘어져야 한다. 이번주에는 기사를 준비하느라 내내 정유미 배우의 영화를 다시 보았다. 다분히 순정만화적인 눈동자와 경직된 턱이 그녀가 가진 매혹적인 불협화음이다. 감정의 덩어리가 복받치는 순간 그녀의 얼굴 근육은 그것을 유연히 감당해 표현하지 못하고 정직하게 일그러져버리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아무것도 숨기지 못하는 눈동자는 천진한 호소를 멈추지 않는다. 볼 때마다 신기하고 이상스러운 한 가지. 정유미의 눈은 말끄러미 뜨고 있어도 깜박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동공 안쪽에서 뭔가가 타올랐다가 스러지기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첫사랑 소녀를 연기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요.” 몇달 전 그 눈을 마주보다 무심코 흘러나온 나의 말에 그녀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 많이 때묻었어요. 보실래요?” 짙게 화장하고 차려입은 레드카펫 사진이라도 보여주려는 걸까 기다렸지만, 막상 그녀가 휴대폰에서 찾아 보여준 이미지는 5년 전 <사랑니> 촬영 당시 열일곱 살 조인영으로 분한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정유미조차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어떤 얼굴을. 12월11일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을 보면서 힘겨웠던 이유를 다시 생각한다. 7부에서 광야로 은신한 주인공 3인조 해리와 헤르미온느, 론은 일종의 텔레포트라 표현할 수 있는 마법을 빌려 다양한 공간을 순식간에 이동한다. 문제는 그것이 너무 쉽다는 데에 있었던 게 아닐까. 적어도 내게 영화는 지금까지 한 공간에서 다음 공간으로 인간의 이동을 말이 되게 만들도록 애쓰는 과정에서 흥미로워진 매체였다. 자, 이 인물을 어떻게 이 장소에서 빠져나가게 만들 것인가? 영화감독이란 그런 문제로 만 1년을 고민할 수 있는 미친 사람들이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구사한 언어를 영상으로 뺨치는 <제리>를 내놓았고, 두기봉 감독은 턱 빠지게 황홀한 온갖 정밀한 허풍을 고안해냈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움직이는 방식, 그것을 창조적으로 고민하지 않을 때 영화는 과연 무슨 의미인가? 공기나 물의 고마움을 가끔 알아차리듯, 나는 새삼 깨닫는다. 12월12일 의 평론가 벤자민 스트롱이 빈센조 나탈리(<큐브> <싸이퍼>)의 <스플라이스>를 10위에 올린 것까지는 참신하고 줏대있는 선택이었으나 그는 그만 “나탈리의 데뷔작은 크로넨버그적 테마의 위트 넘치는 업데이트다”라는 칭찬을 보태는 바람에, 네 편째 장편을 만든 나탈리 감독에게 길이 고마운 인물로 기억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연말결산의 계절에 모든 기자, 평론가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12월13일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윤성호 감독의 신작 <도약선생>을 보다. 상영시각보다 1시간 이상 이르게 도착했건만 딱 한장의 표가 남아 있었다. 20여분을 기다리며 누군가 그 자리를 차지할까봐 매표소 모니터와 눈싸움을 벌인 끝에 승리. 영화제 스탭에게 매진 인증 사진을 증정받았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회가 제작지원한 <도약선생>에는 등 돌린 애인에게 늠름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장대높이뛰기 훈련에 돌입하는 여자(나수윤)와 정체불명의 코치(박혁권)가 나온다. 영화 도입부는 앞으로 보게 될 영화가 여러 사람이 꾸는 꿈이 중첩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흘리는데, 이어지는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비약과 여담에 대해 관객을 채비시키는 ‘일러두기’가 아닌가 싶었다. 윤성호 감독의 영화와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형식은 랩이다. 메시지는 직설적이고, 지엽적 문제에 꽂혀 사설조로 늘어지기를 즐기며, 슬랩스틱이 스크래치를 넣기도 한다. 그의 영화를 지배하고 움직여나가는 요소는 운율이다. 여기서 대사는 종종 캐릭터와 주제를 드러내고 다듬는 통상의 서사 기능보다 장면에 리듬과 압운을 넣는 음악적 기능이 크다. <도약선생>의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노래 가사 한 소절은 다음과 같다. “도약은 패턴, (중략) 유턴, 오바마가 사는 워싱턴, 이청용이 뛰는 볼턴….” 상영이 끝나고 무대인사에 나선 감독님은 이 영화가 본인의 100%를 발휘한 작업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중 장대높이뛰기의 속성을 작은 영화를 만드는 작업에 비유한 말이 재미있었다. 정확하지 않은 인용. “<도약선생>의 코치처럼 나 역시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말들로 스탭들을 설득한다. 작은 영화를 만드는 일은 풀쩍 뛰어올랐다가 떨어지는 행위와 비슷하다. 아주 잠깐 숨통이 트여서 호흡을 하지만 허공에 머무르는 시간이 너무 짧다.” 극중 코치는 점프 훈련을 시키며 공중에서 대화를 나누고 내려오라 선수에게 지시하지만, 답까지 얻어 내려오기에는 체공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12월14일 지난 십수년간 컴퓨터그래픽과 3D가 과연 영화의 미래인가라는 논의가 이루어질 때마다 나는 사람들의 대범함과 조급함에 주눅이 들곤 했다. 단일한 양식이 하나의 장르를 전적으로 지배할 수 있으리라는 가정은 실제로 대단히 공허하고 용감무쌍한 것이다. CG와 3D로 그만큼 강력한 요술이라면 좀더 재미난 화제는 CG와 3D로만 비로소 가능한 미학의 영화가 어떤 모습이냐는 상상 아닐까. 오늘 본 <트론: 새로운 시작>(이하 <트론>)이 흥분을 안겨준 건 그 때문이다. 3D와 CGI라는 양식의 순수한 잠재력을 현재로서 극단까지 활용한 영화가 마침내 도착했다는 인상이다. 보통의 경우 영화에서 CG는 실사와 봉합된 이음매가 표 나지 않을수록 높은 평가를 받지만 <트론>은 완전히 다른 발상으로 사이버스페이스를 구현하고 있다. CG를 진짜처럼 보이려고 전전긍긍하는 대신 아예 다른 진짜를 처음부터 만들면 어떨까?(알려진 대로 이는 픽사의 기본적 태도이기도 하다). 온기가 없어서 문제라면 아예 차디찬 것을 보여주면 안될까? 즉, CG와 3D로 현실을 증강하는 게 아니라, 독자적 현실을 고유한 리얼리티의 레벨에 맞춰 짓는 것이다. <트론>의 사이버스페이스가, <아바타>가 그려낸 원시적 유토피아보다 <반지의 제왕>의 중간계에 오히려 가까워 보인다면 그 때문이다. 누군가는 영화인지 미디어아트인지 모르겠다고 불평하겠지만, <트론>은 바로 그 과감함 때문에 <아바타>보다 훨씬 큰 예술적 영감을 주는 영화다. (다음주에 계속)

[몬트리올] 퀘벡, <그을린> 덕에 “음메 기살어”

2010년 퀘벡은 그을렸다. 지난해 베니스, 토론토 등 각종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고 수많은 상을 휩쓸며 퀘벡권 캐나다영화의 자존심을 다시 세워준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incendies)은 몬트리올의 시네마테크 중 하나인 시네마 뒤팍에서 여전히 상영 중이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였던 <그을린>은 중동 내전으로 고통받는 한 여인의 역사를 지극히 영화적인 방식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텔레필름 캐나다는 지난 9월 이 영화를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부문 지원작으로 선정했다. 텔레필름의 캐럴 브라반 이사는 “깊이있는 주제를 영화적으로 잘 그려낸 이 영화가 지원작이 되는 데 손색이 없으며 캐나다의 훌륭한 감독 중 한명인 드니 빌뇌브의 재능이 국제적으로 더욱 많이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 드니 빌뇌브는 퀘벡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감독이다. 그의 단편영화 는 2008년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바 있으며 2009년작인 장편 <폴리테크닉>가 큰 주목을 받았다. <폴리테크닉>은 평화롭기만 한 몬트리올, 아니 캐나다 역사상 가장 끔찍한 ‘폴리테크닉 학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1989년 12월 몬트리올의 에콜 폴리테크닉 공대에서 마크 르팽이라는 기계공학도가 여대생만을 대상으로 무차별 총격전을 벌였고, 결국 14명의 소녀가 목숨을 잃었다. 드니 빌뇌브는 아이러니한 흑백의 아름다운 화면을 통해 이 사건을 돌아봤고, 캐나다의 권위있는 영화상 지니 어워드에서 최우수영화상을 비롯해 9개 부문의 상을 받아냈다. <폴리테크닉>에서 살인자로 분한 배우 맥심 고데트는 <그을린>에서 쌍둥이 중 한명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폴리테크닉>으로부터 1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드니 빌뇌브의 <그을린>은 와디 무와드의 연극을 각색한 영화다. 주인공인 쌍둥이 남매는 잃어버린 아버지와 형제를 찾으라는 엄마의 유언에 따라 레바논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마의 비밀을 통해 피비린내 나는 중동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아직도 많은 퀘벡 사람들의 관심 속에 꾸준히 상영되고 있는 <그을린>은 2011년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손색이 없다. 오스카 생각하면 12살 소년이 되요 <그을린>의 드니 빌뇌브 감독 인터뷰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낮잠을 자고 있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처음 든 생각은 ‘너무 행복하다!’였다. -지금 기분은 어떤가.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자인 와디 무와드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올해 지원작의 감독들인 자비에 돌랑, 루이 벨랑제 등은 모두 대단한 감독들이며 퀘벡의 영화가 점점 발전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중에서 나의 영화가 지원작으로 선정되었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수상을 기대해도 되겠나. =오스카에서 이 부문은 경쟁이 치열하다. 100여개국에서 출품된 쟁쟁한 영화와 경쟁해야 하니 말이다. 최종 엔트리가 결정되는 것은 1월이다. 많은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오스카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가 궁금하다. =<그을린>이 여러 나라에서 상영될 때 이미 오스카 지원작 선정을 약간은 짐작하고 있었다. 여러 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니 그것이 장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아름다움, 시, 그리고 산업의 합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영화를 만들 때 가장 행복하고 편하다. 영화를 만들 때 영화제를 생각하거나 상을 받는 것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더 많은 대중과 공유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오스카를 생각하면 12살 소년의 마음이 되곤 한다. (웃음)

[유준석] ‘사운드 퍼즐’로 빚은 괴담이다

무척이나 긴장한 모습이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에야 유준석 감독은 긴장이 좀 풀렸는지 이런저런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소리를 이용한 공포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에 사운드 전공자는 아닐까 예상해봤는데 그렇진 않다. 소리에 대한 그의 관심은 미스터리 구조로 관객의 오감을 잡아채기 위한 자신만의 일종의 차별화 전략 중 한 가지라고 한다. 유 감독은 2003년에 인비저블 시리즈 1편 <숨은 소리 찾기>를 연출했고 2005년에 OCN에서 방영된 미스터리 시리즈 드라마 <코마> 중 임원희가 주연을 맡은 3편을 연출한 적이 있으며 이번 개봉작 <귀신 소리 찾기>는 인비저블 시리즈 2편이다. 공포영화이며 귀신 소리가 들린다는 시골집을 취재하는 텔레비전 리얼리티 쇼프로그램팀이 주인공이다. -상영시간 40분인 영화가 극장에서 정식 개봉하는 건 이례적이다. 어떻게 성사됐나. =단편을 작업하는 사람들은 영화제 밖에서 영화를 상영하기가 힘들다. 그런 점에서 일단 극장에서 정식 개봉하는 건 의외여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배급사 인디스토리에서 연락이 왔다. 인비저블 시리즈 3편까지 만든 다음 세편을 묶어서 함께 개봉하는 것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난 지금 넋을 놓고 다른 걸 쓰고 있는 중이라 당장 3편을 만들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다가 말 나온 김에 그냥 2편만 단독 개봉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돌아섰다. -이른바 <귀신 소리 찾기>가 인비저블 시리즈 2편이며, 3편까지 계획되어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3편까지 구상했다. 하지만 아직 3편의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다. 생각 중이다. 세편을 모두 묶는 브리지가 필요할 수도 있겠고 아닐 수도 있겠고. 지금은 어쨌든 2편 단독 개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3편까지 묶어서 하는 건 지금으로서는 일단 마음을 비운 상태다. -소리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생기게 된 것인가. =<환상특급> 같은 기묘한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기존의 것들과 차별화하고 싶었다. 그러다 시각적인 것보다 청각적인 것에 사람들이 훨씬 더 예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사운드 미스터리를 생각해낸 것이다. -사운드 전공인가. =아니다. 내가 공부를 원래 잘 못했다. 고등학생 때도 꼴찌였다. (웃음) 아, 안동에 있는 대학의 영상 관련 학과에 입학한 적은 있는데 거기가 좀 이상한 학교였다. <두사부일체>가 진짜 있는 이야기더라. 실제로 그 지방 깡패가 학교에 다니질 않나, 기숙사 점호를 몽둥이 들고 하질 않나, 그러다 내가 영화 동아리를 하나 만들어보려 했는데 원래 있던 방송 동아리에서 훼방을 놓아서 잘 안됐다. 안 맞아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독학한 거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관심은 정말 어린 시절부터 내내 갖고 있었다. -소리를 사용하는 것에 관한 구체적인 연출 계획이 있었을 것 같다. =<귀신 소리 찾기>에는 세 가지 유형의 소리가 나온다. 첫 번째는 극중 취재팀이 조작하는 사운드다. 그 소리는 나무를 누군가가 밟아서 나는 소리 같은 것이다. 영화 속 현장이 한옥집이다 보니 음산한 소리를 내자, 하는 생각에서 만들었다. 두 번째는 영화 속 취재팀 중 정필우라는, 귀신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정말 귀신 소리를 찾기 시작할 때 나는 발자국 소리들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녹음기에 녹음된 귀신의 말소리다. 이렇게 성격이 다른 세 가지 소리들이 나온다. 귀신 소리는 실제로 여배우 목소리로 녹음한 다음 컴퓨터에 넣어봤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더라. 너무 또렷하게 들렸다. 대신 남자 목소리로 녹음하고 나서 찌그러뜨렸더니 정말 여자 귀신 목소리 같았다. -페이크 다큐 혹은 방송 리얼리티 프로그램식의 방식을 따랐다. =그 방식을 따르긴 했지만 극영화에 맞춰서 시나리오를 썼다. 콘티만 없었을 뿐 완벽하게 시나리오를 갖고 갔다. 새미 페이크 다큐 정도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시나리오는 어떻게 풀었나. =사운드 퍼즐이라는 컨셉이 있었다. 사운드를 소재로 퍼즐을 내서 관객에게 접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괴담식으로 말이다. 왜 어린 시절에 텐트 속에서 무서운 괴담을 많이 듣곤 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괴담은. =실은 그런 게 없다. (웃음) 하지만 2009년에 커피숍에서 바리스타 아르바이트 일을 하던 때인데, 같이 일하는 여직원 다섯명에게 쪽지를 한장씩 서로 모르게 나눠줬다. 그러고 나서 그걸 모아서 동시에 맞춰보라고 했다. 종이에는 각각 뒤, 에, 조, 심, 해, 한자씩 쓰여 있었다. 모아놓고 보니 ‘뒤에 조심해!’이지 않나. 꺅 하고 다들 놀라더라. 그 때, 아 이게 재미있겠구나 생각했다. <귀신 소리 찾기>도 쌍둥이 자매의 불륜 이야기로 진행하다가 막판에는 예상하지 못한 다섯 음절이 맞춰지면서 끝나지 않나. 40분 중 39분이 맥거핀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누군가가, 이 영화 후반부 유치하다, 다시 끝나고 생각해도 유치하다, 이럴 순 있는데 그래도 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진지한 척하면서 죄의식을 건드린 다음 공포 효과를 주는 거다. 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재미있는 광경을 하나 봤는데, 관객이 스크린은 안 보고 극장 스피커쪽에 내내 관심을 두더라. (웃음)

<'개콘' 고참 변기수 "라디오에선 신인">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 "라디오 DJ요? 많이 혼나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KBS 2TV '개그콘서트'(개콘)의 'DJ변' 개그맨 변기수가 올해부터 진짜 라디오 DJ로 변신했다. 그는 지난 1일부터 KBS 2FM(89.1MHz)'변기수의 미스터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변기수는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다시 신인이 된 느낌"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개그가 많은 사람들을 향한 것이라면 라디오 DJ는 한 사람을 위해서 이야기하듯이 해야 하잖아요. 개그할 때 톤이랑 달라서 배우면서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이라 부담이 큰데 설상가상으로 변변한 대본조차 없다고 한다. "2시간짜리 프로인데 대본이 3~4장밖에 안되요. 오프닝과 마무리 멘트 빼면 대본이 거의 없는 셈이에요. 청취자들 신청곡과 사연 위주로 진행하는데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노래를 끊지 않아요. 하면서 스릴도 있고 재미도 있어요. PD님께 욕도 많이 먹고요.(웃음)" 그러면서 그는 "'DJ변'처럼 사운드 볼륨을 직접 올리고 내리면서 진행한다"며 뿌듯해했다. 프로그램에 아이디어를 많이 낸다는 그는 "얼마전 동료 개그맨 변승윤과 변투를 하면 안되겠냐는 제안을 했다"며 능청스레 말했다. 동시간대 프로인 SBS '두시탈출 컬투쇼'를 대놓고 패러디한 아이디어인데도 "타방송도 좋은 점이 있으면 배우는 것이 좋다"며 너스레를 떤다. 변기수는 라디오에서는 신인 DJ지만 '개그콘서트'에서는 최고참 중 한 명이다. 현재 출연자 중 김준호, 김대희, 정명훈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그의 후배들이다. '개그콘서트' 11년 역사에서 6년을 함께 했다. 2004년부터 2~3개월 제외하고 매주 녹화장을 찾았다. 라디오 스튜디오는 오랫동안 서왔던 '개그콘서트' 무대와 달랐다. "바로바로 반응이 안와서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개그맨들은 무대 위에서 관객의 표정을 보고 반응을 알 수 있는데 이건 내가 말을 했는데 웃겼나 긴가민가 하거든요. 그래서 조급함이 있었는데 이제 편안하게 하려고요." 경쟁이 치열한 '개그콘서트'에서 장수하는 비결을 물으니 아이디어라는 답을 내놨다. "아이디어를 챙겨놓고 사는 사람은 없어요. 모든 개그맨들은 코너가 인기를 얻더라도 4~5개월이 지나면 뭐해야지 하고 고민해요. 전 다행히 돌아다니다 보면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실생활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찾는 편이에요." '개그콘서트' 코너 '못 말리는 면접관'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그는 이 코너에서 볼품없는 외모의 응시자에게 가차없이 '탈락'을 외치는 면접관을 연기한다. "짜 놓은 지 6~7년 된 코너에요. 원래 개그우먼 김현숙 씨가 상대역이었어요. 대학교 공연할 때 김현숙 씨한테 무조건 '탈락' '탈락' 외치는 캐릭터였죠. 그러다 불현듯 청년실업도 심각한데 새롭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만들었어요." 그는 "대박 코너는 아니지만 중간 이상은 한다"며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나중에 시청자분들께 면접장에서 억울한 질문 받으신 경험을 프로그램 게시판에 올려달라고 할 거에요. 실제 보면서 자기 경험이 떠올라 씁쓸하다 하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는 깐족대는 캐릭터에 일가견이 있다. '까다로운 변선생' '날아라 변튜어디스' 'DJ변' 등의 코너에서 한결같이 밉살스럽고 짓궂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사실 제가 혀 짧은 걸 안 들키려고 말을 빨리하다보니 그런 캐릭터가 나왔어요. 빠른 호흡으로 말하면서 남들이 생각하기 전에 제 말을 몰아쳐서 하는 거죠. 똑같은 타이밍으로 얘기하면 웃기기 힘들어요." 왜 코너명에서 변씨 성을 빼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뜸 어릴 적 놀림 받은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변사또, 변기, 변강쇠 같은 별명이 많았어요. 6학년 반장 선거에서는 아이들이 제 이름 대신 별명들을 적는 바람에 무효표가 나와서 떨어졌어요. 변씨 성을 가진 어린이들에게 힘내라는 뜻에서 자꾸 넣고 있어요." 지금은 '개그콘서트' 대표 개그맨이 됐지만 개그맨이 되기까지 그는 지상파 개그맨 시험에서 13번 낙방했다. 개그맨 중 최고기록일 거라는 그는 "한번에 붙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다부지게 말했다. "떨어지고 새 코너 준비면서 아이디어를 짰던 게 지금 도움이 많이 돼요. 사회경험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요. 제가 제대로 된 정규직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방송국 보도국 스태프, 텔레마케터, 공사장 인부 등을 하면서 비정규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잘 알죠. 그 당시엔 힘들었지만 개그맨이란 꿈이 있어 즐거웠어요." 스스로 실패의 경험이 많은 만큼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잇단 폐지로 설 곳이 없어진 후배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적어도 100명 이상은 갈 곳이 없어졌어요. 개그맨들을 믿고 무대를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그전보다 웃기지 않다고 프로를 쉽게 없애버리지 말고 개그맨들에게 다시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요. 개그맨들은 소모품이 아니잖아요." 개그맨 데뷔와 '개그콘서트' 엔딩 장식이라는 꿈을 이룬 그에게는 버라이어티 MC라는 꿈이 하나 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올랐다 내려가는 건 한순간이라 하잖아요. 전 산 하나 정복하려고 이 일을 시작한 게 아니에요. 산맥에 도전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기회가 올 거라고 믿어요. 우선 라디오 프로도 제가 청취율 깎아먹었다는 소리는 안 듣게 하고 싶어요." okko@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김석윤] 방송에서 영화까지 신명나는 오락시간

영화계에서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김석윤 감독으로 통하지만 방송계에서 그는 김석윤 프로듀서다.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KBS 방송국 주변을 잠시 거닐 때 지나는 사람마다 그를 향해 반갑게 인사하는 걸 보니 그는 확실히 이 분야의 오래된 사람이다. 그는 각종 쇼 프로그램과 드라마 등을 연출해왔다. 영화인이면서 방송인, 그러니까 이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그가 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건 자신이 연출한 시트콤 드라마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큰 인연이 됐다. 같은 연출자가 드라마를 만들고 나서 동명의 제목으로 내처 극장판까지 만들었는데, 국내에서 그런 시도 자체가 전무후무했을 뿐만 아니라 개봉 당시 이 영화는 흥행성적과 무관하게 무시하지 못할 소수의 골수팬을 낳았다. 때문에 언젠가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가 돌아온다면 ‘올미다’와 같은 종류의 것으로 올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그는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왔다. 조선시대의 탐정과 그의 심복을 데리고 요절복통의 사극 세상을 꿈꾸며 온 것이다. -방송과 영화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한 건 아니고…. 본사에서 배려해주어 파견 발령식으로 영화제작 업무를 하고 다시 돌아온 셈이다. 일반 회사가 아니고 방송국이다 보니 제약이 덜했다. 방송과 영화 사이에 어떤 공통점은 있는 것 같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라면 시청자, 영화라면 관객, 공통적으로 수용자가 있다. 기본적으로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하거나 우울한 분위기를 일소해주는 웃음. 말하자면 예능이란 수용자에게 그런 즐거움을 주는 것이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영화도 그런 형식이다. -영화는 대략 4년 만인데, 일단 촬영 초반이 어땠을까 궁금하다. =전략적으로 보면 첫회는 스탭과 배우가 호흡도 맞추고 해야 하는데… 받쳐주지 않는 게 많았다. (웃음) 첫회에 첫신을 찍었는데, 헌팅 갔을 때는 파랬던 수수밭이 가서 보니 벌겠다. 잎사귀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커져 있었고. 일단 접근이 용이하질 않았다. 특히 날씨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원래 영화의 배경은 여름인데 가을 들어 찍기 시작했으니 촬영 중에 단풍이 들고 눈이 오면 큰일이었다. 개봉 일정은 맞춰져 있었고. 그러다 보니 세트 촬영을 전부 뒤로 미뤄놓을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로케이션, 오픈 세트부터 찍어나갔다. 그런데 이렇게 ‘공간’을 중심으로 찍다보니 이야기상으로는 뒤죽박죽 찍게 됐다. 첫 장면 찍고 마지막 찍고 이야기가 미처 전개되기도 전에 절정을 찍기도 하고. 나보다 연기자들이 많이 헷갈렸을 거다. 이 톤이 맞나 저 톤이 맞나 하면서. (웃음) 그래서 연기자들에게 꼼꼼하게 편집을 보여주면서 했다. 그러고 보니 편집 과정 중에 큰 방향 전환도 한번 있었다. -어떤 전환이 있었나. =추리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라 자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그게 관객에게 좀 어렵게 받아질 거라는 의견들이 많이 나왔다. 단서는 충분히 만들어놨지만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어려울 수 있다는 거였다. 그보다는 좀더 편하게 갔으면 하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자고 했다. 12세 이상 관람가라면 쉽게 가는 게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는 단서를 찾아나가며 벌이는 추리극 부분에서 맛깔나는 것도 있었는데 지금은 설명을 많이 하다 보니 그건 좀 줄었다. 그게 장점이 된 것도 같고 아쉬운 점인 것도 같다. 하지만 오락적으로 즐기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스토리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오락적인 포인트를 전달하는 건 더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다. -설 시즌 오락영화로서 포인트를 명확히 잡았다는 뜻으로 들린다. =꼭 설 시즌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처음 시나리오 초안을 받았을 때는 영화하겠다는 생각없이 그냥 봤다. “읽어나 보세요” 하기에 “나 사극 안 좋아하고 잘 모릅니다”, 하면서 봤다. 2007년부터 말이 나왔던 작품이라던데 돌다돌다 나에게까지 온 건가 하는 생각도 했고. 읽어보니 오락적으로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만들면 오락적으로 갈 것 같은데 괜찮겠나. 내 마음대로 해도 되겠나”고 했더니 그러라고 하더라. (웃음) 명절을 노렸다기보다 그렇게 오락적으로 만들겠다는 지향점을 갖고 시작한 거다. -원작이 김탁환의 <열녀문의 비밀>이다. 각색하는 과정에서 신경 쓴 부분은. =원작 소설을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소설 자체가 영화적이지는 않았다. 원작을 읽고 나니 시나리오 초고가 원작을 영화적으로 바꾸려 한 결과였다는 걸 알게 됐다. 말한 대로 오락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했다. 미스터리 부분들이 추가됐고. 반전 포인트랄까 강도를 높이는 작업도 했다. -현장에서의 즉흥적인 선택도 있었나. =지금 생각나는 건 목소리 굵은 사또가 나오는 장면. 그건 원래 정보 전달 이상의 의미가 없었던 역할이다. 그런데 사또로 나올 연기자의 동영상 클립을 보는데 목소리가 너무 좋더라. 그러고 보니 김명민도 목소리 톤이 좋잖아, 그럼 이걸 두 사람의 목소리 톤 대결로 한번 가보면 어떨까, 해서 넣은 거다. 나뿐만 아니라 어느 시기가 되니까 김명민의 머리에서 아이디어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더라. -어떤 것들이 쏟아져 나오던가. =예를 들어 땅콩장수로 분장을 하고 나서 다른 분장은 다 지워도 점 하나는 남겨놓고 가자거나, 미인 한객주(한지민)를 보고 땅콩을 떨어뜨린다거나 하는 것들. 분장 아이디어도 본인이 많이 냈다. 김명민이 연기한 탐정에는 수염이 달려 있기 때문에 이것저것 변장하는 데 어떤 한계가 있었는데도 본인은 그 한계를 넘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오달수는 어땠나. =물론 잘했다. 배우 오달수를 좋아한다. “난 당신을 좋아하니까 영화에서 길게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본인한테는 아마 그게 부담이 됐을 거다. 싫증나지 않게 하면서도 길게 끌고 가는 역할에 대한 부담. 오달수 특유의 톤도 원하지만 완전히 자연스러운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영화 전에 오달수가 출연하는 <오구> 공연을 봤는데 그 안에서 이미 자연스럽게 관객을 끌어내는 걸 하고 있었고 그게 좋았다. 오달수가 맡은 서필의 톤이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촬영 당시에는 평이하게 끌어가는 톤에 불안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리얼하고 좋더라. 합이 안 맞거나 톤이 안 맞는 부분은 현장에서 잡아가며 더 자연스러워졌다. 생동감있는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두 배우의 코믹한 장면이 많다. 베스트를 뽑아볼 수 있을까. =김명민과 오달수 두 사람이 연기한 것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저장고에서 둘이 목매다는 신. 김명민은 김명민대로 오달수는 오달수대로 잘했다. 김명민 혼자 하는 장면을 꼽자면 정자에서의 장면. 그리고 아까 말한 사또와의 저음 대결. 그리고 한객주에게 홀려 넘어갔을 때의 표정도 좋다. 정자 장면에서는 당당한 척하다가 스윽 다시 걸어들어가는 약간의 비굴한 모습이 좋고, 사또와 있을 때나 한객주와 있을 때는 그 짧은 동안의 표정 변화가 좋다. 그리고 오달수 때문에는… (웃음) 오히려 내가 현장에서 NG를 내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연출자로서 모니터보다는 좀더 배우들 근처에 있자는 주의이고 그래서 카메라 옆에 잘 서 있는데 아무리 예상을 한다고 해도 오달수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웃음을 참기 어렵다. 영화에서 오달수가 미친 것처럼 혼자 “배고파, 배고파” 하는 것 있지 않나. 원래 대사는 그냥 단순하게 배고파를 말하는 거였다. 그걸 해보자니까 본인도 처음엔 뻘쭘하지. 하지만 그게 오달수식으로 되더라. 사실 영화에 담긴 건 NG컷인데 좋아서 잘라 쓴 거다. (웃음) -김명민에게는 한객주, 정조, 개장수 등 상대 인물들을 대할 때마다 톤을 달리하라고 했다던데, 이유가 뭔가. =인물의 톤을 놓고 보면 그의 스펙이 보이지 않겠나. 톤은 몇 가지가 있었다. 가장 남자다운 톤, 속물 같은 톤, 정통 사극에 어울리는 톤, 서필과 있을 때는 고등학생 때 친구들끼리 노는 그런 톤, 노비들을 대할 때는 마음속 인본주의가 엿보일 수 있는 그런 톤. 적어도 네 가지 이상의 톤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배우와 감독 사이에 의견 조율이 필요할 때도 있겠다. =현장에서 의견이 부딪칠 때는 서로 맞다고 논쟁하지 말고 누가 맞는지 무조건 주변 호응으로 결정하자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밀린 경우도 있지만! (웃음) 김명민이 오달수에게 “이런 개 같은 놈이” 하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나는 그 대사가 정말 욕하는 것처럼 들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김명민은 약간 장난스럽게 가자고 했다. 그래? 그럼 내가 얼마나 쿨한 연출자인지 보여주겠어 하며 두 가지 버전으로 찍어보자고 했다. 당연히 내 버전이 더 어울릴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현장기사가 두개 중에 떡하니 김명민 버전을 골라서 최종으로 붙여놓은 거다. 게다가 스탭에게 보여주자 다른 스탭들, 그러니까 조금 더 내 편일 것 같은 사람들마저 김명민 버전이 좋다고 하더라. 그럴 땐 당연히 내 걸 버리는 거다. (웃음) -오달수의 연기를 좋아하는 관객 중 한 사람으로서 그의 연기를 오래 보는 건 큰 즐거움이었다. =콤비 플레이에 정말 능한 배우다. 극중 서필 역으로 여러 배우 이름이 거론됐지만 오달수 이야기가 나온 순간 한순간에 다 정해졌다. 시나리오상으로 보면 서필 역은 사실 약간 촐싹거리는 그런 캐릭터다. 그런데 오달수가 하니까 오달수만의 설정이 잡힌다. 연기자가 확실히 자리매김하면서 캐릭터가 재구축된 것이다. 나도 오달수의 팬으로서 만족스럽고 재미있었다. -사극을 안 보는 편이라고 말했는데 그건 사극이 대체로 뻔해 보여서 평소 재미없어 했다는 말처럼 들린다. =사극이라면 다 본다는 사람도 있는 반면 나는 한복을 입고 나오면 이상하게 무조건 잘 안 보게 된다. 물론 근거없는 선입견이지만 나는 그랬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처럼 선입견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장면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영화에는 유독 인물들이 달리는 장면이 많다. =스피디하고 역동적이고 오락적인 스케일. 그런 걸 해봤으면 싶었다. 예를 들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보이는 그런 느낌. 처음엔 무조건 달릴까, 잘만 달리면 재미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마치 지뢰를 헤치고 가는 느낌을 생각했고 그런 장치를 해놓고 달리자고 결정했다. 달리는 장면 중에는 편집된 아까운 장면도 있다. 장면 자체가 일단 많았으니까. 마라톤 경기를 패러디한 것도 있었다. 속도감있는 사극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반면 전반적으로 좀 어수선하다는 평도 있다. =그런 점이 있었다면 스토리 자체는 단순한데 그걸 추리극식으로 보여주면서 생긴 부작용이라고 하겠다. 뒷부분의 대미를 장식해야 하는데 단선이 아닌 이 복합 라인을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가장 큰 문제였다. 가령 8가지 스토리를 8가지로 짜맞춘 것이 아니라 다섯 가지 스토리를 8가지로 짜맞추다보니 생긴 부작용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여하튼 일반적인 독법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속편을 약속하는 것처럼 끝난다. =김명민의 입에서 속편 이야기가 나와서 불이 붙은 거 같은데(웃음), 사실 편집상에서는 지금의 그 투숏이 엔딩은 아니었다. 영화적으로 속편을 상정했던 적은 없다. 19년 가까이 방송을 해서인지 영화가 내게 안 맞는 구석도 있긴 하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글쎄, 다시 영화를 하게 될까? 안 할 것 같은데? 이러고 나서 나중에 또 말 바꿀 수도 있겠지. (웃음) 여하튼 지금은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