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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로마] 총리님, 영화계까지 따먹으시려고요?

한국영화도 베를루스코니 앞에서 춤추면 배급을 받을까? 이탈리아 TV계를 독점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영화도 독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보였다. 영화 제작·배급사인 ‘메두사’를 소유한 베를루스코니는 지난해 말 의류 기업 베네통과 함께 ‘더 스페이스 시네마’ 멀티플렉스 상영관 출범을 알렸다. 이탈리아 전 지역에서 34개의 멀티플렉스와 347개 상영관을 매입함으로써 베를루스코니는 앞으로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하는 수입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제작, 배급, 상영 시스템 독점이 가져올 파행에 이탈리아 영화계는 무척 곤혹스런 분위기다. 이탈리아 영화계 인사들은 대자본의 독점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견제하기도 힘들고, 상업영화든 창작활동이든 간에 앞으로 독점자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고 아우성이다. 에토레 스콜라 감독은 “베를루스코니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동안에는 영화를 안 만들 거다. 영화는 글쓰는 일이나 그림을 그리는 일과 다르다. 그들은 지원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표현을 자유로이 할 수 있다. 누군가를 거부하기 위해 영화를 하기보다는 안 하는 게 낫다”고 항의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카를로 베르도네 역시 “문화가 병들었다. 영화도 병들었다. 의사가 필요하다. 베를루스코니는 의사가 될 수 없다. 영화는 문화산업이다. 문화산업과 엔터테인먼트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오늘의 교육은 70%가 영상을 통해 이뤄진다. 잘못된 영상을 통해 문화와 엔터테인먼트를 혼동하는 차세대가 걱정이다”고 말했다. 대체 베를루스코니는 어떻게 총리가 되었을까? 방송사 3개를 운영하고 출판과 신문을 장악하고 있는 그가 가진 돈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난니 모레티 감독은 이미 2006년작 <악어>(Il Caimano)에서 이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제73대, 78대 총리를 지내고 2008년부터 다시 총리로 재직 중인 74살의 베를루스코니는 2000년 <포브스>가 선정한 개인 자산 순위에서 120억달러의 재산을 보유해 이탈리아 1위, 세계 14위의 부자에 오른 사업가다. 그는 건설업을 하던 1960년대부터 지역 방송국을 하나씩 사들인 뒤 반독점법을 피할 목적으로 자기 소유의 지역방송국을 묶어 상업 TV방송국 그룹을 만든 다음 이탈리아 최대 상업 TV 방송사, 광고 대행사, 축구팀을 총괄하는 ‘핀인베스트’ 제국을 건설했다. 여기에 속한 방송그룹 ‘메디아세트’ 산하 TV채널들은 이탈리아 전체 시청률의 약 50%를 점유하고 있다. 총리가 통제할 수 있는 국영방송사 RAI까지 합하면 텔레비전 시장의 90%를 점령하고 있는 셈이다. 엉덩이가 보이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출연한 젊고 매력적인 여자들이 남자 상의를 다림질하는 경연을 내보내는 프로그램들은 다 메디아세트 소속 방송국들이 만든다. 최근 이탈리아의 톱 뉴스는 이집트 혁명이 아니라 베를루스코니와 미성년자의 스캔들인 루비게이트다. 마음을 훔친다는 뜻의 ‘루바 쿠오리’로 불리는 모로코 출신 댄서 루비는 미성년자였을 때부터 베를루스코니 자택에 초대받아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가 추는 춤인 ‘붕가붕가’는 여성의 음부를 안무하며 추는 춤이다. 둘의 스캔들이 터지자 이탈리아 검찰은 베를루스코니를 미성년자와의 성매매 혐의로 기소했고, 베를루스코니 자택에 초대받은 다른 여성들과 루비의 전화 녹취록을 증거로 수사 중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성추문이 터질 때마다 자신의 방송사를 통해 변명하는 수법을 주로 써왔다. 가슴의 크기가 뇌의 크기와 같다고 생각하는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의 방송에 출연한 댄서들을 정계에 입문시켜주겠다는 미끼를 써왔다. 2009년 베를루스코니는 댄서 파트리치아 다다리오와도 성추문을 일으켜 화제가 됐었다. 베를루스코니는 그녀를 유럽의회 의원 후보로 공천할 것을 약속했지만 다다리오는 “베를루스코니가 주기로 한 돈과 정계입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홧김에 침실 테이프를 공개한 뒤 유럽의회 의원 후보 자격을 박탈당했다. 앤드 카사노바와 실비오 반디넬리라는 이탈리아 포르노 감독들은 베를루스코니의 미성년 성매매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 <붕가붕가 프레지던트>(Bunga Bunga Presidente)를 최근 제작하기도 했다. 막 출시된 이 영화는 베를루스코니의 미성년 성매매 증거 자료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게 언론의 평가다.

[진중권의 아이콘] 존재론에서 유령론으로

‘죽어서 격식을 갖춰 땅속에 묻힌 시체가 어찌하여 수의를 찢고 나타났다는 말이오? 그대를 편안히 모신 무덤이 어찌하여 그 무거운 대리석 입술을 벌려 시체를 뱉어놓았단 말이오? 그래, 그대 시체가 이렇게 다시 어스름한 달빛 아래 나타나서 이 밤을 이렇게 끔찍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이오? 아, 자연의 법칙에 묶여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인간의 지혜로는 풀지 못할 문제를 던지고,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곡절이 무엇이란 말이오? 어서 말해 보시오, 도대체 무슨 일이오? 어떻게 해달라는 말이오?’ 마르크스의 유령들 베를린장벽 붕괴 얼마 뒤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1993)이라는 책을 발표했다. 여기서 ‘유령’은 물론 <공산당선언>의 그 유명한 구절과 관련이 있다.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구(舊)유럽의 부르주아들은 이 유령을 내쫓기 위해 “신성한 동맹”을 맺었다. 이 퇴마의식(exorcism)이 효험이 있었던 걸까? 실제로 공산주의는 몰락하고, 한동안 세계는 네오콘과 신자유주의자들이 부르는 승전가로 요란했다. 하지만 데리다는 이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마르크스의 정신은 미래에도 유령처럼 출몰하리라.’ 물론 데리다가 말하는 ‘유령’(spectre)은 무덤에서 튀어나온 사령(死靈)이 아닐 거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선언>을 쓸 당시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서 날아온 귀신이었다. 즉 그것은 과거에서 되돌아온(revenant) 존재가 아니라 앞으로 미래에서 도래할(a venir) 존재였다. 아직 실체는 없지만 분명히 현실의 층위 위에 얹혀서 아른거리는 어떤 형상. 존재하지도 않으나 그렇다고 부재한다고 할 수도 없기에 섬뜩하게만(unheimlich) 느껴지는 이 형상이 유럽의 부르주아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오늘날 아직도 누군가 ‘공산주의’를 말한다면, 그 유령의 정체를 물어야 한다. 그것은 미래에서 온 형상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데리다가 앞으로도 출몰할 것이라 예견한) ‘마르크스의 유령’일 수 있다. 아니면 과거에서 온 형상인가? 이 경우 그것은 ‘르브낭’ 혹은 ‘좀비’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과거의 것이라고 모두 배척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유산은 데리다의 말대로 ‘주어진 것’(given)이 아니라 ‘맡겨진 것’(task). 마르크스의 유산 역시 ‘필요한 만큼 급진적으로 변형시킴으로써 다시 확증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것은 이념적 외설일 뿐이다. 데리다는 <햄릿>의 대사 두 군데를 인용한다. 하나는 ‘Time is out of joint’라는 햄릿의 한탄이다. 국역본을 보니 ‘time’을 ‘세상’이라 옮겼다. 관절이 어긋나듯이 세태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동생이 형을 죽이고 형수와 정을 통하는 세상. 햄릿은 한탄한다. ‘아, 저주받은 운명이구나. 내가 그것을 바로잡으려 태어났다니.’ 하지만 그 문장을 글자 그대로 옮길 수도 있을 거다. 이 경우 그 말은 시간이 뒤엎어지는 시간착오(anachronie)를 가리킬 것이다. 가령 과거에 속하는 선왕이 현재에 나타나는 것은 시간의 관절이 어긋난 현상이 아닌가. 또 다른 인용은 ‘To be, or not to be’라는 햄릿의 고뇌다. 굳이 ‘사느냐, 죽느냐’라는 번역의 올바름에 관한 논쟁에 끼어들 필요는 없다. 데리다는 이 문장을 무엇보다도 ‘존재해야 할 것이 존재해야 하느냐’, 혹은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느냐’라는 뜻으로 읽는다. 세태는 어긋났다(out of joint). 나는 그것을 바로잡으려 태어난 운명. 세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해야 할 그 일을 저지르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존재해야 할 그것’, ‘일어나야 할 그것’, ‘해야 할 그 일’이 아직 현존하지(present) 않는다는 사실이다. <햄릿>의 두 인용은 각각 ‘존재’와 ‘시간’에 관련되어 있고, 이 둘은 다시 하이데거의 유명한 저작(<존재와 시간>)을 연상시킨다. 하이데거의 것을 포함하여 기존의 존재론은 모두 현재, 현존, 현전(presence)의 형이상학이었다. 유령은 다르다. 그것은 부재하면서 존재하고, 죽었으면서 살아 있다. 그것은 데리다가 말하는 ‘차연’이나 ‘흔적’의 시각적 형상에 가깝다. 데리다의 의도는 전통적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존재’를 존재하면서 부재하는 ‘유령’으로 바꿔놓는 것, 한마디로 존재론(ontologie)을 유령론(hantologie)로 대체하는 것이다. 엑소시스트 마르크스? 유령을 쫓아내려 한 것은 부르주아들만이 아니었다. 구유럽의 부르주아들이 열심히 공산주의 유령을 쫓아버리는 퇴마의식을 거행하는 동안 마르크스 자신도 실은 유령과 싸움을 하고 있었다. 바로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유령이다. 그의 눈에는 자본주의적 현실 자체가 유령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하긴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를 추구하고, 화폐가 노동의 구체성을 지워버리고, 인간이 아니라 자본의 자기증식을 위해 생산이 행해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물신성야말로 부재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타나는 환영, 즉 유령이 아닌가. 물론 자본주의의 가상성에 대한 그의 과학적 비판을, 우익들의 반공주의 퇴마술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상’에 대한 그의 비판은 여전히 존재론(ontologie)의 한계에 갇혀 있다. 데리다도 슬쩍 언급하듯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마르크스 시대와는 생산과 기술의 조건이 전혀 다르다. 가상이 실재를 대신하고(시뮬라크르), 복제와 원본의 구별이 흐려지고(유전공학), 부재하면서 존재하는 것(텔레마틱)은 이미 물리법칙만큼이나 견고한 현실이다. 빌렘 플루서의 말대로 이미 ‘가상은 실재만큼 견고하고, 실재는 가상만큼 유령스럽다’. ‘시간’의 측면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시간은 관절이 어긋났다(out of joint) 클릭 한번에 과거는 현재로 나타난다. 컴퓨터그래픽은 미래를 현재로 가져온다. 현재 위에는 언제나 과거와 미래의 유령이 배회한다. 이 기술적 조건의 효과는 대중문화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가령 ‘포스트모던’의 상징으로 통하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속의 현실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어지럽게 뒤섞인다. 메탈과 펑크와 고딕의 미학이 뒤섞인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이 종종 ‘유령론’(hantologie)이라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새 인터내셔널’이라는 데리다의 정치적 대안 역시 그의 철학적 기획 못지않게 급진적이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란, “마르크스 혹은 마르크스주의의 정신 중 적어도 한 가지 요소에 공감하는 이들 사이의 동맹”, 즉 “위상도, 좌표도, 당도, 나라도, 민족공동체도, 시민권, 특정 계급에 함께 속하는 일도 없는 비시간적 연결이다”. 비록 정당이나 노동자 인터내셔널과 같은 제도적 형태를 취하지는 않지만, 이 동맹은 국제법의 상태, 국가와 민족의 개념 등을 비판하는 일에 연대하면서 마르크스의 비판을 새로이 하고, 급진화할 것이다. 계급에 속하지도, 정당의 형태를 취하지도 않는 이 동맹이 어떤 이들에게는 ‘유령’으로 보일지 모르겠다(가령 촛불 시민들을 바라보는 전통 좌파의 시각을 생각해보라. 흥미롭게도 우익들 역시 이 시각을 공유한다). 그 동맹은 부재하나, 동시에 현재한다. 실제로 그것은 유령스럽다(spectral). 데리다 역시 그것을 의도했을 것이다. 이 유령 앞에서 퇴마의식을 벌이려는 이에게는 햄릿의 말을 들려주는 게 어떨까? “이 귀신을 귀한 손님으로 취급해서 환영해주세. 이 사람아, 세상에는 우리의 철학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 허다하게 있다네.”

[장 프랑수아 로제] 모든 영화는 관객을 만날 권리가 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프로그램 디렉터 장 프랑수아 로제. 필름포럼의 임재철 대표는 “한국에서 그를 잘 아는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닐 것”이라며 아직은 국내에서의 그의 생소함을 시사해주었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언젠가 어느 글에서 로제가 프로그램 디렉터가 된 직후 첫 번째 연 것이 마리오 바바 회고전이었다며 그의 성향을 언뜻 일러주었다. 시네마테크 부산 허문영 원장은 “프랑스 시네필 특유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인물”이라며 영화인으로서 그의 인상을 전해주었다. 이런 말들 속에서 그가 좀더 궁금해졌다. 시네마테크와 영화에 관한 그의 생각이 듣고 싶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계기로 방한한 장 프랑수아 로제를 만났다. -70년대 클로드 샤브롤 영화의 프린트 복원 계획. 그 과정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60년대 말부터 70년대의 작품들은 샤브롤의 가장 예술적 전성기의 작품들이어서 공을 들이고 있는데, 역시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있다. 판권자들의 동의를 얻느라 그렇다. 하지만 이 경우는 잘하면 올해나 내년 초까지 마무리하여 샤브롤 회고전을 열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샤브롤의 이 시기 작품들은 사실 그의 생전에도 이미 판권문제 때문에 회사끼리 논쟁이 있었다. 그런데 샤브롤의 타계가 계기가 되어 이 문제가 오히려 잘 풀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서는 일이 좀더 수월해진 것이다. 다만, 샤브롤… 그가 회고전에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프로그램 디렉터는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일을 시작한 건 1992년부터다. 원래는 법학이 전공이다. 그걸 끝내고 나서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에 들어가서 주로 경제, 산업, 판권에 관련된 일을 했다. 그 당시에 도미니크 파이니(프랑스의 저명한 영화평론가이자 이론가. 예술영화 배급 및 상영도 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관장, 퐁피두 문화센터 전시관장 등을 역임했다)를 만나게 됐고 친구가 됐다. 그가 91년부터 시네마테크 관장으로 일하면서 내게도 같이하자고 제안을 한 거다. 디렉터가 되기 전 6개월 동안은 시네마테크의 전체 목록과 소장품을 조사 관리하는 일을 맡았고 그 다음 프로그래밍을 하게 됐다. -대단한 시네필이라고 들었다. 본격적으로 시네마테크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시네필로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일하는 것은 꿈을 실현하는 일과 같다. 나는 원래 지방에서 공부했고 84년에야 파리에 왔다. 그 뒤 한 6년 동안은 거의 매일 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았다. 내가 열심히 영화를 보러 다니던 그 당시에는 내가 이곳의 프로그래머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결국 꿈이 실현된 것이다. 다양하고 폭넓은 영화를 발견하고 보여주는 일을 하게 되어 기쁘다. -관객으로서 영화를 열심히 보러 다니던 그때에 막연하게나마 내가 혹시 프로그래머가 되면 이 사람의 영화만큼은 특별전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나. =개인적으로 적어도 이 사람의 모든 전작을 다 보고 싶다고 생각한 감독은 있었다. 존 포드다. 그런데 이미 존 포드의 가능한 전작의 회고전이 1989년에 있었다. 그 당시의 프로그래머였던 베르나르 마티노의 주도 아래 이루어졌고 그때는 마치 내 꿈이 실현된 것처럼 기뻐 열심히 보러 다녔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시네마테크의 회고전은 시간을 두고 여러 번 반복해서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에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알프레드 히치콕 회고전을 열고 있다. 물론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똑같은 시네아스트의 회고전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20년 뒤에 열리는 것이라면 우린 또 다른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매번 새로운 시네필 문화가 조성되고 조명될 수 있다. 회고전이라는 것은 관객의 수용에서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며, 영화의 역사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점과 관련해 한 가지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요즈음 프랑스 관객의 새로운 경향 혹은 새로운 시네필의 경향과 변화는 어떤 것인가. =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긴 하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종류의 시네필만 존재한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감수성들이 존재해왔다. 1950년대에는 <카이에 뒤 시네마>가 많은 영향력을 미쳤으나 곧 <포지티프>가 등장했고 <카이에 뒤 시네마>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포지티프>를 읽으며 감성적인 경향을 이어갔다. 2차대전 이후 그리고 누벨바그 이후에 달라진 것 중에서 미국영화의 선호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무렵부터 공산주의적 영향도 많았기 때문에 미국영화의 선호조차도 물줄기 중 하나에 해당한다. 다수의 영향들은 여전히 존재해왔고 68혁명 이후에는 훨씬 더 다양한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래서 68년 이후에는 전통적 의미의 시네필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더더욱 찢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텔레비전, 인터넷 등으로 보아야 할 작품의 숫자나 종류가 많아졌기 때문에 모든 영화를 공통으로 다 볼 수가 없게 됐다. 그 많은 가능성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생겼고 나머지는 버려야 하게 된 것이다. 과거에 비해 공유하는 일정한 경향이 사라지게 된 거다. -만약 상황이 그렇다면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당신의 입장에서 어떤 영화들을 프로그래밍할 것인가의 선택의 문제는 점점 더 중요해진다. 어떤 점들을 주로 고려하는가. =지적한 그대로다. 프로그래머로서의 역할은 선택이다. 나의 역할은 어디선가 숨겨져 있는 영화들을 찾아서 보여주는 것인데, 이런 선택은 늘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이고, 모든 관객이나 비평가가 다 공감할 순 없다. 어떤 경우에는 왜 이 사람인가, 왜 이 작품인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책임을 지는 것이 나의 할 일이다. 나는 프로그래머를 갤러리의 큐레이터로 비교하곤 한다. 한 예술 작품의 상징적 경제적 가치를 찾아내고 높이는 것이 갤러리의 역할이라면 시네마테크도 어떤 영화가 지닌 가치를 찾아내 검증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중에는 히치콕처럼 기존 거장의 영화도 있겠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영화도 있다. 물론 이 경우엔 논쟁의 여지가 더 많다. -동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이것만은 한번 해보자, 하며 밀여붙인 경우가 있는가. =아주 최근 들어 그런 경험이 있다. 제스 프랑코(평생 수십개의 가명으로 저예산 B급 호러와 소프트코어 장르를 만들어온 스페인의 영화감독)다. 다른 사람들이 전부 이렇게 마이너한 사람까지 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반대했지만 내가 밀어붙였다. 이런 경우에도 역시 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 시네아스트는 저예산으로 에로틱영화 전문 상영관에서나 상영할 법한 영화로 60, 70년대에 주로 활동했고 200편 정도의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워낙 저예산으로 찍다보니 오히려 강박적인 성격이 강해졌고 마치 프랑스의 아방가르드를 연상시키는 면모가 있다.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경우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지원한 영화들은 어떤 선택에 의한 것이었나. =‘시네마테크의 역사와 관련된 영화와 시네아스트’라는 주제를 서울아트시네마로부터 전달받았다. 그걸 염두에 두고 선정했다. 내가 이번에 시네토크를 하는 영화들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필립 가렐의 <내부의 상처>는 90년대에 도미니크 파이니가 관장으로 오면서 복원해낸 것이고, 장 마리 스트라우브-다니엘 위예의 <로트링겐>은 다니엘 위예의 사후에 스트라우브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기증한 것이다. -당신이 보기에는 프랑스의 젊은 감독 중 누가 밝은 미래를 갖고 있는가. 개인적인 선호도가 듣고 싶다. =젊은 감독 중에는 단연 알랭 기로디(<용감한 자에게 안식은 없다> <때가 되었다> <도주왕> 등을 연출했다)! 독창적이고 기발하다. 그의 영화는 다른 영화들과 흡사한 면이 거의 없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적도 없고 소수에게만 관심을 받지만 나로서는 주목하는 감독이다. -한국의 동세대 감독 중 ‘만약 이 감독이라면 나중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회고전을 마련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감독이 있나. =지금 한국영화를 이끌어가는 감독들은 90년대 이후에 나온 감독들인데 그중에서는 홍상수 감독과 봉준호 감독이다. 홍상수 감독의 경우는 <하하하>의 프랑스 개봉에 맞추어서 올해 3월에 전작 회고전을 여는 것으로 이미 기획되어 있다. 봉준호 감독의 경우는 아직 편수가 많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그들보다 더 젊은 감독을 꼽자면 나홍진과 양익준이 있을 것이다. 아직 한두편을 만든 감독들이지만 매우 큰 잠재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시네필인 당신의 경험을 빌려서 한국의 젊은 시네필에게 한마디 조언한다면. =영화의 마케팅이 활성화되면서 우린 영화를 이렇게 저렇게 범주화하고 구분하는 데 익숙해졌다. 하지만 시네필이라면 모든 영화에 전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모든 영화를 다 좋아할 수는 없지만 모든 영화에 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런저런 영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하나가 있는 것이다. 이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창립자 앙리 랑글루아의 생각과도 뿌리 깊게 연관되어 있다. 그의 이념은 ‘영화’라는 하나의 표현방식이 있는 것이며 모든 영화가 다 관객을 만날 권리가 있다는 것이고 그 공간이 시네마테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영화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의 원칙도 모든 영화들에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엘비스 코스텔로] She? 팝의 모든 게 나의 무대

끊임없이 자신을 재발명(혹은 재발견)한 전설적인 뮤지션이 내한 공연을 한다. 지금 환호성을 지르고 계실 마돈나 팬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주인공은 엘비스 코스텔로다. <노팅힐>의 감상적인 주제곡 를 부른 그 뿔테안경의 중년 남자? 맞다. 하지만 는 코스텔로라는 천재를 대표하기는 한참 무리인 노래다. 그는 지난 1977년 영국에서 펑크록 음반 ≪My Aim Is True≫로 데뷔한 뒤 지난 30여년간 쉬지 않고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남은 뮤지션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궁금한 게 하나 있다. 2월2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첫 번째 내한 공연에서 대체 코스텔로는 어떻게 30여년간의 음악을 정리해서 보여줄 것인가. 내한 공연 직전 캐나다 밴쿠버에 살고 있는 코스텔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에 오기까지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린 건가. =글쎄. 초청을 이제야 처음으로 받아서? (웃음) -당신이 공연하게 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런던의 앨버트홀처럼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아! 처음 들었다. (웃음) 근데 그곳도 앨버트홀처럼 사운드가 훌륭한 공간인가? -음향시스템이 아주 좋다고 들었다. =다행이다. 이번 공연은 밴드 없이 나 홀로 이끌어가는 솔로 콘서트다. 내 목소리와 기타 외에는 다른 악기가 없다. 그래서 오히려 더 다이내믹한 어레인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악기만 다루는 게 단조롭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게 더 버라이어티할 수도 있다.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를 모두 사용할 거다. 물론 <노팅힐>의 삽입곡인 도 부를거다. (웃음) 한국의 대중이 오로지 의 주인공으로만 나를 인식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홀로 무대에 서는 이런 식의 솔로 공연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이건 한국에서의 첫 공연이다. 나를 소개하는 무대다. 밴드와 함께한다면 오히려 내 음악을 버라이어티하게 보여줄 수 없다. 물론 운이 좋아 다음에 또 한국에서 공연하게 된다면 오케스트라와 함께한다거나, 다른 방식의 공연도 해보고 싶다. 지난 32년간 만들어온 음악을 한번에 다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당신은 종종 ‘팝 사전’(Pop Encyclopedia)이라 불릴 만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 장르를 다 섭렵하며 변신해왔다. 77년 데뷔했을 때는 성난 펑크 록 뮤지션이었고, 80년대에는 뉴웨이브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후에는 재즈, 클래식, 알앤비, 솔, 컨트리 등 모든 장르를 거쳤다. 대체 어떻게 스스로를 재발명해올 수 있었던 건가. =글쎄, 흠, 내가 스스로를 재발명해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직관을 따라 흘러왔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폴 매카트니처럼 젊은 날의 우상과 함께 곡을 쓰는 엄청난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껏 나는 300여곡의 노래를 만들어왔다. 텔레비전 삽입곡과 발레 삽입곡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모든 것을 정상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로 해냈다. 음악 학교 따윈 가진 않았다. 그저 새로운 모험이 매 순간 나에게 다가왔다. 그 덕분에 내가 어떤 일정한 경향에 발목을 잡히지 않고 지금껏 잘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영화에 곡을 빌려주거나, 종종 당신 자신으로 출연해왔다. 직접 영화를 제작하거나 당신이 아닌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스파이스 월드>의 카메오 역할 같은 건 잠시 잊어버리자. =<스파이스 월드>. 그 영화 아주 재미있었는데. (웃음) 영화는 부업일 뿐이다. 직업에 따라오는 일종의 부상이라고 할까. 정말로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요즘처럼… 납득할 만한 이유없이 폭력이 가득한 영화적 경향을 싫어하는 편이기도 하고. 대신 내 노래를 이용하고 싶어 하는 영화인들과 일하는 건 좋다. 그럴 때마다 내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영화에 공헌하도록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다. 단, 영화에 사용되는 내 음악은 어디까지나 보조도구여야만 한다. 음악이 드라마를 영화로부터 뺏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건 말이 안된다. -지난주에 그래미 시상식을 봤다. 믹 재거가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당신 역시 50대 후반 아닌가. 육체적인 힘을 어떻게 유지하며 음악을 만들고 공연하나. =믹 재거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잖아! (웃음) 나도 그래미 시상식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재거의 공연은 정말로 초현실적으로 멋졌다. 그 무대에는 믹 재거 외 어떤 것도 없었다. 그저 진실한 에너지뿐이었다. 나에게는 3살 된 쌍둥이 형제가 있는데, 나 역시 여전히 건강하다. 매일매일 지금 같은 에너지를 갖고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에 감사하며 산다. 요즘 나에게 중요한 건 퍼포먼스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일도 재미있지만 역시 퍼포먼스를 하는 게 젤 중요하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내 음악을 어떤 식으로 쇼에 올릴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하나의 노래가 하나의 얼굴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나라마다 특별히 인기있는 노래가 있는 것도 재미있다. 한국에서는 가 인기있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가 인기있다. 둘 다 로맨틱한 노래지만 후자는 네덜란드답게 아주 어두운 부분이 있는 곡이다. (웃음)

[오마이이슈] 그래도 일본 정부를 믿는다

아이가 먹고 싶어 하던 버터를 듬뿍 발라 새우를 구워줬다. 놀이터에서 괴물놀이를 지칠 때까지 했다. 방치돼 있던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고, 이웃을 불러 밥을 차렸다. 몇몇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햇볕에 이불을 널고, 박완서 소설을 읽고, 주민센터 요가에 늦지 않게 갔다. 소소한 일상이 눈물나도록 고마웠다. 그들에게도 그날이 이런 여러 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천재와 인재 중 하나를 고르라면 차라리 인재를 택하고픈 기분이었다. 최소한 맥락을 설명할 수는 있으니까. 숨죽인 채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봤다. 그런 생각도 잠시, 원전 폭발과 방사능 유출 위험을 접하자 이런 구분이 무의미했다. 특집뉴스 끝머리에는 아랍에미리트 원전 기공식에 참석해 “한국 원전이 최고”라고 자랑한 대통령의 모습이 나왔다. 방사선 폭증 위기가 48시간이 고비라는 진단이 나온 날 대통령은 “한국 원전은 일본보다 뒤에 지은 거라 안전하다”고 말했다. 민망했다. “완전히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됐던 위험도 실제로는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며 원전 가동시한 연장 결정을 연기한 독일 총리 모습과 대비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에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위험은 없다. 위기 대응 매뉴얼이 강박적이란 소릴 들을 만큼 꼼꼼하고 잘 훈련돼 있는 일본도 대재앙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우리 원전은 진작부터 부실 시공이 확인돼 왔다. 민영 도쿄 전력의 무능과 일본 정부의 소극적 정보공개 및 대처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지만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일본 정부를 믿는다. 방사능 위험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피하는 와중에도 반대 차로로는 단 한대의 차량도 튀어나오지 않는 기이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질서의식에 기가 막히면서도, 각국에서 온 구호의 손길을 안내하고 협조할 여력이 안된다며 일부 되돌려보낼 만큼 체계를 중시하는 대처 방식을 답답해하면서도, 지금으로선 일본의 재난 대응 시스템과 이를 지휘하는 일본 정부를 믿고 응원할 수밖에 없다. 화면에 비친 일본 도호쿠 지역 해안 마을은 진작에도 화려하지 않았다. 높은 아파트도 허황된 조형물도 없었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수수해도 그 무엇보다 값진 생업이요 터전이었을 것이다. 전화기 든 손을 덜덜 떨던 그녀는 가족의 생사를 확인했을까. 마음 깊이 기도한다. 부디 더이상의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뉴욕] 그는 미국을 바꾸었네

지난 2월 말 미국의 유료 케이블 채널 에서 첫 방송된 일인극 <서굿>(Thurgood)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연기파 배우 로렌스 피시번이 출연하는 이 작품은 지난 2008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던 연극으로, 최근 워싱턴DC 케네디센터 내 아이젠하워 시어터에서의 한정 앙코르 공연 실황을 녹화 방영한 것이다. 주인공 서굿 마셜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법관으로, 1967년부터 91년까지 재직했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사실이지만 그는 1954년 ‘브라운대 교육위원회’ 소송으로 대법원까지 항소한 인물이다. 그는 당시 공립학교에서 널리 행해지던 인종차별 정책을 위헌으로 판결 받아내 흑인인권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굿>의 배경은 하워드 대학의 강단이다. 무대에 첫 등장하는 주인공은 나이 든 서굿이다. 그는 대법관을 사임하고 법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시청자는 그의 강의를 경청하는 법대생이 된다. 로렌스 피시번이 연기하는 서굿은 우리를 향해 자신의 출생부터 가족사와 교육과 커리어, 법대 시절, 미국 흑인인권단체인 NAACP에서 리드 변호사로 근무하던 시절, 대법관 후보로 올라가서 은퇴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굿은 부모의 과거를 회상한다. 기차역 짐꾼으로 일했지만 헌법에 관심이 많아 법정을 자주 찾아갔던 아버지는 늘 서굿과 토론을 벌였다. 교사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교실 바닥청소까지 해야 했던 어머니는 서굿을 대학교육까지 시키겠다는 신념으로 결혼반지까지 전당포에 맡긴다. NAACP가 의뢰를 맡은 법정공방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진주 귀걸이를 판 서굿의 첫 번째 아내 버스터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서굿>은 흑인을 대상으로 한 집단린치가 성행하던 남부지역에서까지 흑인들의 변론을 담당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유년 시절부터 은퇴까지 챕터처럼 나누어 소개한다. 일인극인 관계로 넓은 무대에는 피시번 홀로 등장한다. 세트로는 커다란 강단 겸 책상과 몇개의 의자가 전부다. 하지만 피시번이 열연하는 서굿은 무대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원래 이야기꾼으로 알려진 서굿은 단 한순간도 심오한 작품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지 않는다. 한편 미국 공영방송인 를 비롯해 와 <쇼타임> <스타즈> 등 유료 케이블 채널은 종종 직접 브로드웨이나 런던 시어터 디스트릭 등을 방문하기 힘든 시청자를 위해 인기 무대극을 텔레플레이 포맷으로 TV 방영한다. 이중 하나로 소개된 <서굿>은 에서 3월 내내 방영되며, 곧 DVD로도 출시될 계획이다. 투쟁하는 삶,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서굿>의 배우 로렌스 피시번 다음은 공영방송 라디오 인터뷰 프로그램 <더 트리트먼트>의 영화평론가이자 프로그램 진행자인 엘비스 미첼이 스페셜 <서굿>에 출연한 로렌스 피시번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이다. -<서굿>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희곡을 읽은 뒤 작품을 거절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2006년에 처음 읽었는데, 그전까지는 서굿 마셜이 첫 흑인 대법관이었다는 정도만 알았다. 희곡을 읽으면서 그가 흑인인권운동에 중요한 획을 그은 변호사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6년이면 수많은 제의가 있었을 텐데 왜 어려운 일인극을 택했나.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출연을 결정하던 시기에는 ‘나 혼자서 무대 위에서 어떡하나’ 이런 걱정은 안 했다. 승낙을 한 뒤에야 생각하게 됐다. (웃음) -일인극은 캐릭터나 흐름 등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해야 한다. =물론 첫 리허설과 프리뷰 공연 사이에 “너무 무리한 것 같아. 어떻게 한다고 했는지… 정말 못하겠다”라고 걱정한 적은 있다. 한 10초 정도? -‘투쟁하는 삶’을 모토로 하는 캐릭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에게 배운 것 같다. 남부 출신인 어머니는 인권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흑인 대학에서 공부하셨다. 인종차별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나도 그 시대에 성장했기 때문에 늘 그런 이슈에 신경을 쓰게 된다. -현재 에 출연 중인데 흑인 배우가 주인공인 TV시리즈가 별로 없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출연을 결정한 뒤에야 그런 질문을 받게 됐다. 당시에는 드라마 <유닛>의 주인공도 흑인이었고, 지금은 <크리미널 마인드: 서스펙트 비헤비어>의 포레스트 휘태커도 있다. 이게 버락 오바마의 영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거기에 별 문제는 없다. 오히려 더 잘된 일이다.

[전영객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낳은 분열

*스포일러에서 시작하는 글입니다. <두만강>의 쟁점에 대해서는 이미 795호에 정한석(‘마술처럼 흔들리는 취권의 순간들’)과 정성일, 허문영의 씨네산책(‘그는 경계에 서 있다’)이 상세히 밝혔다. 그들이 짚어낸 공통된 쟁점은 이 영화 속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데, 순희가 탈북자에게 겁탈당하는 장면, 그때 생긴 아이를 낙태하는 결정, 그리고 영화 말미에 창호가 스스로 몸을 던져 죽는 장면에 대한 것이다. 영화에 대한 호의를 전제로 이들이 제기한 문제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한석은 장면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진행하는 방식”이 장률의 영화답지 않게 도식적이고 관념적이며 구체성을 상실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성일은 그 죽음들에 대해 영화가 희망의 가능성을 거세한 것은 아닌지 물었다. 허문영 또한 창호의 선택에 “과도한 순교의 책임”이 부과된 건 아닌지 질문하며, 영화가 아이의 죽음을 취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인 불편함에 대해 말했다. <두만강>은 이러한 쟁점 이외에도 충분히 말해질 만한 요소가 많은 작품이지만, 이 쟁점을 끌어안을 것인지, 의심할 것인지에 따라 영화에 대한 입장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 위의 필자들의 지적은 <두만강>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죽음을 주제화한다는 명목하에 극적 장치로 사용하는 일련의 영화들, 이를테면 죽음 자체에 대한 개입은 없고 그것의 상징적 재현의 효과에 몰두하는 영화들 모두에 대체로 해당되는 것이다. 나 역시 영화 속 아이의 죽음은 그 어떤 죽음보다 타자화된 죽음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걸 어떤 경로로든 형상화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영화에 대해서는 아무리 그 의도가 훌륭해도 일단 의심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러한 무조건적인 의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만한 순간들을 나는 <두만강>에서 마주한 것 같다. 이상하다. 위의 필자들이 언급한 일련의 장면들이 나는 껄끄럽지 않았다. 아니, 아이들의 죽음, 창호의 투신이 갑작스럽거나 어른의 세계를 위해 내던져진 관념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모순된 문장처럼 들리겠지만, 그 죽음들이 그저 죽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평소와 다른 이 느낌, 당혹스럽지만 이상하게도 굳게 믿게 되는 이 느낌의 근원을 영화 안에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그러니까 이 글은 위의 쟁점들에 대한 위의 필자들과 반대되거나 다른 자리에서 <두만강>을 옹호하는 입장에 서보려고 한다. 소년은 “벌써 떠나가는 길에” 있다 영화의 마지막 창호의 투신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돌아가야만 하는 두 지점이 있는데, 영화 전체에서 가장 기이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순간들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하나는 영화의 첫 장면이다. 한참 동안 카메라가 꽁꽁 얼어버린 두만강의 하얀 풍경을 바라본 뒤, 마을의 어른 둘이 카메라쪽으로 다가온다. 카메라가 고개를 숙이자, 한 소년이 웅크린 채 눈을 감고 누워 있다. 소년을 내려다보던 어른들이 “창호 아닌가?”라고 말하자, 갑자기 소년이 눈을 번쩍 뜨더니 강 저편으로 빠르게 도망을 친다. 영화는 그가 점처럼 사라질 때까지 그 광경을 계속 지켜본다. 창호는 거기서 무엇을 하던 중이었을까. 깜빡 잠이 들었던 것일까, 죽은 척 장난을 치고 있었던 것일까.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탈북한 소년들로 추정되는 시체가 언 강 위에 창호와 거의 유사한 자세로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나온다. 이 두 장면은 서사상의 필요성을 넘어서는, 뭔가 이상한 기운을 품고 연결되어 있어서 쉽게 잊을 수 없다. 죽음을 흉내내는 소년과 실제로 죽은 소년들의 경계(두 장면 사이에는 ‘두만강’이라는 타이틀이 뜬다), 그러나 그 경계를 넘어서 결국은 공유되는 죽음의 공기. 공안이 죽은 소년들의 몸을 강 밖으로 끌어내는 광경을 멀리서 거리를 두고 찍은 두 번째 장면을 보고 나면, 죽은 듯 누워 있던 창호의 몸에 밀착했다가 그가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던 첫 번째 장면이 왠지 창호의 꿈결처럼 느껴진다. 혹은 창호의 그 모호한 행위와 거기 내재된 모호한 기운은 뒤이은 탈북 소년들의 명백한 현실의 죽음과 서로를 품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혹은 창호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이미 육체적으로 영화적 타자의 자리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둘 사이에 어떤 반복, 혹은 교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지점은 영화의 중반 즈음, 탈북 소년 정진과 친구가 된 창호가 정진을 집으로 데려온 뒤, 함께 밥을 먹기 위해 두부를 사러 갔을 때다. 두부를 사서 돌아서는 창호를 두부를 만들어 파는 여인, 아마도 첫 장면에서 얼음 위에 누워 있던 창호를 발견했던 그 여인이 갑자기 소년을 붙잡으며 “니 죽은 게 어떻게 두부를 빌어먹니?”라고 묻는다. 창호는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그녀를 돌아보며 대답없이 나가버린다. 첫 장면의 상황을 떠올리면 이해가 가는 정황이기는 해도, 그로부터 영화가 한참 진행된 뒤, 웃음기를 거두고 정색하며 던져진 여인의 물음, 그걸 서둘러 뿌리치는 소년의 모습은 어딘지 낯설고 생경하다. 말하자면 위의 두 지점에서 창호는 스스로를 죽은 사람처럼 다루거나, 혹은 그는 죽은 사람처럼 다뤄지고 있다. 그걸 단지 아이의 제스처이거나 어른의 농담이라고 치부하기에 그 행위와 말에는 일순간 현실을 정지시키는 것 같은 정적이 감돈다. 그렇다면 이 순간들은 그저 영화 말미 창호의 죽음을 암시하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인가. 장률은 인터뷰에서 사람이 죽을 때는 그전에 언제나 반드시 흔적이 있는데, 죽기 얼마 전, 창호가 창밖으로 무술 동작을 하면서 살짝 뛰어내리는 모습이 바로 그가 “벌써 떠나가는 길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멋지게 설명했다. 그런데 앞의 두 지점은 그런 흔적, 혹은 암시와는 좀 다른 느낌을 갖고 있다. 나는 그 순간들을 보며 차라리 죽음은 이미 너무 가까이 있거나, 처음부터 거기 있다는 표현을 쓰고 싶어진다. 창호가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순간이 느닷없거나 과도한 죽음이라고 생각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때 창호는 죽음의 위협에 당면한 탈북 소년들을 도와주는 자가 아니라, 애초에 그 소년들과 공동의 운명을 지닌 존재처럼 보인다. 물론 살아 있는 소년을 두고 이미 죽음은 거기 있다, 는 표현을 쓰는 건 그를 영화적 관념의 도구로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잠시 창호와 정진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죽음, 행위 그 자체로 읽혀야 하는 까닭 창호와 친구들은 어느 날 폐교 구석에서 불을 쬐며 쉬고 있는 탈북 소년들과 마주친다. 창호 무리는 처음에는 적개심을 보이지만, 탈북 소년 중 한명인 정진이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하자, 대신 다가올 축구시합에 나오라고 조건을 건다. 정진은 약속하는데, 음식을 요구하는 정진의 모습에는 구걸과는 사뭇 다른 당당함이 있다. 창호는 음식을 가져오고 정진에게 건넨다. 그때 카메라가 이 모습을 찍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카메라는 창호가 정진에게 음식을 주는 그 순간을 폐교의 창밖에서 멀리 떨어져 찍었다. 둘 사이에는 별말이 없고 창호 무리는 먹을 것을 준 뒤에 바로 그곳을 빠져나간다. 그러니까 그들은 탈북 소년들이 허기를 채우는 모습을 구경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간 뒤에야 카메라는 폐교 안으로 들어와 비로소 탈북 소년들이 먹는 모습을 그저 지켜본다. 여기에는 그 어떤 비굴함도, 동정도 없고 그저 ‘사실’만 있다. 탈북 소년들은 배가 고픈데 먹을 게 없고, 옌볜의 소년들은 먹을 건 있는데 축구를 잘하는 선수가 부족하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가진 걸 부족한 것과 교환한다. 심지어 이후, 정진이 아무도 없는 창호의 집에서 쌀을 가지고 나올 때도, 그는 그걸 당당하게 밝히고, 창호 역시 별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물론 탈북자들에 의한 마을의 피해가 눈에 띄게 커지면서 이 관계도 위태로워지지만, 그전까지, 그리고 영화의 엔딩에서 기본적으로 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이기 위해 애쓴다. 정진과 창호 사이에 쌀, 약속, 축구, 미사일 모형, 그리고 마침내 생명이 교환될 때, 여기엔 서로가 서로를 타자화하지 않으려는 부단한 움직임이 있다. 정진은 불쌍한 탈북자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이때 타자에 대한 환대, 와 같은 거대한 수사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이들의 국적이 다르다는 태생적 차이가 아니라, 물적 조건을 넘어서 이들의 자리바꿈이 가능해지는 순간들, 감정적인 평등함이 작동하는 순간들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다. 정진이 탈북자라는 사실 때문에 그 순간들은 늘 (장률의 말대로) ‘목숨을 걸고’ 일어나므로 창호와 정진의 관계에는 언제나 죽음의 기운이 어떤 형태로든 둘러싸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어른들의 현실과 다른 삶의 순수함 가운데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을 중심에 두고 매번 타자의 자리로 가기 때문에 영화적 활력이 나오는 것이며, 나는 그것이 추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미 죽음이 거기 있는데, 창호는 굳이 왜 영화의 마지막, 지붕에서 뛰어내리며 육체적으로 부서져야 했을까. 영화는 그의 죽음을 굳이 그런 식으로 명시해야 했을까. 영화가 후반에 접어들자, 탈북자의 소행으로 짐작되는 사건들로 마을이 뒤숭숭해지면서 정진에 대한 창호의 마음도 잠시 돌아선다. 옌볜의 소년들에게 구타를 당한 정진이 무슨 마음인지 창호도 없는 집에서 창호의 누나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창호가 정진에게 화풀이를 하자, 정진은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며, 이미 여동생은 죽었다고 말한다. 정진이 떠난 뒤, 누나는 그가 창호를 위해 가져온 미사일 모형을 전해준다. 정진은 우표 수집을 하는 창호를 위해 북한 우표를 가져다주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해서 대신 그만큼 귀한 모형을 가져온 것이다. 창호는 받침 부분이 부러진 미사일 모형을 아무 말도 못하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단조로운 대사와 어딘지 결연한 행동으로 채워진 화면에는 죽음과 생존, 배신과 신뢰, 분노와 애틋함, 연민과 후회 등이 응축된 감정들이 말없이 서로를 건드리며 감동을 자아낸다. 그런 다음 화면은 눈 내리는 창가에 오롯이 세워진 정진의 미사일 모형 장면에 온전히 할애되는데, 왠지 모를 슬픔과 꿋꿋함의 정서가 동시에 스며든다. 우표가 아닌 미사일. 그러니까 편지의 오고 감이 아니라 한번 발사되면 돌아오지 못하고 어디선가 폭발해야만 하는 운명. 정진이 주고 간 미사일 모형을 보면서 창호는 이제 자신이 정진에게 되돌려줘야 할 무언가를 생각하며 다짐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밖에서는 총소리가 들리고 창호는 잠들지 못한다. 이 모든 장면들이 지나간 뒤 벌어진 창호의 투신은 그러므로 비통하기는 해도 급작스럽지 않다. 창호가 지붕에서 내려오라는 어른들의 말에 잠시 프레임 아웃될 때, 우리는 잠시 안도하지만, 창호는 추락의 도약을 위해 잠시 뒤로 빠진 거였다. 소년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어른들과 타협을 보려는 게 아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어 보이는 행위. 그러므로 내게 그것은 누군가를 대신한, 혹은 누구를 위해서 선택한 희생의 행위로도, 물신화된 행위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희망이나 절망의 양분화된 차원으로 규정하기도 망설여진다. 왜냐하면, 창호의 투신은 행위의 결과를 내다보며 선택된 것이 아니라, 오직 행위 그 자체로서 읽혀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 소년은 죽음을 관념적으로 사유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의 투신은 오직 지붕 아래에서 수갑을 찬 채 지켜보고 있는 정진을 향해 있다. 그것은 창호에게 주어진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인 유일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창호의 이런 결단을 죽음이라는 단어, 영화 밖의 우리가 기껏해야 관념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단어로 고정하고 싶지 않지만, 굳이 그래야만 한다면 이 행위를 자살이 아닌, 창호의 두 번째 죽음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 말의 애매함을 좀더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다른 한축에서 진행되는 순희의 이야기를 따라가볼 필요가 있다. 한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난 엄마 대신, 창호와 할아버지를 챙기며 사는 순희는 말을 못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곱다. 장률의 다른 영화를 한편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티없는 여자의 일상에 느닷없이 불행이 침투하리라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어느 날 밤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며 하룻밤만 재워달라는 탈북자의 청을 할아버지는 거절하지 못하는데, 다음날 우리는 노인과 손자가 도시로 외출한 걸 알게 된다. 불길한 예감. 이후 영화는 예상대로 진행된다. 의연한 어린 정진과 확연히 대비될 정도로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볼 수 없게 비굴하게 호소하던 탈북자는 어느새 폭력적으로 돌변한다. 이 장면은 정한석의 말대로 다분히 도식적인 구석이 있다. 순희가 차려준 밥을 먹고 배가 부르자 그는 술을 요구하고 순희는 술을 건네준 뒤 자리를 뜬다. 그때 아마도 순희가 켰을 텔레비전에서는 북한 찬양 방송이 나오고, 갑자기 미쳐버린 남자는 순희에게 다가가고, 프레임 밖에서 들려오는 순희의 울부짖음,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여전히 흘러나오는 북한 방송의 화면이 겹친다. 이 장면의 모든 상황은 작위적이며, 순희가 강간당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약간의 위안을 얻는 걸 제외하고는, 그 작위성은 더없이 끔찍하게 여겨진다. 그렇다면 그런 명백한 함정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이 순간을 필요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 탈북자들에 의해 그런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장면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는 장률의 대답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당연히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물론 나는 이 장면의 작위성에 순결한 여자에 대한 영화의 상투적인 가학성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심을 모두 거두지는 못하지만, 만약 이 장면이 있어야만 한다면, 그건 이후 순희의 결단들을 영화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설득이 된다. 순희의 이상한 선택 혹은 장률의 복합적인 심경 순희의 선택들. 그건 창호의 선택과 영화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창호의 것만큼 명백하고 단순하지는 않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고 윤리적인 궁지에 처한다. 그 사건으로 아이를 갖게 된 순희는 할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그녀는 수술실에서 도망을 나오고, 할아버지는 그런 손녀를 말리지 않는다. 보통 이런 경우라면, 뱃속의 아이를 차마 죽이지 못한 여자는 결국 아이를 낳는 수순을 따른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화의 결말에 그녀는 다시 병원을 찾는다. 순희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지 않고 나온 이후, 그리고 다시 병원을 찾는 시점 사이에 그녀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그 사이에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있다. 슬픈 표정으로 눈밭에 앉아 있던 순희 뒤로 마을의 노인 한명이 지나가다 그 옆에 앉는다. 치매에 걸린 듯 보이는 이 노인은 영화 앞부분에서도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매번 두만강을 건너려다 사람들에게 잡혀 집으로 돌려보내지곤 했다. “어렸을 때 어머니 손잡고 이 강을 건널 때만 해도 다리 하나가 있었는데”라고 노인이 중얼거리자, 카메라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면 산으로 둘러싸인 얼어붙은 강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런 다음 뒤이은 장면에서 순희는 스케치북에 노인에게 들은 다리의 형상을 그려본다. 그림 속 다리의 풍경이 이상하게도 생생하고 그것이 벼랑 끝에 선 순희에 대한 유일한 위로처럼 느껴져서, 이 장면의 연결에는 신비로운 느낌이 있다. 그래서인지 모든 이야기가 종결된 뒤 에필로그에 이르러, 영화가 눈덮인 두만강 위에 과거의 혹은 상상 속의 그 다리를 세워두고 노인으로 하여금 건너게 하는 판타지 장면에서, 문득 그 다리는 영화적으로 순희에 의해 마련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순희가 다리 그림을 그린 뒤에, 영화가 에필로그에 이르기 전, 그녀로 하여금 기어이 낙태를 선택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더 당혹스럽다. 순희는, 혹은 영화는 상상 속에서 고향으로 향하는 정서적인 다리를 한편에 기어이 만들어두고, 다른 한편에서는 탈북자의 폭력에 의해 잉태된 아이를 죽이는 결단을 내린다. 물론 그 뱃속의 아이를 어떤 상징으로 단정하고 해석하는 건 위험한 짓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 이런 두 가지 선택이 영화 속에서 양립할 때, 나는 둘 사이의 간극에 영화의 슬픔이 있다고 느낀다. 말하자면 고향에 대한 장률의 분열. 장률은 어찌할 수 없는 두 마음을, 과거와 현재를, 상상과 현실을 내버려두고 바라본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봉합하거나 채우지 못한다. 순희는 고통을 무릅쓰고 아이를 낳아 이 분열을 메워주는 천사가 아니다. 나는 순희가 장률이 천사라고 칭했던 <이리>의 백치 같은 여인 진서보다 장소의 기억에 대한 장률의 감정이 훨씬 더 구체화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순희가 낙태를 한번 미루고 영화의 끝에 다시 병원을 찾는 시점은 창호가 투신하는 시점과 영화적으로 맞물리며 그건 다분히 의도된 영화적 선택일 것이다. 그렇다면 장률은 기억 속의 고향이 결국 삶으로부터 죽음으로 부서질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는 것일까. 혹은 마지막 에필로그의 판타지를 개입해서라도 죽음으로부터 희망을 불어넣고 싶은 것일까. 둘 다 아닌 것 같다. 고향을 판타지적으로 재현하고 싶다는 욕망, 혹은 리얼리즘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 모두 왜곡과 미화, 냉소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걸 장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그러므로 <두만강>의 어떤 부분이, 누구의 선택이 사실적이고 상상적인지, 이 세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묻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다만 나는 장률에게 있어서 고향의 기억을 영화화하겠다는 결심이 희망과 절망, 혹은 삶과 죽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감히 죽음으로부터 삶을 구원할 수도 없고, 행여 그럴 수 있다고 믿어서도 안되지만, 적어도 죽음을 죽음으로부터 꺼내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창호의 마지막 행위, 그 두 번째 죽음은 단순한 자멸이 아니라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 이를테면 마을의 노인이 죽던 날 밤, 사람들이 애도의 노래를 부를 때 환하게 뜬 보름달의 정서, 할아버지가 창호에게 “내 죽으면 여기 묻어라. 앞에 두만강이 보이지 않니”라고 말할 때 노인의 시선을 따라 펼쳐진 아련한 강의 감정, 그러니까 죽음을 말하고 있지만, 그 순간 영화에 퍼지는 죽음이라고도, 삶이라고도 표현할 길 없는 절실한 기운. 다시 말하지만 죽음을 죽음으로부터 꺼내는 것, 그것이 장률의 기억이고,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최소의 예의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두만강>은 고향에 대한 오랜 기억과 마주한 감독이 일상적 구체성을 넘어서 감정의 물질성에 도달하려는 시도다. 설령 그 시도의 결과가 관념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해도, (그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나는 그 관념도 기꺼이 끌어안겠다고 말하겠다.

만인의 연인에서 정신병 환자까지

<젊은이의 양지> A Place in the Sun 1951 물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 <젊은이의 양지>는 아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 작품으로 드디어 만인의 연인, 세기의 미인으로 떠오른다. 야망과 비애로 가득 찬 한 남자가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티없이 맑은 여인, 그게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역할이다. 영화사상 가장 그윽한 눈매를 지닌 남자 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시선을 앳되고 환한 미소로 찰랑거리듯 응시하는 그녀의 연기가 더없이 인상 깊다. <자이언트> Giant 1956 <자이언트>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록 허드슨과 제임스 딘의 연인이었다. 말하자면 신사와 반항아 혹은 듬직하고 다정한 남자와 신비하고 거친 남자가 동시에 사랑하는 여인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이 작품은 한국 관객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황야를 일구는 두 남자의 사랑과 야망의 서사시라고 잘 알려져 있지만 결국 그 두 남자가 끝내 염원했던 것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연기한 바로 그 여인이었다는 것을 그 누가 모를 것인가. <지난 여름 갑자기> Suddenly, Last Summer 1959 테네시 윌리엄스의 원작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한 두 작품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와 <지난 여름 갑자기>. 둘 중 어떤 작품을 그녀의 대표작으로 고를지는 취향의 문제도 작용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생기 넘치는 말괄량이로 자기 자리를 잡은 이 배우가 이제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는 텅 빈 눈동자의 정신병 환자까지도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속 캐서린 헵번이 내지르는 연기를 한다면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흡수하는 연기로 지지 않고 맞선다. <클레오파트라> Cleopatra 1963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곧 클레오파트라, 라는 공식이 우리에게는 오랫동안 통용돼왔다. 해마다 빠지지 않고 적어도 한 차례는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방영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다시 보아도 영화 속 그녀는 늘 당당하고 기품있으며 고혹적이었다. 비교적 초기 출연작인 <쿼바디스>와 함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대표적인 역사극으로 손꼽히는데, 그녀는 이 작품으로 영화가 탐내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여인 클레오파트라를 영원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1966 시종일관 귀를 찢고 머리를 폭파시킬 것처럼 신경질적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실제 부부였던 리처드 버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영화 속 광기의 부부로 재탄생한다. 여기엔 말괄량이도 귀부인도 여왕도 없고 그냥 흉하디 흉한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만 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생애 첫 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은 건 1961년 <버터필드8>이지만 그녀는 마침내 이 작품으로 1967년 생애 두 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런던] “전쟁 뒤에 남겨진 상처 얘기하고 싶었다”

켄 로치 감독이 오랜만에 내놓은 스릴러영화 <루트 아이리시>가 지난 3월18일 영국의 예술영화전용관인 쿠존 메이페어 시네마와 스카이 무비 채널의 PPV 서비스를 통해 개봉했다. 지난해 제63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막강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루트 아이리시>는 퍼거스(마크 우마크)가 이라크에서 사설 경비원으로 함께 일한 동료 프랭키(존 비숍)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 리버풀을 찾으며 시작된다. 고향에 돌아온 퍼거스는 친구의 죽음을 설명하는 경비업체 간부들의 이야기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고 직접 진실을 파헤치기로 한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루트 아이리시’는 바그다드의 ‘그린 존’과 바그다드 공항 사이에 놓인 위험한 길을 칭하는 말이다. 영화는 전쟁에 대한 언급은 되도록 피하면서 전쟁이 가져오는 다른 여러 영향들 특히 전쟁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 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해 좋은 평을 얻었다. 영화 개봉 하루 전 켄 로치 감독을 인터뷰했다. -영화 개봉일이 드디어 정해졌다. =사실 꽤 제한적인 여건에서 개봉한다. 상업성이 부족한 독립영화들은 극장 개봉에 언제나 커다란 어려움을 겪는다. 영국에서는 미국 상업영화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영화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매체라고 믿는다. 미국 상업영화만 극장 개봉을 할 수 있는 현재의 영화계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서 <루트 아이리시>를 예술영화전용관뿐 아니라 텔레비전 채널의 PPV 서비스를 통해서도 개봉하기로 한 것인가. =그렇다. <루트 아이리시>가 확보한 스크린은 영국 전역에서 고작 20개뿐이다. 스카이 무비에 영화를 제공하기로 한 것은 예술영화전용관을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실제 전쟁장면이 많이 삽입됐다. 실제 장면을 활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음, 일단 전쟁 자체가 아닌 전쟁이 끝난 뒤 남겨지는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전쟁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한 남자, 결코 전쟁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남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전쟁 중 그가 본 잔혹한 이미지들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표현해낼지 고민하다 새롭게 촬영할 필요는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전쟁장면을 새롭게 찍었을 경우, 관객은 이것이 재창조된 이미지라는 것을 인지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실제 장면이 주는 것만큼 임팩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피나 전쟁 중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모두 실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공포는 배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영화에서 퍼거스가 넬슨(트레버 윌리엄스)의 얼굴에 천을 덮고 물을 부으며 심문하는 장면은 아주 사실적이다. =나 역시 현실을 잘 반영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그러니까 부시와 럼스펠드는 이런 방법의 심문이 단지 심문의 효과를 높이는 데 필요한 기술일 뿐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와 다르다. 이것은 분명한 고문이다. -영화적 장치 없이 물고문 장면을 촬영했다고 들었다. =첫 촬영 때는 트레버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고 작은 호스를 만들어 그가 숨 쉴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촬영이 잘 되지 않았다. 결국 트레버가 그냥 해보겠다고 해 5~6시간 만에 촬영을 완료했다. 트레버는 촬영이 끝난 당시에는 괜찮아 보였으나 그로부터 얼마 동안 물고문당하는 악몽에 시달렸다고 했다. -당신 작품에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가 많이 등장한다. 영화가 이런 문제들에 실질적인 대안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가. =영화는 대중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답을 해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영화가 어떤 확실한 대안을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정치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어떤 특정한 정보나 사회·정치적 논쟁을 이슈화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제기한 이런 이슈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온전히 관객의 몫이라고 믿는다. -미국시장에 진출해보고 싶지는 않나. 미국쪽에서도 분명 어떤 제안이 있었을 것 같다. =1970년대 초반에는 조금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았다. 유럽영화들에 더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우리 아이들을 ‘미국인’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또 미국에서는 제대로 된 축구 관람도 못하지 않나! (웃음) -계획하고 있는 다음 작품이 있나. =이번 봄부터 새로운 작품에 들어간다. 감옥에 가지 않는 대신 봉사활동을 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번 작품처럼 어둡지 않다. (웃음)

끔찍한 농담인가 극한의 예술인가

논란의 영화가 온다.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크라이스트>다. 제목이 풍기는 도전적인 뉘앙스만큼이나 영화는 첫 공개 직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찬반양론에 휩싸여왔다. 강력한 표현 수위에서부터 영화가 포괄하는 생각들까지 논란의 여지는 강력하다. 그 찬반의 의견들을 짚으며, 동시에 그 의견들이 놓치고 있는 <안티크라이스트>의 핵심을 새롭게 탐색하며 이 논란의 작품을 소개한다. 영화를 공개하여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 라스 폰 트리에 영화 작업의 진정한 최후 공정으로 자리잡은 지는 오래됐다. 극장에서의 야유와 박수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말과 글의 공방전 그 때문에 종종 일어나는 소동들. 예컨대 2009년 칸에서 열린 <안티크라이스트> 기자회견장의 풍경. 어쩌면 그 자리의 모두가 공모자였을지도 모르지만(자, 누가 시비를 거는지 보자!), 하여간 영국의 한 타블로이드지 기자가 손을 들었고 “어떻게 당신의 영화를 정당화할 것인가?” 하고 물었다. 일단 심사가 한번 꼬이면 비아냥과 허세의 제스처가 본능처럼 튀어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폰 트리에다. <유로파>가 황금종려상 수상에 실패한 것에 불만을 품고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로만 폴란스키를 가리켜 “난쟁이” 운운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그가 아닌가. 그는 참지 않았다. “내가 왜 정당화해야 하는가.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 당신이나 관객을 위해 만들지 않았다. 내가 누구에게라도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운을 뗐고 한번 심기가 불편해지자 마침내 그의 입에서는“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감독이다. 나머지는 다 과대평가 받았다”는 말까지 쏟아졌다. 이날의 입씨름이 꽤 시끄러웠는지, <안티크라이스트>에 관한 많은 기사와 평문들이 잊지 않고 이 시시비비를 적어두고 있다. 이후에도 찬반양론은 멈추지 않았다. 일례로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지수로 표현하는 영화 사이트 ‘로튼 토마토’를 보면 150명의 평자 중 긍정의 평이 72, 부정의 평이 78로 박빙이다. 지지의 글 중 대표적인 건 이런 것이다. “언제나 선동가였던 폰 트리에는 어떤 진지한 영화감독, 심지어는 브뉘엘과 헤어초크 이상으로 관객을 대면하고 뒤흔든다. 그는 섹스, 고통, 지루함, 신학 그리고 스타일 넘치는 실험들로 이것을 한다. 왜 아니겠나. 우리는 적어도 영화사 중역이 끔찍한 물타기를 한 이후가 아닌, 정확히 감독이 의도한 그것대로 영화를 보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로저 에버트) 수적으로 다소 우세한 비판론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라스 폰 트리에는 <안티크라이스트>로 크고 비만한 병신 예술작품을 행한다. 마치 비평적 남용과 의도적으로 연애라도 즐기듯, 이 덴마크의 악동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자의식적으로 도발적인 이미지로 이 신학적-심리학적 호러 작품을 빽빽이 포장한다.”(<버라이어티> 토드 매카시) “내장된 고통을 만들기를 원하는 <안티크라이스트>는 결국엔 진실한 경험을 투사하는 데 있어서는 덜 성공적이다. 이 급격한 전술은 결국 마비된다.”(<빌리지 보이스> 짐 호버먼) 능수능란한 이미지 직조술 vs 뻔뻔하고 폭력적인 고문 포르노 지지자들은 강력하면서도 몽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감독의 능수능란한 이미지 직조술 혹은 배우들에게서 육체적 극한의 연기를 끌어내어 그것을 통각으로 느끼게 하는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윌렘 데포와 샬롯 갱스부르는 높은 수위의 연기를 해냈고 샬롯 갱스부르는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편, 그 찬사의 기준들이 고스란히 역겨운 가짜로 보이거나 그것에 감독의 진심이 담겨 있다 해도 미숙하다고 판단하는 이들이 이 영화를 반대한다. 극렬 반대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 영화는 일종의 뻔뻔하고 폭력적인 고문 포르노에 불과하며 자기 과시로 도배된 허깨비 같은 영화다. 폰 트리에라면 그 찬반의 태도 자체가 필시 못마땅할 것이다. 그의 작품이 논란을 몰고 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안티크라이스트>는 그 자신의 더 개인적인 결과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폰 트리에는 <안티크라이스트>가 자신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한 일종의 요법으로서 출발했다고 밝힌다. 우울증이 극에 달해 있을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삶과 꿈에 불현듯 등장하곤 했던 불안과 두려움의 이미지와 유년 시절부터 즐겨 읽었던 스웨덴의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작품의 어떤 불온한 인물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남들이라면 안식과 평안함으로 탈출하려 했을 그 공황기를 광기의 프로젝트로 탈출하려는 것이었다. 그가 “내 영화 중 영화적으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영화는 아니지만 이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임에 틀림없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의 이야기 자체가 한 인물의 파탄적인 공황상태를 치료하는 과정이다. 부부가 격정적인 섹스를 나누는 동안 그들의 갓난아기가 문이 열린 요람 바깥으로 나온다. 그러더니 창문으로 기어 올라가고 부부의 섹스가 정점에 달하는 그때 아기는 눈이 오는 창밖으로 떨어져 죽고 만다. 장면이 바뀌면 부부는 비탄에 빠져 있다. 아니, 아내(샬롯 갱스부르)가 비탄에 빠져 있고 남편(윌렘 데포)은 그녀를 치유하기 위해 애쓴다. 심리치료사인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그들이 ‘에덴’이라 부르는 아무도 없는 숲속의 작은 오두막을 찾아 안정과 정상을 회복하려 한다. 하지만 이 집 주변에서 오히려 기괴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남편의 치료가 실패할 조짐을 보이더니 마침내 아내는 광기로 물들고 남편을 해치려 든다. 폰 트리에는 프롤로그-비탄-고통(혼돈이 지배하리라)-절망(대학살)-세 거지들-에필로그로 장을 나눠 영화를 전개한다. 장점과 단점은 아무래도 뚜렷해 보인다. 폰 트리에의 영화는 우화 내지는 동화의 방식을 즐겨 취하며 그것으로 서사를 압축 또는 은유하는데 <안티크라이스트>도 그런 장점을 지녔다. 동시에 몇몇 놀랄 만큼 어둡고 불온한 이미지들은 때론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그림에 접근한다. 그러나 전시적 강도를 더 고려한 것처럼 보이는 위악적인 장면들이 영화를 때때로 위태롭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내의 광기가 극에 달했을 때 그녀가 남편의 성기를 학대하거나 자신의 음핵을 가위로 자르는 장면들이 대표적이다. 혹은 폰 트리에는 어떤 불가사의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매장되어 있는 과거를 불현듯 길어올리곤 하는데, 이때 그 의도의 비약이 심각하여 도리어 유치해지는 때가 있다. 이 영화의 에필로그가 대표적이다. 마지막 헌사, 고백문인 동시에 불안감 가득한 유아적 표식 장단점을 교차하면서 영화는 에덴에서 벌어지는 아담과 이브의 싸움으로, 근대적 합리성의 믿음과 태곳적 선악의 격돌로 나아간다. 그런데 이때 <안티크라이스트>에는 더 말해야 할 중요한 지점이 한 가지 남는다. 폰 트리에는 그 점에 관하여 영화가 다 끝난 다음에야 알려준다. 영화가 끝나자 다소 엉뚱해 보이는 자막이 뜬다. “이 영화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게 바칩니다.” 이미 데뷔작 시절부터 러시아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경외심을 숨기지 않은 폰 트리에지만, 이처럼 노골적인 경의를 드러낸 적은 예전에 없었다. 성기를 자르고 악마적 본성이 판치는 이 영화와 도저히 어울려 보이지 않는 이 헌사.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이 헌사에 관하여 지적은 많지만 납득할 만한 설명이 많은 것 같지 않다. “폰 트리에가 타르코프스키와 공유하는 것은 바로잡을 수 없을 만큼 위선적인 하찮음과 잔인함, 세속적 권력구조에 대한 강박적 반감”(<필름 코멘트>에 기고한 각본가 래리 그로스의 글)이라고 멋지게 표현한 글이 있지만 이 글은 매력적인 내용과 무관하게 <안티크라이스트>에 관해서는 다소 추상적인 설명이 된다. 적어도 <안티크라이스트>에서라면 두 감독의 사이는 좀더 구체적이다. “내가 조그마한 텔레비전으로 영화 <거울>을 보았을 때 나는 황홀경에 빠졌다. 만약 종교에 관하여 말한다면 이것이 종교적 관계다. 나는 그의 영화들을 수차례 보고 또 보았다. 나는 그가 나의 첫 번째 영화 <범죄의 요소>를 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가 매우 싫어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건 정직한 리액션으로 느껴진다. 그는 나보다 앞선 세대다. (하지만) 나는 그와 가깝다고 느낀다. 만약 어떤 감독에게 영화를 바친다고 하면 누구라도 당신이 그로부터 훔쳤다고 말하진 않을 것이고 이건 정말 도망치기 쉬운 방법이지 않겠나.” 폰 트리에의 말이다. 그러니 영화사상 대표적인 안티크라이스트(폰 트리에)가 영화사상 대표적인 크라이스트(타르코프스키)에게 영화를 바치는 이 아이러니는 순수한 경외심을 넘어서서 어떤 도전장이며, 그 말은 사실 “이 영화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게서 훔쳐왔습니다’라는 고백문인 동시에 행여 훔쳐 썼는데도 누군가가 몰라주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일부러 새겨넣은 불안감 가득한 유아적 표식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이미지를 흠모하되 그의 신앙을 반격하고 그의 미의 철학은 경외하지만 종교 철학은 부정하는 폰 트리에는, <안티크라이스트>를 철저하게 타르코프스키적 이미지로 주조하면서도 그 결과는 안티 타르코프스키적 영화에 도달한다. 비. 바람. 안개. 불. 공히 타르코프스키의 그것으로 알려진 이미지들이 <안티크라이스트>에서도 중요하고 지배적이며 꿈결 같은 순간들을 형성한다. 다만 그건 향수의 꿈이 아니라 모든 게 끔찍한 악몽의 꿈이다. 만약 인물과 관계된 것이라면, <안티크라이스트>는 언제나 아이가 최후 희망의 징표로 남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와 반대로 그 아이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여성, 순결하고 위대한 여성, 특히 어머니로 대변되는 일종의 마리아는 여기에 없으며 악한 본성을 발산하는 광기의 여인만이 있다(그리고 우연이겠지만 윌렘 데포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그리스도 역을 맡았다). 타르코프스키가 그의 유작 <희생>에서 구원과 호소의 노래 바흐의 <마테 수난곡>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흐르게 한다면 라스 폰 트리에는 <안티크라이스트>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거절과 외면의 노래 <나를 울게 내버려두소서>를 흐르게 한다. 마침낸 타르코프스키가 죽은 나무를 살려내는 영화(<희생>)를 세상에 남기고 떠나갔다면, 지금 폰 트리에는 <안티크라이스트>에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우뚝 세워두고 불안을 탐색한다. 관객을 조급하게 만드는 폰 트리에의 재능 혹은 사기술 존경하는 선배 감독 영화의 모든 미적 이미지들을 차용하되 그것으로 그의 사상을 전적으로 되받아치기. <안티크라이스트>는 그런 점에서야말로 흥미진진한 안티다. 혹은 더 정확히 말해 타르코프스키와 크라이스트에 관한 강력한 패러디다. 타르코프스키는 그가 숨을 거두던 해인 1986년의 한 인터뷰에서 “나는 이 영화에서 기독교의 자기희생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회에서 살아가려 발버둥치는 사람의 한 측면을 다루려고 했다”고 말했다. 현존하는 감독 중 거기에 가장 동의하지 못할 사람이 폰 트리에일 것이며 적어도 <안티크라이스트>가 그 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작품을 타르코프스키에게 바쳤다. 그런데 망자인 타르코프스키가 <안티크라이스트>를 좋아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폰 트리에가 12살 시절부터 테이블 위에 두고 보았다는 니체의 말년의 글 ‘안티크라이스트’. 폰 트리에가 신봉하는 무와 부정에의 의지 혹은 오해가 어디에 물길을 대고 있는지, 막연하게나마 그 안에 대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안티크라이스트>는 폰 트리에의 사상적 논쟁의 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안티크라이스트>에서 타르코프스키의 그림자가 중요하다 해도 그걸 일종의 주요 단서로 미뤄둔 다음 이 영화의 평가를 다시 시도할 필요도 있다. 그 마지막 헌사로서 영화는 흥미롭게 해석될 여지를 갖게 되었지만 그 알리바이와 무관하게 판단은 또한 다른 식으로 작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미적 논쟁이 다시 핵심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안티크라이스트>를 그냥 능란한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성스러운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건 이 영화에 관해 우린 어느 편에라도 서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되는데 바로 그렇게 조급하게 만들 줄 안다는 것이 더도 덜도 아닌 폰 트리에 영화 <안티크라이스트>의 뛰어난 재능 혹은 뛰어난 사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