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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추모] 반세기, 당신의 이야기에 흥분했습니다

그는 결국 단 한번도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지 못했다. 단 한편의 영화로 영화사에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기며 거장의 반열에 드는 이도 있지만, 적어도 시드니 루멧은 아니다. 33살에 <12명의 성난 사람들>(1957)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25편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지만 100대 영화에 뽑힌 것은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네트워크>(1976)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드니 루멧만큼 거장이란 칭호가 어울리는 감독도 드물 것이다. 무려 4차례나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번번이 고배를 안겨준 아카데미가 2005년 그에게 선사한 평생공로상이 진정 빛났던 까닭은 그것이 단지 81살의 영화계 원로에게 형식적으로 바치는 빛바랜 영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2년 뒤 루멧은 무시무시한 완성도로 미국의 비극을 포착해낸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2007)를 선보인다. 데뷔부터 마지막 작품이 된 이 영화까지 무려 50년의 세월을 격하여, 녹슬지 않은 날카로운 감각과 사그라지지 않을 열정을 과시하던 ‘평생 현역’ 시드니 루멧이 지난 4월9일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림프종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나이 향년 여든여섯. 늘 현재진행형이었던 그의 영화인생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세월도 시대도 아닌 오직 죽음뿐이었다. 변하지 않는 ‘시대의 양심’ 1924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성장한 루멧은 유대인 연극배우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4살 때부터 뉴욕의 아다시 극장 소속의 아역배우로 연기 경험을 쌓는다. 더불어 어린 시절 막 보급되기 시작한 텔레비전의 생방송을 보고 자란 그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1950년 에 채용되어 무려 500편 이상의 TV드라마를 연출한다. 연극으로 다져진 연기 경험과 방송 현장에서 체득한 저널리즘 특유의 현장성은 이후 그의 영화 작업의 기반이 된다. 1957년 배우 헨리 폰다의 강력한 요청으로 데뷔한 <12명의 성난 사람들>이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르며 일약 주목받는 감독이 된 루멧은 이후로도 꾸준히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지적이면서도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는 감독으로 주목받는다. 그는 드라마, 코미디, 로맨스, 스릴러, 뮤지컬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소화한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의 장기는 사회성 짙은 영화들에서 주로 발휘된다. 데뷔작을 시작으로 <뜨거운 오후>(1975), <네트워크> , <심판>(1983) 등 4편의 작품이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만 민감한 정치적 문제를 늘 과감하게 다루는 사회비판적 성향 때문인지 번번이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이유로 인해 변하지 않는 ‘시대의 양심’으로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감독 중 한명이기도 하다. 거장으로 불리는 감독들은 대개 오랜 시간 영화 작업을 하더라도 가장 빛나는, 혹은 시대를 대표하는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영광의 시기에 갇힌다고 볼 수도 있다. 반면 루멧의 가장 놀라운 점은 5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을 꾸준히 생산해내며 늘 청년의 활기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의 작품은 때로는 주목받지 못하고, 더러 완성도에 편차가 있을지언정 적어도 재미없는 영화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영화의 기본에 충실한 그의 힘은 이야기로부터 비롯된다. 흔히 루멧의 영화를 <에쿠우스>(1977), <다리에서 본 전망>(1961)과 같이 희곡을 영화화한 연극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 <뜨거운 오후>(1975, 동성애 문제), <허공에의 질주>(1988, 급진주의자의 삶)와 같이 가족과 개인의 정체성 문제에 집중한 작품, 그리고 <형사 서피코>(1973, 부패한 경찰), <네트워크>(매스미디어 문제), <전당포>(1965, 홀로코스트)처럼 사회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작품으로 구분하곤 하는데 본질적으로 이 세 경향은 이야기와 캐릭터라는 큰 틀로 포섭된다. 그가 유난히 영화감독들에게 사랑받는 감독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루멧만큼 영화의 보편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충실히 활용하고 또렷한 목소리를 내는 감독은 드물다. 할리우드 역사상 이야기를 가장 잘 다루는 감독으로 알려진 루멧의 핵심은 연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에 대한 깊은 이해,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저며낼 줄 아는 비판의식과 그것을 과감히 발하는 행동의 용기, 그리고 그것을 극적으로 녹여내는 이야기의 구성력에 있다. 전시와 공감의 화법 특정 스타일에 집착하기보단 이야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에 집중한 루멧은 그의 유명한 저서 <영화 만들기>에서 ‘좋은 스타일이란 눈에 띄지 않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래도록 고민하고 준비하여 현장에서 신속하게 촬영함으로써 현장에서도 연극처럼 배우의 감정선을 살려주며 함께 호흡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스타일은 수많은 스타일들을 ‘영화’라는 대명제 속으로 통합시킨다. 그는 형식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할리우드식의 환상이나 장르의 쾌감을 전시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되 문제의식이 녹아 있는 이야기를 자연스레 ‘느낄 수’ 있게 함으로써 특정 시기에 붙잡히지 않고 늘 시대와 호흡하는 영화적 활력을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영화가 포착하고 재현하는 비극적 감수성은 늘 동시대와 치열하게 호흡하는 시대정신의 발현으로 읽힌다. 그렇게 루멧은 끊임없이 관객에게 말을 건다. 장르를 유용한 이야기 도구로 활용할 줄 아는 이 능수능란한 거장의 손길은 멜로드라마든 범죄물이든 법정드라마든 개의치 않는다. 그는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영화언어를 활용하여 사회를 얇게 저며 미국사회의 병폐와 그 속의 개인을 드러낸다. 때론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처럼 비극과 절망으로, 때론 <12명의 성난 사람들>처럼 황폐화된 민주주의에 대한 은유와 회복에의 희망으로. 그 와중에도 변함없는 것은 루멧이 관객에게 말을 거는 태도이다. 설득과 훈계가 아닌 전시와 공감의 화법. 여전히 관객의 지성을 믿는 이 거장의 따뜻하고도 서늘한 화법은 늘 현재와 호흡한다. 영화에 의한 사회의 변화를 믿지 않으면서도 부조리와 사회의 병폐를 이야기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고, 인생을 사는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영화를 선택한 ‘행동하는’ 거장은 스스로 ‘영화라는 사건의 목격자’가 되어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영상공작소] 당신이 바로 모바일 필름메이커!

얼마 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여러 영화감독님이 스마트폰으로 영화 찍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몇몇 현장을 보면 카메라만 스마트폰이지 나머지는 몇억짜리 예산의 영화 현장과 그리 다르지 않더군요. 수십명의 스탭과 함께하는 현장에는 커다란 지미집과 즉석에서 촬영소스를 확인하기 위한 현장 모니터가 있고, 스마트폰 앞에는 고가의 망원렌즈를 부착하고 촬영감독님이 손수 만든 스테디캠에 연결… 하지만 그걸 보고 착각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우리가 모바일 기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현장은 그런 럭셔리한 모습하고는 거리가 멀거든요. 그들은 이미 유명하신 감독님들이고 아마도 통신사나 휴대폰 회사에서 홍보차 큰돈 줘가며 한번 찍어보라는 경우이거나 연출·제작자가 영상기기의 얼리어답터 정도 되는 경우일 겁니다. 그럼 우리는? 우리는 유명하지도 않고 통신사에서 돈을 주지도 않을 것이며 더욱이 아주 가난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한번도 영화를 만들 거라고 엄두를 내거나 혹은 꿈도 꿔보지 않았을 겁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카메라가 달린 작은 휴대폰만 있거나 가방 속에 똑딱이 디카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 우리는 누구일까요? 바로 ‘모바일 필름메이커’가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바일 필름메이커란? 모바일 기기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보다 적은 스탭 수로 초저예산(Micro Budget이라고도 하죠)영화를 만들거나 혹은 혼자서 No Budget(!)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가능해졌다는 의미이며, 앞으로 이러한 환경에서 의외의 사람들이 새로운 형태의 놀라운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할 거라는 의미입니다. 그 ‘의외의 사람들’이 바로 잠재적 모바일 필름메이커, 여러분들입니다. 앞서 말한 럭셔리한 영화 현장을 텔레비전으로 보며 그런 현장이 먼 나라의 남 일 같은 사람들, 영화 만들기를 철들기 전에 한번쯤 꿈꿨고 이제는 그 꿈을 마음 한켠에 깊이 묻어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여러분이라는 것이죠. 그런 여러분의 손에 쥐어 있는 휴대폰의 카메라나 혹은 가방 속의 똑딱이 디카로 사실은 장편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극장에서 상영할 수도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 사람들이 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을 단순히 예산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예전에 디지털 캠코더들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죠. 소비자가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왔으며 영화 제작의 혁명적 바람이 불 것이라고. 물론 다양한 디지털영화가 나오고 영화 산업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들 모두가 영화감독이 되진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캠코더는 그저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거나 결혼식을 찍는 도구였으며, 서랍 한구석에 찍어놓은 테이프만 쌓여가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모바일영화는 좀 다릅니다. 이 가볍고 작은 캠코더는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큰맘먹은 사람들이 거금을 들여 구입해서 책상 위에 모셔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24시간 들고 다니는 제2의 눈과 같은 것이니까요. 로테크 이미지, 약점을 강점으로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찍을까 하고 고민한다면 일단 가지고 있는 영상 기기의 강점과 한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폰4를 예를 들어 이야기해보죠. 지난해에 나온 아이폰4는 500만 화소의 카메라가 후면에 장착되어 있습니다. 이 카메라는 720P라는 준HD급의 동영상을 찍을 수 있습니다 (주1). 스마트폰에 달린 카메라가 HD급의 동영상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은 잘만 하면(!) HD 방송이나 디지털 극장 상영에 기술적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의 작고 작동하기 편한 특성은 생생한 사실성을 확보하고 의외의 현장성을 기록하거나 혹은 보는 자의 은밀함 등을 드러낼 수 있는 강점이 있습니다. 이미 많은 해외영화제에서 선보인 모바일영화를 보면 이러한 특징들을 잘 보여줍니다(주2). 그러나 카메라 렌즈가 작은 관계로 흔들림에 약하고 초점 통제가 쉽지 않으며 어두운 환경에서의 화질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약점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는 것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인데 이게 뭔 말인가 하면,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게 싫으면 피해 갈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약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영화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빛이 없는 현장에서 35mm 필름의 퀄리티나 고가의 카메라 룩을 내기 위한 여러 방법이 있지만 오히려 암부에서 깨지는 픽셀 화면을 활용해 스마트폰의 카메라가 가진 특유의 로테크 이미지를 영화의 개성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고민해보자라는 거지요. 이것이 바로 가난한 모바일 필름메이커들의 첫 번째 덕목, ‘발상의 전환’ 입니다. 흉내내기 vs 발상의 전환 아이폰의 앱스토어를 찾아보면 영화 만들기에 필요한 많은 앱들이 존재합니다. 그 앱들을 사용하면 아이폰 하나로도 촬영, 편집, 상영까지 영화 제작을 위한 각각의 프로세스를 가능케해줍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그 모든 프로세스는 기존의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새로운 영화 제작·배급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기도 한데, 아이폰으로 영화 만들기에 기존 방식을 답습할 이유도 없지만 그걸 따라 해봐야 소용도 없다는 것이죠. 모바일 기기가 가진 장단점을 최대한 이용해 그 효과를 극대화한 놀라운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도전의식만이 이러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바일 필름메이커들의 두 번째 덕목 ‘도전하는 실험정신’입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한계점을 역발상을 통해 강력한 영화적 무기로 바꾸고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실험정신으로 무장한다면 쏟아져 나오는 모바일영화 중에 여러분의 영화는 그 독창성으로 빛을 발할 것입니다. 모바일영화제인 ‘The Disposable Film Festival’ 수상작들을 보면 화면 초점을 일부러 나가게 한 영상이나 디카 사진을 이용해서 만든 애니메이션, 웹캠으로 만든 뮤직비디오 등 창의적 역발상으로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습니다(주3). 특히 이들의 공통점은 모바일폰이나 포켓 카메라의 로테크 이미지들로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로테크 장비들이 가진 독특한 질감과 그 한계를 뛰어넘는 도발성이 결국 새로운 형태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내 손의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자라고 결심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을 찍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 ‘무엇’을 찍기 위해선 먼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추상적인 컨셉이든 구체적인 사건이든 간에 머릿속에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Story’가 있어야 합니다. ‘그’ 이야기는 아마도 나의 제작 예산과 제작 환경에 맞춰 그 안에서 가능해야 할 것이며 내 주변의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이용해서 완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제일 잘 아는지, 나의 강점이 무엇인지 고민해서 전체적인 스토리를 만들고 그 안에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군데군데 비어 있는 조각을 발상의 전환과 도전적인 실험정신으로 채울 수 있다면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는 멋진 영화로 완성될 것입니다. 만약에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스마트폰의 좋은 점 하나. 이러한 단계에서부터 여러분을 좌절에서 구해줄 수 있는 수많은 앱이 있습니다. 아이폰 앱 중에는 iStoryWriter같이 스토리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앱이라든지 공포영화를 만들고자 한다면 Short horror story, 100+ ghost story처럼 여러분들의 이야기에 영감을 줄 앱들이 있으니 참조할 수 있겠지요(주4). 하지만 참조는 역시 참조일 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몫은 역시 모바일 필름메이커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일루셔니스트 / 네가 원한다면 / 고교 졸업반 / 내일의 죠

재미와 감동을 그대 품 안에!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이 여기 모였다. <일루셔니스트> The Illusionist 애니페스트 / 2010년 / 80분 / 프랑스 / 실뱅 쇼메 <윌로씨의 휴가>(1953)나 <플레이타임>(1967)을 본 관객이라면 잊을 수 없는 영화사의 아이콘, 윌로씨를 기억할 것이다. 키가 크고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는, 의도치 않게 주변에 온갖 소동을 불러오던 소심하고 착한 남자. 윌로씨를 창조했으며 직접 연기까지 한 이는 감독 겸 배우 자크 타티다. 타티가 마지막 영화로 만들고 싶어 했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1982년 사망했고, 2010년 실뱅 쇼메가 연출을 맡았다. 텔레비전과 영화와 록스타에 밀려 점점 설 곳을 잃어가던 나이든 마법사 타티셰프가 스코틀랜드에 흘러들어온다. 투명한 색조는 스코틀랜드의 청명한 공기를 손에 잡힐 듯 시각화하며, 빠르게 변하는 세계와 불화하며 알코올중독과 고독에 지쳐가는 서커스 단원들의 애수 어린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빛을 발한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애잔한 2D애니메이션의 수작. <네가 원한다면> Anything You Want 시네마페스트 영화궁전 / 2010년 / 101분 / 스페인 / 야케로 마냐스 더이상 ‘엄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엄마의 부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엄마’처럼 입고 화장하기를 요구하는 순간, 이 영화는 기존 영화와는 다른 노선을 걷는다. 영화는 여장남자란 소재를 너무 가볍게도, 혹은 너무 진지하게도 다루지 않는다. 아버지 레오가 여자로 변장하기 위해 나이 든 게이인 알렉스에게 화장을 받는 장면은 영화가 사회가 규정한 고정관념을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레오는 딸을 위해 엄마의 모습으로 분장하면서 사회의 어떠한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딸이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일 때까지 묵묵히 그녀를 지켜주고 보살펴준다. 이야기의 출발은 통속적이지만 그 통속성을 변주하고 감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이다. 2004년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인 <노벰버>의 감독, 야케로 마냐스 감독의 2010년 신작이다. <고교 졸업반> Senior Year 시네마페스트 영화궁전 / 2010년 / 95분 / 필리핀 / 제롤드 타로그 필리핀 마닐라의 고교 졸업생들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고교 졸업반>은 실제 학생 배우를 카메라에 담으며 그들의 미래를 함께 그려보는 영화다. 영화는 졸업 연설문 작성, 어린 연인의 갈등 같은 졸업생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10년 뒤 동창회에서 다시 만나는 졸업생들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 뚱보는 살을 뺐고, 게이라고 놀림받으며 남학생들 사이에서 괴롭힘당했던 연약한 아이는 꽃미남이 되었다. 화면이 전환될 때마다 경쾌한 음악이 나오는 <고교 졸업반>은 초반부에 매우 말랑말랑하고 경쾌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의 사연에 집중하는 후반부에 이르면서 점점 깊은 상처를 드러낸다. 사춘기 친구들의 미묘한 갈등부터 시작해서 동성애, 가정불화까지 이르는 꽤 묵직한 문제를 다룬다. 싱그러움이 넘쳐나는 아이들의 모습이 <고교 졸업반>의 매력인데, 그 아이들의 상처를 목격하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일의 죠> Tomorrow’s Joe 시네마페스트 영화궁전 / 2011년 / 131분 / 일본 / 소리 후미히코 야마삐(야마시타 도모히사의 애칭) 팬이라면 복싱영화 <내일의 죠>를 놓칠 수 없다. 야마삐는 그룹 NEWS의 리더이자 배우로 활약하는 아이돌이다. 일본 아이돌에 열광해서 이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과 달리 김종서가 주제가를 부른 추억의 애니메이션인 <허리케인 죠>를 기억하는 관객도 있겠다. 다카모리 아사오 원작, 지바 데쓰야 작화로 1970년에 제작된 애니메이션은 죠의 치열한 권투장면과 죠의 쓸쓸한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영화 <내일의 죠>는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치열함과 외로움이 희석된 느낌이다. 가드를 내리고 펀치를 받아내는 죠의 권투는 여전하고 특기인 크로스카운터는 고속촬영을 통해 충실히 재현되었다. 라이벌 복서인 리키이시와의 한판 승부와 우정도 관객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후반부에 등장하는 일본 상업영화의 감동 코드는 고독한 복서 죠를 원하는 애니메이션의 팬에게 아쉬움을 남길지도 모른다. 야마삐 팬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없다. 그의 조각 같은 근육을 볼 수 있다.

실컷 울고 용서받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언론 시사회 직전 민규동 감독을 만났다. 그는 호들갑을 떨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이제 막 영화가 공개되기 직전의 흥분 상태에 놓인 감독답지 않게 시종일관 또렷하고 편안했다. 그는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개인적인 이유에서부터 앞으로 남은 장기적인 관심사까지 말했다. -이 영화를 하게 된 특별히 개인적인 계기들이 몇 가지 있다고 들었다. =언젠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줄 알았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런 문장들이 나를 크게 건드리는 게 있었다. 그즈음에 친구가 췌장암 선고를 받기도 했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남의 이야기로 들을 때는 진부했는데 가깝게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니 현실적으로 믿기지 않았다. 그 친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일들이 옛날에 놓쳤던 사람들까지 떠올리게 했다. 첫 영화를 찍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와 나는 마치 영화 <집으로…>처럼 단둘이서 살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영화가 인생보다 중요한 때여서 발인을 할 때에야 뒤늦게 갔는데, 친척들은 곡을 하고 그러는데 나는 눈물이 나질 않았다. 실은 친구에게도 감정이 비슷했다. 고맙다, 미안하다, 잘 가라 이런 인사를 할 기회를 놓쳤고 나중에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내 영화에서 죽음이 형식이나 그릇이나 매개로 다뤄진 적은 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정면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든 거다. 그렇게 해서 실컷 울고 용서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빚을 지고 사는 느낌을 풀어볼 순 없을까 하는. 그래서 언젠가 듣고는 슬픈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던 이 작품을 떠올리게 된 거다. 내가 처음 해보는 헌정의 영화랄까. -드라마를 보았나. =드라마가 방영됐던 당시에 나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다. 전화기를 집에 막 놓고 좋아하던 때였으니까. 그리고 나중에 찾았을 때는 다시 보기 서비스가 없었다. 내가 본 드라마 장면은 나문희씨가 어떤 방송에 출연했을 때 자료 삼아 보여준 클립 정도다. 그리고 실은 이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다음에는 드라마가 궁금하지 않았다. 신기한 건 드라마를 안 본 사람들이 다들 이 드라마를 알고 있고 봤다고 생각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대본을 보니까 실은 나도 모르던 이야기였던 거다. 어떤 공통적인 기시감 같은 게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원작자 노희경씨의 반응은. =영화는 아마 오늘 오셔서 보실 거다. 시나리오는 보셨다. 시나리오를 꼭 보여주어야 한다고 해서 보여드렸다. 아마 나 말고 전에도 이걸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워낙 원작자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반영되어 있다 보니 훼손될까봐 걱정하시는 것 같았다. “저는 지문 하나 대사 하나까지 다 기억하고 있어요”라고 말하신 적도 있다. 각색은 무서운 시험을 치르는 느낌이 늘 있어서 내 시나리오를 보고 싫어하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좋았다고 하셨고 특히 바뀐 부분들이 좋았다며 더 바꿔도 될 뻔했겠다고 하시더라. 그 다음에는 훨씬 편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드라마의 주인공 역을 맡은 나문희와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은 배종옥은 자애로운 여성상에서는 같은 범주에 있어 보이지만 사실 많이 다르다. 배종옥을 캐스팅할 때 어떤 점을 염두에 뒀나. =다른 배우인 게 맞다. 나문희가 더 전통적이라고 해야 할까. 더 구수하고 촌스럽거나 훨씬 더 핍박을 많이 받았거나 전쟁통을 통과했을 것 같은 전통적인 이미지. 그게 우리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영화를 시작했을 때 다시 그런 고전적 이미지, 보기만 해도 슬픈 엄마라는 배우를 취할 것인가 아닌가, 그런 사람이 존재할까 자문했다. 대답은 쉽지 않았다. 나문희 선생님도 어쩌면 그때 그 드라마를 통해서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 시대에 더 어울리고 한때는 잘살았지만 지금은 조금 기운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엄마, 전통적인 인상에 대한 반사적인 인물이면 어떨까 싶었다. 어울리지 않으면 어쩌나 염려했는데 주변에서 다들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 그건 아마 배종옥씨의 어떤 이미지 때문인 것 같다. 또박또박한 말투와 목소리, 그러면서도 하이톤의 뱃소리. 그런 면모가 한편으론 고전미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다. 줄리언 무어와 조디 포스터의 혼합형으로 나는 느꼈다. 연기도 그런 톤으로 부탁했고. 뭔가 초가집에서 살아온 ‘사골 어머니’의 느낌과는 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종옥씨가 결정되는 순간 이 영화의 나머지 부분들이 상당부분 결정됐다. -인희가 욕실에서 피를 토하고 남편을 끌어안고 우는 장면을 힘들게 찍었다고 들었다. 영화의 첫 번째 정점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인생에서 딱 한번은 겪을 수밖에 없는 순간, 내가 죽는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참혹한 순간, 그 순간이 오면 미칠 듯이 슬플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 표현을 요구했고. 그런데 한겨울, 좁은 화장실, 그 추운 땅바닥에 앉아서 연기를 하려니 생각만큼 안 나오는 거다. 처음부터 힘들 거라고 예상한 신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였다. 시간이 갈수록 눈물이 말라갔다. 이번 영화는 감정을 위해서 테이크를 많이 가지 않았는데 그날은 많이 갔다. 마지막에는 많이 지치니까 배우의 눈과 목소리가 실제로 지쳐서 정말 자연스러워지더라. 그런데도 나는 내가 바라는 데까지 더 가고 싶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찍어야겠구나 생각도 했다. 나중에 들으니 배종옥 선배는 다른 날 다시 찍는 게 좋지 않을까, 감독이 괜한 고집을 부린다고도 했다더라. (웃음) 사실은 처음으로 포기를 한 순간이다. 그런데 다시 찍지는 않았다. 의외로 육체적인 건 표현이 잘됐다. 이미지보다 맥락 안에 이 장면을 둘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보면 어느 정도 표현이 된 거다. 지금은 아쉬움이 없다. -가족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실은 감독의 장기적인 관심사가 궁금해졌다. =내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한 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가족이기보다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일곱 단계의 갈등에 관한 것이라고 해야 더 가깝다. 가족 이야기는 그동안 내게 일종의 금기 같은 것이었다. 이 영화로 가족의 소중함을 웅변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마음이 없다. 엄마의 가치, 생명의 가치를 들여다보고 있기는 한데 그 안에 내가 어떻게 서 있는지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게 어떤 경우에는 형벌이기도 하고 구원이기도 할 거다. 다음 영화는 완전히 다른 영화로 전환할 거다. 장르에 대한 욕심도 있고 내 안의 어떤 미시적인 정서에 관한 것도 있고. 이 영화는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터닝 포인트’ 같은 것이다.

[몬트리올] 아듀, 퀘벡의 영원한 국민배우여

사라진이 사라졌다. 2011년 4월17일, 암투병 중이던 캐나다 출신 영화배우 마이클 사라진이 몬트리올의 한 병원에서 70살로 타계했다. 시드니 폴락의 1969년작 <그들은 말을 쏘았다>(They Shoot Horses, Don’t They?)에서의 열연으로 잘 알려진 마이클 사라진은 1940년 퀘벡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몬트리올로 이주했다. 이후 그는 액팅스쿨을 다니며 연기자의 꿈을 키웠고 텔레비전 드라마로 연기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천천히 경력을 쌓아가던 마이클 사라진은 1968년 윌리엄 할 감독의 <샤일로 여행>(Journey to the Siloh)에서 풋내기 남부 동맹군 역을 맡으면서 인기에 급물살을 탄다. 이 영화에서 사라진은 당시 신인이었던 해리슨 포드와 연기했다. 다음해인 1969년 <그들은 말을 쏘았다>로 사라진의 인기는 정점에 오르게 된다. 이 영화는 경제 불황기에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이 쉬지 않고 춤을 추는 마라톤 댄스경연대회에 참가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들은 말을 쏘았다>는 오스카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나 긱 영이 남우조연상을 받는 데 그쳤다. 1994년 <토론토 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사라진은 이 영화를 추억했다. “늘 새벽 서너시까지 촬영하곤 했다. 그때까지 영화 속 캐릭터로 깨어 있었던 것이다. 시드니 폴락 감독은 종종 지칠 때까지 영화를 찍자고 했다. 남자배우들은 싸우기 일보 직전까지 갔고, 여배우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이후에도 사라진은 <법과 질서>(The Life and Times of Judge Roy Bean, 1972), <검블 경주>(The Gumball Rally, 1976), <조슈아 나우 앤 덴>(Joshua Then and Now, 1985), <베이징 익스프레스>(Bullet to Beijing, 1995) 등에 출연했다. 마이클 사라진은 구름 너머로 사라진 뒤에도 영원한 퀘벡의 국민배우로 남을 것이다. 삶에 대한 열정에 경의를 마이클 사라진의 주변인물들이 전하는 추모사 -피터 사라진(마이클 사라진의 형이자 텔레비전 프로듀서 겸 작가) 아주 착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어려서부터 좋은 배우였다. 생애 첫 연극 이 끝나자 그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관람하던 친구들이 그를 보고 웃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와 함께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우리는 아주 평범한 가족이었는데 갑자기 무비스타와 함께 살게 됐다. -대니얼 제리(<라 플로리다>(La Florida) 대사·음악 코치) 마이클은 삶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세트장에서도 우리는 늘 즐겁게 일했고, 덕분에 영화도 아주 성공적이었다. 이 영화는 마이클의 형인 피터도 함께했는데 피터는 동생을 무척 아꼈다. 둘이서 불어로 대화하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조지 미할카(<라 플로리다> 감독) 마이클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매우 영광이었다. 동시에 그는 나의 20년지기 좋은 친구다. 그의 영면에 모든 캐나다 영화인들이 슬퍼하고 있다. 마이클은 뛰어난 배우였을 뿐만 아니라 위트가 넘치고 겸손하며 예의바른 친구였다. -마이클 오스카(마이클 사라진의 오랜 매니저) 마이클은 감성적이고, 비할 데 없이 뛰어난 배우였다. 또 그는 뛰어난 언변가였고 가장 소중한 고객이자 친구였다. 그를 잃은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다. -클로드 샹블랑(몬트리올의 프랑스어 영화축제 누보시네마페스티벌 프로그래머) 불과 며칠 전에도 친구에게 마이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할리우드 유명배우인 마이클을 내가 사는 동네 길거리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니 아직도 신기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를 생로랑 길(몬트리올의 번화한 거리)에서 자주 마주쳤지만 일부러 아는 척하진 않았다. 나는 마이클을 <그들은 말을 쏘았다>를 통해 기억하고 싶다. 1992년 누보시네마에서 100주년 기념으로 개최했던 ‘250시간 영화 마라톤’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 영화를 틀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천둥축구부의 절체절명의 최고의 결전 <썬더 일레븐 극장판: 최강군단 오우거의 습격>

열정적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축구 천재 강수호는 천둥중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축구부는 허접하기 짝이 없고 선수들은 무기력하고 팀원 수까지 부족할 정도다. 그래도 강수호는 실망하지 않고 축구부를 재건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던 중 염성화를 알게 된다. 염성화는 어린 시절 축구 때문에 사고를 당한 동생으로 인해 축구와 연을 끊었지만 실은 대단한 스트라이커. 천둥중학교 축구부는 지상 최강인 제국중학교와 경기를 갖는데, 이때 눈에 돋보이는 상대편 선수는 신귀도. 그도 처음에는 강수호와 천둥중학교의 적이었지만 곧 천둥중학교에 합류하게 된다. 이유는 절체절명의 축구시합 때문. 축구가 아이들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어느 미래의 지도자는 축구를 끝장내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축구 군단 오우거를 현재에 파견하고 천둥축구부는 그들과 사상 최고의 결전을 하게 된다. <피구왕 통키> <축구왕 슛돌이> 등과 유사한, 아이들을 위한 스포츠 애니메이션이다. 일본에서는 2008년, 국내에서는 2010년부터 텔레비전에서 방영됐다. 처음에는 축구를 소재로 한 롤플레잉 게임으로 탄생했고 인기를 얻자 이내 텔레비전 시리즈로 제작됐으며 영화로까지 이어졌다. 이번 영화는 첫 번째 극장판이다. 열정적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소년 강수호를 비롯한 각종 캐릭터, 시각적으로 번쩍이는 SF적 효과들이 강조됐다. 5월의 어린이날 특수를 겨냥하여 나온 영화이니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극장에 가야 하는 부모들에게는 솔깃한 영화다. 어째서 축구가 미래를 망치는 거냐고 예리하게 묻는 조숙한 아이들만 제외한다면, 대체로 아이들이라면 반길 것 같다.

배우가 갖춰야 할 자질? 매력적인 인간 되기가 우선이지

‘박중훈의 연기수업’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풍경일까. 4월21일 CGV상암에서 주성철 기자의 진행으로 열린 <씨네21> 토크쇼의 첫 번째 주인공은 배우 박중훈이었다. “무대 앞에서 저와 박중훈씨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기보다 많은 관객이 자리를 채워준 만큼 바로 관객과의 대화시간을 가질 거”라는 주성철 기자의 말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한국영화 전반에 관한 이야기, 정곡을 찌르는 질문 등 모두 환영한다”는 박중훈의 말처럼 토크쇼는 ‘중구난방 박중훈쇼’로 빠질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연기에 관한 진지한 질문들이 다수 쏟아졌다. 그러니까 이번 토크쇼는 ‘연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박중훈의 대답인 셈이다. 질문을 받기 전 박중훈은 관객과 함께 자신의 출연작 <해운대>(2009)의 메이킹 필름을 봤는데, 그가 연기한 김휘 박사가 쓰나미의 위협으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딸이 있는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수중촬영 세트장에서 찍은 장면이다. 그 한신 찍는 데 무려 일주일이나 걸렸다. 수압이 얼마나 강한지 물을 맞는 순간 호텔 복도 끝까지 밀려났는데 전문 스탭 다섯명이 겨우 나를 잡을 수 있었다. 또 세트장 주변에서 큰 소음이 나기에 뭔지 알아봤더니 옆 세트장에서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2009)을 찍고 있더라. (웃음)” 그리고 김휘 박사가 국제해양연구소 지질학자라는 캐릭터 설정 때문에 전문용어 위주의 대사를 해야 했던 고충도 털어놨다. “쓰나미가 시속 300km로 수면 어쩌고저쩌고…. 이런 (전문적인 용어로 이루어진) 대사를 롱테이크로 하려니까 정말…. 그것도 영화가 블록버스터라 모든 배우들이 대사를 긴박하게 해야 했다. 밤새 마흔번 넘는 NG 끝에 겨우 ‘오케이’ 사인이 났는데 그 자리에 있던 엑스트라 분들이 막 박수치고. 부끄러워서 혼났던 기억이 난다. (웃음)” 궁극적으로 연기는 가르칠 수 없는 것 올해로 연기 인생 27년째인 박중훈이 시나리오를 선택할 때 우선시하는 건 크게 시나리오와 감독이다. “먼저 선택이라는 말을 정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작품을) 선택한다는 건 배우가 잘나갈 때 가능하다. 못 나갈 때는 ‘선택’을 할 수 없다. 그저 작품이라도 들어와라, 는 심정이다. 일단 내가 좋은 상황임을 가정하자. 가령, 감독이 90점, 시나리오가 80점인 작품이 1번. 시나리오가 90점이고 감독이 80점인 작품이 2번.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없이 1번을 택할 거다. 또 감독이 90점이고 시나리오가 70점인 작품이 1번. 감독이 70점이고 시나리오가 90점인 작품이 2번. 이때는 2번을 택한다. 물론 감독과 시나리오가 모두 90점 이상인 작품을 하는 게 좋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감독이다.” 지금까지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출연 제안도 많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 영화만 고집하는 박중훈만의 이유가 따로 있을 것 같다. “성우를 ‘보이스 액터’, 연기자를 ‘스테이지 액터’, ‘무비 액터’, ‘텔레비전 액터’라고 부른다. 모두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 그 본질은 같다. 다만 선호도가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관객이) 배우들의 하나하나를 두 시간 동안 집중해서 보는 영화를 좋아한다. 한국에서 영화배우 하면 안성기, 박중훈이 먼저 떠오른다라는 말을 듣는 게 좋다.” 박중훈이 생각하는 배우가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일까. “배우 스스로가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자신을 버리고 타인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연기라는 건 타인이 됐다고 가정하고 하는 거다.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내 깡패 같은 애인>(2010) 등 그간 맡은 캐릭터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실제 내 모습이 겹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타인이 필요하면 배우 캐스팅이라는 게 왜 필요하겠나. ‘적역’이라는 말도 배우를 인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가령, 김갑수나 송강호가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했던 역할을 맡았다면 20대 여성에게 어필할 수 있었을까.” 매력적인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직접적인 경험을 쌓는 것과 간접적인 경험을 토대로 유추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박중훈이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움직이며 웃어 보인다) 표정은 입, 하관에서 나온다. 반면 생각과 감정은 눈에서 나온다. 88만원 세대를 이렇게 만든 저도 공범이고, 20대에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있고, 또 분노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이 있었기에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극중 정유미를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오동철 역할을 표현할 수 있었다.” 연기의 테크닉은 필요하지 않냐고? 박중훈은 “한두편 해본 신인들이나 수십년 동안 연기한 베테랑 배우나 테크닉은 똑같다”면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연극과 과학이 만난 게 영화다. 영화연기를 할 때는 포커스, 조명 등 기술적인 면을 염두에 둬야 할 때가 있다. 가령, 키스하는 장면을 찍는다고 하자. (보통 속도로) 이렇게 키스를 하면 화면에서 너무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슬로 모션으로) 그래서 이렇~ 게 가야 한다. (웃음)” 그러나 그는 “테크닉은 연기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연기라는 건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면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한 말을 인용한다. “영화감독은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다.” 박중훈은 그간 수많은 여배우와 함께 작업을 했다. 다음 작품에서 함께하고 싶은 여배우는 없을까. “총각 때 예쁜 여자들과 연기를 하면 가슴도 설렜는데, 결혼한 지금은 그런 마음이 전혀 안 생기느냐, 그건 아니고 오히려 더 간절해진다는…. (웃음) 그런 건 있다. 자신의 세계에서는 예민하지만 개인적인 성격은 좀 무덤덤한 사람이 상대역이었으면 한다.” 어떤 배우들은 또 언제 노출연기를 해보겠느냐고 옷을 벗곤 하는데, 박중훈 역시 노출연기에 뜻을 품고 있지는 않을까. “노출연기는 200% 못할 것 같다. <우묵배미의 사랑>(1990) 때 수치감 같은 것을 느꼈다. 프로로서 옳은 태도는 아니다. 그러나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다만 과감하게 벗어서 캐릭터를 잘 소화한 배우한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좋은 영화 살리려면 개봉 첫주에 영화 보길 오랫동안 관객과 호흡해온 배우 박중훈이 생각하는 좋은 관객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좋은 관객은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이다. 영화를 스포츠에 비유하면 골프라고 생각한다. 축구, 배구, 야구, 농구 등 움직이는 공을 치는 대부분의 구기종목과 달리 골프는 죽어 있는 공을 띄우는 운동이다. 감독, 배우, 스탭들은 관객의 감정을 두 시간 안에 띄워야 한다. 한국영화를 봐주자, 는 말을 싫어한다. 아닌 영화는 철저하게 외면해야 (제작자들이) 다시는 그렇게 안 만든다. 또 영화는 유통기한이 있다. 극장은 굉장히 냉정하기 때문에 첫주 성적이 안 좋으면 바로 내린다. 좋은 영화를 볼 거면 가급적이면 개봉 첫주 혹은 개봉일에 가깝게 보는 것이 그 영화를 사랑하고 살리는 방법이다.” 토크쇼가 거의 끝날 무렵 함께 자리한 <내 깡패 같은 애인>의 김광식 감독은 “좋은 감독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한 관객의 질문에 “재능 이상으로 운과 인연이 중요하다. 좋은 감독이 되는 것보다 감독이 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다. (웃음)”고 대답하면서 관객과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씨네21>의 오랜 친구답게 배우 박중훈과 <씨네21> 독자는 약 2시간 동안의 토크쇼를 통해 서로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법의 애잔한 뒷모습

<일루셔니스트> The Illusionist 감독 실뱅 쇼메 / 6월16일 개봉 / 수입·배급 에스와이코마드 “나는 자크 타티가 왜 <일루셔니스트>를 직접 영화화하지 못했는지 완벽하게 이해한다. <일루셔니스트>는 타티 자신과 너무나 가까운 이야기였고, 그는 윌로씨라는 자신의 페르소나 뒤로 숨는 걸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루셔니스트>가 윌로씨에게는 지나치게 심각한 이야기라고 결론내렸고, 대신 <플레이타임>을 만들었다.”(실뱅 쇼메) 자크 타티는 <일루셔니스트> 스크립트를 1956년부터 1959년에 걸쳐 완성했다. 하지만 끝내 실사영화로 실현시키지 못하고 1982년 숨을 거두었다. 이후 그의 딸 소피가 쭉 간직해오던 <일루셔니스트> 스크립트는 <벨빌의 세 쌍둥이>의 감독 실뱅 쇼메에게 건네졌다. 1959년, 텔레비전과 영화와 록스타에 밀려 점점 설 곳을 잃어가던 나이 든 마법사 타티셰프가 스코틀랜드에 흘러들어온다. 타티셰프의 마법에 매혹된 소녀 앨리스가 그의 여정에 동행하고, 두 사람은 현실과 꿈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에 부딪히며 점점 변해간다. 타티셰프는 앨리스를 딸처럼 아끼고 사랑하지만, 넓은 세계로 처음 나온 앨리스는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다.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흐름과 정서의 변화에 떠밀려 퇴장할 수밖에 없는 이들, 빠르게 변하는 세계와 불화하며 알코올중독과 고독에 지쳐가는 서커스 단원들의 애수 어린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빛난다. 마법을 믿는 사람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존재들끼리 서로 빚어내는 사랑과 존중의 마음 그 자체가 마법이 아닌가. 실뱅 쇼메는 자크 타티의 스크립트를 거의 그대로 옮겨왔지만 단 하나의 변화는 감수했다. 애초 스크립트는 파리와 프라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파리와 에든버러로 바뀌었다. “프라하에도 가봤지만 인물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벨빌의 세 쌍둥이>로 에든버러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난 즉시 사랑에 빠졌다. 에든버러는 문명의 중심지와 외떨어진 곳이며 빛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마술적인 공간이었다.” 실뱅 쇼메의 확신처럼 우아하고 간결한 그림체는 약간의 빛만으로도 미묘하게 색채가 달라지는 스코틀랜드의 청명한 공기를 손에 잡힐 듯 시각화했으며, 팬터마임처럼 음악과 표정과 분위기로 모든 것을 전달하는 형식은 그 어떤 대사보다 많은 정서를 함축했다. 픽사의 <업>과 비교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아이보다는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다. 놀랄 만큼 아름답고 애잔한 2D애니메이션의 수작이다. up 우리 모두의 쓸쓸한 삶을 돌이켜보게 하는 성숙한 시선. down 어린 관객에겐 ‘대사가 없어서’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칸 영화제] '나치 발언’ 파문, 라스 폰 트리에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칸 영화제 공식행사 입장을 전면 금지 당했다. 칸 영화제 사무국 측이 ‘나치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라스 폰 트리에 감독에 대해 극단의 조취를 취하고 나섰다. 결정이 철회되지 않는다면, 그는 수상을 할 경우라도, 폐막 행사장에 입장하지 못하게 된다. 사건의 발단은 18일(현지시간) 칸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 상영작인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 상영 후 가진 기자회견장에서 일어났다. 독일계 혈통에 관한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폰 트리에 감독은 “나는 정말 유대인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다가 내가 진짜 나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가족은 독일인이었는데 이것이 나에게 기쁨을 주기도 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히틀러를 이해한다.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그를 많이 이해한다. 조금은 그에게 공감도 한다"고도 했다. 덧붙여 그는 "그렇다고 2차 대전에 대해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사태를 수습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유대인을 조금은 싫어한다. 이스라엘은 골칫거리이기 때문이다.”라는 위험한 발언을 이어나갔다. 또 히틀러를 위해 일한 건축가 알버트 스피어를 좋아한다면서 “좋다. 나는 나치다. 예술의 측면에서라면 나는 스피어를 지지한다. 그는 신이 나은 최고의 인간이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나치에 대한 그의 견해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블록버스터를 만들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는 “있다. 우리 나치들은 큰 스케일의 영화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며 화제를 이어 나갔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멜랑콜리아>의 주연배우 키어스틴 던스트는 폰 트리에 감독의 발언에 당황하여 뒤로 몸을 빼며 “맙소사, 끔찍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내가 술렁이자 그는 “이 말을 하고 내가 여기서 어떻게 빠져 나가지?”라는 농담까지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 후, 폰 트리에 감독은 주요 일간지 일면에 기사화 됐다. 사태가 일파만파 퍼지자 칸 영화제 사무국측은 폰 트리에 감독에게 공식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폰 트리에 감독은 대변인을 통해 "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나는 반(反)유대주의자도 나치도 아니다"는 내용의 공식 사과 성명을 냈다. 영화제 곳곳에서 폰 트리에 감독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한 감독은 무대 인사 중, “자칫 말실수 할까봐 이야기 하기가 힘드네요.”라고 하자, 티에리 프레모 칸 집행위원장 “괜찮다. 나중에 사과하면 끝인걸.”이라고 말해, 폰 트리에 감독의 행동에 대한 비난을 전했다. 한편 폰 트리에의 발언을 확대 해석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프랑스 문화잡지 <인록>의 자키 골드버그는 “폰 트리에의 유태인에 대한 발언은 물론 스캔들이 될 만한 일”이다”라고 하면서도 “그런데 마이웬(올 경쟁작 상영작 <폴리스>의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무슬림은 나쁜 무슬림도 있고 좋은 무슬림도 있다’라고 말했을 때는 박수를 받았다"고 했으며 프랑스 문화잡지 <텔레라마>지의 오렐리앙 페렌지 역시 “과거, 유고내전 중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이 세르비아 내전을 옹호를 했을 때나, 체첸사태에 대해 러시아 감독 니키타 미하일코프가 친푸친 성향을 드러냈을 때 조차 관대했던 칸느가, 폰 트리에의 ‘조크’에는 유독 흥분한다.”고 지적한다. 폰 트리에 감독은 2000년 <어둠 속의 댄서>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며, 2009년 <안티크라이스트> 이후 2년 만에 다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캐릭터도 진화한다

액스맨 / 레이븐 다크홀름 (제니퍼 로렌스) 이전 시리즈에서 미스틱은 브라더후드 집단의 강력한 2인자였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해 상대방을 교란하는 미스틱은 금속이 없는 곳에서 어떤 힘도 쓸 수 없는 매그니토를 매번 위기에서 구출했다. 그랬던 미스틱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이하 <퍼스트 클래스>)에선 사뭇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미스틱 이전, 레이븐 다크홀름이었던 돌연변이 소녀는 젊은 시절의 찰스 자비에와 남매 같은 우정을 나누고, 천재 과학자 행크 맥코이와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한다. <윈터스 본>으로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유망주 제니퍼 로렌스가 레이븐을 연기한다. 로렌스에 따르면 레이븐은 이 영화에 출연하는 모든 엑스맨 캐릭터를 통틀어 시작과 끝이 가장 다른 캐릭터라고. 엑스맨 / 행크 맥코이 (니콜라스 홀트) 전세계 돌연변이들을 찾을 수 있는 찰스 자비에의 ‘세레브로’. 엑스맨의 활동에 필수적인 제트기 ‘엑스젯’. 이 모든 것을 한 천재 과학자가 발명했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에서 돌연변이들을 대변하는 정치가로 등장했던 비스트다. <퍼스트 클래스>에서는 ‘세련되고 지적인’ 정치인 비스트가 아니라 ‘수줍은 이상주의자’였던 과학자 행크 맥코이를 만날 수 있다. 천재 과학자들이 종종 그러듯, 행크는 실험 중인 약물을 자신에게 투여했다가 파란 피부의 털북숭이 야수로 변한다. 행크를 연기하는 배우는 영국 드라마 <스킨스>로 스타덤에 오른 영국 배우 니콜라스 홀트다. 홀트는 <엑스맨> 만화책, 애니메이션, 영화를 모두 섭렵한 시리즈의 열혈 팬이다. 그는 독특한 어휘를 구사하던 만화 시리즈의 행크를 캐릭터에 직접 반영했다고 한다. 헬파이어 클럽 / 세바스티안 쇼 (케빈 베이컨) <퍼스트 클래스> 최강의 적이다. 돌연변이 집단 헬파이어 클럽의 수장인 쇼는 <퍼스트 클래스>에서 소비에트 연방을 부추겨 미국을 향해 미사일을 조준하게 하는, 냉전시대 핵위기의 주범이다. 동시에 그는 모든 운동에너지를 흡수해 자신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지녔다. 케빈 베이컨이 연기하는 세바스티안 쇼는 <엑스맨> 원작 만화와 외관상 가장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18세기 스타일의 고색창연한 복장은 양복으로, 쇼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긴 구레나룻도 사라졌다. 베이컨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자수성가한 미국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정의한다. 헬파이어 클럽 / 엠마 프로스트 (재뉴어리 존스) 다이아몬드 걸, 화이트 퀸…. 세바스티안 쇼의 오른팔인 엠마 프로스트는 애칭에 걸맞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악당이다. 찰스 자비에와 맞먹는 텔레파시 능력을 자랑하며 피부를 다이아몬드로 바꿔 상대방을 공격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슈퍼히어로 캐릭터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스타일을 자랑하는 엠마 프로스트의 의상일 것이다. <퍼스트 클래스>의 제작진은 목부터 발까지, 온몸에 피부처럼 감겨드는 흰색 가죽 캣슈트 등 만화책에 뒤지지 않는 엠마의 의상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의상을 소화해낼 여배우는 미국 드라마 <매드맨>에 출연했던 재뉴어리 존스다. 1960년대 코카콜라 CF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조각 같은 외모의 소유자인 그녀는 엠마 프로스트를 연기하기 위해 “펜싱과 테니스” 등으로 몸매를 다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