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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질투는 나의 힘>의 주인공 배종옥

“4년 만인가요?” “아니, 10년 만이죠.” <깊은 슬픔>보다는 <걸어서 하늘까지>를 ‘본격적으로’ 했던 마지막 영화로 기억하는 배종옥에게, 요즘 촬영중인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은, 거기서 그녀가 연기하는 여주인공 박성연은, 10년 만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질투는 나의 힘>은 스물일곱살짜리 대학원생 남자가 어느 유부남에게 애인을 뺏기고, 묘한 질투심에 잡지 편집장인 그 유부남 주위에 머무르면서 또 한명의 여자를 알게 되지만, 그녀 역시 그 때문에 차지하지 못한다는, ‘질투’의 이야기. 배종옥은 수의사 출신 사진기자인, 자유분방한 30대 여자 박성연을 연기한다. 서른일곱, 여전히 단단한 목소리와 눈매가 변함없는 배종옥에게, 그런 여잔 “지금까지 안 해본 역할”이다. 한참 만에 다시 하는 영화에다, 영 새로운 캐릭터까지, ‘긴장’되지만, 그게 바로 그녀가 원했던 것. “해온 것보다는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다. 내가 그동안 가져왔던 것들을 다 버리고 싶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바뀌었어요. 스탭들도 젊고, 밤샘촬영도 많고…. 밤신 하면 다 밤샘 촬영이에요. 딴 데도 그런가요?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1988년 <칠수와 만수>로 영화데뷔, <젊은 날의 초상>(1990),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1990), <걸어서 하늘까지>(1992), 그리고 5년을 건너뛰어 <깊은 슬픔>. 이십대 중후반에는 비교적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그녀가,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꾸준히 출연해온 데 비해 영화판에 뜸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여러 가지 일이 있었죠. 무엇보다 내가 노출을 거부했으니까. TV 탤런트를 주로 하던 여배우들이 그때만 해도 노출까지 해가면서 영화하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예의 구슬 구르는 듯한 목소리가 똑부러지게 이유를 댄다. <질투는 나의 힘>은, 드라마 촬영이 많아 올해는 좀 쉴 생각에 한번 퇴짜를 놓았다가, “작품이 재밌고, 또 박성연이 재밌어서” 다시 받아들인 작품이란다. 맨손으로 강아지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옷을 갈아입거나 하는 것에서 웬만해선 남자와 내외를 하지 않으며, ‘아무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그런 집은 집도 아니라며 잠자리를 고정시키지 않는 여자 박성연은, 일견 희한한 인물 같지만 배종옥에게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자”라고. “그런 여자가 어딨을까, 찾으면 찾기 어렵겠지만, 전 그런 여자 많이 봤어요. 30대를 맞아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직 정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결혼을 할까, 해도 마땅치 않고 그렇게 갈등하는 여자들 많거든요.” 그녀가 흥미로워 그녀를 연기하게 됐지만, 한 가지, 머리를 감다 말고 벗은 상반신을 욕실 문 밖으로 내밀며 전화받으라고 하는 장면 만큼은 가슴 윗선으로 카메라 프레임의 제한을 요구했다. 그래서 약간 시나리오가 수정된 셈이지만, 그밖에 소소한 노출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수준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란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종옥은 야무진듯 하면서도, 싱거운 소리 잘하고 허풍도 잘 떤다. 냉소적이고 퇴폐적인 이미지의 박성연이 그 모습에서 어떻게 뽑혀나올까? 배우로선 인기 시트콤 고정 출연이 독도 되고, 약도 된다. 적어도 배종옥에겐 약일 거라는 느낌이 든다. <거짓말>에서 차마 삼키지 못한 속울음으로 보는 사람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 것도 배종옥이었다. 신기하게도, 트로이카 같은 리스트에 속한 적 한번 없는 이 30대 여배우가 날이 갈수록 더 넓어지고 깊어진 모습으로 사람들 마음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내년 1월, 이성강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에서 주인공 성우의 엄마 목소리로 배종옥은 예비 스크린 나들이를 한다. <질투는 나의 힘>으로 배종옥을 만나는 일은 내년 5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취화선> 촬영 100일 동행기 [3]

장승업, 고흐와 동시대 화가 2001년 7월16일 날씨 맑음 이 영화의 공식적인 크랭크인은 내가 이 시나리오를 읽은 지 보름 뒤인 7월16일 월요일이었다. 날씨 맑음. 이 자리는 기자들을 부른 첫 번째 현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날 한국화에 관한 세미나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한국화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22권의 한국화 책을 사들고,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영화와 회화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유감스럽게도 유홍준 선생이 쓴 두권의 <화인열전>에는 장승업이 빠져 있었으며(그런데 안견과 신윤복도 빠져 있었다. 장승업을 고의로 폄하한 것 같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한국화에 관한 책들에서 김홍도와 김정희에 비하면 장승업은 매우 적게 다루어져 있었다(다루어져 있어도 부정적인 시각에서 쓰여진 것들이 많았다). 영화에서 화가를 다룬 작품도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고흐를 다룬 빈센트 미넬리의 <생의 갈망>,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루블례프>,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에서 반 고흐를 만나는 에피소드, 자크 리베트의 <벨 느와제즈>(우리나라 제목으로 <누드 모델>로 알려진), 미조구치 겐지의 <우타마로를 둘러싼 다섯명의 여자>, 모리스 피알라의 <반 고흐>와 같은 작품들이 있을 뿐이다(아마도 내가 빼놓은 중요한 영화들도 있을 것이다). 자료들을 읽다가 발견한 이상한 한 가지 공통점. 유난히 반 고흐에 관한 영화들이 많으며, 장승업은 반 고흐와 동시대 화가였다는 사실이다. 또는 반 고흐와 장승업은 영화라는 기계장치가 발명되는 시대에 살아 있었던 사람들이며, 그들은 우리의 근대에로 들어오는 시대의 문턱에서 활동했던 화가들이다. 임권택 감독이 그려내고자 하는 장승업, 당신은 누구십니까? 임권택 감독 촬영현장에 비디오 모니터가 생기다니… 2001년 8월16일 맑았다 비 서울에서는 날씨가 맑았으나 전라남도 강진으로 내려가는 길에 비를 뿌리기 시작하다. 영랑생가에서 촬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장에 인사드리기 위해서 찾아 내려갔다. 아직 장승업은 어른이 되기 이전이며(따라서 장승업이 나오기는 하지만, 최민식씨는 오지 않았다) 영화에서 김병문 선생이 거지였던 장승업을 은암 선생에게 추천해서 그곳에 내려가 그림의 기초를 배우는 대목이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다음이며, 영랑생가에는 촬영차와 조명기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모든 것은 늘 보아온 것이지만, 다만 내가 신기하게 생각한 것은 임권택 감독 현장에 비디오 모니터가 생긴 것이다. 물론 지금 한국영화 현장에서 비디오 모니터는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흔일곱편의 영화를 비디오 모니터 없이 작업한 임권택 감독의 현장에 비디오 모니터가 생긴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내가 알기로 한국영화에서 처음 비디오 모니터를 사용한 영화는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일 것이다. 왕가위는 <화양연화>에서 처음 비디오 모니터를 활용했다. 왕가위는 “비디오 모니터는 현장을 바꿔놓는다”라고만 짧게 대답했다. 임권택 감독은 <춘향뎐>에서 비디오 모니터를 처음 사용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현장에 하루이틀 구경가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내가 제일 우습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영화기자들이 고작 한나절 영화현장을 들러본 다음 그 영화에 대해서 논하려 들 때이다. 사람은 자기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겸손해야 한다. 나는 인사를 드리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첫 견학길은 다음날 아침 발길을 돌렸다. 15여 차례의 NG, 대체 이유가 뭘까? 2001년 9월10일 충청북도 청송문화재단지를 찾아가다. 날씨 맑음. 두 번째 현장 방문으로 이날은 장승업이 기생 매향의 기방을 찾는 장면을 먼저 찍었다. 최민식씨를 그날 처음 보았다(사석에서는 스크린 문화연대 사무실에서 만나보았지만 현장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뒤늦게 유호정씨가 도착했다. 기생방에 장승업이 기생 매향을 찾는 장면을 단 한번에 오케이 놓은 다음 옆의 대나무 숲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날 밤에는 장승업과 기생 매향이 다시 만나는 한벽루 주변의 장면이다. 장면 #102. (달빛 교교한 오솔길을 거니는 승업과 매향) 매향 “화명이 어찌나 자자하던지 오시는 걸 미리 알았습니다.” 승업 “애저녁에 끌려가 죽은 줄만 알았네. 소식을 물어 찾았네만 아는 이가 없더니….” 매향 “서울서는 목숨을 보존키 힘들어 이곳저곳 흘러다니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장면 #102-A (구름 속에 비어져 나오는 둥근달) 승업 “정인(情人)은 있는가?” 매향 (못 들은 척 웃는다) “바로 한양으로 가시나요?” 승업 “저렇게 그림을 조르니 한 달포 예서 머물 걸세.”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현장에서 어둠은 깊숙이 내리게 마련이다. 겨우 9시 반경인데도 이미 어둠은 칠흑처럼 떨어져 내렸다. 별달리 어려움이 없는 것 같았고, 조명은 대나무 숲 뒤로 세워졌다. 두 사람이 대나무 숲이 펼쳐진 담벽길을 따라 걸어오면서 대화를 나눈다. 몇번 리허설을 해보고 슛에 들어갔다. 카메라는 두 사람을 따라 수평으로 레일을 깔았고, 그 위에 크레인을 올려놓았다. 비디오 모니터를 세워놓기는 했지만, 연기자들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임권택 감독은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모니터를 열심히 보는 것은 매번 연기가 끝날 때마다 자신의 동선과 표정을 일일이 체크하는 최민식씨와 유호정씨였다(그 뒤로 나는 유심히 보았는데 최민식씨는 아무리 짧은 장면도 반드시 모니터 화면으로 자기가 나오는 장면을 다시 확인하였다. 그건 예외가 없었다. 이상하다 싶으면 “감독님,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만큼 자기 연기의 플랜에 확신을 갖고 있는 배우였다). 감독님은 두 사람의 동선을 따라 같은 속도로 걸으면서 대사를 나누는 두 사람의 표정을 세세히 보았다. 임권택 감독은 오케이 사인을 내리기 전에 이미 그 장면이 마음에 들면 함박웃음이 꽃피는 얼굴이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쉽게 웃음이 피지 않았다. 계속해서 엔지를 불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내 옆에 서 있었지만 그 장면이 왜 엔지인지를 알 수 없었다. 두 연기자의 얼굴이 조금씩 굳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걸어오는 속도와 대사의 속도가 붙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그래서 대사를 어떤 타이밍에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리저리 바꿔보았다. 그러더니 감독님은 정일성 촬영감독을 불렀다. 이번에는 아예 카메라의 동선을 바꿔보자고 말했다. 열네번의 엔지 다음에 레일은 위치를 바꾸고, 크레인의 각도도 바꾸었다. 두 사람은 연기 동선을 새로 배치받았다. 이미 앞의 동선에 익숙해서인지 두 연기자는 반복해서 엔지를 냈다. 그건 내가 옆에서 보기에도 이상하게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잠시 휴식을 하는 동안 임권택 감독이 비디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스크립터에게 앞의 장면을 모두 다시 틀어보자고 말했다. 아무 말 없이 보던 감독님은 다 끝나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모이가 좀 이상해, 하여튼 모이가 안 맞어.” 감독님의 혼잣말이지만 그 순간 옆에 서 계시던 정일성 촬영감독과 김동호 조명기사, 조감독, 그리고 모두가 얼굴이 굳었다. 시간은 열두시를 넘고 있었다. 이제 한국영화 현장에서 임권택 감독의 그 장면이 될 때까지(!)라는 그 전설적인 순간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모든 스탭들에게는 지옥의 순간이지만, 나는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상치 않게 빨리 마주친 셈이다. 모기들이 조명들을 찾아 날아들었고, 늦여름인데도 찬 공기는 옷매무새를 파고들었다. 임권택 감독은 장면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였다. 카메라는 처음 설계가 바뀌면서 쉽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 처음에는 수평의 움직임이었던 것을 이번에는 사선으로 바꾸어 카메라를 이동하고, 장승업과 매향은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서 하던 대사를 서서도 해보고, 그 반대로 매향이 멈춰서고 장승업이 그녀를 원형으로 돌면서 대사를 나누기도 하였다. 한번 정해지면 그 장면에서 최선을 다해보지만, 번번이 임권택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여름은 새벽이 이르게 찾아오는 편이다. 결국 새벽 세시 반. 임권택 감독은 최민식씨와 유호정, 그리고 정일성 촬영감독과 김동호 조명기사를 한자리에 모아 그냥 한마디 하셨다. “여기는 그 대사가 묻어나는 장소가 아니요. 돌담길도 이상하고, 아무 맛이 안 살어. 암만 해도 여기서는 그게 안 나오는데, 여름이 끝나기 전에 다른 장소를 찾아봅시다.” 촬영은 결국 여섯 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그 장면에 어울리지 않는 장소가 있는 법이다. “그렇지요. 차라리 날씨가 안 맞으면 그냥 갈 수도 있어요. 그러나 장소가 안 맞으면 그건 도리가 없는 것이지. 암만 해봐야 가짜 같거든. 그런데 그 장소가 그런지 아닌지는 그걸 해봐야만 안다는 것이요. 그러니 미치는 거지. 암만 해봐도, 배우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 다음에 카메라를 온갖 데다가 들이대도 결국에는 아닌 데는 아닌 것이요.”(임권택 감독과의 인터뷰) 이 장면은 조감독에게 나중에 들어보니 남원에 가서 한번에 오케이가 났다고 한다. 그 대사가 묻어나는 장소란 어떤 의미일까? 앙드레 바쟁은 장 르누아르에 대해서 쓰면서 이 말을 인용한다. “맞지 않는 장소에서 찍는 것보다는 못 만든 세트장에서 만드는 편이 낫다.” 조선춘화도 화집에서 빌려온 정사체위 2001년 9월11일 이튿날은 장승업과 매향의 야외에서의 정사장면이 있는 장면이다. 날씨 맑음. 장소는 청송문화재단지에서 조금 떨어진 담배밭에서 촬영되었다. 장면 #103 (강변, 앉은 자세로 정사를 나누고 있는 승업과 매향) 매향 “선생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세상살이 시름이 다 사라지니 이상하지요?” 승업 “그려서 위로주고, 그리면서 위로받는 게 환쟁이들일세. 자네와 나처럼 내 그림 통해 맘 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어디 그리 흔한가?”(서로 찾아드는 매향과 승업의 손) 시간경과 (꿈결같은 정사 뒤, 충일감에 누워 있는 두 사람) 승업 “이러지 말고 함께 사는 게 어떻겠나?” 매향 (웃으며) “화류계 떠도는 것도 모자라, 도망까지 다니는 신세입니다.” 승업 “…여기는 괜찮은가?” 매향 “아전 놈 하나가 눈치를 챘는지… 지분거리는 통에, 이곳도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마치 <서편제>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하는 키 높은 담배밭인데, 그 위에 자리를 잡고 장승업과 매향이 앉았다. 두 사람의 정사는 매향이 뒤로 앉아서 장승업을 올라타고 정사를 벌이는 후배위의 체위로 잡혔다. 감독님이 이 장면을 참조했다고 보여주신 책은 조선춘화도 화집이었다. 이 책에는 당시 그려진 수많은 춘화도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 책을 넘기면서 본 것은 유교가 지배하고 엄숙한 양반들과 선비들의 근엄한 얼굴 아래 숨죽이며 지내던 옛 조선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인간적인 체취였다. 임권택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정사장면들을 이 책에서 발췌하여 체위를 결정하였다. 이 책은 자주 이 영화현장에서 인용되곤 했다. 임권택 감독은 간단한 지시만 한 다음 그 자리에서 조감독을 불렀다. 그리고 이 장면을 열네개의 숏으로 쪼갰다. 이건 아주 의외였다. 당연히 롱테이크로 갈 거라고 생각하던 나는 갑자기 장면을 쪼개어서 들어가는 순간, 내가 <춘향뎐>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개의 숏을 더블 액션으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대사를 따라 마스터숏으로 시작해서 매향의 눈물 흘리는 얼굴의 클로즈업까지 파고들었다. 그 카메라의 동선은 장승업의 마음이 매향의 마음 안으로 파고들 듯한 순서를 따라갔다. 그러나 번번이 엔지를 내는 것은 연기자들이 아니라 바람이었다. 담배밭을 흔들어 주어야 하는데, 바람은 내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위에 찬란한 햇살이 떨어져야 하는데도 구름은 내내 심술을 부렸다. 기다리면서 담배를 피워물던 감독님은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하자 김동호 조명기사에게 “매향에게 빛을 떨어뜨려 주세요” 하더니 바로 일어나서 슛을 불렀다. 그리고 순식간에 열네개로 그 장면을 쪼개 들어갔다. 거의 망설이지 않는 정확함. 행여나 감정이 다칠세라 중간에 쉬지 않고 정사를 따라가면서 이러저리 나누는 것을 정일성 촬영감독은 거의 그 머리 안에 들어가서 그 속의 그림을 복기해내듯이 순서대로 따라갔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오랜 작업이 가져온 장인들의 경지일 것이다. 그것은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소름 끼칠 만큼 숙련된 솜씨였다. 영화는 숏을 이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결국 영화는 장면을 어떻게 나누냐의 문제이다. 그것이 장 피엘 우다르가 브레송의 <잔다르크의 재판>을 보면서 상대-숏 없이도 대화를 펼쳐낸 저 기적의 순간과 마주한 순간의 탄식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내부의 인물없이 외부의 인물이 없지만, 외부의 인물없이 내부의 인물도 없는 숏나누기의 봉합(suture)을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이 영화에 부여한 철학적 의미라고까지 말한다. 우리는 그 순간 영화 안으로 들어가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끼어든 시선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영화의 숏들은 자리를 벗어나고(out-of-joint), 신은 성립되지 않는다(미안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영화들은 숏이 안 맞는다. 심지어 텔레비전 드라마는 그걸 무시하고 찍는다. 그것이 내가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이다). 햄릿의 아버지가 유령이 되어 그의 아들에게 들려준 첫 대사. “시간이 멋대로 가고 있다.”(Time is out-of-joint) 이 말은 영화에서 시간이 어떻게 제 자리를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경구로도 읽혀야 한다. 제자리에 있지 않은 인물은 영화에서 유령이 된다. 내가 그 장면을 옮겨놓은 메모를 읽으면서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취화선> 팀은 장승업의 유랑길을 따라서 조선시대 말 충청도를 거쳐 호남땅 풍경 안으로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왜 이런 영화가 비디오가게로 바로 가지?

극장에 걸리거나 공중파를 타는 일 없이 바로 비디오로 출시되는 외국 영화들 가운데 눈여겨 볼 만한 것들이 꽤 있다. 지난달 나온 <더티 픽처>(2000년)는 텔레비전용 영화임에도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묵직한 주제의식이 잘 살아나 있다. 곧 출시될 <크루>(2000〃)는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있는 코디미 영화지만 리차드 드레이퍼스, 버트 레이놀즈 등 노년의 배우들이 마피아 동지로 다시 모여 벌이는 한판 소극이 나이든 관객의 향수를 자극할 법하다. <더티 픽처>(사진)는 1990년 미국 신씨네티 뮤지엄에서 개최한 로버트 메이플쏘프의 사진전을 주 검찰이 음란죄로 기소하면서 벌어졌던 실제 법정 사건을 다뤘다. 80년대말 에이즈로 숨진 로버트 메이플쏘프는 성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면서 동성간의 성행위 장면, 어린이의 성기가 노출된 사진 등을 찍어 논란을 빚어왔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미국의 예술박물관협회는 미국 순회로 유작전을 열기로 하고 제일 먼저 워싱턴을 선정했다. 그러나 보수적 정치인과 지역 유지의 반대로 행사는 불발되고 워싱턴 뮤지엄 관장이 해임돼버렸다. 두번째 전시 예정지인 신씨네티 뮤지엄의 관장 데니스(제임스 우즈)는 직간접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 박물관장들의 격려에 힘입어 행사를 열기로 결심한다. 이 영화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수반되는 개인적, 사회적 어려움들을 아주 잘 드러낸다. `음란'이라는 모호한 잣대 앞에 개인이 발가벗겨지고, `너는 가족도 없냐`는 식의 인신공격이 쏟아진다. 미국이라고 하지만 그 모멸적 메카니즘은 영화 <거짓말>이나 만화 <천국의 신화>의 논란 때 보였던 국내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지금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당시의 부시 대통령은 메이플쏘프의 작품을 `쓰레기`라고 칭하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너무 쌍소리가 될 것 같아 참는다, 여러분도 알 것이다`라고 말한다. 다큐멘타리처럼 실제 인물의 방송과 인터뷰를 삽입한 대목에서 보수적 인사들의 이런 독설이 난무한다. 반대로 영화배우 수잔 서랜든, 작가 샐먼 루시디 등이 메이플쏘프의 작품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 한 민주당 정치인의 말이 인상깊다. `미국에서 보수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은 정말 웃긴다. 실업이나 복지 등의 문제 앞에서는 시장에 맡기라며 개인을 무시하면서, 그들이 뭘 보느냐 라는 진실로 개인적인 문제에는 폭력적 간섭을 서슴지 않는다.` 주인공 데니스는 집에 걸려오는 협박전화와, `왜 이 싸움에 앞장서는 걸까'라는 회의를 극복하고 법정에 나서 결국 승소한다. 그 주장의 요지는, `표현의 자유는 특정 개인에게는 아무 상관 없을 수 있지만 모두에게는 가장 중요한 자유`라는 것이다. <크루>는 무엇보다 리처드 드레이퍼스, 버트 레이놀즈에 더해 <매트릭스>의 캐리 앤 모스, <바운드>의 제니퍼 틸리 등 화려한 배역이 돋보인다. 내용은 지난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한 <스페이스 카우보이>와 마찬가지로 퇴역한 마초들이 마지막으로 한판 벌이는 인생 황혼기의 연가다. 그러나 이미 늙은 탓에 이 마초들의 패기는 공격적이라기보다 아련한 페이소스를 풍긴다. <스페이스 카우보이>의 노인들이 젊은 시절 우주 비행사였던 데 반해 <크루>의 노인들은 전직이 마피아다. 바비(리처드 드레이퍼스)와 조이(버트 레이놀즈) 등 60대 노인 4명은 한때 화려했지만 모두 감옥에 갔다 나온 뒤 지금은 마이애미의 싸구려 호텔에 살면서 버스 운전사, 버거킹 점원 등으로 일한다. 갑자기 관광붐이 일면서 이 싸구려 호텔의 집값이 올라 쫓겨날 지경에 이르자 일을 꾸민다. 시체 보관소의 시체 한구를 훔쳐와 엽총으로 머리를 날린 뒤 호텔 프론트에 버려둔다. 마피아 조직 범죄로 위장해 주민들을 이주시켜 버리려는 속셈이었는데, 시체의 신원이 마약조직의 보스로 밝혀지면서 일이 꼬인다. 중간중간의 대사나 유머가 유쾌하고 짭짤하다. 임범 기자isman@hani.co.kr

제2회 영국애니메이션 페스티벌 - 아드만 특별전

12월21일부터 서울애니메이션 센터에서 단편 30편 상영, 전시는 1월20일까지 지난해에 이어 주한영국문화원이 여는 `영국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올해는 아드만 스튜디오를 집중 조명하는 `아드만 특별전`으로 마련된다. 영국의 아드만 스튜디오는 <월레스와 그로밋> <치킨 런>으로 국내에도 친숙한 클레이애니메이션의 대표주자. 이번 행사에는 아드만 스튜디오의 단편 클레이애니메이션 30작품이 상영되고, 점토로 빚어 만들어진 인형과 세트들, 스토리보드, 캐릭터 상품 등이 함께 전시된다. 상영작에는 아드만 스튜디오의 초기작인 <모프> 시리즈 2편에서부터 현재 아톰필름스 사이트에서 온라인 상영중인 <앵그리 키드> 시리즈, 현재 영국 2 채널에서 방영되고 있는 <꼬마렉스> 시리즈 중 `부엌 안의 쥐` 에피소드까지, 다양한 아드만 스튜디오의 단편애니메이션들이 두루 들어 있으며, 전시내용에는 <월레스와 그로밋>의 세트, <치킨 런>의 정신없던 헛간과 치킨파이 기계, 아슬아슬한 비행기 등이 포함돼 있다. 아드만 스튜디오의 `화려한 외출`이라 할 만한 이 행사는 주한영국문화원과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서울산업진흥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것으로,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12월21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12월21부터 내년 1월20일까지 계속된다. 때로는 코믹하게, 또는 과감하게 아드만 스튜디오는 1972년 피터 로드와 데이비드 스프록스톤에 의해 설립됐다. 학생 시절부터 스프록스톤의 아버지의 16mm카메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이들은`비전 온`이라는 청각장애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으로부터 제작의뢰를 받고, `아드만`이라는 다소 한심한 성격의 슈퍼맨 캐릭터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이것이에 의해 구매됨으로써 스튜디오의 윤곽이 생겨난 것이다. 아드만 스튜디오의 첫 번째 히트 캐릭터라 할 수 있는 <모프>가 만들어진 건 그로부터 4년 뒤, 1976년이었다. 피터 로드와 데이비드 스프록스턴의 아드만 스튜디오 첫 창작물인 `모프`는 테라코타로 만들어진 유연한 몸의 꼬마 캐릭터로, 친구이자 또다른 자아인 `차스`와 늘 붙어다니며 유쾌하고 조용한 에피소드들을 만들어갔다. 이번에 상영되는 작품은 <모프> 시리즈 중 <마법의 문>(파스칼 페레즈, 1분)과 <디스코>(스티브 복스, 1분).<마법의 문>은 문을 여닫을 때마다 슈크림케이크가 하나씩 늘어나는 마법의 문이 생긴 모프와 차스가 겪는 일을 그렸고, <디스코>는 전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춤추는 데에만 몰두하는 모프와 차스의 즐거운 한때를 담았다. 1990년에 오스카 수상을 하기도 한 1989년작 <동물원 인터뷰>(닉 파크, 5분)는, 아드만 스튜디오가 와의 협력관계를 끝내고 <채널4>와 손잡은 이후 만든 작품이다. 이제는 아드만 스튜디오의 전통이 돼버린 `립싱크`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립싱크 기법이란, 대사가 녹음된 마그네틱 테이프 위에 대사의 모음을 표시한 뒤, 이에 따라 어떤 프레임에서 어떤 모음이 발음되는지를 알고 애니메이터가 캐릭터의 입모양을 만들어내는 기법. 리포터가 동물원을 찾아 여러 동물들을 인터뷰하는 내용을 담은 <동물원 인터뷰>는, 립싱크 기법에 의해 동물캐릭터의 실감있는 의인화에 성공했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란 말이오. 신선한 육류를 달라고요`라는 사자하며 우리가 좁다고 불평하고 책으로 도피하는 동물까지, 고향과는 다른 동물원의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물들의 이 깜찍발랄한 이야기는, 뒤에 `일렉트리시티 어소시에이션`의 광고로도 만들어졌다. <내 사랑에겐 나뿐이야>(피터 로드, 3분)와<슬레지해머>(스티븐 존슨, 4분30초)는, 아드만 스튜디오가 만든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내 사랑에겐 나뿐이야>는 재즈가수 니나 시몬의 를, <슬레지해머>는 피터 가브리엘의 싱글 에 맞춰 만들었다. 고양이 가수가 클럽에서 노래를 하고, 개 관객이 음료를 마시며 공연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내 사랑에겐 나뿐이야>는 부분적으로 컬러를 도입한, 일종의 흑백애니메이션이다. 가수의 입술과 칵테일, 네온 간판, 신사의 나비넥타이, 조명불빛 등에만 붉은 색 처리를 하고 나머지는 회색톤으로 처리함으로써, 재즈의 분위기에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슬레지해머>는 초반과 후반이 형식상 나뉘는데, 초반에는 가수 피터 가브리엘이 직접 출연하여 음악에 맞춰 눈을 깜빡이고, 귀를 움직이고, 얼굴 근육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동작을 보여주며, 후반에는 클레이애니메이션이 실제 인물을 대신해 좀더 과감한 표정들을 만들어낸다. 이번 아드만 특별전 프로그램에서 눈에 띄는 작품으로는, 이 밖에도<논도메스틱 어플라이언스>와 <데드라인>이 있다. <논도메스틱 어플라이언스>(세르지오 델피오, 1분35초)는 지난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도 초청됐던 작품. `TV 소`와 싸우는 투우사의 한판이 박진감 있게 표현돼 있다. 여기서 소는 다리와 안테나가 달린 텔레비전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마침내 소가 투우사 앞에 무릎을 꿇을 때 TV화면에 역시 무릎을 꿇는 링 안의 권투선수가 보여지는 등 위트가 넘친다. 제목은 TV 소가 쓰러진 이유가 `비국내용` 전자제품이었기 때문인데서 딴 듯. 2001년작인<데드라인>은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이 근래의 CG애니메이션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세명의 애니메이터들이 `마감`에 임박해 애니메이션 만들기에 애를 태우는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 스티븐 마조람, 단 레인, 위 브라이언 등 세명의 애니메이터들이 작접 자신들의 목소리로 자신들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어도비사의 `애프터 이펙트` 프로그램으로 합성했으며 립싱크 기법이 사용됐다. 디지털 옷 입고 온라인으로 <앵그리 키드> 시리즈와 <꼬마쥐 렉스>는 최근 아드만 스튜디오의 경향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귀엽고 앙증맞은 캐릭터에서 탈피, 못생기고 짓궂은 말썽꾸러기 `앵그리 키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사고뭉치 일상을 담은<앵그리 키드> 시리즈는 온라인상에 올리기 좋게 1분 내지 1분30초로 만들어진 짤막한 단편들이다. 필름으로 촬영해 디지털화했다. 이번에 상영되는 단편들은 <앵그리 키드> 시리즈 중 애니메이터 다렌 월시의 작품들인 <감자칩> <골키퍼> <헤드라이트> 등 3편. `아즈텍 단편` 시리즈에 속하는 <핫 샷>, 2000년작 <콤피>, <피브와 포그>, 1993년작 <핸드백 없이는 안 돼>도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이다. <핫 샷>(마이크 캐시, 1분40초)은, <핫 샷>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찍는 이야기. 주인공인 야성의 사나이가 멋지게 총을 쏘는 장면을 촬영하는 대목에서, 결국 해가 저물고 밤이 되어서야 총을 발사하게 되지만 그 총에 맞아 죽게 되는 배우의 비운을 코믹하게 그렸다.<콤피>(세스 와킨스, 1분52초)는 `잠 한번 편히 자`보려다 팔다리를 잃고 마는 한 사람의 이야기. 턱없이 짧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던 사람이 거추장스런 다리와 팔을 무심결에 떼어내고, 침대 밑으로 굻러떨어진다는 내용이다. <피브와 포그>(피터 피크, 6분)는 고전 어린이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애니메이션. 악의없는 농담을 나누던 피브와 포그가 점차 엽기적인 이야기로 옮겨가는 과정을 그렸다. 비교적 긴 길이의 <핸드백 없이는 안 돼>(보리스 코스멜, 12분)는 죽어 저승으로 가는 길에 이승에 두고 온 핸드백 생각이 나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안티와 그녀의 조카가 악마와 벌이는 접전을 담은 작품이다. 이번 아드만 특별전은 수많은 전세계 페스티벌에 초청돼 200회가 넘게 수상을 했으며, 오스카상도 3번이나 받은 아드만 스튜디오의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작품들을 주요작품의 스토리보드, 세트와 함께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12월24일, 1월1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는 전시 및 영화상영 일체가 무료(문의 02-3702-0612, 02-3455-8363).최수임 아드만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시간표 요일 및 시간 11시 14시 17시 12월 21일 (금) 프로그램 1 프로그램 2 프로그램 3 22일 (토) 프로그램 3 프로그램 1 프로그램 2 23일 (일) 프로그램 2 프로그램 3 프로그램 1 24일 (월) 프로그램 1 프로그램 2 프로그램 3 25일 (화) 일정 없음 26일 (수) 프로그램 3 프로그램 1 프로그램 2 27일 (목) 프로그램 2 프로그램 3 프로그램 1 28일 (금) 프로그램 1 프로그램 2 프로그램 3 29일 (토) 프로그램 3 프로그램 1 프로그램 2 30일 (일) 프로그램 2 프로그램 3 프로그램 1 프로그램 1 <동물원 인터뷰> <아이큐 552> <세계 야생 생물 기금> <충가 추이> <상업광고물#1> <앵그리 키드`감자칩`> <핸드백 없이는 안돼> <모프 `마법의 문`> <웰레스 앤 그로밋 `화려한 외출`> 프로그램 2 <팝> <전쟁이야기> <논-도메스틱 아플라인스> <무대 공포증> <컴피> <상업 광고물 #2> <앵그리키드 `헤드라이트`> <내 사랑에겐 나뿐이야> <험드럼> <모프 `디스코`> <웰레스 엔 그로밋 `전자바지 대소동`> 프로그램 3 <슬레지 해머> <어니스트> <피브 앤 포그> <핫샷> <상업 광고물 #3> <앵그리 키드`골기퍼`> <데드라인> <꼬마 렉스 부엌쥐`> <방랑자> <웰레스 앤 그로밋 `양털도둑`> ◆ 장소 : 남산 서울 에니메이션 센터(02-3702-0612, 02-3455-8363) ◆ 관람료 : 무료

운동

전주 강연을 며칠 앞두고 대학동기 ㅇ목사에게서 내려오면 꼭 만나자는 이메일이 왔다. ㅇ이라…. 다른 친구에게 묻고서야 그가 누구인지 또렷이 기억할 수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했고 노동현장에서도 5년가량 활동했던 친구다. 세월이 흘러, 뒤늦게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전주에서 기독교사회복지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의 한 음식점에서 그와 술잔을 기울였다. “규항이 이 사람 그룹은 좀 특이했어….” 두런두런 익살을 섞어가며, 그가 그의 ‘동지들’에게 그 시절 나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었다. 웃음지으며, 그 시절을 추억하던 나는 문득 ㄷ과 ㅎ을 생각했다. “세상이 달라졌다고들 하지만 본질적으론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운동을 하던 둘은 올해 초 사회운동으로 이전했다. 둘을 생각하면 대견하고도 안쓰럽다. 더이상 운동이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 아닌 세상에서 운동하는 둘을 생각하면 말이다. 지난해 초 둘을 처음 만나 나는 말했다. “텔레비전 토크쇼 같은 걸 보면 게스트의 10여년 전 시에프 장면을 보여주는 일만으로 폭소를 불러일으킨다. 자본 진영의 선전선동 기법은 10여년 새 혁명을 이루었다는 얘기다. 그들과 맞서 싸운다는 자네들의 기법은 10여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중을 설득할 수 없다면 운동이 아니다. 내가 처음 만난 운동권 선배들은 학교 안에서 가장 호감 가는 사람들이었다. 요즘 신입생들이 운동권 선배들에게 어떤 인간적 호감을 느낄 거라 생각하나.” 시간이 지나 그들과 좀더 친해지고 그들의 형편(세는 줄어들고 임무는 더욱 많아진)을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내 ‘보편타당한 비판’을 반성했다. 그것은 운동이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던 시절(그 시절, 우리가 운동을 하는 건 말 그대로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었다. 군인들이 양민을 도살하고 그 도살자들이 직접 통치하던 시절이었다.)에 운동했던 사람이, 운동이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 아닌 오늘 힘들여 운동하는 사람에게 주는 차가운 ‘논평’이었다. 게다가 오늘 이른바 학생운동의 경직성과 미숙함은 세상을 바꾸는 일에 일생을 바치겠노라 후배들 앞에서 눈물로 맹세하다 90년대 들어 아무런 설명없이 일제히 사라져버린, 선배와 후배 사이의 호감과 존경을 한순간에 거두어버린 사람들이 마련한 것이다. 오늘 그들은 ‘운동했던 친구들’끼리 만나 ‘논평’하곤 한다. “요즘 운동권 애들 보면 한심해. 아니, 우리가 운동할 때는 말야….” 지나간 추억이나 들먹이는 되먹지 않은 주둥아리들에겐 이런 질문이 제격이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오늘 어떻게 살고 있나.” 학생운동은 쇠락하고 있다. 그것은 전체 운동의 침체와 관련한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전체 운동에서 학생운동이 감당할 몫이 줄어들고 있다는 좀더 본질적인 상황을 뜻한다. 그러나 학생운동의 쇠락이 대학에서 진보의 쇠락을 전적으로 지시하는 건 아니다. 학생운동의 쇠락이 강조되는 가운데, 나는 오늘 대학에서 ‘운동권이 아닌 진보적 청년들’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중요한 건 학생운동권이 얼마인가가 아니라 학생 가운데 진보적 신념을 가진 사람이 얼마인가, 그리고 그 신념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 다. 이를테면 10년 전 대학에 진보적인 청년이 백이었고 오늘은 다섯이라 치자. 알다시피 그 백 가운데 여전히 신념을 간직한 사람은 하나가 채 안 된다. 오늘 다섯 가운데 10년 뒤 20년 뒤에 둘, 아니 하나라도 남는다면 그게 훨씬 좋은 것이다. 세상은 ‘학생 시절에나 하는 운동’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일생에 걸쳐 간직되는 신념으로 바뀐다. 그 긴 신념은 운동을 세상의 모든 지점(운동을 청산한 사람들이나 선택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지점들을 포함한)으로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운동하는 판사, 운동하는 국회의원, 운동하는 배우, 운동하는 코미디언, 운동하는 투수, 운동하는 장군, 운동하는 사장…. 세상의 모든 지점에 운동이 스며들 때 세상은 비로소 바뀔 것이다.(끝)김규항/출판인 gyuhang@mac.com

조폭영화의 사회학을 위해 <두사부일체>와 <화산고>

● 최근 극장가에 나란히 내걸린 <두사부일체>(감독 윤제균)와 <화산고>(감독 김태균)는 학교라는 공통된 배경, 흥행에서 기선을 잡으려는 배급팀의 샅바싸움 같은 요소 이외에 장르의 관습과 차별화라는 관점에서도 함께 묶어 논의할 만한 대상이 된다. 그런데 두편에 대한 개별 리뷰나 비교에 앞서서 먼저 시도되어야 할 것이 이른바 ‘조폭영화’ 자체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폭을 정면에 내건 <두사부일체>는 말할 것도 없지만 <화산고> 역시 ‘학원 무협 블록버스터’라는 신종 개념에도 불구하고 상당부분 조폭영화의 특징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 수준 높은 예술영화가 시장에서 고전하는 것을 근심하느라 ‘저속한’ 조폭영화들에 별 한두개씩 덜렁 던져놓고 째려보는 동안, 수백만 관객은 제작자와 감독들을 끌고 밀며 조폭영화의 생명력을 늘려나가는 중이다. 덕분에 우리는 지금 하나의 하위장르(sub-genre)가 탄생하고 진화하는 전형적인 과정을 목도하고 있다. 조폭영화, 새로운 하위장르의 탄생 장르를 불문하고 오늘날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상업영화를 보면 확연하게 변한 관객 구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과거에 영화산업을 지탱시키던 가족시장이 텔레비전 몫으로 돌아가고 영화는 20∼25살 정도의 젊은이를 주력대상으로 하는 틈새시장(nitche-market)으로 분화되었다. 영화 속에서 어린이와 중년층이 사라지고, 대신 결혼 상대 찾기를 주제로 하는 멜로드라마나 가정 바깥의 횡적인 연대를 강조하는 집단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조폭영화는 후자의 범주 가운데서도 특히 가정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젊은 남성들 사이의 유사 혈연 공동체 의식(pseudo-family-bond)을 겨냥한 내러티브가 특징적이다. 또한 테크놀로지와 관객의 상호작용도 조폭 장르가 형성되는 저변을 이룬다. <화산고>의 진정한 주역 가운데 하나는 컴퓨터그래픽을 중심으로 한 현란한 테크놀로지인데, 컴퓨터 테크놀로지는 이 영화의 비주얼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그와 같은 종류의 컴퓨터 게임을 즐기며 성장한 관객 자체를 창조해둔 바 있다. 그러므로 조폭영화가 플롯이나 주제의식의 진정성 대신, 자못 장대한 액션이나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 등 시각적 불꽃놀이에 치중한다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게임이나 만화 등 이들 관객과 친근한 주변 매체들 역시 영화의 비주얼과 연기 양식, 캐릭터, 나아가 플롯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화산고>의 제작진이 내보낸 보도자료 첫머리에서 “영화읽기가 아니라 영화보기를 하라”고 이례적인 권고를 하면서 스토리의 짜임새, 캐릭터의 입체감, 드라마적 감동보다는 귀를 찢는 음악, 현란한 볼거리, 감각적인 편집 아이디어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자못 당당하게 밝히는 배짱도 바로 이런 맥락에 놓여 있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나타나는 멜로드라마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장르는 우연처럼 보이는 특정 작품의 흥행 성공으로부터 시작되어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세련화되고 걸작을 몇편 산출한 뒤 패러디와 쇠퇴를 거쳐 묘비명이 되는 작품을 끝으로 사라지는 생장사멸의 순환을 관찰할 수 있다. 이같은 관점에서 조폭영화의 기원을 1990년대 초·중반에 나온 <게임의 법칙> <깡패수업> <본투킬> 같은 영화들로 소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유행하는 조폭 장르의 직접적인 출발점은 <주유소 습격사건>(감독 김상진, 1999)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영화의 경우 주인공이 조직폭력배는 아니지만, 몇 가지 점에서 조폭영화의 원형적인 특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나온 <친구>가 본격적인 흐름을 열었다면, <킬러들의 수다>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는 다양한 방향으로 변주되는 조폭 장르의 진화단계를 보여준다. <화산고>는 그 변주의 정도가 좀더 두드러진다. 남성 속에 숨은 신화를 확대재생산 조폭영화가 드러내는 장르적 특질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 계열의 영화들이 생산되어 나오는 것과 발맞추어 본격적인 논의가 뒷받침되어야 하겠으나, 일차적인 관찰만으로도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조폭영화의 주인공은 도시 노동자 계층 남성들의 뒤틀린 자화상으로 보인다. 그들은 대부분 집안환경 등 경제적인 이유로(경제적인 문제는 때로 지역적인 문제로 치환되는데 조폭들이 쓰는 사투리가 이 문제를 예민하게 반영한다) 고등학교 교육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다. <두사부일체>는 조폭들이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서 이를 코믹 코드로 활용하는 예다. 사회생활의 경쟁에서 정상적으로 승리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허락된 하나의 탈출구가 바로 폭력에 기초해서 지역 상권을 장악하는 길이다. 이렇게 되면 가끔씩 야구 방망이나 식칼을 들고 집단 패싸움을 해야 한다는 사실만 빼고는 외견상으로 부르주아적 삶과 구별되지 않는 폼나는 인생이 된다. 제도화된 소외와 계급 차별이 존재하는 도시 환경 속에서 합법적으로 권력과 성공에 접근하는 것이 봉쇄되고 그래서 부를 강탈하기 위해 비인간적인 도구와 기술을 사용한다는 갱스터영화의 도식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이 조직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관습적인 도상(iconography)은 세련된 양복이나 가죽재킷을 빼입고 룸살롱에서 고급 양주를 마시는 것이다. <두사부일체>는 이런 요소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며, <화산고>에서도 청부 폭력배의 이미지를 지니는 화산5인방이 입은 가죽의상은 물론이고 여주인공의 교복 역시 가죽코트의 느낌을 변형한 디자인이다. 이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조폭 집단 내부의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조폭사회의 절대 윤리가 ‘의리’인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일반사회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의리를 최고의 윤리적 덕목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는데, 전통적인 가족관계를 묶어주는 효도 등의 윤리가 쇠퇴한 대신 유사가족의 도덕률로 의리가 대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폭 내부로 들어가면 의리는 다시 상하관계에 대한 절대복종이라는 봉건적인 수직윤리와 결합한다. 예컨대 룸살롱에서 하급자가 상급자로부터 최대한 겸손한 자세로 술잔을 받아 마시는 것은 상당히 강력한 도상이다. 의리와 절대복종이라는 집단윤리는 <두사부일체>나 <화산고> 모두 마찬가지다. 조폭영화는 또한 대도시의 사회조직이 사실상 범죄자 집단과 구별되지 않거나 조폭보다 더 사악한 조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도시에는 공적 질서가 부재하고, 공적 질서의 대표 기구인 국가 공권력이나 교육 기관이 오히려 부패와 결탁되어 있거나 부패 그 자체라는 생각은 <두사부일체>와 <화산고>가 가장 강력하게 문제삼고 있는 부분이다. 타깃 대상을 청소년층으로 두고 있는 조폭영화가 온갖 교육문제들로 들끓고 있는 학교로 찾아들어가 한바탕 뒤집어놓고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는 전략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 나올 조폭영화는 어쩌면 여의도를 습격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조직폭력배, 특히 두목급 조폭은 사회와 근본적으로 불화하는 낭만적 영웅으로 그려진다. 주인공의 과거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가 세상과 불화할 뿐만 아니라 법체계와 노골적으로 대립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별’이 몇개 달린 전과자이거나 퇴학을 몇번씩 당한 사실(<화산고>)만으로도 간단하게 설명된다. 공적 질서를 신뢰하거나 의지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은 조폭집단이 대신 메우게 되고 이때부터 선한 조폭과 악한 조폭이 나뉘어 대립한다. 이를테면 <두사부일체>에서 학교 당국자가 악한 깡패라면, 졸업장 따러 들어갔다가 얼떨결에 싸워야만 하는 주인공은 선한 깡패가 된다. <화산고>에서도 억압적인 학교 질서를 유지하려는 교감과 화산5인방, 그리고 이에 맞서는 학생집단의 구도는 기본적으로 이와 일치한다. 외부 세계와의 경쟁에서 늘 단호한 폭력으로 승리해왔던 조폭집단 내부에 선악에 대한 분별이 싹트고 낭만적인 휴머니즘에 지배되는 순간 조폭 두목은 영웅적인 패배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애써 그 길을 외면하던 조폭 두목이 급기야 싸움에 참여하기를 선언하는 것은 사랑하는 여성이 위기에 처하는 순간이 되고, 이 과정을 영웅화하는 집단 패싸움과 남성간의 감상적인 동료애가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반드시 포함된다. 이것은 <두사부일체>와 <화산고>가 공유하는 플롯이다. 요컨대 조폭영화는 가진 것 없지만 자존심과 지배욕이 강한 타입의 남성성을 허세 가득한 도상과 미장센으로 그려내는 남성들의 판타지이자 신화다. <조폭 마누라>는 남성 주인공들이 과시했던 모든 자질들을 다 갖추고 있는 여성 조폭을 내세우면서, 성에 대한 순진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여성 관객에게는 섹스 코미디로, 조폭영화의 관습에 익숙한 남성 관객에게는 여성성과 모성성이 초래하는 근본적인 부조화를 선보이는 장르 변주를 통해 호소력을 획득한 경우다. <친구> 이후의 변주 그런데 <친구> 이후에 나오는 조폭영화는 또 하나의 강력한 흥행코드인 코미디와 결합하면서 주인공들의 운명을 약간씩 다른 방향으로 변주해낸다. <두사부일체>나 <화산고>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내러티브 라인이 위와 같은 도식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이 때문인 것 같다. 특히 <화산고>는 무협과 조폭영화의 유사성을 간파하고 그 기원을 잘 찾아들어갔다. 무림의 세계든 조폭의 세계든 현실세계와 일정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둘 다 현실세계를 양식화한 공간이라는 점, 예술적인 경지로까지 승화된 무술 혹은 폭력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야쿠자영화가 사무라이영화의 장르적 변형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더욱더 무릎을 치게 된다. 조폭 장르에 대한 관객의 호응은 현대 한국사회의 속성이 근본에서 조폭과 마찬가지이며 특히 신뢰할 만한 정치적 지도력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심리적 공명(共鳴)인 것으로 보인다. 이 장르가 표현하는 과장된 절망의 제스처는 동시에 그 무엇인가에 대한 강력한 소망의 제스처로 읽힌다. 현대인을 사로잡고 있는 소외의 굴레들을 양식화된 방식으로 그려보이는 조폭영화는 그 해결책으로 남성적인 힘의 지배를 소망한다. 그러나 그같은 시도는 늘 좌절하거나 어려움에 부닥친다. 권위있는 남성권력을 열망하면서도 그것의 성취불가능성을 아울러 토로하는 조폭영화는 황량한 한국인들의 내면적 혼란과 모순, 실존적인 방향상실을 지시하는 하나의 의미있는 징후가 아니겠는지. 김소희/ 영화평론가 cwgod@hanmail.net

활개 편 중닭 바쁜 남자 ‘조재현’

조재현(36)씨는 요즘 경사가 겹쳤다. 텔레비전 드라마 <피아노>로 주가가 올라 남자 연예인 인기 1위로 꼽히고 있는 데 더해 지난 18일 베를린국제영화제쪽으로부터 그의 최근 출연작 <나쁜 남자>가 이 영화제 본선에 올랐다는 전갈이 왔다. 30대 중반에 이르러 조씨는 이제 정상급 스타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한 셈이다. 89년 곽지균 감독의 <젊은 날의 초상>에 운동권 학생으로 나오면서 데뷔한 지 10여년만이다. 지난 19일밤 늦게까지 <피아노> 촬영을 하고서 20일 아침에 부랴부랴 인터뷰에 응한 조씨에게 먼저 <피아노>의 성공에 대한 소감 한마디를 청했다. “방송이나 영화계에서 배우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기존의 배우들에게서 이미 알려진 이미지를 다시 우려내려고만 했지, 그들을 개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점에서 나같은 `중닭` 연기자도 기회가 주어지면 활기를 띨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내년 1월 개봉예정)는 인신매매를 중개하는 깡패가 우연히 마주친 한 여대생을 납치해 창녀로 만든다는, 다분히 김기덕식 정서에 기초한 영화다. 그 동기는 깡패가 여대생을 좋아하기 때문이지만, 감정을 온전히 표현할 줄 모르고 그럴 방법도 없다. 상대방을 타락시키면서 더 얽매이는 이 기묘한 남녀관계의 이야기에서, 조씨가 연기한 깡패 한기는 여대생을 범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놓아주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생각보다 덜 `나쁜 남자`로 나온다. “정말 나쁜 놈을 그려보고 싶었는데, 김 감독이 쓴 시나리오가 생각보다 덜했다. 김 감독이 의외로 약한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여대생이 자기 발로 돌아온 뒤에도 한기가 이 여대생에게 몸을 팔도록 하고 거기에 빌붙어 사는 마지막 대목이 와 닿았다. 그런 놈이라면 내가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 사랑의 방식이 보통 사람의 사고의 범주를 넘어서지만,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조씨는 지금까지 출연한 10여편의 영화 가운데 김 감독 것이 5편에 이른다. 그 영화 안에서도 <섬>의 다방 종업원 등쳐먹는 기둥서방, <수취인 불명>의 개장수처럼 야비한 역할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조씨에게는 `김기덕의 페르소나'라는 별명이 붙어다닌다. “김 감독 영화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데, 내 역할이 그 안에서 더 치우쳐 있으니까 김 감독의 정서를 내가 대변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김 감독이 말하려는 정서가 내가 했던 역할 같은, 악마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내가 비슷한 역할만 맡는 것 같아 <수취인 불명> 때 김 감독에게 그런 말을 했다. 아무리 친하다고 서로 아는 것만 빼먹지 말고, 다른 것들을 찾아줘야하지 않겠냐고. <나쁜 남자>는 캐릭터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조씨는 김 감독이 앞으로 찍으려는 아이템이 두세개 있는데 그 안에 자기가 할 역은 기껏해야 우정출연 정도일 것이라고 전했다. 일단은 결별인 셈이다. “얼마전에 김 감독이 이제는 다른 감독들이 조재현이라는 배우를 만들어내는 일만 남았다고 말하더라. 마치 부하 하나 만들어서 전쟁터에 내보내는 이순신 장군처럼.” 조씨는 “이전에는 저예산 영화의 시나리오만 들어왔는데, 최근에는 거꾸로 메이저 영화의 시나리오만 들어온다”면서 “하고 싶은 역할이다 싶으면 저예산 영화에도 꼭 출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임범 기자isman@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페드로 코스타, 리처드 포튼, 임재철, 세 시네필의 난담

제1회 광주영상축제는 썰렁하기 그지 없었지만, 장 르누아르, 미조구치 겐지, 장 뤽 고다르, 장 비고 등의 상영작들이 시네필들에게는 즐거운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손님으로 영화제를 찾은 포르투갈의 영화감독 페드로 코스타와 미국의 영화학자이자 언론인 리처드 포튼, 그리고 폴리티컬 시네마 등 일부 프로그램을 담당한 한국의 영화평론가 임재철, 세 사람이 만나 쉽게 말문을 틀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시네필의 과거를 공유한 덕분이다. 영화적 유산에 대한 재평가와 누벨바그와 같은 실험에 거름이 된 영화문화의 흐름과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없는 영화에 대한 사적인 체험과 취향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4시간이 넘도록 그칠 줄 몰랐다. 페드로 코스타(이하 코스타) 이 영화제는 내게 아주 기묘한 인상이었다. 처음에 난 임재철이 영화제 상영작 리스트를 보내준 걸 보자마자 이 사람도 나만큼이나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뭘 꿈꾸면서 이런 프로그래밍을 했지? 나이브한 사람 아닌가 하고. 이런 페스티벌에서 정치영화나 이런 영화사적인 고전들이 요즘도 통하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영화들이 통하길 바라지만, 글쎄….(웃음) 임재철(이하 임) 내가 바란 게 있다면 시네필들의 커뮤니티를 위해 좀더 확실한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나도 내가 하는 일이 일종의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실패가 확실시되면 아르헨티나로나 이민 갈 생각이다. 받아줄지 모르겠지만. (웃음) 그렇지 않아도 어제 페드로와 한참 얘기를 했는데, 시네필로서의 과거에 대해 아주 열정적이었다. 로베르 브레송의 촬영감독이었고, <뼈>를 촬영한 에마뉘엘에게 들어서 아는데 브레송이 젊은 시절에 몸을 파는 남창이었다는 뒷얘기부터 시작해서…. (웃음) 그래서 각자의 과거에 대해 얘기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코스타 난 사실 시네필이라 자처한 적은 없는데…. 그저 영화를 보고 싶어했던 거지. 물론 내가 본 영화들에 대해서는 자랑스럽다. 채플린의 영화를 거의 다 본 것. 난 포르투갈 국립영화학교를 다녔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매일같이 시네마테크에 드나들었다. 맨 앞줄 가운데가 내 자리였고, 누가 앉아 있으면 내 자리라고 싸우곤 했다. 거기서 이따금 회고전을 해줬는데 찰리 채플린, 스턴버그, 하워드 혹스, 로베르토 로셀리니 등의 전작을 틀곤 했다. 그럴 때 거기에 가서, 마치 토마스 만의 전집을 읽듯 영화를 봤다. 클래식영화들, 미국영화들.사랑하는 감독과 영화 임 스와 노부히로와 얘기했을 때 그는 나와 거의 같은 세대였다. 그 역시 70년대 미국영화로 영화에 빠져들게 됐다고 했다. 페킨파, 알트먼, 스코시즈. 거기다 몬테 헬만 같은 사람을 추가할 수 있겠지. 하지만 영화를 더 많이 보게 되면서 그들이 그렇게 대단한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알트먼 같은 경우 방법에 대한 의식의 결여 같은 것은 확실히 치명적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난 아직도 그 영화들을 별볼일 없는 것들이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일종의 센티멘털한 집착이 여전히 있다. 코스타 알트먼에 대해 장 마리 스타라우프는 아마 동의 안 할걸? 그는 <닥터 T와 여인들>을 좋아하지 않으면 친구도 아니라고 했었다. 돈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영화라고. 포튼 하긴 자크 리베트도 <쇼걸>이 최고의 영화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니까. 임 그래서 페드로가 좋아하는 영화 언급할 때 70년대 감독이나 영화를 하나도 언급 안 한 게 놀라웠다. 70년대 포르투갈에서는 미국영화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나? 코스타 70년대 작가들을 만나기 이전에 나는 존 포드, 하워드 혹스등의 전작을 볼 수 있었다. 나한테 특히 존 포드는 최고 중 하나다. 그는 기능적으로도 뛰어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자의식도 가지고 있었다. 70년대 하면 내게 떠오르는 것은 그 많은 형편없는 프랑스영화들이다. 10대 시절 나는 주변의 것들을 모두 싫어했는데 70년대 영화들도 그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브누아 자코 같은 감독들은 정말 나에게 고통을 안겨준 영화를 만들었다. 임 존 포드의 경우는 어렸을 적에 극장에서 <샤이안>을 본 기억이 있고 그의 대표작들을 나중에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그러다보니 그가 얼마나 걸출한 작가인가를 이해하는 데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에서 <일곱 여인>에 이르는 포드의 만년 괴작들의 진가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페드로는 영화체험 측면에서 나보다 훨씬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포튼 나에게 영화는 빌리 와일더가 거의 시작이다. 영화광인 부모님이 극장 가길 즐겼는데, 아마 <뜨거운 것이 좋아>가 내가 처음 반한 와일더 영화였을 거다. 그리고는 뉴욕대학(NYU)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하면서 레퍼토리 극장들에서 많은 영화들을 봤다. <잔다르크의 열정> 같은 클래식들, 할리우드영화들, 독서와 평론으로부터도 많은 걸 배웠고, 나아가 영화를 발견하는 식이었다. 제임스 애지나 마니 파버 같은 사람들의 리뷰, 그들의 의견에 다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그걸 읽고, 영화를 보러 가고. 레퍼토리 시네마에서 많은 걸 봤다. 고다르, 펠리니, 이후 2∼3달 동안의 스케줄을 체크해가면서. 시네필의 관점은 고유하고 사적이라 어떤 기준을 넘어서 감독의 감각이 나와 맞아야 하는 것일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 감각에 맞는 감독은 브뉘엘이다. 한편을 꼽긴 어렵고 그의 작품 전체. 코스타 그건 한 감독이 다른 감독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존 포드가 어떤 감독이 좋냐는 질문에 르누아르, 어떤 영화가 좋냐는 질문에 그의 전 작품이라고 답했다니까. 미조구치 겐지도 아주 아름다운 말을 한 적이 있다. 감독이 감독에게 할 수 있는 최상급의 찬사라고 생각하는데, 오즈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하면서, 그가 한 작업이 자신이 한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다. 미조구치도 훌륭한 감독임에 틀림없지만, 오즈가 자신의 소우주, 아버지, 어머니, 아이, 사촌, 아이, 집, 도시, 시골 등에 대한 영화를 스무편 이상 힘있게, 에너지를 갖고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임 어제 코스타와도 애기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르누아르가 대단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는 독자적인 스타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처음 봤을 때 잘 포착되지 않지만 유동체로서의 현실을 포착해내는 대단한 능력이 있다. 사실 현실의 모난 부분을 포착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능력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거기서 현장에 입회해 있는 듯한 질감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수준이 다른 문제가 된다. 코스타 이를테면 브레송을 처음 보게 되면 당연히 경악하게 된다. 영화제의 카탈로그에 의하면 내가 브레송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감독으로 되어 있는데(웃음)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는 걸 숨기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는 <몽상가의 4일밤> 같은 스타일밖에 남는 것이 없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르누아르는 어떤 작품도 몇개의 형식적인 측면으로 환원될 수 있는 작품은 한편도 없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작품이 흥미롭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있다. 포튼 난 늘 브뉘엘의 영화로 돌아가는 것 같다. 장 비고도 그런 감독이지만 4편밖에 안 만들었으니까…. 최근 감독 중에는 잔니 아멜리오도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옛날 이탈리아영화들의 재탕이라고 하면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뭔가 남겨줬으니까. 뭐, 로랑 캉테 영화도 괜찮았다. 코스타 난 그의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그와 얘기는 많이 나눴다. 그리고 그의 관심사가 노동자들, 거리의 사람들, 고통받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나와 맞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같은 사람도 지금의 이 상황에서 꽤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는 게 나한테는 악몽이다. 무수한 인터뷰에, 프레젠테이션에, 일종의 자본주의적인 과잉 속에서도 말이다. 그 과정을 받아들인다는 데에서 약간의 의심이 드는 것이다. 그게 내 문제라는 것도 알지만, 나한테는 아주 유서깊은 문제다. 현재의 영화비평에 관한 근심 포튼 요즘 학생들에게 단편을 만들어오라고 하면 스코시즈나 타란티노의 페스티시를 만들어온다. 아니면 현재 주목받는 감독들. 그리고 시나리오 코스가 훨씬 많은 지금에 나온 각본들이 예전보다 훨씬 못하다. 그 책과 강의들이 어떤 공식을 가르치기 때문일 것이다. 잘만 만들어진다면 상업영화라고 해서 꺼릴 것은 없지만, 요즘의 할리우드는 그것조차 하지 못한다. 제대로 된 로맨틱코미디 하나 못 만든다. 30, 40년대에는 하워드 혹스와 프랭크 카프라처럼 셰익스피어를 코미디에서 살려내는 전통이 있었다. 스튜디오 시스템하에서 오히려 더 좋은 영화들이 나왔다. 코스타 왜냐하면 지금은 영화의 일부였던 것들을 영원히 죽이려 드니까. 그동안 영화가 보여준 테크닉이 숏을 운용하는 방식이 있는데, 아무도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점점 영화를 영화사의 관계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과 이론이 영화에 관여하면서 모든 게 엉망이 됐다. 시네필, 독립영화 등등 모든 것들이 이론에 의해 훈련된다. 예전의 시네필들은 부지런히 토론을 했다. 영화 안에서는 고다르 같은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에 동시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하지만 크리스티앙 메츠와 함께 시작된 것 같은데, 대학에서 갖가지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영화로 흘러들면서 망가지기 시작했다. 서울이든, 뉴욕이든, 파리든 젊은이들은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모른다. 실제 영화에 접근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이론에 의존하니까. 그 이론 중 일부는 잘못 조작된 것이기도 하다. 60년대의 모든 위대한 것들이 지나가고, 70년대를 거치면서 아주 나쁘게 변했다. 그때가 내가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기였다고 말했지만, 영화학교에서 선생들이 권해준 영화들은 모두 끔찍했다. 한두 가지 예외는 있지만. 바타이유를 읽지 않으면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얘기는 정말, 18살의 소년에게는 엿 같은 일이다. 포튼 내 경우 영화학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애증관계가 있다. 원래는 시네필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학생들도 논문이나 책을 쓰지 않는 한 채플린의 모든 영화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게 특화되고, 마케팅의 문제가 되고, 학계는 물론 영화 자체가 산업이 되고 있다. 출판물과 책으로 산업화되는 경향…. 몇몇 감독들도, 민족영화에도 패션의 사이클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아마 한국영화가 다음 유행이 되겠지? 평론가들도 뭔가 전문분야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의 영화를 발견하려는 노력은 요즘의 영화연구자에게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60년대 후반 대학에서 처음 영화를 가르칠 무렵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지금처럼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도 없었다. 가령 가장 일찍 영화과가 생긴 뉴욕대학의 초창기 교수진을 보자. 에이젠슈테인과 일하기도 했고 영화도 만든 한 제이 레다 같은 사람은 내가 알기에 대학에 가지 않았다. 윌리엄 에버슨도 아마 대학은 안 갔던 것 같고. 아네트 마이클슨은 고작 학사학위밖에 없었다. 페드로 많은 학교들과 비평, 이론과 함께 개인의 판타지는 점점 더 불명료해지는 것 같다. 고독에 대한 욕구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자신의 방에 갇혀 있을 뿐 더이상 그룹을 이루지 못한다. 난 그런 사람들의 지식을 믿지 않는다. 3∼4편을 보고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식. 영화를 보면서 배우가 누구고, 엑스트라였던 배우가 나중에는 주연이 되는 변화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 과거의 거장들은 영화를 만들고 공유했다. 그들은 혼자 있을 때와 함께할 때를 잘 구분할 줄 알았다. 왕가위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함께도 혼자도 아니다. 내 유일한 스승은 포르투갈 감독인 안토니오 레이스였는데, 그는 많은 영화를 만들진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 얘기를 했다. 그 세대는 서로의 영화를 다 봤다. 서로를 좋아하지 않아도, 설사 극렬하게 싸우더라도 서로의 영화를 보러 가고 권한다. 스트라우프는 자크 리베트 영화를 보러 가라고 권하고, 리베트는 스트라우프 영화를 보러 가라고 권한다. 난 영화를 하려는 젊은이들을 보면 왕가위나 라스 폰 트리에가 아니라 항상 찰리 채플린 얘기로 돌아간다. 10분짜리 단편을 비롯해 그의 무성영화들. 포튼 미국에서 비평은 더이상 시네필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소비자 가이드가 되고 있달까. 영화에 별을 매기고, 점수를 매기는 식이다. 소비자주의가 대세인 한은 그런 식의 가치평가가 계속 있을 것이다. 시네필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특유한 창조, 프로그램된 시선이 아니라 독창적인 어젠다를 포함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지만 현재의 비평은 더이상 사적인 취향을 중시하는 게 아니라 어떤 영화가 중요하고 뭘 생각해야 할지를 말해주는 가이드북을 만드는 것과 같다. 많은 나라에서는 영화비평이 이런 소비자 가이드가 돼가고 있다고 본다. 그동안 <시네아스트>도 미묘한 변화를 겪었다. 67년에 만들어질 때에야 기본적으로는 학생운동세대에 의해 만들어져 좌파, 미국의 급진적인 영화와 뉴스 릴, 로버트 크레이머의 영화 같은 전투적인 영화가 화두였다면 지금은 그 시대와 또 다르다. 그때는 정치적인 문제와 분리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할리우드영화들에 대한 리뷰를 싣는 일이 더 많아졌다. 상업영화들, 대중적인 취향도 반영되고. 코스타 내 생각에 오늘날의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어떨 때는 광고고, 비디오 클립이고, 정치적이거나 전투적이라 해도 쇼비즈니스일는지 모르지만 영화는 아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은 전혀 세계를 발견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시네필들, 아마도 스코시즈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뭔가 영화에 대한 배타적인 지식에서 출발한다. 이때부터 그들은 영화 이외의 다른 걸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왜 스트로하임 같은 영화가 있었나, 왕가위면 됐지라고 생각한다. 왜 포르노그라피가 필요하냐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항상 포르노그라피가 존재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난 세상이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거장들에 대한 재평가 임 정말 갱스터같이 말하지 않나. (웃음) 근데 예전 영화들 중에서도 다시 보면 평가가 달라지는 영화들도 있다. 포튼 고백하자면 난 더이상 에이젠슈테인의 영화를 보면서 많은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 물론 그를 존중은 하지만, 죽어라 얘기하고, 쓰고, 그래선지 오데사 계단신을 보면 아무래도 지겹다. 이제는 그것도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버렸으니까. 코스타 난 파졸리니에게 아무래도 위화감을 느낀다. 물론 그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그는 자신의 시대와 사회에 반응하고 저항했던 사람이고, 영화에서도 그게 보이니까. 포튼 음… 이젠 고다르도 뭔가 좌절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그의 영화에서도 열정도 줄어들고 코스타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나, 누벨바그는 정말 대단한 에너지가 있었는데….<사랑의 찬가>를 보면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그는 세계의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진 감독인데…. 하지만 그는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고 숏을 만든다. 난 이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풍부한 장면을 만들 줄 안다고 과시라도 하듯. 수백만의 사람들이 고다르에게, 누벨바그에 영향을 받았는데 아쉬운 일이다. 임 스탠리 큐브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큐브릭은 유난히 한국에서 존경받는 감독 중 하나다. 젊은 친구들이 큐브릭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을 때 솔직히 짜증이 난다. 코스타 큐브릭에 대해 얘기하겠다고? 퇴장할 시간이군. (웃음) 포튼 큐브릭의 초기 영화들은 좋다. 난 그를 만신전에 올려놓을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내버리고 싶지도 않다. 기교의 거장이란 점에서는 존경할 만하다. 코스타 아무래도 나를 화나게 하려는 것 아닌가. 큐브릭이 기교의 거장이라니. 나라면 카메라 뒤에서 요술을 부린다고 해서 거장이라고 하진 않겠다. 새로운 광대 하나가 나타났다고 하지. 난 큐브릭에게 거장이란 표현을 쓰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그를 좋아한다면 상관없지만, 그는 분명 거장이 아니다. 기술적으로 보아도 타티가 훨씬 뛰어나고, 존 포드는 그에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시점에서 세상을 보여주지만, 큐브릭은 마치 자신이 수백개의 시선을 갖고 있는 것처럼 꾸민다. 그들은 적어도 이렇게 찍는 게 더 멋있기 때문에 숏을 바꾸진 않는다. 큐브릭의 방식은 분명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숏에서 속이기 시작하면 그건 영화가 아니다. 포튼 물론 큐브릭에게는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르누아르와 달리 스펙터클에 대한 집착 같은 게 분명히 있고…. 물론 큐브릭 영화의 정치학은 분명 다른 문제다. <시계태엽 장치 오렌지>는 파시스트적인 영화에 가까우니까. 코스타 그런 게 그의 아주 의심스러운 점이다. 는 좀 낫지만 내게, 큐브릭의 영화를 본 것, 특히 <시계 태엽장치 오렌지>를 본 것은 아주 나쁜 경험이었다. 후진 디스코텍에 가서, 아주 사악한 사람들과 엉망진창인 밤을 보내는 것과 같은. 그의 영화에는 공간도 없다.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이나 무르나우는 거리를 찍으려고 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카메라를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건 그들이 세상을 보는 식이다. 여배우의 얼굴이 이쪽에서 찍으면 더 나아보이기 때문에 시선을 옮겨가진 않았다. 현재의 시네필, 무엇을 할 것인가? 임 내가 현재 시네필들에게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커뮤니티 내에서 정보가 유통되는 방식이다. 오래 전에 고다르는, 누벨바그 감독들에게 힘이 있었다면, 그들이 항상 영화에 대해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의 영화가 안 좋은 게 더이상 사람들이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게 현재 시네필들의 주요한 양상인 것 같다. 포튼 음. 더이상 커뮤니티가 없다는 것…. 임 커뮤니티가 있다 해도 아주 적고, 나쁜 의미에서 익명성에 빠져 있다. 포튼 집에 틀어박혀 비디오를 보고,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람들…. 확실히 요즘은 모든 게 아주 사적이다. 하지만 그래도 뉴욕에서 영화에 미친 소집단, 영화광들을 관찰하는 것은 매력적이다. MOMA에서 영화 한편을 보고, 링컨센터로 갔다가 필름아카이브로 옮겨다니며 영화를 보러 다니는 이들. 대부분은 보통 앞줄에 앉아서 거의 스크린에 이미지에 녹아들길 바라기라도 하는 듯 영화를 보고, 우체국 유니폼을 입은 채 퇴근하자마자 오는 사람들 말이다. 물론 난 반대로 대부분 뒤편에 앉는다. 뭘 봤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영화를 봤냐, 서로의 리스트를 대조해보기 바쁜…. 그들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과 얘기하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다른 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네필이라기보다는 ‘시네매니악’인 이들에게도 어떤 성실성은 있다. 임 그런 사람들에게도 옛 시네필들의 유산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포튼 아마도. 그들은 때로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해 놀랄 만한 지식을 갖고 있다. 저 촬영감독이 누군지, 에드가 울머나 윌리엄 K. 하워드가 감독한 전작 등등. 그런 점에서는 옛 시네필들과 비교할 만하다. 물론 직접 영화를 논하고 만든 옛 시네필들과는 다르지만. 임 현재 한국의 경우는 그런 커뮤니티 자체가 없다. 시네필이 아니라 일본애니메니션이나 홍콩 무술영화 마니아들처럼 한 장르나 감독에 집중하는 영화마니아들은 있지만. 이들은 물론 영화를 보는 방식에서나 얘기하는 방식에서 모두 기존 시네필들과 완전히 다르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격심해짐에 따라 고전적인 시네필이 더이상 존재할 지점이 없게 된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 거창한 것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저 예전의 시네필이 가지고 있었던 취향의 완전무결함(integrity) 혹은 성실성을 어떻게 오늘날 살아남게 하는가 하는 정도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나마 최선의 방책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정리 황혜림 blauex@hani.co.kr페드로 코스타(Pedro Costa) 마뇰 드 올리베이라에 이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포르투갈의 영화감독. 리스본의 영화학교 출신이지만, 시네마테크에서 할리우드의 고전영화들과 로베르 브레송의 작품들을 접하며 영화를 배웠다고 말한다. 80년대부터 단편영화 작업과 호앙 보텔로 등의 조감독을 거친 뒤, 89년에 <피>로 데뷔했다. 아버지의 빚을 떠안은 형제들의 이야기인 흑백영화 <피>부터 그의 카메라는 줄곧 빈곤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을 향해 있다. 이번 영화제에서 소개된 세 번째 영화 <뼈>에서는 궁핍한 삶의 무게에 짓눌린 채 희망없이 살아가는 여자와 남자, 리스본의 슬럼가를 극도로 절제된 영상에 담았으며, 마약과 가난에 절어 살며 <뼈>에 출연했던 여성의 실제 생활을 좇는 최근작 <반다의 방>도 함께 소개됐다. 리처드 포튼(Richard Porton) 1967년 창간 이래 영화산업 및 학계와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영화의 예술과 정치를 다루는 전방위 잡지”를 표방해온 미국의 영화계간지 <시네아스트>의 편집위원. 80년대에 <시네아스트>에 합류했으며, 현재 편집장 개리 크라우더스 휘하에서 신시아 루시아와 함께 공동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빌리 와일더를 비롯한 할리우드 고전영화로 시작해 뉴욕의 시네마테크를 드나들며 고다르, 루이스 브뉘엘과 장 비고의 전복적인 상상력,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사회참여적인 다큐멘터리 등으로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이어왔다. 뉴욕대(NYU) 영화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뉴욕시립대(CUNY) 등 대학 강단에서도 활동해온 영화학자이자 언론인이다. 저서로는 내년에 국내에도 출간될 예정인 <영화와 아나키즘적 상상력>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양지와 그늘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7일 폐막됐다. 출범 이듬해에 이미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란 평가가 나라 밖에서 들여온 이 영화제는 이제 ‘세계 최대의 아시아 영화제’라는 호칭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부산은 우리들에겐 세계 영화의 오늘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외국의 영화전문가들에겐 아시아 영화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독파할 자리를 제공하는 명실공히 ‘아시아 영화의 창’이 되었다. PPP를 통해서 아시아 주요감독들의 새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으니, ‘미래’란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이 부산에서 한국영화가 모든 상을 휩쓸었다는 소식을 듣고, 올해 우리가 뛰어난 가작을 적잖이 얻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국제영화제인데 주최국을 너무 배려한 건 혹시 아닌지 염려됐다. 그러나 “눈에 띄는 건 한국영화뿐이었다”는 어느 심사위원의 심사 후일담을 전해듣고 노파심을 조금 덜어냈다. 어쨌든, 이 일은 관객들이 외면한 올해의 저예산 수작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을 성 싶다. 또하나, 부산이 한국영화를 밖으로 보여주는 창구노릇을 유효적절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겠다. 몇해째 정부는 예산지원은 올해로 그만이라는 절연선언을 거듭해왔는데, 이는 영상산업을 21세기 문화입국의 근간으로 삼겠다는 정책과 정면 충돌한다. 영화를 경제적 가치로 일괄치환하는 시선으로 보더라도(개인적으로 찬성하지는 않지만) 영화제는 장기투자할 만한 부문이다. 누구도 예상못한 빠른 속도로 역할을 증명해버린 부산영화제 앞에서 정부가 그 지원의 의미를 반추하게 되리라 믿는다. 칸도, 베를린도, 베니스도 그 지원으로 영화제를 이어올 수 있었다. 김동호 위원장을 비롯한 부산의 구성원들이 제한된 예산으로 효과를 극대화해왔다는 점도 참조할 사항이다. 한국영화인들과 부산시민들이 부산영화제 지킴이 구실을 자청하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올 부산에서 아름다운 일만 일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신상옥 감독이 북한 체류시절 만든 <탈출기>가 끝내 일반 관객 앞에 상영되지 못했다.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이라는 사직당국의 경고를 받고, 영화제 쪽은 고심끝에 언론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제한상영을 해야 했다. 마감을 하러 일찍 서울로 돌아오는 바람에 영화를 볼 수 없었는데, 최서해의 원작에 지극히 충실했다고 <한겨레> 문화부의 이상수 기자는 말했다. <탈출기>는 일제의 수탈에 시달리던 한 가장이 극빈의 원인을 제공한 일제와 맞서싸우기로 결심하게 된 경위를 밝히는 편지형식의 단편이다. 이 영화를 이적표현물이라고 판단한 이의 아군은 그렇다면 제국주의 일본인가, 라고 그는 반문했다. 근본적 질문을 접어두고나니 한 독일감독의 이름이 떠올랐다. 1946년 동독에서 최초의 ‘전후영화’를 만든 그는 10년 뒤 서독으로 이주했다. 서독은 동독에서 만든 감독의 영화를 거절하지 않았다. 이주 이듬해 <운터탄>이란 영화가 처음 상영됐다. 서독의 경제기적을 비판한 영화였고, 자막에서 이름을 빼기는 했지만, 서독에서 만든 그의 영화를 동독의 텔레비전이 방영하기도 했다. 볼프강 슈타우테, 베를린 영화제 영포럼 부문에선 84년 타계한 그의 이름으로 상을 준다. 동에서건, 서에서건 통일과 사회정의를 영화의 과제로 삼았던 그의 생애를 걸어. <탈출기> 부산 사건은 아직도 지배적인 우리의 냉전의식을 돌아보게 한다. 두 감독이 분단된 땅을 오간 경위가 비록 다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