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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조 같은 극단적 아웃사이더에서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안성기 같은 역까지 다양한 역할을 해 보고 싶다. 그래서 배우로서 내 이미지가 동그란 원을 그리게 되면, 관객들이 내가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이런 느낌일 거야' 하고 예단하지 않고 `이번엔 어떤 느낌일까' 하는 궁금함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장씨는 또 `멋있는 데서 오는 카리스마보다 인간적인 느낌에서 오는 카리스마가 더 강한 것 같다`면서 `멋있어서 따라하고 싶은 건 오래가지 않지만, 인간적인 느낌은 울게도 하고 감동도 시키면서 깊게 각인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의 다음 영화는 조민호 감독의 <정글쥬스>로 청량리 윤락가 주변에서 사는 `조폭 똘마니'들의 이야기다. 일주일 전에 촬영을 마쳤고, 지금은 텔레비전 사극 <대망>(송지나 각본, 김종학 연출)을 준비중이다.

스위스영화 <생일> 세네프 대상

11월28일 개막, 시네마 오즈와 코엑스 그랜드컨퍼런스룸에서 5일간 열렸던 제2회 서울넷페스티벌이 지난 12월2일 폐막했다. 미국, 일본, 유럽 등의 최신 디지털장편 우수작들이 경합을 벌인 디지털 익스프레스 오프라인 부문에서 세네프 대상(상금 3천달러)은 스위스 스테판 예거 감독의 <생일>에 돌아갔다. 8년 만에 생일을 맞은 친구의 집을 교대로 방문하는 풍경을 다큐적 기법으로 기록해낸 <생일>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디지털영화의 매력을 한껏 담은 작품. 온라인 부문 세네프 대상(상금 3천달러)은 미국 이반 마서 감독의 <에어플레인 글루>에 돌아갔다. 이 밖에도 네티즌 인기상(상금 2천달러)은 정용승 감독의 <담배>, 디지털 익스프레스 특별상(상금 1천달러)은 <레진>과 <나인틴>에,<종착역:파라다이스>와 <텔레비>가 각각 오프라인과 온라인 부문에서 공동수상했다.

<질투는 나의 힘>의 주인공 배종옥

“4년 만인가요?” “아니, 10년 만이죠.” <깊은 슬픔>보다는 <걸어서 하늘까지>를 ‘본격적으로’ 했던 마지막 영화로 기억하는 배종옥에게, 요즘 촬영중인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은, 거기서 그녀가 연기하는 여주인공 박성연은, 10년 만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질투는 나의 힘>은 스물일곱살짜리 대학원생 남자가 어느 유부남에게 애인을 뺏기고, 묘한 질투심에 잡지 편집장인 그 유부남 주위에 머무르면서 또 한명의 여자를 알게 되지만, 그녀 역시 그 때문에 차지하지 못한다는, ‘질투’의 이야기. 배종옥은 수의사 출신 사진기자인, 자유분방한 30대 여자 박성연을 연기한다. 서른일곱, 여전히 단단한 목소리와 눈매가 변함없는 배종옥에게, 그런 여잔 “지금까지 안 해본 역할”이다. 한참 만에 다시 하는 영화에다, 영 새로운 캐릭터까지, ‘긴장’되지만, 그게 바로 그녀가 원했던 것. “해온 것보다는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다. 내가 그동안 가져왔던 것들을 다 버리고 싶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바뀌었어요. 스탭들도 젊고, 밤샘촬영도 많고…. 밤신 하면 다 밤샘 촬영이에요. 딴 데도 그런가요?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1988년 <칠수와 만수>로 영화데뷔, <젊은 날의 초상>(1990),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1990), <걸어서 하늘까지>(1992), 그리고 5년을 건너뛰어 <깊은 슬픔>. 이십대 중후반에는 비교적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그녀가,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꾸준히 출연해온 데 비해 영화판에 뜸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여러 가지 일이 있었죠. 무엇보다 내가 노출을 거부했으니까. TV 탤런트를 주로 하던 여배우들이 그때만 해도 노출까지 해가면서 영화하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예의 구슬 구르는 듯한 목소리가 똑부러지게 이유를 댄다. <질투는 나의 힘>은, 드라마 촬영이 많아 올해는 좀 쉴 생각에 한번 퇴짜를 놓았다가, “작품이 재밌고, 또 박성연이 재밌어서” 다시 받아들인 작품이란다. 맨손으로 강아지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옷을 갈아입거나 하는 것에서 웬만해선 남자와 내외를 하지 않으며, ‘아무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그런 집은 집도 아니라며 잠자리를 고정시키지 않는 여자 박성연은, 일견 희한한 인물 같지만 배종옥에게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자”라고. “그런 여자가 어딨을까, 찾으면 찾기 어렵겠지만, 전 그런 여자 많이 봤어요. 30대를 맞아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직 정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결혼을 할까, 해도 마땅치 않고 그렇게 갈등하는 여자들 많거든요.” 그녀가 흥미로워 그녀를 연기하게 됐지만, 한 가지, 머리를 감다 말고 벗은 상반신을 욕실 문 밖으로 내밀며 전화받으라고 하는 장면 만큼은 가슴 윗선으로 카메라 프레임의 제한을 요구했다. 그래서 약간 시나리오가 수정된 셈이지만, 그밖에 소소한 노출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수준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란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종옥은 야무진듯 하면서도, 싱거운 소리 잘하고 허풍도 잘 떤다. 냉소적이고 퇴폐적인 이미지의 박성연이 그 모습에서 어떻게 뽑혀나올까? 배우로선 인기 시트콤 고정 출연이 독도 되고, 약도 된다. 적어도 배종옥에겐 약일 거라는 느낌이 든다. <거짓말>에서 차마 삼키지 못한 속울음으로 보는 사람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 것도 배종옥이었다. 신기하게도, 트로이카 같은 리스트에 속한 적 한번 없는 이 30대 여배우가 날이 갈수록 더 넓어지고 깊어진 모습으로 사람들 마음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내년 1월, 이성강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에서 주인공 성우의 엄마 목소리로 배종옥은 예비 스크린 나들이를 한다. <질투는 나의 힘>으로 배종옥을 만나는 일은 내년 5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취화선> 촬영 100일 동행기 [3]

장승업, 고흐와 동시대 화가 2001년 7월16일 날씨 맑음 이 영화의 공식적인 크랭크인은 내가 이 시나리오를 읽은 지 보름 뒤인 7월16일 월요일이었다. 날씨 맑음. 이 자리는 기자들을 부른 첫 번째 현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날 한국화에 관한 세미나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한국화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22권의 한국화 책을 사들고,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영화와 회화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유감스럽게도 유홍준 선생이 쓴 두권의 <화인열전>에는 장승업이 빠져 있었으며(그런데 안견과 신윤복도 빠져 있었다. 장승업을 고의로 폄하한 것 같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한국화에 관한 책들에서 김홍도와 김정희에 비하면 장승업은 매우 적게 다루어져 있었다(다루어져 있어도 부정적인 시각에서 쓰여진 것들이 많았다). 영화에서 화가를 다룬 작품도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고흐를 다룬 빈센트 미넬리의 <생의 갈망>,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루블례프>,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에서 반 고흐를 만나는 에피소드, 자크 리베트의 <벨 느와제즈>(우리나라 제목으로 <누드 모델>로 알려진), 미조구치 겐지의 <우타마로를 둘러싼 다섯명의 여자>, 모리스 피알라의 <반 고흐>와 같은 작품들이 있을 뿐이다(아마도 내가 빼놓은 중요한 영화들도 있을 것이다). 자료들을 읽다가 발견한 이상한 한 가지 공통점. 유난히 반 고흐에 관한 영화들이 많으며, 장승업은 반 고흐와 동시대 화가였다는 사실이다. 또는 반 고흐와 장승업은 영화라는 기계장치가 발명되는 시대에 살아 있었던 사람들이며, 그들은 우리의 근대에로 들어오는 시대의 문턱에서 활동했던 화가들이다. 임권택 감독이 그려내고자 하는 장승업, 당신은 누구십니까? 임권택 감독 촬영현장에 비디오 모니터가 생기다니… 2001년 8월16일 맑았다 비 서울에서는 날씨가 맑았으나 전라남도 강진으로 내려가는 길에 비를 뿌리기 시작하다. 영랑생가에서 촬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장에 인사드리기 위해서 찾아 내려갔다. 아직 장승업은 어른이 되기 이전이며(따라서 장승업이 나오기는 하지만, 최민식씨는 오지 않았다) 영화에서 김병문 선생이 거지였던 장승업을 은암 선생에게 추천해서 그곳에 내려가 그림의 기초를 배우는 대목이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다음이며, 영랑생가에는 촬영차와 조명기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모든 것은 늘 보아온 것이지만, 다만 내가 신기하게 생각한 것은 임권택 감독 현장에 비디오 모니터가 생긴 것이다. 물론 지금 한국영화 현장에서 비디오 모니터는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흔일곱편의 영화를 비디오 모니터 없이 작업한 임권택 감독의 현장에 비디오 모니터가 생긴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내가 알기로 한국영화에서 처음 비디오 모니터를 사용한 영화는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일 것이다. 왕가위는 <화양연화>에서 처음 비디오 모니터를 활용했다. 왕가위는 “비디오 모니터는 현장을 바꿔놓는다”라고만 짧게 대답했다. 임권택 감독은 <춘향뎐>에서 비디오 모니터를 처음 사용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현장에 하루이틀 구경가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내가 제일 우습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영화기자들이 고작 한나절 영화현장을 들러본 다음 그 영화에 대해서 논하려 들 때이다. 사람은 자기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겸손해야 한다. 나는 인사를 드리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첫 견학길은 다음날 아침 발길을 돌렸다. 15여 차례의 NG, 대체 이유가 뭘까? 2001년 9월10일 충청북도 청송문화재단지를 찾아가다. 날씨 맑음. 두 번째 현장 방문으로 이날은 장승업이 기생 매향의 기방을 찾는 장면을 먼저 찍었다. 최민식씨를 그날 처음 보았다(사석에서는 스크린 문화연대 사무실에서 만나보았지만 현장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뒤늦게 유호정씨가 도착했다. 기생방에 장승업이 기생 매향을 찾는 장면을 단 한번에 오케이 놓은 다음 옆의 대나무 숲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날 밤에는 장승업과 기생 매향이 다시 만나는 한벽루 주변의 장면이다. 장면 #102. (달빛 교교한 오솔길을 거니는 승업과 매향) 매향 “화명이 어찌나 자자하던지 오시는 걸 미리 알았습니다.” 승업 “애저녁에 끌려가 죽은 줄만 알았네. 소식을 물어 찾았네만 아는 이가 없더니….” 매향 “서울서는 목숨을 보존키 힘들어 이곳저곳 흘러다니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장면 #102-A (구름 속에 비어져 나오는 둥근달) 승업 “정인(情人)은 있는가?” 매향 (못 들은 척 웃는다) “바로 한양으로 가시나요?” 승업 “저렇게 그림을 조르니 한 달포 예서 머물 걸세.”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현장에서 어둠은 깊숙이 내리게 마련이다. 겨우 9시 반경인데도 이미 어둠은 칠흑처럼 떨어져 내렸다. 별달리 어려움이 없는 것 같았고, 조명은 대나무 숲 뒤로 세워졌다. 두 사람이 대나무 숲이 펼쳐진 담벽길을 따라 걸어오면서 대화를 나눈다. 몇번 리허설을 해보고 슛에 들어갔다. 카메라는 두 사람을 따라 수평으로 레일을 깔았고, 그 위에 크레인을 올려놓았다. 비디오 모니터를 세워놓기는 했지만, 연기자들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임권택 감독은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모니터를 열심히 보는 것은 매번 연기가 끝날 때마다 자신의 동선과 표정을 일일이 체크하는 최민식씨와 유호정씨였다(그 뒤로 나는 유심히 보았는데 최민식씨는 아무리 짧은 장면도 반드시 모니터 화면으로 자기가 나오는 장면을 다시 확인하였다. 그건 예외가 없었다. 이상하다 싶으면 “감독님,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만큼 자기 연기의 플랜에 확신을 갖고 있는 배우였다). 감독님은 두 사람의 동선을 따라 같은 속도로 걸으면서 대사를 나누는 두 사람의 표정을 세세히 보았다. 임권택 감독은 오케이 사인을 내리기 전에 이미 그 장면이 마음에 들면 함박웃음이 꽃피는 얼굴이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쉽게 웃음이 피지 않았다. 계속해서 엔지를 불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내 옆에 서 있었지만 그 장면이 왜 엔지인지를 알 수 없었다. 두 연기자의 얼굴이 조금씩 굳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걸어오는 속도와 대사의 속도가 붙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그래서 대사를 어떤 타이밍에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리저리 바꿔보았다. 그러더니 감독님은 정일성 촬영감독을 불렀다. 이번에는 아예 카메라의 동선을 바꿔보자고 말했다. 열네번의 엔지 다음에 레일은 위치를 바꾸고, 크레인의 각도도 바꾸었다. 두 사람은 연기 동선을 새로 배치받았다. 이미 앞의 동선에 익숙해서인지 두 연기자는 반복해서 엔지를 냈다. 그건 내가 옆에서 보기에도 이상하게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잠시 휴식을 하는 동안 임권택 감독이 비디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스크립터에게 앞의 장면을 모두 다시 틀어보자고 말했다. 아무 말 없이 보던 감독님은 다 끝나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모이가 좀 이상해, 하여튼 모이가 안 맞어.” 감독님의 혼잣말이지만 그 순간 옆에 서 계시던 정일성 촬영감독과 김동호 조명기사, 조감독, 그리고 모두가 얼굴이 굳었다. 시간은 열두시를 넘고 있었다. 이제 한국영화 현장에서 임권택 감독의 그 장면이 될 때까지(!)라는 그 전설적인 순간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모든 스탭들에게는 지옥의 순간이지만, 나는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상치 않게 빨리 마주친 셈이다. 모기들이 조명들을 찾아 날아들었고, 늦여름인데도 찬 공기는 옷매무새를 파고들었다. 임권택 감독은 장면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였다. 카메라는 처음 설계가 바뀌면서 쉽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 처음에는 수평의 움직임이었던 것을 이번에는 사선으로 바꾸어 카메라를 이동하고, 장승업과 매향은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서 하던 대사를 서서도 해보고, 그 반대로 매향이 멈춰서고 장승업이 그녀를 원형으로 돌면서 대사를 나누기도 하였다. 한번 정해지면 그 장면에서 최선을 다해보지만, 번번이 임권택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여름은 새벽이 이르게 찾아오는 편이다. 결국 새벽 세시 반. 임권택 감독은 최민식씨와 유호정, 그리고 정일성 촬영감독과 김동호 조명기사를 한자리에 모아 그냥 한마디 하셨다. “여기는 그 대사가 묻어나는 장소가 아니요. 돌담길도 이상하고, 아무 맛이 안 살어. 암만 해도 여기서는 그게 안 나오는데, 여름이 끝나기 전에 다른 장소를 찾아봅시다.” 촬영은 결국 여섯 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그 장면에 어울리지 않는 장소가 있는 법이다. “그렇지요. 차라리 날씨가 안 맞으면 그냥 갈 수도 있어요. 그러나 장소가 안 맞으면 그건 도리가 없는 것이지. 암만 해봐야 가짜 같거든. 그런데 그 장소가 그런지 아닌지는 그걸 해봐야만 안다는 것이요. 그러니 미치는 거지. 암만 해봐도, 배우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 다음에 카메라를 온갖 데다가 들이대도 결국에는 아닌 데는 아닌 것이요.”(임권택 감독과의 인터뷰) 이 장면은 조감독에게 나중에 들어보니 남원에 가서 한번에 오케이가 났다고 한다. 그 대사가 묻어나는 장소란 어떤 의미일까? 앙드레 바쟁은 장 르누아르에 대해서 쓰면서 이 말을 인용한다. “맞지 않는 장소에서 찍는 것보다는 못 만든 세트장에서 만드는 편이 낫다.” 조선춘화도 화집에서 빌려온 정사체위 2001년 9월11일 이튿날은 장승업과 매향의 야외에서의 정사장면이 있는 장면이다. 날씨 맑음. 장소는 청송문화재단지에서 조금 떨어진 담배밭에서 촬영되었다. 장면 #103 (강변, 앉은 자세로 정사를 나누고 있는 승업과 매향) 매향 “선생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세상살이 시름이 다 사라지니 이상하지요?” 승업 “그려서 위로주고, 그리면서 위로받는 게 환쟁이들일세. 자네와 나처럼 내 그림 통해 맘 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어디 그리 흔한가?”(서로 찾아드는 매향과 승업의 손) 시간경과 (꿈결같은 정사 뒤, 충일감에 누워 있는 두 사람) 승업 “이러지 말고 함께 사는 게 어떻겠나?” 매향 (웃으며) “화류계 떠도는 것도 모자라, 도망까지 다니는 신세입니다.” 승업 “…여기는 괜찮은가?” 매향 “아전 놈 하나가 눈치를 챘는지… 지분거리는 통에, 이곳도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마치 <서편제>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하는 키 높은 담배밭인데, 그 위에 자리를 잡고 장승업과 매향이 앉았다. 두 사람의 정사는 매향이 뒤로 앉아서 장승업을 올라타고 정사를 벌이는 후배위의 체위로 잡혔다. 감독님이 이 장면을 참조했다고 보여주신 책은 조선춘화도 화집이었다. 이 책에는 당시 그려진 수많은 춘화도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 책을 넘기면서 본 것은 유교가 지배하고 엄숙한 양반들과 선비들의 근엄한 얼굴 아래 숨죽이며 지내던 옛 조선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인간적인 체취였다. 임권택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정사장면들을 이 책에서 발췌하여 체위를 결정하였다. 이 책은 자주 이 영화현장에서 인용되곤 했다. 임권택 감독은 간단한 지시만 한 다음 그 자리에서 조감독을 불렀다. 그리고 이 장면을 열네개의 숏으로 쪼갰다. 이건 아주 의외였다. 당연히 롱테이크로 갈 거라고 생각하던 나는 갑자기 장면을 쪼개어서 들어가는 순간, 내가 <춘향뎐>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개의 숏을 더블 액션으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대사를 따라 마스터숏으로 시작해서 매향의 눈물 흘리는 얼굴의 클로즈업까지 파고들었다. 그 카메라의 동선은 장승업의 마음이 매향의 마음 안으로 파고들 듯한 순서를 따라갔다. 그러나 번번이 엔지를 내는 것은 연기자들이 아니라 바람이었다. 담배밭을 흔들어 주어야 하는데, 바람은 내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위에 찬란한 햇살이 떨어져야 하는데도 구름은 내내 심술을 부렸다. 기다리면서 담배를 피워물던 감독님은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하자 김동호 조명기사에게 “매향에게 빛을 떨어뜨려 주세요” 하더니 바로 일어나서 슛을 불렀다. 그리고 순식간에 열네개로 그 장면을 쪼개 들어갔다. 거의 망설이지 않는 정확함. 행여나 감정이 다칠세라 중간에 쉬지 않고 정사를 따라가면서 이러저리 나누는 것을 정일성 촬영감독은 거의 그 머리 안에 들어가서 그 속의 그림을 복기해내듯이 순서대로 따라갔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오랜 작업이 가져온 장인들의 경지일 것이다. 그것은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소름 끼칠 만큼 숙련된 솜씨였다. 영화는 숏을 이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결국 영화는 장면을 어떻게 나누냐의 문제이다. 그것이 장 피엘 우다르가 브레송의 <잔다르크의 재판>을 보면서 상대-숏 없이도 대화를 펼쳐낸 저 기적의 순간과 마주한 순간의 탄식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내부의 인물없이 외부의 인물이 없지만, 외부의 인물없이 내부의 인물도 없는 숏나누기의 봉합(suture)을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이 영화에 부여한 철학적 의미라고까지 말한다. 우리는 그 순간 영화 안으로 들어가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끼어든 시선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영화의 숏들은 자리를 벗어나고(out-of-joint), 신은 성립되지 않는다(미안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영화들은 숏이 안 맞는다. 심지어 텔레비전 드라마는 그걸 무시하고 찍는다. 그것이 내가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이다). 햄릿의 아버지가 유령이 되어 그의 아들에게 들려준 첫 대사. “시간이 멋대로 가고 있다.”(Time is out-of-joint) 이 말은 영화에서 시간이 어떻게 제 자리를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경구로도 읽혀야 한다. 제자리에 있지 않은 인물은 영화에서 유령이 된다. 내가 그 장면을 옮겨놓은 메모를 읽으면서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취화선> 팀은 장승업의 유랑길을 따라서 조선시대 말 충청도를 거쳐 호남땅 풍경 안으로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왜 이런 영화가 비디오가게로 바로 가지?

극장에 걸리거나 공중파를 타는 일 없이 바로 비디오로 출시되는 외국 영화들 가운데 눈여겨 볼 만한 것들이 꽤 있다. 지난달 나온 <더티 픽처>(2000년)는 텔레비전용 영화임에도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묵직한 주제의식이 잘 살아나 있다. 곧 출시될 <크루>(2000〃)는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있는 코디미 영화지만 리차드 드레이퍼스, 버트 레이놀즈 등 노년의 배우들이 마피아 동지로 다시 모여 벌이는 한판 소극이 나이든 관객의 향수를 자극할 법하다. <더티 픽처>(사진)는 1990년 미국 신씨네티 뮤지엄에서 개최한 로버트 메이플쏘프의 사진전을 주 검찰이 음란죄로 기소하면서 벌어졌던 실제 법정 사건을 다뤘다. 80년대말 에이즈로 숨진 로버트 메이플쏘프는 성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면서 동성간의 성행위 장면, 어린이의 성기가 노출된 사진 등을 찍어 논란을 빚어왔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미국의 예술박물관협회는 미국 순회로 유작전을 열기로 하고 제일 먼저 워싱턴을 선정했다. 그러나 보수적 정치인과 지역 유지의 반대로 행사는 불발되고 워싱턴 뮤지엄 관장이 해임돼버렸다. 두번째 전시 예정지인 신씨네티 뮤지엄의 관장 데니스(제임스 우즈)는 직간접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 박물관장들의 격려에 힘입어 행사를 열기로 결심한다. 이 영화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수반되는 개인적, 사회적 어려움들을 아주 잘 드러낸다. `음란'이라는 모호한 잣대 앞에 개인이 발가벗겨지고, `너는 가족도 없냐`는 식의 인신공격이 쏟아진다. 미국이라고 하지만 그 모멸적 메카니즘은 영화 <거짓말>이나 만화 <천국의 신화>의 논란 때 보였던 국내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지금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당시의 부시 대통령은 메이플쏘프의 작품을 `쓰레기`라고 칭하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너무 쌍소리가 될 것 같아 참는다, 여러분도 알 것이다`라고 말한다. 다큐멘타리처럼 실제 인물의 방송과 인터뷰를 삽입한 대목에서 보수적 인사들의 이런 독설이 난무한다. 반대로 영화배우 수잔 서랜든, 작가 샐먼 루시디 등이 메이플쏘프의 작품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 한 민주당 정치인의 말이 인상깊다. `미국에서 보수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은 정말 웃긴다. 실업이나 복지 등의 문제 앞에서는 시장에 맡기라며 개인을 무시하면서, 그들이 뭘 보느냐 라는 진실로 개인적인 문제에는 폭력적 간섭을 서슴지 않는다.` 주인공 데니스는 집에 걸려오는 협박전화와, `왜 이 싸움에 앞장서는 걸까'라는 회의를 극복하고 법정에 나서 결국 승소한다. 그 주장의 요지는, `표현의 자유는 특정 개인에게는 아무 상관 없을 수 있지만 모두에게는 가장 중요한 자유`라는 것이다. <크루>는 무엇보다 리처드 드레이퍼스, 버트 레이놀즈에 더해 <매트릭스>의 캐리 앤 모스, <바운드>의 제니퍼 틸리 등 화려한 배역이 돋보인다. 내용은 지난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한 <스페이스 카우보이>와 마찬가지로 퇴역한 마초들이 마지막으로 한판 벌이는 인생 황혼기의 연가다. 그러나 이미 늙은 탓에 이 마초들의 패기는 공격적이라기보다 아련한 페이소스를 풍긴다. <스페이스 카우보이>의 노인들이 젊은 시절 우주 비행사였던 데 반해 <크루>의 노인들은 전직이 마피아다. 바비(리처드 드레이퍼스)와 조이(버트 레이놀즈) 등 60대 노인 4명은 한때 화려했지만 모두 감옥에 갔다 나온 뒤 지금은 마이애미의 싸구려 호텔에 살면서 버스 운전사, 버거킹 점원 등으로 일한다. 갑자기 관광붐이 일면서 이 싸구려 호텔의 집값이 올라 쫓겨날 지경에 이르자 일을 꾸민다. 시체 보관소의 시체 한구를 훔쳐와 엽총으로 머리를 날린 뒤 호텔 프론트에 버려둔다. 마피아 조직 범죄로 위장해 주민들을 이주시켜 버리려는 속셈이었는데, 시체의 신원이 마약조직의 보스로 밝혀지면서 일이 꼬인다. 중간중간의 대사나 유머가 유쾌하고 짭짤하다. 임범 기자isman@hani.co.kr

제2회 영국애니메이션 페스티벌 - 아드만 특별전

12월21일부터 서울애니메이션 센터에서 단편 30편 상영, 전시는 1월20일까지 지난해에 이어 주한영국문화원이 여는 `영국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올해는 아드만 스튜디오를 집중 조명하는 `아드만 특별전`으로 마련된다. 영국의 아드만 스튜디오는 <월레스와 그로밋> <치킨 런>으로 국내에도 친숙한 클레이애니메이션의 대표주자. 이번 행사에는 아드만 스튜디오의 단편 클레이애니메이션 30작품이 상영되고, 점토로 빚어 만들어진 인형과 세트들, 스토리보드, 캐릭터 상품 등이 함께 전시된다. 상영작에는 아드만 스튜디오의 초기작인 <모프> 시리즈 2편에서부터 현재 아톰필름스 사이트에서 온라인 상영중인 <앵그리 키드> 시리즈, 현재 영국 2 채널에서 방영되고 있는 <꼬마렉스> 시리즈 중 `부엌 안의 쥐` 에피소드까지, 다양한 아드만 스튜디오의 단편애니메이션들이 두루 들어 있으며, 전시내용에는 <월레스와 그로밋>의 세트, <치킨 런>의 정신없던 헛간과 치킨파이 기계, 아슬아슬한 비행기 등이 포함돼 있다. 아드만 스튜디오의 `화려한 외출`이라 할 만한 이 행사는 주한영국문화원과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서울산업진흥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것으로,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12월21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12월21부터 내년 1월20일까지 계속된다. 때로는 코믹하게, 또는 과감하게 아드만 스튜디오는 1972년 피터 로드와 데이비드 스프록스톤에 의해 설립됐다. 학생 시절부터 스프록스톤의 아버지의 16mm카메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이들은`비전 온`이라는 청각장애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으로부터 제작의뢰를 받고, `아드만`이라는 다소 한심한 성격의 슈퍼맨 캐릭터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이것이에 의해 구매됨으로써 스튜디오의 윤곽이 생겨난 것이다. 아드만 스튜디오의 첫 번째 히트 캐릭터라 할 수 있는 <모프>가 만들어진 건 그로부터 4년 뒤, 1976년이었다. 피터 로드와 데이비드 스프록스턴의 아드만 스튜디오 첫 창작물인 `모프`는 테라코타로 만들어진 유연한 몸의 꼬마 캐릭터로, 친구이자 또다른 자아인 `차스`와 늘 붙어다니며 유쾌하고 조용한 에피소드들을 만들어갔다. 이번에 상영되는 작품은 <모프> 시리즈 중 <마법의 문>(파스칼 페레즈, 1분)과 <디스코>(스티브 복스, 1분).<마법의 문>은 문을 여닫을 때마다 슈크림케이크가 하나씩 늘어나는 마법의 문이 생긴 모프와 차스가 겪는 일을 그렸고, <디스코>는 전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춤추는 데에만 몰두하는 모프와 차스의 즐거운 한때를 담았다. 1990년에 오스카 수상을 하기도 한 1989년작 <동물원 인터뷰>(닉 파크, 5분)는, 아드만 스튜디오가 와의 협력관계를 끝내고 <채널4>와 손잡은 이후 만든 작품이다. 이제는 아드만 스튜디오의 전통이 돼버린 `립싱크`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립싱크 기법이란, 대사가 녹음된 마그네틱 테이프 위에 대사의 모음을 표시한 뒤, 이에 따라 어떤 프레임에서 어떤 모음이 발음되는지를 알고 애니메이터가 캐릭터의 입모양을 만들어내는 기법. 리포터가 동물원을 찾아 여러 동물들을 인터뷰하는 내용을 담은 <동물원 인터뷰>는, 립싱크 기법에 의해 동물캐릭터의 실감있는 의인화에 성공했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란 말이오. 신선한 육류를 달라고요`라는 사자하며 우리가 좁다고 불평하고 책으로 도피하는 동물까지, 고향과는 다른 동물원의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물들의 이 깜찍발랄한 이야기는, 뒤에 `일렉트리시티 어소시에이션`의 광고로도 만들어졌다. <내 사랑에겐 나뿐이야>(피터 로드, 3분)와<슬레지해머>(스티븐 존슨, 4분30초)는, 아드만 스튜디오가 만든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내 사랑에겐 나뿐이야>는 재즈가수 니나 시몬의 를, <슬레지해머>는 피터 가브리엘의 싱글 에 맞춰 만들었다. 고양이 가수가 클럽에서 노래를 하고, 개 관객이 음료를 마시며 공연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내 사랑에겐 나뿐이야>는 부분적으로 컬러를 도입한, 일종의 흑백애니메이션이다. 가수의 입술과 칵테일, 네온 간판, 신사의 나비넥타이, 조명불빛 등에만 붉은 색 처리를 하고 나머지는 회색톤으로 처리함으로써, 재즈의 분위기에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슬레지해머>는 초반과 후반이 형식상 나뉘는데, 초반에는 가수 피터 가브리엘이 직접 출연하여 음악에 맞춰 눈을 깜빡이고, 귀를 움직이고, 얼굴 근육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동작을 보여주며, 후반에는 클레이애니메이션이 실제 인물을 대신해 좀더 과감한 표정들을 만들어낸다. 이번 아드만 특별전 프로그램에서 눈에 띄는 작품으로는, 이 밖에도<논도메스틱 어플라이언스>와 <데드라인>이 있다. <논도메스틱 어플라이언스>(세르지오 델피오, 1분35초)는 지난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도 초청됐던 작품. `TV 소`와 싸우는 투우사의 한판이 박진감 있게 표현돼 있다. 여기서 소는 다리와 안테나가 달린 텔레비전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마침내 소가 투우사 앞에 무릎을 꿇을 때 TV화면에 역시 무릎을 꿇는 링 안의 권투선수가 보여지는 등 위트가 넘친다. 제목은 TV 소가 쓰러진 이유가 `비국내용` 전자제품이었기 때문인데서 딴 듯. 2001년작인<데드라인>은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이 근래의 CG애니메이션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세명의 애니메이터들이 `마감`에 임박해 애니메이션 만들기에 애를 태우는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 스티븐 마조람, 단 레인, 위 브라이언 등 세명의 애니메이터들이 작접 자신들의 목소리로 자신들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어도비사의 `애프터 이펙트` 프로그램으로 합성했으며 립싱크 기법이 사용됐다. 디지털 옷 입고 온라인으로 <앵그리 키드> 시리즈와 <꼬마쥐 렉스>는 최근 아드만 스튜디오의 경향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귀엽고 앙증맞은 캐릭터에서 탈피, 못생기고 짓궂은 말썽꾸러기 `앵그리 키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사고뭉치 일상을 담은<앵그리 키드> 시리즈는 온라인상에 올리기 좋게 1분 내지 1분30초로 만들어진 짤막한 단편들이다. 필름으로 촬영해 디지털화했다. 이번에 상영되는 단편들은 <앵그리 키드> 시리즈 중 애니메이터 다렌 월시의 작품들인 <감자칩> <골키퍼> <헤드라이트> 등 3편. `아즈텍 단편` 시리즈에 속하는 <핫 샷>, 2000년작 <콤피>, <피브와 포그>, 1993년작 <핸드백 없이는 안 돼>도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이다. <핫 샷>(마이크 캐시, 1분40초)은, <핫 샷>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찍는 이야기. 주인공인 야성의 사나이가 멋지게 총을 쏘는 장면을 촬영하는 대목에서, 결국 해가 저물고 밤이 되어서야 총을 발사하게 되지만 그 총에 맞아 죽게 되는 배우의 비운을 코믹하게 그렸다.<콤피>(세스 와킨스, 1분52초)는 `잠 한번 편히 자`보려다 팔다리를 잃고 마는 한 사람의 이야기. 턱없이 짧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던 사람이 거추장스런 다리와 팔을 무심결에 떼어내고, 침대 밑으로 굻러떨어진다는 내용이다. <피브와 포그>(피터 피크, 6분)는 고전 어린이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애니메이션. 악의없는 농담을 나누던 피브와 포그가 점차 엽기적인 이야기로 옮겨가는 과정을 그렸다. 비교적 긴 길이의 <핸드백 없이는 안 돼>(보리스 코스멜, 12분)는 죽어 저승으로 가는 길에 이승에 두고 온 핸드백 생각이 나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안티와 그녀의 조카가 악마와 벌이는 접전을 담은 작품이다. 이번 아드만 특별전은 수많은 전세계 페스티벌에 초청돼 200회가 넘게 수상을 했으며, 오스카상도 3번이나 받은 아드만 스튜디오의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작품들을 주요작품의 스토리보드, 세트와 함께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12월24일, 1월1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는 전시 및 영화상영 일체가 무료(문의 02-3702-0612, 02-3455-8363).최수임 아드만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시간표 요일 및 시간 11시 14시 17시 12월 21일 (금) 프로그램 1 프로그램 2 프로그램 3 22일 (토) 프로그램 3 프로그램 1 프로그램 2 23일 (일) 프로그램 2 프로그램 3 프로그램 1 24일 (월) 프로그램 1 프로그램 2 프로그램 3 25일 (화) 일정 없음 26일 (수) 프로그램 3 프로그램 1 프로그램 2 27일 (목) 프로그램 2 프로그램 3 프로그램 1 28일 (금) 프로그램 1 프로그램 2 프로그램 3 29일 (토) 프로그램 3 프로그램 1 프로그램 2 30일 (일) 프로그램 2 프로그램 3 프로그램 1 프로그램 1 <동물원 인터뷰> <아이큐 552> <세계 야생 생물 기금> <충가 추이> <상업광고물#1> <앵그리 키드`감자칩`> <핸드백 없이는 안돼> <모프 `마법의 문`> <웰레스 앤 그로밋 `화려한 외출`> 프로그램 2 <팝> <전쟁이야기> <논-도메스틱 아플라인스> <무대 공포증> <컴피> <상업 광고물 #2> <앵그리키드 `헤드라이트`> <내 사랑에겐 나뿐이야> <험드럼> <모프 `디스코`> <웰레스 엔 그로밋 `전자바지 대소동`> 프로그램 3 <슬레지 해머> <어니스트> <피브 앤 포그> <핫샷> <상업 광고물 #3> <앵그리 키드`골기퍼`> <데드라인> <꼬마 렉스 부엌쥐`> <방랑자> <웰레스 앤 그로밋 `양털도둑`> ◆ 장소 : 남산 서울 에니메이션 센터(02-3702-0612, 02-3455-8363) ◆ 관람료 : 무료

운동

전주 강연을 며칠 앞두고 대학동기 ㅇ목사에게서 내려오면 꼭 만나자는 이메일이 왔다. ㅇ이라…. 다른 친구에게 묻고서야 그가 누구인지 또렷이 기억할 수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했고 노동현장에서도 5년가량 활동했던 친구다. 세월이 흘러, 뒤늦게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전주에서 기독교사회복지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의 한 음식점에서 그와 술잔을 기울였다. “규항이 이 사람 그룹은 좀 특이했어….” 두런두런 익살을 섞어가며, 그가 그의 ‘동지들’에게 그 시절 나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었다. 웃음지으며, 그 시절을 추억하던 나는 문득 ㄷ과 ㅎ을 생각했다. “세상이 달라졌다고들 하지만 본질적으론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운동을 하던 둘은 올해 초 사회운동으로 이전했다. 둘을 생각하면 대견하고도 안쓰럽다. 더이상 운동이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 아닌 세상에서 운동하는 둘을 생각하면 말이다. 지난해 초 둘을 처음 만나 나는 말했다. “텔레비전 토크쇼 같은 걸 보면 게스트의 10여년 전 시에프 장면을 보여주는 일만으로 폭소를 불러일으킨다. 자본 진영의 선전선동 기법은 10여년 새 혁명을 이루었다는 얘기다. 그들과 맞서 싸운다는 자네들의 기법은 10여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중을 설득할 수 없다면 운동이 아니다. 내가 처음 만난 운동권 선배들은 학교 안에서 가장 호감 가는 사람들이었다. 요즘 신입생들이 운동권 선배들에게 어떤 인간적 호감을 느낄 거라 생각하나.” 시간이 지나 그들과 좀더 친해지고 그들의 형편(세는 줄어들고 임무는 더욱 많아진)을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내 ‘보편타당한 비판’을 반성했다. 그것은 운동이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던 시절(그 시절, 우리가 운동을 하는 건 말 그대로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었다. 군인들이 양민을 도살하고 그 도살자들이 직접 통치하던 시절이었다.)에 운동했던 사람이, 운동이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 아닌 오늘 힘들여 운동하는 사람에게 주는 차가운 ‘논평’이었다. 게다가 오늘 이른바 학생운동의 경직성과 미숙함은 세상을 바꾸는 일에 일생을 바치겠노라 후배들 앞에서 눈물로 맹세하다 90년대 들어 아무런 설명없이 일제히 사라져버린, 선배와 후배 사이의 호감과 존경을 한순간에 거두어버린 사람들이 마련한 것이다. 오늘 그들은 ‘운동했던 친구들’끼리 만나 ‘논평’하곤 한다. “요즘 운동권 애들 보면 한심해. 아니, 우리가 운동할 때는 말야….” 지나간 추억이나 들먹이는 되먹지 않은 주둥아리들에겐 이런 질문이 제격이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오늘 어떻게 살고 있나.” 학생운동은 쇠락하고 있다. 그것은 전체 운동의 침체와 관련한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전체 운동에서 학생운동이 감당할 몫이 줄어들고 있다는 좀더 본질적인 상황을 뜻한다. 그러나 학생운동의 쇠락이 대학에서 진보의 쇠락을 전적으로 지시하는 건 아니다. 학생운동의 쇠락이 강조되는 가운데, 나는 오늘 대학에서 ‘운동권이 아닌 진보적 청년들’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중요한 건 학생운동권이 얼마인가가 아니라 학생 가운데 진보적 신념을 가진 사람이 얼마인가, 그리고 그 신념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 다. 이를테면 10년 전 대학에 진보적인 청년이 백이었고 오늘은 다섯이라 치자. 알다시피 그 백 가운데 여전히 신념을 간직한 사람은 하나가 채 안 된다. 오늘 다섯 가운데 10년 뒤 20년 뒤에 둘, 아니 하나라도 남는다면 그게 훨씬 좋은 것이다. 세상은 ‘학생 시절에나 하는 운동’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일생에 걸쳐 간직되는 신념으로 바뀐다. 그 긴 신념은 운동을 세상의 모든 지점(운동을 청산한 사람들이나 선택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지점들을 포함한)으로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운동하는 판사, 운동하는 국회의원, 운동하는 배우, 운동하는 코미디언, 운동하는 투수, 운동하는 장군, 운동하는 사장…. 세상의 모든 지점에 운동이 스며들 때 세상은 비로소 바뀔 것이다.(끝)김규항/출판인 gyuhang@ma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