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더글러스 서크 감독의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감독 더글러스 서크 출연 록 허드슨 EBS 4월27일(일) 낮 2시 어느 시사회장에서 토드 헤인즈 감독의 <파 프롬 헤븐>(2002)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영락없는 더글러스 서크 감독 영화였던 것이다. 부분적으로 대사까지 똑같았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토드 헤인즈는, 왜 굳이 자신의 영화를 1950년대 영화처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심지어는 배우 연기도 50년대 스타일이었다. 서크 감독의 영화는 서구 멜로드라마 장르에서 절대적인 고전으로 대접받는다.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은 국내에서 <순정에 맺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적 있다. 이른바 ‘할리우드 바로크’라는 용어로 설명되는 더글러스 서크의 멜로드라마 중에서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은, <바람에 쓴 편지>와 <슬픔은 그대 가슴에>와 함께 영화사적 걸작으로 꼽혀왔다. 미망인 캐리 스콧은 정원사 론 커비에게 사랑을 느낀다. 다른 남성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캐리는 론을 택한다. 이 연애사건은 보수적인 동네 사람들에게 질타의 대상이 되고 캐리의 자녀 역시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녀들의 반대가 극심해지자 캐리는 론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무기력한 생활을 하게 된 캐리는 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에게 다가설 용기가 없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동시에 외부 사회의 무게에 맞서는 것.” 어느 소설가의 멘트다.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의 커플은 이 언급이 어떻게 구체성을 띠게 되는지 예증하고 있다. 부유한 미망인 캐리는 외롭다. 넓은 집안은 휘황한 장식물이 버텨 서 있고 보석이 그녀 주변에 널려 있다. 그럼에도 보수적인 분위기는 그녀 가족과 영혼을 잠식하고 있다. 구원자로서 등장하는 것이 론 커비다. 록 허드슨이 연기하는 이 캐릭터는 미망인의 삶에 등불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계층적 차이가 문제로 떠오른다. 동네 사람들은 론의 직업을 깔보고 수군거린다. 이것은 ‘아메리칸 드림’으로 통칭되었던 미국적 이상이 추악한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더글러스 서크 영화를 설명하는 데 ‘스타일’의 개념은 핵심적이다. 그의 영화에서 모든 요소, 다시 말해 음악과 조명, 의상과 연기에 이르기까지 감독의 인장이 새겨져 있음은 놀랄 만하다. “이것은 서크의 영화다!”라고 공언하는 듯하다.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에선 특히, 캐리라는 미망인이 살고 있는 저택을 유심히 볼 만하다. 이곳은 눈이 부실 만큼 모든 것이 빛난다. 벽들은 거울로 모든 광선을 반사시킨다. '‘유리의 방’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렇지만 여기 사는 여인은 공허하고 황폐하다. 서크 감독은 캐리의 삶에 대해 “스스로 선택해 살고 있는 바로 그 사회에서 감옥살이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은 용감한, 그리고 상실감을 극복하는 어느 위대한 사랑에 관한 영화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

백말띠 66 언니들,<버팔로 66>

이상하게도 나랑 친한 선배언니들은 몽땅 66년생이다. 전생에 이 66년생 언니들과 무슨 원수가 졌는지 여하튼 내 인생의 66년생 언니들은 나에게 많은 영향과 함께 힘이 되어주곤 했다. 그녀들은 모두 능력도 있고 똑똑하고 내 판단기준으로 보면 예쁘기(?)까지 하다. 흐흐흐…. 또한 겉으로 보기엔 왠지 무서워(?) 보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엔 오골오골 끓어오르는 따뜻한 열정을 감춰두고는 악녀를 자처하고 살아가고 있다. 겁보에 울보에 먹보이기까지 한 초비굴한 난 그녀들의 숨겨진 따뜻한 마음을 알아내선 변태처럼 웃으며 협박을 일삼으며 거의 일주일 순서대로 만나고 다닌다. 협박은 다름 아닌 “나한테 밥 안 사주면 언니 착한 거 까발릴 거야”이다. 각설하고 이 언니들 중 자신의 영화라며 <버팔로 66>이란 영화를 소개한 사람이 있었다. 자기도 66년생이니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영화란 것을 나에게 소개해주면서 “딱 김정영표 영화야” 그러는 것이다. 바로 그 김정영표 딱지가 붙은 영화를 보면서 ‘으흠… 이 언닌 나와 피를 나눈 친언니가 아닐까’ 하면서 그 백말띠 언니에게 전화했다. “어떻게 알았어? 이 영화 너무 좋아 흑흑….” <버팔로 66>(빈센트 갈로 감독, 1998년). 66년에 태어난 빌리 브라운의 이야기. 화면은 막 출소한 주인공 빌리를 잡는다. 쭉 찢어진 눈, 잔인하게 빠진 턱 하며… 그는 건들거리며 걷다가 침을 퉤퉤 뱉는다. 5년 전 돈을 건 내기에서 버팔로팀이 지는 바람에 그는 감옥에 간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것이 버팔로팀의 스콧 우즈 탓으로 생각한다. 그런 그는 길 가다가 레일라(바로 그 오동통한 그녀 꺅!! 크리스티나 리치)를 납치해서는 대뜸 “넌 이제부터 웬디 발삼이야” 그러며 자신의 부인 역을 해야 한다고 협박과 함께 납치 아닌 납치를 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미식축구광인 엄마와 아들에게 무관심한 아버지, 그 가족과 상봉한 빌리는 ‘부인’인 ‘웬디 발삼’을 소개하며 같이 밥을 먹는다. 이 거칠고 황량한 가족과 식사한 뒤 빌리는 친구(오맹달 같은 친구가 나온다. 배불뚝이에 베개 눌린 머리 긁적이며…)에게 전화해 스콧 우즈에게 복수하러 간다고 말한다. 친구란 녀석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투로 그 전화를 받는다. 걱정도 안 한다. 빌리는 레일라와 스콧 우즈가 현재 하고 있는 술집을 가기 전에 볼링장에서 5년 동안 사물함을 지켜주었던 주인에게 감사를 표하며 볼링을 한다. 빌리는 그래도 볼링을 잘 치는 친구인 거 같다. 그러던 그들이 우연히 레스토랑에서 진짜 웬디 발삼을 만나는데 진짜 웬디 발삼은 빌리를 형편없는 남자애로 기억하며 자신의 남자친구와 함께 비웃는다. 빌리는 정말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만든 스콧 우즈를 죽이고야 말 테다 하며….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예스의 사이키델릭한 음악 속에서 빌리는 시시껄렁한 스콧 우즈를 죽이지 않는다. 자기가 죽고 난 뒤 자기의 무덤에서도 미식축구 이야기를 할 엄마를 상상하며 복수를 그만둔다. 사실 다 별것 아니라고 말하며 그들은 볼링을 치고 친구랑 시시덕거릴 것이다. 난 이런 무가치한 것이 좋다. 대단한 결심을 하고 대단하게 무엇을 실행하려고 해도 순간 무가치해질 수 있는 게 삶이다. 무가치한 일을 일삼다가도 무가치가 가치롭지 않다가 아니라 측정하지 못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라고 할 수도 있다. 빌리는 자신이 죽으면 사물함의 물건을 오맹달 같은 친구에게 주겠다고 했다가 다시 살기로 하면서 그 물건들에 손 못 대게 한다. 으하하하…. 이 작은 협박, 작은 배려, 작은 걱정, 작은 깨달음…. 66년생들이 부럽다. 게다가 감독이 주연까지 하다니, 멋있다. 겉으론 무섭게 생겼지만 마음 약한 소심한 건달이란 도저히 미워하기 힘들다. 착한 얼굴로 비열한 짓 하는 사람들보단 생욕하며 걸걸한 목소리로 일하는 백말띠 언니들…. 영락없는 빌리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영어를 잘 못하는 나로선 동짜몽에게 통역찰떡을 받아먹고 감독이랑 전화하고 싶다. “야!! 넌 최고의 무가치 박사야…. 캬하하하 멋져!!” 난 이렇게 겉으로만 무서운(?) 백말띠 언니들을 사랑한다. 김정영/ 영화제작소 청년 회원·프로듀서 sicksadworld@orgio.net

<살인의 추억> 두 배우 김상경, 송강호 [2]

송강호, 마음속에 늘 의문부호를 찍는 기자들은 송강호가 귀찮다. 한참 이야기를 신나게 하다가도 “아… 이 말은 좀… 건방져 보이니까… 안 쓰시면 좋은데”라고 먼저 바리케이드를 치고, 인터뷰가 끝난 뒤라도 혹시 미심쩍은 말이 있으면 “저… 그때 했던 그 말은 그 뜻이 아니라…”라고 전화를 해서라도 반드시 확인사살까지 끝낸다. 물론 감독들도 송강호가 귀찮을 거다. 준비과정부터 촬영까지 늘 마음속에 의문부호가 떠나지 않은 채 감독들을 들들 볶는다. 게다가 이 치밀함과 꼼꼼함은 촬영장에서 끝나지 않고 편집실까지 이어진다. “편집실에 매일 나가는 건, 뭐, 딱히 할일이 없기 때문이죠. 물론 배우가 편집실에 앉아 있으면 감독이나 편집하는 분이, 뭐 대놓고는 안 그래도, 사실 부담스러운 점이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실에 출근을 하는 이유는… 정말로 할일이 없기 때문에… 웃헤헤헤헤헤!” 그의 이런 편집실 출근사는 <조용한 가족> 때부터 시작되었다. 어떤 날은 “감독보다 더 일찍 출근하는 바람에 닫힌 문 앞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고임표 기사가 깨워서 들어가곤 했다”며 농담처럼 말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편집 없는 연극판에서 연기의 기초를 다진 이 배우가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에 적응하기 위한 가장 영리한 방법이자 절박한 노력이었으리라. 실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을 토대로 한 <살인의 추억>을 찍기 전, 봉준호 감독은 사건 관련 자료들을 송강호에게 전달하긴 했다. 하지만 그는 관련된 형사를 만나거나, 실제 사건에 깊이 빠져들진 않았다. “그런 건 감독이 하면 되는 거죠. 배우는 철저히 시나리오에, 텍스트에 충실하게 연기하면 되는 거고. 사실 배우에겐 실제 사건에 대한 공포감, 증오감이 불필요한 것 같아요. 물론 자연인으로서 그 사건을 대할 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죠. 그렇지만 내가 분노에 미쳐서 연기하는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어떻게 하면 이 분노를, 이 슬픔을 전달할 수 있을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분노를 끌어낼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거죠. 저한텐 장애인도, 행려도, 형사 연기도, 실제인물을 만나보느냐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서울역에서 몇달 함께 노숙하면 정말 외관은 비슷해질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들의 모습을 따라가느냐가 아니라 그들의 본질에 얼마나 가까이 가느냐죠. <복수는 나의 것>이 다른 어떤 영화보다 천배, 백배 잔인하게 느껴지는 건 잔인한 장면의 빈도와 강도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바로 잔인함의 정서에 정확히 가까이 가 있기 때문일 거예요. 박두만 형사에게 생명력이 느껴진다면 그 때문이겠죠.” <살인의 추억>은 사실 ‘배우 송강호의 모든 것’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영화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단란주점에서 살랑살랑 <제비처럼>을 부를 땐 <초록물고기>의 생짜양아치 판수가, “밥집 영수증을 줘야지, 자전거포 영주증을 주냐…”며 구시렁구시렁 거릴 땐 <넘버.3>의 조필이, 빗속 시위인파를 헤치고 걸어갈 땐 <쉬리>의 이장길 요원이,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를 외치며 ‘날라 이단 옆차기’를 시도할 땐 <반칙왕>의 임대호가, ‘무모증’ 범인을 잡기 위해 목욕탕에서 흘깃흘깃 눈을 돌릴 땐 의 소심하고 엉뚱한 호창이 오버랩된다. 운명적인 적을 앞에 두고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물을 땐 <공동경비구역 JSA>의 큰형님 오경필 중사가, 분노와 허탈감에 뜨거운 눈물을 흘릴 땐 <복수는 나의 것>의 동진이 영화 속에서 살아 숨쉰다. 그렇게 그는 변신하지 않고 축적한다. 하나도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쌓는다. ‘로버트 태권브이’ 같은 ‘깜짝합체’나 ‘카멜레온’ 같은 연기변신 대신 켜켜이 쌓은 레이어로, 그 단단한 속살을 품고 몸을 움직인다. 그는 세월과 경력과 함께 마모되지 않고 더욱 위대해질 배우다. 그것이 내년 봄 만주벌판을 달릴 송강호가, <아리랑>의 김산이 무시무시한 이유다. 김상경, 안 먹고 안 자고‥ 점점 미쳐갔다 “웬 만화책이람?” 어느 날 김상경은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만화책’ 한권을 받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감독이 직접 그린 만화풍의 콘티북을 받았다, 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가 그때 “원래 이런 것도 만들어요?”라고 두눈 동그랗게 뜬 채 물어본 이유는 뻔하다. 첫 영화가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이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조차 없이 현장에서 즉석에서 상황과 대사를 만드는 홍 감독이다 보니 콘티북이 있었을 턱이 없지. “처음으로 정상적인 시스템 속에서 작업한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김상경은 서울에서 파견온 형사 서태윤 역을 맡았다. ‘서류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수사관을 갖고 있던 그는 연쇄살인범의 피 그림자가 커질수록 극한의 감정으로 빠져든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그가 보여준 광기와 회한이 어지러이 뒤섞인 눈빛은 진정 온몸의 피가 콸콸 역류하는 자의 그것이었다. 그때 김상경의 감정상태가 바로 그랬다. 지난해 4월 시나리오를 받은 뒤 그는 “눈물나고 화나고 범인을 잡고 싶은 기분”을 느껴 2번 연속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가누지 못한 그는 밤을 꼬박 새운 뒤 아침녘 봉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무척 화가 났다”고 감상을 피력했다. 서태윤은 당연히 그였다. 떨어진 물이 얼음으로 바뀌는 데 몇분이면 충분한 겨울날 살수차가 뿜는 비를 맞으면서도, 그것도 17일 동안이나 ‘물고문’을 당하면서도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시나리오를 읽던 당시의 분노가 가슴 한가운데 뜨겁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배우로서 눈을 열어준” <생활의 발견>의 방법론을 적용했다. 시나리오를 받은 뒤 1달 동안 반복해 읽었던 그는 정작 크랭크인하던 8월이 될 때까지 3개월 동안은 시나리오에 한번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어떤 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촬영날 아침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는 홍 감독의 ‘깊은 뜻’도 깨달았다. “매일 다른 공기, 바람, 햇빛을 느끼려 노력했다. 그 순간 치밀어 오르는 느낌, 기분을 최대한 살리려 했다”는 것. 전작에서 술을 통해 자유로운 몸을 얻은 것처럼, 이번에는 감량을 통해 몸이 먼저 고통을 느끼게 했다. <생활의 발견> 때 94kg까지 치솟았던 그의 몸은 크랭크인 당시 87kg으로 가벼워졌고, 크랭크업 때는 82kg으로 바뀌었다. 다이어트를 위해 안 먹고 안 자면서 그의 몸에 피로가 깃들었고, 예민해진 신경은 눈 주위에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미치고 지쳐가는 서태윤의 모습은 그렇게 창조됐다. “스크린에서 내 캐릭터를 보는데, 분명 내 몸이지만 내가 모르는 사람이 거기 있을 때 배우하는 게 좋다고 느낀다”는 그의 연기관은 <살인의 추억>에서도 들어맞는다. 그러고 보니 현실의 김상경은 스크린 속 서태윤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듯하다. 실없는 이야기나 속없는 웃음을 자주 흘리는, 이렇게 서글서글한 사람이 그렇게 활활 타오를 때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논점이 생기니 달라진다. 열올려 주장하는 대신, 그는 “아, 그게 그렇다니까요”라면서 “하하하…” 웃는다. 희한한 건 그 웃음이 단호하다는 점이다. ‘네가 뭐래도 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 이제 그만 하자’는 말이 함축된 느낌이다. 어쩌면 그런 단호함이 단 2편의 영화를 통해 숨어 있던 또 다른 자신을 찾아내게 한 건지 모른다. 감독의 성격은 대조적이지만 무한의 흥미와 자극을 줬다는 점에서 한 가지인 그 2편은, 그래서 그에게 중요하다. 당장 차기작에 관해 고민하지 않는 것도 “정말 와닿는 작품”을 느긋하게 기다리기 때문이다. ‘연기의 발견’과 ‘내면의 추억’을 통해 큰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김상경은 이제 어떤 ‘영화의 도전’을 받아들일까.

바람은 왜 부는 거예요? <궁금해요 핑퐁>

정해진 시간은 5분, 그 안에 교육적인 내용을 재미있게 어필하라! 유구한(?) 역사를 지닌 수많은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의 삽입애니메이션은 그동안 어려운 사명을 부여받고 소임을 다해왔다. 이른바 ‘TV 유치원애니메이션’은 의도했건 안 했건 새내기 제작사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온 곳이다. 애니메이션이 소개되는 방송 채널이 지극히 한정된 상황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5분 시리즈는 따져보면 꽤 된다. 비슷한 형식에 비슷한 주제, 언뜻 별반 다를 것 없을 듯한 이들 작품은 의외로 막강한 개성을 자랑한다. 만든 곳, 만든 사람이 모두 다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2002년 9월부터 12월까지 KBS TV유치원을 통해 방영된 26부작 5분 클레이애니메이션 <궁금해요 핑퐁> 역시 ‘교육적인 내용을 재미있게’라는 사명을 짊어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 호기심 숲속에 사는 파란 토끼 핑과 분홍 토끼 퐁을 주인공으로 하는 <궁금해요 핑퐁>은 일단 만화적인 연출이 무척 인상적인 작품이다. 말풍선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물론, 눈물이나 땀방울이 강조되는 것이 영락없는 만화의 기법. 과학적인 원리를 설명하거나 등장인물이 일일이 연기를 할 수 없을 때는 부조의 기법도 도입된다. 언뜻 봐서는 클레이가 아니라 종이로 만들어진 컷 아웃 애니메이션처럼 보일 정도다. <궁금해요 핑퐁>의 개성은 만화의 재미를 형식뿐 아니라 내용에서도 자연스레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빛을 발한다. 호기심 많고 궁금증 많은 핑과 퐁, 그리고 언제나 홀연히 나타나는 에디슨 박사(사실은 거북이)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갈수록 탄력을 받아 주변 인물도 늘어나고 재미도 더해간다. 또 하나의 매력을 말하자면 바로 음악이다. 사운드뱅크가 담당한 음악은 하루종일 입 안에서 맴돌 정도로 친화력이 강하다. 게다가 효과음을 선택한 기막힌 감각이라니. 공포스럽고 놀라운 상황에서는 <사건25시>나 <죠스> <수사반장>을 연상시키는 음향이, 절박한 상황에서는 <운명> 같은 클래식이 사용된다. 캐릭터들이 판에 박힌 천사표가 아니라 감정 표현에 솔직한 점도 매력적이다. “미워! 싫어!”를 예사롭게 외치는 주인공들이 현실적이다. 아쉬운 건 남자임에 분명한 파란 토끼 핑과 여자인 게 분명한 분홍 토끼 퐁의 역할분배다. 대부분 핑의 주도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퐁은 문제를 만들거나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어른이건 아이건 <궁금해요 핑퐁>을 보는 동안 부족했던 상식을 채울 수 있다는 점이다. 낮과 밤은 왜 생기는지, 바람은 어떻게 부는지, 천둥과 번개는 왜 치는지, 꽃은 왜 피는지, 또 하늘은 왜 파란지…. 구체적인 원리를 묻는 조카라도 있었다면 큰일났을 뻔했다는 각성이 들 정도로, 재미있게 상식공부를 했다. <궁금해요 핑퐁>을 만든 클레이애니메이션 전문 스튜디오 이미지 플러스(www.clayanimation.co.kr)는 그동안 <미루의 환상여행>을 비롯해 각종 CF를 제작해온 곳이다. 현재는 26편 중 18편이 2개의 비디오로 출시된 상태. 김일림/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illim@korea.com

튤립의 기사,해외신작 <팡팡 라튤립>

바람둥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루이 15세가 통치하는 18세기 프랑스. 바람둥이 ‘팡팡’은 잠시 즐긴 여자와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 결혼식장에 소처럼 질질 끌려가던 그에게 우연히 만난 아드린느라는 보헤미안 여인은 “당신은 군대에서 명예를 얻을 것이고 앞으로 왕의 딸과 결혼할 운명”이라고 예언한다. 결국 팡팡은 억지 결혼식장을 빠져나와 ‘7년 전쟁’ 시대의 군대에 자원한다. 병사로 가는 중 공주와 왕의 애첩을 강도에게서 구하게 된 팡팡은 감사의 뜻으로 다이아몬드 튤립을 선물받게 되고 이후 모든 이들은 그를 ‘팡팡 라 튤립’이라고 부른다. 그는 정말 아드린느의 예언대로 왕의 딸과 결혼할 수 있을까?. 뤽 베송이 제작하고 <택시2> <택시3> <와사비: 레옹 파트2>의 제라르 크라브지크 감독이 연출하는 <팡팡 라튤립>은 <인도차이나> <여왕 마고>의 뱅상 페레가 잘생긴 바람둥이 기사 ‘팡팡’으로 분하며, 자유분방한 집시여인 아드린느를 페넬로페 크루즈가 맡아 1998년 <돈 주앙> 이후 5년 만에 프랑스영화로 복귀한다. 1952년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던 크리스천 자크 감독의 동명영화를 리메이크했으며 오는 5월14일 개막하는 제56회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50년 만에 칸 비치에서 또 한번 그 ‘다이아몬드 튤립’을 피울 예정이다.백은하 ▲ 거친 집시여인 아드린느는 팡팡을 살리기 위해 무모한 시도를 감행할 만큼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왼쪽) ▲ 왕궁침입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팡팡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아드린느가 왕의 부하에게 납치당하자 아드린느를 살려내기 위해 왕의 부하들과 추격전을 벌인다.(오른쪽)

왜 그땐 몰랐을까,<클래식>

<클래식>2003년, 감독 곽재용 출연 손예진, 조승우 컴퓨터 화면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쓰는 이메일 대신 손에 연필을 들고 편지를 쓰던 순간의 설렘, 수시로 이동전화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일상을 체크하는 대신 그 혹은 그녀의 소식을 담은 편지를 날라주실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리는 순간의 초조함, 비오는 날 평소 마음에 들어 한 사람의 우산 속으로 뛰어들까 말까 고민하던 순간의 두근거림,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 올까 기다리며 탁자 위로 성냥을 하나씩 쌓아보던 순간의 들뜸…. 이제는 이런 것들을 보고 유치하다고 말하기보다는 왠지 “클래식하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고전적인 유치함이 주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영화를 그다지 많이 본 편은 아니다. 그리고 그뒤엔 영화를 보고자 하는 일종의 ‘용기’가 부족했던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60년대의 형제 많은 집 맏이로 태어난 이들이라면 이 부족한 용기의 원인을 다소 이해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어릴 때부터 주변의 요구와 압력을 유난히 많이 받으며 희석된 용기를 숨겨둔 채 살아왔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주로 부모님에 의해, 그 이후에는 주로 사회에 의해 그러했다. 지금도 영화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라고 하면, 부모님 몰래 TV에서 방영한 영화 한편을 보다가 책으로 머리를 맞았던 기억과 대학 시절 종로에 영화를 보러 갔다가 만난 시위대 속에서 친구를 발견하고 그 길로 영화 관람 대신 시위대에 참여해 종로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던 기억이 오버래핑된다. 그런 기억들이 습관으로 굳어져 여전히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 내게 <클래식>의 관람은 다시 용기를 요구했다. 학교 업무들로 정신없이 보내는 날이 많은 요즘엔 영화보다 책이나 사람과 만나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늘 바쁜 아빠와 영화관에서 데이트하는 게 낙인 딸아이의 강력한 권유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내 기억 속에 들어오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처음 극장에 들어갔을 때 조금만 보다가 그냥 자야겠다 라고 마음먹었던 각오와는 달리, 마흔살의 나는 어느새 열세살짜리 딸아이와 함께 웃고 울면서 조금씩 영화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인근 학교에 다니던 예쁜 여학생이 자꾸만 눈에 밟혀도 차마 말을 걸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 바라만 보았던 나의 기억은 비단 내 것만이 아닌, 우리 세대의 보편적인 추억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요즘처럼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멋진 신세대들에게 우리 세대의 추억은 영원히 이해되지 않을 과거일지도 모르겠다. 왜 그리 용기가 없었을까… 왜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이 입 안에서만 맴돌고, 손 한번 잡고 싶어도 차마 팔을 뻗지 못했으며, 돌아서 멀어지는 연인 뒤에서 가지 말라고 소리 지르지 못해 애꿎은 벽만 쳐댔을까… 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한 것을 왜 그땐 몰랐을까(다행히도 나보다 훨씬 용기 있었던 내 연인이 못난 나를 받아주었기에 지금 나와 한집에서 밥을 먹고 있지만 말이다). 영화 보는 중간중간 밀려왔던 일상의 피곤함에 하품을 몇번 하긴 했지만, 향수로 가득한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이 영화의 잔상은 마음에 바람 한 줄기로 남았다. 오늘도 초록이 싱그러운 캠퍼스 안을 누비는 사랑스런 젊은 연인들을 보며 난 <클래식>의 지혜와 상민을 본다. 그리고 그 너머로 그림자처럼 아련하지만 환하게 웃고 있는 주희와 상민을 떠올리며, 나의 젊은 날을 기억한다. 사랑하는 두 연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캐논 변주곡의 선율이 맴돌아 흘러나오지 않을까. 방식은 다르겠지만, 생이 지속되는 한 사랑도 계속된다.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나에게도….성동규/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볼링 포 콜럼바인>과 마이클 무어 [1]

부시를 엿먹인 “꼴통” 반골 아저씨 카메라와 펜으로 세상과 맞서 싸우는 다큐멘터리스트 마이클 무어 스토리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마이클 무어는 놀라운 인간이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직설적인 발언도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우아하고 고상한 자리에서, 너무나 직설적인 언어로 ‘부시,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다. 그건 마이클 무어의 평소 하던 행동 그대로다. 무어는 결코 참지 않는다. 무어는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시상식장에서 환호와 야유가 함께 쏟아진 것처럼, 마이클 무어는 논쟁과 대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그가 건방지고 무례하다고 비난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때로 그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애초부터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고와 태도를 비판하는 사람이다. 대통령이건, 찰턴 헤스턴이건 마이클 무어는 고개를 뻗대고 정면에서 치받는다. 그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본질에 파고들기를 원하고, 자신의 영화와 책을 통해서 그가 찾아낸 것들을 보여준다. 소란을 몰고다니는 사나이 마이클 무어의 화려한 경력과 성취는 그가 단지 떠버리가 아님을 보여준다. 아카데미에서 다큐멘터리 부문상을 수상한 <볼링 포 콜럼바인>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첫 번째 다큐멘터리다. 심사위원들은 특별히 55주년 특별상을 만들어서, <볼링 포 콜럼바인>에 시상을 했다. 그건 마이클 무어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특한 다큐멘터리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상이다. <볼링 포 콜럼바인>은 미 작가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 WGA)에서 주는 각본상 후보에도 올랐다. 다큐멘터리로는 처음 후보에 오른 것이다. 또한 <볼링 포 콜럼바인>은 전세계에서 4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다큐멘터리 역사상 가장 많은 흥행수익을 올렸다. 마이클 무어의 활동영역은 다큐멘터리만이 아니다. 국내에도 번역된 <멍청한 백인들>(Stupid White Men)은 2002년 3월13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뒤 40주 이상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있었고, 지난해 비소설 부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지금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TV프로그램인 과 <끔찍한 진실>은 4년 연속 에미상 후보에 올랐고, 마침내 94년 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a comedic investigate magazine show'를 표방한 은 뉴욕의 택시가 정말로 흑인을 잘 안 태우는가를 직접 실험하는가 하면, NAFTA는 단지 미국 기업이 멕시코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한 기회일 뿐임을 여러 자료를 활용하여 증명해준다. 그 밖에 마이클 무어는 나이키의 제3세계 노동착취를 고발한 <빅 원>과 미국이 캐나다를 침공한다는 황당무계한 코미디 <캐나디언 베이컨>을 만들었다. <캐나디언 베이컨>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만큼 괴상한 정치풍자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니 적들이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다. 무어의 반대자들은 ‘무어 워치’란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놓고 마이클 무어의 잘못과 실수, 악행을 고발하자고 선동하고 있다. 노동자의 편이라는 마이클 무어가 뉴욕에서 100만달러가 넘는 ‘저택’에 살고 있다며 비난한 것도 그들이다. 마이클 무어는 우군이라고 할 자유주의자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한다. 유엔의 코피 아난 사무총장에게 부시를 하야시키기 위한 유엔군 파병을 요청하는 공개 편지를 보낸 것은 신랄한 농담이고 정치적 제스처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지난 미국 대통령선거 막판에는, 랠프 네이더를 지지하기 위한 집회에서 부시와 고어가 막상막하이니 고어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비난을 받기도 했다. 때로는 마이클 무어가 직접 소동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2000년 뉴욕에서는,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외치는 록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뮤직비디오를 찍다가 경찰에 연행되는 바람에 격분한 RATM과 팬들이 소란을 일으켰다. 그 여파로 그날 하루 뉴욕 주식시장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마이클 무어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논란이 일어난다. 아니 마이클 무어는 논란이 일어나는 곳을 언제나 찾아간다. 그런데 묘하다. 사회비판 다큐멘터리의 대가인 마이클 무어가 태어난 곳은, 하필이면 미시간의 플린트다. <로저와 나>의 무대인 플린트는 미국의 자동차 회사 제너럴 모터스가 시작된 곳이며, 80년대 경제 침체로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으며 급격하게 몰락한 도시다. 1954년 4월23일 태어나 플린트에서 자라난 마이클 무어가 그 모든 영욕을 함께 겪었을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무어는 <로저와 나>를 만들었다. 또 있다. <볼링 포 콜럼바인> 후반부에 6살의 소년이 동급생 소녀를 총으로 쏴 죽인 끔찍한 사건이 나온다. 그 사건이 벌어진 곳은 바로, 플린트다. 위대한 예술가는 언제나 시대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한다. 시대를 뒤흔든 사건을 직접 지켜보며 그것을 예술로 형상화시킨다고 한다. 마이클 무어가 그런 예술가인지는 모르겠지만, 희한하게도 마이클 무어 주변을 둘러보면 미국의 끔찍한 ‘현대사’가 그대로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볼링 포 콜럼바인>과 마이클 무어 [1] ▶<볼링 포 콜럼바인>과 마이클 무어 [2] ▶<볼링 포 콜럼바인>과 마이클 무어 [3]

<순풍산부인과>에서 <보리울의 여름>까지,박영규 스토리 [2]

난 정말 럭키한 사람 “만일에 <순풍산부인과>랑 만나지 않았다면 박영규라는 배우의 인생이 그냥 그런 배우로 지속됐을지도 몰라요. 럭키한 거지. 하지만 누구나 기회는 온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오는 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기회를 놓친다구. 그런데 미달이 아빠는 내가 한번 나를 부숴보고 싶은 욕망이 있을 때 왔어. 그게 절묘한 거야. 운명이. 코미디를 난 극단 목화에서 오태석 선생님하고 할 때 다 공부했다구. 오늘날 박영규의 세계는 그분이 만들어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 그때 만약 그런 공부를 안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안 됐을 거라구. 사람이 자기가 투자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승화될 타이밍이 온다고. 자기가 바친 만큼 반드시 온단 말이지. 하지만 그때 훈련을 안 했으면 이렇게 안 됐을 거야. 그래서 내가 굉장히 럭키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순풍산부인과>와 <똑바로 살아라>의 김병욱 PD는 당시 캐스팅 1순위로 박영규를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미리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었고 첫 녹화에 들어가기 이틀 전에 전화를 했고 이야기를 하면서 뜻이 통했다는 것이다. “당시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나던 때라 풍요 속에 비참하게 사는 사람을 그려보자는 생각을 했다. 밖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자기 맘대로 처분할 수 있는 물건은 하나도 없는 사람을 그리자고. 그런 부분에 의견이 일치했다.” 이것이 박영규의 말대로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운명적인 캐릭터인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그때 이미 그의 내면에 미달이 아빠의 모습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는 점이다. "슬프니까 웃기는 거야" “어렸을 때, 1년에 1번 아버지 생신 때 돼지고기가 올라와요. 눈이 뒤집히는 거야. 핑 돌아. 밥상 올라오면 바로 젓가락 올라가잖아. 뒤통수 팍, 형이야. ‘상놈의 새끼, 너만 먹어, 같이 먹어야지.’ 그럼 그 다음엔 다시는 고기를 안 먹어. 토라져서. 고기는 절대 안 먹고 장아찌만 먹어. 그럼 또 한대 팍, ‘너 지금 엉기는 거야. 고기도 먹고 장아찌도 먹어. 너 지금 나한테 댐벼.’ 그럼 울면서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그런 기억들이 미달이 아빠를 만든 나의 삶이야. 그런 인생을 살았어. 그런데 난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해. 어떻게 배고픈데 눈에 보이는 게 없는데 다 같이 먹자, 그럼 애가 아니지. 그러니까 본능에 정직했단 말이야. 유난히 난 그게 셌어. 막내, 기질 자체가 막내야. 그런 삶을 살면서 철없는 행동을 해. 지금도 고스톱치면 ‘돈 따면 개평 없기로 하자, 개평달라고 하면 돌로 머리를 찍자’ 그래. 그런데 내가 지잖아. ‘자식아, 개평 좀 줘라’ 그러지. 그럼 그놈은 정말 밖에 가서 돌을 들고 와서 머리를 찍으려고 그래. 그럼 난 도망가고 그놈은 아파트를 빙빙 돌면서 쫓아와. 그런데 그게 나쁜 게 아니야. 친구 사이엔 그런 게 사랑이더라구. 그럴 때 행복하더라구. ‘그럼 잘 쳤어’ 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면 그게 뭐가 재미있어. 재단하듯 선을 그어서 살면 인생이 재미없다고. 어른이라는 미명하에 젠틀하게 그러면.” 짐작하겠지만 그의 경험담은 극 속에서 박영규가 연기한 인물들과 다르지 않다. 가난해서 슬프고 힘들지만 그는 그걸 웃음으로 포장할 줄 안다. 단지 연기만이 아니라 현실의 인터뷰 자리에서도. 최근 방영된 <똑바로 살아라>의 에피소드 하나를 떠올려보자. 극중 영규는 우연히 옛 애인을 만난다. 양수리에 가자는 옛 애인의 제안을 받고 영규는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보지만 아무리 모아도 9만원 남짓. 자동차에 휘발유 넣고 남은 돈은 7만원.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비싼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옮겨가보니 스테이크 하나에 3만원. 애써 배고프지 않은 척 자기는 김치볶음밥을 먹겠다고 주문하는 영규. 수중에 돈은 자꾸 없어지고 그의 머릿속엔 중년의 로맨스를 즐길 여유가 사라지고 만다. 그날 밤 영규는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들이켜며 복받치는 설움을 참지 못해 절규한다. “어떤 놈들이 바람 피우는 줄 알아. 돈 있는 놈들이 피우는 거야. 돈.” 과연 이런 영규에게 구두쇠라고, 좀팽이라고 욕할 수 있을까? 슬픔과 웃음이 공존하는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박영규의 연기는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똑바로 살아라> <주유소 습격사건> 라이프에서 안 되면 연기에서도 힘들어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난 이 모습을 누가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카메라가 지금 이걸 찍고 있다고. 지금 내 연기가 보고 있는 사람한테 감동을 줘야돼. 왜? 내 생애라는 필름을 돌리고 있는 거니까. 그게 기승전결이 절묘하고 그러면 나한테 박수치고 그럴 거 아니야. 그렇게 될 때 극중극에서도 똑같이 되는 거야. 여기서 안 되는데 저기서 되고 그런 거 안 돼. 천만의 말씀이야. 배우가요. 라이프, 삶에서 안 되면 연기에서도 안 되는 거야. 이게 돼야 저기도 돼. 열심히 연기하는데 마음에 안 와닿는 거 있잖아요. 하지만 난 내 삶이 그냥 미달이 아빤데 뭐, 여기서 다 끝났어요. 그런 생각과 철학을 갖고 있고. 그러니까 연기는 진짜로 해야 하는 거예요. 흉내내고 만드는 게 연기가 아니야. 내 진실이고 내 생명을 바쳐서 하는 거야. 미달이 아빠는, <똑바로 살아라>의 영규는 나야. 내가 그 사람이야. 나를 보고 웃는 이유는 저 사람은 저걸 연기로 하는 게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야. 왜? 그 모습이 너무 절실하니까. 가슴 아픈 그 절실함이 코미디고 트래저디지. 비극과 코미디는 그러니까 쌍둥이야. 진실이 인볼브 안 돼 있는 건 안 되는 거지. 다 거짓말이야. 진실이 들어 있을 때 웃는 거라구요.” 실제로 박영규가 인터뷰하는 모습은 연기할 때와 똑같다(그의 말투를 가급적 그대로 살려서 쓰는 이유도 그것이다). 이날 첫 번째 질문을 꺼내기까지는 30분이 걸렸다. 미처 질문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연기철학을 말하기 시작했고 한번 물꼬를 튼 이야기는 무너진 댐에서 솟아나듯 콸콸 쏟아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앉았다, 웃었다 울었다, 영화와 드라마의 한 장면을 그 자리에서 재연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자신이 진행하는 <가요콘써트> 이야기를 하면서 노래를 부른 것(그 노래를 들려줄 수 없어 정말 유감이다). <그대 그리고 나>를 불러서 기립박수를 받은 이야기를 꺼낸 그는 나지막한 음성으로 “푸른 파도를 가르는 흰 돛단배처럼 그대 그리고 나…” 하며 노래를 한다. 그냥 한 소절이 아니라 거의 노래 한곡을. 미달이 아빠가 몸이 원하는 본능에 충실한 인간인 것처럼 박영규는 몸에서 우러나는 쇼맨십에 충실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 점이 코미디 연기로 널리 사랑받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연애를 해도 대충 안해 “노래도 하나의 연기라고 생각해. <가요콘써트> 진행을 하는 것도 연기의 감정을 만들려고 하는 건데. 노래를 해도 난 로맨틱한 감정, 작곡, 작사가의 심정을 담아서 그림을 그려주면서 노래한다고. 리허설이고 본방송이고 생명을 다 바쳐서 노래해. 눈물 막 쏟아진다니까. 안 그러면 노래를 왜 해. 그 감정을 갖고 행복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안 그럼 뭐 하러 노래해. 노래하지 말라고. 어디서나 최선을 다 해. 밤무대 해도 나 한번 쓴 데는 반드시 다시 불러. 다시 부르게 돼 있어요. 한번 써보면 열심히 하는 게 보이니까. 최선을 다하니까. 자기가 선택한 초이스를 왜 대충해. 왜 대충 살어. 이건 잘하고 저건 대충하고 그러면 안 돼. 밥을 먹어도 열심히 맛있게 먹어야지. 연애를 해도 대충 안 해(자기가 한 말에 흠칫 놀라는 표정 연기). 에이, 그렇단 얘기지. 만일에 혹시나 연애를 하면 그렇게 한다는 얘기지.” (웃음) 지난해 여름, 박영규는 전북 김제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영화 <보리울의 여름>을 찍었다. 보리울 어린이 축구팀의 감독이 되는 우남 스님은 미달이 아빠 같은 치사한 면을 갖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극 전체가 잔잔한 리듬을 타고 흘러가는 이 영화에서 그는 전보다 조용하고 느긋하며 여유롭다. 이민용 감독은 캐스팅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시나리오를 읽고 만나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박 선배가 요즘 같은 때 이런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다며 만나자고 했다. 작품이 마음에 든다며 상업적 성패에 상관없이 하고 싶다고 했다.” 박영규는 <보리울의 여름>에서 극단적 변신은 아니지만 미달이 아빠 캐릭터가 도달할 수 있는 또 다른 영역을 보여준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과 깨달음의 경지가 함께하는 우남 스님은 박영규가 웃음을 주는 배우만이 아니라 삶의 깊이를 표현할 수 있는 배우임을 보여준다.

<모노노케 히메> 지브리 스튜디오 제작기 [3]

콘티 변경 담쟁이 덩굴과 키 큰 나무들로 둘러싸인 조용한 작업실 `지브리`는 `사하라 사막에 부는 뜨거운 바람`이라는 이름처럼 엄청난 산고를 거쳐 <모노노케 히메>를 내놓았다 97. 1. 6일 | 어젯밤 11시30분, 드디어 <모노노케 히메>의 그림 콘티가 완성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룻밤 더 생각해 일부를 수정한다. 정말로 완성이다. 어제 1월5일은 미야자키 감독의 56살 생일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스탭들의 축하 인사에 “55살 안에 완성하고 싶었다”며 약간 시무룩해진다. 아침부터 그림 콘티의 카피를 시작하려 했으나 카피기의 상태가 안 좋다. 점심시간 직전 드디어 카피기가 고장난다. 수리 기사를 불렀다. 이것은 ‘모모노케(원령)’의 저주가 아닐까. 완성한 그림 콘티를 베이스로 러닝타임을 계산해본 결과 130분을 넘어버렸다. 엔딩도 넣지 않았는데 말이다. 으아… 스즈키 프로듀서에게 뭐라고 말하나. 97. 1. 8 | “콘티, 이대로 괜찮을까?” 스즈키 프로듀서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캐릭터마다 공격을 시작한다. 생각에 잠겨 있던 미야자키 감독이 “좀더 재미있게 이야기를 끝내는 방법이 생각났다”며 콘티 변경을 선언한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 97. 1. 10 | 미야자키 감독의 콘티 변경에 오히려 러닝타임과 컷 수가 늘어났다. “프로듀서가 컨펌을 냈기 때문에 괜찮다” 말하고 있지만, 이 이상 늘어나면 스케줄이 문제다. 미야자키 감독이 “늘어난 부분의 레이아웃을 그려야 한다”며, 15컷 정도 그려낼 수 있는 에니메이터를 찾아보라고 지시한다. 이전에 지브리의 작품을 도와줬던 I씨에게 연락을 한다. “그게… 좀… 시간이 없어서….” “다른 작품을 그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좀처럼 넘어오지 않는다. 해당 콘티를 보고 나서 결정하겠다고 하기에 미야자키 감독을 재촉해 러프한 콘티를 완성한다. 내일 그와 만나는 자리에 미야자키 감독이 동행하기로 했다. 97. 2. 14 | 이대로는 도저히 동화가 완성될 것 같지 않다. 우선 한 사람이 어느 정도의 페이스로 끌어올리면 될지를 알리는 안내문을 만든다. 최근 ‘인생에 지친 사람들’의 아지트가 돼가고 있는 캐릭터 상품부를 미야자키 감독이 급습한다. “이제 좀 방을 정리해!” 당황한 사람들이 갖고 있던 만화책을 버렸지만 누군가 숨기고 있던 자동차 책이 걸렸다. “이것은 일의 성격상 필요한데….” 그가 필사적으로 변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97. 2. 16 | 두 시간 반 거리를 늘 걸어다니는 미야자키 감독도 오늘은 비 때문에 차로 출근했다. “<에반게리온> 극장판 2부 제작에 들어가다….” 신문 기사를 본 미야자키 감독은 “괴롭겠구나…”라는 말로, 그들이 짊어지게 될 창작의 고통을 예감한다. 바깥에서 도와주고 있는 원화맨이 잇따라 원화를 갖다주는데, 레이아웃 작업이 따라가지 못해 미야자키 감독이 괴로워하고 있다. 97. 3. 1 | 러시 체크가 있다. 작화 추가, 특수효과 수정 등등 리테이크해야 할 것이 제법 많다. 지난해부터 매주 토요일에 신체 교정 및 지압사가 방문해 하루 대여섯명씩 치료하고 있다. 미야자키 감독과 스즈키 프로듀서를 비롯한 스탭 대부분은 치료 직후엔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금방 피곤한 상태로 돌아가고 만다. 97. 3. 7 | 지각 상습범 E씨가 1시가 돼도 출근하지 않자, 동료 K씨가 E씨의 책상 위에 “정신차려! 회사도 그만둬!”라고 쓴 메모를 붙여놓았다. 미야자키 감독을 흉내내서 한 일이었다. 메모를 본 E씨의 얼굴이 유령처럼 창백해졌다가 K씨의 장난임을 알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C파트의 커팅을 두고, 구로다가 마지막 배경장면에 고전하고 있다. 일단 동화 촬영은 했지만 어떻게든 기한에 맞추도록 하고 싶은데…. 예상보다 매수가 늘어났기 때문에 창고에 여유분으로 있던 셀을 가지러 간다. 많이 사놓길 잘했다. 97. 3. 25 | 아침 9시경 지브리의 북쪽에 있는 집에서 불이 났다. 지붕까지 불길이 올라오는 걸 보니 굉장한 화재다. 소방차가 달려온 지 15분쯤 뒤엔 거의 진화가 된다. 작업에 뚜렷한 진전이 없어 답답해하던 미야자키 감독이 중얼거린다. “지브리도 같이 타버렸으면 좋았을걸.” 원화 체크 완료 97. 4. 25 | 미야자키 감독의 원화 체크가 완전히 끝난다. 할 일이 갑자기 없어져버린 미야자키 감독은 선촬영의 준비를 위한 채색을 시작한다. 즐거워 보인다. 바쁜 작업 사이사이에 취재에 응하고 있다. 97. 5. 13 | 0일분 정도 쌓였던 제작 실적표를 한번에 채웠다. 외주에 부탁한 완성품의 남은 매수가 아직 5천장 정도 있다. 단, 1컷에 평균매수가 130매를 넘기 때문에 컷 수로 하면 40컷도 안 된다. 금방이다. 97. 5. 31 | 11시부터 러시 체크. 미야자키 감독은 텔레센에 가기 전에 체크를 끝냄.완성된 러시를 다시 교체. 키리 스튜디오의 이세쓰가 인사차 회사에 옴.CG실의 작업이 전부 종료. CG룸에서 스페셜 건배!!! 97. 6. 7 | 몇몇 스탭들이 음악이 깔린 러시를 함께 감상한다. 디지털6채널의 음향은 굉장히 박력이 있다. 음악도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깔리는 등 멋있기까지 했다.한편, 장기간의 텔레센을 한 것 때문에 예상대로 미야자키 감독, 스즈키 프로듀서, 와카바야시 등 스튜디오에 있는 모든 스탭들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에 과자를 먹고, 음료수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하는 모습들이 무척 새롭게 느껴졌다. 이 얼마만의 여유인가. 롤3, 4의 최종 믹스 종료. 97. 6. 12 | 아침 9시에 세야마 편집실에 들러서 음향의 네거를 맞추는 데 필요한 기자재를 차에 싣고 이마지카를 향해 간다. 10시 좀 넘어서 도착했으나 전체적인 작업이 약간 늦어져서 11시 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최종 원판 짜맞추기를 새벽 3시까지 했던 세야마는 “30분 더 잘 수 있었는데”라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마지카에서도 11시부터 컷1, 2의 옵티컬의 재체크. 이번에는 확실하다! 97. 6. 14 | 한숨을 돌린 탓일까, 미야자키 감독은 방에서 원고를 쓰기도 하고, 소파에서 낮잠을 즐기기도 하고, 독서도 하고 있다. 미술팀의 쫑파티가 있었다. 97. 6. 17 | <모노노케 히메>의 완성 쫑파티가 기치조지에서 행해졌다. 이 작품의 관계자 300여명이 몰려들었지만, 준비한 선물도 부족하지 않았고, 스즈키 프로듀서의 행사 진행도 완벽했다. 쫑파티까지 무사히 종료. 여러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97. 6. 20(금) | 미야자키 감독과 스즈키 프로듀서는 작품 홍보를 위하여 오늘 출발. 스튜디오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지브리에도 태풍이 상륙해서, 나무가 쓰러지고 있다. 안전을 생각해서 동네 소방서, 인근 주민들의 협력으로 위험한 나무를 잘랐다. 결국 톱까지 동원하게 되었다. 역시 살아 있는 나무를 자르는 것은 쉽지 않고 또 옳지 않은 일…. 7. 6. 25(수) CG실에 기자재를 반입하다. 모노리스 같은 거대한 장치가 설치되었다. 이것은 디지털화된 데이터를 기록하고 각 컴퓨터를 백업하는 장비다. 마감 때 모습과는 딴판. 마치 사무실처럼 컴퓨터가 배치된 풍경이 낯설다. 유락초 마리온 극장에서 시사회가 열렸다. 미야자키 감독을 비롯해 스탭과 목소리 연기자들,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모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사진제공 웍스튜디오 * 이 제작기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제공한 내용 중 일부를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원고지 300매 분량의 원문은 지브리 스탭들이 함께 썼으며, 제작실 스탭인 다나카 가즈요시가 정리 책임을 맡은 것입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모노노케 히메> 지브리 스튜디오 제작기 [2]

본편 촬영 시작 96. 3. 19 | <모노노케 히메>를 작업하는 동안은 디지털페인트 기계를 CG부에 두기로 한다. 시아게(완성작업)부에 기계의 사용방법을 숙지시킨다. <모노노케 히메> 이후의 애니메이션 제작은 더욱더 디지털화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이 정도의 작업은 CG부에 의존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96. 4. 4 | <인간은 무엇을 먹고 살아왔는가-나이젤 강의 이동어민>의 상영회가 열린다. 신입사원을 포함해 20명 이상이 관람한다. 사전에 미야자키 감독이 강제성이 다분히 엿보이는, 참여 권유 안내문을 붙였기 때문이다. 96. 4. 10 | 미야자키 감독이 정오 이후에 출근한다. 자택 근처에서 벚꽃을 관찰하고 왔다고 한다. 96. 4. 13 | 러시 체크에서 리테이크 분량이 다수 나왔다. 아르바이트생에게 브에나비스타에 넘기게 될 그림 콘티의 카피를 부탁했더니 “복사만은 더이상 못하겠습니다. 그만두겠습니다”라며 가버렸다. 그것도 인내력인가. 기가 막힌다. 96. 4. 29(월) | 미야자키 감독이 아침부터 침을 맞으러 갔다. 최근 그 횟수가 상당히 늘어난 것 같다. 96. 5. 6 | 스즈키 프로듀서가 미국에서 귀국하자마자 지브리로 출근한다. <모노노케 히메>의 해외 배급을 디즈니사에서 맡기로 한 모양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돈을 벌 수 있다면 그걸로 되지 않냐”며 다소 시니컬하게 반응한다. 해외 배급 건은 극비사항이라면서, 스스로 사원들에게 말을 퍼뜨리고 있다. 96. 6. 18 | 친분이 있는 잡지 편집자가 ‘만다라케’(주-만화 관련 중고서점)의 카탈로그를 보내왔다. 미야자키 감독의 이름을 내건 그 카탈로그에는 미야자키 감독과 지브리의 진귀한 작업물이 그득했다. <천공의 섬 라퓨타>의 레이아웃이 2만∼4만엔, 셀화가 3천∼8천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사인 색지가 20만엔 등으로 다양하다. 최고가품은 <하이디> 1화의 실제 그림 콘티로 60만엔이나 한다. 그 밖에 재미있는 것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포스터의 인쇄 원판(물론 금속이다)이 팔리고 있다는 것. 니키와 엔도는 자신들이 그린 레이아웃이 상점에서 팔리고 있는 사실에 착잡한 표정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색지 한장이 20만엔에 팔린다면 하루 5장씩 그려서 생활해야겠군”이라고 농담한다. 물론 스즈키 프로듀서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96. 7. 6 | <푸른 연>으로 유명한 중국의 영화감독 티엔주앙주앙이 지브리를 방문해 미야자키 감독과 3시간 넘게 인터뷰를 한다…. 다음날 아침, 티엔주앙주앙 감독이 다시 찾아와 스즈키 프로듀서를 비롯한 부문별 주요 스탭들을 인터뷰하고 각각의 작업실을 비디오 카메라로 꼼꼼히 촬영한다. 아침 11시부터 시작된 취재는 미야자키 감독을 마지막으로, 밤 10시에 끝난다. 그의 집념과 끈기에 모두가 놀란다. 역시 중국 정부와 10년 넘게 싸워온 인물답다. 96. 7. 23 | 스즈키 프로듀서와 함께 디즈니와의 제휴 발표회에 다녀온 미야자키 감독이 “1500컷으로 생각하여 지금의 속도라면 원화는 언제 완성하나?”라고 묻는다. 예정했던 1380컷보다 120컷이 늘어났으니, 빨리 해도 한달, 현재의 속도라면 두달 가깝게 스케줄이 연장될 것이다. 원래 컷 수라 해도 원화가 10월 말에 완성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런 식이라면 1월 말까지는 걸릴 것이다. 원화 멤버를 늘리는 방안을 강구해야만 한다. 96. 8. 6 | 러시 체크가 있다. 리테이크가 다수. 96. 9. 4 | 미야자키 감독이 다음 관동대지진(50년마다 관동지역에 큰 지진이 일어났는데, 50년이 지나도록 아직 지진이 일어나지 않아 다들 큰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을 대비한 재해 훈련을 겸하여 이모니카이(감자, 고구마를 삶아먹는 파티)를 연다고 말한다. 재해 훈련과 이모니카이를 위해 미야자키 감독은 이런 지령을 내린 바 있다. “재해시 즉시 회사로 달려올 수 있는 독신 사원 10명 정도를 추려내게.” 그의 지령에 따라 회사로부터 반경 2km 내에 사는 직원 몇명을 선발하지만 재선발이 불가피하다. 미야자키 감독이 “5km 정도라면 충분히 걸어올 수 있지 않나”라는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96. 10. 3 | 지브리 내의 동화 멤버들에게, 지금이 얼마나 심각한 위기의 상황인지를 자각하도록 한다. 96. 10. 9 | 근래 3주 동안 동화 체크 분량이 평균 1300장 정도로 저조하다. 주당 1천장만이 다음 작업을 위해 보내지곤 한다. 조금씩 동화 인력을 늘리고는 있지만 동화의 내용이 후반으로 가면서 어려워지고 있어 눈에 보이는 진전은 없다. 96. 12. 12 | 아침 11시 반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온다. 원화부의 Y씨가 출근길에 사고를 당했다. 오토바이로 출근하던 중 전신주에 부딪혀 공중을 20m 정도 날았다고 한다. 검사결과 상당한 중상임이 밝혀진다. 허리의 뼈, 골반, 등뼈의 골절에다 내장 출혈도 있다. 사흘 안에 피가 멈추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말을 듣는다. 처음엔 부상 수준이 골절 정도라고 들은 미야자키 감독은 “원화를 어떡하나”며 화를 내다가 나중에 중상이라는 보고를 접하고는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몇 시간 뒤. 일단 위기는 넘겼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미야자키 감독을 포함한 사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96. 12. 23 | 미야자키 감독이 원화의 남은 분량을 체크, 상세한 할당표를 만든 모양이다. 원화 멤버를 (1) 작업량이 많이 남아 있는 신참 (2) 작업량이 많이 남아 있는 베테랑 (3) 좀더 추가할 수 있는 스탭의 세 그룹으로 나눠 최종 스케줄을 통보한다. 불가능한 스케줄을 세워 스탭을 혼란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날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각자 노력하도록 부탁하는 것이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