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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감독 원화평(袁和平)을 만나다 [3]

홍콩 현지에서 만난 원화평 인터뷰 “<매트릭스>는 할리우드 액션의 새로운 고전이 되었다” <매트릭스> 모자를 쓰고 들어선 원화평은 자그마한 사람이었다. 몸집 작은 동양인들 사이에 있어도 쉽게 묻힐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매트릭스> <와호장룡>으로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태풍을 일으킨 무술감독이었다. 워쇼스키 형제가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상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직접 선택했다는 원화평. 그는 영화사 스탭들과 에이전트가 둘러싸고 있는 화려한 사무실에서도 한여름 골목길에 바람이나 쐬러 나온 것처럼 편안하게 처신했다. 수십년을 쿵후와 영화로 살아온 그는 대인(大人)이라고 부를 만한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매트릭스> 시리즈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가.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가 내 영화들을 보고 의견을 냈다. 그들은 다른 할리우드 감독들과 달리 액션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매트릭스>는 내가 할리우드에서 만든 첫 번째 영화였지만, 워쇼스키 형제 덕분에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매트릭스>는 스토리보드와 완성된 영화장면이 대부분 일치한다. 스토리보드가 거의 없는 홍콩과는 작업방식이 많이 달랐을 것 같다. 워쇼스키 형제는 원하는 것이 분명해서, 그들이 말로 설명하면 내가 동작을 만들어 보여주고 다시 토론하는 식이었다. 그들이 마음에 들어하면 그대로 촬영에 들어갔다. 즉흥적인 홍콩과는 달랐지만 워쇼스키 형제는 홍콩 스타일과 비슷하게 일을 했다. 할리우드에선 보통 여러 대의 카메라로 액션장면을 촬영한다. 하지만 워쇼스키 형제는 가장 적절한 앵글을 선택해서 홍콩 감독들처럼 카메라 한대로 찍곤 했다. 서극을 비롯한 몇몇 홍콩 영화인들은 할리우드 스탭들이 쿵후를 제대로 찍을 줄 모른다고 불평한 적이 있다. 카메라가 배우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신도 그렇게 느낀 적이 있었나. 나는 서극과는 다르다. 촬영하기 전에 철저한 훈련을 거치기 때문에 촬영하면서 어려움을 겪진 않는다. 물론 의견충돌은 있을 수 있다. 만일 좋지 않은 앵글로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들에게 내 생각을 말했고, 그들은 내 의견을 수용하고 검토했다. <매트릭스>에 출연한 배우들은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홍콩에선 배우들을 훈련시킬 필요가 별로 없었을 텐데, 어떻게 작업했는가. 홍콩 배우들은 전문적으로 무술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기본기는 되어 있다. 배우가 직접 하기에 지나치게 어렵거나 위험하면 스턴트맨을 쓰면 된다. 하지만 워쇼스키 형제와 키아누 리브스는 스턴트맨을 쓰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략 석달 동안, 아침 아홉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 기본동작을 가르쳤다. <와호장룡>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나는 촬영 전엔 기본기를 다지도록 하고, 촬영에 들어가서야 구체적인 액션동작을 가르친다. 그편이 경제적이다. 배우들도 힘이 덜 들고 다칠 위험이 적어진다. 당신이 홍콩에서 만든 영화들은 와이어나 특수효과보다 배우들의 신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반면 <와호장룡>은 유장한 와이어 액션이 눈길을 끌었고, <매트릭스>도 와이어와 특수효과가 대거 동원됐다. 당신 스스로 이런 변화를 택했는가. 내가 <취권>을 찍었던 1970년대와는 관객도 영화도 많이 달라졌다. <취권> 시절엔 배우들이 직접 맞붙어 싸웠고, 관객은 그런 걸 좋아했다. 다른 시도를 하고 싶어도 기술이 따라주지 않았다. 지금 관객은 기대치가 높아졌다. 기술도 발전했다. <매트릭스> 1편에는 키아누 리브스가 공중에서 3단차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장면은 훨씬 힘이 있고 액션을 두드러지게 만들어주지만, 예전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는 1편보다도 와이어와 특수효과를 많이 사용했다. <매트릭스2>에서 가장 좋았던 액션장면은. <매트릭스>의 액션장면은 다 좋아한다. 내가 만들었으니까. (웃음) 키아누 리브스가 비를 맞으며 결투를 벌이는 장면을 가장 내세우고 싶다. 홍콩 액션영화는 역사가 깊다. 하지만 1970년대 이소룡이 인기를 얻었던 이후 한동안 잊혀졌다가 최근에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홍콩영화가 보여주는 액션은 사실적이다. 주먹과 발차기가 직접 오가는 빠른 동작은 할리우드에선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매트릭스> 탓이 크다. <매트릭스>가 나온 이후 할리우드영화들은 이 영화를 흉내내기 시작했고, 그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당신은 <취권> <철마류> 등을 직접 감독했다. 무술영화이긴 하지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의 일일 것 같다. 당신은 어떻게 영화 만드는 일을 배웠는가. 내 아버지 원소전은 홍콩 무술감독들에겐 선구자와도 같은 분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스턴트맨으로 일했고, 자연스럽게 무술감독과 감독이 됐다. 사실 쿵후를 한다는 것과 쿵후 동작을 영화에 도입한다는 것은 매우 다른 일이다. 내가 배운 무술은 정해진 틀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항상 달라져야 하고, 많은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쿵후를 배웠지만, 그들이 모두 훌륭한 무술감독이 되진 못한다. 당신이 최고의 무술감독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매트릭스>는 기법이나 동작, 개념에 뉴테크닉을 도입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내 경우도 비슷하다. 쿵후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머리를 써서 쿵후가 신선하게 보이도록 한다.글 김현정·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2003 충무로 파워 50 - [5] 41위~50위

41. 봉준호 | 감독/NEW “파워 500이 아닌가요? 아니면 집계 착오던가.” 파워 50에 들었다는 말을 전해들은 봉준호 감독의 첫 반응은 의외란 것이었다. 이제 2번째 영화를 만들었고, 그나마 아직 흥행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시점인데도 그에게 표가 쏠린 것은 분명 <살인의 추억>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웰메이드 영화이면서도 흥행성을 갖춘 이 영화의 성공 여부가 향후 한국영화의 진로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 틀림없기에, 그와 이해관계가 거의 없는 충무로 관계자들도 흔쾌히 그를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 지나온 1년 | 2년8개월 동안 준비해서 두 번째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틈틈이 세 번째 영화 준비를 했다. ★ 앞으로 1년 | 세 번째 영화를 준비한다. 개봉과 함께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다. 밝고 통쾌한 영화를 찍고 싶다. 장르? ‘SF의 탈을 쓴 리얼리즘영화’라고 하겠다. 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빨리 잡혔으면 좋겠다. 42. 전지현 | 배우 지난 한해 특별한 활동을 벌이지 않았고 신작 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는데도 전지현의 순위가 한 단계 상승한 것은 그녀의 잠재력에 대한 충무로의 믿음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충무로 제작자들이 그녀를 ‘여자배우 캐스팅 1순위’로 꼽는 것도 단지 <엽기적인 그녀>의 흥행 때문만은 아니리라. 여기엔 “한국영화를 통해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본인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톱스타로 성장해달라는 바람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 지나온 1년 | 영화일은 <엽기적인 그녀> 해외 프로모션 정도였다. 은 연이라는 캐릭터가 신비롭고, 스스로에 갇혀 있는 느낌을 떨쳐줄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다. ★ 앞으로 1년 | 일단 을 잘 개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곤 영화를 하고 싶을 뿐 특별히 바라는 게 없다. 43. 이효승 | 필름지 대표/NEW 2000년에 필름지를 만들어 <자카르타>를 제작했고, 이어 윤제균 감독과 손잡고 <두사부일체> <색즉시공>을 내놨다. 3타석 연속홈런을 쳤고 태흥영화사 전무로도 일하고 있으니(그는 이태원 사장의 아들이기도 하다) 첫 진입이 무색해 보이진 않는데, 본인은 “단순하게 1년에 한편 만드는 사람인데 의아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윤 감독과는 서로 배신하지 않는 한 계속 작품을 같이 만들기로 약속한 터여서 올해에는 <낭만자객>에 참여한다. ‘1년에 1편’ 원칙은 당분간 계속 지켜나갈 계획. ★ 지나온 1년 | 운이 좋았다. <색즉시공>의 성공은 전적으로 윤제균 감독과 임창정씨의 몫이었다. ★ 앞으로 1년 | 외화수입을 시작했다. 올 10월 멕 라이언이 처음으로 옷을 벗는 에로틱스릴러 <인 더 컷>을 개봉하는데, 그에 앞서 부산국제영화제에 멕 라이언과 제인 캠피온 감독이 오기로 했다. 44. 장동건 | 배우 장동건에 대한 업계의 선호도는 최근 몇년 사이 부쩍 높아졌다. <친구>로 꽃미남이나 청춘스타가 아닌 ‘배우’임을 인증받았고,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는가 싶을 때 기존의 반의반에도 못 미치는 개런티로 <해안선>에 출연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해안선>에의 도전이 결과적으로 큰 호응을 얻지 못한 탓에 지난해 27위에서 다소 하락했지만, 영화제작에 대한 공동의 책임 의식, 작품에 따라 개런티를 조정하는 융통성, 연기 폭을 넓히려는 부단한 노력 등으로 여전히 따뜻한 호감을 사고 있다. ★ 지나온 1년 | 평소 좋아했지만, 왠지 맞지 않을 것 같았던 김기덕 감독과 <해안선>을 함께했다. ★ 앞으로 1년 | 내년 설 개봉 목표인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에 전념할 예정. 45. 김형준 | 한맥영화 대표·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NEW <동감> 이후 한동안 암중모색하다 지난해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상황에 처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천년호> <실미도> 등 품고 있던 3개 프로젝트를 동시에 꾸리게 된 것. 첫선을 보인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지만 제작자로서 바쁜 1년은 그를 순위권에 진입시켜놓았다. 최근 제협 회장을 맡게 된 것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종윤, 이승재, 김미희 등 젊은 제작자들을 중심으로 운영위원회를 구성, 한국영화 부율 조정, 합리적 제작비 산출 등 현안에 개입, 한동안 침체상태에 빠졌던 제협을 되살린다는 복안을 세워놓았다. 삼촌인 김찬두씨로부터 현진영화사를 물려받아 수입·배급업으로 영화일을 시작해온 그는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어서인지 추진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 ★ 지나온 1년 | <천년호> 찍으면서 한국과 중국을 수도 없이 오가느라 후딱 지나갔다. ★ 앞으로 1년 | <천년호> 추석에 개봉하고, <실미도> 촬영을 진행하고, 거기다 <양주갑> 등의 프로젝트를 굴릴 것이다. 46. 석동준 | CJ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팀 팀장/NEW “13년 사회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석동준 팀장은 지난해 CJ 투자·배급작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던 순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그러나 묘하게도 그렇게 어려웠던 지난해를 보낸 결과, 그는 올해 처음 50위 안에 진입했다. 90년 제일제당에 입사해 95년 제이콤에 파견근무를 하면서 영화 일을 시작한 그는 98년부터 CJ의 한국영화 제작, 투자 담당자로 일했다. 그는 이 일의 매력 중 하나로 승부가 명확히 갈린다는 점을 꼽는다. <복수는 나의 것>이 저조한 성적을 거뒀을 때와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대박 신호를 보냈을 때의 차이가 그것이다. ★ 지나온 1년 | 지난해 성적은 13전10패2무1승. 최근 제일제당 건물 외부에 제작사무실을 얻자 일부에서 CJ에서 독립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으나 이는 CJ가 자체 프로덕션을 운영하기 위해 마련한 사무실일 뿐이라고. 1주일에 2번은 이곳으로 출근한다. ★ 앞으로 1년 | 씨를 많이 뿌려놨기에 올 하반기부터는 결실을 거둬들일 것으로 기대한다. 자체 프로덕션으로 만드는 <위대한 유산>, 윤제균 감독의 <낭만자객>, 정흥순 감독의 <조폭 마누라2> 등 상업성 높은 프로젝트가 대기 중이다. 47. 심광현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현 정부의 문화정책을 입안하고 있는 핵심 브레인 중 한명. “문화행정의 틀을 새로이 짜기 위해” 민·관 합동으로 꾸려진 문화행정혁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설정했던 문화정책들을 보완하고 구체화하는 것”이 그의 몫. 지난해 선거를 앞두고 문화개혁시민연대, 영화인회의 등의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새 정부의 문화정책 100대 과제 선정 등의 작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해온 그는 몇 안 되는 ‘실천력 왕성한 문화이론가’로 손꼽힌다. 각종 시민단체들의 정책 개발에 머리를 빌려주고 있는 상황에서도 현재 영상원에서 영상연구방법론, 영상매체론 등의 강의를 해야 하느라 하루하루 시간을 쪼개서 쓰고 있다고. ★ 지나온 1년 | 영상문화운동의 일환으로 미디어센터 건립과 활성화 방안 마련에 주력했다. ★ 앞으로 1년 | 영화운동을 문화영역, 사회영역으로 넓혀나가기 위한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 그간 미뤄뒀던 영상문화 교육의 특수성과 관련한 책도 펴낼 계획. 48. 이병헌 | 배우/NEW SBS 드라마 <올인>의 여진이 여전히 그를 감싸고 있다. 그의 첫 진입은 아무래도 <중독> 때문이라기보다 <올인>의 인기 덕택이 아닐까. 또 드림웍스는 여름에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신밧드>의 주인공 목소리(미국에선 브래드 피트가 맡았다)에 그를 섭외하려고 한다. 마침 그는 할리우드 에이전트와 모종의 협의를 진행해왔다. 어찌됐든 올해 중 한국영화부터 찍을 요량으로 작품을 고르고 있다. 흥행성보다는 작품성이 우선 순위라고. ★ 지나온 1년 | <중독>의 레이서에 이어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드라마 찍느라 계속 달리고 또 달리면서. ★ 앞으로 1년 | 일단 5월 한달을 쉬면서 찬찬히…. 49. 곽경택 | 감독 <친구>의 성공신화에 이어 2002년 최대의 흥행기대작으로 관심을 끌었던 <챔피언>의 성적이 저조했다. 이후 <친구>로 맺어진 배우 유오성과의 불화가 법적 공방으로까지 이어져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여러모로 시련이 많았던 시기를 뚫고 올해 초 정우성 주연의 <똥개>가 크랭크인했고 현재 촬영 중이다. ★ 지나온 1년 | 배신당하고, 헐뜯기면서 사람이 만신창이가 되돠었다. 그런 와중에도 작품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친구> 때 기뻐해줬던 많은 사람들을 걱정하게 하고 슬프게 만들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많이 입었다. ★ 앞으로 1년 | <똥개>가 성공해야 진인사필름이 산다. 회사의 존폐가 달린 영화다보니 비장하게 찍고 있다. 6월 초에 <똥개> 촬영이 끝나면 8월쯤 개봉하고 마무리 짓고 나면 중간에 쉴틈없이 다음 작품을 준비할 거다. 작품 욕심은 여전히 넘쳐난다.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태풍>이라는 바다 이야기가 다음 작품이 될 것 같다. 지난 한해 상처입은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한해가 될 것이다. 50. 김기덕 | 영화감독 지난해 <나쁜 남자>의 성공과 <해안선>의 실패가 선명한 대조를 이뤘던 김기덕 감독은 관객이나 평론가가 뒤쫓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영화를 찍는다. 지난해 5월 촬영에 들어간 9번째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벌써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얼마간 변신할 것으로 보인다. 물 위에 떠 있는 절을 배경으로 동자승의 성장을 계절에 비유해 그리는 이 영화는 전작들처럼 충격적인 영화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기덕의 영상언어로 풀어낸 해탈과 윤회의 의미가 궁금한 작품. 그가 지난해에 이어 다시 순위에 들어간 것은 무엇보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창작의욕 때문인 걸로 보인다. 완벽주의와는 다른 의미에서 치열함이 돋보인다. ★ 지나온 1년 | 장동건을 캐스팅하면서 화제가 됐던 <해안선>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봄 여름…>은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을 기대했으나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은 걸로 확인됐다. ★ 앞으로 1년 | <봄 여름…> 개봉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김기덕 감독의 다음 영화는 벌써 윤곽을 드러냈다. 홍콩의 한 영화사가 기획해 미이케 다카시, 가스파 노에와 함께 옴니버스영화를 찍기로 한 것. 그는 이 영화를 파리에서 찍을 계획이다. 윤제균·봉준호 스포트라이트 감독들 주가변동 전업 감독이거나 감독을 겸하고 있는 인사 가운데 파워50에 든 사람은 10명으로 지난해와 같은 숫자다. 지난해 44위의 ‘감독’ 이창동이 올해에는 ‘장관’ 이창동으로 역할을 바꿔 3위에 올랐고, 강우석은 <실미도>라는 대작을 예고함으로써 감독으로서의 영향력을 늘렸으나 더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다. 강제규 역시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연출가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9위에서 6위로 상승한 동력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9위에서 15위로 올라선 김상진은 <광복절특사>라는 흥행작을 내놓은 것 외에도 시네마서비스의 제작을 총괄하게 된다는 사실이 감안된 듯. 순수 감독 중에서는 임권택 감독이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칸의 효력이 흡수된 지난해의 14위에 비해 올해에는 20위로 다소간의 조정이 있었다. 곽경택은 8위에서 49위로 순위 하락이 가장 두드러진 감독인데 <챔피언>의 결과를 감안하더라도 낙폭이 다소 크다. <나쁜 남자>로 일약 흥행감독 대열에 합류했던 김기덕도 <해안선> 이후 28위에서 50위로 물러났다.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은 감독을 32위에서 36위로 약간 물러앉히는 방향으로 영향력을 끼쳤다. 홍상수, 이정향이 순위권에서 빠지고 윤제균, 봉준호가 각각 28위와 41위를 기록하면서 새로 등장했다. <두사부일체>에 이어 <색즉시공>으로 연타석 흥행을 기록한 윤제균은 섹스코미디라는 지류를 만들어낸 점 외에도 효과적인 제작관리와 기획감각이 주목받은 케이스. <살인의 추억>이 극장가에서 결과를 드러내기 전임에도 봉준호가 순위에 등장한 것은 연출력과 대중적 감각에 대한 신뢰의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2003 충무로 파워 50 - [4] 31위~40위

31. 김혜준 |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 영진위의 안살림을 책임지게 되면서 순위가 껑충 뛰어올랐다. “박사 학위를 줘야 한다”는 한 추천인의 재미난 언급처럼, 그동안 한국영화 진흥책 마련에 있어 ‘싱크 탱크’ 역할을 담당했다. 2000년부터 영진위 정책연구실장으로 일하다 올해 초 사무국장에 임명된 그는 “영진위와 영화계의 거리감을 좁히겠다”는 목표 아래 “발로 뛰는 사무국을 만들겠다”며 체질개선 작업 중이다. “1기 때는 위원 구성 등의 내홍으로 사업 심의나 집행에 있어 디테일한 부분들을 놓치고 간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 그는 “위원회가 어느 정도 안정성을 갖춘 만큼 여기에 위원들과 사무국이 보조를 맞춘다면 이를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 지나온 1년 | 선택을 할 권한이 없어서 답답했는데, 이제는 현실적인 안을 도출하기 위해 때론 타협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스트레스가 쌓인다. ★ 앞으로 1년 | 영화 좀 극장에서 많이 봤으면 좋겠다. 32. 이은 | 감독, 명필름 이사 이은 감독에게 지난 1년은 명필름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원년이다. 영화진흥위원의 임기를 마치고 본업으로 돌아온 그는 명필름의 제작 전반을 총괄하며 내실을 다져왔다. 심재명 대표가 대외적으로 회사의 ‘얼굴’로 활약하는 동안, 그는 살림살이를 챙기고 가계부를 꼼꼼히 적고 있다. 순위가 하락한 것도 <후아유>나 등이 부진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빛나지 않는’ 일을 자청한 탓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익성 제고를 위한 그의 노력은 충무로의 큰 고민을 해결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 ★ 지나온 1년 | 회사 내부 조직을 조금 더 효율화하고 영화를 잘 만드는 회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아리랑>을 포함해서 그 다음 영화도 기획했다. ★ 앞으로 1년 | <아리랑> <노근리 다리> 등 준비 중인 영화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 제작자로서 흥행에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33. 이태원 | 태흥영화 대표 이태원 태흥영화 대표는 지난해 유난히 웃을 일이 많았다. 공적인 차원에선 ‘평생 영화동지’인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과 함께 칸영화제에서 영광을 안았고, 사적인 차원에선 장남 이효승 필름지 대표와 차남 이지승 프로듀서가 합작한 <색즉시공>이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그의 올해는 새로운 웃음을 거둬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한해가 될 전망이다. 임권택 감독과 송능한 감독의 새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그의 입가에 벌써 웃음이 머무는 것은 시네마서비스가 두 작품 모두에 투자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 지나온 1년 |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과 <취화선>을 만들어 개봉했고, 상도 받았다. ★ 앞으로 1년 | 임 감독, 송 감독의 새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두편 모두 올해 중반 안에 시작할 예정이다. 수익을 좀 올리는 것 또한 올해의 목표다. 34. 염태순 | 유니코리아 문예투자 대표 최성민 부사장은 그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 워낙 많은 사업체를 두루 경영하기 때문인데, 따라서 유니코리아의 실질적 운영은 최 부사장의 손에 맡겨져 있다. 영화계의 자금 흐름이 위축됐다고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좋은 기회! 지난해까지는 많아야 한두편을 투자·제작했는데 올해부터는 서너편 정도로 넓힐 만큼 안정적으로 재생산구조를 다져놓고 있다.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내년 3월 중순까지 무조건 프랑스 투자사쪽에 프린트를 넘겨줘야 한다. 또 이 영화에 대한 일본 와의 투자협의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 지나온 1년 | 지난 4년 동안의 누적 적자가 20억원 정도인데, <오아시스>와 <생활의 발견>을 내놓은 지난해만 따지면 손해는 없었다. ★ 앞으로 1년 | 7월 <싱글즈> 개봉, 연말 <위대한 선수>(가제) 개봉 등 우리가 작가영화만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창동 감독이나 홍상수 감독하고는 계속 파트너십을 유지한다. 35. 명계남 | 배우, 남도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연극 <늙은 도둑 이야기>가 4월27일로 드디어 막을 내렸다. 연장공연, 지방공연을 하자고 덤벼들었다지만 이제 정말로 영화일을 해야겠다며 사양했다. 사회참여적 활동이야 그에겐 일상이 된 지 오래고, 전남 광양, 순천, 여수 등 3개 시가 설립하는 남도영상위원회의 운영위원장으로 바쁜 한해를 보내게 생겼다. ★ 지나온 1년 | 죄송한 얘기지만 영화쪽에서 구체적으로 한 일이 없어 부끄럽다.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진짜 미안하다. 그리고 이창동을 뺏겼다. ★ 앞으로 1년 | 이창동을 뺏겼으니 다른 감독을 찾아봐야겠다. 프로듀서로 시작을 하려고 하는데 마침 투자상황도 어렵다고 해서…. 일단 방은진 감독으로 시작한다. 내년에는 영화계에서 돈 많은 걸로 35위 했으면 한다. 36. 박찬욱 | 영화감독 <공동경비구역 JSA>의 흥행감독 박찬욱은 지난해 <복수는 나의 것>으로 자신의 목표가 관객 수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지만 그를 신뢰하고 지지하는 영화인은 여전히 많다. 지난해보다 4계단 밀려나긴 했으나 그간 새 작품이 없었음에도 여전히 높은 순위에 랭크된 이유는 완성도 높은 흥행영화에 관한 한 박찬욱 감독이 어떤 기준을 만들었기 때문인 걸로 보인다. 최민식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신작 <올드 보이>는 동명의 일본 만화가 원작인 영화. 멀쩡한 20대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어딘지 모를 건물 한구석 밀실에 갇혀 10년을 살다가 나와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한 자를 찾아나선다는 이야기. ★ 지나온 1년 | <복수는 나의 것> 이후 지난해 여름부터 배우 최민식을 만나 <올드 보이> 준비작업에 들어갔고, 인권영화 프로젝트로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라는 단편영화를 찍었다. ★ 앞으로 1년 | <올드 보이>는 5월12일 크랭크인해 11월에 개봉할 예정.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가 포함된 인권영화 프로젝트 <여섯개의 시선>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에게 처음 공개될 예정. 37. 오지철 | 문화관광부 차관 관료에 대한 영화계의 ‘이물감’은 큰 편. 엘리트 코스를 거쳐, 20년 넘게 ‘녹봉’ 받은 오 차관은 그 점에서 ‘예외’에 속한다. “공무원답지 않은 감성과 소신”으로 영화진흥법 개정, 영화진흥금고 재원 마련 등 DJ 정부 시절 문화행정의 실무를 묵묵히 도맡아온 그에게 보내는 충무로의 신뢰는 두텁다. 지난해 기획관리실장으로 일하면서 잠시 순위에서 모습을 감췄지만, 차관 승진으로 문화정책 조율사 직무를 떠맡으면서 재진입했다. 이창동 감독과 ‘키스톤 콤비’를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는 추천인들이 많았다. ★ 지나온 1년 | 사실 지난 1년 영화쪽에 많은 신경을 쏟지 못했다. 하지만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전산망 사업은 마무리짓지 못한 것이라 항상 마음이 쓰였다. ★ 앞으로 1년 | 우리 영화의 내실있는 발전을 위해 저예산, 독립, 예술영화 진흥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영화계에선 시스템 합리화에 관한 논의가 많은데, 말뿐 아니라 실제로 잘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38. 유인택 | 기획시대 대표 리모델링 3년째다. <방아쇠>를 제외하고 현재 진행 중인 다섯편의 영화가 모두 상업성 짙은 코미디일 만큼 회사의 ‘체질’이 달라졌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이재수의 난>을 만들었던 제작사의 이미지를 털어내는 걸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다. 5월에 결성할 예정인 50억원 규모의 투자조합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구멍가게식 프로덕션이 아니라 벤처형 기업으로 변신하는 계획에 마침표를 찍는다고 보고 있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 와 <일단 뛰어!>는 무난한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하고 있다. ★ 지나온 1년 | 주주나 투자자에게 실적을 못 내서 굉장히 부담스러웠고, 영화계가 위기를 맞은 듯해서 걱정이 많은 한해였다. ★ 앞으로 1년 | 고비를 넘기고 경쟁력 있는 영화들이 줄줄이 제작될 거라서 좋은 성과를 기대한다. 39. 차승원 | 배우/NEW 지난 한해, <광복절특사> <라이터를 켜라>의 흥행 성공에 이어 올해 <선생 김봉두>까지 차승원은 막힘없는 한해를 보냈다.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지난해까지에 비해, 40위권 내로 도약한 올해의 순위는 배우로서의 차승원의 입지가 어느 정도 상승했는지를 입증한다. 남들은 농담삼아 “번갯불에 콩 구워 먹었다”, “코미디 또 하냐” 하는 식이었지만, 나름대로의 “선택과 계획”이 결실을 맺은 셈이다. 차승원은 여전히 “장르 콤플렉스에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은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보며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만약 마음에 드는 코미디가 눈에 띄면 주저없이 출연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 지나온 1년 | 남들이 생각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아니라, 주관적인 기준을 따랐던 것이 성공요인이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 1년 | 더 신중을 기할 것이다. 신중을 기한다는 것은 몸을 사리지 않겠다는 걸 의미한다. 흥행에 상관없이 “말 되는 영화”에 출연할 것이다. 40. 이춘연 | 씨네2000 대표·영화인회의 이사장 23계단이나 떨어졌다. <서프라이즈> <중독> 등 제작자로서 의욕을 보였던 작품들이 흥행에서 별 재미를 못 본 것이 순위 하락을 불러왔다. 여기에 정책 관련 인사들이 대거 순위에 진입하면서 표를 나눠 가진 것도 작용한 듯. “남들 안 하는 거 해보려다 실패했다”면서 그는 “지난해 너무 기대가 높았던 것 아니냐”며 웃는다. 얼마 전 촬영에 들어간 <여우계단: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는 그에게 남다른 작품. ‘프로듀서 이춘연’으로 복귀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요즘 그는 촬영현장에서 걸쭉한 입담으로 스탭들과 배우들을 독려하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 지나온 1년 | 관객의 취향과 기호를 잘못 읽었다. ★ 앞으로 1년 | <여고괴담> 시리즈는 할 때마다 재밌다.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거기서 나오는 것이나 때묻지 않은 신인배우들 발굴하는 일이 그렇다. 전에도 그랬지만 잘돼서 나중에 10편까지 가는 장수 시리즈가 됐으면 한다. 이창동, 40여 계단 껑충 정책 파워 지난해 하위권으로 처지거나, 아예 순위권 바깥으로 밀려났던 정책부문 인사들이 일제히 ‘점프’했다. ‘간섭 대신 지원’이라는 큰 틀 아래 ‘산업과 문화의 공존’이라는 정책 패러다임은 DJ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새 정부 출범과 발맞춰 세부정책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났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44위에 랭크됐던 이창동 감독이 무려 40여 계단을 뛰어오르며 3위에 랭크된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사건’. 어떤 이는 추천 촌평에 “주요 정책들을 결정하는 문화부 장관”이라고 썼지만, 문화부 장관이 보통 차지하는 순위가 20위권이었음을 감안하면, 이 장관이 영화인회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등의 단체에서 정책위원장직을 도맡으며 각종 제언들을 내놓은 경험이 플러스α로 작용한 듯하다. 오랜 경험으로 꼼꼼한 일처리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아온 오지철 차관 또한 37위로 순위에 재진입했다. 공식 직책은 없지만 한국영화 정책에 꾸준한 대안을 제시해온 문성근씨와 명계남씨도 각각 18위와 35위에 포진했다. 각종 내홍에 휘말리며 심지어 지난해에는 순위 바깥으로 추락했던 전 위원장과 달리 영화진흥위원회 이충직 위원장은 26위에 이름을 올리며, 2기 위원회의 수장으로서 지난 1년 동안의 활동에 합격점을 받았다. 김혜준 영진위 신임 사무국장이 31위로 상승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영진위 정책연구실장으로 일할 때는 스크린쿼터감시단, 한국영화연구소 등 ‘재야’ 때보다 공식 발언의 기회가 적어 순위가 비교적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사무국 책임자로 올라서면서 순위가 상승했다.

2003 충무로 파워 50 - [2] 11위~20위

11. 김동호 |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스케줄표는 갈수록 빡빡해지고 있다.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자리를 잡은 부산영화제가 위상을 드높이면서 그의 발걸음도 분주해지는 것이다. 지난해 15개 영화제를 순회했고 올해도 1년 중 절반 가까이를 한반도 밖에서 지내야 할 형편이다. 특히 올해는 칸영화제 기간 중 미국 영화산업지 <버라이어티>가 주최하는 국제회의 ‘페스티벌 디렉터스’에 베를린, 선댄스영화제 집행위원장 등과 함께 참석하게 된다. 해마다 관심이 높아지는 부산영화제의 이모저모를 꾸리고 세계 곳곳의 영화제의 초청을 받아 해외를 누비는 것만이 그의 일은 아니다. 김동호 위원장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칸영화제 등을 돌면서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등 ‘외교사절’ 역할까지 자임하고 있다. ★ 지나온 1년 | 7회 부산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특히 칸, 베를린,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처음으로 모두 모였다는 점이 인상에 남는다. ★ 앞으로 1년 | 8회 행사를 꾸려야 한다. 올해는 홍콩 배우들이 많이 참석할 전망이다. 10회 영화제를 대비해 전용관 건설도 본격적으로 착수해야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영화제나 여러 국제회의 등 새로운 행사들도 쫓아다녀야 할 것 같다. 12. 설경구 | 배우 지난해 23위로 첫 진입하고 올해 12위로 불쑥 올라올 만큼 배우로서 ‘괄목한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정작 본인은 “숫자 갖고 장난치지 마시라”며 뼈있는 한마디를 건넸다. 지난해 <오아시스>로 또 한번 처절하리만큼 캐릭터에 몰입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찬사를 받은 그이지만 지금은 <실미도>로 긴장해 있다. 아니 불만과 반항기로 차 있다고 해야 할까. 버림받은 북파 공작원의 한서린 기운을 벌써부터 몸에 채워넣고 있기에. 고립된 듯한 섬에서 60명이 넘는 연기자들과 동고동락하며 호흡을 맞추는 것도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급격히 늘렸다 뺏다 하는 자기 살에 대한 조련 솜씨가 자꾸 화제의 대상이 되는 것에 손사래를 친다. ★ 지나온 1년 | <오사이스>와 함께! ★ 앞으로 1년 | <실미도>와 함께. 그 다음? 아직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다. 13. 정태원 | 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NEW 사석에서 ‘파워50’에 들지 못한 서운함을 피력했던 일화가 강우석 감독의 칼럼을 통해 알려지는 난처한 경험을 했던 정태원 대표가 올해 드디어 13위라는 높은 순위로 첫 진입했다. 지난 한해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사의 대표인 만큼, 정태원 사장의 이번 상위 진입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조폭코미디에 ‘가족애’를 접합시킨 <가문의 영광>은 전국 520만명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고,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도 블록버스터다운 거대한 관객몰이에 성공한 바 있다. 이에 더해 정태원 사장은 매니지먼트 서비스를 설립, 운영하기로 하면서, 영화제작과 외화 수입은 물론 매니지먼트 사업까지 지휘하는 등 활동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 지나온 1년 | <가문의 영광>을 제작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소림축구>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 등 수입 작품도 많은 관객이 들었다. 영화를 제작하고 수입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영화와 외화가 두루 흥행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한해였다. ★ 앞으로 1년 | 영화제작에 더 힘을 쏟을 생각이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나비> 이외에도, 연쇄살인사건을 그린 스릴러 <페이스>, 캐릭터코미디 <건망증 여왕>, 김영준 감독의 무협물 <무영검>, 그리고 <가문의 영광2>를 차례대로 제작할 예정이다. <반지의 제왕3> <킬 빌> 등 외화들도 올해 안에 개봉한다. 14. 김동주 | 쇼이스트 대표 김동주 대표는 지난해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코리아픽처스 대표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 <친구>를 투자·배급한 그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들이 흥행에서 줄줄이 실패하면서 스스로 코리아픽처스를 나오는 상황에 도달했다. 한동안 잠적했던 그는 올해 3월 새로운 투자, 배급사 쇼이스트를 설립, 곽경택, 박찬욱, 허진호, 박기형 등 지명도 높은 감독들과 함께 일하게 됐다. 전처럼 든든한 펀드 하나 없이 시작한 투자사가 이런 감독들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경험과 태도에 대한 신뢰가 컸을 것이다. ★ 지나온 1년 | “직원들이 내 가족인데 다시는 직원들과 헤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게 지난 1년에 대한 소감. 올해 3월에 쇼이스트를 설립한 뒤 투자자를 확보하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크랭크인 날짜를 잡아놓고도 투자자를 설득하러 다니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작품마다 투자재원을 확보, 한숨을 돌린 상황. ★ 앞으로 1년 | <똥개>는 50% 이상 촬영이 진행됐고 <아카시아>는 4월25일, <올드 보이>는 5월12일 첫 촬영에 들어간다. 6월 이후에 외화 배급작도 확정할 예정. 15. 김상진 | 감독, 시네마서비스 제작본부장 <광복절특사>로 3연타석 흥행기록을 작성하고, 시네마서비스의 ‘수석코치’ 자리를 꿰차면서 순위가 대폭 상승했다. ‘인 하우스’ 프로덕션 시스템을 다시 가동키로 한, 시네마서비스가 앞으로 제작할 작품의 전체 공정을 관리하는 것이 그의 현재 임무. 한때 제작사 ‘감독의 집’을 차렸지만, “경영에는 영 젬병이었던” 그는 ‘큰 집’으로 복귀한 다음 <불어라 봄바람> <메모리> 등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밑그림을 짜는 데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 내부자는 “오버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나친 의욕을 보이고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틈틈이 현장으로 뛰어들 준비도 하고 있다. 이미 차기 연출작은 점찍어놓은 상황. ★ 지나온 1년 | <광복절특사>로 1등 해보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 앞으로 1년 |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새로 쓰기 전까지 감독은 계속할 거다. 16. 김미희 | 좋은영화 대표 “통장에 한푼도 없어.” <선생 김봉두> 개봉을 앞두고 김미희 대표는 사석에서 “위기에 처했다”고 여러 번 털어놨다. 그게 정말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피도 눈물도 없이> <밀애> 등의 흥행성적이 신통치 않게 되면서 차기작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승부욕 강하고, 순발력 뛰어난’ 흥행사라는 타이틀도 다소 상처를 입은 탓에 지난해보다 8계단 순위가 하락했다. 하지만 <선생 김봉두>에 관객이 모아준 엄청난 ‘촌지’ 덕에 빠른 속도로 명성을 회복하는 중이다. 촬영에 들어간 류승완 감독의 액션 <아라한-장풍 대작전>과 김영호 감독의 사극 스릴러 <혈의 누> 준비에 공을 들이고 있다. ★ 지나온 1년 | 돈을 잃었지만, 사람을 얻었다. ★ 앞으로 1년 | 대중영화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17. 정훈탁 | 싸이더스 HQ 대표 무려 열아홉 계단이나 상승한 싸이더스HQ의 수장 정훈탁 대표의 진정한 파워는 톱스타 수십명의 존재가 아니라, 영화를 산업으로 이해하고 이 속에서 자신과 배우들의 가치를 극대화하려 노력한다는 데 있다. 다양한 방식의 공동제작이나 자사 배우에 맞춘 시나리오 공모는 그런 시도들이다. 일부에선 ‘배우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키운다’고 비난받는 그이지만, 그렇다고 충무로의 ‘상생’을 크게 저해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제작이라는 야심을 현실화할 올해는 그의 역량이 본격적으로 심판대에 오르는 시점이 될 것이다. ★ 지나온 1년 | 영화산업 속에서 매니지먼트의 위상에 관해 많이 배웠다. 산업 속에서 어떻게 융화되고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를 익히는 과정에서 혼도 많이 나고 궤도도 수정했다. ★ 앞으로 1년 | 이젠 배우라는 원석만을 파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여러 방식으로 제작에 기여하는 등, 산업 안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작정이다. 시장의 흐름을 깨지 않고 배우와 제작쪽이 공생할 수 있는 부분을 머리 맞대고 고민할 때다.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로부터의 독립작업도 마무리짓고, 한국영화의 시장을 넓힐 수 있는 범아시아 프로젝트도 성사시킬 계획이다. 18. 문성근 | 배우 “알고보면 늘 이 사람 얘기가 맞다”는 한 추천인의 촌평처럼, 영화계의 설득력 있는 오피니언 리더. 영화계 직책 다 버리고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뛰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0위권 내에 랭크됐다. 그의 파워가 “정치권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형성된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귀찮다, 힘들다”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천성과 원칙에 따라 끊임없이 행동반경을 넓혀가는 모습을 이유로 드는 이들이 다수다. 얼마 전 개봉한 <질투는 나의 힘>에선 이중적인 성격의 인물 한윤식을 능글맞게 소화해 “배우 문성근”이라는 새삼스런 사실을 일깨우기도 했다. 한 방송사의 교양 프로그램 진행 여부는 조만간 결정될 듯하다고. ★ 지나온 1년 | ‘노무현 지지’는 정치하겠다는 게 아니라 유권자로서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한 거다. <질투는 나의 힘> 보고 요즘 영화 재밌게 봤다고 이야기해주는 분들 때문에 힘을 얻는다. 와이드 릴리즈보다는 좀더 작은 규모로 길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 앞으로 1년 | 작품이야 아무거나 덥석 한다고 할 순 없고 좋은 걸 만나야지. 사실, 뭘 ‘당장 해야지’ 하는 욕심이나 조급함은 별로 없다. 19. 김승범 |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 <집으로…>에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까지, 튜브엔터테인먼트 김승범 대표의 2002년은 극적 반전의 연속이었다. 침몰하는 듯했던 그가 최근 또 하나의 반전을 일궈냈다. 100억원가량의 자본을 확보해 다시금 배급업에 뛰어든 것. 올해 튜브가 배급할 라인업은 최대 10편에 이른다. 비교적 적은 순위 하락은 그의 빠른 회복에 대한 격려와 배급수완에 대한 재신임으로 보인다. 그는 “작품 투자수익보다는 배급 수수료를 주소득원으로 하는 안정적인 체제를 갖추겠다”며 사업구상을 밝힌다. ★ 지나온 1년 | 천국과 지옥을 모두 경험했다. 한마디로 최악의 해였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 앞으로 1년 | 굉장히 큰 경험을 했고 얻은 것도 많다. 지금은 심정적으로 굉장히 좋고 희망적인 상황이다. 일단 6월5일 개봉하는 <튜브>를 시작으로 <툼레이더> <귀여워> <내츄럴시티> <남남북녀> <타임라인> <…ing>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등에다 <스왈로 테일/버터플라이> <뱀파이어 헌터D> 같은 일본영화를 배급할 계획이다. 20. 임권택 | 감독 <취화선>으로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는 등 최고의 한해를 누렸던 임권택 감독은 현재 신작을 준비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칸뿐 아니라 다양한 해외영화제로부터 초청받았고, 국내의 각계에서 주는 다종다양한 상을 받느라 가쁜숨을 몰아쉬었던 임 감독은 올해 초부터 새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1960년대, 사나이들의 이야기’ 정도 외엔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신작을 위해 그는 헌팅과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가 어떤 이야기를 어떤 형식으로 담아낼지 조바심내며 궁금해하는 것은 비단 한국 영화계만이 아닐 것이다. ★ 지나온 1년 |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것이 가장 큰일이었다. 해외영화제 등으로 다니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 앞으로 1년 | 올해 초부터 새 영화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내용에 관해선 아직 말할 수 있는 게 없지만, 그동안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이며 전국 곳곳을 다니며 헌팅을 했고, 시나리오도 동시에 작업 중이다. 올해 중반에는 크랭크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송강호·설경구 수직상승 배우들의 부침 한국 영화산업에서 차지하는 배우들의 영향력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타들의 영화가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탓인지 50위 안에 든 배우의 숫자는 지난해 9명에서 5명으로 줄었지만, 송강호가 톱10에 진입하는 등 스타들의 실질적인 파워는 지난해와 엇비슷했다. 지난해 19위에서 10위로 상승한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연기력과 흥행성을 재입증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공공의 적> 이후 <오아시스> <광복절특사>에 출연하며 품이 큰 배우로 위치를 굳힌 설경구는 지난해 23위로 처음 순위에 든 데 이어 올해는 12위로 수직상승했다. 여기엔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에 대한 기대감 또한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가장 놀라운 배우는 42위의 전지현이다. 지난 한해 출연작이 없었으며 신작 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그녀의 순위가 1계단 오른 것은 충무로 제작자들의 ‘짝사랑’이 반영된 탓으로 보인다.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으로 연기의 장을 넓혔고,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에 출연 중인 장동건(44위)이나 최근 TV드라마 <올인>으로 흥행력을 과시하며 처음 순위에 진입한 이병헌(48위)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배우들의 파워는 매니지먼트업체 싸이더스HQ의 정훈탁 대표가 지난해보다 19계단 오른 17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나 정영범 스타제이 대표가 50위권 가까이에 근접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한편, 파워50 조사를 처음 시작한 1997년 이래 한번도 빠진 적이 없던 한석규와 안성기는 처음으로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03 충무로 파워 50 - [1] 1위~10위

01. 강우석 | 시네마서비스 회장 올해 또 1등이라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건 곳은 지중해 연안의 작은 섬인 말타공화국이었다. <실미도>에 나오는 수중침투장면을 찍기 위한 특수효과 스튜디오가 있는 곳. 소감을 묻자 강우석 감독은 준비된 듯 차분히 말하면서도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솔직히 기분좋다. 지난 한해도 열심히 살았구나 싶고 이거 유지하려면 올해는 또 뭘 벌여야 되나, 걱정도 된다. 어쨌든 현재로선 <실미도>가 가장 중요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이고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이다. 늦어도 내년 설엔 심판을 받을 텐데…. 한번도 이런 적 없었는데 수중침투장면 하나 찍으려고 말타공화국까지 왔을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실미도> 연출에 집중할 한해지만 그는 시네마서비스가 펼칠 사업에 대한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는다. “6월에 스튜디오가 완공되고 하반기에 극장체인도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올해는 투자한 영화 가운데 대작이 많다. <실미도>뿐 아니라 <아라한- 장풍대작전> <황산벌> <천년호>, 임권택 감독의 신작 등. 투자자들이 많이 위축된 상황이지만 대작을 제작해 영화계 전체가 활성화되도록 하고 싶다. 영화계에서 시네마서비스가 필요한 집단이라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 지나온 1년 | <공공의 적> <가문의 영광> <광복절특사>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 등이 흥행하면서 지난해 시네마서비스는 배급사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8월엔 극장체인 프리머스 시네마가 공식출범했다. 하반기부터는 <실미도> 시나리오와 헌팅 작업으로 바빴다. 최근 <실미도>의 투자자를 미국 콜럼비아트라이스타에서 시네마서비스로 바꾸었다. 제작비 규모는 마케팅비 포함 약 100억원. ★ 앞으로 1년 | 3월1일 크랭크인한 <실미도>는 4월30일 실미도에서 위령제를 지낸 뒤 실미도 세트에서 6월 말까지 2달간 촬영할 예정. 7월 이후 수중촬영 분량을 찍는데 이 부분은 말타의 수중촬영 전문 세트장에서 찍을 계획이다. 이르면 내년 설에 개봉할 예정. 02. 이강복 | CJ엔터테인먼트 대표 지난 1년에 대해 이강복 대표는 “비즈니스를 잘 못했던 해”라고 딱 잘라 말한다. “영화의 컨셉을 잘못 잡았던 것 같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되는 걸 보면서 영화를 예술과 문화라는 측면에서 접근했고 여유있게 다양한 작품을 했는데 비즈니스가 안 되면 모든 게 어려워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이런 진단을 내리는 것은 지난해 CJ가 투자, 배급한 영화 가운데 흥행작이 거의 없었던 반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예스터데이> 등이 참담한 관객동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올해 초 CJS연합이 성사될 것처럼 보였던 이유도 CJ의 흥행성적이 저조했던 탓이 크다. 그러나 회사 전체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기엔 멀티플렉스 체인인 CGV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워낙 크다. 어쨌든 그는 지난해 여러 가지 교훈을 얻은 듯 CJ가 좀더 상업적인 영화에 눈길을 돌릴 것이라고 말한다. “관객 취향이 오락성 위주로 바뀌고 있는데 그걸 너무 늦게 감지한 것 아닌가 싶다. 일단 생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강복 대표에 대한 그룹 내 신임이 떨어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CJ계열 케이블방송사를 관리하는 CJ미디어 대표를 겸임하게 됐다.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는 판단 아래 한 사람이 관리하는 시스템이 됐다. 당장 큰 변화가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단계적으로 꾸준히 시장을 키울 생각이다.” “CJS연합은 공멸의 위기감에 기반해 선두기업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시작한 것인데 결국 무산됐지만 경쟁보다 공생을 모색하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이말은 아래 중복 ★ 지나온 1년 | 도 기대만큼 흥행하지 못한 탓에 의기소침했던 CJ 분위기가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성공과 더불어 반전됐다. 2003년 1/4분기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2.2% 증가했고 당기순이익은 26.5억원이 증가했다. “CJS연합은 공멸의 위기감에 기반해 선두기업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시작한 것인데 결국 무산됐지만 경쟁보다 공생을 모색하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라는 게 이강복 대표의 입장. ★ 앞으로 1년 | 곧 개봉하는 <살인의 추억>부터 기대작이 많다. 제작쪽은 1년에 1∼2편은 인하우스 시스템으로 만들 예정. 명필름, 싸이더스 등 규모 큰 제작사에 의존하는 시스템에서 탈피해 다양한 제작사와 개별 작품을 갖고 투자결정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는 중이다. 03. 이창동 | 문화관광부 장관 ‘감독에서 장관으로’라는 직함의 변경만으로 그의 ‘아찔한’ 행로를 설명하긴 부족해 보인다.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고 흥행에서도 성공을 이룬 ‘절정의 순간’에서 야당으로부터 일시적이나마 해임 요구를 받는 처지로 급변했다. 어쨌든 영화계는 그를 지난해 44위에서 3위로 급부상시키면서 파워50의 하이라이트로 만들어놓았다. 가장 위기감을 느낀 순간을 물었더니 장관이 아닌 감독스런 답을 내놨다. “내 말을 하지 않고 만들어진 자료를 읽을 때가 많다. 그 자료라는 게 매끈하게 다듬어진 행정 용어들이다. 불쑥 내 스스로가 만들어진 말을 한다, 듣기 좋은 말을 한다는 느낌을 갖곤 한다. 바로 그런 순간들이다.” ★ 지나온 1년 | <오아시스> 찍느라 정신없었고 그러다가 어쩌다보니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됐다. 전에 살던 것과 너무 극단적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어 정신이 없다. 일종의 분열상태라고 할까. 그렇다고 정신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 앞으로 1년 |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공익근무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것. 일단 내가 나임을 변치 않아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이쪽에서의 생활은 말하자면 밀도가 있다고 할까, 관성이라고 해야 할까…, 종종 위기감을 느낀다. 나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04. 차승재 | 싸이더스 대표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에게 지난 1년은 암중모색의 시기였다. 2001년 야심작 <무사> <봄날은 간다> <화산고>가 기대 이하의 반응을 얻은 이후 최근까지 싸이더스의 영화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자신이 주도한 종합엔터테인먼트 업체의 꿈 또한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며, 안정적 자금원과의 파트너십을 맺는 데도 실패하는 등 그의 기력은 다소 쇠락하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차 대표의 순위가 지난해에 비해 한 단계밖에 밀리지 않은 것(그것도 ‘이창동 변수’로)은 최근작 <지구를 지켜라!>와 <살인의 추억>이 오랜만에 싸이더스 특유의 힘을 보여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끊임없이 한국영화 수준을 높이는 작품들”(김동주 쇼이스트 대표)을 만들어왔고, 만들어갈 것이기에 충무로는 “그의 성공여부가 한국 영화산업 콘텐츠의 건강성을 재는 척도”(연합뉴스 이희용)라 판단하는 것이다. ★ 지나온 1년 | <디 엣지>란 영화에서던가, “숲속에서 길을 잃은 곰은 죽는다. 수치심 때문에…”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게 나의 1년이었던 것 같다. 나 스스로가 뭔가 확 쓸고 지나간 듯한 허허벌판에서 길 잃고 서 있는 곰 한 마리 같다. 뱅뱅 돌아도 제자리인 것 같고, 내가 타야 할 차는 떠나버린 것 같다. 도무지 어찌 할 바를 찾지 못한 한해였다. ★ 앞으로 1년 | 어찌할 바를 찾으려는 1년인 것 같다. 솔직히 지금의 개인적 고민은 내 인생에서 영화란 무엇이냐, 다. ‘내게 영화가 돈벌이 수단인가, 아니면 진정 하고 싶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영화로 보면 <싱글즈>와 <말죽거리 잔혹사>를 비롯해 <범죄의 재구성> <천군> <조선의 주먹> <역도산> 등이 올해 안에 제작에 돌입할 것이다. 05. 심재명 | 명필름 대표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춘 ‘웰 메이드 필름’의 산실이었던 명필름은 지난해 흥행기대작이었던 이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으로 막을 내리고 나서 많은 고민에 빠졌다. 이제 명필름은 어디로 가야 하나. 이 고민은 비단 명필름뿐 아니라 영화계 전반의 고민거리였을 듯. 그러나 최근 제작을 마친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을 필두로 하는 명필름의 라인업은 ‘부분적 수정은 있을 지라도 완전한 방향선회는 없음’을 보여준다. 올해는 <후아유>를 함께했던 최호, 의 김현석, <바람난 가족>의 임상수,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아리랑>을 준비 중인 정지영 감독 등이 ‘5인의 감독과 5인의 프로듀서’라는 이름 아래 내실있는 신작들을 준비하는 한해가 될 것이다. ★ 지나온 1년 | 바빴던 만큼 실효를 못 거둬서 굉장히 힘들었던 한해였다. 2001년 부터 준비되어왔던 많은 프로젝트들을 발전시켜 공격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몇몇 자회사를 만들었다. 3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투자를 1편 하면서 어떤 해보다 바쁘게 지냈는데 결과적으로 작품의 흥행이 안 좋아서 힘들었고 아쉬었던 한해였다. ★ 앞으로 1년 | 지난해의 실패를 거울삼아 더욱 시장에 대한 민감한 자세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산업적으로나 작품적 성취면에서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최호 감독 <노근리 다리>나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 중 하나가 올해 중 크랭크인할 예정이고 <아리랑>은 내년 2월에 중국으로 떠날 목표를 잡고 있다. 06. 강제규 | 영화감독 감독 강제규를 보고 싶다.” 드디어 ‘메가폰’을 잡은 것이, 반등(反騰)으로 이어졌다. 충무로는 제작자 아닌 감독으로서, 그가 ‘월척’을 낚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신작 <태극기 휘날리며>는 현재 전체 분량 중 30%를 차지하는 겨울장면 촬영을 모두 마쳤다. 2월부터서 경주, 대관령 등지를 돌며 40회 이상의 ‘살인적인’ 일정을 묵묵히 이겨낸 결과. 정작 본인은 “기상 조건이 별로여서 애먹었다”며 “열흘 정도 지연됐다”고 말한다. 대신 스탭과 배우들 모두 피난, 폭격 등 큼지막한 군중장면을 한 차례씩 맛본 상태라 긴장으로 얼어붙어 있던 현장도 슬슬 생기가 엿보인다고. “몸을 줄이고 촬영 들어갔는데도 벌써 7kg이나 빠졌다. 마누라가 샤워하는 걸 보고 미스코리아 나가라고 그러더라.” 그의 농담에는 한 고비 넘긴 ‘여유’가 배어 있다. ★ 지나온 1년 | <오버 더 레인보우> <블루> <몽정기> 등을 투자·제작했다. 감독은 4년 만인데, 처음엔 필드에서 직접 지휘하고 바삐 움직이고 그러는 게 힘들더라. ★ 앞으로 1년 | 4당5락. 촬영 끝날 때까진 고3 수험생이나 다름없다.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태극기…>에 매달려야 한다. 제작비 137억원 중 부족한 30억원 정도를 추가펀딩 받는 일도 남아 있다. 강제규 필름으로선 편수보다는 완성도에 초점을 맞출 계획. 모든 걸 다 하겠다기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을 밀고 나가겠다. 07. 김정상 | 플레너스 대표 이십세기 폭스 지사장으로 있다 강우석 감독의 권유로 시네마서비스에 합류한 김정상 사장은 최근 플레너스 대표를 겸하게 됐다. 시네마서비스를 기업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결과다. 영입되자마자 시네마서비스의 안방살림을 맡았던 그는 시네마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영화마다 제작비를 확보하는 것만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 종합엔터테인먼트회사의 꿈을 키웠다. “플레너스와 관계를 맺음으로 인해 시네마서비스를 재정적으로 안정화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는 “이제 플레너스 대표로서 여러 가지 사업을 정치적으로 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난해 제작비 규모가 큰 영화가 여러 편 실패하면서 위축된 분위기가 좀 있다. 하지만 시네마서비스는 업계를 이끄는 기업으로서 오히려 제작투자를 늘릴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 지나온 1년 | 시네마서비스의 오랜 숙원이던 매출액 1천억원 시대를 열었다. 2001년에 비해 30% 이상 성장한 결과. 프리머스시네마를 통해 극장사업에 본격진출한 것도 의미있는 사건. ★ 앞으로 1년 | 파주에 건립 중인 스튜디오를 6월경 정식 오픈하며 프리머스 시네마는 올해 말까지 10군데 정도 극장부지를 확보할 계획. 게임, 음악 등 다른 사업을 확장하는 일도 새로 떠맡은 중책이다. 08. 김우택 | 쇼박스, 메가박스 씨네플렉스 상무 투자 위축시점에 새로운 전주(錢主) 쇼박스의 등장을 영화인들이 반기지 않을 리 없다. 이번 순위는 그런 기대감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우택 상무는 메가박스 씨네플렉스의 성공적인 안착에 기여한 뒤, 지난해 투자배급사 쇼박스를 진수하는 데 앞장선 인물. 담철곤, 이화경 대표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오리온 그룹의 극장·배급업 부문을 관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중독>을 시작으로 <색즉시공> <이중간첩> 등을 배급했으며, 얼마 전 <태극기 휘날리며> <바람의 파이터> 등에 투자를 결정했다. 하반기에 <오! 브라더스> <빙우> 등으로 시장공략에 나설 계획. “투자에 있어 지나치게 따진다”는 평가도 없지 않지만, 그는 “무리한 승부보다는 착실한 내실을 다지고 싶다”고 말한다. ★ 지나온 1년 | 극장사업은 메가라인이라는 브랜드로 중소도시를 공략하는 데 힘을 쏟았다. 쇼박스의 경우, 시장진입에 성공했다고 본다. ★ 앞으로 1년 | 물량을 늘려서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싶지는 않다. 1등보다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 올 한해 200억원 정도의 펀드를 새로 결성할 예정이다. 09. 박동호 | CJ CGV 대표 멀티플렉스 체인의 선두주자 CGV가 극장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박동호 대표의 순위도 점점 올라가고 있다. 제일제당 그룹 내부의 평가도 좋아 지난해 12월 승진, 예외적으로 일찍 부사장이 됐다. “극장업을 산업으로 인정하지 않던 분위기에서 시작해 명실상부한 산업으로 정착시킨 점, CGV가 각종 고객 만족도에서 1위를 차지한 점” 등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 지나온 1년 | 올해 2월 수원점이 오픈하면서 전국 100개 스크린을 확보했고 지난해 연말 누적관객 4700만명을 돌파했다. 50%에 달하던 빌리지로드쇼의 지분을 애초 가치의 10배 가까운 금액에 매각했으며, 지난해 1400억원 매출에 약 300억원의 순익을 냈다. ★ 앞으로 1년 | 5월 말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10개관 멀티플렉스를 열고 8월엔 경기도 부천 현대백화점에 8개관을 개관할 예정. 올해 안에 경기도 수원 남문에도 8개관을 오픈, 예정대로면 올해 전국 126개 스크린을 확보한다. 올해 관객 목표는 2400만명. 영상관련 콘텐츠를 한데 모아 판매, 대여하는 신규사업도 준비 중이다. 10. 송강호 | 배우 연극배우로 시작해 <초록물고기> <넘버3> 등의 조연, <반칙왕>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등을 통해 명실공히 대한민국 대표배우로 떠오른 송강호. 좋은 시나리오를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과 다양한 장르의 과감한 선택으로 지난 한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그는 올해 <살인의 추억>에서 유연하고 힘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그 입지를 굳혔다. ★ 지나온 1년 | <…JSA> 끝나고 1년7, 8개월 만에 <복수는 나의 것>이 지난해 이맘때 개봉했다. 후반에 이 개봉했고 지난주 <살인의 추억>이 개봉했으니까 지난 한 해 참 바쁘게 뛰었던 셈이다. 그렇게 지난해는 다양한 느낌의 영화에 출연했고, 한 여름과 한 겨울을 촬영장에서 정신없이 보냈다. ★ 앞으로 1년 | 불투명하다. 내년 2월에 <아리랑> 촬영이 들어가는 걸로 예정되어 있지만 워낙 대작인데다가 변수가 많이 생길 수 있는 프로젝트라서 오는 6월 시나리오 완성본이 나오면 많은 것들이 확실해질 것 같다. <아리랑> 들어가기 전 올해 한 작품을 더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 할 만한 작품이 없는 것 같고, <아리랑> 준비를 위해선 중국어를 배워야 하고, 체중감량도 해야 하니까 그리 여유롭지만은 않을 듯. 투자·배급사 판도변화 극장체인·투자사 급부상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양대 메이저 체제가 굳건한 가운데 누가 제3의 메이저로 떠오를 것인가? 투자,배급 관계자 순위에서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쇼박스 김우택 상무의 순위가 급상승한 점이다. 극장체인과 투자여력을 함께 갖춘 회사라는 점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롯데시네마 김광섭 대표가 22위라는 높은 순위로 신규 진입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는 올 초 CJS연합이 제기되면서 극장체인과 투자여력을 함께 갖춘 회사에 시선이 집중된 것과 관련있다.수익율이 떨어지자 지체없이 철수하는 금융자본의 모습을 보면서 대안이 될 만한 자본은 극장체인을 가진 쪽에서 나오리라 판단한 셈이다. 하지만 정작 쇼박스와 롯데시네마의 행보는 조심스럽다.올해 두 회사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내년 순위는 크게 바뀔 수 있을 듯하다.지난해 비교적 높은 순위에 올랐던 코리아픽쳐스와 아이픽처스의 조용한 퇴장이 시사하는 것이 그것이다.두 회사 모두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는 보이고 있으나 지난해 연말 이후 투자결정이 이뤄진 영화가 없는 탓에 영화계의 중심에서 멀어졌다.반면 코리아픽쳐스를 그만두고 쇼이스트를 설립한 김동주 대표는 14위에 올라 여전히 주목할 만한 인물로 평가받았고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승범, KM컬쳐 대표 박무승,아이엠픽처스 대표 최완,청어람 대표 최용배 등 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투자,배급사 대표들도 건재함을 과시했다. 지금까지 상황으로 보면 조만간 제3의 메이저가 탄생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영화계에 유입됐던 자본 가운데 상당 부분이 올해 상황을 관망하는 가운데 메이저가 되는 꿈을 꾸기에 앞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각오해야 할 상황.또한 CJS연합이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 합종연횡을 위한 물밑 움직임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설경구 · 류승범 · 양동근,배우로 산다는 것 [1]

적어도, 남자배우들의 다양성과 퀄리티에 있어서 2003년 충무로는 세계 어느 나라 영화판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안성기, 문성근 같은 배우가 뿌리에서 든든하게 자리잡은 위로, 설경구, 송강호, 최민식, 한석규, 유오성 등이 단단하게 허리춤을 잇고 있고, 그 위로 신하균, 류승범, 양동근, 차태현, 조승우, 박해일 같은 배우들이 하루 볕이 무섭게 쑥쑥 푸른 빛을 틔워낸다. 이들은 작가와 비주류, 장르영화를 유연하게 오고갈 뿐 아니라, 장르 안에서도 코미디와 액션, 멜로를 가리지 않고 특유의 독특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충무로에 유독 남자배우들을 위한 시나리오가 넘쳐나는 것 역시 이들의 존재가 빚어낸 결과물일 것이다. 하여 <씨네21>은 창간 8주년을 맞아 이 ‘행복한 충무로’의 바로미터가 될 세명의 남자배우들을 불러모았다. 설경구, 류승범, 양동근. 한 사람은 연극으로, 한 사람은 영화로, 또 한 사람은 TV드라마를 통해 연기를 시작한 이들은 흔히 정석이라 일컬어졌던 메소드 연기론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은 채 모든 배역들을 자신만의 거름망을 통해 새롭게 해석하고 자연인 설경구, 양동근, 류승범을 경유해 누구도 복제할수 없는 창조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다. <실미도> 촬영을 앞두고 또다시 10kg을 감량한 핼쑥한 모습으로 나타난 설경구,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촬영이 한창인 류승범, <와일드카드>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양동근. <씨네21>의 여덟 번째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서울에서 꼬박 2시간이 걸리는 강화까지 기꺼이 달려와준 이들은, 상상했던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강화의 갯벌과 기막힌 조화를 이루어냈다. 무슨 동네 아저씨들 개 잡으러 나온 것도 아닐진데, 약속장소인 동막해수욕장 매점앞으로 당도하는 이들의 차림새는 가관이었다. 맨 먼저 도착한 설경구가 ‘추리닝’ 차림으로 어슬렁어슬렁 나타나 매점 앞 파라솔 의자에 턱 하고 앉아 담배를 한대 피워물고 있으려니, 두 번째로 도착한 류승범이 아니나 다를까 <품행제로> ‘중필이’ 패션으로 나타나 선배님 앞으로 잽싸게 달려온다. 앞선 스케줄이 늦는 바람에 제일 나중에 도착한 양동근 역시 커다란 추리닝 반바지를 펄럭펄럭거리며 “아! 저 멋진 사람들 옆에 서기가 너무 부끄러워!”라는 특유의 감탄사를 남발하며 수줍게 비비적거리며 걸어온다. 가까이서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멀리서 스윽 바라본다면, 영락없이 ‘강화 청년회 비정기모임’쯤으로 보일 이들의 만남은, 봄비가 여름장마처럼 쏟아졌던 이상한 4월, 쨍하게 햇빛이 쏟아졌던 하루, 바로 그날 이루어졌다. 2시간 남짓의 인터뷰, 혹은 방담 속에 누구 하나 그럴싸한 말로 연기론을 부르짖지 않았지만, 이들 모두에겐 슬쩍 넘기는 이야기 속에 배우로서의 오랜 고민이, 결코 만만치 않은 까탈스러움이 드러났다. 변신은 무슨 개뿔 류승범 | 저는 모든 영화에서 똑같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요. 하지만 나는 걱정 안 해요. 나는 변신한다는 말 되게 우습게 생각하거든요. 설경구: 가장 무책임한 기사가 ‘변신의 천재’, 뭐, 이런 거예요. 변신은 무슨 개뿔, 다 자기지. 배우들은 변신 못해요. 살 빼면 변신인가? 류승범 | 얼마 전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인터뷰에서 “내가 어떤 캐릭터로 가는 게 아니고 그저 나란 인물에서 불필요한 부분만 제거하는 거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게 맞는 말 같아요. 양동근 | 그건 어떤 역할을 연기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역할이 있고 수많은 연기를 다 그런 방식으로 할 수는 없을 거 아니에요. 그게 맞을 수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는 거죠. 다 통합해서 말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연기라는 게 결국엔 그 감성을 표현하는 거 잖아요. 여러 사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저를 집어넣어야 할 때도 있고 뺄 때도 있는 거죠. 그 모든 상황과 경우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뭔가가 주어지면 그것에 맞게 바꿀 수 있어야 배우죠. 설경구 | 결국 가장 편한 모습에 맞게 연기가 떨어지는 거죠. 석규 형도, 민식이 형도 강호도 그렇고 자기 영화재료가 다 다르고, 살아온 게 다 다른데 어떻게 같은 연기가 나올 수 있겠어. 감독이란 사람이 나를 극한 상황까지 몰고가면 나도 모르는 변태 같은 모습이 나올 수도 있는 거고. 그것도 결국 내 속에 있는 거죠. 양동근 | 사람들이 답 내리는 걸 좋아하고, 비교하는 것 좋아하고, 깔아뭉개는 것 좋아하고 그러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답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듯이! 연기도 답이 없는 거죠. 설경구 | 사실, 인터뷰하면서 연기 이야기 안 하고 싶어요. 보고, 그냥 느끼고, 알아서 판단하면 되는 건데. 인터뷰를 하다보면 자꾸 분석을 시켜. 다 찍고나서 분석을 시키는 거야. 내가 볼 때 얘들, 아무도 연기분석 안 하거든. (웃음)

[씨네 Review] <메이>

■ Story 어려서 약시로 인해 ‘해적 안대’를 하고 다녔던 메이(안젤라 베티스)는 성년이 되도록 친구를 사귀어보지 못한 고독한 영혼이다. 마침내 그녀는 아담(제레미 시스토)이란 남자 친구를 갖는 듯하지만 메이의 ‘괴상한’ 면을 발견한 아담은 그녀를 멀리하게 된다. 낙심한 메이는 결국 자기만의 ‘잔혹한’ 방식으로 최고의 친구를 만들 계획에 착수한다. ■ Review 피를 철철 흘리는 한쪽 눈을 부여잡고 울고 있는 주인공 메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의 도입부 장면은, 앞으로 무언가 피로 얼룩진 참혹한 사건이 일어날 테니 우리에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이야기하는 일종의 예고와 같다. 그러나 영화는 90여분의 러닝타임 가운데 2/3 정도가 지나도록 가끔씩 슬쩍슬쩍 피 한 방울씩을 떨어뜨리기는 하지만 첫 장면에서 보았던 것 같은 굉장한 출혈은 보여주지 않는다. 어쩌면 고어 마니아들을 실망시킬 수도 있는 이런 식의 전개는 이 영화가 난도질만을 일삼는 호러영화는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후반부 1/3에서 일어나는 피의 축제에 이르기 전까지 <메이>가 꽤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어느 외로운 영혼의 절절한 외침이다. 어려서부터 친구없이 고독 속에서 살아왔던 메이는 이제 엄마가 만들어준 인형말고 그녀 인생에서 처음으로 진짜 친구를 가질 것 같다. 평소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던 아담이라는 건장한 청년과 가까워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폴리도 그녀와 ‘특별한 관계’를 원하는 듯하다. 그러나 메이의 바람과 달리 둘 가운데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메이만의 베스트 프렌드로 남으려 하는 사람은 없다. 바로 이때까지 영화는 마치 <캐리>의 여주인공과 자매지간인 듯한 메이의 희망과 절망을, 화면에 감정이 실린다고 해도 좋을 만큼 꼼꼼히 관찰한다. 그리고 메이가 결국 “친구가 없으면 만들면 되잖니” 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영화는 잔혹하면서도 슬픈 유혈극으로 궤도를 바꾼다. 비유하자면, <캐리>와 <프랑켄슈타인>을 결합한 호러판 <판타스틱 소녀백서>와 같은 영화인 <메이>는 그래서 영화 속에서 주인공 메이를 두고 자주 하는 말처럼 ‘괴상해’(weird) 보일 수도 있다. 영화의 그 괴상한 면 때문에 관객은 뜻밖의 재미를 느낄 수도 있고 아니면 피가 부족하다며 지루함을 털어놓을 수도 있다. 여하튼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다소 기계적이긴 해도 여러 모티브들을 능숙하게 종합한 신인감독 러키 매키의 각본과 순진함과 광기를 함께 가진 주인공을 잘 소화해낸 안젤라 베티스의 연기일 텐데, 2002년 스페인시체스영화제는 그 둘에게 각각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안겨줬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본 <질투는 나의 힘>

마초 남성들에게 한방 모 일간지에 남편과 정기적으로 영화대담을 하는 자리가 있다. ‘한 영화 두 소리’라는 대담 타이틀에 걸맞게 요번에는 똑 소리나는 한국영화에 대해 토론해보자는 모종의 암묵적 합의를 하고, 남편과 나는 <살인의 추억>을 보았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까 대담을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 영화에 대한 우리의 의견은 일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지붕 한 마음 사수대회도 아니고, 부부간에 서로 안 봐주고 칼로 물 베기 하는 걸 보고 싶어하는 독자의 바람을 저버릴 수 없어서, 그뒤 본 것이 <질투는 나의 힘>이었다. 그런데 극장 문을 나오는 남편은 내내 불만 투성이의 얼굴을 하고는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을 연발했다. 분명 낄낄거리며 사이좋게 영화를 보아놓고는, 뭐가 그렇게 이해가 안 간단 말인가? 그런데 남편은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조교 시절 원상의 입장은 무척 많이 경험했지만, 특히 문성근이 연기한 편집장 역의 윤식을 이해할 수 없노라고 했다. 예를 들면 바람을 피운 것을 들킨 장인 앞에서 ‘후회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편집장 윤식의 후회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히 살겠다는 고해성사인가, 지금 바람을 피우지 않으면 앞으로도 못 피울 거 같다는 미꾸라지 그물 빠지기식의 변명이었는가, 그도저도 아니면 그저 장인 말은 못 들은 척하고 앞으로도 주욱 여자나 꼬시며 살겠다는 자기 기만이었는가. 또 술에 취해 성연을 사장 앞에서 끌어안고 난리 블루스를 추는데, 윤식의 성격으로 보아 그건 박찬옥 감독의 오버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윤식이란 이름에서 ‘돌려먹는다’는 뉘앙스가 풍긴다는 둥, 해부학적인 번뜩임을 드러내는 이 사내가, 윤식과 똑같은 중년 남자인데다가 먹물의 삶을 살고 있는 이 사나이가 윤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니. 남편이 갑자기 더 괴기스럽게 느껴진 것은 자신은 주변에서 윤식 같은 남자를 많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조금씩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 이 영화는 보는 사람이 어떤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다 달랐다. 나는 영화에서 관계를 보았고, 남편은 욕망을 보았으며, 모 여기자는 외로움을 보았고, 어린 제자들은 그저 혼돈스러워했다.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다른 사람과 섞이느냐 아니냐에 따라, 혼자 사느냐 일부일처제 안에서 기쓰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들은 한 영화에 대해 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질투는 나의 힘>의 강점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 영화 속의 인물들도 그리고 이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도 ‘일관성의 부재’라는 거대한 아노미의 세상에 서로 부대끼고 출렁거리고 있었다. 아무런 해답도 던져주지 않고 선문답을 툭툭 던지는 것 같은 이 영화의 매력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 다른 모양으로 지각되었던 국제빌딩을 처음 보았을 때의 신기함. 벗기고 또 벗기고 싶지만 신비에 싸여 있는 아련한 사내와 연애했을 때와 비슷한 모호함의 미덕과 악덕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관성의 기대를 버린 필시 아줌마 평론가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편협의 소치일지는 모르겠지만, <질투는 나의 힘>은 분명 이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마초 남성들에게 한방 먹이는 구석이 있는 여성영화이다. 이 영화가 일단 관습적 영화보기의 틀 내에서 이물감을 느끼게 하는 근본 원인 중 하나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종래의 우리가 생각하는 캐릭터의 일관성의 기대를 저버리며 이상한 갈지자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그것을 탈중심화라고 부른다면 홍상수 감독과 구별이 안 되는 지점으로 박찬옥을 몰고가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 단어는 사양하겠다). 그러나 더 가만히 이 영화를 들여다보면 이 영화의 인물들, 특히 남자들의 행보를 붙잡는 결정적인 욕망의 법칙 중 하나는 권력이라는 게임의 술수이다. 즉 원상과 윤식은 그들이 만나는 관계가 남성이냐 여성이냐, 수직적인 관계냐 수평적인 관계냐에 따라 아주 다른 태도를 보인다. 원상은 내일 논문이 마감일이 걸려 있자, 하숙집 딸에게는 왜 그렇게 할 일이 없냐는 퉁명을 떨지만, 편집장이 술집에서 부르자 결국에는 달려나간다. 윤식 역시 성연이 결정적인 대목에서 집에 가고 싶다고 하자 그녀를 순순히 놔주지만, 부하인 원상이 일이 있어서 못 나가겠다고 하자, 택시 값을 주겠다며 자신에게 오라고 강제를 부린다(그러나 막상 원상이 그곳에 갔을 때, 윤식은 자리를 뜨고 없다). 인간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심지어 그들이 물을 대하는 태도와도 아주 흡사해서 아무런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그들의 행동에 묘한 일관성을 부여한다. 윤식은 수돗물은 똥, 오줌으로 모두 오염되어서 생수만 마신다고 하고, 원상은 성연의 집에 가서 수돗물을 마셔야만 하자 냄새를 맡아보고 주전자로 끓여 먹는다. 이 와중에 인간에 대해 혹은 사물에 대해 불편부당하지 않게 대하는 유일한 사람은 사진작가인 성연이다. 한국 영화역사상 가장 매력적이고 여성적인 관점에서 그려진 성연이라는 캐릭터는 자유주의자면서 독립적이고 애정이나 결혼이라는 관계의 금 위에 매여 있지 않다. 그녀는 의사가 곡기를 먹으라고 하자 밥이 아닌 뻥튀기를 사다 먹으며 윤식이나 원상과 달리 목이 마르면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그런 여자이다. 수의사라는 모성적인 작업과 사진이라는 한순간을 잡아내는 예술적인 작업을 같이 할 수 있고, 남을 찍지만 자기도 찍을 수 있는 그런 여자. 머리 안에 금이 별로 없기에 융통성이 있는 그녀의 캐릭터가 가장 매혹을 발휘하는 대목은 윤식이 그녀와의 잠자리에서 왜 키스를 하지 않냐고 물어보자 그에게 그.냥. 키스를 해주는 대목이다(허문영 편집장은 성연이 원상과는 키스하지만 섹스하지 않고, 윤식과는 섹스하지만 키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니다. 그녀는 윤식이 원하자 가볍게 키스해준다). 또한 이 자그마한 순환론적인 먹이사슬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제법 위에 있어 보이는 편집장에게 대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다름 아닌 위계의 가장 밑에 있을 법한 하숙집 딸, 혜옥이었다. 그러나 성연은 외로워한다. 성연의 속내가 가장 절절하게 감지되는 대목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우리 여관 가요. 누가 한 말 반대로 하고 싶어”라고 했던 오뎅 먹는 장면이 아니라, 그뒤 그녀가 택시 안에서 “집에 가고 싶다”고 하는 장면이다. 친한 친구가 자기 아이와 오롯이 같이 잘 때 그 옆에 누워 있는 그녀가 느낄 외로움, 자신이 같이 잔 남자의 아내와 대면했을 때 그녀가 느낄 복잡한 심정들. 박찬옥 감독은 원상과 내경(배종옥이 1인2역을 한) 혹은 원상과 성연이 헤어짐을 반복하는 극적인 순간 제삼자의 시선을 툭툭 개입시키며 그들을 멀리한다. 그러나 막상 성연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 남겨져 있을 때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낸다. 남자들의 심리적 틈을 잔인하게 벌려 나에겐 바로 그것이 보였다. 남편을 비롯한 많은 남성 평자들이 원상과 윤식이 나란히 누워 오이디푸스적인 연대감을 형성하는 것을 즐거워할 때, 그것은 거꾸로 감독의 독설로도 들렸다. 성연이 영화에 떡하니 처음 나와서는 “위와 자궁이 비슷해서 구분이 안 간다”고 말할 때, 내게는 먹는 장소와 섹스하는 장소가 비슷하다고밖에 들리지 않는 이 선언은, 이후 정말 주인공들이 먹고 자고 하는 장면을 쉬지도 않고 보여주다 마침내 두부조림을 나눠 먹는 두 사내로 마무리되는 식이다. 윤식의 딸의 시선으로 처리된 이 관계는 결코 이 둘이 서로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과 외부자의 시선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남성 평자들이 ‘친밀감의 공모’로 본 이들 사내들의 관계는 뒤집어보면 ‘어떻게 다시 한번 사내들은 가부장제의 그물을 짜느냐’에 관한 비판으로도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곤 떠올랐던 것은 화면에는 없지만 자유주의자라서 그저 괜찮아 보이는 성연의 남겨진 모습과 원상이 남겨준 전세금을 바라보며 울음을 터뜨리는 혜옥의 모습이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나는 박찬옥이란 여성감독이 원상의 편에서 남성들을 마냥 너그럽게 관찰하는 그런 감독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스타일이 참으로 매혹적인 까닭은 그녀의 영화적 어법이 깊게 숨겨져 인간을 따뜻하게 참아주다가도 어느 순간 무척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 사이의 틈을 벌려놓는다는 것이다. 혜옥과 정사를 벌일 때 원상과 그녀의 정사를 잡아내는 카메라의 냉랭함이라니. 그것은 근친상간적 느낌을 풍기기보다, 성연과 혜옥, 각기 다른 여자를 따먹는 남자들의 각기 다른 자세와 심리적 거리감을 카메라는 정확히 접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빈 술집에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 걸어 결국 딴 여자와 하룻밤을 보낼 때 장인은 죽고, 뒤늦게 ‘그냥 다소곳이 듣고 있을걸’이라면서 후회하는 윤식이 보이는 바보스러움. 더 나아가 어쩌면 심장이 약한 장인의 죽음이 단 한번 스쳐지나가는 듯 마주친 성연과의 만남 때문일 수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잠재하고 있는 부조리한 인생의 틈들 말이다. 박찬옥의 영화의 핵심은 홍상수처럼 중심에서 도망가거나 미니멀하게 영화를 미적하는 것이 아니라 쌓고 또 쌓는 중층의 묘미, 적분의 마법에 있다고 본다. 영화 형식의 측면에서 그녀는 정말 끝까지 가야 속을 내주는 브람스 음악과 비슷하고 또 잔인한 유머 감각의 측면에선 우디 앨런을 닮았다. 박찬옥이 창조한 신경망 같은 인간관계의 그물에서는 한 사람의 삶이 전혀 얼굴도 보지 못한 다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그들 모두는 인간적인 원형과 각자의 특질을 함께 가지는 복합체로 구성되어 있다. 촬영할 때 뜨개질을 한다는 박찬옥 감독의 버릇처럼, 그녀는 인간관계의 그물망을 중층으로 짜는 감독이었던 것이다. 보라. 결국 그녀는 이 잔잔한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일상 가운데 윤식의 입으로 결정타를 날리지 않는가. “싸구려 양주. 자꾸 마시게 돼. 근데 괜찮아.” 우디 앨런이 <애니 홀>에서 “이 집 음식은 맛이 없어. 근데 양도 적어”라는 결정타를 날린 이후, 나는 인생에 대해 이처럼 근사한 은유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제발 박찬옥을 여자 홍상수라 부르지 말라. 그녀는 제1의 박찬옥이며, 앞으로도 쭈욱 그러할 것이므로.

<살인의 추억> 흥행독주

5월5일 지나면 전국 150만 돌파할 듯, <나비>와 <별>은 부진 <살인의 추억>이 5월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지난 4월25일 개봉한 <살인의 추억>은 개봉 주말 이틀간 서울 관객 12만명을 불러모은 데 이어 노동절인 5월1일에도 서울에서 6만2천명을 동원,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5월1일까지 이 영화를 본 관객 수는 서울 34만, 전국 85만명.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5월3일 전국 100만명을 돌파하고, 휴일인 5월5일이 지나면 전국 15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살인의 추억>의 흥행독주는 예매성적을 통해서도 감지된 일이었지만, 배급사인 CJ나 제작사인 싸이더스는 매진행렬이 이어진 개봉일에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개봉주 성적이 얼마나 장기적으로 이어질지 감을 잡기 어려웠기 때문. 특히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4월30일 개봉한 <엑스맨2>. CJ는 올 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1번 타자로 등장한 <엑스맨2>와 맞대결을 피하기 위해 개봉일을 한주 앞당기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엑스맨2>의 파괴력은 <살인의 추억>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가 아니었다. <엑스맨2>는 4월30일과 5월1일 이틀간 서울 7만명, 전국 16만명을 불러모았다. <살인의 추억>이 5월1일 하루 동안 전국 15만3천명을 동원한 것과 비교하면 경쟁상대가 되기에 역부족인 상황. <살인의 추억> 관계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것은 <엑스맨2>를 앞지른 사실에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개봉 첫 주말이 지나면서 관객이 늘어나는 추세다. CJ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살인의 추억> 관객 수는 4월28일 8만1천명, 29일 8만4천명, 30일 9만4천명, 5월1일 15만3천명으로 점점 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이 입소문을 내고 있다는 증거. 실제로 인터넷 영화사이트에 올라온 감상평은 만장일치에 가깝다. 평론가와 관객이 고루 지지하는 영화가 지금처럼 흥행에 성공한 예는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참으로 오랜만이다. 흥행소식에 반가워하는 곳은 다른 어느 곳보다 제작사인 싸이더스다. <지구를 지켜라!>가 전국 6만명을 넘지 못하고 종영하는 바람에 큰 타격을 입었던 싸이더스는 <살인의 추억>으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유령> <무사> 등 심혈을 기울였던 대작이 번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던 제작자 차승재씨가 <살인의 추억>으로 자신의 최고 흥행기록을 갈아치울지도 관심거리. <지구를 지켜라!>와 <살인의 추억>, 두편을 묶어 CJ의 투자를 받은 싸이더스는 <살인의 추억>이 전국 350만명을 넘겨야 이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다. 한편 4월30일 <엑스맨2>와 함께 개봉한 한국영화 <나비>와 <별>은 참담하다. 5월1일 하루 동안 서울에서 <나비>는 1만5천명, <별>은 5천명의 관객을 동원, 박스오피스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극장 관계자들은 <살인의 추억>이 <매트릭스2 리로디드>가 개봉하는 5월23일 이전까지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살인의 추억>이 전국 400만명을 돌파할지 여부는 앞으로 3주간 얼마나 많은 관객이 극장가를 찾는지에 달려 있다.

프랑스는 비싼 영화를 좋아해

4천만달러 호가하는 블록버스터 속속 제작 프랑스에 비싼 영화가 늘어나고 있다. <택시>(사진) 시리즈로 불어닥친 블록버스터 바람은 점점 거세져, 프랑스산 액션블록버스터의 공급과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버라이어티> 최근호는 “프랑스 사람들은 큰 영화 애호가들”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최근 프랑스의 블록버스터 붐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프랑스영화의 제작비 한계선이던 4천만달러를 넘어서는 영화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유로파에서 제작하는 <대니 더 독>은 4300만달러짜리 특급 프로젝트이며, <팡토마>도 비슷한 덩치의 영화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서 제작 진행 중인 2500만달러 이상의 프로젝트는 모두 20편 안팎. 얀 쿠넹의 <블루베리>와 마티외 카소비츠의 <바빌론 베이비스> 등이 포함돼 있다. 프랑스의 유력 프로듀서들이 제작규모를 늘려가고 있는 것은 큰 프로젝트일수록 프랑스 안팎에서 높은 수익을 올린 사례들 때문. 이미 프랜차이즈가 된 <택시> 시리즈, 매표수익 등으로 2천만달러를 벌어들인 <늑대의 후예들>, 칸 마켓에서 프랑스 영화사상 가장 높은 선판매 실적을 올린 <크림슨 리버>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뤽 베송의 유로파, UGC, TF1, 고몽 등이 블록버스터의 창고인 셈. 최근엔 <와사비>처럼 영어 버전으로 제작되는 영화들도 늘어나고 있다. “프랑스산 블록버스터야말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대안”이라는 믿음이 이들 프로듀서들이 갖는 비전이다. 블록버스터 붐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다. 해외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영화는 양적으로 한계가 있으므로,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 작품들은 제작비 대비 수익에서 큰 손실을 보게 된다는 것. 그러나 현재로선 “영화제작이 활발해졌다는 것은 프랑스 영화산업이 건강하다는 증거”라는 긍정론이 우세하다. <블루베리> <크림슨 리버2> <산 안토니오> 등을 선보이게 될 올 칸 마켓이 프랑스산 블록버스터의 미래를 얼마간 가늠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박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