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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영상공작소] 개봉영화만 극장 상영? 나도 할 수 있다

편집과 출력, 잘 마치셨나요? 그럼 이제 영화 제작의 가장 마지막 순서가 남아 있습니다. 편집 다 했는데 뭐가 또 남았냐고요? 바로 관객과 함께하는 ‘상영’입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됐든 불특정한 사람들이 됐든 우리가 ‘영화’라는 틀을 빌려 한 이야기는 결국 누군가와 나누어야만 완성됩니다. ‘우리 가족 영화 만들기’의 회차마다 강조했던 것처럼 상영회 역시 전혀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대한 좋은 화질로 출력을 하고, 극장을 대관하고, 홍보 전단을 만들고 사람들을 초대하면 됩니다!(말만 들으면 엄청 대단한 일 같죠?) 그냥 우리끼리 보려고 만든 건데 굳이 상영관을 대관해서까지 상영회를 할 필요가 있나 반문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물론 집에서 텔레비전나 컴퓨터를 통해 보면서 상영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어떤 매체를 통해 작품을 상영하느냐에 따라 그 작품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빛이 차단되고 다른 소음이 없는 극장은 ‘어쩔 수 없이’ 집중해야만 하는 곳이라 이런 공간에서 상영을 하면 편집할 때도 보이지 않던 장단점을 모두 발견할 수 있어요. 멀티플렉스나 규모가 큰 극장들도 대관을 하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드라마 속 ‘본부장님’이 아닌 이상 적게는 몇 십만원에서 많게는 몇 백만원까지 되는 대관비를 내는 건 쉽지 않겠지요(물론 가능하신 분은 얼마든지 큰 극장을 대관하셔도 됩니다. 많은 관객을 불러 수익을 낼 수 있다면 더 좋겠고요. 하하). 그래도 걱정 마세요. 가족 단위의 상영이나 소규모 상영을 위해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극장’ 상영이 가능한 공간들이 있으니까요. 서울의 경우 ‘오재미동’, ‘아리랑 시네센터’ 등은 회원가입을 하면 상영관을 빌릴 수 있습니다. ‘오재미동’은 30석 규모의 상영관을 세 시간 동안 대여하는 데 6만원의 대여비가 들고요, ‘아리랑 시네센터’는 10석 규모의 상영관을 대여하는 데 시간당 7천원이 듭니다. 미디액트는 전용상영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상영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50여명이 사용할 수 있는 대강의실이나 이보다 약간 규모가 작은 회의실을 빌려 영화 상영을 할 수 있습니다. 서울 이외의 각 지역에서도 영상미디어센터의 상영관을 빌릴 수 있습니다. 지역 미디어센터의 경우 상영관이 70~100석 규모가 되는 큰 곳도 많고, 대여 비용은 3만~10만원입니다. 홍보물 만들기 이번 기회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근방의 미디어센터를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겠네요. 영상 제작 전반에 관한 도움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날짜와 장소가 정해지면 홍보물을 제작해봅시다. 홍보물에는 영화의 제목, 줄거리, 감독 및 주요 출연진, 상영시간 등의 개요와 함께 작품을 대표할 수 있는 이미지를 찾아 넣어봅니다. 대표 이미지를 찾는 것은 우리가 작품을 구상하며 연습했던 캐릭터 구축, 이야기를 한줄로 요약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내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영화’라는 장르를 빌려 ‘이미지’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줄거리를 요약하면서 작품의 이야기가 잘 흘러가고 있는지 점검하고, 이 이야기를 작품 속에 있는 하나의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이죠. 제가 속해 있던 ‘여성영상집단 반이다’에서 제작한 <개청춘>을 예로 들어볼게요. <개청춘>은 ‘그냥 청춘이고 싶지만 이 사회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20대들의 생활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입니다. ‘개 같은 청춘’으로 살고 있지만 세상에 이야기하는 걸 시작으로 진짜 청춘을 열어보고(開) 싶은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개청춘>의 대표 이미지는 좁은 대야 속에서 쉬지 않고 헤엄치고 있는 잠수부 인형의 모습이었습니다. 열심히 움직여도 갇혀 있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는, 손잡을 동료 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뿐인 지금의 ‘개청춘’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 시간 반의 러닝타임의 내용을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이 장면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면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거라 믿었고요. 홍보물을 만드는 것은 관객을 초대하고, 정보를 알려주는 용도이기도 하지만 제작자 스스로가 영화를 정리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해요. 영화의 홍보물이니만큼 이미지가 많은 게 좋습니다. 작품의 대표 이미지와 함께 감독의 얼굴도 넣고, 영화 속의 스틸 몇 장면을 더 추가할 수도 있을 겁니다. 상영 뒤엔 관객과의 대화까지 상영회 당일에는 미리 상영관에 가서 상영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합니다. 홍보물도 상영관 입구에 잘 진열해두고, 장소 안내지도 붙여둡니다. ‘우리 가족 영화’이니만큼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보게 될 테니 간단하게 다과를 준비하는 것도 좋겠죠? 조금 오버해서 ‘감독 입봉’이라는 현수막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후후. 상영을 마치고 쑥스럽지만 관객과의 대화를 꼭 진행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를 마지막에 완성해주는 건 결국 관객입니다. 어떻게 보았는지 질문을 던져보기도 하고, 궁금한 것은 없는지 질문을 받아보기도 하세요. 이 내용을 잘 기록해두면 좋습니다. 내가 제작 과정을 거치면서 생각했던 것과 완성된 작품을 보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게 어떻게 다른지,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던 정보들이 어디에서 빠져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작품을 수정하기에도 좋고, 다음 작품을 만들 때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때로 관객은 연출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조차 더 아름답게 읽어내기도 하고, 당연히 알아주리라 생각했던 것도 외면하는 경우가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서운한 감정이 든다면 뒤풀이에서 풀어내면 되죠! 상영회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 영화 만들기’는 끝이 납니다. 6회차의 ‘영상공작소’에서 다룬 많은 부분이 기억에서 금세 잊히겠지만 일상에서 이야기를 찾아내는 즐거움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가족영화’라고 이름 붙였지만 6회차에 걸쳐 이야기했던 내용은 ‘내가 기억해 두고 싶은 내 삶의 조각을 기록하는 것’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결국 내 삶이라는 건 나를 포함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니까요. 처음부터 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욕심보다는 틈틈이 짧은 에피소드를 기록해두면서 만드는 재미를 몸속 깊이 새겨두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꼭 그 작품이 관객(단 한명이더라도)과 만나서 이야기로서 완성되는 순간도 경험하시길 바라고요.

[타인의 취향] ‘꼴빠’의 탄생

취향은 유전되기도 한다. 지난 일요일 새벽 AC밀란과 나폴리의 이탈리아 세리아 축구를 보다가 어린 시절 기억의 조각들이 떠올랐다. 일요일이면 아버지는 동네 대중목욕탕에 나를 데리고 갔다. 사람 많아 북적거리는 그곳이 싫었지만 목욕을 끝내고 마시는 갈색병의 맥콜은 좋아했다. 한쪽 구석의 높은 곳에 설치된 텔레비전에는 늘 롯데 자이언츠의 야구 중계가 흘러나왔다. 어느 날 아버지는 목욕탕이 아닌 사직구장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집 앞에서 111번 버스를 타고 사직동에 내리면 통닭 냄새가 코를 찌른다. 사직구장에 이르는 길엔 통닭집이 줄을 잇는다. 통닭이 너무 먹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매표소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옆을 보니 긴 끈을 이용해 아래층에 있는 아저씨가 입장해 있는 2층의 아저씨에게 가방을 올려 보내고 있었다. 출입구 안내판에는 ‘병 소주는 반입 안된다’고 적혀 있다. 아버지의 팩 소주는 무사통과였던 것 같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검표를 하면 사람들은 무작정 뛰었다. 영문을 몰랐던 나도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달렸다. 조금이라도 그라운드에 가까운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한 몸부림이다. 컴컴한 실내를 통과해 관중석 출입구를 지나자 인조잔디의 초록색 그라운드가 펼쳐진다. 그때까지 그렇게 넓은 공간을 본 기억이 없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본 기억도 없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랄까. 관중석에 들어설 때의 그 순간은 그전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짜릿함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됐다. 영국 런던을 연고지로 한 축구클럽 아스날의 팬이 주인공인 닉 혼비의 자전적 소설 <피버 피치>를 원작으로한 동명의 영화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어린 주인공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지금은 사라진 하이버리구장의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주위가 밝아지고 엄청난 함성이 귀를 때리는 화면 속 그 이미지는 20여년 전 내가 경험한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나는 아버지가 사준 우동을 먹으며 말했다. “아빠, 다음에 또 오면 안되나?” “그래, 알았다.” 아버지는 무심하게 말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때는 관중석에서 담배를 피워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추석, 고향집 거실에 누워 야구 중계를 봤다. 아버지가 다가와서는 양승호 감독의 욕을 하며 손아섭 칭찬을 하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과 같은 ‘꼴빠’가 되지 않았을 거다. 아버지에게 감사해야 할까. 흔하고 흔한 모태 롯데 팬의 탄생기였다.

정교한 연출로 이룬 비통속 멜로 <오직 그대만> Always

<오직 그대만> Always 송일곤│한국│2011년│108분│개막작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를 오늘날의 한국에서 재현해보고 싶다는 감독 송일곤의 염원에서 빚어진, 치명적 러브 스토리. 영화는 현재 주차장 요원으로 살고 있으나 한때는 잘나가던 복서였던 남자 철민(소지섭)과, 실명의 위기에 처했으나 유능한 텔레마케터인 여자 정화(한효주)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과거의 ‘어떤 사연’이 그들을 필연적으로 연결시킨다. 그 사연이나 탄생 모티브 등으로 인해 일련의 기시감이 영화에 감돈다. 기시감들은 이 운명적 멜로에 친숙함과 식상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영화는 통속적일 대로 통속적이다. 통속적인 건 그러나, 영화의 외연적 층위에서 그렇게 비칠 뿐이다. 소지섭-한효주 투톱의 매력이 발군이리라는 것쯤은 굳이 강변할 필요 없을 듯. 두 스타는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호연을 선사한다. 빈말이 아니라, 그 커플은 철민과 정화를 ‘산다’. 디테일에서의 극적 비틀기 및 정교한 연출 스타일 등이 통속 멜로를 비통속적으로 비상시킨다. 눈이 멀어져가는 결정적 장애에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여주인공이라는 설정부터가 그렇다. 그 여인이, 자신과도 관계있는 남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건 어떤가. 남자는 복서였건만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다. 그는 화가 치밀 대로 치밀 법한 순간에도 인내할 줄 안다. 그가 끝내 주먹을 쓰는 건 ‘오직 그대만’을 위해서다. 감독 특유의 생략·절제도, 이런 유의 멜로물에서 쉽사리 목격할 수 없는, 어떤 경지를 부여한다. 일찍이 말했듯, “영화는 말과 액션을 남발하지 않으면서, 클라이맥스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정점에서 구사되는 철민의 액션은 <영화는 영화다>의 비장미·폭발력을 압도한다. 감독은 또 감각적이나 결코 피상적이지 않은, 주목할 만한 비주얼·사운드 디자인으로 영화에 격을 부여한다”. <꽃섬> <거미숲> <마법사들> 등을 통해 송일곤 감독이 전작들에서 선보였던 정적인 스타일을 이번에도 반복한다는 건 물론 아니다. 롱 숏, 롱 테이크 위주로 응시하곤 하던 예의 연출 스타일을 넘어, 캐릭터들의 호흡을 충실히 따른다. 그 호흡이 대중성을 부여하며, 영화의 재미를 보장한다.

프랑스영화의 초월적인 아름다움

흔히 30년대의 프랑스영화에 ‘황금기’(Golden Age)란 표현을 쓴다. 1930년부터 1960년까지를 아우르는 올해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랑스 특별전’에도 같은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 수식은 자연스레 이 특별전을 역사적 맥락에서 감상하도록 관객을 유도한다. 왜 30년대가 황금기인지, 그리고 이후의 영화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를 ‘미학적 관점’에서 앞서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답이 여기 담겨 있다. 일례로 노엘 버치가 ‘30년부터 56년까지의 프랑스영화’를 다루며 이 시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다. 누벨바그 이전의 비교적 덜 알려진 훌륭한 작품을 발굴하기 위해서라도 이 시기는 묶어야 하며, 할리우드의 클래식 무비에 대항한 프랑스영화의 근본을 찾기 위해 이들 작품은 꼭 봐야 한다고. 2차대전의 외상으로 혼란스러워진 프랑스에 이렇듯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난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작품의 시기가 도래할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 영화사의 축복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그의 말마따나 이번 특별전의 리스트는 극장을 판테온으로 둔갑시키는 힘을 가진다. 상영작의 범위는 꽤 다양하다. 장 르누아르를 필두로 마르셀 카르네와 로베르 브레송 등 프랑스영화 팬의 귀에 친숙한 이름에서 시작해, 장 그레미용의 <이상한 빅토르씨>나 <여름의 빛>, 사샤 기트리의 <꿈을 꾸다>와 <절름발이 악마>와 같이 국내에 거의 소개된 적 없는 작품도 있다. 앙리 조르주 클루조도 기존에 익숙한 영화가 아니라 <오르페브르의 부두>로 소개되고, 자크 타티는 <축제일>로, 아벨 강스는 <잃어버린 천국>으로 소개된다. 카르네 또한 항상 자크 프레베르와 함께 이야기되던 <인생유전> 외에도, 다소 덜 알려진 <북호텔>과 <이상한 드라마>로 온다. 조금 억지스런 해피엔딩, 괴팍스런 쾌활함으로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한 <이상한 드라마>를 재평가할 기회가 될 것이다. 사실 프랑스의 초기 장편발성영화는 문학이나 연극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 이런 맥락에서 흥미로운 작품이 몇편 있다. 당대 유명 배우였던 뤼시앵 기트리의 아들인 사샤 기트리는 자신이 쓴 연극을 영화로 직접 옮기는데, 이게 바로 <꿈을 꾸다>이다. 이 작품에는 실제 사샤 기트리의 부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사샤 기트리와 재클린이 롱테이크 사이에 빠르고 긴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은 할리우드의 어떤 클래식 로맨틱물보다 우아하다. 또 다른 사샤 기트리의 작품 <절름발이 악마>도 연극을 영화화했다. ‘앙시앵레짐부터 7월 왕정시기’까지 오랜 권력을 누린 인물 ‘텔레랑’의 일대기를 다룬 일종의 에피소드극이다. 연극무대에서 훈련받은 배우들의 연기를 살피는 것도 흥미롭고, 대사 역시 감상의 포인트가 된다. 물론 이 시기를 이야기하며 ‘시적 리얼리즘’을 빠뜨리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앞서 언급한 카르네의 영화들, 그리고 <익사에서 구조된 부뒤>와 <토니>를 비롯한 장 르누아르의 작품을 이 카테고리에서 살필 수 있다. 그리고 <이상한 드라마>나 <오르페브르의 부두>를 스릴러의 시대적 취향으로 묶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이 두편은 장르 외에 ‘마침내’ 행복하길 선택한다는 플롯의 공통점을 지닌다. 음울한 이데올로기로부터의 도피를 목적으로 한 영화뿐 아니라, 당시 프랑스 국민의 아메리카 대륙을 향한 정서를 살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타티의 첫 장편인 <축제일>은 프랑스 시골의 한 우편배달부가 미국의 배달 시스템을 따라하다 도리어 일을 망친다는 플롯인데, 감독이 직접 연기한 어리숙한 배달부는 왠지 프랑스의 정서를 응원하게 만든다. <꿈을 꾸다>의 남아메리카인 언급도 같은 맥락에서 흥미롭다. 이외에 영화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홈페이지(www.cinemathrque.seoul.kr)를 참고하면 된다.

[도서] 좌우명, 마우스

<많아지면 달라진다>의 2장에서는 한국의 미국 소고기 개방 반대 촛불시위의 발생과 확산 양상을 다룬다. 동방신기 팬클럽인 카시오페아의 게시판에서 광우병과 미국 소고기에 대한 글을 공유한 여고생들이 촛불시위에 참가한 데 대해, 이 책은 이렇게 분석한다. “학교 운동장과 커피숍에서 주고받으면서 그냥 사라지고 말았을 대화가 이곳에서는 전문 미디어 회사들만 누리던 두 가지 특성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접근성과 영속성이었다. 접근성은 어떤 사람이 쓴 글을 다수가 읽을 수 있음을 뜻하고, 영속성은 어떤 글이 오래 남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이 인터넷에 연결되면 접근성과 영속성이 크게 높아지는데,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인터넷 연결이 가장 잘된 나라이다.” 뉴욕대 언론대학원 교수인 클레이 셔키는 <많아지면 달라진다>에서 사람들이 이전에 TV를 시청하던 시간의 1%만 ‘생산과 공유’에 사용하는 세상이 온다고 말한다. 그 1%인 연간 1조 시간은, 1년에 위키피디아 100개 이상을 만들 수 있는 참여에 해당한다. 실제로, 이제 텔레비전 역사상 처음으로 일부 젊은이 집단은 기성세대보다 텔레비전을 덜 보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제시한다. 빠른 대화형 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는 젊은이 집단은 순수한 소비를 전제로 하는 미디어에서 행동을 옮겨가고 있다.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아무 대가 없이 창조하고 공유하는 사람들, 여가를 불특정 다수와 즐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들’을 어떻게 예측하고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어떤 수익모델을 만들 것인가를 다루지 않는다. 영화를 보다 말고 화면 뒤로 가 ‘마우스’를 찾는 네살 딸의 에피소드를 인용하며, 새로 연결된 세상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좌우명은 바로 마우스임을 강조한다. 이제 미디어는 소비와 생산과 공유의 가능성을 함께 나란히 포함하며, 그러한 가능성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마지막으로, “독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양이다”라는 독물학자의 통찰이 1조 시간을 가진 새로운 대중에게도 포함되는 이야기인가에 대한 성찰은, 독자의 몫이다.

[이 사람] 방송 다큐에 활력 불어넣고파

방송 다큐멘터리가 떼지어 극장으로 나섰다. 제목은 ‘自然+人 KBS 다큐멘터리 기획전’이고, 10월25일부터 31일까지 CGV대학로와 구로에서, 11월10일부터 16일까지 CGV창원에서 열린다. KBS에서 방영됐던 다큐멘터리 10편이 재편집을 거쳐 극장에서 상영되는 행사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텔레비전과 극장 사이를 열심히 이어준 누군가가 있었을 거다. 그게 KBS 콘텐츠 사업부 박유경 프로듀서다. 경력부터 물었다. “인류학과를 졸업했다. 대졸 최저임금으로 1995년에 입사, 행정착오로 인하여 예능국으로 발령받았다. (웃음) 각종 부서 및 <국악한마당> <가족오락관> 등의 프로그램을 거치고 중국에 유학을 가서 석사도 받고 지금은 콘텐츠 사업부에 근무하면서 출판, 캐릭터, DVD 음반사업 등을 맡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다시 물었다. 이번 기획전에서 어떤 일을 했나. “상영할 다큐멘터리 선정에 참여했고 방송사와 극장과 다큐멘터리 외주 제작사 인력들과의 협업 및 협력관계를 조율했다.” 본인은 부끄럽다지만 이번 기획전을 가능케 한 중요한 마당발이었던 셈이다. KBS가 제작 방영하여 관심을 모았고 극장에까지 개봉하여 예상외의 큰 성과를 거둔 <울지마 톤즈>가 이런 기획전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획전 형식으로 한꺼번에 모아 상영해보자 했던 거다.” 그런데, 자, 사실 여기까지는 준비하면 다 할 수 있는 말들이다. 실은 좀 다른 면에서 감동을 받았다. 필살의 추천작 두편, <20년 전의 약속>과 <어머니의 백번째 가을날>의 내용을 한참이나 열심히 설명하던 박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한순간 감정에 젖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정말 이 작품들을 좋아하는구나 아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이 기획전은 하나의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듀서들에게도, 다소 틀에 박힌 텔레비전용 다큐에도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도 이런 만남을 폭넓게 이어갈 생각이다.” 그 ‘만남’, 부디 상업적 성공에 눈멀지 말고, 가치있게 발전하면 참 좋겠다.

[유운성의 시네마나우] 영화비평, 길은 있다

지난 9월 열린 토론토영화제 기간 동안 몇몇 영화평론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영화제에서 본 작품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화제는 오늘날 영화비평이 당면한 상황과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것으로 옮겨갔는데, 짐작할 수 있겠지만 영화비평의 역할이 이제는 거의 위협적이라 느낄 만큼 축소되고 있다는 의식을 다들 공유하고 있었다. 영화전문지의 구독자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의미있는 비평적 담론들은 소규모의 그룹 내에서만 순환될 뿐 그 바깥에선 완전히 길을 잃거나 버려진 신세가 되고 마는 게 현실이다. 혹은 기껏해야 외우기 쉬운 유사 경구로 압축되어 영화 마니아들의 속물적 허세에나 소용닿을 뿐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좀더 자세히 논하는 일은 본 지면엔 걸맞지 않다. 다만 나는 영화비평의 변모 가능한 양상으로서 ‘포스트 프로덕션으로서의 영화비평’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이는 톰 앤더슨의 <로스앤젤레스 자화상>(2003), 피터 폰 바흐의 <헬싱키, 포에버>(2008) 같은 ‘비평적’ 영화들, 그리고 (얼마 전 본 지면에서도 다룬 바 있는) 크리스천 마클레이의 <시계>(2010) 같은 영상설치 작품들, 그리고 보다 대중적인 형식으로는 <뉴요커>가 제공하는 <이주의 DVD> 같은 비디오 포드캐스트 등을 보면서 떠올린 것인데, 이런 작업들에서 작가의 역할은 주로 (일종의 레디메이드 오브제로서) 기존의 영상물들을 다루는 일에 한정되지만 여러 수준의 비평적 입장에서 자유롭게 그것들을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이미지의 아카이브가 상당량 축적된 이후에야 출현 가능한 형식으로서- 이 형식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나 1990년대를 거치며 확산된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서 중심에 놓이는 것은 오리지널 이미지의 생산이 아니라 기존의 생산물을 편집을 통해 재구성하는 작업, 즉 후반작업 공정에 가까운 활동이다. 그러한 활동이 영화에 대한 비평적 태도와 결부되어 수행될 때 우리는 그것을 포스트 프로덕션으로서의 영화비평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물론 이것은 여전히 한편의 영화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텔레비전 영화 소개 프로그램들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사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는 작품들에 ‘포스트 프로덕션’이란 용어를 처음 적용한 이는 프랑스 미술평론가 니콜라 부리오인데, 원래 이는 1990년대 초반부터 미술계에서 중요한 흐름으로 떠오른, 기존의 작품들을 기반으로 디제잉하듯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경향 일반을 가리키기 위한 개념이었다. 부리오가 보기에, 이러한 포스트 프로덕션으로서의 예술작품은 “정보화 시대에 점점 확산되어가는 전 지구적 문화의 카오스에 대한 응답”(<포스트 프로덕션: 스크린플레이로서의 문화>(2001))이었다. 그가 특별히 영상 관련 작품만을 염두에 두고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평론가 세르주 다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며 글을 시작하고 있는 건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작품을 만들고 우린 그걸 가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우린 그걸 우리 자신을 위해 활용한다.” 여기서의 일이 비평적 활동이라면 우리는 장 뤽 고다르의 다음과 같은 ‘예언’을 함께 고려하는 것으로 포스트 프로덕션으로서의 비평에 대한 정의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비평가들은 이제 영사할 것이다.”

살아있으니 사랑하고 사랑하니 놀자꾸나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던 차다. 때마침 구스 반 산트의 신작 <레스트리스>가 개봉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의 최고작이 아니라는 평가는 일찌감치 들은 바 있다. 하지만 그런 점들이 이 영화에 관한 흥미로운 관람을 가로막지는 못하는 것 같다. 구스 반 산트는 이전의 영화들과 유사한 범주의 소재를 다루고는 있지만 완연히 다른 이야기와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레스트리스>는 과연 어떤 영화인가. 이 영화가 품고 있는 그러나 아직까지는 말해지지 않은 진짜 매력들을 중심으로 소개해본다. 소년과 소녀가 만난 곳은 장례식장이다. 소년의 이름은 에녹(헨리 호퍼), 소녀의 이름은 애너벨(미아 와시코스카)이다. 에녹은 지금 자기와 상관도 없는 사람의 장례식에 와 있다. 거기 와서 가족이나 친구 중 한 사람인 척하며 침통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추모사를 경청하거나 고인의 창백한 얼굴을 조용히 들여다보다 발길을 돌린다. 벌써 여러 사람의 장례식을 그렇게 참관하던 중에 애너벨을 만난 것이다. 그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었고 자신도 몇달간 혼수상태에서 헤매다가 겨우 깨어났으며 지금은 이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고 다닌다. 반면에 애너벨은 말기 암 환자로 몇달 남짓의 생을 최종 선고받고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을 좋아하고 각종 동물들의 생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며 그중에서도 물새를 가장 좋아하는, 생에 대한 지극한 존중심을 지닌 이 씩씩하고 밝은 소녀는 그러나 자신의 이른 죽음만큼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 두 사람이 장례식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후 영화는 죽음을 경험한 소년과 죽음을 앞둔 소녀의 러브 스토리로 흐른다. 적지 않은 평자가 <레스트리스>를 구스 반 산트의 범작 혹은 실패작으로 분류했으나(예컨대 <필름 코멘트>의 별점란에 짐 호버먼과 개빈 스미스는 별 다섯개 만점 중 별 하나씩을 부여했다), 로저 에버트는 애정이 짙게 묻어나는 호평을 남겼다. “구스 반 산트의 <레스트리스>는 죽음이라는 자신들의 성지를 본질적으로 숭배하는, 한 청춘 남녀에 관한 보기 드물게 감동적인 로맨스다.… (중략)… 이 이야기는 손쉬운 판타지 혹은 꿈같은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라 시간의 냉혹한 행진으로부터 조금이나마 행복을 훔쳐내려는 두 인물의 시도이다.” 그는 시적인 문장으로 영화의 핵심적인 분위기를 잘 묘사해냈고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구스 반 산트의 무한한 관심거리 , 젊음과 죽음 다만 로저 에버트가 두 주인공의 첫 만남에 관해 설명하면서 에녹과 애너벨 그둘 모두 장례식 구경하기 게임을 하던 중이었다고 말할 때, 거기엔 약간의 착오가 있는 것 같다. 애너벨은 아는 사람의 죽음 때문에 장례식에 왔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병동의 친구 중 한명이었을 것이다. 게임 중이었던 건 에녹이었다. 그러니 에녹과 애너벨이 처음 만났을 때 애너벨이 보이는 좀 이상한 행동은 사실 생각보다 더 이상한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애너벨은 난생처음 만난 에녹에게 환하고 친근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애너벨은 “요즘은 장례식장에 검은 정장을 입고 오는 사람이 없어서 네가 가짜 조문객이라는 걸 알아보았다”는 식의 대사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설명이 그토록 환한 그녀의 웃음의 의미까지 밝혀내지는 못할 것이다. 애너벨은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한눈에 에녹과 그의 행위를 간파한 다음에 함박웃음을 던져준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애너벨에게 죽음이란 늘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괴상한 녀석 하나가 나타나더니 그 현실을 상대로 어둡고 어처구니없는 게임을 벌이고 있다. 애너벨은 죽음이라는 이 현실이 누군가에게는 게임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알게 된 것이다. 그 게임의 탈출구로 자신을 인도해줄 괴짜 친구 혹은 연인이 지금 자기의 눈앞에 당도했다는 직관적인 반가움 때문에 애너벨은 웃는다. 마침내 함께 놀게 될 운명의 짝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에 그녀는 웃는다. 이로써 게임의 일원은 하나 더 늘어날 것이고 그녀의 동참으로 이 게임의 분위기는 우울함에서 명랑함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구스 반 산트의 무한한 관심거리인 ‘젊음과 죽음’이라는 문제가 <레스트리스>에서 재등장한 것이다. 젊음이라는 문제가 얼마나 구스 반 산트의 폭넓은 관심을 끌어내는지에 관해서는 최근에 그가 <브레이킹 던>(!!)의 연출에 욕심을 냈었다는 사실 하나만 지적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젊음만큼이나 그에게 늘 가까이 있는 관심거리인 죽음, 그것으로 구스 반 산트는 그의 영화의 가장 위대한 시기 중 한 부분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한 ‘죽음 3부작’(<제리> <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을 통과해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레스트리스>의 젊음과 죽음이란 죽음 3부작의 그것과는 면모가 다소 다른 것 같다. 로저 에버트는 에롤 모리스의 영화 <천국의 문>에 등장하는 대사를 인용하며 이 다른 면모를 요령있게 압축했다. “죽음이란 망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산 자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 <레스트리스>에서의 젊음이란 죽음에 인접하여 고통스럽거나 안타깝거나 미스터리해지는 인물들의 시간이 아니라, 너무도 명료한 그 시한적 삶을 생생하고 소중하게 보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들의 시간이다. 죽음을 경험한 소년과 죽음을 앞둔 소녀의 사랑 이야기는 그러므로 결국에 이런 질문을 품게 한다. 그들은 이제 함께할 짧은 생의 시간을 과연 어떻게 살아내는가. 이 점에서 구스 반 산트는 확신을 지녔던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레스트리스>는 살 수 있는 데까지 살아내는 삶에 관한 영화다. 애너벨은 죽을 것이다. 애너벨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될 순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영화에서 ‘있는 동안에는 놀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감독의 이 말은 일단 도전적이면서도 좀 엉뚱하게 들린다. 특히 여주인공의 대사를 빌려서 한 그 말이 더욱 그렇다. 지금 놀자니 무슨 말인가. 그는 지금 주인공을 가리켜 죽지 않고 살기 위한 의지를 지닌 인물로 표현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동안만은 놀겠다는 의지를 지닌 인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이 영화의 진실이다. 에녹과 애너벨, 그들은 어떻게 둘의 남은 생을 살아갈 것인가라고 우리는 앞서 물었는데, 대답은 이런 것이다. 그들은 열심히 노는 것으로 살아간다. 에녹과 애너벨이 만난 이후로 그들의 삶이란 함께 노는 것이며 잘 사는 삶이란 함께 잘 노는 것이다. 놀이로서의 상연에 몰입하는 이유 여기 관련된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이 영화의 전반적인 간결성 내지는 단순성의 분위기다. 인물들은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으며 복잡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영화적 리듬도 단순하다. 이야기의 간결성 또한 그런 느낌에 한몫을 더한다. 에녹의 환상이거나 유령이라고 말해질 만한 가미카제 친구 히로시(가세 료) 부분을 제외하면 영화는 거의 서브플롯이라 할 만한 걸 지니지 않은 직선 구조다. 영화는 역전이나 반전이나 미스터리에 고개를 돌리지 않으며 앞으로 또 앞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구스 반 산트는 인물들이 그 선을 따라가며 놀이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보살핀다. 두 번째는 장소들의 뉘앙스다. 이 영화는 차라리 ‘한 장소에서 놀고 그 다음 장소로 이동하여 다시 다른 놀이로 노는 플롯’을 지녔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건 두 인물의 사랑의 행로와도 겹친다. 에녹과 애너벨이 함께 머물렀던 자리들, 그러니까 공터와 축구장과 영안실과 할로윈의 가장행렬이 열렸던 숲속과 그보다 더 깊은 숲속에 자리잡아 그들의 첫 섹스를 품어주었던 오두막과 그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지낸 다음 집으로 돌아올 때의 바람 불고 비 내리던 골목길들. 후반부에 이르면 영화는 이들이 머물렀던 주요 장소들을 다시 비추는데, 거기에 그들은 없고 그들이 남긴 그 장소의 시적 공기만이 남아 있다. 그들은 장소를 바꾸며 단순하게 논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건 주로 무엇을 하며 노는가이다. 에녹과 애너벨이 만난 첫 장면을 다시 말해야 할 것 같다. 애너벨은 영화의 도입부에서 에녹이라는 단순히 가짜 조문객의 존재가 아니라 죽음을 매개로 놀고 있는 자의 등장을 알아본 것이다. 앞서는 게임이라고 칭했지만 이것은 소극적 퍼포먼스다. 그러니 애너벨이 즉각적으로 알아본 건 에녹이 무언가 놀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동시에 그 놀이의 종류가 바로 일종의 퍼포먼스, 곧 상연이라는 점이다. 놀이로서의 상연, 이것이 영화 내내 이어지는 에녹과 애너벨의 놀이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다. 처음에 두 사람의 놀이의 형태는 단순히 타인들의 죽음을 더 가까이 관람하기 위한 영안실 방문 같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더 능동적으로 논다. 할로윈 데이의 가장행렬을 따라나서 외양의 아이러니와 유머로 죽음에의 공포를 밀어내보려고도 한다. 틈만 나면 바닥에 시체처럼 누운 다음 몸의 윤곽을 연필로 그려보는 시체놀이도 한다. 그러다가 더 많은 창의적 상연에 이른다. 그들의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의 의복을 걸치고는 그들이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사는 것 같은 그들만의 상연을 펼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애나벨이 죽고 에녹이 남았을 때의 순간을 미리 예상하며 그 두 사람이 만들어보는 슬프지만 귀여운 한편의 짧은 연극이다. 그들은 이 상연의 연쇄들을 통해 죽음을 마주보고 밀쳐내고 끌어당기고 미리 경험한다. 적어도 지금은 함께 행복하게 살아 있다는 존재 증명을 스스로 해내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서로 함께 살아 있는 한 사랑하고 사랑하는 한 최선을 다해 놀고 노는 동안에는 상연한다. 두 배우의 싱그러운 존재감 이것은 소년소녀의 성장담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청춘의 극단적인 러브 스토리를 접하고 나면 이런 습관적인 정의를 내리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레스트리스>는 그런 정의를 단호히 거절하는 영화다. 이것은 미숙한 연애담인데 이 연애담은 하나의 성장담이 아니라 기필코 놀이담이다. 그리하여 <레스트리스>에서 에녹의 주위에 늘 머물던 히로시가 그러니까 에녹의 친구이지만 애너벨의 눈에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히로시가 어느 때인가 애너벨의 눈에도 보이는 순간이 올 때, 그렇게 에녹과 애너벨의 첫 만남 이래 영화에서 벌어지는 두 번째 불가능의 순간이자 텔레파시의 순간이 올 때, 문득 그들의 놀이가 시작됐던 것처럼 문득 그 놀이를 끝낼 때가 온다. 물론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끝끝내 이 놀이의 끝을 어떻게 다시 한번 그들만의 방식으로 마감하는지는 이 영화의 라스트신이 여실히 보여줄 것이지만 말이다. <레스트리스>를 구스 반 산트의 수작 반열에 올리는 건 우리 역시도 망설여진다. 죽음 3부작의 감격이 너무 컸던 까닭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어 보인다. 이 놀이담은 그 자체로 귀엽고 생기롭다. 황혼이 깃든 만물의 풍경들과 시적으로 더해지는 음악, 간결하면서도 속도감 넘치는 편집, 그리하여 마치 산들바람이 몸을 만지고 지나간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이 영화의 모든 좋은 점들, 그중에서도 불가사의한 몸짓과 표정을 순간마다 드러내는 두 배우의 싱그러운 존재감과 그것을 끌어낸 구스 반 산트의 사려 깊은 연출력이 가장 빛난다. <레스트리스>는 두 소년소녀가 재잘거리고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영화다. 미아 와시코스카의 웃음은 언제나 물새 모양으로 자유롭고 헨리 호퍼(지난해 타계한 대배우 데니스 호퍼의 아들)의 고갯짓은 인생을 향해 던지는 물음표 같은 형상일 때가 많다. 아직 견고한 관습을 미처 갖추지 않은 이 두 젊은 생명체가 손잡고 기대고 웃고 입을 맞추고 뛰고 하는 그 생생한 운동과 감정의 리듬만으로도 <레스트리스>는 안아주고 싶은 음악적 감각의 소품이 된다. <레스트리스>는 때이른 죽음을 추모하는 정교하고 장엄한 장송곡이 아니다. 남아 있는 삶의 생기로 쉼없이 들떠서 들썩이는 놀이 행진곡이다.

이 영화를 아시나요? (3)

보고 듣는 것은 아는 것에 우선한다 유현목 감독의 <문>(1977) 유현목 감독의 <문>에 대한 나의 기억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텔레비전에서 길쭉하게 위아래로 늘린 흑백화면으로 보았던 영상의 조각들이다. 다른 하나는 고 하길종 감독의 에세이집에서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와 더불어 “한국영화의 장래에 밝은 빛을 비추어주는”(정확한 표현인지 자신은 없지만) 훌륭한 영화라고 극찬했던 글을 읽었던 기억이다. 이 두 가지 기억의 편린들은 나의 두뇌가 수집한 고전 한국영화에 대한 담론과 지식의 조각들에 고고학자가 파편화된 토기를 복원하듯이 접합되어, “내가 아마도 이런 영화를 본 것이겠지?”라는 추정을 가능케 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추정을 하나의 판단으로 굳어지게끔 하였다. 올해 들어 완벽과는 한참 거리가 있지만 최소한 영화의 화면비, 색깔과 음영을 심각하게 훼손하지 않는 프린트로 <문>을 관람할 기회가 주어졌다. 순간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나의 머릿속에 하나의 그럴듯한 전체상으로 굳어져 있던 <문>이라는 ‘복원된 토기’는 실제 모습과 마주치자마자 누가 수류탄이라도 던져넣어서 폭파한 것처럼 슬로 모션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나는 ‘아마도 이런 영화를 본’ 것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문>이라는 1977년작의 이른바 ‘재발견’의 가치를 증명하는 요소들을 열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일성 촬영감독과 그의 협력자들이 펼쳐놓는 숨이 콱 막힐 듯이 아름다운 영상, 최창권 작곡가의 드라마틱하게 ‘영화적’인 음악과 어우러지는 황병기, 황병주, 설금옥 연주자들의 가야금 선율의 유려함, ‘TV 탤런트’라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이미지들을 완전히 와해시키고도 남음이 있는 최불암과 박근형의 경이로운 연기 등. 이러한 놀라운 미적 성취 및 서사와 연기의 힘 이외에도 <문>에는 ‘작가주의’니 ‘리얼리즘’이니 하는 개념들로 단순화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겐 없다. 단지 유현목 감독이 <수학여행> <불꽃> 심지어 <엄마와 별과 말미잘>에 이르기까지 내가 본 그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여겨지는 것은,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삼라만상을 맑게 바라보는 자세가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일본사 전공으로 공부를 시작한 나로서는 <문>이 일본인 캐릭터들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야쓰하시 부자(父子)는 고토(琴)의 현대화 및 대중화라는 현실적인 목표와 자신들의 음악의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다시 한번 그것을 쇄신하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고뇌한다. 이들은 물론 한국인 연기자들이 한국어로 연기하는 캐릭터들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지만 그들의 욕망이 ‘가야금 민족주의’에 종속되거나 ‘국민문화’ 간의 콩쿠르로 치환되는 일이 없이 영화 안에서 완수된다는 점에서 그 어떤 한국영화의 일본인 캐릭터들과도 차별된다. 그들은 (실제 역사상의 식민주의자들과 달리) 우담선생과 그의 딸의 주체성을 인식하며 또한 한국인 가야금 연주자들도 그들의 욕망을 승인한다. “우리가 너희보다 잘났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왜 모르느냐?” 또는 “너희는 우리와 달리 객관적으로 나쁜 놈들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느냐?”라는 투의 제국주의(그리고 그 제국주의를 쏙 빼닮은 ‘반제국주의’)를 표상하는 어리석은 질문들은 <문>에서는 아예 그 자취가 없다. 이러한 <문>의 시각은 유현목 감독이 에티오피아에서 이스라엘로 베게나(열개의 현이 달린 하프와 비슷한 악기)의 원류를 찾아서 떠나는 모슬렘 아프리카인 작곡가의 이야기를 영화화했다 할지라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을 것이다. “보는 것이 아는 것에 우선한다”라고 장 뤽 고다르가 어딘가에 썼다고 한다. 아마도 고다르가 이 말을 한 맥락은 다르겠지만 <문>을 다시 보는 것은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아는 것’보다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주었다. 부디 이러한 ‘한국영화’에 대한 무지몽매함을 깨칠 수 있는 행복한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물음표 임권택 감독의 <가깝고도 먼 길>(1978) 나는 임권택의 68번째 영화 <가깝고도 먼 길>을 처음 보았을 때 어리둥절했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기괴하)다. 낙도 어린이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돌아오던 초등학생 인철이 배가 난파되는 바람에 북한에 상륙한다(이게 말이 되나?). 거기서 또래의 북한 어린이 동만을 만난다(반공영화로군, 난 이미 어떻게 끝날지 잘 알고 있어!). 둘은 우여곡절 끝에 친구가 되어(그럴 줄 알았어)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으로 가려고 한다(자,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그리고 휴전선을 넘다가 둘 다 총에 맞아 사살당한다. 도대체 어쩌자고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을까. 이 몸서리쳐질 정도의 냉소적 아이러니의 세계. 동화에 가까운 가정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거의 성공할 것만 같은 자리까지 우리를 데려가서 스스로에 대한 비웃음을 끌어내다가 갑자기 방향을 선회해 모든 노력을 제로로 만든 다음 이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그러니 제발 나에게 불가능을 요구하지 마세요, 라고 능동적으로 영화가 자기 자신을 맞받아쳐서 부숴버린다. <가깝고도 먼 길>은 반공영화가 스스로 자신의 낭만적 망상에서 시작해서 반공 이데올로기의 욕망이 성립되지 않는 현실과 대면하도록 이끌고 간 다음 문득 통일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상상을 상징화할 수 없는 곤궁 안으로 밀어넣는다. 이때 당신은 이 영화의 시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직 박정희가 살아 있을 때 만들어진 거의 마지막 반공영화. 이미 임권택은 1976년 <왕십리>를 찍은 ‘다음’부터 걸작들의 행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 영화는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영상시대 동인들의 도시 저변의 하층계급에 관한 ‘팝콘’ 비애극(pop corn-Trauerspiel)들보다는 훨씬 훌륭하다. 1978년에 심훈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상록수>는 문예영화의 걸작이며,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든 같은 원작의 영화화인 김기영의 <흙>과 비교하면 두 대가가 어디서 서로 풍경과 미학적으로 헤어지고 한편으로 어떻게 박정희 시대의 마지막 피비린내 나는 부패의 공기를 공유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해 아마도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비통하리만큼 아름다운’ <족보>를 만들었다. 이듬해 79년 <신궁>과 <깃발 없는 기수>를 만들었고, 마침내 80년 <짝코>, 그리고 81년 <만다라>를 완성했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임권택의 창조의 곡선이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서던 중이었다. <가깝고도 먼 길>이 숨은 걸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이 영화는 너무 괴상해서 어쩌면 1978년, 그 순간 임권택이 가지 않은 또 다른 영화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러나 임권택은 자기 영화에서 ‘그 이후’ 던져진 세상에 대한 냉소의 태도를 일체 버리고 성찰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이 <깃발 없는 기수>와 <짝코>, 그리고 <만다라>로 이어지는 새로운 ‘지향’의 목표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가 가지 않은 선택은 ‘지양’을 통해서 환상을 쳐부수는 쪽으로 나아갔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가정이다. 다만 나는 임권택에 관한 생각을 할 때마다 1978년에 하여튼 잠시 멈춰 선다. 그저 그 생각을 잠시 고백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내 가정은 정확하게 딱 여기까지이다.

[김중혁의 No Music No Life] 외로움이 몸부림치기 전에

노래를 듣다가 울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는데 노래 속의 어떤 단어나 목소리나 멜로디가, 불쑥, 귀로 들어오더니 뒷골을 타고 내려가 심장을 후벼판 다음 재빨리 얼굴로 올라가 눈물샘을 건드린다. 그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내가 어쩌다 눈물을 흘리게 됐는지도 알지 못한다. 눈물은 얼마나 재빠른지 손쓸 틈이 없다. 흐르고 난 뒤에야 닦아낼 수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노래가 있을 거다. 듣는 순간 무방비 상태가 되는, 갑자기 한숨을 쉬게 되고 어느 순간 가슴이 아릿해지는 노래가 있을 것이다. 한번 눈물을 쏙 빼고 나면 들을 때마다 슬픔은 반복된다. 오랜 시간 동안 노래에 익숙해지면 슬픔은 사라지지만 몇년이 지난 뒤 그 노래를 들으면 슬픔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나에게는 롤러코스터의 노래가 그랬다. 지금도 2002년의 신촌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롤러코스터의 음악을 좋아해서 첫 번째 앨범부터 얼마나 열심히 들었는지 모른다. 이어폰을 꽂고 계속 들었고, 노래방에 가서도 불렀고(마이크 뺏겼고), 콘서트에도 따라가서 들었고, 거의 매일 들었다. 그들의 명반 ≪일상다반사≫가 조금씩 지겨워질 때쯤 다음 앨범이 나오기를 목 빼고 기다렸는데, 나온다는 말만 많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10년 전 울컥하게 한 롤러코스터 조원선의 목소리 2002년의 어느 날, 나는 신촌을 걷고 있었다. 생각없이 신촌을 걷던 내 귀에, 너무나 익숙한 조원선의 목소리가 들렸다(요즘은 이런 풍경도 모두 사라졌지만). 레코드 가게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정신을 빼앗긴 채 나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비트는 강했지만 노래는 슬펐다. 사람들은 바쁜 걸음으로 곁을 지나갔고, (그때만 해도 뚜렷한 직업이 없었으므로 시간이 많았던) 나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유령처럼 보였다. 그들의 실루엣은 현실의 장면 같지 않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 나는 슬펐다. 사람들의 걸음걸음이 모두 슬펐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안고, 각자의 방향으로 정신없이 사라져가는 게 너무 슬퍼 보였고, 절대 알 수 없을 그들의 삶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때 들었던 노래가 롤러코스터의 이었는데,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신촌의 레코드 가게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의 쓸쓸한 뒷모습이 떠오른다. 돌이켜보면 가사도 어찌나 절묘했던지.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그 자리에 그냥 서 있다. 니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한참 후에서야 알았다.’ 그래, 그자리에 그냥 서 있었다. 그게 그렇게 슬플 일인가, 감수성 과잉이지, 그렇지, 나도 안다, 아는데, 가끔은 모두들 그렇게 슬플 때가 있지 않나. 슬픔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존 레이티의 <뇌, 1.4킬로그램의 사용법>이라는 책에는 슬픔을 이렇게 설명한다. “두뇌에서 슬픔은 좌측 편도체와 우측 전두엽의 활동을 증가시키고, 우측 편도체와 좌측 전두엽의 활동을 감소시킨다.” (네? 뭐라고요? 설명을 더…) “슬픔을 통해 우리는 잠시 멈춰서 재편성하고 재평가한다. 우리에게 충분한 고통을 주어 변화할 동기를 유발한다.” (아, 네,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슬픔이란 광범위하다. 불안으로 인한 슬픔은 극단적인 선택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슬픔은 오히려 삶의 깊이를 더해주는 자극제인 셈이다. 작아져서 슬픈 나를 위하여, 손성제의 ≪비의 비가≫ 두달 전에 다시 한번 그런 일이 있었다. 10년 전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나는 덜컹거리는 지하철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셔플 기능을 켜둔 채로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조원선의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얼음처럼, 차가워요, 단단하게, 굳어져가요, 그 속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요, 이제는 아무도’라고 노래하는 조원선의 목소리는 시끄러운 지하철 소음 속에서도 또렷하게 내 몸을 떨리게 했다. 10년 전의 목소리와 달라진 게 없었고, 오히려 더 서늘해졌다. 조원선의 앨범에 들어 있는 노래가 아니라 손성제의 ≪비의 비가≫에 들어 있는 <마음, 얼음처럼 단단하게>라는 곡이었다. 그때부터 ≪비의 비가≫ 앨범을 계속 들었다. 이 앨범은 그야말로 슬픔의 파노라마, 슬픔의 버라이어티, 슬픔의 포커스, 슬픔의 집대성이었다. 첫곡부터 끝까지 한번도 웃지 않는다. 웃음기를 보이기는커녕 자꾸만 땅속으로 기어들어간다. 그러나 그 슬픔은 우울로 이어지는 슬픔이 아니고, 자신을 괴롭히게 되는 그런 슬픔이 아니고,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 동정 가득한 슬픔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뜻이고,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나의 크기가 작아진다는 뜻이다. 혼자 차지하던 세계에 타인을 들어오게 하는 것이고, 타인이 잘 살 수 있게 내 영토를 줄이는 것이다. 내가 자꾸만 작아지니까 슬픈 거고, 그래서 자꾸만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날 사랑하냐고, 날 좋아하냐고’ 묻게 된다. 손성제의 ≪비의 비가≫는 작아지는 내가 슬퍼서 부르는 노래다. (연인이든 세상이든) 누군가와 사랑을 시작한 뒤에 느껴지는 슬픔에 대한 노래다. ‘2011년의 앨범’을 꼽는다면 ≪비의 비가≫를 무조건 포함시켜야 한다. 이렇게 모든 노래가 하나의 방향으로 화살표처럼 움직이는 앨범은 드물다. 모든 노래가 좋지만 ‘앨범’으로서 더욱 훌륭하다. 앨범의 첫곡부터 듣기 시작해 마지막 곡을 다 듣고 나면 어딘가를 관통했다는 기분이 든다. 커다란 감정의 덩어리를 삼켰다가 씹은 다음 뱉어낸 듯한 기분이 든다. <상상초월 쇼케이스> 공연을 할 때도 슬픔은 여전했다. 손성제는 조용하지만 또박또박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사람인데, 노래를 부를 때면 갑자기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본인은 좋은 보컬리스트가 아니라서 그런 거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의 노래에 그보다 잘 어울리는 목소리는 없다. 바람 같은 목소리, 가지 끝의 나뭇잎이 떨리다가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는 듯한 목소리다. 손성제는 색소폰을 부는 사람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어찌 보면 그의 색소폰 소리나 그의 노래나 다를 게 없었다. 관악기들이 그렇게 쓸쓸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 속에다 숨소리를 불어넣기 때문이고 손성제는 색소폰에 숨을 불어넣는 것처럼 노래를 부르니 모든 노래가 그렇게 쓸쓸했던 거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아마도 사라지는 것들을 그리워하는 감정일 것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였다면 절대 알 수 없을 감정,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영토를 줄여본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을 감정, 함께하는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결코 그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감정이 바로 외로움일 것이다. 앨범에서 가장 쓸쓸한 트랙은 <멀리서>라는 곡이다. 조용히 노래를 부르는 객원가수 김지혜의 목소리와 기타 소리 위에 사람들의 소리가 겹친다. 텔레비전 소리 같기도 하고, 공연장에서 들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웃고, 환호하고, 박수치고 있다. 그들이 환호하고 돌아가는 시간의 어두운 골목에서, 웃음과 박수가 모두 끝난 뒤의 적막 속에서, 자려고 누운 침대 위로 보이는 어두운 천장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은 순식간에 그들을 기습 공격할 것이다. 순식간에 심장을 후벼파고 우울을 극대화할 것이다. 외로움이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찾아가자. 그게 훨씬 덜 아프다. 외롭지 않다고 자신을 세뇌하다가 어이없는 한방에 무너지지 말고 우리가 먼저 찾아가자. 내가 보장한다. 손성제의 앨범 ≪비의 비가≫를 듣는 순간, 이번 가을과 겨울의 가장 깊고 환한 외로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슬픔이 오기 전에 만나러 가자. 2011년 가장 슬픈 노래들.